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정원지기 하느님 (홍태희 스테파노, 서강대 신학대학원 대우교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5/30/62l1685431382920.jpg)
[신앙단상] 정원지기 하느님 (홍태희 스테파노, 서강대 신학대학원 대우교수)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텃밭을 가꿔온 지도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감자, 옥수수, 고추 등을 심어 놓고 잡초와 씨름하다가 장마철이 올 때쯤 자포자기 상태로 버려두던 어설픈 주말 경작도 몇 해를 거듭하였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야생마를 길들인 듯 제법 밭과 어울려 살게 되었습니다. 텃밭의 작물을 자라게 하고 화단의 나무에 꽃을 피우는 것이 창조하시고 살리시는 하느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은 몸으로 흙을 만지던 수고에 응답해주신 은총이라 생각합니다. 도시와 공장의 삶에 묻혀 살던 사람에게 마당과 텃밭이 있는 삶이 로망이 되기도 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 안에 있는 하느님의 그 마음으로 인해 흙과 자연의 생명력을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과의 대면이 부담스럽던 시기에 숲과 물이 좋은 곳을 찾다 보니 주변에 잘 가꾼 정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산 깊은 곳에서 숲과 물과 함께 있는 불교 사찰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자연이었고, 순천만 정원처럼 국가가 관리하는 장대한 수목원도 여러 곳에 있으며, 뜻을 갖고 숲과 정원을 가꾸신 분들이 그것을 일반에 공개한 곳도 여럿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아름다운 정원을 가꾼 많은 분이 음식점이나 찻집으로 개방하고 있었습니다. 잘 가꾼 정원을 볼 때마다 그것을 보살피는 사람들의 수고가 생각나는 것은 하느님의 마음과 그 마음을 따르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이룬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절두산, 갈매못, 연풍 등 성인들이 박해 속에서 목숨까지 바치셨던 성지도 잔인하고 긴박했던 장소가 말끔한 정원이 되어 순례객을 맞습니다. 성인들의 살과 피, 그리고 정신이 서려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순교의 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금 생각해 봅니다. 척박하고 처절했던 고난의 장소가 수목이 우거지고 잘 가꾼 정원이 되어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후손을 맞고 있는 것 자체가 진리를 선택했던 순교자들의 승리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창세기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정원을 꾸미십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창세 2,8) 성경은 이어서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2,9)라고 전합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정원지기 하느님이 묵상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주님은 피조물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가꾸고 돌보십니다. 고대 시절 세상을 통치하든 왕들도 정원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나 봅니다. 바빌로니아의 왕은 온통 황량한 벌판뿐인 곳에 수직으로 켜켜이 놓인 공중정원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마당에 성모상과 함께 잘 가꾼 정원이 있는 성당은 항상 오고 싶은 곳이 됩니다. 나무와 꽃이 자랄 땅이 없으면 공중정원이라도 연구해 봄 직합니다. 사무실 창틀에 있는 호야에 물을 주며 가끔 혼잣말을 던집니다. 사실 혼자가 아니죠. 인간의 언어는 아니지만, 호야가 나를 느끼고 응답도 합니다. 문득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마리아 막달레나에 관한 요한복음이 생각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정원지기’(요한 20,15)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역시 에덴동산을 꾸미신 주님은 부활 후에도 동산을 꾸미시는 정원지기이십니다. 홍태희 (스테파노)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대우교수 2023.06.07

베드로 대성당 (2)[월간 꿈 CUM] 로마의 휴일 _ 로마의 성당들 (3) 베드로 대성당 왼쪽에 설치된 베드로 사도 석상 촌각을 다투는 상황. 베드로는 빨리 로마를 벗어나야 했다. 수개월 전에만 해도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 바오로가 솥을 구해 쌀을 씻어 맛있게 밥을 지었고, 이어 베드로가 맛있는 반찬을 곁들여 화려한 밥상을 차렸다. 로마의 많은 이들이 밥상 앞으로 모여들었고, 그렇게 그리스도교는 날로 세를 늘려나갔다. 하지만 호사(好事)는 거기까지였다. 다마(多魔)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전파를 못마땅하게 여긴 로마 집정관이 베드로를 벼르고 있었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베드로는 로마를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베드로가 서둘러 로마 성문 밖을 빠져나왔을 때였다. 베드로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꿈인가? 생시인가? 스승 예수는 분명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 베드로의 눈앞에 예수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놀란 베드로가 예수에게 질문했다.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 ne,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성 베드로 대성당의 콘페치오.(Confessio sancti Petri) 베드로 사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콘페치오는 순교자의 유해나 성유물을 안치하기 위해 제단 아래 지하에 설치한 묘실을 말한다. 그러자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로마로 가는 길이다”라고 대답했다. 베드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로마를 탈출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주님은 베드로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는데, 자신은 지금 그 십자가를 피해 도망치고 있지 않은가. 베드로는 즉각 오던 길을 되짚어 다시 로마로 돌아갔다. 그 길은 순교의 길이었다. 로마로 돌아간 베드로는 곧 집정관에게 잡혀 십자가 사형선고를 받는다. 그리고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소천했다. 이 이야기는 180~190년경에 소아시아 또는 로마에서 편찬된 「베드로 행전」에 나와 있다. 「베드로 행전」은 성경 정경 목록에 들어가지 않는 ‘위경’(Apocrypha)인데, 위경이라는 이유로 그 내용을 전적으로 부정하기는 힘들다. 초대교회부터 널리 퍼져 있었던 믿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쿼바디스 도미네’ 이야기는 교황 레오 1세 (Papa Leone I, 440~461년 재위)의 기록과, 13세기의 「황금전설」(Legenda aurea)이라는 책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 베드로가 순교했다. 그렇다면, 그 유해는 어디에 모셔졌을까. 처음에는 로마의 한 지하 공동묘지에 모셔졌다. 이후 신자들이 매일 베드로의 무덤을 찾아 기도하였는데, 서기 90년경에 무덤 위에 작은 경당 하나가 세워졌다. 말이 경당이지 서너 명이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공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리스도교 박해가 본격화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베드로의 무덤이 파헤쳐지거나 훼손될 수 있었다. 이에 몇몇 신자들이 비밀리에 성인의 유해를 다른 공동묘지로 이장했다. 이 유해가 현재의 바티칸으로 옮겨진 것은 종교 자유의 시대를 맞으면서였다. 종교 자유를 허락한 콘스탄티누스 황제(Constantinus I, 274~337)는 바티칸으로 옮긴 베드로 무덤 위에 제법 큰 성당을 세웠다. 이 공사는 318~322년 사이에 이뤄졌는데, 완공까지 40여년이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 총 길이가 110m 정도였다고 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이 길이 69m, 폭 28m, 지붕 높이 23m, 종탑 높이 45m이니까, 당시 베드로 성당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500년 후 카롤루스 대제(Carolus, 742~814) 때 다시 성전을 건립했고, 다시 1000년 후인 1626년 교황 우르바노 8세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바티칸이었을까. 베드로 사도의 유해를 애초의 로마 공동묘지에서 바티칸(원래 명칭은 ‘바티카누스’)으로 옮긴 이유가 무엇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베드로가 순교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현재 베드로 대성당이 위치한 장소는 원래 로마의 전차경기장이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순교한 장소를 콜로세움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로버트 테일러, 데보라 카 주연의 1955년 영화 「쿼바디스」 탓이 크다. 영화에서는 콜로세움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순교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로마의 죄인 처형식은 대부분 전차 경기장에서 이뤄졌다. 바티칸, 바티카누스는 당시 사람들이 숭상하던 ‘출산의 신’ 이름이다. 즉, 바티칸이라는 이름은 ‘바티카누스 신(출산의 신)을 모신 신전이 있었던 장소’에서 유래한다. 2000년 전 로마 변두리였던 이곳에는 원래 본토 토박이들(에트루리아인)이 살던 곳이었다고 한다. 로마 3대 황제 칼리귤라가 이곳을 재개발 지구로 지정, 대대적인 공사를 벌여 ‘출산의 신’(바티카누스) 신전을 허물고 황제 개인 전차 경기장을 건립했다. 그런데 로마 5대 황제 네로는 이곳을 죄인 처형 장소로 활용한다. 베드로도 바로 이곳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했다. 베드로의 유해가 바티칸에 세워진 베드로 대성당에 모셔진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00년 전 베드로의 순교 장면을 생생히 지켜본 ‘목격자’가 있었다. 지금도 바티칸 시국의 베드로 광장에 가면 그 목격자를 만날 수 있다. 광장 중앙에 솟아있는 높이 40m의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그것이다. 이 오벨리스크는 서기 40년 칼리귤라 황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와 전차 경기장 중앙에 세운 것인데,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베드로는 숨을 거두기 직전 이 오벨리스크를 보았을 것이다. 베드로 사도와 눈을 맞췄던 오베리스크를 나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 쭈뼛거리며 다가가 만졌다. 주님께 질문을 드렸다. “쿼바디스 도미네.”(Quo vadis Domine,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로마로 가는 길이다.” “… ….” 나는 즉각 응답하지 못했다. “저도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가서 주님과 함께 십자가형을 받겠습니다. 당신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저도 걷겠습니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의 오벨리스크. 베드로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 이 오벨리스크를 보았을 것이다. 글 _ 편집부cpbc2023.09.26

