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잡이 책 옆에 끼고 성경 읽기 맛들이다보면 어느새 성경 박사성서 주간 - 성경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 교회는 1985년부터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해 신자들이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올해는 11월 21일부터 27일까지다. 교회가 성서 주간을 별도로 지정해 성경을 가까이하기를 권하는 것은 성경이 신앙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성경이 우리 신앙을 지탱하고, 교회를 유지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여전히 성경을 전문 지식이 필요한 어려운 책으로 여기고 있어 안타깝다. 이에 성서 주간을 맞아 신자들이 보다 성경에 친숙할 수 있도록 쉽게 안내해주는 길라잡이들을 모아보았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그리스도교 경전이다. 따라서 성경 내용을 모른다면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느님의 구원 섭리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 성령께서 이끄는 교회의 사명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인 삶의 토대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실천해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둘 수 있다. 성경의 모든 내용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마태 16,16)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생명과 은총, 진리 등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고,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으며,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게 성경의 핵심 내용이다.(요한 1장 참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우신 새로운 계약(신약)과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옛 계약(구약)의 내용을 구분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신앙의 밑거름인 구약을 친히 완성하셨다. 그리스도 교회는 유다교의 거룩한 구약의 책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데 필요한 출발점을 찾았기에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신ㆍ구약 성경을 읽어야 한다.성경을 올바로 읽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할 경우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을 때는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계시하시고자 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은 성령을 통해 쓰였으므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성경 말씀을 왜곡하지 않으려면 본문 내용을 충실히 읽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이 쓰인 시대와 공간이 지금과는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 없이 성경을 마음대로 읽고 해석하면 자칫 교회 공동체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다. 그래서 교회는 초세기부터 오늘날까지 하느님의 말씀을 전례 안에서 어떻게 선포할 것인지 그 방법과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익히는 법을 일깨우고 있다. 성경을 읽을 때는 무엇보다 기도가 따라야 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모든 신자에게 그리스도교 생활을 완성하고 완덕에 이를 수 있도록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히에로니무스 성인은 “성경을 모르면 결코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고, 그레고리오 1세 대교황은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배우라”고 강조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무엇보다도 먼저 매일 성경을 손에 잡고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수도 생활 교령」 6항) 하며 “자신을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성령께 기꺼이 응할 수 있어야 한다”(「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 33항)고 권고하고 있다.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을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라고 한다. 살아 계신 주님과의 만남을 위해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말씀을 우리의 삶에 인격화, 내면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것을 도와주는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가 교회 전통에서 알려준 렉시오 디비나이다. 그래서 교회는 신자들에게 성경을 읽을 때 학문적인 독서 방법보다 마음으로 읽고 맛 들이는 렉시오 디비나 방법을 권장한다. 성경 길라잡이 △주석 성경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프란치스코 교황은 성경을 읽을 때 “시대 언어로 쓰인 주석서나 해설서 등을 참고하며 읽어나감으로써 자신의 삶에 내면화하고 실천하는데 힘써 달라”고 권고했다. 교회는 성경의 뜻을 제대로 알아듣기 위해서는 교회의 성전(聖傳)과 신앙의 유추(類推)를 염두에 두고 성경 전체의 내용과 통일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계시헌장」 12항) 신자들을 위해 이러한 신학적 작업을 집대성한 성경 해설서가 바로 「주석 성경」이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간행한 「주석 성경」은 신ㆍ구약 성경 각 권에 대한 입문과 함께 본문에 대한 각주(脚註) 및 참고 구절을 수록해 성경을 쉽고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주석 성경」은 46배판(188×257㎟) 3868쪽의 방대한 분량으로, 프랑스어 「공동 번역 성경」(La Traduction Oecumenique de la Bible =TOB)의 주석을 기초로 기존 「성경」에 입문과 각주를 붙인 것이다. 가톨릭은 물론 정교회와 개신교 등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주석 내용이 객관적이고 균형 감각을 갖추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성경 역사 지도 (엔리코 갈비아티ㆍ필리포 세라피니 지음/이성근 옮김/분도출판사)「성경 역사 지도」는 성경에 나온 지역에 관한 상세한 해설을 곁들인 지도책으로 성경 옆에 둬야 할 첫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면 컬러로 성경 지도는 물론 성경 등장인물 이동 경로, 풍부한 자료 사진 등이 수록돼 성경의 역사와 문명, 생활상을 한눈에 꿰뚫어볼 수 있는 문화서이다. 문명 기원인 메소포타미아 약사를 시작으로 고대 이집트, 아브라함의 첫 번째 이주, 열두 지파에 분배된 약속의 땅, 페르시아 제국, 헤로데 대왕의 통치, 예수 일대기, 유다 전쟁 등을 거쳐 헬레니즘ㆍ로마 시대까지 다루고 있다. 성경 역사와 그 배경을 아우르며 지도와 사진, 그림, 도표로 성경을 입체적으로 재현했다.△교부들의 성경 주해 (한국교부학연구회 옮김/분도출판사) 「교부들의 성경 주해」는 신ㆍ구약 성경 전권에 대한 교부들의 사상과 신앙을 그 정수만 뽑아 우리말로 옮겨 엮은 29권의 총서다. 성경 속에 흐르는 고대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핵심 사상을 접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 D.C. 드루대학교가 주관해 펴낸 「교부들의 성경 주해」 총서를 우리말로 옮긴 이 책은 교부들이 성경 본문에 대해 직접 주해한 내용뿐 아니라 시ㆍ수필ㆍ편지ㆍ설교ㆍ논문 등을 통해서 해설하고 묵상한 내용도 뽑아서 장, 절별로 정리했다. △신ㆍ구약 종주(안소근 수녀 지음 / 성서와함께)성서학 박사 안소근(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가 쓴 성경 안내서. 「구약 종주」는 구약 시대의 역사적 배경부터 오경과 역사서, 예언서 등 구약 전반에 걸친 배경을 알기 쉽게 엮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느님은 식물을 먼저 만드시고, 인간을 만드셨다고 나오지만, 2장은 반대다. 또 역사적으로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후손의 수는 60만 명이 아니었고, 예리코를 함락시킨 것은 여호수아 시대의 일이 아니었지만, 성경은 다르게 기술하고 있다. 정확하지 않은 성경 내용은 그러면 거짓일까? 이러한 의문에 안 수녀는 구약성경을 관통하는 세계관인 ‘창조의 신성’에 주목할 것을 권한다. 