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 부활, 책으로 더욱 뜻깊게 되새기자부활 시기에 신자들 읽을 만한 도서묵상집·논문·연구집 등 다양한 분야 “하늘은 이 세계 위에 공중에 있는 상층(上層)이 아니다. 하늘은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이고, 하느님은 곳곳에 다 계신다. 하늘은 하느님의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또한 하늘은 인간의 소리가 올라가는 곳이기도 하다. 하늘나라는 예수처럼 지금 죽어 새로 태어난 자만이 갈 수 있다. 즉 지상의 삶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 남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나라다.”(이제민 신부의 「예수는 정말 부활했을까」 중에서)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주님 부활 대축일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부활의 신앙과 기쁨을 잘 알고, 더 깊이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 신자들이 부활 시기에 읽을만한 책을 소개한다. 예수는 정말 부활했을까이제민 신부 / 바오로딸예수의 부활, 우리 자신의 부활에 대한 묵상 거리를 던진다. 저자 이제민(마산교구) 신부는 부활의 삶을 깨닫고, 부활의 삶을 위한 구체적인 길을 제시했다. 2001년에 출간한 이 신부의 교리서 「우리가 예수를 찾는 이유는?」에서 부활 신앙을 보완해 펴낸 책이다. 이 신부는 부활의 삶을 살기 위해 업적과 인기, 성공 위주의 삶을 죽이고, 죽음으로 이끄는 삶을 살라고 조언한다. 그는 부활이 ‘시체의 소생’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예수처럼 남을 위해 기꺼이 죽는 삶을 살 때 부활의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부활 교리가 공상과 환상을 뛰어넘는 신화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신부는 독일 뷔르츠부르크대학교에서 기초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18년까지 밀양 명례성지에서 사목하다가 원로 사목자로 지내고 있다.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오데트 맨빌 외 14명 지음ㆍ안영주 옮김 / 성서와함께 가톨릭, 개신교 두 출판사가 유럽과 캐나다의 프랑스어권 학자 15명의 글을 모아 부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저명한 성경학자들이 예수 부활에 대한 증언을 다뤄 쉽게 읽히지 않지만, 초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낯선 부활 체험을 증언하기 위해 쓴 본문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엿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헌에 나타난 죽음 너머의 삶에 대한 기대와 그리스-로마 세계의 인간학’을 비롯해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언어에서 살펴본 부활’ 등에 대해 다뤘다. 집필진으로 오데트 맨빌(몬트리올대학교 신학대학)ㆍ미셸 구르그(도미니코회 신학과 철학대학)ㆍ장 줌스타인(취리히대학교 신학대학) 학자 등이 참여했다. 부활하인리히 쉴리어 지음ㆍ김지영 옮김 가톨릭출판사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추천한 도서로, 성경 주석학자인 하인리히 쉴리어가 1968년에 발간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논문이다. 성경의 증언을 바탕으로 예수 부활의 사건을 간결하고 정확하게 전개하고 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 책이 부활의 현상과 독창성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부활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임을 확고히 한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성경 문장 구조를 통한 언어학적 측면에서 분석했으며, 빈 무덤의 역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ㆍ부활ㆍ발현의 의미를 고찰했다. 저자 하인리히 쉴리어는 독일 루터교 가정에서 태어나 1927년부터 튀링겐 루터교회 목사로 살았지만 2차 세계 대전 후 신약성경과 고대 교회사를 강의하다 개신교에 회의를 느껴 1953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1952년부터 본대학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부활의 기쁨 100배 맛보기안셀름 그륀 신부 지음ㆍ정하돈 수녀 옮김 분도출판사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성령강림 대축일까지 50일 동안 부활의 참뜻을 되새길 수 있도록 돕는 묵상집. 세계적 영성가 독일의 안셀름 그륀 (독일 성 베네딕도회) 신부가 부활의 뜻을 새겨주는 성경 구절을 가려 뽑았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부활의 힘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당신 안에서 이루고 싶어하는 부활을 그저 신뢰하기만 하면 된다”고 응원한다.