교회·군인 정신 맞닿은 ‘늘 깨어 준비하라’ 새겨라공군사관학교 성무대본당공사 71기 졸업 미사 봉헌 성무대본당 성전 봉헌식과 공사 71기 졸업 미사가 거행되고 있다. 공군사관학교 성무대본당(주임 박진호 신부)의 새 성전 봉헌식과 공사 71기 졸업 미사가 2일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주례로 성무대성당에서 거행됐다. 새 성전은 2021년 9월 27일 착공해 1년 6개월여 만에 준공됐다. 건물 면적 1298㎡(392평), 총공사비는 46억 7750만 원이 소요됐다. 1층에는 사무실과 회의실 등이 2층에는 대성전이 자리 잡았다. 구 성전에 있던 스테인글라스는 어느 하나 훼손 없이 안전하게 새 성전으로 옮겨 설치했다. 1957년 설립된 성무대본당은 1984년 공군사관학교가 서울 대방동에서 충북 청주로 이전할 때 종교센터에 건물을 지었으나, 천주교 성당과 개신교 예배당이 절반씩 나눠 사용해야 했다. 그러다 이번에 성당과 예배당을 별도로 신축했다. 서 주교는 성전 봉헌 예식 후 미사에서 “이곳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의 영혼이 건강해지고, 모든 삶이 주님 뜻 안에서 복된 삶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교회 정신과 군인 정신이 맞닿은 ‘늘 깨어 준비하라’는 성경 말씀을 새기며, 늘 기도하며 새로운 삶을 준비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서 주교는 또 이번에 졸업한 공사 71기 임관생들에게 “공군은 하늘, 그리고 하느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하느님께 기도하고 그 힘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또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벗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도 격려했다. 공군사관학교 성무대본당 새 성전 서 주교는 이어 열린 축하식에서 이상학 공군사관학교장에게 성가정 축복장을, 정민건설 장계원 대표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71기 졸업생 30명(신자 20명, 비신자 10명)에게는 반지와 선물이 수여됐다. 소위로 임관하는 졸업생 장준서 생도는 답사에서 “임관 후에도 하느님의 보우(보살피고 도와줌) 안에서 마음속 이상을 잃지 않는 충실한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이날 성전 봉헌식과 졸업 미사에는 서상범 주교와 군종 사제단,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사장 조정래 신부와 청주교구 총대리 성완해 신부 등 공군 예비역 군종 사제, 예비역 신자 군 장성 모임인 이냐시오회 임관빈 회장, 박인호 전 공군참모총장 등이 참석했다. 공사 재학생도 70여 명 참석해 71기 선배들의 졸업 및 임관을 축하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2023.03.10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옷[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9)사제복 사제복은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옷으로 세속인의 복장과 구별된다. 사진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얼마 전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 사제’의 복장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옷은 몸을 가리고 체온을 유지하는 일반 기능 외에도 그 옷을 입어야 하는 이유와 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신원과 품위를 드러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성경은 옷을 원죄 이전과 이후의 인간을 구분하는 표지로 사용한다.(창세 2─3장 참조) 인간이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깨뜨리기 이전 낙원에서 살 때 어떠한 옷도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죄를 범한 후 인간은 자신의 알몸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두렁이를 만들어 입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손수 가죽옷을 만들어 인간에게 입혀 주셨다.(창세 3,21 참조) 이 가죽옷은 죄에 물든 인간이지만 만물 가운데 품위를 유지하게 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낼 뿐 아니라 잃어버린 하느님의 영광을 다시 입게 해 주실 것이라는 구원의 약속을 드러내는 이중의 표징이다. 아버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선물한 가죽옷은 성자 하느님의 강생과 수난, 부활로 ‘빛나는 흰옷’으로 탈바꿈한다.(묵시 3,5 참조) 주님의 부활로 구원받게 돼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 하느님의 영광에 다시 속하게 된 인간은 죄에서의 해방을 상징해 세례받을 때 흰옷을 입는다. 성경은 옷이 놀라운 힘을 지녔다고 한다. 구약 성경은 예언자의 카리스마가 겉옷에서 나온다고 한다. “엘리야가 겉옷을 들어 말아 가지고 물을 치니, 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마른 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2열왕 2,8) 또 엘리사는 엘리야 예언자의 겉옷을 입음으로써 그가 지녔던 옷의 힘을 그대로 물려받고 예언자의 사명과 역할을 깨닫는다.(2열왕 2,13-14 참조) 엘리야에서 요한 세례자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은 일반적으로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다. 복음서도 예수님의 옷이 신비로운 힘을 드러낸다고 한다. 주님의 놀라운 힘이 옷을 통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마르 5,27-30 참조) 또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실 때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마태 17,1-9 참조) 빛나는 흰옷은 하느님의 영광뿐 아니라 지상에서 현존하시는 주님의 영광을 반영한다. 종말에 오실 그리스도께서는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고, 가슴에는 금띠를 두르고 계신다.(묵시 1,13)성경은 또 옷을 내어주는 행위가 사랑의 표현이라고 했다.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한다는 표징으로 자신의 옷과 무기를 다윗에게 주었다.(1사무 18,3-4 참조) 성경은 아울러 옷이 참회와 슬픔의 표지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못과 죄를 회개하기 위해 자루옷을 입고 흙을 뒤집어쓴 채 단식하였다.(느헤 9,1; 요나 3,6 참조)옷에 대한 화두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 사제의 복장에서 시작한 만큼 사제복에 관해 좀더 깊이 들어가 보자. 사제복은 우선 하느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옷이다. 사제는 거룩한 옷을 입음으로써 ‘정결한 것’과 ‘불결한 것’을 구별해 하느님께 예를 거행한다.(레위 13─15장 참조) 구약 시대 이스라엘 사제복은 가슴받이, 에폿, 겉옷, 수놓은 저고리, 쓰개, 허리띠로 구성돼 있었다.(탈출 28,2-5 참조) 이 사제복은 금, 자주ㆍ자홍ㆍ다홍실, 아마실로 만들어졌다. 사제복은 아무의 손에 맡겨진 것이 아니라 ‘슬기의 영’으로 충만한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인 초대 교회 사제들은 5세기까지 신자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복장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구약의 사제복을 원하지 않으셨고, 당신 제자들이 입을 옷에 관해 정확한 규정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도들은 주님께서 강조하신 ‘단순함’과 ‘겸손함’(마르 6,8-9; 마태 10,9; 루카 9,3 참조)을 새겨 당시 일반인들의 평상복을 그대로 입었다.가톨릭교회 안에서 사제복과 세속 옷을 구별하기 시작한 것은 6세기부터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이민족들의 짧은 옷들이 유행했다. 이에 교회는 사제들에게 베네딕도회 수도승의 검은색 수도복처럼 전통 로마식 복장, 곧 온몸을 덮는 긴 투니카를 띠로 묶고 겉옷인 토가를 고수하게 함으로써 평신도들의 옷과 구별했다. 교회는 또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옷은 성직자 신분과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금하고 검소하게 입을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개최 이전까지 가톨릭교회 사제복은 수도자들과 구분해 트임이 없고 발목까지 내려가는 흰색 긴 옷 곧 ‘장백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 이후 밀라노대교구에서 전통적인 사제복의 색을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로만 칼라를 착용하게 했다.17세기 중반부터 ‘수단’이라고 부르는 사제의 평상복이 등장했다. 우르바노 8세 교황(재위 1623~1644)은 사제의 평상복으로 흰색 레이스로 된 로만 칼라가 달린 검은색 수단에 필레우스라고 하는 둥근 형태의 모자를 쓰고 소매 없는 토가를 입고 허리띠를 하게 했다.한국 교회는 사제가 모든 사목 활동을 할 때와 공식 행사, 공적 회합을 할 때 성직자 복장(수단 또는 로만 칼라)을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9.28

불안한 한반도 상황… 평화 이끌어내는 교회의 저력에 주목하다[2023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군비경쟁을 넘어 인류 상생의 길을 찾다’ 10월 26일 열린 2023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 첫 번째 컨퍼런스 ‘군비경쟁을 넘어 인류 상생의 길을 찾아’에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교회’를 주제로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되고 있다. 2023 가톨릭한반도평화포럼은 10월 26일 의정부교구 참회와속죄의성당에서 ‘군비경쟁을 넘어 인류 상생의 길을 찾다’를 주제로 첫 번째 컨퍼런스를 개최하며 본격적인 평화의 당위성에 관해 논의하고 머리를 맞댔다. 한국과 미국, 일본의 종교·정치·시민사회·학계 전문가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동북아 평화를 심도 있게 모색하는 자리였다.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인류의 존폐를 가르는 핵무기의 심각성을 다루면서 핵군축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교회의 역할을 모색했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한미일 3개국과 주한교황청 대사대리 페르난도 헤이스 몬시뇰, 미국 주교회의 국제정의평화위원장 데이비드 말로이 주교, 일본 삿포로교구장 카츠야 타이치 주교,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축사를 통해 한반도와 전 세계에 필수불가결한 평화의 가치를 거듭 전했다. 이어 제1세션 ‘핵무기의 위협과 군비경쟁’, 제2세션 ‘기후 위기와 한반도의 인권(평화)’, 라운드테이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교회’가 진행됐다.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 평화를 위한 한미일 전문가들의 토론 현장을 살펴본다. 핵무기의 위협, 안보 딜레마 지난 7월 북한은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미국은 확장억제 강화의 신호로 부산 기지에 핵잠수함을 배치했다. 북한은 다시 단거리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이를 두고 이혜정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행동, 대응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악순환이자 ‘안보딜레마’”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국제정치 현실주의에서는 핵을 둘러싼 지금의 상황을 ‘공포의 균형’으로 보고 매우 우려하고 있다”면서 “안전한 핵은 없다. 우발적 충돌로 언제든 전략핵이 터질 수 있는 상황인데, 힘의 논리만 고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핵전쟁의 위험 한가운데에 있는 한반도가 ‘안보딜레마’에 빠져있다는 데 참가자들 모두 동의했다. 특히 핵 자체의 위험성을 견지하면서 북한에만 문제를 돌릴 것이 아니라, 핵 군축을 위한 한미일 3국의 연대 강화에 중점을 두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상생의 길 2015년 이후 북한의 핵 능력은 모든 면에서 증가했다. 외교적 고립과 경제제재에도 어느 때보다 평화 협상에 저항하는 강경 일변도다. 미국 노트르담 대학교 크록국제평화연구소 조지 로페즈 명예 교수는 “중단기적으로 볼 때 북한이 이러한 입장을 전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하지만 제재 자체만으로는 압력을 가할 수 없고, 그런 일은 역사상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의 평화 및 안보와 관련된 모든 사안에 주변국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고 더욱 적극 외교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전 선언 캠페인과 비핵지대화 설치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특히 ‘핵무기금지조약’ 가입을 통한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핵무기금지조약은 2017년 UN에서 채택돼 2021년 발효됐다. 97개국이 이 조약에 서명했거나 가맹국인데, 동북아시아 지역의 가입국은 몽골이 유일하다. 가와사키 아키라 피스보트 공동대표는 “동북아 국가들이 핵무기금지조약에 관여를 해나가고, 대화에 참여함으로써 핵무기에 의존하지 않는 안보의 길을 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미국과 일본의 양국 주교들은 지난 8월 일본 나가사키 핵폭탄 투하 78주년을 맞아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 행동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산타페대교구장 존 웨스터 대주교는 “핵군축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한미일 3국의 연대 강화를 요구했다. 산타페대교구 내에는 미국 핵무기 연구시설 전체 3곳 중 2곳이 있다. 