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곳곳 내전·굶주림 겪는 아이들에게 ‘어린이 성경’을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돕기(ACN) 한국지부장 박기석 신부, 그림책 「하느님이…」 선물 사업 펼쳐 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돕기(ACN) 한국지부장 박기석 신부는 “박해받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어린이 성경은 그들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림책”이라며 따스한 나눔을 실천하는 어린이 성경 사업에 함께해줄 것을 요청했다. “여러분의 정성으로 박해받는 가난한 나라 아이들에게 어린이 성경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교황청 재단 고통받는 교회돕기(ACN) 한국지부가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ACN 어린이 성경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는 굶주림과 내전, 박해로 그림책 한 권 갖기조차 어려운 아이들에게 ACN이 제작한 어린이 성경 「하느님이 당신 자녀에게 말씀하신다」를 선물하는 사업이다.ACN 한국지부장 박기석 신부는 “박해받는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에게 어린이 성경은 그들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림책”이라며 “훌륭한 많은 책이 있지만, 특별히 하느님 말씀과 사랑이 담긴 성경을 전 세계 어려운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사업의 큰 목적”이라며 취지를 설명했다.ACN은 1979년부터 어린이 성경 「하느님이 당신 자녀에게 말씀하신다」을 제작해 보급하고 있다. 현재 191개 언어로 번역됐으며, 지금까지 5100만 부가 전 세계 ACN 지부에서 모인 후원자들의 정성을 받아 어린이들 손에 전달됐다. 주님이 성경을 통해 전하는 희망이 아이들에게 튼튼한 신앙의 기초와 자양분이 되도록 하고자 40년 넘게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는 ACN의 전통적인 사업이다.2015년 설립된 ACN 한국지부는 설립 6년 만인 올해부터 사업을 시작해 꾸준히 펼쳐갈 계획이다. 박 신부는 “「하느님이 당신 자녀에게 말씀하신다」는 ACN 한국지부가 설립되기 10년 전인 2005년 당시 주한 교황대사였던 폴 체릭 대주교의 소개로 가톨릭출판사를 통해 처음 한국어로 출판된 바 있다”며 “당시에는 한국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번 재출간된 책은 우리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박해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이 함께 성경을 읽고 하느님 사랑을 나누는 본래 ACN의 사업 목적을 되찾아 행해지게 됐다”고 의미를 전했다.기부자에게도 책 한권씩 선물ACN 한국지부는 이 사업에 1만 원 이상 기부하는 후원자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로 보내준다. 나눔을 베푸는 어린이와 도움을 받는 아이가 같은 어린이 성경을 받아 하느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기부를 위해 제작된 이 어린이 성경은 비매품이다.이에 여러 본당의 따뜻한 참여가 벌써 이뤄지고 있다. 서울 개포동ㆍ금호동ㆍ중앙동본당, 안동교구 예천본당, 전주교구 우전본당 등이 기부에 동참한 뒤 선물로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책을 전달했고, 서울 압구정동본당도 첫 영성체 교리용으로 쓰겠다며 기부에 참여했다.박 신부는 “청주여자교도소의 한 재소자께선 세례받은 뒤 「매일미사」로 기도하다가 저희 사업 소식을 접하고는 현금을 보낼 수는 없기에 대신 우표 1만 원어치를 보내주시기도 했다”며 따뜻한 사례도 전했다. 또 “수원교구 이주민 공동체인 안산 엠마우스 수녀님도 26권을 요청해 다 보내드렸다”며 “어린이 성경이 필요한 국내 이주민 자녀들과 아이들에게 기부 액수에 국한하지 않고 책을 드릴 예정”이라고 전했다.어린이 맞춤형으로 신구약 전체 줄거리를 이해하기 쉽게 제작된 「하느님이 당신 자녀에게 말씀하신다」는 어르신들이 읽기에도 좋다. 이에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팀도 손자녀들에게 신앙 유산을 물려주는 취지로 이 책을 선정해 어르신 성경 교재로 활용하기로 했다. 박 신부는 이 같은 사업 취지를 담아 ACN 한국지부 이사장인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해 전국 교구 주교단 전체에 편지와 책을 전달했다.미얀마 어린이들에게도 박 신부는 “특히 현재 군부 쿠데타로 어려움을 겪는 미얀마의 어린이들에게도 추후 이 서적이 전달돼 희망이 되길 기도한다”면서 “하느님의 이끄심 속에 어린이 성경 사업이 기부에 대한 인식을 더욱 높이고,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길 염원한다”고 말했다. 후원 계좌 : 우리은행 1005-303-232450, (사)고통받는교회돕기한국지부문의 : 02-796-6440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cpbc2021.04.29

‘3=1’이 성립되는 신비[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삼위일체 삼위일체는 하느님께서 당신 존재를 계시하신 신비이며 거룩한 표징이다. 마사초,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프레스코, 1426~1428,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전, 피렌체, 이탈리아.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인간의 눈에 보이는 ‘거룩한 표징’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신다. 그중 가장 거룩하며 대표적인 표징이 바로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진리를 알면서도 안타깝게도 우리는 더 감각적인 것, 더 자극적인 것을 쫓아 하느님께서 드러내 보여주신 ‘거룩한 표징’을 잊고 산다. 아울러 그에 대한 감각도 무뎌졌다. 참생명의 길로 이끌어 주는 성경을 읽을 때도, 생명의 샘터에서 미사를 봉헌할 때도, 홀로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도 ‘거룩한 표징’에 대한 감각이 둔감해져 형식적인 몸짓만 한다. 교회는 전례를 통해 공적으로 드러나는 거룩한 표징을 ‘성사’라고 한다. 교회는 늘 일상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해 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 성덕”이라고 했다. 성덕은 이웃을 향해 하느님을 눈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거룩한 표징’이다. 행동거지를 보고 사람됨을 알 수 있듯, 일상에서 드러나는 신앙의 삶을 보고 성덕과 영성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일상이 하느님을 선포하고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 될 수 있도록 ‘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을 연재한다. 성경과 전례, 기도, 교회의 성미술 안에 숨어있는 거룩한 표징의 의미들을 살펴보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일상에서 거룩함을 추구하는데 작은 보탬이 되고자 함이다. (1)삼위일체‘3=1’, ‘1=3’. ‘3은 1과 같다’, ‘1은 3이다’는 이 등식은 그리스도교 안에서만 성립되는 연산이다. 인간이 쓰는 어떤 수학 공식에도 허용되지 않는 그리스도교만이 갖는 등식이다. 그래서 교회는 이를 ‘신비’라고 부른다. 이 신비는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으며, 하느님께서 계시하시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신비라고 고백하는 이 등식의 이름은 우리말로 ‘삼위일체’, 라틴말로 ‘Trinitas’(트리니타스), 영어로 ‘Trinity’(트리니티)라고 한다. 삼위일체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아울러 삼위일체는 하느님 자신에 관한 신비를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 삼위일체는 ‘하느님께서는 한 분이시나 세 위격으로 계시는 분이시다’라는 뜻이다. 이 세 위격의 이름은 바로 ‘성부’(아버지 하느님), ‘성자’(외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거룩한 영)이시다.교회는 ‘하느님의 세 위격은 실제로 서로 구분되지만, 오직 하나의 본성, 하나의 실체이시다’라고 고백한다. “영원하시며, 무한하고 불변하시며, 불가해하고 전능하시며, 말로 표현할 수 없으신 참하느님, 성부, 성자, 성령께서는 한 분이시며, 삼위이시나 순전히 하나의 본질, 하나의 실체, 하나의 본성을 지니신 분이심을 우리는 확고하게 믿으며 명백하게 고백한다.”(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 ‘가톨릭 신앙에 대하여’)삼위일체 신비는 가톨릭교회 신앙의 원천이며 근본이고, 본질이다. 이 신비를 믿어야만 그 밖의 주요한 교회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고, 신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세 위격으로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자 참하느님이시며, 성부로부터 파견되셨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교회는 “구원의 역사는 바로 성부, 성자, 성령이신 참되고 유일한 하느님께서 당신을 알리시고, 죄에서 돌아서는 인간들과 화해하시고, 그들을 당신과 결합시키시려는 길과 방법의 역사이지 그 밖에 다른 것이 아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34항)라고 고백한다.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거룩한 표징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다. 구약 성경에는 하느님께 세 위격이 계시다는 말은 없지만, 하느님께 구별되는 위격들이 계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창세 1,26 참조) 삼위일체 신비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난 거룩한 표징이다. 하느님께 대한 유다인의 신앙으로도 접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삼위일체’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삼위일체 위격에 대해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성자이신 당신은 성부께 보냄을 받으신 분이시며, 당신이 성부께 청을 드려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요한 14,16)라고 하시며 성령 강림을 약속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다. 이에 교회는 예수님께서 “한 처음에 계셨으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이신 말씀(요한 1,1)이시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콜로 1,15)이시고,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신 분(히브 1,3)이시라고 고백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0항)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드러나는 활동을 공동으로 하시나 특정한 영역에서는 성부, 성자와 성령의 일을 나누기도 하신다. 성부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성자를 지상에 보내시어 인류를 구원하도록 하신다. 또한, 교회를 세우시어 성령께서 보호하고 인도하여 사람들을 성화시켜 구원으로 이끄신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5.10

