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렘브란트의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월간 꿈CUM] 성화로 읽는 신약 성경 (02) 렘브란트,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1640, 나무판에 유채, 56.5x47.9cm, 디트로이트 미술관, 디트로이트, 미국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 1606~1669)은 1606년 7월 15일에 네덜란드 레이던에서 제분업자인 아버지 하르멘 헤리츠 반 레인과 귀족 출신 어머니 코르넬리아 반 사위트브로에크 사이에서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한 부모 덕분에 그는 일곱 살에 라틴어 학교에 입학하여 고전과 성경과 칼뱅주의 교리 등을 배우고, 열네 살에 레이던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여 성경 문헌과 인문학을 익혔지만, 그림에 온 마음을 빼앗겼던 그는 1621년경에 학업을 그만두고,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레이던의 화가 야콥 반 스와넨부르흐(Jacob van Swanenburgh, 1571~1638)의 도제로 들어가 3년간 그림을 배우고, 1624년에는 암스테르담의 화가 피에테르 라스트만(Pieter Lastman, 1583~1633)의 공방에서 조수로 6개월을 보낸다. 렘브란트의 스승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가톨릭 화가이다. 그의 부모가 칼뱅교로 개종했지만, 어머니의 친척들은 가톨릭을 고수했고, 친척들의 주선으로 가톨릭 화가를 스승으로 모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우상숭배라며 성상을 파괴하고 성화를 불태웠지만, 가톨릭은 성화를 더욱 장려했기 때문에 개신교 신자인 렘브란트가 성화를 많이 그리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렘브란트는 19살 때, 한 살 아래인 리벤스(Jan Lievens, 1607~1674)와 함께 1625년에 고향인 레이던에 공방을 차렸다. 관습에 얽매지 않은 두 젊은 화가의 명성은 주변에 금세 퍼졌고, 빛과 어둠을 통해 양감을 나타내는 키아로스쿠로를 이용한 그림들을 본격적으로 그렸으며, 노인을 모델로 레이던 화가들의 정교한 회화를 구사하고, 성경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으로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렘브란트 인생에서 전환점은 1628년에 콘스탄테인 호이헨스를 만나면서부터다. 인문주의자였던 호이헨스는 오라녜 가문의 프레데릭 헨드릭 총독의 비서로 1632년에서 1646년 사이에 헤이그 궁의 예배당을 꾸미는 중개인 역할을 했다. 렘브란트는 그에게서 7개로 구성된 연작을 주문받았다. 렘브란트는 1632년 6월에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하여 화상인 헨드리크 오일렌부르크의 집에서 지냈고, 1634년에 화상의 조카이자, 사망한 시장의 딸인 사스키아와 결혼하고, 1635년에 아내의 막대한 재산으로 호화로운 집을 산다. 렘브란트의 황금기는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1632년부터 1642년까지이다. 화가가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려면 그림의 주문과 제자가 많아야 한다. 이 시기에 렘브란트는 재력가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고, 1635년에는 거대한 창고를 빌려, 그곳을 공방으로 개조하여 제자들을 많이 받았다. 또한 렘브란트가 1633년부터 1639년에 그린 「그리스도의 수난」 연작은 렘브란트를 단숨에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네덜란드 최고 권력가인 프레데릭 헨드릭 총독의 경당에 이 연작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렘브란트가 1640년에 그렸고, 루카복음 1장 39-56절이 배경이며, 미국 디트로이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보면 의아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왜 마리아는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로 달려가지 않고, 마부를 거느리고 말을 타고 여행했을까? 왜 흑인 시녀가 마리아에게 녹색 망토를 입히는 것일까? 왜 마리아는 베일을 쓰지 않고 왕관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일까? 왜 사제 즈카르야는 궁궐 같은 집에서 나와 계단으로 내려오는 것일까? 왜 공작새는 등을 돌리고, 닭들은 마리아를 향해 환호하듯 달려가는 것일까? 왜 배경에 예루살렘 성전이 암흑 속에 감추어져 있을까? 이 모든 의문의 해답은 왕의 대관식으로 해결된다. 대관식에서는 왕이 될 사람이 말을 타고 입장하면 먼저 왕의 이름을 발표하고 왕관을 씌우고 망토를 입힌다. 왕이 왕좌에 오르면 사제는 이를 공인한다. 그러면 백성은 만세삼창을 한다. 마리아의 모습은 소녀의 모습이 아니라 여왕의 자태다. 마리아는 말을 타고 입장하고,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칭하며, 마리아는 왕관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망토를 입고 계단으로 오른다. 이에 사제 즈카르야는 여왕을 공적으로 인준하고 닭들은 기뻐 춤추며 환호한다. 왜 공작새가 등을 돌리고, 닭들이 환호하며 마리아에게로 달려가는 것일까? 마리아의 노래에 묘사된 대로 그분은 부유한 자들을 내치시고 가난한 이를 들어 올리신 분이기 때문이다. 왜 엘리사벳은 강아지 줄을 꼭 붙들고 마리아를 애절하게 바라보는 것일까? 그것은 마치 식탁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라도 원하는 가나안 여인처럼 여인 중에 가장 복되신 마리아의 은총 부스러기라도 원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영광은 땀과 눈물의 결실이다. 마리아가 들고 있는 손수건에서 떨어지는 두 개의 물방울은 눈물방울일 수도 있고, 땀방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믿음으로 아픔을 이겨냈기에 모든 이의 칭송을 받을 수 있었다. 비록 천상 예루살렘은 암흑 속에 감추어져 있지만, 주님의 뜻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마리아는 모든 여인 중에 가장 복된 분이시다. 우리가 주님의 얼굴을 맞대고 보는 날에 감추어진 것은 모두 나타나기 때문이다. 글 _ 손용환 신부 (요셉, 원주교구 북평본당 주임) 1992년 사제 서품. 원주교구 소속으로 16년간 군 사목을 한 후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으며, 현재 북평본당 주임으로 있다. 저서로 「오색의 기도」 「하느님의 가장 좋은 선물」 「사제의 향기」 「맹 신부」 「어리석음의 승리」 「천주교 군종교구사」 등이 있다.cpbc2026.04.13

14년 집념으로 완필한 ‘붓글씨 성경’대전 노은동본당 82세 복진을(도미니코)씨 복진을(도미니코, 맨 왼쪽)씨와 김유정 신부(가운데)가 대전 노은동성당 로비 성경 필사본 앞에서 촬영하고 있다. 제자 도움으로 필사본 책 7권으로 엮어 본당 입구 전시 “매일 먹 갈고 화선지에 붓 내리며 주님 안에 머문 시간”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요양원 신세를 질 때마다 조바심이 나고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곤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요한 15,5)라는 말씀을 되뇌며 주님 안에 머물러 있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했습니다. 먹을 갈고 화선지에 붓을 내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주님 안에 머문 시간이었습니다.” 복진을(도미니코, 82, 대전 노은동본당)씨는 펜으로도 필사하기 힘든 73권의 방대한 분량의 성경 구절을 매일 먹을 갈아 붓글씨로 완필하며 말씀 속 주님과 함께했다. 2012년 1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하루 2시간, 2장씩을 꼬박 바쳐 장장 14년에 걸쳐 완성해냈다. 80대 고령에도 육체적 한계를 신앙심과 인내로 극복해 낸 결과물이다. 복씨가 붓글씨로 성경을 필사하게 된 것은 우연찮은 계기에서 비롯됐다. 젊은 시절 서예에 자신 있었지만, 교직에 종사하는 30년 동안 먹과 벼루를 꺼내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06년 정년퇴임 후 가보지 못한 곳을 가보고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던 그는 자신의 은사로부터 한 요청을 받았다. 묘비 비문을 써달라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붓을 다시 집어들었다. 복씨는 “깊이 숨어있던 벼루와 먹, 붓을 찾아 고생 끝에 화선지에 비문을 써서 가져다 드렸는데, 장 속에 넣으려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면서 “붓글씨 재능을 살려 하느님께 의미 있는 무언가를 봉헌하겠다고 결심했고, 그렇게 눈에 익은 신약 성경부터 필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시작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붓으로 말씀을 적어 내려간 14년은 신앙인으로서 은총을 받게 된 시간이었다. 