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현 신부 사제의 눈] 다시, cpbc](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3/04/tZ71741079913784.jpg)
[조승현 신부 사제의 눈] 다시, cpbc조승현 베드로 신부(cpbc 주간)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뉴욕타임스(NYT)의 변화는 기적에 가깝다. 뉴욕타임스는 한때 종이신문의 몰락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는 대신, 신문을 넘어선 ‘디지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스스로를 재정의하며 혁신에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기존 미디어 문법이 아닌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 문법을 받아들인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뉴스라는 핵심 가치를 지키면서도 제품 리뷰, 요리 레시피, 게임과 같은 정보를 구독 형태로 제공한다. 독자들이 뉴스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뉴욕타임스를 찾게 만든 전략이다. 뉴욕타임스 구독자들은 하루를 시작할 때 뉴욕타임스 앱을 켜고, 점심에 게임을 하며, 저녁에 레시피를 본다. 뉴욕타임스는 ‘뉴스(정보)’가 아니라 ‘라이프(시간)’를 제공하는 기업으로 변신했다. 결과는 놀랍다. 미국 전체 뉴스 구독 시장 점유율 50%를 넘기며, 절대 강자가 되었다. 그럼 우리 가톨릭 미디어도 이런 ‘라이프(시간)’를 제공하는 모델이 성공할 수 있을까. 미국의 가톨릭 기도 앱 ‘할로우(Hallow)’의 성공은 우리에게 더욱 구체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할로우를 개발한 알렉스 존스는 가톨릭 신앙을 잃었다가 기도를 통해 다시 신앙으로 돌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의 기술과 영적 전통을 잇기 위해 앱을 만들었다. 알렉스 존스는 ‘할로우’를 통해 종교 콘텐츠가 테크놀로지와 결합했을 때 얼마나 강력한 선교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려고 했다. 할로우도 뉴욕타임스처럼 ‘라이프(시간)’를 제공한다. 할로우는 신앙은 성당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앱을 켜는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이어지는 ‘거룩한 습관(라이프)’이라고 말한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주일날 성당에만 머물지 않는다. 학교에 있어도 회사에 있어도 가정에 있어도,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계속되어야 한다. 과거 TV나 라디오가 하루종일 사람들의 일상을 함께했던 것처럼, 이제는 똑똑한 가톨릭 앱이 사람들의 일상을 함께한다. 할로우는 단순히 그날 전례문이나 기도문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선다. 할로우는 AI 기술을 활용한 맞춤형 영적 코칭을 제공한다. 할로우가 있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묵주기도·관상기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유명한 가톨릭 연예인이 기도하고 성경을 읽어주는 목소리 가이드를 한다. 여기에 게임화(gamification) 요소를 도입해 사순 시기나 대림 시기에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과 기도 챌린지를 한다. 결과는 폭발적이다. 북미 기준 애플 앱스토어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다. 종교 앱 최초다. 미국 미식축구 슈퍼볼 광고도 했다. 지금은 영어·스페인어·프랑스어 등 8개 언어로 150개국 이상에서 사용되고 있다. 가히 가톨릭의 ‘넷플릭스’가 되었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이 창립 38주년을 맞았다.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첫발을 내디뎠던 1988년의 설렘은 어느덧 서른여덟 해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 cpbc가 마주한 미디어 지형은 그 어느 때보다 가파른 절벽 위에 서 있다. 종이 매체의 위기와 디지털 플랫폼의 범람, 그리고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는 cpbc와 같은 종교 미디어에도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준엄한 명령을 내리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할로우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우리 cpbc도 혁신해야 한다. 기술은 도구로 삼고, 사랑은 본질로 품으며, 혁신은 우리의 일상이 돼야 한다. 세상 끝까지 기쁜 소식을 전하겠다는 우리의 약속은 38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도 변함없이 이어질 것이다. cpbc가 걸어가는 혁신의 길 끝에서 주님의 평화가 우리 cpbc를 통해 온 세상에 흐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cpbc2026.05.13

기도생활 어떻게 하면 잘할까성경·교부 전통 따라 기도 방식·장소·시간 등 안내 수행 / 가브리엘 붕게 신부 / 분도출판사 “거룩한 교부들이 마음에 두고 있는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란, 주일의 의무를 어느 정도 충실하게 이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생 동안 날마다 수차례 기도드리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식사와 수면, 숨쉬기 등 삶에 필요한 여러 기능을 규칙적으로 수행하듯이 자신의 신앙을 규칙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영적 활동’은 오직 끊임없는 실천(수행)을 통해서만, 방금 언급한 기능들처럼, 자명하게 보이는 자연스러움에 이를 수 있다.”(84쪽) 신앙인에게 ‘기도’는 가장 익숙하면서도 제일 어려운 것이 아닐까. 그래서 베네딕도나 이냐시오 성인이 가르쳐 준 기도 방법을 비롯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도 무수히 많다. 그러나 성경과 교부 전통에 충실하면서 개인이 기도드리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책은 흔치 않다. 