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춘천교구의 모태가 된 유서 깊은 공소[공소(公所)] 11. 춘천교구 곰실공소 곰실공소는 춘천교구 발상지이며 효시인 유서깊은 신앙 공동체이다. 곰실공소 전경. 한국 가톨릭교회가 세계 교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외국인 선교사들의 전교 없이 자발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신앙 공동체를 설립한 것이다. 이 아름다운 교회 전통을 그대로 답습 유지한 지역 교회가 바로 춘천교구다. 고향으로 돌아 온 천주학쟁이 19세기 말 춘천시 동면 장학리 노루목에서 한학에 열심했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집에 세 들어 살던 체반 장수의 권유로 가톨릭교회 교리서인 「천주실의」와 「주교요지」를 읽고 곧바로 회심하여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는 가톨릭 교리를 제대로 배우고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큰 형과 함께 천진암 인근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면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춘천 지역 가톨릭 선교의 대부가 된다. 바로 엄주언(마르티노, 1872~1955) 회장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엄 회장은 동네 사람들에게 ‘천주학쟁이’라고 냉대를 받고 내쳐진다. 그는 외가 친척의 도움으로 대룡산 자락에 있는 동내면 고은리 윗너부랭이 폐가를 사서 이주해 그곳에서 화전을 일구며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낮에는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밤에는 사람들을 모아 성경과 교리를 가르쳤다. 그는 남에겐 겸손하고 친절했으나 자신에겐 늘 엄격했다. 장티푸스가 유행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자 그는 가족들조차 손을 대지 않고 방치해 놓은 시신들을 거두어 정성스럽게 염을 하고 홀로 시신을 어깨에 메고 뒷산에 매장해 주곤 했다. 이러한 행동에 많은 주민이 감동을 하고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춘천 지역에 처음으로 생긴 가톨릭 신앙 공동체가 바로 ‘곰실공소’다. 엄 회장의 지도로 신앙을 키워간 곰실공소 교우들은 무엇보다 신앙생활에 열심했다. 주일 공소 예절은 물론 매주 수ㆍ금요일에는 단식재와 금육재를 철저히 지켰다. 엄 회장은 풍수원본당 주임 정규하 신부를 1년에 한 차례 모셔와 50여 명씩 세례를 줬다. 엄주언 회장은 곰실의 교우수가 300명 넘게 늘어나자 성직자 영입을 추진한다. 그는 신부를 모시기 위해 직접 사제관을 짓고 우물도 팠다. 그리고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강원도의 유일한 본당이던 풍수원성당을 여러 차례 방문해 뮈텔 주교와 정규하 신부에게 성직자 파견을 요청했다. 1920년 9월 사제품을 받고 풍수원본당 보좌로 임명된 김유용(필립보) 신부가 곧바로 춘천 지역으로 파견되면서 곰실공소는 춘천교구의 모태가 된다. 김 신부와 엄 회장은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선 춘천 시내에 성당을 지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엄 회장의 주도로 곰실 신자들이 성전 건립 기금을 조성한다. 엄 회장은 ‘애령회’를 조직해 15세 이상의 모든 교우를 가입시켰다. 회원은 종신토록 1인당 50전씩 거두었고, 가마니 짜기, 새끼 꼬기, 짚신 삼기로 성전 건립 기금을 모았다. 엄 회장은 1928년 애령회 기금과 자신의 논 다섯 마지기를 팔아 춘천 약사리 418번지 김영식의 목조 함석집을 사서 고쳐 성당으로 사용하고 본당을 이전한다. 이때 교우수가 600여 명을 헤아렸다. 엄 회장은 이후 춘천지목구장으로 부임한 퀸란 신부와 함께 춘천 약사리 고개 도토리밭을 사서 성당을 짓는다. 바로 오늘날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성당이다. 곰실공소는 춘천교구 공동체의 발상지로 품위에 맞는 성미술 작품들을 갖추고 있다. 곰실공소는 많은 순례자가 끊임없이 찾아와 기도하는 곳이다. 곰실공소 전경. 신앙의 향기를 지닌 공소 엄주언 회장은 가족과 교우들에게 늘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며, 남의 말을 하지 말고, 잘 입지도 먹지도 말며, 진리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며, 죽은 사람 장사를 잘 지내 영혼을 구해주라”고 권면했다고 한다. 또 “한 사람의 영혼 구령은 천하의 어떤 복보다 위에 있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엄주언 회장은 춘천 지역 가톨릭 전교의 대부로서, 죽림동 주교좌본당의 창설 공로자로서, 그리고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춘천교구민들에게 지금까지 존경받고 있다. 춘천교구는 「우리의 뿌리」에서 “엄주언을 중심으로 곰실공소에서 태동한 춘천의 천주교회가 국지적이고 한정적인 사목 활동에서 춘천의 전 지역을 공동체로 하는 본격적인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춘천교구 거두리본당 관할인 곰실공소는 춘천시 동내면 동내로 220에 자리하고 있다. 곰실은 ‘고은리’(古隱里)의 옛 지명이다. 곰실은 ‘뒤쪽에 있는 마을’ 또는 ‘큰 산, 신성한 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곰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대룡산은 기우제를 지내던 신성한 산이었다. 또 일제 강점기에는 곰실을 후상리, 후중리, 후하리라는 행정지명으로 고쳐 불렀다. 따라서 곰실은 옛날 신성한 산으로 여긴 대룡산 뒤편에 숨어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곰실공소는 6ㆍ25 전쟁 때 소실되는 수난을 겪었다. 춘천은 6ㆍ25 전쟁 발발 다음날인 1950년 6월 26일 북한 인민군의 포격으로 초토화됐다. 다 지은 죽림동 주교좌 성당은 인민군의 집중 포격으로 파괴됐다. 아울러 1951년 5월 유엔군의 공습으로 또 한번 파괴됐다. 당시 곰실공소에는 인민군 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반격 작전에 나선 유엔군은 곰실공소를 폭격해 완전히 부숴버렸다. 오늘날 곰실공소는 인민군에 피랍돼 압록강 중간진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다 풀려난 퀸란 주교가 춘천교구로 돌아와 새롭게 지은 건물이다. 제6대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가 2009년 이 건물을 다시 지었다. 장익 주교가 중창한 곰실공소는 단출하다. 엄주언 회장과 교우들이 그랬던 것처럼 소박하고 수수하다. 그러나 속은 탄탄하다. 집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을 닮는 모양이다. 공소 내부는 기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제단과 회중석 바닥은 원목으로 꾸며져 있다. 제단 중앙 십자가는 김혜림(베아타) 작가의 작품이다. 제단과 독서대는 김겸순(마리 테레시타, 노틀담수녀회) 수녀가 디자인했다. 사방 흰 벽의 좌우편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설치돼 있다. 춘천교구 공동체의 발상지이며 효시의 품위에 맞게 성미술 작품들이 잘 갖춰져 있다. 곰실공소에는 많은 순례자가 끊임없이 찾아오는 곳이다. 침묵 가득한 공소 안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평생을 봉헌하며 복음을 선포했던 엄주언 회장과 옛 신앙 선조들을 기억하고 그 신앙을 본받고자 기도한다. 꽃이 지닌 생명의 가치는 아름다움과 향기이다. 곰실공소는 신앙의 향기를 지닌 아름다운 꽃 같은 존재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2023.03.22