웨스터 대주교는 “산타페대교구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특별한 책임이 있다”며 “핵무기금지조약을 지지하는 동시에 보편적이고 검증할 수 있는 핵 군축 방안을 모색하는 임무를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는 11월 말 뉴욕 UN 본부에서 열리는 핵무기금지조약 당사국 회의에 참관해 UN 교황대사와 함께 바티칸시국이 최초로 서명하고 비준한 핵무기금지조약을 지지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핵무기 보유국이 궁극적으로 금지조약을 준수하도록 더 강력히 촉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카츠야 타이치 주교도 “전쟁의 현장에서 ‘올바른 전쟁’ 따위는 없다”며 “일본은 물론, 핵보유국이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하고 비준하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남북의 기후 위기 대응 협력도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을 위한 주요한 방법으로 제시됐다. 추장민 한국환경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30여 년간 북한에서는 자연재해로 2390명 사망, 5000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었고, 매년 2억 6250만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청된다”며 북한의 심각한 기후 위기 상황과 열악한 환경을 전했다. 추 위원은 “북한 기후 위기를 대북정책의 전환적 접근으로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는 독립변수이자 핵심요소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 분야를 협상 테이블로 올리면 북한도 충분히 호응할 수 있고, 남북관계 정상화와 평화실현의 전략적 옵션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평화의 길 핵이라는 실존적 위협 앞에서 안보와 경제제재 딜레마에 갇힌 한반도. 참가자들은 △생명과 생태 △인권과 정의 △평화와 안보의 세 꼭짓점을 잇는 방안을 고민하면서 교회의 역할에 주목했다. 피스 카탈리스트 인터내셔널 디렉터 제니퍼 조이 텔퍼씨는 “미국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며 북한을 악의 축으로 여겼지만,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성경을 접하면서 미국의 오만함으로 생긴 문제를 함께 보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어 “교회에는 고백과 참회, 화해라는 전통이 있다”며 “분단으로 고통받고 희생된 이들을 위한 교회 역할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히로시마교구장 시라하마 미츠루 주교는 “세상의 논리로 핵 억지론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이는 무력의 악순환을 일으키는 인간의 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리스도는 진정한 평화의 길로서 무력의 연쇄를 끊기 위한 비폭력의 길을 가르쳐줬다”며 “그분이 함께 있다는 신뢰를 가지고 사랑과 인내로 평화 문화를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 제라드 파워즈 가톨릭 피스빌딩 네트워크 코디네이터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극적인 타협을 통해 핵위기가 사라진 경우를 예로 들며, “최악의 시기에도 기회는 있다”고 희망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반도와 같은 불안한 상황에서도 평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며 “전 세계 평화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참가자들은 교회의 존재 목적이 고백과 참회를 통한 신뢰와 화해, 평화로 나아가는 데 있다고 입을 모았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장 김주영 주교는 “교회가 현재 걷고 있는 시노드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경청”이라며 “이는 잘 듣는 차원을 넘어 공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진정으로 공감할 때, 엮인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라며 “포럼에서 나눈 것처럼 예수님 가르침에 따라 각자의 자리에서 회개하고 희망한다면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는 평화가 실현되리라 굳게 믿는다”고 전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박민규2023.11.01
![[신앙단상] 나의 구원이자 가장 큰 원망이었던 예수님(박은선 베네딕타, 크리에이터)](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5/22/AK91684738201227.jpg)
[신앙단상] 나의 구원이자 가장 큰 원망이었던 예수님(박은선 베네딕타, 크리에이터) 다시금 하느님을 따르리라 결심한 후에도 마음은 수백, 수천 번 구세주를 갈망하고 또 원망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특히나 일평생 주님을 섬기는 일을 열심히 하였던 아버지가 불치병으로 알려진 루게릭병(근위축성측삭경화증) 판정을 받던 날은 마음에 피가 맺힌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생생하게 알게 된 날이었습니다. “이것도 다 주님의 뜻이겠지.”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늘 이렇게 말씀하셨지만, 저에게는 그저 그 모든 말이 잔인한 사형선고로 들렸습니다. 왜 하필 이런 비극이 우리에게 찾아온 것일까? 그저 남들처럼, 남들만큼,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 가족들에게 왜 하필 신은 이토록 감내하기 버거운 짐을 지워주신 걸까? 도무지 나약한 인간의 뜻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불행 앞에서 믿음은 또 한 번 냉소적으로 변모했고, 기어코 그 끝에 간절한 기도마저 내려놓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됐습니다. 아무리 성모님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치고, 목숨의 절반이라도 내놓겠다는 심정으로 성체 앞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울부짖어도 현실은 도통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적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한 순간 신실함은 벼랑 끝으로 곤두박질치고 그 자리에 미움이 피어올랐습니다. 그 날카로운 마음을 능숙하게 숨기기에는 당시 20대였던 저는 너무나도 젊고 미숙했기에, 신을 향한 이 날것의 원망을 존경하는 신부님에게 그대로 고백했습니다. 얄팍한 믿음에 대한 꾸지람이 날아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신부님은 생각지도 못한 묵직한 한마디를 던지셨습니다. “가장 신이 저주스러운 순간이 우리가 가장 예수님의 십자가에 가까워지는 순간이랍니다.” 우리를 구원하고자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 예수님께서는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이는 성경 속 마르코 복음서에도 나와 있듯이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고 번역됩니다. 어렴풋이 본다면 인간의 육신으로 가장 고통받는 시점에서 우리의 구세주조차 신을 원망했다고 해석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극한의 괴로움 속에서도 끝까지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애쓰셨다는 이야기로도 풀이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생의 끝자락 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으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하느님을 놓지 않으셨고 그렇기에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었다는 말이겠죠. 돌이켜보면 신부님의 그 한마디는, 환난 가운데에서도 오롯이 버텨낼 수 있도록 하느님이 쥐여주신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저만의 십자가가 아니었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 어떤 세상의 위로로도 달래지지 않던 마음이, 믿음을 나누는 이의 언어로 이토록 격려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분명 기적은 우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의 현실은 계속되는 투병과 고난, 매일의 피로함으로 꽉 차 있습니다. 원망 역시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이 벼랑 끝에 설 때 스스로 되뇝니다. ‘이 고난 안에서 내가 절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은 뭘까? 반대로, 감사하고 기도하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뭘까?’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고통에 감히 비할 수는 없겠으나 생의 고통에는 분명히 하느님이 준비해두신 깨달음과 더 큰 지혜가 있으리라고, 이제는 믿으니까요. 박은선 베네딕타 / 크리에이터 cpbc2023.05.17

두 팔 없어도 정성껏 성경 필사 “하루라도 빠지면 찜찜합니다” 성서 주간에 만난 사람 - 7년째 붓글씨로 성경 필사하는 의수 화가 석창우씨 성경을 필사하다가 잠시 고개를 든 석창우 화백은 “어떤 특정한 말씀이 마음에 들어온다기보다는 모든 말씀이 베스트”라며 “죽을 때까지,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쓰겠다”고 다짐한다. “손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날마다 성경을 필사할 생각입니다.” 의수(義手) 로 그림 그리는 석창우(베드로, 65) 화백. 그의 본업은 그림이지만, 요즘은 성경에도 푹 빠져 있다. 2015년 1월부터 3년 6개월에 걸쳐 개신교 성경을, 2018년 7월부터 3년 1개월간 가톨릭 성경 필사를 끝냈지만, 요즘도 그는 날마다 3시간씩 성경 필사에 매달린다. 최근에도 39일에 걸쳐 요한복음을 필사했고, 이에 앞서 마르코복음과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도 붓으로 옮겨 썼다. 제37회 성서 주간(21∼27일)을 앞두고 그에게 성경 말씀에 맛 들이며 살아가는 얘기를 들었다. “하루라도 성경을 필사하지 않으면, 마음이 찜찜해 잠을 못 이룹니다. 처음엔 하루 10시간씩 죽기 살기로 쓰다가 몸살이 나서, 한 달을 앓았어요. 그래서 이게 아니구나, 싶어 하루 5∼6시간으로 줄였고, 요즘은 하루에 3시간만 씁니다. 여행을 다녀오거나 행사 참석으로 귀가가 늦으면 새벽 두세 시까지 말씀을 써야 잠을 잘 수 있습니다.” 그의 성경 필사는 손으로, 눈으로 두 번 필사하는 게 특징이다. 붓으로 화선지에 말씀을 옮길 땐 한 획 한 획씩 쓰는 데 집중하고, 그다음엔 필사한 내용을 다시 읽고 묵상하며 마음 밭에 새긴다. 그런 과정을 7년째 반복하니, 말씀이 저절로 마음에 들어와 생동한다. 그 말씀을 그림에 옮겨 형상화한다. “코로나19 감염이 확산하면서 행사나 강의가 중단돼 필사에 더 매달리게 됐는데, 열왕기를 쓰다가 십자가를 통한 치유를 체험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말씀과 함께 하느님께로의 회복을 주제로 한 십자가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성구를 쓰고 주변에 그림을 그리는 작업도 합니다. 필사가 제 그림 작업에 영감을 주는 원천이 된 셈이지요. 저만의 서체 폰트를 개발한 것도 성경 필사 덕입니다. ‘석창우체’인데요. 한글과 영문, 두 폰트로 개발해 오는 12월 말 폰트 클라우드 서비스업체인 산돌구름을 통해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 정도면 거의 성경에 맛 들이다 못해 말씀에 중독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서 성경 필사를 하게 된 동기를 물었더니 그는 “감전사고로 제가 두 팔과 두 발가락을 잃은 게 1984년 10월 29일인데, 2015년에 환갑을 맞으면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두 손이 있던 30년과 두 손 없이 살아온 30년 중 두 팔 없이 산 30년이 훨씬 행복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그래서 남은 세월 동안 그런 행복을 제게 주신 하느님께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성경을 쓰게 됐다”고 답변한다. 성경 필사는 이제 그에게 일상이고, 생활이다. “두 번 쓰고 나니, 한때는 성경을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교만이더라고요. 평생 써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다친 것도 다 하느님의 프로그램에 들어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처음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 화실에 갔는데, 안 받아줘서 서실 가서 글씨를 먼저 배우고 나중에 그림을 배우게 된 것도 다 필력을 키우고 그림을 배우라는 하느님의 계획안에 있었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그렇게 서화가 여태명 교수님, 서예가이자 화가 김영자 선생님께 글씨와 그림을 배우고 이제는 필사를 통해 성경에 맞갖는 삶을 살려다 보니 제 내면도 바뀌었지만, 제 그림도 바뀌었습니다. 다 하느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쓰시고, 하느님께서 그리셨지요. 하느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1.11.16

