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믿음안에서 평안을 찾다 외 믿음안에서 평안을 찾다 추교윤 신부 지음 / 오메가추교윤(의정부교구) 신부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모르는 신자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믿음의 정석’을 풀어냈다. 사제로서 33년을 살아온 저자는 일상에서 만난 신자들의 삶을 통해 믿음이 그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성경 속 인물들의 믿음은 삶에서 어떤 기적을 일으켰는지를 소개했다. 또 믿음을 키우는 신앙생활 방법으로 하느님과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하며, 성령을 잘 따르고, 기도의 일상화를 꼽았다.추 신부는 프랑스 파리 가톨릭대에서 석사학위를, 고려대 대학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의정부교구 문화미디어국장을 지냈으며 현재 정발산본당에서 협력사제로 사목하고 있다. 곁이 되어 김태헌 신부 지음 / M3125년간 사제생활을 해온 김태헌(인천교구 주안5동본당 주임) 신부가 소소한 일상에서 길어올린 단상들을 기록했다. 성당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화를 비롯해 계절의 변화, 사회의 단면 등 시기별로 떠오르는 다양한 소재를 글감 삼아 신앙의 눈으로 진솔하게 써 내려간 에세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을 위해 쓴 훈화를 모은 것으로, 은경축을 맞아 신자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 책으로 엮었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 시골 마을의 추억을 잊지 못해 백령도, 연평도, 신도 등 섬마을 신부를 자처했지만 2010년에는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사제로서 소명을 되새기는 계기를 맞기도 했다. 이지혜 기자 문채현2022.03.16

코로나 시대, 신앙 서적으로 사순 여정 동참하자사순 시기, 그리스도 죽음과 수난 묵상에 도움 될 도서 추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참회와 희생, 극기, 회개와 기도로 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동체의 신앙생활에 제약이 많은 만큼, 신앙 서적을 통해 사순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사순, 날마다 새로워지는 선물 유경촌 주교 지음ㆍ정미연 그림 가톨릭출판사 서울대교구 사회 사목을 담당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찾아가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유경촌 주교의 묵상 글에 오랜 시간 성화 작업을 해온 정미연(아기 예수의 데레사) 작가의 그림이 어우러진 사순 시기 묵상집이다.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신심을 바탕으로 한 유 주교의 솔직하고 간절한 기도가 마음을 울린다. 재의 수요일부터 5주간의 사순 시기를 넘어 성주간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주교와 화가가 글과 그림으로 영적인 길로 인도한다. 성경 말씀을 통해 묵상하고 기도한 다음, 자신의 결심과 실천 사항을 적을 수 있도록 했다. 그 분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습니다 정진석 추기경 지음 가톨릭출판사고 정진석 추기경이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이야기를 담은 책.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동안 일어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신앙에 대한 확고함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끈다. 정 추기경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이뤄지는 예루살렘 입성부터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 영광스러운 부활에 이르기까지 독자들이 마치 현장에서 주님이 걸으신 길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풀어낸 게 특징이다. 지리적 요소와 당시의 관습, 역사적 기록을 모두 동원했다. 사랑으로 따르는 십자가의 길장재봉 신부 지음 / 꿈꾸는 요셉부산교구 신학원장 장재봉(부산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쓴 십자가의 길 기도서. 주님이 걸으신 길이 고통을 넘어선 사랑의 길임을 깨닫고, 오직 사랑으로 채워 살아야 한다는 믿음을 새기며 쓴 기도문이다.장 신부는 “늘 새날을 주시고 새 생각을 주시고 새 마음을 선물해주시는 주님께서 십자가의 길에 동반하시는 모든 분의 영과 몸에 혼에 축복을 내려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삶의 자락, 끊임없이 스며드는 아픔과 슬픔과 눈물까지도 모두 주님께서 주신 복된 것임을 믿으며 더 사랑하는 일에서 지치지 않도록 힘주시길 청한다”고 덧붙였다. 약속을 지키시는 아버지 스콧 한 지음ㆍ천강우 옮김바오로딸사순 시기 여정 동안 하느님을 묵상하며 부활을 준비하도록 이끄는 묵상 안내서.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까지 주간별로 ‘창조 이야기’, ‘노아와 아브라함의 순종’, ‘광야에 선 이스라엘’ 등을 주제로 다뤘다. 미국 스투벤빌 프란치스코대학교에서 신학·성서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저명한 강사 스콧 한 교수가 썼다. 스콧 한 교수는 “세속적인 이익을 희생하는 것, 천국의 보물에 우리의 마음을 고정하는 것, 그리고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며 “이것이 사순절의 교훈”이라고 강조한다.성지 주일ㆍ파스카 성삼일예절 준비와 해설 가톨릭전례학회 엮음가톨릭대학교 출판부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지내는 성지 주일과 파스카 성삼일의 전례 예식은 특별한 고유함으로 예식을 거행하는 게 쉽지 않다. 고유하고 특별하다 보니 지나치게 형식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정작 신자들은 내면적 의미를 놓치기도 한다. 이 자료집은 예절을 거행하는 사제와 부제, 봉사자들을 위한 해설서다. 예식의 특성과 주제, 예식의 진행 및 전례 동작과 표현, 성가 준비 등을 다뤘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 시기별 전례 예식과 함께 각 주일이 지닌 의미도 설명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2.03.02

청년 사목 최일선에서 2030 수녀가 내놓은 ‘청년 사목 해법’은 [나는 가톨릭 청년이다] (7) 한정원 수녀(예수의 까리타스 수녀회 서울관구) 한정원 수녀는 교회 구성원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할 때 더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양가 친척이 다 불교나 개신교 신자인데, 제가 결혼하기 싫어서 수녀원으로 도망친 줄 아시더라고요. 좋아서 제 발로 온 거라고 계속 반박했는데도 아직 저를 짠하게 보세요. 그러면서 ‘행복하냐’고 자꾸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럼 저는 대답하죠. 완전 행복하다고요.”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서울관구 한정원(레오, 32) 수녀가 웃으며 말했다. 수도자가 돼도 다른 청년처럼 명절에 스트레스받기는 마찬가지란다. ‘나는 가톨릭 청년이다’ 일곱 번째 주인공을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서울관구 본원에서 만났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혼밥ㆍ혼술 익숙한 세대에게 수도생활이란 “저를 만나는 학생마다 ‘이렇게 젊은 수녀님 처음 뵌다’고 하더라고요.” 내년 2월 종신서원 예정자인 한 수녀는 현재 청년 사목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다. 예수회가 운영하는 서강대학교 교목처에서 16일까지 근무한다. 한 수녀는 원래 초등학생 때부터 역사학자를 꿈꿔 대학 전공도 역사학을 택했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가 있을 곳이 여기가 맞나?’라는 고민과 함께 수도회로 마음이 기울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2014년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에 입회했다. 20대 중반인 그는 입회 동기 중에 상당히 어린 축에 들었다. “사회 경험을 하다가 어떤 부족함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를 느끼고 그제야 뒤늦게 성소를 발견한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사회 경험을 시작하는 나이 자체가 늦어져 입회 연령이 높아질 수밖에 없죠. 각자 맞는 때라는 게 있겠지만, 자매들이 성소를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하면 좋겠어요. 늦을수록 본인에게 힘든 것 같아요. 세상에 행복하고 즐길 게 너무 많은데, 그걸 한창 누리다가 갑자기 내려놓으려면 너무 어렵겠죠.” 과거와 달리 ‘혼술’ ‘혼밥’이 보편화한, 홀로 사는 삶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진 현대 사회. 한 수녀는 “혼자 편히 지내는 일상이 익숙해진 2030세대에게는 공동체 생활만큼 힘든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저는 삼남매 중 첫째로 터울이 많이 지는 동생들을 돌보며 컸고, 입회 직전까지 가족과 함께 살았어요. 그래서 수도자들이 가족처럼 부대끼고 지내는 생활이 재밌고 좋았어요. 하지만 동기 대부분은 외동이거나 혼자 산 경험이 있었죠. 그래서 처음 공동체 생활을 시작할 때 어려움이 더욱 컸던 것 같아요.” 여자는 왜 신부가 될 수 없느냐 묻는 청년 30대 초반 수도자 눈에는 청년과 기성세대 간극도 무척 커 보였다. 한 수녀는 “옛날엔 교회에 청년도 많고, 다들 참 열심히 활동했는데 요즘은 안 그런다고 의아해 하는 수도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청년들은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즐거운 일이 우선이고 신앙은 뒷순위인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물론 의무감을 갖고 신앙활동을 하는 청년들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권위적인 태도로 실망하고 상처를 입는 일이 잦다. 성직자ㆍ수도자가 평신도보다 위인 것처럼 굴고, 활동인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일을 몰아주는 경우가 예다. 한 수녀는 “청년들이 성당에 가는 것조차 싫어하는데 어떻게 수도자의 길을 권할 수 있겠느냐”고 씁쓸해 했다. “부모님들도 자녀를 수도회에 보내고 싶어 하지 않아요. 간다고 해도 말린다고 들었어요. 제가 예전에 본당에서 전교할 때도 어머님들에게 ‘따님 수녀원에 보낼 생각 없으세요?’라고 하면, 이런 답이 돌아오더라고요. ‘수녀님, 그럼 우리 애가 너무 고생하잖아요!’ 이런 생각이 은연중에 신자에게 깔렸는데 성소를 발견하기 쉽지 않겠죠.” 여성 청년들이 던지는 도전적인 질문도 큰 과제였다. “여학생들이 친해지면 꼭 하는 말이 ‘왜 여자는 신부가 될 수 없어요?’예요. 처음 들었을 땐 말문이 턱 막혔죠. ‘신부가 될 수 있으면 수녀원에 들어가겠다’고 말한 학생도 있어요.” 페미니즘 영향을 받은 청년들이 성 역할이 뚜렷한 가톨릭을 ‘차별적’이라고 규정짓는 현실. 한 수녀는 “성모 마리아 성 요셉에 대해 황당한 공격을 하는 청년도 있었다”며 “여러 가치관을 받아들여 중심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이런 청년들은 이미 혼자서 답을 내린 탓에 어떤 설명을 해줘도 받아들이질 않는다”고 안타까워했다. “저는 이제 ‘여성이 사제가 될 수 있어도 나는 안 할 거야’라고 말해요. 수도자로 살아가는 삶도 충분히 만족스럽거든요. 청년들에게 또 이런 이야기도 해요. 정말 여성 사제가 되고 싶은 건지, 그걸 핑계로 신앙과 성소를 멀리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라고요. 그리고 혼자 판단하지 말고, 궁금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라고요.”