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간 교우촌 신앙 유산 이어받은 공소[공소(公所)] 15. 수원교구 향남본당 사창리공소 수원교구 향남본당 사창리공소는 공소 설립 12년 만에 공소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하고 모금한 땅과 건축 기금으로 지어져 봉헌됐다. 사창리공소 신자들은 유서 깊은 양간 교우촌의 신앙 전통을 물려받아 성모회와 성소후원회, 연령회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사창리공소 내부. ‘사창리’는 전국에 9곳이 있다. 북한의 황해남도 신천군과 평안북도 벽동군에 있는 마을까지 합치면 11곳이나 된다. 한자로 다르게 표기되는 것도 있지만, 사창리는 곡식을 모아 저장해 두는 곳집이 있는 씨족 마을에 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전남 장성ㆍ무안, 전북 고창, 충북 괴산ㆍ음성, 경남 창녕, 충남 태안, 강원도 화천 등 주로 농촌 지역에 사창리가 자리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사창리(社倉里) 역시 고려 때부터 곡식 창고가 있던 광산 김씨와 함평 이씨의 집성촌이다.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정문회화로 21-6에 자리한 수원교구 향남본당 사창리공소는 1970년 용소리공소에서 분가해 설립됐다. 끝나지 않은 종교 박해 사창리공소 소개에 앞서 조선 왕조 시대 천주교 박해 이후 양간 지역 신앙 공동체 재건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1866년 병인박해 이후 10년 만에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조선에 돌아왔다. 1876년 2월에 ‘강화도 조약’이라 불리는 조일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그해 5월 10일 블랑 신부와 드게트 신부가 한양에 들어왔다. 두 선교사는 각각 강원도와 경기 지역을 맡아 교회 재건과 복음 선포를 위해 공소 복구 및 신축, 전교회장 양성에 모든 힘을 쏟았다. 이듬해 1877년 리델 주교와 두세ㆍ로베르ㆍ뮈텔ㆍ코스트 신부도 속속 입국했다. 리델 주교는 기도서와 교리서를 발간할 인쇄소를 설립하고, 조선인 사제 양성을 위해 소신학교 건립도 추진했다. 또 블랑ㆍ드게트 신부는 남부 지방, 두세ㆍ로베르 신부는 황해도 지역, 뮈텔 신부는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맡아 사목했다. 하지만 아직 박해의 불씨가 남아 있었다. 조정은 천주교에 대한 공개적인 대규모 박해를 일으키려 하지 않았지만 리델 주교와 드게트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해 옥에 가두었다. 고문과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몇몇 신자들은 순교했다. 또 체포된 선교사들은 중국으로 추방됐다. 선교사들은 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 이후 다시 조선으로 들어왔고, 마침내 1886년 6월 4일 조불수호통상조약 체결로 선교사들의 선교 자유를 보장받았다. 이로써 1888년 한강 이남 첫 본당이 설립됐다. 바로 ‘갓등이’(왕림) 본당이다. 갓등이 성당이 자리한 봉담읍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정남면, 향남면, 양감면에도 주요한 공소들이 재건됐다. 「수원교구 50년사」에 따르면 당시 이 지역 신앙공동체의 중심지였던 양간공소에는 100명이 넘는 신자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한국 천주교회는 교세 성장의 위기를 맞는다. 일제의 담배전매 정책으로 산골에서 화전을 일구어 담배 농사를 짓고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던 교우들이 점차 교우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또 일제는 ‘정교분리’를 내세우고 ‘포교 규칙’을 제정해 교회를 통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난과 빚에 쪼들리게 된 교우들은 신앙생활과 멀어져 갔고 그 결과는 신자 수 감소로 나타났다. 양간공소도 이 시기 교우 수가 40명으로 절반 이상이 줄었다. 사창리공소 입구 좌측면에 모셔진 루르드 성모상. 교우촌 전통 이어받은 공소 해방 후 1955년 갓등이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임응승(요한) 신부는 본당 분가를 추진한다. 그래서 1957년 노기남 주교는 발안공소를 본당으로 신설하고 화성시 양감면, 우정읍, 팔탄면, 장안면, 향남읍, 오산시 일부를 사목구로 정했다. 발안본당은 이 지역 북시기, 귀꽃, 압실, 벌음, 오산, 느지지, 양감, 꽃밭, 버섯말, 거묵골, 배꽃, 장안, 조암, 은행동, 발라곶 등 15개 공소를 관할했다. 1963년 수원교구 설정 이후 발안본당은 화성 남부 지역 신앙 공동체의 구심점이 돼 교세를 성장시켜 조암본당(1973년)과 향남본당(2008년)의 모본당이 된다. 수원교구는 유서 깊은 교우촌 지역을 기반으로 둔 본당과 공소가 많았다. 이에 초대 수원교구장 윤공희 주교는 사목 지침 ‘수원교구 설정에 즈음하여’에서 “우리는 이미 24개의 본당을 가지고 있고, 그중에는 북수동 성 미카엘성당과 같이 전국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본당도 있고, 또 이번에 주교좌성당으로 승격된 성 요셉성당과 같이 우리 선조 치명자들이 왕래하며 박해의 쓰라린 고통을 겪고, 더구나 우리 수선 탁덕 치명 복자 안드레아 김 신부님의 거룩한 유해가 묻혔던 유서 깊은 본당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작고, 크고, 오래고, 새롭고 또는 치명자들의 발자취로 다져진 이 본당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정신이 철저한 신자들로 가득하게 된다면 우리 교구는 그리스도의 튼튼한 모퉁잇돌 위에 견고하게 서게 될 것입니다”라고 기대했다. 사창리공소는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고 복음 정신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유서 깊은 양간 교우촌의 전통을 이어받아 1970년 8월 23일 설립됐다. 양감면 사창리와 정문리, 요리, 향남읍 백토리, 길성리를 관할하고 있다. 공소 건물도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지었다. 1979년 12월 공소건축위원회가 구성돼 공소 건축 기금을 조성했다. 송기덕(베드로) 건축 위원장이 자신의 집 옆 대지 100평을 기증하고, 윤성규(요한), 조태식(베네딕토), 최용희(바오로), 김영식(바오로), 문병구(루카)를 비롯한 교우들이 기금을 조성해 32평 규모의 벽돌집 공소 건물을 지어 공소 설립 12년 만인 1982년 5월 9일 준공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14일 수원교구 총대리 황익성 신부 주례로 공소 봉헌식을 거행했다. 공소 교우들은 성모회와 성소후원회, 연령회, 행복한가정운동 등을 조직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양감면 출신인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도 신학생 시절 사창리공소에서 교우들에게 성경과 교리를 가르쳤다고 한다. 현재 사창리공소 교우 수는 20여 명에 불과하다. 이들 대부분은 공소에서 4㎞ 떨어진 향남성당으로 가서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성사생활을 해 지금은 공소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가끔 공소를 찾는 순례자만이 방문하는 곳이 됐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4.14