아들 잃은 어미 박완서, 주님을 원망했지만 주님께 위로받아[백형찬의 가톨릭 예술가 이야기] (23)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 (상) 박완서는 벽촌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다. 6.25 전쟁 후 가장 역할을 도맡아 하며 스스로를 불행하다 여겼다. 하지만 화가 박수근을 만나며 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박완서 가족의 식사 모습. 사진 오른쪽이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 원태씨다. 아들 잃은 어미의 통곡 소설가 박완서(정혜 엘리사벳, 朴婉緖, 1931-2011)는 남편을 병으로 잃고 몇 개월 후에 또 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었다. 박완서는 울부짖으며 통곡했다.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참혹한 슬픔을 ‘참척(慘慽)’이라 한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이다. 참척을 당한 박완서는 하느님을 원망했다.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이렇게 아들을 목놓아 부르며 하느님도 너무하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아이를 데려간 것은 ‘하느님의 실수’라고 했다. 그렇게 실수한다면 하느님도 아니라고 하느님을 마구 원망했다. 그 죽은 아들은 스물다섯 살밖에 안 되었고, 튼튼한 몸과 잘생긴 얼굴을 가진 앞날이 무척이나 촉망되는 젊은 의사였다. 이토록 소중한 아들을 잃은 박완서는 ‘하느님의 장난’을 피눈물을 흘리며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대들었다. ‘당신의 장난이 인간에겐 얼마나 무서운 운명의 손길이 된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라고 따지며 ‘당신의 거룩한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이렇게 막 가지고 장난을 쳐도 되는 겁니까?’라며 마구 대들었다. 그 아들은 최고 명문대 의과대학에서 인턴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를 선택할 때 남들이 가기를 주저하는 마취과를 선택했다. 박완서는 이를 못마땅해 왜 하필 마취과냐고 물었다. 아들은 마취과 의사는 주로 수술실에서 의식이 없는 환자들과 마주하는데 수술이 무사히 끝나고 의식이 돌아오면 할 일이 없어지는 의사이며, 환자도 환자 가족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의사이므로 그 쓸쓸함에 마음이 끌려 마취과를 선택했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어질고 똑똑한 아들을 잃은 박완서는 예수님이 매달려 있는 십자고상(十字苦像)을 원망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예수님은 실컷 욕하고 원망하라는 표정 같았다. 그런데 예수님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척 슬퍼 보이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 후 박완서는 이해인 수녀가 있는 부산의 수녀원으로 내려갔다. 바다가 보이는 그곳에서 생활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곳에서 참척의 깊은 슬픔을 조금씩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 글을 쓰게 되었다. 이젠 아들이 없는 세상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박완서는 이렇게 고백했다. “주님, 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완서가 자식을 잃고 쓴 글 ‘한 말씀만 하소서’는 자식을 잃은 어미의 통곡을 기록한 것이다. 박완서의 말대로 ‘통곡을 고스란히 참기가 너무 힘들어 통곡 대신 미친 듯이 끄적거린 게’ 이 글이다. 어머니의 교육열 박완서가 태어난 곳은 개성에서 조금 떨어진 개풍군 벽촌이었다. 채 스무 가구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조상들이 200년에 걸쳐 대대로 살아온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곳의 자식 교육은 보수적이었다. 아들은 서당에 보내 한문을 배우게 하고 딸은 집에서 한글을 가르쳤다. 박완서는 그런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소학교(현재의 초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 이것은 어머니의 끈질긴 고집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병으로 잃었다. 도시의 신식 병원에만 갔어도 고칠 수 있는 병이었는데 시골의 무지로 남편이 죽었다. 그래서 그 무지한 시골이 싫어 무작정 서울로 떠났다. 친척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서울 변두리에서 어려운 생활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바느질로 자식들을 키웠다. 그 후, 어머니의 뜻대로 박완서는 좋은 학교에 진학했고, 오빠는 좋은 곳에 취직됐다. 집도 버젓한 곳으로 이사했다. 어머니는 고향에서 못된 며느리 대신에 ‘잘난 며느리’로 불렸다. 박완서는 숙명여고를 나와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그해 6·25 전쟁이 나고 집안이 몰락해 어린 조카들과 노모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었다. 학교를 중퇴하고 돈 벌 자리를 찾아야 했다. 서울대 학생이었기에 남들보다 쉽게 미군 부대에 취업할 수 있었다. 미8군 PX(전문매점) 초상화부에서 일했다. PX는 지금의 서울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었다. 그곳에는 가난한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전쟁 전에 극장 간판을 그리던 사람들이었다. 화가 박수근과 인연 그곳에서 박수근이 일하고 있었다. 박완서는 그들을 얕잡아 보고 함부로 대했다. 박완서가 하는 일은 초상화 주문을 맡아오는 일이었다.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찾아오는 미군은 없었다. 그 일이 너무 힘들어 매일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날, 박수근이 화집을 끼고 출근했다. 박완서는 속으로 비웃었다. 박수근은 화집을 펴들고 박완서에게 왔다. 그러고는 어떤 그림을 가리키면서 자신이 그린 것이라고 했다. 촌부(村婦)가 절구질하는 모습인데 ‘조선미술전람회(鮮展)’에서 입선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박완서는 놀랐고, 부끄러웠고, 기뻤다. 놀란 것은 초상화 그리는 사람 중에 진짜 화가가 있다는 것이고, 부끄러운 것은 그것도 모르고 함부로 대한 것이며, 기쁜 것은 착하고 맑은 화가 한 사람을 알게 된 것이었다. 박완서는 이 일을 계기로 불행한 생각만 하며 살아오던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후, 박완서는 결혼해 PX 생활을 청산했다. 그러나 박수근은 PX에서 계속 초상화를 그렸다. 박수근은 점차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생활은 여전히 어려웠다. 백내장으로 고생하다가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박수근의 유작전(遺作展) 소식을 신문에서 보았다. 박완서는 마음을 먹고 그 전시회에 갔다. 많은 작품 중에 유독 ‘나무와 여인’이라는 작품에 사로잡혀 오랫동안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때의 감동을 소설로 쓴 것이 바로 「나목(裸木)」이다. 박완서는 「나목」으로 마흔, 불혹의 나이에 한국 문학계에 축복과 같이 등단했다. 그러곤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박완서의 대표 작품으로는 「휘청거리는 오후」,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한 말씀만 하소서」를 들 수 있다. 성라자로 마을에서 박완서와 이해인 수녀. 가톨릭 장례에 감동 받다 박완서가 종교를 갖겠다고 생각한 것은 시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였다. 시어머니를 26년 넘게 모시고 살았다. 박완서가 낳은 자식은 딸 넷과 아들 하나였다. 시어머니는 그 아이들을 모두 업어 길렀다. 시어머니는 새로운 생명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했고 손주들을 기르는 데도 온갖 정성을 다했다. 그런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종교가 없던 시어머니였기에 장례는 장의사에게 맡겼다. 박완서는 정성을 다해 시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장의사의 장례 예절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가슴이 무척이나 아팠다. 자신은 죽어서 그런 장례 의식을 치르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박완서가 본 장례 예식 중에 가장 감동적인 예식은 가톨릭 장례였다. 자신도 죽으면 저렇게 대접받고 싶었다. 가톨릭 장례 미사는 죽은 사람이 귀하건 천하건, 부자건 가난하건 구별하지 않고 극진하게 대접했다. 또한 고인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절망감보다는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감을 안겨주었다. 박완서는 가톨릭 장례 미사를 보면서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슬픔이 있는 기쁨’을 선물해 주는 예식이라 생각했다. 이렇듯 박완서가 가톨릭 신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가톨릭 장례 미사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성경 말씀도 너무 좋았다. 성경 말씀은 박완서에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준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푸근하게 와 닿았다. 예수님이 비유하여 말씀하시는 것도 할아버지 말씀과 비슷했다. 할아버지는 무조건 혼내고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재밌는 이야기를 통해 잘못한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특히 루카복음의 마르타와 마리아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 마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착각할 정도였다. <계속> cpbc2023.06.07

인류의 빛이신 주님께서 세상의 구원자이심이 드러나다주님 공현 대축일의 의미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조토, ‘동방 박사들의 경배’, 프레스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이탈리아. 8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공현(公顯)은 ‘공적으로 드러남’을 뜻한다. 그래서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메시아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세상의 구원자이심이 공적으로 드러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님께서는 강생하신 구세주께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러 온 동방 박사들을 통해 스스로 당신 자신을 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내 보이셨다.(마태 2,1-12) ‘동방 박사들의 경배’ 이야기는 네 복음서 중 유일하게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온다.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동방 박사들의 방문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이사 60,1-6), 곧 “너의 빛을 보고 …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그들은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 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라는 예언이 아기 예수님의 강생으로 실현됐다고 선포한다. 별의 인도로 동방 박사 세 사람 방문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이 사건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동방 박사들은 이민족을 대표한다. 이민족들이 유다인의 왕에게 경배하러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으로 왔다는 것은 단지 유다인뿐 아니라 모든 백성의 왕이 되실 분을 찾아 이스라엘로 왔음을 보여준다.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께 왔다. 이 별은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의 별, 곧 다윗의 별이다(민수 24,17 참조). 이 다윗의 별이 가리키는 메시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했다는 것은 “구약에 담겨 있는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일 때만 예수님을 찾을 수 있고, 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자 온 세상의 구원자로 경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28항) 한국 주교회의가 펴낸 「성경」에 ‘동방 박사’라고 번역된 헬라어 ‘μαγοι’(마고이)는 본래 ‘점성가’ ‘현자’라는 뜻이다. 또 사도행전 13,6.8에서는 ‘마술사’ ‘협잡꾼’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교회는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물을 바친 동방 박사들을 전통적으로 세 명으로 묘사한다. 초대 교회 오리게네스(185?~254?) 