잡념이 생기면 잠깐 멈춰 머릿속 소리를 들어보세요[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3. 잡념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많은 시간 일상 잡념에 사로잡혀 지낸다. 내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다시 확인해보자. pixabay 제공 “아, 맙소사! 교통카드를 두고 왔네.” “오~ 어떡해! 서류 출력하고 프린터에 그대로 둔 채 나왔어.” “아차! 오늘 늦는다고 했었나요?” ‘아, 이런, 맙소사, 아차, 오, 어머, 어떡해….’ 내가 쏟아내는 이런 감탄사들 대부분이 좋은 느낌의 설렘이나 감동의 말이 아니다. 탄식하거나 자책할 때 나오는 말이다. 그러면서 애드리브처럼 나오는 한탄, “나도 나이를 먹어서….” 동시에 나의 마음속 탄식이 터져 나온다. “이런, 나이 타령은 인제 그만! 50부터 하는 변명, 반백 년 나이 타령만 하다 세월 보내면 어찌할 건가?” 나는 안다. 책을 읽다가도 읽지 않고 있다는 것을. 꽃을 보면서도 보지 않고, 기도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의 말이 길다 싶으면 고개는 끄덕이지만, 나의 의식의 스위치는 꺼져있다는 것도. 의식이 없다는 것은 난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 순간에는 아마 코끼리가 돌아다녀도 못 볼 것이다. 오늘은 성당에 앉아서 꽤 오랜 시간 기도했다. 시작할 때 기분이 좋았다. 편하고 고요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성당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기도를 너무 잘해서? 아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잡다한 생각들이 나를 성당 밖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친구 수녀도 만나고, 시간 없어 못 먹었던 호박죽도 먹고, 원고도 쓰고…. 오만가지 생각으로 이리저리 헤매다 정신 차려보니 내가 성당에 있었다. “오, 맙소사. 또 잡념에 당했어!” 잡스러운 생각이 나를 미아로 만들었다. 매번 당하는 일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잡념들과 싸우고 있다. 쫓아내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봐도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도 오랜 시간을 잡념과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왔으니까. 머릿속 소리는 늘 그렇게 떠들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기도를 해도 한 것 같지 않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나서도 기억이 나지 않고, 미사 강론을 듣고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잡념들이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잡생각은 불안을 부추기고 근심을 가중시킨다. 그러다가 스트레스가 쌓이고 수면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삶의 질을 높여주는 집중력을 잃는다. 신앙인이 집중할 힘이 없다면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까? 어디 기도뿐이랴. 중요한 일 대부분은 집중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잡념’을 없애기로 했다. 몽둥이를 들고 쫓아낼 수는 없는 일, 오히려 대접해서 떠나보내야 하는 손님이다. 우선은 잡념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이유를 알아야 했다. 답은 간단하다. 재미가 없어서다. 지루하고 심심하면 외롭기까지 하다. 책을 읽다가도 이야기를 듣다가도 기도를 하다가도 재미가 없으면 틈새를 비집고 잡스러운 생각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어제 먹던 짜장면, 아침에 하다 만 청소, 오랜만에 만난 옛친구, 다툼이 있었던 직장 동료….’ 쓸데없는 무의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잡념이 찾아오는 이유는 또 있다. 그동안 자극적인 재미 대상과 너무 친하게 지내왔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수녀인 나에게도 말이다. 손 안의 컴퓨터는 매일 매 순간 필요한 정보와 자극적인 감각으로 재미를 준다. 알람으로 눈을 뜨고 날씨를 본다. 뉴스를 보고 정보 검색을 하고 책을 구매하고 누군가 보내온 영상을 본다. 사진을 찍고 전화를 하고 채팅을 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맡긴다. 앱으로 라디오를 듣고 길을 묻는다. 관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의 강의도 듣고 그들의 인터뷰나 칼럼을 읽는다. 이렇듯 스마트기기는 내가 크게 애쓰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주고 나의 감각마저 즐겁게 해 준다. 어쩌면 감각을 통째로 기계에 맡겨놓고 사는 것과 같다. 그러니 능동적으로 무언가 애써 얻어내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다. 지루하다, 심심하다, 느리다고 느껴질 때 바로 잡념은 시작된다. 주의력은 떨어지고 의식은 사라진다. 그 순간 무슨 말을 들어도 무엇을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그 일에 집중하고 있나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떤 내용인가요? 한번 확인해볼래요. 좋아하는 성경 말씀에 초점을 두고 잠깐 멈춰요. 5분만 해 볼래요? 그리고 머릿속 소리를 들으면서 관찰하세요. 내가 나를 보는 거지요. 5초, 10초, 1분, 5분. 자, 다른 생각이 들어오던가요? 머릿속 소란스러움을 느꼈나요? 잡념이 생길 때 말을 걸지는 말고 듣기만 해요. 그렇게 반복해서 알아채기만 해도 집중할 수 있는 의식의 빛이 켜지지 않을까요? 김용은(제오르지아,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cpbc2023.01.11

변호·성서모임 봉사, 모두 주님 도구로 쓰이는 기쁘고 보람찬 일[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29) 변호사 이주희 마르타 이주희 변호사는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집무 중이다. 이주희(마르타)씨는 서울대 외교학과와 서강대 로스쿨을 졸업한 재원이다. 서울 서초동에서 7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했고 현재는 국민권익위원회 고충처리국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조사관들의 민원업무를 돕고, 민원에 관한 의결서를 검토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녀는 항상 어떤 봉사든 열심히 하고 주변 분위기를 즐겁게 하며 밝고 긍정적이다. 무엇에든 적극적이고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오랫동안 밴드 활동도 했다. 목동성당에선 신참(?)인데도 청년성서모임 대표봉사자를 맡았는데, 열심히 발로 뛰어 1년 동안 성서 공부하는 청년들이 100명 가까이 될 정도로 본당 성서모임을 활발하게 일구어낸 성실파이기도 하다. ▶어떻게 신자가 되었는지요?어머니를 따라 성당에서 4살 때 유아세례를 받았어요. 언니와 함께 세례를 받았는데 예쁜 옷을 입었던 희미한 기억만이 남아있어요. 사실 어릴 때는 세례명 ‘마르타’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도 마르타 성녀처럼 활동적이고 열심히 살고 싶어졌어요.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 때 신부님께서 “넌 마르타랑 참 비슷하다”라고 하신 말씀에 무척 기뻤어요. 그때 일을 주도하고 앞장서서 했나 봐요. ▶변호사가 되는 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초등학생 때 배금자 변호사의 책 「이의 있습니다」를 우연히 보고 이런 직업도 좋겠다는 꿈을 가졌어요. 미디어에 관심이 많아 기자나 PD가 되고 싶었는데 기자 시험에 번번이 떨어졌어요. 한창 진로를 고민 중이던 당시는 우리나라에 로스쿨 제도가 막 도입이 되던 시기였어요. 그리고 얼마 후 변호사에 도전했어요. 변호사도 소송을 통하여 의미 있는 판례를 만들어냄으로써 보람찬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요. “인간이 좋아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을 때 인간의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변호사라면 좋아하고 보람찬 일을 동시에 하며 저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어요.▶하느님께서 주신 탈렌트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저에게 주신 탈렌트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제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생기면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애를 쓰는 편이에요. 이런 마음은 변호사가 되었을 때 사람들과 소통할 때 큰 도움이 되어요. 이런 저의 마음이 변호사 업무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삶의 가장 큰 시련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로스쿨 재학 시절인 거 같아요. 저는 대학에서 법학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해 법 공부가 매우 생소했어요. 로스쿨 1학년 1학기 첫 민법 중간고사의 ‘찐 꼴찌’였어요. (웃음) 졸업시험도 제때 통과를 못 해서 동기들이 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때 저는 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했죠. 그다음에 변호사 시험도 겨우 붙었어요. 로스쿨에서 뛰어난 학생들과의 경쟁이 쉽지는 않았지요. 힘든 로스쿨 생활을 하는 동안 학내에서 진행하는 가톨릭 성서모임에 참석했어요. 창세기 연수 때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처음 느껴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 기억으로 힘든 시절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어요. ▶하느님을 체험한 적이 있나요? 