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느님의 숨결인 우리의 숨을 잘 유지하려면 ‘쉼’ 필요[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55. 멈춤과 쉼 현대인에겐 안정과 회복을 위한 ‘쉼’이 필요하다. OSV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입에 ‘바쁘다’라는 말이 붙다 보니 ‘바쁘시지요?’가 일상 인사말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바쁨’이 하나의 미덕이 된 것 같다. 바빠야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것 같고, 바빠야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바빠도 스마트폰 알림을 즉시 확인하거나 모바일 메신저로 이런저런 사회적 관계를 맺기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바쁜지 묻게 된다. 혹시 스스로를 속이면서 하는 일 없이 바쁘다는 느낌으로 사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바쁘다는 느낌 때문에 누군가에게 시간을 주고 마음을 주는 것이 어렵다. 바쁘다는 생각 때문에 피로감이 증가하고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는다. 걱정은 많아지고 자꾸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 바쁘다는 그 느낌, 육체적 피로보다 정신적 피로도가 높은 탓일지도 모른다. 이럴 때 멈춤과 쉼이 필요한 것이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야!” 쉬어도 피곤하다고 한다. 쉼은 피로에서 벗어나 마음과 몸을 재충전하는 일이다. 그런데 쉬고 나서 오히려 에너지가 소진되어 더 피곤하다. 요즘 우리네 세상은 갈 곳도 많고 먹거리도 넘치고 놀 거리도 다양해서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여행을 떠난다. 또는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오감을 자극해서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몸과 마음도 회복되면 참 좋겠지만 어디 그런가? 아침에 일어나면 몸은 무겁고 마음은 공허하고 정신은 산만하다. 눈과 귀에 자극을 준 스크린 놀이는 잠시 복잡한 일을 잊게 해주기에 쉰다는 착각이 든다. 여행을 가면 기분전환도 되고 새로운 경험을 하지만 피로감에 일상으로 돌아가기가 힘들다. 그렇게 피로가 누적되면서 스트레스는 더 높아질 것이다. 스트레스로 인하여 주의력은 분산되고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실수가 늘어난다. 바로 이때 찾아오는 유혹이 있다. 도파민이 고프다. 도파민 결핍을 느끼면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놀이를 찾는다. 스마트폰이나 드라마, 쇼핑이나 술, 담배로 잠시 스트레스에서 벗어난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전히 무기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또 도파민이 고파지고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 악순환이다. 그러면서 아무리 쉬어도 피곤한 현대인의 고질병인 만성피로에 시달린다. 물론 스트레스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기에 없애는 것이 아니라 관리해야 한다. 독일의 심리학자 만프레드 슈피처는 “불쾌하고 부정적인 경험 자체가 스트레스를 주기보다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좌절하고 무너질 때 자기불신에서 오는 무기력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외부 상황 자체에서 스트레스가 온다기보다 내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하는 무기력감에서 온다는 것이다. 이런 스트레스는 내면의 에너지를 마구 훔쳐가고 고갈, 방전, 번 아웃 상태를 경험하게 한다. 이때 절대적으로 ‘쉼’이 필요하다. 쉼은 에너지를 모으는 일이다. 이러한 쉼은 재미있고 자극적인 놀이가 아닌 밋밋하고 심심하고 지루한 일일 것이다. 사실상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 것이 되었다. 손만 뻗치면 자극적이고 놀라운 놀이로 욕망회로를 자극해 도파민을 유발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그렇게 되면 고요한 쉼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몰입하여 집중된 안정된 상태다. 묵상이나 기도 혹은 사색도 마음의 회복력을 높여주는 쉼이다. 전자기기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일상을 멈추고 고요하게 자신에게 몰입하는 것만으로도 중독과 우울의 뇌를 안정시켜준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시고 쉼의 시간을 보내셨다. 하느님의 숨결인 우리의 숨을 건강하게 잘 유지하려면 ‘쉼’이 필요하다. 정말로 잘 살고 싶다면 잘 쉬어야 한다. 숨은 생명이고 쉼은 숨을 유지시켜 주는 에너지다. 하느님의 숨결인 생명을 잘 돌보기 위해 잘 쉬어야 하는 이유다. 영성이 묻는 안부 잠시 눈을 감고 아주 잠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머물러 보면 어떨까요? 몸은 쉰 것이 확실한데 뇌도 쉬었을까요? 혹시 머릿속 이야기가 들리나요? 불안한 감정의 조각들. 걱정, 후회, 미움, 서운함, 욕심. 에고의 소리도 들리던가요? 몸이 멈추면 머릿속의 소리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쁠 때 들리지 않던 소리가 몸과 마음이 멈추면 더 크게 들리지요. 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그냥 바라만 보세요. 그렇게 점점 고요해지는 마음에 가만히 성경 말씀이나 평소 좋아하는 문구 한마디 떠올려 보는 것도 좋습니다. 조금은 심심하고 지루할 수도 있어요. 이 밋밋한 감정 속에 잘 스며들면 마음이 고요해져요. 하느님의 숨결인 나의 숨이 온전히 느껴져요. 그리고 가슴이 열리고 에너지가 올라옵니다. cpbc2024.01.31

‘풋’ 하는 웃음 유머 속에서 찾아낸 ‘거룩한 하느님’[신간] 유머 타고 오신 하느님 유머 타고 오신 하느님 임관빈(이레네오) 기쁜소식 국방부 정책실장 지낸 임관빈씨 신자로서 되새겨 보면 좋을 교리와 마음가짐 담은 책 출간 재미있는 이야기로 관심 끌고 신학적·인문학적 이야기와 저자의 경험담 함께 풀어 개인적 시련과 기도 통한 체험 4년 간 100여 권 읽으며 공부 하느님 사랑 알리는 데 기여하길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사람부터 그 자리를 떠나갔는데, 한 중년 부인이 다소 머뭇거리며 정말 돌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 부인을 보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돌을 들고 나오시면 어떡해요?”(136쪽) 자칫 복음을 희화화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이야기 뒤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과 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근거 자료가 짜임새 있게 펼쳐진다. 최근 출간된 「유머 타고 오신 하느님」은 가톨릭 신자로서 되새겨보면 좋을 교리와 마음가짐에 대해 이렇게 ‘풋’ 소리 내어 웃게 되는 유머로 관심을 끌어낸 뒤, 관련 성경 말씀과 신학적ㆍ인문학적 이야기, 저자의 경험담 등을 더해 재미와 감동, 메시지를 탄탄하게 전달한다. 그런데 저자의 이력이 눈에 띈다. 성직자나 수도자, 신학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그맨도 아니다. 육군참모차장, 국방대 총장, 국방부 정책실장 등을 역임하며 42년간 나라를 지킨 임관빈(이레네오) 예비역 육군 중장이 이 모든 걸 엮었다. 네 살 때부터 어머니 등에 업혀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그에게 신앙생활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늘 확고했고, 그 말씀에 따른 삶은 교회 밖 사회생활도 탄탄대로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은 다가왔고,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시작했던 9일 기도를 통해 저자는 새로운 신앙생활의 기쁨을 찾게 됐다. “뜻하지 않게 재판을 받게 됐고, 매듭을 잘 풀어주시라고 2018년 4월에 9일 기도를 시작했어요. 9일 기도가 그렇게 기쁘고 은혜롭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이런 시련을 그냥 주실 리가 없다, 틀림없이 하느님의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되돌아보니 제가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어요. 예전에는 하느님이 모든 것에 우선했는데, 장군 되고 제 책이 유명해지면서 옅어졌더라고요. 허울 좋은 일은 하는데, 내면의 신앙생활은 약해졌던 거죠. 그걸 깨닫고 펑펑 울었어요. 명예를 회복하고 싶은 마음에 청한 9일 기도였는데, 하느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지금까지도 2000일 넘게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메고 왔던 큼지막한 배낭에서 손때 묻은 여러 권의 책을 꺼냈다. 형광펜으로 그은 밑줄부터 빼곡하게 붙은 포스트잇까지, 얼핏 보면 수험생 참고서가 따로 없었다. 20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임관빈 작가의 9일 기도 노트. “묵주 기도는 예수님의 생애를 함께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결국 복음서를 다시 읽어봐야 해요. 또 기도를 하다 막히거나 궁금한 게 생기면 바로 관련 책을 찾아서 읽어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저는 묵주 기도 할 때 한 시간이 걸려요. 그게 기쁘고 좋아요.(웃음)” 그렇게 9일 기도를 바치며 가톨릭과 관련된 100여 권의 책을 읽고 4년을 공부하던 어느 날, 하느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너한테 글을 쓰는 탈렌트와 유머 감각을 주지 않았느냐. 그 능력으로 나를 세상에 알려라. 많은 사람이 나를 어렵고 따분하게 얘기하니, 재밌고 쉽게 만나게 해라’라는 메시지가 와닿았어요. 거룩한 하느님 얘기에 유머를 넣는 것이 우려되기도 했는데, 유머를 강조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를 보고 확신을 얻게 됐어요.” 책을 읽다 보면 신앙 관련은 물론이고 저자의 방대한 인문학적 소양과 만나게 된다. 그러고 보니 그의 전작 「성공하고 싶다면 오피던트가 되라」는 2만 부 이상 팔린 스테디셀러인 데다 최근 일본어로도 번역 출간됐다. “독서를 좋아해요. 군대 서적도 많이 읽었고, 군인답지 않게 인문학적인 책도 많이 읽었어요. 생도 때부터 독서 노트를 만들어서 좋은 내용은 적어뒀고요. 그래서 인용할 문구가 많은 거죠. ‘오피던트(Offident)’는 ‘공부하는 장교’라는 뜻이에요.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군대를 만들려면 공부해야 하거든요. 신앙도 공부해야 되더라고요. 이제 제 나이 70이니까 인생을 이야기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왔더니 이른바 사회적인 성공도 했어요. 그냥 출세가 아니라 사람들과 어우러지고 존경받는 삶이요. 제가 얼마나 하느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리고 싶고, 이 책이 하느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데 작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4.01.31