생명의 빛으로 인간을 인도하는 풍향계[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7)수탉 수탉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의 빛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는 풍향계를 상징한다. 사진은 독일 보쿰 성 요한 성당 종탑의 수탉. 출처: 구글 유럽 성당을 순례하다 보면 종탑 위에 수탉 모양의 풍향계가 장식돼 있는 것을 종종 본다. 왜 하필 성당 꼭대기에 수탉 장식을 올려놓았을까? 수탉이 교회의 상징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굳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성경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베드로 사도가 새벽이 밝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 베드로가 자신이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깨닫고 후회하도록 한 것이 대사제 카야파의 저택 뜰에서 들여온 닭 울음소리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베드로는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하녀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그러자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하고 부인하였다. 그가 대문께로 나가자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에 있는 이들에게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하고 다시 부인하였다. 그런데 조금 뒤에 거기 서 있던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당신도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당신의 말씨를 들으니 분명하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마태 26,69-75)전승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이후 평생을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카야파의 저택 뜰에서 일어난 이 일화를 떠올리며, 예수님 앞에서 자만했던 자신을 속죄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처럼 성당 종탑 꼭대기의 수탉은 모든 이에게 베드로 사도가 주님을 배반하고 슬피 울었던 그 사건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매 순간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만하지 말 것을, 그리고 항상 속죄하고 회개할 것을 일깨워준다. 수탉은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구약 성경 욥기에는 “누가 따오기에게 지혜를 내렸느냐? 또 누가 수탉에게 슬기를 주었느냐?”(38,36)라는 물음이 나오고, 그리스 신화에선 아테나 여신 곁에는 수탉이 서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보다 수탉은 교회 안에서 훨씬 더 큰 표징을 드러낸다. 바로 수탉은 ‘주님 부활’의 거룩한 표징이다. 수탉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일찍 새벽을 알리는 동물이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서는 수탉을 ‘새벽의 사자’라고 표현한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어슴푸레 동이 틀라치면 맨 먼저 홰를 치며 우렁찬 목소리로 밝아오는 새날을 찬미하는 닭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직도 캄캄한 것 같지만, 첫닭이 울고 나면 어김없이 동이 트므로 사람들은 닭 울음소리와 함께 일어나 아침 일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야 했는데, 시계가 없던 옛 시절에는 햇살과 함께 청아하게 아침을 깨우는 닭울음 소리가 있어야 가능했다.복음서는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요한 20,1)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한다. 수탉은 주님의 부활을 알린 첫 전령이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벽은 특별히 하느님께 속하는 시간이었다. 바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고귀한 때이다. 그래서 새벽을 깨운 수탉의 울음을 듣고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인들은 맨 먼저 “주님을 찬미합시다”라고 기도했고 “하느님께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수탉은 사람을 잠에서 깨우고, 그리스도는 인간을 죽음에서 일으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신다. 따라서 종탑 위의 수탉은 주님의 부활을 표징할 뿐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하고 일과를 주님께 봉헌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종탑의 수탉은 또한 언제 오실 줄 모르는 그리스도 왕을 향해 항상 깨워 있을 것을 일깨워주는 ‘삶의 풍향계’이다. “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르 13,32-37 참조)이처럼 종탑 위의 수탉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드러내는 교회의 거룩한 표징이며 생명의 빛으로 인간을 인도하는 풍향계이다. 아울러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나 깨어 있도록’ 일깨워주고 자만하지 말고, 회개하고, 매일 하루를 하느님의 거룩한 시간으로 봉헌할 것을 재촉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종탑 위의 수탉 장식을 교회에서는 ‘성 베드로의 수탉’이라고 부른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9.14
![[생활속의 복음] 주님 공현 대축일 - 떠나면 길이 보입니다](//cpbc.co.kr/CMS/newspaper/2023/01/rc/838636_1.2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주님 공현 대축일 - 떠나면 길이 보입니다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마태 2,11) 우린 길을 떠나야 합니다. 떠나면 길이 보인다 했습니다. 길 떠나는 동방박사들이 됩시다. 우린 지상의 순례자들입니다. 인생 자체가 여행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여행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인용한 인디언 격언입니다. 누구나 떠나야 하는 내적 여행을 말합니다. 떠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인생의 비밀이 있습니다. 걸을 수 있는 분들에겐 실제로 걸어나가기를 권합니다. 매일 8~9km씩 한참을 걷다 보면 진정 다른 인생을 만난다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새해 시작해 볼 수 있는 멋진 도전이 될 것입니다. 1. 동방 박사들의 여정과 깨달음 그들은 불리움을 느끼는 순간 짐을 쌌습니다. 내면의 빛을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얻어낸 수확은 무엇일까요? 천신만고 끝에 그들이 대면한 것은 허름한 거처의 가난한 집안의 모자(母子)였습니다. 무력하기 짝이 없는 꼬물거리는 갓난아기 모습에서 임금의 품위와 하느님의 빛이 솟아나는 걸 느낍니다. 경이롭고 놀라운 영적 체험입니다. 그들이 경배드리고 바친 예물, 황금과 유향이 그걸 말해줍니다. 최종적인 예물은 몰약이었습니다. 몰약은 죽은 이에게 바르는 시약입니다.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 안에 거룩함과 존귀함이 들어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자기 고장으로 돌아간 박사들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겸손되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요? 특히 가난한 이들, 그들 가정을 예사로이 보아넘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구세주 모자 가정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깨달음입니다. 여행을 통해 그들은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2. 헤로데와 종교 지도자, 우리 헤로데는 오늘날에도 존재합니다. 가장 힘 있는 자로 군림하는듯하나 그가 보이는 것은 무지요. 꾸미는 것은 음모입니다. 메시아에게 경배드린다 했지만, 거짓이고 실은 죽여 없애려 듭니다. 연일 칼을 휘두르지만, 무위로 그칩니다. 유다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에 정통했고 메시아의 탄생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머리로 뭘 생각하느냐보다 발이 어디에 있느냐가 더 중요한지도 모릅니다. 기득권, 안락함에 취했을까요? 아쉬움이 없었을까요? 간절함이 빠진 신앙은 짠맛을 잃은 소금일 뿐입니다. 꼭 개인적인 절실함만이 아닙니다. 밤늦게 찾아온 친구의 허기를 해결해 주려 또 다른 친구의 문을 연신 두들기며 빵을 청하는 그 우정은 간절하기에 아름답습니다. 우리도 길을 잘못 들어 왕궁을 기웃거릴 수 있습니다. 호화로움, 안락 등에 취하지 맙시다. 그런 것들 안에 진리가 있지 않습니다. 수수하고 소박한 데에 주님은 계십니다. 우리를 인도할 별빛은 그분의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들려온 말씀을 나침판 삼아 길을 떠나야 하겠습니다. 깨달음은 높은 차원의 경지라기보다는 높은 데서 멀리까지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 멀리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우크라이나 난민, 강제 징집되어 전쟁터에 끌려 나온 러시아 젊은이도 있고, 미얀마 백성들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까지 주님의 출현이 기쁜소식이 되어야 제대로 된 공현입니다. 약소하나마 주머니를 털어서 그들의 아픔에 동참한다면 자연스럽게 그들을 향한 기도가 올려질 것입니다. 하여튼 뭔가를 해야 합니다. 공현을 알리는 징조는 하늘에 있을지 몰라도 실체는 땅에 있습니다. 하느님이 땅에 내려오셨고 이제 가난한 민초들의 삶에 알알이 들어와 박히셨습니다. 우리 이웃 안에, 작은 이들 속에 육화하신 하느님을 알아 뵙고 경배드리는 한 해가 되길 빕니다. 2023년, 무엇을 소망하는가? 소망이 기도되게 합시다. 서춘배 신부(의정부교구 병원사목위원회) cpbc2023.01.03

