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일 미사 참여자 70% 수준 하락… 청년 신자 이탈 가속화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코로나19 시기 신앙과 삶’ 설문조사 결과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한국 교회는 대면 미사가 중단되는 미증유(未曾有)의 상황을 경험했다. 신앙생활은 방송과 온라인 등 비대면 중심으로 이뤄졌고, 본당 역시 오랜 시간 활동을 멈춰야 했다. 커다란 변화의 여파가 ‘한국 천주교회 코로나 팬데믹 사목백서를 위한 설문조사’에 여실히 나타났다. 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담당 김종수 주교, 소장 곽용승 신부)는 전국의 만 19세 이상 천주교 신자 1063명, 비신자 국민 1000명에게 코로나19 시기 전후의 신앙생활과 삶의 변화, 교회에 바라는 점 등을 물어본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미사 참여율 직격탄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는 주일 미사 참여율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주일 미사에 매주 참여하는 신자 수가 팬데믹 이전의 70% 수준에 머물렀다. 이 가운데 15.3%는 앞으로도 참석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미사 불참 사례가 더 많았고, 연령과 소득이 높을수록 주일 미사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이 많았다. 주일 미사에 참석하지 않고 있는 신자 가운데 37.1%는 신앙생활 기간이 31년 이상 된 이들로, 오랫동안 미사 참여를 열심히 해온 이들에게도 타격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미사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주일 미사 불참에 익숙해져서’라는 대답이 58%로 가장 많았다. 고해성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과 감염 우려 등도 미사 참여율 감소의 원인이었다. 당분간은 미사 참여율이 반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응답자 가운데 절반(40.3%)에 가까운 이가 앞으로 주일 미사 참여자가 더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교회의 가장 큰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청년 신자들의 이탈은 코로나 이후 더욱 가속화됐다. 팬데믹 이전, 절반을 조금 넘었던 20대 청년들의 주일 미사 참여율(53.2%)은 36.1%로 20%p 가까이 감소했다. 신앙생활에 적극적인 신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음에도 미사 참여율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5.4%는 특별한 경우에만 참여하거나 아예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미사 불참 이유 또한 코로나19 감염 걱정(43.9%), 주일 미사 불참에 익숙해져서(33.3%)라는 순이었다. 특히 주일 미사가 신앙에 더는 중요한 기준이 아니라고 응답한 비율(9.1%)이 다른 연령층 신자 비율의 평균치(7.8%)보다 높게 나타났다. 신앙 의식에도 영향 코로나19 대유행의 여파는 한국 교회 신자들의 신앙 의식 약화를 초래했다. 무엇보다 ‘의식과 실천’ 사이의 균열을 더욱 키웠다. 코로나19 상황을 거치며 기도와 성경 공부, 봉사, 나눔에 대한 중요성은 더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제 이를 실천할 의지는 더 멀어진 것이 드러났다. 이는 기부와 자선, 교무금, 헌금, 봉사시간의 축소로도 이어졌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그야말로 신앙에 있어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는 차이가 더욱 심화한 것이다.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는 통계 분석 보고서에서 “신자 간 접촉 빈도와 관계 밀도가 약화하며 실천적 측면에서 더욱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많은 신자가 코로나19 시기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점으로 심리적 어려움(49.1%)을 꼽았다. 이어 경제적ㆍ대인적 어려움, 건강 문제 등을 걱정했다는 대답이 주를 이었다. 신앙생활에 어려움이 많았다는 응답은 5번째였다.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는 결과는 교회에 큰 시사점을 준다. 이는 신앙생활 자체가 팬데믹 동안 주된 관심사가 되지 못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가톨릭사목연구소는 “신앙생활에 중대한 장애 요소가 발생했음에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은 평소 신자들에게도 신앙생활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거나, 코로나 기간에 약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가톨릭평화방송 ‘TV 매일미사’ 등 비대면 미사가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평화신문DB 교회를 향한 신자들의 요구와 관심 가톨릭평화방송 ‘TV 매일미사’를 포함한 온라인ㆍ방송 미사 등이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크게 줄였다는 응답도 많았다. 코로나 시기 방송 미사에 매번 참여하거나, 한 달에 두세 번 이상 참여한 신자는 응답자의 절반(49.9%)에 육박했다. 방송 미사에 참여한 이들 중 53.9%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방송 미사에 참여하겠다고 답했다. 비대면 미사에 적극 참여했던 신자들은 이후 대면 미사에도 잘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사목연구소는 “방송ㆍ온라인 미사 관련 경험에서 실제 미사에서 얻는 하느님 현존과 은총, 거룩함, 공동체의 체험이 어느 정도 이뤄짐이 드러났다”며 “이러한 체험이 코로나19 이후 실제 미사에 참여하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사 외에 더 다양한 신앙 콘텐츠를 원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특히 가톨릭 교리와 성지 순례, 기도ㆍ영성 강좌, 신앙 체험 나눔 등 교육ㆍ체험 관련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커졌다. 20대 청년들은 교회 음악과 미술, 건축 등 교회의 문화적 측면을 다루는 콘텐츠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국 천주교회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국 교회의 코로나19 대응을 조사한 결과 ‘잘했다’(41.9%)는 응답 비율이 ‘미흡하다’(33.7%)는 응답보다 많았다. 또 절반 이상이 한국 교회에 대한 신뢰(56.1%)를 드러냈고, 교회에 대한 시선이 호의적으로 바뀌었다는 응답도 31.7%에 달했다. 한국 천주교가 가장 잘한 활동으로 ‘무료 급식 제공’(38.9%), ‘지역민을 위한 성당 공간 개방’(31.8%), ‘독거노인, 빈곤층 등을 돕는 활동’(31.1%) 등 약자 보호ㆍ공공성 강화 활동 등이 꼽혔다. 다만 가톨릭사목연구소는 “조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절반에 가깝게(45.8%) 나온 만큼 호감도가 개선됐다고 판단하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탈권위,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 시선 설문조사 결과는 다양한 시사점 또한 남겼다. 먼저 ‘탈권위’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천주교의 이미지에 대해 ‘진정성 있고 거룩하며, 희생적이고, 따뜻하며 일치된 모습’으로 비친다고 답했다. 반면 교회가 부유하고, 폐쇄적, 위계적, 보수적이라는 이미지 역시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이미지는 코로나19 이후 신앙 회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미사에 참여하지 않는 신자들은 ‘일부 신자 위주의 본당 운영’과 ‘권위주의 문화’를 개선 사항으로 꼽았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교회 이미지를 ‘부유하고 폐쇄적이며 보수적’으로 보는 시각이 강했다. 가톨릭사목연구소는 “청년 사목에 있어 가난하고 개방적이며 진보적인 교회의 모습을 중요한 성찰 기준으로 삼아야 함을 시사한다”고 조언했다. 국민들은 천주교를 향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도움과 보호’, ‘사회적 갈등의 해소와 통합 노력’, ‘몸과 마음이 힘든 사람들을 위한 치유ㆍ돌봄 활동’ 등을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교회가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는 동시에 내적 쇄신도 함께 신경 써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교회 내부의 문제 해결이 더 시급하다는 시선도 있다. 그중 ‘교회의 공동체성과 친교 회복’(30.5%)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가장 컸다. ‘선교와 냉담 신자 회두 노력’(29.9%),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의 사목적 분위기 조성’(27.3%) 등의 의견도 많았다. 가톨릭사목연구소는 “코로나19 팬데믹 자체가 종교 일반에 가져온 위험도 있지만, 더욱 전향적으로 사회 안에서 교회의 역할을 고민하고, 이를 실천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팬데믹 이후 더욱 시급해진 교회 내부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이를 통해 밖으로 더욱 나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하여 성/연령/지역별 비례할당법에 따른 웹 패널 온라인 조사로 실시되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01%p(천주교 신자), ±3.10%p(비신자 국민)이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장현민2023.03.23

연대 확인된 가장 오래된 성당… 신앙 공동체 전례 정식화[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3. 두라유로포스 ‘교회의 집’ 두라유로포스 ‘교회의 집’ 가상도. 출처=Wladek Prosol 가장 오래된 교회의 집 ‘도무스 에클레시에’ 곧 ‘교회의 집’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전의 성당 중 유일하게 식별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성당이 1933년 시리아의 두라유로포스(Dura-Europos)에서 발굴되었다. 이것은 400년 이후에 알려진 것도 없고, 230년 이전에도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이제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 연대도 확인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유프라테스강 상류 지역에 있었던 두라유로포스라는 지명은 고대 도시 두라(Dura)를 헬라인들이 에우로포스(Europos)라고 불렀던 것에서 비롯한다. 두라유로포스는 본래 로마 제국의 동쪽 경계에 가까운 로마의 수비대 주둔지였다.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진 이 ‘교회의 집’은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그리스도교 건축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것이 헬레니즘의 영향을 크게 받은 메소포타미아 주변의 작은 도시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복음이 시리아까지 전해졌음도 증명해 준다. 이 ‘교회의 집’은 대지가 약 100평이며 몇 가옥들을 제외하고는 이 도시에서는 큰 건물에 속했다. 가까운 곳에는 유다인 회당과 미트라스 신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 집은 성벽 옆에 있었으므로 257년 도시 벽이 보강될 때 무너지고 말았다. 이 ‘교회의 집’은 230년이나 232년 사이에 어떤 상류 로마인의 전형적인 주택을 작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예배의 장소로만 사용하도록 개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교회의 집’은 관습적인 열주랑 타입의 평범한 도시 주거였는데, 개축한 후에도 외관은 개인 주택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주변의 비슷한 집들 사이에서 잘 숨겨져 있었다. 좁은 북쪽 골목길에서 문에 들어서면 전실의 벽을 두어서 길에서 집 안이 직접 보이지 않게 했다. 본래의 주택은 안마당을 기둥 두 개가 앞에 선 포티코, 지붕으로 올라가는 계단, 5개의 방이 둘러싸고 있었다. 아마도 이 마당은 오늘날의 성당 마당 같은 구실을 했을 것이다. 주택의 남쪽에는 방이 3개 있었는데, 그중 식당인 트리클리니움과 작은방 등 두 방의 벽을 터서 긴 직사각형의 집회실로 바꾸었다. 이 방은 5m×13m(약 20평)이며 방 높이가 5.22m나 되어 꽤 높다. 이 방에는 70명 남짓한 신자가 들어갈 수 있었다. 6000명 내지 8000명이 이 도시에 살았으므로, 적어도 90명이나 120명 가운데 1명꼴은 그리스도교 신자였을 것이다. 또 이 군사도시 주민의 25~50%가 군인이었으므로 신자 중에는 군인이나 그 가족이 꽤 많았을 것이다. 이 정도의 신자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려면 어떤 이의 주택의 식당을 빌려 사용한 ‘주택 교회’로는 더 이상 해결될 수 없어 주택을 ‘교회의 집’으로 개조했다. 