아찔했던 순간 (1) - 서기 49년[월간 꿈 CUM] 예수, 그 이후 (5) 1947년 이스라엘 사해 서안의 쿰란 동굴에서 발견한 사해문서(구약성경 사본 및 유대교 관련 문서) 사본 ●문제 발생 장소 : 안티오키아 교회 ● 문제의 원인 제공 : 안티오키아를 찾아온 예루살렘의 그리스도교인들 ● 문제의 내용 : 아래의 내용을 보시오. 안티오키아는 초기 그리스도교 선교의 거점 역할을 한 도시다. 현재 안타키아(Antakya)로 불리는 안티오키아(개신교에서는 ‘안디옥’이라고 표기한다)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남동쪽으로 1060km,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7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시다. 지금은 고만고만한 중소 도시지만 2000년 전에는 달랐다. 고대 근동의 최대 도시 중 하나였다. 훗날 십자군이 출정했을 때도 안티오키아 공략에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것만 봐도 안티오키아가 얼마나 큰 규모의 도시였는지 알 수 있다. 도시의 규모가 컸던 만큼 재원 또한 풍부했다. 이스라엘 신자들이 기근으로 고생할 때 안티오키아 교회가 구호품을 보냈을 정도로(사도 11,27-30 참조) 안티오키아 신자들은 상대적으로 넉넉한 삶을 살았다. 이 도시의 영향력은 예수를 따르는 이들이 이 곳에서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고(사도 11,26), 그 전통 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 교회에서 문제가 터졌다.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안티오키아 그리스도교 신자 중 상당수는 유대인이 아니었다. 예루살렘에서 온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안티오키아 신자들이 율법을 따르지 않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사도 15,1) 청천벽력이었다. 유대인이 아닌데도, 할례(성기 포피 일부를 잘라내는 의례)를 받아야 한다니….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었다. 예수도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었다. 예수도 율법을 지켰는데, 그 제자들이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때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당장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사도들을 만났다. 서기 49년.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모여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구원을 위해서는 할례보다 신앙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바리사이파에 속하였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들의 주장은 단호했다.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사도 15,5) 의견과 의견이 부딪혔다. 해결점이 보이지 않았다. 이때 교회의 반석, 베드로 사도가 중재에 나섰다. 묵직하고 권위가 있는 말씀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사도 15,8-11) 이스라엘 카파르나움의 유대교 회당 유적 베드로 사도가 바오로 사도의 손을 들어줬다. 이렇게 해서 이방인 신자의 경우, 율법을 엄격히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리고 이같은 내용을 정리한 편지를 안티오키아 신자들에게 보냈다. 편지에는 야고보 사도의 중재안, 즉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지 않을 것, 불륜을 멀리할 것 등 몇 가지 기본적 지시사항만 들어 있었다.(사도 15,23-29 참조)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찔했던 순간이었다. 만약 베드로 사도가 바오로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사도단이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의 편의를 봐주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됐을까. 예비신자 교리를 마치고 세례를 받는 그 순간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아야 했을 것이다. 그에 앞서 가톨릭교회는 아마도 보편 종교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그런 유대교 소수 종파 중 하나로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아찔했던 순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글 _ 우광호 cpbc2023.11.23

“사순 시기, 죽음 각오하고 십자가를 끌어안아 보세요”[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57. 죽음 나를 지키려고 십자가를 밀쳐내고 저항할 때 죽음은 시작되지만, 몸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수용할 때 오히려 생명을 얻는다. OSV “죽으면 썩을 몸뚱이 아껴서 뭣해!” 생전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다. 가난한 시절, 우리의 부모는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전력투구하며 몸을 불살랐다. 죽으면 썩을 몸, 아낄 이유가 없었다. 어쩌면 가난 자체가 이미 죽음이었기에 죽음을 껴안고 살았을 것이다. 친구처럼 동료처럼 죽음과 줄타기를 하면서 더불어 살았을 것이다. 웬만한 고난도 품고 가야 할 운명이었으니 말이다. 돌이켜보면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때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생명은 지키는 것이 아닌 연장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몸이 너무도 소중해졌다. 몸을 지키려 안간힘을 쏟다 보니 ‘건강염려증’이란 병까지 생겼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생명을 연장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것 같은 태세다. 생명 연장을 위해 의료검진에 돈을 펑펑 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가난은 ‘죽음’을 품어야 할 친구로 만들었고, 부는 죽음을 회피해야 할 이방인으로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수시로 내 몸을 들여다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막연한 두려움을 주는 것이 건강검진이다. 주의 요망이 갈수록 늘어가고 검진결과가 긴장되고 불안할 때가 있다. 재검받으라는 연락이 오면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며칠 전 복부 초음파 검사를 받았는데, 병원 원장에게 불려갔다. 간 초음파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잠깐 누워 기다리는 시간이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지?’, ‘간 기능에 이상이 생긴 걸까?’, ‘심각한 결과가 나오면 어쩌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미 나의 마음은 지옥이었다. ‘죽음을 피하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나는 이미 죽음을 맞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인간의 모든 두려움은 죽음에서 기인하는 불안감이 아닐까 싶다. 어두운 밤길을 걸을 때나 낯선 곳 낯선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그리고 섬뜩한 장면을 볼 때 두렵다. 내가 애착하는 물건이나 사람을 잃을 때 두렵다. 상실이고 죽음이다. 생명에 대한 애착은 죽음을 밀쳐낸다. 매일 매 순간 나의 것을 지키려 애를 쓰면서, 피하고 방어하고, 숨고 외면하면서, 더 큰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결국 그 순간 나는 죽어가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난 십자가가 없는 거 같아요.” 한 수녀의 말이다. 그러면서 말하길 “어떤 소임이 주어져도 그냥 ‘끌어안아서’ 그런 것 같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끌어안다.’ 능동적으로 자진해서 사람이나 물건을 두 팔로 당겨서 품는 것을 말한다. 단순히 포옹하기, 껴안기 혹은 품는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적극적으로 무엇이든 자진해서 가슴으로 품다 보니 어떤 일도 십자가가 되지 않고 오히려 행복하다는 고백처럼 들렸다. 수도자들에게 주어지는 소임이 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낯선 곳에 가서 생소한 소임을 ‘순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어쩌면 수도자가 져야 할 십자가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나이 들수록 ‘낯섦’은 두려움으로 작용한다. 두려움은 애착에서 오는 상실감이고 또 하나의 죽음이다. 살아온 날보다 죽음이 더 가까이 왔음을 의식할 때 찾아오는 불안감이기도 하다. 사실 죽을 것 같은 십자가를 막상 끌어안다 보면 십자가가 아닌 선물이 될 때가 있다. 나를 지키려고 십자가를 밀쳐내고 저항할 때 죽음은 시작되지만, 몸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수용할 때 오히려 생명을 얻는다.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마태 10,39)이라는 진리를 너무 자주 잊고 살아온 것 같다. “어리석은 사람이여! 그대가 뿌리는 씨는 죽지 않고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1코린 15,36) 관념적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성경 말씀, 마음속 깊이 어딘가에 떨어져 죽어있다 꿈틀대고 살아 움직일 때가 있다. 십자가를 끌어안는 바로 그 순간일 것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샤를 보들레르의 ‘가난한 이들의 죽음’이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위로도, 살게 하는 것도, 죽음.” 그러니까 살게 하는 것이 죽음이라는 거지요. 죽음은 “미지의 천국으로 열린 문”이라는 대목도 눈에 들어옵니다. 죽음은 ‘자신으로 존재하기에 탁월한 가능성’이라고 하이데거는 말합니다.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최초 하느님이 창조한 고유한 ‘나’로서 존재하게 해주는 순간이라는 거지요. 우리 모두에게 죽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지요. 마지막 시간에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은 작아지는 ‘몸뚱이’일 것이고요. 그렇기에 많은 것을 소유할수록 덧없는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가난은 죽음을 친구처럼 마주하게 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사순 시기 나의 십자가를 밀쳐내기보다 끌어당겨 가까이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러다가 죽음을 각오하고 끌어안아 보세요. 죽음이 또 나를 살게 해줄 것입니다. cpbc2024.02.21

