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뤼기에르 주교, 조선 땅 밟지 못하고 내몽골 마가자에서 선종‘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발자취를 따라서’ 중국 순례기 <하> 1931년 브뤼기에르 주교 유해를 모시고 장엄 미사를 거행한 심양대교구 주교좌 예수성심대성당 입구 앞에서 순례단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조선을 찾아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출발해 중국을 종단하는 여행을 떠난 지 3년 만인 1835년 10월 7일.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는 달단(몽골) 땅 서만자에서 1년간 재정비한 끝에 마침내 조선으로 출발했다. 이듬해 1월 조선과 만주 국경지대에서 조선 신자들과 합류,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비밀리에 입국할 심산이었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그렇게 매년 겨울, 한 명씩 조선에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브뤼기에르 주교가 떠난 지 24일 뒤인 1835년 11월 1일, 서만자에 남아 차례를 기다리던 동료 선교사 모방 신부에게 들려온 소식은 기대하던 내용이 아니었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10월 20일 저녁 8시 15분경 내몽골 마가자(馬架子) 교우촌에서 선종했다’는 비보였다. 혹독한 추위, 지독한 병마와 싸우며 10월 19일 마가자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찾아온 비극이었다. 향년 43세. 조선 교회 첫 목자는 그렇게 하느님 곁으로 떠났다. 당시 펠리쿠(別拉溝)라고도 불린 마가자는 현재 내몽골 자치구에 속한 적봉시 동산향이다. 서만자교구와 동쪽으로 맞닿은 적봉(赤峰)교구 관할이다. 순례단은 브뤼기에르 주교 발자취를 따라 서만자를 떠나 4월 18일 마가자로 향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1897년 찍은 마가자 브뤼기에르 주교 묘비(위 사진)와 2005년 복원된 묘지.(아래 사진) 브뤼기에르 주교, 마가자에서 선종 서만자에서 하북성과 내몽골 자치구 경계를 넘어 무려 700㎞쯤 가야 마가자에 다다른다. 거침없이 달리는 버스 안에서 「서한집」을 펼쳐 브뤼기에르 주교 생애 마지막 순간을 복습했다. 추위로 병세가 심해져 평소 좋아하던 우유조차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 브뤼기에르 주교. 생애 마지막 날 그는 저녁 식사 후 머리카락을 땋던 중 돌연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침상에 누워 괴로워하며 불어로 말한 ‘예수·마리아·요셉’이 유언이 됐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그간 고된 여정으로 인해 서만자를 떠나기 전 이미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다. 평지가 아닌 곳을 걸을 때는 15분마다 쉬어야 했고, 두통과 구토로 몹시 괴로워했다. “저는 주교님의 죽음을 예견하고 두려워했었습니다.” 곁에서 지켜본 모방 신부 표현이다. 비보를 접하고 곧장 마가자에 온 모방 신부가 장례 예식을 주례했다. 장례 미사 후 브뤼기에르 주교의 시신은 마가자 교우들 묘지에 안장됐다. 1835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이었다. 모방 신부 요청에 따라 교우들은 무덤에 묘비를 세웠다. ‘탁수(鐸首) 소공지묘(蘇公之墓) 도광 15년 8월 29일립(道光十五年八月二十九日立)’이라 새겼다.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무덤, 1835년 8월 29일(양력 10월 20일) 선종’이란 뜻이다. 소(蘇)는 브뤼기에르 주교의 중국식 성(姓)이다. 1931년 조선대목구 설정 100주년을 맞아 주교 유해가 한국으로 이장된 뒤에도 묘비는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1960년대 문화대혁명에 휘말려 사라진 것으로 한때 알려졌다. 사실 묘비는 이웃 마을에서 섬돌로 쓰이고 있었고, 선종 170년 만인 2005년 발견돼 본래 위치에 다시 세워졌다. 격동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겪은 비석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1912년 지어진 심양대교구 주교좌 예수성심대성당. 순례단, 난관에 부딪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내몽골 자치구 정부가 순례단 진입을 막아버린 것이다. 절차에 어긋난 일을 한 적은 없었다. 순례단과 적봉교구 차원에서 각각 방문신고를 했고, 우려할 만한 행동도 하지 않겠다고 알렸다. 그러나 끝끝내 진입 허락은 떨어지지 않았다. 계획했던 마가자와 적봉 주교좌성당 탐방은 무산되고 말았다. 눈치를 살피며 잠시라도 둘러볼 수 있었던 서만자와 달리, 방문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허탈함이 밀려왔다. 특히 새 순례길 개척에 대한 기대가 컸던 순교자현양회 성지 해설사들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부위원장 원종현 신부가 순례단을 격려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순례가 길을 열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지속되고 관심을 갖는다면 언젠가 문이 열리겠죠. 그 마음을 갖고 꾸준히 발걸음을 지속합시다. 마태오 복음서 7장 7절을 기억하자고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브뤼기에르 주교가 「여행기」에 남긴 문장이 떠올랐다. “내 계획에 맞서게 될 무수한 어려움에 대해 환상을 키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그들 나라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확실히 증명하기 위해서는, 가서 그들의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과연 순례단이 지금 처한 상황이 190년 전 브뤼기에르 주교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난관 끝에 고대하던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결국 멈춰버린 점에서 더욱 그랬다. 그래서 오히려 브뤼기에르 주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뜻깊은 순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순례에 함께한 김기혁(베르나르도)씨도 “순례가 계획대로 쉽게 흘러갔다면 오히려 기억에 남지 못할 것”이라며 “브뤼기에르 주교님의 조선 사랑을 더 깊이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부위원장 원종현 신부가 심양대교구 주교좌 성당에서 우연히 미사에 참여한 중국 동포 신자와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브뤼기에르 주교 유해 이송로 따라 심양으로 순례단은 마가자를 건너뛰고 다음 행선지인 요녕성 성도 심양(瀋陽)으로 향했다. 공교롭게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 발자취를 밟은 셈이 됐다. 앵베르 주교도 서만자에서 바로 심양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전임자를 보고 한겨울 내몽골 초원 지대를 건너는 것이 극히 위험함을 깨달아서다. 심양은 북경과 한양을 오가는 조선 사신들이 반드시 들르는 도시였다. 과거 봉천·묵덴·성경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 곳으로, 청나라 초기 수도이기도 하다. 그 위치는 우리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만주 요동(요하 동쪽)이다. 과거 고조선과 고구려·발해가 다스렸던 땅이다. 오늘날에도 동포가 많이 살아 ‘한인촌’이 형성돼 있다. 심양을 찾은 까닭은 1931년 브뤼기에르 주교 유해 이송로에 속하기 때문이다. 1931년 8월 8일 조선대목구가 동몽골대목구에 협조 서한을 보내고, 10월 15일 마침내 서울 용산성당 성직자 묘역에 유해가 묻히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 당시 만주와 한반도는 일제가 부설한 철도로 이어져 있었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유해는 마가자에서 심양까지 옮겨진 뒤 기차에 태워져 서울로 이동했다. 봉천역(현 심양역)에서 안봉선을 타고 안동(현 단동)역까지 간 다음, 압록강을 건너 다시 신의주역(현 신의주청년역)에서 경의선을 타고 경성역(서울역)으로 향하는 경로였다. 동몽골대목구청이 보낸 유해는 1931년 9월 17일 봉천(심양)교구장 블루아 주교에게 전해졌다. 일제가 심양 근교에서 만주사변을 일으키기 고작 하루 전 일이었다. 유해는 9월 22일 심양역에서 기차에 실려 조선으로 떠났다. 그리고 이틀 뒤인 9월 24일 마침내 서울에 도착했다. 그렇게 브뤼기에르 주교는 선종 96년 만에 그토록 그리던 한국 땅을 밟게 됐다. 가슴 벅찬 역사의 현장인 심양역은 1910년 지어진 서양식 근대 건물이었다. 지금도 새 역사와 함께 기차역으로 쓰이고 있다. 붉은 벽돌과 청동 돔은 1925년 준공된 옛 서울역(문화역서울284)과 닮았다. 도쿄역을 비롯한 일제 초기 건축물의 특징이다. 만주가 여러모로 우리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란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심양대교구 주교좌 예수성심대성당은 유해가 서울로 가기 직전 모셔진 곳이다. 이곳에서 브뤼기에르 주교를 위한 장엄 미사를 거행했다. 순례단은 1912년 지어진 이 웅장한 고딕 성당에 들어가 중국어 미사에 참여했다.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신자도 많이 보였다. 40분이 넘는 강론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일부 신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경청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미사 후 통역에게 묻자 가정과 국가에 충성하자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성당 경내를 둘러보니 ‘중국몽’과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등에 관한 문구가 여러 군데 적혀 있었다. 심양에서 유해를 태우고 출발한 기차는 1911년 지어진 압록강 철교를 지나 한반도에 들어왔다. 압록강 철교는 반쯤 끊어진 채 지금도 신의주 건너편 국경도시 단동에 남아있다. 6·25 전쟁 때 중국의 북한 지원을 막기 위해 미국이 폭파한 흔적이다. 지금은 ‘압록강 단교’로도 불린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흐르는, 과거와 달리 이젠 건너갈 수 없는 압록강을 바라보며 이번 순례를 되새겼다. 그리고 이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입국한 선교사들의 이름을 떠올렸다. 1911년 지어져 6·25 전쟁 때 끊긴 압록강 철교(오른쪽) 너머로 북한 신의주가 보인다. 왼쪽에 있는 온전한 다리는 1943년 준공된 ‘조중우의교’다. 압록강 철교와 함께 파괴됐으나 이후 중국 정부가 복원했다. 압록강 바라보며 브뤼기에르 주교를 생각하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여정은 결코 실패가 아닌, 미래를 위해 가치 있는 크나큰 도전이었다. 그를 대신해 국경으로 향한 모방 신부는 1836년 1월 13일 조선에 입국한 첫 프랑스인 선교사가 됐다. 그리고 모방 신부가 선발한 조선인 신학생 중 2명은 훗날 한국인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제가 됐다. ‘피의 순교자’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와 ‘땀의 증거자’ 최양업(토마스) 신부다. 모방 신부에 이어 1836~1837년 샤스탕 신부와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가 잇따라 조선에 들어왔다. 세 선교사는 목자 없이 30년 넘는 세월을 버텼던 양 떼를 돌보다 1839년 기해박해로 순교, 마침내 성인품에 올랐다. 이후로도 더 참혹한 박해를 겪었지만 한국 교회는 무너지지 않고 성장해나갔다. 그리고 동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선도적인 지역 교회로 거듭났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1832년 조선을 향해 떠나며 예언한 바가 끝내 이뤄진 것이다. “가톨릭교회 확장을 바라는 이들에게 조선 선교가 중요시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로 신앙의 뿌리가 조선에 깊이 내린다면, 조선의 지정학적 위치로 보아 거기서부터 복음의 빛이 북쪽 몽골과 조선 인근 여러 섬으로 전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빛은 예소 섬(홋카이도)과 일본에 두 번째로 비칠 것입니다.”(「서한집」) 2031년은 조선대목구 설정 200주년이다. 이때를 전후로 많은 신자가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자 할 것이다. 훗날 그들에게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와 떠난 이번 순례가 분명 도움이 될 터다. 190년 전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여정이 그랬듯이. 「서한집」에 적힌 문구로 순례기를 마친다. “복음의 씨앗이 이미 백 배의 열매를 맺은 이 낯선 땅에서 장차 복음이 크게 발전할 게 틀림없습니다. 이런 희망이 이루어지도록 하느님께 기도해야 합니다.”이학주2024.05.22