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03.31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사랑을 행하여라[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3) 피터르 브뤼헬의 ‘일곱 가지 자비의 행위’ 피터르 브뤼헬, ‘일곱 가지 자비의 행위’(1616), 개인 소장, 벨기에. 325년 콘스탄티누스가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 이후 트렌토 공의회까지 모두 19번의 공의회가 있었다. 그리고 이후 500년간 두 번, 제1ㆍ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렸다. 트렌토 공의회는 이것만 봐도 얼마나 교회 생활에 중요한 전환점이었는지 알 수가 있다. 여기서 잠시 당시 공의회의 성격을 알기 위해 첫 번째(가장 먼저 사도들이 소집한 예루살렘 공의회는 일단 빼기로 하자) 공의회인 ‘니케아 공의회’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콘스탄티누스는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제국 내에서 모든 종교를 허용하는 ‘종교 관용령’을 선포했다. 아직 사분 통치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동로마의 리키니우스와 공동명의로 선포했다. 그러나 우리는 콘스탄티누스의 업적으로만 알고 있다. 이것은 이후 리키니우스보다 콘스탄티누스가 훨씬 칙령의 내용을 잘 실천했기 때문이다. 과거 동로마의 디오클레티우스와 콘스탄티우스(콘스탄티누스의 아버지), 서로마의 막시미아누스와 막센티우스, 이후 갈레리우스와 리키니우스 등과도 전혀 다른, 친(親)그리스도교 정책을 폈는데, 그것은 개인적인 신앙심 때문이라기보다는 제국 내에서 이미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모두 죽이는 게 대수가 아니라는, 나름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오히려 제국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중요한 동력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공인된 지 얼마 안 된 그리스도교 내에서 이단이 발생했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사제 아리우스가 그리스도의 신성에 반대했고 그에 동조하는 사제들이 늘어나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황제는 긴장했다. 그리스도교로 제국을 하나로 통합하려고 했는데, 제국을 분열시킬 위험 요소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황제는 공의회를 소집해 아리우스를 파문하고 ‘니케아 신경’에 아리우스가 반대한 내용을 모두 담아 신앙고백 기도로 발표하고 회의를 종료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이후, 가톨릭교회에서 진행한 18번의 공의회에 어떤 식으로든 황제들의 개입이 있었고, 공의회 결정 사항이 그만큼 국가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트렌토 공의회, 사목 전 분야에 걸쳐 개혁 단행 다시 트렌토로 돌아와서, 종교 개혁에 대한 응답으로 시작한 공의회지만 개혁자들의 공격을 모두 받고, 시대가 무르익은 다음에야 공의회는 소집되었다. 그것도 샤를 5세와 프랑수아 1세가 대립하는 가운데서, 역사상 어떤 공의회보다 광범위한 차원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그때까지 각종 의혹으로, 혹은 ‘신비’로 밀쳐두었던 불분명한 교리들까지 명확하고 분명하게 했고, 사목의 전 분야에 걸쳐 개혁을 단행했다. 그중 오늘 우리 주제와 관련한 한 가지만 들면, “라틴어 성경(불가타)과 사도들과 교부들의 신앙과 행실에 관한 전승을 모두 수용”했다. 당시 유럽은 루터 이전 한 세기 전부터 일부 개혁가들에 의해 불가타의 자국어 번역이 있었다. 루터도 개혁과 동시에 불가타의 독일어 번역과 자의적인 해석으로 논란을 자초했다. 이에 트렌토 공의회는 불가타를 가톨릭교회의 정경으로 선포하고, 미사용 전례 텍스트에 불가타 성경 구절을 체계적으로 배치해 논란을 정리했다. 신앙과 행실에 관한 가르침도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셨고, 성령에 의해 사도들과 교부들이 실천했으며, 가톨릭교회 안에서 항시 보존되어 온 것으로서 이를 존경하고 애정으로 받아들인다고 천명했다. 우리의 주제 ‘자비의 행위들’은 정확하게 여기에 속한다. 이것만 보더라도 트렌토 공의회의 결정 사항이 얼마나 루터의 ‘오직 성경, 오직 은총, 오직 믿음’이라는 주장에서 멀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공의회는 루터를 의식해서 일부러 반대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교회가 걸어야 할 방향을 결정한 것이다. 일각에서 말하는 ‘트렌토 공의회의 결정 사항이 결국 반(反)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표현은 마치 공의회가 ‘반(反) 루터’나 ‘반(反) 종교 개혁’의 차원에서 결론을 끌어낸 것처럼 보여,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가톨릭교회는 루터가 ‘오직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성경 ‘만’이라는 문자주의가 아니라,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를 ‘행동’하라고 가르친다. 