성경은 내용에 등장하는 정확한 숫자와 규모 아래에 깔린 원의(原意)를 이해해야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구약 종주」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지도 삼아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여정이라면, 「신약 종주」는 그 하느님의 얼굴인 예수님과 함께 걷는 여정이다. 신약 성경의 형성 과정과 역사 배경을 소개하고, 복음서 저자와 사도들, 첫 교회 공동체들의 증언을 담았다.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허규 신부/ 성서와함께)요한 묵시록은 많은 이들에게 ‘읽기 난해한 성경’으로 오해받고 있다. ‘묵시문학’에 속하는 요한 묵시록은 환시를 이용해 초월적 세상과 현실을 구분하고, 종말과 심판이나 전쟁의 이미지를 많이 쓴다.허규(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신부의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는 요한 묵시록의 배경과 본문 해석, 풀이를 망라한 길잡이다. 요한 묵시록이 예언서냐 아니냐를 두고 가질 수 있는 의문, 종말과 심판이란 강력한 주제를 잘못 받아들여 왜곡해 해석하는 경우, 저술 시기 등과 관련해 꼼꼼히 풀이해 답해준다. 저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신앙을 지킨다면 하느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뤄지리라는 위로와 희망의 가르침이 요한 묵시록의 내용이라고 강조한다. cpbc2021.11.16

최고의 순교 – 스테파노[월간 꿈 CUM] 예수, 그 이후 (3) 오스트리아 빈(Wien)의 랜드마크인 슈테판 대성당.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최초 순교자 성 스테파노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다 중국 금(金)나라의 동해원(董解元)이 지은 「서상」(西廂)에 이런 구절이 있다. “참으로 이른바 좋은 시기는 얻기 어렵고, 좋은 일을 이루려면 많은 풍파를 겪어야 한다.”(眞所謂佳期難得, 好事多磨) 그렇다. 성난 파도가 훌륭한 뱃사람을 만든다. 잔잔한 바다만 경험해서는 절대로 1급 항해사가 될 수 없다. 쇠망치와 불의 단련을 받고 나서야 명검(名劍)이 탄생한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그렇게 굳은 땅에 물이 괸다. 마찬가지로, ‘고난’(수난)이 승화될 때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는 ‘영적 도약’(부활) 또한 가능하다. 이것이 ‘고통의 신비’다.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교회에 그 고통의 신비가 찾아온다. 출발은 환희의 신비였다. 예수 그 이후, 초기 교회는 급속히 성장한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7) 하지만 좋은 일은 많이 일어나도 문제다. 교회는 급격히 늘어난 신자 때문에 고민이었다. 처음에는 사도들이 직접 관리를 맡았지만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그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사도들은 협조자(부제) 7명을 뽑았다. 그들의 이름은 스테파노, 필리포스, 프로코로스, 니카노르, 티몬, 파르메나스, 니콜라오스다.(사도 6,5 참조) 여기서 우리는 스테파노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바로 최초의 순교자이기 때문이다. 스테파노는 열정적으로 교회 일에 임했다. 그런 그를 유대 사회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고통의 신비’가 시작된다. 스테파노가 최고 의회에 끌려 왔다. 고발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유대 사회를 붕괴시키려 한 죄.’ 하지만 스테파노는 목숨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천사처럼 보이는 얼굴(사도 6,15)로 대사제 및 유대교 원로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사도 7,51) “여러분은 율법을 받고도 그것을 지키지 않았습니다.”(사도 7,53) 슈테판 대성당 내부 스테파노의 말은 유대인들에게 일종의 모욕으로 들렸다. 변호사에게 ‘당신은 법을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수학 교사에게 수학을 모른다고 하고, 육군 장성에게 소총 사용법을 모른다고 하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분노한 유대인들이 달려들어 스테파노를 포박했다. 그리고 성 밖으로 끌고가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피가 튀었다. 이때 스테파노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기도였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 7,59) 평판이 좋고 지혜와 믿음, 성령이 충만했던 스테파노(사도 6,3-5 참조)는 그렇게 잠들었다. 사도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요한의 형제였던 대 야고보 사도의 머리가 잘렸다.(42년) 끝까지 예루살렘에 남아 교회를 이끌던, 초대 기둥 중 하나(갈라 2,9)였던 알패오의 아들(마태 10,3) 소 야고보 사도도 모세의 법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돌에 맞아 죽었다.(62년) 베드로 사도가 기적적으로 감옥에서 탈출한 것(사도 12,6-19 참조)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밖에도 예수 그 이후, 교회가 유대인들로부터 박해와 차별, 고립을 겪었던 정황은 성경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사도 17,5; 24,5 참조)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영광의 성령 곧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겪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 이름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1베드 4,14-16) 유대인들의 박해로 인해 신앙인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교회의 기반이었던 예루살렘 공동체는 와해 된다. 그럼에도 성령에 충만했던 사도들과 신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들은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루카 6,21)라는 약속을 믿고 끊임없이 복음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을 코웃음 치며 바라보던 사람이 있었다. 사울(훗날의 바오로 사도)이었다. 바리사이파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지식인이었던 그는 스테파노와 사도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글 _ 우광호 cpbc2023.11.07

김대건 신부가 부제품 받은 ...중국 장춘 소팔가자성당에...대형 성 김대건 신부상 세워 이종남 신부가 중국 지린성 창춘 소팔가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 새로 세워진 대형 성 김대건 신부상을 축복하고 있다. 중국나자렛선교회 제공 김대건, 최양업 신학생이 부제품을 받았던 유서 깊은 교우촌 성당인 중국 길림성 장춘 소팔가자(小八家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에 대형 성 김대건 신부상이 새로 세워졌다.<사진> 중국 길림교구(교구장 서리 주장우 신부)와 소팔가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본당(주임 바이홍 신부)과 한국 나자렛선교회(회장 정진명)는 9일 성당 경내에서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이자 나자렛선교회 지도 사제인 이종남 신부 주례로 새 성상 축복식을 거행하고, 한중 양국 교회의 우정과 교류가 계속되길 기도했다. 이날 축복식에는 한국 교회에서 이종남 신부와 나궁렬(전주교구 원로사목자) 신부, 서명석(수원교구 원로사목자) 신부, 이광희(서울대교구) 신부 등 4명과 주장우 신부 등 길림교구 성직자 3명이 함께했다. 새 성상은 가로 1.5m, 세로 1.2m, 높이 4.4m에 이르며, 북경 인근 석산에서 캔 한백옥(漢白玉) 원석을 통으로 깎아 제작했다. 성상은 한복에 갓을 쓴 김대건 신부가 왼손에 성경을 안고, 오른손으로 교우들에게 축복하는 모습으로 형상화했다. 특히 조선의 복음화를 꿈꿨던 청년 사제의 강렬한 눈빛과 선교 열정, 의연한 모습을 띤다. 소팔가자성당은 1844년 12월 15일 최양업, 김대건 신학생이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에게서 부제품을 받은 교회 사적지다. 새 성상 건립은 1998년에 건립했던 성 김대건 신부 동상이 세워진 지 25년이 흐르면서 성상이 기울어지고, 성상 일부와 기단이 깨어지고 표석 또한 훼손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에 2019년 5월 중국인 조각가에 의뢰해 새 성상 제작에 들어가 1년 만에 1억여 원을 들여 제작을 마무리했다. 본래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인 2021년 축복식을 거행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실현하지 못하다가 지난 7월 22일에야 성상 운반작업에 들어갔고, 최근 길림성 당서기와 종교국의 허가를 받아 축복식을 거행하게 됐다. 길림교구장 서리 주장우 신부는 축복식에서 “길림성의 3대 교우촌인 소팔가자, 소가(蘇家), 제가(齊家) 중에서도 신앙의 못자리인 소팔가자에 새롭게 성상이 세워진 것을 계기로 중국 교회와 세계 교회가 하나 되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단 20여 명과 함께한 이종남 신부는 “이곳은 김대건, 최양업 신부님께서 부제품을 받으셨을 뿐 아니라, 김대건 부제가 2년 2개월, 최양업 부제가 4년 2개월을 머무르며 조선 입국로 개척을 모색하고 사목했던 유서 깊은 교우촌”이라며 “김대건 성인을 진정으로 만나는 은총을 누리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중국나자렛선교회 제공 cpbc2023.08.16