복씨는 “하루하루 먹을 갈고 화선지를 펼쳐 필사하는 단순한 반복이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과 같이 살아있는 느낌이 들고 하느님과 단둘이 만나는 기도의 시간이 됐다”고 고백했다. 이어 “때로는 힘에 부쳐 완성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모두 주님의 크신 은총임을 깨닫고 제 과업이라고 생각했다”며 “우리 신앙 선조들이 다 필사본으로 성경을 전파하고 했을 텐데, 이분들의 노고에 대해서도 크게 공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개인의 기나긴 필사 순례는 주변인들의 마음까지 감화시켰다. 자칫 창고에만 놓일 뻔한 필사본이 제자의 도움으로 제본까지 마치게 된 것이다. 제자의 지인이었던 25년 경력의 인쇄소 직원이 화선지 뒷면에 종이를 일일이 덧대는 ‘배접’ 방식을 제안했고, 마침내 수만 장의 화선지는 7권의 거대한 성경책으로 엮이게 됐다. 복씨는 필사본이 교회에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현재 노은동성당(주임 김유정 신부) 출입문에는 그의 필사본이 전시돼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보다 저의 작은 노력이 본당이나 교구의 뜻대로 쓰이길 바란다”고 전했다. 성경 필사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매일매일 성경을 필사하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필사 도중에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지만, 완필했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께서 건강을 허락해주신 것 아니겠습니까. 주님 은총에 한없이 감사드릴 뿐입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이준태 2026.03.11

위로, 제자의 사명[월간 꿈CUM] 테마로 읽는 구약 성경 – 위로 (08) 삽화: 김 사무엘 하느님의 위로를 체험한 사람은 그 위로를 형제들과도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마다 위로해 주시어, 우리도 그분에게서 받은 위로로, 온갖 환난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십니다.(2코린 1,3-4) 바오로 사도의 예를 봅시다. 그는 육체적, 정신적, 영적으로 큰 고난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입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 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헐벗음에 시달렸습니다.(2코린 11,23-27) 그뿐만 아니라 바오로 사도는 동료들의 배신 때문에도 고통을 겪었습니다. 데마스는 현세를 사랑한 나머지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가고,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티토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 구리 세공장이 알렉산드로스가 나에게 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2티모 4,10. 14. 16) 모든 고통은 바오로 사도를 짓누르고, 지치게 하고, 슬프게 만들었습니다.하지만 그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2티모 4,17) 바오로 사도는 고통 중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나는 위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그 모든 환난에도 기쁨에 넘쳐 있습니다.(2코린 7,4)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이렇게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위로를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가 체험한 위로는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고뇌에 저항하게 하고 시련과 두려움에 맞서 싸우게 하는 힘입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자신 또한 위로자가 되어, 이렇게 위로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2코린 4,7) 우리는 사도행전이 전하는 바오로 사도의 눈부신 업적을 읽으며 그의 능력에 경탄합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부서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자신의 나약함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그들 또한 나약함을 인정하도록 초대합니다. 그리고 코린토 신자들이 그에게서 보는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위로의 힘이라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위로의 힘의 산증인이 됨으로써 다른 이들도 위로를 받아들이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위로가 교회를 통하여 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2코린 11,29) 지체인 형제자매들이 머리인 그리스도를 모시고 하나의 몸을 이룬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니 한 지체가 약해지면 다른 지체도 약해지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다리에 문제가 생겨 걸을 수 없게 되면 몸 전체의 건강이 상하게 되죠. 하지만, 반대로 한 지체가 강해지면 다른 지체도 강해집니다. 예를 들어, 장 건강이 좋아지면 몸 전체의 영양 상태가 개선됩니다. 강한 지체를 통해 다른 지체가힘을 얻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위로가 바오로 사도를 통해 코린토 신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바오로 사도는 하나의 역설을 말합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10) 이 말씀은 우리의 약함은 단점이나 결점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오히려 우리가 약할 때 위로를 받아 진정으로 강해질 수 있다는 진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아마추어미술인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cpbc2026.04.13

시편과 예언서의 위로[월간 꿈CUM] 테마로 읽는 성경 _ 위로 (06) 삽화: 김 사무엘 시편은 불행, 병고, 죽음과 같이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비극적인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하느님의 위로를 청하는 기도를 담고 있는데, 때로는 반항으로까지 보이는 하느님께 대한 부르짖음도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경스러운 행위가 아니라, 그 본질은 간청입니다. 간청은 하느님의 존재, 권능, 선하심을 전제할 때만 가능하죠. 그리고 시편이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헛된 메아리로 되돌아오는 인간의 부르짖음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부르짖음에 위로로 응답하십니다. 곤경 속에서 내가 주님을 불렀더니 주님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으로 이끄셨네.(시편 118,5) 이 위로의 체험은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제가 당신을 찬송하니 당신께서 제게 응답하시고 제게 구원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시편 118,21) 시편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피신처와 힘이 되시어 어려울 때마다 늘 도우셨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네, 땅이 뒤흔들린다 해도 산들이 바다 깊은 곳으로 빠져든다 해도.(시편 46,2-3) 시편이 우리 자신의 기도가 되면, 우리 또한 시편 저자가 했던 것과 같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시편 저자가 비참한 상황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역사를 떠올리고 그분께 신뢰를 두어 위로를 얻게 되었듯이, 시편을 읽다 보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 뒤에 가려져 있던 우리의 기억이 깨어납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하느님의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기억이 말이죠. 그 순간 이미 위로는 시작됩니다. 