쉽게 풀이한 요한복음 시리즈 대장정 마무리송봉모 신부 ‘요한복음 산책 시리즈’ 완간 기념 북 콘서트 열려 사인회를 통해 독자들을 만나고 있는 송봉모 신부. 바오로딸 제공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송봉모(예수회) 신부 ‘요한복음 산책 시리즈’ 완간 기념 북 콘서트가 1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바오로딸 혜화나무에서 열렸다. 송봉모 신부는 요한복음을 강해해 지난 2011년 「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을 시작으로 「비참과 자비의 만남」 「생명의 빛이 가슴 가득히」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1 」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2」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에 이어 최근 출간한 「평화가 너희와 함께」까지 총 7권을 펴냈다. 저자인 송 신부는 ‘요한복음의 고유한 특성과 저술 목적’에 대한 강연으로 진행한 북 콘서트에서 “이런 책을 읽는 것 자체가 보통 사람은 하지 않는 일(웃음)”이라며, 11년의 대장정을 함께 한 출판사와 독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어 “요한복음은 신앙적, 영적 깊이 때문에 독수리 복음, 원로들의 복음으로 불린다. 요한복음에서만 전달하거나, 다른 복음에도 있지만 요한복음에서 좀 특별하게 전달하는 내용 등을 아울러 교우들이 복음을 읽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송 신부는 강연에서 요한복음에는 “나는 생명의 빵이다”(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등 ‘나는…이다’라는 예수님의 약속이 7번 등장한다며, “복음은 그분이 어떤 분이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는지를 알려주신다. 중단 없이 철저히 믿는다면 우리가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힘을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요한복음의 등장인물을 보면 하나같이 믿음의 성장을 보인다. 요한 사도가 간절히 바란 것은 믿음을 포기하지 마라! 믿음을 성장시켜라!”라며, 익숙한 신앙이 아닌 신앙의 성장을 강조했다.생활성가 가수 나혜선(요세피나)씨의 축하공연으로 시작돼 송 신부의 강연, 질의응답 등으로 이어진 북 콘서트는 2시간 동안 이어졌다.북 콘서트에 참여한 이백만(요셉) 전 주교황청 대사는 “최근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어서 전권을 선물했다”며 “요한복음에 집중돼 있지만 다른 복음뿐만 아니라 구약까지 더불어 해설하고 있어서 7권을 모두 읽으면 성경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성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이지영(빅토리아, 명동본당)씨는 “요한복음이 어렵지만, 송 신부님 책은 쉽게 읽히기도 하고 배경지식이나 구약과도 연결되어 있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고, 이주현(루피나, 삼각지본당)씨도 “7권의 책을 읽으며 몰랐던 부분, 놓쳤던 부분도 알게 돼 개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 같다”고 전했다.가을학기부터 예수회 서강대공동체 원장을 맡게 된 송봉모 신부는 사도시대 교회에 대해서도 3권의 책을 엮어낼 예정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cpbc2022.06.14

신앙의 뿌리 단단하게 해 줄 두 권의 신앙 안내서신앙 에세이와 교회 학술서 펴낸 손희송 주교 겨자씨 자라나서 큰 나무 되듯이가톨릭출판사 주님과 그분의 교회를 위하여가톨릭대학교출판부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큰 위기에 빠졌고, 신자들의 신앙생활에도 위기가 닥쳤다. 일상 회복과 함께 신앙생활도 다시 활기를 되찾아야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활기를 되찾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게 현실이다. 신앙이 허약하기 때문이다. 몸의 건강을 유지하려면 기초 체력을 길러야 하듯, 신앙도 튼튼해지려면 신앙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야 한다. 거침없는 입담과 센스있는 유머감각으로 신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서울대교구 총대리 손희송 주교가 믿음의 뿌리를 튼튼하게 해주는 신앙 서적 2권을 새롭게 선보였다. 2014년 신앙의 해에 발간한 「행복한 신앙인」의 개정 증보판인 「겨자씨 자라나서 큰 나무 되듯이」(가톨릭출판사)와 대학에서 강의하던 시절에 썼던 7편의 논문을 모은 「주님과 그분의 교회를 위하여」(가톨릭대학교출판부)다.“우리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봅니다. 그동안 너무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한 것은 아닐까요? 그저 주일 미사에 참석하고, 일 년에 한두 번 고해성사를 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은 아닐까요? 평일에 집에서 직장에서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마음에 새기는 과정 없이 주일 하루, 그것도 대부분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미사에 참석하였기에 하느님과의 친밀감이 형성되지 못하였고, 그래서 위기 상황이 닥치자 신앙이 시들어 버린 것은 아닐까요?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비바람이 불어오자 무너져 버린 것(마태 7,26-27 참조)처럼 말입니다.”(「겨자씨…」, 194쪽) 손 주교는 “하느님과의 친교 관계에서 오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다시 미사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어도 반갑게 성당으로 달려가기보다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미적대는 것은 아닌지” 따끔하게 묻는다. 마치 방학이 끝났는데도 학교 가기를 꺼리는 학생들처럼. 손 주교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아닌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마태 7,24-25 참조)이 되자고 타이른다. 그러려면 매일 기도하고 조금씩이라도 성경을 읽으며 이를 마음에 새기면서 살아가야 한다. 마음을 열고 귀를 기울여 자주 하느님 말씀을 듣는 것은 신앙인에게 꼭 필요한 태도다. 그래야 하느님과의 친밀감이 유지되고, 미사에 기쁘게 참여할 수 있다. 미사에서 주님과의 친교 관계를 깊게 체험하면, ‘이웃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손 주교는 1993년부터 2015년까지 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20여 년간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교의신학 박사인 손 주교는 교의신학에 속하는 신ㆍ삼위일체론과 교회론, 마리아론, 성사론 등을 강의하며 여러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다. 2012년 8월 서울대교구 사목국장으로 발령 나, 교구청으로 자리를 옮긴 그가 대학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난 2월은 교수 정년이라는 하나의 획을 그었을 터. 「주님과 그분의 교회를 위하여」는 이렇게 그가 삶에서 소중한 시기를 매듭짓고 싶은 마음으로 일터에서 거둔 학술적 결실을 담은 책이다. 주제들은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느님의 폭력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느님은 자비로운 분이신데, 아드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셔야 했을까? △우리는 참된 교회를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 △성직자와 평신도, 둘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란 어떤 것인가? 등이다. 학술적인 내용이지만 신앙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중요한 질문과 문제를 염두에 두고 쓴 논문이다. 「겨자씨…」가 믿음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신앙인의 영혼을 살찌우는 에세이라면, 「주님과…」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파스카 신비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교회의 본질과 뼈대를 살피게 하는 학술서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2.05.03
![[부산교구 사목교서] 성체와 말씀의 해](//cpbc.co.kr/CMS/newspaper/2021/12/rc/814861_1.2_titleImage_1.jpg)
[부산교구 사목교서] 성체와 말씀의 해부산교구장 손삼석 주교 올 한 해, 가톨릭 신앙을 떠받치는 두 개의 주춧돌인 ‘성체’와 ‘말씀’ 위에 믿음을 굳건히 정초하도록 합시다. ‘성체’와 ‘말씀’의 샘으로 뿌리를 깊이 뻗으면, 아무리 볕이 따가워도 생명의 잎사귀가 무성하며, 아무리 가물어도 줄곧 구원의 열매를 맺습니다.(예레 17,8 참조) 이렇게 성체성사와 하느님의 말씀으로 양육되는 신앙인은 그리스도와 긴밀히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경이로운 생명과 힘을 얻습니다. 첫째, 성체성사를 삶의 중심에 둡시다. 하느님을 온전히 대면하게 될 그 날까지, 성체를 매일같이 모시면서 삶의 중심자리에 두도록 합시다. 그러면 훗날 그분의 약속이 우리 각자 안에서 기필코 성취될 것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요한 6,54) 성체성사를 통해 이같이 큰 은혜를 받은 우리는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2티모 4,2)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특별히, 코로나19로 인해 신앙의 변두리로 밀려난 자녀들이 성체를 중심으로 다시 모일 수 있도록 부모님들께서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생활화합시다. 성경은 ‘신앙생활의 준비운동’이요, 신앙생활은 ‘성경의 연장선’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활동과 수고가 비로소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는 ‘신앙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본당 공동체에서 다양한 모임과 활동을 시작하면서 성경을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공동체 활동과 모임에서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성경 안으로 부르십니다. 하루에 10분 만이라도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성경이 하루를 여는 열쇠가 되고 하루를 마감하는 자물쇠가 되도록 합시다. 하느님을 알고 그분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까이 두고 자주 읽으며, 쓰고 묵상해야 합니다. 셋째, 병들어가는 지구를 보살피며 살려냅시다. 지금 고통으로 괴로워하며 병들어가는 이웃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 삶의 터전’이요 ‘공동의 집’인 지구입니다. 물질주의에 매몰된 욕망으로 일구어낸 과도한 개발과 소비문화로 지구환경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훼손되었습니다. 그 결과 극한적 폭염과 한파, 재앙적 산불과 폭우, 그리고 위태로운 생태계와 쓰레기 문제 등을 빈번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사실상 지구를 보살피고 살리는 일은 우리 자신을 살리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 역시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한 결과입니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지구의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지구를 살리는 친환경 정책에 적극 동참하여, 지구가 아름다운 생명력으로 넘쳐나도록 합시다. 실천 사항 1. 성체와 함께 - 주 1회 이상 미사와 성체조배 참여하기 - 가족과 함께 미사 봉헌하기 - 쉬는 교우 미사에 초대하기 2. 말씀과 함께 - 성경 통독하기 - 가족이 함께 신약성경 필사하기 - 한 주간의 성경 구절을 정하여 암송하기 3. 지구와 함께 - 회칙 「찬미받으소서」 읽고 되새기기 - 에너지 절약하여 탄소 중립 실천하기 -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cpbc2021.12.08

수천 건의 낙태 수술, 차가운 생명 논리에 필요한 사랑전문가 통해 짚어본 낙태·자살 문제에 대한 교회 가르침 ‘낙태’와 ‘자살’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어두운 그림자다. 생명 주일을 맞아 전문가를 통해 이 두 사회 문제에 대한 교회 가르침과 해법을 들어봤다. 낙태 후 화해는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 착한목자수녀회 고순완(마르타) 수녀 낙태 후 화해 피정에 참가하는 이들 “죽기 전 꼭 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요.” ‘낙태 후 화해 피정’에 참여하는 이들이 하나같이 전하는 참가의 이유다. 이들이 말하는 ‘죽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일’은 하느님과 나, 무엇보다 부모로부터 죽임을 당한 아이에게 청하는 화해를 의미한다. 착한목자수녀회가 2010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낙태 후 화해 피정에는 60~80대 고령 참여자가 많다. 1980년대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부 주도 가족계획에 따라 낙태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50년 이상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지내다 끝으로 피정에 참가하는 것이다. 피정을 담당하는 고순완(마르타,사진) 수녀는 “이들은 낙태 후 줄곧 귀에서 가위 소리가 들린다든지, 주변에서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는 등 일명 ‘낙태 후유증’에 시달렸다”며 “낙태는 한 번의 수술로 끝날지 몰라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몸과 마음의 상처는 평생 남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재 낙태를 고민하는 모든 이에게 “여성의 몸은 생명을 잉태하도록 하느님께서 고심하여 빚으신 몸”이라며 “이러한 순리를 거슬러 낙태하는 행위는 아이에게는 물론 여성에 대한 폭력이기에 꼭 다시 한 번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고 수녀는 낙태에 대한 책임 주체는 여성만이 아닌, 그 부모 모두라는 점도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7년부터 5년간 낙태 허용 한계를 규정하는 모자보건법 제14조 따라 합법적으로 실시된 낙태 수술은 1만 7921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에만 3056건에 이른다.