이 집회실의 벽은 이전에 주택으로 쓰였을 때 있던 장식 일부가 남아 있었을 뿐 다른 장식이 거의 없는 흰 벽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특징은 방의 동쪽 끝에 약 1m×1m이고 높이가 20㎝인 돌로 만든 단인 베마(bema)를 두고 그곳에서 성경을 읽었다는 것이다. 이는 이전에는 연장자, 설교자, 초대한 집주인으로 구분되었고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이 모임을 이끌었지만, 이제는 성직자들이 모임을 이끌고 이 단에 앉아 신자들을 바라보았음을 말해 준다. 이렇게 사제와 일반 신자가 나뉘었고, 아이들은 베마에 가까운 곳에, 남자는 아이들 뒤에, 여자는 남자들 뒤에 자리 잡게 하여 신자들을 공간적으로 구분했다. 회중이 있는 ‘교회의 집’을 추정해 그린 그림을 보면 중심축 끝에 베마가 놓여 있고, 제단처럼 따로 구분된 자리에 장로들이 앉았으며, 회중은 가운데 통로를 두고 좌우로 나누어 앉거나 서 있었다. 베마 뒤에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이 방에 벽감이 있는 것을 보아 제의방이 집회실에 인접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넓은 식당이 없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안마당에서 단순한 형태로 공동식사를 했거나, 공동식사가 사라지고 성체성사가 중심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교가 점차 제도화됨에 따라 새로이 나타난 ‘교회의 집’의 공간 배치는 바실리카 타입의 성당 공간을 앞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두라유로포스 ‘교회의 집’ 세례실. 출처=Wikimedia Commons 교회의 집에 투사된 교회 공동체의 본성 신자들에게도 세례받은 신자와 그렇지 않은 예비신자의 구분이 생겼다. 3세기부터는 세례받은 신자와 예비신자가 같이 한 방에서 봉헌하는 ‘예비신자를 위한 미사(오늘날의 말씀 전례)’가 생겼다. 이 미사가 끝나면 오늘날의 성찬 전례인 ‘신자들을 위한 미사’가 이어지는데, 예비신자들은 미사를 볼 수는 없는 이웃하는 방으로 물러나 듣기만 했다. 중세 성당의 나르텍스(narthex), 곧 문랑(門廊)이라 해야 할 장소는 이렇게 일찍 나타나 있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세례받는 것이 대단히 중요함을 예비신자에게 공간적으로 분명히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두라유로포스의 ‘교회의 집’에서도 예비신자는 ‘신자들을 위한 미사’가 거행되는 동안 옆에 있는 서쪽 방으로 물러났다. 이 방은 4m×7m(약 9평)로 어림잡아 30명이 들어간다. 또 이 방은 예비신자가 세례를 준비하거나 다른 활동에 쓰였으며, 선반으로 책장을 둔 것으로 보아 일종의 예비신자 교리실이었을 것이다. 두라유로포스의 ‘교회의 집’에서는 세례를 위한 방을 따로 두었는데, 옆 방에서나 안마당에서 들어갈 수 있었다. 작은 방 끝에는 벽면을 우묵하게 들어가게 해서 만든 알코브가 있고, 그 위는 둥근 기둥이 받치고 있는 볼트 천장을 덮었다. 같은 시기에 있던 인근의 유다인 회당에서도 같은 볼트 천장이 토라 두루마리를 덮고 있었으나, 이 ‘교회의 집’에서는 같은 형식을 세례반 위에 사용했다. 그곳에는 바닥보다 몇 단 올라온 타일을 붙인 제법 큰 수조가 있었는데, 이때는 어른들만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다. ‘중풍 환자를 고치시는 예수님’ 출처=Yale University Art Gallery, Dura-Europos Collection 세례반 볼트의 아치에는 포도와 석류 등을 그려 천상의 잔치를 상징했고, 천장에는 푸른색 바탕에 별을 그려 밤하늘을 묘사했다. 벽에는 선한 목자, 아담과 하와, 우물가의 여인, 다윗과 골리앗, 물 위를 걷는 예수님과 베드로,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 등 오래된 그리스도교의 프레스코 그림이 있다. 특히 ‘중풍 환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은 그리스도교 회화 중 가장 오래된 그림이다. 이처럼 예술은 훨씬 오래전부터 하느님의 은총을 되새기는 데 크게 활용되었다. 이 프레스코 그림은 현재는 미국 예일대학교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장식이 거의 없는 집회실과는 달리, 세례실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그린 장식을 풍성하게 갖추고 있었다. 이는 집회실은 공적인 장소이고,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경험하는 의례의 장소로 구분하여 전례를 정식화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도무스 에클레시에’ 곧 ‘교회의 집’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비록 주택을 개조한 소박한 성당이었지만, 서서히 성체성사, 강론, 세례라는 신앙 공동체의 전례를 공간으로 구분하고 특별한 의미를 담게 되었다. 그러나 먼 옛날에 ‘교회의 집’이 그러했다고 아는 것은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의 집’에 투사된 교회 공동체의 본성을 다시 보는 눈을 찾는 것, 그것이 훨씬 중요하다. cpbc2023.03.23
![[가톨릭 영상교리] (6) 삼위일체](//cpbc.co.kr/CMS/newspaper/2022/05/rc/824340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영상교리] (6) 삼위일체하나이고 셋이시며, 셋이면서도 하나이신 분 정미연 화백 작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마태 28,19) 하나가 셋이 되고, 셋이 하나가 되는 신비! 가톨릭 교회 안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신비! 이 신비에 대해서 혹시 들어보셨나요? 아~ 네. 어려우시다고요? 가톨릭교회에서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시면서도 셋이시고, 셋이시면서도 한 분이시라고 말하는데요. 바로 삼위일체 교리입니다. 오늘은 그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스스로 완전하시고 완벽하신 하느님께서는 왜 하나이고 셋이시며, 셋이면서도 하나이신 분으로 우리에게 오셨을까요? 당신을 위해서였을까요? 우리를 위해서였을까요?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우리에게 알려 주셨는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한 분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가톨릭 신앙의 핵심인 ‘삼위일체’ 교리입니다.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 직접적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간접적으로 여러 부분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성경 속 삼위일체구약에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우리”라고 표현하거나 “말씀”, “영”, “지혜”라는 말로 암시적으로 드러내고 있고, 신약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께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면서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루카 1,35)라고 삼위의 신비를 표현했으며,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실 때는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1-22)라고 전하면서, 삼위께서 동시에 현존하시는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주실 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태 28,19)라고 말씀하시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이 함께하심을 분명히 언급하셨습니다. 초대 교회로부터 내려온 삼위일체 믿음이러한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은 사도들의 초대 교회로부터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믿을 교리’로 선포됐습니다. 그 ‘믿을 교리’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실제적으로 구분되지만 하나의 동일한 본성을 지니시고, 한 본체를 이루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성부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고, 성자께서는 성부로부터 세상에 보내진 성부의 아들로서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로부터 오시어 교회 안에서 머무르시며, 우리를 성화시키고 사랑으로 일치시키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자 고유한 활동을 하시되, 각각의 활동에 다른 두 위격이 함께 현존하고 함께 작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삼위일체의 신비를 신앙 안에서 받아들이고, 믿고, 고백하고, 가르칩니다. 또 전례 예식을 비롯해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신앙 행위의 기본인 십자 성호에서부터 영광송, 그리고 사도신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도문에 드러나고 있으며 세례성사를 위시한 모든 성사 생활에서 표현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을 삼위일체 대축일로 기념하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인류 구원 활동에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우리의 신앙생활은 반드시 삼위이신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친교와 일치에 참여하면서, 우리도 서로 친교를 이뤄야 합니다.우리가 기도를 바칠 때는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바치는 것입니다. 기도만이 아니라 우리 구원의 길 역시 성령 안에서 성자를 통하여 성부께 이르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으로 오시는 하느님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배려입니다. 우리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오고 싶으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한 분이시면서도 셋이시고, 셋이시면서도 한 분이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이제와 영원히. cpbc2022.05.18

종말론에 빠지는 청년들… 교회의 ‘생명력 회복’이 구원의 길유사종교의 현주소 (하) 유사종교에 빠지는 청년들 제라드로 스타르니나 작, '최후의 심판', 1422 , 독일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20대 청년인 ‘나’는 요즘 무척 심란하고 불안하다. 대학을 졸업한 지 한참 됐는데 아직 취업을 못 해서다. 오늘도 최종면접까지 본 회사로부터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SNS에 들어갔는데, 나만 빼고 모두 다 잘 살아 보여 기분만 상했다. 부모님 따라 어릴 적부터 열심히 다닌 성당에 안 간 지도 오래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여유가 없을뿐더러 ‘취업준비생이 시간이 참 많나 보다’는 시선도 겁난다. 이런 ‘나’의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은 최근 다시 연락이 닿은 대학 동창 A뿐이다. 오랜만에 만나보니 말도 잘 통하고, 신앙 얘기도 많이 해서 좋다. 때마침 A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너한테 딱 맞는 아르바이트 하나 있는데 안 할래? 성경에 대한 수필집을 같이 읽으면서 탈고하는 간단한 작업이야. 시급도 꽤 세.’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취준생에게 이런 ‘꿀알바’까지 소개해주다니, 이렇게 착한 친구가 또 있을까. 그런데 왜 부모님께는 얘기하지 말라는 거지?” (「신앙의 면역력」, (명형진 신부 저, 2021)에서 인용) 누가 왜 어떻게 유사종교에 빠지는가 ‘나’는 지금 대표적 유사종교인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신천지)의 모략 전도 수법에 당하고 있다. 행간을 보면 유사종교가 청년들을 어떻게 현혹하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인간관계나 취업ㆍ진로 문제로 힘들고 불안한 청년, 즉 ‘약한 먹잇감’을 노린다. 그리고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인 양 위장해 웃는 얼굴과 상냥한 태도로 접근한다. 청년들이 갈망하는 게 무엇인지 파악해 이를 충족해주며 호감을 산다. 한국 천주교 유사종교 대책위원회 실무위원인 명형진(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신부는 “유사종교는 그렇게 위로와 대안을 제공하는 듯 가장하며 서서히 자신들의 교리를 세뇌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언제나 유사종교는 이렇게 청년처럼 소외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계층을 집중적으로 포교해왔다. 주님께서 경고하신 것처럼 말이다. “너희는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너희에게 오지만 속은 게걸 든 이리들이다.”(마태 7,15) 유사종교 문제가 사회적 파장이 큰 이유도 중 하나도 상당수 피해자가 미래의 주축인 청년이라는 점이다. 이대로라면 ‘나’는 결국 유사종교의 늪에 빠져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천금 같은 시기를 날리게 된다. 사회는 물론, 가족이나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과도 단절될 것이다. 이렇게 유사종교에 세뇌돼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청년들은 뒤늦게 탈출하더라도 재기에 큰 어려움을 느낀다. 