유배 중이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자비와 위로에 대한 믿음으로 고통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나라가 멸망하기 직전까지도 회개하지 않고 하느님의 집인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위험이 닥칠 리 없다고 큰소리쳤습니다. 하지만 막상 유배를 겪고서야 자신들의 죄를 깨달았습니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죄 때문에 하느님께 버림받았다는,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떠나버리셨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당신 자신을 계시함으로써 백성을 격려하기를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정녕 주님께서는 너를 소박맞아 마음 아파하는 아내인 양 퇴박맞은 젊은 시절의 아내인 양 다시 부르신다. 너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크나큰 자비로 너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분노가 북받쳐 내 얼굴을 잠시 너에게서 감추었지만 영원한 자애로 너를 가엾이 여긴다.” 네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이사 54,6-8) 여기서 하느님은 당신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을 인륜으로 맺어진 관계 가운데 가장 굳건한 혼인 관계에 비유하십니다. 그러니 비록 이스라엘이 죄를 지었다고 해도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칼로 자르듯이 단절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더 나아가 당신과 이스라엘의 계약을 훨씬 강한 결속력을 가진 관계, 절대로 떼어 낼 수 없는 천륜의 관계에 비유하십니다. 바로 탯줄로 이어진 모자 관계 말입니다.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너희는 젖을 빨고 팔에 안겨 다니며 무릎 위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어머니가 제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라.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이사 66,12-13) 이렇게 당신께서 결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확신을 심어주시면서 하느님은 예루살렘을 회복시킬 뿐 아니라 이전보다 더욱 번성하게 해주실 것을 반복해서 약속하십니다. 환성을 올려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즐거워하여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아들들이 혼인한 여인의 아들들보다 많을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이사 54,1) 너 가련한 여인아, 광풍에 시달려도 위로받지 못한 여인아. 보라, 내가 석류석을 너의 주춧돌로 놓고 청옥으로 너의 기초를 세우리라. 너의 성가퀴들을 홍옥으로, 너의 대문들을 수정으로, 너의 성벽을 모두 보석으로 만들리라.(이사 54,11-12) 우리는 고아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라는 표현에 익숙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어머니이기도 하십니다. 어떤 경우라도 젖먹이를 잊을 수 없는 어머니처럼 하느님은 우리를 그렇게 돌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가엾이 여기시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이사 54,10)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아마추어미술인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cpbc2026.02.14

위로받을 자격[월간 꿈CUM] 테마로 읽는 성경 _ 위로 (05) 삽화 성경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 온 당신 백성을 위로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열망이 그분의 마음에서부터 솟아오른다고 합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내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츠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호세 11,8) 그렇다면 유다 백성은 하느님의 위로를 받아들여 해방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이사 40,3) 하느님의 거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그곳에서 오실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루살렘과 바빌론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광야를 하느님의 영광이 지나오실 수 있는 길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은 출애굽 사건 때처럼 하느님께서 다시 한번 당신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건너시리라는 믿음을 지니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훗날, 이 말씀은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의 입에 담기게 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 오신다” 하고 말하여라.(이사 40,9) 우리말 성경에는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 계시다’로 번역되어 있지만, 이어지는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를 고려할 때, ‘계시다’보다 ‘오신다’가 더 자연스러운 번역 같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는 승전하고 개선하는 위풍당당한 임금과 같은 모습만이 아니라, 양 떼를, 특히 가장 약한 양들을 조심스레 돌보는 자상한 목자와 같은 모습도 있습니다.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 40,10-11) 이렇게 위로하시는 하느님은 당신 백성의 ‘고엘’(구원자)이십니다. “모든 인간이 나 주님이 너를 구해주는 이요 너의 구원자(고엘)가 야곱의 장사임을 알게 되리라.”(이사 49,26) 히브리어 ‘고엘’은 법적인 용어인데, 혈족 가운데 억울한 죽임을 당한 사람의 복수를 해주거나, 자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아내와 결혼하여 대를 이어주거나, 가난한 사람의 빚을 대신 갚아주는 등의 의무를 맡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고엘’이라고 선언하심으로써 마치 이스라엘과 혈연관계에 있는 듯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어찌 이스라엘을 돌보지 않고 불행을 두고만 보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고엘’이시기에 이스라엘의 배신으로 깨어진 계약을 어떤 조건도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그냥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스라엘이 그 계약을 복원시키기 위한 어떤 일도 한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인간 ‘고엘’은 의무감 때문에 혈족을 돕지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동기는 연민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오직 ‘가엾은 마음’(루카 10,33) 때문에 도와준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 백성의 고통이 하느님의 마음에 연민을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크나큰 자비로 너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분노가 북받쳐 내 얼굴을 잠시 너에게서 감추었지만 영원한 자애로 너를 가엾이 여긴다.”(이사 54,7-8) 이렇게 하느님의 연민에 기반하여 맺어진 새 계약은 시나이 계약과 다릅니다. 시나이 계약이 계약의 양쪽 당사자 모두에게 의무를 지우는 쌍무계약(雙務契約)이었다면, 이 새 계약에서는 오직 하느님만 의무를 지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계약은, 신실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의무를 저버리실 리는 없으니, 이스라엘이 무슨 짓을 해도 깨어지지 않는 영원한 계약입니다. 연민의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받아들이기 위한 자격과 조건은 없습니다. 다만 구원으로써 위로하실 의지와 능력이 있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늘아, 환성을 올려라. 땅아, 기뻐 뛰어라. 산들아, 기뻐 소리쳐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가엾이 여기셨다.(이사 49,13) 욥을 위로하고자 찾아온 친구들은 이 연민의 하느님을 알지도 못하고 닮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정의의 하느님만을 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상과 벌을 내리시는 일에 틀림이 없는 하느님을 옹호한답시고 욥이 겪는 지독한 불행의 책임을 그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위로 대신 오히려 고통만 가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제 탓으로 고통을 겪었는데도, 막상 고통받고 있는 당신 백성을 보신 하느님의 마음은 분노가 자리할 틈조차 없이 연민으로 가득 찼는데 말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cpbc2026.01.28