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이뤄지는 낙태 행위를 고려하면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낙태 후 화해 피정에는 12년 동안 매년 80여 명이 참석했다. 고 수녀는 이러한 실태를 매우 씁쓸해 했다. “우리 사회는 출산율이 낮다고 고민하지만, 현실은 낙태를 종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예요. 참 의문이죠.”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인 이들에 대한 지원 부족과 2019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이어지는 낙태죄 입법 공백 등이 그 이유다. 고 수녀는 “출산의 책임을 온전히 여성에게 전가하는 풍조, 청소년 부모나 한부모 등에 대한 부정적 인식, 현실적이지 못한 양육비 이행법 및 양육 지원책이 바뀌지 않는다면 낙태는 절대 줄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낙태 후 화해는 ‘나를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나’로 인해 잉태되는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고 화해의 손을 뻗는 것, 즉 하느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체험하며 생명과 화해해야 지킬 수 있다. “교회 안에서 낙태는 죄라고 합니다. 그러나 죄이기에 하면 안 된다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주신 우리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소외된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교회’가 됐으면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황순찬(베드로) 교수 희생자 탓하기보다 공동체 의식 되살려야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낸 황순찬(베드로,사진)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희생자를 비난하는 식으로 낙태와 자살을 ‘죄다’, ‘나쁘다’고만 단죄해선 해결할 수 없다”며 “교회도 단순히 정죄하는 논조에서 벗어날 때”라고 강조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자살률(10만 명당 자살자 수)은 26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데다, 최근 10~30대 자살률이 증가하면서 우려를 사고 있다. 황 교수는 “절박한 처지에 놓인 사람과 어떠한 아픔도 공유하지 않으면서 차가운 논리로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자 가해행위가 될 수 있다”며 “어떤 맥락과 상황에서 그런 선택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먼저 헤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다’는 건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에서 가능한 거예요. 식물을 뿌리째 뽑아 책상 위에 놓고 ‘삶은 소중하니까 살라’고 한다고 살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햇빛과 공기와 물과 흙이 있어야 살죠.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고, 잘 살고 싶어 하지 않는 이가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삶을 지속할수록 더 고통받고, 누군가에 의해 더 침해당하고, 파괴되는 환경에 있으니 역설적으로 자기 삶을 지키고자 죽음이란 탈출구를 택하게 된 것이죠. 정말 중요한 것은 생명이 소중하다고 거듭 외치기보다, 사람들의 삶이 소중히 보호받고 있는지 살피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하는 거죠.” 인간이 살기 위해선 의식주 충족 외에도 스스로 ‘살아있다’고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있고, 마음속의 것을 가감 없이 터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선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어렵고, 들어주는 사람도 많지 않다. 수치로도 증명된다. 인적ㆍ정신적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의 비율을 보여주는 ‘사회적 고립도’는 2021년 34.1%로 2019년보다 6.4%p나 증가했다. 황 교수는 “그럴수록 경청의 힘이 중요하다”며 “대화를 통해 나의 살아감이 너의 살아감이 되고, 너의 살아감이 나의 살아감이 되는 관계성을 확장해 나아가는 자살 예방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가장 기본적인 지지 체계인 가족과도 갈등에 있는 사람이 많다”며 “가족을 대신할 대안적 지지체계, 나아가 혈연의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형태의 유사가족ㆍ사회적 가족을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마을 도서관이나 성당을 상담 공간으로 활용하는 등 “힘들 때 언제든 도움을 받을 심리적 거점 공간을 늘려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부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풍요에 억압된 사회’가 됐습니다. 사람을 소유물로 평가하는 세상이 만든 강박이죠. 그 부를 갖추지 못하면 실패자로 삶의 목적을 잃게 되고요. 우리 교회 역시 그런 사회 분위기에 물들어 본질적인 것을 자꾸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계속 가난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 신자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동떨어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 그들과 ‘같은 성전에서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편하게 여기진 못하는 것 같아요. 어려움을 겪는 신자가 성직자를 만나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죠. 그럼에도 ‘가난한 교회’, ‘소외된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교회’가 실현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교회가 죽음을 선택할 만큼 힘겨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라져가는 사람들도 돌아보는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해야죠.”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2023.05.03
![[사도직현장에서] ‘나’와 ‘그들’보다 ‘우리’](//cpbc.co.kr/CMS/newspaper/2022/08/rc/829696_1.0_titleImage_1.jpg)
[사도직현장에서] ‘나’와 ‘그들’보다 ‘우리’김현우 신부(인천교구 사회사목국 이주·해양사목부 부국장) 김현우 신부 107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더 넓은 우리’라는 주제어로 ‘나’와 ‘그들’이 아닌 더 넓은 의미의 ‘우리’를 강조하셨습니다.세계화의 흐름은 더는 단일한 민족이 한 국가를 이루는 구성요소임을 거부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찬미받으소서」, 「모든 형제들」의 회칙을 통해 ‘경제적 난민’ 이야기를 하시면서 삶의 다양한 모습 속에서 더 나은 삶의 질을 위한 ‘이주’는 자연스러우며 존중받아야 한다고 역설하십니다.성경의 역사는 ‘이주’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원죄로 인해 추방되어 이주하게 된 첫 인류, 그리고 장차 보여줄 땅으로 떠나는 아브라함,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떠나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 아시리아와 바빌론 유배, 남은 자와 돌아온 자의 모습들, 위험을 피해 이주하는 요셉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성가정을 볼 때, ‘이주’는 곧 역사입니다.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와 의료 봉사자들로 구성된 무료 진료소, 이주민 아이 돌봄 ‘품놀이터’로 구성된 ‘이주사목’ 그리고 외국인 선원과 어선원들을 대상으로 사목하는 ‘해양사목’을 하며 다양한 삶의 자리에서 끊임없는 고민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봅니다. 선입견과 무관심 그리고 차별이라는 무시무시한 어둠과 직면해 가족을 지키며 부양하기 위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은 비단 한국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보이는 공통된 현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많은 나라에 이주해 간 한국인들도 이러한 편견과 무관심 그리고 차별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여전히 어렵고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국민적 정서의 상향 평준화를 기대하지만 각박한 삶의 현장에서 이들의 인권은 사각지대에서 하향 평준화가 이뤄집니다. 우리는 과연 그들을 ‘우리’로 보고 있는 것일까요?아니면 교황님의 말씀은 그저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인 걸까요? 김현우 신부(인천교구 사회사목국 이주·해양사목부 부국장) 평화신문2022.08.16
![[제10회 신앙체험수기] 특별상 / 주님께 묻고 따질 게 많습니다](//cpbc.co.kr/CMS/newspaper/2023/02/rc/841261_1.4_titleImage_1.jpg)
[제10회 신앙체험수기] 특별상 / 주님께 묻고 따질 게 많습니다김자영(아기 예수의 데레사, 군종교구 성 비안네본당) 주님께 묻고 따질 게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기도를 멈출 수가 없는 겁니다.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하신다는데, 대체 그 대단한 아버지 뜻이 뭔가요? 청하면 이루어주신다 하셨는데. 주님 왜 그러셨어요!‘아멘’은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뜻이라면서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이루어 주신다면서요.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아버지가 보시기에 제 믿음의 크기가 너무 작던가요? 아버지 하느님 주님, 성모님 대답 좀 해주세요. 네? 저한테 왜 그러셨어요!!강렬하게 믿고 의지했던 주님께 느낀 배·신·감. 요즘 저는 감히 주님께 시건방지게 따져 묻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를 너무 갑작스럽게 너무나 비통하고 처절하게 잃었기 때문입니다.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과정에서 아버지에게 그토록 극강의 고통을 주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평온하게 가족과 이별할 수 있도록 해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강렬하게 믿고 의지했던 주님께서는 저와 제 가족에 감당하기조차 힘들만큼의 고통을 겪게 하면서 아버지를 데려가셨습니다. ‘삐이~’ 소리와 함께 아버지의 심장이 멈추면서 핏기 사라진 창백해진 아버지 얼굴을 쓰다듬고 목놓아 울면서 저는 주님께 배신감을 느꼈습니다.성당을 참 열심히 다녔고, 지극정성을 다해 기도했고, 독학으로 반주를 배워 기쁜 마음으로 책임과 사명감으로 반주 봉사를 했고, 저에게 상처 주는 사람조차 주님께서 ‘용서’하라 하시어 ‘평화’의 마음을 실천하려고 노력해왔는데, 아버지를 빼앗기면서 이런 노력이 하느님과 주님, 성모님께 무시받는 기분이었습니다.성녀 소화 데레사가 누군지도 모르고 받았던 세례, 인생 이벤트로 끝날 뻔했던 세례식, 세례식 6개월 뒤 찾아온 엄청난 시련, 스스로 미리내성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시작으로 1년에 믿음이 천 년씩 깊어질 정도로 신심을 쌓아갔던 열혈신자….저는 2014년 3월 29일 가톨릭성모병원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시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세례 받고 은총 받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라고 해서 미신을 믿듯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명도 신부님께서 10월이 생일이니 10월 1일 축일인 ‘소화 데레사’로 하면 좋겠다고 추천해주셔서 성녀 소화 데레사가 누군지도 모른 채 저는 ‘소화 데레사’가 됐습니다. 