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평화의 열쇠, ‘샬롬의 영성’에서 찾자평화학 세계적 석학 주드 페르난도 교수, 국내 전문가·청년들과 한반도 평화 모색 평화학 분야에 널리 알려진 주드 페르난도 교수가 16일 경기도 파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에서 관련 전문가, 청년과 함께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한반도에도 희망이 “스리랑카에선 희망을 잃었지만, 아일랜드에서 평화협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희망은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에도 희망은 있습니다.” 평화학 분야 세계적 석학인 주드 페르난도(Jude Lal Fernando) 교수가 16일 경기도 파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에서 국내 전문가와 청년들을 만나 한반도 평화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교회의 역할을 모색했다. 주드 페르난도 교수는 스리랑카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다수족 싱할라 출신이다. 내전 당시 소수족인 타밀과의 화해 운동 및 반전 평화 활동에 참여해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혀 현재 망명자 신분으로 아일랜드 트리니티 대학에서 평화학을 가르치고 있다. 스리랑카 내전은 1983~2009년 스리랑카 싱할라족와 타밀족 반군인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 사이 벌어진 내전으로, 스리랑카 정부군이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의 지배 지역을 제압하면서 26년 내전이 종결됐다. 내전이 격화된 2007~2009년 7만여 명이 사망했고, 타밀족은 300만 명이 격리·수용돼 폭력, 살인, 강간 등을 겪었다고 알려졌다. 페르난도 교수는 “현재 스리랑카는 완전히 군사화됐고, 평화 활동도 무너진 상태”라며 군사화에 의한 안보를 비난했다. 그는 이를 구약 성경에서 나오는 금송아지에 비유했다. “모세가 자리를 비웠을 때,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숭배했습니다. 군사화와 안보는 오늘날의 금송아지입니다. 금송아지를 통해 숭배하려는 신은 세계화된 폭력의 독점 체제입니다. 이것이 추구하는 목표는 절대 권력이고, 이를 유지하는 방법이 바로 전쟁이죠. 군사화, 안보화가 추구하는 이념의 핵심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무엇보다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북한 사람들이 만든 모자이크를 보고 참 좋았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큰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어떤 사회라도 이처럼 내부의 역동성이 있는 것입니다.” 긴 호흡과 큰 그림으로 페르난도 교수는 싱할라와 타밀은 남한과 북한처럼 굉장히 깊은 분열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재 경색 국면으로 돌아선 남북 관계에 대해선 긴 호흡을 갖고 평화의 여정을 걸어갈 것을 제안했다. 그는 “평화는 하나의 합의 또는 행동으로 결정되는 것 같지 않다”며 “더 큰 그림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큰 그림은 내면에서 나오는 확신, 신앙적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확실성이다. 페르난도 교수는 희망을 만들기 위해 다른 공동체와 연결성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부가 스리랑카 내전에서 승리했을 때 희망이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제가 활동했던 모든 마을이 폭격당했죠.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아일랜드로 망명해 국제 법정을 조직했습니다. 학살 현장의 증인을 모아서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조직한 것입니다. 이는 정치적 행위인 동시에 영적인 활동이었고 화해의 활동이기도 했습니다.” 평화학 분야에 널리 알려진 주드 페르난도 교수가 16일 경기도 파주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에서 국내 전문가, 청년과 함께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모색하고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평화 이어 그는 “제국주의적 평화는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하는 것쯤은 괜찮은 것으로 여긴다”며 “제국주의적 평화의 관점을 지향한다는 것은 곧 북한과 타밀, 팔레스타인과 예멘이 소멸해도 괜찮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성경의 평화는 완전히 다르다”며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을 잠시 두고 한 마리의 양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에 가장 가까운 성경의 언어는 ‘샬롬’이라 생각합니다. 전쟁을 준비하고 도발하는 정세 속에서 샬롬에 기초한 평화신학은 큰 시사점을 줄 것입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민규2023.05.24

하늘로 올라갑니다~!![월간 꿈 CUM] 수도원 일기 (5) 수도원의 아침 기도는 6시에 시작된다. 6시에 성무일도 기도를 함께 바치고 성무일도 기도가 끝나면 바로 이어서 미사가 거행되고, 미사 후에는 30분간 침묵 중에 묵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아침 기도가 6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아침 세면과 정돈을 하기 위해선 보통 5시 30분 정도에 기상하는데, 베테랑 수사님들은 준비시간이 10분 정도이면 충분해서 5시 40분에서 45분 정도에 기상을 하기도 한다. 10분이라도 남들보다 조금 더 자면 그게 그렇게 뿌듯한가 보다. 물론 아침형 인간인 수사님들은 기도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더 일찍 일어나서 씻고 간단하게 운동도 해서 맑은 정신으로 성당에 미리 앉아있기도 한다. 늦게 일어나서 부랴부랴 기도 시간에 딱 맞추어 성당에 앉으면 아직 잠이 깨지 않아 베드로식 기도를 하는 수사님들도 있다. 그중에는 미사 후 이어지는 묵상 시간을 모자란 잠을 채우는 시간으로 쓰기도 하는데, 그 정도는 그래도 이해할만하지만, 심지어 어떤 수사님은 공동으로 성무일도 기도를 하는 시간에도, 미사가 봉헌되는 동안에도 비몽사몽인 분도 있긴 하다. 기도 시간 중에 가끔 옆으로 자빠지거나 헛소리를 하는 수사님들이 그런 분들이다. 한번은 미사 중에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성무일도 기도 시작부터 비몽사몽 졸던 수사님께서 엄숙한 미사 시간을 웃음바다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미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구성되어 있는데, 말씀의 전례 때에는 성경 말씀이 선포되고 신부님의 강론이 이어진다. 그 날은 주례 신부님의 강론이 조금 길었다. 다른 수사님들에게는 약간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잠이 덜 깬 이 수사님께는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다. 길고 지루한 강론 시간이 이 수사님께는 짧지만 행복한 수면시간이었던 것이다. 어쨌든, 누구에게는 조금 길었지만 누구에게는 아주 짧았던 말씀의 전례가 끝나고 성찬의 전례로 넘어갔다. 예물준비 기도에 이어 감사송을 시작하는데, 주례 신부님께서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시작하자 수사님들이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하며 응답을 했다. 이어 주례 신부님께서 “마음을 드높이” 하셨다. 이에 수사님들이 “주님께 올립니다”라고 응답해야 하는데…. 비몽사몽 꿈길을 걷던 수사님이 갑자기 다른 수사님들 보다 먼저 “하늘로 올라갑니다~!!” 하고 응답하는 바람에 조용하던 미사 시간이 발칵 뒤집어졌다. 여기서 키득키득, 저기서 키득 키득. 주례 신부님이 어이가 없어서 웃으며 하시는 말씀. “네 수사님, 먼저 하늘로 올라가세요~!!” 글 _ 안성철 신부(마조리노, 꿈CUM 지도신부, 성 바오로 수도회) 1991년 성 바오로 수도회에 입회, 1999년 서울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선교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사제서품 후 유학, 2004년 뉴욕대학교 홍보전문가 과정을 수료했으며 이후 성 바오로 수도회 홍보팀 팀장, 성 바오로 수도회 관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그리스도교 신앙유산 기행」 등이 있다. cpbc2023.12.21

무한한 주님 사랑의 표징 ‘예수 성심’을 알고 싶다면 6월 예수 성심 성월에 읽을 만한 책 예수성심상. 교부들은 예수의 마음에서 세상을 살리는 구원 생수가 흘러나오기에 성령과 예수 성심을 모든 은총의 근원이라 여겼다. 6월은 ‘예수 성심 성월’이다. 인간에 대한 무한한 인간적·신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예수 성심을 묵상하고, 자신의 마음을 예수 성심께 일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을 골라봤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예수성심성월 양자형 신부 유은희 수녀 옮김 순교의맥 “교회는 예수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기 위하여 예수 성심 대축일이 있는 6월을 예수 성심 성월로 정하여, 축일을 성대히 기념하고 성시간(聖時間)과 기도회 등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신심 행사를 통하여 성심의 신비를 묵상한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조) 예수 성심 성월 신심 묵상서 「예수성심성월」이 출간됐다. 원서는 홍콩대목구 소속 양자형(1837~1920) 신부가 1875년 홍콩에서 펴냈다. 예수 성심 성월 기도문과 매일의 묵상 자료, 비오 7세 및 비오 9세 교황이 반포한 교서 등이 수록되어 있다. 뒷부분의 ‘경례경문’에는 예수 성심 축일에 관계된 예수 성심 기도문, 예수 성심 성월에 신자로서 지켜야 할 9가지 의무 등이 적혀 있다. 책에 따르면 예수 성심 축일을 처음으로 지낸 것은 1672년 10월 20일로, 프랑스에서 많은 주교의 인준을 받아 시작됐다. 예수 성심 공경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세계적으로 보급된 계기는 ‘성모 방문 수녀회’ 소속 알라코크 수녀에게 내린 예수 성심의 메시지들이었다. 