저는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는 성경 구절을 좋아합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여 부상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딴 로라 윌킨스가 암송한 구절로도 유명하지요. 제게도 이 말씀의 힘을 체험할 일이 있었어요. 언젠가 지방 경찰청에서 입회하는데 오후에 갑자기 다른 사건 피의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거예요. 급히 서울 사무실로 돌아오니 자정이 다 되었고, 5시간 안에 영장 청구서를 방어할 변호인 의견서를 준비해야 했어요. 워낙 장기간 수사로 이어진 사건이라 쟁점도 많았어요. 앞의 성경 말씀을 크게 써서 컴퓨터 앞에 붙여놓고 속으로 화살기도를 하면서 변론 준비를 시작했어요. 기적처럼 시간 내에 서류를 마친 후 바로 기차 타고 지방법원에 내려가 변론을 끝냈고 다행히 영장이 기각되었어요. 그날 밤 하느님께서 나를 도구 삼아 내 손을 움직이셨다고 믿고 있어요. 기적 같은 체험이었어요. ▶성서모임에서는 어떤 것이 좋았나요? 저는 탈출기 공부와 연수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탈출기 직장인 연수를 다녀왔는데요, 거기서 허영엽 신부님 강의를 들었던 것이 정말 좋았어요. 일상생활과 연결한 강의여서 성경 말씀의 의미가 마음에 잘 와 닿았고,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어요. 탈출기 공부를 계기로 저도 본당에서 성서모임 봉사를 시작했고, 마르코ㆍ요한복음 공부까지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지요.▶일하면서 가장 보람이 있던 적은 언제인가요?변호사 시절에는 승소하거나 무죄를 선고받을 때 가장 기뻤는데, 지금은 공직에서 고충 민원을 처리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최근에 5ㆍ18 민주화 항쟁 때 돌아가신 안병하 치안감 사건에 참여했어요. 안 치안감은 5ㆍ18 민주화 항쟁 때 시민들에게 발포 명령을 거부하여 강압으로 사직서를 내고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어요. 당시 강압으로 사직하신 시점이 보상법률인 1980년 해직자 보상법의 기간과 어긋나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셨어요. 이에 유족이 의원면직 취소 처분과 미지급 급여를 요청하였는데, 이 사안은 정부 부처 사이의 의견이 달랐고 시간도 많이 지나 해결이 어려웠어요. 저는 의결서의 판단 부분에서 법리를 구성했어요. 담당 조사관님께서 저의 법리 부분이 관계기관을 설득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하셨어요. 결국, 통과되어 유족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큰 보람이 되었어요. ▶인생의 후배들에게 꼭 이 말만 하고 싶다면?‘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 영국 작가 L.P. 하틀리(L.P. Hartley)의 소설 「중개인」(The Go-between, 1953)의 첫 문장이에요. 저는 모든 이들이 누군가의 과거가 아니라 자신의 현재를 살길 희망합니다. 제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죠. 과거는 외국일 뿐 나의 현재가 아님을 깨닫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때 시제는 항상 현재, 그만큼 하느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것은 나의 현재에 집중하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하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에, 두렵고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가 많다. 그녀는 쉽게 두려워하고 자신감이 많이 없는 성격이지만 “두려워 마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떠올린다고 한다. 결국, 혼자 부딪혀야 하는데 그 순간 나를 지켜주시는 분은 하느님뿐이라는 생각에서다. 그 말씀을 믿으면서도 항상 두렵고 떨리지만,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실 것을 믿는다고 했다. 그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믿음’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변호사들이 더 많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인터뷰 내내 떠나지 않았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cpbc2022.07.05

수원교구, 한 달 사이 성전 네 곳 봉헌식 ‘경사’동판교본당·안산 성안나본당칠보본당·풍산본당 순서로 진행각 본당마다 봉헌식 앞두고성경 쓰기·묵주 기도 등 활발 동판교성당 전경. 수원교구가 10월 9일부터 11월 7일까지 한 달 사이에 성전 4곳 봉헌식을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거행하는 경사를 맞았다. 성전 봉헌식을 하는 곳은 동판교본당, 안산 성안나본당, 칠보본당, 풍산본당이다. 4곳 가운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판교로 125에 위치한 동판교본당(주임 김대영 신부)이 가장 빠른 9일 성전 봉헌식을 거행한다. 동판교성당은 건물 연면적 6760㎡ (2045평)에 지하 2층, 지상 4층 구조다. 모두 11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준공했으며 2013년 9월 1일 입당 미사를 봉헌했다. 동판교본당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감안해 상임위원, 남·여 소공동체 봉사자 등 소수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용철(베드로) 총회장은 “현재 신자 수가 5770명으로 공동체가 같이 힘을 합해 묵주 기도 봉헌, 선교 활동 등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성전 봉헌식 이후에도 소공동체 중심으로 성당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이어 안산시 단원구 광덕2로 112에 있는 안산 성안나본당(주임 노인빈 신부)이 17일 성전 봉헌식을 갖는다. 성당은 연면적 2189㎡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로 지하 1층은 주차장과 회합실, 1층은 사제 집무실과 사무실, 만남의 방, 2층은 대성전, 3층은 화합실, 4층은 성가대석이다. 안산 성안나본당은 2005년 9월 23일 설립됐으며 2011년 3월 성전 입당 미사를 가졌다. 성당 측은 “1000여 명의 신자가 오로지 교무금에 의존해 성전 건설비를 갚느라 11년의 세월이 걸렸다”며 성전 봉헌식을 맞는 기쁨을 드러냈다.칠보본당(주임 최원섭 신부)도 25일 수원시 권선구 칠보로 153 현지에서 성전 봉헌식 및 본당 설정 25주년 기념 미사를 거행한다. 성당은 지하 2층, 지상 3층이며 1층은 회합실과 사무실, 식당, 2층 대성전, 3층은 성가대석으로 이용하고 있다. 1996년 설립된 칠보본당은 2004년 10월 새 성전 입당 미사를 봉헌했다. 입당 미사 후 성전 봉헌식을 갖게 된 건 17년 만이다. 최원섭 신부는 “코로나19 감염병 이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본당 설립 25주년 행사와 성전 봉헌식을 위해 ‘묵주 기도 100만 단 바치기’와 ‘구역별 성경 쓰기’에 동참해 주신 모든 교우들께 감사드린다”며 성전 봉헌에 노력한 신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일준(빈첸시오) 총회장은 “그동안 성모상 훼손과 10년 전 물난리, 성전 건립에 따른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잘 극복했다”며 “본당 설립 25주년과 성전 봉헌식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칠보 공동체가 대내 외적으로 더욱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마지막으로 풍산본당(주임 정지용 신부)이 11월 7일 성전 봉헌식을 거행한다. 하남시 덕풍북로 117에 자리한 풍산성당은 연면적 2505㎡에 지상 2층(신자석 450석) 규모다. 건물은 2011년 4월 준공됐다. 봉헌식 한 달여를 앞두고 풍산본당은 신자들에게 묵주 기도, 성경 필사와 읽기, 나의 봉헌서 제출 등 신자들에게 기도와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정지용 신부는 주보를 통해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의 사랑과 정성이 모여 기쁨과 영광의 봉헌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수원교구는 성전 입당 미사와 성전 봉헌식을 별도로 갖고 있다. 성당을 짓는 데 소요된 비용을 모두 갚은 후 성전 봉헌식이 거행돼 건물 준공 및 입당 미사와 성전 봉헌식은 통상 10여 년 이상의 차이가 난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1.10.06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공동선의 토대[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27.