기성세대와 달리, 수많은 꽃다운 청년들이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채 ‘빈털터리’로 세상에 내던져질 수 있다. 탈종교화 흐름에도 청년 유사종교 피해자는 왜 많을까? 신천지 신도 중 60% 이상이 20대라는 분석이 있다. ‘탈종교화’가 가장 두드러지는 세대가 20대라는 점에서 이런 분석은 다소 충격적이다. 한국리서치가 2020년부터 조사한 3년 치 결과를 종합하면, 20대에서 ‘믿는 종교가 없다’고 답한 비율은 약 70%였다. 종교가 있는 응답자 중에서도 과반이 ‘종교활동이 본인의 삶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30대와 40대 역시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청년층의 탈종교화는 한국 가톨릭교회도 피할 수 없는 과제다.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따르면, 2021년 12월 31일 현재 만 20~39세 신자 수는 154만 4634명으로, 2006년(153만 2842명) 이후 가장 적었다. 전체 신자 대비 2030세대 비율도 25.7%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종교와 멀어진 청년층에서 도리어 유사종교 피해가 잦다는 현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사종교 추종자 대부분이 기성종교에서 이탈한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노길명(요한 세례자)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신흥종교연구」에서 “신흥종교는 ‘병든 사회’와 ‘병든 사회’에 역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기성종교가 만들어내는 산물”이라며 “신흥종교 발생의 일차적 책임은 신흥종교 자체보다도 사회체제와 기성종교에 있다”고 지적했다. 교회가 청년에게 일자리를 줄 순 없을까? 가톨릭교회는 청년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어쩌면 부유하지만 인색한, 현실적인 어려움엔 무심하거나 냉랭한 공동체는 아닐까. 취재 중 만난 많은 청년 신자들은 신앙생활에서 큰 걸림돌로 권위적인 태도와 무관심ㆍ냉대 등을 꼽았다. ‘궁금한 점을 편하게 물어볼 사람도 없고, 사제나 수도자에게 물어보기도 어려워 많이 힘들었다’, ‘모든 게 낯선데 누구 하나 말을 걸어주지 않아 외로웠다. 나를 챙겨주고 관심을 둔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상처받지 않았을 텐데’라는 반응이 그 예다. 평신도로서 멸시받는다는 느낌이 든다는 의견도 있었다. ‘성직자ㆍ수도자가 고압적이거나, 활동 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을 몰아줘 싫었다’는 등의 내용이다. 청년 일각에선 “고답적인 대책보다는 청년들이 현실적으로 원하는 바를 충족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정 알렉산데르씨(22)는 본당에서 취업 강사 등을 초청해 무료 강의를 해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냉담하거나 유사종교로 빠지지 않으려면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 필수다. 정씨는 “교리와 신학을 잘 아는 자격 있는 청년에게 제대로 된 임금을 주고 신앙 교육을 맡기는 방식으로 일자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다양한 측면의 연구가 필요하다.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이 지하철역 입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 신천지라는 표기를 따로 해 놓지 않고 있다. 종말은 공포가 아닌 희망이다 기성종교의 대형화와 중산층화 현상을 놓고 노길명 교수는 “급변하는 사회적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박탈감으로 가득 찬 사람들을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교회로부터도 소외되도록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현상은 소외된 이들에게 영적 보상에 있어 불평등을 체험케 하고, 그 결과 현실 세계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면서 새로운 세계의 임박을 알리는 시한부 종말론에 쉽게 말려들게 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시한부 종말론이란 말은 틀렸다. 주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그 시점을 모른다. 그런데도 유사종교 교주들은 종말이 언제 올지 안다며 공포심을 조장하고, 스스로 메시아라며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한다. 사랑이 아닌 공포를 말하며, 구세주가 아닌 거짓 교사를 자처하는 셈이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났던 것처럼, 여러분 가운데에도 거짓 교사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들은 파멸을 가져오는 이단을 끌어들이고, 심지어 자기들을 속량해 주신 주님을 부인하면서 파멸을 재촉하는 자들입니다.”(2베드 2,1) 게다가 복음서에 나오는 종말을 모든 것의 파멸로만 해석하는 그들의 시각도 틀렸다. 명형진 신부는 “주님의 심판은 우리를 단죄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역설했다. 명 신부는 “하느님께선 인간을 사랑하셔서 마지막 날에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무얼 더 줘야 하는지 고민하시는 분”이시라며 “그래서 마지막 날 우리가 맞이할 것은 바로 사랑의 심판이고, 하느님을 만날 그 순간을 기다리는 종말을 향한 길은 희망”이라고 설명했다. 교회, 생명력과 역동성을 회복해야 노길명 교수는 “시한부 종말론 등장의 재발을 예방하는 최선의 방안은 균형 있고 정의로운 사회 분위기의 조성과 함께 세속화 경향을 극복하려는 기성종교의 자정적 노력이 전개되는 것”이라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흥종교의 광기와 일탈행동을 보다 근원적으로 예방하는 방법은 ‘병든 사회’가 건강한 사회’로 전환되고, 기성종교가 종교로서 생명력과 역동성을 회복하는 길뿐”이라고 역설했다. 과연 가톨릭교회의 근원은 무엇일까. 바로 주님이 주시는 무한한 ‘사랑’이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이 말처럼 교회는 청년을 비롯한 약자를 더는 외면하지 않고, 보살필 수 있는 사랑의 교회가 돼야 한다. 생명력을 얻기 위해선 선교 역시 중요할 것이다. 비신자들에게 올바른 가톨릭 신앙을 알리고, 궁금한 점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 특별취재팀 cpbc2023.04.05
![[춘천교구 사목교서] 말씀살기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cpbc.co.kr/CMS/newspaper/2021/12/rc/814372_1.3_titleImage_1.jpg)
[춘천교구 사목교서] 말씀살기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 지구촌 곳곳이 불과 몇 년 사이에 고통의 땅이 되어 가며 절박한 탄식만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감염증의 급속한 세계화로 인해 무너진 일상 속에서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즘,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환경 재난이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재난과 함께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형성된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탄원과 고통이 더해만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신앙의 삶과 방향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확실성이 증가함에 따라 두려움이 가득해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온유한 사랑 안에서 우리 본연의 사명을 찾아내 식별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말씀살기 성경은 하느님 백성이 모인 신앙 공동체에서부터 생겨났기에 “성경의 본래적 자리는 교회의 삶 자체”(「주님의 말씀」 29항)입니다. 성경을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함께 읽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은 홀로 이루는 길이 아니라 타인들과 관계를 맺는 일이며 공동체 안에서 함께 대화하고 소통하는 여정입니다. 하느님 백성 공동체가 함께 걸어가는 길에서 말씀을 접하고 그 안에서 주님의 뜻을 함께 이해하고 실현하는 것입니다. “무한한 선”이신 하느님께서는 성경과 더불어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피조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계시에서 배제된 피조물들은 없습니다. 말씀과 피조물을 통해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배워 알고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현실의 아픔에 응답하며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길입니다. 따라서 말씀과 피조물은 더 이상 필요에 의해 선택되어 삶에 도움을 주는 미약한 도구가 아니라, 하느님께로 향하는 여정의 길잡이여야 합니다. 춘천교구의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 우리는 생태계 파괴가 눈앞에서 일어나도 피조물을 지키기 위한 파수꾼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고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지도 못하였습니다. 이제 춘천교구 하느님 백성 공동체가 하나 되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말씀과 피조물의 소리를 듣고,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7년의 여정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길다면 긴 7년간의 여정 동안 우리는 눈앞에 닥친 현실적 고통을 적나라하게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인류를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사랑과 연민으로 지켜보며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눈빛을 진심으로 찾고 읽어내야 합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말씀과 피조물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우리 삶의 본질이며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위의 두 주제, ‘말씀살기’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교구에서 실천 사항을 제안할 것입니다. 다양성 안에서 우리 사회의 화합과 일치와 한반도의 평화 정착, 무엇보다도 이런 시기에 가장 고통받는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신도, 수도자, 사제들의 사랑과 지혜를 모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cpbc2021.12.01

어려운 말씀도 쉽게… 신자들 마음에 신앙의 싹 틔운 목자제5대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의 삶과 신앙 1989년 2월 13일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사제서품식을 마치고 새 신부가 돼 분향하는 김종수 주교. 지난 2월 26일, 제5대 대전교구장에 김종수(아우구스티노) 주교가 임명됐다. 토요일인 이날 오후 7시 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봉헌된 미사 직후 한정현 보좌 주교가 “한없이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우리 대전교구에 큰 선물을 허락하셨다”며 김 주교의 대전교구장 주교 임명 사실을 공표하자 전 교구 공동체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김 주교는 특히 대흥동본당 출신이어서 교구장 주교를 배출한 대흥동본당 신자들의 기쁨은 더 컸다. 다음은 김 주교의 삶과 신앙, 교구 공동체의 축하인사와 바람이다. 합리적이면서도 따뜻한 성품을 지닌 목자 ‘내포 교회’를 이끌게 될 신임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를 바라보는 교회공동체의 눈길은 따뜻하다. 성서학자로 일생을 살아왔지만, ‘어려운 말씀도 쉽게 풀어주는’ 목자였기에 김 주교에 대한 교구 공동체의 신망은 두텁다. 본당 신부로, 유학생 신부로, 교수 신부로, 보좌 주교로 살아온 34년의 삶은 복음 말씀에 깊이를, 넓이를 더해준 세월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성서학 강의는 신학생들, 교구 신자들 사이에서 ‘눈높이’ 명강의로 명성이 자자하다. 2009년 주교 수품 뒤로는 교구 총대리로 교구장을 보좌해야 했기에 강의를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드문드문 미사 강론을 통해, 또 특강을 통해 드러나는 성경에 대한 그의 해박한 해설은 신자들 마음 밭에 단단한 신앙의 씨앗을 뿌렸고 그 싹을 틔웠다. 특히 그는 복음 말씀을 말씀으로만 끝내지 않고 체험과 함께 풀어냄으로써 믿음과 실천, 곧 신행(信行)이 일치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줬다. 그래서 주위 동료나 후배 사제들, 신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고, 이미 신학생 시절부터 동기나 후배 신학생들의 영적 조언자 또는 신앙적 동반자로 유명했다. 