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세주 탄생 준비하고 다시 오실 주님 기다리다대림시기 전례와 의미 대림 시기는 구세주 탄생을 준비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라며 경건하게 기도하는 시기이다. 사진은 대림 시기 동안 구세주가 얼마나 가까이 오고 계신지를 알려주는 대림초로 모든 초에 불이 밝혀지면 주님 오심이 임박했음을 드러낸다. 전례력으로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전례력은 ‘대림 제1주일’을 새해의 첫날로 시작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한 해를 이룬다. 전례력은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을 시작으로 부활과 성탄 시기, 이를 준비하는 파스카 성삼일, 성주간, 사순ㆍ대림 시기 그리고 연중 시기로 구분된다. 2023년 주일과 축일 미사 독서와 복음은 ‘가해’, 연중 시기 평일 미사 독서와 복음은 ‘홀수해’ 성경을 봉독한다. 대림 시기‘대림’(待臨)은 주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임하시기를 기다리는 때로 주님 성탄 대축일 전까지 4주간을 말한다. 라틴말 전례 용어로는 ‘앗벤투스’(Adventus, 찾아옴, 다가옴)라고 한다.대림은 이중 의미가 있다. ‘구세주 탄생’을 기쁨과 희망 속에서 깨어 준비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경건하게 기도하는 때이다. 그래서 교회는 대림 시기를 ‘간절하고 감미로운 희망의 시기’라고 한다. 대림은 또 ‘회개의 시기’다. 구세주 오심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선 내ㆍ외적으로 합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이 바로 ‘회개’이다. 그래서 교회는 사순 시기와 마찬가지로 대림 시기에도 기도와 단식, 자선을 권장하며 고해(판공)성사를 권고한다. 이에 가톨릭 신자들은 이 시기 동안 고해성사로 하느님과 화해하고, 이웃에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며 주님께서 곧 오심을 알린다. 대림 시기 전례교회는 대림 의미를 잘 드러내기 위해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대림 제1주일~12월 16일)와 ‘주님 탄생을 기다리는 시기’(12월 17일~24일)로 나뉘어 전례를 거행한다. 대림 시기 각 주일 전례 의미는 해당 주일 복음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전례력으로 가해 대림 시기 복음은 ‘마태오 복음서’ 내용을 봉독한다. 대림 제1주일은 세상을 구원하러 오실 구세주를 깨어서 기다리라고 당부한다.(24,37-44) 대림 제2주일은 구세주 오심을 준비하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3,1-12) 대림 제3주일은 구세주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으니 기뻐하라고 일러준다.(11,2-11) 대림 제4주일은 우리가 기다려온 분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주며 그 탄생을 예고한다.(1,18-24)대림 시기 주일 미사 제1독서와 평일 미사 독서는 구원에 관한 희망이 잘 드러난 여러 예언서를 봉독한다. 또 주일 미사 제2독서는 구약의 예언들이 하느님 안에서 어떻게 완성됐는가를 보여주는 사도들의 서간을 봉독한다. 대림 제2주간 목요일부터는 요한 세례자에 관한 복음서 내용이 선포된다. 요한 세례자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세주가 오셨음을 선포해 주님의 시대를 여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성탄 전 마지막 주간에는 마태오 복음(1장)과 루카 복음(1장)을 봉독한다.대림 시기 전례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바로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인류의 중재자이신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에 빼놓을 수 없는 분이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는 구원받은 첫 번째 인간이며 그리스도 오심의 결정적 열매이다. 성모 마리아는 구세주를 맞기 위해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모범이시다. 그래서 대림 시기에 거행하는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구원 신비의 한 부분을 구현한 전례 의미를 보여준다.대림 미사 전례 특징대림 시기 미사 때에는 ‘대영광송’을 하지 않는다. 회개와 절제, 기다림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림 시기는 사순 시기와 달리 기쁨의 때여서 ‘알렐루야’를 노래한다. 이는 주님 탄생 때 ‘천사의 노래’(루카 2,14)가 새롭게 울려 퍼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사제는 ‘보라색’ 제의를 입는다. 보라색은 ‘회개와 보속’을 상징한다. 단 기쁨의 시기인 대림 제3주일에는 ‘장미색’ 제의를 입는다. 사제는 1년에 장미색 제의를 딱 2번 입는데, 바로 대림 제3주일과 부활이 다가오는 것을 기뻐하는 ‘사순 제4주일’ 때이다.성가도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대림 제1주일~12월 16일)와 ‘주님 탄생을 기다리는 시기’(12월 17일~24일)로 구분해 부른다. 종말을 기다리는 시기에는 재림, 심판, 영광, 그리스도 등의 단어가 포함된 성가곡을 선택해야 한다. 이 시기는 주님 탄생을 고대하는 때가 아니기에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성가곡을 노래하는 것은 전례 의미에 맞지 않다. 주님 탄생을 기다리는 기쁨의 시기에는 종말론적 주제보다 아기 예수 탄생을 고대하는 내용의 곡을 노래한다. 대림 시기 미사에는 대림초를 켠다. 제단에 장식된 대림환 안에 대림초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림초는 모두 4개이다. 매주 촛불을 하나씩 늘려가며 구세주가 얼마나 가까이 오고 계시는지를 알려준다. 4개의 초는 구약의 4000년과 대림 4주간뿐 아니라 동서남북 사방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림초는 진보라, 연보라, 분홍, 흰색의 네 개 초를 쓰는데 가장 짙은 색 초부터 불을 밝힌다. 대림 제4주일에는 모든 초에 불을 밝히면서 주님 오심이 임박하였음을 알린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11.23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8. 여행지 : 성사(聖事)](//cpbc.co.kr/CMS/newspaper/2021/12/rc/816176_1.1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8. 여행지 : 성사(聖事)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우리는 하느님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보이는 어떤 것들을 통해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간혹 자연의 절경이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보면서 저절로 하느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이처럼 어떤 사물이 하느님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이 사물은 성사(聖事, 거룩한 사물)가 됩니다. 이때 말하는 성사는 넓은 의미의 성사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사란 좁은 의미로, 교회의 일곱 성사(세례, 견진, 성체, 고해, 혼인, 성품, 병자)를 얘기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을 보여주실 뿐 아니라, 하느님 자체이시므로 그리스도를 ‘원성사’(原聖事, 원천적 성사)라고 합니다.그럼 성사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 여행※성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 성사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여주는 무엇인가? 2. 교회는 누구를 보여주기에, 누구의 성사인가? 3. 교회의 일곱 성사를 누가 제정하였는가? 4. 