성경 원문으로 다시 듣는 예수님의 목소리 히브리어·그리스어로 풀어본 구약·신약 핵심 낱말 100여 개 예수님이 사용하신 히브리어 낱말 - 예수님 제자들이 사용한 그리스어 낱말 / 잔프랑코 라바시 추기경 / 박영식 신부 옮김 / 생활성서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책은 성경이다. 구약 성경은 전체 30만 5441개의 단어로 구성되었으며, 사용된 용어는 5750개에 달한다. 신약 성경에는 13만 8020개의 단어와 5433개의 어휘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 원문을 보면 당연하게도 한국어는 물론이고 오늘날 세계 공용어인 영어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라면 제대로 알거나 정확하게 구분하지는 못해도 ‘라틴어·히브리어·그리스어·아람어’ 등의 표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학자들은 예수님 시대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모두 네 개의 언어가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로마 제국의 언어인 라틴어와 공용어인 그리스어, 지역 언어인 히브리어와 아람어다. 구약 성경은 대체로 히브리어로 작성됐고, 신약 성경은 그리스어로 표기됐다. 히브리어의 경우 유다인들의 바빌론 유배 이후 사어(死語)화되어 고대 근동 지역 언어였던 아람어로 대체되어 갔다. 예수님과 제자들도 아람어를 썼으나,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셨다는 성경의 기록을 참고하면 히브리어를 사용하셨음을 추론할 수 있다. 한국천주교회는 2005년 작업을 마친 공용 번역본을 가톨릭 성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인류의 발전과 함께 어휘는 풍부해지고 문법적으로도 정밀해졌다. 성경이 저술된 시대와 오늘날의 어휘에 큰 차이가 있는 이유다. 게다가 번역이라는 과정까지 거치며 문화적·사회적인 원인으로 각 언어의 성경에는 원문이 갖는 의미와 조금은 이질적인 표현도 있을 수 있다.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는 예수님을 묘사한 뉴욕 밸리 스트림에 있는 축복받은 성체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OSV 「예수님이 사용하신 히브리어 낱말」은 30여만 개의 단어로 구성된 구약 성경에서 핵심적인 55개의 어휘를 골라 설명한다. 인류의 시작인 ‘아담’에서 시작해 창조의 단어인 ‘바라’, 발음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이름 ‘야웨’(야훼), 오늘날 가장 필요한 개념인 평화 ‘샬롬’ 등 낱말의 히브리어 표기와 발음·의미·사용 빈도 등을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히브리어의 다른 낱말이나 비슷한 뜻의 그리스어 낱말까지 소개한다. 이는 현대 어휘가 표현할 수 없는 더 많은 의미가 구약 성경의 히브리어에 담겨 있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을 더욱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이 어휘들은 나자렛과 카파르나움의 회당에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특별히 안식일과 축제일들에 전달된 예수님의 목소리를 지금의 우리에게 들려준다. “‘메시아’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메시아가 히브리어 형용사/명사 [마시아흐]의 우리말 음역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39회 등장하는 이 단어는 직역하면 ‘기름부음 받은 이’, 곧 ‘성별된 이’를 뜻합니다. 이 용어의 그리스어 번역이 [크리스토스]이며, 여기에서 그리스도Cristo가 파생되었습니다.”(131쪽) 함께 출간된 「예수님 제자들이 사용한 그리스어 낱말」은 신약 성경 속 주요 메시지를 담은 50여 개의 어휘를 폭넓게 설명한다. 그리스도교의 가장 큰 주제인 ‘아가페’에서 시작해 예수님을 상징하는 진리 ‘알레테이아’, 사도를 뜻하는 ‘아포스톨로스’, 예수님의 때와 시간을 의미하는 ‘호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와 낱말을 다룬다. 구약 성경에 사용된 히브리어와의 연관성과 차이점, 그리스 철학과의 관계, 변형된 낱말의 의미 등도 소개한다. “그리스어는 서구의 많은 어휘들을 생산한 언어이고, 현대 서양은 고전 형태나 ‘헬레니즘’으로 정의된 그리스어의 문화유산을 이어받았습니다. 사실, 오늘날 영어가 널리 통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 시대 민중들 사이에서는 그리스어가 라틴어보다 더 널리 사용되었으며, ‘공통’의 언어라는 의미의 ‘코이네’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중략) 신약 성경을 구성하는 스물일곱 권의 책들도 그리스어로 집필되었습니다.”(8쪽) 성서학자인 잔프랑코 라바시 추기경이 집필했다. 저자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세텐트리오날레 신학교에서 성경 주석학을 가르쳤고,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며 150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총장 및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서울대교구 박영식(성사전담) 신부가 우리말로 옮겼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1.07

WYD 앞두고 청소년사목 ‘자기주도형’으로서울대교구, 체험·나눔 중심 신앙교육 ‘나다’ 확산성경 나눔·경청 중심… 청소년 신앙 주체성 키운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본당 청소년 사목에 활력을 불어넣을 기회로 주목받는 가운데, 서울대교구가 청소년사목 새 방법론 ‘나다(I AM)’를 WYD 교육과 연계해 도입하는 청사진을 내놨다. 청소년을 신앙의 주체로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교구 청소년국 중고등부(담당 김준휘 신부)는 3일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 문화관 꼬스트홀에서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와 함께하는 ‘청소년을 위한 WYD 교육과 연계한 나다(I AM) 설명회’를 열었다. 정 대주교는 “청소년들이 피동적으로 교리를 듣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기 주도적으로 체험하고 나누게 하며, 사목자는 청소년과 만나는 접점을 늘리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나다’는 청소년들이 주일학교의 기존 일방적·수동적 교육 대상자에서 벗어나 능동적 참여자로 전환하는 게 특징이다. 학년의 장벽을 넘어 적은 인원으로 구성된 연령 통합 모임 안에서 체험과 성경 나눔에 참여해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고 신앙을 키워나가도록 한다. 교리교사 역할도 경청하는 동반자로 변화한다. 교리교사는 전문 교리 지식을 갖추고 교안을 작성해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나다’는 성경을 매개로 삶을 나누고, 열린 질문으로 구성된 성경 나눔 교재 ‘말씀 길잡이’를 활용한다.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나눔이 원활하게 함께할 의지만 있다면 청년·학부모 누구나 모임 봉사자가 될 수 있다. 사제도 이를 총괄하는 코디네이터인 동시에 모임 봉사자로 경청하고 동반한다. 설명회에서 나다를 시범 도입한 교리교사들이 효과를 설명했다. 박지은(안젤라, 행운동본당)씨는 “교사가 저 1명에 학생도 7명이라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나다 덕에 청년과 학부모들을 모임 봉사자로 투입해 도움을 얻었고, 교안 작성 부담도 줄었다”고 밝혔다. 채승병(미카엘, 혜화동본당)씨도 “10주간 시범 운영 결과 14명이던 학생 수가 26명으로 증가했다”고 했다. 정릉4동본당 교사들은 “대화의 질이 향상되고, 적은 인원이 오히려 영적으로 밀착하게 됐다”고 전했다. 학생들도 “성경을 더 열심히 읽게 되고, 교사들과 소통도 늘었다”고 했다. 교구는 서울 WYD를 계기로 본당에서 나다가 더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보급할 예정이다 청소년국장 장원석 신부는 “그간 청소년 사목 현장에서 모아온 작은 불꽃들이 2027 서울 WYD라는 큰 여정과 함께 활활 타오르는 시간이 올 것”이라며 사목자와 교사들의 동참을 당부했다. 교구 청소년국은 오는 10월부터 2027년 5월까지 본당 청소년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WYD 영성 교육’ 커리큘럼 전반에 나다 방법론을 적용해 알릴 계획이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이학주2026.07.08