세례식도 이벤트로 끝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가을 저에게 엄청난 시련이 찾아왔고, 제 발로 경기도 안성 미리내성지 성당을 찾아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고해성사는 제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시간인데, 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신부님께서는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숨은 것도 알고 계신 주님은 자매님의 시련 고통을 알고 계시니 그분을 믿고 의지하면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위로해주셨고, 그 뒤로 저는 강렬하게 주님을 믿고 따르게 됐습니다. 주일은 물론이고, 평일에는 절두산과 새남터 성지 미사를 다녔고, 매일 묵주기도를 했습니다. 주님과 성모님을 의심의 여지 없이 무조건 굳건히 믿고 따르면서 ‘나의 신심은 1년마다 천 년을 성당 다닌 믿음 만큼 깊어지고 쌓여간다’고 자부할 정도였습니다.그렇게 저는 열혈신자로 성장해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상상도 못 했던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버지가 쓰러지던 그날도 성당 반주를 하고 쎌기도에 참여했지만, 그 어떤 사인도 해주지 않으셨던 주님.2022년 2월 18일 금요일 새벽 아버지가 허리가 아프다고 극강의 통증을 호소하시더니 다리가 마비됐습니다. 아버지는 협착증 수술만 3번을 하셔서 허리가 안 좋으셨기 때문에 가족들 모두 허리가 다시 탈이 났나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당시, 코로나19 환자가 급증으로 119를 불렀지만, 미열이 있다며 응급실도 못 간다고 했습니다. 열만 떨어지면 병원에 가보자 결론을 내리고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저 역시 일상을 보냈습니다. 주일 미사를 드리고, 반주를 했고, 저녁에는 쎌기도 모임에도 참석했습니다. 아버지는 끙끙 앓고 계셨지만, 저는 주님과 함께하며 아버지 병이 낫게 해달라는 기도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저에게 아버지가 상태가 위독하다든지 빨리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한다든지 이런 힌트조차 전혀 주지 않으셨습니다.그 와중에 아버지는 정말 위독해지셨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아버지가 평소 다니시던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30만 명에서 60만 명까지 급증하던 시기라서 응급실은 초만원이었고, 아버지는 24시간 동안 휠체어에 앉아 대기만 하다 겨우 침대에 누우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로 아버지는 의식을 잃으셨습니다.아버지의 병명은 척추뼈에 염증이 생긴 척추염이었고, 척추를 타고 염증이 퍼지면서 패혈증을 일으켜 여러 장기가 손상됐습니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인데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고, 응급실에서만 5일을 계시다 신장은 망가지고 중환자가 되셨습니다. 응급실에 대기하면서 아버지는 “의사가 고쳐주겠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아버지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아빠 면회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제가 강렬하게 믿고 의지하는 주님께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온 정성을 다해 간절히 기도하면 이루어질 거라는 강렬한 믿음을 갖고 중환자실 앞에 무릎을 꿇고 묵주를 잡고 기도를 했습니다. 집에서 분당서울대병원은 왕복 100㎞인데, 면회도 안되는 병원을 매일 찾아가 중환자실 문앞에서 절박하게 기도했습니다늘 하던 ‘매듭을 푸는 성모님과 함께하는 9일 기도’를 시작으로 ‘영원한 도움의 성모 매일 기도’ 상황이 급하니 ‘천사들에게 바치는 긴급한 기도’까지 묵주를 꼭 손에 쥐고, 기도에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아버지가 응급실로 들어가시기 전 “목이 마르니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싶다” 하셔서 ‘오렌지 주스’를 사드린 게 전부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못 했는데 이대로 떠나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절박했습니다. 남들이 보든 말든 의사, 간호사들이 오가든 말든 침대가, 기계가 들락거리는 중에도 중환자실 문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했습니다.그렇게 한 일주일 정도 매일 기도를 했을까요? 한 남자분이 기도하던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천주교 신자이신가 봐요. 매일 묵주기도 하시던데요.” “네, 맞아요. 아빠가 위독하시고, 제가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어서요.” “아 네. 근데 저 어려운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네? 저에게요?” “네. 위독하신 아버지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께 민망하지만, 지금 방금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저는 베드로인데, 저는 오랜 기간 냉담을 해서요. 잠시 후에 아버지가 나오실 텐데요. 아버지를 위해서 묵주기도 부탁해도 될까요? 그리고 저희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자매님 아버지 쾌차를 꼭 기원할게요. 나으실 거예요.”그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아버지를 위해 하던 기도를 멈추고, 이날 처음 얼굴을 마주한 베드로 형제의 아버지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기도 중 중환자실 문이 열리고, 베드로 형제의 아버님이 나오셨습니다. 하얀 천에 얼굴을 감싼 아버지를 보고 베드로 형제는 목놓아 울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며 계속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님. 이 땅에서 가족을 위해 많은 애를 쓰신 베드로 형제의 아버지가 꼭 천국 가도록 해주세요. 그리고 베드로 형제가 냉담을 마치고 다시 성당에 나갈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렇게 나는 중환자실 앞에서 처음으로 생전 처음 보는 형제의 아버지를 위해 기도를 드리게 됐습니다.아버지는 상태가 아주 좋아지진 않으셨지만 1인실 일반병동으로 옮길 정도는 되셨습니다. 제발 이 시간을 잘 견뎌서 가족 곁으로 돌아오시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일반병동에서는 아버지 곁에 어머니가 계실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았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아버지가 나오던 날, 우리 가족은 축제의 분위기였습니다. 면회는 허락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1인실로 이동할 수 있는 그 짧은 순간. 우리 모두는 함께 있을 수 있었습니다, 걸어가면서 아버지의 손을 잡았습니다.한 달 만에 잡아보는 아버지의 손은 정말 따뜻했고, 아버지는 제 손을 놓칠세라 온 힘을 주어 제 손을 꽉 잡으셨습니다. 그렇게 저는 희망을 품었습니다. 기도를 더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희망의 시간은 잔인하게 짧았습니다. 20여 일 만에 아버지는 호흡곤란이 왔고 두 번째로 중환자실로 재입원하셨습니다. 엄청난 시련이 아버지에게 닥쳤습니다.사지 마비에 목소리까지 잃으시고 굴욕적인 병원생활에 극심한 우울증까지 찾아온 아버지. 아버지의 척추염증이 경추까지 번지면서 목 신경을 건드렸고, 팔다리의 감각을 상실, 결국 사지 마비가 왔습니다. 반복적인 폐렴으로 기관절개를 하면서 아버지는 목소리마저 잃으셨습니다. 평소에 말씀하기 좋아하셨고, 글씨는 천하 명필이셨습니다. 매일 일기를 쓰셨고, 응급실에서 의식을 잃기 전까지 치료받은 과정, 의사들 이름까지 적으실 정도로 총명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팔다리 마비에 말 한마디 못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정신은 너무나 온전하셨습니다. 중환자실에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이 대부분인데 그 환자들 틈에서 아버지는 몸을 옴짝달싹 못한 채 온전한 정신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봐야 했고, 간호사들이 기저귀를 갈아주고, 이리저리 몸을 굴리는걸 감내하셔야 했습니다. 면회가 금지인데 어떻게 알았냐구요? 결국, 아버지께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모든 치료를 거부하셨고 보다 못한 의료진께서 저와 아버지를 단 30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입 모양으로 아버지 말씀을 추측했고, 겨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다. 병이 나을 줄 알았는데 이제 다 틀린 것 같다’며 절망하셨습니다.“주님! 아버지에게 모든 걸 빼앗아 가시면 어쩌란 말입니까!” 물고기처럼 입 모양만 뻐끔거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애써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저는 펑펑 울었습니다. 아빠가 제 눈물이 더 슬퍼할까 봐 꾹 참았지만, 쏟아지는 눈물을 거둬낼 길이 없었습니다. 기도를 철저히 외면한 주님이 원망스러울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운명이 여기까지라면 이렇게까지 극강의 고통을 주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큰 고통을 겪으신 분인데, 생의 마지막까지 고통을 주시다니요.아버지는 평안북도 신의주 출생으로 6ㆍ25 전쟁 1ㆍ4 후퇴 때 피난 나와 움막을 짓고 사셨습니다. 당시 나이가 고작 7살. 신의주에 남은 큰형, 둘째 형과는 이산가족이 됐고, 아버지는 9ㆍ28 수복 때 총 맞아 돌아가시고, 남은 형제들은 굶어 죽거나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12살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셔서 홀로 세상과 맞서야 했습니다. 다행히 성격이 적극적이고 인내심이 많으셨던 분이라 이를 악물고 회사사환, 목욕탕 아르바이트, 신문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셨고 대학까지 졸업하셨습니다. 고생만 하다가 결혼을 하고, 가족다운 가족을 이루며 너무나 행복해하셨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세상 ‘가족’이 전부셨습니다.그런 아버지신데, 아버지의 투병과정은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세상 전부인 가족은 면회금지로 얼굴조차 만나지 못했고, 외롭고 쓸쓸하게 홀로 중환자실에 계셔야 했습니다. 세상 천하 나쁜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데, 사는 내내 선하기만 하셨던 아버지에게 왜 이토록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주시는지 저는 주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팔다리가 마비된 후 아버지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됐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니까 폐렴은 반복됐고 신장상태도 더 나빠지셨습니다. 감각 없는 손발은 퉁퉁 부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겁이 덜컥 나면서 두려웠습니다. 이렇게 아버지를 보내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주님이 원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아버지에게는 겨울마다 즐겨 입으시는 남색 패딩이 있습니다. 너무 오래 입어서 소매 끝동이 터지고, 제가 맨날 버리라고 했던 옷입니다. 새 패딩을 사드렸는데도 낡은 패딩이 가볍고 따뜻하다며 고집을 꺾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낡은 패딩을 입고 다녔습니다. 아버지의 체취가 가득 담긴 그 낡은 패딩을 입고 중환자실은 물론 절두산, 새남터 성지 등 성지를 찾아다니며 미사를 봉헌하고, 초를 봉헌하고, 김대건 신부님, 마더 데레사 수녀님 동상 앞에서 그분들의 손을 부여잡고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아버지의 낡은 패딩을 입은 제 사연을 듣고 신부님들도 정성을 다해 안수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기도를 올렸고, 이것만으로도 부족한 것 같아서 성경과 기도문 필사도 시작했습니다. 성물방에서 좋은 기도문들을 죄다 구입해서 기도를 올렸습니다. 매듭을 푸는 성모님과 함께하는 9일 기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이콘으로 드리는 9일 기도, 프라그의 아기 예수님께 드리는 기도, 천사들에게 바치는 긴급한 기도, 환자를 위한 치유의 기도, 부모님을 위한 기도를 매일매일 드렸고, 치유의 수녀님으로 알려졌다는 수녀님을 찾아가 특별 기도도 부탁했습니다. 