
둘로 갈라진 큰 바위 사이로 생명의 물이 흐른다[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33)성사실(聖史實) 이콘 해설- 예수님의 세례 (작품 1) 예수님의 세례: 템페라 (14세기, 오흐리드, 클레멘스 교회의 이콘 미술관 작품의 모작), 63 x 50cm, 이콘 마오로 미술관, 안성, 한국 가운데 옷 벗은 예수님 요르단강 안에 서 계시고 요한 세례자의 손 예수님 머리에 얹혀 있고 눈은 성령 바라보고 있어 1. 기원(起源)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을 초대 교회에서는 두 가지 의미로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는 빛이 드러나심(Epiphaneia)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이 드러나심(Theophaneia)입니다. 요한네스 크리소스토모스(349-407)는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탄생 때보다는 세례를 통해서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 무렵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시어, 요르단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9-11) 이콘에서 제일 위쪽에 어두운 반원형의 성부와 빛나는 검은 원형의 성령과 중심에 세례를 받고 계신 성자로서 아버지, 아들, 성령 삼위를 드러냈습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통해 많은 사람 앞에서 공적의 인정을 받으시며 그분의 인성과 신성이 드러남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신 것을 공생활의 출발점으로 삼아 빛의 축일로 지내게 되었습니다.(작품 1) 2. 민족들의 빛 예수님의 공생활이 시작되면서 하느님께서는 이미 선택하신 분을 빛으로 세워 말씀하십니다.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마태 4,15-16; 이사 8,23─9,1)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이사 42,6)라고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고, “나는 눈먼 이들을 그들이 모르는 길에서 이끌고 그들이 모르는 행로에서 걷게 하며 그들 앞의 어둠을 빛으로, 험한 곳을 평지로 만들리라. 이것들이 내가 할 일. 나는 그 일들을 포기하지 않으리라”(이사 42,16)라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오신 빛이었습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이 세상에 왔다”고 요한복음은 그분이 빛이심을 처음부터 전합니다.(요한 1,5; 1,9) 이스라엘 백성이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으로(탈출 13,21 참조) 인도받아 바다를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새로 태어난, 새 삶의 과정으로 세례를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세례는 하느님의 빛 안으로 들어가는 새 삶이라고 말합니다. 세례받는 사람들은 새 삶에 대한 기쁨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기쁨에 빛납니다. 이는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라는 구절과도 연관됩니다. 세례 이콘이 강조하는 것은, 그분은 말씀이지만 인간으로 낮추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는 회개와 함께 죄 사함의 과정이지만, 그분은 본인 스스로 죄와는 무관하실지라도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를 씻으려는 의지와 행동으로 우리의 모범이 되셨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하느님의 의로움을 이루시겠다는 의지가 들어있습니다. 다만 빛의 축일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믿는 자들의 정신과 영성을 이끄는 신학적 의미가 더 크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작품 2) 예수님의 세례: 템페라 24 x 19,5cm, 1500년경, 노브고로드 박물관, 노브고로드, 러시아 3. 구성(構成)과 상황 세례 이콘은 수백 년 지나는 동안 성경을 바탕으로 전례에 따라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더 강조하거나 추가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가장 전형적 형태는 커다란 바위를 두 부분으로 나누고 그 골짜기 사이로 많은 양의 물이 흘러내려 오는 것입니다. 그 외에 여러 인물·강·나무 등이 등장합니다. 가운데에 옷을 벗은 예수님이 요르단강 안에 서 계시고 요한 세례자의 손이 머리에 얹혀 있는 형태의 이콘은 여러 의미를 복합적으로 보여줍니다. 중요한 것은 요한 세례자가 성령을 바라보고 있는 구성입니다.(요한 1,34 참조) 당시에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받으러 오는 많은 사람 앞에 성령께서 오심은 예수님의 모든 행적이 성령으로 충만하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자연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이사 35,1-2) 그곳에 큰길이 생겨 ‘거룩한 길’이라 불리리니 부정한 자는 그곳을 지나지 못하리라."(이사 35,1-2.8) 자연은 거칠고 바위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부분으로 크게 갈라져 있습니다. 이 갈라진 형태는 인간의 깊은 죄의 결과로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상징합니다. 이 구렁텅이는 너무나 커서 간격을 좁힐 수 없었고 영원히 합쳐질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무너진 빈자리를 메워 다시 연결할 수 있는 누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하느님’만이 해결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무너진 골을 메우시고, 사람과 하느님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십니다. 이것은 그가 사람이었으며, 그리고 하느님이셨기에 가능했습니다. 바위산은 네 개의 산봉우리를 이루며 조화롭게 윗부분의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 시각적 구성은 많은 상징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믿음에 대한 신비를 증언한 네 복음이 이콘에서는 네 개의 봉우리로 상징화되어 있습니다. 특이하게 안으로 구부러진 정상은 네 번째 복음서를 상징합니다.(요한 복음서) 그것은 다른 복음들이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면들을 우선하여 설명한 데 비해 어떤 일·사실·사건 등을 통해 숨겨져 있는 영성적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기록함으로써, 생명의 원천이신 하느님에게서 오신 그리스도를 드러나 보이려 합니다.(작품 2)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골짜기에는 생명을 주는 원천수가 흐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삭막한 사막과 같은 그곳에 생명의 물이 흘러 꽃을 피우고 나무가 자라서 맛있는 과일들이 열리고, 아름다운 새와 곤충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에덴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즉 이는 네 복음을 통해 무한한 생명을 주는 생명수가 흘러나옴을 상징합니다.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며 말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중략)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하며 본인은 길을 닦는 사람의 역할과 예수님께서 메시아임을 알리려 했습니다.(요한 1,29-34)<계속> 김형부 마오로cpbc2024.08.28

“수도생활 70년… 은총이었네”독일 출신 진 토마스 신부 올해 서원 70주년을 맞은 진 토마스 신부. 2008년부터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화순분원에서 수도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오토바이 타고 비포장도로달려 사목... 평신도 신학 교육, 수도생활 중 가장 보람" 올해 서원 70주년을 맞은 진문도(토마스 모어, Joseph Wilhelm Timpte, 91,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화순분원) 신부. 한국에서만 60년 넘게 살았다. 약간의 경상도 사투리도 섞어가며 한국말을 맛깔지게 하는 독일 출신의 노(老) 수사 신부다. 역동의 시간 속에서도 70년간 한 번도 성소를 의심하지 않았다는 진 신부. 사제로 수도자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온 이 시대 어른이 전해주는 이야기다. 최근 전라남도 화순분원에서 그를 만나 하느님 안에 살아온 세월을 전해들었다. 성소, 완전한 봉헌 1933년 독일 오버하우젠에서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진 토마스 신부는 깊은 신앙심을 간직한 교사 출신 부모에게서 올곧은 성품을 물려받아 자연스레 선교사의 삶을 꿈꿨다. 고등학교 때 당시 이름난 베네딕도회 출신 선교학 교수와 깊은 대화를 하고 진로를 결정했다. 베네딕도회에 입회한 이유도 그리스도를 전하는 데 혼자보다 공동체가 더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1953년 베네딕도회에 입회하고 이듬해 5월 첫서원을 한 진 신부는 “완전한 봉헌의 기점을 종신서원으로 보지만, 저는 첫서원 때 이미 일생을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 후 성소에 대해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느님 은총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겠네요.” 