이 책이 언제 우리나라에 전해졌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1888년 조선 제7대 대목구장인 블랑 주교의 감준 아래 한글로 번역된 것으로 보아, 그 전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책은 한국교회사연구소 월간지 「교회와 역사」에 2011~2013년까지 연재한 내용을 보완해 엮은 것이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시복시성 역사 및 고문서 전문가 위원인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유은희 수녀가 번역했다. 역자가 내용에 따라 단락을 나누고, 원문과 우리글을 함께 실어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교부들은 예수의 마음에서 세상을 살리는 구원의 생수가 흘러내리므로, 성령과 함께 예수 성심을 초자연적 은총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성심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에서, 물은 죄로 죽은 인간을 깨끗이 씻고 새 생명을 주는 세례의 물로, 피는 새로 태어난 백성을 먹여 기르는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성사의 풍요로움으로 보았다. 또한 아담의 옆구리에서 이브가 탄생하였듯이, 새 아담인 그리스도의 심장에서 새 이브인 교회가 탄생했다는 사상이 생겼다.”(24쪽) 자유와 충실 베르하르트 헤링 신부 지음 소병욱 신부 옮김 바오로딸“하느님의 선물인 자유가 단순히 사람에게 속해 있는 어떤 것이 아닌 것처럼, 진리 역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임과 동시에 우리가 달성해야 할 어렵고도 지속적인 과업이다. 전체 그리스도교 윤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행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향해 충만하게 성장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24쪽) 「자유와 충실」은 구속주회 소속 베른하르트 헤링(1912~1998) 신부가 전3권으로 펴낸 사제와 신자들을 위한 윤리신학서다. 제3권이 1996년에 먼저 번역·출간되었고, 2021년 제1권에 이어 이번에 제2권이 나왔다. 저자는 책마다 대주제를 담고 있는 성경 말씀을 부제로 삼았는데, 제2권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이다. 전체 800여 쪽을 관통하는 제2권의 주제는 ‘진리’다. 그리스도는 진리를 통해 인간을 자유롭게 하셨고, 그 진리와 자유가 지닌 연관성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는 것이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 저자는 우선 해방의 진리 자체를 분석한 후 진리와 우리 관계의 정점인 믿음, 믿음의 내적 힘인 희망, 해방의 진리와 함께하는 사랑 등을 고찰한다. 이와 함께 진리의 통교와 선포, 전형적인 반진리인 무신론 등을 살펴본다. 이러한 주제들을 신학의 범주를 넘어 오늘의 사회학, 행동과학, 철학, 심리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리한다. 총 3권의 원서 번역을 마친 소병욱(대구대교구 성사전담) 신부는 “주제마다 가정 먼저 펼쳐지는 헤링의 그리스도론은 학문의 차원을 넘어 그리스도 찬미가의 대 서사시로 느껴질 만큼 깊이 있고 풍부하며 감동적”이라며 “머지않아 하늘나라에서 뵙게 될 헤링 신부님께 ‘늦었지만 숙제를 다 하고 왔습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이라고 전했다. 성령의 리듬 따라 춤추기 – 식별의 기술 데이비드 론스데일 신부 정일 신부 옮김 위즈앤비즈“나와 타인의 역사, 경험, 은총, 갈망, 감정, 이해, 생각이나 영감 등은 성령이 현존하는 장소요,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고’(에페 4,12 참조) 하느님 나라에 봉사하기 위한 일터라는 것이다. 성직자든 수도자든 평신도든 관계없이,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이러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깊이 숙고하고 그 반성을 근거로 행동한다면, 성령께서 일상의 사소한 일들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닮도록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식별의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22쪽) 「성령의 리듬 따라 춤추기」는 ‘식별의 기술’에 관한 책이다. ‘식별’의 사전적 의미는 ‘분별하여 알아봄’이다. 일상에서나 특별히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올바른 선택을 위한 단초가 될 것이다. 따라서 식별이야말로 교회 안에 꼭 필요한 재능이라 할 수 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제도적인 한 단체에 한 멤버로서 입교한다는 것보다 더 깊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바뀌어 왔기 때문이다. 저자 데이비드 론스데일(영국 예수회) 신부는 “일상생활에서나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에 서게 될 때, 제자로서 살려고 노력할 때마다 어차피 선택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며 “식별의 가치는 우리가 어떤 것을 결정해야 할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신자다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제공하면서 드러난다”고 전한다. 결국 식별의 영성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올바른 식별을 위해 예수회 창설자인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선배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삶의 기술을 전수한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4.05.29
![[이소영 평화칼럼] 그 순간 깃들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8/16/RoS1692145570527.jpg)
[이소영 평화칼럼] 그 순간 깃들던이소영 베로니카(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처음 성당이란 데에 가본 건 열두 살 때다. 아버지의 직장 업무로 인해 해외에 몇 해 거주하게 되었는데, 당시 그 지역 재외국민 상당수는 한인교회나 성당 중에 한 군데를 다녔다. 여기엔 종교적 이유만이 아닌 사교 목적과 일상생활의 필요도 작용했으리라 짐작한다. 아직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라 한국 잡지나 소설, 드라마 녹화 테이프 등 주요 유통망이 교민 종교공동체였기 때문이다. 기억하기로 그 한인성당은 규모가 작았고 가난했다. 처음엔 지하실 한 칸을, 나중엔 유치원 부속성당을 빌려 썼다. 제대 앞쪽이 협소하여 영성체 때 신부님이 의자 사이로 다니며 성체를 나눠주시곤 했다. 그곳의 습기 냄새와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이 왠지 아늑하게 느껴졌다. 신부님은 루뱅이란 소도시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주일이면 기차 타고 브뤼셀로 와서 미사를 집전하셨다. 야윈 얼굴에 안경 너머로 소년처럼 눈이 반짝반짝했다. 나는 신부님이 좋았다. 여러 사람 사이에 섞여 있어도 신부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단박에 구분할 수 있었다. 복도 저편에 까만 수단 자락이 펄럭이면 작은 심장이 옷섶 안에서 콩콩 뛰었다. 비록 ‘루카’와 ‘누가’를 별개 인물로 알던 무지한 꼬마였지만, 신부님의 강론이 ‘오늘의 명상’ 시간에 듣던 설교들과는 결이 다름을, 성경의 행간을 섬세하게 읽어내어 해석한 것임을 느꼈다. 내가 다른 누가 아닌 나여서, 알아들을 수 있는 나여서 기뻤다. 중학교 올라가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 들어가 냉담하고, 대학원 다니며 다시금 성당에 가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십수 년 전 한겨울 아침이었지 싶다. 우연한 계기로 듣게 되었다. 신부님이 많이 아프시다고. “아직 젊은 분인데. 어쩌면 며칠을 넘기기 힘들지 모른대.” 학교 가서 종일 신부님 생각을 했다. 저녁 세미나 마치자마자 뛰어 나와 묵주 챙겨서 택시 타고 명동대성당으로 향했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하나였고, 그 하나만큼은 하고 싶었다. 그리고 늦은 밤, 귀가하여 부음을 들었다. 열세 살 무렵 어느 주일엔가 성당에 가니 웬 초면의 외국인 신부님이 미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어른들이 소곤거리기로, 우리 신부님은 수술받으러 한국에 가셨다는 거다. 심각한 병세는 아니라 했지만 내 마음은 쨍그랑 깨졌다. 게다가 중고등부 언니들이 어디서 들었는지 “유학 나온 신부님은 원래 한번 귀국하면 다시 못 나오게 되어 있어. 교구에서 안 보내준대”라는 게 아닌가? 난 성모상 뒤에 숨어 엉엉 울며 “마리아님, 우리 신부님을 낫게 해주지 않으면 저 하느님 안 믿을래요”라며 협박조의 생떼를 부렸다. 그리고 신부님은 달포 지나 참말로 건강한 모습으로 복귀하셨다. 나중에 알게 된 신부님의 선종 시각은 내가 명동대성당에 들어서던 그 시각이었다. 세상 ‘안’의 자비를 간절히 청하던 무렵 이미 신부님은 세상 너머에 계셨던 거다. 그런데도 왜 기도하는 내내 슬픈 직감 대신 안도감을 느꼈을까. 캄캄한 겨울밤, 성당 안에 감돌던 불가해한 온기는 무엇이었을까. 바보처럼 난 ‘신부님 깨어나셨나 보다’ 좋아했더랬다. 어릴 적 그랬듯 이번에도 기도대로 해주셨구나 하고. 나는 영성이 둔하고 얕아서 주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 다만 믿고 싶었다. 그 순간 깃들던 설명 못 할 평온함은 신부님이 천상에서 그분 품에 곧바로 폭 안겼다는 징표라고. 이영춘 세례자 요한 신부님. 고단했을 유학 시절 중 만난 말수 적고 무엇 하나 특별한 것 없던 열세 살 여자아이를 기억하실 리 없겠지만, 천상 일은 사람 생각과 다르다고들 하니 소망해본다. 신부님을 위해 성모님께 협박 섞인 청을 드렸던 그 꼬마가 세상에 좋은 쓰임을 가진 어른으로 살아가도록 이번엔 신부님 쪽에서 날 위해 기도해 주시길 말이다. cpbc2024.02.21