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만남과 소통 대개 청년을 위한 사목 방안으로 대규모 행사가 튀어나오기 일쑤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소모임’이라는 게 한 수녀의 신념이다. “성경 통독반을 개설했는데, 4명밖에 등록 안 하더라고요. 그마저도 바빠서 다 모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시간을 계속 쪼개서 따로 만났죠. 한 명만 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학생들은 저와 1대1로 수업하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남 눈치 안 보고 궁금한 것도 물어볼 수 있고, 소통하기 편해서 그랬나 봐요. 그만큼 시간을 많이 내느라 몸은 힘들었지만, 역시 발품을 파는 게 최고라는 걸 알았죠.” 하지만 평신도인 청년들이 수도자에게 흉금을 터놓기란 쉽지만은 않을 일이다. 한 수녀는 “학생들의 깊은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데는 교목처에서 함께 일한 청년 평신도 사도직 활동가의 도움이 아주 컸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제 앞에서 말하기 어려운 고민과 질문을 그 청년 활동가에겐 털어놓는 경우가 많았죠. 저도 그 친구와 함께 있으면 학생들과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그 가운데는 낙태처럼 극도로 민감한 소재도 있었어요. 저도 그 자리를 빌려 솔직하게 말했죠. 생명을 취사선택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아 마음 아프다고요. 한 수녀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도 세포였고, 나도 세포였는데. 어떻게 세포라는 이유로 생명을 죽이고, 가능성을 뺏어갈 수 있겠어. 네 눈에 고지식해 보일 수 있지만, 가톨릭은 생명 존엄이라는 근본적인 가치를 지키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낙태를 반대하는 교회 입장에 사람들이 크게 반발하는 것은 내심 낙태가 잘못된 것이라고 알고, 죄스러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많은 학생이 또래 청년 활동가를 만나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 그 모습을 본 한 수녀는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청년 평신도가 더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성직자ㆍ수도자와 더불어 평신도가 더 큰 역할을 해줘야 교회에 더 많은 청년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어요. 올바른 신앙관을 가지고 수도자ㆍ성직자와 함께 일하는 청년 평신도를 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면 좋겠어요.” 변하는 세상에서 변치 않는 사랑 청년이 귀한 한국 교회에서도 유독 젊은 피 수혈이 필요한 곳이 바로 수도회다. 코로나19로 최근 3년간 입회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수도회도 적지 않다. 한 수녀는 이를 두고 “속상하다”며 “청년들이 성소를 식별하는 프로그램으로 초대했을 때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주면 좋겠다”고 바랐다.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수도생활을 권하는 이유는 제가 받은 사랑을 전해주고 싶기 때문이에요. 바로 하느님이 주신 충만한 사랑이죠. 인터넷으로 뭐든 쉽게 답을 찾는 세상에서 수도자가 되는 긴 여정은 재미없고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침묵 속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꾸준하게 찾아갈 수 있는 그런 끈기가 우리 삶엔 꼭 필요하답니다.” 언젠가 학생 하나가 수도생활이 뭐냐고 묻자 한 수녀는 이렇게 답했다. “우리한테는 깨진 항아리가 하나씩 있어.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부으면 물이 차지 않잖아. 그런데 하느님이라는 강에 그 항아리를 던지면 물이 가득 차고도 넘치지. 바로 그런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수도생활이야. 너도 하느님이라는 강에 스스로 맡기고 그분의 사랑을 알면 좋겠어.”이학주2023.01.31

“사랑의 기쁨 넘치는 건강한 가정 만들자”광주대교구·전주교구,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 폐막 미사 봉헌… 공모전 시상식도 거행 광주대교구가 6월 26일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주례로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 폐막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장재학 명예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2021년 3월 19일~2022년 6월 26일)가 폐막했다.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를 맞아 세계 가톨릭교회는 가정과 부부의 사랑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광주대교구는 6월 26일 임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주례로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 폐막 미사를 봉헌했다. 폐막 미사에는 옥현진 총대리 주교, 교구 사제, 수도자, 신자 등 300여 명이 참여했다. 김 대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가정의 위기는 곧 사회의 위기이며 혼인과 가정의 온전한 가치를 증진하는 것만이 현대사회의 병리 현상을 치유하는 길”이라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가정 파괴와 붕괴라는 사회현상에 맞서 건강한 가정의 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회와 교회의 기초인 가정에서 시작하는 복음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자 교구는 2012년 ‘가정의 해’를 이미 선포했다”며 “우리 교구는 2012년 기도하는 가정교회, 2013년 복음을 선포하는 가정교회, 2014년에는 세상에 봉사하는 가정교회에 주력했다”고 설명했다.김 대주교는 “가정의 해를 폐막하면서 가정을 위한 사도직을 더욱 성장시켜 그리스도인의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인 가정이 생명을 전달하고 자녀를 사랑으로 교육하며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교 가치를 실현하고 사회 발전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아울러 “가정의 해를 통해 우리의 가정이 기도하는 가정, 복음을 선포하는 가정, 세상에 봉사하는 가정의 모습을 균형 있게 증거하면서 지체없이 주님을 따르는 길에 동참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한편 이날 폐막 미사에서는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를 보내는 나의 가족이야기 공모전’과 ‘교구 다자녀 가정’ 시상식도 진행됐다. 전주교구 가정사목국도 26일 치명자산성지 평화의 전당에서 교구장 김선태 주교 주례로 ‘교구 가정대회 및 사랑의 기쁨 가정의 해’ 폐막 미사를 봉헌했다. 김 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의 기쁨은 가정에서 실천하는 사랑이고 교회의 삶에서 변치 않는 힘의 원천임을 강조하셨다”며 “건강한 가정은 우리의 존재와 삶의 기초이기 때문에 모든 노력을 다해 믿고 지켜야 한다. 이 믿음을 통해 가정과 교회가 건강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교구는 이날 ‘제2차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행사도 개최했다.1부 조부모와 함께하는 가족잔치에서는 조부모와 가족들의 사랑의 일치를 보여주는 가족사진 촬영, 캘리그라피로 쓴 성경가훈, 각국의 전통놀이, 다육화분 만들기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2부에서는 성가정 축복장(2가정), 기쁨상(3가정), 사랑상(3가정), 믿음상(1가정)과 우리 가족 신앙 이야기 공모전 시상식이 진행됐다. 광주대교구ㆍ전주교구 홍보국 제공 평화신문2022.06.29
갤러리 1898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 기념전 ‘기억, 희망 그리고 축복’ 엽서 초대장.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 기념 작품전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아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 10일부터 15일까지 기념 전시가 열린다. 전시 주제는 ‘기억, 희망 그리고 축복’이다. 서울대교구 가톨릭사진가회(회장 진완선, 담당 최대식 신부)와 가톨릭 글씨문화연구회(회장 박철, 담당 이계철 신부), 가톨릭 전례꽃꽂이연구회(회장 나미영, 담당 전호엽 신부)가 참여한다. 제1, 2전시실에서는 가톨릭사진가회가 사진전을 연다. 가톨릭사진가회 회원들의 1년여의 노력이 깃든 50여 점의 작품과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성지들의 풍경을 담은 60여 점의 작품을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제3전시실 전시는 가톨릭 글씨문화연구회가 마련했다.가톨릭 글씨문화연구회 회원들은 코로나19로 지난한 시기를 보내며 붓으로 성경을 쓰고, 전각도로 말씀을 새기며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전시에 회원 48명이 기도와 함께한 글씨, 그림, 새김 작품으로 참여한다. 전시 기간 중 작가들의 캘리그라피 성경 구절 쓰기, 세례명 수제 도장 제작 행사 등도 진행한다. 수익금은 백신 나눔 운동에 기부할 예정이다.가톨릭 전례꽃꽂이연구회는 꽃과 자연으로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의 축복과 기쁨을 표현했다. 작품 6점을 전시한다.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 손병선(아우구스티노) 회장은 “김대건 신부님에 대한 삶의 발자취와 기억, 위로와 희망을 다양한 방법으로 담아낸 작품들을 보고 느끼시면서 사랑의 나눔에도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도재진 기자 cpbc2021.11.10