바오로 사도의 등장 - 역사를 바꾼 290km의 여정[월간 꿈 CUM] 예수, 그 이후 (4) 다마스쿠스에서 탈출하는 바오로 및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만나는 바오로.(이탈리아 시칠리아 팔레르모 노르만 궁전 팔라티나 소성당 모자이크) 사울은 아직도 스테파노가 죽어가면서 보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스테파노는 죽음 앞에서도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저렇게 사람이 독할 수 있나…. 이런 사람들을 놔뒀다가는 유대교에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었다. ‘율법을 수호해야 해!’ 뼛속까지 바리사이파인 사울은 직접 예수를 믿는 이들에 대한 박해에 나서기로 했다. 사울이 보인 것은 살기였다.(사도 9,1 참조) 사울은 대사제를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신앙인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습니다.”(사도 9,2 참조) 그리고 즉시 행동에 나섰다. “사울은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든 여자든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다.”(사도 8,3)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사울이 그리스도교인 체포를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 다마스쿠스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쿠스까지 거리는 오늘날 포장 도로 기준 360km, 지름길로 걸어서 갈 경우 약 290km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현지 도로 사정을 감안할 때 5시간 정도 걸리는데, 구글 지도에서 도보 소요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약 60시간(3일) 걸린다고 안내한다. 이는 성경에 나오는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후 ‘3일째 되는 날’, 다마스쿠스에 거의 다 왔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번쩍였다. 순간 사울이 쓰러졌고, 동시에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 줄 것이다.”(사도 9,5-6) 사울은 일어섰을 때,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축해서 인근 마을로 데리고 갔다. 사울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엄청났다. 그는 물을 마시지도, 음식을 먹지도 않았다. 그때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사울을 찾아와 안수를 하자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면서 사울의 시력이 돌아왔다. 이후 사울은 완전히 달라진다. 고려의 승려 지눌(知訥, 1158〜1210)은 “뱀은 물을 마시고 독을 만들고, 소는 같은 물을 마시고 우유를 만든다”(蛇飮水成毒 牛飮水成乳, 사음수성독 우음수성유)고 했다. 아르메니아 속담에도 “뱀이 독을 빨아내는 같은 꽃에서 벌은 꿀을 얻는다”(The bee gets honey from the same flower where the snake sucks her poison)는 말이 있다. 다마스쿠스로 향하던 길에서 있었던 ‘성 바오로의 회심’ 사도 성 바오로. 그리스 필리피 리디아 기념성당(카라바조, 1600~1601, 로마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 물을 마시고 독을 만들어 내던 바오로가 이제 우유를 만드는 소, 꿀을 얻는 벌이 된다. 살기에 가득차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그가 이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사도 9,20)이라고 선포하기 시작했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눈이 보이지 않다가 보게 됐고, 쓰러졌다가 일어섰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정반대의 길을 새로 간다. 그래야할 이유는 없었다. 바리사이파라는 보장된 지위가 있었다. 로마 시민권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리스어, 히브리어, 아람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재원이었다.(사도 21,37;22,2 참조) 명예와 부, 안락한 삶도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울은 그 모든 것을 버린다. 사울은 이제 바오로 ‘사도’가 된다. 유대인들은 당황했다. “저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자들을 짓밟은 자가 아닌가? 또 바로 그런 자들을 결박하여 수석 사제들에게 끌어가려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닌가?”(사도 9,21) 당혹스러운 감정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유대인들은 배신자 바오로를 없애 버리기로 공모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바오로는 밤에 몰래 성벽에 난 구멍으로 탈출해야 했다.(사도 9,25 참조) 탈출에 성공한 바오로는 그 길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을 찾았다. 그러나 사도들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한다.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바오로를 변호하고 나선 사람이 바르나바다. 그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사도 11,24 참조) 그는 직접 사도들에게 바오로를 소개하고 그동안 일어난 일을 설명했다. 그제야 사도들은 바오로를 받아들였다. 바오로의 열정은 선배 사도들 못지않았다. 바르나바는 이후 바오로를 안티오키아로 보내 선교 활동에 나서도록 한다. 그런데 이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문제가 터졌다. 글 _ 우광호 cpbc2023.11.14

마크 샤갈, 거장의 그림에 녹아든 ‘성경’ 이야기샤갈 특별전, 샤갈 앤 더 바이블... 성경 단독 주제로 열린 첫 전시, 4월 10일까지 마이아트뮤지엄 샤갈의 ‘예루살렘 통곡의 벽’(1931) “예술과 삶에서 이룰 수 있는 완벽함은 성경에서 나옵니다.” (마크 샤갈)독창적인 소재와 화풍으로 미술사에 발자취를 남긴 화가 마크 샤갈. 샤갈의 회고전이자 샤갈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 창조의 원천이었던 ‘성경’을 주제로 한 ‘샤갈 특별전, 샤갈 앤 더 바이블(Chagall and the Bible)’이 4월 10일까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린다. 러시아 유대인 출신인 샤갈은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다채로운 색감과 몽환적인 화풍을 바탕으로 삶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했다.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등과 함께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이번 전시 주제는 기존 국내에서 여러 차례 진행된 샤갈 전과 달리 그간 단독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성경’이다. 샤갈의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강기슭에서의 부활’, ‘푸른 다윗 왕’ 등 유화와 과슈를 포함한 명작 19점과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4m에 육박하는 대형 태피스트리 2점 등 220여 점의 오리지널 작품이 공개된다.전시는 △샤갈의 모티프 △성경의 백다섯 가지 장면 △성경적 메시지 △또 다른 빛의 향하여 등 4가지 섹션으로 구성된다. ‘샤갈의 모티프’에서는 1957년경 제작된 샤갈의 석판화 안에서 그가 주로 다뤄온 모티프인 자화상, 고향, 마을, 축제, 동물, 악기, 연인, 성모자, 파리 등의 키워드로 나누어 그들이 상징하는 바를 탐구한다. 여러 모티프 중에서도 샤갈이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모아 선보인다. ‘성경의 백다섯 가지 장면’에서는 샤갈이 처음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남긴 예루살렘의 풍경과 그가 구약성경에서 선별한 105점의 장면들을 에칭으로 만든 ‘성경(The Bible)’ 연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나본다.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하는 모습부터, 예지몽을 꾸고 이집트의 재상이 되어 가족들을 모두 이집트로 데려오는 요셉, 이집트의 핍박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출한 모세의 이야기 등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펼쳐진다.