그렇게 진 신부는 첫서원 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순종의 삶을 이어오고 있다. 서원 후 첫 소임은 공부였다. 로마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1957년에 종신서원, 1960년에 사제품을 받고는 한국 선교 발령이 났다. 아프리카에서 철학을 가르칠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들은 예상치 못한 행보였다. 전쟁과 가난, 언어의 어려움이 예상돼 걱정이 앞섰지만 그는 순종했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알려졌는데, 저는 우표 모으는 취미가 있어 이미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아주 낯설지만은 않았습니다.” 진 신부는 40여 일간 배를 타고 1962년 3월 10일 한국 땅을 밟았다. 순명의 삶 처음 본 한국 모습은 생각보다 더 가난했다.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기차에서 창밖을 보는데, 초가밖에 없었습니다. 포장 도로도 없었지요. 그래도 재밌었습니다. 오토바이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사목했어요. 깊은 산속에 있던 공소에는 걸어 올라가기도 했고요. 지금은 상상조차 못 할 가난한 삶이었지만, 참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좋았던 시절도 잠시, 그는 33세에 수련장이 됐다. 진 신부가 수도생활 통틀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는 시기다. 10살도 차이 나지 않는 수련자를 외국인 신부가 지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는 서로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지금 두 명 남았는데, 그래도 같이 늙어가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분들도 왜관수도원에서 가장 큰 어른들이고요.” 시간이 지나 1995년에 다시 한 번 수련장을 맡게 됐다. 그때는 영국에서 심리학과 영성신학 등을 배운 뒤라 훨씬 수월했다. 그렇게 진 신부를 거쳐 간 수련자는 15년간 100여 명에 이른다. 가장 힘든 시기였다고 하면서도 순명이라는 이름으로 그 긴 시간을 감내했다. 진 토마스 신부가 보좌 시절 오토바이를 타고 사목하고 있는 모습. 진 토마스 신부 제공 1963년 왜관 본당 보좌로 사목하고 있는 진 신부. 진 토마스 신부 제공 첫서원 후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진 토마스 신부.(가운데) 진 토마스 신부 제공 평신도를 위한 신학 교육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진 신부는 왜관 가톨릭신학원(현 대구가톨릭대학교 가톨릭신학원) 시절을 회상했다. 본래 수녀들의 신학 공부를 위해 시작했는데, 가끔 평신도들이 왔다. 그들의 열정을 본 진 신부는 1985년 직장인들을 위해 야간반을 만들었다. 당시 남자만 받으라는 주교의 권고가 있었지만 남녀 모두에게 열어뒀다. “교리교사를 위한 교육은 있었는데, 평신도들을 위한 신학 교육은 한국에서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평생 순종만 하다가 제 의지대로 처음 해본 일이었습니다. 서로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몰라요. 포항에서 일 끝나고 왔다가 수업 후 다시 돌아가는 분도 계셨고요. 고된 일을 하고 공부하려니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수업 중에 꾸벅꾸벅 졸면서도 끝까지 들으려 하더라고요. 그렇게 7년을 가르쳤습니다. 제 수도생활 중 가장 보람된 일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진 신부는 소소하게 그간의 기억을 꺼냈지만, 교회 내 굵직한 일도 많이 맡았다. 「200주년 기념 신약 성서」 번역에 참여했고, 수도승 생활·영성 전문잡지 「코이노니아」도 시작했다. 30년 이상 번역해 실었던 「요한 카시아누스의 담화집」이 최근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특히 진 신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부터 교회의 역사를 직접 체험한 산증인이다. 그는 “공의회 개최 소식을 듣고는 눈물이 났다”고 했다. 새로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느꼈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새로워질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다만, 60년 전 흘렀던 눈물이 아직도 유효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시노달리타스를 하고 있는데, 그때와 방향은 비슷합니다. 변화는 계속해서 필요하고 모두가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과정에 말입니다.” 진 신부는 또 “수도생활도 위기라고 하는데, 위기는 새로운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며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의 현대사도 함께한 그다. 진 신부는 “이렇게 단시간에 발전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면서도 출산율 저하·높은 자살률 등 심각한 사회 문제에 대해 우려했다. “행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인간은 욕망을 채울 때 행복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욕망을 채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고, 그걸 깨닫게 해주는 게 교회의 일이죠.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도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면 더 나은 행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라치아 2008년부터 전라남도 화순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진 신부는 지금도 성경과 함께 「성 베네딕도 수도 규칙」을 가장 가까이에 두고 있다. 진 신부는 곁에 둔 규칙서를 펴고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읊어줬다. “구원의 길을 도피하지 마라. 그러면 수도생활과 신앙을 나아감에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로써 하느님 계명의 길을 달리게 될 것이다.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서 구원의 교훈을 지킴으로써 그리스도 수난의 인내로 그분 나라의 동거인이 되도록 하자.” 손때가 잔뜩 묻은 규칙서는 첫서원 후 70년의 세월을 말해줬다. 진 신부는 규칙서를 닫으며 다시 한 번 은총의 시간을 되뇌었다. “라틴어로 은총을 뜻하는 ‘그라치아(Gratia)’는 듣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말입니다. 은총이라는 말에 다 표현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선물을 쏟아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예전에는 성총(聖寵)이라고 불렀지요. 아직도 기도할 때 분심도 들고 어려워요. 그럼에도 수도생활은 그라치아입니다. 언제 불러주실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 계속 하느님 찬양하는 삶 살아야지요. 그라치아!” 박민규 기자 mk@cpbc.co.kr신문취재팀 박민규2024.10.02

성전건립 유감(有感)」(7)-뚝심과 효심으로 이룬 성전-궁즉통이라 했던가, 궁하면 통하고 닥치면 하기 마련이라고... 그저 충실히, 열심히 하다 보니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고 천사들을 보내시어 은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후원자들을 보내주셔서 보잘 것 없는 이 사제의 갈망을 기묘하게 갚아주신 것이라 확신한다. 기금 마련 초기에 기금이 늘어나는 것에 재미가 들려 열심히 재미있게 하는 중에 디스크 협착이 발생해서 한 2년간 죽는 줄 알았다. 전철을 갈아타러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면 발걸음 걸음마다, 뼈가 울리고 심지어 숨 쉬는 순간마다 통증이 올라와 정말 고통스러웠다. 더욱이 기금 마련 미사 중에 웃고 싶어도 통증이 심해서 도저히 웃음이 나오질 않아, 공지사항 시간에 ‘제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것은 여러분들이 맘에 안들거나 미워서가 아니라, 허리가 너무 아파 숨만 쉬어도 죽을 지경이라 그러니 양해해 주시라’고 한적도 있었다. 통증을 줄여보려고 나아보려고 별짓을 다했다. 약 복용부터 사혈, 교정치료, 침 맞기... 별별 짓을 다 해봐도 효과가 없어 포기하려다가 교구의 몇몇 신부들이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나았다는 증언을 듣고 손해 보는 셈 치고 가봤다. 세상에~ 그렇게 아픈 침은 처음이었다. 무엇보다도 맞고 나면 한 이틀은 실컷 두들겨 맞은 듯 더 아팠다. 그러다가 다섯 번째까지 맞아도 별 효험이 없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맞아보고 그래도 효과 없으면 그만두려다가 여섯 번째 맞고 한 이틀 있더니 감쪽같이 나았다. 한의사의 실력인지, 천사의 손길인지... 정말 오랜 어둠에서 빛으로 해방되는 듯 했다. 우리 교우들에게도 공표하고, 나와 비슷한 경우라면 꼭 가보라고 연락처까지 알려줬다. 그 과정에서 서울의 어느 자매님이 치료를 받도록 경제적 도움을 주시기도 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새삼 “구하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알렐루야~! 기금 마련을 하러 가는 본당에는 빈손으로 가기가 송구스럽고 감사한 마음에 주임 신부님과 수녀원, 사무실, 관리원까지 인견 이불과 반바지를 감사의 선물로 드렸다. 이불과 반바지를 구입한 교우들은 매우 만족하며 재차 구입하는 분들도 많았다. 어떤 분은 미국에 가져가고 싶다고 구매를 하기도 했다. 지나고 보니, 아예 공장을 차려서 회사를 운영해볼 걸 그랬나...싶은 생각도 든다... 