「수행 : 교부들에게 배우는 기도 생활」은 성경과 교부 전통에 따라 기도하는 장소와 시간 및 기도하는 방식과 자세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질그릇 : 거룩한 교부들의 전통에 따른 개인 기도의 실천」으로, 저자는 교부들과 사막의 사부들이 기도를 어떻게 이해했고 어떤 방식으로 생활화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일상에서 개개인이 기도를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 ‘묵은 포도주를 마셔 보고서는 아무도 새 포도주를 원치 않는다’에서는 전통의 중요성, 영성과 영성 생활, 활동과 관상, 시편 기도와 묵상을 소개한다. 둘째 부분 ‘장소와 시간’에서는 개인 기도를 바치기 위해 적합한 장소와 환경 및 기도하는 방향 등을 다루며, 셋째 부분 ‘기도하는 방식’에서는 분노나 생각으로부터의 자유가 수행적 방식의 기도에서 나오는 열매임을 지적하며 여러 유형의 수행적 기도 방식을 설명한다. 마지막 ‘기도하는 자세’에서는 몸의 중요성을 환기하며 일어서서 드리는 기도, 손을 들어 올려서 드리는 기도, 시선을 하늘로 향해 드리는 기도, 무릎을 꿇거나 엎드려서 드리는 기도 등을 소개한다. 부록으로 실은 ‘실천적 조언’은 기도를 드리기에 올바른 장소와 환경을 조성하는 일, 기도를 드리는 시간, 시편 기도, 기도하는 방법과 자세 등을 요약했다. 저자는 기도의 방법을 설명하면서 성경과 전승의 근거도 함께 제시한다. “외적인 자세는 내적 태도를 육체적으로 표현할 뿐 아니라 내적 태도에도 직접 영향을 끼친다. 하느님 앞에서 서서 경건하게 기도하는 사람은 그만큼 경외심도 커진다. 서 있으려고 애쓰지 않고 다른 기도 자세들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도는 결코 합당한 열정을 얻지 못할 것이며, 요셉 부스나야가 말한 것처럼 ‘대개 차갑고 얕은’ 상태에 머물고 말 것이다.”(167쪽) 저자 가브리엘 붕게(1940~) 신부는 독일 출신의 러시아 정교회 수도승 사제로, 독일 본에서 철학·역사·신학을 공부했고, 스위스 베른대학교에서 고대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2년 벨기에 셰브토뉴의 성 십자가 수도원에 입회했고, 1980년 이후 스위스에서 은수자로 지내고 있다. 저자는 “이 모든 수행(실천)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담겨 우리에게 전해 오는 소중하고 썩지 않는 보물이며, 본질적으로 영적이며 보이지 않는 ‘보화’”라며 “우리는 기도하는 대로 믿고 믿는 대로 기도하며, 올바르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머지않아 올바르게 믿지 않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하정 기자신문취재팀 윤하정2024.10.02

영지주의 등 이단으로부터 정통 신앙 지켜[저는 믿나이다] (42) 리옹의 성 이레네오 주교 리옹의 성 이레네오 주교는 영지주의를 비롯한 당대의 많은 이단으로부터 교회의 사도 계승의 정통성을 지켜가는 데 공헌했다. 리옹의 성 이레네오 주교 이콘. 출처=정교회 온라인 매체 Pemptousia 성 유스티노가 교회 외부의 박해자들을 상대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보편성과 우월성을 이론적으로 제시해 우상 숭배와 다신교를 논박하면서 교회를 보호하는 데 공헌했다면, 교회 내부의 갈등을 조장하고 분열을 가속시키던 이단에 맞서 교회를 보호한 대표적인 호교 교부가 있습니다. 바로 리옹의 성 이레네오 주교(130/140?~202년께)입니다. 물론 유스티노 역시 「호교론」을 통해 이단을 반박했습니다. 리옹의 성 이레네오 주교는 당시 교회 내 깊숙이 들어와 있던 영지주의자들을 상대로 성경 정경의 가르침을 근거로 이단 사상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정통 신앙을 확립하는 데 크게 공헌했습니다. 사도와 사도 교부 시대 이단에 관해 이미 소개한 바 있지만, 2세기 교회 안에서는 영지주의와 마르치온주의, 몬타누스주의 등 여러 이단이 성행했습니다. 간략히 상기하자면, 영지주의는 2~3세기 교회를 뒤흔들던 사상으로 영과 육의 철저한 이원론 위에 세워진 이단입니다. 그들은 죽은 이의 부활은 없으며,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했지요. 더불어 십자가 죽음도 부활도 아무 의미 없고, 인간이 구원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획득한 ‘깨달음’ 덕분이라고 했지요.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이 하느님과 주님의 은총, 초월성을 조정할 수 있다고 여겨 그리스도 없는 하느님, 교회 없는 그리스도, 하느님 백성 없는 교회에 이르게 했습니다. 또 인간은 악한 본성에 대해 자신이 책임질 필요가 없다며 방탕하게 살아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마르치온주의는 구약의 하느님을 ‘복수의 하느님’, 신약의 그리스도를 ‘선한 하느님’으로 대립시켜 구약의 하느님을 조금이라도 암시하는 내용이 있으면 모두 삭제해 루카 복음서 일부와 바오로 사도의 서간 일부만을 신약 성경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해 강생의 신비를 거부하는 왜곡된 그리스도교 신앙을 제시했습니다. 더불어 영지주의와 반대로 철저한 ‘금욕 생활’을 강요해 혼인을 거부했으며, 금주(禁酒)를 지키기 위해 성찬례 포도주 사용조차 배제했습니다. 몬타누스주의는 자신들이 ‘성령의 대변인’이라 주장하며 곧 종말이 오니 페푸자에 새 예루살렘을 세워 천년왕국을 맞기 위해 깨어 준비해야 한다며 잦은 금식과 철저한 금욕, 순교를 강요했습니다. 이밖에 에비온파, 니콜라이파 등 각가지 이단이 성행했습니다. 성 이레네오는 5권으로 구성된 저서 「이단 논박」을 통해 거짓된 영지주의를 비롯한 여러 이단의 실체를 낱낱이 고발하고, 정통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땅 끝까지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교회는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로부터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 신앙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시편 145,6; 사도 4,24; 14,14) 전능하신 아버지이신 한 분 하느님과, 우리 구원을 위하여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 한 분 예수 그리스도와,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 경륜을 미리 말씀하신 성령과, 주님의 재림과, 동정녀로부터의 그분의 탄생과, 수난과, 죽은 이들에게서의 부활과, 우리의 사랑하는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육으로 승천하심과, 모든 것을 한데 묶어 ‘포괄’하여 원래의 상태로 회복하기 위하여(에페 1,10) 아버지의 영광 안에 하늘에서부터 그분의 재림과, 그리고 인류의 모든 육체를 부활시켜, 보이지 않으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시고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모두 그분을 고백한다는 것과(필리 2,10), 모든 것에 대해 정의로운 판결이 이루어진다는 것과, 악령들과(에페 6,12)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천사들과 배교자들, 불경한 자들, 불의한 자들, 부정한 자들과 하느님을 모독한 자들은 영원한 불 속으로 보내신다는 것과, 의로운 이들과 공정한 이들과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어떤 이는 처음부터 어떤 이는 참회에 의해 그분의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시는데, 선물로 썩지 않는 생명을 주시고 영원한 찬란함으로 둘러싸 주실 것에 대한 신앙이다.”