‘성경적 메시지’에서는 인간 창조,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십계명을 받아든 모세, 체구의 열세를 딛고 거인 골리앗을 전략으로 이긴 다윗, 지혜로움으로 알려진 솔로몬 왕 등 샤갈이 성경에서 여러 차례 반복해 주로 그려낸 성경적 모티프들을 주제별로 엮었다. 유화, 과슈화, 석판화, 대형 태피스트리까지 작품 매체의 경계를 넘어 한 자리에서 만나본다. 샤갈이 동시대에 겪은 삶과 전하고 싶은 메시지들을 성경을 주제로 그림 속에 담은 부분과 성경 안 인물들의 희로애락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 한 부분을 주목할 만하다.마지막 ‘또 다른 빛의 향하여’에서는 샤갈의 문학적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도록 샤갈의 삽화와 시를 같이 공개한다. 그 밖에도 샤갈의 메츠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기념하며 ‘모세가 십계명을 들고 있는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비롯해 샤갈이 제작한 감각적인 포스터들을 선보인다. 아흔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창작욕을 엿볼 수 있는 말년의 작품들도 만나본다. 특히 샤갈이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작품으로 알려진 ‘또 다른 빛을 향하여(1985)’는 생의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던 샤갈의 열정을 잘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는 월~금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오후 4시, 오후 6시, 토~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 오후 4시에 전시 해설을 하는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작품을 친숙하고 재미있게 느낄 수 있도록 오디오 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오디오 클립 콘텐츠, ‘나만의 샤갈 아틀리에’를 통해 샤갈의 모티프로 구성된 스탬프를 찍으며 각자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문의 : 02-567-8878, 마이아트뮤지엄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cpbc2021.12.29
![[금주의 성인]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 (9월 3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8/29/yIp1693285414086.jpg)
[금주의 성인]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 (9월 3일)540?-604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교황, 교황권의 창시자 대 그레고리오 1세 성인은 부유한 원로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문은 펠릭스 3세 성인과 아가피투스 1세 성인으로 이미 두 명의 교황을 배출한 유서 깊은 귀족이었습니다. 그레고리오 성인은 법학 등 고등교육을 받고 573년 로마 시장이 되었습니다. 이듬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로마 첼리오 언덕에 있는 부모의 저택을 성 안드레아 수도원으로 만들고, 그곳에 입회해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레고리오는 시칠리아에 있는 가족 소유 토지에도 5개의 수도원을 더 세웠습니다. 578년 베네딕토 1세 교황에게 부제품을 받고, 1년 뒤 펠라기우스 2세 교황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의 교황 대사로 파견됐습니다. 로마로 돌아와서는 다시 성 안드레아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며 펠라기우스 2세 교황을 도와 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펠라기우스 2세 교황이 선종하자 그레고리오는 수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만장일치로 제64대 교황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전염병이 로마를 휩쓸던 시기, 그는 출중한 행정 능력과 깊은 신앙심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그레고리오는 교회 법령을 정비하고 무능한 성직자들을 해임하며 사제와 주교들의 영적 쇄신을 강조, 막대한 경비를 들여 기아와 전염병으로 시달리는 시민들을 구호하기 위한 자선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지혜롭게 교황청 재산을 관리했고, 랑고바르드족으로부터 포로들을 석방시키며 부당한 박해를 받던 유다인들을 보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레고리오는 많은 저서를 남겼습니다. 중세 주교와 사제에게 교과서와도 같았던 「사목 지침서」, 「욥의 윤리」 등 각종 성경 해설집과 설교집, 당시의 신학 · 전례 · 역사 · 사회학과 관련한 800여 통의 서한을 모은 「서간집」, 「그레고리우스 전례서」 등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그는 교회의 성가를 재조정하고 그레고리오 성가도 제정하여 ‘그레고리안 성가’의 편집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게르만족뿐만 아니라 영국 앵글로색슨족의 개종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수도원장으로 재임할 때, 로마 시내에 영국에서 온 포로들이 노예로 팔려가는 것을 보고는 그들에 대한 연민을 품게 된 게 발단이었습니다. 교황이 된 후 그레고리오는 성 안드레아 수도원의 원장인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40여 명의 수도자를 영국의 켄트 왕국에 파견했고, 요크 대교구와 캔터베리 대교구, 그리고 12개의 소속 교구를 설정했습니다. 그레고리오는 교황권이 교회의 최고 권위임을 재확립하는 동시에, 교황을 일컫는 칭호인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란 표현을 처음 사용함으로써 교황권이 지배가 아닌 봉사하는 특권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베네딕도 수도회를 면속해 교황의 권위 아래 두었습니다. 그레고리오는 중세 교황권의 창시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대교황’이란 명칭으로도 불립니다. 그는 604년 3월 12일 로마에서 선종하여 성 베드로 대성당에 안장되었고, 사후 즉시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음악가, 가수, 학생, 교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 그레고리오는 교회 미술에서 귓가에 비둘기가 자주 그려진 채 등장하는데, 이는 그가 방대한 저작 활동을 할 때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그의 귓전에 머무르며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했습니다. cpbc2023.08.30

소금 이야기삶의 길 (3) 고대사회에서 소금은 아주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값도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소금이 화폐 대신 사용되었고, 월급(임금)도 소금으로 줄 정도였습니다. 고대 로마인들 시(詩)에 보면 이런 글귀가 나옵니다. “태양과 소금보다 더 유용한 것이 없다.” 예수님 시대에도 소금은 금보다 더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 사람들은 소금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첫째, 소금은 ‘순결’과 ‘순수성’을 상징했습니다. 왜냐하면 소금은 순수한 태양과 깨끗한 바다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태양신을 믿었던 로마인들은 태양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마다 반드시 소금을 바쳤습니다. 둘째, 소금은 ‘방부제’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예수님 시대에도 소금은 고기나 생선이 썩지 않도록 하는데 사용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소금은 단순히 음식을 썩지 않도록 하는 방부제 역할을 넘어 시신이 썩지 않도록, 영혼이 상하지 않도록 하는 ‘영원성’을 지닌 종교적인 의미도 담고 있었습니다. 셋째,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물건이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음식의 맛을 내는 다른 조미료나 첨가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소금으로만 간을 맞추고 맛을 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첫째, 소금이 순결과 순수성의 상징이듯이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깨끗함의 모범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오늘날 같이 정직과 정의가 짓밟히고 사라져 가는 이 세상에서, 양심과 도덕이 타락해 가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만큼은 제발 정직하고, 정의롭고, 양심적이고,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소금이 방부제 역할을 하듯이,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물질적으로나 성적으로 점점 타락하고 있는 이 세상이 더 이상 썩지 않도록 방부제의 역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다가 썩지 않는 이유는 3%의 염분 때문입니다. 