신천지, ‘신밍아웃’ 이어 일간지 광고까지 등장법원 ‘모략전도’ 위법 판결 이후 ‘오픈전도’로 전략 전환… 돈의 논리에 매몰된 일부 일간지 이단 홍보 도구 전락 모 일간지에 실린 신천지 광고성 기사. 마치 기사처럼 게재된 신천지 헌혈 봉사활동 내용은 기사로 둔갑해 버젓이 홍보되고 있다. “얼마 전 거리에서 볼펜과 물티슈를 받았는데, 신천지교회 이름이 쓰여있더라고요.” “신천지에 빠진 친구가 영상을 보여주면서 같이하자고 사정하길래 단호히 거절했어요” 최근 들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신천지 활동에 관한 목격담과 경험담, 대응요령 등을 밝힌 글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역 곳곳에서 포교활동에 고개를 든 신천지 추수꾼들의 행태부터 지인이 신천지임을 밝히는 이른바 ‘신밍아웃’(신천지 커밍아웃)을 접했을 때 대처법 등 신천지의 민낯을 접한 이들의 글이 온라인상에 게재되고 있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맘카페는 물론, 개인 블로그, 자유 게시판, 포털 사이트 등 곳곳에서 신천지와 관련한 구체적인 경험담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신천지 신자를 만난 이들은 실제 포섭 행위가 일어난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알리기도 한다. 포털 사이트에는 “가족이 신천지인데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신천지 호구가 된 누나가 재산까지 갖다 바칠 기세다”와 같은 고민도 상당수다. 이들은 댓글을 통해 서로 해결방법을 모색해 나간다.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신천지 바로 알기’와 ‘이단 정화작용’이 일어나는 모습이다.한 네티즌은 “오랜 친구에게 갑자기 연락이 와서 만났는데 심리 테스트를 해주더니, 신천지로 현혹하는 바람에 의절해야 할지 밤새 고민했다”며 “결국 연락을 끊었고, 친구 한 명을 잃은 것 같다”고 호소했다. 신천지에 빠진 엄마가 매일 신천지 영상 시청과 성경 쓰기를 시킨다는 중학생 사연도 있다. 왜 이처럼 많은 경험담이 전에 없이 퍼지는 것일까. 신천지는 지난해부터 자신들의 신분을 숨기지 않고 밝히는 ‘오픈전도’ 전략으로 전환했다. 올 초엔 타인을 속여 포섭 활동을 하는 ‘모략전도’가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을 받은 터였다. 법적 제재까지 가해진 이후 자신들의 정당성을 높이고, 사람들의 거부감을 줄이고자 ‘마구잡이 오픈전도’와 ‘신밍아웃 방식’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도리어 평범한 젊은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신천지 거부반응’을 초래하는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이를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신천지는 주요 일간지에 자신들을 홍보하는 대대적인 광고와 선전에 다시 열을 올리는 추세다. 지역 언론은 물론이고, 전국에 배포되는 주요 신문에도 최근 들어 신천지 광고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일간지 전면 광고를 통해 세미나를 홍보하는 데 열을 올렸던 신천지는 최근에는 신천지 교육에 상반기에만 10만 명이 수강했다며 이미지 정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헌혈과 봉사활동을 다룬 광고성 기사도 내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있는 신천지를 홍보하는 기사들은 온라인에서도 쉽게 검색돼 주의가 요구된다.이단 전문가들은 “신천지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이후 갈 데까지 간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 이단 전문가는 “모략을 피해 오픈전도를 택했지만, 젊은이들을 설득하지 못하면서 그들의 적나라한 포섭 과정이 온라인과 SNS를 통해 더욱 밝혀지고, 신천지를 거부하는 방법 또한 자연스럽게 전파되고 있다”며 “그럼에도 대대적인 홍보 전략을 통해 자신들의 교세 확장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또 다른 이단 전문가는 “그렇잖아도 많은 이가 신천지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상황에서 친구와 가족의 무차별 신밍아웃이 더 큰 반감을 불러오고 있다”며 “언론사가 돈의 논리에만 매몰돼 이단을 홍보하는 도구로 전락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22.08.10

밀레의 ‘만종’ 타고르의 시 한구절에서도 신앙을 느낀 피천득[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6) 피천득 프란치스코 (하) 김수환 추기경과 피천득 피천득의 신앙 고백 피천득은 가톨릭평화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신앙을 이야기했다. “난 아직도 그때 들어선 그 문턱에서 서성거리고 있어요. 신앙에 충실치 못한 건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아직 내가 믿는 바는 하늘에 군림하시는 전지전능한 신이기보다는 불쌍한 우리들 속에서 고뇌를 같이 하시고 우리의 상처에 향유를 발라주시는 인간적인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공경하는 성모 마리아는 여성의 가장 아름다운 순결의 상징입니다. 그 순결미는 어느 종교적 진리보다도 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천득은 좋은 기도란 바로 ‘감사의 기도’라고 했다. 자신의 방에 노인이 수프 한 그릇, 빵 한 조각을 놓고 기도를 드리는 그림이 하나 있는데, 그 소박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바로 종교의 본의(本意)라고 했다. 그러면서 무릎을 꿇고 고요히 앉아 있는 것도 ‘기도’라고 했다. 말로 표현하건 안 하건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으면 그것이 기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브루흐의 ‘콜니드라이’와 바다르체프스카의 ‘소녀의 기도’는 음률로 나타낸 기도이고, 엘 그레코의 ‘산토 도밍고’와 밀레의 ‘만종’은 색채로 이뤄진 기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말로 드리는 으뜸가는 기도는 마태오 복음서 6장에 있는 ‘주님의 기도’라고 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은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피천득은 타고르의 ‘기탄잘리’ 한 구절인 “저의 기쁨과 슬픔을 수월하게 견딜 수 있는 그 힘을 저에게 주시옵소서”를 좋아했고, 자신이 읽은 짧고 감명 깊은 기도는 “저희를 지혜로운 사람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라고 했다. 피천득은 눈물은 인정의 발로이며 인간미의 상징이며 성스러운 물방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성경에서 아름다운 데를 묻는다면, 루카 복음서 7장, 죄지은 여자가 예수님의 발 위에 자신이 흘린 눈물을 머리카락으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서 바르는 장면이라고 했다. 또한, 미술품으로 자신이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것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라고 했다. 피에타에는 마리아의 보이지 않는 눈물이 있다고 했다. ‘피에타’는 성모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아들 예수님을 끌어안고 있는 처절한 모습이다. 고개를 숙인 성모님의 얼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어느 미술평론가는 성모님의 그 표정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슬픈 표정’이라 했다. 사랑하는 이를 외면한 까닭 피천득이 인간적으로 존경하고 사랑한 사람으로 도산 안창호, 춘원 이광수, 주요섭, 윤오영을 들 수 있다. 피천득이 중국 상해로 유학 가게 된 동기는 존경하는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도산을 처음 만난 느낌을 “용모·풍채·음성 등 모든 것이 고아하였다. 그의 인격은 위엄으로 나를 억압하지 아니하고 정성으로 나를 품 안에 안아버렸다”라고 했다. 도산이 잠깐 나간 틈을 타서 도산의 모자를 써 보기도 하고 도산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와 비슷한 것을 구입하기도 했다. 도산을 닮고 싶어서였다. 피천득이 심한 병이 들었을 때 도산은 피천득을 차에 실어 상해 요양원에 입원시켰고, 겨울 아침 일찍이 문병을 오기도 했다. 그런데 피천득은 도산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일본 경찰의 감시가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피천득은 이 일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보다도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고백했다. 이렇듯 피천득의 첫 번째 스승은 도산이었다. 다음으로 존경한 사람은 춘원 이광수였다. 피천득은 춘원을 “싱싱하고 윤택한 오월의 잉어”라고 했다. 춘원은 피천득에게 워즈워드의 ‘수선화’를 비롯해서 수많은 영시를 가르쳐 주었고,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읽게 했고, 인도주의 사상과 애국심을 불어넣어 주었다. 피천득은 춘원을 마음이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춘원은 가톨릭 신부나 승려가 될 사람이었다. 동경 유학 시절, 길가의 관상쟁이가 춘원을 보고 출가할 상이나, 눈썹이 탁해서 속세에 산다고 했다. 피천득이 경기부속국민학교 때 검정고시를 보고 두 해 빨리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에 들어갔을 때 그의 재능을 제일 먼저 알아본 사람은 춘원이었다. 당시 춘원은 동아일보 편집국장이었다. 춘원은 고아였던 피천득에게 깊은 동정심으로 느끼고 자기 집에서 3년 동안 데리고 살았다. 춘원은 피천득의 두 번째 스승이었다. 그리고 피천득은 여덟 살 위인 소설가 주요섭을 ‘친형보다 더한 존재’라고 했다. 주요섭을 만난 것은 열일곱 살 때, 중국 상해였다. 주요섭은 당시 호강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학교로 찾아간 피천득을 YMCA 식당에 데려가 저녁을 사주었고, 주말이면 영화를 구경시켜주었다. 주요섭은 특대생이었고, 영자신문 주간이었다. 모든 학생이 주요섭을 흠모했다. 피천득은 그를 이상적인 인물로 보았다.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는 피천득 어머니에 대한 에피소드가 들어있다. 또한, 피천득은 수필가 윤오영과 무척 친하게 지냈다. 피천득은 윤오영을 정으로 사는 사람으로 서리같이 찬 그의 이성이 정에 용해되면서 살았다고 했다. 윤오영은 양정고보를 졸업했다. 그는 밤이면 송강 정철과 노계 박인로를 읽고 연암 박지원을 숭앙했다. 그리고 중국의 노신을 좋아했다. 또한 「사서삼경」은 물론 「노자」와 「장자」도 탐독했다. 그는 해방 후 보성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30년간 근무했다. 피천득은 윤오영을 ‘조지훈 이후로 남은 그리고 미래에도 있을 선비 중 한 사람’이라고 했다. 윤오영은 피천득의 글에 대해 산곡(山谷) 간에 옥수 같이 흐르는 맑은 물로 그 시냇물의 밑바닥에는 거친 돌부리와 아픈 자갈이 깔려 있다고 했다. 피천득은 평범하고 정서가 섬세한 사람을 좋아했다. 사진은 노년의 피천득. 피아노 소나타 31번 피천득이 문학 작품을 보고 존경하고 사랑한 사람은 셰익스피어, 도연명, 로버트 프로스트, 찰스 램이었다. 피천득은 셰익스피어를 보고 ‘사람은 신과 짐승의 중간적인 존재가 아니라 신 자체라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세대를 초월한 영원한 존재’라고 했다. 또한, 민주 국가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셰익스피어를 읽어야 한다고 했다. 피천득은 “나는 그저 오늘도 도연명을 생각한다”고 했다. 피천득은 시끄러운 도시 생활을 싫어했다. 그래서 도연명처럼 아홉 평 집 마당에 꽃을 심었고, 울타리에는 국화를 심었다. 그러면서 도연명을 늘 생각했다. 도연명이 쓴 유명한 시 「귀거래사」에는 “젊어서부터 속세에 맞는 바 없고, 성품은 본래 산을 사랑하였다. 잘못 도시 속에 빠져 삼십 년이 가버렸다”라는 구절이 있다. 도연명은 마흔한 살에 귀거래 했는데 자신은 쉰 살이 되는데 늙은 말 같은 몸을 채찍질하며 잘못 들어선 길을 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피천득은 미국에서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를 만났다. 그를 정직한 사람, 순박한 사람, 지성을 뽐내지 않는 사람, 인생을 사랑한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그러면서 프로스트의 시는 뉴잉글랜드 과수원에 사과가 열리고, 겨울이면 그 산과 들에 눈이 내리는 것과 같이 영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정성껏 번역했는지도 모른다. 피천득은 평범하고 정서가 섬세한 사람, 동정(同情)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수줍어하고 겁 많은 사람, 순진한 사람, 아련한 애수와 미소 같은 유머를 지닌 사람을 좋아했다. 바로 그런 사람이 찰스 램이었다. 찰스 램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그는 오래된 책, 옛날 작가, 그림과 도자기를 사랑하였고, 작은 사치를 사랑했다. 또한, 어린 굴뚝 청소부들을 사랑했다. 그들이 웃으면 따라 웃었다. 그는 램(羊)이라는 자기 이름을 향해 “나의 행동이 너를 부끄럽게 하지 않기를. 나의 고운 이름이여”라고 했다. 사람들은 피천득이 찰스 램과 취향이 비슷해 ‘한국의 찰스 램’이라 부른다. 피천득은 하루에 세 시간 이상 클래식을 들었다. 음악을 들을 때는 “잃어버린 젊음을 안갯속에 잠깐 만난다”고 했다. 그의 시 ‘이 순간’에서도 “오래지 않아 / 내 귀가 흙이 된다 하더라도 / 이 순간 내가 / 제9 교향곡을 듣는다는 것은 / 그 얼마나 찬란한 사실인가”라고 음악을 찬양했다. 피천득은 베토벤을 가장 좋아했다. 