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순택 대주교 “하느님 찾는 여정 자체가 성소” [앵커] 이번 주일은 성소 주일입니다. cpbc가 성소 주일을 맞아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에 ‘성소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성소 주일 특집 토크쇼 ‘응답하라, 부르심에’에 출연한 정 대주교의 성소 이야기를 송창환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기자] 정순택 대주교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3학년에 재학하던 때. 명문대에 입학했던 정 대주교가 사제 성소를 발견하게 된 건, 가족과 함께 참여한 ‘마리아 폴리’에서였습니다. 정 대주교는 포콜라리안 모임에서 한 부제의 성소담을 듣게 됩니다. 정 대주교는 그 순간을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순택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그분이 저를 붙들고 다시 한번 더 당신의 성소담을 이제 아주 이렇게 상세하게 나눠주시면서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을 각각 다른 모습으로 부르신다" 이런 말씀을 주셔요. 그러면서 그때 얼핏 ‘이게 하느님께서 이 순간이 이렇게 저에게 다가오시는 뭔가’라는 생각을 이제 한번 해보면서” 정 대주교는 “당시 마음속에 예수님의 말씀처럼 살지 못할 것 같은 신앙적 딜레마가 있었다”고 청년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정순택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성경에는 어린이처럼 돼라, 단순하게 되라는 말씀이 있는데 저는 생각이 많고 복잡해서 어린이처럼 되지 못하는데 이런 저도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겠느냐라고 이렇게 질문을 드렸더니 그 부제님 대답하시는 말씀이 쉽게 데워지지 않는 온돌은 한 번 데우기는 어렵지만 그 대신 한 번 데워지고 나면 좀체 잘 식지 않는다라는 비유를 설명하시면서 그렇듯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정 대주교는 그때 그 부제 덕분에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생생하게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정순택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온전히 이처럼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그 사랑이 그냥 막 느껴지고,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이는 거예요.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러면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 하느님께 온전히 나를 바쳐야 되겠다. 이제 그런 마음이 그냥 그대로 들었던 거고. 그 순간이 저로서는 하느님께 나를 사제로 바치겠다는 마음이” 이후 정순택 대주교는 예비 신학생 모임을 거쳐 가톨릭대 신학대학에 편입합니다. 그 시기, 정 대주교는 군 입대를 앞두고 허리를 다쳐 집에서 요양을 하게 되는데, 그때가 정 대주교의 또 다른 성소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정순택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교구 사제는 어떤 사목, 사도직 이걸 통해서 하느님께 열매를 이렇게 말하자면 드리는 삶이다라고 한다면 수도자는 존재로서 어떤 사도직의 활동이나 사목 활동을 통해서 하느님께 열매를 드리는 게 아니라, 나의 존재 자체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어떤 이런 삶이라고 이제 느끼는데, 그 삶, 소화 데레사 성녀 자서전을 읽는 순간 내가 찾던 삶이 바로 이거다…” 정순택 대주교는 1986년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해 1992년 종신서원을 했습니다. 정 대주교는 주교 임명과 교구장 착좌 등 모든 순간, 하느님께 순명하는 길을 먼저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제 성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 어떤 것에도 옳은 답은 없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한국 청년들을 격려했던 말을 언급했습니다. <정순택 대주교 / 서울대교구장> “수도자가 되거나 혹은 사회에 남아서 전공을 살리거나 어느 곳으로 가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선한 마음으로 이웃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수도자가 되건 혹은 사회에 남았던 어느 쪽은 다 성소다.” 정 대주교는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 자체가 성소”라며 중요한 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cpbc 송창환입니다.송창환2024.04.22

교황이 영적 투쟁을 강조하는 이유는? [앵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이나 메시지를 통해 '영적 투쟁'을 자주 강조합니다. 영적 타락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당부인데요.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영적 투쟁을 해야 하는 걸까요? 윤재선 기자가 살폈습니다. [기자] "그리스도인의 삶은 끊임없는 투쟁입니다." "우리에게는 악마의 유혹을 뿌리치고, 복음을 선포할 힘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8년 발표한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158항)에서 영적 투쟁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교황은 예수님께서 남겨 주신 '주님의 기도' 중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마지막 구절은 추상적 악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정확히 옮기자면 '악한 자'이며, 우리를 공격하는 인격적 존재를 가리킨다고 상기시켰습니다. 악마를 하나의 신화 혹은 표상, 상징이나 비유 또는 관념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경계를 풀 때, 악마는 이를 이용해 우리의 삶과 가정, 교회 공동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악마는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닌다"(1베드 5, 8)는 성경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 율법에 어긋나는 중대한 죄를 짓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무감각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한 심각성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교황이 영적 타락을 "편한 자기만족의 눈먼 형태"라고 꾸짖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 말씀처럼 "사탄도 빛의 천사로 위장하기"(2코린 11,14)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영적 타락으로 이끄는 자기 기만에 대해 경고하신다고 교황은 말합니다. 어떤 것이 성령에게서 온 것인지, 아니면 세속적 영이나 악마의 영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식별'이라고 강조합니다. "영적 투쟁의 도구인 식별은 우리가 간청해야 하는 은총"이며, "식별의 지혜가 없다면, 우리는 모든 지나가는 유행에 좌우되는 꼭두각시가 되기 쉽다"고 지적합니다. 그렇기에 "성령께 식별의 은사를 내려 주십사 간청하고 기도와 묵상, 독서 등을 통해 식별을 증진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그러면 "분명히 영적 능력을 성장시킬 수 있을 거"라고 독려합니다. 여기서 놓치지 않아야 할 건, 흔히 중요해 보이지 않는 소소한 것들 안에서 식별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라고 교황은 강조합니다. 이는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의 무덤 비문에 적힌, "가장 미소한 것에 담겨 있는 것이야말로 신적인 것"이라는 글을 떠올리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처럼 "위대한 것은 단순한 일상 생활에서 드러납니다." 식별은 악의 영향을 떨쳐 버리고 주님의 빛으로 올바른 행동 양식을 찾는 겁니다. 작게 보일지라도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의 삶 안에서 주님께서 승리하실 때마다 기뻐할 수 있기에 식별의 은사를 통한 영적 투쟁은 달콤하다"고 역설합니다. CPBC 윤재선입니다.윤재선2023.09.05

제27회 가톨릭 미술상 특별상 '유리재' 공방을 가다[앵커] 성경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빛'일 겁니다. 그 빛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이 '유리화'일 텐데요. 제27회 가톨릭 미술상 공모전에서 유리화를 만드는 공방 '유리재'가 특별상에 선정됐습니다. 윤하정 기자가 공방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기자] 예술가들의 마을인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에 위치한 유리재. 오색찬란한 유리화가 설치된 여느 성당과 달리, 공방에는 수많은 유리조각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고, 디자인 샘플과 작업 도구들이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로 불리는 '유리화'는 색유리를 이어 붙이거나 판유리 뒷면에 아교를 녹인 물질로 무늬나 그림을 그린 겁니다. 햇빛을 받으면 본연의 색과 더해져 신비로운 빛의 향연을 펼칩니다. <조상현 / 유리재 대표 겸 작가> "스테인드글라스가 창에 설치되지만, 해가 떠 있을 때는 성당 안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 거고, 밤에 미사를 할 때는 성당 안의 빛을 통해 밖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볼 수 있어서 그냥 창(자체)인 것 같아요." 현재 공방은 조규석, 조규선, 조규후 삼형제와 조상현 대표가 꾸려가고 있습니다. 대표 작가로 활동했던 프랑스 떼제 공동체의 마르크 수사는 지난달 19일 선종했습니다. 규석(요한), 규선(베드로) 형제는 1980년대 '한국 유리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고 이남규(루카) 교수의 작업실에서 도제 수련을 받았습니다.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전주교구 전동성당 등의 문화재 보수 복원에 참여했고, 30여 개 성당의 유리화 제작 실무도 진행했습니다. 조규후 장인은 색을 보는 게 마냥 좋아 뒤늦게 동참했지만, 그 색을 찾는 게 또한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말합니다. <조규후 / 유리재 장인>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색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죠. 그런데 이 색상이 여기서는 이 색인데, 현장에서는 다른 색이에요. 빛을 이용해서 보는 거라서 동네마다 색이 다르더라고요." 완성된 유리화는 물리적으로 한 점이더라도 빛에 따른 스펙트럼은 무한한 셈입니다. <조상현 / 유리재 대표 겸 작가> "참 어렵지만, 저는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 작품은 빨간색이지만, 봄의 빨간색이 있고, 여름, 겨울의 색깔, 아침이나 새벽의 색깔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 색깔이 유리에 맺히기 때문에 그게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리화는 디자인을 시작으로 유리와 색을 정해 제작하고 설치하는 공정에 수많은 사람이 참여합니다. 유리재 역시 지난 1996년부터 2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과 협력해 200여 곳에 3000점이 넘는 작품을 선보여 왔습니다. 유리재 식구들 역시 오랜 기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공방이라는 공동체를 통해 협력해온 것에서 무엇보다 큰 의미를 찾았습니다. cpbc 윤하정입니다.윤하정2024.02.08
![한더클 I 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의 고백 [김준일의 뉴스공감-김봉신·최창렬·이종훈]](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9/27/X3N1727439465766.png)
한더클 I 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의 고백 [김준일의 뉴스공감-김봉신·최창렬·이종훈] ○ 방송 : CPBC 라디오 <김준일의 뉴스공감> ○ 진행 : 김준일 앵커 ○ 출연 : 함세웅 신부, 김성진 민들레 기자 ▷ ‘소금의 짠맛을 잃어버리면 안 돼요. 늘 성찰해야 합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문정현 신부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쉽게 잊어버리고 너무나 고단해서 곧잘 잃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 50년 그런 세상의 가치를 지키고 이어온 이들의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창립 50주년을 맞아 두 분을 초대했습니다. 함세웅 신부님 그리고 김성진 민들레 기자님 두 분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함세웅 신부님은 꼭 모셔야 된다. 우리가 내부에서 회의를 했을 때. 왜냐하면, 창립부터 지금까지 모든 역사를 지켜보신 분이니까. 그래서 모셔야 된다고 했고 뭐 뒤에 우리가 또 자세히 얘기를 하겠지마는 김성진 기자님은 최근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다 취재하셨더라고요. ▶김성진: 다 기사로 썼습니다. ▷왜 그렇게 집요하게 그러지? 이렇게 저도 기사를 최근에 다 몰아보면서 이분은 알고 보니 가톨릭 신자도 아직 아니시더라고요. ▶김성진: 마음속 예비신자라고 저는 믿고 있는데 교리 수업을 아직 들을 시간이 없어가지고. ▷과거에 대해서는 정말 제일 잘하시고 물론 지금도 잘 아시지만은 현재의 정의구현사제단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제일 잘 아시는 분 그래서 두 분을 이렇게 모셨습니다. 두 분은 전에 만나신 적이 있으신가요? ▶김성진: 아니 지금 저는 이제 먼발치에서 많이 현장에서 뵀는데 이번에 저희도 인터뷰를 한 번 신부님 모시고 했었는데 제가 직접 가지는 않고 기사만 정리했었는데 저는 이제 신문 기자니까 많이 뵀죠. ▶함세웅: 반갑습니다. 그런데 세례 받고 싶으시다고 그러셨는데 그러면 이미 세례 받으신 거하고 똑같아요. 화세라고 그래요. 마음으로 받는 세례. 화세. 그러니깐 이미 세례 받으신 것과 똑같습니다. ▶김성진: 여담으로 잠깐만 말씀드리면 제가 전례를 하도 이제 많이 봐 가지고 아니 어느 신부님한테 사제단 신부님께 제가 10회 이상 취재를 한 것 같은데 패스트트랙으로 신자로 어떻게 좀 해주시면 안 되냐 했다가 된통 혼났거든요.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다고 기자가. ▶함세웅: 돼요. ▶김성진: 감사합니다. ▷아니 저도 저는 이제 1987년에 세례를 받았는데 그런데 6개월 동안 교리 공부하고 뭐 약간 시험 같은 것도 좀 오래돼서 그런데 그런 것도 보고 그래 가지고 됐는데 아니 기자라고 그렇게 속성으로 이거. ▶김성진: 똑같이 혼났더라고요. 