일곱 성사 중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세례성사와 무엇인가? 5. 입문성사(入門聖事)란 세례성사, 성체성사, 그리고 무엇인가? 6. 일곱 성사 중 인호(印號)를 받는 성사는 몇 가지인가? 7. 성사의 은총 중 ‘성사 거행 그 자체로’ 주어지는 효과를 무엇이라 하는가? 답란1. □지 2. □□□도 3. □□님 4. □□성사 5. □□성사 6. □가지 7. □□성 가이드 설명1. 성사의 정의 성사(聖事, Sacrament)란 하느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통로와 같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감각적, 상징적으로 표현한 거룩한 표징들(물, 기름, 안수, 빵 등)입니다. 성사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보이지 않은 하느님의 은총을 보여주는 표지”(성 아우구스티노)입니다. 표지(標識)는 다른 사물과 구별하여 알 수 있도록 한 표시나 특징을 말하지요. 2.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사 우리의 매일은 성사(聖事)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 안에 숨어 계시지만, 우리가 찾고자만 하면 그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하느님을 느끼도록 이끌어준다면 그 꽃은 단지 사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성사가 되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에 살아계시며 교회를 통해 체험되기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사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은 전례나 제도, 전승들이라기보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우리들의 신앙을 통해서이지요. 3. 교회의 일곱 성사 제정 교회 안에서 세례성사와 성체성사 외의 다른 여러 성사가 언급되었는데, 12세기 성 빅토르 후고(1078~1141년)는 성사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다음의 3가지로 말하였습니다. ①예수님께서 제정하여야 함 ②어떤 가시적인 표징이 있어야 함 ③그 안에 하느님의 은총이 포함되어야 함. 그리하여 제2차 리옹 공의회(1274년)에서 성사의 수가 일곱 가지로 확정이 되었지요. 일곱 가지로 정한 이유는 7을 완전하고 거룩한 숫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숫자인 4와 삼위일체의 3을 더한 수가 7이기 때문이지요. 4. 성경에 나타난 일곱 성사 신약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입니다. 다른 성사들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성경 안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병자 치유(마르 1,32-34), 예수님의 성령 파견(요한 20,22), 사도들에게 부여하신 사죄권(마태 16,19), 혼인 불가해소성에 대한 가르침(마태 19,6), 제자들을 부르심(마태 4,19)에서 병자성사, 견진성사, 고해성사, 혼인성사, 성품성사에 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지요. 개신교에서는 성경에 명확하게 나오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만을 인정합니다. 이에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는 일곱 성사 모두 예수님께서 제정한 교회의 성사로 재확인하였지요. 5. 입문성사 교회로 들어오는 입문성사(入門聖事)는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보충하는 예식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받은 새 생명을 더욱 발전시키고 완성시켜 주지요. 즉 세례성사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고, 견진성사로 굳건해지며, 성체성사로 영원한 생명의 음식을 받아 하느님 생명을 풍성히 받고 사랑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이 세 성사를 한꺼번에 거행하였는데, 이후 견진성사가 분리되어 세례성사 후 일정한 신앙의 성숙 시기를 가진 후 받는 것으로 되었지요. 6. 인호 인호(印號)란 그리스도께 속해있다는 영적 표징으로 영혼의 도장이라고 합니다.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 중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품성사의 세 가지 성사를 통해 영혼은 지울 수 없는 각인인 인호를 받지요. 하느님의 선택과 부르심은 결코 취소될 수 없기에 이 성사들은 일생에 한 번만 받을 수 있습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이 표지는 표를 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특수하고 유일무이하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뜻하지요. 7. 성사의 사효성 성사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성사 행위 자체인 예절의 거행, 집전자의 의도, 그리고 그 성사를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정당해야 합니다. 성사는 성사 거행 그 자체로 효력을 발생하는 사효성(事效性)의 특성이 있습니다. 이는 집전자의 인간적 요소보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여행 옵션 / 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성당경기도 수원 조원동성당은 1976년 기공식 거행 당시 수원교구에서 제일 큰 규모였다. 고등동 주교좌성당이 협소한 관계로 1977년 두 번째 주교좌성당으로 건립이 되었다. 이 성당마저 협소해서 20년 뒤, 1997년에는 정자동성당이 세 번째 주교좌성당으로 건립되면서 정자동 주교좌성당과 함께 수원교구의 공동 주교좌성당이 되었다. 조원동 주교좌성당의 제대 벽면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상과 일곱 성사를 표현한 모자이크가 장식돼 있다. 유리에 복합 재료를 이용하여 오른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고해, 성품, 병자, 성체, 혼인, 견진, 세례성사의 일곱 성사를 형상화하였다. 여행 기념품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탄생, 성장과 병, 결혼, 죽음의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시며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 위하여 일곱 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일곱 성사 중 내가 그동안 받은 성사는 어떤 것이 있나요? 성사의 은총은 성사 그 자체로 주어지는 은총이 있지만, 성사를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나는 세례성사(또는 견진성사나 혼인성사)를 어떤 마음과 자세로 받았나요? 또 그동안 성체성사, 고해성사를 받으면서 어떤 자세로 임하였나요?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12.29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61. 주님께서 이루신 일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곡식이 여물어가는 계절, 농부들의 손이 더 바빠지는 철이다. 얼마나 바쁠지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수확하는 농번기에는 겨우살이 먹을 양식이 하나하나 준비된다는 기쁨에 피로를 잊을 수 있다. 때로는 덜 여문 호박이나 고추, 곡식들이 있지만, 농부들은 이것을 살뜰히 거두어 이웃과 나눈다. 이조차 아쉬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남은 밭째로 거둬가라고 내어준다. 성경에서 룻에게 나눈 것처럼 이삭줍기를 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이 계절이 되면 홍시가 된 감을 뜰채로 따곤 했는데, 나무마다 대여섯 개는 남겨두었었다. 어린 나로서는 그것이 궁금했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거는 까치밥이여. 