3%의 염분 때문에 거대한 바닷물이 썩지 않고, 그 속에서 많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이 아무리 썩어도, 세상이 아무리 부패되어도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있기에 세상은 희망과 기쁨이 있습니다. 셋째, 소금이 음식의 제 맛을 내듯이,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가 먼저 인생을 맛있게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다시말해서, 믿음을 잃어버린 이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잃어버린 이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잃어버린 이 세상 사람들에게 참다운 인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삶을 통해서 보여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먼저 세상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인생을 맛있게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도 이런 우리의 맛있는 인생을 보고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바로 세상의 더러움과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 5,13) 글 _ 이창영 신부 (대교구대교구, 월간 꿈CUM 고문) 1991년 사제 수품. 이탈리아 로마 라테란대학교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교회의 사무국장과 매일신문사 사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대구대교구 경산본당, 만촌1동본당 주임을 지냈다.cpbc2023.10.12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1주일 - 나쁜 것이 실은 좋은 것입니다](//cpbc.co.kr/CMS/newspaper/2023/02/rc/841215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1주일 - 나쁜 것이 실은 좋은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마태 4,1) 우리 교회는 언제부터 유혹에 약해졌을까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국교로 선언하고부터라고 합니다. 끔찍했던 박해상황에서 절대 권력의 비호를 받자 승리감에 도취했을까요? 봉사 직분이 권력화되고 성직자들의 재산축적 등이 문제가 되었다고 역사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식생활의 탐식, 고위성직자들은 제후들의 복색을 흉내 내고 세속의 가치관에 따라 승리를 구가합니다. 악마의 수법이 저절로 먹히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어느 정도 박해가 있어야 건강하다는 이냐시오 성인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순 시기는 우리 스스로 일종의 박해상황을 연출하는 겁니다. 악마의 광야로 예수님을 내몬 것은 사탄이 아니라 성령이었습니다. 1. 유혹에 기죽지 말자예수님도 유혹받으셨습니다. 우리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유혹은 진저리나고 두렵습니다. 그렇다고 유혹을 느끼는 것, 그 자체가 죄가 아닙니다. 유혹을 통해 튼튼해질 수도 있습니다. 나약한 자신을 인정하면서,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유혹 속에 빠져, 나 몰라라 할 수도 있습니다. 사탄은 뜻밖에도 따뜻하고 인간적입니다. ‘너는 사십일 동안 곡기를 끊었다. 이젠 건강을 돌봐야 한다. 넌 충분히 먹을 자격이 있다.’ 너는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냐고 너스레를 떱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이리저리 끌고 다닐 능력도 있습니다. 거룩한 도성의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 영적 세속성(공명심)으로 한껏 부풀립니다. 또 세상이 한눈에 들어오는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 권세와 재물을 거머쥐는 환상을 보여줍니다. 물론 우리 주님은 하느님의 말씀으로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칩니다. 2. 양날의 칼인 말씀‘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첫 번째 유혹을 물리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유혹도 모두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하느님만을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확실한 무기입니다. 그렇다고 그저 도구나 수단이 아닙니다. 말씀은 절개(節槪)를 지켜 받들어야 할 하느님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당신 자신에게 이 말씀을 적용하십니다. 사십일을 굶었지만,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예수님의 기개(氣槪)가 놀랍습니다. 말씀은 양날의 칼입니다. 사탄을 베어내기 전에 내가 베어져 나가도 좋다고 각오해야 합니다. 죽어야만 사는 이치입니다. 성경 공부를 하고 말씀을 이해하는 정도로는 안 되나 봅니다. 악마도 그 정도의 말씀에 대한 이해는 있습니다. 두 번째 유혹 땐, 아예 말씀을 들어 주님을 유혹합니다. 말씀으로 자신의 주장을 옹호하거나 누구를 공격해선 안 됩니다. 그건 악마의 수법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다소곳이 우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묻습니다. “저는 성경(토라)을 일곱 번 꿰뚫어 읽었습니다. 이제 뭘 해야 합니까?” 스승이 답합니다. “그럼 성경(토라)이 너를 몇 번이나 꿰뚫어 읽었느냐? 히브리서는 말씀의 실체를 이렇게 전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리 4, 12)관절과 골수를 가른다는 말씀이 무섭습니다. 가슴을 치는 정도로는 어림없나 봅니다. 말씀 앞에선 벌거벗겨지고 속셈이 드러납니다. 주님은 날이 바짝 선 말씀 앞에 서 계십니다. 광야는 장소라기보다는 말씀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필요한 광야의 시간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욕망 속에 숨어있습니다. ‘신앙 안에서 나쁜 것이 실은 좋은 것이다.’ 그리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은밀하게 속삭이는 사탄이 꼼짝 못 하겠지요. 은총의 사순 시기이길 빕니다.서춘배 신부(의정부교구 병원사목위원회) cpbc2023.02.21
![[신앙단상] 노란 화살표(flecha amarilla), 생명과 인연의 표시(정운필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10/31/TS91698732676903.jpg)
[신앙단상] 노란 화살표(flecha amarilla), 생명과 인연의 표시(정운필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정식 표시 말고도 주변에 노란색 화살표가 많이 있다. 포르투갈길에는 반대 방향으로 난 파란 화살표시가 있다. 어느 곳에 Fatima라고 씌여있느 것을 보니, 파티마로 향하는 도보길인가보다. 정운필 신부 제공 모든 산티아고길에는 표지석이나 안내표시 말고도 인쇄되지 않은 노란색 화살 표시가 있다. 이는 ‘생명의 표시’다. 누가 십계명을 “행복에 이르는 가이드 라인”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산티아고길 노란 화살표는 곳곳에 있는데, 화살표를 찾지 못해 심하게 헤매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생명이라고 절감한다. 출발부터 잘못 본 화살표에 반대로 갔지만, 화살표가 보이지 않을 때는 몹시 불안하다. 올바로 가고 있는지 이 화살표가 알려주는 것이다. 가끔 표시가 오래되어 흐리거나 길섶 풀숲에 가려져 있으면 지나칠 때가 있다. 셋째 날, 어둠 속 출발 후 묵주를 돌리며 한참을 가도 화살표가 보이지 않는다. 특이한 갈림길이나 이상한 길도 딱히 없었는데, 기도에 아무 생각 없었나 보다. 그럴 때는 더 가지 말고 그곳에서 여기저기 우왕좌왕하며 화살표를 찾아야 한다. 최후 수단으로 웹 지도를 확인했지만, 더러는 깊은 산 속에서 소용이 없다. 많이도 잘못 왔다. 급격하게 꺾이는 길 한 귀퉁이 나무 밑에 표지목이 있었다. 특히 동트기 전에 출발하면 랜턴 빛에 노란색이 잘 안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갈림길이 나오면 여기저기 빛을 비춰 꼭 확인해야 한다. 의외로 엉뚱한 길이 많다. 그러면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 만나는 화살표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화살표를 못 찾을 때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마을은 표시가 많이 있지만, 벌판이나 산을 갈 때는 화살표를 찾기 힘들다. 