기자면 오히려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함세웅: 교육을 하고 이제 두 분 중에 한 분이 신자이신 경우에 보통 부인이 신자시잖아요. 남자분이 신자가 아니실 때 보통 짧게 한 석 달이나 두 달 압축으로 교리해서 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렇군요. 예전에 혼배성사를 또 올려야 되는데 뭐 시간이 없거나 그럴 경우에 그런 식으로 하더라고요. ▶함세웅: 우리 김 기자님 같으신 분은 1년을 취재했으면 그 자체가 그거 교리 공부와 증언이에요. 지금 세례 드려도 돼요. 받으셔도 됩니다. ▷함세웅 신부님만큼 가톨릭에 지금 오랫동안 활동하신 분이 없으니까 42년생이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올해 한국 나이 그러니까 만 나이로 82세셔서 제가 어떻게 이렇게 저도 이제 함세웅 신부님처럼 늙고 싶다. 이런 생각을 좀 많이 했습니다. ▶함세웅: 모세가 80세 이렇게 해방 운동에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아론이 세 살 차이니까 83살, 그러니까 80이 해방운동의 투신 시기입니다. ▷알겠습니다. 그 어떻게 투신하시는지는 뒤에 좀 들어보고 우리는 먼저 앞에 역사에 대해서 이제 50주년이거든요. 1974년인 거죠. 제가 한 얼마 안 됐는데 그 이부영 전 동아일보 기자였고 뭐 열린우리당 의장도 하셨는데 지금 현재 직책은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을 하셨는데 모셨거든요. 그런데 동아일보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또 공교롭게 1974년이더라고요. 그때 제가 또 1974년생이라서 그때 태어나서 굉장히 뭔가 이 74년이 역동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났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게 1974년에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이 됐잖아요. 어떻게 결성이 됐는지 우리가 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마는 지학순 주교의 연행 사건으로 시작됐다. 이렇게 그 뭐 글에서나 기사에서는 볼 수 있는데 비사를 좀 설명해 주시죠. ▶함세웅: 다 잘 아실 텐데 1974년이 아주 고난의 해예요. 1월부터 4월까지 긴급조치 1호, 2호, 3호, 4호 박정희 그 당시 대통령이 그 긴급 조치를 발표를 했는데 그 당시 긴급 조치 내용은 유신헌법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면 안 돼요. ‘헌법을 개정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해도 체포가 돼서 구속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헌법의 내용 중에 모순이 많습니다만 더 기가 막힌 내용은 뭐 예를 들어서 국회의원 300명이면 100명을 대통령에 임명을 하는 거예요. 박정희 대통령이 나머지 200명만 선출하고 그럼 100명은 항상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뭐 조금만 뽑으면 항상 과반은 물론이고 3분의1을 항상 장악할 수 있는 그 헌법성 아주 불의의 장치를 마련해 놓아서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 장준하 선생님하고 백규환 선생님 두 분이 그 전에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막 데모도 했습니다만 대표적으로 두 분이 헌법 개정 소원을 했어요. 청원을 그런데 헌법 개정청원 서명운동을 한다는 것이 긴급조치에 위반이 된다고 그래서 체포가 돼서 구속이 되신 거예요. 기가 막힌 사건이죠. 그리고 그 뒤에 뭐 목사님들이라든지 또 많은 분들이 구속이 되셨는데 저희들은 뭐 젊은 사제로서 보좌 신부였어요. 저는 그 당시에 연희동 보좌인데 뭐 제가 마음이 아프지만 뭐 할 일도 없고 답답하기만 했었는데 그해 4월에 민주학련 사건이라고 한 200여 명 넘는 우리 청년 학생들이 구속이 된 거예요. 가슴이 찢어지고 아프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마침 또 그 전에 73년 8월에 연희동 성당 보좌로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에서 납치되어 오신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신자시니깐 가서 봉성체를 요구하셔서 그때 방문했는데 방문 못 하게 하는 거예요. 정부 부원들이 차단해서 하루 종일 끌고 다니는 거예요. 제가 그래서 나는 봉성체하러 갔는데 봉성체 가족들이 원했습니다. 그래서 안 된다는 거예요. 기가 막힌 걸 보면서 이거 불의한 정권 사제가 신자를 찾아가서 영성체, 봉성체도 해줄 수 없는 이러한 상황은 문제가 있다. 이렇게 늘 답답한 상황을 안고 있었던 터에 그 다음에 민청련 사건이 났는데 또 기가 막힌 것은 우리 지학순 주교님이 7월 6일에 김포공항에 도착하셨는데 중앙정보부원들에서 납치되어 가신 거예요. 그리고서는 이제 아무도 몰랐는데 며칠 뒤에 김수환 추경님이랑 주교님들이 아시고 말씀하셔서 우리가 7월 9일이 주일이었는데 주일미사 끝나고 수도권에 원주 신부님들과 춘천, 수원, 서울 한 30~40명 신부님들이 김수환 추경님을 찾아가 뵀어요. 저녁 한 9시쯤에 그래서 김수환 추경님 답답해하시던데 저희들이 여쭤봤죠. 그랬더니, 김수환 추기경님 정보부에 지금 체포되어 계신다. 그래서 저희들이 좀 젊으니깐 안 된다. 주교를 불법 납치해 간 이러한 사건에서는 이의를 제기해야 됩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또 민주 시민의 이름으로 강하게 요청했더니, 김수환 추기경이 조금 당황하시더니 저희도 너무 강하게 얘기를 하니깐 그분 안경 너머에 눈물이 흐르는 걸 제가 봤어요. 그분이 전혀 절벽이었는데 뜻밖의 젊은 사제들이 와가지고 뜻을 모으자 석방 운동을 하자 이렇게 주장을 하니깐 이분이 좀 힘을 얻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들이 그다음 날 예정됐던 7월 10일 주교 회의가 예정했던 우리 인권회복미사 넓은 의미에서 그런 석방운동의 미사를 봉헌했는데 그때 전국에서 모든 주교님이 다 오셨어요. 대구교구 주교님만 오시지 않고 저희들 다 미사일 함께 했는데 곧 아침에 김재규 차장, 중앙부처장이 김수환 추기경님을 찾아오셔서 박정희 대통령님을 특별 면회 하셔야 됩니다. 면담을 주선해서 김수환 추기경님은 저녁 6시에 청와대로 가시기로 하신 거예요. 그런데 저희들은 그 면담을 반대했죠. 무슨 면담이냐. 우리가 미사 보내야 됩니다. 그러는데 또 추경님은 사목적으로 대통령의 면담이니까 그 미사 때 인사만 하시고 내가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러 가야 됩니다. 지학순 주교님 문제로 갑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씀만 하시고 청와대로 가셨어요. ▷박정희 대통령 면담을 해 가지고 지학순 주교님을 석방하는 거를 요청하려고 만나신 건가요? ▶함세웅: 그 김재규 중앙정부 차장이 이 시국에서 대화할 수 있는 분은 김수환 추기경밖에 안 계시다. 대통령을 일단 만나서 대화를 하십시오. 이런 자리를 김재규 차장이 마련한 거죠. ▷전반적으로 이렇게 좀 시국이 어수선하니 이거를 조금 중재를 하거나 좀 더 대통령을 설득할 분으로 김수환 추기경이 어떻게 보면 낙점이 되신 거죠. ▶함세웅: 그것이 이제 김재규 차장의 좋은 생각이었죠. 그래서 윤홍희 주교님이 미사주례 하시고 저희들이 미사주례한 다음에 김수환 추기경님은 홍인수 비서 신부님하고 청와대를 갔어요. 그래서 한 3시간 뒤에 오셨는데 오시더니, 아마 잘될 것 같다. 그러고 9시 반쯤 지학순 주교님이 또 나오신 거예요. 저희들은 철야 기도를 계획을 했는데 그러니깐 너무 기쁘잖아요. 대부분 신자들은 또 가시고 그랬는데 그때 저희들이 깨달은 게, 아니다. 지학순 주교님의 석방만을 위해서 우리가 모인 게 아니다. 그렇게 모였다면 너무 이기적인 기조가 아니냐. 지금 많은 목사님 청년 학생들이 감옥에 계신데, 그분들의 석방을 위해서 우리가 철야기도 계속 해야 된다. 그렇게 또 뜻을 모아서 많은 수도자들, 신부님들, 신자들 한 천여 명 남아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그게 지학순 주교님 석방운동과 함께 저희들이 세상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고 특별히 감옥에 계실 분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첫 번째 계기가 되었죠. 은총의 계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단순히 체포되신 지학순 주교님의 석방위에서 했지마는 다른 사람들도 이를테면 뭐 반독재 투쟁을 한다든지 여러모로 고초를 겪고 있는데, 우리가 이거에 눈감을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많은 사제 신부님들한테 좀 있었다라고 보시는데 김성진 기자님은 이런 히스토리는 어느 정도는 알고 계셨죠? ▶김성진: 뭐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또 이렇게 자세하게 또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 당시에 또 얼마나 또 어두운 상황이었는지 저는 87년생이거든요. 한참 어린 세대기 때문에, 어쨌든 그 어두운 시절에 대해서 역사책 하나 지금 듣는 기분이었고. ▶함세웅: 그런데 그 당시는 좀 어려웠던 게 농담이지만 어린이들이 울잖아요. 울면 중앙정보부 온다고 그러면 뚝 그쳤다는 그런 말이 있을 정도예요. 중앙정보부가 그냥 전국을 지배해서 사서 모든 저나 도청이고 또 차단이고 연예인이고 불법으로 아무 때나 중앙정보부는 뭐 누구든지 중앙 장관들도 데려가서 막 때리고 막 그랬을 때였어요. ▶김성진: 저도 87년 5월생인데 사실 6월 항쟁 이제 기폭제가 되신 게 사제단이시잖아요. 저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너 때문에 이제 시내에서 최루탄 많이 나오니까 이불로 창문을 막고 널 키웠다. 이런 얘기하면서 사제단 이야기들을 되게 많이 해주셨거든요. 그리고 제가 이제 광주 출생이다 보니까 80년 5월에 또 조비오 신부님이나 여러 신부님들이 죽음의 행진을 하시면서 시민들 지켜주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듣고 자랐는데 이제 방금 또 이렇게 말씀하신 걸 또 듣고 나니까 어떤 그 숨도 쉬기 어려웠던 시절에 민중들에게 사제단이 상당히 처리하기도 하시면서 그 어쨌든 어두운 시간에 한 거잖아요. 그게 어쨌든 상당히 등불이 좀 되지 않았을까라는 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이제 정의구현사제단이 어떤 얘기를 했는지 듣고 ‘1987’ 영화로도 나왔는데 신부님 역할도 있었어요. 그 안에 그런데 어쨌든 그 얘기도 좀 뒤에 해보고요. 좀 앞단으로 넘어가서 궁금한 게 제가 하나가 있는데 왜 이름을 정의구현사제단이라고 지었는지 이거 누가 제안을 해서 정의라는 말이 들어갔는지 좀 궁금해요. 그러니까 뭐 사실 평화도 있고요. 이거 우리는 평화방송이잖아요. 가톨릭이 지향하는 것도 있고 자유, 평등, 통일 다양한 언어들이 있을 텐데 단어들이 있을 텐데 왜 정의 구현이었냐. ▶함세웅: 제가 여러 차례 글도 쓰고 말씀도 드렸었는데 우선 1974년 7월 10일 첫 번째 공동체 미사일을 봉헌한 다음에 그날 철야기도를 할 때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었어요. 특별히 교회에 대한 반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초로 해서 사목헌장을 기초로 해서 교회가 세상으로 나아가야 된다. 세상을 껴안아야 된다. 그러한 큰 가르침을 전제로 한 다음에 그 해가 또 75년이 은총의 희년이었는데. 그 당시에 7월 5일 김대건 신부님 그 축일에 한국 주교단에서 그 교서를 발표했어요. 그 교서가 순교자들의 정신으로 우리가 성화되어야 될 뿐 아니라 아니라 세상도 변화시켜야 된다. 이런 식의 내용들이 성년 그 교서에 담겨져 있었거든요. 그러니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과 주교단의 그 사목 교서를 중심으로 해서 그날 밤 철야기도를 하면서 토론하고 대화를 했어요. 이제 많은 게 나왔는데 뭐 정말 신선한 내용들이었어요. 교회가 정말 더 과감하게 세상을 품어야 된다. 세상은 나가야 된다. 이런 얘기에서부터 특별히 사제들에 대한 지적, 사제들이 너무 정말 권위적이다. 또 때로는 무리하다 그래서 사죄에 대한 고발이 많이 나왔어요. 그러니까 저희들이 많이 반성해야 되겠죠. 이제 그런 내용들을 귀담아 들으면서 또 하나 아주 놀랄 만한 내용은 어떤 조에서 나온 의견이었는데 철야기도나 이 기도 모임이 오랫동안 지속되긴 어렵습니다. 지금은 지학선 주교님이 일단 구속되었다 나오시긴 했습니다만 또 많은 분들이 구속되어서 유신 체제를 우리가 바꿔야 된다는 시대의 명령이 있기 때문에 모였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진다면 주교님들이 이 사제들의 모임을 통제할 겁니다. 교회는 언제나 위에서부터 명령체계가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와는 조금 더 어긋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깜짝 놀랐어요.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런데 그 뒤에 50년을 우리가 되돌아보니까 역시 이제 교회 안팎에서 저희들이 제재 받고 통제받았던 그러한 내용들이 많이 있는데, 그 조례에서 나왔던 의견들이 어떤 의미에서 예언이 되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반성을 하는 겁니다. 어쨌든 매 월요일에 각 교구를 순회하면서 저희들이 미사일 봉헌했었는데 미사 봉헌하면서 느꼈던 점이 이걸 체계화시켜야 되겠다. 조직화해야 되겠다. 그런 요구도 있었어요. 신부님들끼리 이제 각교구 그다음에 우리 서울신학교 하나고 광주신학교에서 막 신부님들 1, 2년밖에 안 되셔서 나오신 분들이. 그래서 주로 서울신학교 출신들이니까 전부 다 한 가족이에요. 한 800명 사제들이 다 아시는 거예요. 서로들. 그래서 저희들이 이제 조직화를 하면서 각 교구하고 연락을 했는데 그래도 뭔가 이름을 지어야 되지 않느냐. 그래서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님 계신 원주교구 성당에 가서 기도도 하고 모임을 갖다가 아까 말씀하신 대로 뭐 평화에서부터 정의, 인권, 자유, 평등, 통일 많은 내용들 자선서부터 안 나온 이름이 없습니다. 이제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골롬반회 선교사 신문 한 분이 저를 툭 치더니, 잠깐 나오라 그러시더니 이런 토론 참 좋은데 정의 유스티시아, 영어로 저스티스 정의를 선택해라. 정의란 개념이 하느님을 가장 대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속성이다. 하느님의 이름이 참 많거든요. 자비하신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많은데 정의 하느님이 모든 하느님의 속성을 포용할 수가 있다. 정의 때문에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이 있는 거다. 선의는 상을 주고 악인들은 벌을 주시고 어떤 의미에서 정의가 사랑보다 더 큰 넓은 개념이다. 정의를 선택을 해라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대표 신부님인 박상래 신부님을 찾아가서 이런 골롬반회 신부님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 신부님 성서학 전공하신 신부니까 즉시 알아들으시죠. 그래서 그 의견을 낸 다음에 신부님들께 합의해서 정의라는 이름을 선택을 했어요. 그런데 정의를 선택했는데 우리 사제단이 한 교구 사제가 아니고 여러 교구 사제들이니까 전국사제단을 꼭 해야 된다. 천주교는 물론이고 교구의 벽이랄까, 한계를 넘어서는 전국의 모임이라는 이런 식의 의미로 우리가 이름을 지은 건데 50년을 맞는 올해 지난해 저희들이 세미나 하면서 성서 전공하신 신명숙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해 주셨어요.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이거 아름답다. 이거 1784년 이승훈의 세례를 받고 나셔서 성직제를 만드셨어요. 그러니까 옛날에는 가성직 제도라고 그랬는데 가성직 제도란 표현이 부족하다. 자생적 성직제다. 그분들 스스로 주교 사제라고 하시면서 자생적 성직제를 이루셨어요. 그 1784년에 자생적 성직제와 맥을 같이하는 전국사제단의 의미가 있다. 