저거마저 우리가 따먹으면 새들이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 새들도 겨울을 나야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함께 산다는 게 대단한 격식으로 챙겨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누군가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열매와 시간과 정성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많은 사람이 교과서를 찾는다. 수많은 말로 머리를 깨우치고 가슴을 열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는 것이 마치 사는 것처럼 여기고 교과서를 덮고는 다시 자신만을 위해 탑을 쌓는 사람들이 많다. 새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지, 들풀이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가난한 내 이웃의 행복이 우리를 얼마나 더 행복하게 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새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하늘 길을 날 수 있는 것은 제 몸에 ‘기억’의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철새들처럼 우리 몸에는 이 모든 생명과 함께 사는 기억, 돌보는 기억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것을 잊었을 뿐이다. 다행인 것은 본래의 기억으로 돌이키기 위한 우리들의 몸부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국회청원 서명운동’이 진행되었었다. 5만 명의 서명을 얻어야 국회에 발의될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이었지만, 9월 중순이 되었을 때에 10%밖에 받을 수 없어서 마음에 조바심이 일어났었다. 그런데 지금 삼척 현장에서 온 마음과 몸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원기 교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녀님, 될 거예요. 걱정 마세요.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니까요.”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갔다. 교구ㆍ수도회ㆍ가톨릭평화방송과 가톨릭 굿뉴스,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발 벗고 나서서 결국 27일에는 3만 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3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2만 명의 서명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이틀 동안 많은 수녀님과 형제자매들이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만나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발 벗고 뛴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29일에 마침내 5만 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우리가 기적을 만들었어요!’라고 말을 했다. 정말 기적이었다.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너무 기쁘고,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결과를 보자마자 성원기 교수님께 전화를 했더니, “수녀님, 이거 봐요. 된다니까요”라고 하시며, “저는 우리가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주님께서 이루어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주님께 감사드리면서 그분께서 시키시는 일을 계속 해나갈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예언자 엘리사가 나아만으로부터 받는 그 어떤 감사도 하느님께로 돌려드렸던 것과 같은 자세를 교수님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고, 이러한 믿음을 통해 당신 일을 이루시는 주님께 감사드렸다. 우리는 순간순간의 위기와 바람이 있을 때에 주님께서 이루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그런데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 노력한 자신의 몫을 드높인 후, 정작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시고 함께하셨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열 명의 나환우를 낫게 해 주셨지만 한 명만 돌아와 감사드리고, 결국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와 참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cpbc2022.10.05

영성 심리 상담가 신부의 개인과 사회, 종교 이야기 말해야 산다 홍성남 신부 지음 / 가디언“어렵게 쓴 책들에 질렸거든요. 나더러 작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작가가 아니에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쓴 거예요.”홍성남(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신부의 신간이 출간됐다. 최근 몇 년간 거의 해마다 책을 펴내고 있는 셈이다. 책을 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홍 신부는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부딪히고 생각한 것, 영성 심리를 통해 내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상담하며 쌓아온 많은 이야기를 그저 술술 써내려간 것이라고. 이번 책도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낸 것이다. 그래서 제목도 「꼰대 신부 홍성남의 구시렁 심리학 - 말해야 산다」이다. “원래 개인 심리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사람은 굉장히 민감한 존재예요. 그래서 아무리 건강하게 살려고 해도 주변의 환경이 좋지 않으면 오염된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사람도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10여 년 전 가좌동본당에 있을 때 일대 재개발 사업과 맞물려 사회의 어둡고 불편한 진실들을 직면하면서 그걸 체감했어요. 그때부터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죠. 그냥 두면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문제에 부딪히니까. 그래서 내가 사회 문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말하고 싶은 것을 쓴 거예요.”책은 크게 3부로 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 종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개인의 분노와 지나친 걱정, 돈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 등은 물론 불량 종교와 종교인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종교적인 영성도, 사회적인 정신건강도 개인의 인성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특히 지금의 한국 사회는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정신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심리학과 가톨릭 교리의 간극이 빚어내는 딜레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 신념이 병적일 때가 있어요. 지나치게 신앙심을 강조하거나 지나치게 성인이나 순교자를 강조하는데, 우리 마음은 그렇게 결연하지 않거든요. 따라가지 못할 높은 목표 때문에 신자들이 중도에 허우적거리다 죄의식에 빠지곤 해요. 하느님의 뜻을 하나로 얘기한다면 무엇일까요? 부모님들은 첫 번째로 자녀들의 행복을 꼽죠. 그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세요.