(「이단 논박」 1,10,1-신앙의 규범. 「고대 교회사 사료 편람」 황치헌 신부 역, 181쪽) 이레네오 주교는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을 제외한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 요한의 서간들과 묵시록, 베드로의 첫째 서간 그리고 헤르마스의 「목자」를 신약 성경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당시는 교회가 아직 신약 성경 정경을 확정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네 복음서를 상징하는 네 생물(사람·사자·독수리·황소)을 제시한 이도 바로 이레네오 주교입니다. 이레네오 주교는 무엇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도로 쓰였으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사도들을 계승하고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더불어 그는 이단자들은 사도들의 후계자들이 아니기에 근본적으로 진리의 은사를 지닐 수 없다고 반박하며 보편 교회의 정통성을 보호하는데 헌신하였습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9.02

성경 입문 (2) 신약성경 개요[월간 꿈 CUM] 약속 _ 신약이 말을 건네다 (02) Q. 신약성경에는 몇 권의 책이 있습니까? A. 신약성경에는 27권의 책을 포함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① 복음서 :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복음서 ② 사도행전 ③ 13개의 바오로 서간들 :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로마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둘째 서간( 코 린 토 1·2 서 ) ,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갈라티아서),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페소 서),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필리피서),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콜로새서),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둘째 서간(테살로니카 1·2 서) ,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둘째 서간(티모테오 1·2 서) , 티토에게 보낸 서간(티토서),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필레몬서). ④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히브리서) ⑤ 7개의 가톨릭 서간들 : 야고보 서간(야고보서), 베드로의 첫째, 둘째 서간(베드로 1·2 서) , 요한의 첫째, 둘째, 셋째 서간(요한 1·2·3 서) , 유다 서간(유다서). ⑥ 요한 묵시록 Q. 지금의 신약성경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정경으로 확정되었습니까? A. 지금의 27권으로 된 신약성경이 1세기 말에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책을 정경에 포함시킬지 고민하였습니다. 처음 정경 범위를 규정한 사람은 영지주의 이단(異端) 마르키온(Marcion, ?~160년경)으로서, 그는 그리스도교 성경에 루카 복음과 바오로의 열 서간-히브리서, 1·2베드, 3요한, 야고보서 제외-만을 포함시키고, 그 밖의 다른 사도 시대 작품과 구약성경은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현존하는 최초의 신약 정경 목록은 18세기에 이 문서를 발견한 이탈리아 학자 무라토리(L.A. Muratori)의 이름을 딴 ‘무라토리 정경’(Canon Muratori)입니다. 라틴어로 기록된 이 목록의 필사본이 단편으로 남아있으며 200년경 로마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목록은 현 신약 성경 27권 중 22권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1·2서 요한3서 제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27권 정경을 주창한 그리스도인의 저서 가운데 최초 문서는 367년 알렉산드리아 주교 성 아타나시우스의 제39차 부활축일 서간에 정경 목록이 담겨있습니다. 이후 397년 제3차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최초로 27권 신약성경을 공식적으로 승인, 선포하였습니다. Q. 성경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성경은 무엇입니까? A. 신약성경을 포함한 모든 성경 가운데서 4복음서가 가장 뛰어난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4복음서는 우리의 구원자, 사람이 되신 말씀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한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계시헌장 18항) Q. 복음서란 어떤 책입니까? A. 복음서는 신약성경의 첫 번째 부분으로 4권의 책으로구성되어 있으며, 상세하게 묘사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하여 줍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4권의 복음서들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책들입니다. Q. 복음서들은 어떤 형성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책이 되었습니까? A.복음서의 형성과정은 세 단계를 거쳤습니다. 첫째, 하느님 나라의 복된 소식을 전한 나자렛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케리그마’, 곧 짧은 형태의 설교로 전하기 시작하고, 이와 동시에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들을 모아 전례와 교리교육과 호교론과 선교에 이용하였습니다. 이 둘째 단계에서 교회가 모은 전승들은 처음에는 대부분 구두 전승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록된 전승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셋째, 복음서 저자들이 초대 교회가 간직해온 다양한 예수님 관련 전승들을 입수해서 저마다 그분의 가르침을 자기네 공동체의 상황에 적용할 목적으로 고유한 복음을 썼습니다.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등의 주임을 지냈다. cpbc2024.01.31