언제 어디서나 나눌 수 있는 하느님과 대화[가톨릭 영상 교리] (39) 기도 수도자들이 두 손 모아 나란히 기도하고 있다. pixabay 제공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귀담아듣고 하느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을 드리며 은혜를 청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또, 바치는 내용과 지향에 따라 ‘청원과 전구’, ‘감사와 찬미’, ‘흠숭과 찬양’으로 나뉩니다.먼저 ‘청원 기도’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지향이 이루어지도록 하느님께 비는 기도를 말합니다. 청원 기도는 창조주이신 하느님 앞에 인간은 한낱 피조물이라는 한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전구’는 어떤 사람의 바람이 성모 마리아나 천사, 또는 성인의 도움으로 하느님께 전달되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예수님의 기도와 흡사하게 해주는 청원 기도의 하나로, 남을 위한 기도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특히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전구자’셨습니다.‘감사 기도’는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바치는 기도입니다. 청을 들어주셨을 때뿐 아니라 모든 기쁨과 슬픔, 또 모든 사건과 필요가 그리스도인에겐 감사의 대상이며, 감사드릴 동기입니다.‘찬미’는 기도의 기본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느님께서 강복해 주셨기에 우리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릴 수 있습니다.‘흠숭’은 우리를 지어내신 하느님의 위대함과 우리를 악에서 구해 내신 구세주의 권능을 드높이는 것입니다. 흠숭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우리 간청에 대한 확신을 줍니다.‘찬양’은 하느님께서 진정한 하느님이심을 직접적으로 인정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일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에 기리고 하느님이시기에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또 기도는 바치는 형태에 따라 ‘소리 기도’, ‘묵상 기도’, ‘관상 기도’로 나뉩니다.소리 기도는 말 그대로 소리를 내서 바치는 기도입니다. 염경 기도라고도 합니다. 주님의 기도, 삼종 기도, 시간전례 등 정해진 기도문을 혼자, 또는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입니다.‘묵상 기도’는 기도문을 사용하지 않고 이성을 사용해서 곰곰이 생각하는 기도입니다.주님의 말씀인 성경이나 영성 서적을 읽고 거기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그것을 내 안에 간직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관상 기도’는 기도문도 사용하지 않고 생각도 정지시키고 하느님 앞에서 침묵 가운데 머무르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 신앙의 눈길을 고정시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없이 우리의 사랑을 드러내는 기도입니다.기도의 모범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특별히 당신의 사명을 이행하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앞두고 기도하셨습니다. 되도록이면 밤에, 또 홀로, 산으로 올라가 자주 기도하셨습니다.예수님의 삶은 기도 그 자체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기도는 ‘형제들의 고통에 참여하는 기도’였습니다. 또 예수님의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감사와 확신의 기도’였습니다. 청한 것을 받기 전에 주실 분에게 먼저 감사와 신뢰를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을 바치는 기도였습니다. 성부께 온전히 당신을 맡기는 기도였습니다.교회는 이러한 기도를 신자들에게 주기적으로 바치기를 권합니다.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삼종 기도, 식사 전후의 기도, 시간 전례는 날마다 바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작은 일에서부터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기도 속에서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 전체가 기도의 소재입니다.다만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느님께 내가 원하는 걸 청하기에 앞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헤아리고 그것이 내 안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의 청을 뛰어넘고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기도 안에 머물러 보십시오. 평화가 올 것입니다. 기도와 함께 살아가 보십시오. 두려울 게 없을 것입니다. 매일, 잠시라도 하느님과 단둘이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내가 하느님께,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할 시간을 마련해 보십시오. 든든할 것입니다.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행복이 다가올 것입니다. 평화신문2023.01.17

유튜브에 이단 신천지 강좌 판친다 새해 들어 ‘이만희 신격화’ 온라인 강좌 연이어 게시… 이단 영상 ‘사용자 차단’ 설정 권고 신천지가 유튜브를 통해 하고 있는 온라인 성경 세미나 강좌에서 자신들의 교리를 전하다 느닷없이 교주 이만희가 약속의 목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 성전(이하 신천지)이 유튜브 세미나 강좌를 통해 교단의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비밀리에 이단 특유의 잘못된 가르침을 내세워 사람들을 꾀어온 신천지 교리의 실체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교리는 결국 교주 이만희가 ‘약속의 목자’이며, 다른 교회는 악마라는 내용으로 귀결된다. 이를 접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신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신천지는 새해부터 3~5일 간격으로 공개강좌를 유튜브에 꾸준히 게재하고 있다. ‘천국 비밀 비유와 실상 증거’란 제목의 24강짜리 교육 영상들이다. 센터에서 신도들에게 주입해오던 과정이다. 2월 9일 현재 10개 강좌가 버젓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교주 이만희의 첫 강의를 시작으로 자칭 최고라는 센터 강사들이 등장해 성경 속 비유들을 설명해주고 있다.“두 가지의 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과 마귀의 신입니다. 신천지는 성경에 약속된 말씀 그대로 창조된 하나님의 창작물입니다.” 강사들은 시종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교리를 전한다. 전통 신학적 근거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모두 만들어낸 논리들이다. 