그랬다면, 꽤 많은 수익을 올렸을 것이란 착각 아닌 착각을 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이사장을 맡아서 가난한 우리 교우들 매장 하나씩 차려주고 일자리를 마련해주면 먹고 사는데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ㅜㅜ 돈맛을 보더니 별 생각을 다해봤다. 기금 마련을 허락해준 본당 신부님께는 가시는 임지를 알아내서 성탄과 부활 축하 인사와 메시지를 꼬박꼬박 보내드리고 감사를 표시했다. 큰 금액을 봉헌하신 분께는 대한민국 최고의 밤 ‘공주밤’을 좋은 것으로 골라 감사의 선물로 보내드렸다. 만족도가 높았다. 유구 성당에 재임하는 동안에는 계속 보내드렸다. 고마운 마음에 뭐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드릴 수 있는 것을 찾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도 성전을 더욱 정성껏 건립하게 되었다. 나중에 그분들이 와서 성당을 보셨을 때 ‘아, 참 예쁘다... 아름답다, 거룩하다... 내가 봉헌한 후원금이 이렇게 은혜롭게 쓰였다니...’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기뻐할 수 있게... 돌아보니, 처음 보는 신부를 따뜻이 맞으며 ‘고생 많다’고 격려하며 즉시 허락해주는 신부가 있는가 하면... 어떤 신부는‘가방을 매고 땀을 찔찔 흘리며 안된다는 데 여러 번 찾아가니...’ “혹시 미친 거 아니냐~(또라이냐?)”라고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내가 진짜 신부인지 못 믿겠으니, 교구 주교님께 확인서와 신부 증명서를 보내고, 당신 동창 신부님들의 증언서도 제출하라고 한적도 있었다... 워낙 많은 곳에서 많은 신부들이 도움을 청하러 손을 빌리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으면서도 살짝 야속하고 서럽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또 본당에 부채도 적지 않게 남아 있으면서도 기꺼이 오라고 환영하는 신부도 있었고, 두 번이나 기회를 준 신부도 있었고, 결과가 약하지 않냐며 별도로 추가 지원비를 주는 신부도 있었다. 심지어 공지사항 시간에, 자기 본당에도 큰 사업을 앞두고 있음에도, 교우들을 앉혀놓고,“얼마나 어려우면 여기까지 와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도움을 청하겠느냐?... 서울 신자들이 다 어디서 왔느냐, 다 시골에서 낳아 키워서 보내지 않았느냐, 우리 고향 성당에 벽돌 한 장 얹는 마음으로 우리가 성심껏 도와야 한다~”면서 감동의 일장 연설을 하여 우리를 울리고 감동의 도가니탕에 빠뜨린 신부님도 있었다... 참으로 나만의 힘이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한다. 그런가 하면 강론 시간을 주지 않고 공지사항 시간에 3분만 홍보하라고 하는 신부님도 있고... 그런 경우는 그냥 갈까 싶다가도 어떻게 왔는데... 한 푼이라도 더 마련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끝까지 버티기도 했다.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극성스럽게 다녔다. 이렇게 늘 기금 마련을 다니다 보니, 비어있는 본당은 어찌할 것인가~ 누군가 와서 내 대신 주일미사(특전~주일)를 봉헌해 줄 신부님이 있어야 했다. 이게 또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우리 성당은 수리치골(성모성심수녀회)이 가까이 있어서 거의 매년 안식년 하는 신부가 와서 있었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워낙 오랜 기간을 하다 보니... 한두 번도 아니고 그도 어려워서 아예 시간 여유가 되는 신부를 찾았다. 그러다가 은퇴신부님(원로사제→지금은 성사전담사제로 바뀜)을 찾다가 내가 가끔씩 찾아뵙곤 하는 원로 신부님께 찾아가서 부탁을 드렸다. “걱정 하지 마, 뒷방 늙은이라 할 일도 없는데 할 일 생겨서 좋고, 후배 신부가 어려운 형편에서 성당을 짓겠다고 그 고생을 하는데 늙은 신부가 가서 공기 좋은 산골에서 순박한 교우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보람있는 일이냐”며 흔쾌히 승낙해 주셨다. 그분이 우리 본당에 미사를 봉헌해주신 기간이 몇 년인지 모를 만큼 오랫동안 미사를 봉헌해 주셨다. 그리고 그분은 어김없이 30분 전에 오셔서 고해 성사를 주시고 미사를 봉헌하시고는 일체 식사 대접이나 미사 예물도 안 받으시고 바로 가셨다. 회장단에게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신부님이 그냥 가시는데 어쩌냐’고 하니~ 답답하고 죄송하고 민망했다. 한 번은 ‘제 마음도 좀 받아주시고 우리 신자들 마음도 좀 생각해 주셔야 되지 않느냐’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분이 이렇게 말씀 하셨다. “절대 그런 소리 하덜 말어~ 할 일없는 신부가 공기 좋은 산골에서 순박한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하는 일이 나에게는 큰 기쁨이고 즐거움이야~ 그 자체가 나에게는 선물이고 보람이라구~”그분은 단 한 번도 식사 대접을 안 받으셨고, 미사 예물 한 푼도 받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만일에 미사 예물을 준다거나 그러면 안 갈 거야~”라고 무서운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 나는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심장이 쿵 하고 코끝이 찡~하며~ “신부 몸땡이는 말이여~ 교회가 쓰라고 있는 것이여~”... 하~ 아마도 이 말씀은 성경 말씀과 더불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물론 내 심장에는 결코 지울 수 없도록 깊이 아로새겨졌다. “신부가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은총이고 즐거움인데 어찌 한 푼인들 미사예물을 받는다냐~.” 참으로 그분다운 말씀이셨다. 여러 번 만나 뵙고 찾아뵈면서 성격은 참으로 독특하고 괴팍하신 편이지만 그분의 생각이나 성덕, 학덕 그리고 사시는 모습은, 또 순교자에 대한 공경의 마음은 후배들이 부끄러움을 느낄 만큼 철저하신 분이시다. 이 은혜를 어찌 갚을까나~ <계속> - 대전교구 정필국 베드로 신부 cpbc2024.10.17

성 이호영, 103위 성인 중 가장 먼저 체포되고 가장 먼저 순교[ 윤영선 교수의 우리 성인을 만나다] 11. 성 이호영 베드로 윤영선 작 ‘성 이호영 베드로’. 출 생 | 1803년 경기도 이천 순 교 | 1838년(35세) 형조 전옥서 / 옥사 신 분 | 회장 꿈속 천사의 말씀에 순종한 성 요셉 3월 19일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이다. 성 요셉의 꿈은 인상적이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 마리아의 임신 소식에 남몰래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던 요셉은 꿈에서 만난 천사의 말씀 때문에 정반대의 선택을 하게 되었다.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인 것이다. 이로써 요셉은 예수님의 양아버지이자 성가정의 수호자가 되었다. 성경에서 꿈은 인간의 의지가 개입되지 않은 상태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니 꿈속 천사의 말씀은 요셉의 선한 의지로도 오염되지 않은 ‘하느님의 뜻’을 말하려는 게 아닐까. 우리의 선한 계획조차 하느님 뜻에 어긋날 수 있다는 지혜를 그의 이야기가 들려주고 있다. 결국, 요셉은 이전에 가졌던 생각과 정반대로 행동하면서 하느님 뜻에 순종하게 되었다. 나의 계획과 하느님의 뜻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볼수록 요셉의 태도가 존경스럽고, 그분의 전구에 더욱 의지하고 싶어진다. 우리 순교자 가운데는 요셉 성인처럼 꿈의 상징과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태도를 연상시키는 성인이 있다. 경기도 이천 출신의 성 이호영 베드로다. 꿈이 예견한 대로 순교한 이호영 성인 순교자 이호영의 꿈 이야기는 요셉 성인만큼이나 인상적이다. 1835년 붙잡히기 며칠 전, 베드로는 임금과 친밀한 신하와 사귀며 과거에 오르고, 온몸이 풍류에 젖는 꿈을 꾸었다. 이상한 꿈이라 여기며 다른 교우에게 말하면서도 ‘아마도 순교자가 되려는가?’ 하였다고 한다. 그의 꿈과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 베드로는 곧 체포되었고, 긴 옥고를 치르던 중 1838년에 옥사하였다. 한국 103위 순교 성인 가운데 가장 먼저 체포되고 가장 먼저 순교한 순교자가 되었다. 긴 옥살이 동안 베드로의 인품에 반해 세례를 받은 죄수도 있었다. 선하고 부드러운 성품에도 고문을 당하고 배교를 강요받으면 단호하게 거절하며 고통을 받아들였다. 옥중에서 숨을 거두기 전에 베드로가 말했다. “나는 칼을 받아 죽기를 원하였지만, 이 또한 천주의 뜻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이 예견한 대로 순교자가 되었으나, 때와 방식마저 하느님의 뜻이었기를 바랐다. 성령의 비둘기 안고 온화한 미소 지어 12월 눈 덮인 수원교구 단내 성가정 성지 진입부의 오솔길을 걸어 들어갔다. 마치 성인을 직접 만나 뵈러 가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세상일로 고단한 내 마음을 성인에게 기대어 위로받고 싶은 것이었을까.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미소를 잃지 않고 불평 없이 힘든 일을 하신 성인이 성령의 비둘기를 두 손에 안고 아버지의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겸손하게 서 계신다. 성가정 성지 앞마당에는 예수님과 성모님 요셉 성인 세 분의 성가정상이 있다. 성가정상 주변으로 성스러운 빛이 감돌고 있는 듯하다. cpbc2024.03.13
![[신앙단상] 주님의 큰 그림(김정은 로사, 방송작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2/27/zhy1709017084598.jpg)