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성경을 보니까 예수님도 ‘행복하라’는 말씀을 계속 언급하셨더군요.”홍 신부는 이렇게 다양한 ‘하고 싶을 말’을 책은 물론이고 방송과 강연, 사설, 상담 등을 통해서도 쏟아내고 또 받아내고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의견도 많이 들었지만, 일은 계속 확대됐고 소통할 수 있는 길도 더 다채로워졌다. “하느님 뜻에 맡겼어요. 원하시면 계속 할 테고, 아니면 접게 되겠지. 그런데 2011년 한 일간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뒤 전국에서 연락이 왔고, 일이 계속 늘었습니다. ‘하느님도 이 길을 원하시는구나!’ 생각했죠.”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심리’를 통해서도 전 세계 65개국 4만여 명의 구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강연 등이 줄어들자 은퇴 준비에 앞서 마지막으로 과거 사목했던 곳에서 시작한 무료 강의를 한 봉사자가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아직 일을 끝내면 안 되는구나. 이게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마지막 일이 아닌가 싶어요.”(웃음) 1987년 사제품을 받은 홍성남 신부는 잠실ㆍ명동, 마석ㆍ가좌동본당 등을 거쳐 현재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나를 더 알고자 가톨릭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영성 상담을 전공했다. 이를 계기로 본지를 비롯해 가톨릭평화방송 등에서 상담 코너를 진행했고, 현재 강연과 방송, 칼럼 등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cpbc2022.09.21
![[금주의 성인] 성녀 마르타 (7월 29일)](//cpbc.co.kr/CMS/newspaper/2022/07/rc/828228_1.1_titleImage_1.jpg)
[금주의 성인] 성녀 마르타 (7월 29일) +1세기경, 베타니아 활동, 동정녀, 요리사의 수호성인 마르타 성녀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마리아 성녀와 라자로 성인의 누이입니다. 성녀는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 인근에 있는 마을인 베타니아에 살다가 예수님이 여행 중 이곳에 들르자 집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중을 분주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인 마리아가 그분 발치에 앉아 말씀만 듣고 있는 것을 보고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10,38-42) 활동적이고 바빠 보이는 성녀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납니다. 라자로 성인이 병을 앓았을 때 성녀 자매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곧장 오지 않고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하시며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녀가 사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이미 라자로 성인은 죽고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지나있었습니다. 성녀는 예수님이 오시는 날, 처음과 같이 그분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예수님과 다시 만난 성녀는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원망하면서도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성녀는 예수님께서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까지만 해도 그분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곧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그는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라는 가장 완전한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요한 11,1-27)중세의 전설에 의하면 성녀는 어떤 마을에서 그곳 사람들을 괴롭히던 타라스크라는 괴물을 십자가를 들고 성수를 뿌려 얌전하게 길들였다고 합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그곳의 이름도 타라스콩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던 성녀가 참된 제자로 성장하는 과정은 불완전한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한편, 우리가 걸어가야 할 신앙의 길의 모범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르타는 예수님께 너그러이 환대를 베풀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온순하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복시키신 분의 명령으로 무덤에서 즉시 나왔다”며 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강조하면서, 7월 29일을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cpbc2022.07.19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을 내어 맡기다[사순 시기] 복음서로 보는 주님 수난 - (4) 잡히시다 Giotto di Bondone, 체포당하는 예수 그리스도(유다의 키스), 프레스코, 이탈리아 파도바의 아레나성당 벽화. ▨겟세마니에서 잡히시다예수님께서는 ‘대사제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과 함께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 겟세마니로 가셨다. 겟세마니는 올리브 산에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 정원으로 들어가시어 제자들을 두고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가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고뇌에 싸여 피땀을 흘리시면서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며 기도하셨다.(루카 22,42) 바오로 사도는 이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히브 5,7)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에서 홀로 마지막 외로움, 인간으로서의 모든 고난을 체험하셨다. 여기서 죄와 모든 악의 나락이 그분 영원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밀려들었다. 여기서 그분은 임박한 죽음에 대한 예감으로 전율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거스르는 인간 본성의 모든 저항을 스스로 이겨내시고서야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곧 하느님께 당신 자신을 내어 맡기신다.네 복음서는 예수님의 겟세마니 밤기도가 모두 잠들어 있던 제자들에게 조명받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이 몰고 온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 군대와 성전 경비병들에게 체포됐다고 한다.▨최고의회와 빌라도 앞에 서시다체포된 예수님께서는 맨 먼저 한나스와 대사제 카야파에게 끌려가셨다. 한나스는 대사제 카야파의 장인으로 서기 6년부터 15년까지 대사제직을 수행한 인물이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상부 도시에 있는 한나스와 카야파 대사제의 집에서 밤새 매질과 조롱, 모욕을 당하셨다. 날이 밝자 원로단, 곧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 최고의회인 ‘산헤드린’으로 끌고 가 심문한 다음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보냈다. 