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성경 과외 해주는 신부제62강 열왕기 11부 (2열왕18-20ㅣ이사18-39) 계속해서 새로운 부분이 첨가되는 과정이 끝나지 않는 열린 책이었던 이사야서는 비유적으로 도서관, 어쩌면 예언서들의 도서관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집(選集)이라는 바로 이 사실은 예언자 이사야가 생애 중에 그리고 사후에 백성의 기억 속에 남아 수행한 그의 본질적인 역할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 줍니다. 이 비범한 인물은 기원전 740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예언자로서 부르심을 받았고, 그의 활동은 적어도 40년 동안에 걸쳐 전개됩니다. 그가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한 때는, 아자르야라고 불리기도 한 우찌야 임금의(2열왕 15,1-7 참조) 오랜 치세 아래 유다가 누렸던 번영의 시대와 일치합니다. 그러나 번영은 사치의 팽배, 모든 토지들을 독점하는 지주 계급의 출현, 그리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억압 등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정의에 반대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단죄하고, 그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를 선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사야보다 몇 년 앞서 아모스 예언자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똑같은 말을 선포하기도 했었습니다. 이사야가 정치 활동의 전면에 나타난 것은 아하즈 임금 치세 초기의 일이었습니다(2열왕 16,1-20). 당시,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하는 아람 왕국과 사마리아를 수도로 하는 이스라엘 왕국은 점점 위협이 되는 아시리아의 세력에 대항하려고 시도하는 반면, 유다 왕국의 아하즈는 자진해서 아시리아 임금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해결 방안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하즈는 자신을 강제로 끌어들여 연합 전선을 이루려는 이 두 이웃 나라에 대항하여, 아시리아 임금에게 징벌군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 원정은 실패로 끝나지만 아하즈는 자기의 친아시리아 정책을 계속 유지합니다. 기원전 734년을 전후하여 이 일이 일어난 뒤, 이사야는 자의든 타의든 십여 년 동안을 공적인 생활에서 물러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여러 지방에서도 실감하는 아시리아 세력의 점진적인 확장을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아시리아는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