그럴 때 지나간 사람들의 흔적을 찾는 것인데, 불법 투기(?)한 휴지다. 이런 휴지와 심지어 진흙이나 흙탕길 발자국마저 화살표 노릇을 한다. 산티아고길에선 ‘쓰레기를 버릴 때는 잘 보이는 곳에 버려라’라는 불문율이 있다. 발자국도 아무 데나 남기면 안 되는 것이 혹여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계명이 부담으로 다가온다면, 그것은 계명이 삶을 안정적으로 이끄는 표지라기보다 족쇄로 여기기 때문이다. 성경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 정확히 통치자들이 그랬다. 화살표처럼 계명을 곁에 항상 두는 것이 인생을 허투루 살지 않게 한다. 혹여 다른 사람의 비계명적 행위도 타산지석이라고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그러기 위해 일상에서 확실한 기준인 화살표를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한다. 포르투갈길은 제법 화살표만큼은 잘 되어있다. 간격도 적당해 불안해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부주의가 그렇게 만든다. 포르투갈길에는 노란 화살표 말고도 반대 방향으로 파란색 화살표가 더 있다. 파티마로 가는 표시다. 추측하건대 스페인 지역에도 있는 것을 보니 산티아고에서 파티마까지 걷는 표시인가보다. 그 길로 가는 몇몇 사람을 목격하기도 했다. 성당이 있어도 마을 중간에 경당들이 많다. 여기서도 도장을 찍을 수 있다. 정운필 신부 제공 걸으면서 많은 마을을 지나고 많은 사람도 스친다. 이들은 순례자에 인사(주로 Buen Camino!)할 때도 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무표정이다. 오랜 시간 차량이 거의 없는 길을 운전하다 맞은 편 지나는 차를 보면서 ‘저 사람은 무슨 이유로 어디로 가길래 하필 이곳을 지나는 것일까?’, ‘왜 내가 지나는 바로 이 순간 지나가고 있는가?’ 자못 궁금할 때가 있다. 이런 생각에 대부분 인생무상을 떠올리지만, 그러면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도 뭔가 실낱같은 인연은 없을까 착각한다. 시골의 작은 마을을 지날 때 스친 이 노인은 어떻게 살아왔길래 이 순간 이 자리에서 나를 스치는가? 그의 인생 목적이 무엇이었기에 여기에 있는가?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나의 길이 바쁘다는, 언어와 습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나치면서 한편 속으로 주님의 축복을 빌기도 한다. 나름의 인생을 살아왔으리라. 상관없는 사람과 기억 못 할 시간에 스치는 것, 결코 우연은 아니라고 위로한다. 스치는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지금까지 나와 만났던 사람들, 앞으로 만날 이들은 얼마나 더 깊은 인연일까? 더욱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이 여정을 마치고 돌아가면 원상태가 되겠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더 큰 사랑으로 풍부해질 것이다. 이는 이 순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왔지만, 여기 사람들은 같은 곳을 향해 걷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쉽게 친해진다. 산티아고 포르투갈길에서 아무 상관 없는 사람으로 인해 깨닫는다. 내가 만나는 세상 사람은 모두 사랑해야 할 인연이라고…. 정운필 신부 /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cpbc2023.11.08

“종교와의 협력은 과학관 발전의 토대…성당·절·교회 어디든 찾아 갑니다”[이상도 선임기자의 톡(talk)터뷰] 울진 국립해양과학관 김외철(베드로) 관장 울진 국립해양과학관 김외철 관장이 활짝 웃고 있다. 본지는 심층 인터뷰 코너 ‘이상도 선임기자의 톡(talk)터뷰’를 시작한다. 톡터뷰는 가톨릭 신앙 속에 사는 국내 인사, 또는 가톨릭교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인물을 때마다 만나 그들의 삶과 일, 인생관, 신앙 이야기를 생생히 전하고자 한다. 첫 인물로 성당 등 종교 기관과 협력을 통해 국가와 지역 발전을 꾀하고 있는 경북 울진 국립해양과학관 김외철(베드로) 관장을 만났다. 과학관 상징 고래인 이유 고래 몸속에서 나오는 쓰레기 기후 위기 심각성 알리는 역할 권위 내려놓고 홍보 앞장 식당·카페 등서 직접 명함 건네 버스 정류장 안내 표지도 바꿔 환경 실천가 텀블러와 손수건 쓰고 30분 거리 걸어서 출퇴근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 ‘너희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성당 등 종교시설을 찾는 이유 올해 초 기사 하나가 눈길을 확 끌었다. 해양수산부 산하 국립해양과학관 김외철 관장이 울진군청·노인회 등 군내 각종 단체는 물론, 성당과 교회·절·향교를 방문해 과학관을 찾아달라고 홍보한다는 내용이었다. 국가기관의 수장이 정부나 국회는 물론, 종교기관까지 넘나들며 만나는 열정이 궁금했다. 경북 울진은 아직 고속도로가 연결되지 않은 전국에서 얼마 남지 않은 외진 곳으로, 서울에서 약 4시간 걸린다. 울진군 죽변면 국립해양과학관에 도착한 건 오후 3시 무렵. 1층 관장실에 갔지만, 정작 주인은 자리에 없었다. 관장의 업무를 돕는 비서는 “‘불영사’ 최고 어른인 회주 일운 스님을 만나러 갔다”고 귀띔했다. 불영사는 신라 시대 진덕여왕 5년(651년)에 의상 대사가 세운 천년 고찰로, 울진을 대표하는 절이다. 10여 분 후 도착한 김 관장은 선물로 받은 강정을 내놓으며 “회주 스님이 불자들과 함께 과학관을 방문하기로 약속했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종교와의 협력은 과학관 발전의 토대”라고 말했다. “알다시피 종교가 있는 사람들에게 종교생활은 ‘일상’입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인데요, 성당에 가면 교우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관장으로 부임해 처음 이곳에 와서 성당·절·교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니까 일부 직원들은 한편으로 의아한 눈길을 보내더군요. 하지만 성당과 절·교회는 지역 여론에 큰 영향을 주는 곳이기에, 제가 가면 국립해양과학관이 그들에게도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고, 그러면 그분들이 우리 기관을 방문하게 될 겁니다.” 김 관장은 “과학관 고객에 사각지대가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누구나 우리의 고객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 틀에 박힌 관념을 흔들고(Shake), 배우며(Study), 국민을 섬기는(Serve) ‘3S 정신’이 필요합니다.” 울진 국립해양과학관을 방문한 불영사 회주 일운 스님과 함께한 김외철 관장. 국립해양관의 상징인 고래를 배경으로 기념촬영했다. 과학관 상징 고래, 해양오염 심각성 전달 국립해양과학관은 국내 유일의 해양과학 전문 교육·전시·체험 기관이다. 2020년 7월 31일 개관했다. 경북 울진에서 국가가 운영하는 유일한 중앙공공기관이다. 축구장 11개를 합쳐놓은 넓은 면적에 10개의 전시실, 393m에 이르는 국내 최장 해상 통로를 지나 바닷속 세상을 만나는 해중전망대, 다양한 심해어류 조형물을 전시한 잔디 광장, 어린이 놀이시설이 있는 해맞이공원 등을 갖추고 있다. 국립해양과학관의 상징은 고래다. 방문객이 처음 도착하는 본관 앞에는 고래의 머리와 몸통뼈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전시실에는 우리 바다에서 잡힌 고래의 뼈가, 파도소리놀이터에는 고래를 응용한 놀이시설이 갖춰져 있다. 관장실 포토존 배경도 고래다. 온 가족이 국립해양과학관을 방문하면 자연을 이해하고, 나아가 아이들이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다. 김 관장은 “고래는 해양 생태계의 최상위 동물로 생태계 보호 및 기후 위기 심각성을 알리는 일등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우리 전시관에는 각 대륙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해류를 타고 모여들어 거대한 쓰레기 지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전시돼 있습니다. 고래는 지구 상에서 가장 큰 동물로, 해양생태계 최상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고래 몸속에서 해양 쓰레기가 나옵니다. 고래를 통해 아이들에게 해양오염의 심각성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산화탄소를 몸속에 저장하는 고래는 기후 변화를 크게 완화시킬 수 있는 자연의 도우미 역할을 한다는 걸 아는 이들은 많지 않죠. 제가 곳곳을 다니며 저희 기관을 알리는 것도 모두 자연의 소중함을 전하기 위한 것이죠.” 울진 국립해양과학관 본관 앞 고래 모형. 국립해양과학관의 상징은 고래다. 고래는 해양생태계의 최상위 동물로 해양오염은 물론 기후변화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립해양과학관 제공 과학관은 지역사회와 ONE-TEAM(한 팀)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인해 과학관은 그간 울진에 사는 지역민들에게도 생소했다. 김 관장은 차관급 관장이란 권위를 버리고 과학관 알리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가장 먼저 해양과학관이 있는 ‘울진 알리기’에 착수했다. 먼저 국립해양박물관 앞에 울진이라는 지역명을 넣어 ‘울진 국립해양박물관’이라 표기했다. 이어 ‘울진’이 들어간 과학관 점퍼를 만들고 명함을 제작했다. 또 울진군에 부탁해 버스 정류장 안내 표지도 바꿨다. 그 후 본격적인 홍보에 나섰다. 