이건 천주교 세계 역사상 전국사제단의 모임 없었다. 이 부분은 긍지를 가지고 자랑을 해라.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작년에 심포지엄 할 때 신부님의 의견을 담아서 발표를 했는데 전 세계에서 전국 사제들의 모임은 한국 교회 유일무이하는 긍지가 있다는 측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면 어쨌든 뭐 정의로운 하나님, 심판의 하느님 또 벌주시고 상주시는 그런 하느님이 그런 교리상으로 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사랑구현사제단 이런 거보다는 훨씬 더 지금의 지향하는 가치가 맞지 않나. 뭐 사랑의 하느님도 맞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공교롭게 굉장히 잘 지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김성진 기자님께 좀 여쭤볼게요. 이제 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를 매번 기사로 많이 쓰셨어요. 그러니까 뭐 진짜 많더라고요. 그래서 다 읽는 것도 좀 힘들었는데 그거를 보시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그리고 사제님들이 이제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게 사실은 무슨 뭐 가입 원서를 내고 무슨 심사를 하고 그런 게 아니라 어떤 신부님이라도 편하게 본인이 원하면 소속으로 활동을 할 수 있으니까 신부님들보다 조금 규격화되지 않고 좀 다 다른 개성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 관통하는 게 좀 어떤 거였는지 이런 게 좀 궁금합니다. ▶김성진: 뭐 관통이라고 하면 뭐 하나가 좀 생각나는데 먼저 좀 이번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까 그 이번에 50주년 기념미사 할 때 우리 그 이용훈 주교님께서 축하 메시지로 사제단에 대해서 평가하실 때 어떻게 하셨냐면 사회적 부패 현상을 좌시하지 않고 정의로운 예언자의 목소리를 냈다 이렇게 표현을 하셨거든요. 제가 이거와 관련돼서 가장 인상 깊은 게 처음에 이제 지난해 3월 20일에 전주 풍남문에서 9년 만에 시국미사를 드린다고 할 때 내려갔을 때 사실 그때만 해도 어떻게 보면 지금은 저희가 총선 뒤니까 어떻게 보면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조금 더 많이 나오고 뭐 이런 상황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정권과 정반대에 있는 시민단체조차도 퇴진이라는 말을 되게 꺼내기 어려웠던 많이 해봐야 정권 심판 정도 이야기했고 당시 생각을 해보면 강제징용 제3자 해법 문제 때문에 상당히 이제 좀 전국이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그 정도 목소리밖에 안 나왔어요. 그런데 신부님들께서 제가 깜짝 놀랐던 게 기자로써는 전주의 풍남문 한 천여 명 정도의 이제 신자들이 나와 계시는데 거기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 탄핵하라. 이런 메시지를 먼저 전하시더라고요. 그 부분을 보면서 이게 일맥상통한 행사의 어떤 메시지나 이미지를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의 제자라고들 신부님 표현하시잖아요. 하나님의 종이나. 그분들이 먼저 시민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쥐고 좀 가시는 거 아니었나. 저는 그런 생각을 좀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 기사 제목을 좀 몇 개 소개해 드리면 2023년 3월 20일 전주 풍남문의 시국미사였는데 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 윤석열 퇴진 서곡. 세요. 그러니까 그냥 보기만 해도 이거 너무 센 거 아니야. ▶김성진: 그때 성명서 자체를 다룬 그 기사들도 거의 없었어요. ▷성명서를 다루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그걸 기사로 쓰신 건 뭐 2023년 4월 17일 마산에서 시국기도회가 있었는데, 사제단 우리 요구는 단순하다. 실격 윤 정부 퇴진. 그래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도 많이 있었고 뭐 퇴진도 신문님들이 언급을 했단 말이에요. 조금 이제 좀 불편한 질문들 드려야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종교는 현실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뭐 가톨릭뿐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에서도 어느 정도는 일종의 불문율처럼 가지고 있는데, 정의구현사제단은 현실정치에 너무 세게 개입을 하고 특히 신부님들이 이렇게 뭐 정권 퇴진 이런 거를 막 미사에 얘기를 하는 게 이게 맞느냐. 신자들도 사실은 뭐 정치적, 이념적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신부님들도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이게 정의구현사제단이 마치 가톨릭 천주교를 대표하는 것처럼 이렇게 나와 가지고, 맨날 정권 퇴진, 윤석열 정권 퇴진 막 이런 거 얘기를 하는 게 맞느냐. 이런 시각들이 좀 있거든요. 신부님은 좀 어떻게 보십니까. ▶함세웅: 그거를 옳고 그른 잣대로 접근하기보다는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될 것 같아요. 돌아가신 문익환 목사님께서 스위스의 철학 신학자 칼 발트를 소개해 주시면서 우리 사제들에게 그 목사님들이죠. 제자들은. 스승님,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설교, 감동적인 설교를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드렸더니, 그분이 나는 한쪽에 성경을 놓고 또 한 쪽의 신문을 놓고 번갈아 읽는다. 성경에는 삶의 원리와 방향 우리 지침이 있고 이 신문에는 우리 현실의 이야기가 있다. 그 현실의 이야기를 어떻게 성서와 접합하면서 아름답게 이끌어 가느냐가 목회자들의 소명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제가 문익환 목사님 그 말씀을 드리면서 또 사제들에게 그 말씀을 계속 전해주고 있는데, 성경에서 정치를 빼면 남는 게 없습니다. 성경 자체가 하느님의 구원의 정치예요. 이 부분을 이해해야 되는데 우리가 역사 과정을 지나면서 정치와 교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마찰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해가 참 부족했었어요. 그게 1970년대 독재 정권 치하에서 그 신학자들이 어떤 어떻게 선언했냐 하면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정치적 존재다. 정치를 빼고 어떻게 인간을 얘기할 수 있는가 우리 인간의 관계 자체가 정치적이다. 거기서 정치에 참여하지 말거나 정치적 행위를 하지 말라는 의미는 협의의 의미에서 대통령이 된다든지 정당 활동한다든지 또는 뭐 이제 장관을 한다든지 이런 의미가 정치가 되겠죠. 그러나 잘못된 정치를 구원하기 위해서 성서적인 잣대로 얘기하는 것은 복음의 선포가 되겠죠. 그럼 복음선포라는 것은 모든 사람을 전부 다 구원해야 돼요. 모든 사람을 정치까지도 구원을 해야 돼요. 그럼 정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언어로서 얘기를 해야 되겠죠. 이제 정치가 잘못되었는데 정치만 눈 감느냐 안 하는 거죠. 잘못된 정치 추적하고 정화시키고 정치 현장과 모든 정치인들을 구원의 범주로 이끌어야 된다는 식의 의미 그래 이렇게 우리 이해를 해야 되는데 지금 조금 부정적으로 남을 이제 폄하하기 위해서 부정을 하기 위해서 모든 걸 정치적, 우리 투표 행위가 정치 아니겠습니까? 사제들 수도자도 다 투표합니다. 이제 그러나 사제 수도자가 예를 들어서 뭐 대통령을 지망한다. 그러나 외국에는 교황님의 동의가 있으면 대통령도 할 수 있고 다 할 수가 있어요. 신전 정치에서는. 정치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금 바꿀 필요가 있겠다. 정치도 구원의 대상이다. 정치를 우리가 외면해서는 구원사를 얘기할 수 없다. 이런 내용을 우리가 알아야 될 것 같아요. 만일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침묵하셨다면 안 돌아가셨어요. 그 당시에 정치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제 또는 사두개인,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을 무섭게 꾸짖으셨거든요. 예언자적인 말씀으로. 이 부분을 이해해야 되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신자들이 정치와 신앙의 아주 불가분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서부터 나온 잘못된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말씀하셨다시피 정치와 신앙, 종교를 완벽하게 분리하는 건 불가능하고 오히려 과거 예수님도 어떻게 보면 많은 뭐 정치인들이나 아니면 타락한 성직자들을 꾸짖으셨던 거 그런 것도 일종의 정치행위로 볼 수가 있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제가 좀 김성진 기자님께 궁금한 거는 사실 신부님들 입에서 어쨌든 퇴진 뭐 이런 얘기가 나오게 된 계기가 있을 거 아니에요. 이게 제가 좀 흐름을 보니까 이태원 참사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사망을 하고 나서 이런 흐름이 두드러지지 않았나. 그런데 전체적으로 시국미사일 보면서 왜 그냥 우리가 제목으로 한 줄로 보는 게 아니라 그런 맥락들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설명을 좀 해주시죠. ▶김성진: 아까 말씀하셨지만,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같은 경우에는 저희도 민들레에서 명단을 발표했었지만 사제단에서도 기도를 통해서 이름들을 하나씩 짚으면서 어떤 그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어떤 진정한 애도 뭐 이런 분들 이런 것들을 했었죠. 그리고 그 뒤로 흐름들을 말씀하셨으니까 아까 말했던 강제징용 문제들 우리가 절대 정의로서 그러니까 전범국인 일본이 뭐 강제징용 피해자나 어떤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서 반드시 사과를 해야 되는 거는 어쨌든 피의자가 피해자한테 사과하는 건 당연한 정의인 거잖아요.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당연한 것들이었고 그리고 그 와중에 또 노동자도 돌아가셨었거든요. 고 양회동 열사 건설노동자셨는데 그런 분들 돌아가셨을 때도 그 돌아간 노동자의 그 약자의 그런 안타까움들 이런 것들을 사제단에서 계속 이제 시국미사로 이렇게 봉헌을 해 오셨죠.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흐름이 어쨌든 국민의 생명이나 아니면 어떤 뭐 강제징용 노동자 우리 예전에 피해자들에 대해서 윤석열 정부가 제대로 보호를 해주지 않는다는 거 그리고 일본에 너무 과하게 그런 것들을 직접적으로 일종의 뭐 거래 뭐 이런 거를 통해서 이분들 어떤 권리가 좀 존중받지 않는다고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뭐 정권 퇴진이라든지 이런 센 얘기까지 나온 거 아닌가. ▶김성진: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제단께서 자세히 보면 이제 뭐 가령 미추홀구에 갔을 때는 주안1동 성당에서. 그때 물론 거기서 옛날에 인천 항쟁도 있고 했었지만 그런 역사적 의미도 있지만 그 당시에 이제 미추홀구 전세 사기로 많은 분들이 또 희생됐었잖아요. 그분들에게 연대 발언 기회를 줘서 그 하나님께 또 그 답답한 마음을 좀 토로하게 해주는 그런 것들도 있었고, 말씀 나온 김에 생각났던 게 7월에 다시 한번 작년 7월에 전국 전주 풍남문에서 다시 한번 시국기도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날 비가 되게 많이 왔었는데 그때 이태원 유가족 아버님을 모셔 가지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제 그분께서 오송 지하차도 참사 때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연대 발언을 하면서 또 많은 분들을 더 눈물 나게 했거든요. 이런 것들을 사제단이 이렇게 이끌어오셨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정의구현사제단의 지금까지 활동들을 뭐 신부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제가 짧게 요약을 하면 70년대에는 박정희 독재에 대해서 주로 한 거하고 반대하는 거를 했고 80년대에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실체 그때는 이거 폭동이라고 얘기했으니까 그거를 알리는 데 많이 주력을 하고 또 1987 박종철 고문치사 이후에 그걸 폭로를 해서 87년 민주항쟁은 기폭제가 됐던 것들을 했던 거 같고, 90년대에는 아무래도 국가보안법 폐지, 평화 통일운동 이런 것들을 많이 했던 거 같고, 2000년대에는 특히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삼성 엑스파일 문제 이런 것들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뭐 2010년대 들어와서는 4대강 반대 사업이라든지 뭐 2000년대 후반부터 해 가지고 이렇게 좀 생태운동도 이렇게 했던 것 같은데, 제가 궁금한 거는 이제 신부님은 어쨌든 이 과정을 다 지켜보셨잖아요. 어떤 것들이 좀 많이 기억에 남으셨는지 좀 궁금해요. ▶함세웅: 뭐 그런 부분보다는 조금 더 근원적인 걸 접근하고 싶은데요. 저희들도 사제가 될 때까지는 사실 1960년대 이전에는 세상은 원수였어요. 우리에게 3가지 삼구라 그래서 원수가 있어요. 이 육체가 원수고 세상이 원수고 마귀가 원수예요. 삼구를 끊어버려야 된다고 우리가 교육을 받았었거든요. 신앙생활의 핵심이었어요.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어떻게 세상이 원수냐. 우리가 세상 안에 사는데. 세상과 함께 세상 안에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으로 나가야 된다. 이렇게 개방적인 구원관이 펼쳐진 것이죠. ▷그때가 요한바오로 2세 때. ▶함세웅: 제2차 바티칸 공의회 62년부터 65년까지. 그때 요한 23세와 또 바오호 6세 때 그때 그런 이제 교회 큰 변화 운동이 있었고, 그다음에 우리 자신 인간이 선행을 하잖아요. 내가 선행을 하는데 어떻게 이 육체를 거부하느냐. 그러니까 육체를 긍정하면서 해야 된다. 마귀는 우리가 끊어버려야 되겠지만 계속 육체에 대한 긍정과 세상에 대한 긍정 이런 신학적인 큰 변화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런 내용들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죠. 그리고 그 당시에는 또 라틴어로만 미사를 지냈었잖아요. 그런데 라틴어가 아니라 각자 자기네 모국어로 미사 봉헌해라. 그리고 현장, 자기네 나라 문화와 정치, 경제, 사회 그것이 바로 교회의 자리다. 이런 신학적인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런 의미에서부터 교회관과 신앙이 성장하게 되게 된 것이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6개 문헌 중에서 뭐 이제 전례헌장부터 교회헌장, 개시헌장, 사목헌장 4개 헌장이 있는데, 다 중요한 헌장인데 마지막에 합의된 그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이라는 사목헌장이 바로 세상을 품어야 된다. 이 내용을 선언했어요. 그 수 21번의 공의회 때 이런 문헌이 처음 나온 거예요. 세상을 품어야 된다. 세상과 함께 해야 된다. 이런 내용에서 정말 교회에 어떤 혁명적 변화랄까 이런 것이 일어났던 것이죠. 이제 이런 변화를 우리가 알면 그러면서 성서를 그런 시각에서 다시 보니까 성서의 역사적인 내용도 있지만 예언자들의 고발이 있어요. 예언자들은 왕과 잘못된 사제들 권력자들 부자들을 무섭게 꾸짖는 내용들이에요. 그리고 또 지혜 문학 사상에 이렇게 있게 돼있는데 이러한 내용들을 우리가 껴안으면서 사실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자. 