악마로 대변되는 다른 교회들로부터 신천지가 핍박을 받고 있다고 강조하는 강사들은 “마귀의 역사를 따르는 이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양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말씀을 절대 증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신천지가 가장 강조하는 요한 계시록(요한 묵시록)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예수님이 나타나신 초림 때 사람의 계명이 나왔지만, 당시 하나님의 계명은 지켜지지 않았다”며 “신학의 예언은 재림 때에야 성취되며, 주님께서 보내신 사자인 ‘약속의 목자’만이 직접 보고 들은 말씀을 증거한다”고 가르치고 있다.자신들이 만든 약속의 목자는 교주이며, 심지어 이 부분을 설명할 때엔 대놓고 이만희 사진을 띄운다. 오늘날 약속의 목자가 증거할 시기가 ‘재창조 계시 시대’라는 것이다. 이처럼 황당무계한 이론을 전하는 신천지 영상들의 조회 수는 십수만 회에 이른다.신천지는 지난해 이만희가 구속 상태에서 풀려난 이후 온라인 및 오픈 전도전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면의 어려움이 지속되자, 비대면으로 결속을 다지는 것이다. 심지어 뜻있는 목사들의 합류도 요청한다. 성경 말씀을 익히는 선한 도구로 온라인 매체를 이용하는 이들의 주의를 흐리는 신천지와 이단 영상들은 계속 올라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단들의 잘못된 강좌로 얼룩진 유튜브 영상이 뜨지 않도록 해당 채널로 들어가 ‘사용자 차단’을 설정할 것을 권한다.이단 상담 전문가는 “온라인 강좌로 내부를 결집하고, 밖으로는 자신들의 말씀 전파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며 “본래 성경 가르침과는 어긋나는 한계점을 오히려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한국천주교유사종교대책위원회 위원장 이금재 신부는 “주님 안에서 사랑과 친교를 나누고, 서로 돕는 주님 가르침은 온데간데없고, 자신들의 사상을 믿지 않으면 천국에 이를 수 없다며 천국의 비밀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교리 자체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짜 맞춘 교리를 전한다고 신천지가 온라인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그들의 민낯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 평화신문2022.02.16

선교 수도승이 라자렛에 일군 신앙 공동체[공소(公所)] 17. 대구대교구 왜관본당 삼청공소 왜관본당 삼청공소는 대구대교구에서 첫 번째로 세워진 한센인 정착촌 베타니아원 내에 있는 공소이다. 삼청공소는 교회의 전통대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한센인들을 돌보고 있는 라자렛이다. 베타니아원 전경. 알빈 신부가 그린 삼청공소 제단 벽화. 베타니아원 한센인들이 세운 남 호노라토 신부와 임 세바스티아노 신부의 송덕비와 추모비. 성경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질병이 바로 한센병이다.(탈출 4,6; 2열왕 5,1; 2역대 26,21; 마태 8,2; 루카 5,12 참조) 최근까지 사람들은 살이 썩어 문드러지는 한센병을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여겼을 정도다. 그래서 고대와 중세의 한센인들은 사람들이 자기 곁으로 오면 “나는 부정하다”고 외치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한센병은 그리스도교와 친숙한 병이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한센인들을 치유해주신 것처럼 교회도 그들을 치유하고 함께 사는 일에 헌신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원에서 그 일을 맡아 하고 있다. 13세기 영국 연대기 작가이며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인 매튜 패리스는 당시 유럽의 수도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해 돌보던 곳이 1만 9000여 개나 됐다고 했다. 당시 유럽인들은 한센인들의 격리시설을 루카 복음 16장 19-31절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인용해 ‘라자렛’이라 불렀다. 한센인 정착촌에 자리한 공소 경북 칠곡군 삼청5길 70 현지에 자리 잡고 있는 왜관본당 삼청공소는 대구대교구에서 첫 번째로 세워진 한센인 정착촌 베타니아원 내에 있는 공소이다. 삼청공소는 교회의 전통대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한센인들을 돌보고 있는 라자렛이다. 삼청공소를 소개하려면 세 명의 선교 수도승들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호노라토 밀레만(Honoratus Milemann, 한국명 남도광, 1903~1988)ㆍ세바스티아노 로틀러(Heunrich Sebastian Rotler, 한국명 임인덕, 1935~2013)ㆍ알빈 슈미트(Alwin Schmid, 한국명 안경빈, 1904~1978) 신부이다. 남 호노라토 신부는 베타니아원을 조성한 사제다. 그는 독일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에서 북한 덕원수도원으로 파견된 마지막 선교사이며 왜관수도원으로 재파견된 첫 번째 덕원 선교사였다. 신학박사였던 그는 덕원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1949년 북한 인민군에 체포돼 5년간 중강진 옥사덕 강제 수용소 생활을 하다 독일로 송환됐다가 1955년 5월 입국했다. 그는 불쌍한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불쌍한 이들인 한센인을 돌보는 일이 왜관수도원 공동체의 특별한 소명임을 자각했다. “수도원과 본당에서 얼마나 많은 돈과 옷, 의약품들을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들에게 제공했는지는 계산할 수도 없고 계산해서도 안 된다. 우리 선교 지역 내의 한센인들에 대한 우리의 활동은 공공사회사업 성격을 띤다. 우리가 선교하는 경상도는 예부터 한센인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다. 1955년 내가 남한에 와서 한센인과 인연을 맺을 무렵 남한의 한센인 수는 10만 명에 달했다. …이 지역에는 사회에서 소외되어 떠돌다가 다리 밑에서 하루하루 구걸로 연명하는 한센인들이 있었다. 더러는 아편에 중독되고 자살하는 한센인도 있었다. 우리는 뭔가를 해야 했다. 몇 년 후 우리는 네 곳의 한센인 정착촌에서 700여 명의 한센인을 돌보게 됐다. 그들 중 90% 정도는 병의 진행이 멈춘 상태다.”(「분도통사」 1578~1579쪽, 호노라토 밀레만 신부 사회사업 성과 보고) 빛이 된 세 명의 선교사 남 신부는 1959년 독일 신자들이 보내온 기금으로 왜관 삼청동 일대 농지 5만 평을 사들여 한센인 가구당 200여 평씩 나눠줬다. 그리고 집도 20여 동 지어줬다. 또 양계업을 위한 삼청동 농장을 지어 베타니아원 전체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공소와 진료실도 마련했다. 한센인들에게 매주 1회씩 무료 진료를 했고, 예수의 작은 자매회와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원 수녀들을 초청해 환자들을 돌보게 했다. 1968년부터는 의사 출신인 디오메데스 수녀를 초빙해 한센인 진료를 맡겼다. 남 신부의 노력으로 베타니아원 한센인들은 음성 환자로 바뀌었고, 정착촌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더는 감염이 없었다. 남 신부에 이어 베타니아원 삼청공소 사목을 임 세바스티아노 신부가 1980년대 초부터 맡았다. 그는 베타니아원 아이들의 교육에 헌신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과정을 따로 공부한 후 매원초등학교를 거쳐 왜관수도원이 운영하는 순심중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성적도 우수했다. 임 신부는 아이들에게 놀이와 연극을 가르쳤고, 여름밤이면 영사기를 가져와 영화를 보여줬다. 또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로 산으로 여행을 다녔다. 임 신부는 삼청공소에서 한센인 정착촌 아이들에게 세상으로 나아가는 희망을 심어줬다. 임 신부는 또 베타니아원 도로를 포장하고 우물을 파서 양계장과 돼지 축사에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미국 구호단체 원조를 받아 어려운 신자 가정부터 300만 원씩 무이자 3년 기한으로 빌려줬다. 한센인들은 이 자금으로 닭과 돼지를 사서 축사와 양계장을 늘렸고 모두 3년 만에 상환했다. 베타니아원 주민들은 자신들을 위해 헌신하다 선종한 남 신부와 임 신부를 기리기 위해 송덕비와 추모비를 세웠다. 알빈 신부는 삼청공소를 설계하고 성당 벽화를 직접 그렸다. 