[신앙단상] 주님의 큰 그림(김정은 로사, 방송작가) ‘나를 만드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고등학교 시절, TV를 보다가 한 스포츠 광고의 카피 한 줄에 깊이 감동했습니다. 15초 안에 마음을 사로잡는 카피라이터가 근사해 보였습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광고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하고 각종 공모전에도 도전했죠. 많은 우여곡절 끝에 광고회사 인턴으로 최종 15명 안에 들었습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었다는 기쁨도 잠시, 정직원이 되기까지 두 달의 평가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멋진 카피라이터 선배들과 실무에 동참하게 된 저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어필하기는커녕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혀 잔뜩 위축돼 있었습니다. 예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밤늦도록 경쟁 PT를 준비하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퇴근하던 캄캄한 길, 달리는 택시 안에서 창 밖의 가로등을 촛불 삼아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 뜻대로 마시고 주님 뜻대로 해 주세요.’ 결과는 탈락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해 세 명을 뺀 나머지는 정직원이나 계약직으로 채용됐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수없이 드렸던 그 기도는 진심이 아니었나 봅니다. ‘하느님 뜻대로’가 겨우 이런 결과라는 게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여 후, 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저와 함께 떨어졌던 그 두 명을 추가로 합격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15명 중 유일하게 저만 떨어졌다는 적나라한 현실. 혹독한 광야가 펼쳐졌습니다. 이쯤 되면 카피라이터가 되는 길은 곱게 접는 게 맞을 것 같았습니다. 갈 곳 잃은 저는 방황했고 신앙생활마저 부질없게 느껴졌습니다. 성심껏 봉사한 결과가 고작 이 정도냐며 마치 악덕 고용주를 보듯 십자가 상을 노려봤습니다. 번듯한 직장에 취업한, 소위 잘나가는 정직원에게만 ‘전능하신 하느님’이 찰싹 붙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냉담할 배짱까지는 없던 저는 신앙생활은 유지하면서도 마음은 꼬일 대로 꼬인 채 빈정거리고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뭐라도 되면, 감사 기도밖에 더하겠어?’ 시간이 흘러 어느새 저는 작가로 방송 제작진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경력이 쌓일수록 제 원고는 5분에서 10분, 30분, 50분…. 점점 시간을 늘리며 전파를 길게 타게 되었습니다. 저는 말하기를 좋아해서 수다를 떨거나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나눌 때 늘 시간이 부족한 ‘투 머치 토커’입니다. 그런 저에게 하느님께서 ‘15초 광고는 너에게 너무 짧으니 넉넉하게 50분 방송 시간을 줄게’라고 하시는 듯했습니다. 저보다 저를 완전히 아시는 주님께 저는 결국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께 감사기도밖에 드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나 홀로 뚝 떨어졌다는 초라함에 몸서리치던 그 밤길에서도 주님은 제 옆에 딱 붙어계셨고, 성전에서 당신을 빈정대며 노려봤을 때에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은 저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비뚤어진 분노로 똘똘 뭉쳤던 흑역사도 지나고 보니 어느새 주님과 함께 빙그레 웃으며 꺼낼 수 있는 추억이 됐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한참 답답하고 더디더라도 제대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려는 주님은 쭉 저와 발걸음을 맞추고 계셨습니다. 제가 볼 수 없는 큰 그림을 그리시면서 말이죠. 김정은cpbc2024.03.27

‘똑바로’는 ‘제대로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의미 아닐까[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77. 똑바로 2001년 서울평협이 진행한 ‘똑바로 운동’ 선포식에 앞서 김옥균(1925~2010) 주교와 평협 임원들이 서울대교구청 마당에서 차량에 ‘똑바로 운동’ 스티커를 부착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똑바로’란 말이 있다. 조금도 틀림이 없다는 ‘똑’,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는다는 ‘바로’란 뜻으로, 비뚤어지지 않은 곧음을 말한다. 그런데 ‘정확하게’ ‘바르게’ ‘곧게’라는 엄중한 의미의 ‘똑바름’이 무언가를 명령하거나 다그칠 때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참 많아졌다. “똑바로 하세요!” “거짓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하라고요” “똑바로 일하고 있느냐고요?” ‘똑바로’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현장, 바로 국회가 아닐까 싶다. 국회에서 난투극을 벌일 때면 어김없이 서로 손가락질하고 호통을 치면서 ‘똑바로’를 외친다. 그리곤 “국민들이 보고 있어요” “예의를 갖추세요”라는 주문도 이어진다. 아마도 국회의원을 가장 떨게 하는 것은 카메라일 것이다.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을 애써 감추며 침착과 인내의 모습으로 ‘똑바름’을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똑바로는 ‘올곧게 선다’는 말이다. 머리는 하늘로 향하여 마음은 솔직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몸은 올곧은 선택을 한다. 시선은 카메라도 타인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을 바라본다. 똑바로(upright)는 또한 정직함과 선함이란 뜻이기도 하다. 정직함과 선함은 자신을 아는 데서 오는 결과다. 그러나 상황을 통제하는 카메라에는 사유나 성찰의 과정이 아닌 보여주기 식의 ’똑바름’을 연출한다. 거기에는 ‘네 탓’ 공방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똑바른’ 인물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 사람들이다. 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지식인이고 점잖고 품격까지 갖추며 ‘똑바로’ 살아간다. 마치 카메라 앞에 선 것처럼 절제하고, 단식하고, 선행을 베푸는 똑바른 모습을 잘 연출해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스승님’이라 부르며 존경을 표하고 그들 스스로도 자신을 ‘정말 괜찮은 똑바른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동시에 똑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사정없이 손가락질하며 ‘네 탓’이라고 규정한다. 이들은 합의하는 과정보다 드러난 성과물을 보여주고, 양심보다는 타인의 좋은 평가에 기대고, 행동에 대한 책임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에게 예수님 역시 똑바르지 않은, 단죄 받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예수님께 안식일을 지키고, 죄인들을 멀리하고, 단식하라며 호통치며 손가락질을 한다. 아마도 오늘의 국회 청문회처럼 얼굴을 붉히고 욕설과 고성이 오가지 않았을까 싶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과 같다”(마태 23,27)면서 똑바름을 위장한 ‘위선’을 강하게 책망하신다. 스스로를 똑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못 견뎌 한다. 바리사이는 주님 앞에서 그야말로 비뚤어지지 않고 정확하게 카메라를 응시하듯 똑바로 ‘꼿꼿이’ 서서 기도한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질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루카 18,11) 이에 세리는 멀찍이 서서 “고개는 하늘을 향하여” 그러나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고백한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똑바름’은 머리가 카메라나 남의 시선이 아닌 하늘로 향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솔직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바리사이는 똑바로 꼿꼿하게 서 있었지만 고개는 하늘이 아닌 ‘남’(세리)에게 가 있었다. 게다가 스스로 똑바름을 과시하다 보니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남에게 손가락질한다. 그런데 세리는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우러러본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자신의 양심을 바라보면서 ‘남 탓’이 아닌 ‘내 탓’으로 가슴을 친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대중을 의식하는 정치인이나 남들의 시선을 중요시하는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는 똑바르지 못한 사람에게 ‘똑바로 하라’고 호통을 친다. 하지만 정작 하느님이 선택한 똑바른 사람은 서민들 속에서 허리가 휘도록 뛰는 정치인이나, 가슴을 치며 용서를 구하는 세리일 것이다. ‘똑바로’가 남을 힐난하거나 꾸짖으면서 보여주기 식의 폭력적인 언어가 되어가는 것 같다. 미디어의 창에서 마이크를 잡고 머리를 카메라로 향하여 ‘네 탓’을 외치는 ‘똑바름’은 똑바르지 않다. 머리는 하늘을 향하고, 가슴을 치며 ‘내 탓’을 고백하는 정직한 ‘똑바른’ 사람이 그리운 세상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오래전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똑바로’라는 운동을 선포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시는지요? 도덕성 회복을 위한 똑바로 운동에서 올곧은 생각과 마음 그리고 행동을 하도록 촉구했었지요. 생각과 말과 행동을 똑바로 하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똑바로’는 어디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곧게 서다’(straight)라는 뜻입니다. 비뚤어지지 않고 곧게 바르게 서야 합니다. 직각으로 일어서(standing) 있음을 의미하는데요. 그리스어로 ‘스타우로스’(stauros)라는 말이 바로 일어서다는 뜻의 sta와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이 말은 바로 ‘십자가’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요. 똑바로 선 막대기란 말이지요. 그러니까 ‘똑바로’라는 말은 단호하게 제대로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머리는 하늘을 향하여, 시선은 나의 내면을 향하여, 그렇게 정직하게 ‘내 탓’을 성찰하는 ‘똑바름’을 살고 싶습니다. cpbc2024.07.10