교부가 “예물이 셋이니 동방 박사도 3명”이라고 주장한 데서 기인한다. 그리고 ‘3’은 성경의 의미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수로 시작과 마침을 가리키는 완전 수이다.교회 전승에 따라 동방 박사의 신분이 ‘왕’들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테르툴리아노(160~223) 교부에서 비롯됐다. 그는 “만왕이 다 그 앞에 엎드리고 만백성이 그를 섬기게 되리라”(시편 72,11)는 시편 말씀과 연관 지어 동방 박사를 왕들이라고 주장했다. 아기 예수께 바친 황금과 유향과 몰약동방 박사들은 교회 전통에 따라 인생의 세 단계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묘사돼 있다. 제일 먼저 유럽을 상징하는 나이 든 가스발이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은 채 아기 예수에게 황금을 바치고 있다. 그 뒤에는 장년인 아시아의 왕 멜키오르와 아프리카의 청년 발타사르가 유향과 몰약을 들고 경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흑인 청년과 황인 장년, 백인 노인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있는 것은 왕 중 왕이신 예수에게 이 세상 모든 대륙의 전 인류가 영원무궁토록 경배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바친 황금과 유향, 몰약은 ‘왕권’과 ‘그리스도의 신성’, ‘인류를 위해 죽으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각각 상징하는 예물이다. 현대 신학의 거장인 칼 라너 신부는 동방 박사의 예물이 구세주 아기 예수의 신비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 드리는 합당한 우리의 희생, 인간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는 황금은 ‘우리의 사랑’을, 유향은 ‘우리의 그리움’을, 몰약은 ‘우리의 고통’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동방 박사들의 경배와 예물 봉헌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것은 구세주 출현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다. 주님 공현은 유다인뿐 아니라 이민족에게까지도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 보여준다. 주님 공현 대축일 말씀 전례 독서에서 알 수 있듯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불러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지만, 구세주의 강생으로 유다인들에게 약속된 복음 선포가 이방인들에게도 전파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인간 가운데 드러난 주님의 신성에 초점초대 교회에서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로마 제국의 태양신 축제일에 지냈다. 그런데 이 축제일이 서방에서는 12월 25일이었고, 동방에서는 1월 6일이었다. 이에 서방 교회에서는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 이후 예수 성탄 대축일과 함께 주님 공현 대축일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혼란을 막기 위해 주님 성탄 대축일을 12월 25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1월 6일로 나눠 지냈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특별한 전례 예식이 없다. 주님 공현 대축일이 성탄 시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주님 성탄 전례는 참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참인간으로 강생하셨음을, 주님 공현은 구세주께서 온 민족에게 당신을 스스로 드러내 보이셨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주님 성탄 대축일은 하느님께서 취하신 인성(人性)에, 주님 공현 대축일은 인간 가운데 드러난 주님의 신성(神性)에 초점을 맞췄다. 이처럼 두 대축일은 서로 보완하면서 서로에게 빛을 밝혀준다.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 끝나주님 공현 대축일은 원래 1월 6일이다. 선교지인 한국 교회는 사목 편의에 따라 1월 2~8일 사이의 주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낸다. 그리고 성탄 시기는 ‘주님 세례 축일’로 끝난다. 다만 한국 교회에서는 주님 공현 대축일이 1월 7일이거나 8일인 때에는 대축일 다음 날인 월요일에 주님 세례 축일로 기념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런 경우다. 주님 세례 축일 다음 날부터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가 시작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3.01.04
![[서종빈 평화칼럼] 형제님! 자매님!](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6/14/j6q1686702274700.jpg)
[서종빈 평화칼럼] 형제님! 자매님!서종빈 대건 안드레아(보도국장) 지난달 홍보 주일을 맞아 강릉 초당성당에 선교홍보활동을 다녀왔다. 미사 전에 성당의 훼손이 우려될 정도로 많은 아이가 공놀이하며 왁자지껄 뛰어놀고 있었다. 그런데 중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한 학생이 어른에게 다가가 “형제님! 공 좀 주세요”라고 말한다. 아무리 봐도 그분을 ‘형제님!’이라고 부르는 건 좀 어색해 보였다. 그런데 신자들은 누구든 서로를 부를 때 ‘형제님! 자매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구역장님, 회장님, 반장님, 언니, 형님 등의 호칭은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호칭을 전직이든 현직이든 직책과 직업 등으로 하면 세대 간 경계가 생기고 벽이 세워집니다. 소통의 장벽이 되는 거죠. 모두 형제님, 자매님으로 불러야 합니다.” 호칭 통일을 제안한 주임 신부의 설명이다. 과연 호칭 하나 바꾼다고 공동체가 바뀌고 신앙이 쇄신될까?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신자들의 미사와 선교 활동을 보면서 이게 바로 시노달리타스를 구현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이 성당에 잘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래가 없어서일까? 호칭 문제가 걸림돌이 돼서일까? 지난해 본당에 부임한 보좌 신부에게 질문했다. “성당에 오는 청소년들은 어른들처럼 직함으로 호칭하며 서로를 부르는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어서 호칭에 익숙하지도 않고 부담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는 2년째 경청과 식별의 시노달리타스 과정을 보내고 있다. 하느님 백성 모두가 주인공으로 참여해 상호 경청과 친교를 통해 주님의 길을 함께 가자는 것이다. 각자가 아닌 ‘우리’가 돼 ‘하나’가 되자는 의미이다. 그런데 지금 교회 구성원은 서로를 배려하며 진심 어린 소통을 하고 있을까? 직책과 직함이 없는 형제자매의 이야기는 경청에서 배제되고, 회장과 구역장의 한 말씀만 반영되는 것은 아닐까? 계급적인 호칭을 사용하면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제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교회는 유교적, 봉건적 전통이 강해 서구의 보편 교회와는 달리 ‘호칭’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행동반경을 좁히는 측면이 있다. 하나의 신앙 안에서 ‘호칭’에 계급적 요소를 없애는 것은 초기 한국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의미도 있다. 조선 말, 수많은 신앙 선조들이 순교하면서도 천주교를 지킨 것은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은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가르침 때문이었다. 천주교의 평등관과 내세관은 당시, 양반과 평민, 천민으로 나뉜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멸시를 받던 하층민에겐 천지개벽할 유일한 희망이었다. 성 김대건 신부의 생애를 다룬 영화 ‘탄생’에서 마부인 성 조신철 가롤로는 이렇게 말한다. “저기 정하상 형제가 어떤 사람이냐? 조선 최고의 유학자 가문 출신, 양반 중의 양반 아니냐? 난 천민 출신 마부. 내가 감히 얼굴도 쳐다볼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말도 트고 밥도 같이 먹고…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지다. 천주님이 우리 인간을 똑같이 귀하게 만드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또 천민(백정)으로 복자품에 오른 황일광 시몬은 평소 교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 성경에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모두 하나라는 사도 바오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갈라 3,28).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 ‘열린 형제애’를 통한 ‘듣는 교회’를 강조한다. 듣는다는 것은 너와 내가 평등할 때 들을 수 있다. 계층이 생기면 잘 듣지도 진솔한 이야기도 나누기 어렵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나눔과 비움, 섬김을 통해 흔들리는 영혼을 바로 세우는 게 신앙 공동체라면 이를 제약하는 본당 내 권위적이고 계층적인 호칭 사용을 자제하는 것은 어떨까. 서종빈2023.06.14

전쟁도 막지 못한 주님 부활의 기쁨ACN 우크라이나 책임자가 전하는 현지 부활 시기 모습 전쟁 중에도 부활절은 찾아왔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전쟁 중 맞이한 두 번째 부활 시기다. 그러나 전황은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 4월 현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군은 돈바스 지역 전선에서 치열한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하루에만 수백만 발의 폭탄이 빗발치고, 그 속에서 매일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미처 떠나지 못한 민간인들 역시 하루하루 지옥 같은 곳에서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무엇도 부활의 기쁨을 막을 순 없다. 우크라이나 교회 공동체는 혼란 속에서도 평소처럼 부활 시기를 보내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교황청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동유럽 담당 겸 우크라이나 사목 원조 책임자인 마그다 카츠마렉 실장은 서면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인터뷰와 내용 번역은 ACN 한국지부의 도움을 받았다. 큰 십자가의 길 속 우크라이나의 사순 마그다 카츠마렉 실장은 “근현대 우크라이나 역사에서 두 번째로 큰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20세기 들어 동서로 분할됐다가 소련에 합병되는 과정에서 극심한 기근을 겪었던 첫 번째 고통에 이어 약 한 세기 만에 다시 불어닥친 우크라이나의 사순을 일컫는 것이다. 그가 본 전쟁은 더욱 끔찍해지는 상황이다. ‘21세기 스탈린그라드’로 불리는 돈바스 지역 바흐무트에서는 지금도 수만 명의 군인이 빗발치는 포탄 속에서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고 있다. 사순 시기와 성주간 때에도 사상자는 속출했다. 생명은 없고, 파괴와 죽음뿐인 상황이다. 카츠마렉 실장을 비롯한 ACN 담당자들은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차량으로만 이동하며 지원이 필요한 곳 등을 시찰했다. 지난해 4월과 11월, 그리고 올해 3월까지 세 차례 국경을 넘나들며 활발한 원조 활동을 펼치고 있다. 폴란드인인 카츠마렉 실장은 “국가 총동원령에 따라 18~60세 모든 우크라이나 남성 가운데 자녀가 3명 이상 있거나 중증 질환을 앓지 않은 경우라면 출국이 금지된 상황”이라며 “외국인 사제들은 동원령에서 제외되지만, 이들 대부분이 우크라이나에 계속 머물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인 사제뿐만 아니라, 외국인 사제들 상당수가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전쟁터를 떠나지 않는 것이다. 인구의 30% 이상이 난민 전락 “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가족과 아이들의 삶을 이리도 처참하게 파괴하는 걸까요?” 카츠마렉 실장은 “우크라이나 서부에 수천 명의 난민이 있었고, 그들 중 80%가 여성과 아이, 노약자와 병자들이었다”며 “이들은 전쟁이 끝나길 바라면서 신학교와 수도원 성당에 머물며 생존을 위해 애쓰는 극한의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1500만 명이 동부 지역을 떠났고, 그중 7만 명은 폴란드 혹은 서유럽에, 그리고 700만 명은 서부와 중부에 머물고 있다”며 “이다음엔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말하기는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전체 인구의 30%가 넘는 사람들이 고향을 잃고 타지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카츠마렉 실장은 “전쟁과 함께 사람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사람들은 그저 평화만을 바랄 뿐”이라고 우려했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도 우크라이나 교회 공동체는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성탄과 부활의 기쁨을 나눴다. 