종교적 열정이 부추긴 극단주의, 전쟁을 부르다이스라엘 예수회원·성서학자 데이비드 노이하우스 신부 -이·팔 분쟁을 분석하다 지난 8일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한 어머니가 이스라엘 공습으로 사망한 아이의 주검을 옮기고 있다. OSV “독성 강한 정치가 재앙을 부채질합니다. 그 정치의 기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종교적 열정으로 설명되는 극단적 민족주의입니다.” 이스라엘 예수회원이자 성서학자인 데이비드 노이하우스(David Neuhaus, 61) 신부는 이-팔 분쟁의 본질을 이렇게 꿰뚫었다. 그러면서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조롱 섞인 비난을 받는 이-팔 분쟁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종교와 정치가 뒤섞인 극우 민족주의를 내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이하우스 신부는 최근 교황청 선교통신 피데스(Fides)와의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에서 기승을 부리는 민족주의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의 발언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친이스라엘 시각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부모를 따라 15살에 이스라엘로 이주한 독일계 유다인 2세다.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성서학을 전공했다. 또 예루살렘 히브리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가톨릭 신자들을 사목한 경험도 있다. 성서학자이자 정치학자, 그리고 사목자의 시각으로 이-팔 분쟁을 통찰할 수 있는 인물이다. 다음은 인터뷰 요약. 데이비드 노이하우스 신부. -이스라엘의 군사적 해결책, 하마스 섬멸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보십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모든 전쟁은 패배!’라며 무기를 내려놓으라고 촉구하십니다. 군사 작전에서 논리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이스라엘은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하마스 기습은 몇 가지 통념을 무너뜨렸습니다. 무적이라는 자국 군대가 수백 명의 무장 세력에게 허를 찔리고, 유다인들이 (세계를 떠돌다 정착한) 안전한 고향에서 학살당한 것이지요. 슬픔과 불안, 분노가 뒤섞여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승리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합니다. 승리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마스 섬멸? 하지만 그것은 무고한 민간인 희생을 포함한 가자지구 초토화로 해석됩니다. 상대를 악의 화신으로 간주한 것이지요. 이스라엘 언론인 알론 골드스타인이 이렇게 썼더군요. ‘우리는 비열한 생물, 환생한 나치, 아말렉(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명령에 따라 무찌른 이민족)과 마주하고 있다. 눈을 깜빡이거나 의심해서는 안 된다. 누구의 말도 듣지 말고 후손만 바라봐야 한다. 온 힘을 다해 공격을 퍼부어 적 아랍의 무릎을 꿇려야 한다…’ 다른 요인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민 80% 이상이 네타냐후 총리를 비난합니다. 하마스 공격을 초래한 명백한 실정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는 정치 인생이 끝났다는 것을 알기에 전쟁을 끝내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이 전쟁은 또한 서안지구에서 유다인 입지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가리는 은폐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두 국가 해법’을 다시 얘기합니다. 이 전망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보십니까. 유엔이 1947년 팔레스타인을 유다 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로 분할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정당성은 팔레스타인 건국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국가를 세우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팔레스타인 주민 200만 명이 이스라엘 내에서 2등 시민으로 살아갑니다. 또 500만 명 정도가 이스라엘이 1967년(제3차 중동전쟁) 점령한 영토에서 살고 있습니다. 민족은 두 개이지만 국가는 하나뿐입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 들어가 정착촌을 넓혔습니다. 그곳 주민들의 비참한 상황이 하마스 극단주의를 키운 측면도 있습니다. 양측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은 두 국가 해법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두 국가 해법은 그저 희망 사항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언론 하레츠(The Haare tz)는 ‘이스라엘 극우파를 불태워라’는 제목의 6일 자 사설에서 현 정부에서 큰 목소리를 내는 메시아주의와 카한주(총리 관저 소재지) 극우파가 이 전쟁을 기회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요인이 전쟁 시나리오에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메시아적 망상이 시오니즘을 괴롭혀 왔습니다. 1967년 전쟁 이후 민족주의와 종교 근본주의가 결합한 시오니즘이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유다인 정착민들은 국제법과 팔레스타인 주민의 권리를 무시하고 점령한 성경의 도시 헤브론과 세겜(현 나블루스)으로 이주했습니다. 하느님이 그곳을 차지해 다스리라고 명령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 도시를 텔아비브(수도)나 하이파(북부 최대 도시)보다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지역 교회 활동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교회는 하마스건 시오니스트 정착민이건 모든 인간은 하느님 모상대로 창조됐다는 것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예언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순진(nave)’해도 됩니다. 순진해야 내일은 오늘과 다를 수 있다는 믿음을 장려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피자발라 총대주교님은 최근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사랑과 평화의 용기를 내야 한다. 그래야 증오와 복수, 고통이 우리 말과 생각의 공간을 차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교황님의 말씀대로 교회는 그렇게 해야만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습니다. 교회는 1920년대부터 유다 민족주의가 꿈틀대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교회는 이 중요한 역할을 계속 해야 합니다. 하마스의 테러를 규탄하고 이 지역 불안정의 근본 원인을 규명하는 것도 교회 역할입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김원철2023.11.22

책 읽기 능력 향상은 훈련·학습에 의해서만 가능[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26. 스크린 훑기와 책 읽기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에게 종이책 읽기 회로는 사라지고, 디지털 읽기 방식의 뇌 회로에 의해 삶의 소통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태블릿 PC를 이용하는 모습. OSV 한 수련자가 “영적 독서 시간만 되면 졸리고 묵상 시간이 너무도 지루하고 힘들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는 중학생 때부터 오랫동안 게임중독에 빠져 살아왔다. 중독 상태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게임중독자의 뇌는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고 충동조절도 어렵다. 빠른 보상에 익숙해진 뇌가 멈춰서 깊이 읽고 천천히 사색하는 독서와 기도가 힘겨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디지털 매체의 등장으로 독서 감수성이 아주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누군가는 진화라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퇴화라고 할 것이다. 독서 인구가 많이 감소하고 있다. 동시에 원하는 정보만 읽는 전자책 발췌 독서 인구는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 편리함과 편향이 책 읽기까지 영향을 주면서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 추세다. 요즘처럼 검색과 전자책이 대세라면 완독을 해야 하는 종이책 읽기만을 고집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늘어가고 있다. 시대에 따른 보편적 감수성이 있으니 기존의 독서경험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라는 것이다. 종이책과 전자책에 대한 논란은 이미 식상한 화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요즘 누가 종이책 읽느냐?”며 무거운 종이책보다는 웹툰과 전자책이 익숙해지고 있는 시대라고 소리를 높인다. 하기야 몇 년 전만 해도 미사 중에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는 행위를 보면 불경스럽게 보였는데, 최근에는 대놓고 스마트폰 꺼내 들고 성경 말씀을 읽기도 하고 성가를 부르는 것이 꽤나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사제가 태블릿 피시를 보면서 강론을 하거나 알림을 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나 역시 수녀원 아닌 곳에서는 스마트폰으로 기도한다. 