신자로서의 정체성 드러내는 표지[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10) 십자 성호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하고 있다. OSV 일부 개신교는 왜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비난하나요? 한국 개신교 가운데 적지 않은 교단이 천주교를 이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단이란 말은 사전적으로 기성 종교의 정통 교의에서 많이 벗어난 교리, 주의, 주장 등의 조작을 두루 일컫는 말입니다. 개신교는 종교 개혁의 정신에 따라 오직 성경에 기록된 것만을 하느님의 계시 내용으로 받아들이고, 그 밖의 것들은 인간의 전통과 관습에서 나온 우상적 요소로서 배척합니다. 따라서 개신교는 천주교가 오랜 역사 속에 교회의 유산이자 전승으로 간직해 온 성모님 공경과 신심, 성인 공경, 성상에 대한 공경은 우상 숭배라고 비난하며, 천주교의 전례와 신심 활동을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정통 교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하여 잘못 가르치는 이들이 교회 역사 안에서 나타날 때마다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교도권에 따라 이들을 식별하고 감독하며 제재하는 권한을 행사하였습니다. 특히 정통 신앙을 위협하고 신앙 공동체의 친교와 일치를 방해하는 이단에 대하여 강력하게 대응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와 인류 공동체는 배타적 편협성에서 벗어나 보편적 공동선을 지향하는 대화와 화해의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도 시대의 맥락에 맞게 교리를 해석하고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를 신학과 교회 생활 전반에 펼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신교에 대하여 ‘이단’이란 용어보다는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교리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갈라진 형제들’이란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일치는 배타적 논쟁이 아닌 대화와 합의를 통하여 서로 올바른 신앙으로 나아가는 순례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한국 개신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신념과 오직 성경에서만 올바른 신앙의 전통을 얻는다는 기준을 고수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개신교 교단들 사이에서도 이단 논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성상을 공경하는 천주교의 전통을 우상 숭배라는 이유로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주교가 성상 자체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표현하는 그리스도의 현존과 완덕의 삶을 보여 준 성인의 신앙적 증거를 공경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비난은 옳지 않습니다. 개신교 신자가 천주교를 이단으로 비난할 때, 지엽적인 교리에 대한 논쟁은 전문적인 신학자들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에 상대를 충분히 납득시킬 수 없다면 섣불리 대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 대신에 가톨릭 신앙이 지닌 보편성을 강조하며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인류에 봉사하고 하느님 나라를 공동으로 건설해야 한다는 점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성호는 천주교 신자만 긋나요? 십자가 모양을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이라는 짧은 기도를 바치는 성호는 가톨릭교회의 오랜 전통입니다. 그리고 동방정교회, 성공회, 루터교도 십자 성호를 활용합니다. 성호경은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인 삼위일체 하느님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동시에, 십자 성호를 긋는 행위로 자신이 받은 세례를 기념하는 축복의 행위이자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본래 십자 성호는 2세기부터 개인이 기도를 드릴 때 엄지나 검지로 이마에만 작게 십자가를 그리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4세기부터 성경과 교회 전통에 따라 이마와 가슴에 작은 십자가를 그리는 전통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십자 성호는 13세기부터 보편화되었습니다. 16세기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는 성경과 교리 해석은 물론 교회의 오랜 전통과 관습까지 상당 부분 차이가 생겨났습니다. 개신교는 가톨릭의 오랜 신심과 전례 행위들이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고, 하느님 계시의 원천을 ‘오직 성경으로만’을 주장하면서 가톨릭의 관습적 요소들을 개혁 신앙에서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십자 성호가 개신교 전통에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전승을 공유하고 있는 동방정교회와 교황권에 대한 반발로 갈라진 성공회는 여전히 십자 성호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제였던 루터는 가톨릭의 예식을 존중하였기에 루터교도 십자 성호의 전통이 있습니다. 다만 장로교를 비롯하여 가톨릭에 반대하는 개혁 신앙을 주창한 노선의 개신교 교단들은 십자 성호를 가톨릭의 관습으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동방정교회의 경우에는 가톨릭교회와는 반대로 이마와 배(자궁)에 이어 오른쪽 어깨(선한 양의 무리)에서 왼쪽 어깨(악한 염소 무리)로 십자가를 긋습니다. 이때 엄지, 검지, 중지 세 손가락을 모으고, 나머지 두 손가락은 손바닥에 밀착시킵니다. 앞의 세 손가락은 삼위일체를, 나머지 두 손가락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cpbc2023.05.31
![[시사진단]창조, 그 시스템과 매커니즘 (김사욱 시몬, 「기후위기와 생태영성」 저자)](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1/24/Rhq1706086036238.jpg)
[시사진단]창조, 그 시스템과 매커니즘 (김사욱 시몬, 「기후위기와 생태영성」 저자) 구약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빛과 어둠을 가르시며, 낮과 밤을 만드시고, 식물과 동물 그리고 절기와 날을 만드시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다. 창조의 마지막 날에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이 먹을 수 있는 풀과 과일나무를 창조하신다는 이야기다.(창세 1,1-31) 이는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성 요소들, 생명체와 무기물의 집합체인 ‘시스템’을 창조하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번성’하라는 이야기다. 번성한다는 것은 생명체들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증가할까? 바로 먹이를 풍부하게 해주면 늘어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부들은 작물을 키울 때 퇴비나 비료를 풍부하게 뿌려서 작물이 잘 자라고 과일이 많이 달릴 수 있게 한다. 식물이 많으면 이를 먹이로 하는 초식동물이 늘어나고 초식동물이 많으면 육식동물이 늘어나며 동시에 인구가 증가하게 된다.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기본이 되는 식물에서 시작하여 육식동물이나 인간의 방향으로 먹이사슬에 따라 ‘퇴비’와 ‘초지’ 그리고 ‘먹이’라고 정의되는 ‘에너지 이동’이 일어나 번성하게 된다. 이러한 에너지 이동은 ‘열의 이동’이며 오직 한 방향으로만 이동하여 에너지 피라미드를 형성한다. 생물학에서는 이를 ‘열역학 제2법칙’으로 부른다. 열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데 뜨거운 열은 온도가 낮은 곳으로 이동한다. 결국 소비자의 개체 수는 하위 생산자 및 하위 소비자의 개체 수에 의해 자연적으로 조절되어 평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예외라는 점이 생태계의 평형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 지구에 생명체가 살기 적합한 환경 구성은 지구 자기장의 작동과 공전과 자전에 있다. 지구 자기장은 대기 중 성층권에 있는 오존층, 대기권이 지구를 이중삼중으로 둘러싸서 우주로부터 오는 방사선과 태양풍에서 지구의 생명체를 보호한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으로 지구 전체 평균온도를 일정하게 하는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메커니즘의 근원은 무엇일까?