여기에 대해 루터는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교회는 ‘믿음’에 행위가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이라며, 믿음이 생명력을 얻으려면 ‘선한 행실’, ‘사랑의 행위’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사례는 루터의 나머지 ‘오직 시리즈’와 개혁가들이 없앤 성사들과 관련하여 얼마든지, 한도 끝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가톨릭교회의 이런 가르침이 공의회에서 ‘결정’한 것이라기보다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가르친 핵심 내용이었고, 교회 전통으로 사도 시대부터 내려오던 것이었다는 점이다. 중세기 교회가 권력층에 있을 때, 그것을 잘못 사용하거나 남용하여 개혁이 요구된 바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폐기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의회는 그것을 확인하고 재천명한 것이다. 14가지 자비의 행위트렌토 공의회를 기점으로, ‘영성가’들이 대거 출현하면서 이런 가르침이 전면으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소위 ‘공의회 예술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것이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하는 자비의 행위로, 14가지를 언급했다. ‘7가지 육체적인 자비의 행위’와 ‘7가지 영적인 자비의 행위’가 그것이다. 글을 모르는 신자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매우 쉽고 간략하게 가르쳤다. 일곱 가지 육체적 자비의 행위는 ①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 ②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는 것 ③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는 것 ④감옥에 갇힌 사람을 방문하는 것 ⑤순례자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것 ⑥병자를 돌보는 것 ⑦죽은 사람을 묻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일곱 가지 영적인 자비의 행위는 ①(신앙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에게 조언하는 것 ②무지한 사람을 가르치는 것 ③죄인을 질책하는 것 ④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것 ⑤상처 입은 사람을 용서하는 것 ⑥괴롭히는 사람을 인내로 견디는 것 ⑦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불과 지옥의 화가 소개하는 작품은 브뤼헬(Pieter Brueghel il Giovane, 1564~1638)이 그린 ‘일곱 가지 자비의 행위’(1616)다. 여기선 ‘육체적인 자비’의 행위들을 표현했다. 벨기에의 한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피터르 브뤼헬은 아버지 피터르(1525?~1569)와 동생 얀(1568~1625)도 화가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5살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의 이름과 재능만 물려받고, 직접 그림을 배우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받아 21살 때부터 눈에 띄는 예술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같은 화풍의 그림을 그리며 아버지의 그림들을 베껴 충실한 모방가 중 한 사람이었다. 그때부터 안트베르펜의 성 루카 길드의 마에스트로가 되었다. 화가들의 조합이나 단체의 이름 또는 주보로 성 루카를 많이 드는데, 이는 루카가 의사라서 인물 묘사를 세심하게, 마치 그림을 보듯이 했기 때문이라는 설과 루카가 화가였다는 설 때문이다. 브뤼헬은 점차 아버지의 화풍에서 진일보하여 특징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그것이 ‘불과 지옥의 화가’라는 별명이 되기도 한 ‘불과 지옥’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다. 1638년 안트베르펜에서 사망했다.그림 속으로작품은 중세기 ‘가난한 이들의 성경(Biblia pauperum)’을 연상시킬 만큼 간결하고, 쉽다. 왼쪽 위에서부터, 2층의 건물 위는 감옥이다. 계단에도 간수가 있고, 기둥 뒤에도 간수가 앉아 있다. 왼쪽 끝에 두 사람이 ‘감옥에 갇힌 다른 두 사람을 방문’한다. 건물 아래는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고’ 있다. 드럼통에서 물을 받아 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앞에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고’ 있다. 그 옆, 오른쪽 앞에는 ‘헐벗은 사람들에게 옷을 나누어 주고’ 있다. 오른쪽 첫 번째 집에는 ‘병자를 방문하는 사람’이 있고, 방문객의 손에는 성합이 들려 있다. 그 뒷집에는 주인이 나와서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전체 그림의 배경 저 멀리에는 두 사람이 ‘죽은 사람을 묻고’ 있다. 같은 주제의 작품으로, 1606/1607년 카라바조가 그린 제단화에서부터 안토니오 카노바의 조각 부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흥미로운 작품들이 많이 있다. 독자들이 찾아서 보기를 권한다.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1.06.02