성탄 책 선물 어때요연령대별 추천 도서부온 나탈레! 조이유 노엘! 프뢸리헤 바이나흐텐! 펠리스 나비다! 쭉 쟝 싱 부이 배! 셩딴 콰일러! 무슨 말일까? 각각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베트남, 중국에서 성탄을 축하하는 표현이다.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연령대별로 선물 같은 도서를 골라봤다. 나의 작은 가톨릭 백과사전 글/마리 크리스틴 비달 · 그림/로뱅 생활성서사 “크리스마스 구유를 처음 만든 사람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셨다고 해요. 지금부터 800년 전인 13세기에 프란치스코 성인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성모님과 요셉, 예수님, 목자의 역할을 맡겼대요. 그러면 마구간의 동물 역할은 누가 맡았을까요? 그것은 마구간에 살던 소나 말, 양에게 맡겼답니다.”(142쪽) 「나의 작은 가톨릭 백과사전」은 어린이가 가톨릭을 이해하고 튼튼한 신앙의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돕는 안내서다. 하느님과 성경, 전례, 교회, 교리, 기도, 사랑의 실천 등 100여 가지 주제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알려 주고 있다. 예쁜 그림과 쉬운 설명, 유익한 활동으로 재미있게 신앙 감각을 익힐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실제 백과사전처럼 두고두고 찾아볼 내용이 많을 뿐만 아니라 어른도 자신의 신앙 상식을 확인하며 한참은 읽게 될 것이다. 피아노를 끌어안고 자고 싶던 소년 에드윈 킴(바실리오) 연두 ‘소년 김성필’이 ‘피아니스트 에드윈 킴’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에드윈 킴(바실리오)은 다섯 살에 TV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피아노로 따라 칠 정도로 재능을 보였으나, 동네 학원에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여덟 살, 시도 때도 없이 피아노를 쳐대는 아들 때문에 민원 전화를 받느라 고생하던 부모님이 좀 더 전문적인 길로 그를 안내한 것은 열두 살 때였다. 그 사이 소년은 열광적인 사랑과 엄청난 연습량으로 피아노를 향한 목마름을 채워나갔다. 미국으로의 이민 후 줄리어드 예비 학교를 거쳐 존스홉킨스대학 피바디음악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음악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까지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음악을 느끼며 연주하도록, 관객의 마음을 놓치지 않도록,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과 협연하며 예술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도록 스승과 동료, 친구들이 이끌었다. 이 책은 ‘꿈과 사랑을 지켜내려 애쓰는 이’에게 에드윈 킴이 보내는 응원의 연주다. 유쾌하게 설레게 이재근 신부 바오로딸 마흔 살은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며 ‘불혹(不惑)’이라 했고, 쉰 살에는 ‘하늘의 뜻을 알 수 있다’며 ‘지천명(知天命)’이라 했다. 그렇다면 40대의 사제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유쾌하게 설레게」는 마흔다섯 살인 대구대교구 교구청 문화홍보국 차장 겸 월간 「빛」의 편집부장인 이재근 신부의 이야기다. 더 이상 미혹되지 않고 곧 있으면 하늘의 뜻을 알게 될 대단한 사제가 아니라,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평범하다 못해 결함이 많고 약한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사제로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들을 솔직하게 보이며, 부족하고 약한 가운데서도 하느님 안에서 성실하게 걸어가고자 하는 열정과 유머를 선사한다. 참, 중년 신부에게도 ‘꿈’은 있다. ‘대한민국에서 고해성사를 가장 잘 주는 사제’가 이 신부의 바람이다. 하느님 보셨나요? 주상배 신부 기쁜소식 “가끔 보면 ‘하느님을 누가 봤나?’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과는 달리 육체나 형체가 없는 비물질적인 존재이고 모든 선과 덕을 갖춘, 순전한 신으로서 생명의 근원이시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창조주는 인간의 육안과 감각적인 오관을 통해 그분을 감지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만에 하나 혹시라도 인간의 오관을 통해 감지할 수 있다면 그런 존재는 변할 수 있는 물질이기에 이미 더 이상 순전한 신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58쪽) 서울대교구 성사전담사제 주상배 신부가 어른들을 위한 가톨릭 백과사전 「하느님 보셨나요?」를 출간했다. 오랜 신자들도 헷갈리고 궁금한 것은 있는 법. 누군가에게 다시 물어보자니 어쩐지 민망한 가톨릭 신앙에 대한 38가지 궁금증을 속 시원히 설명해 준다. 책의 수익금은 서울 가르멜 수녀원 재건축 비용으로 봉헌할 예정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12.20
![[전문]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2023년 부활 메시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4/05/7CN1680677519097.jpg)
[전문]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2023년 부활 메시지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이 기쁨을 여러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아울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인 평화가 여러분 가정과 이 나라에 그리고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을 알려주시고,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를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인간의 삶을 억누르는 죽음을 이겼다는 것, 그리고 새로운 삶과 영원한 삶을 얻게 되었다는 것. 이것처럼 큰 기쁨과 희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죽음을 넘어선 부활을 또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죽음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보십시오.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죽음은 죽었습니다. 오 생명이여, 오 죽음의 죽음이여.”(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강론집) 인간 삶을 한계 지었던 죽음이 죽었다는 것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사라졌다는 것에서 우리는 큰 희망과 용기를 품게 됩니다. 그러기에 부활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세상을 사는 데 절망이 있을 수 없고,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죽음을 넘어선 삶을 알고 있고 믿고 있기에, 또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신 사랑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간을 사랑하시어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신 부활을 모든 이들이 믿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님의 빈 무덤을 찾아왔던 이들은 예수님 부활에 확신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심지어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렸고,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 하였다고 성경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마르 16,8 참조)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루카 24,16)라고 전합니다. 부활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경에서 당신에게 하신 말씀들을 설명해 주시면서 그들의 눈을 열어주셨고, 성찬례를 통해 그들에게 부활의 확신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인사하시며, 부활의 은총을 나누어 주시며 사명을 주시고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루카 24,36-48; 요한 20,19-23 참조)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의 은총을 주시며 우리 모두가 세상에 나아가 부활의 증인이 되라고 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은총이고, 인간의 마음을 바꾸어 놓은 강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시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형제자매로 서로의 벽을 허물고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에페 2,14 참조)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 우리는 전쟁 자체가 주는 인간의 비극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나라들이 이 전쟁을 이용하여 자국의 이득 챙기기와 편 가르기에 급급합니다. 21세기에는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전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파장은 탈냉전에서 냉전의 시대로의 회귀를 보여주고 있으며, 세계 각지의 많은 나라들이 전쟁을 통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유혹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도 여기서 예외가 아닙니다. 심지어 중동지역에서는 지진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내전을 10년 이상 지속하고 있습니다. 힘의 논리, 정치의 논리가 만들어낸 비극은 서로가 서로에게 벽을 쌓게 하고 적대감과 인간의 본성을 파괴하는 참담함을 낳고 있습니다. 분명 모든 이들은 전쟁이 최고의 방법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어느덧 힘의 논리에 맛들인 사람들은 힘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꼭 전쟁만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힘의 논리로, 경제적 우위로, 다수의 논리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져 있습니다. 힘의 논리는 남들 위에 서려고 하는 교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에 대한 결과는 하느님께서 바벨탑 이야기를 통해 알려주셨듯 분열과 죽음입니다.(창세 11,1-9 참조) “평화가 너희와 함께.”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죄의 욕망과 죽음으로 향하는 마음을 부수시며 우리에게 평화를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부활의 증인으로 평화의 사도가 되라고 우리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분열과 죽음이 아닌 조화와 존중과 생명의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며, 그 은총을 널리 전하라고 하십니다. 부활의 기쁨에 넘쳐 지내는 것은 죽음의 문화, 힘의 논리를 버리고, 화합과 존경과 일치의 삶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삶의 자리 안에서부터 우리 모두 평화를 살아가는 부활의 증인이 됩시다. 이를 통해 세상에, 한반도에 부활한 주님이 주시는 평화의 은총이 가득한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천주교 인천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이학주2023.04.05