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 berg)는 과학의 첫 잔을 마시면 무신론으로 귀결되지만, 그 잔을 다 마시고 난 바닥에는 하느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은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만물의 각각에 부여한 내적 법칙에 따라 발전하도록 하셨다고 발언하였다. 결국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시스템과 함께 이러한 내적 법칙이 포함된 메커니즘을 창조하셨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하느님이 창조하실 때 가장 마지막으로 창조한 인간이, 하느님이 만드신 메커니즘을 교란시키며 붕괴시키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는 깊이 성찰해야 한다. 성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찬가’에서 주님은 창조되기 이전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다고 고백하였다.(콜로 1,16-17) 또한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으며 비천하게 살 줄도 안다고 하셨다.(필리 4,11-12) 이 말씀은 하느님과 예수님 안에서 창조되었고 그분을 ‘향해’ 창조되었음에도 인간의 과욕으로 빚어진 기후 문제에 대한 해법을 성 바오로 사도의 실천적 삶 안에서 보여준다. 그러나 기후 문제의 현실적 정책 주도자인 22대 신자 국회의원들의 기후정책이 보이지 않아 하느님 창조를 유지시키는 메커니즘의 붕괴가 지속되고 있다. ‘경제적 풍요’가 새로운 ‘신’으로 등장하여 하느님을 대체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김사욱 시몬cpbc2024.04.09

나약함을 인정하고 주님 자비를 느끼자[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47) 용서라는 걸림돌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27)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일어난 다툼 중, 가장 큰 다툼은 아마도 원수 사랑의 계명을 듣고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솔직히 예수님의 이 계명은 불가능해 보인다. 기쁘고 행복하기 위해, 마음의 평화를 위해 신앙을 선택했는데, 신앙은 왜 나에게 걸림돌로 다가오는가? 그렇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당한 만큼 똑같이 갚아주는 것이 더 정의로워 보인다. 아예 피하거나, 관계를 단절하는 방법도 있다. 예수님이 만약 그렇게 답하셨다면, 우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과연 그것이 나의 마음을 진정 자유롭게 할까? 예수님의 계명을 ‘존재의 변화’로 접근하면 어떨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궁극적 이유는 단순히 천국행 티켓을 얻기 위해서도,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하느님 아버지처럼 변화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신앙을 살아가는 이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 11,29) 마음의 안식을 얻는 길, 그것은 예수님처럼 온화하고 겸손하게 변화하는 것이며,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는 길은 예수님을 뒤따라 걷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께서 가신 길을 함께 걸으며 제자로 사는 삶에 대해 숙고하는 것이 아닐까.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기 위해, 내가 얼마나 큰 자비를 입은 사람인지 깨닫기 위해서 말이다. 그분이 가신 길은 한마디로 ‘사랑으로 하나 됨’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와 똑같은 존재가 되셨다. 인간의 모든 것, 나약함과 한계까지도 끌어안으셨다. 바로 거기서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난다. 성경의 현실주의에 따라 부정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모호함·불확실함·불완전함은 신앙의 반대말이 아니라 자비가 실현되는 곳, 구원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을 다른 눈으로 보며, 너그러운 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용서하지 못하고, 갈등하고 번민하고 분노와 원한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자기 자신을 자비로운 아버지의 눈으로 대면할 수 있게 된다. 용서하지 못해도 괜찮다. 나는 나약한 존재이니까. 시간도 필요하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내가 그렇게 나약함을 인정할 때 오히려 나는 강해진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나기에.(2코린 12,9 참조) 그러한 포기 안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어느 순간 그 모든 아픔이 아무렇지도 않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가장 큰 원수는 타인이 아니라 그가 한 말과 행위로 인해 얽매이고 고통받는 나 자신이 아닐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원수가 아닌, 원수가 내 안에 남겨놓은 것들일 것이다. 나의 나약함을 인정할 때 거리를 둘 수 있고, 연민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고, 자유로움을 경험하고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아버지의 자비로움을 닮아가는 것 아닐까.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심지어 우리에게 원수가 된 사람도. “그리스도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놀라운 사랑과 자비의 경지를 경험할 때 우리는 변화하게 될 것이다. 내 안에서 벗어나 성장의 길을 걸을 것이다.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처럼 조금씩 변화할 것이며, 진정한 자유를 경험할 것이다.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이정훈2024.04.24
성경 속 문화 배경 이해하기 성경 속 상징들 의미 모아 펴내성경 속 상징 허영엽 신부 지음 / 가톨릭출판사 성경은 오랜 기간 여러 사람에 의해 기록된 책이다 보니, 성경에는 다양한 시대의 역사와 사회, 문화, 관습, 풍속, 상징들이 녹아들어 있다.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성경이 가진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 다양한 상징을 이해해야 성경의 본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부활절에는 왜 달걀을 먹을까’, ‘재의 수요일에는 왜 머리에 재를 바를까’ 등 평소 신자들이 성경과 연관돼 가질만한 의문들을 모아 펴냈다. 가톨릭평화신문에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엮었다. 「성경 속 상징」은 ‘우리가 머무는 곳’, ‘하느님이 주신 자연’,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 ‘문학적 상징들’ 등 모두 8장으로 구성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과 김연아 피겨 선수를 비롯해 성경에 나타나는 상징들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하도록 다양한 소재와 넓은 식견을 총동원했다. 허 신부는 머리글에서 “성경에는 아주 다양한 상징들, 언어 표현들이 넘쳐 있고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며 “성경의 상징을 잘 이해하면 성경의 본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자는 현재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지혜로운 삶을 위한 묵상」,「말씀을 따라서」,「성서의 인물」 등이 있다. 이지혜 기자문채현2022.05.11
![[신앙단상] 보아즈와 룻처럼(김상훈 안드레아, 제주교구 이주사목(나오미)센터 사무국장)](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10/04/rz41696383618665.jpg)