‘사제 부재’ 초기 교회, 미사·성사 집전한 지도자들[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10) 가성직제도 1 이승훈과 권일신, 정약용, 이존창, 유항검 등 교회 지도자들은 미사와 성사를 통해 신입 교우들의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하기 위해 1786년 가을부터 가성직제도를 시행한다. 탁희성 작, ‘가성직제도’, 지본채색, 1988. 1785년 3월 ‘명례방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을사추조적발사건’이 있은 후 여러 양반 집안에서 가톨릭 신앙에 심취해 있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이 일로 초기 조선 교회의 두 기둥이었던 이벽(요한 세례자)과 이승훈(베드로, 당시 29세)이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아버지 이부만에 의해 집에 감금된 이벽은 그해 7월께 전염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이승훈도 사랑방으로 끌려가 아버지 이동욱에게 ‘벽이문’과 ‘벽이시’를 짓고 앞으로 영원히 이단을 물리치는 데 앞장서겠다고 약속해야 했다. 그러나 이승훈은 자신의 신앙을 쉽게 버리지 않았다. 달레 신부는 이때 조선 교회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이 작은 양 떼의 신앙은 잠시 흔들리기는 하였으나 아주 꺼지지는 않았었다. 천주교인 집단이 그 교우 중의 몇몇이 배교함으로 말미암아 슬픔에 잠겨 있기는 하였지만, 동시에 대부분 신자가 흔히는 재판관과 형리들의 박해보다도 더 참아 받기 어려운 집안 박해 가운데에서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 것으로 위로를 받았다. 입교자 수는 늘어갔다.”(「한국천주교회사」 상권 321쪽) 피정 통해 하느님과 만난 권일신과 조동섬 한양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정 박해로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자 경기도 여주 한감개에 있던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당시 43세)이 초기 조선 교회를 이끌었다. 그는 마치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성령의 인도로 40일간 광야에서 머무셨던 것처럼 먼저 얼마 동안 고요한 곳으로 물러나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그는 조동섬(유스티노, 당시 46세)과 함께 경기도 양평 용문산의 적막한 절에서 예수회 선교사 드 마이야 신부가 쓴 「성경광익」(聖經廣益)과 「성년광익」(聖年廣益)에 적힌 대로 8일간 영신수련 피정을 했다. “그는 그의 유일한 스승이었던 성령의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하고자 하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성화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 알았었다. 이를 위하여 그는 규칙적인 피정을 할 결심을 하고, 자기의 계획을 더 쉽게 실천하기 위하여 용문산에 있는 어떤 적막한 절로 들어갔다. 친구 중에서는 오직 한 사람 조동섬만이 그를 따라갔다. 절에 도착하여 그들은 피정 동안에는 내내 서로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약속하였다. 그들은 우리 주님과 성인들을 본받고자 하는 원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신심 수업에만 전심하면서 절에서 8일을 지냈다. 진정한 천주교 정신에 잘 맞는 이러한 실천은 그들 자신과 그들이 피정 후에 가르친 사람들을 위하여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을 얻게 하였음이 확실하다.”(달레 「한국천주교회사」 상권 322쪽) 이승훈에게 위임된 미사·성사 집전 권한 이승훈은 을사추조적발사건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히고 아버지의 단속도 점차 옅어지자 즉시 교회 품으로 돌아왔다. 권일신, 최창현(요한, 당시 26세), 홍낙민(루카,당시 34세), 유항검(아우구스티노, 당시 29세),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 당시 26세), 정약전(당시 27세)·약용(요한 사도, 당시 23세) 형제가 두 팔을 벌려 그를 맞아들였다. 교회 지도자들인 이들은 1786년 봄 한양 회현방 난동(오늘날 회현동) 정약용의 집에서 신앙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복음을 더욱 쉽게 선포하고 새 영세 교우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할 방안을 논의했다. 이승훈은 이 자리에서 가톨릭 신자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선 성사를 받아야 하며 미사와 성사를 집전할 사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그는 북당에서 미사와 성사를 신부가 주례하며 자신도 사제로부터 직접 성사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승훈의 말을 들은 교회 지도자들은 가톨릭 교리서 내용을 살펴보고 우선 ‘고해성사’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한 교우가 다른 교우에게 고해성사를 볼 수 있으나 서로 맞고해를 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들은 1786년 가을에 다시 모였다. 미사와 세례·견진성사 집전을 주제로 논의했다. 아무리 교리서를 뒤져봐도 미사와 세례·견진성사 집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뜻을 같이해 이승훈에게 미사와 견진성사를 집전하는 일을 위임했다. 자발적인 교회 설립, 불가피했던 가성직제도 이승훈은 경기도의 권일신, 충청도의 이존창, 전라도의 유항검, 한양에 사는 정약전과 홍낙민 등 10명을 신부로 뽑아 임명하고 미사와 성사 집전 권한을 부여했다. 또 최창현을 비롯한 남녀 10여 명을 ‘부제’ 격인 ‘회장’으로 임명하고 교회 일을 돕도록 했다. 보편 교회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초기 조선 교회의 ‘가(假)성직제도’가 이렇게 1786년 가을에 수립됐다. 가성직제도에 대해 차기진(루카, 양업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 박사는 이렇게 평한다. “지도층 신자들은 어려움에 처하기 시작한 어린 교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새로 진리를 찾아 교회로 들어오는 예비 신자들에게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준다는 순수한 목적에서 성직 제도를 수립한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혹 이것이 잘못은 아닌가’하는 의심이란 있을 수 없었다. 조선의 젊은 학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교회, 선교사의 가르침이 아니라 서적을 통해 진리를 찾은 신앙 선조들 이것은 한국 천주교회 창설의 특징이자 한계성이었다.”(「고난의 밀사」 59쪽)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6.03.03