김 주교가 부제일 때 대신학교에 들어갔던 한광석(해미성지 전담) 신부는 “신앙은 물론 성경, 과학, 사회 분야에 이르는 학문적 깊이나 해박함도 뛰어나시지만, 어려운 성경을 열심한 신자들이 알아듣도록 신자들 눈높이에 맞춰 풀어주는 노력이 특히 돋보였다”면서 “학문적으로도인품으로도 존경받는 주교님께서 교구장 주교가 되셔서 너무 기쁘고 반갑고 행복하다”고 전했다. 군 복무 중 말씀에 푹 빠져 사제의 길로이렇게 일생을 한결같이 ‘사제답게’ 산 김 주교는 1956년 대전 태생이다. 1989년 선종한 부친 김동억(요셉)씨의 고향은 경북 영일군이지만, 그는 대전에서 나고 자랐다. 그래서 출신 본당도 대흥동본당이다. 형제자매는 3남 4녀로, 7남매 중 여섯째지만, 형제 중에선 막내다. 그의 집안을 가톨릭으로 이끈 건 1962년에 선종한 모친 김양순(마리아)씨로, 어머니는 김 주교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위암으로 선종, 김 주교는 큰 누나 김갑수(엘리사벳)씨 품에서 자라나야 했다. 대전중ㆍ고 시절에도 농구와 탁구, 야구 등 스포츠를 좋아했고, 학업성적도 뛰어나 서울대 국사학과에 들어가 1978년 대학을 졸업하고 4년간 공군 학사장교로 복무한 뒤 같은 대학원까지 마쳤다. 김 주교가 회심하게 된 건 군 복무가 계기였다. 복무 중 틈틈이 성경공부를 하던 그는 말씀에 푹 빠졌다가 나오는 것 같은 체험을 했다고 한다. 학사장교로 복무하는 한편 대흥동본당에 4명밖에 없던 중ㆍ고등부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고, 성서공부에도 매진했다. 그 덕에 대학원을 졸업한 뒤 대신학교로 자신의 삶을 선회했다. 당시 김 주교가 중등부 주일학교 교사로 있을 때 주일학교 학생이었던 김경란(마리아) 조각가는 “중3 때 솔뫼성지로 피정을 갔는데, 그때 교사였던 김 주교님이 주신 ‘빛과 소금’이라는 묵상 주제는 훗날 제가 작업을 하는 데 평생의 모티브가 됐고 파리1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때도 그 주제였다”면서 “주일학교 교사로 있으면서도 그렇게 학생들에게 평생 가슴에 남는 묵상 주제를 주셨던 것처럼 교구 공동체도 밝게 비춰주는 목자가 되시기를 바란다”고 기도했다. 김광태(도미니코) 대흥동본당 사목회장도 “교구민 대부분이 바라던 김종수 주교님께서 교구장이 되셔서 정말 기쁘고 반갑다”면서 “앞으로도 성령의 인도에 따라 교구장 역할을 충실히 해주시리라 믿는다”고 기도했다. 내포 교회, 새 교구장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1989년에 가톨릭대 신학부를 졸업한 김 주교는 그해 2월 13일 사제품을 받았다. 수품성구는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이다. 그 말씀을 마음에 품고 논산 부창동본당에서 보좌로 사목한 뒤 유학을 떠나 1991년 4월부터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공부하고 ‘예레미야서에 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임 사제로 산 해미본당에서의 사목도 김 주교에게는 각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본당 사목은 보좌 시절을 포함해 3년 6개월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전가톨릭대 교수로, 총장으로 산 13년 세월 동안 그는 동료 신부들한테는 신망받는 사제였고, 신학생들에게는 존경받는 사제였다. 사진첩을 꺼내놓고 동료 교수 신부나 신학생들 얼굴을 바라보며 짧은 기도 바치기를 좋아했고, 그 기도는 사제로서 그의 삶에 큰 힘이 됐다. 1997년 대전가톨릭대에 부임한 김 주교는 구약입문이나 모세오경, 예언서 등 구약 전반을 강의했고 사제양성에 오롯이 헌신했다.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바오로딸, 2004년), 「거룩하신 하느님, 질투하시는 하느님」(바오로딸, 2007년) 등 구약성경을 구세사적 관점에서 해설해준 책은 당시에 썼고, 성모님에 대한 교의와 교회의 가르침을 담은 「믿는 이들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가톨릭출판사, 2016년)는 보좌주교로 사목하면서 틈틈이 집필했다. 2009년 주교로 임명된 이후에는 교구장을 보좌하는 데만 전심전력했다. 교구에서도 교구 설정 70주년을 앞두고 개최된 교구 시노드 등을 통해 ‘드러나지 않게’ 교구장을 보좌하는 데 힘썼고, 사제나 신자들에게 영적 양식을 먹이는 데 힘을 쏟았다. 주교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10월 복음화(현 복음 선교)위원회 위원장으로, 2010년 3월부터 전례위원회 위원장으로, 2018년 3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성서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선교와 전례, 말씀 사목에만 진력했다. 그야말로 ‘신앙의 기본’에 충실했고, 그럼으로써 신자들이 선교의 삶을 살고, 전례에 충실하고, 생활 속에서 말씀을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줬다. 맹동술(시몬) 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장은 “김종수 주교님께서 새 교구장 주교님이 되셨다는 뉴스는 ‘단비를 맞는 듯한’ 기쁜 소식이었다”며 “이제 새로운 교구장 주교님이 되셨으니, 400명 가까운 사제, 전 교구민과 시노달리타스의 정신으로 소통해 주시고, 특히 평신도들이 성화 되는 공동체로 만들어주시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서원자(클라라) 교구 여성연합회장도 “깊은 영성과 겸덕(謙德)을 지니신 주교님께서 새 교구장이 되신 걸 축하하고,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주교님께 필요한 은혜를 풍성히 내려주시길 쉼없는 기도로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2.03.02

“우리 목표는 하느님 나라 건설… 많은 대화 통해 사목 방향 잡을 것”제5대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 인터뷰 2월 28일 신임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가 세종특별자치시 대전교구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다. 교구장 서리 임명 7개월 만에 교구장 승계신임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는 2월 28일 세종특별자치시 대전교구청사 1층 명례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소회를 밝혔다. “당장 (교구를) 어떻게 이끌겠다는 이야기를 할 시점은 아니고, 제가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지난해 7월 말 교구장좌가 공석이 되면서 해산됐던 교구 사제평의회와 사목평의회, 위원회 등 교구 주요기구 구성과 교구 시노드 실행, 교구 사제단 일치, 사제 성소, 기본에 충실한 교구 공동체의 신앙 쇄신 문제 등에 대한 자신의 구상 일부를 내비쳤다. 김 주교는 먼저 회견 모두 발언을 통해 “지난해 7월 말 유흥식 대주교님께서 성직자성 장관으로 가시고 교회법상 교구의 각종 위원회가 모두 해산됐다”며 “교구장 서리로서 교구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사제평의회나 각종 위원회가 해산되고 보니 아무것도 움직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교구장 주교가 임명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렇게 교구장이 임명되고 교구 주요 기구를 운용할 수 있게 돼 다시 하느님과 교황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문을 뗐다. 그러면서도 “이 감사는 제가 교구장이 됐기 때문에 드리는 게 아니라 교구의 중요기구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됐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 주교는 임명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2월 27일 자로 한정현 보좌 주교를 교구 총대리 겸 수도회 담당 교구장 대리로 임명하고, 교구 사제평의회와 교구 위원회, 교구 특별위원회 위원을 임명했다. 각자가 선교사로서 복음적 활동 쌓아야김 주교는 교구민에 대한 인사 말씀을 해달라는 요청에 “누가 교구장이 되든, 교구민들은 한마음으로 새 교구장님이 나오시길 기다렸다”며 “제가 되긴 했지만, 제가 돼서가 아니라 새 교구장님을 임명해 주신 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김 주교는 “우리는 분명히 열두 사도로부터 이어진 교회니까 우리 각자가 기도생활과 복음을 가까이하는 성사생활을 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선교사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이전보다 하나 돼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복음적 행동과 활동을 해나간다면 우리가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의 복음화도 이룰 수 있다고 본다”고 확신했다. 이어 “우리 모두 다 함께 그 길로 나아간다면 주님도 기뻐하시는 복음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니 함께 힘을 합쳐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지난해 7월 말 교구장 서리로 임명된 지 7개월 만에 교구장직을 승계한 소회에 대한 물음에 김 주교는 “남다른 소감은 없고, 저를 대전교구장으로 임명해주셨으니, 그동안 제가 교구 평신도로 살았고, 신학교 가서 사제가 되고, 사제로서, 주교로서 살았던 경험들도 새기고, 과거 교구 역사와 걸어온 길도 깊이 들여다보겠다”며 “전임 교구장 주교님들께서 해놓으셨던 큰일들, 전임 주교님들의 사목교서도 다시 진지하게 읽고 생각하며, 제가 이어나가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신부님들, 신자들과 많은 얘기 나누며 사목 방향을 서서히 잡아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주교는 시노드 교회를 만들기 위한 교구의 방향에 대해 “교황님께서 모든 교구에서 시노드를 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교구는 이미 2015년부터 3년 6개월 동안 시노드를 했고, 지난 1년간 시노드에서 논의된 제안을 실현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며 “오늘 교구 꾸리아에서도 시노드 최종 건의안에서 나온 것을 부서별로 종합 분석해 장ㆍ단기 실행안을 거의 마무리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실행안은 교구 시노드사목연구소에서 한 달 내로 책자로 낼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본당에서도 그런 실행계획들을 가지도록 신부님들께 건의를 드릴 텐데, 그 실행은 본당이나 지구 단위에서 이뤄지겠지만, 신부님들이 시노드 최종 건의안 내용을 자신의 본당에서 어떻게 반영하고 실현할지 사목적으로 고민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또 “시노드는 결론 이전에 과정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면서도 “시노드로 단번에 교회가 뒤바뀌는 건 아니지만, 교회가 여러 사목 방안을 실천해 나가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주교는 이어 사제단의 일치에 관해서는 “우리 대전교구 신부님들은 교구에서 펼쳐지는 어떤 문제에 대해 언제든 말씀하시고 또 때론 부담될 정도로 말씀을 주시지만, 일단 결정되면 사제단 대부분이 하나 돼 다 함께 (일을) 해나가는 흐름이 있다”면서 “그래서 저는 우리 대전교구 사제단에 대해선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목표는 ‘하느님 나라 건설’이기 때문에 위기의식을 가진 만큼 변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면서 “모든 사제와 신자들이 가져야 할 것은 ‘하느님 나라 바라보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곳, 곧 하느님 나라로 가고 있다는 행복감과 아직은 하느님 나라가 굉장히 멀다는 위기의식을 같이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경공부, 매일 음식 먹듯 말씀 대하는 것 김 주교는 또 사제성소 위기에 대한 질문에 “사회적인 출산율 감소 때문에 사제 성소가 줄어든다는 건 있을 수 있지만, 사제 성소는 사회학적 현상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라며 “성소 문제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건 교회의 복음적 태도가 될 수 없다”고 전제했다. 우리가 이런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인식하고 실천한다면 사제는 부족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김 주교는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성소가 줄고 있기에 신부님들께도 사제 성소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부탁드렸고, 지난해 12월 사제인사 때 상징적으로 성소국 차장 신부도 임명했다”면서 “물론 성소국 차장 신부님 한 분 더 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신부님들이 한 번 더 사제 성소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고, 예비신학생들을 한 번 더 접촉하고 만나서 얘기 한 번이라도 더 하실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사제 성소가 없다는 걱정은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서학 전공자로서 성경 공부에 대해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김 주교는 “양식을 먹으면 활동해서 몸을 이루는 것처럼 말씀을 읽으면 내 영의 양식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매일매일 음식을 먹듯이 말씀을 대하는 게 제일 좋은 성경공부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저도 성경을 읽을 때 그런 마음으로 성경을 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끝으로 김 주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전 세계적 팬데믹 속에서 고통을 겪는 분들께 한두 마디로 위로를 드리기는 어렵고, 3년째가 되기까지 그 어려움을 잘 견뎌주신 모든 분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격려의 말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인터뷰 뒤 김 주교는 대전가톨릭대 교구 성직자 묘역인 하늘묘원을 찾아 선배 주교와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고, 부모 묘역도 찾았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2.03.02