그런데 기도했다는 의무감에서는 해방되었는데 뭔가 모르게 불편하다. 나의 감수성이 또 어떻게 변화될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무거운 성무일도 책에서 느껴지는 특유한 향기, 종이를 만지는 손끝에서 전달되어오는 경건함이 좋다. “우리 뇌의 읽기 회로가 사라지고 있다.” 인지과학자인 매리언 울프의 말이다. 디지털 매체가 우리의 읽기 방식을 바꾸면서 ‘깊이 읽기’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깊이 읽기는 반성하고 사유하고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는 능력을 향상시켜 준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깊이 읽기가 안되면 인지적 인내심도 서서히 잃게 되고 비판적 분석능력도 사라지고 무엇보다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도 잃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깊이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종이책을 읽으려면 몸과 마음이 멈춰야 한다. 그리고 천천히 속도를 늦추고 집중해야 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에 따라 뇌도 마음도 차근차근 선형적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디지털 읽기는 다르다.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빠르게 이동한다. 무엇보다 비선형적인 하이퍼텍스트의 구조로 인해 산만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디지털 읽기 방식에 익숙해지면 종이책도 스마트폰 스크린을 훑듯이 빠르게 핵심만 파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을 읽을 때에도, 기도할 때에도, 미사에 참여할 때에도 스마트폰에서 정보를 훑어보듯 우리의 행동방식도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된다. 「다시, 책으로」에서 매리언 울프는 이런 현상을 ‘블리딩 오버(bleeding over)’라고 한다. 뇌의 가소성 원리에 의해 종이책 읽기 회로는 사라지고 디지털 읽기 방식의 뇌 회로에 의해 우리 삶의 소통방식이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책 읽기 능력 향상은 훈련과 학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스크린 훑기에 익숙해지면 책 읽기의 뇌 회로가 사라진다. 그렇다면 디지털 읽기 방식으로 읽기를 배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신학교나 수도원에 들어와 신학이나 영성분야의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할 때, 혹은 긴 시간을 묵상해야 할 때 그들에게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 과정이 될지 헤아려본다. 어쩌면 종이책 읽기는 단순히 정보습득을 위한 행위가 아닌 바로 영적으로 생존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어야 할 것 같다. 영성이 묻는 안부 어느 신경정신과 의사에 의하면 전자책을 읽는 사람의 뇌에서 마치 게임을 할 때처럼 비슷한 뇌파검사 결과가 나온다고 해요.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다른 중독성 있는 프로그램을 접속한 경험을 뇌가 기억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마치 게임중독자가 컴퓨터 켜는 소리만 들어도, 알코올 중독자가 소주 사진만 봐도, 담배 피우는 사람이 담배 연기만 맡아도 쾌락 중추를 자극하는 호르몬이 나온다는 연구결과와 상통하는 지점이 있지요.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만 고집할 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노력하지 않아도 디지털 스크린엔 손이 가는데, 종이책은 의지적으로 선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네요. 지루하더라도 두꺼운 책에 손을 얹고 책의 속도에 맞춰 삶의 시간을 늦춰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무도 없는 텅 빈 성당에서 견디기 힘든 고독을 품고 또 품어 ‘산만함’의 진통을 깨고 나온 ‘견딤’과 ‘멈춤’의 기쁨을 누려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즐겁게 춤을 추는 것보다 멈춰 느리게 존재하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할 수도 있으니까요. cpbc2023.06.28

운명[월간 꿈 CUM] 회개 _ 요나가 말을 건네다(4) “‘자, 제비를 뽑아서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우리에게 닥쳤는지 알아봅시다.’ 그래서 제비를 뽑으니 요나가 뽑혔다.”(요나 1,7) 13세기 페르시아의 수피 사아디(Sa'di)가 들려준 우화에 이런 지혜의 글이 있습니다. “딱 한 번 나는, 나의 불행한 운명을 원망하여 불평한 적이 있다. 당시 너무나도 가난하여 신발을 마련할 수 없었기에, 아린 맨발로 투덜거리며 쿠파 신전으로 들어갔다. 그때 거기서 나는 발 없는 사람을 보았다.”(사아디, 「사아디의 우화정원」 아침이슬, 21쪽) 인간은 저마다 자신의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그 운명이 반드시 그렇게 살도록 미리부터 주어진 예정론은 아닙니다. 내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든,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든, 도시에서, 혹은 시골에서, 또는 부잣집 금수저로 태어났든, 흙수저로 태어났든, 그것이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에 의해 선택받은 경우에는 계속 그 길을 걸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이를 ‘부르심의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구약의 아모스 예언자는 자신의 뜻이 아닌, ‘부름 받은 운명’을 이렇게 항변합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아모 7,14-15) 아무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오던 자신을 하느님께서 부르시어 예언자로 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아모스의 운명은 바뀌지 않습니다. 더구나 비탄과 탄식의 예언자라고 부르는 예레미야 예언자는 부름 받은 자신의 운명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울부짖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저에게 날마다 치욕과 비웃음거리만 되었습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 20,8–9) 예레미야는 예언자로 불리움 받은 운명이 자신의 삶을 짓누르는 아픔을 주더라도 끝내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장한 죽음의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한결같이 그 거룩한 운명을 힘들어하거나 고통스러워 몸부림치더라도 끝내는 부르심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장엄한 길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2천 년 교회 역사의 수많은 성인들도 똑같은 운명의 길을 걸었던 거룩한 분들이셨습니다. 사제직의 부름을 받은 이들도 저마다 소중한 부르심의 운명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제들이 한 번도 사제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운명처럼 부르심이 자신에게로 울려와 빨려가듯이 사제직에 몸담게 되었노라고 고백합니다. 저 또한 그러합니다.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사제와 수도자가 많았지만, 결코 사제가 되겠다는 꿈조차 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인생을 함부로 살며 방황하여 집안에 큰 근심거리로 전락하던 한없이 부족한 저를 그야말로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셨고 운명처럼 이 길을 걷게 해 주신 것입니다. 실로 돌아보면 인생의 발자국마다 온통 은총이었습니다. 요나는 부르심의 운명을 거스르다가 끝내 하느님 진노의 풍랑을 만나게 되고, 제비뽑기에서 재앙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가련한 처지에 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커다란 짐으로 느낄 때가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하느님 부르심의 운명에 나 자신을 내어 맡길 때, 우리는 더 큰 자유와 평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 놀라운 자유와 평화를 일찍이 깨달았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 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1코린 9,19) 그래서 요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을 건넵니다. “주님 부르심이 제게 울려왔을 때, 저는 이해할 수 없었고,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주님 부르심의 운명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운명을 받아들일 때, 내게 참다운 자유와 평화와 기쁨이 있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글 _ 배광하 신부 (치리아코, 춘천교구 미원본당 주임)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춘천교구 배광하 신부는 1992년 사제가 됐다. 하느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며, 그 교감을 위해 자주 여행을 떠난다. 삽화 _ 고(故) 구상렬 화백 (하상 바오로) cpbc2023.10.24