[조학균 신부의 미사 이야기]5-말씀 전례의 구조하느님 말씀 듣고 인간이 화답미사전례는 말씀 전례와 성찬례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미사에 참례하는 이들이 어떤 부분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가족을 구성하는데 어머니와 아버지 어느 분이 더 중요하냐고 질문하는 것과 같다. 하느님 말씀을 듣는 예식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성찬례에 참례하는 것은 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2002년도에 발표된 「로마 미사 지침서」에 의하면 말씀 전례의 중심 부분은 성경 말씀들과 그 사이에 오는 노래로 이루어진다. 이어 오는 강론, 신앙고백, 보편지향기도는 이 중심 부분을 더 발전시키고 완결한다. 독서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구속과 구원의 신비를 열어 보이시며 영적 양식을 주신다. 강론은 봉독한 말씀을 해설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말씀을 통해 여러 신자들 가운데 실제로 현존하신다. 이렇듯 미사전례에서 하느님 말씀이 중요한 이유는 1) 말씀 전례에서 봉독하는 성경은 성령의 감도로 기록된 하느님 말씀이기 때문이다. 하느님 말씀은 언제나 살아 있으며 힘이 있고, 신앙생활에 활력소가 되며, 나아가 신앙생활의 목적과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룩하신 구원 업적을 거룩한 표지와 말씀으로 기념하고 재현한다. 성경에 기록된 하느님 말씀은 성경을 봉독할 때마다 특별한 모양으로 그 현존을 실현시킨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 전례 중에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현존하실 뿐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도(Hic et nunc) 성령의 능력을 통해 말씀이 뜻하는 바를 실현시키시며, 인간에 대한 성부의 사랑이 실제로 드러나게 한다. 결국 말씀 전례 부분에 있어서 독서의 중심에는 그리스도 생애가 놓여 있으며, 교회가 지정하는 독서 내용은 성경 본문으로 이루어져야만 하고, 성경 이외에 그 어떤 책도 하느님 말씀을 대신해서 읽을 수 없다(새'미사 전례서 총지침(2002)'에 따른 간추린 미사 전례 지침, 19쪽). 말씀 전례에서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써 일상 생활 속에서 멀어진 하느님과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한다. 이로써 하느님과 대화가 이뤄지는 것이다. 즉 하느님과 그리스도인들과의 통교가 성경 봉독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다. 대화에서는 언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말씀 전례에서 언어는 하느님 말씀인 성경에 대한 봉독과 그 성경 말씀을 풀이하는 사제나 부제의 강론이나 훈화, 그리고 이에 화답하는 교우들의 기도와 노래로 규정할 수 있다. 전례 언어는 전례의 본질적 요소일 뿐 아니라 전례의 기본 구조를 하느님의 말씀과 인간의 화답으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실 성경 봉독과 강론은 이미 구약 유다교 예배의 기본 형태다. 무엇보다도 안식일에 거행되는 시나고가 예배는 율법서와 예언서의 봉독과 강론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도교는 성경을 미사 중에, 특히 말씀 전례 중에 봉독하는 예식을 받아들였다. 초대 교회에서는 미사 전례 중 독서로 성경 외에도 치명록이나 주교들의 서한들도 읽었지만 중세 초기부터 성경만 읽도록 해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까지 공식 전례 언어는 라틴어였지만 공의회 이후에는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개방은 전례에서 성경 봉독을 더욱 풍요롭고 더욱 다양하고 더욱 적합하게 해준다. 조학균 신부 (예수회)조은일2009.06.16

계약의 하느님[월간 꿈 CUM] 테마로 읽는 성경 _ 위로 계약은 히브리어로 ‘브리트’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에는 하나의 역설이 숨어있습니다. 계약은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순수한 열망에서 비롯되며, 은총에 의한 선택입니다. 모든 인간 가운데 일부를 자유롭게 선택하시어 일방적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창세 17,7) 그렇지만 계약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의 동의, 부르심에 대한 사랑의 응답, 신뢰와 포기에 대한 요청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모세는) 계약의 책을 들고 그것을 읽어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탈출 24,7)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에 관한 여러 성경 본문은 기본적으로 봉건 군주와 봉신 사이의 관계를 엄격히 규정한 히타이트 문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고대 근동의 영향을 받은(성경은 근동의 문서들 가운데 후대에 기록된 것이기에 이 현상은 당연합니다) 성경의 다른 본문들이 단순한 모방에서 그치지 않고 하느님 신앙 안에서 재해석하여 독창성을 부여하였듯이, 이 본문들도 계약을 군주와 신하 관계의 법적 엄정함을 넘어서 하느님과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삶의 차원으로까지 확장합니다. 그래서 계약의 백성은 단지 율법 준수의 의무를 지는 것뿐 아니라 하느님께 불평할 권리까지 가지는 것입니다. 주님, 언제까지 마냥 저를 잊고 계시렵니까? 언제까지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시렵니까?(시편 13,2) 또한, 하느님께 부르짖음과 회개, 찬양과 감사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는 혼인으로도 표현됩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호세 2,21-22) 여기 하느님과의 계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우리말 성경에 ‘신의’로 번역된 ‘헤세드’는 호의, 충실, 진실, 성실, 자애, 사랑의 의미를 모두 품고 있는 풍부한 단어입니다. 이 ‘헤세드’는 마치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아 함께 하는 삶, 나누는 삶을 가능케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 ‘공정’으로 번역된 단어는 ‘미쉬파트’인데, 이 단어는 특히 약자를 향한 정의를 강조합니다. 그러니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것은 약자를 돌보시는 하느님의 호의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말 성경에 ‘진실’로 번역된 단어는 ‘에무나’인데, 땅에 견고히 박힌 말뚝처럼 우리를 지탱해 줄 변치 않는 진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하느님과의 계약은 신뢰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는 나오지 않지만, 하느님의 계약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아하브.’ 우리말 성경에는 종종 사랑으로 번역됩니다. 이 단어는 배타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계약에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이모든 것에 앞서 서로를 사랑하고, 오직 서로에게만 충실할 의무가 따릅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계약에 충실하신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실 수 없습니다.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4-15) 이사야 예언자는 유배 중인 백성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외칩니다. 이미 놀라운 권능으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당신 백성을 구원하신 하느님께서 이제 새 출애굽 사건을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길을 내신 분, 병거와 병마 군대와 용사들을 함께 나오게 하신 분. 그들은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꺼져 가는 심지처럼 사그라졌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사 43,16-19) 이사야의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계약의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구원할 의지를 갖고 계시다. 그리고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구원할 능력이 있음도 이미 보여주셨다. 그러니 포로 신세로부터의 해방이 가까이 왔다. 하느님의 위로는 공허한 말이 아닙니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 2025.12.12