군인들에게 위문품을 전하고, 전쟁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카푸친회 수도자들은 우크라이나 국토를 순례하며 다시 찾아올 평화를 염원하고 있다. 이에 ACN은 사목자들이 무사히 사목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고 있다. ACN이 동부 지역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현지에 남아 있는 다수의 주교들과 사제, 수도자들이 다리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카츠마렉 실장은 “그분들은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현지의 남은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전해주고 있다”며 “사제들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완전하길 기도한다. 우리 생명이 오직 하느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부활의 희망을 꿈꾸며 카츠마렉 실장은 “우크라이나 교회 구성원들과 신자들은 가족들, 더 나아가 공동체 전체가 더는 갈라지지 않고 함께 살기만을 바라며 매일 평화를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부활의 희망을 절대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인들은 다시금 진정한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우리는 결국 부활을 통한 승리를 거둘 것이란 희망을 느끼고 있으며, 그 어떤 것도 부활의 큰 기쁨을 방해할 수는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크라이나에서 누가 가톨릭 신자인지 정교회 신자인지, 혹은 특정 종교의 신자 여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면서 “승리를 위해, 나아가 파괴된 도시와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자녀에게 자유로운 나라의 미래를 물려 주기 위해 하나가 된 우크라이나 사회만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선 ACN 교황청 재단 가톨릭 사목 원조기구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는 전쟁 초기부터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앞장서 왔다. ACN은 지난 1년 동안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290여 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교회 공동체와 1만 5000여 명에 달하는 이들을 도왔다. ACN을 통해 기부된 액수는 950만 유로(한화 약 136억 6290만 원)에 달한다. ACN이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우크라이나 교회 공동체 원조다. 지난 1년간 7400여 명의 사제, 수도자 등에게 구호 자금을 전달해 전쟁 속에서도 공동체가 주님 안에 살도록 도왔다. 또 분쟁 지역에서도 미사가 봉헌될 수 있도록 사제들에게 미사 예물과 전례 용품을 전하고 있다. 교회 기관들은 피난민과 어린이, 청소년들을 돌보는 든든한 방주 역할을 한다. ACN은 각 교회 기관을 통해 지금까지 피난민 2200여 명을 직접 지원하고, 1700여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사목적 돌봄을 제공하도록 도왔다. 또 신학생 700여 명과 2640명의 본당 평신도, 640명의 수도자와 사제, 교리교사 등도 ACN의 지원을 받아 신앙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ACN 한국지부 역시 지난해 ‘ACN 어린이 성경’ 4만 부와 ‘마르코 복음’ 3만 부를 우크라이나에 보냈다.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의 영적ㆍ정신적 치유를 돕기 위해서다. 성경과 복음서 출판 비용은 cpbc ‘TV 매일미사’ ARS 성금과 가톨릭평화신문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등을 통해 마련했다. 마그다 카츠마렉 실장은 ACN 한국지부와 후원자의 정성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선한 마음에 의지하는 많은 우크라이나인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달라”고 거듭 기도와 관심을 요청했다. 후원문의 : 02-796-6440, ACN 한국지부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장현민2023.04.14

챗지피티, 신앙에 대한 질문도 제대로 답할까ChatGPT·신학자 답변 비교본질을 꿰뚫은 자는 누구? 제공=프리픽 인공지능(AI) 기술에 대한 감탄에는 불안감이 섞여 있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조차 인공지능 ‘챗지피티’(ChatGPT)가 척척 내놓는 답변에 혀를 내두른다. 생성형 AI 기술은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여겨지는 창작과 사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AI 기술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발달할지, 또 인간의 일자리를 얼마만큼 대체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당분간 신학자들의 실력은 따라잡기가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가톨릭 뉴스ㆍ분석 전문 미디어인 ‘THE PILLAR’가 AI와 신학자(교회법학자)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고 받아낸 답변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그렇다. 이 흥미로운 실험에 응한 AI는 매튜 샌더스 오브 롱비어드사가 개발한 ‘교도권 AI(Magisterium AI)’이다. 개발자들은 AI에 성경ㆍ가톨릭교회 교리서ㆍ로마 미사 경본 지침서ㆍ교회법전ㆍ교황 헌장과 회칙 등 456개 교회 문서 데이터베이스를 학습시켰다. 그리고 “미사 강론도 준비할 수 있는 AI”라는 출사표를 던졌다. 인간 대표로는 신학박사 안젤라 프랭크(보스턴 세인트존스 신학교) 교수와 티모시 올슨(파고교구 교회법원) 재판관이 나섰다. THE PILLAR는 ‘세례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술에 취하는 것은 대죄인가?’ 등 10개 질문을 똑같이 했다. AI 답변은 전반적으로 정확했다. 하지만 질문의 함정을 피해가지 못하고 본질을 놓친 답변이 몇 군데서 발견됐다. 아래는 질문과 답변 축약. 신학적으로 세례란? AI: 죄의 용서와 영혼의 정화를 의미한다. 인간은 세례를 통해 교회 일원이 되고, 약속된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 또 세례성사는 신앙과 세례가 밀접하게 연결된 탁월한 성사다. 프랭크: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기초이며,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이고, 다른 성사들로 들어가는 길을 여는 문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13항 참조) THE PILLAR 판정: AI 답변은 훌륭하다. 하지만 세례성사는 ‘신앙과 세례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프랭크 박사는 지나치게 교리서에 의존했다. 술에 취하는 것은 항상 대죄인가? AI: 술에 취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로 간주되지만 항상 자동으로 치명적 죄로 분류되지 않는다. 대죄 여부는 중대한 사안의 존재, 완전한 지식, 고의적 동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며, 이는 사례별로 평가해야 한다. 프랭크: 술에 취하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다만 고의적으로 술에 취하는 것은 죄가 될 수 있다. 이성적 능력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무책임하거나 죄악이 되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음주가 항상 대죄가 될 만큼 중대한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그럴 수 있다. 판정: 답변은 엇비슷하다. AI는 프랭크 박사보다 술에 취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음주에 관해서는 AI가 인간보다 보수적이다. 개도 천국에 갈 수 있나? AI: 교회는 이에 대해 명확한 가르침을 갖고 있지 않다. 교회는 인간 영혼의 구원과 하늘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 물론,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천국에는 무엇이든 있을 수 있다. 심지어 하늘나라 잔칫상에는 기름진 음식과 잘 익은 술도 올라와 있다.(이사 25,6 참조) 그러나 개는 이성적 영혼이 없기에 반드시 천국에 갈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두셨을까? 몹시 흥분된다. 판정: AI 답변에 ‘글쎄’, ‘아마도’라는 단어가 몇 개 들어간 것으로 미뤄 기계에는 난이도 최상의 문제인 것 같다. AI 답변도 훌륭한 편이다. 40세 미혼 여성도 부제가 될 수 있나? AI: 교회법상 수품 후보자는 공개적으로 독신 의무를 서약하지 않는 한 부제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종신 부제(permanent diaconate) 후보자에 대한 성별 제한은 명시돼 있지 않다. 따라서 40세 미혼 여성은 독신 의무를 포함해 교회가 정한 요구 사항을 충족하면 부제가 될 수 있다. 올슨: 아니오. 판정: AI의 완패. AI는 나이 조건에 얽매인 나머지 교회법 제1024조 “세례받은 남자만이 (거룩한) 서품을 유효하게 받는다”는 조항을 놓쳤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여성 부제직 연구를 위한 위원회를 설립하기는 했지만, 현재까지 종신 부제직도 남성에게만 유보돼 있다. AI와 인간은 삼위일체 위격, 일반 권한과 대리 권한, 혼인의 유효성, 시노달리타스 등 난이도 높은 질문에도 막힘 없이 대답했다. THE PILLAR는 나름의 기준으로 답변을 평가해 신학 영역은 AI 1.5점, 인간 6.0 점수를 줬다. 교회법은 AI 0점, 인간 4점을 부여했다. 교회법은 인간의 압승이다. THE PILLAR는 “우리의 평가에 편견이 있을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AI가 허풍을 떨지는 않았지만, 관련 개념을 혼동하고 엉뚱한 답을 하는 등 몇 가지 초보적 실수를 했다”며 “현재로선 중요한 질문, 특히 신앙과 관련된 질문은 인간 전문가에게 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밝혔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김원철2023.08.01

회개하고 자선 베풀며 주님 부활 준비하는 은총의 시간사순 시기 의미와 전례사순 시기이다. 지난해 세계 교회는 코로나19로 사순 시기 동안 ‘성찬례 단식’을 해야만 했다. 코로나19 상황이 그나마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올해는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중단해야 하는 극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겠으나 여전히 간소화된 예식으로 전례가 거행될 전망이다. 지난해 교회 스스로 보속의 행위로 결정한 성찬례 단식은 신자들에게는 성사 생활의 중요성과 치유자이신 하느님께로 향한 인류의 회심이 얼마나 절박한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올해 사순 시기는 세상의 ‘모든 형제들’과 연대해 이 깨달음을 실현하는 때가 되길 희망한다. 사순 시기를 맞아 사순 시기 의미와 전례를 정리했다. 사순 시기 사순 시기는 주님의 수난과 희생을 기념하는 시기이다. 또 파스카 신비(주님 부활)를 준비하는 때이다. 주님의 수난은 단순히 주님께서 당하신 고통 자체로서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과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사순(四旬)은 ‘40일’을 뜻하는 라틴말 ‘Quadragesima’(콰드라제시마)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성경에서 ‘40’은 하느님을 만나기 전 거치는 정화와 준비의 기간이다. 교회도 이 성경의 전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40일간 기도와 절제, 희생을 통해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것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재의 수요일’부터 ‘성주간 성토요일’까지를 사순 시기로 지내고 있다. 이 기간에서 6번의 주일을 지내는데 주일을 뺀 날 수가 정확히 40일이다. 주일을 사순 시기에 포함하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쁜 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전례주년의 정점으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는 ‘파스카 성삼일’이 사순 시기와 구분된다는 점이다. 파스카 성삼일은 주님 만찬 성목요일부터 주님 수난 성금요일, 성토요일, 파스카 성야와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말한다. 비오 12세 교황은 1955년 전례 개혁을 통해 파스카 성삼일의 본뜻을 되살려 사순 시기를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전까지’로 정했다. 이에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과 1969년 전례력 개정을 통해 사순 시기와 파스카 성삼일을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사순 시기가 파스카 성삼일과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다. 