이렇게 된 것이죠. 1960년대부터 교회가 변화되었던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세상을 진단하고 바라봐야 될 거 같아요. 그러면서 늘 성서의 눈으로 세상을 진단하고 성서의 눈으로 세상을 바꾸고 성서의 눈으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자. 이런 식의 의미에서 새로운 신학 사조와 영성 사조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제 이런 측면에서 1970년대 마침 지학순 주교님 구속 사건과 함께 세상에 뛰어들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죠. 이제 그러면서 예수님이 왜 돌아가셨나. 새롭게 물음을 제기하는 거예요. 우리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교리적인 설명도 있습니다만 더 크게 세상의 불의를 타파시키기 위해서 오신 분이다. 이 부분에 대한 의미 그게 십자가가 바로 정의의 상징이다. 이런 내용들을 깨닫게 되었고 제가 사제로서 깨달은 것은 고백소에서 신자의 고백을 듣지 않습니까? 어떤 공무원이 와서 고백을 하시는데 제가 많이 반성을 했어요. 신부님 제가 이 봉급으로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족이 5명인데 이 봉급으로 못 사니까 제가 적당히 부정을 합니다. 뇌물을 받는다. 그런데 오늘 이거 고백을 합니다만 그렇다고 이걸 완전히 끊어야 되는데 끊지를 못합니다. 한계가 있으면 어떡합니까? 이렇게 고백하시는데 제가 뇌물을 받아서 안 됩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씀 못 드리겠더라고요. 그냥 고백만 들었을 뿐이지 그러면서 제가 사전에서 고민했던 것이 신자에게 양심의 편안함과 구원을 주기 위해서는 분이 뇌물을 받지 않아도 살아야 될 그러한 제도 개선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개인적인 분이 아무리 양심이 좋다 하더라도 이 양심의 양심대로 살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면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게 양심 억누르는 이 국가 구조를 바꿔야 되겠다는 신학적인 깨달음이 있었던 것이죠. 이제 제가 강의하면서 글을 쓰면서 이런 예를 많이 들었어요. 우리 개인의 구원을 위해서는 사회와 국가와 체제가 잘못되었을 때 그 체제를 바꾸는 것이 사목적인 우리들의 책무다. 이런 식의 의미,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된다는 이런 식의 의미, 신학적인 의미에서 다 나오게 되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제가 깨달았고 또 두 번째 더 아팠던 것은 인혁당 가족들을 만났을 때 이분도 고문을 당하셨어요. 법정에서 또는 이제 검사 앞에서 아닙니다라고 부정을 했는데 기록에는 시인으로 되어 있는 거예요. 이게 있을 수가 없잖아요. 이래 가지고 그걸 기초로 재판에서 막 사형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사제로써 그냥 아파하고 기도만 해야 되는가.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이런 제도 이러한 체제 우리가 바꿔야 되겠다. 신앙의 이름으로. 이러면서 우리가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죠. 이런 사제들의 어떤 신앙적 체험 이런 내용들을 우리가 함께 접해야 되는데 요새는 남는 거는 피상적인 것만 남는 거예요. 근원적인 것을 우리가 접근해야 되겠죠. ▷굉장히 이제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네요. 그러니까 이제 우리 특히 성직자들이 개개인의 어떤 신자와 개개인의 영혼을 구원을 해야 되는데 어쩔 수 없이 타락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를 그러면 방치할 것인가에 대한 어떤 성직자의 깊은 고민 이런 것들을 신부님이 전해주신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벌써 시간이 거의 다 돼 가지고 지금 제가 한 2~3시간은 얘기를 들어야 될 것 같아요. 사실은 옛날에 87년에 도대체, 그러다가 제가 쓰러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의구현사제단이 50년이 됐고 사실은 이게 50년이 교회에서는 희년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잖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또 50년, 100년을 또 이어가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일단은 두 분께 한번 여쭤보고 싶어요. 정의구현사제단이잖아요. 이게 그리고 많이 지켜보셨잖아요. 지금의 한국 사회의 정의를 가로막는 게 어떤 요소인지 그래서 정의구현사제단은 그러면 어떤 부분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야 되는지 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거는 먼저 우리 기자님부터 먼저 듣고 함세웅 신부님 얘기 듣다가 끝날 것 같아서 기자님한테. ▶김성진: 그냥 이런 생각 많이 합니다. 그냥 기사 쓰면서 평소에 기자로서 그냥 민주주의에서의 삼권분립은 대원칙인 거잖아요. 그리고 당연히 뭐 청탁을 받으면 처벌받아야 되는 거고, 선출직이 아닌 사인이 국정에 개입한 건 처벌받아야 되는 문제인 거고요. 이걸 수사하는 건 당연히 정의인 거고요. 아까 말했던 일본 이야기도 마찬가지인 거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되는 것 이런 게 되게 당연한 건데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이 당연한 거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어서 많은 혼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제가 기사를 쓸 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숨 쉬는 거에 대해서 저희는 당연하게 생각을 하는데 숨 쉬는 걸 왜 하는지 설명하려고 하면 되게 어려운 일이거든요. 물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인 거고요. 정의라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 정의도 그런 건데 그런 것들이 손바닥 뒤집혔다. 그래서 하나하나 설명을 해야 되고 굉장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것들이다. 이거를 언론인 입장에서 되게 힘이 들더라고요. 설명을 한다고 해도 알려지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사제단은 그런 의미에서 그런 걸 되게 어떤 영적인 것도 있겠지마는 시민들 앞에서 먼저 이렇게 뭐랄까 이게 정의라고 하는 거 아까 문정현 신부님 소금 이야기하시듯이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한국 사회에 어떤 현재 정의 뒤집어진 정의를 바로잡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좀 합니다. 그리고 아까 구조 이야기 이런 거 말씀하셨는데 아무래도 암묵적으로 기득권의 힘들이 우리 그 사회에도 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여기 뉴스공감에서 좀 말씀드리고 가고 싶었던 건데 우리 아까 사제단의 위치가 우리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일한 거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가 알기로는 관련해서 우리 그 축하메시지를 창립 50주년 맞아서 주시기로 했고 그리고 번역본까지 마련됐다라고 저희 민들레에서는 취재를 했어요. 사실 그런데 그게 공개되지 않았었거든요. ▷교황님의 메시지가 공개가 안 됐다고요. ▶김성진: 네 맞습니다. ▷이거는 뭐 제가 사실관계를 모르니까 김성진 기자님이 주장을 하시는 부분이고 어쨌든 말씀하십시오. ▶김성진: 저희 취재는 그렇게 됐고 이제 어떤 외부의 다른 힘이었다. 힘이 좀 작용을 한 것 같다는 게 현재까지의 취재 내용인데 어쨌든 간에 그런 보수화된 교회를 또 보면서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인 거거든요. 당연히 축하해 줘야 될 걸 못해줬단 말이죠. 교회도 어떤 이 작용으로 인해서 그런데 우리가 아까 다시 돌아와서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정의라는 거 우리가 숨 쉬듯이 알고 있었던 거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 걸 다시 뒤집으려면 너무 힘이 들어요. 그런데 그거를 지금도 우리 사회가 많이 경직돼 있고 많이 풀렸다고 하지만 지금도 아직 정말 목소리 내기 힘들잖아요. 뭐 평화방송 우리 김준일 평론가도 방심위에서 많이 저기 고초를 겪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걸 다시 뒤집어야 되는 게 한국 사회의 과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정의가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게 당연한 게 아님을 새삼 깨닫고 있는 상황이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의구현사제단의 역할이 필요하고 방금 말씀하신 부분은 제가 조금만 얘기를 하자면 뭐 교회가 보수화됐다라고 하는데 저는 보수, 진보가 꼭 나쁜 게 뭐 개념 가치적으로 개념적으로 어느 게 좋다. 나쁘다가 있는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다만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을 얘기할 수 있는 게 중요하지 않나 그런 취지로 말씀해 주셨다 좀 말씀드리고요. 우리 신부님 정의 어떻게 돼야 될지 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좀 짧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함세웅: 그 이제 마태오 복음 산상수훈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 그 외 말은 다 필요 없고 죄다. 이런 강한 말씀하셨는데 어떤 언론학자가 이 말씀이 전 세계 모든 명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명언이라는 거예요. 이해할 것은 이해하고 안 좋아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 그외 다른 말 덧붙이지 말아라. 이런 내용에서 성서 말씀도 묵상하고 그분의 말씀도 제가 묵상하는데 지금 우리 기자님 많은 말씀하셨지만 이 두 단어 가지고 우리가 설명해야 될 것 같아요. 또 요새 아까도 소금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이 여러분의 세상에 소금이다. 소금이 되어라 그러셨는데 저도 사제입니다만 우리 돌아가신 우리 친구 사제 김태광 신부님이 그러셨어요. 저보고 ‘함 신부, 그런데 우리가 소금 장사한 거 같아.’ 소금이 돼야 되는데 소금 사라고 이러고 있는 거예요. 이게 뭐냐 제가 그 말을 듣고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아서 많이 반성하면서 또 역시 소개를 했는데 이 내용 우리 교회 자체가 근원적으로 묵상해야 될 내용이에요. 평화방송도 똑같죠. 평화방송 존재 이유 그런 거 함께 생각하고 싶고 또 아까 우리 기자님 말씀하셨는데 우리나라 요새 역사 정의, 역사 전쟁이라는 말을 해요. 간단한 게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어요. 그럼 나라를 찾기 위해서 항일 투쟁하는 게 마땅한 거 아니에요. 그러면 항일투쟁이 옳으냐. 일본에 굴복해서 친일파가 되는 것이 옳으냐. 뭐 답이 명확한 거예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역대 독재에서 독재 항거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독재 굴복해서 거기에 지금 말하자면 아부하는 게 옳으냐. 남북이 분단되었어요. 그럼 일치가 되는 게 어디냐 분단과 싸움에서 이익을 얻는 게 어디냐 자명한 거예요. 이런 자명한 원리를 여러 가지 궤변으로 흐트러뜨리는 거예요. 바로 윤석열 현 정권이 바로 그러한 거짓 정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 모든 독재의 총화예요. 검찰독재, 검찰이 진리를 지켜야 되는데 오늘의 검찰 자기네들의 범죄는 조사 안 하잖아요. 제가 명동성당에서 여성검사들 바로 두 분의 여성 검사들 그 검사들을 본받는 남성 검사들이 나와야 된다. 이렇게 제가 호소한 바 있습니다. ▷두 분의 여성 검사라면 박은정, 서지현 검사 말씀하시는 거죠? ▶함세웅: 그다음에 그분들이 말하자면, 법률을 전부 다 배웠잖아요. 다 알아요. 검사들이 배운 대로 정의를 실천해라. 이렇게 제가 호소하고 싶은 거예요. ▷알겠습니다. 시간이 다 돼 가지고요. 더 많이 듣고 싶은데 여기서 좀 마쳐야 되겠고요. 저는 감동적인 게 어쨌든 산상수훈에 나온 거. 예라고 하든지 아니오라고 하든지 명확하게 얘기를 해라. 우리가 조금 다시 한번 새겨들어야 할 말이 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정의구현 사제단 50주년을 맞아서 지난 50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함세웅 신부님 그리고 김성진 민들레 기자 두 분과 얘기 나눴습니다. 두 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소금의 짠맛을 잃어버리면 안 돼요. 늘 성찰해야 합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문정현 신부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쉽게 잊어버리고 너무나 고단해서 곧잘 잃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 50년 그런 세상의 가치를 지키고 이어온 이들의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 창립 50주년을 맞아 두 분을 초대했습니다. 함세웅 신부님 그리고 김성진 민들레 기자님 두 분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함세웅 신부님은 꼭 모셔야 된다. 우리가 내부에서 회의를 했을 때. 왜냐하면, 창립부터 지금까지 모든 역사를 지켜보신 분이니까. 그래서 모셔야 된다고 했고 뭐 뒤에 우리가 또 자세히 얘기를 하겠지마는 김성진 기자님은 최근에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를 다 취재하셨더라고요. ▶김성진: 다 기사로 썼습니다. ▷왜 그렇게 집요하게 그러지? 이렇게 저도 기사를 최근에 다 몰아보면서 이분은 알고 보니 가톨릭 신자도 아직 아니시더라고요. ▶김성진: 마음속 예비신자라고 저는 믿고 있는데 교리 수업을 아직 들을 시간이 없어가지고. ▷과거에 대해서는 정말 제일 잘하시고 물론 지금도 잘 아시지만은 현재의 정의구현사제단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제일 잘 아시는 분 그래서 두 분을 이렇게 모셨습니다. 두 분은 전에 만나신 적이 있으신가요? ▶김성진: 아니 지금 저는 이제 먼발치에서 많이 현장에서 뵀는데 이번에 저희도 인터뷰를 한 번 신부님 모시고 했었는데 제가 직접 가지는 않고 기사만 정리했었는데 저는 이제 신문 기자니까 많이 뵀죠. ▶함세웅: 반갑습니다. 그런데 세례 받고 싶으시다고 그러셨는데 그러면 이미 세례 받으신 거하고 똑같아요. 화세라고 그래요. 마음으로 받는 세례. 화세. 그러니깐 이미 세례 받으신 것과 똑같습니다. ▶김성진: 여담으로 잠깐만 말씀드리면 제가 전례를 하도 이제 많이 봐 가지고 아니 어느 신부님한테 사제단 신부님께 제가 10회 이상 취재를 한 것 같은데 패스트트랙으로 신자로 어떻게 좀 해주시면 안 되냐 했다가 된통 혼났거든요.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다고 기자가. ▶함세웅: 돼요. ▶김성진: 감사합니다. ▷아니 저도 저는 이제 1987년에 세례를 받았는데 그런데 6개월 동안 교리 공부하고 뭐 약간 시험 같은 것도 좀 오래돼서 그런데 그런 것도 보고 그래 가지고 됐는데 아니 기자라고 그렇게 속성으로 이거. ▶김성진: 똑같이 혼났더라고요. 