[신앙단상] 보아즈와 룻처럼(김상훈 안드레아, 제주교구 이주사목(나오미)센터 사무국장) 구약성경 룻기는 베들레헴에 살던 나오미 가족이 기근으로 인해, 하느님을 섬기지 않는 모압 지방으로 이주한 뒤 남편과 아들을 잃고 이방인 며느리 룻만 데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기후 이주민’ 나오미가 이방인 며느리 룻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함께 정착하는 모습을 보면, 전쟁이나 기후 변화 등의 재난으로 국경을 넘어오는 이주민과 선주민 간의 사회통합은 오랫동안 꾸준히 이루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현 정부가 240만 명에 달하는 이주민의 향후 증가를 고려해 검토하는 이민청 설립과 730만 해외동포를 위해 설립한 해외동포청 또한 사회통합 조치의 일환이다. 올해 7월 프랑스는 외국인 소요 사태로 또다시 홍역을 치렀다. 그러나 소요 사태를 일으킨 외국인들은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이주배경 국민, 즉 프랑스 국민이다. 프랑스의 소요 사태는 2005년 프랑스 출장 때 내가 목격했던 ‘파리 차량 방화 사건’과도 매우 흡사해 보였다. 그 후 18년이 지나도록 프랑스는 사회통합에 있어서 전혀 진전하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에 같은 유럽 대륙 중 하나인 독일은 그동안 난민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다. 그런데도 외국인 소요 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나라로 프랑스와 대조를 이룬다. ‘포도주의 나라 프랑스’가 단일문화를 근간으로 하는 ‘동화정책’을 편 것이 이주배경 국민의 가슴 속에 불만이 쌓이게 하였고, 그것이 외국인 소요 사태로 발전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맥주의 나라’ 독일은 다양성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하였다. 소외와 배제를 최소화하는 ‘포용적 다문화정책’으로 난민들까지도 짧은 시간 내에 독일 국민으로 변화시켜 정착시키고 있다. 이는 구약성경 룻기에서 본토인 보아즈가 “네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주님의 날개 아래로 피신하려고 왔으니”(룻기 2,12)하며 이방인 룻을 포용하는 자세를 연상케 한다. 한편 ‘막걸리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은 ‘다문화(여러 문화 공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실제로는 이주민들이 한국인으로 동화되기를 바라는 듯해서 걱정을 떨쳐낼 수가 없다. 이주민·난민은 ‘이슈’가 아니다. 기록을 경신해 가는 ‘숫자’ 게임도 아니고, 그저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잘 들으려고 노력하라”고 말씀하셨다. 보아즈가 룻에게 “내가 잘 들었다”(룻기 2,11)라며 룻의 기구한 운명을 들어서 잘 알고 있기에 하느님의 뜻을 받들어 그녀를 도와주겠다고 말하고, 룻이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저의 하느님이십니다”(룻기 1,16)라고 고백하는 두 마음을 잘 간직하고 곰곰이 새겨보면 좋겠다. 국제선이 정상화되면서 제주도에 다시 이주민·난민이 들어오고 있다. 큰 홍수와 산사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인도 북부 사람들과, 내전과 쿠데타로 정국이 혼란한 아프리카 동부의 부룬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룬디에서 온 친구들은 비행기를 네 번씩이나 갈아타고 왔다고 한다. 처음으로 막 찾아온 사람들의 고단한 이야기를 듣자면 상담 시간이 한 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하지만, 그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 정신을 모토로 일하고 있는 나오미센터 직원들과 보아즈의 따뜻한 마음을 지닌 교회 안의 형제자매들이 있기에 제주도의 사회통합이 룻의 이야기처럼 잘 이루어질 것임을 믿고 희망도 가져본다. 김상훈 cpbc2023.10.25

성인들이 전해주는 보물같은 이야기 1000여 쪽에 가득13세기 처음으로 출간, 초세기부터 중세 성인들 전기 모아신화와 전설뿐 아니라 당시 역사·문학·예술 등 두루 담겨 황금 전설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 대주교 지음 변우찬 신부 옮김 일파소 「황금 전설」이라는 제목만 보면 자칫 금의 기원을 살피는 책 같지만, 실은 성인들의 이야기이다. 라틴어 원서 제목인 ‘Legenda Aurea(레젠다 아우레아)’를 번역하면 ‘황금 전설’인데, 15세기에 이 책이 많이 읽히면서 원래 제목인 ‘성인들의 전기(Legenda sanctorum)’에 황금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로 ‘황금의(aurea)’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당시 ‘전설(legenda)’이라는 단어에는 ‘모으다, 읽다, 낭독하다, 골라내다’라는 뜻도 있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성인들에 대한 중요한 읽을거리’인 셈이다. 1260년에 처음으로 출간된 「황금 전설」은 당시 도미니코회 수사였던 제노바의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Jacobus de Voragine) 대주교가 집필했다. 그는 신약 이후 천년, 초세기부터 중세까지 희미한 교회의 여러 기록과 전설, 구전되는 이야기를 찾아서 기록했고, 이를 통해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중세의 사회상을 엮어냈다. 덕분에 성직자들은 강론을 위해, 신자들은 신심 함양을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이로 인해 초판 출간 200여 년 후 서유럽 대부분의 언어로 번역 또는 중역되면서 1500년대에는 성경의 발행 부수보다 이 책의 복사본 수가 더 많았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광기 어린 과시를 밀어붙여 모든 신을 기리기 위해 다른 무엇보다 더 높고 더 놀라운 신전을 세울 지경에 이르렀고, 그것을 ‘모든 신’을 의미하는 판테온이라고 불렀다. (중략) 로마가 그리스도 믿음을 받아들인 지 오랜 후, 포카스 황제는 대 그레고리오 교황 후 세 번째 교황인 보니파시오 4세 교황에게 위에 묘사된 신전을 양도했다. 보니파시오 4세 교황은 우상 숭배와 관련된 상 등 모든 것을 없애고 609년 5월 12일에 복되신 마리아와 모든 순교자를 기념하는 건물로 축성했다.”(922쪽) 모든 성인들 이콘화 책을 번역한 서울대교구 변우찬(우면동본당 주임) 신부는 “이 책은 신화와 전설만이 아니라 중세의 민속학, 역사, 문학, 예술, 그리고 종교 등 각종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고 종교사만이 아니라 미술사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고 전했다. 이미 한글로 번역된 책이 있지만, 가톨릭 용어나 전례, 신심을 이해하지 못한 그릇된 번역이 많아 변 신부는 번역을 결심했다. 이번 책은 2012년에 단권으로 출판된 영어본(윌리엄 그레인저 라이언 번역)을 우리말로 옮겼으나, 이마저도 오역한 부분이 많아 완성까지는 3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변 신부는 “번역을 놓지 않았던 것은 중세 미술, 르네상스 시대 작품, 특히 성경 내용을 그린 그림과 성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 책만큼 좋은 자료가 없기 때문”이라며 “배경이나 등장인물, 소품들까지 왜 필요했는지를 안다면, 그 그림을 보다 충실히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인들의 이야기는 사실상 전례 주년의 주된 구분에 따라 대림부터 성탄, 성탄부터 칠순, 칠순 시기부터 부활, 부활 날부터 성령 강림, 성령 강림의 팔일 축제부터 다시 대림까지로 나누어 축일을 기준으로 실려 있다. 이미지 한 장 없이 1000쪽이 넘는 분량에 다소 압박감이 있지만,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을 맞아 찬찬히 읽어나가면 어떨까. 변우찬 신부는 한국교회사연구소 상임이사 겸 부소장, 절두산순교성지 주임,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초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10.25

주님께서는 시나이산 위로, 그 산봉우리로 내려오셨다.[월간 꿈 CUM] 뿌리 _ 구약이 말을 건네다 (3) 이탈리아 로마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Basilica di San Pietro in Vincoli)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1515~1515) 자유(해방)의 여정이었던 이집트 탈출은 무엇보다 이집트 제국이 주었던 부유함의 삶을 내려놓는 일이었습니다. 자유를 찾아 패기있게 떠났지만, 척박한 광야에 들어서자 이집트가 주었던 부유함은 더욱 달콤한 향수로 다가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돌아가지 않았고, 거친 광야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 안엔 하느님의 사람 모세의 위대한 인도가 있었습니다. 부유했지만, 자유가 없었던 삶을 살았던 이집트의 삶,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했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은 지금 우리에게 근본적인 묵상을 제안합니다. 파스카 여정에 있어서 부유함과 자유는 서로 함께 섞일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한 분이신 하느님과 우상을 함께 섬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만약 현대인들이 지금처럼 끊임 없이 부유함만을 추구한다면 계속해서 자유를 잃어갈 것이며, 그 안에는 부에 속박된 노역의 삶만 존재하는지도 모릅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탈출기 파스카의 완성임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자유는 분명 부유함보다 우선하는 가치입니다. 더 나아가 이 자유의 여정 안에 하느님과의 만남이 있으며, 그분의 말씀을 받아드리는 체험이 있습니다. 장대한 파스카 여정 한가운데에 일어났던 말씀의 사건은 분명하게 시나이산이라는 지리적인 장소를 언급합니다.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 이르렀다. … 주님께서는 시나이산 위로, 그 산봉우리로 내려오셨다. … 그때에 하느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셨다.”(탈출 19,1-20,1) 어째서 시나이산이었을까요? 어째서 하느님 백성은 다른 곳이 아닌,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시나이산이 지닌 독보적인 순수성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은 척박한 광야였고, 한적한 곳이었으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인간의 계략과 정치적 술수가 없는 오염되지 않은곳이었습니다. 즉, 시나이산은 이스라엘 백성이 외부의 방해없이 하느님과 단둘이서 만나며,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들을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었습니다. 시나이산이 주고 있는 이러한 의미는 이 산이 위치한 지리적 특성에 기인합니다. 하느님 백성이 살아가게 될 가나안 땅은 지리적으로 개방된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 농경문화가 발달한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속하였기에 주변의 민족들의 침입이 잦았습니다. 