알빈 신부는 국내 약 180여 개 건축물을 설계했지만, 그가 직접 벽화를 남긴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알빈 신부는 1937년 한국 선교사로 연길수도원에 파견됐다. 그는 1946년 중국 공산 당국에 의해 두만강변 남평수용소에 투옥된 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1949년 독일로 추방됐다. 1961년 왜관수도원으로 재파견된 그는 왜관수도원에서 약 4㎞ 떨어진 베타니아원 언덕 위 가장 높은 곳에 삼청공소를 지었다. 그리고 제단 벽면에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그렸다. 참 행복은 세상이 아니라 주님께 위로를 받는 것이며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6ㆍ25 전쟁 후 북한 덕원 땅에서 남한 왜관에 정착한 성 베네딕도회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도원이었다. 당시 왜관에서 전기와 수돗물은 드문 사치품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대중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심화시키는 ‘비천한 사도직’이었다. 그 대상자 중 가장 빛나는 이들이 바로 한센인이었다. 삼청공소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눈먼 이들에게 빛이 되기’ 위해 덕원과 연길, 왜관수도원에 파견된 세 명의 선교사가 가장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군 신앙 공동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4.28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성령[가톨릭영상교리](8) 성령 성령은 늘 교회 안에 머물러 계시지만 바람과도 같아 느낄 수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성령은 바람과 물, 불꽃 모양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구름과 빛,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진은 조토 디 본도네 작 ‘불타는 떨기나무 앞의 모세’. 출처=가톨릭굿뉴스 우리는 하느님을 어떻게 만나 뵈올 수 있을까요? 특별히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 중에 어느 위격의 하느님과 가장 가까울까요?성경을 통해 성부 하느님과 성자 하느님은 어느 정도 만나고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잘 따르지는 못해도 말입니다. 하지만 성령 하느님을 생각하면 어떤 분이실지 약간은 어렵습니다. 딱히 말씀이 많으신 것 같지도 않고, 교회 안에 머물러 계신다는데, 꼭꼭 숨어 계신지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고, 그럼에도 가까이, 아주 가까이 계신 것 같고…. 그래서 오늘은 성령 하느님, 성령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성령은 거룩한 하느님의 영입니다. 마치 바람과도 같아 눈으로 볼 수 없고 느낄 수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바람과 물, 불꽃의 모양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구름과 빛, 비둘기의 모양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은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무르시며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성경에 등장하는 성령성경에서 우리는 극적인 순간에 함께하시는 성령을 만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을 전해 줍니다. 그러고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1,35)성령은 또 예수님 곁에 머물면서 하느님의 계획을 함께 이루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 전에 제자들에게 ‘보호자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요한 14,17)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그리고 부활하신 뒤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며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던 당신의 성령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성령과 함께 제자들을 파견하신 이때부터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명은 교회의 사명이자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 됐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성령의 7가지 은사와 9가지 열매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보호자’가 되셨듯이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늘 곁에서 보호해 주시고 은총을 내려주시며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성령은 하느님의 사랑 그 자체인 삼위일체의 생명, 새로운 생명의 은총을 부어주심으로써 지혜, 통찰, 식견, 지식, 용기, 공경, 경외(성령 칠은)를 통해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갈 힘을 주십니다.이러한 하느님 은총의 선물을 통해 우리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가 거행하는 모든 성사의 효력을 보장해 주시고, 진리를 믿거나 가르치는 데 그르침이 없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우리와 교회 안에 머무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만민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여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도록 이끌어 주고 계신 것입니다.그러면 우리는 이 성령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진하게 만날 수 있을까요?당연히 전례와 기도, 묵상을 통해서입니다. 몸과 마음을 모아 가만히 그 안에 잠기다 보면 나를 한시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계시며 나에게 끊임없이 용서와 위로와 격려와 용기를 주시는 그분을 분명히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꼭꼭 숨어 있는 쪽은 성령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였는지 모르니까요.자, 이제 잠시 우리의 모든 순간과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을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성령 하느님께 기도해 보겠습니다.“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오소서, 성령님.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또한 온 누리가 새롭게 되리이다. 아멘.”(“일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 중) cpbc2022.06.02