서울대교구 ‘영 시니어 성경 퀴즈대회’ 연다사목국 노인사목팀 주관, 장학퀴즈 형식으로 65세 이상 2인 1팀 출전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팀이 만 65세 이상의 시니어들이 2인이 한 팀으로 참여하는 장학퀴즈 형식의 ‘영 시니어 성경 퀴즈대회’를 개최한다. 문제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복음 안에 나오는 지명, 인물, 메시지 등에서 출제되고, 대회는 버저를 눌러서 답을 맞히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선전은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본선전은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각각 열릴 예정이다. 만 65세 이상의 신자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고, 본당별로 최대 3팀까지 가능하다. 예선전은 4월부터 6월까지 진행되고, 결승전은 9월 24일 열릴 예정이다. 1등에게는 총 300만 원(팀 200만 원, 본당 100만 원)의 상금이 전달되는 등 총 5개 팀을 시상한다. 「영 시니어 성경 퀴즈대회」에 참가하려는 사람은 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한 후 이메일 또는 팩스로 접수하면 된다. 신청 기간은 2월 28일까지다. 노인사목팀은 “시니어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좀 더 가까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행사를 기획했다”며 “보다 자세한 사항은 3~4월 중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명회에서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노인사목팀은 시니어 아카데미 학생들을 대상으로 본당 대항 「시니어 성경 경시대회」를 10월 1일 개최한다. 경시대회 예선전은 본당에서 자체적으로 치르고, 본당 대표들이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 모여 본선을 치르게 된다. 경시대회 문제는 노인사목팀에서 출제한 4복음서 예상문제집(200문제)에서 60문제가 출제된다. 예상 문제집은 2월 20일까지 사목국 노인사목팀으로 신청하면 된다. 1등에 총 200만 원(대표 100만 원, 본당 100만 원)의 상금과 프란치스코 교황 축복장을 수여하는 등 총 3명을 시상할 계획이다. 문의/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팀 02)727-2385, 2386, 이메일 : isenior@hanmail.net, 팩스 : 02-727-2117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cpbc2022.02.16

“부활 축하합니다”부활 특집-독자들에게 띄우는 아이들의 부활 축하 편지주님 부활 대축일,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세계 각국의 한국인 가정 아이들이 부활 축하 인사를 건넵니다. 혼인과 출산의 기쁨이 사라져가는 저출산 시대, 하나된 보편 교회 신앙 안에서 사랑으로 어울려 사는 가족 이야기를 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정에 접시가 날아다녀도 가정은 희망의 공장”이라며 “가정에는 항상 십자가가 있지만, 십자가 다음에 부활이 있다”(2015년, 미국 필라델피아 세계가정대회)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네 가정의 일상은 ‘참된 인류애’를 그려나가는 아름다운 조각들입니다. 아이들이 보내온 부활 편지로 시작합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예수님 오시면 초콜릿 맘껏 먹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프랑스 리옹에 살고 있는 9살 줄리엣, 6살 에블린이라고 해요. 저희 엄마는 한국 사람이고 아빠는 프랑스 사람이에요. 프랑스에서는 부활이 큰 축제예요. 2주 동안 부활절 방학도 하거든요. 저희는 같은 가톨릭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그래서 목요일 아침 교리 시간에 사순에 대해 배웠어요. 줄리엣과 에블린 사순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는 거래요. 그런데 어떻게 기다려야 하느냐 하면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걸 조금 참고 덜 하고 덜 먹으면 된대요. 그래서 저희는 아침을 먹을 때 핫초코에 설탕을 두 숟가락 넣고 싶은데 한 숟가락만 넣고, 또 매일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먹고 싶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면서 주말에만 먹어요. 부활절이 되면 할머니 댁에 가서 달걀 초콜릿을 정원에 숨겨서 찾는 놀이를 할 거예요. 그리고 초콜릿을 맘껏 먹을 거예요. 예수님 빨리 오세요! 그리고 부활을 축하합니다! 부활을 기다리며 줄리엣과 에블린 엄마 뱃속에 임마누엘이 자라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미국 버지니아주에 살고 있는 6살 권아인 첼리나, 5살 권오민 에단, 2살 권오현 엘리야입니다. 요즘 아인이 누나는 성당에서 첫영성체 교리를 듣고 있어요. 수업에 가면 만들기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셔서 교리에 다 같이 따라가고 싶어요. 빨리 교리를 다 배우고 예수님 몸을 모시고 싶어요. 미국의 권오민(에단, 5)·권아인(첼리나, 6)·권오현(엘리야, 2) 신부님께서는 우리가 Lent(사순 시기) 동안 노력해서 잘 깨어 살면 부활을 더 기쁘게 맞이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우리 가족은 사순 시기를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 각자의 결심을 적은 종이를 화초에 걸어 두었어요. ‘어린이 성경 동화 읽기, 단것 먹지 않기, 미사 시간에 집중하기, 매일 저녁 기도 하기’ 등을 적고 지켰어요. 막내 오현이는 아직 어려서 우리가 대신 ‘자리에 앉아서 밥 잘 먹기’를 적어주었고요. 작년에 우리는 건강하고 예쁜 넷째 동생이 오길 함께 기도했어요. 그래서 엄마 배에는 지금 새로운 동생 ‘임마누엘’이 자라고 있어요. 동생이 태어나면 누나가 우유를 먹이고, 오민이 형이 재워준다고 했어요. 오현이는 유모차를 양보해줄 거래요.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잖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도 기뻐요. 학교는 부활절을 맞아 일주일을 쉬고, 동네에서는 부활절에 Easter egg hunt(부활 달걀 찾기)를 해요. 부활 토끼가 와서 알록달록한 달걀을 숨겨 놓고 가면 친구들과 숨겨 놓은 달걀을 찾는 놀이에요. 달걀 안에는 초콜릿이나 작은 인형 같은 선물이 숨겨져 있어요. 매년 봄이 되면 부활절이 많이 기다려집니다. 온 세상 사람들과 함께 부활을 축하하고 싶어요! 아인, 오민, 오현 드림 부활 달걀 찾을 생각에 설레요 알렐루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엄마.아빠와 살고 있는 태오라고 해요. 이제 곧 만 3살이 되지요. 저는 중장비 친구들을 매우 좋아한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에 중장비 친구들이 있어요. 옷과 신발에, 이불에, 물병까지요. 캐나다에서 최태오 알로이시오 저는 엄마가 만들어 주시는 낫또밥을 아주 좋아해요. 하얀 밥 위에 낫또와 계란후라이를 올려서 비벼주면 정말 맛있어요. 엄마.아빠가 곧 부활절이 된다고 했는데, 작년 부활절 생각이 나요. 성당에 예수님이 계신 십자가가 보라색 이불로 덮여있어서 아빠한테 “예수님이 왜 이불 덮으셨냐”고 물어보았죠. 아빠는 예수님이 돌아가셔서 덮어놓은 거라고 했는데, 부활절에 갔더니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이제 이불이 없다고 말해주셨어요. 이해는 잘 안 됐지만, 성당 사람들 모두 기쁜 얼굴을 하고 있어서 부활절이 기쁜 날이라는 건 알아요. 캐나다에서는 주님 수난 성금요일부터 부활절 다음날인 월요일까지 부활 방학을 해요. 성당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부활절을 짧은 명절처럼 지내지요. 저 같은 어린이들은 Easter Bunny(부활절 토끼)가 숨기고 간 알록달록한 부활 달걀을 찾아 바구니에 담는 놀이를 한답니다. 올해도 저는 친구들과 부활절 미사를 드리고, easter egg hunting(부활 달걀 찾기)할 생각에 설레요.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캐나다에서 최태오(알로이시오) 드림 예수님 되살아나실 부활절이 기다려져요 안녕하세요. 저는 부활을 맞아 이 글을 쓰게 된 허윤 요한 바오로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이고, 첫째 동생은 2학년 허솔 프란치스카, 막내 동생은 1학년 허별 스텔라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글 쓰고 책보기입니다. 한국의 허별(스텔라, 초1)·허윤(요한 바오로, 초5)·허솔(프란치스카, 초2) 제가 가장 의미 있게 보낸 부활은요. 학교에서 ‘나의 달걀 찾기’를 한 날이었습니다. 동생들도 성당에서 달걀 찾기를 한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달걀이 부활의 상징인지 아시나요? 바로 ‘죽음’이라는 껍질을 깨고 병아리가 나온 달걀이 부활과 비슷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때 아주 재미있었고, 예수님의 부활을 즐거움으로 잘 남긴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활의 의미는, 우리를 위해 목숨 바치신 예수님의 부활을 가족들과 아주 즐겁고 기쁘게 보내고, 축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이 글을 쓰기 위해 동생들에게 부활이 뭐냐고 물었는데요. 동생들은 엄마에게 “엄마, 부활은 예수님이 돌아가셨으니까 슬픈 건가? 아니지? 기쁘게 기다리는 거지?”라고 다시 물었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생각하면 분명히 슬픈 일인데, 기쁘게 부활을 기다린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그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거니까 기쁘게 기다리는 거야~”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부활을 축하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4학년 때 쓴 시를 부활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제목 : 저 하늘은 하늘을 본다. 하늘의 해는 두 개. 강물에 비친 것 하나. 맑은 하늘에 있는 것 하나. 밤 하늘을 본다. 밤 하늘에 별 하나. 강물에 비친 별 하나. 내 마음에 별 하나. 하늘은 파랗지만 검을 때도 있다. 내 마음은 기쁘지만 슬플 때도 있다. 하늘은 마음과 같다. 마음은 하늘과 같다. 모든 것은 1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것은 하나다.! 허윤, 허솔, 허별 드림 이지혜2024.03.27