‘빨리빨리’ 빨리 없애기![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6)유학에서 하늘이 자연을 순환시키는 활동을 원·형·이·정(元亨利貞)이라는 단위로 설명을 합니다. 이것을 일 년 단위로 말하면 봄·여름·가을·겨울의 4계절로 말할 수 있고, 한 생명의 성장 과정으로 말하면 생겨나고, 자라고, 이루어지고, 거두어짐의 과정입니다. 온전한 생명 활동은 이렇듯 기다려야 하는 다양한 과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는 멈춤도 반드시 포함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4분의 1인 겨울은 활동을 멈추는 비움의 시간이며, 하루 24시간의 4분의 1인 6시간은 잠을 자는 시간입니다. 생명은 기다림이 필요하고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은 활동과 멈춤이 함께 공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인간이 닦달하여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자연 생명을 닦달하여 기후위기가 왔다면 인류 사회가 닦달하여 인간 생명에 위기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원, 형, 이, 정의 순환을 닦달하는 소리가 바로 ‘빨리빨리’입니다. 성질이 급한 한 사내가 국숫집에 들어서자마자 왜 아직 국수를 안 가져오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사내가 엉덩이를 들이대고 자리에 앉자마자 일하는 사람이 서둘러 국수를 놓고 말합니다. “빨리 드세요. 그릇을 씻어야 해요.” 빨리 먹으라는 말에 화가 난 사내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말하길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야.” 그러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내가 보따리를 싸며 말하길 “당신이 죽었다니 재혼을 해야겠습니다.”《雅俗同觀》(아속동관) ‘빨리빨리’는 한국 사회에 당연한 문화로 자리잡힌 일상이 되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밀어붙이는 힘은 결국 나를 밀어붙이는 힘으로 돌아오게 되죠. 사회 전체가 빨리빨리 속에서 멍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만들어 가는 시간과 멈추어 기다리는 시간이 있을 때 온전한 결과를 얻게 됩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닦달하면 결국 자기도 시달리게 됩니다. 기술 산업사회가 더 많은 생산품을 만들어 내고, 소비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동력을 내놓으라 닦달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존재는 생명이 아니라 소비 대상, 노동력으로만 취급되게 되었고, 멈춤은 익어가는 과정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공짜’, ‘게으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빨리빨리 원하는 결과를 내놓으라 닦달만 합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한 젊은 교사의 비보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선생님이 노동력을 제공하는 도구가 되었고, 내가 세금을 내어 돈으로 산 소비 대상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닦달한 이 역시 그 뒤에서는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 노동력, 소비상품으로 진열돼 있을 것입니다. 닦달하기 전에 자신의 뒤를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요. 빨리빨리 최고를 만들어 내라는 요구가 빨리빨리 최고 먼저 망하는 나라가 되는 길임을 우리 사회는 깊은 반성과 함께 자각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시편에 “하느님 집 문간에 서 있기가 악인의 천막 안에 살기보다 더 좋습니다. 정녕 당신 앞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습니다.”(84,11)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무리 천막 안이라도 악인의 집에 있느니 천막 밖 문간이라도 하느님의 집이 낫다고 합니다. 천막 안에 있다는 것은 주인이라는 말과 같고, 집 문간에 있다는 것은 문지기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악인의 집에서 주인이 되느니 문지기라도 하느님의 집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모두가 주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 그 집이 주인이 살 수 있는 집인지는 우리가 다시 바라봐야 합니다. 천 날, 만 날, 영원히 지금 삶이 반복된다면 그 집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아니라면 악인의 집 천 날, 만 날, 영원한 날보다 더 행복한 하루를 다시 만들어 가도록 합시다. ‘빨리빨리’가 싫지만 ‘빨리빨리’를 빨리 없애기를 원합니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cpbc2024.10.28