피천득이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장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1번이 울려 퍼졌다. 피천득은 살았을 때, 가까운 사람에게 자신의 장례식장에 소나타 31번을 미리 부탁했었다. 피천득은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에 묻혔다. 그곳에 제자들이 시비를 세웠다. 시비에는 스승이 가장 좋아했던 시 ‘너’가 새겨져 있다. 눈보라 헤치며 /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 동안 /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 속으로 / 사라져 가는 / 너 오는 주말에는 잠실에 있는 금아기념관에 갔다 오려 한다. 잠실 석촌 호수 겨울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참고자료 : ▲피천득. 수필. 범우사. 1976. ▲피천득. 피천득 시집. 범우사. 1987. ▲피천득. 생명. 샘터. 1997. ▲피천득. 금아문선. 일조각. 1980. ▲피천득. 어린 벗에게. 여백. 2002. ▲정정호. 피천득 평전. 시와진실. 2017. ▲정정호 엮음.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샘터. 2014. 백형찬(라이문도) 전 서울예대 교수 2023.02.07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프란치스코 교황·전국 교구장 사순 시기 담화, “하느님 앞에서 새롭게 되는 시기” 강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2년 사순 시기 담화를 통해 “이웃을 향한 적극적인 애덕으로 낙심하지 말고 계속 선행을 하자”며 “이번 사순 시기 동안 기쁘게 줌으로써 자선을 실천하자”고 요청했다.교황은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갈라 6,9-10)란 주제 담화에서 “하느님의 협력자가 되라는 부름을 받는 우리가 현재의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선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며 선행을 강조했다.또 “선의 씨앗을 뿌리라는 요청을 부담이 아닌 은총으로 여겨야 한다”며 “우리가 뿌린 선의 첫 열매는 우리 자신 안에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심지어 친절을 베푸는 우리의 소소한 행동에서 나타난다”고 말했다. “하느님 안에서 그 어떠한 사랑의 행동도, 사소한 행동도, 그 어떠한 아낌없는 노력도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전했다.말씀의 중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교황은 “하느님 말씀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고 드높여 주며, 우리 삶과 행동의 무르익은 열매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에 들어갈 알곡’이며 ‘하늘의 보물’”이라며 “사순 시기 동안 우리는 살아 있고 힘이 있는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분의 선물에 응답하라고 요청받는다”고 설명했다.교황은 믿음이 주는 위안을 느껴볼 것도 권했다. 교황은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필요하기에 기도해야 하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면서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이 우리 개개인과 사회의 연약함을 더욱 인식시켜 주었다면, 이번 사순 시기에 우리가 하느님 믿음에서 오는 위안을 체감하기 바란다”고 말했다.교황은 또 “사순 시기에 우리에게 요청되는 육신의 단식이 죄와의 싸움에서 우리의 영을 강인하게 해주길 바란다”며 “계속 참회와 화해의 성사 안에서 용서를 청하고, 탐욕에 맞서 싸우자”면서 우리 삶의 악을 뿌리 뽑자고 요청했다.한편, 한국 교회 각 교구장들도 사순 메시지를 발표하고 코로나19로 아픔과 상실을 겪고 있지만, 사순 시기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새롭게 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2코린 5,20; 6,2)를 제목으로 낸 사순 메시지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낳은 아픔과 상실들 속에 하느님은 우리를 저버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그 고통 속에 말없이 십자가 위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위로했다. 이어 정 대주교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가는 사랑의 장인’이 되어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자신을 희생하여 모든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사랑하는 분을 새 대통령으로 보내주시기를 주님께 청하자”고도 요청했다.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는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를 제목으로 사순절 담화문을 발표하고, “사순 시기는 하느님께 돌아오는 시기”라면서 “나의 삶의 주인이 하느님이셨는지 아니면 나 자신이었는지를 깊이 생각하고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도 사순절 메시지를 내고, 코로나 펜데믹을 겪으며 위축된 신앙생활을 지적했다. 이 주교는 “하느님의 뜻이 담긴 성경을 읽지 않으면서 그분을 믿는다고 할 때, 그 신앙생활에서 어려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사순 시기에 성경 읽기를 통해 신앙생활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춘천교구장 김주영 주교는 ‘춘천교구 하느님 백성에게 드리는 서한’을 통해 “신앙인들은 효율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는 세상의 흐름 앞에서,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예수님의 사랑과 수난의 고통을 깊이 묵상하며 부활을 준비하자”고 말했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2.03.01

서울 중림동약현본당 설립 130주년 행사 추진본당 발전사 야외 사진전
유튜브 미사, 성경 공부 등
대면·비대면 기념 행사 다양 서울 중림동약현성당 전경. 서울대교구 중림동약현본당(주임 김병훈 신부)이 올해 설립 130주년을 맞아 공동체 신심을 다지고, 영적 성장을 도모해 나갈 다양한 대면ㆍ비대면 기념행사를 추진한다.중림동약현본당은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당신 빛으로 저희는 빛을 봅니다’(시편 36,10)란 130주년 주제 성구 아래, 130주년준비위원회(위원장 차명환)를 중심으로 순교 신심을 강화할 영성 특강과 도보 성지순례, 본당 역사 사진전 등을 개최한다. 코로나19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경우, 대부분 기념행사를 비대면으로 진행하면서도 최대한 신자들과 의미를 나누며 130년 주님 사랑에 감사하는 해로 보낼 계획이다.본당은 19일 본당 수호성인인 성 요셉 대축일 미사를 통해 뜻깊은 한 해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을 시작으로, 사순 시기 동안인 3월 중 본당의 변천과 발전사를 연대순으로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전’을 야외 마당에서 진행한다. 4월 4일 주님 부활 대축일에는 본당이 이날 해오던 척사대회 대신 신자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며 주님 부활과 130년 기쁨을 나눈다. 아울러 5월 야외 마당에서 성모의 밤 행사를 열어 성모 신심을 되새기고, 이어 구역 및 단체별로 나눠 서울순례길 도보성지 순례도 펼칠 계획이다.비대면 방식을 통한 미사와 성경 공부는 이미 진행 중이다. 본당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미사 참석이 어려운 신자들을 위해 주일 교중 미사를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있으며, 일부 전례 봉사자들은 본당 수녀와 함께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성경 공부를 하며 신심을 다지고 있다. 본당은 주일학교 학생들이 가정에서도 교리공부를 익힐 수 있도록 교리 교재를 제시하고,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진행할 수 있는 첫 영성체 교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외짝 교우 신자들을 위한 교리교육도 구상 중이다.오는 10월에는 본당과 서소문 순교자들에 관한 역사를 익히고자 외부 강사를 초빙해 ‘130주년 특강’도 개최할 예정이다. 130주년 준비위원회는 130년 본당사 자료집을 ‘e-book’ 형태로 발간해 본당 누리방에 게재할 예정이다. 서소문밖 네거리 순교성지 기념성당이기도 한 본당은 매주 금요일 성지에서 미사를 봉헌해오고 있으며, 신자들도 성지 봉사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본당의 날인 11월 7일에는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 미사를 통해 전 신자가 기쁜 한 해를 보낸 의미를 드높인다는 계획이다.1891년 설립된 중림동약현본당은 조선교구 10번째, 서울대교구에선 주교좌 명동대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설정된 본당으로, 관할 구역 내에 한국 최대 성지인 서소문 밖 순교성지를 두고 한국 성인과 순교자들의 신심을 전하며 공동체를 함께 일궈오고 있다.김병훈 주임 신부는 “저희 본당은 순교자들의 깊은 신심을 본받아 열심한 교우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자, 순교자들의 신앙이 계속 다시금 부활하고 꽃피우는 곳”이라며 “코로나19 상황의 어려움 속에도 주님과 본당을 사랑하는 교우들의 마음이 더욱 드높여지는 해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21.03.09

“분노가 일면 주님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가세요”[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12. 분노감정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안녕하세요. 한 주간을 지내면서 ‘온유하려면 먼저 저 자신에게 온유하라’는 성인의 말씀을 자주 떠올려보곤 했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매일 하는 성찰의 중심에는 많은 경우 내가 아닌 남에게 향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도자인 저는 함께 사는 자매를, 부모는 자녀를, 부부간에는 배우자를 향한 기대와 요구로 불협화음이 일어나면 상처를 받게 되는데요. 그러면 내가 상대에게 잘못한 행동에 대한 죄책감이나, 상대가 나에게 준 상처로 인해 분노가 생깁니다. 그런데 정작 내가 나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잊고 살았네요.인간에겐 부족하다 싶으면 욕구가 생기지요.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목마르면 물을 찾게 되고요. 그런데 마음이 허기질 때는 타인을 향한 불평과 비난을 하게 돼요. 그런데요. 이상하게도 내가 잘못해도 남이 문제를 일으켜도 똑같이 돌고 돌아서 오는 것은 무엇보다 저 자신에 대한 분노입니다. 남 탓을 하는 그 순간에도 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습니다. 온유의 친구가 겸손이라고 하셨지요? 아마도 온유의 적은 ‘분노’가 아닐까요? 온유와 친절이 무너지는 자리에는 늘 분노란 놈이 화약고를 들고 찾아옵니다. 물론 머리로는 한발 물러서 인내하기를, 멋지게 참아내기를 상상하지만 치밀어오는 분노는 막을 도리가 없답니다. 온유의 적, 분노감정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요? 마음속 분노를 잘 다스리며 살고 싶은 김 수녀 드립니다.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누구에게나 ‘분노’란 감정이 있지요. 그런데 한번 화를 내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져요.