[생활 속의 복음]사순 제2주일-매력적인 그리스도인이 되는 법수난과 부활 예고하신 예수님오늘 우리는 마르코 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에 관한 말씀을 듣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앞뒤의 내용과 연관해서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마르코 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신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 질문에 대해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29절)라는 베드로 사도의 대답을 듣자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 예고하시고,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34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말씀을 하신 이후,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 사도들을 따로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셨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습니다. 9장 30절부터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두 번째 예고가 이어지고 있습니다.“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이렇게 보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의 이야기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의 사건을 직면하기 전에, 예수님이야말로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로서 약속된 메시아이시고, 신적인 영광으로 충만하신 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고난과 치욕의 상징인 십자가 죽음의 길을 걷게 되지만, 그 길의 마지막이 예수님 자신과 그분을 따르는 모든 이에게 허무와 패배가 아니라 부활을 통한 참된 영광임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제자들이 고난과 역경의 순간에도 스승이신 예수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그분이 가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도록 신앙적 용기를 고취시키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높은 산에서 하느님과의 만남그러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이루어진 장소는 ‘높은 산’이었습니다. 성경의 전통에서 높은 산은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로서, 계시와 기도의 장소입니다.(탈출 24,2; 2베드 1,18 참조)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는 루카 복음에서는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9,28)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산으로 오르신 목적을 직접 밝히고 있습니다. 기도하시는 동안에 예수님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하였습니다.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통해서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차원으로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예수님처럼 기도하면 우리도 변할까예수님처럼 기도하면 우리 모습도 변화될까요? 어떻습니까? 하느님과의 대화인 기도를 통해서 내면에 감추어진 자신의 문제와 상처를 인식하고 하느님 은총으로 그것들이 치유될 때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지는 체험을 여러분도 이미 하셨을 것입니다. 오랜 기간의 피정과 기도생활에서 개인적으로 체험했던 내용뿐만 아니라 피정지도를 통한 저의 실천적인 경험을 보아도 내면의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의 외적인 모습도 보다 편안하게 바뀌게 되는 것 같습니다.우리 마음이 하느님으로 가득찬다면처음에는 외모가 뛰어난 사람이 눈에 띄고 주목받을지 몰라도 그에 걸맞은 인격과 태도가 뒤따르지 않으면 그 사람에 대한 긍정적 인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반대로 평범한 외모지만 만나면 만날수록 매력을 느끼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매력의 원천은 그들의 품성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내적인 아름다움에 있을 것입니다. 타고난 외모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남에게 매력을 줄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우리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매력 있는 사람, 편안하고 따뜻한 얼굴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계속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음이 하느님으로 가득 차고, 우리 모습이 점점 더 거룩해지면, 많은 사람이 우리를 통해 삶의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유승록 신부 2024.02.21
![[금주의 성인]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8월 28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8/22/2L41692692868994.jpg)
[금주의 성인]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8월 28일)354-430년, 알제리 출생 및 선종, 교회학자, 은총론의 박사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로마 제국의 관리였던 부친과 모니카 성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우구스티노는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는데, 370년에는 법률가가 될 꿈을 안고서 카르타고의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 아들 아데오다투스를 낳았습니다. 384년 밀라노의 수사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할 때는 신플라톤 철학과 암브로시오 성인의 설교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암브로시오의 강의를 통해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은유적 또는 영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명예, 재산, 결혼 등과 관련해 내적 갈등을 겪을 때도 있었습니다.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채 정원을 산책하던 아우구스티노는 “집어서 읽어라”하고 반복해서 외치는 신비로운 소리를 듣고 성경을 펼쳐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13장 13절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랬습니다.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이에 아우구스티노는 교수직을 그만두고 그의 친구 알리피우스 성인과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에 암브로시오의 지도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아우구스티노는 일종의 수도원 공동체를 이루어 생활하다가 391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5년 후 히포의 주교로 임명됐습니다. 그는 35여 년을 참된 사목자로 헌신했습니다. 사목자의 권위를 행사하되 하느님 백성의 복리와 행복을 위해 사용했고, 대성당의 성직자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았으며, 엄격한 규율 아래 모든 일을 행했습니다. 틈나는 대로 글을 쓰기도 했는데, 113종의 책과 논문, 200여 통의 편지, 500회의 설교 등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특히 자신의 개종 과정을 기록한 자서전적 저서인 「고백록」과 호교론적 저서인 「신국론」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은총론에 대해서도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흔히 아우구스티노를 ‘은총론의 박사’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는 서방교회의 4대 교부 중에서 가장 위대한 교부이자, 교회 학자이며 뛰어난 영성가로 불립니다. 주교가 된 후에도 주교관 내에 성직자 수도원을 세워 공동생활을 이어갔을 정도입니다. 아우구스티노의 수도 규칙은 ‘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네딕토 성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회 미술에서 아우구스티노는 대개 연구에 몰두하는 주교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15세기 이후에는 바닷가에서 조개껍데기를 든 어린아이와 함께 등장하는데, 이는 성인의 환시 내용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중년의 아우구스티노는 심오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 몰두하며 바닷가를 거닐던 중 한 어린아이를 만났습니다. 아이는 모래톱에 조그만 구덩이를 파놓고 조개 껍데기로 부지런히 바닷물을 퍼 나르고 있었습니다. “바닷물을 다 퍼 담을 것”이라는 아이에게 아우구스티노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그럼, 아저씨의 작은 머리로 삼위일체 하느님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어요?”하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17세기 이후에는 불타거나 화살에 의해 관통된 심장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그려지는데, 이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종교적 열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cpbc2023.08.22