그리스도교 공인 이전 신앙 선조들은 주택에서 성찬례 거행[김광현 교수의 성당 건축 이야기] 11. 주택에서 시작한 성당 예루살렘의 다락방. 출처=RadoJavor 대체로 이렇게 알고 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받아 자유로이 모이기도 어려워서 이렇다 할 성당이 없었다. 그러다가 313년 그리스도교가 공인받고 나서 비로소 로마인들의 공공장소인 바실리카를 이용해 성당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무 준비도 없다가 바실리카라는 큰 공간을 이용하여 만든 성당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이 질문을 시작으로 몇 회는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을 향해 걸어간 신앙의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교회, 건물이 아니라 모임 뜻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파하러 나선 곳은 주로 큰 도시였다. 그러나 100년쯤에는 이스라엘의 동쪽 지역으로 넘어가 그곳의 작은 도시나 마을에까지 퍼져나갔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위해 모일 장소를 특별히 따로 만들 생각도 없었고 그럴 만한 여유도 없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모일 집을 지을 만한 조직도 없었고, 더욱이 이교의 신전과 같은 건물을 세울 만한 재력도 전혀 없었다. 그들에게 당장 시급한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과 부활하심을 널리 증언하는 것이었다. ‘에클레시아’라는 말이 뜻하듯이 ‘교회’는 ‘모임’(會)이었지 건물이 아니었다. 예수님께서 산이나 들 또는 회당에서 가르치셨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적절하다고 여기면 어디에서나 만났다. 복음을 전하여 개종자를 얻기 위해서라면 길모퉁이에서도 만났고 예루살렘 성전 구역이나 회당에도 모였다. 아마도 드물었겠지만, 공공의 넓은 방도 빌렸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더 자주 누군가의 집에서 제자들, 병든 자, 바리사이들을 가르치셨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셨던 곳이며, 부활하신 후 그리스도인들이 처음으로 모였던 장소는 예루살렘에 있던 어떤 집의 “자기들이 묵고 있던 위층 방”이었다. 이 다락방을 “세너클(Cenacle)”이라고 하는데, 식당이라는 말이다. 오순절 성령이 강림했을 때도 “백스무 명가량”이 다락방에 모여 있었다(사도 1,13-15)고 할 정도로 큰 방이었다. 이 집은 당시 로마 제국에서 하급 또는 중산층의 공동주택인 인술라(insula)였고, 그 한 층의 평균 면적이 93㎡였으므로, 이 큰 방에 120명이 꽉 차도록 모일 수 있었을 것이다. 주님의 제자들이 세상을 떠나자 전교 모임은 중지되었다. 기존 신자와 새 신자 사이 증언에 차이도 크게 벌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모여야 했다. 그것도 정기적으로 모여야 했다. 신약성경은 여러 집을 옮기며 “빵을 떼며” 성찬례를 거행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사도 2,46)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장소를 바꾸었다는 것은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가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수도 일정했다는 말이다. ‘최후의 만찬’. Jacopo Tintoretto, 1594. 출처=Wiki Commons 초대 그리스도인, 주택 식당에서 성만찬 제자들이 활동했던 시대 이후인 50~150년에는 함께 빵을 나누는 것은 신앙을 표현하는 것이고, 친교(코이노니아)의 중심이었다. 따라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통상적으로 모이는 장소는 주택의 식당이었다. 그들은 빵, 포도주, 물고기를 가지고 와 평화의 입맞춤을 나누고 그리스ㆍ로마인들의 방식에 따라 보통 먼저 식사하고 그다음에 미사를 거행한 것 같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가 “만찬을 먹으려고 모일 때는 서로 기다려 주십시오”(1코린 11,33)라고 말한 것으로 보면,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너무 빨리 먹어서 늦게 온 사람에게는 음식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만큼 그리스도인들의 예배가 아직은 비형식적이고 유연했다는 뜻이다. 예배의 핵심은 성만찬이었으므로 식사를 마친 다음 식당에서 그리스도의 최후의 만찬을 기억하며 빵과 포도주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에는 신자 수가 늘어나고 식사에서 오는 여러 가지 폐단이 있어 공동식사는 점차 성체성사로 바뀌었고, 예배는 점차 정식화되어 갔다. 그러면서 주택의 식당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신자들은 대체로 하류층 또는 중산층이었으므로 전형적으로 싼 주택에 모였는데, 이런 주택은 다른 이들의 눈에 잘 안 띈다는 점에서 유리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여러 편의와 식사로 지속해서 제공하여 친교하고 성만찬을 할 수 있는 장소로는 부유한 이들의 주택이 훨씬 적절했다. 이들의 주택을 1~2세기 로마 제국에서는 ‘도무스’라 불렀다. 길에 면해서는 상점이 있고 입구로 들어가면 사적인 영역이 아트리움이라는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었는데, 안마당에 있는 물을 담는 큰 그릇으로 세례를 줄 수 있었다. 로마 사람들의 주택에서 가장 큰 방은 식당이었다. 낮은 정사각형 식탁을 둘러싸고 왼쪽으로 비스듬히 기대어 식사를 할 수 있는 긴 의자 세 개가 ㄷ자로 배열되는데, 식탁에는 이런 의자가 세 개 있는 방이라 하여 식당을 ‘트리클리니움(triclinium)’이라 불렀다.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의자는 입구 반대편에 놓였고 연장자 등 귀빈이 그 자리에 앉았다. 예수님께서도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비스듬히 기대어 앉으셨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예수님께서 그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신다는 것을 알고 찾아왔다는 것을 보면(루카 7,36-37), 이런 주택의 식당은 모르는 사람이 들어와도 이상해 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반개방적이었던 것 같다. 사도행전 20장은 트로아스의 어떤 집에서 성찬례를 거행하려고 모였는데, 바오로가 자정까지 설교하는 동안 에우티코스라는 젊은이가 삼층 창문에 걸터앉아 있다가 잠에 취하여 그만 밑으로 떨어져 죽었는데, 그를 다시 살리고는 다시 빵을 떼어 나누며 식사를 했다고 말한다. 삼층이라 했으므로 이 집은 3~4층 높이의 한 가족의 건물인 인술라라는 공동주택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런 주택의 제일 위에는 유일한 큰 방인 식당이 있었고 종종 테라스로 열려 있었다. 이것이 사도행전에서 아나가이온(anagaion) 또는 히페론(Hyperōon)이라고 자주 언급되는 최상층이다. 위층 방에는 등불이 많이 켜져 있었고, 창문에 걸터앉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였으며, 자정에 이 일이 있은 다음에도 날이 샐 때까지 설교는 계속되었다 하니, 그럴 정도로 회합은 비공식적이었으며 과열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애찬(Agape feast), 성 마르셀리누스와 성 베드로 카타콤. 출처=St Elisabeth Convent ‘주택 교회’ 정신 어떻게 되살릴까 그리스와 로마 전통에 따라 국가 종교만이 사원을 세웠던 시대에, 그리스도교의 건축은 200년이 돼서도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할 수도 없었다. 단지 이 구원의 종교는 특별한 예배 형식과 이를 위해 모인 신자들의 경제적 여력에 따라 눈에 띄지 않는 하위층의 주택에서 시작하다가, 점차 여유 있는 이들에게서 빌리거나 기부받은 주택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이처럼 한 가족이 일상생활을 하던 주택이면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정기적인 회합으로도 쓰이던 주택을 ‘주택 교회(house church)’라고 한다. 50년에서 150년까지는 주택을 그대로 교회로 사용했기 때문에 고고학적인 증거는 매우 부족하지만, 북아프리카에서는 4세기 초까지도 나타날 정도로 두루 쓰였다. 이처럼 교회의 출발은 주택이었고 당연히 전례도 주택에서 출발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성당에서 ‘주택 교회’의 정신은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까? 김광현 안드레아(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cpbc2023.03.14

살아계신 하느님 말씀 ‘성경’, 성령의 빛으로 읽을 때 새로워져하느님의 말씀과 올바른 성경 읽기 성경은 성령을 통해 쓰인 하느님의 말씀이므로 교회의 살아 있는 전통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아마존 원주민들이 함께 성경을 읽고 있다. 【CNS】 연중 제3주일인 24일은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9월 30일 자의 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Aperuit Illis)를 발표,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제정했다. 교황은 교서에서 “성경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그분 교회의 사명에 따른 여러 사건은 이해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라며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교황은 그러면서 “주일 가운데 하루를 하느님 말씀에 특별한 방식으로 봉헌함으로써, 부활하신 주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위하여 당신 말씀의 보고를 열어 주시는지 교회는 새롭게 체험할 수 있다”며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 온전히 하루를 봉헌하며 특별하게 지내는 날이 신자들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교황은 특히 하느님의 말씀 주일 거행이 ‘교회 일치’의 중요성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성경은 듣는 이들에게 참되고 굳건한 일치에 이르는 길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황은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인 1월 25일까지)과 맞물려 있는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정했다.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맞아 ‘하느님의 말씀’과 올바른 성경 읽기에 관해 알아본다.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요한 1,1-18)요한 복음 저자의 ‘로고스 찬가’이다. 요한 복음 저자가 증언하는 로고스 즉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말씀은 창조되지 않고 영원 속에 절대적으로 실존해 계시며 하느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고 계시는 분이시다. 말씀 안에는 ‘생명’과 ‘빛’이 결속돼 있다. 세상 만물은 생명이요 빛이신 말씀을 통해 창조되었다. 말씀은 창조뿐 아니라 인간 구원에도 참여하신다. 생명은 인간을 위한 빛이고, 빛은 인간에게 생명의 힘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의 영광을 직접 목격할 수 있게 됐다. 강생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속죄 제물로 바치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써 인간을 하느님의 본성과 동일한 당신의 생명과 빛(영광) 안으로 이끄셨다.(2베드 1,4 참조)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은총과 진리)가 종래의 구원 질서(율법으로 인한 구원)를 능가하며, 오직 사람이 되신 말씀을 통해서만 하느님을 알 수 있다.(「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참조) 이에 교회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하느님이며 참인간이심을 고백하며, 그리스도교 신앙은 ‘경전의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종교’라고 선언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08항)성경과 성경의 해석자이신 성령하느님의 말씀은 글로 된 무언의 말이 아닌, 사람이 되시어 살아 계신 말씀이다. 성경은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시를 성령의 감도로 글로 기록해 보존해 놓은 책이다. 