기자면 오히려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 ▶함세웅: 교육을 하고 이제 두 분 중에 한 분이 신자이신 경우에 보통 부인이 신자시잖아요. 남자분이 신자가 아니실 때 보통 짧게 한 석 달이나 두 달 압축으로 교리해서 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그렇군요. 예전에 혼배성사를 또 올려야 되는데 뭐 시간이 없거나 그럴 경우에 그런 식으로 하더라고요. ▶함세웅: 우리 김 기자님 같으신 분은 1년을 취재했으면 그 자체가 그거 교리 공부와 증언이에요. 지금 세례 드려도 돼요. 받으셔도 됩니다. ▷함세웅 신부님만큼 가톨릭에 지금 오랫동안 활동하신 분이 없으니까 42년생이시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올해 한국 나이 그러니까 만 나이로 82세셔서 제가 어떻게 이렇게 저도 이제 함세웅 신부님처럼 늙고 싶다. 이런 생각을 좀 많이 했습니다. ▶함세웅: 모세가 80세 이렇게 해방 운동에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아론이 세 살 차이니까 83살, 그러니까 80이 해방운동의 투신 시기입니다. ▷알겠습니다. 그 어떻게 투신하시는지는 뒤에 좀 들어보고 우리는 먼저 앞에 역사에 대해서 이제 50주년이거든요. 1974년인 거죠. 제가 한 얼마 안 됐는데 그 이부영 전 동아일보 기자였고 뭐 열린우리당 의장도 하셨는데 지금 현재 직책은 자유언론실천재단 명예이사장을 하셨는데 모셨거든요. 그런데 동아일보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또 공교롭게 1974년이더라고요. 그때 제가 또 1974년생이라서 그때 태어나서 굉장히 뭔가 이 74년이 역동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났구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게 1974년에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이 됐잖아요. 어떻게 결성이 됐는지 우리가 뭐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마는 지학순 주교의 연행 사건으로 시작됐다. 이렇게 그 뭐 글에서나 기사에서는 볼 수 있는데 비사를 좀 설명해 주시죠. ▶함세웅: 다 잘 아실 텐데 1974년이 아주 고난의 해예요. 1월부터 4월까지 긴급조치 1호, 2호, 3호, 4호 박정희 그 당시 대통령이 그 긴급 조치를 발표를 했는데 그 당시 긴급 조치 내용은 유신헌법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면 안 돼요. ‘헌법을 개정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해도 체포가 돼서 구속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 헌법의 내용 중에 모순이 많습니다만 더 기가 막힌 내용은 뭐 예를 들어서 국회의원 300명이면 100명을 대통령에 임명을 하는 거예요. 박정희 대통령이 나머지 200명만 선출하고 그럼 100명은 항상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 뭐 조금만 뽑으면 항상 과반은 물론이고 3분의1을 항상 장악할 수 있는 그 헌법성 아주 불의의 장치를 마련해 놓아서 있었거든요. 그래서 우리 장준하 선생님하고 백규환 선생님 두 분이 그 전에는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막 데모도 했습니다만 대표적으로 두 분이 헌법 개정 소원을 했어요. 청원을 그런데 헌법 개정청원 서명운동을 한다는 것이 긴급조치에 위반이 된다고 그래서 체포가 돼서 구속이 되신 거예요. 기가 막힌 사건이죠. 그리고 그 뒤에 뭐 목사님들이라든지 또 많은 분들이 구속이 되셨는데 저희들은 뭐 젊은 사제로서 보좌 신부였어요. 저는 그 당시에 연희동 보좌인데 뭐 제가 마음이 아프지만 뭐 할 일도 없고 답답하기만 했었는데 그해 4월에 민주학련 사건이라고 한 200여 명 넘는 우리 청년 학생들이 구속이 된 거예요. 가슴이 찢어지고 아프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마침 또 그 전에 73년 8월에 연희동 성당 보좌로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에서 납치되어 오신 거예요. 그런데 그분이 신자시니깐 가서 봉성체를 요구하셔서 그때 방문했는데 방문 못 하게 하는 거예요. 정부 부원들이 차단해서 하루 종일 끌고 다니는 거예요. 제가 그래서 나는 봉성체하러 갔는데 봉성체 가족들이 원했습니다. 그래서 안 된다는 거예요. 기가 막힌 걸 보면서 이거 불의한 정권 사제가 신자를 찾아가서 영성체, 봉성체도 해줄 수 없는 이러한 상황은 문제가 있다. 이렇게 늘 답답한 상황을 안고 있었던 터에 그 다음에 민청련 사건이 났는데 또 기가 막힌 것은 우리 지학순 주교님이 7월 6일에 김포공항에 도착하셨는데 중앙정보부원들에서 납치되어 가신 거예요. 그리고서는 이제 아무도 몰랐는데 며칠 뒤에 김수환 추경님이랑 주교님들이 아시고 말씀하셔서 우리가 7월 9일이 주일이었는데 주일미사 끝나고 수도권에 원주 신부님들과 춘천, 수원, 서울 한 30~40명 신부님들이 김수환 추경님을 찾아가 뵀어요. 저녁 한 9시쯤에 그래서 김수환 추경님 답답해하시던데 저희들이 여쭤봤죠. 그랬더니, 김수환 추기경님 정보부에 지금 체포되어 계신다. 그래서 저희들이 좀 젊으니깐 안 된다. 주교를 불법 납치해 간 이러한 사건에서는 이의를 제기해야 됩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또 민주 시민의 이름으로 강하게 요청했더니, 김수환 추기경이 조금 당황하시더니 저희도 너무 강하게 얘기를 하니깐 그분 안경 너머에 눈물이 흐르는 걸 제가 봤어요. 그분이 전혀 절벽이었는데 뜻밖의 젊은 사제들이 와가지고 뜻을 모으자 석방 운동을 하자 이렇게 주장을 하니깐 이분이 좀 힘을 얻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들이 그다음 날 예정됐던 7월 10일 주교 회의가 예정했던 우리 인권회복미사 넓은 의미에서 그런 석방운동의 미사를 봉헌했는데 그때 전국에서 모든 주교님이 다 오셨어요. 대구교구 주교님만 오시지 않고 저희들 다 미사일 함께 했는데 곧 아침에 김재규 차장, 중앙부처장이 김수환 추기경님을 찾아오셔서 박정희 대통령님을 특별 면회 하셔야 됩니다. 면담을 주선해서 김수환 추기경님은 저녁 6시에 청와대로 가시기로 하신 거예요. 그런데 저희들은 그 면담을 반대했죠. 무슨 면담이냐. 우리가 미사 보내야 됩니다. 그러는데 또 추경님은 사목적으로 대통령의 면담이니까 그 미사 때 인사만 하시고 내가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러 가야 됩니다. 지학순 주교님 문제로 갑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씀만 하시고 청와대로 가셨어요. ▷박정희 대통령 면담을 해 가지고 지학순 주교님을 석방하는 거를 요청하려고 만나신 건가요? ▶함세웅: 그 김재규 중앙정부 차장이 이 시국에서 대화할 수 있는 분은 김수환 추기경밖에 안 계시다. 대통령을 일단 만나서 대화를 하십시오. 이런 자리를 김재규 차장이 마련한 거죠. ▷전반적으로 이렇게 좀 시국이 어수선하니 이거를 조금 중재를 하거나 좀 더 대통령을 설득할 분으로 김수환 추기경이 어떻게 보면 낙점이 되신 거죠. ▶함세웅: 그것이 이제 김재규 차장의 좋은 생각이었죠. 그래서 윤홍희 주교님이 미사주례 하시고 저희들이 미사주례한 다음에 김수환 추기경님은 홍인수 비서 신부님하고 청와대를 갔어요. 그래서 한 3시간 뒤에 오셨는데 오시더니, 아마 잘될 것 같다. 그러고 9시 반쯤 지학순 주교님이 또 나오신 거예요. 저희들은 철야 기도를 계획을 했는데 그러니깐 너무 기쁘잖아요. 대부분 신자들은 또 가시고 그랬는데 그때 저희들이 깨달은 게, 아니다. 지학순 주교님의 석방만을 위해서 우리가 모인 게 아니다. 그렇게 모였다면 너무 이기적인 기조가 아니냐. 지금 많은 목사님 청년 학생들이 감옥에 계신데, 그분들의 석방을 위해서 우리가 철야기도 계속 해야 된다. 그렇게 또 뜻을 모아서 많은 수도자들, 신부님들, 신자들 한 천여 명 남아서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그게 지학순 주교님 석방운동과 함께 저희들이 세상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고 특별히 감옥에 계실 분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첫 번째 계기가 되었죠. 은총의 계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렇군요. 그러니까 처음에는 단순히 체포되신 지학순 주교님의 석방위에서 했지마는 다른 사람들도 이를테면 뭐 반독재 투쟁을 한다든지 여러모로 고초를 겪고 있는데, 우리가 이거에 눈감을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많은 사제 신부님들한테 좀 있었다라고 보시는데 김성진 기자님은 이런 히스토리는 어느 정도는 알고 계셨죠? ▶김성진: 뭐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또 이렇게 자세하게 또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 당시에 또 얼마나 또 어두운 상황이었는지 저는 87년생이거든요. 한참 어린 세대기 때문에, 어쨌든 그 어두운 시절에 대해서 역사책 하나 지금 듣는 기분이었고. ▶함세웅: 그런데 그 당시는 좀 어려웠던 게 농담이지만 어린이들이 울잖아요. 울면 중앙정보부 온다고 그러면 뚝 그쳤다는 그런 말이 있을 정도예요. 중앙정보부가 그냥 전국을 지배해서 사서 모든 저나 도청이고 또 차단이고 연예인이고 불법으로 아무 때나 중앙정보부는 뭐 누구든지 중앙 장관들도 데려가서 막 때리고 막 그랬을 때였어요. ▶김성진: 저도 87년 5월생인데 사실 6월 항쟁 이제 기폭제가 되신 게 사제단이시잖아요. 저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너 때문에 이제 시내에서 최루탄 많이 나오니까 이불로 창문을 막고 널 키웠다. 이런 얘기하면서 사제단 이야기들을 되게 많이 해주셨거든요. 그리고 제가 이제 광주 출생이다 보니까 80년 5월에 또 조비오 신부님이나 여러 신부님들이 죽음의 행진을 하시면서 시민들 지켜주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듣고 자랐는데 이제 방금 또 이렇게 말씀하신 걸 또 듣고 나니까 어떤 그 숨도 쉬기 어려웠던 시절에 민중들에게 사제단이 상당히 처리하기도 하시면서 그 어쨌든 어두운 시간에 한 거잖아요. 그게 어쨌든 상당히 등불이 좀 되지 않았을까라는 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이제 정의구현사제단이 어떤 얘기를 했는지 듣고 ‘1987’ 영화로도 나왔는데 신부님 역할도 있었어요. 그 안에 그런데 어쨌든 그 얘기도 좀 뒤에 해보고요. 좀 앞단으로 넘어가서 궁금한 게 제가 하나가 있는데 왜 이름을 정의구현사제단이라고 지었는지 이거 누가 제안을 해서 정의라는 말이 들어갔는지 좀 궁금해요. 그러니까 뭐 사실 평화도 있고요. 이거 우리는 평화방송이잖아요. 가톨릭이 지향하는 것도 있고 자유, 평등, 통일 다양한 언어들이 있을 텐데 단어들이 있을 텐데 왜 정의 구현이었냐. ▶함세웅: 제가 여러 차례 글도 쓰고 말씀도 드렸었는데 우선 1974년 7월 10일 첫 번째 공동체 미사일을 봉헌한 다음에 그날 철야기도를 할 때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었어요. 특별히 교회에 대한 반성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초로 해서 사목헌장을 기초로 해서 교회가 세상으로 나아가야 된다. 세상을 껴안아야 된다. 그러한 큰 가르침을 전제로 한 다음에 그 해가 또 75년이 은총의 희년이었는데. 그 당시에 7월 5일 김대건 신부님 그 축일에 한국 주교단에서 그 교서를 발표했어요. 그 교서가 순교자들의 정신으로 우리가 성화되어야 될 뿐 아니라 아니라 세상도 변화시켜야 된다. 이런 식의 내용들이 성년 그 교서에 담겨져 있었거든요. 그러니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과 주교단의 그 사목 교서를 중심으로 해서 그날 밤 철야기도를 하면서 토론하고 대화를 했어요. 이제 많은 게 나왔는데 뭐 정말 신선한 내용들이었어요. 교회가 정말 더 과감하게 세상을 품어야 된다. 세상은 나가야 된다. 이런 얘기에서부터 특별히 사제들에 대한 지적, 사제들이 너무 정말 권위적이다. 또 때로는 무리하다 그래서 사죄에 대한 고발이 많이 나왔어요. 그러니까 저희들이 많이 반성해야 되겠죠. 이제 그런 내용들을 귀담아 들으면서 또 하나 아주 놀랄 만한 내용은 어떤 조에서 나온 의견이었는데 철야기도나 이 기도 모임이 오랫동안 지속되긴 어렵습니다. 지금은 지학선 주교님이 일단 구속되었다 나오시긴 했습니다만 또 많은 분들이 구속되어서 유신 체제를 우리가 바꿔야 된다는 시대의 명령이 있기 때문에 모였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진다면 주교님들이 이 사제들의 모임을 통제할 겁니다. 교회는 언제나 위에서부터 명령체계가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와는 조금 더 어긋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깜짝 놀랐어요. 그럴 수가 있을까? 그런데 그 뒤에 50년을 우리가 되돌아보니까 역시 이제 교회 안팎에서 저희들이 제재 받고 통제받았던 그러한 내용들이 많이 있는데, 그 조례에서 나왔던 의견들이 어떤 의미에서 예언이 되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반성을 하는 겁니다. 어쨌든 매 월요일에 각 교구를 순회하면서 저희들이 미사일 봉헌했었는데 미사 봉헌하면서 느꼈던 점이 이걸 체계화시켜야 되겠다. 조직화해야 되겠다. 그런 요구도 있었어요. 신부님들끼리 이제 각교구 그다음에 우리 서울신학교 하나고 광주신학교에서 막 신부님들 1, 2년밖에 안 되셔서 나오신 분들이. 그래서 주로 서울신학교 출신들이니까 전부 다 한 가족이에요. 한 800명 사제들이 다 아시는 거예요. 서로들. 그래서 저희들이 이제 조직화를 하면서 각 교구하고 연락을 했는데 그래도 뭔가 이름을 지어야 되지 않느냐. 그래서 원주교구 지학순 주교님 계신 원주교구 성당에 가서 기도도 하고 모임을 갖다가 아까 말씀하신 대로 뭐 평화에서부터 정의, 인권, 자유, 평등, 통일 많은 내용들 자선서부터 안 나온 이름이 없습니다. 이제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는데 골롬반회 선교사 신문 한 분이 저를 툭 치더니, 잠깐 나오라 그러시더니 이런 토론 참 좋은데 정의 유스티시아, 영어로 저스티스 정의를 선택해라. 정의란 개념이 하느님을 가장 대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속성이다. 하느님의 이름이 참 많거든요. 자비하신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많은데 정의 하느님이 모든 하느님의 속성을 포용할 수가 있다. 정의 때문에 하느님의 의로운 심판이 있는 거다. 선의는 상을 주고 악인들은 벌을 주시고 어떤 의미에서 정의가 사랑보다 더 큰 넓은 개념이다. 정의를 선택을 해라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대표 신부님인 박상래 신부님을 찾아가서 이런 골롬반회 신부님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 신부님 성서학 전공하신 신부니까 즉시 알아들으시죠. 그래서 그 의견을 낸 다음에 신부님들께 합의해서 정의라는 이름을 선택을 했어요. 그런데 정의를 선택했는데 우리 사제단이 한 교구 사제가 아니고 여러 교구 사제들이니까 전국사제단을 꼭 해야 된다. 천주교는 물론이고 교구의 벽이랄까, 한계를 넘어서는 전국의 모임이라는 이런 식의 의미로 우리가 이름을 지은 건데 50년을 맞는 올해 지난해 저희들이 세미나 하면서 성서 전공하신 신명숙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해 주셨어요.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이거 아름답다. 이거 1784년 이승훈의 세례를 받고 나셔서 성직제를 만드셨어요. 그러니까 옛날에는 가성직 제도라고 그랬는데 가성직 제도란 표현이 부족하다. 자생적 성직제다. 그분들 스스로 주교 사제라고 하시면서 자생적 성직제를 이루셨어요. 그 1784년에 자생적 성직제와 맥을 같이하는 전국사제단의 의미가 있다. 이건 천주교 세계 역사상 전국사제단의 모임 없었다. 이 부분은 긍지를 가지고 자랑을 해라. 이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작년에 심포지엄 할 때 신부님의 의견을 담아서 발표를 했는데 전 세계에서 전국 사제들의 모임은 한국 교회 유일무이하는 긍지가 있다는 측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면 어쨌든 뭐 정의로운 하나님, 심판의 하느님 또 벌주시고 상주시는 그런 하느님이 그런 교리상으로 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사랑구현사제단 이런 거보다는 훨씬 더 지금의 지향하는 가치가 맞지 않나. 