사회 공동체 재건을 위하여- ⑥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 사랑의 본성은 루카 복음 15장의 ‘잃어버린 것들의 비유’에서처럼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 회복시키는 데 있다. ‘착한 목자’, 3세기, 프레스코, 프리실라 카타콤, 이탈리아 로마. 구약 성경의 곳곳에서 하느님을 고아와 과부, 당시 사회적인 약자들의 보호자로 소개하고 있다. “하느님은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다.”(신명10,18) “하느님께서는 고아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과부가 쏟아 놓는 하소연을 들어 주신다.”(집회 35,17) “힘없는 이, 당신께 몸을 맡기고 당신께서는 고아에게 친히 보호자가 되십니다.”(시편 10,14)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은 당시 고대사회의 보편적인 신관에서 벗어난 매우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당시에 신은 그 사회의 지배층, 즉 왕과 귀족, 사제 등 힘 있는 사람들의 대변자로 여겨졌다. 예수님 역시 구약 성경의 사회적 약자 보호 정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신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그리고 예수님은 다섯 부류의 사회적 약자, 즉 헐벗은 사람, 굶주린 사람, 집 없이 떠도는 사람, 병든 환자,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언급하시며 그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을 때,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 서게 될 ‘최후 심판’에서 단죄를 받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하신다.(마태 25,31-45) 구약의 정신과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과의 특별한 연대를 추구했던 전통에 따라 교회는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해 중단 없는 활동을 해 왔다. 요컨대 가난한 이들, 소외받는 이들, 어느 모로든 자신의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는 생활조건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으며 그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 그리스도교 사랑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늘 강조해왔다.(「새로운 사태」 182항)약자를 우선 돌보는 일이 ‘하느님의 일’구약 성경이나 예수님께서는 왜 이토록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것이 우리 각자가 실천해야 할 그리고 우리 사회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우선적인 사명으로 강조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선 약자들을 돌보는 일이 ‘하느님의 일’(Opus Dei), 즉 하느님께서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모든 이의 아버지요, 사랑이시다. 사랑의 본성은 루카 복음 15장의 ‘잃어버린 것들의 비유’(잃어버린 은전, 양, 아들)에서처럼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 회복시키는 데 있다. 우리 시선으로 볼 때, 양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떠나는 목자의 행동은 무모하게 보인다. 또한 아버지의 재산을 챙겨 탕진했을 뿐만 아니라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작은아들’을 용인하고 그에게 잔치까지 베푸시는 아버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고통받는 존재들에게 초연할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는 ‘도덕주의’, ‘능력주의’, ‘공리주의’와 같은 세상적인 논리를 초월하여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 데 온 마음을 기울이신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피조물의 상처와 아픔에 함께한다. 따라서 우리 역시 하느님 사랑의 본성을 지니고 있기에,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에 우선적으로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교황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이는 것이 특수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단 시간적으로 조금 빠르게 혹은 조금 늦게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도달할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함에도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영적, 심리적인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인 고통도 겪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경제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 치료약 개발 투자에 소극적이며, 정부에서도 소수의 권리에 대해 정치적인 표 계산으로 그들을 외면하기 쉽다. 이런 현실에도 희귀병 연구를 하는 어떤 교수가 다음과 같이 인터뷰한 내용은 참 인상적이다. “몇십만 몇백만 중의 한 명 꼴로 나타나는 희귀병에 대해 정부나 제약회사가 쉽게 투자하지 못하는 현실을 저는 이해합니다. 많은 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희귀병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곳에 국민 세금을 투여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에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희귀병을 앓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그 병고를 그들이 대신 앓고 있을 수도 있음을 유념했으면 좋겠습니다.” 참 공감이 가는 말씀이다. 우리 자신이 불행의 처지에서 제외된 것에만 안심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해주는 황금률교회에서 말하는 공동선의 원리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라는 뜻이다. 사회 전체의 이익은 무엇을 의미할까?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해주라’는 ‘황금률’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이 사회에 가장 중요한 공동선이 아닐까! 여러 이해 당사자를 두고 판단하거나, 과반수의 이익이 다른 모든 관심사를 앞선다고 주장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전적으로 부합된다. 따라서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언급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은 공동선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cpbc2022.06.02
![[베네딕토 16세 선종] 신앙의 위기 속에 탄생한 교회의 수호자](//cpbc.co.kr/CMS/newspaper/2023/01/rc/838416_1.7_titleImage_1.jpg)