교회는 사도 전승을 따라 구약 46권과 신약 27권을 성경의 ‘정경’(正經)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성경 전체는 단 하나의 책이며 그 하나의 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4항)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죽은 문자로 머물지 않으려면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 성경을 깨닫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셔야 한다. 성경은 일개 역사서 모음집이나 연대기가 아니다. 성경의 근원적 목적이 우리의 구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성령의 활동을 통해 인간의 방식으로 적힌 인간의 말들에서 하느님 말씀으로 변화된다. 성경에서 근본적 역할을 하시는 분은 성령이다. 성령의 활동이 없다면 성경은 그저 기록문서로만 남거나, 근본주의적 해석에 빠질 위험이 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듣는 이들 안에서도 활동하신다. 공의회 교부들은 “성령을 통해 쓰인 성경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하느님의 말씀」 12항)고 가르쳤다. 성령의 빛으로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은 늘 새로워진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을 ‘성경의 해석자’로 표현한다. 교회와 성경하느님의 말씀은 교회에는 버팀과 활력이 되고, 교회의 자녀들에게는 신앙의 힘, 영혼의 양식 그리고 영성 생활의 순수하고도 영구적인 원천이 되는 힘과 능력이 있다.(「계시 헌장」 16항)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해 왔다. 교회는 성경이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양육하고 인도하기에 모든 신자에게 성경을 자주 읽을 것을 각별하게 권고한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성경 읽기성경을 올바로 읽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경우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을 때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계시하시고자 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은 성령을 통해 쓰였으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성경을 읽을 때는 우선 성경 전체 내용과 단일성에 유의해야 한다. 성경의 책들이 73권에 이른다 해도 단 하나 하느님께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시는 인간의 구원이 핵심 내용임을 잊어선 안 된다. 그리고 성경은 전체 교회의 살아 있는 성전(거룩한 전통)에 따라 읽어야 한다. 교회에 성경의 영적 해석을 내려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경 해석에 관한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해석하라는 하느님의 명령과 그 직무를 수행하는 교회의 판단에 속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19항) 올바른 성경 읽기에 관해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만일 가톨릭교회의 권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는다면, 나는 복음을 믿지 않을 것이다”고 고백했다.성경을 읽을 때는 무엇보다 기도가 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읽을 때에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교회는 “성경을 읽고 공부함으로써 ‘주님의 말씀이 퍼져 나가 찬양을 받으며’(2테살 3,1) 교회에 맡겨진 계시의 보화가 인간의 마음에 더욱더 채워져야 한다. 성체 신비에 자주 다가감으로써 교회의 생명이 자라듯이, ‘영원히 살아 있는’(이사 40,8; 1베드 1,23-25 참조)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공경함으로써 교회의 영적 생명이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권고하고 있다. (「계시 헌장」 26항)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01.19
![[신앙단상] 가장 위대하신 디자이너(장명숙, 안젤라메리치, 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cpbc.co.kr/CMS/newspaper/2021/11/rc/813469_1.1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가장 위대하신 디자이너(장명숙, 안젤라메리치, 유튜브 크리에이터 밀라논나) “하느님은 ○○가 하느님 안 믿어도 하나도 아쉽지 않으세요. ○○가 아쉽지요. 하느님이 천지 창조 이전부터 계획하셔서 우리를 만드셨다는 게 얼마나 경이로운 일이에요? 인류사가 시작된 이래 얼마나 많은 인간이 태어났으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이 태어날 텐데 그 많은 인간의 지문을 요 작은 손바닥 안에서 모두 다르게 디자인하시는 분을 어떻게 안 믿을 수가 있어요? 난 생각할수록 경이로워요. 내 직업이 디자이너라서 더 신비해요.” 신앙의 역사가 짧은 처지인 저는 누군가에게 전교를 하는 일에 서툴렀습니다. 신앙인이라는 것이 큰 축복인 줄 깨닫기 시작하며 주변에 세례를 권유하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득을 해야 제 얘기를 들어 줄지 자신이 없었고 더구나 성경을 완독하기 전에는 무식이 드러날까 봐 겁이 났습니다. 이제 세례받은 지 43년, 신앙인으로 새로 태어난 햇수도 40년이 넘어 신앙 나이로 불혹의 어른이 되었네요. 아직 성경 말씀을 몇 장 몇 절이라고 줄줄 외울 수 있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20년 가까이 매일 미사에 참여하고 아침저녁으로 성경을 조금씩 읽으며 하느님과 지내다 보니 하느님께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고백을 하고 싶어졌고, 좋아하고 아끼는 지인들께 신앙을 전파하고 싶어졌습니다. 마치 착한 일을 해서 부모님께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었다고 할까요. 세례 나이가 43년이라도 하느님께 매달렸다가 혼자서 멀어졌다 변덕을 부린 스스로의 됨됨이를 알기에 성경을 읽을 때마다 제게 가장 쉽게 다가오는 구절, 주변 친지들에게 가장 설득하기 쉬운 구절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발견한 성경 구절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바로 로마서 8장 28절이었습니다.“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이 구절을 읽고 또 읽으며, 천지 창조 이전부터 모든 역사를 계획하셨다고 깨달은 그순간의 전율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이런 특권을 내가 받았구나.’인간의 역사가 생성된 이래 얼마나 많은 인간이 태어났으며 또 앞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이 태어날 텐데 이 작은 손바닥 안에 지문이라는 서로 다른 각자의 고유한 증표를 만들어 주시는 하느님, 이 세상 어느 위대한 디자이너가 요 작은 손바닥 안에 어느 누구에게도 중복되지 않을 지문을 디자인해 주실 수 있을까….제가 좋아하는 사도 신경의 첫 구절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부터 제 지문은 저만을 위해 준비해 놓으셨다는 우리 하느님. 로마서와 사도신경, 또 지문을 예로 들며 제가 아끼는 친지들을 신앙으로 이끌 때의 달콤한 사명감은 주님이 주신 또 다른 선물입니다. 가장 위대하신 디자이너, 가장 위대하신 크리에이터.“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cpbc2021.11.17

평신도 신학자가 건네는 한 마디 “젊은이들의 역할을 키워주세요”[팬데믹과 신앙, 믿음의 길을 찾아서] (3) 한님성서연구소 주원준 수석연구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동체 미사가 중단되고 신앙생활에도 타격을 입었지만, 이것이 교회의 위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위축은 되겠지요. 장기적으로 교회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그 속도가 빨라지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평신도 신학자 주원준(토마스 아퀴나스) 박사는 코로나19가 가져온 신앙생활의 변화를 위기가 아닌 위축으로 진단했다. 교회가 당장 망할 정도가 돼야 위기일 텐데, 그 정도는 아니라는 뜻에서다.“팬데믹의 원인은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교회가 뭘 잘못 해서 생긴 일은 아니었죠. 대신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선방했다고 봅니다. 문제를 악화시키는 쪽이 아니라 침착하게 대응하는 쪽이었으니까요.”가톨릭교회는 물론 종교 자체가 직면한 거대한 위축의 흐름 앞에서 주 박사는 한국 사회 안에서 앞으로 가톨릭교회가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그의 시선은 본당 울타리를 넘어 교회 안팎을 두루 향해 있었다.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 가톨릭 신학부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어를 전공하며 히브리어 구문론으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쓴 그는 “신학을 공부하면서 교회를 안에서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면, 교회의 다양한 층위에 참여하면서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넓힐 수 있었다”고 말했다.그는 현재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이며 의정부교구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샬롬회 회원이기도 하다. ACN 창립이사를 2004년부터 맡아 왔고, 주교회의 복음선교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에서 펴내는 학술지 「신학전망」 편집위원이고, 서강대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가톨릭평화방송에선 방송 작가를 하기도 했고 의정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이기도 했다. 교회 곳곳에서 평신도이자 신학자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주원준 박사를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한님성서연구소에서 만났다.세상이 더 이상 교회 담론을 참조하지 않아주 박사는 10년 전, 20년 전 우리 사회를 떠올려 보라고 했다. 옛 속담에도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다 했는데, 현대 사회의 속도에 비춰보면 그 사이 변화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기존의 기업들이 많이 사라졌고 새로운 기업이 나타났지요. 정치 쪽은 어떤가요. 정당은 싹 다 바뀌었잖아요. 대학별 서열, 인기 있는 과도 전과는 다르지요. 대중문화판도 몰라보게 변했어요.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를 생각해보면 크게 성장하지도, 그렇다고 크게 뒤처지지도 않고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거든요.”그는 “한국 사회에서 몇십 년간 이렇게 일관되게 조직을 이끄는 곳이 얼마나 되겠느냐”면서 “곧 망할 것 같은 모습이 보여야 위기인데, 가톨릭교회가 망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하지만 그는 더이상 사회가 교회를 찾지 않는 현상에서 위축의 분위기를 느낀다고 했다.“우리 사회가 어느 때부턴가 교회에서 나오는 담론을 참조하질 않더라고요. 예를 들면, 민주화 운동 시절에는 추기경님이 어떻게 얘기하시는지, 교회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귀를 기울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교회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보자는 분위기가 사라졌어요. 그만큼 사회에 크게 영향을 끼치는 성직자가 없다는 거죠.”세상 사람들이 조언을 구하고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는 전문가, 기업인, 지식인 반열에서 성직자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실력 키우고 발언 두려워해선 안 돼교회가 사회를 향해 내는 목소리에 영향력이 점점 줄고 있다. 각종 현안을 다룬 대사회 메시지들은 ‘천주교의 입장’ 정도로만 거론될 뿐 사회 안에서 더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다. 주 박사는 “사회를 선도하고자 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신학자, 성직자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세상 사람들과 만나 토론하면서 약간의 공격을 받더라도 ‘교회 입장은 이겁니다’라고 밖에 나가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없어요. 모두 안전하게 교회 안에만 있으려는 것 같아요.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약간의 안일함이랄까요. 그런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고요.”