저 혼자만의 기도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성당 공동체에 기도를 부탁드리고, 평소 연락도 잘 안 하던 신부님 수사님께도 연락을 드려서 염치없지만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런데 한 신부님께서 당장 아버지에게 대세를 드리라는 조언을 해주셨습니다.코로나로 면회가 금지되면서 병자성사도 할 수 없는 상황인데 ‘대세’를 드리라니…. 게다가 저는 대모도 서본 적이 없고, 대세는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워낙 급하다 보니 저는 어떻게든 아버지에게 대세를 드려야 했습니다. 문제는 면회가 금지라 아버지를 만날 방법이 없었습니다.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바위성당에서 구입한 성당 그림이 그려진 손수건에 물을 묻히고 간호사에게 사정사정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제가 세례를 드려야 해요. 아버지에게 시간이 없어서요. 금방 끝납니다. 간곡히 부탁드려요.” 처음에 간호사는 단호히 ‘안 된다’고 거절했습니다.그러나 저는 다시 매달렸습니다. “아버지 세례 드리게 해주세요. 1분이면 됩니다. 딱 1분만요.” 오랫동안 아버지를 봐왔던 간호사는 울며 매달리는 제 간절한 눈빛을 읽고, 단 1분을 허락해주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대세를 드리는 시간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마련한 세례명은 12월 29일이 축일인 ‘다윗’. 아버지가 12월생이기도 하고, 아버지는 우리 집의 ‘왕’이시니 다윗 왕이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다윗의 후손이시고 저 또한 다윗의 후손이니까요. 허락된 단 1분의 시간에 저는 대세를 끝내야 했습니다. 아 그런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물을 묻혀 준비해간 손수건이 사라진 것입니다. 시간은 흐르는데 손수건이 사라지다니…. 저는 주변에 있던 솜에 다시 물을 묻혔고, 아버지 이마에 물 묻힌 솜을 콩콩콩 세 번 찍으면서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다윗 김승흠에게 세례를 줍니다”라고 말했습니다.그리고 아버지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아빠 세례명은 다윗이고 나는 소화 데레사. 이제 아빠도 주님의 자녀가 된 거에요. 축하해요. 아빠! 내가 아빠한테 방금 세례를 드렸어요!” 아빠는 눈을 끔뻑거리시며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아버지에게 대세를 드리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살아계실 때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성당에서 신부님께 제대로 세례받게 해드릴 걸, 함께 성당을 다니고 성지순례를 할 걸…. 그 짧은 1분의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주님의 자녀가 되셨으니, 기적적으로 아버지가 쾌유 되기를 간절히 더 바랐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기적을 일으켜주시지 않았습니다. 성경에는 기적을 행한 기록이 그렇게 많은데, 아버지는 기적의 주인공으로 선택받지 못하셨습니다.주님의 자녀가 된 지 한 달이 지난 6월 15일 아버지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고, 임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코로나 시기라 허락된 면회는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임종 면회뿐입니다. 아버지는 그토록 좋아하셨던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되셨습니다. 어머니는 임종 면회를 하면서 “뭐가 급하다고 이렇게 빨리 가려고 해. 눈 한 번만 떠봐”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버지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셨는지 아버지의 눈꺼풀이 파르르 움직였고 남아있는 모든 힘을 다해 눈을 뜨려고 애쓰셨습니다. 그리고 눈을 번쩍 뜨셨습니다. 초점 없는 아버지 눈동자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눈물을 쏟아내는 아버지를 향해 어머니는 “사랑해. 당신은 최고의 남편이었어, 최고의 아버지였어.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하지마!” 저 역시 아빠의 숨이 금방이라도 끊어질까 싶어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자랑스러운 아빠, 나는 아빠 큰딸 자영이. 김자영! 아빠 고마워. 세상 제일 존경해. 다시 태어나도 나는 아빠 딸이다! 아빠 기억해. 부인은 한혜선, 큰아들 김수영, 큰딸 김자영, 막내 김세영 우리 가족은 모두 다섯 명이야. 아빠는 우리 가족의 위대한 왕이고 우리 전부야! 아빠 사랑해! 아빠 인생 대단했어! 최고의 명필, 최고의 재주꾼. 김승흠 만세! 아빠 최고! 진짜 슬퍼하지마!”2022년 6월 16일 오후 4시. 아버지의 심장은 멎었습니다. 저는 욕심도 많고, 남 욕도 하고, 미워도 하고 맞서 싸우기도 하고, 못된 짓도 했습니다. 기도할 때도 제 바람만 잔뜩이었고, 남을 위한 기도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아버지의 상실은 벌 받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어머니는 달랐습니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서 인간이 됐다면, 그게 바로 제 어머니일 정도로 한결같이 선했던 분이셨습니다. 그런 분에게 왜 주님은 남편을 빼앗아 가시는 겁니까? 왜요, 왜요!네, 저도 압니다. 제가 기도를 해도 제가 원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가 뜻하는 방향으로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말씀하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님이 선택하신 것은 ‘아버지의 죽음’이었습니다. 나참 기가 막혀서 주님 제가 좀 비꼬겠습니다. 대체 그 대단한 ‘아버지의 뜻’이 뭐란 말입니까?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날로 저는 모든 기도를 끊었습니다. 주님이 밉다 못해 싫었습니다. 장례식에 신부님과 신자들이 오셔서 미사를 봉헌해 주셨지만, 원망이 가득해 감사한 마음도 잊었습니다. 기도 책들과 각종 기도문 묵주는 처박아 두었습니다. 성경은 다 거짓말이고, 주님은 양치기 소년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천국행에 차질을 빚을까 봐, 아버지 유골함과 묘비에는 천주교 십자가와 세례명인 ‘다윗’을 큼지막하게 새겨두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신경질 내며 대차게 소리쳤습니다. “주님! 아버지 살려달라는 제 기도 외면하셨지만, 대신 아버지 다윗 김승흠 천국으로 잘 안내해주실 거죠? 저 이번엔 믿습니다. 다시는 실망하고 싶지 않아요. 그 정도는 당연히 해주셔야죠! 안 그러면 주님의 찐 열혈신자 영원히 잃으시는 겁니다!”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신부님들께 털어놓고, 울며불며 화를 잔뜩 냈습니다. 그런데 신부님 중 어느 한 분도 저를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저를 위로해주시면서 그럴수록 더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기도를 해야 주님께 왜 그랬는지 따질 수 있고, 마침내 그런 선택을 하신 아버지의 뜻에 대해 응답을 들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듯했습니다. 이미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고,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 천국행을 잘 빌어드리고 그 대단한 아버지의 뜻을 알아내려면, 다시 하느님의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게 맞습니다. 저는 다시 묵주를 잡았습니다.생각해 보니 ‘기도’ 덕분에 아버지의 투병과정을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맞습니다. 아버지께 대세를 드리라고 조언해주신 여현국 디모테오 신부님, 머나먼 남수단 파견 와중에도 꾸준히 기도해주신 최민성 베드로 신부님, 아버지 투병과정 내내 미사마다 봉헌해 주시고 장례 미사 해주신 이응석 요셉 신부님, 아버지의 낡은 패딩을 입은 저에게 안수해주시고 아버지가 위독하다고 할 때마다 즉시 화살기소를 바쳐주신 절두산 원종현 야고보 신부님, 정성스레 안수로 아버지 쾌유를 빌어주신 새남터 백남일 요셉 신부님, 청년을 위한 김치찌개를 끓여주시는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님은 아버지 49재까지 매일 미사봉헌을 해주셨습니다.먼 이탈리아에서 부제 서품을 준비하셨던 조민호 부제님은 동료 수사님들과 함께 아버지를 위해 기도해주셨습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군종교구 성 비안네 성당은 규모가 작지만, 참 단단합니다. 아버지 투병 속에서도 저는 성당을 빠지지 않았고, 반주 봉사를 했는데, 신자분들과 ‘함께’ 바치는 기도는 더할 나위 없이 큰 힘이 됐습니다. 이원근 아우구스티노 주임 신부님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뵈었는데, 위령성월 내내 아버지의 영혼을 빌어주셨습니다.이렇게 기도를 통해서 그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는데, 주님이 제 뜻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기도를 내팽개친 것입니다. 함께 기도해준 분들을 생각하며 저는 다시 묵주를 잡았습니다.다시 잡은 묵주, 다시 시작된 기도는 이전에 했던 기도와 달랐습니다. 주님께 듣고 싶은 응답이 있으니 묻고 따지는 것은 여전합니다. 다만 원망과 분노로 가득 찬 마음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찾기 위한 여정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되짚어보면 주님이 기도를 무조건 안 들어주시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뤄주신 소망의 크기가 작다 보니, 주님께서 이루어주셔도 제가 체감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 ‘감사’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뭔가 일이 잘 풀리면 성호를 그으면서 ‘감사합니다, 주님!’ 하고 속삭입니다. 지속적인 감사의 마음으로 분명 ‘아버지의 뜻’을 찾는 날이, 아버지께 응답을 들을 수 있는 그날이, 제 기도 여정의 마침표를 찍을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성경에는 오만가지 주님께서 행한 ‘기적’에 대한 내용이 있지만, 인생에서 기적을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박한 순간에는 주님께 매달려 기도를 하며, 기적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기적이 일어날 확률은 사실상 ‘기적’ 같은 일이지만 그래도 비빌 언덕이 있다는 것이 어딥니까? 가톨릭 신자의 특권이란 하느님, 주님, 성모님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배경 덕분에 아버지 다윗 김승흠은 천국으로 가셨을 겁니다.아버지가 묻혀계신 묘소에 가면 풍광이 참 좋습니다. 햇살이 가득한 정오에 가면 아버지 묘비에 새겨진 세례명 ‘다윗’이 반짝반짝 빛이나고, 노을이 질 무렵에 찾아가면 비석 뒤로 붉은 노을이 지면서 세례명 ‘다윗’이 아름다운 빛깔로 물이 듭니다.다시 기도를 시작하며 기도 책들을 들춰보니 기도 책마다 공통으로 쓰여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지치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기도를 곧바로 들어주지 않으시더라도 더 큰 열정을 가지고 기도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끈질긴 기도를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저는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끈질기게 그리스도를 통해 비나이다,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아멘’ ‘아멘’ ‘아멘’을 더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목청 높여 ‘제가 청하는 대로 이루어주세요. 하느님께서는 불가능이 없으시잖아요!’ 외쳐도 고집 센 주님께서는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겠지요. 그래도 저는 주님이 질릴 정도로 끈질기게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소리 높여 청할 겁니다. 네, 주님이 이기나 제가 이기나 한번 해보겠습니다. 끝날 때까지 끝나는 게 아니니까요.그러다 보면, 주님께서도 “무슨 저런 ‘자매’가 다 있나 내가 졌다 졌어” 하시면서 제 뜻대로 해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주님께서 저에게 이런 말을 건네주시는 그날이 올 것입니다.“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김자영(아기 예수의 데레사, 군종교구 성 비안네본당) cpbc2023.02.22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4)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라는 신앙 고백은 하느님의 말씀이 그 단일한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추신 분이심을 선언하는 거룩한 칭호이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 이콘.