[베네딕토 16세 선종] 신앙의 위기 속에 탄생한 교회의 수호자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업적과 발자취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발코니에서 신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CNS신앙의 위기 속에 탄생한 교회의 수호자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을 수호하고, 진리와 교의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은 새천년기가 막 시작한 시기 사도좌에 착좌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 자연스레 주어진 사명이었다. 신앙의 위기감이 팽배해진 당시, 일찍이 신학자로 활약해온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의 교황 즉위는 주님의 섭리였다.세기 말부터 지구촌 곳곳에서 들끓기 시작한 무신론자들의 범람과 교회를 향한 공격, 서구 사회에서 고삐 풀린 듯 쏟아져 나오는 세속주의 세태와 상대주의의 흐름 속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재위 8년간 ‘교회의 수호자’ 역할을 다했다. 선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공산주의와 싸웠다면,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그리스도교를 흔드는 사상의 풍랑과 맞서 싸웠다.교황은 난무하는 이데올로기와 사상의 격랑 속에 추기경 시절부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지, 신학자들의 실험장이 아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올바로 계승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계승해 ‘영적인 사막화’가 진행되는 현대 사회가 새로운 복음화로 무장하는 데 힘쓴 교황이었다.3차례의 세계 주교 시노드 개최교황은 즉위한 그해인 2005년 10월 교회의 핵심인 ‘성체성사’를 주제로 제11차 세계 주교 시노드(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를 개최해 성찬례 거행과 공경의 의미를 북돋웠다. 곧이어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낸 것도 모두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신앙의 핵심으로 돌아가도록 이끌고자 한 그의 의지였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8년 ‘성경’, 2012년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총 3차례의 세계 주교 시노드를 개최했다.8년 사이 3차례나 세계 주교들을 소집한 것도 탈 그리스도교 현상에 맞서고자 교회의 지혜를 모으기 위함이었다. 특히 재위 말, 그에겐 ‘신앙의 전수’와 ‘새로운 복음화’가 키워드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신앙의 해’는 신앙의 회복과 더불어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그의 사도적 사명을 보편 교회에 적용한 것이다. 교황은 2010년 “우리 시대는 신앙 포기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며 “현대 세계에서 선교 열정을 가지고 새 복음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선포하고, 교황청에 ‘새복음화촉진평의회’를 신설했다. 바오로 사도, 사제직, 그리고 공고한 믿음교황은 이와 더불어 3차례 기념의 해를 제정해 보편 교회가 하나 되도록 이끌었다. 교황이 ‘바오로의 해’(2008~2009년), ‘사제의 해’(2009~2010), ‘신앙의 해’(2012~2013)를 선포한 것은 2000년 가톨릭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다시금 깊이 이해하고, 교회 공동체가 단단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전 세계 신자들은 ‘완벽한 선교사’였던 바오로 사도의 열정을 본받고, 사제들은 사제직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했다. 교회 위기 속에 신앙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강조한 신앙의 해까지, 모든 지역 교회는 때마다 같은 주제 아래 모였고, 교회 안에서 희망을 얻었다. 28차례 해외 사목 방문, 복음화를 향한 헌신교황은 28차례 로마 밖으로 나가 ‘지구촌 평화의 사도’의 역할을 다했다. 고향 독일을 3차례나 방문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하자”며 모국을 새 복음화 바람의 진원지로 만들고자 힘썼고, 카메룬, 요르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레바논, 멕시코와 쿠바를 방문하며 ‘유럽의 교황’이라는 비난도 잠재웠다. 가정과 생명, 화해와 용서, 평화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물질 만능주의와 세속화에 젖은 현대인들에게 가톨릭 전통과 문화의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우며 새 복음화의 씨앗을 뿌렸다. 특히 가톨릭에 뿌리를 둔 유럽 사회는 신앙으로 재무장할 것을 강조했다.독일과 호주, 스페인에서 열린 3번의 세계청년대회에도 참석해 젊은이들에게 신앙 열정을 불어넣었다. 교황은 10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운집한 대회 때마다 “그리스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고 단단한 신앙의 반석을 세워 하느님과 하나 되자”고 힘을 실었다.특히, 2012년 교황은 쿠바를 사목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의장과 마주했고, 오랜 사회주의 체제지만 종교활동이 자유롭게 펼쳐지길 기원했다. 이를 계기로 쿠바는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종교 행사에 대한 제재를 완화했으며, 이후 미국과 쿠바가 국교를 정상화하는 데에도 기여하는 등 화해의 사도로서 역할도 다했다. 추기경 90명 임명, 45명 시성베네딕토 16세 교황은 8년 재위 기간 한국 교회의 고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해 추기경 90명을 새로 임명하고, 보편 교회의 공동체 결집과 선교력을 강화했다. 한국의 옥현진 대주교와 김종수 주교와 손삼석 주교를 비롯해 96명에 이르는 각지의 사제들을 주교로 임명하기도 했다.아울러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를 비롯해 세계 모든 신자가 공경해야 하는 복자도 45명 시성했으며, 800여 명을 시복했다. 교황이 즉위한 2005년 10억 9000만 명이었던 지구촌 가톨릭 신자 수는 8년 뒤 12억 5000만 명에 이르렀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cpbc2023.01.01
![[생활속의 복음] 성체 성혈 대축일 - 모두를 충만하게 하는 사랑의 기적](//cpbc.co.kr/CMS/newspaper/2022/06/rc/826018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성체 성혈 대축일 - 모두를 충만하게 하는 사랑의 기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군중을 단지 육신의 음식으로 배를 불리는 것을 넘어, 사랑이 가득 담긴 영혼의 양식으로 배부르게 하시어 삶의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만들고자 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라는 명령에는 제자들로 하여금 ‘사랑의 나눔’에 동참하기를 바라시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돌려받을 것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이런저런 조건들을 달아가며 스스로에게 제한을 두지 말고, 손해 보는 것을 아까워하며 망설이거나 미루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그 나눔을 통해 제자들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돈을 지불하고 사는 가치들이 아니라, 햇볕 공기 물처럼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거저 베풀어주신 것들임을, 그런 하느님 사랑을 생각한다면 내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베풀고 나누어야 함을, 사람을 참으로 사람답게 살게 하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요소가 바로 그 사랑임을 알게 되는 겁니다.그러나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섭리’보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먼저 봅니다. 자기들에게는 수천 명분의 빵을 살만큼 큰돈이 없습니다. 그럴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장 내일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 빠듯한 처지에서, 왜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저들의 끼니까지 챙겨줘야 하는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내 한 몸 챙기기에도 버겁고, 하루하루 고된 삶을 지탱하기도 힘든데 대체 그럴 ‘여유’가 어딨느냐고, 지금 자기들이 가진 거라고는 제 입에 풀칠하기에도 모자란 보잘것없는 양식이 전부인데 그것마저 내어주기는 싫다고, 우리도 좀 먹고살아야겠다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겁니다.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복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른다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분을 공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자세입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의 크고 작음을 비교하고 따지기 전에 먼저 ‘감사’해야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이 감사가 바로 ‘성체성사’의 핵심입니다. 