악마 대학교[월간 꿈 CUM] 삶의 길 (8)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다름 아니라, 악마들에게도 대학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악마 대학교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교양과목이 ‘유혹’이라는 것입니다. 이 교양과목은 모든 악마가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강의인데, 첫 시간에 이렇게 강의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인간을 유혹할 때는 다음 세 종류의 말을 써야 한다. 첫째는, ‘그거 누구나 다 하는 일이잖아~.’ 둘째는, ‘그거 대수롭지 않은 건데 뭘~.’ 셋째는, ‘딱 이번 한 번만이야~.’” 악마대학의 두 번째 특징은, 가장 학점이 많은 과목은 ‘미룸’이라는 과목이라고 합니다. 이 과목의 핵심은, 인간들로 하여금 자꾸 미루도록, 특히 선행이나 기도를 자꾸 미루도록 하는 것입니다. 악마대학의 세 번째 특징은, 그 대학에서 가장 인기 많은 악마 교수는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인간들을 지옥에 보내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 첫째, 안개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악에 서서히 젖어 들게 하고, 둘째, 쥐꼬리만한 명예를 주어 교만하게 할 것이며, 셋째, 영원히 살 것처럼, 영원히 누릴 것처럼 생각하게 하라.” 우리가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께서도 40일 동안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마태 4,1-11: 마르 1,12-13: 루카 4,1-13) 예수님은 40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허기진 상태에서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유혹은 대단히 고통스럽고 극복하기 힘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나약한 육신을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몸과 마음이 극도로 지쳐있는 예수님에게 먹을 음식과 권력과 명예, 그리고 부귀영화와 자기과시에 관한 유혹들은 달콤한 매력을 지닌 유혹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들이 하느님 아버지와의 일치를 갈라놓는 것들이었기에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앞세우고,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악마의 유혹을 꺾어버리신 것입니다. 악마는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있는 예수님에게 다가와 세 가지 유혹을 합니다. 첫 번째 유혹은 빵, 곧 물질에 관한 유혹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물질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요 수단일 뿐이지 그것이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靈)적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육신의 빵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이라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 유혹은, 권력과 명예와 지위에 관한 유혹입니다. 이 유혹에 예수님은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모든 권력과 명예와 지위는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결코 인간이 개인적인 욕심으로 탐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세 번째로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은 자기 과시, 곧 교만에 대한 유혹입니다. 이 유혹에 예수님은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당신이 하실 수 있는 모든 기적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을,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악마의 유혹을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단호히 물리치셨습니다.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에,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충실히 못 박음으로써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셨던 것입니다. 어떤 유혹이 닥쳐오더라도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말씀으로 단호히 끊어버려야 하겠습니다. 글 _ 이창영 신부 (바오로, 대구대교구 대구가톨릭요양원 원장, 월간 꿈CUM 고문) 1991년 사제 수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을 지냈다. cpbc2023.12.01

전대섭의 공감당신이 그리스도인이오? 경남 거창군에 있는 거창고등학교엔 ‘직업 선택을 위한 십계명’이란 것이 있습니다. 상식을 깰 뿐 아니라 납득하기조차 힘든 내용이어서 한참을 다시 보게 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1. 월급이 적은 쪽으로 가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선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선택하라 (중략)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은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위 십계명은 이 학교 3대 교장이며, 거창고의 초석을 놓은 전영창 선생의 설교 제목을 따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수십년 직장생활을 하며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겪었다고 자부하는 저도 솔직히 저 십계명을 그냥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엔 아무래도 편치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 달라서 그렇습니다. 무언가 기독교인이었던 작자(作者)의 깊은 뜻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지난해 대림1주부터 올 11월 27일까지를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의 해’로 정했습니다. 희년 주제가 ‘당신이 천주교인이오?’입니다. 이 물음이 고스란히 제 가슴에 와 박힙니다. 거창고의 십계명이 떠올랐습니다. 물음에 대한 답은 저 십계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때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상식과 관례의 틀을 깨는 것, 가치의 전도(顚倒), 성경의 ‘첫째와 꼴찌’에 관한 비유가 ‘거창고 십계명’을 이해하기 위한 힌트가 될까요. 세상의 화복(華福)을 쫓기보다 아빠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랐던 예수님의 삶은 고난과 희생이 요구되는 십자가의 길이지만 영원한 생명을 잉태한 구원의 길입니다. 답은 예수님의 삶에 있습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 아니라 비움과 낮춤, 내어줌이 그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 그리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창조의 이유이고 우리 삶의 목적이니까요. 예수님은 “누구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가 나의 십자가가 될 때 예수의 부활도 나의 부활이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인이오?’ 오늘 여기서,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물음입니다. 글 _ 전대섭 (바오로, 전 가톨릭신문 편집국장)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가톨릭신문에서 편집국장과 취재부장ㆍ편집부장을 역임했다. 최근 초종교적 접근, 특히 불교ㆍ도가(道家) 사상과 그리스도교의 접점을 찾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cpbc2023.09.08

예레미야서 통해 바라본 하느님 구원 계획 예레미야서 쉽게 읽기 / 안소근 수녀 지음 / 성서와함께 “무엇에 의지할까요? 이것이 예레미야서의 문제이고, 예언자 예레미야의 문제이며, 특히 예레미야의 고백록들에서 다뤄지는 문제입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이 그리고 예레미야가 하느님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의지할 때, 하느님은 의지하는 그곳을 무너뜨리심으로써 오직 당신께만 의지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미 예레미야는 가족도 믿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듭 거치며 모든 안전을 다 잃으면서도, 오직 하느님의 말씀만은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것이 예언자의 운명입니다.”(87쪽) ‘야훼께서 던지다, 급히 보내다’라는 뜻이 내포된 그의 이름처럼 ‘예레미야’가 활동하던 시기(기원전 627-587년)의 유다 왕국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밖으로는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세력 다툼이 치열했고, 안으로는 우상숭배와 부패가 극에 달했다. 성경의 다른 예언자들처럼 예레미야 역시 회개를 호소하면서 하느님의 심판을 알렸다. 주님의 말씀은 예언자의 삶을 평탄하게 두지 않았다. 그러나 예언자는 그 험난한 길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걸어갔다. 그가 자신의 사명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그를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총 52장의 예레미야서는 그 분량이나 내용에 있어서 만만치 않다. 하지만 안소근(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수녀는 「예레미야서 쉽게 읽기」를 통해 예레미야서의 핵심 본문을 해설하고, 배경이 되는 중요한 역사를 소개한다. 또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 예레미야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신학적 주제를 짚어준다. “인간의 마음이 이렇게 무디기에 하느님의 ‘평화를 위한 계획’은 멸망과 유배를 거쳐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백성은 실패를 겪고서야 하느님을 찾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거기에서’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게 될 때, 하느님은 그들의 운명을 되돌리시고 평화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멸망은, 백성이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게 되기 위한 마지막 길이었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마지막 계획이었습니다.”(161쪽) 윤하정 기자 윤하정2023.08.09