추석 연휴 책과 함께 영성을 채우다한가위 읽을 만한 책추석을 앞두고 있다. 나흘간의 연휴가 끝나면 교회 안팎으로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을 향한 발걸음이 본격화된다.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에 허탈한 마음이 든다면 연휴 기간 책과 함께 영성과 마음을 챙겨보면 어떨까.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면 성경 지도 / 자코모 페레고 신부 등 / 이한석 신부 옮김 / 생활성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땅에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깃들어 있다. 구세사는 단순한 문헌이나 상상 속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 안에서, 사람이 발을 딛고 선 땅 위에 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다 보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와는 동떨어진 시공간과 문화로 인해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직접 현지를 방문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성경 지도」는 자코모 페레고(성 바오로수도회) 신부 등 다섯 명의 성경학자가 최신 고고학·지리학·역사학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한 새로운 지도에 신·구약 성경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한 책이다. 시대별 성경의 배경과 주요 사건을 고해상도 지도와 유적·유물 사진으로 제시한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부터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퍼져 나간 곳들까지, 즉 팔레스티나 지방을 비롯해 서아시아와 지중해 일대,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성경 전체를 하나의 지리적 궤적으로 따라가며 종합적으로 안내한다. 책은 장마다 ‘성경-역사-지리-고고학’의 순서를 따른다. 성경 내용을 정리하고, 실제 역사 안에서 해당 부분이 어떻게 기술되었는지 살펴본 뒤 그 사건이 펼쳐진 곳의 지리적인 특징을 짚고, 그곳에서 실제로 어떤 유물이 발굴되었는지 알아본다. 설명과 함께 바로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게 구성했고, 예수님 시대 예루살렘 도성의 세부 장소 등 명확한 그림을 그리기 어려운 부분은 평면도를 제시해 이해를 돕는다. 여러 성지나 유물·유적의 최신 사진을 더했다. 성경과 성화 속 주인공들 / 소피 코-루리에 / 정수민 옮김 / BH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핵심은 바로 ‘인물’이다. 아담과 하와부터 아벨과 카인, 아브라함·이사악·모세, 다윗·밧세바·솔로몬, 엘리야·예레미야·에제키엘, 롯·삼손·욥, 마리아·요셉·예수, 베드로·요한·바오로 등 하느님의 구원사에는 각기 다른 시대와 문화 속에서 살아가며 저마다의 역할을 담당했던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익숙한 이름이지만 그 계보는 늘 헷갈린다. 한편 성경은 서구 문명의 뿌리이자 영원한 고전이다. 성경 속 인물들은 종교를 넘어 인류의 문화와 상상력을 움직여 왔다. 홍해를 가르는 모세의 장엄한 이야기는 영화 ‘십계’의 소재가 됐고,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은 서구 문화에서 전형적인 인물 구도며, 악녀 살로메와 적장의 목을 벤 유딧은 수많은 화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예수님을 비롯한 12사도의 면모와 그들이 남긴 상징물 역시 중세의 성화부터 현대의 대중문화 코드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있다. 「성경과 성화 속 주인공들」은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 방대한 성경 속 핵심 인물들을 일러스트·명화·사진 등 풍부한 이미지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으로 엮고 있다. 단순히 성경의 내용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둘러싼 이야기와 지금과의 연결고리를 재밌게 풀어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 중앙에는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가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인간이 창조되는 장면을 묘사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다. 그림 속 쭉 뻗은 손가락은 수없이 차용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스필버그의 영화 ‘E.T.’ 포스터가 잘 알려져 있다.”(13쪽) 책은 가톨릭 서적을 기본으로 집필됐고, 성경 인용과 표기도 가톨릭 성경을 기준으로 한다. 마음밭이 거칠어졌다면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는가 / 가타야나기 히로시 신부 / 백종원 신부 옮김 / 바오로딸 성녀 마더 데레사의 권유로 사제가 된 이가 있다. 바로 일본의 가타야나기 히로시(야마구치현 우베본당 주임) 신부. 1994년 게이오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고 무작정 데레사 수녀를 만나기 위해 인도 콜카타로 향했고, 그곳에서 2년 넘게 함께 봉사의 삶을 살았다. 예수회에 입회해 2008년 사제품을 받았다.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는가」는 사제와 청년이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책이다. SNS에서 우연히 접한 성경 구절에 이끌려 그리스도교라는 낯선 세계에 들어선 한 청년의 수많은 물음은 종교와 나이를 떠나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답을 찾고자 애쓰는 사안이다. 저자는 삶의 해답을 찾고자 방황했던 과거의 자신에게 이야기하듯,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힘겨운 현재의 자신을 응원하듯 진솔하고 다정하게 답변을 제시한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무한 경쟁과 무너진 인간관계로 힘들어하는 모두에게 사제로서, 인생 선배로서 속 깊은 조언을 전한다. “나: (‘되찾은 이들의 비유’에서)열심히 일한 나만이 사랑받아야 하는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동생이 사랑받고 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중략) 신부: 농사가 힘들고 괴로운 일이지만, 자신을 소중히 여겨주는 아버지와 함께 일하면서 가축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농작물의 수확을 기뻐하는 것, 이 역시 그저 단순히 힘든 걸 참아내는 거라고만은 할 수 없을 겁니다.”(67쪽)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 / 홍성남 신부 / 가톨릭출판사 “슬픔에 너 자신을 넘겨주지 말고 일부러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마라. 마음의 기쁨은 곧 사람의 생명이며 즐거움은 곧 인간의 장수이다. 긴장을 풀고 마음을 달래라. 그리고 근심을 네게서 멀리 던져 버려라. 정녕 근심은 많은 사람을 망쳐 놓고 그 안에는 아무 득도 없다.”(집회 30,21-23) 짜증·우울·불안·분노·열등감⋯. 신앙인인 만큼 이들 부정적인 감정에서 자유로우면 좋으련만 숱한 기도와 묵상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평온한 일상의 발목을 잡는다. ‘제 탓이오’를 외치며 부족한 믿음과 나약한 자신을 탓한다. 서울대교구 홍성남(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신부의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은 누구나 겪지만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감정들을 신앙과 심리학의 시선으로 풀어낸 마음 치유서다. 초판 후 7년 만에 나온 개정판이다. 저자는 이들 감정을 단순히 참거나 억누르라고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탓하거나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말라고 말한다. 대신 지금 자신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첫걸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 역시 젊은 시절에는 늘 입에 불만을 달고 살았다며, 아무 득도 없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음 사용법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개한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9.16