내가 받고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작은 것들에도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을 때 그것들을 기꺼이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 손안에 내어드린 것들을 축복하시어 그것들이 단순한 물질에만 머무르다 썩어 없어지지 않고, 우리를 충만히 채워주시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의 표징으로 변화되게 하십니다.주님 당신 손으로 변화시키셨으니 그대로 나누어주시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굳이 제자들의 손을 빌려 ‘사랑의 성사’가 된 그 양식들을 나누어 주십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돈에 기울어져 사람을 외면하는 ‘황량한’ 마음이 아니라, 사랑에 기울어져 자신을 내어주는 충만하고 따스한 ‘정’(情)임을 느끼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지금 내가 갖고 누리는 모든 것은 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이니 그 선물을 받은 내가 할 일은 그것이 내 안에 고여 욕심으로 썩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흐르게 하여 모두를 살리는 일임을, 우리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서로를 내어줌으로써만 살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그렇게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열둘은 그 어떤 모자람도 없는 충만함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모두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사랑의 기적은 나누고 베풀려는 작은 진심에서 시작됨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분명 작은 숫자이지만 다섯과 둘을 합치면 ‘일곱’이라는, 성경에서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가 됩니다. 나 혼자만 빵을 먹으려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다른 이에게 빵이 되어주는 이타심으로 나아갈 때, 우리 모두를 사랑의 참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워주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cpbc2022.06.14
전통적 영성 대가들이 기도하는 법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토마스 키팅 지음이청준 옮김가톨릭출판사“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6)향심기도 수련자들은 말한다. “기도를 하자 깊은 평화를 느꼈다”, “내 몸 전체가 기도에 더욱 깊이 들어가길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묵상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나에게도 이런 체험의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는 나 자신 안으로 들어가 하느님과 만나는 것이라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 순간 툭툭 튀어나오는 생각이 방해한다. 그런데 이렇게 시끄러운 내면으로 조용히 들어갈 방법이 있다고 한다. 향심기도는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6)는 복음 말씀에서 유래됐다.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영성 대가들은 이 성경 구절을 보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 왔다. 저자 토마스 키팅 신부는 이러한 대가들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행태로 만들었다. 1997년 발행된 이후 이를 배우려는 입문자들의 가장 보편적인 지침서가 된 이유다. 가톨릭출판사에서는 향심기도를 처음 접하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새로운 역자의 번역으로 전면 개정해 이 책을 선보인다. 토마스 키팅 신부는 미국 트라피스트 수도회 사제로, 1961년에서 1981년까지 스펜서에 있는 요셉 수도원에서 수도원장으로 활동했다. 1975년 향심기도 운동을 시작했고, 1984년 국제관상지원단을 창설했으며 2018년 선종했다. 대표작으로는 이 책을 비롯해 「침묵의 대화」, 「내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 등이 있다. 박예슬 수습기자 okkcc8@cpbc.co.kr 평화신문2022.06.02

아들 커밍아웃에 큰 충격… “바라보는 눈은 바꿀 수 있죠”[사순, 기억과 희망] 4. 성소수자 부모모임 성소수자 부모모임 홍정선 대표가 월 모임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성소수자. 인원이 적어 차별받는다는 문제를 넘어 혐오 섞인 시선과 제도 속에서 어디에도 발붙이기 힘든 소수자다. 교회 역시 사목적 배려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이웃으로 함께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온전히 그들의 삶과 생각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런 그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함께 고통을 겪는 이들이 있다. 부모들이다. 어떤 면에서는 더 큰 십자가를 지기도 한다. 성소수자 부모모임(대표 홍정선 체칠리아)에 참석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 아이가 성소수자?! “오늘 처음 참석했습니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처음 참석한 게이 아들을 둔 엄마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마이크를 넘겼다. 홍정선 대표는 “자녀로부터 커밍아웃을 들은 부모들은 충격과 부정, 분노 등 암 환자들이 겪는 고통과 비슷한 과정을 겪고, 대부분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홍 대표 또한 자신의 아들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처음 안 게 아들이 대학교 졸업을 두 달 앞둔 때였다. 아들은 평소와 다르게 우울해 했고,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크게 모나지 않게 자란 탓에 걱정은 더했다. 마침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엄마는 캐묻기 시작했다. 그때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처음 듣게 됐다. “순간 굉장히 충격을 크게 받았습니다. 벼락을 맞았다고 해야 하나, 아무 생각도 나지 않더군요.” 독실한 신자였던 홍 대표는 본능적으로 “아들에게 실수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주님께 먼저 바쳤다. 그리고 곧바로 미국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상의하며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깊은 고민과 기도 끝에 엄마는 아들에게 편지를 남겼다. “엄마는 지구가 뒤집어져도 네 편이야. 괜찮아. 사랑해.” 한참 동안 편지를 읽은 아들은 비로소 방에서 나와 학교를 향했고, 무사히 졸업까지 했다. 이후 홍 대표의 여정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감정이 휘몰아치더군요.” 그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 시간에 성당을 찾아 기둥 뒤에 숨어 한참을 울면서 하느님을 원망했다고 회상했다. 성소수자 부모들이 행진하며 자녀들의 인권을 호소하고 있다.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스틸컷.) 성소수자 부모모임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겠다고 생각한 홍 대표는 먼저 겪은 부모들의 조언을 듣고 싶어 고향인 청주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성소수자 인권단체 모임에 참석한 그는 “본인 위치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들을 만났고,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타고난 성향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성소수자 부모들을 만나면서 큰 위로를 받고는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2014년 2월 ‘성소수자 부모모임’을 만들었다. 현재 평균 50여 명이 월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부모뿐 아니라 자녀도 함께 오기도 하고, 다른 부모의 조언과 위로를 듣기 위해 홀로 참석하기도 한다. 