정통 교리에서 벗어난 이단들[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 (2)그리스도를 표방하는 교단들 몰몬교로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모습 pixabay 제공 개신교 교단들 가운데 그리스도교를 표방하고 있지만 개신교 안에서는 이단으로 여겨지는 교단들이 있습니다. 먼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흔히 ‘안식교’, ‘안식일교’ 또는 ‘재림교’라고도 불립니다. 이 교단은 1863년 미국에서 개신교 근본주의, 회중주의, 특히 예수님의 실제적이고 급박한 재림을 강조하면서 일요일이 아닌 성경의 제칠일 안식일을 따라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라고 믿으며 출범한 교단입니다. 시한부 종말론을 토대로 재림 운동이 강조되면서 엘런 화이트라는 17세 소녀의 예언을 바탕으로 그녀를 선지자로 섬깁니다. 기본 교리는 그리스도교 정통 교리를 따르지만, 예수 재림 후 전천년설, 제칠일 안식일, 채식주의, 영혼 멸절, 곧 사람이 죽으면 소멸된다는 등의 독특한 교리를 가르칩니다. 이 때문에 정통 개신교의 교단들에 의하여 여전히 이단 논쟁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는 ‘삼육재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는데 삼육대학교나 삼육 외국어 학원은 안식교의 중요한 선교기관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19세기 미국의 재야 성서학자 찰스 테이즈 러셀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결성된 그리스도교 회복주의 성향의 종교 단체입니다. 이들은 삼위일체론과 영혼 불멸, 지옥 등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느님과 동등한 분으로 여기지 않기에 근본적으로 그리스도교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이들은 1세기 초기 교회의 모습을 간직한 교회라는 확신으로 교회를 운영하며 성경과 「파수대」, 「깨어라」등의 책자와 잡지 등을 배포하며 포교 활동을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천황 숭배 거부와 양심적 병역 거부로 고초를 겪기도 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병역을 거부하고 수혈을 거부합니다. 흔히 몰몬교로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전통적 그리스도교의 신경과 신학을 따르지 않는 소위 ‘회복된 개신교’를 표방하며 미국에서 독자적으로 설립된 교단입니다. 조셉스미스 주니어의 계시 체험에서 유래한 몰몬경을 경전으로 삼으며 정통 교단과 차별화된 믿음을 강조합니다. ‘통일교’는 문선명을 재림 주, 메시아로 믿는 신흥 종교로 1954년에 창시되었습니다. 그는 ‘세계 평화 통일 가정 연합’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활동하며 ‘원리 강론’이라는 핵심 경전을 토대로 정치 활동과 기업 활동을 통하여 개신교와 전혀 다른 가치를 가르칩니다. 신천지 예수교 증거 장막 성전이 시내버스 등 대중교통을 교단 홍보 수단으로 삼고 있다. 사진=가톨릭평화신문DB 최근에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신천지’ 또한 정통 그리스도교에서 벗어난 신흥 종교이자 개신교에서는 사이비 이단으로 강하게 비판받고 있습니다. 신천지의 공식 명칭은 ‘신천지 예수교 증거 장막 성전’이고, 요한 묵시록을 중심으로 1984년에 이만희가 창립해 ‘성경 비유 풀이’를 통해 성경을 해석하며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포섭해 포교 활동을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또한 1964년에 자칭 재림 예수인 안상홍이 창시한 신흥 종교로서 ‘하나님의 교회 세계 복음 선교 협회’로 활동합니다. 초대 교회가 ‘하나님의 교회’였음을 강조하면서 안식일을 토요일로 지키고 성만찬은 유월절에, 십자고상은 우상이며, 12월 25일은 성경에 없는 이방 종교의 축제일이라고 주장하며 정통 교리에 벗어나 있습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 위원회 cpbc2023.03.28

기쁜 소식에 목마른 인류 가족에게 복음을프란치스코 교황 제97차 전교 주일 담화… 적극적 복음 선포 당부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97차 전교 주일(22일)을 맞아 담화를 발표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당부했다. 교황은 ‘타오르는 마음, 움직이는 두 발’(루카 24,13-35)이란 주제 담화에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성경을 풀이해 주시는 것을 들었을 때에 속에서 마음이 타올랐고, 그분을 알아보았을 때에 눈이 열렸으며, 마침내 두 발을 떼어 길을 떠났다”며 “선교하는 모든 제자의 여정을 반영하는 이 세 가지 표상을 묵상함으로써 우리는 오늘날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열정을 새롭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길을 떠나는 두 발’이라는 표상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모든 사람과 민족에게 심지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교회에 맡기신 사명, ‘만민 선교’의 영원한 유효함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상기시킨다”며 “그 어떤 때보다도 오늘날, 너무나 많은 불의한 상황과 분열, 전쟁들로 상처 입은 우리 인류 가족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화와 구원의 기쁜 소식이 필요하다”고 일깨웠다. 이어 “교회의 선교 활동의 시급성은 자연스럽게 모든 교회 구성원과 모든 차원에서의 더욱 친밀한 선교 협력을 요청한다”며 “이는 교회가 친교, 참여, 사명이라는 핵심 단어에 따라 수행하고 있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의 근본적 목표”라고 재차 강조했다. 교황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길에서 겪은 일에 대해 다른 이들에게 이야기한 것과 같이, 우리의 선포 또한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그분의 삶과 수난과 죽음과 부활, 우리 삶 안에서 그분의 사랑이 완성하신 경이로운 일들에 대한 기쁜 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다른 이들의 마음이 하느님 말씀으로 타오르게 하고 다른 이들의 눈이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열리게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에게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평화와 구원의 길을 모든 이가 함께 걷도록 초대하기 위해 길을 떠나자”고 요청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도재진2023.10.18
![[사도직 현장에서] 부활 신앙 전수는 그리스도인의 사도직 책무](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3/30/i6V1680135238551.jpg)
[사도직 현장에서] 부활 신앙 전수는 그리스도인의 사도직 책무 그리스도 나의 구세주 참된 삶을 보여주셨네. 그분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네. 죽음 앞둔 그분은 나의 발을 씻기셨다네.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랑. 성가를 듣고 부를 때마다 부모님의 사랑과 신앙 유산을 기억하고 감사드립니다. 제가 지녀야 할 사제적 사랑과 신앙 감각도 묵상하고 성찰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예수님!” 자주 아버지께서는 대야에 물을 떠서 아들의 머리를 감겨주시고, 어머니는 대야에 물을 담아 제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평생 기도와 거룩한 노동의 신비를 몸소 가르쳐주신 두 분의 신앙교육과 믿음의 모범을 기억합니다. 22년 전 하늘나라로 가신 부모님의 묘비에 새겨드린 성경 구절은 두 분의 충실한 신앙고백입니다. “저의 한평생 모든 날에 호의와 자애만이 저를 따르리니, 저는 일생토록 주님의 집에 사오리다.”(시편 23,6) 부모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셨습니다. 평생토록 돈도 명예도 학식도 없는 처지에서 한글을 스스로 배워 성경을 읽고, 성가를 부르고, 성체를 모시고,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신비의 증인으로 사셨습니다. 가난과 고난 가운데서도 온유함과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와 노동의 균형감각을 간직하며 사셨습니다. 그 신앙의 보물은 삶의 여정에서 1살 때의 세례성사와 28살 때의 신품성사, 조카 신부의 신앙으로 전수되었습니다. 부활 신앙의 전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사도직 책무’임을 기억합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총의 직무’에 충실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은혜롭고 아름다운 삶의 자리입니까. 시골길에서 만나는 야생화, 꽃나무, 시냇물, 바람, 하늘의 봄 향기를 느끼며, 있어야 할 자리에서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는 피조물의 신비도 배웁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주님을 따르며 빵을 떼는 사제로서 오랜 세월 사회복지 현장에서 살 수 있는 힘과 용기, 사람들과 동행할 수 있는 행복도 모두 예수님 십자가의 사랑과 부활의 신비가 저에게 주신 인생의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cpbc2023.04.21
![[생활 속의 복음]사순 제1주일-성령의 인도로 광야로 간 예수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2/13/Xrw1707803679172.jpg)
[생활 속의 복음]사순 제1주일-성령의 인도로 광야로 간 예수님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창세 3,19 참조) 이 말씀과 함께 지난 재의 수요일, 참회의 상징으로 머리에 재를 얹으며 우리는 회개와 보속의 사순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기억하며 사순절 동안 희생과 극기를 실천하고, 단식과 금육을 지키고 이웃에게 자선을 베풀며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광야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다 사순 첫 주일인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받으심과 첫 복음 선포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마르 1,12-13) 성령의 인도로 예수님께서는 광야로 가셨습니다. 거칠고 척박한 광야는 사막과 달리 극소수의 동식물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지만 일상의 삶의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곳, 세상 사람들로부터 격리된 곳으로 황량함과 고요, 침묵과 고독을 마주하게 되는 장소입니다. 그런 광야로 성령께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고요와 침묵 속에서 하느님과 깊은 만남 그 이유를 같은 복음서의 다른 구절들을 통해 묵상해볼 수 있겠습니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마르 1,35)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하고 말씀하셨다.”(마르 6,31)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외딴곳은 많은 일과 사람들과의 잦은 만남으로 지쳐버린 몸과 마음의 휴식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고요와 침묵 가운데 하느님과의 만남을 위한 장소였습니다. 