빌라도 역시 예수님을 심문한 후 마침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서 하스모네아 왕궁에 머물던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보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업신여기며 조롱한 다음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냈다.(루카 23,6-12 참조) 때는 니산달 14일 밤이었다. 니산달 15일은 ‘파스카 축제일’이다. 서기 28~33년 사이 니산달 14일이 금요일이었던 것은 딱 두 번이었다. 30년 4월 7일(성경학자들이 더 선호하는 날짜임)과 33년 4월 3일이다. (「성경 역사 지도」 208쪽 참조) 전례력으로 이날은 파스카 성삼일 중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 후 밤에는 베타니아로 가서 묵으셨지만, 파스카 만찬을 하신 이 날은 성 안에 머무셨다. 그리고 묵묵히 제자들의 배반과 수난을 마주하셨다.한편, 최고의회 의원들과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은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오?” “유다인의 임금이오?”라고 심문하면서 모진 매질과 조롱을 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명료하게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마르 14,62)라고 말씀하신 후 입을 다무신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대사제 카야파는 자기 옷을 찢었고, 최고의회 원로들은 모두 “사형받아 마땅하다”고 예수님을 단죄했다. 로마 총독 빌라도 역시 예수님께서 반역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했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3.30
![[가톨릭 영상교리] (2) 교회란 무엇인가](//cpbc.co.kr/CMS/newspaper/2022/04/rc/822417_1.8_titleImage_1.jpg)
[가톨릭 영상교리] (2) 교회란 무엇인가교회,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의 모임 여러분은 ‘교회’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십자가, 성당, 성당에 모인 사람들, 교황님, 기도…. 아마 교회라고 하니까 개신교회를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크게 보면 모두가 교회라는 말로 나타나는 것들로 우리가 자주, 또 쉽게 만나는 교회의 여러 모습입니다. 교회라는 단어 ‘에클레시아’는 그리스어 성경에서 한데 모인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의미하였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자신을 ‘에클레시아’라 표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자들의 집회’라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즉, 교회는 하느님께서 불러 모으시고 이에 응답한 사람들의 모임, 신자 공동체를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우리는 흔히 내가 하느님께 오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판단,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닙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가 하느님 곁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부모님을 통해서든 친구를 통해서든, 아주 작은 사건이나 말 한마디를 통해서든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경로는 예측할 수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우리를 왜 부르셨을까요? 그리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는 왜, 또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신 데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창조 사업에 우리를 참여시키시고 또 친교와 사랑을 나누시고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당신 닮은 모습으로 당신 손수 빚으시고 당신 숨을 불어넣어 주심으로 말입니다.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우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하느님과 같아질 욕심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하느님을 저버렸으며 하느님에게서 멀어져갔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과 함께 있을 때는 없었던 ‘죽음의 불안’과 ‘육신의 고통’이라는 죄의 굴레를 안고 살아가게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으셨습니다. 다시 당신의 ‘영원한 생명,’ 당신과의 친교와 사랑으로 이끄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도 함께 죽음에서 부활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당신 안에서 말입니다.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희생 제사로 열리게 된 구원의 길이 땅끝까지, 또 모든 민족에게까지 펼쳐지기를 바라시며 사도 베드로를 시작으로 열두 사도를 뽑아 당신의 희생 제사와 구원 사업이 계속될 제도, 바로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미리 약속하셨던 보호자이자 인도자이신 성령께서 내리심으로써 세상에 그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게 됐습니다. 결국, 교회는 하느님 나라, 우리를 당신과의 친교와 사랑, 영원한 생명으로 불러들이시기 위해 성부께서 계획하시고 성자께서 세우시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시작하신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신비체입니다.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세우시고 시작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 베드로와 모든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님과 주교님들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로 안내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양육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자리 잡으면서 말입니다. 그 교회 안에서 우리는 미사에 참여하여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분께 찬미 드리며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그분과 하나 됩니다. 또한, 기도로 하느님과 만나며 일상생활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살아갑니다. 또,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모든 사람과 친교를 이루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교회는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이고, 예수님의 사업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께서 머물며 이끌어 주시는 성령의 궁전입니다.교회는 또 언제 어디서나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의 전례를 거행하기에 ‘하나’입니다. 비록 부족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거룩한 성령께서 인도하시기에 ‘거룩하고’ 모든 시대 누구에게나 똑같이 열려있기에 ‘보편되며’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고 있기에 ‘사도로부터 내려온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교회의 지체이며 각자 하나의 교회이기에 하느님의 말씀,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사명은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교회인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다그칩니다.