모임에 처음 참석하는 이들은 대부분 눈물을 흘린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자리하고 있고, 열려있다고 생각한 부모도 막상 자신의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충격에 휩싸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처지의 부모들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위로하며 치유의 과정을 거친다. 사제, 수도자, 목사 등 종교인들도 참석해 위로를 건네고 있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홍 대표는 2019년 3월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의 실태와 문제’를 주제로 열린 강연에 패널로 초대됐고, 주교들의 위로를 받기도 했다. 제9회 천주교인권위원회 이돈명인권상도 수상했다. 2021년에는 성소수자 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이 극장가에 상영돼 현재까지 다수의 상을 받고 있다. “존재는 바꿀 수 없지만, 바라보는 눈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아만 있어다오 모임에서 만난 부모들은 “성소수자에게는 가족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무리 자기주장이 강하고 내면이 단단한 이들이라도, 사회가 바라보는 혐오의 시선을 버티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레버 프로젝트의 ‘성소수자 청소년 정신 건강에 대한 전국 조사 2020’에서는 성소수자 중 40%가 자살 시도를 고민했다고 나온다. 특히 모임에서는 부모나 가족이 성소수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살률이 8배가 높다는 의견을 나누며 부모 본인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성찰했다.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부모의 경우에는 정신과 치료를 받기를 권하거나, 전환치료를 요청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 가족의 연을 끊어버리기도 한다. 홍 대표는 “한동안 동성애를 질병으로 치부해왔지만, 오늘날 세계 의학계에서는 동성애, 양성애, 무성애가 치유돼야 할 질병이 아닌 성적 지향으로 개념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을 바꾸듯이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매월 열리고 있는 성소수자 부모모임에 참여한 박상훈 신부가 교회 입장을 전하며 위로하고 있다. 성소수자 부모, 하느님의 축복 교회는 남자와 여자로 창조됐다는 성경 말씀에 따라 두 성의 결합을 혼인으로 본다. 또 혼인의 목적을 자녀출산으로 보고 있다. 곧, 생명 윤리와 혼인법 등에 따라 동성애자는 온전히 교회에 받아들여질 수 없다. 다만 성향 자체를 지니고 있는 것을 단죄하지는 않고, 행위로 이어진다면 윤리적으로 부당하다고 본다. 모임에 참여한 박상훈(예수회 인권연대연구센터 소장) 신부는 “동성 간 결합이 교리적으로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며 “하지만 사목적 관점으로 하느님 백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을 배제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다양함을 받아들일 때 더 충만하고 풍요로운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첫 해외사목 방문지인 브라질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동성애자를 단죄할 수 없다고 답한 바 있다. 또 지난해 제임스 마틴 신부에게 보낸 성소수자들에 대한 서한을 통해 “하느님은 그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전하는 등 사목적인 차원에서 성소수자들을 배제해서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시노드 차원에서도 성소수자를 교회가 어떻게 품어야 할지 논의 중에 있다. 홍 대표는 “아들의 커밍아웃 전과 후의 삶 중 선택하라고 하면 단연코 후자를 선택할 것”이라며 성소수자 부모로 살고 있는 현재 자신의 삶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했다. “본당 활동을 열심히 하며 하느님과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커밍아웃 후 내려놓는 법을 배웠습니다. 아들 덕분에 제가 성장한 것이죠. 그런 부모들이 모여 서로 경청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사랑이 싹트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약자들의 처지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해 연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금의 제 모습을 보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까요. 저는 축복 받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들에게 꼭 전하고 싶습니다. 내 아들로 태어나 줘서 정말 고마워.”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민규2023.03.14

신앙생활의 뿌리, 코로나19로 크게 흔들렸다수원교구 동탄반송동본당작년 11월 2주간 본당 신자1600명 신앙생활 실태 조사... 고해성사·기도생활 소홀해져 수원교구 동탄반송동본당 신앙생활 실태 조사 결과 표. 고해성사와 기도생활이 떨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가 3년째 지속되면서 주 1회 이상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의 비율이 40% 이상 줄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수원교구 동탄반송동본당(주임 김만희 신부)은 지난해 11월 2주간에 걸쳐 본당 전 신자 1600명을 대상으로 신앙생활 실태를 조사했다. 응답자는 조사 대상의 35%인 554명, 비응답자는 65% 1046명이다. 설문 분석은 응답자의 답변으로 진행됐으며, 조사 결과는 본당 카페 게시판에 2월 12일 게재됐다. 조사에서 코로나19 이전 407명, 73%였던 주 1회 이상 미사에 참여 비율은 코로나19 이후에는 174명, 31%로 떨어졌다. 대신 코로나19 이전 147명, 27%에 불과했던 ‘불규칙 참석’, ‘불참’ 비율은 코로나19 이후에는 380명, 69%로 대폭 늘어났다. 코로나19로 인해 신앙생활의 뿌리도 크게 흔들린 것으로 나타났다. ‘미사와 대송 등 주일 의무를 지켰다’는 사람이 59%에 그친 반면 ‘어쩌다가 한 번 했다’와 ‘한 적이 없다’는 응답이 41%를 차지했다. 영성체에 대한 생각도 ‘당장 시급한 게 아니라서 미루고 있다’와 ‘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21%나 됐다. 고해성사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가능한 범위에서 했다’ 등 긍정적 대답은 351명, 64%에 그쳤고 ‘감염 때문에 꺼려서 안 하고 있다’ 등 부정적 답변이 232명, 42%를 차지했다. 기도생활 변화 여부도 ‘변함없이 매일 한다’ 등 ‘한다’라는 대답이 322명, 58%였지만, ‘코로나 이전보다 더 소홀해졌다’ 등 부정적 답변도 232명, 42%에 달했다. 코로나19 이후 신자로서의 정체성도 전반적으로 약해졌다. ‘신앙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 등 긍정적 답변이 절대다수인 442명, 80%를 차지했지만 , ‘비신자와 별다를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응답도 112명, 20%에 달했다. ‘의미 있는 신앙생활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미사 및 영성체’라는 대답이 286명, 52%로 가장 많았다. 이어 ‘복음 묵상과 성찰ㆍ 성체조배’라는 응답이 13%, ‘가정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하는 기도’라는 응답이 13% 순이었다. 성경 말씀을 접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강론이나 복음 해설, 방송 매체 등의 도움을 받아 성경 말씀을 듣는다’는 응답이 161명, 29%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미사 참여를 못 하면서 성경 말씀도 못 듣는다’는 응답도 24%에 달해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성당에서 이뤄지는 미사를 통해 코로나19에 감염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상존했다. ‘마스크를 착용하면 감염되지 않을 것’이라는 신자가 310명, 56%로 다수를 차지했지만 ‘감염 위험이 있다’와 ‘불안하다’는 응답자도 39%나 됐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는 위드 코로나로 전환해 성당 대면 미사를 확대할 경우 67%, 371명은 ‘참석한다’고 답했지만 ‘이전보다는 덜 참여할 것이다’. ‘모르겠다’고 답한 사람도 33%나 됐다. 김만희 신부는 “코로나19 상황 동안 우리 공동체 안에서 실제 신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설문 조사를 했다”며 “문자 발송을 하고 온라인상에서 설문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응답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정교하게 작성된 설문이 아니어서 이번 조사는 유의미한 통계자료로서 적절하지는 않다”고 전제하고 “다만 신자들이 내가 실제로 어떤 감각으로 신앙을 느끼는지 이런 것들을 스스로 확인하고 우리 공동체의 다른 신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공유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2.03.01