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그린 이콘이나 모자이크화에는 성모님의 머리 위에 ‘ΜΡ ΘΥ’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헬라어 ‘Μητηρ του Θεου’(메테르 투 테우)의 약자로 우리말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모님의 칭호 ‘Θεοτοκοs’(테오토코스)와 같은 말이다. Θεοτοκοs는 하느님을 뜻하는 ‘Θεos’(테오스)와 출산, 자손을 뜻하는 ‘τοκοs’(토코스)의 합성어이다. 라틴말 교회용어로는 ‘Dei Para’(데이 파라), ‘Dei Genitrix’(데이 제니트릭스)라고 한다. 가톨릭교회는 431년 6월 22일 에페소에서 열린 제3차 세계 공의회에서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라고 선포했다. 이 교리는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잃지 않으시고 인성을 취하셨고, ‘말씀’이신 성자 하느님의 유일한 위격 안에 두 본성이 온전히 결합돼 일치하고 있다는 주님께 대한 교회의 신앙 고백을 완전하게 드러내는 거룩한 칭호이다. 복음서에서 마리아께서는 “예수의 어머니”(요한 2,1; 19,25)로 불리신다. 마리아께서는 외아들 예수를 낳기 전부터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엘리사벳으로부터 “내 주님의 어머니”(루카 1,43)라고 불린다. 신약 성경은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잉태한 분, 곧 마리아의 참아드님이 되신 분은 다름 아닌 성부의 영원한 아드님이시며,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의 하느님 중 제2위격이시다고 선포한다. 이에 교회는 마리아께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영원한 아들, 바로 하느님이신 그 아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라고 고백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495ㆍ509항 참조)5세기 당시 교회 안에서는 “그리스도의 위격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고, 그 둘은 신격과 인격으로 독립돼 있다”는 주장이 불거졌다. 이런 이단을 주장한 대표 인물이 바로 ‘네스토리우스’이다. 그는 “예수님의 신성은 성경을 통해 만나지만, 예수님의 인성은 죽음으로 사라졌기에 마리아는 인간 예수의 어머니는 맞지만, 하느님의 어머니는 아니다”라고했다. 그의 주장에 동조한 이들은 “마리아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두 본성 중 인성만 낳았기에 ‘그리스도의 어머니’( Χριστοτκοs, 크리스토토코스)라 불러야 한다”고 했다. 예수님의 ‘두 본성(신성과 인성)과 위격’ 문제가 예수님의 어머니 곧 성모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로 쟁점이 된 것이다. 이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주교는 즉각 반박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본성은 신성과 인성으로 구별되지만, 하나의 위격으로 단일하다”고 했다. 그 증거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14 참조)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과 사람이 서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고 주장했다.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동로마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를 소집했다. 공의회는 치릴로 주교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의회는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당신의 신성을 이끌어 내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 영혼을 부여받은 거룩한 육체를 마리아에게서 얻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하느님의 말씀이 그 위격에서 육체와 결합하였기에 사람의 몸으로 나셨다고 일컬어진다”고 선언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466항) 그러면서 공의회는 “그리스도는 단일한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선포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께 대한 믿음을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신 지극히 거룩한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교회에서 특별한 공경으로 당연히 존경을 받으신다. 사실 오랜 옛적부터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로 공경을 받으시고,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곤경 속에서 그분의 보호 아래로 달려들어가 도움을 간청한다. 그리하여 ‘이제로부터 과연 만세가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 능하신 분이 큰일을 내게 하셨음이로다’(루카 1,48-49 참조) 하신 마리아의 예언 같은 말씀대로, 특히 에페소 공의회에서부터 하느님 백성의 마리아 공경은 존경과 사랑과 기도와 모방에서 놀랍게 발전하였다. 그 공경은 교회 안에 언제나 있었던 그대로 온전히 독특한 것이지만, 강생하신 말씀과 똑같이 성부와 성령께 보여 드리는 흠숭의 공경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또한 그 흠숭을 최대한 도와준다.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다양한 형태의 신심을 교회는 건전한 정통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시대와 장소의 상황에 따라 또 신자들의 품성과 기질에 따라 승인하였으며, 그 신심은 어머니께서 존경을 받으실 때에 그 아드님 곧 만물이 그분을 위하여 있고(콜로 1,15-16 참조)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기꺼이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신’(콜로 1,19) 성자께서 바르게 이해되시고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게 하며 그분의 계명이 준수되게 한다. (「교회헌장」 66항)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8.17

십계명 통해 우리 죄 살피고 주님께 자비 청해[가톨릭 영상 교리] (35) 양심성찰개인적 성찰이 없다면 우리의 행동의 잘못을 깨달을 수 없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열린 하쿠나 성시간에 참여한 청년들이 성체조배를 하고 있다.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양심에 거스르는 행동을 하며 악습을 고치지 못한 채 다시금 죄에 빠지곤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어떤 말과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여전히 깨닫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저마다 개인적으로 양심 성찰을 하고 침묵 중에 나의 잘못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지은 죄가 무엇인지 십계명을 통해 살펴보고 통회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자비를 청해봅니다. ▶ 첫째 계명: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여라. - 자녀가 아버지를 사랑하듯이 그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간청의 기도를 바치고 있습니까? - 성경이나 교회 서적을 정기적으로 읽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 하느님에 대한 불신의 마음을 품거나 의심하지는 않았습니까? - 권력이나 돈을 하느님보다 높은 자리에 두지 않았습니까? - 점, 사주, 타로 등을 보며 이에 의지한 적은 없습니까? ▶ 둘째 계명: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 - 죄를 저지르면서 혹은 누군가가 잘못되기를 바라면서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습니까? - 하느님 이름을 두고 거짓된 맹세나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까? - 하느님 이름을 내가 소망하는 일에 이용하는 수단으로 삼지 않았습니까? - 신앙생활을 현세적인 어떤 이익과 결부시키지는 않았습니까? - 신자임을 후회하거나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까? ▶ 셋째 계명: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 주일과 교회의 축일에 미사와 전례에 참여하고 해마다 고해성사를 받았습니까? - 가족, 친지들을 찾아보고 어려운 형제들을 돌보거나,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까? - 휴식을 핑계로 지나친 오락이나 취미 활동에 빠져있지 않았습니까? ▶ 넷째 계명: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 자녀로서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부모님을 존경하였습니까? - 부모로서 자녀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까? - 세상을 떠난 부모와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실천했습니까? - 남편과 아내에게 서로 감사하며 존경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 다섯째 계명: 사람을 죽이지 마라. - 가족이나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 주지 않았습니까? - 가족이나 누군가의 육체에 손해를 끼치거나 불편을 준 일은 없습니까? - 당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살펴보며 헤아리고 있습니까? - 고의로 유산을 시키거나 낙태에 협조한 적은 없습니까? ▶ 여섯째와 아홉째 계명: 간음하지 마라.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 부부로서 신의를 지키고 일치를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까? - 배우자가 아닌 이성을 마음에 품거나 음란한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까? - 간음, 매매춘, 강간 등의 죄를 저지르지 않았습니까? - 의식적으로 음란한 그림이나 영상을 보지 않았습니까? ▶ 일곱째와 열째 계명: 도둑질을 하지 마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 다른 사람의 물건이나 재산, 노력이나 시간을 탐내고 도둑질한 적이 있습니까? - 재산이나 노력,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는 않았습니까? - 약속이나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서 누군가를 속이는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까? - 고용한 직원들의 월급을 제대로 주었습니까? - 뇌물을 주거나 받지 않았습니까? ▶ 여덟째 계명: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 말로써 누군가의 자유와 권리, 명예나 생명에 피해를 주지 않았습니까? - 누군가를 위해 위로와 칭찬을 하기보다 비난과 비평하기를 즐거워하지 않았습니까? - 당신이 한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지려고 노력했습니까? ◎ 하느님, 제가 죄를 지어 참으로 사랑받으셔야 할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기에 악을 저지르고 선을 멀리한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나이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아멘.(통회 기도) cpbc2022.12.21