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밤이 되면 그 분노가 미움으로 변하기도 해요. 내 마음에 화가 들어와 터를 잡으면 마땅히 내쫓을 방법도 없고요. 화를 내면 자신이 왜 화내는 줄도 모르고 계속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와 회오리바람 속에 휩싸이게 돼요. 게다가 자신이 화를 내는 정당한 이유를 자꾸 찾게 됩니다. 그렇게 합리화시키는 것에 머리를 쓰다 보니 스트레스가 올라오겠지요. 그러느니 차라리 화를 내지 않는 방법을 배우면 좋지 않을까요?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아무리 정당한 분노라도, 아주 작고 사소한 화라도 일단 마음 안에 들어오면 처음에 작은 씨앗처럼 떨어지지만 결국 큰 나무가 되어 물리치기 어렵다고 해요. 그러니 화가 들어오면 가능한 한 빨리 몰아내는 것이 좋아요. 분노는 마치 뱀과 같아서 머리만 들이밀면 온몸이 그 틈으로 들어가니까요.그렇다고 화가 날 때 화를 억지로 누르려고는 하지 마세요. 과격하고 거칠게 자신을 다루려 하지 마세요. 누군가 “시끄러워요. 조용히 하세요”라고 고함치면 그 주변을 더 소란하게 만들잖아요. 마찬가지로 내 안에서 화가 올라오는데 ‘시끄러워! 잠자코 있어’라고 하면 내 안의 좋은 감정들까지도 혼란스럽게 해요. 마음이 불안한 상태에서 분노를 통제하긴 더 어렵지요.모든 덕이 그러하듯 자신의 결핍에 집중하기보다 그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쪽으로 마음을 주면 어떨까요? “하지 말자!”가 아닌 “하자!”라는 마음이요. 그런데 화가 나는 순간에는 조절하기 어려워요. 그러니 평온한 보통의 날에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요. 기분 좋은 날에 온유와 친절의 덕을 쌓았으면 해요. 그래야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올라오는 분노를 조금은 평온한 마음으로 조절할 수 있지 않을까요? 따뜻하고 부드럽게 말하거나 웃으면서 친절하게 행동해요.그런데 어떤 사람은 집 밖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천사처럼 행동하면서 집안 식구들은 모질게 대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실 그의 마음에는 온유함이 없다고 할 수 있어요. 어쩌다 한번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것은 진짜 친절함이 아니니까요. 늘 만나는 가족과 친구에게 한결같이 온유하고 친절할 때 비로소 사랑의 꽃이며 덕 중의 뛰어난 덕행인 온유함을 지녔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평소에 나 자신과 가족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있다면 어느 순간 불쑥 찾아온 분노감정을 손님처럼 잘 맞이하고 보낼 수 있을 겁니다.마지막으로 화가 나고 마음이 흔들릴 때 조용히 눈을 감고 성경 장면(마르 4:38-39)을 떠올려 봐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초대해요. 그런데 호수 한복판에서 거센 돌풍이 일자 제자들은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며 호들갑을 떨자, 주님께서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하고 한마디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하고 평화롭게 됩니다.우리도 마음속에서 돌풍 같은 분노가 일 때, 주님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가요. 그리고 주님께 청해요. 그분께서 잠잠해지라 명하시면 마음속 분노는 어느새 사라지고 깊은 평화가 찾아옵니다.예수님으로 사세요! Live Jesus!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cpbc2022.09.28
![[시사진단] 사소한 먼지들의 위대한 사랑(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cpbc.co.kr/CMS/newspaper/2022/07/rc/827300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사소한 먼지들의 위대한 사랑(최영일, 빈첸시오,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 누구나 자신에 대한 두 가지의 극단적인 자기평가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러면서 성장하고, 좌절하고, 인생을 살만한 것으로 느끼기도 하고, 세상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노력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두 극단 중 상한선은 결국 내가 우주의 중심 아닌가 하는 ‘자뻑’이다. 자뻑이라는 표현은 나쁜 의미로가 아니다. 사전에 따르면 (속되게) 자기가 잘났다고 믿거나 자신에게 반하여 푹 빠져 있는 일이라고 한다. 자기애인 나르시시즘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자의식이 없다면 험한 세상 살아나가기가 쉽지 않다. 나는 나 하나밖에 없다. 나는 유일하고 고유한 존재다.이것은 사실이다. 가을방학이라는 뮤지션의 노래 ‘가끔 미치도록 너를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라는 예쁜 곡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그렇지만 가끔 미치도록 너를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너 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마음 둘 곳이라고는 없는 이 세상 속에’누군가 나를 대체 불가한 존재라고 이야기해줄 때 그 기쁨은 얼마나 크겠는가.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이 있지만,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각각 한 분뿐이고, 나의 딸과 아들은 오직 그 아이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자존감이 자부심이 되고, 자기애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자뻑’에는 부작용도 있으니 그것은 교만이라는 함정이다. 나뿐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가 유일하다는 것도 인정할 때 성숙한 자존감, 자기애가 된다.그리고 극단의 다른 쪽, 하한선도 살펴보자. 그것은 나란 존재가 하찮고 보잘것없고 세상이 알아주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 별 볼 일 없고 쓸모없는 존재라는 우울감이다. 우리는 뜻밖에 이러한 무력감에 왕왕 빠질 때가 있다.우리가 발 딛고 사는 지구의 역사를 과학자들이 말할 때 46억 년 정도라고 하고, 우주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있지만 대체로 138억 년 정도로 추정한다. 우리 인간의 삶을 길게 잡아 백 세라고 하는데 천 년, 만 년도 넘는 억 년의 단위라. 우리의 생은 얼마나 짧은가, 얼마나 찰나에 불과한가. 우리 존재의 초라함에 대해서는 성경 창세기에 참으로 허무한 대목이 나온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우리는 하느님이 흙으로 빚은 유한한 존재로 한순간의 시공간에 존재하고 곧 흙으로 돌아가는 먼지에 불과한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구약 코헬렛 1장에서 예루살렘의 임금은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는가.“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 1,2)그래서 우리 스스로에 대한 두 극단의 평가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 우리는 우주의 분진에 불과한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지만 놀라운 능력을 갖춘 먼지이다. 아름다운 생각, 훌륭한 말, 올바른 행동을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먼지이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능력을 갖춘 놀라운 먼지인 것이다. 우리 삶의 기적, 우리 인생의 가치는 하찮은 먼지가 위대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에 있다. 그러니 먼지의 삶을 즐기고, 찰나를 사랑으로 채우고, 무한을 지향하라. 무한한 우주도 먼지의 입자들에 의해 구성되었다. 평화신문2022.07.06
![[안희곤의 불편한 이야기] 연옥 영혼만 영혼인가](//cpbc.co.kr/CMS/newspaper/2022/08/rc/828972_1.1_titleImage_1.jpg)
[안희곤의 불편한 이야기] 연옥 영혼만 영혼인가안희곤 하상 바오로(사월의책 대표) 며칠 전 아내가 저녁 식사를 앞에 놓고 한 가지 얘기할 게 있다고 했다. 그분께서 차분한 목소리로 할 얘기가 있다고 하면 덜컥 겁부터 나는 건 나뿐인가. ‘내가 또 뭘 잘못한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행히 아내가 꺼낸 얘기는 무서운 게 아니고 오히려 반가운 제안이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식후 기도를 늘 잊곤 했는데 이제는 빼먹지 말자는 얘기였다.성당 소모임에서 함께 식사하는데 신부님이 그랬단다. 식후 기도 마지막에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의 안식’을 비는 부분이 있는데,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이 기도가 끝나야만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하시더란다. 산 사람들의 식사가 끝나기만 기다렸는데 기도를 안 하고 일어나버리면 얼마나 허탈하겠느냐는 우스갯소리에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그렇게라도 기도를 권하는 신부님 뜻이 짚였기에 별로 토를 달지는 않았다. 교회가 이렇듯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를 늘 강조하는 것은, 우리들 ‘거룩하고 보편된 공동체’에 속한 이들이 ‘모든 성인의 통공’과 죽은 이들과의 통교에 의해 서로 영적인 도움을 주고받음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사실 연옥은 성경에도 전혀 언급이 없는, 후대에 생긴 교리로 알고 있다. 중세 후기에 자본주의 출현과 경제 발전으로 사회가 빠르게 세속화되면서 교회도 이에 대응할 필요가 생겼고, 돈과 욕망을 좇는 신자들에 대해 죄를 정화할 기회로 연옥이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15, 16세기에 소집된 공의회에서 연옥이 교리로 채택되었고, 이렇게 탄생한 연옥은 자본주의 발전에도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한다.(자크 르 고프, 「연옥의 탄생」)그러나 나는 죄를 정화하는 기회로서 연옥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신자들의 영적인 연결을 믿고 그것을 통해 유한한 우리들의 삶을 죽음 너머까지 확장하는 교리로서의 연옥이 훨씬 의미 있다고 본다. 말하자면 통공(通功)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산 이와 죽은 이의 ‘연대’ 말이다. 그 어떤 인간도 홀로 태어날 수 없거니와, 죽은 이들이 첩첩이 쌓은 기억들 위에서 우리의 문화는 이루어졌고, 나는 다시 나의 이웃과 후대에게 내가 겪은 삶의 기쁨과 고통과 희망을 남길 것이다. 그것은 덧없고 유한한 우리 삶이 영원에 도달하는 방식이다.우리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그것이 반드시 신앙과 영적인 차원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리라.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이웃과 친구들이 비슷한 경험, 비슷한 환경에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그런데 왜 우리는 주로 죽은 이들과의 통공을 빌고 교회의 추상적 일치에만 관심을 가질까. 사제의 강론에서나 성당 모임에서나 우리 사회의 당면 문제에 관해 관심과 연대를 요청하는 이야기를 듣는 일은 매우 드물다.아마도 불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영혼과 저 세상에 관한 이야기는 안전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말할 수 있지만, 현실의 ‘통공’과 ‘연대’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부담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최근 우리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장애인들의 지하철 시위나 대우조선 하청노조의 파업에 대해서도 교회 안에서는 작은 관심밖에 없어 보인다. 이런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신자들의 입장도 일반인처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데, 가장 현세적이지만 현세적이지 않은 척 고결한 신자들 앞에서 사제들도 입을 다물고 비겁한 쪽을 택한 듯하다. 사회사목이나 노동사목의 역할이 교회에 주어져 있고 그 역할을 다하려 애쓰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한국 교회의 관심은 주로 영혼의 평화에만 기울어져 있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 이곳의 통공을 모르는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통공을 이룰까. 교회는 좀 더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 cpbc2022.08.03