수묵채색화로 보는 순교자들의 행적서소문 역사박물관 기획전, 고 탁희성 화백 작품 10월 2일까지 전시 절두산 순교(1969-1970, 탁희성).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관장 원종현 신부)의 기획전 ‘닫힌 시대, 열린 열정’이 10월 2일까지 개최된다.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기획된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천주교회사의 주요 사건들과 순교자들의 행적을 고 탁희성(1915~1992) 화백의 수묵채색화 20여 점과 함께 선보이고 있다. 탁 화백은 한국천주교회사 연구를 지속하며 성화 제작에 몰두해 온 작가로, 역사적 배경이 된 지역을 직접 답사하고 스케치하는 등 면밀한 사전 작업을 거친 그의 작품은 교회사를 입체적으로 담아낸 역사화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주어사 강학회나 명례방 초기 종교집회도를 비롯해 김대건 신부 새남터 순교 행렬, 남종삼·홍봉주 서소문밖 형장 행렬 등이 사실감 있게 묘사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와 함께 18세기 후반 서학을 수용한 진보적인 지식인들에 의해 깊이 연구되었으며, 학문을 넘어 신앙으로 나아가는 데 가교 역할을 했던 「천주실의(天主實義)」, 「칠극(七克)」 등 ‘한역교리서(漢譯敎理書)’도 전시되어 있다.임민정 학예연구사는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기해박해, 병오박해, 1866년부터 1874년 병인박해까지 시기별 관련 사건과 유물을 공간적으로 함께 엮어 전시했다”며, “유교 사회의 엄격한 신분질서 등이 지배했던 ‘닫힌’ 시대 속에서, 그 틀을 벗어나 사고하며 나아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자 자신의 목숨마저도 내놓았던 이들의 ‘열정’을 돌아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예수회 디아즈 신부가 1636년 북경에서 쓴 복음해설서의 한글 번역본인 「성경직해」 완질 9권도 올해 기증받은 후 처음으로 공개되고 있다. 당시 교인들 사이에서 필사본으로 전해져 오다 1892년 교구장 뮈텔 주교가 보완해 간행한 활판본이다. 원종현 신부는 “이번 전시가 서소문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에게는 영적 위안으로 다가가고, 천주교 신자가 아닌 분들께는 우리 사회의 한 구성인 그리스도교 문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전시는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 02-3147-2401,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cpbc2022.09.20

성 니콜라오 주교 (12월 6일)270?~341년쯤, 리키아 출생, 주교, 산타클로스 니콜라오 성인은 대중에게 산타클로스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성탄절 때마다 어린이에게 베푼 자선과 사랑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신터클레스(Sinter Claes)라고 불린 성인이 본격적으로 산타클로스(Santa Claus)로 알려진 건 네덜란드계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미국에 정착하면서입니다. 이들은 성인의 축일에 어린이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관습을 소개하고, 이를 성탄 전야 행사와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산타클로스의 붉은색 옷도 사실은 성인이 입던 빨간색 주교 복장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성인은 오늘날 지중해 연안 튀르키예 남서부 지역에 해당하는 소아시아 리키아 지방의 항구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인의 생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인은 전설과 비공식 전기 등을 통해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성인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에 헌신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더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사제가 될 결심을 할 정도로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성인이 사제품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미라의 주교가 선종했습니다. 주교들은 후임을 찾기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밤,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일 아침 성당에 맨 먼저 들어오는 ‘니콜라오’라는 자를 뽑아라.” 실제 다음 날 아침 성당에 기도를 하러 갔던 성인은 영문도 모른 채 주교로 축성됐습니다. 그러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성인은 10여 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성인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가 선포된 뒤에야 풀려나 본격적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성인의 선행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어떤 아버지가 가난 때문에 세 딸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지 못해 매춘부로 넘겨야 할 곤경에 처했을 때 일입니다. 이를 안 성인은 몰래 창문으로 돈을 넣어 주어, 위기를 면하게 해주었습니다. 또 기근이 든 어느 해 고약한 백정이 아이 셋을 살해한 후 소금에 절여 먹거리로 팔려고 하자 성인이 나서 어린이들을 구해냈다고 합니다. 기적도 있습니다. 기근 당시 식량을 가득 실은 여러 척의 배가 폭풍우에 밀려 미라 해안으로 떠밀려왔습니다. 성인은 각 배의 선장에게 식량을 기증해 달라고 간청해 굶주리는 이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출항 후에 식량을 살펴본 선원들은 그 양이 이전과 비교해 전혀 줄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놀라워했습니다. 이 외에도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사형에 처할 뻔한 세 명의 청년을 구해주었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꿈에 나타나 모함을 받은 고관들을 위기에서 건져낸 일도 있습니다. 또 물에 빠진 선원들을 여러 번 기적적으로 구해내기도 했습니다.성인은 교회 미술에서 주로 한 손에 세 개의 황금 구슬이 놓인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성인이 행한 선행과 기적을 의미합니다. 또 비슷한 이유로 어린이와 누명 쓴 죄수, 폭풍우에 갇힌 뱃사람, 항해사, 어부, 여행자 등 다양한 계층 사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cpbc2022.12.01
![[전문]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 2023년 부활 메시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4/05/ZVv1680678003555.jpg)
[전문]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 2023년 부활 메시지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와 함께 아파하십니다 사랑하는 교구민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되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 내리시기를 빕니다. 얼마 전에 선종하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2006년 부활절 강론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 진화론의 언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면 -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큰 돌연변이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의 결정적인 도약이 바로 부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부활로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죽음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바오로 사도는 일찍이 구약성경을 인용하며 “죽음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너의 독침은 어디 있느냐?”(1코린 15,55) 하고 외쳤습니다. 우리 역시 이를 믿고 또 고백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요? 어디에나 죽음이 아직도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죽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몸은 속량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로마 8,23) 죽음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모두 죽어야 한다는 것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오늘날 억울하게 혹은 비참하게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쟁과 테러, 자연재앙, 전염병 등에 의해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으며 죽고 있습니다. 