일치기도주간-천주교와 개신교(상)같은 신앙 고백에도 방식은 서로 달라 천주교와 개신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요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하는 같은 그리스도교입니다. 그러나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그리스도교이면서도 천주교와 개신교는 교리와 실천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차이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대화와 일치 노력에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일치 기도 주간'을 맞아 그 차이는 무엇이며 특히 이와 관련해서 개신교 신자들이 내세우는 주장에 대해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 것인지를 3회에 걸쳐 알아봅니다. **성경만으로?개신교 신자들은 성경에 최고 권위를 부여합니다. 성경은 글로 쓰인 하느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천주교도 마찬가지지요. 다만 가톨릭은 성경만이 아니라 성전(聖傳) 곧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도 똑같이 존중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만으로!'를 외치며 성전의 권위를 부정하는 개신교 신자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답변할 수 있을까요?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한 신학자에 따르면 '성경이 어떻게 해서 성경이 됐느냐'고 되묻는 것이 좋은 답변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좀 더 살펴봅니다. 가톨릭에서는 구약 46권 신약 27권, 모두 73권을 성경으로 인정합니다. 반면에 개신교에서는 구약 39권, 신약 27권 등 모두 66권만을 성경으로 인정하지요. 이렇게 66권을 성경으로 최종 선언한 것은 1647년 웨스터민스터신학자 총회에서였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공동체, 곧 교회 공동체가 선언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교회를 전제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신약성경이 글로 기록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교회 공동체가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가 '이것은 성경이다. 이것은 아니다'하고 결정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교회는 무슨 권위로 '성경이다' '아니다'를 가려낼 수 있었을까요?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20,30)고 기록합니다. 또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21,25)고 적고 있지요.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예수님의 이런 행적과 가르침들은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에 전해진 것입니다. 교회는 글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을 통해서 교회 공동체에 전해진 예수님 말씀과 행동에 비춰,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에 힘입어 '성경이다', '아니다'를 가릴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교회에 맡겨진 말씀을 가톨릭교회는 성전, 곧 거룩한 전통이라고 부릅니다 .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성경 곧 글로 기록된 하느님 말씀과 성전 곧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에 전해지고 위탁된 말씀을 "똑같이 경건한 애정과 존경으로써 받아들이고 공경해야 한다"(계시헌장 9항)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믿음만으로? '예수 천국, 불신 지옥'. 거리에서 혹은 전철에서 흔히 듣게 되는 이 말은 마르틴 루터가 프로테스탄트 개혁을 일으키면서 외친 '오직 믿음만으로!'란 구호의 현대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 천주교회는 믿음만 있어서는 안 되고 믿음에 상응하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전통적으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큰 차이 가운데 하나로 여겨져 왔지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과 루터교의 대화가 촉진되면서 이런 대립된 생각이 상당 부분 해소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지난 1999년 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와 루터교세계연맹은 이 부분에 대해 원칙적 합의를 이뤘습니다. 그 핵심 내용을 조금 쉽게 푼다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인정받는다. 곧 구원받는다. 이 믿음은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이다. 이 은총의 힘으로 이제 우리는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믿음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것과 믿음을 행동으로 드러냄으로써 의롭게 된다는 것이 대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믿음은 또한 바른 실천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다면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야고 2,17)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와 관련해서 가톨릭교회에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훌륭한 명제가 있습니다 .'은총은 본성을 파괴하지 않으며 오히려 전제하고 완성한다.' 이 말은 하느님 은총은 인간의 협력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은총이 우리를 이끌어 우리가 하느님 은총 안에 살려면 우리 자신이 바르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또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가톨릭이 믿음만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은 하느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 그만큼 무겁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조은일2011.01.11
[함께해요 평화방송] 라디오 ▨언제나 좋은 하루 참살이를 위한 알찬 생활정보를 전한다. 서울 비폭력대화센터 캐서린 한 대표의 '가정 방정식, 사랑 공식', 기업책임시민센터 최삼송 상임운영위원과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상건 상무의 실속 경제정보, 가톨릭중앙의료원 교수와 함께하는 건강상담, 조혜정 영화 평론가의 '문화읽기', 심리상담학 교수들의 사례상담 등 정보가 다채롭다. ▶방송일시: 매주 월~토 오전 11시 5분~낮 12시 ▶진행: 김현주 아나운서<사진> ▶제작: 박용환 PDTV 시청자들이 더욱 알찬 신앙의 해를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성경강의 프로그램을 방송한다. ▨백운철 신부의 신약여행 : 바오로서간, 공관복음, 요한계 문헌 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말씀을 되새긴다. ▶월요일 오전 9시(본방송), 화요일 오후 9시, 목요일 오후 3시 ▨김혜윤 수녀의 구약노트 : 구약성경의 핵심을 정리해 구약 독서의 힘을 키워준다. ▶화요일 오전 9시(본방송), 목요일 오후 9시, 금요일 오후 3시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 평신도 신학자가 야훼 사상의 정수를 들려준다. ▶수요일 오전 9시(본방송), 금요일 오후 9시, 월요일 오후 3시 ▨성경 인물과의 만남: 성경 속 다양한 인물에 대해 알아본다. ▶목요일 오전 9시(본방송), 월요일 오후 9시, 수요일 오후 3시조은일2013.04.02
-말씀과 놀이](//cpbc.co.kr/CMS/newspaper/2012/03/rc/408238_1.1_titleImage_1.jpg)