▶가톨릭 영상교리 보러 가기[금주의 성인] 마르코 (4월 25일)복음사가, 베드로 사도의 애제자, 알렉산드리아 교회 주교, 순교자.마르코 복음사가는 신약성경에 무려 10번 가까이 등장합니다. 그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사도 12,12. 25)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요한은 유다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그리스식 이름입니다. 그는 마리아라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예루살렘에서 살았으며, 그의 집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집회를 했던 곳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마르코를 “나의 아들 마르코”(1베드 5,13)라고 할 만큼 그는 베드로의 애제자였습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사도행전은 베드로 사도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기적같이 풀려나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사도 12,1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와 관계가 깊었던 마르코에 대해 초대 교회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베드로 사도의 진정한 대변인이며 통역관으로 여겼습니다.마르코 복음서의 친저성(직접 서술했는지 여부)에 관해 처음으로 증거를 제시한 인물은 프리기아 지방(현 터키)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60~130) 주교였습니다. 그는 마르코 복음사가에 관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베드로의 통역관이 된 장로 요한 마르코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거나 행하신 것 가운데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을 순서대로는 아니라도 정확하게 기록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듣거나 그분을 따라다니지는 않았지만, 내가 말했듯이 훗날 베드로와 동행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과 관련해 해석하려 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가르침을 베풀곤 했다. 그러나 마르코는 몇 가지 내용을 자신이 기억하는 대로 기록하면서 어떤 오류도 범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자신이 들은 것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며 거짓 진술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파피아스의 단편,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3,39,14-15. 「교부들의 성경주해-마르코 복음서」 번역 인용)교회 전승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주교가 된 마르코는 신자들과 부활절 미사를 드리던 중 이교도의 습격을 받고 붙잡혔다고 합니다. 이교도들은 마르코의 목에 밧줄을 묶어 이틀 동안 거리로 끌고 다녔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낭자했던 마르코는 그렇게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교도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불태우려 하자 천둥과 번개가 쳤다고 하고, 이에 놀란 이교도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버려둔 채 도망치기 급급했다고 합니다. 그 틈을 타 알렉산드리아 신자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수습해 모셨다고 전해집니다.이후 마르코 복음사가의 성해는 829년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베네치아로 옮겨졌습니다. 베네치아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대성당을 지어 그곳에 그의 성해를 안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cpbc2022.04.19

2022년 새해, 용기와 희망 불어넣는 책 읽으며 맞이하자 2022년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순백의 도화지 같은 새로운 한 해를 선물 받았지만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 과거의 상처와 아픔, 때때로 찾아오는 무기력함과 허무함을 지난 달력과 함께 내다 버리기가 쉽지 않다. 새해에는 절망보다 희망을, 슬픔보다 기쁨을 더 많이 길어올릴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주는 책 2권을 소개한다.러브 마이셀프, 나를 사랑하면 달라지는 것 / 멜라니 피그니터 지음·임정희 옮김 / 일므디“다시 심해진 상처, 실망, 모욕은 우리 안에 치유가 필요한 곳을 알려 주는 메신저다. 그곳을 찾아내어 상처와 오래된 신념, 부정적인 경험과 맞설 용기를 낸다면 흉터 뒤에 숨은 선물을 빨리 발견할 수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 통증 질환으로 고생하던 멜라니 피그니터는 위기와 불행이 삶의 선물일 수 있음을 깨닫고 통증을 극복한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 작가가 되기까지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삶에 찾아오는 모든 일이 선물이 된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가 말하는 행복한 삶의 여정 비법은 내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자신에게 일어난 나쁜 일 속에서 좋은 일을 찾아내야 하는데, 시간을 내어 자신을 바라보고 나에게 다정히 대화를 걸어보라고 권한다.저자는 우리 행복을 방해하는 상황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간 속에서 절망과 죽음의 공포를 맛봤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가 심리상담가로 활동하면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과 다양한 위기 상황을 펼쳐놓는다.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잠재력을 발견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들을 소개한다.불안과 절망, 분노와 두려움, 외로움과 매너리즘 등으로 힘들었던 문제가 오히려 진정한 나를 발견할 기회임을 깨달을 수 있다. 멜라니 피그니터는 상담 전문가로 블로그와 강연 등을 통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중요함을 알리고 있다.치유의 순간 / V. 안토니오 사지 VC 지음·류해욱 옮김 / 바오로딸“모든 것을 봉헌하고 주님 손에 맡겼기에 우리의 상처는 씻기고 고통도 사라졌습니다. 구름은 걷히고 희망이 가득합니다.”성모님과 함께하는 6일간의 침묵 치유피정 순서에 따른 39개의 길고 짧은 강론을 담은 책. 저자는 인도의 빈첸시오회 수도 사제인 안토니오 신부로, 성경 말씀에 토대를 둔 그의 강론은 믿음의 삶을 성찰하게 하고, 위로와 기쁨을 안겨준다.그의 강론은 성서학적 지식이나 전문적인 성경 해설은 아니지만, 믿음이 스며드는 생활, 삶의 동반자로 삼아야 할 기도 생활과 죄를 직시하고, 통회와 회개의 길로 나아가도록 빛을 비춰준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 삶의 바탕은 성경이어야 함을 강조한다.“우리는 모두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성령께서 머무신다는 표시이지요.… 그러나 죄책감은 지니지 마십시오. 빛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봅시다. 어떤 가면도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슬픔에 빠지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희망을 지니고 사는 것입니다.