일 년 넘게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광기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며 무고한 이들을 공포와 절망으로 내몰고 있고, 아울러 지구촌 전체에도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강진으로 하루아침에 많은 사람이 집을 잃고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수많은 희생자와 이재민이 속출했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의 절규는 해외에서만 들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여기저기에서도 들립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절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와 정부의 ‘강제동원 배상안’에 대해 피해자들과 국민이 크게 울부짖고, 직장과 일터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는 노동자들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점점 사회의 변두리에 내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비명, 반지하 셋방에서 매일 빚 독촉과 생활비에 시달리는 영세민들의 절규, 병실과 요양원에서 통증에 지친 환자들의 신음 등 고통의 소리가 끊임없이 들립니다. 계속되는 이런 고통의 소리는 우리 신앙인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이러한 절규 앞에 부활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해마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데, 이를 통해 변화된 것은 무엇인가? 아니 주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도대체 무엇이 변화되었는가? 아직도 불의와 죽음이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그리고 이는 세상 끝날까지 계속되겠지만, 분명하게 변화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끝까지 견지하셨던 행동의 위력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다음, 당신의 부활을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에게 의기양양하게 선포하시거나 유력한 사람에게 알리시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울고 있는 여인을 찾아가 “여인아, 왜 우느냐?”(요한 20,15) 하고 위로하셨습니다. 가련한 이의 눈물을 닦아주심으로써 그를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절규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그 절규를 기꺼이 들으시고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십니다. 곧 우리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주시고, 거기에 위로의 기름을 부어 아픔을 덜어주시고, 자비로 싸매주시고, 연대와 관심으로 치유해주십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시고 함께 아파하십니다. 사실 주님의 이런 ‘함께 아파하는 마음’(compassio)은 부활 이전에도 쉽게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공생활 중에 누구보다도 죄인이나 가난한 이들, 버림받은 이들, 병자들, 고통받는 이들을 가까이하셨고, 그들의 탄식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엾은 마음으로 대하심으로써(마태, 9,36; 14,14; 15,32; 루카 7,13 등 참조), 그들을 곤경에서 구해주시고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따라서 ‘함께 아파하는 마음’은 주님이 늘 견지하신 마음이고, 이는 사람이 되신 주님의 고유한 본질입니다. 이 ‘함께 아파하는 마음’으로 주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세상 전체를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그 가엾은 마음으로 죽음을 이기고 증오를 물리치는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정말 변화된 것은,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궁극적으로 승리하고, 앞으로도 계속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활기를 띠는 곳이면 어디든지 항상 부활이 이루어집니다. 여기에서 부활이 명백하게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은 마음에서 싹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은 거의 무능하거나 연약하게 보이고, 때로는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부활이 우리의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야말로 모든 것을 서서히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이는 하느님의 마음이기에, 그 어떤 힘보다 더 강하고, 어떤 지혜보다 더 지혜롭습니다(1코린 1,25 참조). 사랑하는 교구민 여러분, 올해 우리 교구는 특히 ‘사랑의 실천’에 마음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당신의 ‘함께 아파하는 마음’으로 초대하십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사회 안의 가장 힘없고 약한 이들을 동반하고 돌보며 지원하기를”(「모든 형제들」, 64항)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의 모범을 본받아 “눈을 뜨고 세상의 비참상을 보고, 존엄성을 박탈당한 우리 형제자매들의 상처를 직시합시다. 그들의 손을 잡아 우리의 가슴에 끌어주어, 우리가 함께 있음의 온기가 전달되고, 우정과 형제애를 느낄 수 있도록 합시다. 그들의 외침이 우리의 외침이 되게 합시다.”(「자비의 얼굴」, 15) 그러면 우리는 고통과 어둠을 몰아내는 부활의 증인이 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사랑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지켜주시길 빕니다. 아멘. 2023년 부활대축일에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도재진2023.04.05

예수님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 탈무드와 쿠란은 어떻게 바라볼까? 예수님, 성경 바깥의 기억 / 송혜경 지음 / 한님성서연구소교회 바깥의 고대 역사가들, 신약 외경, 유다교의 탈무드, 이슬람교의 쿠란은 예수를 어떻게 바라볼까? 성경 이외의 문헌들은 예수를 어떻게 그렸을까?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송혜경(비아) 고대 근동학 박사가 성경 바깥의 자료를 바탕으로 예수의 탄생과 행적, 죽음과 부활을 살폈다. 고대 역사서와 공문서에 담긴 자취를 추적한 결과물이다. 역사가들의 책과 신약 외경 등 관련 자료의 출처를 찾는 법과 탈무드와 쿠란 공부에 유용한 웹사이트도 소개했다. 앞서 1부에서는 인간 예수의 실제 모습을 찾으려는 시도들의 역사와 나자렛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는지를 역사적으로 접근했다.유다교 라삐들은 예수를 이스라엘 백성을 불륜과 우상 숭배로 끌어들인 이방인 예언자 발라암이라는 인물에 빗대고 있다. 유다인들의 입장에서 신앙에 대한 위협으로 느껴졌을 예수를 발라암에 빗대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게 송 박사의 설명이다. 탈무드 본문에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묘사되며, 유다교 신앙을 위협하는 외부의 위협을 표상하는 인물로 그려진다.쿠란에서 예수의 이야기는 어머니 마리아의 탄생 이야기로 시작한다. 마리아는 쿠란에 언급된 유일한 여성으로 70회나 언급하고 있다. 쿠란 판 예수 탄생 예고에서 알라께서 마리아를 선택하셨음을 선포한다. 이 세상 모든 여인들 위에 마리아를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쿠란에서는 예수가 하느님에게서 나오는 말씀이며 의인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는 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쿠란도 루카 복음처럼 동정 잉태를 인정하지만, 이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쿠란의 예수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마리아의 아들이지 하느님의 아들은 아니다. 저자 송 박사는 탈무드와 쿠란에 그려지는 예수를 찾아보게 된 것은 예수를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이 궁금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송 박사는 “‘예수님’에 대한 어떤 결론을 내린다기보다는, 입수 가능한 자료로 예수님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하는 하나의 길 혹은 방법을 제시하는 글”이라며 “성경의 예수님과 더불어 성경 바깥의 예수를 읽으면서, 성경의 예수님을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cpbc2021.12.29