기자가 찾은 날도 김 관장은 죽변항 근처 식당과 카페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명함을 건넸다. “취임 후 제가 사는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과학관에 꼭 한 번 놀러 오시라고 제일 먼저 명함을 쭉 드렸습니다. 미장원·이발소 문도 두드리며 다녔죠. 얼마 전 동해지구 성당 9곳이 모이는 지구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명함 드리며 방문을 요청했죠. 우리 바다, 우리 자연 보러 오시라고요.” 김 관장은 “해양과학관은 육지의 섬이라고도 불리는 울진에 있다"며 “지역 사회가 외면하면 해양과학관은 ‘울진의 섬’이 될 것”이라면서 지역 사회와의 협력을 강조했다. “울진군은 올해 ‘1000만 관광객 달성’을 군정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해양과학관은 올해 크리스마스 전까지 누적 관람객 100만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지역 내 다양한 인프라를 융합해 국민들이 만족하고 가실 수 있도록 지역 사회와 ‘ONE-TEAM’ 정신으로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포부는 당차다. “국립이란 이름에 걸맞게 전 국민이 찾는 진정한 해양과학관이 돼야 합니다. 임기 3년 동안 지역민들과 소통을 늘리고, 작지만 꾸준히 변화를 추구하겠습니다. 또 학생들이 더 많이 견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들 중에 진짜 세계적인 해양과학자가 반드시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김 관장은 종이컵 대신 텀블러, 그리고 일회용 휴지를 줄이기 위해 페트병 등 재활용 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든 손수건을 사용한다 일회용품 줄이기⋯ 신앙과 생활 김 관장은 환경 실천가다. 종이컵 대신 텀블러, 그리고 일회용 휴지를 줄이기 위해 페트병 등 재활용 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든 손수건을 사용한다. “우리 화장실엔 손 닦는 일회용 휴지가 없습니다. 한 장이든 두 장이든 그게 나오려면 많은 나무가 희생을 당했을 거 아닙니까? 관장실에서 회의할 땐 머그컵이나 텀블러를 사용합니다. ‘우리가 실천하지 않으면서 해양 쓰레기를 말하는 건 위선입니다. 그런 짓은 절대 할 수 없습니다.” 그는 가능한 한 관용차를 타지 않고 걷는다.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다. “저는 매일 아침 관사에서 해양과학관까지 30여 분을 도보로 출퇴근합니다. 그러면 아주 아름답고 평화로운 ‘죽변공소’를 지나게 되죠. 매일 국민들과 우리 해양과학관 임직원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기도합니다.” 김 관장의 세례명은 ‘베드로’다. 서울에서는 잠원동본당, 울진에서는 울진본당과 죽변공소에서 신앙생활을 한다. 잠원동 집을 구할 때 유일한 조건이 성당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마태오 복음 23장 11절 “너희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 김외철 관장은 국무총리비서실 정무기획비서관·정무운영비서관·시민사회비서관을 지냈다. 경상북도 서울본부장, 한국인공지능협회 상근부회장을 거쳐 2023년 12월 국립해양과학관 2대 관장에 취임했다. raelly1@cpbc.co.kr 이상도 선임2024.03.27
[현장 돋보기] 그는 과연 어디 문을 두드렸을까이학주 요한 크리소스토모(신문취재팀 기자) 그리스도교를 믿어볼까 고민하는 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는 가톨릭은 뭐고 개신교는 뭔지, 서로 어떻게 다른지도 모른다. 그저 ‘그리스도교는 사랑의 종교’라는 것만 막연히 인지할 따름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는 성경 구절도 마음에 든다. 요즘처럼 인심이 각박한 세상에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니, 그는 이 말에서 느껴지는 숭고함과 따뜻함이 좋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여전히 정확히 모른다. 궁금증이 극에 달한 그는 가장 먼저 보이는 십자가 달린 건물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마침 눈앞에 두 곳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런데 각각 상반된 현수막이 내걸린 것이 아닌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든 혐오와 차별, 편견을 반대합니다. 당신이 어떤 모습이어도 당신을 사랑하며 응원합니다.” “만약 당신의 아들이 며느리로 남자를 데려온다면, 당신의 딸이 사위로 여자를 데려온다면, 그래도 동성애를 찬성하시겠습니까?” 전자는 인천교구 은행동성당, 후자는 그 건너편에 있는 개신교 예배당에 걸린 현수막 문구를 인용한 것이다. 먼저 현수막을 내건 쪽은 개신교회였다. 은행동본당 주임 김태영 신부는 지나가다 그 내용을 보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제가 만약 결혼해서 너무나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들과 딸을 낳았는데, 그 아이들이 어느 날 ‘아빠, 나는 사실 동성애자예요.’, ‘아빠, 나는 여자로 태어났지만, 남자로 살고 싶어요. 나는 트렌스젠더예요’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분명 당혹스럽고 괴롭고 자책감에 시달리고 사람들 눈치도 보겠죠. 하지만 결국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고, 그들과 함께 걷게 될 거예요.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들과 딸이니까요.” 그리스도교를 믿어볼까 고민하는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랑을 알고자 하던 그는 과연 어디 문을 두드렸을까. 이학주2023.05.31

“기도는 일상 속 분단의 감정 이겨내는 힘”주교회의 민화위 연구교육분과장·서울 민화위 부위원장 정수용 신부 “그들 안에 자리 잡은 무지와 완고한 마음 때문에, 그들은 정신이 어두워져 있고 하느님의 생명에서 멀어져 있습니다.”(에페 4,18)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연구교육분과장이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 신부는 성경 구절을 소개하면서 “분단은 우리 마음을 어둡고 완고하게 만들며 미움과 폭력을 낳았다”고 말했다. 한 세대를 넘는 갈등을 평화학에서는 ‘고착화된 갈등’으로 여긴다. 정 신부는 “70년간 이어진 분단의 세월은 나와 너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적인지 친구인지 명확히 구분하는 문화를 자리 잡게 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북한을 향한 태도나 일상에 스며든 평화 의식은 신앙인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게 조사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신부는 “그럼에도 혐오와 경쟁, 배척으로 물든 분단의 문화를 극복하고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은 교회 전통 안에 있는 환대의 정신”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기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사제나 신자들과 모임할 때, 밤 9시가 되면 여기저기서 알람이 울립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를 하죠. 회의 중이든, 식사 중이든, 심지어 술자리에서도요. 기억하는 한 살아있고, 기도하는 한 이루어집니다. 기도는 분명 혐오와 증오 등 일상 안에 자리 잡은 분단의 감정을 이겨내는 힘입니다.” 화해를 위한 실질적인 노력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정 신부는 “오랜 시간 이어온 한반도 갈등은 어느 한순간 몇몇 정치인이 풀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며 “일상 안에 드러나는 많은 갈등 속에서 성찰과 회개를 통해 화해를 이루는 일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우리는 누구나 미성숙합니다. 그러나 성찰을 하면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고, 회심 또한 이뤄집니다. 피해자와 가해자 도식에서 벗어날 수 있지요. 우리가 무감각한 마음을 깨우고 분단을 극복하고자 할 때 한반도와 우리 일상에는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가 자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민규2023.06.21