뭐 사랑의 하느님도 맞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공교롭게 굉장히 잘 지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김성진 기자님께 좀 여쭤볼게요. 이제 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를 매번 기사로 많이 쓰셨어요. 그러니까 뭐 진짜 많더라고요. 그래서 다 읽는 것도 좀 힘들었는데 그거를 보시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그리고 사제님들이 이제 정의구현사제단이라는 게 사실은 무슨 뭐 가입 원서를 내고 무슨 심사를 하고 그런 게 아니라 어떤 신부님이라도 편하게 본인이 원하면 소속으로 활동을 할 수 있으니까 신부님들보다 조금 규격화되지 않고 좀 다 다른 개성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 관통하는 게 좀 어떤 거였는지 이런 게 좀 궁금합니다. ▶김성진: 뭐 관통이라고 하면 뭐 하나가 좀 생각나는데 먼저 좀 이번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까 그 이번에 50주년 기념미사 할 때 우리 그 이용훈 주교님께서 축하 메시지로 사제단에 대해서 평가하실 때 어떻게 하셨냐면 사회적 부패 현상을 좌시하지 않고 정의로운 예언자의 목소리를 냈다 이렇게 표현을 하셨거든요. 제가 이거와 관련돼서 가장 인상 깊은 게 처음에 이제 지난해 3월 20일에 전주 풍남문에서 9년 만에 시국미사를 드린다고 할 때 내려갔을 때 사실 그때만 해도 어떻게 보면 지금은 저희가 총선 뒤니까 어떻게 보면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조금 더 많이 나오고 뭐 이런 상황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정권과 정반대에 있는 시민단체조차도 퇴진이라는 말을 되게 꺼내기 어려웠던 많이 해봐야 정권 심판 정도 이야기했고 당시 생각을 해보면 강제징용 제3자 해법 문제 때문에 상당히 이제 좀 전국이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그 정도 목소리밖에 안 나왔어요. 그런데 신부님들께서 제가 깜짝 놀랐던 게 기자로써는 전주의 풍남문 한 천여 명 정도의 이제 신자들이 나와 계시는데 거기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 탄핵하라. 이런 메시지를 먼저 전하시더라고요. 그 부분을 보면서 이게 일맥상통한 행사의 어떤 메시지나 이미지를 생각을 해보면 하나님의 제자라고들 신부님 표현하시잖아요. 하나님의 종이나. 그분들이 먼저 시민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쥐고 좀 가시는 거 아니었나. 저는 그런 생각을 좀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 기사 제목을 좀 몇 개 소개해 드리면 2023년 3월 20일 전주 풍남문의 시국미사였는데 정의구현사제단 시국미사 윤석열 퇴진 서곡. 세요. 그러니까 그냥 보기만 해도 이거 너무 센 거 아니야. ▶김성진: 그때 성명서 자체를 다룬 그 기사들도 거의 없었어요. ▷성명서를 다루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그걸 기사로 쓰신 건 뭐 2023년 4월 17일 마산에서 시국기도회가 있었는데, 사제단 우리 요구는 단순하다. 실격 윤 정부 퇴진. 그래서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도 많이 있었고 뭐 퇴진도 신문님들이 언급을 했단 말이에요. 조금 이제 좀 불편한 질문들 드려야 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종교는 현실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뭐 가톨릭뿐만이 아니라 여러 종교에서도 어느 정도는 일종의 불문율처럼 가지고 있는데, 정의구현사제단은 현실정치에 너무 세게 개입을 하고 특히 신부님들이 이렇게 뭐 정권 퇴진 이런 거를 막 미사에 얘기를 하는 게 이게 맞느냐. 신자들도 사실은 뭐 정치적, 이념적 스펙트럼이 굉장히 다양하잖아요. 신부님들도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이게 정의구현사제단이 마치 가톨릭 천주교를 대표하는 것처럼 이렇게 나와 가지고, 맨날 정권 퇴진, 윤석열 정권 퇴진 막 이런 거 얘기를 하는 게 맞느냐. 이런 시각들이 좀 있거든요. 신부님은 좀 어떻게 보십니까. ▶함세웅: 그거를 옳고 그른 잣대로 접근하기보다는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될 것 같아요. 돌아가신 문익환 목사님께서 스위스의 철학 신학자 칼 발트를 소개해 주시면서 우리 사제들에게 그 목사님들이죠. 제자들은. 스승님,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설교, 감동적인 설교를 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 질문을 드렸더니, 그분이 나는 한쪽에 성경을 놓고 또 한 쪽의 신문을 놓고 번갈아 읽는다. 성경에는 삶의 원리와 방향 우리 지침이 있고 이 신문에는 우리 현실의 이야기가 있다. 그 현실의 이야기를 어떻게 성서와 접합하면서 아름답게 이끌어 가느냐가 목회자들의 소명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제가 문익환 목사님 그 말씀을 드리면서 또 사제들에게 그 말씀을 계속 전해주고 있는데, 성경에서 정치를 빼면 남는 게 없습니다. 성경 자체가 하느님의 구원의 정치예요. 이 부분을 이해해야 되는데 우리가 역사 과정을 지나면서 정치와 교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마찰이 있었기 때문에 그 이해가 참 부족했었어요. 그게 1970년대 독재 정권 치하에서 그 신학자들이 어떤 어떻게 선언했냐 하면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정치적 존재다. 정치를 빼고 어떻게 인간을 얘기할 수 있는가 우리 인간의 관계 자체가 정치적이다. 거기서 정치에 참여하지 말거나 정치적 행위를 하지 말라는 의미는 협의의 의미에서 대통령이 된다든지 정당 활동한다든지 또는 뭐 이제 장관을 한다든지 이런 의미가 정치가 되겠죠. 그러나 잘못된 정치를 구원하기 위해서 성서적인 잣대로 얘기하는 것은 복음의 선포가 되겠죠. 그럼 복음선포라는 것은 모든 사람을 전부 다 구원해야 돼요. 모든 사람을 정치까지도 구원을 해야 돼요. 그럼 정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언어로서 얘기를 해야 되겠죠. 이제 정치가 잘못되었는데 정치만 눈 감느냐 안 하는 거죠. 잘못된 정치 추적하고 정화시키고 정치 현장과 모든 정치인들을 구원의 범주로 이끌어야 된다는 식의 의미 그래 이렇게 우리 이해를 해야 되는데 지금 조금 부정적으로 남을 이제 폄하하기 위해서 부정을 하기 위해서 모든 걸 정치적, 우리 투표 행위가 정치 아니겠습니까? 사제들 수도자도 다 투표합니다. 이제 그러나 사제 수도자가 예를 들어서 뭐 대통령을 지망한다. 그러나 외국에는 교황님의 동의가 있으면 대통령도 할 수 있고 다 할 수가 있어요. 신전 정치에서는. 정치에 대한 어떤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금 바꿀 필요가 있겠다. 정치도 구원의 대상이다. 정치를 우리가 외면해서는 구원사를 얘기할 수 없다. 이런 내용을 우리가 알아야 될 것 같아요. 만일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침묵하셨다면 안 돌아가셨어요. 그 당시에 정치적인 역량을 가지고 있는 사제 또는 사두개인,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을 무섭게 꾸짖으셨거든요. 예언자적인 말씀으로. 이 부분을 이해해야 되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신자들이 정치와 신앙의 아주 불가분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서부터 나온 잘못된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말씀하셨다시피 정치와 신앙, 종교를 완벽하게 분리하는 건 불가능하고 오히려 과거 예수님도 어떻게 보면 많은 뭐 정치인들이나 아니면 타락한 성직자들을 꾸짖으셨던 거 그런 것도 일종의 정치행위로 볼 수가 있다. 이렇게 말씀해 주셨어요. 제가 좀 김성진 기자님께 궁금한 거는 사실 신부님들 입에서 어쨌든 퇴진 뭐 이런 얘기가 나오게 된 계기가 있을 거 아니에요. 이게 제가 좀 흐름을 보니까 이태원 참사나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사망을 하고 나서 이런 흐름이 두드러지지 않았나. 그런데 전체적으로 시국미사일 보면서 왜 그냥 우리가 제목으로 한 줄로 보는 게 아니라 그런 맥락들이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설명을 좀 해주시죠. ▶김성진: 아까 말씀하셨지만, 이태원 참사 유가족 같은 경우에는 저희도 민들레에서 명단을 발표했었지만 사제단에서도 기도를 통해서 이름들을 하나씩 짚으면서 어떤 그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어떤 진정한 애도 뭐 이런 분들 이런 것들을 했었죠. 그리고 그 뒤로 흐름들을 말씀하셨으니까 아까 말했던 강제징용 문제들 우리가 절대 정의로서 그러니까 전범국인 일본이 뭐 강제징용 피해자나 어떤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서 반드시 사과를 해야 되는 거는 어쨌든 피의자가 피해자한테 사과하는 건 당연한 정의인 거잖아요. 가해자가 피해자한테. 당연한 것들이었고 그리고 그 와중에 또 노동자도 돌아가셨었거든요. 고 양회동 열사 건설노동자셨는데 그런 분들 돌아가셨을 때도 그 돌아간 노동자의 그 약자의 그런 안타까움들 이런 것들을 사제단에서 계속 이제 시국미사로 이렇게 봉헌을 해 오셨죠.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흐름이 어쨌든 국민의 생명이나 아니면 어떤 뭐 강제징용 노동자 우리 예전에 피해자들에 대해서 윤석열 정부가 제대로 보호를 해주지 않는다는 거 그리고 일본에 너무 과하게 그런 것들을 직접적으로 일종의 뭐 거래 뭐 이런 거를 통해서 이분들 어떤 권리가 좀 존중받지 않는다고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뭐 정권 퇴진이라든지 이런 센 얘기까지 나온 거 아닌가. ▶김성진: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제단께서 자세히 보면 이제 뭐 가령 미추홀구에 갔을 때는 주안1동 성당에서. 그때 물론 거기서 옛날에 인천 항쟁도 있고 했었지만 그런 역사적 의미도 있지만 그 당시에 이제 미추홀구 전세 사기로 많은 분들이 또 희생됐었잖아요. 그분들에게 연대 발언 기회를 줘서 그 하나님께 또 그 답답한 마음을 좀 토로하게 해주는 그런 것들도 있었고, 말씀 나온 김에 생각났던 게 7월에 다시 한번 작년 7월에 전국 전주 풍남문에서 다시 한번 시국기도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날 비가 되게 많이 왔었는데 그때 이태원 유가족 아버님을 모셔 가지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제 그분께서 오송 지하차도 참사 때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연대 발언을 하면서 또 많은 분들을 더 눈물 나게 했거든요. 이런 것들을 사제단이 이렇게 이끌어오셨다.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정의구현사제단의 지금까지 활동들을 뭐 신부님이 더 잘 아시겠지만 제가 짧게 요약을 하면 70년대에는 박정희 독재에 대해서 주로 한 거하고 반대하는 거를 했고 80년대에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실체 그때는 이거 폭동이라고 얘기했으니까 그거를 알리는 데 많이 주력을 하고 또 1987 박종철 고문치사 이후에 그걸 폭로를 해서 87년 민주항쟁은 기폭제가 됐던 것들을 했던 거 같고, 90년대에는 아무래도 국가보안법 폐지, 평화 통일운동 이런 것들을 많이 했던 거 같고, 2000년대에는 특히 김용철 변호사와 함께 삼성 엑스파일 문제 이런 것들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뭐 2010년대 들어와서는 4대강 반대 사업이라든지 뭐 2000년대 후반부터 해 가지고 이렇게 좀 생태운동도 이렇게 했던 것 같은데, 제가 궁금한 거는 이제 신부님은 어쨌든 이 과정을 다 지켜보셨잖아요. 어떤 것들이 좀 많이 기억에 남으셨는지 좀 궁금해요. ▶함세웅: 뭐 그런 부분보다는 조금 더 근원적인 걸 접근하고 싶은데요. 저희들도 사제가 될 때까지는 사실 1960년대 이전에는 세상은 원수였어요. 우리에게 3가지 삼구라 그래서 원수가 있어요. 이 육체가 원수고 세상이 원수고 마귀가 원수예요. 삼구를 끊어버려야 된다고 우리가 교육을 받았었거든요. 신앙생활의 핵심이었어요. 그런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어떻게 세상이 원수냐. 우리가 세상 안에 사는데. 세상과 함께 세상 안에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으로 나가야 된다. 이렇게 개방적인 구원관이 펼쳐진 것이죠. ▷그때가 요한바오로 2세 때. ▶함세웅: 제2차 바티칸 공의회 62년부터 65년까지. 그때 요한 23세와 또 바오호 6세 때 그때 그런 이제 교회 큰 변화 운동이 있었고, 그다음에 우리 자신 인간이 선행을 하잖아요. 내가 선행을 하는데 어떻게 이 육체를 거부하느냐. 그러니까 육체를 긍정하면서 해야 된다. 마귀는 우리가 끊어버려야 되겠지만 계속 육체에 대한 긍정과 세상에 대한 긍정 이런 신학적인 큰 변화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런 내용들을 우리가 깨달아야 되겠죠. 그리고 그 당시에는 또 라틴어로만 미사를 지냈었잖아요. 그런데 라틴어가 아니라 각자 자기네 모국어로 미사 봉헌해라. 그리고 현장, 자기네 나라 문화와 정치, 경제, 사회 그것이 바로 교회의 자리다. 이런 신학적인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이제 이런 의미에서부터 교회관과 신앙이 성장하게 되게 된 것이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6개 문헌 중에서 뭐 이제 전례헌장부터 교회헌장, 개시헌장, 사목헌장 4개 헌장이 있는데, 다 중요한 헌장인데 마지막에 합의된 그 사목헌장 기쁨과 희망이라는 사목헌장이 바로 세상을 품어야 된다. 이 내용을 선언했어요. 그 수 21번의 공의회 때 이런 문헌이 처음 나온 거예요. 세상을 품어야 된다. 세상과 함께 해야 된다. 이런 내용에서 정말 교회에 어떤 혁명적 변화랄까 이런 것이 일어났던 것이죠. 이제 이런 변화를 우리가 알면 그러면서 성서를 그런 시각에서 다시 보니까 성서의 역사적인 내용도 있지만 예언자들의 고발이 있어요. 예언자들은 왕과 잘못된 사제들 권력자들 부자들을 무섭게 꾸짖는 내용들이에요. 그리고 또 지혜 문학 사상에 이렇게 있게 돼있는데 이러한 내용들을 우리가 껴안으면서 사실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자. 이렇게 된 것이죠. 1960년대부터 교회가 변화되었던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세상을 진단하고 바라봐야 될 거 같아요. 그러면서 늘 성서의 눈으로 세상을 진단하고 성서의 눈으로 세상을 바꾸고 성서의 눈으로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자. 이런 식의 의미에서 새로운 신학 사조와 영성 사조가 형성된 것입니다. 이제 이런 측면에서 1970년대 마침 지학순 주교님 구속 사건과 함께 세상에 뛰어들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죠. 이제 그러면서 예수님이 왜 돌아가셨나. 새롭게 물음을 제기하는 거예요. 우리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교리적인 설명도 있습니다만 더 크게 세상의 불의를 타파시키기 위해서 오신 분이다. 이 부분에 대한 의미 그게 십자가가 바로 정의의 상징이다. 이런 내용들을 깨닫게 되었고 제가 사제로서 깨달은 것은 고백소에서 신자의 고백을 듣지 않습니까? 어떤 공무원이 와서 고백을 하시는데 제가 많이 반성을 했어요. 신부님 제가 이 봉급으로만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가족이 5명인데 이 봉급으로 못 사니까 제가 적당히 부정을 합니다. 뇌물을 받는다. 