‘한국 수필 문학의 거장’ 피천득, 인간적인 예수님께 반하다[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5) 피천득 프란치스코 (상) 피천득은 자신의 좋은 점은 모두 어머니에게 물려 받았고, 자신이 결점이 많은 것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그렇다고 말할 정도로 어머니를 무척 사랑했다. 사진은 어머니와 소년 피천득. 고등학교 국어책에 실린 수필 ‘인연’으로 기억하는 피천득(皮千得, 프란치스코, 1910~2007)은 평생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산 문인이었다. 키가 1m 50㎝ 정도이고 몸무게는 40㎏이 조금 넘는 작은 체구였지만 영혼은 한없이 맑았다. 어떤 사람은 “암흑이 지배하는 시대에 선생님의 수필을 읽는 것은 밤하늘에서 별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피천득은 평생 세 종류의 책을 지었다. 「인연」이라는 수필집 한 권, 「생명」이라는 시집 한 권, 「셰익스피어 소네트」라는 번역시집 한 권이다. 시와 수필은 각각 100편 내외만 창작한 지독한 과작(寡作)의 작가이다. 국어책 속에서 중학교 때, 국어책에는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란 수필과 나다니엘 호손이 지은 「큰 바위 얼굴」 그리고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들어있었다. 고등학교 국어책에도 수필 ‘인연’을 비롯해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실려있었다. 모두 피천득이 짓고 번역한 글이다. 지금도 그 글의 앞부분은 영화 예고편처럼 내 가슴 속을 흐른다. “나는 우선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지금 돈으로 한 오만 원쯤 생기기도 하는 생활을 사랑한다. 그러면은 그 돈으로 청량리 위생 병원에 낡은 몸을 입원시키고 싶다.”(나의 사랑하는 생활) “어느 날, 오후 해 질 무렵, 어머니와 어린 아들은 자기네 오막살이집 문 앞에 앉아서 큰 바위 얼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큰 바위 얼굴) “그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이 대단히 늦었고, 더구나 아멜 선생님이 물어보시겠다고 한 분사법에 대하여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꾸지람을 들을 것이 겁이 났었습니다.”(마지막 수업)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 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학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었다.”(인연)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가지 않은 길) 이렇듯 피천득은 국어책을 통해 아름다운 글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때 배양된 정서가 아직도 내 가슴 속에서 따뜻하게 숨 쉬고 있다. 아흔 넘어 짜장면을 맛본 이유 피천득의 책상 위에는 늘 엄마 사진이 놓여있었다. 흑백 사진 속의 엄마는 언제나 젊고 아름다웠다.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열 살에는 어머니를 잃었다. 피천득은 엄마가 ‘나의 엄마’였다는 것은 타고난 영광이었다고 했다. 자신에게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한테서 받은 것이고, 자신이 많은 결점을 지닌 것은 엄마를 일찍이 잃어버려 엄마의 사랑 속에서 자라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자신이 새 한 마리 죽이지 않고 살아온 것은 엄마의 자애로운 마음 때문이며, 햇빛 속에 웃는 자신의 미소는 엄마한테서 배운 웃음이라고 했다. 그런 엄마는 피천득의 모든 글 속에 살아 있다. 피천득은 무척이나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이었다. 몇 가지 일화가 이를 말해준다.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성당 고해소로 들어갔다. 죄를 고해야 하는데 판공성사 표만 달랑 놓고 나왔다. 피천득을 모르는 젊은 신부가 고해실에서 뛰쳐나왔다. “할아버지 성사 표만 내고 가면 어떻게 하세요?”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나는 죄가 없는데 어떡하나요?”라고 대답했다. 이에 젊은 신부가 야단을 쳤다. “사람에게는 죄를 짓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하느님께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랬더니 피천득은 이내 자신이 매우 교만했고, 죄를 성찰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또 이런 일이 있었다. 지인 한 사람이 피천득을 모시고 서울대 구내 중국 음식점에 들어갔다. 코스 요리를 주문했는데 순서에 따라 짜장면이 나왔다. 피천득은 짜장면을 보더니 잠시 주저하다가 젓가락을 댔다. 그러고는 “나 짜장면 처음 먹어 보는 거야”라고 했다. 그때가 95세였다. 지인은 그 연세까지 짜장면을 들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까닭을 물었더니 “모양이 좀 혐오스러워서 …” 라고 말을 흐렸다. 이런 일도 있었다. 여름 방학에 제자들이 가르침을 받기 위해 댁을 찾아갔다. 골목이 많은 동네라 문패를 보고 찾아야 했다. 아무리 다녀도 문패가 보이지 않았다. 날은 덥고 다리는 아프고 학생들은 짜증 났다. 그런데 어느 집 앞 나무 조각에 희미하게 ‘피천득’이라 적힌 문패가 보였다. 붓글씨로 쓴 글자였는데 오랜 세월로 많이 지워져 간신히 읽을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문패 찾느라 고생했다고 하자, “나는 번쩍번쩍 빛나는 돌에 이름 석 자를 기록할 만큼 유명하지도 위대하지도 않으니까”라고 했다. 이런 일화도 있다. 신년 세배 때, 제자가 세배하면 스승은 책상 위에 나란히 세워 놓은 크리스마스카드 중에서 하나를 골라 주었다. 그해에 받은 카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모았다가 주는 것이었다. 또는 예쁜 양말이나 미제 초콜릿(당시는 귀한 식품)을 주기도 해서 받는 사람은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또한, 길을 걸을 때도 늘 가장자리로 걸었고, 자리를 잡아도 늘 낮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 모든 일화가 피천득이 얼마나 솔직하고, 순수하며 겸손한지를 말해준다. 만년에 가톨릭 신자가 되다 피천득의 호는 금아(琴兒)이다. 거문고 ‘금(琴)’, 아이 ‘아(兒)’이다. ‘금아’는 춘원 이광수가 지어주었다. 금아의 엄마는 거문고를 잘 탔다. 춘원이 그 거문고와 아이를 결합해 ‘금아’라 지어 준 것이다. 피천득은 ‘금아’를 무척 사랑했다. 피천득은 자기 이름에 대해 ‘피가지변(皮哥之辯)’이란 글을 통해 재밌게 얘기했다. 옛날 조상이 제비를 뽑았는데 皮씨가 나왔다. 皮가 좋지만 더 좋은 성(姓)이었으면 하고 면사무소 직원에게 부탁해 다시 뽑았다. 이번에는 毛씨가 나왔다. 毛씨도 좋지만 毛(털)는 皮(피부)에 의존한다고 생각해 皮씨를 택했다고 한다. 피천득은 자신의 이름인 ‘천득(千得)’이 점잖은 것 같지 않아 다른 이름으로 바꾸려고 했다. 그러나 엄마가 부르던 이름을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다. 원래 이름은 하늘에서 얻었다고 해서 ‘天得(천득)’인데, 호적계의 실수로 ‘天’이 ‘千’으로 바뀌었다. 이름을 풀이하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평생 부자로 살 팔자였는데 이름의 획수가 하나 적어 가난하게 산다고 했다. 피천득은 어려서부터 유교식 교육을 받았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는데, ‘신동(神童)’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이십 대 중반에는 금강산 장안사에서 상월 스님에게 유마경과 법화경을 1년간 공부했다. 어떤 이는 피천득이 금강산에 계속 머물러 스님이 되었다면 고승(高僧)이 되었을 것이라 했다. 피천득은 ‘잠’이란 글에서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곧잘 잠을 잔다. 찬미 소리에 잠이 깨면 천당 갔다 온 것 같다”라고 했다. 이를 보면 개신교 신앙도 가졌던 것 같다. 예수회 김태관 신부는 피천득이 77세였을 때, 서강대학교 사제관에서 세례성사를 거행했다. 세례명은 ‘프란치스코’였다. 피천득은 자신이 존경했던 중세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닮고자 ‘프란치스코’를 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세례명을 ‘프란치스코’로 정한 다른 이유도 전해진다. 수도회 ‘회칙’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오래전에 제자 한 사람이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로 시작하는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가 적힌 족자를 선물해 그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피천득은 교적을 서울 반포성당에 두었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영어 성경을 가죽 표지가 다 닳을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샘터’ 지령 400호를 기념하는 대담에서 김재순이 피천득에게 물었다. “언젠가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나는 죽을 때까지 종교를 못 가질 것 같아요’라고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선 만년에 가톨릭 신자가 되셨지요. 과연, 이 세상에 신이 있음을 믿으시는지요?” 금아가 대답했다. “확언은 할 수 없지만 신의 높은 경지나 정신은 가끔 느끼지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웅장함을 볼 때도 그런 걸 느낄 수 있고 음악 중에 최상의 음악, 이를테면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과 같은 음악을 들을 때도 신의 존재를 느낍니다.” 그러고는 가톨릭에 입문하게 된 사연도 이야기했다. “얼마 전 작고한 김태관 신부님이 제가 쓴 글 한 편을 보고 특별히 문답도 없이 저한테 세례를 줬어요. 그때 신부님이 읽었던 제 글이 ‘권력에 굴복하지 말고, 불쌍한 사람 저버리지 않게 해주소서. 일상생활에 있어서 대단치 않은 것에 근심 걱정하지 않게 해주소서’ 이런 내용이었답니다.” 피천득은 예수님에 대해서도 말했다. “예수님의 친구는 어부같이 당시 가난하고 천대받던 이들, 사회에서 소외받는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을 오직 사랑으로 대했지요. 얼마나 인간적인 분입니까? 저는 신적인 면보다도 예수님의 그런 인간적인 면을 사랑합니다.” <계속> cpbc2023.01.31
![[금주의 성인]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사제 (5월 20일)](//cpbc.co.kr/CMS/newspaper/2022/05/rc/823926_1.2_titleImage_1.jpg)