시행착오 거치며 제자리를 찾아가다[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20)자유와 순종 사이에서 (2)하느님의 교육법 예수님의 비유 중에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아버지의 명을 받은 두 아들의 이야기가 있다.(마태 21,28-32 참조)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습니다’하고 답했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꿔 일하러 갔고, 다른 아들은 ‘가겠습니다’ 하였지만 끝내 가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의 뜻을 실천한 이는 맏아들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인생 역전’, ‘막판 뒤집기’ 등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실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신앙에 관한 이야기다. 비유에 나오는 아버지처럼 하느님도 결코 자녀에게 강요하지 않으신다. 찾고 물으며 스스로 답하기를 바라신다. 당신 뜻을 헤아리며 따를 때까지 기다리신다. 이것이 하느님의 교육법이다. 신앙은 자발적인 순종이다. 처음에는 모순처럼 보이지만, 경험을 통해 신앙 안에서 진정한 순종은 자발적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는 아이가 커서 성인이 되는 과정과 흡사하다. 어렸을 때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한다. 부모님의 세상이 자기 세상이 되고, 부모님의 생각이 자기 생각이 된다. 그러나 커가면서 자기 삶의 책임을 질 준비를 하게 된다. 미래를 꿈꾸고 진로를 준비하며, 스스로 해야 할 것을 찾는 법을 배운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자기 생각과 의지에 대해 의식하게 되고, 부모나 선생님의 권위에 도전 아닌 도전을 하게 된다. 양편 모두에게 힘든, 그러나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이 시기를 거치며 아이는 자기 삶에 책임을 지는 성인이 된다. 그리고 자기 삶을 스스로 살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며, 특히 부모님이 겪으신 것을 하나씩 겪어 나가며 부모의 생각과 뜻이 옳았음을 인정하며 그 뜻을 따르게 된다. 결국 자발적으로 부모님께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는 부모의 손을 잡고 성당에 다녔지만, 커가면서 신앙을 여러 면에서 불편하고 부자유스럽게 하는 족쇄처럼 느낄 수 있다. 몸과 마음이 성당에서 멀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세상 풍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살다 보면, 결국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이 옳았음을, 그리고 나를 끝까지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분은 하느님과 교회뿐임을 깨달으며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된다. 이 점은 자신이 걷는 신앙의 길을 이해하고, 자녀를 신앙 안에서 키우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어느 순간 자녀가 신앙에 대해 묻고 불만을 표현할 때, 그것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여길 필요가 있다. 부모님의 권위에 따르는 피동적 신앙에서 자기 스스로 하는 자발적 신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그 길을 걸어왔음을 인정하며, 자녀가 경험하는 것을 신앙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논증으로 설득시키는 것이 아니라(자녀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서로 솔직하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며 신뢰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신앙과 삶에 대한 부모의 경험을 나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녀는 자기 이야기를 경청하며 삶의 이야기를 솔직히 나누는 부모님과의 대화 속에서 계속해서 좋고 옳은 것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만나는 하느님은 교리나 성경 속에 갇힌 분이 아닌, 우리 삶 안에 살아계신 분, 당신 자녀가 기쁘고 행복하기를, 자비롭고 정의로운 멋진 삶을 살기를 바라시는 분이시며, 그분 앞에서 더욱 자유롭고 사랑받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 아름답고 환희에 찬 신앙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다. ※ ‘금쪽같은 내신앙’ 코너를 통해 신앙 관련 상담 및 고민을 문의하실 분들은 메일(pbcpeace12@gmail.com)로 내용 보내주시면 소통하실 수 있습니다. 한민택 신부 cpbc2023.10.11
의정부교구 황주원·이상민·전솔이 신부, 페루·일본 파견 21일 의정부교구 선교 사제 파견 미사에서 (오른쪽부터) 전솔이·황주원·이상민 신부가 선교사로 파견되고 있다. 의정부교구 홍보국 제공 의정부교구는 21일 교구청 경당에서 교구장 이기헌 주교 주례로 ‘2023년 해외 선교 사제 파견 미사’를 봉헌하고, 황주원, 이상민 신부를 페루 트루히요교구에, 전솔이 신부를 일본 요코하마교구에 파견했다. 2004년부터 10년간의 선교 경험이 있는 황 신부는 “또 한 번 선교의 삶을 살게 되었기에 초심을 기억하며 떠나겠다”고 다짐했다. 오랜 시간 이주사목 분야에서 사목하면서 이주민·난민과 함께했던 이 신부는 “선교에 대한 열망을 새롭게 펼치게 됐다”고 밝혔다. 전 신부는 “어린 시절부터 선교를 꿈꿨다”며 “선교사로 기쁘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전했다. 이기헌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선교사는 그 지역의 사람, 역사, 문화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기쁨과 활력이 생긴다”며 “파견되는 나라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낯설고 때론 외로울 수 있는 환경에서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꼭 필요하기에 성체조배와 성경 읽기, 기도 생활에 충실히 임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선교사로서 소명을 주신 분은 하느님이시기에, 행복하고 보람된 선교생활을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의정부교구는 이번 3명의 사제를 포함해 일본, 캄보디아, 잠비아, 페루 등 지금까지 11명의 사제를 파견하며 해외 선교 사목에 기여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민규2023.04.24

종교적 경계 넘어 보편적 가치 담은 조각들유영교 조각가 ‘구도’ 전시회 서소문성지 첫 작고작가 회고전 역사박물관서 26일까지 무료 관람 '구도'전이 열리고 있는 기획소강당.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특별 초대기획전 유영교 조각가의 ‘구도(求道)’가 3일 개막했다. 유영교 로렌조(1946~2006) 작가의 작품을 한데 모은 이번 전시는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여는 첫 번째 작고작가 회고전이다. 유 작가는 홍익대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고, 1974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국회의장상, 1975년 동 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하며 명성을 쌓았다. 1978년부터 8년간 이탈리아 로마와 카라라 등지에서 수학하며 다양한 돌의 물성과 국제적인 감각을 키웠다. 귀국 후 세계 각지의 돌을 이용해 인체의 단순함과 소박함을 표현한 조형물을 제작했고, 종교를 초월한 작품 활동을 통해 구도적 삶의 길을 걸었다. 실제로 1982년에 제작한 ‘베드로의 소명’, ‘욥’, ‘천신과 싸우는 야곱’ 등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작가의 관심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품인 반면 같은 시기에 제작된 ‘구도자’ 시리즈는 불교의 지혜와 깨달음의 세계를 갈구하는 인물상들이다. 부처의 깨달음과 바오로의 회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제공 대학원에서 유 작가를 만나 함께 유학길에 오른 아내 이은기(목원대학교 명예교수)씨는 “로마에서 당시 부제였던 유흥식 추기경의 도움으로 각각 로렌조, 엘리사벳이라는 세례명을 얻었다”며 “유 작가님이 성당에 열심히 나가지는 않았지만, 성경을 많이 읽었고, 따로 성미술에 집중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작품에 그 세계를 투영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유 작가가 삶과 작품세계에서 지향했던 ‘구도(求道)’를 주제로 여러 곳에 소장돼 흩어져 있던 그의 작품 35점을 모았다. ‘성경 주제의 작품들’, ‘구도자’, ‘열반’ 등의 시리즈 작품을 통해 불교에서 가톨릭까지 종교적인 경계를 넘어 작가가 추구했던 보편적인 가치를 소개한다. 또 다양한 ‘얼굴’의 모습을 담은 조형물은 자아와 타인에 대한 이해와 마주할 수 있도록, ‘샘’ 시리즈를 통해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넘어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천신과 싸우는 야곱. 홍익대박물관 제공 유영교 조각가의 ‘구도’전은 오는 26일까지 서울 중구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정기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원종현 관장 신부는 “스스로의 길을 찾고자 했던 수많은 노력을 예술이라는 조형언어에 담아주셨음에 감사드리고, 이 작품들을 통해 고 유영교 작가의 숭고한 뜻이 전시를 마주하는 모든 분에게 전달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문의: 02-3147-2401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22023.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