사순 시기는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을 위한 준비 기간이자 연결점이며, 파스카 성삼일은 사순 시기의 마지막 절정과 주님 부활 대축일이 연결된 지점이기 때문이다. 사순 시기 주요 전례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주님의 파스카를 준비하는 때다. 그래서 교회는 사순 시기 동안 대축일을 제외한 모든 미사 중에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환호인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하지 않는다. 제의 색도 통회와 보속을 상징하는 ‘자색’(보라)으로 바뀐다. 제단 꽃장식도 하지 않는다. △재의 수요일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로 이날 미사 중에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해 이마에 바르거나 머리에 얹는 예식을 행하는 데서 이름이 생겨났다. 성경에서 ‘재와 먼지’는 속죄와 참회의 표지이다. 또 죽음과 재앙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회와 슬픔을 드러낼 때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자루 옷을 찢었다. 이 참회 예식(2사무 13,19; 에스 4,1)을 교회가 받아들인 것이다. 재의 수요일에 사용하는 재는 일반적으로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나눠 받았던 성지(聖枝)를 거두어 태워 남은 재이다. 사제는 이 재를 축복한 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십시오”(창세 3,19) 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마르 1,15)라고 말하고 회중의 머리에 재를 얹거나 이마에 재를 바른다. 재를 얹거나 바르는 예식은 인간은 결코 죽을 수밖에 없는 허무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현세의 삶에서 죄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지만,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준비를 하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게 재의 예식의 본뜻이다. 따라서 재의 예식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회개하고 하느님께 향한 삶을 충실히 살아가라고 권고하고 있다. 올해 재의 수요일에 거행되는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은 코로나19 감염증 대유행 탓에 간소화된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당일 주례 사제가 신자들의 머리나 이마에 재를 얹을 때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고 하는 권고를 회중을 대상으로 한 번만 하고, 접촉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머리에 재를 얹을 것을 권장했다. △사순 시기 주일 전례 사순 시기 주일은 축일과 대축일에 우선 한다. 사순 주일과 겹치는 대축일은 토요일에 미리 거행된다. 특히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파스카 성야 미사까지의 성주간은 전례주년의 1순위라 할 만큼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사순 시기 주일 전례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하느님 자녀로 태어난 ‘세례에 대한 회상과 준비’ 그리고 ‘참회와 보속’이다. 사순 제1·2·6주일 미사 독서 주제는 해마다 모두 같다. 사순 시기 각 해의 고유한 주제를 보려면 사순 제3·4·5주일의 독서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된다. 사순 시기 제1·2주일에는 주님의 유혹에 관한 이야기와 주님의 거룩한 변모에 대한 복음이 봉독된다. 사순 제3·4·5주일은 가해의 복음으로 사마리아 여인,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 라자로의 부활 사건을, 나해에는 요한복음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장차 영광스럽게 되시리라는 말씀을, 다해에는 회개를 촉구하는 루카 복음을 봉독한다. 사순 시기 생활 교회는 전통적으로 주님 부활 대축일을 잘 준비하기 위해 사순 시기 동안 회개와 보속, 기도의 삶을 살도록 권고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단식과 금육, 기도와 희생을 실천한다. 하지만 교회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가르친다. 진정한 회개와 보속의 삶은 개인적이고 내적인 절제와 희생뿐 아니라 외적인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절제와 절약을 통해 모은 결실을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자선이 뒤따라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사순 시기 동안 “서로 용서하고 기도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쉴 곳을 찾아 주는 등 자비를 실천하자”고 강조하면서 “회개하기 매우 좋은 이 사순 시기를 헛되이 보내지 말자”고 당부한 바 있다. 사순 시기에는 판공 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 단식과 기도, 자선 단식, 곧 금식과 금육재는 단순히 먹고 마실 것을 절제하라는 고행의 의미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의 곤경에 관심을 두도록 촉구한다. 따라서 금식과 금육은 세속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그리스도께 나아감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꺼운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가톨릭 신자는 의무적으로 재의 수요일과 주님께서 수난 하시고 돌아가신 성 금요일에 금육재와 금식재를 지켜야 한다. 금육재는 만 14세부터 모든 신자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며, 성인이 된 모든 신자는 60세까지 한 끼를 단식하는 금식재를 지켜야 한다.(교회법 제1252조) 한국 교회에는 만 18세부터 만 60세 전까지 금식재를, 만 14세부터 금육재를 지키도록 규정하고 있다.(「사목지침서」 136조) 이외에도 사목자와 부모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킬 의무가 없는 미성년자들도 참회 고행의 의미를 깨닫도록 보살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교회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 삶의 첫 자리에 ‘기도와 자선’을 두었다. 따라서 기도와 자선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단식이 영성 생활을 위해 악습을 없애는 약이라면 기도는 회개의 표시이고, 자선은 하느님 은총의 증거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기자 2023.02.12

냉담교우 회두 비결이요, 관심과 진심서울대교구 도림동본당 10% 회두 목표 초과 달성…레지오 단원 주축 활동, 본당 공동체도 활기 얻어 서울대교구 도림동본당 김영화 선교분과장이 성당 대성전 앞에 붙은 ‘냉담교우 회두 운동’ 성과 그래프를 가리키며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도림동본당(주임 최희수 신부)이 지난 사순 시기부터 시작한 ‘냉담교우 회두 운동’ 목표(회두율 10%)를 초과 달성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엔데믹 시점에서 본당의 이 같은 노력이 미사 참여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하나 된 공동체 분위기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성령 강림 대축일(28일)까지 본당 냉담교우 약 1000명 가운데 100명을 다시 초대하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8일 기준 150명을 돌파했다. 본당은 최종적으로 냉담교우 가운데 200명 정도가 돌아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성령 강림 대축일에 다시 돌아온 신자들을 환영하는 미사를 봉헌하고, 잔치도 열어 온 공동체가 기쁜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회두 운동을 위해 본당 선교분과에 소속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2인 1조로 팀을 꾸려 매주 19개 구역에 있는 냉담교우 가정을 방문하고 있다. 냉담교우 중에 주소나 전화번호가 잘못된 경우도 많은데, 여성총구역 도움을 받아 실태를 파악한 덕에 허탕 치는 경우는 적었다. 각 가정을 방문한 레지오 단원들은 주보·성경 말씀과 함께 최희수 주임 신부가 쓴 편지를 전달하며 “교회로 돌아오라”고 설득하고 있다. 가정 방문이 불발될 경우에는 휴대전화로 전화하거나 문자를 남겼다. 또 집에서의 만남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냉담교우와는 성당이나 다른 곳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공동체가 하나로 뭉쳐 ‘진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회두 운동의 비결이 되고 있다. 모든 냉담교우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다. 김영화(소피아) 선교분과장은 “집 문을 열어주는 냉담교우 가정은 20세대 중 1세대 정도”라며 “어떤 이유든 신앙생활 중 상처를 받았던 교우들은 냉대는 물론, ‘한 번 만 더 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불같이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길 권유하며 문을 두드리고 있다. 김 분과장은 “저희도 회두 운동에 임하면서 힘들 때도 있지만, 매주 돌아온 냉담교우들이 ‘먼저 연락해준 덕에 용기를 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때마다 힘이 생긴다”고 했다. 또 “이번 계기로 오랫동안 성당에 나오지 않은 지인과 딸 부부까지 꾸준히 미사에 나오게 돼 행복했다”고 덧붙였다. 본당은 이번 회두의 노력 덕에 적게는 3년, 길게는 20년 이상 냉담한 신자들이 돌아오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이에 대해 최희수 주임 신부는 교우들에게 “냉담교우를 돌아오게 하는 것이 곧 오늘날 순교이자, 신앙적으로도 가장 축복받는 시간이 된다”고 독려하고 있다. 그러면서 “회두한 신자들이 다시 냉담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며 “레지오 마리애 단원을 비롯한 신자들이 관심을 두고 꾸준히 돌보면서 본당 단체에 가입할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 최 신부는 올해 본당 사목 목표를 ‘소공동체의 친교와 냉담자들이 교회로 돌아오는 공동체’로 삼고, 미사 강론과 레지오 훈화 때마다 냉담교우 회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달 말까지 미사 끝에 냉담자를 위한 기도를 바칠 계획이다. 아울러 격주로 성당 대성전 앞에 회두 운동 성과를 그린 그래프를 선보이며 신자들의 참여를 더욱 당부하고 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이학주2023.05.09

cpbc ‘세계 평화를 위한 고리기도 운동’ 참여 신심단체 / (1)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 지난 10월 전교가르멜수도회에서 피정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는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 그룹장과 회원들.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 제공 ‘세계 평화를 위한 고리기도 운동’의 첫 번째 고리는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Mothers Prayers Korea)가 맡았다. 27일 밤 9시 ‘어머니들의 기도’로 막을 올려 일주일간 날마다 밤 9시면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가르쳐주신 참 평화를 세상에서 이루기 위한 평화 고리 기도를 이어간다. 평화 고리 기도에 함께할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는 현재 서울대교구와 인천ㆍ수원교구 등에 25개 그룹 120여 명에 이른다. 또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에서 가지가 뻗어 나간 일본 츠야마(津山)성당 그룹과 미국 애틀랜타ㆍLA 얼바인(Irvine)의 두 재미교포 그룹, 피지의 교포 그룹 회원들, 아울러 매일 기도로 어머니들의 기도를 지원하는 30여 명의 수도자와 어머니들로 이뤄진 ‘기도협력회’도 평화 고리기도운동에 동참한다. 이를 위해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 는 기존에 바쳐온 어머니들의 기도와 주모경에 새로 만든 기도문으로 기도를 바치기로 했다. 2013년 1월 국내에 어머니들의 기도를 들여온 주한 벨기에 대사 부인 최자현(마리아) 전 회장이 쓴 기도문 초고 ‘사랑이신 아버지 하느님’을 현 회장인 김미희(마리스텔라)씨 등이 함께 다듬고, 어머니들의 기도 담당 사제인 유승록 신부에게 기도문을 보내 인준 받았다. 어머니들의 기도 모임 영성을 반영해 기도문 초안을 쓴 최씨는 “저희 기도 모임의 영성인 ‘주님께 내맡김’의 영성 속에서 주님의 평화와 사랑을 나누는 역할을 맡겨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면서 “실은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처럼 아름답고 완벽한 기도는 없기에 그냥 이 기도를 바쳤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는데, 단체 성격이나 영성을 반영하는 기도를 바쳤으면 좋겠다는 회원들의 의견을 따라 기도문을 쓰게 됐고, 이 기도가 우리를 변화시키고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도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95년 영국에서 베로니카 윌리엄즈와 그의 올케 산드라에 의해 시작된 어머니들의 기도는 탁자 위에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십자가와 세상의 빛 예수님을 상징하는 촛불, 살아계신 예수님 말씀인 성경, 자녀 이름을 넣는 작은 바구니를 올려놓고 △모임을 인도해주실 성령님을 초대하는 기도 △주님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 △용서의 기도 △그룹 안에서 하나 되기 위한 기도 △찬미의 노래 △세계 어머니들이 기도 모임과 하나 되는 기도 △성경 읽기 △모성에 대한 감사 기도 △작은 바구니 안에 이름을 내려놓을 때의 기도 등 9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다른 나라에선 가정에서 기도 모임이 이뤄지지만, 우리나라에선 사적 기도 모임에 대한 우려 때문에 2015년 서울대교구에서 단체 인준절차도 거쳤고 모임도 성당에서 이뤄지고 있다. 김미희 한국 어머니들의 기도 회장은 “기도는 주님 손에 맡기는 거니까, 기도의 응답이 늦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주님의 때를 기다리고 주님께 맡기며 기도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은총”이라며 “평화 고리 기도운동에 함께하게 돼 기쁘고, 자녀들은 물론 세상의 평화를 위해서도 열심히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2.11.23