그리스도인 일치와 화합 다지고 말씀 일깨우다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과 하느님의 말씀 주일 성 바오로 사도상. 1월 25일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이다.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화와 개신교의 세계교회협의회 신앙직제위원회는 이날을 정점으로 1월 18일부터 한 주간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으로 정하고, 1968년부터 해마다 일치 기도 행사를 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9월 30일 자의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를 통해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과 맞물려 있는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정하고, 보편 교회에서 해마다 이날을 기념할 것을 선포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하느님의 말씀 주일 거행이 ‘교회 일치’의 중요성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성경은 듣는 이들에게 참되고 굳건한 일치에 이르는 길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교회는 왜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정점으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과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지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본다. 또 하느님의 말씀 주일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도 소개한다.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교회는 왜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정점으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과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지내나? 그 이유는 성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지독한 박해자였던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그리스도인을 죽이러 가던 중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다. 이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가장 열렬한 사도가 됐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일했으며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고 순교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회심을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은 ‘부르심’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부르심 받은 사도”(로마 1,1), “하느님의 뜻으로 부르심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1코린 1,1; 2코린 1,1), “이방인들의 사도”(로마 11,13), “사람들에 의해서도 아니고 어떤 사람을 통해서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사도”(갈라 1,1)로 밝혔다.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바오로 사도의 만남을 구원사에서 결정적 사건으로 보고, 고대 교회 때부터 1월 25일에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예로니모 순교록」에 따르면 로마에 있는 바오로 사도의 유해를 운구하는 예식이 처음으로 행해진 날에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로 지냈다고 한다. 이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이 되면, 교황이 바오로 사도의 유해가 안장된 로마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을 방문, 바오로 사도의 회심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한다. 이날 사제들은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하며 영광과 결백, 기쁨을 드러내는 ‘백색’ 제의를 입는다. 이날 미사 독서는 ‘바오로 사도의 개종 체험담’(사도 22,3-16)과 1코린 7,29-31 말씀이 봉독 되고,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마르 16,15-18)는 복음이 선포된다.하느님의 말씀 주일 ‘하느님의 말씀 주일’은 온전히 성경에 봉헌된 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제정한 이유를 “성경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그분 교회의 사명에 따른 여러 사건은 이해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 온전히 하루를 봉헌하며 특별하게 지내는 날이 신자들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교황은 특별히 하느님의 말씀 주일 거행이 ‘교회 일치’의 중요성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성경은 듣는 이들에게 참되고 굳건한 일치에 이르는 길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황은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인 1월 25일까지)과 맞물려 있는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정한 것이다. 이에 교황은 “하느님과 유대를 강화하고 그리스도인 일치를 이루기 위해 온 교회가 하나 된 지향으로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거행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성경에 봉헌된 하루는 그저 하나의 연중행사가 아니라, 한 해 전체를 위한 행사여야 한다”며 주님 힘의 원천인 말씀을 일깨우는 신앙생활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리길재 기자 cpbc2022.01.19

공소 신축 꿈꾸지만 맹지로 묶여 애태워[공소 公所] 9. 춘천교구 강촌본당 광판공소 . 춘천교구 강촌본당 사목구 내에 3개 공소가 있다. 후동ㆍ추곡ㆍ광판공소이다. 강촌본당과 관할 3개 공소는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본당 공소로 신앙 공동체를 시작했다. 강촌과 후동은 1958년, 추곡은 1960년에 공소가 설립됐다. 광판공소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강촌ㆍ후동공소와 함께 1958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춘천 남쪽 바깥에 자리한 강촌본당과 세 공소 지역에 본격적으로 선교가 이뤄진 때는 1956년께이다. 6ㆍ25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구호물품을 지원하는 교회 활동으로 시작됐다. 춘천교구 강촌본당 광판공소는 토박이 신자와 귀촌 신자들이 조화를 이루어 가꾸고 있는 활기찬 공소이다. 서울대교구 신내동본당 신자들의 도움으로 공소 건립 40년만인 지난 2011년 다시 고친 공소 내부. 너른 벌판에 자리한 공소 광판공소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장터골길 11-2에 자리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 남서부에 위치한 공소는 서쪽으로는 경기도 가평, 동쪽으로는 춘천시 신동면, 남쪽 홍천군 서면, 북쪽으로는 춘천시 서면을 접하고 있다. 너른 벌판에 마을이 세워져 예로부터 ‘광판(光坂)’이라 불렀다. 마을 남쪽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너른 벌판 구릉 사이로 옹기종기 마을이 들어서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광판리 일대 마을 이름도 정겹다. 오일장이 서던 마을이라 해서 ‘장거리’, 탑이 많아 ‘탑골’, 옛날 집터가 있던 골짜기여서 ‘텃골’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광판공소는 도로명으로 ‘장터골길’로 불리는 오일장이 서던 장거리 마을에 있다. 광판 오일장은 유명했다. 1920년대 들면서 조선총독부는 조선 시대 역로(驛路)를 대체할 신작로를 깔았다. 일제는 춘천-홍천-횡성-원주로 이어지는 조선의 역로를 넓혀 신작로로 대체했고, 춘천-양구-인제-간성을 연결한 도로를 새로 만들었다. 신작로가 닦인 후 광판리는 면 소재지가 아닌데도 1과 6이 끼이는 날에 큰 오일장이 들어섰다. 두메산골이 아닌 너른 벌판에 장이 서는 건 당연하겠지만 오일장이 서면서부터 광판리는 바뀌었다. 장이 서는 날에는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춘천과 홍천뿐 아니라 인근 20여 개 마을 주민들이 광판 장거리에서 물물 교환을 하고 생필품을 사갔다. 춘천 출신 수필가 심창섭씨는 “장터는 민중의 마당”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글처럼 장터는 길바닥에서 누구나 서로의 물건을 주고받고 사고파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또 바깥세상 소식은 물론 새로운 문명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의 창구로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곳이었다. 광판 오일장은 1991년까지 그렇게 명맥을 유지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58년에 시작된 선교 인심 좋고 흥이 있고 활력 넘치던 이곳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1958년 제16대 죽림동본당 주임으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아서 맥마혼(Arthur MacMahon, 한국명 안성도) 신부가 부임하면서이다. 맥마혼 신부와 한동수(바오로) 전교회장이 1958년 무렵 광판리에 찾아와 선교하고 첫 교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정집에서 교리를 가르쳤지만 얼마 안 가 광판초등학교 교실을 빌릴 만큼 예비신자가 늘었다. 몰려드는 신자들을 감당하지 못해 1961년 현 공소 땅을 사서 천막을 치고 교리 수업과 공소 예절을 했다. 지금도 광판공소 신자 수는 교적상 200명이 넘는다. 하지만 대부분 고령자여서 현재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 수는 평균 40~50명이라고 한다.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적지 않은 신자들이 비록 공소에 나오진 못해도 교무금은 모두가 빠지지 않고 낸다고 한다. 광판공소는 맹지에 지어져 건축법상 불법 건출물이다. 신자들이 만들어 놓은 십자가 너머 폐가와 방치된 땅을 매입해 도로 진입로를 만들어야만 맹지를 풀 수 있다. 과거 오일장으로 활력이 넘쳤던 곳이어서인지 광판공소에 들어서면 묘하게 흥이 느껴진다. 1973년에 지어진 낡은 공소 건물이지만 깨끗하다. 신자들도 대부분 70대 이상이지만 젊다. 박광섭(석두 루카) 회장과 김경수(요한) 운영위원장, 허성재(요한) 총무, 이선호(요한) 선교사 등이 주축이 되어 공소 살림을 맡아 하고 있다. 공소는 토박이 신자들과 귀촌해 정착한 신자들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토박이 신자들은 주로 오이와 가지, 옥수수 농사를 짓고, 귀촌한 신자들도 농사를 짓거나 펜션업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또 별장을 지어 주말을 지내고 도시로 가는 이들도 있다. 늘 신자들이 교류하다 보니 가족 같은 분위기이다. 다 같이 모여 공소를 가꾸고 있다. 공소 창문 달기, 전기ㆍ방수공사, 도배, 조경, 잔디 심기 등 온갖 일을 함께한다. 매 주일 오전 7시 30분에 주일 미사가, 주중 수요일 오후 7시에 평일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교육관으로 공터에 비닐 천막을 지어 이선호 선교사가 성경과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새로운 공소를 꿈꾸며 광판공소가 있는 춘천 남산면 일대는 지금 ‘남춘천 제2 산업단지’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2028년 완공되면 이 일대에 정밀의료산업 단지 중심의 복합도시가 들어선다. 그래서 광판공소는 신자들이 늘어날 것을 대비해 공소 건물 신축을 포함한 증ㆍ개축 계획을 세우고 있다. 주차장을 지을 땅도 사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광판공소 땅이 건축법상 ‘맹지’로 묶여 있어 현실적으로 건축 허가 대상이 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건축법에 따르면 건축물의 대지 2m 이상이 보행과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너비 4m 이상의 도로에 접해야 한다. 사방이 타인의 토지에 둘러싸여 도로와 직접 연결되지 못하는 땅이 맹지이다. 그래서 도로와 접한 땅을 매입하는 것이 광판공소 신자들의 숙원사업이다. 광판공소의 살림꾼들. 왼쪽부터 허성재(요한) 총무, 김경수(요한) 운영위원장, 박광섭(석두 루카) 공소 회장, 이선호(요한)선교사 이선호 선교사는 “공소 옆에 도로와 접한 폐가와 오랫동안 방치된 땅을 사려면 비용이 2억 원 정도 들어 공소 신자들이 애태우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광섭 공소회장은 “공소에 성체를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신자들의 소망”이라며 “수제비를 나눠 먹으며 함께 공소 터 다지기를 하던 가족 같은 공소 전통을 계승해 아름다운 공소로 가꿔가겠다”고 말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3.10