“제가 이 일을 맡고 싶습니다. 제가 조선에 가고 싶습니다”[‘하느님의 종’ 브뤼기에르 주교] 10. 방콕에서 조선 선교 관할 여부 묻는 소식을 듣다 브뤼기에르 신부는 샴대목구 주교좌 성모 승천 대성당 주교관에 머물며 신학교 교수로, 본당 사목자로, 죽을 위험에 처한 외교인 아이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선교사로 2년간 활동했다. 1922년 방콕 주교좌 성모 승천 대성당. Kraus, Johansen. 1827년 방콕 도착 후 곧바로 선교사로 활동 1827년 6월 3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방콕 도착 후 곧바로 선교사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샴대목구장 플로랑 주교님께서는 저의 첫 소임으로 신학교 운영을 맡겼습니다. 무엇보다 현지인 사제를 양성하는 일이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파리외방전교회 입회 전 프랑스 카르카손교구 대신학교 교수로 오랜 기간 재직한 바 있어 신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 혼자 거의 모든 과목을 가르쳐야 했기에 힘들었습니다. 매일 철학과 신학 2시간·라틴어 수업 4시간, 매주 성경 2시간을 강의했습니다. 저는 소임 중 가장 우선으로 사제 양성에 힘을 쏟았습니다. 현지인 사제를 양성한다는 파리외방전교회 설립 정신을 따르는 것일 뿐 아니라, 교구의 운명이 사제 양성에 달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방콕에서 신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3명뿐이었으나 22개월이 지난 1829년 4월 지금은 22명으로 늘었습니다. 저의 두 번째 소임은 본당 사목입니다. 방콕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성당, 성 십자가 성당, 묵주의 성모 성당, 성모 승천 대성당 등 네 곳이 있습니다. 성모 승천 대성당은 성 십자가 성당에 주로 거주하시던 플로랑 주교님께서 주교좌 대성당으로 신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샴대목구의 모든 주요 전례와 행사가 이곳에서 거행됩니다. 저는 주교좌 성모 승천 대성당 주교관에 거주하면서 신학교를 운영하고, 주일이면 방콕 시내 네 성당에서 차례로 미사를 주례하고 성사를 집전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소임은 대목구장 플로랑 주교님을 대리해 교구 행정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황청 포교성성과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로 오가는 각종 문서를 처리하고 교구의 주요 살림살이를 챙기는 것이 주된 일입니다. 한마디로 총대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플로랑 주교님으로부터 받은 소임은 아니지만, 저는 죽을 위험에 처한 외교인 아이에게 세례성사를 베푸는 일을 빼놓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선교사로서 제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방콕에 도착한 이래로 1600명의 어린이에게 세례를 줬습니다. 그들 모두는 외교인 부모의 자녀들입니다. 방콕뿐 아니라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도 많은 외교인 자녀들이 여러 질병으로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의 부모에게 허락을 받고 아이들에게 세례를 줍니다. 그리고 부모들에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권고합니다. 현지인 신학생을 사제로 양성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프랑스인 사제가 선교사로 이곳에 오면 수많은 현지인에게 구원을 가져다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틈날 때마다 “아시아 복음화를 위해 선교사로 지원하라”는 편지를 조국의 신학생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플로랑 주교, 부대목구장 주교로 임명 청원 2년간 저를 지켜본 플로랑 주교님께서는 1829년 교황청에 한 통의 편지를 썼습니다. 저를 당신의 후임으로 샴대목구장 계승권을 가진 부대목구장 주교로 임명해 달라는 청원서였습니다. 얼마 후 플로랑 주교님께서는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서 1828년 1월 6일 자로 작성한 공동 서한을 받았습니다. 주요 내용은 교황청 포교성성이 조선 선교지를 파리외방전교회가 맡아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플로랑 주교님께서는 공동 서한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서한을 읽는 동안 저는 조선을 향한 선교 열망이 다시 불 지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30년 전부터 보편 교회의 도움을 간청해온 이 불행한 이들에게 내 동료들과 헤어지지 않고도 도움을 주러 갈 좋은 기회가 왔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복받쳐오는 감정으로 후끈 달아올라 제 몸은 전율했습니다. 저는 플로랑 주교님의 두 손을 움켜잡고 주교님께 “제가 이 일을 맡고 싶습니다. 제가 조선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주교님께서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시면서 제 청을 기꺼이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대가 조선 선교를 원하고 실행하고자 한다면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플로랑 주교님께서는 당신 교구가 풀어가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데도 하나뿐인 일꾼을 주님의 새로운 포도밭을 위해 기꺼이 내놓으시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교황청은 사제를 보내달라는 조선 교우들의 울부짖음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교황청 포교성성은 1824년(혹은 1825년) 조선 교우들이 레오 12세 교황에게 보낸 청원을 고려해 조선을 북경교구에서 분리해 대목구로 독립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포교성성 장관 바르톨로메오 알베르토 카펠라리(Bartolomeo Alberto Cappellari) 추기경은 1827년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장 랑글루아 신부에게 조선 선교를 맡아달라는 편지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교황청 포교성성은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조선 교회 재건을 위해 사제를 파견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펼쳤다. 1811년 프란치스코와 조선의 교우들이 비오 7세 교황에게 보낸 서한. 포교성성, 파리외전에 조선 선교 담당 요청 포교성성은 조선 선교를 위해 이미 여러 차례 다양한 시도를 펼쳐왔습니다. 교황청은 1807년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로부터 1801년 신유박해로 조선 교회가 초토화됐다는 보고서를 받은 후 처음으로 포르투갈 선교사들에게 조선 선교지를 맡기는 데 따르는 위험을 인식합니다. 그래서 포교성성 장관 레오나르도 안토넬리(Leonardo Antonelli, 1730~1811) 추기경은 북경교구장 알렉산더 드 구베아(Alexandre de Gouvea, 1751~1808) 주교에게 가능한 한 빨리 사제 한 명을 조선에 보낼 수 있도록 특별히 신경 써달라고 요청하고, 북경 신학교에서 조선인 사제를 양성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아울러 중국과 조선의 국경 지대에 비밀 연락소(교우 공동체)를 설치해 서로 편하게 교회 사정을 교류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교황청의 이러한 권고는 구베아 주교가 1808년 7월 6일 선종하면서 성과 없이 흐지부지돼 버렸습니다. 이후 교황청 포교성성은 1815년 12월 30일 구베아 주교 후임으로 북경교구장에 임명된 요아킴 데 수자 사라이바(Joaquim de Sousa Saraiva, 1744~1818) 주교가 보내온 편지를 접수합니다. 그 편지에는 프란치스코와 조선의 다른 교우들이 쓴 1811년 음력 10월 24일(양력 12월 9일) 자로 교황께 보내는 서한이 들어있었습니다. 조선 교우들이 교황께 보낸 서한에는 “성직자를 보내 줄 것”과 “선교사들이 어려움 없이 조선에 입국할 수 있는 최선책은 교황이나 포르투갈 임금이 파견한 사절단이 선교사와 함께 배를 타고 오는 것”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포교성성 관계자들은 이 서한 내용을 보고 경탄했습니다. 조선 교우들의 열정과 신앙심에 감복했습니다. 모두 조선 선교지에 시급하게 사제를 파견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포교성성은 선종한 북경교구장이 갖고 있던 조선 선교지 관할권을 누가 이어받을지, 선교사들을 직접 조선에 보낼지, 포르투갈 왕실 사절단을 요청하는 우회로를 이용할 것인지 등을 논의한 끝에 중국 현지 사정에 밝은 마카오의 포교성성 극동 대표부장 마르키니 신부에게 북경에서 추방된 이들 가운데 조선에 보낼 선교사 한 명을 선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조선 교우들의 열정과 신앙심에 감복 교황청 포교성성이 조선에 사제를 파견하려고 다각적인 노력을 보이자 중국의 선교 보호권을 행사하던 포르투갈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금교령으로 자신의 사목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경에 머물고 있던 북경교구장 사라이바 주교는 남경교구 신 플로리아노 벨로조(Xin Florien Vellozo, 43) 신부와 밤 요한(Vam Jean, 29) 신부를 즉각 조선으로 보냅니다. 조선 선교지를 교황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사라이바 주교는 밤 요한 신부를 조선 선교지 총대리로 임명하고, 북경교구장이 갖는 권한 안에서 모든 상시적 권한과 특별 권한(혼인 장애 관면, 이동 제대 축성 등)을 그에게 위임했습니다. 또 밤 신부의 유고나 부재 시 신 신부가 그 권한을 승계할 수 있도록 허가했습니다. 이들의 첫 임무는 조선인 신학생을 선발해 포르투갈 수도회가 운영하는 마카오 신학교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두 신부는 1817년 1월 4일 남경에서 배를 타고 조선으로 출항했지만, 입국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신 벨로조 신부는 병에 걸려 조선 관문에서 선종했고, 이 때문에 밤 신부는 남경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제가 마카오에서 듣고 본 1824년(혹은 1825년) 조선 교우들이 레오 12세 교황에게 보낸 편지를 계기로 교황청 포교성성이 직접 조선 선교지를 챙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2024.03.27

바보의나눔, 바보나눔터 500호점 탄생서울 강남구 자동차 디테일링샵 ‘게러지드블랑’에 현판 전달 서울 강남구 게러지드블랑에서 6월 29일 열린 바보나눔터 500호점 현판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바보의나눔 제공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이사장 손희송 주교)이 진행하는 중소상공인 기부 캠페인 ‘바보나눔터’ 500호점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자동차 디테일링샵인 ‘게러지드블랑’(대표 고훈민)이다. 게러지드블랑은 안전하고 좋은 제품을 사용해 각 차량에 맞게 세차, 코팅, 수리 등 토털 케어를 제공하는 자동차 디테일링샵이다. 고훈민(요셉, 서울 역삼동본당) 대표는 바보의나눔 기부 안내를 보고 바보나눔터로 정기기부를 신청했다. 바보나눔터 500호점 현판전달식은 6월 29일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게러지드블랑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 바보의나눔 사무총장 우창원 신부, 고훈민 대표 등 관계자들은 현판 및 500호점 기념패 전달과 축복식에 참여하며 바보나눔터 500호점 탄생을 축하했다. 고훈민 대표는 “아이와 함께 새벽 미사를 한 달 동안 꾸준히 참여하면서 성경도 더 자주 읽게 되고 많은 것을 느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움받은 만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며 바보나눔터 신청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희 나눔이 어려운 분들과 꿈은 있지만 꿈을 향해 가지 못하는 분들,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분들께 전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우창원 신부는 “처음에는 주변 지인들에게 부탁하면서 시작했는데, 이제는 주변 업체에 붙은 바보나눔터 현판을 보고 기부 연락을 주는 업체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며 “어려운 시기에도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바보나눔터에 함께해 주신 중소상공인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바보나눔터는 2017년 2월부터 시작된 중소상공업체를 위한 기부 프로그램이다. 가게, 식당, 카페, 병원, 학원 등 중소상공업체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며, 매달 3만 원 이상의 정기기부 또는 100만 원 이상의 일시기부로 동참할 수 있다. 바보나눔터가 되면 김수환 추기경의 얼굴과 자화상이 그려진 현판과 도어 스티커를 증정하며, 재단 홈페이지와 SNS에 업체 소개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바보나눔터는 6년여 만에 500호점을 달성했으며, 해마다 평균 80여 개의 업체가 동참하고 있다. 바보나눔터를 통해 모금된 기부금은 바보의나눔 공모배분사업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전달되며, 자세한 내용은 바보의나눔 홈페이지(www.babo.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의 : 02-727-2507, (재)바보의나눔 모금홍보팀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도재진2023.07.04