요한의 첫째 서간 요한의 둘째 서간, 요한의 셋째 서간[월간 꿈 CUM] 신약이 내게 말을 건네다 사도 성 요한, 로마 라테라노 대성당 출처: 월간 꿈CUM 요한의 첫째 서간 요한 1서의 저자는 누구이며 어떤 성경입니까? 요한 1서의 저자는 요한복음서의 저자이기도 한 사도 요한이라는 견해가 전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연구에 의하면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각별히 사랑하신 애제자의(요한 13,23-26) 제자들이 요한 서간집을 집필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요한 1서의 머리말을 보면 발신인과 수신인, 발신지와 수신지도 없습니다. 따라서 요한의 첫째 서간은 애제자의 제자인 저자가 요한계 교회 교우들을 가르치고 타이르는 교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한 1서의 집필 동기는 교회 안에 나타난 예수님이 구세주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고 또한 자기 행동에 죄가 있음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형제에 대한 사랑이 없는 그리스도의 적(2,18-19.26; 3,7)을 경고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적들의 유혹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고 올바로 지도하는 데 있습니다. 요한 1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① 1,1-4 : 서문 ② 1,5-2,29 : 빛 가운데서 살아야 함(참다운 신자 생활의 기준 제시) ③ 3,1-24 : 하느님 자녀의 표지로서의 사랑 ④ 4,1-5,12 : 사랑과 믿음에 대한 훈계 ⑤ 5,13-21 : 결문 요한 1서가 주는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요한 1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인양성(神人兩性)에 대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이나 인성 중 하나만 가지셨거나 또는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가 아닙니다. 요한 1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인자이셨으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한 위이신 성자 하느님으로서 절대 신성을 가지신 분이심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또한 거룩하신 하느님과 친교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죄를 멀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빛 가운데 사는 삶이 필요합니다. 요한의 둘째 서간 요한 2서는 어떤 성경이고 집필 동기는 무엇입니까? 요한 1서는 일종의 교서이지만, 요한 2서는 진짜 서간입니다. 요한 2서는 인사(1-3절), 형제애 실천 충고(4-6절), 영지주의 이단사상 경고(7-11절), 맺음 인사(12-13절)로 짜여 있습니다. 발신인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단지 원로로 자처합니다. ‘원로’라는 말은 ① 단순히 ‘연장자’를 말할 때 ② 성직자로서의 의미(사도 14,23) ③ ‘사도의 직제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원로가 예수님의 애제자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일 것입니다. 수신인인 ‘선택받은 부인과 그 자녀들’은 특정 개인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저자인 원로가 몸 담고 있는 교회에서 상당히 떨어진 다른 지역교회와 그 교우들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요한 2서의 집필 동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부인하고 교우들을 도덕적 방종에로 미혹하는 등의 모든 이단 사상을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에 근거한 바른 신앙을 정립하고 하느님의 계명의 핵심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하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요한 2서가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교는 진리를 가르치는 종교이지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를 주는 종교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이단에 자주 빠지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도교의 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보다는 자신들의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진보적이며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려 하기보다 교회와 성경에서 가르치는 진리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요한의 셋째 서간 요한 3서는 어떤 성경이며 집필 동기는 무엇입니까? 요한 3서는 어느 원로가 ‘사랑하는 가이오스’에게 보낸 서간의 형태로, 다른 요한의 서간들이 ‘거짓 교사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데 반해서 요한 3서는 ‘거짓 교사’가 아닌, 문제 있는 교회 지도자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당시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은 일체의 대가도 받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자신을 대접하는 교우의 집에 머물면서 식사를 해결했고, 다음 선교지로 갈 수 있는 여비를 제공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순회선교사로 가장하여 이단 사상을 전하는 거짓 교사들이 생겨나 진심으로 봉사하는 교우들을 현혹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하여 선교사들을 박대하고 악행을 저지르는 디오트레페스를 비교하여 제시함으로써 모든 교우들이 가이오스처럼 겸손함으로 선교사들을 마땅히 대접하고 환대할 의무가 있음을 가르치기 위해 서간을 쓰게 됩니다.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주임을 지냈다.2025.09.15

베드로의 첫째 서간, 베드로의 둘째 서간[월간 꿈 CUM] 신약이 내게 말을 건네다 카파도키아 데린쿠유 지하도시. 베드로 1서의 수신인은 갈라티아, 카파도키아 등지에 흩어져 나그네 살아가는 이방인계 그리스도인들이다. 베드로의 첫째 서간 베드로 1서의 저자는 누구입니까? 저자는 1장 1절의 인사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베드로”로 자신을 밝히며, 5장 1절에서는 자신을 “원로”이며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이며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사람”으로 소개합니다. 이를 근거로 해서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1서의 저자라는 의견이 대두되었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부인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베드로 1서의 저자라고 하는 것은 편의상일 뿐이고, 사실은 누가 집필하였는지 모릅니다. 