그런데 오늘 이거 고백을 합니다만 그렇다고 이걸 완전히 끊어야 되는데 끊지를 못합니다. 한계가 있으면 어떡합니까? 이렇게 고백하시는데 제가 뇌물을 받아서 안 됩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씀 못 드리겠더라고요. 그냥 고백만 들었을 뿐이지 그러면서 제가 사전에서 고민했던 것이 신자에게 양심의 편안함과 구원을 주기 위해서는 분이 뇌물을 받지 않아도 살아야 될 그러한 제도 개선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개인적인 분이 아무리 양심이 좋다 하더라도 이 양심의 양심대로 살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면 살 수가 없는 거예요. 게 양심 억누르는 이 국가 구조를 바꿔야 되겠다는 신학적인 깨달음이 있었던 것이죠. 이제 제가 강의하면서 글을 쓰면서 이런 예를 많이 들었어요. 우리 개인의 구원을 위해서는 사회와 국가와 체제가 잘못되었을 때 그 체제를 바꾸는 것이 사목적인 우리들의 책무다. 이런 식의 의미,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된다는 이런 식의 의미, 신학적인 의미에서 다 나오게 되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제가 깨달았고 또 두 번째 더 아팠던 것은 인혁당 가족들을 만났을 때 이분도 고문을 당하셨어요. 법정에서 또는 이제 검사 앞에서 아닙니다라고 부정을 했는데 기록에는 시인으로 되어 있는 거예요. 이게 있을 수가 없잖아요. 이래 가지고 그걸 기초로 재판에서 막 사형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사제로써 그냥 아파하고 기도만 해야 되는가.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이런 제도 이러한 체제 우리가 바꿔야 되겠다. 신앙의 이름으로. 이러면서 우리가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죠. 이런 사제들의 어떤 신앙적 체험 이런 내용들을 우리가 함께 접해야 되는데 요새는 남는 거는 피상적인 것만 남는 거예요. 근원적인 것을 우리가 접근해야 되겠죠. ▷굉장히 이제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이 있네요. 그러니까 이제 우리 특히 성직자들이 개개인의 어떤 신자와 개개인의 영혼을 구원을 해야 되는데 어쩔 수 없이 타락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구조를 그러면 방치할 것인가에 대한 어떤 성직자의 깊은 고민 이런 것들을 신부님이 전해주신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벌써 시간이 거의 다 돼 가지고 지금 제가 한 2~3시간은 얘기를 들어야 될 것 같아요. 사실은 옛날에 87년에 도대체, 그러다가 제가 쓰러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의구현사제단이 50년이 됐고 사실은 이게 50년이 교회에서는 희년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잖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또 50년, 100년을 또 이어가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데 일단은 두 분께 한번 여쭤보고 싶어요. 정의구현사제단이잖아요. 이게 그리고 많이 지켜보셨잖아요. 지금의 한국 사회의 정의를 가로막는 게 어떤 요소인지 그래서 정의구현사제단은 그러면 어떤 부분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춰야 되는지 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거는 먼저 우리 기자님부터 먼저 듣고 함세웅 신부님 얘기 듣다가 끝날 것 같아서 기자님한테. ▶김성진: 그냥 이런 생각 많이 합니다. 그냥 기사 쓰면서 평소에 기자로서 그냥 민주주의에서의 삼권분립은 대원칙인 거잖아요. 그리고 당연히 뭐 청탁을 받으면 처벌받아야 되는 거고, 선출직이 아닌 사인이 국정에 개입한 건 처벌받아야 되는 문제인 거고요. 이걸 수사하는 건 당연히 정의인 거고요. 아까 말했던 일본 이야기도 마찬가지인 거고,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되는 것 이런 게 되게 당연한 건데 요즘 한국 사회에서는 이 당연한 거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어서 많은 혼돈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제가 기사를 쓸 때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숨 쉬는 거에 대해서 저희는 당연하게 생각을 하는데 숨 쉬는 걸 왜 하는지 설명하려고 하면 되게 어려운 일이거든요. 물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인 거고요. 정의라는 것도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 정의도 그런 건데 그런 것들이 손바닥 뒤집혔다. 그래서 하나하나 설명을 해야 되고 굉장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것들이다. 이거를 언론인 입장에서 되게 힘이 들더라고요. 설명을 한다고 해도 알려지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사제단은 그런 의미에서 그런 걸 되게 어떤 영적인 것도 있겠지마는 시민들 앞에서 먼저 이렇게 뭐랄까 이게 정의라고 하는 거 아까 문정현 신부님 소금 이야기하시듯이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들이 한국 사회에 어떤 현재 정의 뒤집어진 정의를 바로잡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좀 합니다. 그리고 아까 구조 이야기 이런 거 말씀하셨는데 아무래도 암묵적으로 기득권의 힘들이 우리 그 사회에도 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여기 뉴스공감에서 좀 말씀드리고 가고 싶었던 건데 우리 아까 사제단의 위치가 우리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일한 거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가 알기로는 관련해서 우리 그 축하메시지를 창립 50주년 맞아서 주시기로 했고 그리고 번역본까지 마련됐다라고 저희 민들레에서는 취재를 했어요. 사실 그런데 그게 공개되지 않았었거든요. ▷교황님의 메시지가 공개가 안 됐다고요. ▶김성진: 네 맞습니다. ▷이거는 뭐 제가 사실관계를 모르니까 김성진 기자님이 주장을 하시는 부분이고 어쨌든 말씀하십시오. ▶김성진: 저희 취재는 그렇게 됐고 이제 어떤 외부의 다른 힘이었다. 힘이 좀 작용을 한 것 같다는 게 현재까지의 취재 내용인데 어쨌든 간에 그런 보수화된 교회를 또 보면서 한국 사회 역시 마찬가지인 거거든요. 당연히 축하해 줘야 될 걸 못해줬단 말이죠. 교회도 어떤 이 작용으로 인해서 그런데 우리가 아까 다시 돌아와서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정의라는 거 우리가 숨 쉬듯이 알고 있었던 거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 걸 다시 뒤집으려면 너무 힘이 들어요. 그런데 그거를 지금도 우리 사회가 많이 경직돼 있고 많이 풀렸다고 하지만 지금도 아직 정말 목소리 내기 힘들잖아요. 뭐 평화방송 우리 김준일 평론가도 방심위에서 많이 저기 고초를 겪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그러한 걸 다시 뒤집어야 되는 게 한국 사회의 과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정의가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게 당연한 게 아님을 새삼 깨닫고 있는 상황이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정의구현사제단의 역할이 필요하고 방금 말씀하신 부분은 제가 조금만 얘기를 하자면 뭐 교회가 보수화됐다라고 하는데 저는 보수, 진보가 꼭 나쁜 게 뭐 개념 가치적으로 개념적으로 어느 게 좋다. 나쁘다가 있는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다만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고 그런 것들을 얘기할 수 있는 게 중요하지 않나 그런 취지로 말씀해 주셨다 좀 말씀드리고요. 우리 신부님 정의 어떻게 돼야 될지 좀 시간이 많지 않아서 좀 짧게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함세웅: 그 이제 마태오 복음 산상수훈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 그 외 말은 다 필요 없고 죄다. 이런 강한 말씀하셨는데 어떤 언론학자가 이 말씀이 전 세계 모든 명언 중에 가장 아름다운 명언이라는 거예요. 이해할 것은 이해하고 안 좋아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하여라. 그외 다른 말 덧붙이지 말아라. 이런 내용에서 성서 말씀도 묵상하고 그분의 말씀도 제가 묵상하는데 지금 우리 기자님 많은 말씀하셨지만 이 두 단어 가지고 우리가 설명해야 될 것 같아요. 또 요새 아까도 소금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이 여러분의 세상에 소금이다. 소금이 되어라 그러셨는데 저도 사제입니다만 우리 돌아가신 우리 친구 사제 김태광 신부님이 그러셨어요. 저보고 ‘함 신부, 그런데 우리가 소금 장사한 거 같아.’ 소금이 돼야 되는데 소금 사라고 이러고 있는 거예요. 이게 뭐냐 제가 그 말을 듣고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아서 많이 반성하면서 또 역시 소개를 했는데 이 내용 우리 교회 자체가 근원적으로 묵상해야 될 내용이에요. 평화방송도 똑같죠. 평화방송 존재 이유 그런 거 함께 생각하고 싶고 또 아까 우리 기자님 말씀하셨는데 우리나라 요새 역사 정의, 역사 전쟁이라는 말을 해요. 간단한 게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어요. 그럼 나라를 찾기 위해서 항일 투쟁하는 게 마땅한 거 아니에요. 그러면 항일투쟁이 옳으냐. 일본에 굴복해서 친일파가 되는 것이 옳으냐. 뭐 답이 명확한 거예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역대 독재에서 독재 항거하는 것이 옳은 것이냐. 독재 굴복해서 거기에 지금 말하자면 아부하는 게 옳으냐. 남북이 분단되었어요. 그럼 일치가 되는 게 어디냐 분단과 싸움에서 이익을 얻는 게 어디냐 자명한 거예요. 이런 자명한 원리를 여러 가지 궤변으로 흐트러뜨리는 거예요. 바로 윤석열 현 정권이 바로 그러한 거짓 정권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 모든 독재의 총화예요. 검찰독재, 검찰이 진리를 지켜야 되는데 오늘의 검찰 자기네들의 범죄는 조사 안 하잖아요. 제가 명동성당에서 여성검사들 바로 두 분의 여성 검사들 그 검사들을 본받는 남성 검사들이 나와야 된다. 이렇게 제가 호소한 바 있습니다. ▷두 분의 여성 검사라면 박은정, 서지현 검사 말씀하시는 거죠? ▶함세웅: 그다음에 그분들이 말하자면, 법률을 전부 다 배웠잖아요. 다 알아요. 검사들이 배운 대로 정의를 실천해라. 이렇게 제가 호소하고 싶은 거예요. ▷알겠습니다. 시간이 다 돼 가지고요. 더 많이 듣고 싶은데 여기서 좀 마쳐야 되겠고요. 저는 감동적인 게 어쨌든 산상수훈에 나온 거. 예라고 하든지 아니오라고 하든지 명확하게 얘기를 해라. 우리가 조금 다시 한번 새겨들어야 할 말이 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은 정의구현 사제단 50주년을 맞아서 지난 50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함세웅 신부님 그리고 김성진 민들레 기자 두 분과 얘기 나눴습니다. 두 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김준일의 뉴스공감2024.09.27
![[김혜영의 뉴스공감] 홍성남 신부 "유럽은 동물도 축복…성소수자가 개보다 못하단 건가"](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01/26/oaX1706272297013.jpg)
[김혜영의 뉴스공감] 홍성남 신부 "유럽은 동물도 축복…성소수자가 개보다 못하단 건가""동성커플 축복, 혐오의 눈으로 보지 말라는 의미" ○ 방송 : CPBC 라디오 <김혜영의 뉴스공감> ○ 진행 : 김혜영 앵커 ○ 출연 : 홍성남 신부 /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주요 발언) - "교황의 동성커플 축복, 혐오의 눈으로 보지 말자는 것" - "유럽, 동물도 축복…동성커플 축복 안 하는건 말이 안 돼" - "동성커플 축복 의미, 사람이고 인격체라는 인정의 의미" - "동성커플 축복 반대하는 사람들의 심보가 궁금해" - "동성애자 혐오하는 사람들이 진짜 문제" - "각 나라마다 문화 다르니 우려를 표할 순 있어" - "우려와 상관없이 동성애자들을 비난해서는 안 돼" -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감 갖는 사람들, 부정적 투사 때문" - "동성애자 혐오, 심각한 차별…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앵커] "사목적 배려 차원에서 동성 커플을 축복할 수 있" 지난해 12월 교황청 신앙교리부의 이 발표에 세계 이목이 쏠렸습니다. 성소수자 신자들은 이제 가톨릭교에서 성소수자들의 존재가 공론화되고 사목적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기뻐했는데요. 하지만 동성 커플의 축복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교회와 교황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 변화 그리고 축복의 의미 어떻게 봐야 될 지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이신 홍성남 신부님과 이 얘기 집중적으로 나눠보겠습니다. ▷신부님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이죠. ▷제 주변에서도 이것에 대해서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성소수자들을 축복할 수 있다는 교황청의 발표가 지난해 세계 10대 뉴스에 선정이 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고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신부님 어떻게 보셨습니까? ▶성소수자도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성소수자라고 그래서 사회에서 격리가 됐잖아요. 정서적으로 격리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 당대로 말하면 나환자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당시 예수님 당대 나환자들은 자기들이 그런 병에 걸린 것이 자기들의 죄 때문에 걸렸다는 자책감을 갖고 있었고, 육체적으로도 병에 걸려서 사람들 앞에 나갈 때는 종을 쳐야지만 나갔다 그래요. 이중 고통을 겪었는데. 성소수자들도 나환자들하고 비슷하게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었던 거죠. 교황님께서 그 사람들을 축복해주는 것은 결혼을 하라는 게 아니고 우리가 그 사람들을 혐오의 눈으로 보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셨다고 생각이 되는 거예요. 그 사람들도 우리하고 똑같은 사람들인데, 왜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런 문제 때문에 등한시하느냐. 저는 교황님께서 복음적인 관점에서 얘기하셨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이제 나환자에 비유해서 얘기를 해주셨는데, 어쨌든 몇 년 전에 기존에는 축복조차 허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저는 보여 가지고 이번에 입장 변화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인정해 준 배경은 어떻게 봐야 될지? ▶일단은 우리가 갖고 있는 편견을 이제 깨뜨릴 때가 되지 않았나. 그래서 교황님께서 축복이라는 화두를 던지신 게 아닌가. 교황님께서 당신이 만약에 발표를 하면 굉장히 많은 비난이 일어날 거라는 걸 아시죠. 