그 만남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은 맡겨진 사명 수행에 필요한 힘과 용기를 지속적으로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공생활 직전에 성령의 인도로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신 이유도 하느님과의 더욱 깊은 만남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시련을 겪고 약속의 땅으로 간 이스라엘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시련을 겪은 후에야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구원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고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 백성으로 양성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에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이후에는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를 위해 일부의 신자들이 광야로 향했습니다. 안전과 편안한 삶을 보장해주는 세상의 모든 조건들을 포기하고 찾아간 그곳에서 그들은 고요와 침묵 속에서 온전히 하느님께 집중하였습니다. 그들로부터 오늘날의 수도생활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힘과 양식을 얻는 기도 이처럼 광야는 일상적 삶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에서 분명 거칠고 위험스럽고 외로운 곳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하느님과의 만남이 가능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오늘 복음의 예수님처럼 시련과 유혹도 겪게 되지만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된 자신의 소명을 다시 확인하고, 그 소명을 수행할 힘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영적 떠남을 위한 ‘광야’는 어디입니까? 일상에서 물러나 고요와 침묵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려는 시간과 장소, 곧 하느님과의 대화를 위해 마련하는 기도의 순간이 우리의 광야일 것입니다. 그곳에서 세상과 단절된 가운데 오직 하느님만을 위해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분심을 통해 고독과 갈등, 유혹과 시련도 겪게 되지만 하느님 현존을 더 깊게 체험하고, 오로지 하느님만이 주시는 영적인 힘과 양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순 시기는 충실한 신앙인으로 변화되고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때입니다. 이러한 사순 시기 동안 하느님만을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 우리의 광야로 떠나는 시간을 더욱 자주 마련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유승록 신부cpbc2024.02.13

나를 아는 것,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길[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37)“아직도 내가 날 모르나 봐요” “어느 날 문득 돌아다보니 지나온 모든 게 다 아픔이네요. 날 위해 모든 걸 다 버려야는데, 아직도 내 마음 둘 곳을 몰라요. 어디로 갈까요? 어떻게 할까요? 아직도 내가 날 모르나 봐요~♪” ‘어느 날 문득’이라는 노래 가사다. 많은 가수가 이 노래를 다시 부르고, 많은 사람이 그 노래를 좋아하며 따라 부르는 이유는, 그 안에 자기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이미 늦어버린 것은 아닐지. 내가 날 모르는 이유는 그만큼 나를 대면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나면 만날수록,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서로를 더 잘 알고 친해지는 것처럼, 자신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신앙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이다. 하느님을 아는 것과 자신을 아는 것은 동떨어진 두 개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신앙을 통해 나를 얼마나 알아 왔는지? 피정은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나를 돌보는 피정의 시간을 마련하여 자신과 대화를 나눠보면 어떨까. 그동안 외면해 온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으며, 어디쯤 와 있는가? 그동안 나는 나라는 존재를 너무 외면해 온 것은 아닌지? 자기 이름을 다정히 불러보자.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네보자. 하느님께서 나에게 생명을 주시면서, 나의 삶을 멋지고 아름답게 살라고 하셨는데, 나는 과연 그렇게 살아왔는지? 그동안 나는 누군가의 아내, 남편, 부모, 자녀로, 혹은 직장의 누군가로 살아왔지, 정말 나의 삶을 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어쩌다 어른’ ‘어쩌다 어르신’이 되면서, 젊어서 가졌던 꿈과 희망, 인생의 계획은 다 어디에 두고 온 걸까? 하느님 자녀로서 나의 삶은 어떠하였나? 세례성사로 주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는데, 세상 사람들과 세속 일에 파묻혀 살면서, 나는 얼마나 하느님 자녀로서의 품위와 고귀함을 지키고 살아왔나? 하느님 자녀로서 긍지와 자부심, 자신감과 든든함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하느님이 안 계신 것처럼, 부모님 잃은 고아처럼 살아온 것은 아닌지. 묵상을 위한 성경 구절로 ‘되찾은 아들의 비유’(루카 15,11-32)를 제안하고자 한다. 이 비유에 나오는 작은아들처럼, 나는 혹시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은 자녀이지만 실제로는 이방인들 틈에 살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결국 돼지 치는 고되고 외로운 일을 하면서, 누군가의 관심과 위로와 사랑 어린 말 한마디 받지 못하고 살아오지 않았나. 혹은 큰아들처럼 자신을 ‘종처럼’ 여기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하느님은 내가 자유롭기를, 기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는데, 나는 그저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줄로 알고 고개 숙이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이제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아버지께서 나를 위한 잔칫상을 준비하고 계신다. 회개란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나를 향한 아버지의 넓고 따뜻한 마음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나를 가여워하는 마음, 나를 바라보는 눈길에 담긴 애끓는 마음, 그 마음과 눈길을 통해 자녀로서의 품위와 고귀함을 되찾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내 생의 마지막 날 “그래, 내가 너에게 선물로 준 너의 인생을 어떻게 살았느냐?”라고 물으시면, 나는 무어라 답할 것인가? 하느님 아버지께 그동안 살아온 내 삶의 이야기를 해 드리자. 아버지께서는 나의 모든 이야기에 귀 기울이시고 공감하시며 고개를 끄덕이고 아픔을 어루만져주실 것이다.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 cpbc2024.02.13

춘천교구, 온라인 강의 들으며 성경 통독교구 사제 성경모임, 성경 통독 돕는 유튜브 강좌 ‘말씀살기’ 연재 춘천교구 사제들이 신자들의 성경 통독 안내를 위한 말씀살기 강좌를 게재하고 있다. 사진은 이종찬 신부가 사진과 그림을 이용해 탈출기 강의를 하는 모습. 춘천교구 유튜브 채널 캡처 “성경 통독, 쉽지 않으시죠? 사제들이 응원의 마음을 담아 매달 영상으로 찾아뵙게 됐습니다!”춘천교구 사제들이 신자들의 성경 통독을 돕는 유튜브 강좌 ‘말씀살기’를 연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제들이 직접 촬영해 춘천교구 유튜브 채널에 게재하는 온라인 강의다. 새해 첫날인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부터 12월 25일 ‘주님 탄생 대축일’까지 총 15강이 매달 신자들 안방을 찾아간다. 강좌는 지난해 교구 성경사목부가 발간해 1만 부를 찍은 「매일의 삶, 말씀살기 - 신ㆍ구약 1년 성경 통독 안내서」를 토대로 사제들이 돌아가며 성경 읽기를 안내하는 콘텐츠다.강사로 나선 사제들은 교구 ‘사제 성경모임’ 소속 사제들. 2020년 뜻맞는 사목자들끼리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으로, ‘어떻게 하면 주일 복음 말씀을 더 제대로 익히고 강론에 임할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다 꾸렸다. 각 주일 복음 구절의 중심 의미를 깊이 파악하고 분석하며, 사제들끼리 강의와 문답 형식으로 심화된 말씀 익히기를 하는 특별한 모임이다. 교구장 김주영 주교도 멤버로 활동했고, 지금도 사제 20여 명이 꾸준히 참여 중이다. 코로나 상황 중에도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성경 열공 모드’를 이어오면서, 지금까지 100주간 분량의 말씀을 익힌 모임으로 자리매김해오고 있다. 그러다 신자들의 미사 참여마저 어려움이 이어지면서 사제들은 ‘온라인 강의를 해보자’고 논의했고,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에 이르는 성경 전체에 대한 소개와 배경, 역사를 직접 강의하는 계획을 세웠다.1월 창세기와 탈출기를 개관한 이종찬(우두본당 주임) 신부의 강의를 시작으로, 현재 방상훈(솔올본당 보좌) 신부가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관해 강의한 3강이 유튜브에 게재돼 있다. 조회 수가 7000여 회가 넘을 정도로 신자들의 참여도 좋다. 사제들도 말씀을 새롭게 정리하고, 신자들은 성경과 책자, 온라인 강좌로 말씀 읽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몇몇 본당은 미사 시간을 활용해 강좌를 상영하는 등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교구 성경사목부 담당 오경택 신부는 “올해 교구 사목 교서에도 ‘말씀살기’의 중요성이 강조된 만큼 신자 모두가 신앙생활의 첫 번째인 말씀을 더욱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 강의의 목적”이라며 “누구나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주님 말씀에 다가가게 해주는 도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2.02.16