그는 “어느 사회나 지식인 그룹이 있고 지식인들은 거대담론을 이야기하는데, 당장은 쓸데없어 보이기도 하고 재미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런 이야기들이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면서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식인과 이야기를 나눌 집단이 교회 안에 없다 보니, 지식인들은 교회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교회 안의 실력저하도 한 원인일 수 있겠고, 용기 문제이기도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갈 땐, 공격과 잡음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겠지요. 스스로 소화할 줄도 알아야 하고요. 그런데 신부님들이 굳이 그러려고 하지 않죠. 싫은 소리를 안 하려고 해요.”젊은 층에게 책임을 맡길 수 있어야사회 내 영향력 감소, 교회 어른의 부재, 거대담론의 실종 등과 같은 위축의 흐름은 주일이면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단체활동을 하는 일반 신자들에겐 크게 와닿지 않는다. 개인의 영성 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결과는 ‘신자 청년층 감소’와 같은 현실로 눈앞에 놓여있다.그는 “20~40대 젊은 층에 책임을 맡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년들이 교회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신앙을 멀리하고 있는 건 교회가 청년들과 함께 가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청년들에게 책임을 안 맡겨서 그래요. 청년 입장에서야 아무 책임이 없으니까 아무 말이나 다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교회 안에서 어떤 역할이 주어지면, 그 역할을 해내기 위해 같이 길을 가게 되거든요. 시노달리타스도 함께 걷자는 것이잖아요. 근데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이미 결정을 다 내린 상태에서 교회는 청년들에게 그저 따라오라고만 한다. 가야 할 길도, 길 위에서 찾을 답안도 다 정해 놨다. 청년들은 당연히 물을 수밖에 없다. “왜?”라고. 그게 어떤 일이고 나에게 무슨 의미냐고. 주 박사는 “교회가 과연 청년들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돼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면서 “아마도 그런 질문에 답을 하고 청년들을 설득하는 건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청년들에게 임무를 주고,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기회를 줘야 합니다. 그러면서 같이 가는 겁니다. 사실, 젊은 신부님들에게도 책임을 맡겨야 해요. 청년들에게 일을 안 맡기는 것과 보좌 신부님에게 일을 안 맡기는 건 같은 맥락이죠.”그는 “교회가 젊은 신부님들을 너무 ‘도련님’으로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교회 안팎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면서, 원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분위기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미래세대연구자 모임 샬롬회 조직그는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장 강주석 신부와 함께 2017년 ‘살롬회’를 조직했다. 샬롬회는 청년 신자들이 신학책이나 교회사, 국제관계학, 평화학 등과 관련된 책을 읽고 토론하며 신앙과 삶을 나누는 모임이다. 본당 틀을 벗어난 교구 청년회인 셈이다.샬롬회 회원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논의한 주제로 공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연구소가 주최하는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 왔다. 주 박사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판을 깔아줬다”면서 “청년들은 이러한 자리를 통해 교회와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교회 인재로 커갈 수 있다”고 말했다.“저와 강주석 신부님의 역할은 회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뿐입니다. 이 친구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고요. 청년들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40~50대가 돼서 교회 안에서 발언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지요.”그는 “다양한 분야의 청년에게 교구와 교회 조직 전체를 경험할 수 있는 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면서 “시간이 지나면 이 청년들이 교회 내 든든한 협력자로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데모하다 잡혀간 감옥에서 구약 완독그도 열혈 교회 청년이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사제가 되기를 고민했지만, 확신이 들지 않았다. 대신 사제를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서강대학교에 입학했다.“제가 87학번이거든요. 한창 데모하던 때였어요. 데모할 때에도 신부님들이 있으니 좋았죠. 당시 정양모 신부님께서 수업시간에 ‘평신도 신학자’가 있다는 걸 말씀해 주셨어요. 그때는 사회 문제에 참여하며 실천적인 평신도 신학을 고민하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나이 차이는 좀 났지만 학교를 같이 다녔던 선배가 박문수(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 상임연구원)ㆍ한상봉(‘가톨릭일꾼’ 편집장) 형이에요.”그는 사회 참여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성경과 같은 전통 신학에 더 끌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학생운동을 하다 잡혀간 감옥에서 몇 달 동안 구약성경을 완독했다. 구약성경에 담긴 이야기에 매료된 그는 평신도 신학자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대학 졸업 후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서강대 신학대학원에 다녔다.“교회 잡지 이곳저곳에 글도 쓰고, 번역하고 책도 내며 ‘생계형’ 신학자로 지냈죠. 컴퓨터 한 대 필요하면 책 한 권 번역하고 그랬고요. 가톨릭평화방송에서 작가로 활동한 것도 이때였어요. 그런데 글을 쓰면 쓸수록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독일 유학길엔 정양모 신부와 정태현(한님성서연구소장) 신부가 버팀목이 돼 줬다. 유학을 마치고 나선 한님성서연구소에 자리를 잡았다.평신도 신학자로 산다는 건그는 “한국에서 평신도 신학자로 사는 건 모든 면에서 쉽지 않다”고 했다. 자신을 평신도 신학자라고 소개하면 신부도 아닌데 어쩌다 신학을 공부했느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들의 반응은 20년 전 유학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평신도 신학자는 정상에서 벗어나 있거나, 되게 독특한 별종으로 생각해요. 사실 평신도 신학자는 고대 교회부터 있었던 교회 구성원 중 하나거든요. 어느 시대에나 있었죠. 우리나라가 유독 평신도 신학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한 거 같아요.”독일, 프랑스 등 유럽에선 중고등학교 종교교사 대부분이 평신도 신학자다. 이들은 자신의 전공을 살려 강의를 할 수 있지만 한국의 평신도 신학자는 학교나 대학 등에서 자신의 전공을 펼쳐 보일 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는 ‘강연 시장’에서 믿고 부르는 명강사로 통한다. 개념조차 생소한 고대 근동과 구약 성경의 세계, 그 안에 자리한 작은 나라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쉽게 풀어 설명해준다. EBS든 유튜브든 그가 강의한 영상에는 늘 “감동 깊은 명강의”라는 댓글이 가득하다. 그는 “강의 비결이랄 건 없다”면서도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코로나19로 유튜브와 온라인에 온갖 강연이 공개되면서, 강사들의 실체가 많이 드러났지요. 서로 비교가 되고, 어느 강사가 어떤 자료를 쓰고 뭘 말하는지를 알게 됐으니까요. 밑천이 보이는 거죠. 결국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서량은 다 드러나거든요.”교회 위축의 극복은 이주민 사목에 있어그는 “평신도 신학자로서 신앙적으로나 실력으로나 인정받는 존재가 되면 좋겠다”면서 “평신도 신학자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다”고 말했다.“평신도 신학자의 길을 하느님께서 지지하고 응원해주고 계신다는 걸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꼭 필요한 걸 주시면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더라고요. 큰 고비 없이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교회 위축의 문제로 화제가 옮겨졌다. 위축되는 교회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그는 “이민을 받아들이는 데 교회의 역할이 있다”고 했다.“지금 같은 출산율로는 우리 사회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 것입니다.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과 잘 살아가는 게 관건이 될 거예요. 이때 가톨릭교회가 할 일이 있는 거죠. 이주민 사목에 더 적극 나서야 합니다.”가톨릭교회의 보편성과 형제애는 사회통합을 이루는 모범이자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는 “의정부교구가 일반 신자들을 난민 활동가로 양성하고 있는 건 굉장히 선구적인 사목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아무래도 외국인들이 들어오면 혐오 문제가 늘어나고, 우리 것을 뺏어간다는 식의 논리가 심해질 거예요. 교회는 거기에 반대하며 목소리를 내야죠. 교회 역시 많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러 사회 현안이 있지만 이주민 문제를 대처하는 데 있어 가톨릭교회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박수정 기자 catheirne@cpbc.co.kr cpbc2022.07.12

전쟁 중 전신 화상, 굴곡진 세월에도 “지금 이 모습마저 감사”[사순, 기억과 희망] (3) 작가 박영민(막달레나)씨 6·25 전쟁 때 포탄 화염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은 박영민씨. 가늠할 수 없는 기구한 인생을 살았지만, 성미술 작가로서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 한반도. 7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을 거치면서 분단의 순간은 역사 속 한 장면이 돼가는 듯하지만, 여전히 민족상잔의 비극을 온몸에 품고 사는 이들이 있다. 내년이면 구순인 박영민(막달레나, 89)씨는 6ㆍ25전쟁 때 포탄 화염으로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당시 그의 나이 16세. 가장 아름다울 시기에 새겨진 상처는 잔인했던 그 날의 기억이다. 전쟁의 상흔을 한평생 품고 살아온 것이다. 가늠할 수 없는 기구한 인생이지만, 박씨는 지금 뒤틀린 손에 연필과 붓을 끼운 채 희망을 그리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 ‘주님이시여, 저와 함께 해주신 모든 날들과 다가올 모든 삶 속에서 끝없는 감사를 드리게 하소서.’ 박영민씨가 뒤틀린 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정성껏 쓴 붓글씨 글귀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는 성미술 작가로 다시 한 번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이제 “감사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부터 개인적인 상처까지 수많은 아픔을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인생의 흔적이 그가 고백하는 감사의 무게를 알려준다. 박씨는 경기도 가평읍에서 4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큰오빠와는 15살, 막내 오빠와는 9살 차이. 온 집안 식구의 귀여운 막내딸이었던 그는 스스로도 “귀하고 자유롭게 자랐다”고 회상했다. 성격도 주체적이었고, 공부도 알아서 열심히 했다. 똑똑한 머리를 타고난 데다 노력까지 더해져 성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꿈도 뚜렷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었던 당시, 외교관이 되고자 대학교 진로까지 생각해 놓을 정도였다. 시간 나면 친구들과 천렵(소풍)을 다니며 여유도 즐겼다. “그 시절이 참 좋았습니다. 구김 없이 정말 자유롭게 살았죠.” 전쟁의 기억, 지워지지 않는 상처 1950년 6월 25일. 구김 없던 막내딸 박씨의 삶은 그 날 이후 기나긴 어둠의 터널로 들어갔다. 전쟁이 나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해 여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결정적으로 박씨의 상처는 중공군 개입으로 서울이 함락된 1951년 1월 4일, 일명 1ㆍ4후퇴 때 생겼다. “꼭꼭 숨겨뒀는데도 중공군이 어떻게 찾아서 먹을 걸 다 빼앗아 갔어요. 너무 무서워서 엄마랑 북한강 건너 사돈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먹을 게 없었죠. 다시 집으로 왔는데 폭탄을 맞았는지 동네 전체가 타버렸더라고요.” 다행히 옆 동네에 열병을 앓다가 도망 못 간 친구네를 찾았다. 그나마 타작 못 한 볏단으로 겨우 밥을 해먹었고, 무서움에 떨고 있던 그들은 박씨를 반겼다. 시간이 지나 피란 갔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전쟁 중에 포위돼 눈 속에서 발이 얼어 썩은 국군들이 우리 동네에 살았어요. 거의 기어 다녔죠. 