다만, 저자는 로마교회의 신자로서 사도 바오로 계열의 전승뿐 아니라 팔레스티나 교회의 전승도 잘 알고 있었으며, 고난에 처한 교회들을 격려하고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해서 베드로 1서를 집필하였다고 추측할 뿐입니다. 베드로 1서의 수신인은 누구입니까? 베드로 1서는 “폰토스와 갈라티아와 카파도키아와 아시아와 비티니아에 흩어져 나그네 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보낸 서간입니다.(1,1)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본래 이방인들 가운데 흩어져 살고 있는 유다인들을 뜻하지만 이를 근거로 베드로 1서의 수신인들을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디아스포라’는 단지 세상에 흩어져서 나그네처럼 살 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1서의 독자는 이방인계 그리스도인들입니다.(1,14.18; 2,9.10) 베드로 1서의 집필 장소는 어디이며 집필연대는 언제입니까? 5장 13절에 보면 집필장소가 ‘바빌론’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빌론 하면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유명한 고대도시를 말합니다. 하지만 사도 베드로가 그렇게 먼 곳까지 가서 활동하였다는 전승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오는 「교회사」에서 베드로 1서의 ‘바빌론’을 로마시의 별칭으로 보았고, 대부분의 학자들도 그렇게 여기고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 1서는 로마에서 집필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집필연대는 로마를 가리키는 ‘바빌론’이라는 명칭이 서기 70년 이후에 사용되었고, 서기 90년 이후에 야기된 주님의 재림 지연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서기 70~90년 사이에 집필되었다고 봅니다. 베드로 1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① 1,1-① 1,1-2 : 인사 ② 1.3-12 : 감사기도 ③ 1,13-2,10 : 거룩하게 살라는 권고의 말씀 ④ 2,11-3,12 : 그리스도인들의 생활태도 ⑤ 3,13-4,19 : 고난을 감수하라. ⑥ 5,1-11 :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 직분을 다하라. ⑦ 5,12-14 : 끝맺는 인사 베드로의 둘째 서간 베드로 2서는 어떤 성경입니까? 베드로 2서의 저자는 사도 베드로가 아니고, 익명의 신자로서 자기가 아는 교회들이 어려운 처지에 놓이자 이를 도와주려고 쓴 성경입니다. 그리고 독자들이 받아들이도록 사도 베드로의 이름을 저자가 빌려 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초대교회가 그 성경에서 사도의 음성과 증언을 인정했고 그것을 교회의 유산으로 받아들이고 보존하고 전수했다는 사실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베드로2서는 신약성경 중 제일 나중에 쓰여졌다고 합니다. 베드로 2서의 집필동기는 무엇입니까? 베드로 2서의 저자는 3장 1-4절에서 집필 동기를 밝혔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재림을 비웃으며 ‘조롱을 일삼는 자들’이 나타나 신자들을 현혹시키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예언자들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상기시켜 재림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주님의 계명을 다시 기억할 것을 일깨우고자 이 서간을 썼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 2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① 1,1-2 : 인사 ② 1,3-21 : 훈계 ③ 2,1-22 : 이단자들의 악행과 심판 ④ 3,1-13 : 그리스도 재림 희망의 확증 ⑤ 3,14-18 : 마지막 권고와 찬양 베드로 2서가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느님의 구원 진리를 단지 지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그 진리를 가슴에 새기며 삶속에서 실제로 실천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우리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② 우리 신앙인들이 종말에 대하여 진정으로 가져야 할 관심은 언제 종말이 올 것인가 하는 종말의 시기가 아니라 어떻게 종말을 맞을 것인가에 대한 올바른 자세입니다. 실로 우리 모든 신앙인들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가 아닌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신랑이신 주님을 맞을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경건의 삶을 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마태 25,1-13 참조)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2025.08.14

박해 피해 신앙 일군 교우촌, ‘가난한 이들’과의 신앙 공동체로 거듭나[리길재 기자의 공소를 가다] 7. 원주교구 흥업본당 술미공소 술미공소는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서지교우촌 교우들이 내려와 형성한 유서 깊은 공소이다. 2011년부터 갈거리사랑촌 안에 새로이 마련한 술미공소 입구에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신 바뇌의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다. 술미공소는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서지교우촌 교우들이 내려와 형성한 유서 깊은 공소이다. 2001년부터 갈거리사랑촌 안에 새로이 마련한 술미공소 입구에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신 바뇌의 성모상이 자리하고 있다. 박해 피해 숨어 살다 신앙 자유 얻은 후 산에서 내려와 정착한 유서 깊은 공소 장애인복지시설 ‘갈거리사랑촌’ 내에 공소 건물 신축, 2001년 축복식 거행 사랑촌 가족·신자 구분 없이 함께 신앙 키워원주교구 흥업본당 술미공소는 복자 최해성(요한)·최 비르지타와 함께 원주 부론면 서지교우촌 교우들이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덕가산 자락에 숨어 살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산에서 내려와 정착하면서 생긴 유서 깊은 공소다. ‘술미’의 ‘술’은 순우리말로 높고 신성하다는 뜻으로, ‘수리’의 준말이다. ‘미’는 ‘뫼’가 변형된 말이다. 따라서 술미는 높고 신성한 산이라는 뜻으로,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교우들이 얼마나 깊은 산골짜기에 숨어 살면서 신앙을 지켜왔는지 웅변해준다. 