![[이소영 평화칼럼] 가장 아름다운 노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8/16/RoS1692145570527.jpg)
[이소영 평화칼럼] 가장 아름다운 노래이소영 베로니카(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때때로 붙잡고 있던 옷깃을 놓친 것 같은, 세상이 나를 밀쳐낸 듯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그해 겨울이 내겐 그러했다. 당시 누군가 「시편」을 읽어보라 권했다. 그걸로도 마음이 어떻게 안 되거든 「욥기」를 찾아 읽으라고, 거기서 필요로 하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시편」을 펼쳤다. 그런데 읽다가 ‘저를 미워하는 자들’이 등장하는 구절들에 다다르면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누구나 저마다의 입장과 서사가 있을진대 자신은 가련한 피해자로, 상대방은 덤불 속 사자 같은 가해자로 묘사하며 주님이 그들을 짓부수어 주십사 청하는 것이 과연 옳은 기도일까. 성경을 제대로 공부해보지 못한 자의 불경한 의문일 수도 있겠으나,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 죽이려 몰려드는 와중에조차 한 시종의 잘린 귀에 손대어 고쳐주셨던 주님이 “저를 적대하는 자들은 수치로 옷 입고 창피를 덧옷처럼 덮게 하소서”(시편 109,29)의 저주 섞인 탄원을 듣고 어떤 심정일지 싶었다. 이어서 「욥기」를 읽었다. 신앙이 얕고 신학에 무지한 나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위안을 얻을 수 없었다. 신도, 신의 아들도 아닌 인간 욥이 올곧음을 시험당하며 받은 무시무시한 고통이 돌덩이처럼 내면을 짓누르는 듯했다. 절대자는 그간 내게 감미로운 음악과 따사로운 볕처럼 오셨고, 별들과 나무들 안에 계셨다. 그렇다면 “진창에다 내던지시니 나는 먼지와 재처럼 되고 말았네”(욥기 30,19)의 저 차갑게 돌아선 단단한 등은 누구의 것일까. 그렇게 가위눌린 마음으로 읽다 페이지를 잘못 넘겨 「아가」의 구절에 닿았다. “나의 연인이 문틈으로 손을 내밀자 내 가슴이 그이 때문에 두근거렸네. 나의 연인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일어났는데 내 손에서는 몰약이 뚝뚝 듣고 손가락에서 녹아 흐르는 몰약이 문빗장 손잡이 위로 번졌네. 나의 연인에게 문을 열어주었네. 그러나 나의 연인은 몸을 돌려 가 버렸다네. 그이가 떠나 버려 나는 넋이 나갔네. 그이를 찾으려 하였건만 찾아내지 못하고 그이를 불렀건만 대답이 없었네. 성읍을 돌아다니는 야경꾼들이 나를 보자 나를 때리고 상처 내었으며 성벽의 파수꾼들은 내 겉옷을 빼앗았네. 예루살렘 아가씨들이여 그대들에게 애원하니 나의 연인을 만나거든 내가 사랑 때문에 앓고 있다고 제발 그이에게 말해 주어요.”(아가 5,4-8) 붙잡아주던 손이 사라진 듯한, 이유 모른 채 버려진 것 같은 순간이 이따금 있다. 누구에게나 그럴 것이다. 종교를 갖고 있든 그렇지 않든. 「아가」는 이렇듯 캄캄한 순간을 절대자가 노여워 나를 벌하거나 진창에 내던지는 장면으로 묘사하지 않은 듯했다. 좋아하던 이가 문 앞에서 몸을 휙 돌려 가버려 어쩔 줄 모르는, 사랑 때문에 애달파 앓는 마음으로 표현한 것 같았다. 잃은 게 아니라 잠시 앓는 것. ‘밀당’을 알지 못하는, 상대가 장난스레 밀어내고 숨어버리면 그대로 엎어져 울음 터뜨리는, 아직 서툴고 미숙한 사랑의 마음. 혹시 무얼 잘못해서 나를 떠난 걸까 싶어 마음이 풀처럼 시든 이에게 짓궂은 연인마냥 불쑥 다시 나타나려고 잠시 저 모퉁이에 숨어 기다리고 계신가보다. 그렇게 상상해 보았다. 그 상상은 욥이 마침내 주님으로부터 양 만사천 마리와 낙타 육천 마리, 겨릿소 천 쌍과 암나귀 천 마리를 선사 받던 장면보다 몇 배나 위로가 되었다. 신성을 지나치게 주관화한 것 아니냐 할지 모르겠다. 성냥팔이 소녀가 켠 성냥불의 환상처럼 그건 네가 그려낸 너만의 하느님이라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믿으려 한다.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아가」에서 그러셨듯 그분은 ‘노루처럼, 젊은 사슴처럼 되어’ 서둘러 다시 오실 것임을 말이다. 내게, 그리고 이 순간 두려움과 고통 중에 있을 그대들에게. cpbc2023.09.20

가톨릭평화방송 TV, 시청자들을 더욱 일찍 찾아갑니다 1. 신규 프로그램 ‘책! 책! 책!’은 신앙과 일상을 모두 챙기고 싶은 바쁜 가톨릭신자들을 위해 마련됐다. 2. 6월 25일 ‘가톨릭 신자를 위한 평화와 화해 교육 강좌’가 시청자들을 찾아간다. 3.가톨릭 둘레특강. cpbc 가톨릭평화방송 TV가 6월부터 시청자들을 더욱 일찍 찾아간다. 기존보다 1시간 앞당겨진 오전 4시부터 cpbc TV를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이른 새벽 시간, 가톨릭평화방송을 보며 교회 전례에 맞는 기도와 성체 조배, 미사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도록 새롭게 편성했다. 이 시간대 주요 시청층의 수요가 많은 것을 고려했다. 이에 시청자들은 전례와 기도 프로그램을 연속해서 시청할 수 있게 됐다. 오전 4시 ‘새벽을 여는 기도’에 이어, 4시 20분부터 ‘성체 조배’가 방영된다. 오전 5시 ‘묵주기도’ 이후 오전 6시에는 삼종기도 뒤에 ‘TV 매일미사’가 방송된다. 기도와 미사가 이어지도록 한 것이다. ‘TV 매일미사’ 후 오전 7시부터는 명품 강좌가 마련됐다. 월~목요일 ‘가톨릭 둘레특강’부터 ‘바이블 무브’, ‘루카가 그려주는 예수님 이야기’, ‘요한이 만난 사람들’이 있다. 오후 3시에는 ‘하느님 자비를 구하는 기도’가 매일 안방을 찾아간다. 새롭게 선보이는 프로그램도 있다. ‘책! 책! 책!’은 바쁜 일상 속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감상하기 어려운 현대인들을 위해 마련됐다. 특히 신앙 관련 서적과 음악을 함께 읽고 들을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일과 신앙을 모두 챙기고 싶은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바쁜 일상은 잠시 접어두고 책과 음악과 함께할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을 선사한다. ‘책! 책! 책!’은 매주 화요일 오전 5시 30분과 오후 4시, 수요일 오후 11시, 토요일 오후 8시, 월요일 오후 8시 30분에 만나볼 수 있다. ‘가톨릭 신자를 위한 평화와 화해 교육 강좌’에서는 ‘평화와 화해’의 의미를 배운다. 성경이 전하는 ‘평화’란 무엇일까? 또 현실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와 화해를 어떻게 이뤄야 할까? 이를 알기 쉽게 전하고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부위원장 정수용 신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6월 25일 오후 7시 30분 첫 강의를 시작으로, 26일 월요일 오후 4시, 27일 오후 11시, 7월 1일 오전 6시 50분에 방송된다. 한편, 7월에도 새 프로그램 ‘곽승룡 신부의 영혼 돌봄’, ‘최강 신부의 내 영혼을 채워주는 생각들’, ‘김덕재 신부의 같지만 다른 4복음서(가제)’와 같은 알찬 강좌 가 시청자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박예슬2023.06.09

책꽂이 그리스도교 윤리학: 제1권 기초 도덕신학칼 H. 페쉬케 지음 / 이동호·방종우 신부 옮김 가톨릭대학교출판부그리스도교 윤리학, 또는 도덕신학은 통상 그리스도교 신앙과 이성에 비추어 한 남자, 혹은 한 여자가 자신의 최종 목표를 달성하는 데 따라야 할 지침들을 연구하는 신학의 한 분야라고 정의된다. 이 지침들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목적을 향하는 데 따라야 할 도덕규범들을 즉각 생각하게 한다. 이는 곧 도덕신학의 정의가 ‘행동의 윤리학’이라 불릴 수 있는 근거를 말해 준다. 「그리스도교 윤리학」 제1권이 ‘기초 도덕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전면 개정되었다. ‘도덕신학이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권고에 따라 전체적으로 성경 말씀을 보강하고 정교한 해석을 더했다. 동시에 윤리학에 있어서 새롭게 발전된 분야도 반영한다. 즉 도덕규범들에 대한 의무론적·목적론적 상황, 시민법이나 교회법이 대면하는 양심, 그리스도교 정체성의 뿌리인 공동체, 자유의 필요 요건, 윤리적 절충 등과 같이 현실적 관심사 중에서 새로운 쟁점들을 다루고 있다. 성서 지혜문학 입문박영식 신부 지음 / 성서와함께‘지혜’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다. 지혜는 성경에서도 이야기하는 주제이다. 욥기, 잠언, 코헬렛, 지혜서, 시라(집회서)로 이어지는 지혜문학이 있고, 성경의 지혜 책들 역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과 교훈들을 전함으로써 인간이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이끈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지혜는 현세적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넘어서는 영원한 생명을 추구한다. 「성서 지혜문학 입문」은 성경의 지혜 책들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참된 지혜의 길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안내서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가톨릭대학교 교수와 총장,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박영식(서울대교구 반포4동본당 주임) 신부가 1999년 발간한 「생명의 샘과 인생길: 성서 지혜문학을 읽기 위한 탐구」를 수정하고 보완했다.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지혜를 습득하였다 하더라도 자기의 인생이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최상의 인간 지혜까지도 결국 아무것도 아님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64쪽)완덕의 길 해설 방효익 신부 지음 / 기쁜소식「완덕의 길」은 예수의 데레사 성녀가 1562년 개혁과 더불어 시작된 성 요셉 공동체, 맨발의가르멜수녀원의 수녀들에게 주는 기도에 대한 권고와 조언들이다. 엄격한 봉쇄와 관상생활을 원하는 수녀들에게 자신이 강생의 가르멜수녀원에 들어가(1535~1562년) 겪었던 아픔들을 반면교사 삼아 안내한다. 방효익(수원교구 권선동본당 주임) 신부는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을 ‘새 부대’에 담아 수도자들과 사제들에게 건네고자 「완덕의 길」을 풀어썼다. 방 신부는 “「완덕의 길」은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으로, 초보자들은 물론이요 기도에 있어서 많은 체험을 했다는 이들까지도 도와줄 수 있는 탁월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특히 ‘주님의 기도’를 해설한 부분은 충분히 명작이라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평화신문2022.10.25