한국의 ‘영적 가족’ 되어주려 찾아온 선교사들 대전 대덕구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선교센터에서 만난 선교사들이 함께 점심을 먹고 있다. (왼쪽부터)에스텔·마리아·로랑스·신은주 선교사.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들이 선호하는 대학가 주변인 대전 대덕구 중리동의 한 다세대주택. 초인종을 누르자 푸른 눈의 여성 두 명이 나와 가을 하늘처럼 맑은 미소로 반겼다. 로랑스 바써르(54)씨와 마리아 마토스(44)씨다. 이들은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한국공동체 선교사로, 주님께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바친 봉헌 생활자들이다. 전교 주일(22일)을 맞아 10년 넘게 한국살이 중인 두 사람을 공동체 선교센터에서 만났다. 물질적 풍요 속 행복 부재한 한국 현실 지적 “한국 신자들은 공부도 많이 하고, 아는 것도 많죠. 그런데 신앙 덕에 삶이 ‘행복하다’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아요. 하느님 사랑이 정말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더 많이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이게 저희가 활동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선교회 한국공동체 설립 주역인 로랑스 선교사가 환한 얼굴로 선교 활동의 의미를 재차 밝혔다. 그는 2006년 다른 선교사 두 명과 함께 대전교구에서 맨손으로 공동체를 시작했다. 마리아 선교사는 2011년 합류했다. 꼭 어려운 지역에서 선교 활동하는 이들이 선교사라 여기지 마시라. 이들은 한국 생활과 문화 안에서, 하느님을 전하는 ‘주님의 일꾼’들이다.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사들은 맨 먼저 교회 미래인 청년 선교에 큰 관심을 뒀다. 대전교구 가톨릭대학생협의회에서 기도 모임을 열고, 교리 교육을 하며 영적 동반자를 자처했다. 곧이어 국제교류 친교 봉사활동과 선교 모임도 시작했다. 하느님 자비 안에서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한국·일본 청년 교류도 마련했다. 2015년 자비의 희년 개막을 계기로 선교회 카리스마를 살려 ‘자비의 선교사 학교’도 열었다. 여기에 평신도는 물론, 젊은 사제와 수도자 모두 입학했다. 하느님의 사랑을 진실로 체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만난 그리스도인은 모두 선교사입니다.”(「복음의 기쁨」, 120항) 모두 한국을 자발적으로 찾아 활동 중인 이들 선교사가 이룬 선교적 업적이다. 이러한 노력을 본 교구가 다세대주택을 무상으로 빌려줬다. 지금의 선교센터다. 단칸방에서 출발한 공동체에는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선교사들은 곧장 센터 2층을 개성이 한껏 드러나는 특별한 공간으로 꾸몄다. 한옥 모양의 감실과 황토로 빚은 성모자상이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성체조배실이다. 흰색 한지를 곱게 바른 창문에는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지도가 그려져 있다. 지도 왼편 끝자락에 위치한 유럽 대륙, 그중에서도 서쪽이 바로 선교사들의 고향이다. 영적 고아들이 하느님 사랑 느끼길 로랑스 선교사는 벨기에의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남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게 살던 그는 15살에 인생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고, 삶의 의욕과 방향도 잃었다. 그러다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중남미 유학생들과 함께 살며 학업을 도와주면서 큰 보람과 활력을 느꼈다. 그런 그를 눈여겨본 한 선교사의 초대를 받아 스페인으로 피정을 가게 됐다. 곧 인생에서 가장 무겁고 긴 기도가 이어졌다. “아버지를 너무나도 빨리 데려가신 하느님이 줄곧 원망스러웠어요. 오랜만에 기도하며 그분과 정말 많이 싸웠죠. 그리고 성경을 펼쳤는데 신기하게도 한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어요.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요한 14,18)였습니다. 주님이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었죠. 비로소 저는 주님과 화해할 수 있었어요.” 동시에 로랑스 선교사는 그동안 자신이 ‘영적 고아’로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을 이유로 스스로 만든 족쇄에 묶여 하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잊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 말고도 얼마나 많은 영적 고아들이 외롭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을까. 그들을 돕고 싶다.’ 마침내 그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영적 고아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동행하는 선교사였다. 자살률 높은 한국 돕기 위해 선교 지원 스페인 출신 마리아 선교사는 자살률이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움이 되고자 한국행을 자원했다. 그는 태생이 가난하고 약한 사람 돕기를 좋아했다. 간호사가 돼 훗날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국경없는의사회와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간호학과 마지막 학년에 겪은 신기한 체험이 그를 결국 선교사의 길로 이끌었다. 피정에서 미사를 드리던 때였다.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할 이는 없다’는 성가 가사를 부르는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마리아야, 난 너를 사랑한단다.”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한 순간이었다. 그 뒤로 자신을 괴롭혔던 부정적인 감정이나 마음의 상처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마리아 선교사는 주님 사랑으로 영적 치유를 받은 것이라고 확신했다. 간호사 자격증을 딴 그는 수도 마드리드의 큰 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진정한 사명은 따로 있을 것이란 생각이 강해졌다. “육체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느님 사랑을 체험한 입장으로서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는 일이 급선무로 느껴졌어요. 게다가 아버지나 동료 간호사들 같은 주변 사람도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죠. 만약 저들도 주님의 사랑을 느낀다면 마음의 상처도 나을뿐더러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너무 안타까웠죠. 그래서 선교사가 되기로 했어요. 다른 사람들도 저처럼 하느님 사랑을 체험하게끔 돕고 싶어서요.” 평범한 일상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이것이 선교사들이 이 땅에서 선교하는 이유다. 선교사들은 “신앙과 일상이 일치를 이루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 신자들은 ‘영적인 가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음속 이야기를 편히 터놓고, 같은 길을 함께 걷는 공동체가 그것이다. 이들은 줄곧 하느님으로부터 찾는 행복을 강조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 ’마음을 열고 싶은데 두렵다’, ‘이야기가 새어나가지 않는 안전한 집단이 필요하다’. 청년 모임에서도 이처럼 안타까운 말이 많이 나왔어요. 청년들이 일상과 사회생활에서 가톨릭 가치관을 고수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과 갈등을 겪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의지할 공동체를 절실히 찾는 것 같아요.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가 늘 따스하고 든든한 영적 가족이 돼주고 싶습니다. 그게 바로 일상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우리가 꼭 해야 일이 아닐까요?”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이학주2023.10.18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평화’는 무엇일까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가톨릭 신자를 위한 ‘평화와 화해’ 교재」 제1권 발행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김주영 주교)는 최근 「가톨릭 신자를 위한 ‘평화와 화해’ 교재」 제1권을 발행하고, 전국 교구와 신학교에 배포했다.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평화와 화해 교재가 공식 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으로, 한국 교회는 물론 한국 사회 안에서부터 평화와 화해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 첫 결실을 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교재는 성경과 가톨릭 사회교리, 역대 교황들의 평화에 대한 가르침, 가톨릭 신자들의 평화와 화해 실천 경험을 기초로 집필됐다. 교재는 평화 신학과 평화 영성, 평화 실천 등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평화 신학’(1∼3과)이 가톨릭교회가 추구하고 가르치는 평화에 대한 성경과 가톨릭 교리 내용을 다뤘다면, 2부 ‘평화 영성’(4∼5과)은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 가르침에 충실하게 평화를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는 영적 기초를 다뤘다. 나아가 3부 평화 실천(6∼8과)은 가톨릭 교리와 영성에 기초하는 평화 실천의 방법을 담았다. 각 과의 내용은 주제를 표현하는 성경 구절과 단원 소개, 본문, 주제와 연관된 사례, 나눔 주제, 실천 방향, 참고자료 목록 차례로 구성됐다. 교재는 특히 가톨릭 신자들의 평화와 민족 화해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고 △교회 내 평화ㆍ민족화해 교육 프로그램에 활용하며 △앞으로 중급, 심화 교재 제작을 위한 표준을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기획됐다. 따라서 이 교재는 성직자들의 강론 참고 자료, 수도자ㆍ평신도 봉사자들의 강의 자료, 민족 화해와 일치에 관심이 많은 교우의 소모임 공부 교재로 활용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집필이 이뤄졌다. 2019년부터 연구와 집필에 들어가 성경ㆍ교의신학ㆍ사회교리 전문가들,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와 선교사목주교특별위원회의 감수를 거쳤으며, 2021년 12월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3년간의 노력 끝에 발행됐다. 연구와 집필에는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이자 가톨릭동북아평화연구소장인 강주석 신부, 팍스크리스티코리아(PCK) 연구이사 박문수(프란치스코) 박사 등 8명이 참여했다. 46판 변형, 156면, 비매품. 김주영 주교는 간행사를 통해 “우리가 사는 곳에서부터 진정한 평화와 화해를 이루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과제인 한반도 평화는 요원한 일이 될 것”이라며 “이 교재가 남북 간의 문제뿐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과도 평화와 화해를 이루며 살아갈 방법을 배우는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cpbc2022.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