[금주의 성인]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사제 (5월 20일) 이탈리아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학자로 설교가이며 개혁가, 예수 성명 신심의 전파자입니다. 비오 2세 교황이 제2의 바오로 사도 라 부를 정도로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선교 활동에 헌신했습니다. 성인은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친척 손에서 자랐습니다. 청소년기 시에나에서 인문 과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대학에서 교회법을 배운 그는 성경과 신학에 심취했고, 신심의 실천에도 열의를 보였습니다. 1400년에는 약 4개월 동안 시에나의 산타 마리아 델라 스칼라 병원에서 흑사병 환자를 돌보다 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1402년 프란치스코회 입회하여 1404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세지아노에서 설교를 시작합니다. 그토록 원하는 사제가 되어 사람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매우 듣기 거북한 데다 힘이 없었다고 합니다. 성인은 성모님께 설교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습니다. 어느 날 성인은 성모님께 기도하는 동안 하늘에서 신비로운 불길이 내려와 자신의 목을 훑고 지나가는 것을 경험했고, 성인은 호소력 짙고 힘 있는 목소리를 갖게 됐다고 합니다. 그는 1417년 밀라노에서 ‘대중 설교가’로 활동을 시작했고, 걸어서 중부와 북부 이탈리아 전역을 순회하면서 설교에 힘을 쏟았습니다. 설교를 통해 참회와 사랑의 실천을 강조했고, 도박, 고리대금업, 미신 등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한편 정치적 권력 투쟁을 비판했습니다. 성인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모범으로 프란치스코회의 회칙을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당시 사람들의 정신적ㆍ영성적인 처지와 부족한 면들도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특히 성모 신심이 깊은 성인이 성모님에 관해 이야기할 때면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마치 천사처럼 빛을 발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성인의 설교를 듣기 위해 늘 많은 군중이 몰렸습니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많은 개종자와 냉담자들을 교회로 이끌었으며, 이탈리아의 도덕적인 생활 개선에 기여했습니다. 성인은 강론할 때마다 IHS(Iesus Hominum Salvator, 라틴어로 인류의 구원자 예수라는 뜻)라 쓰인 팻말을 세워놓고 ‘구세주 예수’를 존경하며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성인은 1444년 고향에서 설교를 마친 후, 고령의 나이와 시약한 몸에도 나폴리 왕국을 복음화하기 위해 출발했으나 열병에 걸려 5월 20일 아퀼라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선종, 그곳에 묻혔습니다. 그의 무덤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나자 에우제니오 4세 교황은 시성 조사를 명하였고, 1450년 5월 24일 니콜라오 5세 교황에 의해 시성됩니다. 성인은 광고업자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cpbc2022.05.11

성경으로 해석한 신앙의 신비와 그리스도인 생활 규범[미사의 모든 것] (20)강론 강론은 가톨릭 성직자가 미사 전례에서 신앙의 신비와 신앙생활의 규범을 하느님 말씀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것을 뜻한다. 성경의 메시지를 현실화함으로써 신자들이 자신의 삶 안에서 그 뜻을 되새기는 것이 강론의 본질이다. 【CNS 자료 사진】 나처음: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빠져나오면 신부님 말씀이 기억나지 않는데 꼭 강론이 필요한가요?조언해: 나도 엄마가 아침밥을 뭘 차려주셨는지 기억나지 않아. 하지만 엄마의 정성스러운 아침 밥상이 하루를 지탱하게 하는 일용할 양식이고 내 생명의 자양분임을 알아. 신부님 강론도 마찬가지야. 우리를 신앙인으로서 삶을 지탱하게 하는 영적 양식이야. 그래서 강론은 꼭 필요한 거야.라파엘 신부: 언해가 좋은 비유로 강론을 설명해 주었구나. 신자들은 강론을 듣기 어렵고 사목자들은 강론을 하는 게 어렵지. 강론은 말씀 전례의 한 부분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찌우는 데 반드시 필요하단다. 신자들이 강론을 통해 하느님을 강렬하게 체험하기 때문에 강론은 중요하단다. 그래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강론은 거행되는 신비를 이해하도록 이끌고 사명으로 초대하는 것이어야 하며, 회중에게 신앙 고백과 보편 지향 기도, 그리고 성찬 전례를 준비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고유한 직무에 의하여 강론을 맡은 이들은 참으로 이 임무를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셨지. (「주님의 말씀」 59항)나처음: 종종 신부님들께서 강론 때 정치나 사회 현안에 관해 과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봐요.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성직자는 종교 문제에만 관여해야 하는 게 바람직한 게 아닌가요.조언해: 사실 저희 부모님도 신부님들이 밖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좋지만 미사 강론 중에는 하지 않았으면 하셔요. 일부 신자들은 신부님의 강론이 복음 말씀과 상관없이 정치ㆍ사회 문제에 치우쳐 있다 해서 미사 참여를 하지 않거나, 전혀 그런 말씀을 하지 않는 신부님들의 미사에 찾아가요. 라파엘 신부: 강론은 하느님 말씀을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의 말로 다시 전해 주는 역할을 하는 거란다. 그렇다고 하느님 말씀을 단순히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바꾸어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성경의 메시지를 현실화함으로써 신자들이 자신의 지금 삶 안에서 그 뜻을 되새기는 것이 강론의 본질이지. 하느님 말씀이 우리 삶 안에서 살아있는 말씀이 되려면 자연히 우리 삶 전체와 관계되어야 하지 않겠니. 신앙생활뿐 아니라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친 인간의 삶에 대해 교회가 말해야 하는 것이지. 성직자는 신앙생활에 관해, 그 종교에 관해 말하라는 요구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기도의 청만 들어주고 복만 내려주는 분으로 한정시키는 것과 다름이 없어. 물론, 사제가 강론 때 지나치게 자기 취향에 따라 정치 발언을 하거나 사회 문제를 다룬다면 결코 하느님을 찬미하는 행위라 할 수 없겠지. 아울러 그날 미사의 말씀 전례 독서 내용만 해설하는 정도로 그치는 강론 역시 신자들로 하여금 피조물과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잊게 만든다는 점에서 옳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있지. 강론의 대상을 복음 해설에만 국한할 수 없고, 인간 삶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신자들이 이해하면 좀더 기쁜 마음으로 사제의 강론을 들을 수 있을 거야. 나처음: 강론은 언제부터 미사에 도입됐나요?라파엘 신부: 강론은 헬라어 ‘ομιλια’(호밀리아)를 우리말로 옮긴 말로 아버지가 자녀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또는 동료끼리 대화 형식으로 하는 이야기를 뜻한단다. 전례에서 ‘강론’은 신앙의 신비와 신앙생활의 규범을 하느님 말씀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것을 뜻해. 그래서 전례와 상관없이 회중에게 교리나 신앙을 주제로 말하는 ‘설교(praedicatio)’와 구분해 사용하고 있지. 강론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당에서 율법서와 예언서를 봉독한 후 회당장이나 미리 지정한 성인 남자가 그 말씀을 풀이해 준 예식을 그대로 미사에 받아들인 것이야.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도 나자렛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지.(루카 4,16-21 참조) 또 초대 교회 사도들도 복음을 선포하면서 강론을 중요시하였단다.(사도 13,15-41 참조)미사 강론에 관해 증언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유스티노 성인의 「호교론」이야. 유스티노 성인은 이 책에서 “독서가 끝난 후에 주례자는 이와 같은 좋은 모범을 본받으라고 가르치고 교훈하기 위해 강론을 한다”고 설명하였지. 하느님 말씀을 읽고 이에 대해 해석하면서 현실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제시하는 방식의 이러한 강론은 특히 교부들에 의해 교리교육의 한 방편으로 발전하였단다. 암브로시오와 아우구스티노 성인,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와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 같은 교부들의 많은 글이 사실 강론 때 했던 것이지. 특히 성 레오 대교황의 「성탄 강론」을 읽으면 미사 강론이 차지하고 있는 역할과 자리를 잘 알 수 있어요.조언해: 중세 때에는 강론의 비중이 크지 않았다고 들었어요.라파엘 신부: 중세로 접어들면서 신자들의 전례 생활이 아주 빨리 쇠퇴했단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반인들이 전례 때 사용하는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지. 4세기 초까지만 해도 로마 교회 전례 공용어는 당시 국제어로 통용하던 헬라어였지. 그러나 4세기에 이르러서는 많은 사람이 더는 헬라어를 사용하지 않아 성 다마소 1세 교황(재위 306~384년)께서 로마 교회에 속한 신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인 라틴어를 전례 공용어로 채택했지.선교사들의 활동으로 그리스도교가 서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많은 이민족이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이들 대부분은 라틴어를 이해하지 못했지. 그럼에도 불구에도 교회는 미사를 비롯한 전례 때 라틴어 외에는 다른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어. 사정이 이러니 강론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봉독한 하느님 말씀을 신자들에게 그 나라 말로 번역해 주는 것이 거의 전부였지. 이렇게 됨으로써 본래 의미의 강론은 미사 안에서 거의 무시됐고, 결국 신자들의 무관심으로 강론은 미사 안에서 비본질적인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단다. 강론의 쇠퇴는 말씀 전례의 쇠퇴를 불러왔고, 신자들은 하느님 말씀보다 성체께 대한 신심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돼 말씀의 식탁과 성찬의 식탁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고 말았지. 이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전례 개혁을 단행해 미사를 비롯한 모든 전례에서 각 민족의 말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단다. 이후 미사 중에도 말씀 전례가 활성화되도록 개혁해 강론의 중요성이 다시 두드러지게되었지. 나처음: 좋은 강론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파엘 신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구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강론자가 강론을 할 때 “친밀함과 따스한 어조, 가식 없는 말씨, 기쁨에 넘치는 태도로 해야 한다”(「복음의 기쁨」 140항 참조)고 조언하셨지. 강론은 성찬 예식에 앞서 하느님과 당신 백성이 나누는 대화에서 최고의 순간으로서 모든 교리교육을 뛰어넘는 것이란다. 그래서 강론자는 먼저 자기 공동체의 마음을 잘 알아야 해. 그래야 그 공동체가 하느님께 생생하고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한때 사랑으로 넘쳤던 그 대화가 어디에서 끊어지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지.사제가 좋은 강론을 하려면 먼저 자신이 하느님 말씀으로 깊이 감화되어 그 말씀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사목자가 되어야 해.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좋은 강론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셨단다. 먼저 주제가 통일되고 문장이 명료하고 일관되어서 사람들이 강론자의 말을 쉽게 따라가고 그 논리를 파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둘째,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 마라’고 지적하기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제시해 언제나 신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미래 지향적이어야 한다. 한 마디로 좋은 강론은 신자들에게 주님의 기쁨을 전하는 강론이지. 너무 어려워. 강론은….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12.02