초개인화 시대, 가족의 역할과 방향 우리 시대의 가족을 묻다: 인문학과 종교의 대화김정용 신부, 류도향 교수 등 12명 공저 / 전남대학교출판문화원전남대 인문학연구원과 광주대교구 사목국이 함께 펴낸 책이다. 인문학과 종교 간 만남과 대화의 시작은 ‘오늘의 가정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이 물음은 오늘을 사는 인간의 삶에 대한 물음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한국 천주교는 IMF 이후 가족위기 담론이 본격화되던 2005년경부터 ‘카나혼인강좌’, ‘아버지학교’ 등 다양한 가정사목 프로그램을 개발·운영하면서 우리 사회의 현안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광주대교구 사목국은 가족을 둘러싼 다양한 변화 속에서 가정사목의 방향을 새롭게 점검하고 살펴보기 위해 전남대 인문학연구원에 공동세미나를 제안했다. 전남대 인문학연구원은 2018년 ‘초개인화 시대, 통합과 소통을 위한 가족커뮤니티인문학’이라는 어젠다로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플러스 국가전력 사업에 선정되어 2024년까지 전국 최대 규모 가족 관련 융복합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광주대교구와 인문학연구원은 가족에 대한 몇 가지 핵심 주제들을 선정해 4월부터 7월까지 7차례의 공동세미나를 개최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인문학연구원 소속 6명의 교수진이 최근 가족의 변화와 시대 흐름을 문학, 사학, 철학, 통계 및 사회학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2부에서는 광주대교구 사목국, 광주가톨릭대학교 소속 신부와 수녀 6명이 성경과 가톨릭교회에서의 가정 개념을 논의하고, 가정사목이 지나온 역사와 미래 방향성을 탐색한다. 마지막으로 3부에는 이 책의 필진이 한자리에 모여 대담한 내용이 담겨 있다. 가족 다양화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낙태나 출산 파업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가정의 정의와 범위는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등의 내용이다. 윤하정 기자 평화신문2022.08.17

인간 생명은 철저하게 존중받고 보호 돼야[가톨릭 영상 교리](36) 생명 존중 교회는 살인과 낙태, 안락사와 자살과 같은 직접적이고도 고의적인 생명 파괴 행위는 물론이고, 이를 위한 그 어떤 협력도 금지하고 있다. 2019년 생명대행진 참가자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DB 여러분, 혹시 아시나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하느님께서 만드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혹, 아니 정확하게는 자주 착각을 하는데요. 수만 년, 혹은 수억 년의 인류 역사에 있어서 인간이 무에서 유로 만든 건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머리카락 하나, 티끌 하나도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3)맞습니다.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잠시 그것들을 누리고, 품고, 돌볼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모두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분 뜻에 맞게 잘 돌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느님께서 당신 닮은 모습으로 당신의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직접 빚어 만드신 인간 생명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인간 생명의 주인은 오직 하느님이시기에 우리는 그 생명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타인의 생명은 물론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파괴하거나 죽이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 목적에 어긋날 뿐 아니라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입니다.“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우리에게는 생명을 해치거나 손상시키거나 조작할 권한이 없습니다. 오히려 최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살인과 낙태, 안락사와 자살과 같은 직접적이고도 고의적인 생명 파괴 행위는 물론이고, 이를 위한 그 어떤 협력도 금지합니다.또한 장기매매와 시험관 아기를 비롯한 인공수정, 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연구와 같이 생명을 인간의 목적으로 사고팔고, 생성시키고, 조작하는 것에 단호히 맞섭니다.인간 생명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부부가 협력함으로써 이뤄집니다. 부부의 사랑과 ‘특별하고도 독점적인 행위’인 부부관계 안에서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과학의 힘이나 기술로 만들고 생산하는 그 무엇이 아닌 것입니다.나아가 교회는 국가 형벌로 채택하는 ‘사형제’도 분명히 반대합니다. 인간 생명은 오직 하느님만이 창조하실 수 있고 거두어 가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가톨릭교회는 복음에 비추어 “사형은 개인의 불가침과 인간 존엄에 대한 모욕이기에 용납될 수 없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267항)고 가르칩니다. 인간 생명은 잉태되는 그 첫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철저하게 존중되고 보호돼야 합니다. 그 누구의 개입으로 손상 받거나 멈춰져서는 안 됩니다.생명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생명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가꾸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인간 생명뿐 아니라 자연 안의 모든 생명도 함께 존중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오 마리아, 새 세상의 빛나는 새벽이시며 살아 있는 이들의 어머니!생명의 모든 원리를 당신께 맡겨 드리나이다.굽어보소서, 성모님,세상에 태어나지 못한 수많은 아기들을 굽어보소서.힘든 삶을 살아가는 불쌍한 이들을 굽어보소서.무지한 폭력의 제물이 되고 있는 남녀들을 굽어보소서.무관심이나 그릇된 자비로 죽어가고 있는 노인과 병자들을 굽어보소서.당신 아드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정직과 사랑으로 이 시대 사람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게 해 주소서.영원히 새로운 선물로 그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을 얻어 주소서.일생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복음을 경축하는 기쁨을 얻어 주소서.그리고 그 복음을 단호하게 증언할 수 있는 용기를 얻어 주소서.그리하여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과 함께 창조주이시며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는 진리와 사랑의 문화를 건설할 수 있게 해 주소서.”(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생명의 복음」 105항) 평화신문2022.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