… 인간인 저는 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없습니다.(125∼128쪽)2006년 인도 케랄라에서 사제품을 받은 저자는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성모님과 함께하는 6일간의 침묵 치유피정’을 지도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12.29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36. 우리의 봄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겨우내 가물다가 요사이 봄비가 한 번 내리고 나니 멀리 보이는 산자락이 뿌연 연둣빛 옷자락을 드러냈다. 가로수를 품고 있는 몇 줌의 흙에도 여린 초록빛 새싹들이 드리운 것을 보니 너무나 반갑다. 간간이 자리한 화단에 가장 먼저 자리 잡고 올라온 잎은 역시나 쑥과 개망초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정말 1년 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도심에서 새까맣게 때 낀 얼굴을 해도 여전히 예쁘기만 하다. “하, 너구나! 반갑다. 여기서 만나네.” 그 친구들도 더 환한 빛으로 봄바람에 하늘거리며 나에게 인사한다. 정말 설레는 것은 벚나무 꽃망울들인데 금세라도 터질 양으로 잔뜩 오므리고 모두의 눈길을 받고 있다. 며칠 후면 제 환한 모습을 보여주려나 보다. 이들을 보면 노래할 수밖에 없고,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고, 마음에 생명과 사랑을 담을 수밖에 없다.봄은 오고 있는데, 아직 우리 마음은 겨울인 듯하다. 힘이 빠지는 일들이 정말 많이 일어나고 있다. 시민들은 기후위기에 직면해 도대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전 지구적 팬데믹에서 어떤 의식 전환이 있어야 하는지, 에너지부터 먹거리까지, 분리수거부터 자원순환가게까지, 학교 교육부터 가정교육까지 배우고 직면하고 바꾸고자 뭔가를 시작하고 있다. 나 혹은 우리 가족, 혹은 우리나라를 넘어선 지구 시민적인 행동변화를 일으키고 싶어서, 전 세계인이 ‘지구의 시간(Earth Hour)’을 지키고, 버려지는 상자 뒤에 ‘기후행동 지금 당장!’을 써서 소리 없는 외침을 하고 있다. 한 시간 동안 벌서는 자세로 피켓을 들고 서 있어도 힘든 줄 몰랐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언어가 다르고 살아가는 상황이 달라도,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모두 힘을 모으려는 줄 알았다. 사실 그렇게 힘을 모아도 뒤늦은 우리가 선택한 것은 ‘전쟁’이다.정말 할 말을 잃게 한다. 서로 남을 탓하고, 심지어는 중상모략으로 그 어떤 선한 의도를 묵살하며, 자신들이 믿는 신념이 답이라고 강요하고, 뻔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죽음과 고통을 부르는 그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 총과 칼, 미사일이 필요한 상황으로 조장하고, 나라 간의 친교를 배제하고, 속국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넓게는 나라 간의 관계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이기도 하다. 또 아주 가까이는 내가 살아가는 관계이기도 하다. 당장에 총을 쏘는 이들에게 나는 손가락질하고 있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이 내가 사는 이야기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자신이 살던 터전에서 내몰리고 있다. 성경에서 무죄한 아기들의 죽음으로 울부짖는 어머니들의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들의 피가 땅바닥에서 하느님께 울부짖고 있다. 자신이 도대체 어떤 권리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저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는 말인가? 무기를 들도록 하는 선의 가면을 쓴 악의 얼굴을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가장 똑똑한 척하면서 정작 가장 바보 같은 짓을 하는 듯하다. 우리는 성경에 쓰인 인간의 죄상을 알면서도 그대로 답습하는 바보이다. 하느님께서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는데,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또 서로를 고소할 구실을 찾고, 올가미를 씌우려고 하고, 돌을 던지려고 하고 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인간은 살려달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죽음의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 자연 생명은 그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 저 소리가 들리는가?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나와 우리와 그리고 모든 생명을 살리시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위기에 처해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 바로 그때다. 들고 있던 돌을 내려놓고 그가 살도록 할 때…. 모든 생명은 참으로 ‘봄’을 맞이하고 싶어한다.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cpbc2022.03.30

하느님 말씀 종이에 쓰고, 돌에 새기며 마음을 치유하다[하느님의 말씀 주일에 만난 사람] 캘리그라피·전각 작가 유임봉 두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 마태오 복음서. 그가 붓으로 복음서를 한 줄 한 줄 써내려 가고 있다. 유임봉 작가 제공 “전시회를 하면, 제 작품을 보시는 분들이 ‘스테파노 선생님, 존경합니다!’ 하시는데, 저는 매일 집에서 성경 필사하는 분들이 더 존경스럽습니다. 성경을 몇 번이나 완필하신 분들도 계시고, 일상에서 그렇게 성경 필사를 하는 분들의 믿음의 깊이에 견주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그저 저는 얕은 재주로 드러나서 보여지는 것뿐이에요.”서울 성산동성당 인근에 있는 3평 남짓한 작업실에서 만난 유임봉(스테파노, 56)씨는 하느님 말씀을 종이에 쓰고, 돌에 새기는 캘리그라피ㆍ전각 작가다. 캘리그라피가 부드러운 붓으로 가벼운 종이에 글을 써내려가는 작업이라면, 전각은 날카로운 칼로 무거운 돌에 글을 새기는 작업이다.“붓으로 글을 쓰는 과정은 종이를 먹물로 덮는 것이기에, 과거의 아픔과 시련을 덮는 과정입니다. 거꾸로 전각은 돌을 파내는 것이기에 덜어내는 것이지요. 결국 삶의 과정이 이 안에 다 들어가 있더라고요.”상반된 재료로 상반된 과정이 공존하는 두 작업의 중심에는 하느님 말씀이 있다. 그는 복음 말씀을 마음의 중심에 담고, 상반된 두 과정을 오가며 마음이 치유되는 선물을 받았다. 아픔을 딛고 복음 말씀을 쓰다글아캘리아카데미에서 학생들에게 캘리그라피를 가르치며, 가톨릭글씨문화연구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유 작가가 캘리그라피와 전각의 세계에 발을 들인 지는 오랜 시간이 되지 않았다. 20년 넘게 중소기업과 외국계 보험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살았던 그가 글씨를 쓰기 시작한 건 2016년 형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지 보름이 지나서였다. “형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뒷일을 수습하면서 불면증과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우울이라는 질병은 밤에 잠을 못 이루게 했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정리하게 만들었다. 정신과를 다니며 3∼4개월 약을 먹어야 했다. “하루는 의사와 상담을 하는데, 의사는 진료실 뒷자리에 있는 캘리그라피 액자를 가리키며 ‘이런 것도 해보시고, 취미 생활을 해보시라’고 권했습니다.”어려서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방구에 들러 붓펜을 하나 샀다. 딸은 붓펜으로 글씨를 써보는 아빠에게 “아빠 글씨 잘 쓰는데, 써서 인스타그램에 올려 보라”고 응원했고, 그는 구독하고 있던 잡지 ‘가톨릭 비타콘’에 나오는 문장과 단어를 써보기 시작했다. 