부활신앙 살아가도록 돕는 영성 안내서송봉모 신부의 요한복음산책 시리즈 마지막 권 「평화가 너희와 함께」 발간 오른쪽 발등에 못 자국이 선명한 예수님이 당신을 만지려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가시덤불을 밟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인류의 죄를 없애기 위해 예수님이 겪어내야 했던 수난을 상징하고, 하얀 옷은 부활을 상징한다. 티치아노의 '놀리 메 탄제레'(1514). 런던국립박물관 소장. 평화가 너희와 함께송봉모 신부 지음 / 바오로딸“성경 전체에서 가장 뜻깊은 아침이 언제냐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것은 부활 아침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아침에/ 죽음이 생명으로 변했다는 소식이/ 온 땅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며/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 안에/ 결정적으로 긍정의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요하네스 부어스)송봉모(예수회) 신부의 요한복음산책 시리즈 마지막 책 「평화가 너희와 함께」가 발간됐다. 2011년 요한복음 1-4장까지를 다룬 요한복음산책 1 「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 출간을 시작으로 「비참과 자비의 만남」,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등에 이어 10년 동안 요한복음을 강해한 시리즈를 완간했다. 요한복음은 가장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복음서로, 송 신부는 사실적인 의미를 다룬 공관복음에 비해 영적ㆍ신학적 의미를 다룬 요한복음을 깊이 있으면서도 쉽게 묵상할 수 있게 안내했다.요한복음산책 마지막 권인 「평화가 너희와 함께」는 요한복음 20장과 21장을 강해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자, 뿌리인 주님 부활을 바라보는 요한 복음사가의 신학과 부활 신앙을 구약성경과 역사ㆍ문화ㆍ문학에 비추어 설명했다.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교부들의 말씀과 다양한 일화, 사진, 시 등을 인용해 성경이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책은 1부 빈 무덤 이야기(요한복음 20장)로 시작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을 찾는 마리아 막달레나,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 의심하는 토마스 앞에 서 계신다. 요한복음 21장을 다룬 2부에서는 고기를 잡느라 밤새 허탕 치는 일곱 제자에게 나타난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람 낚는 사도임과 함께 성체성사의 힘을 깨닫게 한다. 송 신부는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같은 사건을 다르게 전달하는 다양한 예도 제시한다. 이는 역사적 오류가 아니라 요한복음의 신학적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앞부분부터 당신의 영광 받으심에 대해 언급하셨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요한복음이 ‘영광의 책’이라 불리는 부분이 13장부터 십자가 사건을 거쳐 부활, 승천, 성령을 보내심에서 마무리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즉 요한복음 신학은 주님의 영광 받으심의 의미와 함께 우리가 그 영광 받으심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를 묻는다고 저자는 안내하고 있다.송 신부는 초대교회 신자들이 중요시했던 성체성사로 요한복음산책 시리즈를 마무리했다.“성체성사는 초대교회 때부터 여러 가지 용어로 불렸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미사다. 바오로 사도는 성체성사를 ‘주님의 만찬’(1코린 11,20)이라고 했고, 사도행전의 저자 루카는 ‘빵을 떼어 나눔’(사도 2,46)이라고 했다.”그는 “「신학대전」을 쓴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사목적 돌봄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체성사, 곧 미사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면서 “모든 성사에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현존하지만, 성체성사 곧 미사에는 그리스도 자신이 현존한다고 한다”고 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을 언급했다. 즉 교회가 시작된 다음부터 성체성사(미사)는 언제나 신앙생활의 중심이었던 것이다.이어 저자는 “그동안 이 시리즈를 쓰면서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깜깜한 밤길을 운전하는 사람의 마음과도 같았다”며 전조등이 비춰주는 범위만큼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소회를 밝혔다.책 제목 ‘평화가 너희와 함께’는 두려움과 슬픔에 사로잡혀 다락방에 숨어있던 사도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처음으로 나타나 하신 말씀이다.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2.04.19

죽은 소나무에 생명 불어넣어 ‘성물 조각가’로 부활한 80대 농부[부활특집] 관솔 작가로 제2의 인생 사는 김태만 어르신 누군가는 ‘팔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라고 노래했고, 어떤 이는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노랫말이 아닌 현실에서 노년에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팔십 평생 농사만 짓다 뒤늦게 공예를 시작해 성물 전시회까지 개최한 이가 있다. 지난 3월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 작품을 선보인 1937년생 김태만 어르신이 그 주인공이다. 관솔 조각에 매진하는 그를 주위에서는 그야말로 부활하듯 ‘다시 태어났다’고 말한다. 무슨 사연일까? 조각을 시작하다 “딸의 친구가 십자가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그때 처음으로 십자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유심히 보게 됐어요. 우리 집 뒤에 산소가 있어서 관솔은 구하기 쉽거든. 그때부터 시작한 건데, 이렇게 서울 중심에 와서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좋습니다(웃음).” 그의 관솔 조각은 그렇게 시작됐다. 꼬미마을로 불리는 경북 고령군 개진면에서 80여 년을 살아온 그에게 송진이 응축된 소나무, 즉 관솔은 뒷산에 가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그저 ‘죽은 나무’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소나무 공출까지 있었으니 그 토막들이 오랜 세월 그냥 방치되어 함께 나이를 먹은 것이다. 하지만 관솔이 친숙한 재료인 반면, 가톨릭은 그에게 너무나 생소한 소재였다. 어느덧 3년이 지나 직접 만든 수많은 십자가와 묵주 등을 전시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가톨릭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딸이 ‘이거 만들어 봐라, 저거 보고 만들어 봐라’ 얘기하니까 똑같이는 못 해도 흉내를 내는 거지. 그런데 계속 하다 보니 그것만 보게 됩디다. 관솔도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유심히 보게 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데, 딸이 좋아하고 주변에서도 만들어달라고 하니까 이젠 익숙하게 만들어요. 가만히 있으면 ‘지나간 일, 앞으로 닥칠 일, 그렇게 살았으면 좋았을 걸,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하게 되는데, 관솔을 다듬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거든.” 그렇게 2000원짜리 칼로 투박하게 깎아갔던 초기작은 만나는 동네 사람, 달라는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건넸다. 동물 형태도 있고, 운동 기구도 있고, 대가야 박물관에 있는 유물과 지역 특산물인 개진 감자 모양도 있고, 그리고 십자가, 묵주, 오병이어, 밀알 등을 표현한 것도 있다. 교리도 모르고 성경을 읽어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는 만들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딸 김광숙(노엘라, 국제가톨릭형제회, AFI)씨다. 김태만 어르신이 조각한 성물들. 관솔이 십자가와 묵주로 다시 태어난 모습이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부녀 김태만 어르신과 딸 김광숙씨가 미소를 짓고 있다. 아버지는 조각하고 딸은 의미를 더해 “한 신부님이 보시고 ‘이 십자가는 밑이 긴데?’ 하시더라고요(웃음). 아버지가 전문적으로 만들 생각이 아니었으니까요. 누군가 관솔로 묵주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 만들고, 수녀님이 성작을 얘기하시면 또 만들고. 주변의 관심과 요청으로 만들다 보니 지금에 이른 거예요. 최근에는 한 수녀님이 물고기 두 마리를 헝겊으로 만들어 오셨는데, 그걸 보고 작업하시기에 제가 ‘오병이어’라고 이름을 붙였죠(웃음). 밀알도 있고, 전국 지도에 15처도 만들었어요.” 딸 광숙씨는 1999년 국제가톨릭형제회에 입회했다. AFI공동체 회원들의 요청으로 아버지는 수많은 십자가와 묵주를 제작했고, 그가 느낌 가는 대로 만든 조각들은 딸에 의해 천지창조 때의 동물부터 모세가 하느님의 계명을 받던 시나이 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키는 홍해의 구름 기둥 등으로 의미를 지니게 됐다. 얘기를 듣다 보니 꿈보다 해몽이 좋은 거 아닌가.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랴. 가족 입장에선 세상을 등질 뻔했던 아버지가 이렇게 활기차게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2019년 당시 83살이던 김태만 어르신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다.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너무 오래 살아서 자녀들에게 짐이 되고 국가의 세금만 축낼까 봐 결단한 것이다. “귀 어둡지, 눈 어둡지, 그런데 너무 오래 사니까.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돈만 쓰고 있고. 나이 든 사람은 대부분 ‘내가 어떻게 죽을까,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하루 이틀 만에 죽어야 할 텐데’ 생각하거든. 그래서 그렇게 사느니 스스로 움직일 때 죽는 게 낫겠다 싶었지. 그런데 명은 재천인지 안 죽더라고.(웃음)” 폐렴에 온갖 약물 알레르기까지 겹쳐 꼬박 18일 동안 병원 신세를 진 그는 집으로 돌아온 뒤 달라졌다. 곁에서 한 달 넘게 간병한 딸이 손에 쥐여준 관솔과 조각칼은 그의 마음을 달랬고, 여전히 늙고 낡은 일상이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내가 잘못된 생각을 했구나, 아이들에게 오히려 상처를 많이 줬겠구나, 내 운명대로 살다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관솔도 죽은 나무인데, 내가 발굴하지 않으면 생명이 없는 건데, 이렇게 새로운 쓸모가 생겼잖아요. 나와 같은 인생이구나,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죽었다 살아난 삶, 즐겁고 의미 있게 “죽었다 살아난 것이 관솔도 나와 동체구나…. 이걸로 뭐 성공하겠다는 생각도 없고,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없어요.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았으니 토질도 알고, 관솔이 어디에 있는지도 아는 거지. 혼자서는 아무 가치가 없는데, 그저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나도 즐거워요.” 죽은 소나무가 멋진 작품이 된 것처럼, 쓸모없다 여긴 자신이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삶의 의미를 찾은 모습이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도, 앞날에 대한 욕심도 없다. 그저 지금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딸이 계속 성당에 같이 가자고 하죠. 글쎄, 잘못 생각하는 건지 모르지만, 내 중심으로 지금껏 살아왔거든. 성물을 만들면 그걸 가지고 사람들이 기도하니까 그게 내 몫이 아닐까. ‘관솔 작품을 가지고 있으니까 몸이 좋아지더라, 향이 좋더라’라는 말을 들으면 나도 좋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고, 죽은 것 같지만 다시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게 인생이라는 걸 관솔과 나를 보면서 알아주면 더 고맙죠.(웃음)” 광숙씨는 아버지의 작품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갤러리를 만들기로 했다. 갤러리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한가. 그저 시골집 앞에 컨테이너 두 대를 세우고 관솔 작품들을 진열할 예정이다. 그녀가 건넨 명함에는 ‘관솔작가 김태만, 매니저 김광숙’이라고 적혀 있다. 팔십 평생 아버지도, 오십 평생 딸도 이런 새 삶을 상상이나 했을까. ‘끝’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새롭게 피어난 삶의 의미는 관솔의 은은한 향처럼 부녀의 얼굴을 미소로 감싸 안는다. 컨테이너 갤러리에서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작품 역시 관솔 조각이 아니라 그것이 품은 새로운 희망일 것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