생명이 나고 자라고 이어지는 ‘가정’[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27)생명 전달의 장소인 가정 우리의 금쪽같은 신앙을 돌보고 자녀에게 전달하는 장소로서 가정은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한 성스러운 곳이다. 가정이야말로 육적인 생명만이 아닌 영원한 생명이 탄생하고 양육되며 전달되는 신비로운 장소이기 때문이다. 보편 교회는 제14차 세계주교시노드의 주제로 ‘교회와 현대 세계에서의 가정의 소명과 사명’을 택하였고, 전 세계 교회에 위기에 빠진 가정과 혼인의 중요성을 새롭게 일깨우고자 하였다. 주교시노드 후속 권고 「사랑의 기쁨」이 반포되었고, 2021년에는 반포 5주년을 맞아 ‘사랑의 기쁨인 가정의 해’를 보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와 교회 안의 가정 위기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교회 내에서도 가정 사목에 대한 관심은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 권고에서 혼인과 가정에 접근하는 새로운 길을 보여주셨다. 곧 가정과 혼인에 관한 이상적인 가르침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가정과 혼인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하는 방법이다. 성경에 나오는 성가정에 대한 묘사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사실 나자렛 성가정은 위기 가정이었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이 드러나자 남편 요셉은 파혼하기로 작정하기까지 하였다.(마태 1,18-19 참조) 파라오의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까지 갔으며, 늘 위험과 폭력에 노출돼 있었다. 보편 교회가 그러한 성가정에 다시금 주목하는 이유는, 삶에서 닥쳐오는 도전이나 위기를 피하지 않고 신앙 안에서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성가정은 위기와 시련 속에서도 기도하는 가정이었으며, 늘 하느님 뜻을 찾으며 그분의 크신 계획에 자신을 맡기는 순례하는 가정이었던 것이다. 교회 역사를 볼 때 가정은 기도하는 곳, 전례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초대 교회부터 가정을 중심으로 신자들이 모임을 가졌다. 또한 가정의 중요성은 쉼 없이 강조되었다. 그것은 가정이 신앙 돌봄과 전수를 위한 최적화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박해를 피해 교우촌을 이루며 살던 시절, 가정은 신자들 모임의 장소였으며, 신앙 전수의 장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런 측면에서 가정은 단순히 장소의 의미를 넘어 교회적 차원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가정은 작은 교회로서 신앙의 전수가 이뤄지고 선교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다. 가정 없이 교회는 존재할 수 없다. 교회는 가정을, 가정은 교회를 서로 필요로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앞의 문헌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가정의 또 다른 특성, 곧 ‘생명 전달의 자리’(「사랑의 기쁨」 80~85항)로서의 가정에 대해 강조하신다. 곧 가정이 생명이 잉태되고 태어나 보호받으며 신앙을 통해 완숙에 이르는 자리이며, 하느님 사랑의 도구요 창조와 구원 사업에서 중요한 주체라는 말씀이다. 한 생명이 탄생해 인격적 주체로 성장하며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까지의 전 과정은 놀랍고 신비롭다. 인간 스스로 해내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오직 하느님께서 인간을 통해 하시는 일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가정은 ‘나’라는 인간이 태어나 삶을 시작하고 성장한 곳, 나약한 생명을 돌보고 양육시켜 자라게 한 곳, 그 생명이 떠나 새로운 생명을 위해 새로운 가정을 만들도록 한 곳이다. 가정은 그처럼 생명이 전달되며 하느님 창조 및 구원 사업이 실현되는 놀랍고 성스러운 곳이다. 그러한 놀라운 일이 가정에서 일어나기에, 가정은 거룩한 곳이며, 그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교회와 가정에 맡겨진 사명일 것이다.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 cpbc2023.11.29
![[신앙단상] 이름 부름(홍태희 스테파노, 서강대 신학대학원 대우교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5/30/62l1685431382920.jpg)
[신앙단상] 이름 부름(홍태희 스테파노, 서강대 신학대학원 대우교수) 어린 시절 신앙을 키웠던 곳은 철원의 한 공소였습니다. 지금은 갈말성당이 된 지포리 공소가 그곳입니다. 조그만 공동체였지만 초등학교 시절 그 장소는 친구들과의 놀이터이자 신앙을 익히는 학교였습니다. 사제도 없는 공소에서 언제나 그곳에 머무르시며 신앙생활을 이끌어주시던 홍수명 다두 회장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요리문답을 외우고 세례를 받을 때가 되었을 무렵, 친구들의 세례명 중 가장 흔한 이름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자인지 사도인지도 구분 못 하는 문요한·신요한·최요한이 대세였는데, 회장님은 저에게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을 주셨습니다. 최초의 순교자라는 성인의 신원은 더욱 저에게 무언지 모를 책임감과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더욱이 김수환 추기경님과 같은 본명을 갖는다는 것은 큰 영광이었습니다. 이후 스테파노라는 세례명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과 함께 스스로 저를 규정하는 어떤 것이 되었습니다. 스테파노 성인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혹자는 부제나 집사로 신분을 설명하였지만, 교회 초창기의 성인을 위계적 분위기의 용어로 설명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성경은 성인이 베드로와 같은 나자렛 제자들과는 달리 넓은 세계의 문명을 경험했던 그리스계 유다인 제자라고 전해줍니다. 그리고 율법과 성전의 틀 안에서 선교하던 사도들과 달리, 스테파노는 하느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에 사시는 분이 아니라고 대사제 앞에서 당당히 설교합니다.(사도 7,47-50) 그 어떤 제자보다 올곧은 모습을 보인 성인은 성전을 허물고 다시 짓겠다고 하신 예수의 말씀 그대로 살기로 작정하셨고, 그리고 성전 모독죄로 끌려가 투석형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성경을 묵상하며 알게 된 성인의 모습을 따라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닮아 살아가기에는 어림없지만, 그러나 주님 메시지의 근본을 잃지 않는 성인의 마음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성인의 죽음으로 인해 신자 공동체는 예루살렘에서 적당히 살아남는 길보다 아시아로, 그리스로, 로마로 뻗어 나가는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자연물이나 사물에 이름 붙이기를 함께 해 보았습니다. 교정의 벚나무, 길고양이, 휴대전화 등 다양한 자연과 사물이 다온이·초롱이·은영이 등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갖게 되자 그들은 대화가 가능한 인격으로 변하였습니다. “다온이는 매일 나에게 안부를 물어봅니다. 학교에 잘 다녀왔는지, 재미있는 일은 없었는지”, “초롱이와는 이제 몇 가지 의사표시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요즘은 남자 친구에게 푹 빠져 있어요.”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던 것이 이름 부름으로 인해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경험을 합니다. 그것은 인간 세계를 넘어 자연 안에서 하느님 은총을 발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적당히 사람으로 살아남기만을 전전긍긍했던 우리의 삶은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쓰레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것이 온실가스가 되어 지구를 달구고 바다로 흘러가 대양 한가운데 부끄러운 쓰레기 섬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을 넘어 자연을 하느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피조물로, 인격을 가진 친구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로 생각했었다면 좀 더 신중하지 않았을까 성찰하게 됩니다. 우선 내 주변의 자연 친구들에게 이름을 붙여 불러봐야 하겠습니다. 홍태희 스테파노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대우교수) cpbc2023.05.31
![[인천교구 사목교서] 신앙의 기쁨을 되찾는 해](//cpbc.co.kr/CMS/newspaper/2022/11/rc/835974_1.2_titleImage_1.jpg)
[인천교구 사목교서] 신앙의 기쁨을 되찾는 해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방역수칙을 지키며, 코로나19가 끝날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코로나19의 영향 속에서 우리는 이제 코로나19와 더불어 살아가야 함을 느낍니다. 이는 코로나19로 위축되고 두려워하는 삶을 지속하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코로나19 이전과 꼭 같지는 않지만, 우리가 살아왔던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우리 모든 형제자매님들이 두려움보다는 용기를 가지고, 절망보다는 희망을 품고, 단절보다는 만남의 시간을 가지며 힘차게 지내기를 기도합니다. 코로나19는 지나가는 시간 안에 있는 한시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극복하는 과정 중에 있고 잘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처럼 한시적이며 일시적인 것에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기보다, 우리 신앙이 가지고 있는 힘과 기쁨에 머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올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모두는 코로나19로 느슨해지고 약해진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며, 신앙의 기쁨을 되찾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렇게 신앙의 기쁨을 되찾기 위하여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실천해 보도록 노력합시다. 1. 신앙의 기본 신심을 늘 실천합시다. 비대면 신앙생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 작년 교구와 본당에서는 일상으로의 회복과 본당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묵주기도, 모임 전 15분 성체조배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 신앙의 기초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신심활동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의 토대가 되는 성체 신심(성체조배와 미사성제), 성모 신심(묵주기도), 순교자 신심(증거)을 지속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2.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생활을 습관화합시다. 몇 년 전 교구는 2년에 걸쳐 성경의 해를 보냈습니다. 신앙의 기쁨을 되찾는 데에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지혜가 그대를 사랑할 것입니다.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성경이 그대를 보호해 줄 것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을 생활화하여 신앙의 기쁨 안에서 살아갑시다. 3. 시노드의 길을 충실히 걸어갑시다. 2021년 10월부터 올해까지 전 세계 시노드가 시노드의 정신(synodalitas)에 따라 진행되고 있습니다. 작년 경청의 단계를 지냈지만, 아직도 우리는 서로가 신앙에 대해, 교회에 대해 마음을 개방하고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올해 시노드의 길을 모두가 함께 걸어가면서 경청과 대화를 통해 우리 안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cpbc2022.11.23