그러나 시나이산은 이 가나안땅에서 따로 떨어져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킨 후, 당신의 목소리만 들을 수 있는 시나이산에 따로 불러 세우시어 당신의 말씀을 온전하게 전해 주십니다. 이러한 시나이산의 체험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 속에서 오직 하느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믿었던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만들어졌고,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는 이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이 수많은 속박과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으로 자리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 속엔 시나이산이 있습니다. 그들은 삶의 시련과 물질적 부유함으로 인하여 믿음이 흔들릴 때, 시나이산을 찾아갑니다. 그 산에서 그들은 주님의 말씀에 다시 귀 기울이며 하느님만을 섬길 것을 다짐합니다. 사실 시나이산은 매우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읽고 듣는 모든 순간은 시나이산 위에 서 있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나이산은 성경 그 자체이며, 우리 모두의 산입니다. 말씀 안에서 인도자 모세와 함께 그 위대한 산을 꾸준히 올라 하느님을 오롯하게 만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시나이산 위로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며 바른 법규와 진실한 율법과 좋은 규정과 계명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느헤 9,13) 글 _ 오경택 신부 (안셀모, 춘천교구 성경 사목 담당 겸 교구장 비서) cpbc2023.11.28

피조물 보호, ‘선택’ 아닌 그리스도인 ‘소명’교회,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 지내생태적 회개 촉구, 피조물 보호 위한 돌봄 문화 확산 인간은 자신들의 안락함을 위해 피조물을 상대로 한 무분별한 착취를 이어왔고, 그 결과 기후위기라는 재앙을 초래했다. 기후위기는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은 물론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영화 ‘북극곰 이야기’ 한 장면. 9월 1일은 가톨릭교회가 정한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생태 위기 극복과 더불어 교회 일치와 연대를 위해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정교회와 함께 지내기로 했다. “개인과 공동체에 피조물을 보호할 소명을 일깨우고, 이에 동참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교황은 매년 이날 전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생태 문제를 성찰하고 기도·회개·행동하며 생태 중심의 삶을 살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왜 피조물과 공동의 삶을 살아가야 할까? 이는 그리스도교가 ‘창조 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피조물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명기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창세 1,26; 2,15) 이처럼 인간은 세상을 ‘다스리고’, ‘돌보기’ 위해 창조됐다. 세상에 대해 책임을 지고, 하느님 나라가 현존하도록 일하는 게 소명이다. 인간은 이 일을 통해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살 자격을 얻는다. 따라서 자연을 파괴하고, 자원을 남용하는 것은 “그곳을 일구고 돌보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셈이다. 즉 창조 질서를 깨뜨리는 ‘죄’를 짓는 것이다. 인간이 하느님을 거슬러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그분의 땅은 고통을 받아 메말라 불모지가 되고, 적으로부터 파괴된다.(레위 18,25.28; 이사 24,4-6; 호세 4,1-4 참조) 성경은 ‘노아의 방주’(창세 6ㅡ9장) 사건을 통해서도 피조물을 보호해야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땅’을 상징하는 방주에 올라탄 모든 생명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 말씀대로 모든 생명을 돌보지 않으면, 세상을 보호할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 또 성경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의 맏이’라고 밝힌다. 만물이 성자 안에서 창조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희생으로 만물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셨다고 고백한다.(콜로 1,15-20)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신 후 보시니 “좋았다”고 하셨다. 이에 가톨릭교회는 모든 피조물이 저마다 고유한 선과 완전성을 지닌다고 가르친다. 인간은 피조물의 고유한 선을 존중해야 하며, 무질서하게 이용하거나 창조주를 무시해선 안 된다. 교회는 또 모든 피조물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연대하고 상호 보완해야 살아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피조물 보호를 위해 ‘돌봄의 문화’가 촉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선, 연대와 보조성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교리의 원리’를 나침반 삼아 ‘형제애’를 실천하는 것이 돌봄의 문화다. 교회는 피조물 보호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회심도 촉구한다. 이른바 ‘생태적 회개’다. 그 출발은 하느님 안에서 모든 살아있는 것과 영적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연대와 책임, 배려는 생태적 회개로 나아가는 길잡이다. 그리고 생태적 삶과 회개를 실현해 나가는 첫 단계는 바로 가정이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이학주2023.08.23
![[금주의 성인] 성 스테파노 (12월 26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12/19/zS71702972356152.jpg)
[금주의 성인] 성 스테파노 (12월 26일)+35년경 출생 및 예루살렘 성 밖에서 순교. 초기교회 일곱 부제 중 하나, 그리스도교 첫 순교자 스테파노 성인의 이콘. 사진=굿뉴스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순교자 스테파노 성인의 이름은 ‘승리의 화관’, ‘월계관’, ‘영광’이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이 그리스식 이름으로 보아 스테파노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다인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율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사도 6,11) 그룹에 속했습니다. 스테파노는 성령과 지혜, 믿음과 은총이 충만한 사람으로, 예루살렘의 유다인 출신과 그리스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의 세속적인 요구에 부응하도록 사도들로부터 선발된 일곱 부제 중 한 명입니다. 스테파노는 사도들에게 안수를 받았고, 백성들 앞에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많이 행했습니다. 또한 그는 키레네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유다인으로 구성된 일명 ‘자유인의 회당’에 속한 몇몇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는데, 이들은 스테파노를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사람을 매수하여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결국 스테파노는 체포되어 의회에서 스스로를 변호하는 설교를 하게 됐습니다. 스테파노의 말을 들은 의회 회원들은 오히려 분노하며 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스테파노는 도시 외곽에서 돌을 맞고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사도 6─7장 참조). 사도행전 8장 2절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스테파노의 장사를 지냈다고 언급되어 있으나, 그의 무덤이 어디인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415년 8월 3일에는 루키아누스 신부가 예루살렘과 15㎞ 정도 떨어진 카프르 가말라에서 스테파노의 유해를 발견했습니다. 이 유해는 현재의 스페인인 에스파냐 메노르카, 아프리카의 히포, 예루살렘, 시온,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로마 등으로 나뉘어 전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 도시에 보관된 유해 위에 스테파노 기념 성당이 건축되어 이 성당들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스테파노 유해에 대한 공경은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갔습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9세기경부터 1955년 공식 전례에서 제외될 때까지, 스테파노의 유해가 발견된 8월 3일을 ‘성 스테파노의 유해 발견 축일’로 기념했습니다. cpbc2023.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