가족적인 분위기 덕에 많은 사람 모여드는 ‘자비의 선교사 학교’[선교지에서 온 편지] 한국서 활동하는 로랑스 바써르 선교사<하> 아시아 지역의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가족들이 2022년 9월 모임을 하고 있다. 바써르 선교사 제공 자비의 선교사 학교는 형제자매들과 선교사들이 자신의 깊은 체험 나누고 스스로 소명 발견하는 곳 친교 안에서 하느님 나라 생생하게 체험 2015년 1기 시작으로 지난해 6기까지 마무리 영적 갈망 채우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복음의 기쁨」 중심으로 삶에서 체험한 하느님 나눠 2015년 자비의 희년에 저희 선교회가 만든 ‘자비의 선교사 학교’ 프로그램 주제들은 다양합니다. △자비와 선교의 관계 △자비에 목말라 하고 있는 세상 △살아 있는 대화를 통한 복음화 :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정기총회 문헌에 있는 선교의 개념 △한국도 선교지일까요? 등입니다. 우리 자비의 선교사 학교에 다니신 한 자매님은 이렇게 소감을 나눠주셨습니다. “한 달의 한 번 만남을 통해 자비에 목말라하고 있는 세상과 선교의 의미에 대해 배우고 나누고 묵상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껏 이런 주제에 관해 깊이 관심을 갖거나 공부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선교사님들의 여러 말씀과 문헌을 통해 자비, 선교, 그리고 아시아와 교회에 관해 알게 돼 참 좋았습니다.” 처음 1년 과정으로 계획했던 ‘자비의 선교사 학교’ 제1기 수료생들은 이듬해 2년 차에 해당하는 심화 과정에도 함께해 주셨습니다.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이 1년 차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저희 또한 ‘자비의 선교사 학교’를 3기까지 진행하는 동안 함께하신 형제자매들의 영적 갈망을 점점 더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프로그램을 보완 및 수정해 새로운 과정도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신자들에게 필요한 양성은 이론이 아니라 마음의 양성이고, 마음으로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저희 모두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입니다. 그리고 저희가 선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러한 만남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저희 선교회의 회칙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의 선포를 통하여 내면에서부터 변화되어 새로 태어나게 됨으로써 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회칙 3항) 우리는 복음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습니다. 복음은 사람을 내면, 즉 마음에서부터 치유해주며 새롭게 만들고, 이로써 세상도 변화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이후 ‘자비의 선교사 학교’에서는 ‘신앙과 삶의 여정’이란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성경과 교회 문헌,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복음의 기쁨」을 중심으로 각자의 삶 속에서 구체적 사건으로 체험한 하느님을 나누는 프로그램입니다. 2015년 말부터 시작된 ‘자비의 선교사 학교’는 그저 좋은 강의나 교회의 아름다운 문헌만을 가지고 사람들이 평신도로서 새로운 선교 사명을 찾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자매들과 선교사들이 함께 걸어가며 가족적인 분위기 안에서 자신의 깊은 체험을 나눔으로써 스스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2019년 4기 안면도 선교체험에 참여한 사제와 신자, 어린이들이 현지 어르신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바써르 선교사 제공 2022년 평신도 회원들이 서약식에 참여한 뒤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바써르 선교사 제공 또 매년 한 번씩 진행하는 ‘국내 선교체험’은 현지에서의 특별한 친교를 통해 신앙의 기쁨을 체험하도록 합니다. 한 자매님은 “제게 ‘자비의 선교사 학교’는 사랑과 가족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선물로 인해 제 삶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라고 고백하셨습니다. 사실 최근 몇 년 전부터 저희 학교에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것은 바로 이 가족적인 분위기 때문입니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하느님 나라 체험입니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선교사들 간의 친교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아주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입니다. 저희 학교에 다니신 한 신부님께서는 “한국 교회에도 이런 문화가 스며들어 평신도, 선교사, 수도자, 사제 모두가 한 형제자매로 친교를 나누면서 참 하느님 나라를 여기서부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자비의 선교사 학교’와 함께 걸어오신 형제자매 중 몇 분은 우리 선교회에 대한 소속감을 갖고 지난해 여름과 올 봄에 평신도로서 선교사로 살아가겠다고 서약하셨습니다. 저희에게는 매우 기쁜 선물입니다. 그들은 저희와 함께 ''자비의 종 가족''을 만들고 있습니다. ‘자비의 종 가족’이란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의 영성과 사명대로 각자가 삶의 자리에서 기쁘게 살아가고자 하는 형제자매들의 공동체입니다. 자비의 종 가족들은 삶에서 선교를 결심했더라도 크고 작은 어려움에 직면해 힘이 빠질 때 공동체 안에서 신앙과 삶의 체험을 나누면서 선교사로서 부여받은 사명을 살아가는 힘을 얻고 있습니다. 2023년 말, ‘자비의 선교사 학교’는 6기 사람들과 함께 1년 차 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이 형제자매들도 ‘자비의 종 가족’과 함께 2024년 선교회의 지표인 ‘나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저희의 힘이 아니라, 정말 하느님께서 원하시고 이끌어주신 은총의 선물임을 확신합니다. 2006년에 두봉 주교님이 예언하신 대로 우리 선교회는 한국 교회 안에서 ‘작은 자리’를 잡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을 인용하자면, 이 작은 자리는 누군가에게 ‘자비의 향유’가 되어주는 보금자리가 아닐까요?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의 한국 진출 10주년 기념으로 만든 ‘자비의 향유’라는 곡의 가사가 바로 그것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상이 간절히 기다리는 건 자비다. 많은 아픔, 고통을 낫게 해달라고 소리가 온 땅에 들리네⋯ 자비로운 우리 아버지, 아버지 나라가 빨리 오게 해주세요. 우리 형제자매들의 상처 만져주소서. 저희도 자비의 향유가 되게 하소서~♬” 우리 모두가 형제자매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밝혀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으로 편지를 끝맺고자 합니다. “이제 나아갑시다! 가서,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합시다. (⋯) 진정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우리의 양심을 괴롭히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수많은 우리 형제자매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맺는 친교에서 위로와 빛을 받지 못하고 힘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에게는 그들을 뒷받침해 줄 신앙 공동체도 없고, 삶의 의미와 목적도 없습니다.”(「복음의 기쁨」 49항) 홈페이지 : www.servidoresdelevangelio.com/ko 후원 계좌 : SC제일 102-20-139677 예금주 : PALMAGONZALEZ 로랑스 바써르 선교사 /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cpbc2024.06.05

유대인들과의 갈등- 최후통첩 VS 정면도전[월간 꿈 CUM] 예수, 그 이후 (6)“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22,18) 팩트체크! 하느님은 ‘유대인들만 구원받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았다. 분명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라고 했다. 이 약속이 가시화되는 그 중심에 예수가 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약속은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로 확장된다.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이는 약속이 모든 후손에게, 곧 율법에 따라 사는 이들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 보여 준 믿음에 따라 사는 이들에게도 보장되게 하려는 것입니다.”(로마 4,16) 이 점에서 예수 그 이후,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생각은 보편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유대교가 ‘우리 모두 함께 구원받자’며 전교한다는 말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유대교는 스스로의 가치를 나서서 보편화시키지 않는다. 이와 다르게, ‘유대인 예수’는 구약의 약속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구원을 말한다. 그 과정에서 예수는 유대인들의 신앙을 정면 공격했다. 그는 또 율법이 자신에 의해 완성된다(마태 5,17 참조)고 말해 율법학자들의 공분을 샀다. 예수에 의해 구약의 하느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은총의 하느님으로 재선포됐다. 예수는 더 나아가 구원을 위한 열쇠는 율법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믿음에 있다고 가르쳤다. 예수는 또 자신의 피와 부활로써 이뤄질 새 언약을 예언했다.(마르 14,24-28 참조) 유대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답답할 노릇이다. 