![[신앙단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 땅에는 언제 오세요?(조양제, 베드로, 대필작가)](//cpbc.co.kr/CMS/newspaper/2022/12/rc/838184_1.4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하늘에 계신 아버지, 땅에는 언제 오세요?(조양제, 베드로, 대필작가) 어느 날 주님의 기도를 하다가 이런 투정을 한 적이 있습니다. 땅에 사는 우리 인간들은 이렇게 살기 힘든데 왜 우리 주님은 하늘에서 안 내려오는 걸까? 참 철부지 같은 생각이지만 어떤 때는 삶이 너무 팍팍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투정이 저절로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 공부를 하면서 저의 투정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깨닫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보고 싶다는 인간의 갈망이 하늘에 전달된 것일까요? 아니면 ‘저 녀석들이 내가 만든 놈들 맞아?’ 하는 어이없음 때문일까요? 하느님은 아드님을 어리석은 인간의 품으로 내려보냅니다. 그렇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땅에 오신 겁니다. 저는 그 명명백백한 사실을 알면서도 엉뚱한 투정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어리석은 인간들은 하느님과 소통하는 방법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 독수리 등을 우상으로 모시다가 하느님께 큰 벌을 받습니다. 이런 멍청한 짓을 보다 못한 하느님이 아드님을 통해 하느님의 뜻과 하나가 되는 기도의 방법도 알려주십니다. 하느님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몸소 친절히 가르쳐주신 겁니다. 굳이 그렇게 고난을 받지 않으셔도 되었는데 인간이 겪을 극심한 고통을 다 감내하시고 하늘로 오르신 우리 주님, 그 고통을 통해 어리석은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하신 우리 주님,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인간의 죄를 씻어줄 속죄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인간과 조금 더 가까워져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겁니다, 성경의 진주라고 하는 로마서 5장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구절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환난이 자랑이라고? 무엇 때문에 자랑이라고 할까? 환난은 어떤 환난을 이야기할까? 아, 예수님의 그 희생을 말하는구나. 그렇죠. 어리석은 인간은 가장 쉬운 진리의 말도 이렇게 늦게 깨닫습니다. “내가 너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늘에서 땅에 내려와 몸소 환난을 겪었으니 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자랑이겠느냐?” 이런 꾸지람이 제 머리에서 가슴까지 초고속으로 내려옵니다. 혼내시지만 애정이 듬뿍 담겨 있다는 걸 잘 압니다. 그래서 머리를 긁적이며, 가슴을 세 번 치며 그 말씀을 제 영혼의 에너지로 흡수합니다.인간의 삶은 눈뜨는 그 순간부터 죄의 유혹 앞에 그대로 노출되고, 하루에 수십 번 죄를 짓고 삽니다. 주님이 우리 죄를 대신 씻어주신 그 엄청난 일을 하셨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죄를 적립식 통장에 복리로 쌓고 있습니다. 물론 주일에 성당에 가서 잠시 고해를 통해 그 죄를 탕감받지만, 그 순간일 뿐, 늘 죄를 반복해서 짓는 자신을 보면 양심이 찔려 가슴이 아파옵니다. 나 자신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남 뒷담화는 얼마나 많이 하는지. 이런 나약한 인간의 모습 때문에 하루에도 몇십 번씩 하느님을 찾게 되나 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말씀을 통해 만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이미 땅에 내려와 있습니다. 하늘만 멍하니 올려다보고 언제 내려오세요 투정부릴 게 아니라 성경 말씀 속에서 하느님을 자주 만나뵈었으면 좋겠습니다. cpbc2022.12.28
![[광주대교구 사목교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cpbc.co.kr/CMS/newspaper/2022/12/rc/837284_1.1_titleImage_1.jpg)
[광주대교구 사목교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 I. 소통하는 교회 1. 본당별 ‘하느님 백성의 대화’ 각 본당에 맞는 방식으로 전 신자들이 본당 사목과 운영에 함께 참여하는 기회를 만들어가고, 신자들의 의견이 효과적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나갑시다. 2. 본당 사목협의회의 정체성 강화 본당 사목회의 역할과 사목 협조자로서의 자세를 고취하고 분과별 책임감을 더욱 강화해 나가도록 노력합시다. 3. 본당 사목의 연속성 유지 본당 형편에 맞게 사제와 사목협의회가 사목 계획을 함께 세우고 본당 운영을 위해 고민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갖도록 노력합시다. II. 젊은이에 대한 관심 1. 대화와 체험을 통한 신앙의 전수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그들이 바라는 신앙교육과 체험들을 제공해주도록 노력합시다. 2. 청소년들의 공간과 꿈을 만들어 주기 청소년들이 원하며 현실적으로 필요한 내용과 방식으로 교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꿈과 희망을 되살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3. 청소년 사목을 위한 제도적 개선 청소년 사목에 대한 교구와 지구, 그리고 본당의 원활한 지원과 협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III.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과 실천 1. ‘기후 정의’에 관한 지속적 캠페인 기후 정의와 탄소 중립을 실천할 수 있는 생명 평화 미사, 생명 평화 순례, 탈원전 활동 등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속해서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2. 생태환경 교육 자료의 보급과 실천 교구 차원으로 생태환경위원회, 생태환경농업연구소, 바오로 가게 등을 통해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본당 차원에서도 생태환경에 관련된 교육 자료를 보급하여 모든 신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합시다. 3. 생태환경학교 개설을 통한 활동가 양성 교구에서는 생태환경위원회를 통해 생태환경의 문제를 지속해서 전달할 수 있는 실천 활동가를 양성하도록 생태환경학교를 개설하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될 것입니다. 본당에서도 생태환경위원회를 활성화합시다. IV. 복음화를 위한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교회 1. 하느님 말씀을 읽고 배우고 묵상하기 각 공동체에서 사목자들이 직접, 혹은 교구의 성경 봉사자들을 통해서 성경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도록 도와주며, 성경 말씀이 우리 신앙의 근간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2. 미사와 성사생활에 자주 참여하기 미사와 고해성사에 자주 참여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에 동참하고 우리의 삶을 더욱 거룩하게 만들어갑시다. 3. 세상을 향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공동체 사회적 약자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과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먹거리와 생필품을 나누는 실천이 필요할 것입니다. 본당 예산의 일정 비율을 사회복지 기금으로 확보하여, 가난한 이들과 나누고, 큰 안목에서는 선교지 교회 및 가난한 나라와 연대하는 실질적인 나눔을 통해 온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cpbc2022.12.14

두려움을 없애는 묘약[월간 꿈 CUM] 동행 _ 예수의 일생 (3)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하느님께서 가끔 우리에게 손을 내미실 때가 있습니다. 구원 계획을 당신과 함께 이뤄 나가자고 손을 내미실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많은 경우,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뜻은 우리 인생 계획에 없던 것입니다. 내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일, 경험하지 않았던 일,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하느님이 다가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느님 저는 그런 걸 생각해 본 일이 없어요.” “내 인생 플랜에는 그런 것이 없다니까요!” 물론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네”라고 대답하거나,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그 순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어그러집니다. 성모님은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처녀가 잉태할 것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 앞에서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응답 하나 때문에 인류가 구원의 열매를 맛볼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매 순간 하느님은 우리에게 구원 계획에 함께하자고 초대하십니다. 지금 당신은 “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니오”라고 대답하고 계십니까? “과연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두려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 나를 감싸주실 것이기 때문에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진다면 어떤 어려운 일도 해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가족의 저녁식사 밥상을 직접 차리지 않습니다. 자동차 운전도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손을 통해 밥상을 차리시고, 자동차 운전을 하십니다. 우리의 손을 통해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십니다. 우리들의 협력을 요청하십니다. 구원 역사는 그렇게 이뤄집니다. 본당에서 봉사 요청을 받아보신 경험들이 있으실 것 입니다. 그럴 때 “제가 능력이 없어서…” “제가 요즘 바빠서…”라고 대답하지 마시고, 일단 한번 하느님께 맡겨 보십시오. 받아들여 보십시오. 그러면 나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구원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여러분을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고자 하십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예비신학생 모임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그 모임이 예비신학생 모임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지도 신부님이 갈 때마다 짜장면을 사주시길래 그걸 얻어먹기 위해서 갔었습니다. 그런데 고3이 되자 신부님이 갑자기 신학교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어 보시더라구요. 당황한 저는 처음에는 신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의 인생 계획에는 사제가 되는 것은 없었거든요. 