“주님께 의지하며 자신에게 먼저 온유하세요”[김용은 수녀가 묻고 살레시오 성인이 답하다] 11. 온유의 덕을 살려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닮은 참된 겸손과 온유의 덕이 필요한 때다. 【CNS 자료 사진】 사랑하올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께안녕하세요.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하면서 동시에 쓸쓸해지는 가을입니다. 자칫 우울해질 수도 있지만, 적정 온도의 우울감은 오히려 고요함을 유지하게 해주나 봅니다. 마음의 양식을 쌓기에 참 좋은 9월에 받는 성인의 편지는 영혼단련을 위해 뭔가 막 해보고 싶어집니다. 성인께서 지난 편지에 사랑을 하려면 애덕을 실천하라 하셨어요.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자신에게 부족한 내적인 작은 덕들(little virtues) 중 하나만 구체적으로 시작해보라고요. 사실 제가 성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는 저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덕을 성인께서 지니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격도 급하고 표현도 직설적이라서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이 참 부럽습니다. 물론 어떤 이는 타고나게 부드러운 성격과 친절한 태도를 지녔지요. 성인께서는 타고난 것이 아닌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서 온유의 꽃을 피우셨습니다. 그렇기에 저 자신에게도 희망을 봅니다. 온유의 덕을 쌓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력하다 보면 정말로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온유의 덕을 살고 싶은 김 수녀 드립니다.사랑하는 김 수녀와 독자들에게점점 짧아져 가는 그래서 더 보석 같은 가을, 마음의 일을 하면서 영혼의 열매를 맺기를 바랍니다. 온유의 덕을 쌓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무엇보다 김 수녀 자신에게 먼저 온유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어떻게요? 자신이 부족하고 안 되는 것이 있을 때 자책하고 비난하지 마세요. 그러니깐 자신을 혹독하게 다루지 않았으면 해요. 자칫 가파르고 높은 오르막길에서 열심히 오르다가 용기를 잃고 포기할 수도 있어요. 자신의 불완전함에 너그러워지세요.때론 잘해야 한다는 어떤 당위성으로 자신의 잘못에 화를 내고 또 이 화낸 것에 대하여 짜증 내고 짜증 낸 것에 대해 또 짜증을 낼 때가 있어요. 마치 평정심을 잃은 재판관처럼 재판할 때 죄에 대한 신중한 식별이 아닌 분노감정에 휩싸여 자신을 과시하는 잘못된 판결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자녀가 잘못할 때 화를 내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부드럽고 다정하게 하는 훈육이 훨씬 더 유익하지요.자신에게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격정에 사로잡히기보다 자신에게 연민을 가지고 부드럽게 조용히 타이르세요. 화를 내고 요란스럽게 하는 반성보다는 더 깊은 성찰을 이뤄낸답니다. 가끔은 괴팍하게 굴거나 급한 성격에 화를 낼 수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친절하게 말해요. “내 불쌍한 마음아, 그렇게 결심을 했는데도 피할 수 없었구나. 그래도 용기를 내자. 다시 일어나서 이 구렁에서 빠져나가자. 주님께서 도와주실 거야.”두 번째는 온유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을 믿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결심을 해요. 필요한 덕을 간절히 구하면서요. 무엇보다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계심을 믿어요. 그런데도 결심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고 마음이 현란할 때는 성경 말씀을 소리 내어 외쳐보세요. “내 영혼아, 어찌하여 녹아내리며 내 안에서 신음하느냐? 하느님께 바라라. 나 그분을 다시 찬송하게 되리라, 나의 구원, 나의 하느님을.”(시편 42,6)하느님 앞에 나 자신을 낮추면 나의 불완전함이 놀랍고 새로운 것도 아니에요. 설사 나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요. 어쩌면 덕행을 쌓는 여정에서 불완전함은 좋은 징조일 수도 있어요. 반면에 완전한 것 같은 상태를 경계할 필요도 있고요. 태어나면서부터 부드러운 성격을 지녀 많은 이들로부터 칭찬을 받는다고 해서 완덕에 이른 것은 아닐 테니까요. 그러니 조용히 자신의 마음에 용기를 북돋아 주세요. 그리고 결심한 덕행의 길로 다시 발을 내딛어요.세 번째로 온유하려면 겸손을 친구로 삼으세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겸손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삶을, 온유는 이웃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게 해요. 참된 겸손과 온유의 덕을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시를 당해도 아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아요. 특히 그 어떤 일에도 분노를 터뜨리지 않았으면 해요.누군가의 잘못을 단호하게 바로잡아야 할 때에도 온유하고 차분하게 대하세요. 성난 코끼리를 달래는 데는 어린 양보다 더 좋은 것이 없어요. 총알에 의한 관통을 막는 데에는 방탄복보다 더 나은 것이 없고요. 아무리 이치에 맞는 바른말이라도 화를 내어 말을 하면 그 말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와요.임금이 평화로운 마음으로 나라를 순방하면 백성은 이를 영광으로 알고 기뻐하지만 무장한 군대들을 이끌고 돌아다니면 비록 그 목적이 안녕과 질서를 위한 것이라도 백성은 달가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군대로 말미암은 폐해까지 겪게 되니까요.예수님으로 사세요! Live Jesus!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씀 김용은(제오르지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cpbc2022.09.21

“혼인과 가정의 아름다움을 증언하십시오”제10차 세계가정대회 폐막… 교황, 새로운 세대에 성가정의 기쁨과 아름다움 선포하길 강조 로마에서 개최된 제10차 세계가정대회가 6월 26일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바치는 주일 삼종기도로 막을 내렸다. 이번 세계가정대회에는 120개국에서 약 2000명의 대표가 참가해 ‘가정의 사랑: 성덕의 소명이자 길’이라는 주제로 그리스도인 가정의 소명을 되새겼다. 대회는 주최 측이 “곤경에 빠진 지역에서 온 가정들의 증언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고 예고한 대로, 다양한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가정들의 생생한 증언과 만남으로 채워졌다.특히 대회 첫날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가정축제에서 외교관 남편을 잃고 세 아이를 홀로 키우는 자키아 세아키씨의 증언이 참가자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콩고민주공화국 주재 이탈리아 대사였던 남편 루카씨는 지난해 유엔의 식량 프로젝트를 지원하던 중 피살됐다. 더구나 자키아씨는 이슬람 신자다. 자키아씨는 “상처 입은 가정이라 낙담의 순간이 있지만, 남편 사이에서 생겨난 사랑을 아이들에게 전해줄 임무가 남아 있다”며 낙담에 굴복하지 않겠다 말했다. 또 “성경과 코란(이슬람 경전)이 집안 곳곳에 놓여 있다”며 “(남편은 가톨릭이었지만) 각자의 종교는 소통과 경청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줬다”고 증언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의 증언을 경청한 후 “우리는 가정 안에서 나와 다른 사람과 함께 살면서 형제자매가 되는 법을 배운다”며 자키아씨 가정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총성이 그치지 않는 우크라이나에 남편을 남겨둔 채 17살 딸과 이탈리아로 피신한 이리나씨는 “고향을 떠나오면서 애정과 추억, 희망을 모두 버렸다”며 “하지만 하느님께서 우리 여정을 도와주시고, 넓은 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보내주셨다”고 말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모녀는 피에트로씨 가정과 본당 공동체의 환대 속에서 손님으로 지내고 있다. 이 모녀에게 신축 아파트를 빌려준 피에트로씨는 “어떠한 가식도 없이 열린 마음으로 맞아들이려 했던 이유는 고통받는 사람을 환대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환대하는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라며 “신앙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무도 환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교황은 이들의 증언에 대해 “전쟁은 냉소와 인간의 잔혹함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위대한 인류애를 보여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며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를 잃지 말라고 격려했다. 또 “가정은 세상에서 완수해야 할 사명이 있다”며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부부가 함께, 가정 안에서 함께, 다른 가정들과 함께, 교회와 함께 걸어가라”고 당부했다. 각국 대표들은 로마 시내 본당 교우들 가정을 방문해 친교 시간을 갖고, 성체조배ㆍ강연ㆍ미사 등 대회 일정에 참가했다.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의 가브리엘라 감비노 차관보는 이번 대회와 관련해 “혼인과 가정의 아름다움을 오늘날 세상에 선포하는 사명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또 각국 대표의 증언 시간을 프로그램에 많이 넣은 데 대해 “새로운 세대가 혼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 환경에서 살고 있다”며 “그들이 신뢰할 만한 가정의 증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주교회의 가정과생명위원회 위원장 이성효 주교와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위원장 손희송 주교, 대표 부부 6쌍 등 모두 16명이 대회에 참가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cpbc2022.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