[신앙의 재발견](7)-말씀과 놀이말씀 통해 배려 배우고 기쁨 느끼도록홍광철 신부(대전교구 합덕본당 주임, 합덕유스호스텔 관장)일반적으로 '성경'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공부'다. 공부와 놀이는 쉽게 연결되지 않고, 성경말씀과 놀이는 더욱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놀이가 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말씀과 놀이'다.'말씀과 놀이'는 현재 대전 합덕유스호스텔에서 시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청소년들이 성경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친구들과 나누고, 말씀으로 기도하기를 통해 복음의 핵심으로 들어가 말씀 안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게 목표다. 주일학교는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이 위로받고, 신앙 안에서 한 주 동안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회는 말씀의 씨를 받아 간직한 어린 신앙인들이 자신의 씨를 심고 관리하며 열매를 맺어 나가도록 도와줘야 한다.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 전국 시ㆍ군 교육청이 주일학교를 강조하는 이유는 인성교육의 현장으로서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각 본당 주일학교는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주일학교 교리의 근본 문제는 반복학습과 말씀교육의 부재다. 신앙도 생활 속에서 좋은 습관으로 자리잡도록 반복해서 가르쳐야 한다. 교리를 통해 성경을 가르치기보다 성경을 통해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 단편적으로 성경을 배우는 게 아니라, 말씀이 삶의 지표가 되고 기쁨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복음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연습을 하게 된다. 생각이 복음적으로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당연히 습관과 성품이 바뀐다. 습관과 성품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생활이 바뀌고, 결국 참된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 생각이 바뀌려면 귀가 따갑도록 성경말씀을 듣고 읽을 수 있는 기회와, 성경말씀을 가지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한다. 복음말씀을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통해 학생들 생각은 깊어지고 이해력은 커진다. 나눔을 하면서 학생들은 서로 생각의 다름을 체험할 수 있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배려'를 배울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소외되는 학생들이 줄어들게 되고, 각자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같은 소통의 연습을 통해 또래 친구들의 고민도 들어주고 상담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키울 수 있다. 구역 소공동체에서 실시하는 복음 나누기가 성공을 거두기 어려운 것은 어려서부터 말씀을 읽고 나누는 것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적 생각을 바꿀 수 있는 훌륭한 독서 교육인 '말씀과 놀이'를 어려서부터 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정리=박정연 기자 cecil@pbc.co.kr ※평화방송 TV '신앙의 재발견' 방송시간 : 월요일 오전 8시(본방송), 화요일 오후 9시(이하 재방송) 목요일 오후 4시, 일요일 오후 8시조은일2012.03.13
[출판]중용의 사부, 성 베네딕도의 영적 가르침- 수도생활의 근본, 성 베네딕토 규칙순종과 덕행, 공동체 생활 등 규칙 내용 정리 중용의 사부, 성 베네딕도의 영적 가르침(허성석 지음/들숨날숨/1만 원) 하느님을 향한 여정을 안내하는 기본 지침은 성경이다. 바실리오 성인은 그리스도인 삶에 유일한 지침으로 성경을 꼽았다. 성경말씀을 수도자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한 것이 수도규칙이다. 여러 수도규칙 중 가장 유명한 규칙은 누루시아의 베네딕토 성인이 만든 '성 베네딕토 규칙'으로 중세 유럽 수도생활의 근본이 된 유일한 규칙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은 허성석(성 베네딕도회 화순수도원 원장) 신부가 베네딕도회 공동체를 대상으로 피정 지도를 할 때, 성 베네딕토 규칙을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 허 신부는 먼저 규칙 머리말과 제1장을 중심으로 베네딕토 성인이 생각한 수도생활의 이상을 살펴봤다. 이어 '구원여정의 도구'인 순종과, 순종과 관련된 덕행(들음, 침묵, 실천, 겸손)에 관해 설명했다. 베네딕도회 삶을 구성하는 3가지 요소인 하느님의 일, 성독, 노동을 알아보고 조화로운 공동체 생활을 위한 가르침도 되새겼다. 마지막으론 규칙을 통해 드러나는 베네딕토 성인의 인격적 면모를 분석했다. 허 신부는 "베네딕토 성인 정신의 핵심은 사랑"이라며 "아무리 성경과 규칙을 많이 읽고 공부해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의 지향점인 사랑을 놓쳐 버린다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조은일2013.06.11

원어 파고들어 다시 읽는 바오로 신학성서신학 박사 박병규 신부 바티칸 파올리나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벽화 ‘성 바오로의 회심’. 그리스도를 만나 삶의 완전한 전환을 이루고,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신앙의 이정표를 제시한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담은 작품 일부. OSV 성경 본문 줌아웃 / 박병규 신부 / 생활성서 “평생 율법에 따라 흠 없이 의롭게 살았던 바오로는 자신에게 이로웠던 것이 도리어 해롭게 되었다고 말하며 그리스도를 소개한다.(필리 3,6-7) 한 인간의 절대적 포기와 절망의 한가운데,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다. (중략) 그러나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깨닫고 알아 가면서 흔하고 모호한 존재에서 고유한 식견을 지닌 주체로 거듭난다.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자리에서 바오로 역시 더욱 선명해진다.”(60쪽) 「성경 본문 줌아웃 - 바오로 서간 편」은 바오로 신학의 정수가 담긴 11개의 핵심 본문을 골라 십자가와 부활·믿음·의화·기도·은총·자유·세례·죽음·종말 등 그리스도교 신앙을 형성하는 주제들을 짚어 나간 책이다. 바오로 서간은 바오로 사도가 각지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신자들에게 쓴 편지다. 다양한 문제와 질문 속에서 신앙을 일궈 나가는 공동체를 위로하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기록한 편지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앙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된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어로 편지를 썼다. 성서신학자인 박병규(대구대교구) 신부는 바오로 사도가 사용했던 그리스어 낱말을 파고들어 말씀을 깊이 ‘줌인’하고, 다시 우리의 신앙생활과 실생활로 ‘줌아웃’해 설명한다. 특히 우리말 성경만 읽었을 때 발견하기 어려운 의도와 뉘앙스를 세밀하게 짚어낸다. 예를 들어 바오로 사도는 우리말 ‘도구’로 번역된 ‘호플론(ὅπλον)’을 ‘무기’의 의미를 담아 자주 사용했다.(로마 13,12; 2코린 6,7; 10,4 참조) 세례받은 이는 현실 속에서 무기를 든 전사와 같다. 다만 그들은 악과 죄와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희망과 기쁨, 영광을 위해 싸운다. 힘들고 아프고 슬픈 것들이 희망과 기쁨, 영광의 방증이 된다는 역설이 가능하며, 이것이 세례받은 신앙인의 새로운 삶이라고 말한다. 박 신부는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해석하는 일이며, 지금 우리 삶의 자리에서 성경의 메시지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독자의 논리와 인식의 깊이 앞에서 새롭게 창조하는 일”이라며 “바오로가 예수님을 읽고 그분을 해석했듯 자신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을 자신의 정확한 논리 안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연습”을 강조한다. “바오로 사도의 행적을 끝까지 읽고 나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라는 말, 바오로의 언어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한마디면 충분할 것이다. 신앙은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우리를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184쪽) 저자는 프랑스 리옹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가톨릭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성경 본문 줌아웃: 공관 복음서, 사도행전 편」·「요한 복음서-성경 펼쳐 읽기」·「시서와 지혜서-구약성경의 이해」등을 펴냈다. 윤하정 기자 윤하정2026.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