신해박해 고초 후 교우촌 일궈낸 최해성 일가 최해성(1811~1839)과 그의 고모 최 비르지타는 기해박해 때 순교한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의 친척이다. 최경환 성인은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아버지다. 최양업 신부의 증조부 최한일과 그의 동생 최한기가 1787년 한양에서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후 얼마 안 가 최한일은 선종했다. 1791년 신해박해의 고초를 겪은 후 최 신부의 증조모는 12살 외아들 인주와 함께 충청도 홍주 누곡(樓谷), 곧 청양 다락골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최한기의 가족들은 강원도 홍천으로 피신했다가 지금의 풍수원에 자리 잡았다. 최해성과 최 비르지타는 최한기 가족의 후손이다. 최해성 일가는 풍수원에서 원주 서지로 이주해 교우촌을 일궜다. 최해성은 1839년 박해가 몰아치자 부모와 가족을 배론으로 피신시키고 교회 서적을 가져오려고 집으로 갔다가 체포됐다. 그는 강원 감영으로 끌려가 쇠도리깨질을 당하면서도 배교하지 않았다. 그는 배교할 것과 교우들을 밀고할 것을 강요하는 관장에게 “원주 고을을 다 주신다고 해도 거짓말을 할 수 없고, 하느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라며 신앙을 증거했다. 이 말을 들은 관장은 살이 너덜너덜해지고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최해성에게 매질을 했다. 최해성은 1839년 9월 6일 참수형을 받고 28세 젊은 나이로 순교했다. 최 비르지타는 최해성과 함께 체포됐다. 그 역시 최해성과 같이 관장에게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느님을 배반할 수 없습니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누가 하느님을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배교를 거부했다. 최 비르지타는 4개월간 옥살이를 하다 교수형으로 56세 나이에 순교했다. 원주 순례길 중 순교 구간에 위치 서지마을은 19세기 말까지 교우촌을 그대로 유지했다. 하지만 기해박해를 계기로 몇몇 교우는 덕가산으로 숨어들어가 화전을 일구고 살다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술미공소와 대안리공소, 후리사공소를 이루었다. 또 일부는 부론면 장뜰, 숯가마골, 왜가마골, 두둑골로 이주해 그곳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원주교구는 2022년 총 234㎞에 달하는 순례길 ‘님의 길’을 조성, 개통했다. 박해·순교·세상의 빛을 주제로 한 3개 노선의 ‘님의 길’ 중 순교를 주제로 한 37.8㎞ 구간이 ‘최해성 요한님의 길’이다. 서지마을(교우촌)에서 시작해 원동성당까지 가는 이 순례길에 술미·대안리·후리사 공소가 자리하고 있다. 술미에 교회 인가를 받아 공식으로 공소가 설립된 것은 1957년이다. 대안리공소에서 분리돼 ‘대수리공소’라 했다. 처음에는 공소 건물이 없어 교우 가정에서 주일마다 공소 예절을 했다. 1960년대 대수리 마을에 있는 초가 한 채를 매입해 ‘술미공소’로 이름을 바꾸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공소 건물이 너무 낡고 술미와 대수리가 떨어져 있어서 1983년부터는 두 곳에서 각각 공소 예절을 했다. 술미공소는 박해 시기 서지교우촌 마냥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만이 현존하는 곳이다. 술미공소는 미사와 공소 예절, 성경 읽기, 갈거리사랑촌 가족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행한다다. 술미공소 벽면에 장식된 십자가의 길 14처. 장애인복지시설에 공소 건물 봉헌 현재 술미공소는 원주시 흥업면 대안로 738 갈거리사랑촌에 자리하고 있다. 1990년 원주에서 부부의원을 운영하던 곽병은(안토니오)씨가 술미 마을 건너편 갈거리에 장애인복지시설 ‘갈거리사랑촌’을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갈거리사랑촌 가족들이 술미공소에서 공소 예절을 함께하다 10여 년 후 아예 갈거리사랑촌 내에 공소 건물을 신축하고 2001년 김지석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했다. 시설이 너무 낡아 폐가로 방치되어 있던 옛 술미공소는 2013년 일부 수리했으나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갈거리는 대안3리 술미 마을 앞 동쪽 덕가산 지류와 명봉산 지류가 합류해 대안리와 매지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에 자리한 마을이다. 갈거리 또한 순우리말로 가르다에서 나온 ‘갈’과 장소, 터를 가리키는 ‘거리’가 합쳐진 말이다. 도로에서 다리를 건너야만 술미공소가 있는 갈거리사랑촌으로 들어갈 수 있다. 갈거리사랑촌은 박해 시기 서지교우촌처럼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만이 현존하는 곳이다. 세상에서 가난한 이들을 갈라놓는 곳이 아니라 그들을 세상과 만나게 하고 공존하게 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갈거리사랑촌 안에 있는 술미공소가 그 만남의 현장이다. 갈거리사랑촌 가족과 술미 신자들, 그리고 이곳을 찾는 누구나 함께 구분 없이 전례 안에서 같은 신앙을 고백한다. 술미공소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입구에 있는 ‘바뇌의 성모상’이다. 바뇌에서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는 당신이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라고 밝히셨다. 성경은 가난한 이들이 “주님을 맞아들일 만한 백성”이라고 한다.(루카 1,17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이 지상에서 누리는 기쁨에 그치지 않고 하늘 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마태 5장 ‘참행복 선언’ 참조) 술미공소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이신 바뇌의 성모상은 하느님을 신뢰하는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을 뵙는 참 행복을 누릴 것이라는 주님의 선언이 지금 이 자리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다. 술미공소는 샌드위치 패널로 소박하게 지어졌다. 한 달에 한 번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오후 4시에 미사가 봉헌되고, 매 주일 오전 8시 30분에 공소 예절이 있다. 장애를 안고 있는 어르신이 대부분인 갈거리사랑촌 가족들은 공소에서 성경 읽기를 하면서 신앙을 키워가고 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6.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