저는 당시 나름대로 인생 계획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몸이 허약해서 죽을 고비를 세 번 넘겼는데, 늘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이후 부모님이 소아과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고, 나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나를 성직의 길로 초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평생 혼자 살아야 하고, 재산도 가지지 못하고, 말주변이 없는 내가 강론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모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때 신부님은 제게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묵주기도를 하고, 성경도 읽었습니다. 그때 어떤 성령의 힘이 저와 함께했습니다. “앞으로 내가 신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이것은 인간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이것이 성령의 은총으로 얻은 열매였습니다. 두려움이 없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후 하느님은 나를 통해 수많은 열매를 맺어 주셨습니다. 구원의 열매는 믿음이라는 거름을 먹고 자랍니다. 믿으십시오.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생깁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참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그 행복은 참으로 큽니다. 형언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 성모님을 통해 이루신 큰 섭리에 대해 묵상해 보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탄생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묵상해 보겠습니다. 글 _ 안성철 신부 (마조리노, 성 바오로 수도회) cpbc2023.10.06

복음화를 통한 자비와 용서, 일치의 삶 권고[한국교회, 시노드는 지금] 신약성경에서 배우는 시노달리타스 신약 성경의 서간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로 ‘사랑의 실천’을 가르친다. 사진은 서울대교구 입학 예정 신학생과 일반 봉사자들이 명동밥집에서 배식 봉사를 하고 있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종말에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 비로소 천상 영광 안에서 완성된다. 그날까지 교회는 세상의 유혹을 견디고 하느님의 위로를 받으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순례자이다. 이 세상에서 교회는 자신이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귀양살이 중이라는 것을 알고, 하늘 나라의 완전한 도래와 자기 임금님과 영광스럽게 결합되기를 바라고 갈망한다. 영광스러운 교회의 완성과 그 완성을 통한 세상의 완성은 큰 시련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69항 참조)교회는 이런 이유로 늘 쇄신해야 한다. 완성을 향한 지상의 순례 길을 걷고 있는 교회는 교회의 삶의 방식과 운영 방식인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를 통해 복음 선포의 사명과 삶을 쇄신해 왔다. 교회의 삶의 방식이며 운영 방식인 시노달리타스를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게 바로 ‘신약 성경’이다. 따라서 신약 성경은 보편 교회가 지금 모색하고 있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의 나아갈 방향을 안내하는 길잡이일 뿐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이끌어낼 교회 쇄신의 양상을 포괄하며 함축하고 있다. 한 마디로 신약 성경을 알면 시노달리타스 여정의 종착지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준비 기간을 거쳐 한국 교회 안에서 지역 교회별로 본격 궤도에 오를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앞두고 ‘신약 성경에서 배우는 시노달리타스를 간략히 정리했다. 신약 성경신약 성경은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14개 바오로 서간, 7개 가톨릭 서간, 요한 묵시록 등 총 27권으로 구성돼 있다. 신약 성경이 쓰인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20,31) 따라서 신약 성경 전체 내용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이를 좀더 세분해 보면 복음서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도행전은 교회의 선교 활동을 이끄시는 성령을, 서간은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요한 묵시록은 종말에 드러날 계시를 알려주고 있다. 곧 신약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부제는 복음과 선교, 그리고 교회의 삶으로 정리할 수 있다. 주님은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자라신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펼쳐놓고 당신 신원과 사명에 관해 선포하신 첫 번째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되신 분이심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신 것이다.예수님께서는 참행복 선언(마태 5, 3-10; 루카 6,20-23)을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가난한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을 대한 복음을 선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시면서 물질적 가난뿐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의 가난, 곧 영적 가난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을 첫 자리에 두시고, 하느님 나라가 우선으로 이들을 향해 있음을 드러내 보여 주신다.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원수들까지도 사랑하며, 가장 먼 사람들을 이웃으로 삼고, 어린이들과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당신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당부하신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고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는 구유에서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곧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난하게 사셨다. 배고픔과 목마름과 궁핍을 겪으셨으며, 더 나아가 여러 가난한 사람들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시고, 그들에 대한 실천적 사랑을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삼으셨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복음 선포의 첫 자리에 가난한 이들을 두셨기 때문에 교회는 늘 가난한 이들을 우선으로 선택해 왔다. 교회 창립 초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이들을 우선으로 선택하신 예수님을 따라 성찬을 위한 빵과 포도주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선물도 준비해서 모였다. 지금까지 이 아름다운 전통이 계속되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헌금’이다.복음서는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가난’에 주목할 것을 제시한다. 복음서는 인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당신의 가난으로 우리를 부유하게 하신 주님의 너그러우심을 본받아 연대의식을 길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복음과 선교사도행전은 주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복음을 맨 먼저 예루살렘에 사는 유다인들에게 선포한 다음 유다 지방, 사마리아,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전하였음을 보여준다. 곧 그리스도교가 맨 처음 유다인만의 교회였으나 성령 강림과 인도로 유다인과 이방인이 통합된 교회로 전환된 다음 이방인 세계로 향한 본격적인 선교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방인의 사도’로 불리는 바오로 사도 역시 전교 여행 내내 도시에 들어갈 때마다 언제나 먼저 유다인 회당을 찾아가서 유다인에게 복음을 선포한 후 이방인들을 선교했다. 사도행전은 이 복음 선교 여정에서 교회의 첫 번째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가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 과정을 상세히 증언한다.(사도 15장, 갈라 15장 참조)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주요 내용은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다교 할례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기에 굳이 유다교의 관습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우상과 관련된 것을 멀리하도록 신자들에게 권고했다. 이는 교회가 다양한 구성원이 함께 모여 성령의 목소리를 식별하는 것을 통해 교회의 삶의 양식과 운영방식을 밝힌 첫 사례이다. 사도행전은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복음화의 여정을 주목할 것을 제시한다. 교회 창립 시기 복음이 가장 먼저 예루살렘의 유다인에게 전해졌듯이 그리스도인들이 회개를 통해 새롭게 복음화될 것을 요청한다. 새로운 복음화는 첫째, 신앙인들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에 더욱더 온전하게 응답하도록 돕는 것이다. 둘째, 세례를 받았지만, 세례의 요구대로 살지 않는 이들에게 신앙의 기쁨을 되찾는 회개, 복음대로 살려는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 또는 여전히 그분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복음의 기쁨」 14항 참조)사도행전은 시노달리타스 여정에 있는 교회에 먼저 구성원부터 복음화할 것을 권고한다. 아울러 교회의 할례로 상징되는 교조주의적 태도나 지나친 호교론적 관점에서 벗어나 모든 이에게 교회의 문을 활짝 열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신약 성경의 서간들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로 ‘사랑의 실천’을 가르친다. 사랑은 주님께서 주신 가장 큰 계명이다. 서간들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천되는 ‘사랑’ 곧 윤리 덕목으로서의 사랑을 이야기한다. 서간들 특히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교회 안에서의 삶, 신앙인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새로운 삶이고,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에페 4,23-24; 콜로 3,10 참조))라는 것이다. 잃었던 ‘하느님의 모습’을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고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서간들은 새로운 창조 안에서의 삶, 곧 신앙인의 삶으로 ‘자비와 용서 그리고 일치’를 제시한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내적으로 일치하고(1코린 12장 참조), 외적으로는 예수님을 통해 체험한 자비와 용서를 살아가는 것이다. 신약 성경의 서간들은 시노달리타스 여정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사랑’으로 표현되는 ‘자비와 용서의 삶’ 그리고 ‘일치의 삶’을 요청한다. 자비와 용서 그리고 일치의 삶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세례를 통해 받은 하느님의 은사이다. 신약 성경의 서간들은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는”(2티모 1,6) 것을 통해 교회가 시노달리타스를 살아갈 수 있음을 이야기해준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2.16