예수 시대 당시 율법학자라면 이렇게 말했을 법하다. “율법에 대한 상이한 견해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성전에 대한 비난도 감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말하는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는 여기서 갈라진다. 예수가 하느님이 아니라면 그리스도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며, 반대로 예수가 하느님이라면 유대교는 붕괴된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이점에서 타협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갈등은 2000년 전 예수의 부활 사건 이후 극명하게 드러난다. 예루살렘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유대교의 갈등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 사도행전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사도 4,18) 최후통첩이다. 유대교 최고 의회(산헤드린)가 베드로와 요한을 불러 놓고 엄중 경고했다. 더 이상 복음을 선포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이 말을 귓등으로 흘린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 4,20) 정면도전이다. 베드로는 이후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기적적으로 탈출, 또다시 복음을 선포했다.(성경은 이 부분에서 베드로와 사도들이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났다고 증언하고 있다. 사도 5,18-21 참조) 다시 최고 의회에 불려와 심문을 당하는 상황. 베드로와 사도들은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사도 5,29) 이에 유대인들은 분노했다. 당장이라도 사도들을 돌로 쳐 죽일 태세였다. 이때 존경받는 바리사이파 가말리엘이 일어섰다. 그는 사도들에게 일단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 사람들 일에 관여하지 말고 일단 그냥 내버려 둡시다. 저들의 계획이나 활동이 사람에게서 나왔으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면 여러분이 저들을 없애지 못할 것입니다.”(사도 5,34-40 참조) 가말리엘의 중재가 없었다면 베드로와 사도들은 이때 순교했을 것이고, 초기 교회 역사 또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살아남았다! 이때 유대인들이 베드로를 살려준 것은 소위 예수 운동을 일시적 현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교회는 소멸되지 않았다. 예수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유대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다. 유대 보편주의자였다. 보편은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 예수의 선포와 그의 부활 소식은 순식간에 유대 사회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초기 신앙 공동체가 들불처럼 확산된 정황은 당시 사료 곳곳에 나타난다.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비티니아의 총독으로 재직하던 플리니우스가 112년경 로마 황제와 주고받은 편지에서도 당시 교세의 급속한 성장세를 엿볼 수 있다. 편지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로 고발당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보고한 플리니우스는 또 “나이나 지위, 성별에 관계 없이 앞으로 줄어들기보다 계속 늘어날 추세”라며 “이제는 도시만이 아니라 지방까지도 이 광신에 오염되고 있다”고 적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도 110년경에 쓴 「연대기」에서 “이 사악한 미신이 계속 번져나가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유대 사회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더 이상 앉아서 좌시하지 않았다. 수적인 면에서 대세는 유대교였다. 힘으로 누르면 ‘예수 이단’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듯 보였다. 희생양을 찾던 그들에게 시범 케이스로 딱 걸린 사람이 있었다. 스테파노였다. 글 _ 우광호 cpbc2024.04.02

일어나 가자(4)[월간 꿈 CUM] 정치우의 위대한 기적 (10) OSV 이스라엘 순례를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갈릴래아 호수 옆에 있는 베드로 수위권 성당으로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을 했던 그 장소에 세워진 기념성당이었습니다. 나는 이미 10여 년 전에 그곳을 방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새롭게 방문했을 때 그때의 다짐과 묵상이 떠올랐습니다. 십여 년 전 나는 그 성당에서 묵상했었습니다. “안드레아야, 네가 날 사랑하느냐?” 당시 성당에 들어가기 전 나의 마음은 확고했습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마음, 베드로처럼 “예! 사랑합니다. 예수님 저를 잘 알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성당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성당에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 나는 베드로처럼 “예!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묵상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예수님의 제자답게 살고 있는 것일까? 물론 나는 겉으로는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며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안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 볼 때, 주님이 원하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하느님에 대한 사랑, 예수님에 대한 사랑은 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으로 하느님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어놓을 수 있는 이웃 사랑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 14,15) 그런데 우리는 어떤 계명은 지키고, 어떤 계명은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도 이것이 힘들었습니다. 정말 하느님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좋은 사람은 좋고, 싫은 사람은 싫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보편적인 마음일 수 있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비난하는 사람, 음해하는 사람, 박해하는 사람까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마저도 극복해야 한다고 말이죠.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글 _ 정치우 (안드레아, 복음화발전소 이사장) 복음화라는 용어가 생소했던 1990년 5월 새로운 복음화 사업을 시작, 복음화학교를 설립하여 재복음화 및 선교를 위한 예수님의 제자훈련 교육 체계를 확립시켜 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평화방송 TV를 통해 복음화학교 강의를 했다. 전국의 본당 및 단체의 초대로 수백회의 특강과 견진 교리, 피정 등을 했으며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에 많은 글을 연재하는 등 저술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복음화학교를 은퇴한 이후 ‘복음화발전소’를 설립, 삶을 통한 새로운 복음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길이 있어 걸어 갑니다」 「위대한 기적」 「위기의 대안으로서의 평신도영성」 등이 있다. cpbc2024.01.09

로마의 휴일 _ 로마의 성당들베드로 대성당 (1) 베드로 대성당이 베드로 대성당인 이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가져보는 것, 때로는 재미있다. 베드로 대성당은 왜 베드로 대성당일까. 베드로는 왜 베드로일까. 교황은 왜 베드로 대성당에서 살고 있을까. 베드로 대성당에 발을 들여놓기에 앞서, 로마의 엄지손가락 대성당에 왜 굳이 ‘베드로’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 추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예수는 베드로를 베드로로 부르지 않았다. 성경에 따르면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 바르요나’였다.(마태 16,17 참조) 이는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는 뜻이다. 시몬 너는 아느냐. 너와 동명이인(同名異人) 중에 그 유명한 베드로가 있다는 것을! 이 멋있는 이름을 바꾼 장본인이 예수다. 예수는 시몬에게 ‘반석’ ‘바위’라는 뜻의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다.(마르 3,16; 루카 6,14 참조) 그런데 예수는 아람어를 사용했다. 아람어로 반석, 바위를 뜻하는 단어는 ‘케파’다. 따라서 예수는 베드로를 ‘케파’라고 불렀다. 자! 여기까지가 예수와 베드로 생전에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소천해서 천국문을 지키기 시작한 이후, 베드로의 이름이 요상하게 변하기 시작한다. 원래는 시몬이었고, 나중에는 케파로 개명했다. 그런데 이 이름이 그리스어 신약성경으로 번역되면서 ‘페트라’(πετρα)로 바뀐다. 왜? 바위, 반석(케파)을 뜻하는 그리스 말이 페트라이기 때문이다. 이 페트라가 또 라틴어로 옮겨지면서 역시 바위를 뜻하는 ‘페트루스’(Petrus)가 된다. 이 페트루스가 각 나라말로 번역되면서 베드로 이름은 그야말로 작명의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영어로는 피터(Peter)이고, 독일어로는 페터(Pete), 스페인어로는 페드로(Pedro), 이탈리아어로는 피에로(Piero), 불어로는 피에르(Pierre), 러시아어로는 표트르(Пётр)가 됐다. 참고로 중국어로 베드로는 피득(彼得, 그를 얻다)이라 쓰고, 삐더(bide)라고 발음한다. 영어 피터를 그대로 한자로 옮긴 것이다. 반면 대만에서는 베드로를 반석(盤石)이라고 쓰고, 판스(panshi)라고 발음한다. 