![[금주의 성인] 성 루카 복음사가 (10월 18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10/10/6J21696922506598.jpg)
[금주의 성인] 성 루카 복음사가 (10월 18일)+1세기, 안티오키아 출생, 복음사가, 의사와 화가의 수호성인 에우세비오·예로니모·리옹의 이레네오 성인 등에 따르면, 루카 성인은 안티오키아 출신의 그리스인 의사였습니다. 성 바오로 사도의 ‘협력자’(필레 1,24)이자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바오로는 서간에서 그를 ‘사랑하는 의사 루카’라고 지칭했습니다.(콜로 4,14) 스테파노 성인의 순교와 박해로 많은 이가 흩어져 복음을 전했는데, 안티오키아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을 돌보기 위해 바르나바 성인을 파견했고, 그는 타르수스에 있던 바오로를 데려와 함께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루카는 아마도 이때 사도들과 알게 되면서 특별히 바오로를 존경하고 따랐던 것으로 예상됩니다. 루카는 51년경에 있었던 바오로의 제2차 선교 여행을 수행하며 힘껏 도왔습니다. 57년까지 필리피에 머물면서 그곳의 공동체를 지도하다 바오로의 제3차 선교 여행 때도 만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바오로가 카이사리아의 감옥에 갇혔을 때나 로마로 호송되어 감옥에 갇히고 재차 갇혔을 때도 늘 곁에 있었습니다. 루카는 바오로의 순교 이후 그리스로 건너간 듯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루카는 복음서를 집필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를 찾아뵙고 주님 탄생 전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직접 만나지 않고, 마리아의 초상화를 여러 개 만들어 섬겼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에 전통적으로 가장 오래된 성모 마리아 초상화로 알려진 이콘의 작가가 루카라는 의견도 있지만, 사실 그는 ‘붓’보다는 ‘펜’으로 예수님 탄생과 유년기 이야기 속에서 마리아의 모습을 그림처럼 묘사했습니다.(루카 1―2장) 루카가 언제 어디서 복음서를 집필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확실한 것은 팔레스타인 밖에서 80년 전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루카 복음을 시작하는 머리말(1,1-4)을 보면, 그는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성서학자들은 대체로 루카가 염두에 둔 독자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로 보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와 이어지는 사도행전은 예수님 승천부터 63년경 바오로가 로마에서 선교 활동에 매진할 때까지 초대 교회의 성장기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전반부는 성 베드로 사도에게, 후반부는 바오로에게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루카 자신에 관한 구절은 하나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겸손함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루카는 바오로의 순교 후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 아카이아 지방과 소아시아 지방에서 선교하며 온갖 고난을 견디며 주님을 섬기다가 84세를 일기로 선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의 열두 사도 성당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에 대해 특별히 강조했던 루카는 의사와 화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교회 미술에서 루카는 성경(에제 1,10; 묵시 4,7)에 언급된 ‘살아있는 네 생물’에서 유래한 상징에 따라 황소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루카의 침착하고 강인한 성격과, 주님과 바오로를 위한 희생 및 충직함을 상징합니다. cpbc2023.10.11
CPBC TV, 기도·전례 시간 늘리고 뉴스는 저녁 시간대로 옮겨 7월 4일 여름 편성시간 조정… 오전은 교리·성경, 오후는 가톨릭 문화 프로그램 편성 CPBC TV가 프로그램 여름 편성시간 조정을 마치고 4일 시청자들을 새롭게 찾아간다.아침 강좌를 본다는 걸 깜빡 잊었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일 오후, 저녁, 심야 중 재방송을 볼 수 있다. 복잡하게만 느껴지던 편성 시간도 이것만 알면 고민 끝. 매일 같은 시간대에 비슷한 성격의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오전 7시 다양한 교리와 교양 프로그램, 오전 8시 성경 강좌 프로그램, 오전 11시 가톨릭 영성을 풍부하게 해 줄 프로그램, 오후 3시에는 가톨릭 문화 프로그램이 방송된다.기도와 전례 시간도 강화했다. 하루 다섯 번,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기도와 미사, 성체조배가 이어지는 시간을 통해 CPBC TV가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함께한다.매주 화요일 저녁 8시, 한 시간 동안 방송되던 ‘중세 라이브 시즌2’가 7시 30분으로 시간대를 옮겼다. 30분 일찍, 30분 더 길게 황중호ㆍ이영준 신부의 유쾌함에 빠져보자. ‘중세 라이브 시즌2’ 기대해도 좋다. 함께 모여 기도할수록 위로도 커진다. 매주 토요일에만 방송되던 ‘기도를 부탁해’ 전화 상담 코너를 모든 요일로 확대했다. 더욱 충분한 시간으로 사제, 수도자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다. 방송 시간은 오전 9시 40분.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22.06.28

직접 지은 노래 ‘이별’ 처럼 아내와 헤어지고 성가 작곡에 혼신[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46) 길옥윤 요셉 (하) 행복했던 시절 길옥윤 부부. 출처=「이제는 색소폰을 불 수가 없다」 패티 김과의 약속대로 동경 국제가요제 출전 ‘사랑은 영원히’ 동상 수상 일본인 팬과 가톨릭 인연 세례받고 천주교 신자돼 갑자기 쓰러져 악성 암 진단·투병 병상에 누워 미사 생각 하느님 나라 비유 묵상 ‘한 알의 겨자씨’ 만들고 복음 성가 앨범까지 제작 길옥윤(요셉, 1927-1995, 吉屋潤)과 패티 김은 안정적인 결혼생활 덕에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었다. 만드는 노래마다 히트했다. 두 사람은 1년 예정의 세계 여행을 떠났다. 6개월 후에 패티 김은 서울로 돌아왔고, 길옥윤은 재즈를 더 공부하려고 미국 뉴욕으로 갔다. 그곳 맨해튼음악학교에서 재즈를 공부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계 여행은 두 사람을 갈라놓은 여행이 되고 말았다. 패티 김이 서울로 떠난 다음 하와이에 홀로 남은 길옥윤은 달이 뜬 바닷가를 바라보며 곡을 떠올렸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 ‘사랑이란 즐겁게 왔다가 슬프게 가는 것/ 훌라춤에 흥겹던 기쁨도 모래알에 새겨진 사연도…’라고 부르는 ‘하와이 연정’을 만들었다. 노래 가사에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담았다. 이 노래는 패티 김이 불러 대히트했다. 어느 날 밤에는 술에 취해 창가에 앉아 달을 바라보다가 악상이 떠올랐다. ‘어쩌다 생각이 나겠지/ 냉정한 사람이지만’으로 시작하는 ‘이별’이란 곡이다. 이 노래도 패티 김이 불러 크게 히트했다. 길옥윤은 자신이 만든 노래가 자신의 운명에 적중하는 것을 늘 느끼곤 했다. 특히 ‘이별’을 썼을 때, 패티 김과 이별할 것을 예감했고, 그것은 바로 현실이 되었다. 길옥윤은 패티 김과 헤어지기 전에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세계가요제에 나가자는 것이었다. 그 약속은 지켜졌다. ‘봄날에는 꽃안개/ 아름다운 꿈속에서/ 처음 그대를 만났네’로 시작하는 ‘사랑은 영원히’가 동경 국제가요제에서 자랑스럽게도 동상을 받았다. 두 사람 갈라놓은 세계 여행 길옥윤은 태어나면서부터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의 고향 평안도에는 외국 선교사들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어머니는 선교사 밑에서 교육받은 신심 깊은 신자였다. 가족 모두가 교회에 나갔다. 집에는 피아노가 있어 주일에는 집에서 부흥회도 열었다. 그런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랐기에 교회에 꼭 나갔고, 합창단에서도 활동했다. 그 후의 신앙생활은 독실하지 못했다. 오로지 노래를 만들고 악기를 연주하는 일에만 매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길옥윤에게 신앙이 우연히 찾아왔다. 우연이라기보다는 운명이었다. 길옥윤의 오래된 일본인 팬이 있었는데 그는 길옥윤에게 한국말을 배우고 일이 있을 때 도와주곤 했다. 길옥윤의 딸 안리는 그를 ‘작은 아빠’라 불렀다. 그는 한국 여성과 사귀었다. 그 여성이 천주교 신자였다. 그 남자는 3년 동안 한국 성당에 나가면서 교리 공부를 했다. 그러고는 성탄절에 성마리아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길옥윤도 그 미사에 참여해 축하해주었다. 그 전에 그는 길옥윤의 딸 안리에게 자신이 다니는 성당에 한번 가자고 제안했다. 안리는 물론 길옥윤 내외까지 같이 갔다. 그리하여 길옥윤이 어렸을 때 가족과 함께 갔던 성당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갔다. 그 후 주일마다 성당에 갔다. 그러고는 예비신자교리반에 들어가 1년 동안 교리 공부를 했다. 성경 공부도 하고 성가대의 피아노 반주도 하고 노래도 불렀다. 이렇게 해서 길옥윤은 일본에서 ‘요한’으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길옥윤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두 가지를 약속했다. 하나는 성당에 나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가집을 내는 것이었다. 한 가지 약속은 이행했다. 작곡노트 중 한 알의 겨자씨. 