참사람이며 참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신 어머니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 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믿나 1월 1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며 세계 평화의 날이다. 구원의 신비 안에서 수행하신 마리아의 역할을 기념하고,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를 맞아들이게 해주신 거룩한 어머니께 드리는 특별한 존엄성을 찬미하는 날이다. 심순화 작, ‘성모자’. 1월 1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며 세계 평화의 날이다. 생명이신 하느님을 우리에게 오게 하신 마리아를 공경하고, 성모님을 통해 이 땅에 평화가 실현되길 전구하는 축일이다. 신약 성경은 마리아께서 성령으로 잉태한 분, 곧 마리아의 참아드님이 되신 분은 다름 아닌 성부의 영원한 아드님이시며,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의 하느님 중 제2위격이시다라고 선포한다. 이에 그리스도인들은 초대 교회 때부터 “예수님의 어머니”(마르 3,31; 루카 2,48; 요한 2,1)로 마리아를 특별히 공경했다. 가톨릭교회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분이 주님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에 공경하는 것은 아니다. 마리아께서 누구보다도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셨고(루카 1,38 참조),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셨기 때문이다.성경은 성모 마리아를 ‘은총이 가득한 이’(루카 1,28)로 증언하고 있다. 구약 성경은 하와의 후손이며 다윗의 자손으로 하느님께 성실한 소박하고 순진한 동정녀가 ‘임마누엘’이라 불리게 될 메시아를 낳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시온의 딸로 메시아의 어머니로 초대된 분이 바로 성모 마리아이시다. 신약 성경은 성모 마리아를 믿음으로 복되신 분이며, 주님과 함께 계시는 주님의 어머니시며, 세세 대대로 찬양받으실 분으로 증언하고 있다.성모님은 동정녀의 몸으로 성령으로 인해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하느님의 불림을 받고서 순종으로 응답했으며, 평생 하느님의 뜻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인류와 교회의 표상이 됐다. 또 성모님은 곤란한 처지에 놓인 이웃을 위해 아들에게 도움을 청해 주님의 첫 신원을 드러내는 기적을 행하게 하신 분이시다. 아울러 성모님은 사람들을 당신 외아들에게로 인도하며 십자가에 못 박힌 아들의 죽음을 지키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당신을 중심으로 주님의 제자들을 모아 함께 기도하시면서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역사를 선포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엘리사벳의 입을 빌려 성모님께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십니다”(루카 1,42)라고 고백하고 있다.이에 교회는 431년 제3차 세계 공의회인 에페소 공의회에서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Θεοτοκοs-테오토코스)이시다”라고 선포했다.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을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성을 잃지 않으시고 인성을 취하셨다. 또 ‘말씀’이신 성자 하느님의 유일한 위격 안에 두 본성이 온전히 결합돼 일치하고 있다. 공의회는 “‘말씀’이 마리아에게서 당신의 신성을 이끌어 내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적 영혼을 부여받은 거룩한 육체를 마리아에게서 얻으셨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하느님의 말씀이 그 위격에서 육체와 결합하였기에 사람의 몸으로 나셨다고 일컬어진다”고 선언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466항) 그러면서 공의회는 “그리스도는 단일한 위격 안에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고 선포했다. 이에 교회는 마리아께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영원한 아들, 바로 하느님이신 그 아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라고 고백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495ㆍ509항 참조) 따라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는 주님께 대한 교회의 신앙 고백을 완전하게 드러내는 거룩한 칭호이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부여된 최초의 교의적 칭호인 ‘하느님의 어머니’(천주의 성모, 천주의 모친)는 성모 신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또 마리아께 대한 신학과 고유한 전례 축일들이 생겨나는 촉매가 됐다. 451년 칼체돈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위격적 일치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과 함께 참사람이요, 참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천주의 모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고 선포해 ‘천주의 성모’ 칭호에 대한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교회가 새해 첫날에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는 것은 동방 교회 관습을 따라 전례력 안에 정착했다. 마리아 공경은 하느님의 강생 신비에 뿌리를 두고 있다. 6세기부터 이 축일은 주님 성탄과 연계해 12월 26일을 ‘하느님의 어머니 축일’로 지냈다. 로마 교회에서도 이 축일 도입해 성탄 8일 축제가 끝나는 날인 1월 1일에 ‘성모 마리아 성탄’ 축일을 지내기 시작했다. 이후 이 축일은 2월 2일, 3월 25일 등으로 옮겨 지내다 1931년 에페소 공의회 1500주년을 맞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10월 11일로 지냈다. 그러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으로 다시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복원됐다.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구원의 문을 여는 성모님께 새해 첫날을 봉헌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날은 주님 성탄의 팔일 축제로서 구원의 신비 안에서 수행하신 마리아의 역할을 기념하고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를 맞아들이게 해주신 거룩한 어머니께 드리는 특별한 존엄성을 찬미하는 날이다. 또한, 새해 축복과 평화 기원, 주님의 할례 등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 지내오던 축일 내용을 그 이면에 포함하고 있다.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67년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제정했다. 이날은 갓 태어나신 평화의 왕을 경배하고, 천사가 전해준 기쁜 소식(루카 2,14 참조)을 다시 한 번 들으며, 평화의 모후를 통하여 하느님께 평화의 고귀한 선물을 청하는 좋은 기회가 된다고 제정 의미를 밝혔다.(「마리아 공경」 5항 참조)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12.28

그리스도의 위대한 순간들과 이를 기록한 저자들스페인 교회 대표하는 곤잘레스 신부, 그리스도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신학적 성찰 정리 그리스도론 / 올레가리오 곤잘레스 신부 지음 / 윤주현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개인적인 생애와 관련된 사실들을 전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분이 선포하는 보편적 진리에 대한 해명을 통해 ‘예수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는 신앙 고백에 대해 설명하고 그 고백의 근거를 밝히는 신학의 한 분야다.”(‘도입: 그리스도론’ 중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주요 주제를 집약적으로 소개한 「그리스도론」이 출간됐다. 책은 교부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위대한 순간들과 이를 기록한 최고의 저자들을 소개한다. 저자인 올레가리오 곤잘레스 신부(1934~)는 스페인 교회를 대표하는 교의 신학자이다. 살라망카대학교 교의 신학 교수, 국제 신학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출간한 저서만 약 100권에 달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제정한 ‘라칭거상’(2011년)을 비롯해 ‘에스파사상’(1984), ‘아빌라 문학상’(2002) 등 교회와 스페인 정부의 권위 있는 여러 학술상을 수상했다. 책은 스페인 신학계를 대표하는 「BAC 시리즈」를 통해 2001년에 첫선을 보였고, 2012년 개정판을 통해 그리스도론 분야의 최신 연구들도 담았다. 세계 각지의 신학대학에서 교재로 사용 중이며, 그에 맞게 신학적 공동체에서 승인된 인식들을 문헌을 통해 입증하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은 예수님의 역사와 인격, 사명을 담기 위해 제1부에서는 성경의 그리스도론을 제시하고, 제2부에서는 교도권과 각 시대의 신학에서 성찰된 역사적 그리스도, 제3부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명에 대한 체계적인 신학적 성찰을 소개한다. 이 과정에서 이레네우스,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 안셀무스, 토마스, 십자가의 요한, 예수의 데레사, 로욜라의 이냐시오 등 각기 다른 문화와 지리, 역사적 체험을 지닌 사람들의 삶과 사상, 그리고 행위를 살펴본다. 책을 번역한 윤주현(가르멜 수도회) 신부는 “본서는 인류 구원의 요체이신 그리스도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바탕으로 숙고된 광범위한 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며 “분량 면에서도 독자들은 충분히 각 주제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와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들을 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