바구니 헹굴 힘도 없어 시래기를 그냥 건져서 먹는데 얼마나 불쌍했는지 몰라요. 어리니까 대신 헹궈줄 용기도 안 나고….”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지 않은 박씨는 물을 퍼오라는 심부름을 받고, 가는 길에 몰래 국군에게 다시 들르기로 했다. “큰길로 다니면 비행기가 포격할까 봐 옆집을 통해 몰래 갔어요. 그때 갑자기 비행기 소리가 나서 놀란 마음에 짚으로 만든 김치각(김장독 저장하는 공간)에 숨었죠. 그런데 바로 벼락같은 게 쳤어요. 멀리 도망갔어야 했는데, 작은 구릉의 구멍이 보여서 거기로 기어들어 갔습니다. 거기 목화솜이 잔뜩 있었는데, 그때 비행기가 다시 포격하는 바람에 온몸에 불이 붙어버렸지 뭡니까. 김치각이고 목화솜이고 다 타버렸죠. 내 몸까지….” 그렇게 박씨는 정신을 잃었고, 한 달 만에야 국군이 들어와서 환자들을 응급조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의술로는 박씨를 고치기 힘들었다. 거기다 병원마다 환자들이 꽉 들어차 한참을 기다려야 치료받을 수 있었다. 박씨의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상했고, 손도 모두 뒤틀린 상태였다. “상심할 겨를도 없었고 거울도 없었어요. 어느 날 물에 비친 내 얼굴을 보는데 너무 이상한 거예요. 그래도 그때는 치료하면 되는 줄 알았지. 사람들은 나를 보면 귀신 보듯 놀라고.” 박영민 작가의 작품, 기도하는 성모님. 영세, 그리고 결혼 상황을 받아들인 박씨는 결혼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한 오빠 집에서 함께 살았다. “몸이 이러니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어요. 사람들은 외모만 보고 내가 말도 못하는 바보로 아는데…. 이후로는 조카 과외해주는 낙으로 살았어요.” 18살 되던 해에 세례를 받았다. 강원도청에서 일하던 큰오빠를 따라 춘천에 살게 됐는데, 당시 온 마을을 선교하던 죽림동본당 회장의 권유로 주님의 자녀가 됐다. 그는 “하느님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버텼을지 모를 정도로 신앙은 삶, 그 자체가 됐다”고 밝혔다. “하느님 뜻인지 35살 무렵에 저보고 결혼하자는 사람도 있더군요. 거기도 참 불행한 가정이었어요. 서로가 필요한 상황이었죠. 1년간 지켜보다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박씨 인생에 평안한 길은 없었던 것일까.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였고, 술만 마시면 돌변했다. 그렇게 남편은 술에 찌들어 살다 50대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래도 그 사이 낳은 박씨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인 두 자녀는 큰 위안이자, 동반자다. “참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요. 아이들에게도 늘 미안하지만, 부끄럽지는 않게 살고 싶었어요.” 희망을 그리는 작가 묵묵히 삶을 이어오던 박씨는 우연히 신문 배달 일을 접하게 됐다. 사람들을 마주칠 일 없는 새벽 시간에 하는 일이라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때 나이 60세. ‘새벽 신문 배달에 나이가 있을까’ 하는 당찬 생각이었다. “일주일 만에 20여 개 신문사가 발행하는 신문들을 각 집에 실수 없이 배달했죠. 처음에 제 외모만 보고 미심쩍어하던 회사도 인정해주더군요.” 그렇게 그는 몸이 안 좋아져 그만두기까지 15년간 매일 새벽, 신문을 배달했다. 신문 배달을 관두고는 경로당을 찾았다. 마침 강원일보가 노인들을 대상으로 문화교실을 열고 있어 겸사겸사 참여했다. 수묵화를 그때 처음 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박씨의 손을 보고 연필도 잡기 힘들 거라 생각하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예상과 편견을 또 깨뜨렸다. 피부가 벗겨지는 각고의 노력 끝에 “일반 수강생들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됐다”는 담당 선생의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수묵화에 서예까지 섭렵하며 강원일보사가 주최한 ‘장애인 미술공모전’에서 매년 수상했다. 2021년에는 ‘서예ㆍ문인화 작품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80세에 정식 작가로 등록한 후 매년 전시회를 열고 있는 어엿한 늦깎이 작가다. 지난해부터는 성미술도 그리기 시작했다. 매일 묵주 기도를 80단씩 바치고, 얼마 전에는 성경 필사까지 끝냈다. 지금껏 그를 지탱해 준 신앙을 그림으로 표현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근력이 닿을 때까지 성미술을 그릴 생각입니다. 하느님께서 늘 저와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믿거든요. 지금의 제 모습마저 감사하게 여깁니다. 저 같은 사람도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누군가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3.03.10
[독자마당] 변화무쌍한 고령이기에배선동 (프란치스코, 대구대교구 평리본당) 가정의 해(2021.3.19∼2022.6.29)를 보내면서 존천안빈(存天安貧 : 하늘의 뜻을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가난을 편안하게 여기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즐기며 살아가는 정신)의 자세로 내 삶의 행로를 사랑과 용서, 인지위덕(忍之爲德)이 같이하는 나날의 기쁨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난날들을 뒤돌아보면 일상 속에는 억울하거나 참기 힘든 일들이 가끔 발생하기도 하고 병마와 싸우며 고통 속에 시달리는 나날들을 감내하기도 합니다.이른 아침이면 성령에 힘입어 성모님 방에서 성호경을 긋고, 묵주에 달린 십자가를 손에 쥐고 사도신경, 주님의 기도 등을 차례로 암송하며 묵주기도로 일상을 시작합니다. 묵주기도는 우리가 약해질 때 삶의 활력을 주고, 하느님께로 향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묵주는 악마를 쫓아내는 유일한 무기이기도 합니다.묵주기도를 처음 시작한 것은 2004년 7월 초였습니다. 묵주와 함께해온 18년의 여정은 행복합니다. 노트를 보면, 묵주기도를 하루에 150단 이상 바친 날이 190일이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성모님께 정성 들여 장미꽃 56만 2000송이(묵주기도 56만 2000단)를 봉헌했습니다. 특히,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사랑으로 묵주기도는 계속되고 있으며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버스 안에서 묵주를 열심히 굴리고 있습니다. 이는 분심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으며, 내가 행하는 나날들은 성모님께서 주신 고귀한 사랑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코로나의 장기화로 신자들의 가정은 작은 교회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집 거실 벽면에 나란히 걸려있는 예수님 십자고상, 성경 가훈, 자작시 등은 신앙의 거울이 되어 자신을 비춰주는 믿음의 보물로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독자마당 원고를 기다립니다. 원고지 5매 분량입니다. pbc21@cpbc.co.kr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평화신문2022.05.25

순례가 끝난 뒤 진정한 순례는 시작된다[미카엘의 순례일기] (57)하느님과의 작은 약속 하나 성지순례는 예수님과 성인성녀들의 자취를 좇는 과정이다. 한국 성지순례단이 프랑스 라살라트 성모 발현지에서 기도하고 있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 햇수로 3년 차가 되어갑니다. 이제는 또 다른 유행병처럼 여겨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면서, 관광 사업에 의존하는 국가의 경제적 문제도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입출국을 엄격히 제한하던 나라들까지도 하나둘씩 국경을 개방하고, 국제선 항공 운항을 재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순례에 대한 문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곧 마음껏 순례할 수 있는 시간이 올 테지요. 하지만 순례란 무엇보다도, 순례가 끝난 그 후의 일상을 위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기억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지도 신부님의 제안으로, 순례단 모두가 하느님과의 작은 약속을 메모지에 적어 봉헌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앞으로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그 약속이 꼭 지켜지기를 바라는 지향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메모지들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신부님의 책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여러 해가 지난 후, 순례를 함께하셨던 한 형제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매일 복음 말씀을 읽겠다고 메모지에 쓰셨다가, 그마저도 지킬 수 없을까 봐 대신 그날의 복음이 쓰인 페이지를 찾아 책상 위에 펼쳐놓겠다고 고쳐 쓰신 분이었습니다. 그때 했던 약속에 대해 물으니, 형제님께서는 즐거운 웃음을 지으셨습니다.“사실 저는 주일 미사도 자주 빼먹는 신자였어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조그만 약속을 해놓고 나니, 그것만큼은 꼭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일단 성경을 사무실로 가져가 책상에 놓고는 출근하자마자 그날의 복음을 찾아 펴놓기 시작했어요.그런데 제게 결재받을 서류를 들고 온 직원들이 펼쳐진 성경을 보면서 여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신자인 줄 몰랐다고 말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어릴 때 세례를 받았지만 성당에 안 간 지 오래되었다는 말을 꺼내는 직원도 있었고요. 한 번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며칠이 지났는데, 직원 한 명이 ‘지난주와 같은 페이지네요’라고 말해 준 적이 있었죠. 창피한 마음에 성경을 아예 치워버릴까 생각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아예 10분 일찍 출근하기로 했어요. 펴놓은 복음을 읽고 주모경도 바치기로 했죠. 세상에, 10분 일찍 출근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몰라요. 하하.”“그렇게 한두 달이 지나고 나니 제가 아주 열심한 가톨릭 신자로 소문이 나버렸어요. 한번은 식사 전에 꼭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개신교 신자 직원이 고개를 들더니 나를 쳐다보는 거예요. ‘국장님은 기도 하지 않으시냐’는 표정이었어요. 그 후로는 십자성호를 긋고 식사 전후 기도를 해야 했죠. 부서장 회식을 하던 날에는, ‘국장님께서는 금요일에 고기를 못 드시니 회식은 목요일에 합시다’라고 먼저 제안해주더라고요. 무신론자인 직원이 제가 지켜야 할 것을 대신 알려준 셈이에요. 작은 약속 하나를 지키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직장에서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 변화는 결국 제 가정과 성당에서의 삶까지 영향을 끼쳤지요. 어느 날 아내가 ‘당신, 참 많이 변했어요. 미사에 참여하는 자세부터 달라졌어요’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약속을 잘못해서 그래요’ 하고 웃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작은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이 점차 나 자신을 변하게 하네요.”이탈리아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평생 활동했던 20세기의 위대한 신학자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 1885년~1968년) 신부님께서는 “성당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기도하며 구원을 기대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신자들에게 다리를 꼬고 앉아 기도하라 시켜도 그러지 않을 테지요. 하지만 설령 그런 삼가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해도, 행동(형식)에 담긴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먼저 그렇게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모든 ‘형식’에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성당 안에서 바른 자세로 앉으면 비딱하게 앉았을 때보다 진실한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웃으면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먼저 행동을 바꾸면 어느새 그 마음까지도 변하게 되니까요.성지순례도 그러한 ‘형식’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예수님과 성인 성녀들의 자취를 좇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신앙이 변화하는 것, 그리고 그 변화를 순례가 끝난 이후의 삶까지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성지순례라는 체험이 주는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cpbc2022.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