출처=「이제는 색소폰을 불 수가 없다」 어머니와 ‘천주교 신자 되기·성가집 내기’ 약속 길옥윤은 방송국 드라마 주제곡 작곡 때문에 우리나라를 잠깐 방문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가 며칠 안 되어 쓰러졌다. 그는 건강했었다. 30여 년 동안 매일 체육관에서 운동하며 체력을 관리했다. 운동하지 않으면 몸이 빨리 늙고, 음악 활동도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건강했던 몸에 악성 암이 쳐들어 들어온 것이다. 길옥윤은 구급차를 타고 갔다. 그는 울리는 사이렌 소리를 들으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종말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병원에서는 모든 의료기기를 동원해 진단했다. 뢴트겐을 100여 장이나 찍었고, CT를 비롯해 초음파 검사를 했다. 결과는 폐에 있던 결핵균이 척추로 옮겨와 척추에 종양이 생긴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동경여의대 부속병원에서 척추 수술을 했다. 그 병원에서 반년 이상을 혹독하게 병마와 싸웠다. 다섯 시간 암 수술…수술실에서 나온 ‘새로운 나’ 암 수술을 했다. 수술 전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좋은 노래로 더욱 기쁜 찬양을 드리며 살게 해주십시오. 성모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수술은 장장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길옥윤은 그 다섯 시간을 ‘5백억 광년’의 시간이라 했다. ‘과거의 나’는 수술실에 들어가 죽었고, 수술실에서 나온 사람은 ‘새로운 나’라고 여겼다. 이제부터 오로지 사랑이 담긴 음악만을 만들고, 진실이 담긴 얘기만 하고, 쓸데없는 사람은 만나지 말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시간은 오직 음악과 예술과 찬양을 위해서만 쓸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그래서 최우선으로 둔 것이 성가 작곡이었다. 길옥윤을 영적으로 지도해준 신부도 늘 “길옥윤이 만든 성모송이나 주님의 기도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길옥윤은 그동안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곡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거룩한 교회 음악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가톨릭 음악을 ‘제일 큰 사랑의 노래’, ‘제일 깊은 사랑의 노래’, ‘영원한 노래’라고 생각했다. 병상에 누워 미사를 생각했다. 성경에 하느님 나라를 한 알의 겨자씨에 비유한 말씀이 있다. 길옥윤은 그 말씀을 깊이 묵상했다. 그랬더니 영감이 떠올랐다. 그래서 급히 작곡 노트에 곡을 써나갔다. 성가 제목은 ‘한 알의 겨자씨’였다. 가사는 “뿌려진 씨앗은/ 어느덧 싹트고/ 이삭이 되고/ 낟알이 맺힌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견주나/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비유하나/ 그것은/ 한 알의 겨자씨 같아/ 보잘것 없어도/ 조그만 씨앗은/ 자라고 뻗어서/ 드높은 하늘로/ 가지를 뻗치네/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게 되리라”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길옥윤 복음 성가’ 앨범 한 권이 만들어졌다. 앨범에는 아름다운 성가 14곡이 담겼다. ‘한 알의 겨자씨’를 비롯해 ‘길 되신 예수’, ‘나는 거닐리라’, ‘나는 순례자’, ‘믿음’, ‘보이는 모든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 ‘소망’, ‘시간은 자꾸 가는데’, ‘영원한 삶’, ‘외쳐보아요’,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 ‘주님’이었다. 노래는 이기헌 주교, 김영자 수녀, 최희준(티모테오), 탤런트 김희애(마리아), 진성만, 정경화가 불렀다. 이 앨범은 최희준이 주도했고, 영화인 김지미(체칠리아)가 제작비를 지원했다. 길옥윤은 이렇게 해서 성가집을 만들겠다는 어머니와의 두 번째 약속을 지켰다. 사랑하는 딸 정아와 함께. 출처=「이제는 색소폰을 불 수가 없다」 7개월 투병 기록 카세트 테이프에 담아 병원에 입원하고 나서 처음으로 샤워했다.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마치 나치 감옥에 있던 유다인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했다. 뼈하고 가죽만 남은 몸이었다. 길옥윤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는 이제껏 자신이 걸어온 삶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해 5월부터 12월까지의 투병 기록을 20여 개 카세트 테이프에 담았다. 그 안에는 고통스러웠던 투병 과정을 비롯해 과거의 화려했던 삶, 힘들었던 삶, 그리고 지우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던 삶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또한 마지막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성가를 작곡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도 담았다. 이렇게 기록한 것이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책 제목은 「이제는 색소폰을 불 수 없다」로 ‘길옥윤 참회록’이란 작은 제목을 달았다. 결국 길옥윤은 그렇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장례식장에서 입관 예절을 끝내고는 관에 소중히 아끼던 묵주와 색소폰을 넣어주었다. 장례 미사는 명동대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봉헌되었다. 영결식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거행되었다. 최희준이 사회를 보았고 패티 김이 조가(弔歌)로 ‘서울의 찬가’를 불렀다. 그리고 연예인 색소폰 연주자 50여 명이 관을 운구했다. 참고 자료 : ▲길옥윤 「이제는 색소폰을 불 수가 없다」 조선일보사. 1995 ▲임진모 「유행가 3·6·5」 스코어. 2022 ▲가톨릭신문(1995.3.26.) ‘길옥윤 씨 추모 행사 마련’ ▲가톨릭신문(1996.2.4) ‘길옥윤 유작 성가집 「햇빛」’ cpbc2023.11.29
![[시사진단] 환대할 수 없는 슬픈 병원(정수용 신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8/22/XD11692678734552.jpg)
[시사진단] 환대할 수 없는 슬픈 병원(정수용 신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고급 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좋은 향기가 난다. 방금 전까지 도로의 소음과 매연에 시달렸더라도 최적의 서비스를 추구하는 호텔에 들어서면, 고객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이른바 향기 마케팅이 보편화되어 있다. 내장재도, 조명도 모두 우아하고 고급진 것을 사용하기에 고급 호텔들은 최고의 이미지를 추구한다. 반면 병원 로비의 풍경은 어떨까? 요즘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병원에는 소독약 냄새가 가장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경직된 표정, 질병의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찌푸린 사람들이 먼저 보인다. 무채색의 내장재와 유니폼은 병원을 생각할 때 쉽게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런데 이렇게 달라 보이는 두 공간, 호텔과 병원은 사실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우리 말에는 구분되지 않지만, 서구 언어에서는 호텔(Hotel)과 병원(Hospital)이 모두 라틴어 호스피탈리타스(Hospitalitas), 즉 ‘환대’라는 뜻에서 나왔다. 오늘날 개념의 병원이 생기기 전, 길을 떠나 먼 거리를 이동하는 사람들은 길에서 사고를 당하게 되면 우선 지역의 숙박 시설을 찾았고, 거기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신약 성경 루카 복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장)을 보면 예리코로 내려가다 강도를 맞은 이를 데려간 곳이 바로 여관이었다. 마음 착한 사마리아인은 두 데나리온을 여관 주인에게 주며 그의 환대를 부탁했다. 이처럼 당시의 여관은 긴박한 상황에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거절하지 않는 공간, 아프고 다친 이들을 호의로 맞이하는 곳의 대명사가 되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호텔은 아주 돈이 많은 사람들만 환대하는 곳이 되었지만, 병원이 아픈 이들이 뼈가 부러지고 피를 흘리면 누구라도 맞아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모든 이가 공감하는 바다. 따라서 비록 서로에 대한 증오와 미움이 가득한 전쟁터라도 병원은 차별 없이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문을 닫아걸지 않는다. 그런 이유에서 국제사회에서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할지라도 병원과 구급차에 대한 공격은 전쟁범죄로 규정한다. 전쟁도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자는 국제사회의 합의에 따라 의도적으로 병원을 노리거나, 다친 군인을 치료하는 곳이거나, 이들이 무기를 보관하고 있다는 이유로 의료시설을 공격하는 행위는 결코 허용할 수 없는 전쟁범죄다. 지난 15일, 결국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내에 있는 가장 큰 의료시설 ‘알시파 병원’ 내부에 진입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특공대가 투입되었고 탱크와 불도저가 병원 마당에 진을 쳤다고 한다. “투항하라”, “움직이지 말라”는 군인들의 고함, 놀란 환자와 의료진의 비명, 그리고 화약 냄새가 진동했을 것이다. 전기가 끊어진 인큐베이터 안에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신생아가 있었고, 이들을 살리기 위해 의료진은 뛰어다녔을 것이다. 하지만 병원 내의 남성들은 발가벗기고 눈이 가려진 채 중무장한 특공대원들에 의해 마당으로 힘없이 끌려 나왔다. 이스라엘군은 알시파 병원이 하마스의 기지로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고, 병력 투입 전에 사전 통보했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그 말이 맞다 해도 비무장에 상처를 입고 누워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전쟁의 비참함에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에 따르면 지난 13일을 기준으로 지금까지 한 달여 넘게 진행된 전쟁으로 1만 13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중 어린이가 4630명, 여성은 3130명이라 한다. 얼마나 더 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가야 이 전쟁이 끝날 수 있을까? 그렇게 전쟁이 끝나면 적개심도 증오도 사라질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더 큰 증오와 더 강한 미움의 씨앗을 심을 뿐, 폭력은 결코 평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더 많은 목소리가 울리면 좋겠다. 전쟁을 멈추라고, 이러다 다 죽게 되니 그만 하라고 말이다. 정수용 신부 cpbc2023.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