“말씀의 사도직 증거하는 삶” 다짐 가톨릭성서모임, 50주년 희년 ‘은총과 기쁨의 해’ 감사 미사 가톨릭성서모임 가족들이 50주년 희년 감사 미사에서 하느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해 온 기록들을 봉헌하고 있다. 장엄한 뿔나팔 소리가 서울 정릉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 수도원 일대에 울려 퍼지며 가톨릭성서모임 50주년 희년 감사 미사의 시작을 알렸다. 가톨릭성서모임은 9월 25일 수도회 본원 운동장에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주례로 50주년 희년 ‘은총과 기쁨의 해’(마태 5,12)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에는 초창기 활동했던 성서가족부터 이들과 함께해 온 수도자, 사제 등이 함께했다. 성서가족들은 미사에 앞서 22일부터 ‘말씀의 초막제’를 지내며 희년을 기념했다. 미사에 참여한 말씀의 봉사자들은 ‘말씀의 봉사자 갱신식’을 통해 말씀이신 주님 앞에서 자신의 사명을 되새겼다. 이들은 “우리가 선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하고 우리 자신은 예수님을 위한 여러분의 종으로 선포합니다”라고 외쳤다. 성서가족은 예물봉헌 시간에 봉사자들이 필사한 성경, 희년 실천사항을 적은 편지, 1년간 홀몸노인과 어려운 이웃을 방문한 기록, 봉사자 사진, 말씀 체험담 문집, 초막 미니어처, 신구약 통독 녹음파일 USB 등 희년을 준비하며 하느님 말씀을 삶으로 실천해 온 기록들을 봉헌했다. 정순택 대주교는 강론에서 “말씀의 사도직을 우리 교회 안에 열어주시고 50년간 널리 사도직을 행해주신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 모든 수녀님과 함께해준 신부님, 봉사자와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면서 “한 분 한 분의 정성, 그동안 하느님을 만났던 눈물과 땀과 감동이 어우러져 오늘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질적 행복을 넘어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비교할 수 없는 보화가 있다는 것을 말씀 사도직을 통해서 세상 안에서 증거하고 선포하는 선교사 역할을 계속 깊여가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50주년 축하식은 가톨릭성서모임을 위해 헌신해 온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시간으로 꾸려졌다. 정 대주교는 50년 전 가톨릭성서모임의 씨앗을 뿌린 조화선 수녀와 가톨릭성서모임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함께해 온 김수창(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신부에게 희년 감사패를 전달했다. 가톨릭성서모임 역사의 산 증인인 조광(이냐시오, 「가톨릭성서모임 50년사」 감수)ㆍ김영섭(시몬, 가톨릭성서모임 상징 물고기 제작)ㆍ이용결(루카, 도서출판 성서와함께 편집부장 역임) 성서가족에게는 공로패가 수여됐다. 25년 이상 활동해 온 말씀의 봉사자 49명에겐 근속상이, 봉사자들의 모범이 된 말씀의 봉사자 83명에겐 말씀의 등불상이 돌아갔다. 수도회 총원장 나현오(레지나) 수녀는 “희년을 맞으며 5년 전부터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고, 말씀의 생명력을 깊이 체험하는 시간을 보냈다”면서 “우리 모두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면서 말씀을 가득 안고 새롭게 출발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가톨릭성서모임은 1970년대 초 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 수도자들이 시대의 어둠 속에서 방황하던 젊은이들을 하느님 말씀으로 초대하며 시작됐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하느님 말씀을 읽고, 선포하는 가톨릭성서생활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해왔으며 해외로도 퍼져나가 말씀의 봉사자 2700여 명을 배출한 공동체로 성장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cpbc2022.09.28
![[금주의 성인]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9월 3일)](//cpbc.co.kr/CMS/newspaper/2022/08/rc/830208_1.1_titleImage_1.jpg)
[금주의 성인]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9월 3일)540~604년, 중세 교황권의 창시자, 학자,...가수와 음악가ㆍ학생ㆍ교사의 수호성인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540년 무렵 로마의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법학을 비롯한 귀족 계층의 고등 교육을 받은 그는 573년 로마의 시장을 지냈습니다. 이듬해 아버지 고르디아누스가 세상을 떠나자 모든 재산을 교회에 기증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의 길을 걷습니다.590년 펠라기우스 2세 교황이 선종하자 성인은 수도자로는 처음으로 제64대 교황에 선출되었습니다. 전염병이 로마를 휩쓸고 있던 시기에 출중한 행정 능력과 깊은 신앙심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교회 법령을 정비하고 무능한 성직자들을 해임하며 사제와 주교들의 영적 쇄신을 강조하고, 막대한 경비를 들여 기아와 전염병으로 시달리는 시민을 구호하기 위한 자선활동을 전개했습니다. 로마 근교까지 침공했던 랑고바르드족(Langobards)으로부터 포로들을 석방하고, 부당한 박해를 받던 유다인들을 보호하였습니다. 성인은 학덕 또한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중세 주교와 사제가 꼭 읽어야 하는 교과서와도 같은 「사목 지침서」 「욥의 윤리」 등 각종 성경 해설집과 설교집, 당시의 신학·전례·역사·사회학의 풍부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800여 통의 서한을 모은 「서간집」 「그레고리우스 전례서」 등을 집필했습니다. 특히, 교회의 성가를 재조정하고 그레고리 성가도 제정하여 ‘그레고리안 성가’의 편집자로 추앙받고 있습니다.성인은 게르만족의 개종과 영국 앵글로색슨족의 개종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성인이 수도원장으로 재임할 때 로마 시내에서 영국에서 온 포로들이 노예로 팔리는 것을 보고는 그들에 대한 연민과 관심을 품게 되었던 것이죠. 597년에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원장인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5월 27일)와 40여 명의 수도자를 영국의 켄트 왕국에 파견했고, 601년에는 영국에 요크(York) 대교구와 캔터베리(Canterbury) 대교구와 12개의 소속 교구를 설정하였습니다.성인은 교황을 일컫는 칭호인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함으로써 교황권이 지배의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권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라틴 교부의 일원이자 서방교회의 전통적인 4대 교부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중세 교황권의 창시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고대에서 중세로의 전환기에 성인의 다양한 활동과 영성적 위대함으로 인해 ‘대교황’으로 불립니다. 성인은 604년 3월 12일 로마에서 선종하여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고, 사후 즉시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축일은 선종한 날인 3월 12일에 지내오다가 1969년 전례 개혁과 함께 라틴 교회에서는 그가 교황으로 착좌한 9월 3일로 옮겨 기념하고 있습니다. 음악가, 가수, 학생, 교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습니다. 문채현2022.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