물론 인스타그램도 시작했다. 성경 구절을 써 내려간 그의 단어와 문장에 감탄한 이들이 그를 팔로우하면서, 그의 사회적 관계는 다시 연결되고 회복되기 시작했다. A4용지에 복음서를 필사하면서, 치유를 맛봤다. 그는 본격적으로 캘리그라피를 배웠고,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에서 자격증도 땄다. 그는 캘리그라피 작업을 할 때마다 낙관을 찍어야 해, 수제 도장을 파러 갔다.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던 전각가는 ‘스테파노’를 ‘스데파노’로 잘못 새겨줬다. 그는 내가 직접 파보자 싶어, 전각을 배운다. 잘못 파진 낙관이 그가 전각의 세계에 발을 들인 계기가 됐다. 그는 설고 이세웅(베드로) 전각가에게 전각을 배웠다. 붓질로 덮고, 칼질로 비워내며2019년 9월, 그는 명동대성당 지하1층 갤러리 1898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다니던 보험회사는 첫 개인전을 연 그해 말에 그만뒀다. ‘마르코 복음서를 쓰고 새기다’를 부제로 한 첫 개인전에는 가로 63cm, 세로 190cm 화선지에 써 내려간 마르코 복음서를 선보였다. 화선지에 쓰는 붓글씨는 틀릴 때마다 종이를 버리고 새로 써야 했다. 8장을 버리고 9장째 성공했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79×150㎝ 크기의 옻지에 쓴 마태오 복음을 내걸었다.그는 전각 작업을 할 때는 유튜브로 묵주기도를 틀어놓고, 글씨를 쓸 때에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틀어놓고 작업에 임한다. 그에게 작업 시간은 곧 하느님 말씀을 새기며 기도하는 시간이다. 유 작가는 캘리그라피 액자와 도록 및 도장 판매 수익금을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자살예방센터에 기부했다. “형님의 죽음은 가족에게 큰 아픔이었지만, 그 일을 계기로 캘리그라피와 전각을 하게 됐지요. 전시할 때마다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자살예방을 위해 쓰기로 한 것은 제 자신과의 약속입니다.”그는 최양업ㆍ김대건 신부의 편지 모음 책 「너는 주추 놓고 나는 세우고」와 「이 빈들에 당신의 영광이」 표지 서체도 썼다. 지난해 성 김대건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바오로딸이 선보인 천주교 교우패 ‘나는 천주교인이오’도 그의 글씨다. 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 해마다 순교자 성월에 순례를 완주한 이들에게 주는 축복장에 이름을 써주는 봉사도 가톨릭글씨문화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 유 작가는 마르코, 마태오에 이어 루카와 요한으로 이어지는 복음서를 주제로 한 개인전을 마무리하는 게 꿈이다. “전시장에서 복음 말씀이 쓰인 작품을 보고 울고 가시는 신자들을 보면 전율을 느낍니다. 내가 작업한 결과물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졌구나 싶은 거죠. 다른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써서 보인다는 것은 내가 한 획 한 획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기에, 이 마음을 강박 수준으로 다짐합니다.”일주일에 한 번 정형외과에서 손목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그는 “주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일을 오래 했으면 좋겠다”면서 “하느님 말씀을 잘 작업할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맞다. 종이를 펴고 마음을 하얗게 비워야 붓 길이 허락되었다. 천 번이 넘는 칼질이 있어야 단단한 돌을 비워낼 수 있었다. 그렇다. 그렇게 거침없이 정상을 향해 사자처럼 달려왔던 산에는 참 많은 것들이 있었다. 나무와 풀, 여기저기 숨어있는 꽃과 풀벌레들, 새들의 지저귐과 계절의 바람들, 향기들…. (중략) 끝없이 비워낸 곳에 부디 주님 영광 가득 채워주시기를 청해본다.”(작가 노트 중에서)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2.01.19
영적 성장 돕는 성경 묵상 기도 훈련기도하기를 멈추지 마라 / 리오 개프니 지음 / 김성웅 신부 옮김 / 생활성서 많은 이들이 운동과 다이어트, 명상과 요가 등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열중한다. 신앙인들도 영적 성장을 위해 기도하지만 대부분 단순한 청원기도로 그치기 쉽다. 예수회 소속 사제로, 미국 레이크빌에 소재한 성 마리아성당 예비신자 교리반을 맡고있는 리오 개프니가 성경 묵상 기도를 돕는 「기도하기를 멈추지 마라」를 펴냈다. 글라렛선교수도회 한국관구장인 김성웅 신부가 옮겼다. 총 26주간으로, 매일 한 가지 주제에 관한 묵상과 기도를 제시한다. 성찰로 안내하는 저자의 글을 시작으로 △마음에 그려 보기 △말씀 읽기 △말씀 새기기 △말씀 살기 순서로 충분히 묵상하고 새긴 성경 구절을 자신의 삶으로 가져와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돕는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등 3장으로 구성했으며 질병, 믿음, 기도, 인내, 죽음, 용서, 걱정 등에 대한 주제로 묵상할 수 있다. 이 책은 하루 전체에 걸쳐, 특히 일과와 업무 사이의 틈새를 활용해 영성 생활을 해 나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산책하거나 휴식을 취하면서도 묵상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묵상은 매 순간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힘을 불어넣어 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이지혜 기자 문채현2020.10.14

부산가톨릭평화방송, 개국 22주년 맞아 공개방송 개최 부산가톨릭센터 소극장에서 무대 마련, 유튜브로 생중계 2일 열린 부산가톨릭평화방송 개국 22주년 특집 공개방송에서 진행자들이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부산가톨릭평화방송 제공 부산과 울산 지역 대표 선교 매체인 부산가톨릭평화방송(사장 박명제 신부)이 2일 개국 22주년을 맞아 부산가톨릭센터 소극장에서 특집 공개방송을 개최하며 청취자들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부산가톨릭평화방송은 이날 새 슬로건 ‘당신과 우리, 더 큰 울림 부산가톨릭평화방송’을 공개하고, 애청자로 함께해온 관객 150여 명과 호흡을 같이했다. 이날 행사는 부산가톨릭평화방송의 대표 아나운서 김현지(리나)씨와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의 진행자인 표용운(가야본당 부주임) 신부가 맡았다. 부산가톨릭평화방송은 이날 개국 때부터 역사를 같이해온 대표 선교 프로그램인 ‘사랑이 있는 세상’의 인기 코너인 ‘퀴즈 꽁트, 성경에서 온 그대’팀이 유쾌한 무대를 마련한 것을 시작으로, 찬양으로 기도하는 금요일 오후 프로그램인 ‘하느님과 하나 되는 하루’로 찬양사도 박소정(알비나)씨의 찬양 라이브를 함께 감상하는 시간도 가졌다. 토요일 낮 시간마다 청취자들을 찾아가는 ‘신부들의 수다’의 홍영택(부산교구 선교사목국 부국장)ㆍ김병희(교구 청소년사목국 부국장)ㆍ이추성(거제동본당 부주임) 신부가 신자들의 고민을 듣는 ‘가톨릭 수다-고민이데이’를 마련해 이날만큼은 역으로 사제들의 고민을 관객들에게 전하는 재미있는 무대도 선보였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방송국이 3년 만에 마련한 이날 공개방송은 유튜브로도 생중계됐다. 부산교구장 손삼석 주교는 축하 영상을 통해 “코로나19로 대면 미사가 중단되고, 신앙생활을 이어가기 힘들었을 때 역할을 해준 것이 선교 미디어인 부산가톨릭평화방송”이라며 많은 애청을 당부했다. 부산가톨릭평화방송 사장 박명제 신부는 “우리 방송이 13번째 사도로서 역할을 잘 해나가며, 앞으로 유튜브 채널 강화에도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서울과 목포, 진주, 울산 등 여러 지역의 애청자 150여 명이 함께 관람했으며, 저마다 개국 22주년 기념 슬로건이 새겨진 셔츠를 선물 받았다. 이번 개국 22주년 특집 공개방송 ‘당신과 우리, 더 큰 울림 부산가톨릭평화방송’은 11일 오전 11시 부산가톨릭평화방송(부산 FM 101.1㎒, 서부산 101.5㎒, 울산 94.3㎒)에서 방송된다. 편성 안내 및 후원 : web.pbcbs.co.kr, 060-700-2340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cpbc2022.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