베드로 대성당 전경 그렇다면 베드로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예수를 만나기 전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는 어부였다. 베드로가 서양 어부의 대명사라면, 동양에는 강태공(姜太公)이 있다. 강태공은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60년 넘게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그 이후 60년 동안 대업을 이룰 운명이었다. 어쩔 수 없이 60년 동안은 시간을 보내며 때를 기다려야 했다. 이때 선택한 것은 낚시였다. 그는 그렇게 낚시를 통해 세월을 낚았다. 낚시로 소일하던 강태공은 훗날 주나라 문왕을 만났고, 주나라 건국(BC 1046)의 일등공신이 된다. 이처럼 강태공에게 낚시는 시간 때우기용 소일거리였다. 물고기가 잡혀도 그만, 잡히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하지만 베드로는 달랐다. 그에게 낚시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실제로 그는 동생 안드레아와 한 집에 살아야 했을 정도로 가난했다.(마르 1,29 참조) 장모를 비롯해 부양할 가족도 많았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날이면, 다음 날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였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중요했다. 그 가난했던 어부 베드로에게 어느 날, 인자(人子)가 찾아온다.(루카 5,4-11 참조) 그 날, 근육질의 베테랑 어부 베드로는 밤새도록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 때 샌님처럼 보이는 한 사람, 예수가 다가와 말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베드로는 이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예수의 지시는 상식에 어긋나는 말이었다. 낮에는 고기가 깊은 곳에 있지 않고, 먹이를 찾아 얕은 곳으로 나오는 법이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의 말에서 강한 끌림을 느꼈다. 거역하기 힘든 음성이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혼자 힘으로는 그물을 올릴 수 없어,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도와 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물고기를 건져 올리고 나니, 두 배에 가득 찼다. 그 무게 때문에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었다. 절망의 순간에 예수는 풍요를 선물했다. 풍요를 체험한 베드로는 이제 예수의 풍요로움을 따라나선다. 그 풍요로움의 길에서 베드로는 사도들 중에서 지도자적 역할을 했다. 성경에서 그의 이름은 사도 명단 중 언제나 첫 머리에 나타난다.(마태 10,2) 또한 그는 주님으로부터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 주라는 부탁을 받았고(루카 22,32) “내 양들을 돌보아라”(요한 21,17;사도 15,7)는 말도 들었다. 베드로는 이러한 스승의 신뢰에 열정으로 응답한다. 다른 제자들이 예수를 떠날 때도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라며 믿음을 고백했다. 예수께서 재판소에 끌려갈 때 밤새도록 그 뒤를 따라간(마르 14,54) 사람도, 부활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먼저 무덤으로 달려간 (요한 20,3) 이도, 부활한 예수를 뵙고자 그냥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간(요한 21,7) 이도 그였다. 베드로 대성당 내 베드로 청동상 그러나 베드로는 인간적인 약점도 많았다. 고통당하는 메시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사탄아 물러가거라”(마태 16,23)고 질책을 들었으며, 의심 때문에 물에 빠지는가 하면(마태 14,30) 예수가 고통 중에 기도하는데 한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고 졸았다.(마르 14,32) 또 “주님과 함께라면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고 했지만(루카 22,33) 정작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했다.(마태 26,74) 그런데 베드로가 이러한 나약한 모습으로 생을 마쳤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로마의 첫머리 대성당이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요한 대성당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 부활과 승천, 성령을 체험한 후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단 한 번의 설교로 3000명을 회개시키는가 하면(사도 2,41), 지체장애인을 치유하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다.(사도 3,8) 이후 베드로는 안티오키아에서 복음을 전하는(갈라 2,11) 등 당시 전 세계를 종횡무진 다니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했다. 이렇게 극적인 삶을 살았던 베드로에게 극적인 마지막이 찾아온다. 소위 ‘쿠오 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로 불리는 사건이 그것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 사건 이후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한다. 자!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베드로의 유해는 어디에 안장되었을까. 베드로 대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베드로의 삶과 마지막 순간을 이렇게 장황하게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00년 전’ 세상을 떠난 그의 유해가 ‘현재’ 로마의 베드로 대성당에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글 _ 편집부 cpbc2023.09.13

아브라함 (2) 말씀대로 떠난 아브라함[월간 꿈 CUM] 뿌리 _ 구약이 말을 건네다 (6) 이스라엘 광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생겨라” 하시자 빛이 생겼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그 빛이 좋았다.(창세 1,3)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태초의 세계는 하느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세계였다. 오로지 인간의 뜻을 중심으로 세우며, 인간의 바람과 원의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우리에게는 이것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태초의 세상은 뜻과 원의보다 오히려 말씀이 앞섰다. 하느님의 말씀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기에, 말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었다. 이렇게 실현되는 말씀의 이루심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 요한복음은 이러한 말씀의 신비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이는 한처음에 말씀만으로 충분했으며 온세상은 말씀으로 충만해있음을 전한다. 말씀 이외에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세상. 우리 인간이 살았던 태초의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말씀 그 자체로 충분한 이 태초의 세상에서 유혹자와 인간은 하느님의 말씀을 변형시키며 자신의 말들을 추가하기 시작한다. 먼저 유혹자 뱀은 ‘선악과를 제외한 모든 열매를 따먹어도 된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바꾸면서 의심(불신)을 불어넣는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 먹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 정말이냐?”(창세 3,1) 이렇듯 말씀에 대한 의심(불신)은 태초부터 인간 주변을 맴돌았다. 이러한 유혹자의 질문에 하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너희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만지지 말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이는 하와 자신이 첨가한 말이며, 그가 지닌 욕망을 상징한다. 말씀으로 충분했던 세상에, 유혹자와 하와는 하느님의 말씀을 바꾸고 첨가하며 그 말씀에 의심을 품고, 하느님의 명령을 어긴다. 그리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던 태초의 모습’은 빠른 시간 안에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으며, 삶 안에서 고통이라는 짐을 짊어지게 된다. 그들이 낳았던 인류의 첫 형제인 카인과 아벨은 형제 살해의 아픔을 겪었고, 그 이후에 이어진 인류는 끊임없는 타락의 길을 걸어 홍수라는 대재앙을 맞이하게 된다.(창세 6-9장) 이렇게 급격하게 망가진 세상은 과연 새롭게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이 회복의 여정은 아브라함을 통해 처음으로 시작된다. 창세기에서 처음으로 다음과 같은 말씀이 아브라함을 통해 선포된다. 아브람함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 아브람함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 다섯 살이었다.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자신의 뜻과 원의에 따라 바꾸거나 첨가하는 법 없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의 여정을 시작한다. 이 길은 아브라함에게 분명한 포기의 여정이었다. 그는 고향과 친척과 부모를 떠나야 했다. 그에게 있어서 ‘떠나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무겁고 부당하게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그는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이렇게 아브라함의 여정 안에서 그동안 헝클어진 말씀의 질서는 회복되기 시작한다. 아주 먼 훗날 가브리엘 천사 방문의 예수님 잉태의 소식에 성모님은 다음과 같이 응답하실 터이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글 _ 오경택 신부 (안셀모, 춘천교구 성경 사목 담당 겸 교구장 비서) cpbc2024.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