그런데 이거를 그냥 은폐하고 그냥 지나가는 것보다 차라리 격론을 벌리게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토론을 해야지, 그래야지 좀 건강한 답안이 나오죠. 은폐를 하면 항상 부정적인 답이 나오거든요. 그런 의미에서는 교황님께서 굉장히 지혜롭게 물음을 던지셨다고 생각돼요. ▷그런데 축복이라는 게 어떤 건지도 신부님 설명을 한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보니까 이번에 교황청에서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유럽에서는 동물도 축복해요. 사람들이 보통 아기 낳으면 축복받으러 오잖아요. 그런데 닭, 개들도 축복받으러 와요. 동성애자들은 사람이에요. 사람이 축복을 해달라는데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게 아니라 축복을 해달라 그러는데 그거를 안 해준다 그러면 개나 닭보다 못하다는 게 되는 거죠. 말이 안 되는 거죠. ▷축복의 의미는 어떻게 보세요? ▶축복의 의미. 너희도 사람이고 인격체이고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거를 당신이 인정해주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저는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축복을 주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 사람들의 심보에 대해서 묻고 싶은데. 동성애자들한테 어떻게 축복을 줄 수 있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큰 사건에 대해선 입들을 다물고 있어요.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범죄를 저질렀나요? 누굴 죽였나요? 사기 쳤나요? 수많은 사람들을 사기 친 그런 사람들하고 다르잖아요. 이 사람들은 그냥 자기네들이 갖고 있는 성향 때문에 그냥 사귈 뿐이에요. 그런데 이거를 엄청난 사건인 것처럼 부풀리고 실제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자들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이게 더 문제가 아닐까요? 저는 사실 이 건을 보면서 동성애자들의 문제가 이게 문제가 아니고 동성애자들을 혐오하는 그 사람들이 진짜 문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성애자들은 그냥 동성애 할 뿐이에요. ▷그런데 이제 물론 교회가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은 분명히 하기는 해야 되는데. ▶그렇죠. 지지는 아니지만은 그 사람들을 혐오하면 안 된다는 거죠. 진짜 혐오해야 될 대상은 따로 있거든요. 사람을 사기치고 학살하고 그런 자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당연히 혐오감을 가져야죠.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자기가 정의의 사도인 양 나와서 떠드는 걸 보면서 진짜 비겁한 놈들이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황님과 교회를 비판하는 기사나 글들도 적지 않게 볼 수가 있는데, 지금 보니까 성직자들도 일부 보수 성향의 성직자들도 이 건에 대해서 "스캔들이다. 혼란이다" 얘기하면서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더라고요. 특히 아프리카 주교들이 교황청 발표에 대해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서 그러니까 만약에 축복을 했다 그러면 자기네 나라 안에서 축복의 의미를 왜곡해서 그러면 동성애자들끼리 그냥 사귀고 결혼해도 된다는 말이야? 이렇게 해석할까봐 그래서 그쪽 교구장들이 그런 것에 대해서 우려를 표할 수는 있죠. 각 나라마다 문화가 다 다르니까. 그런데 그런 우려와는 상관 없이 동성애자들은 인간도 아니라고 이렇게 취급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는 거예요. 비판은 좋은데 비난은 해서는 안 된다는 거죠. 동성애자들도 다 우리 자식들이에요. 사람들이고. 이 조그마한 지구 땅덩이에 같이 살고 있는 생명체란 말이죠. ▷특히 개신교 쪽 반대가 더 많이 두드러져 보이거든요. 이 부분에 대해서. ▶개신교는 자기들 돈 문제를 반성해야지. 목사가 세습하고 그리고 건전한 정신을 가진 목사님들을 쫓아내고. 엉뚱한 돈에 눈이 팔린 그런 목사를 갖다가 존경한다고 그러지 말아야지. ▷이거 말고 비난할 다른 건들이 더 많이 있다. ▶자기 반성 없이 다른 사람을 욕하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저 여자를 돌로 쳐라" 그랬잖아요.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도 그런 부분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되기고 합니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그러면 자기들이 갖고 있는 성적인 욕구는 건전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건전할까요, 과연? 개신교 목사들이 자기네 신도들을 그루밍 해가지고 성추행하고 성폭행한 것은 그거는 왜 그냥 넘어가죠? 그게 더 크죠. 동생애자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그런 문제가 더 큰데 그런 거에 대해서는 서로 덮어주고 은폐하면서 이런 문제가 생기니까 그거는 집단으로 성토를 하는 것은 자기들 문제를 갖다가 더 은폐하겠다는 그런 술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당사자인 성소수자들한테는 어떤 얘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이런 축복 말고도 이미 사회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여러 가지 상처나 이런 게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일단은 이게 성향의 문제인데 어떻게 보면 이렇게 생각하면 되죠.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그게 혐오식품이야. 그런데 난 그게 좋아. 그럼 내가 혐오하니까 네가 그걸 먹는 거는 너는 혐오스러운 인간이야. 이렇게 본다면 그거는 정말 차별이죠. 심각한 차별이라는 생각이 들고. 우리가 생각해야 될 것은 일단은 동성애자들에 대해서 혐오감을 갖는 사람들한테 제가 묻고 싶은 거는 그 사람들에 대해서 당신들이 갖고 있는 혐오 감정의 원인이 뭐냐. 그걸 묻고 싶은 거예요. 왜 혐오감을 갖냐. 당신한테 해를 끼친 사람들도 아니고, 이 사람들이 범법 행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혐오감을 갖냐. 그걸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얘기해요. 부정적 투사라고. 자기가 동성애 경향이 있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동성애자들을 보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해요. 그걸 부정적 투사라 그래요. 심리학자들한테 물어보면 다 똑같이 얘기해요. 부정적 투사. 그냥 이렇게 동성애를 하고 결혼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결혼 생활이 건강치 않다. 그냥 우려가 된다. 이 정도 의견 표현을 하면 되는데, 쟤네들은 절대로 성당에 오게 하면 안 되고 주님의 자녀가 아니고.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는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동성애자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지금 저희가 동성애나 동성 결혼 문제로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만,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 말고도 상처를 받은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성소수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한테 열려 있다는 것. 이 의미도 더 좀 짚어주시면 좋겠는데요. ▶예수님께서는 당대에 몸을 파는 여인 가까이 하셨잖아요. 그 당시에 그 사회에서 거의 범죄자 취급 받던 목동들도 가까이 하셨어요. 그러니까 그 당시 사람들이 혐오하던 사람들을 가까이 하셨던 게 예수님이세요. 그 사람들의 상처 때문에 가까이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하느님께서 너희를 너희가 하는 일 때문에 미워하지 않고 멀리하지 않으신다는 걸 당신이 몸으로 보이셨거든요. 그 사람들도 살 권리가 있고, 그 사람들도 자기 얘기를 할 권리가 있죠. 그런데 당시에는 뭐 완전히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래서 바리사이들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지고 있는 거죠.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에 계셨고 돌아가셨다 그러는데, 구약성서나 신약성서를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슈만 달라졌을 뿐이지. ▶그렇죠. 나라와 나라끼리 싸우고 그리고 민족과 민족이 학살하고. 구약시대 때나 지금이나 뭐가 달라졌어요. 하나도 안 달라졌어요. ▷지금 신부님 의견을 많은 분들이 듣고 공감을 해주고 계신 것 같아요. "동성애 반대합니다. 그러나 축복은 누구나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얘기해주셨고 "인간에 대한 혐오는 안 된다"고 해주셨고. ▶만약에 제 아들이 남자친구를 데려와서 얘하고 결혼하겠다. 그러면 저는 부모 입장에서 반대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혐오는 안 할 것 같아요. 혐오는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상처 주면 안 된다고. ▷교황청의 이번 발표를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그동안 많은 소탈하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오기도 했고요. 신부님은 어떤 행보 가장 기억에 남으십니까? ▶저는 교황님께서 파격적인 행보를 하신 적은 없다고 생각되고 복음적으로 사셨다고 생각돼요. ▷표현의 차이인가요? ▶파격적이라는 것은 그동안에 우리가 그만큼 관습적인 편견 속에서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교황님은 당신이 하시는 행동들을 보면 다 복음에 근거해서 하세요. 그래서 "저분이 진짜 목자네?" 하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교회법을 강조하지 않고 사람을 먼저 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바리사이였나?" 그 생각을 들게 만드시는 분이에요. ▷참 별 게 아니다 싶으면서도 큰 의미와 울림을 주는 행동들을 많이 보여주셨거든요. 저는 2013년에 교황에 오르시자마자 여성하고 무슬림한테 처음으로 세족식 거행하신 것. 이게 큰 기억으로 남아있는데 이런 것조차 다 주목을 받으시면서 이제 파격적인 행복으로 평가를 받으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보다 더 파격적인 분이 누군지 아세요? ▷누구실까요? ▶예수님. 예수님 부활하시고서 제일 먼저 누굴 만났어요? ▷마리아 막달레나. ▶파격의 파격이었죠. 공식적으로 부활하셨는데 그러면 제자들을 만나든가 공식적인 만남을 가져야 하는데. 아니고 마리아 막달레나를 제일 먼저 만나셨어요. 그러니까 여성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 얼마나 높게 평가하셨으면 제일 먼저 만나셨을까?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속 썩이는 열두 제자보다 정말 똑똑하고 말 잘 알아듣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먼저 만나고 싶었을 것 같다. 인간 예수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톨릭교회는 남들이 보기에 보수라고 얘기를 하거든요. 실제 그런 면도 있고. 그런데 실제로 가톨릭교회의 시조이신 예수님은 굉장히 파격적인 행보를 하셨던 분이에요. 성전에 들어가서 환전상들 상을 다 뒤집어 엎어버렸죠. 파격의 파격이었죠. ▷오늘 홍성남 신부님과 함께한 깊은 내공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신부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혜영의 뉴스공감2025.02.26

'성수'(聖水) 이용, 미신적 행위 경계해야' [앵커] '성수'를 찍고 성당에 들어가는 신자들의 모습에서 '코로나 엔데믹' 선언 이후 달라진 신앙생활을 엿볼 수 있는데요. 성수의 올바른 인식과 사용법, 그리고 준성사가 지닌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봅니다. 보도에 윤재선 기잡니다. [기자] 성당에 들어서자 신자가 손끝으로 '성수'(聖水)를 찍은 뒤 십자 성호를 긋습니다. 성당 입구에 놓인 성수반. 그 위로 성수 기도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기에 앞서 세상의 모든 죄스러움을 쫓아내 달라는 정화의 의미가 담겼습니다. 또한 악으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축복을 구하며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하느님께 나아간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성수'는 전례에 사용하기 위해 사제가 축복한 거룩한 물입니다. 성경에서 물은 생명과 풍요, 죽음, 정화를 상징합니다. 물에 관한 이러한 성경의 의미는 교회의 정통 가르침과 전례 안에 그대로 스며들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수'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씻고 구원받아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신앙 고백이 모두 물을 통한 세례성사 안에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VCR] "또한 이 성수로 주님의 은총과 생명의 샘인 세례를 저희 안에 새롭게 하시고, 저희를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게 하소서." '성수'는 세례성사 외에도 병자나 죽을 위험한 처한 환자를 위한 병자성사를 거행할 때도 사용됩니다. 또한 집이나 자동차, 사무실, 성물 등을 축복할 때도 '성수'를 뿌립니다. 사제나 부제가 없을 경우 평신도들도 '성수'를 이용해 축복 예식서에 따라 집이나 교통수단 등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중개자로 나서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하는 준성사의 거행은 세례로 받은 보편사제직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느님의 축복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미신적인 생각에서 '성수'를 마시거나 그밖에 다른 잘못된 용도로 남용하는 건 경계해야 합니다. <이승화 신부 / 서울대교구 암사동본당 부주임>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계시고, 성수는 하느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고 축복한 물이고, 그 축복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이지 그 물 자체에 효과가 있어서 우리를 대신 구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성수 축복을 비롯한 준성사의 의미를 올바로 알고 이용할 때, 교회의 축복 안에서 우리의 신앙 고백이 가능해질 겁니다. 또한 우리의 행위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뿐만 아니라 악마로부터 보호받게 될 것입니다. CPBC 윤재선입니다. 윤재선2023.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