교황 “음식 낭비는 배고픈 사람들의 양식 훔치는 도둑질”[부온 프란조(Buon pranzo)!] 9. 프란치스코 교황과 요리 ④ 2017년 10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로마본부를 찾아 기념 촬영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은 이날 연설을 통해 “음식 낭비는 배고픈 사람들의 먹을 음식을 훔치는 것과 같다”고 역설했다. 【CNS 자료 사진】 2019년 3월 27일 수요 일반알현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직도 얼마나 많은 어머니와 아버지들이 아이들을 위한 빵이 없다는 사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지요!”라고 말하였다. 또한, “굶주림으로 죽어간다는 것은 인간 존엄을 박탈하는 최악의 한계가 아닐 수 없다”고 하였다. ‘교황은 모든 사람을 위한 음식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먹을 수는 없다는 이 불평등한 현실에 그 스스로가 단 하루도 대충 넘어가며 살고 싶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은 나만 하는 걸까? 왜 그의 식탁이 소박하고 단순한지 알겠다. 왜 그가, 바티칸의 사도궁을 뒤로하고 산타 마르타의 집에 기거하는지, 인제야 명확해졌다. “누구든 물과 음식이 부족한 이는 없어야”교황은 지구 상의 모든 이들이 “우리는 한가족”이라고 강조한다. “그 어느 누구든 물과 음식이 부족한 이는 없어야 한다”고 애끓는 마음으로 늘 호소하고, “음식에 장난치지 마십시오”라고 항상 반복해 말한다. 2017년 10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로마본부를 찾은 교황은 “음식 낭비는 배고픈 사람들의 먹을 음식을 훔치는 것과 같다”고 말하였다. 이어 “전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전쟁을 위한 무기들은 대담하고 그들의 절대적 자유 안에서 비인간적으로 행사되고 있으며, 사람들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 영양을 공급한다. 어떤 경우에는 기아 자체가 전쟁의 무기로 사용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여전히 8억 명이 굶주리고 있으며, 이러한 결과는 자연적인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할 수 없는 그 어떤 운명도 아닌, 인간의 이기심과 잘못된 자원의 분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쓰레기로 가는 음식은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도둑질과 같다”라고 전한 교황은 어린 시절에 식탁에서 빵이 떨어지면 즉시 빵을 주워 입을 맞추라고 가르침을 받았던 것을 상기하곤 했다. 어린 시절 교황은 “그때 절대 빵을 버리지 않았다”며 “빵은 우리에게 먹으라고 주는 하느님의 사랑의 상징임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가난한 이들과 빵을 나누는 삶 실천코로나19 이후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기도와 영적 지지뿐 아니라 바티칸 수입이 제로가 될지언정 전 세계 최빈곤층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의료기구와 생활 지원금, 음식을 지원하라”고 당부하고 몸소 실천했다. 또 교황은 로마 근교 위태롭고 유해한 환경에서 사는 다수 어린이들을 포함해 아프리카 난민들 1000여 명에게 파스타와 쌀, 토마토, 우유 등의 식품과 비누, 소독제, 마스크, 체온계 등을 지원해 주었다. 이 같은 그의 자선은 교황이 되고 나서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람보르기니 슈퍼카 기증 건이다. 2017년 11월에는 폭스바겐의 슈퍼카ㆍ스포츠카 브랜드인 람보르기니사에서 바티칸시국 국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흰색에 노란 띠를 두른 신형 ‘우라칸 후륜구동’(Huracan RWD) 모델을 맞춤형 개인 한정판(Ad Personam)으로 특별 제작해 기증하자 교황은 그들의 기증에 감사를 전하며 경매에 내놓았다. 2018년 5월 12일 세계 최대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소더비(Sotheby)’ 경매에서 교황의 서명이 담긴 람보르기니 우라칸은 71만 5000유로(약 9억3000만 원)에 팔렸다. 시가의 세 배를 훌쩍 넘는 경매가였다. 추측건대, 람보르기니사의 기증은 교황을 통해 이 차를 판매한 수익금이 가난한 이들에게 더 많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기대가 담겨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즉시 교황은 이 차의 경매 수익금을 곤경에 처한 네 곳의 자선 단체에 기부하였는데, 그 단체는 주로 어린이들과 여성들에게 헌신하는 단체들이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은 여전히 소형차인 피아트의 친퀘첸토(500)를 즐겨 타고 다녔다. 교황은 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해 하며 절약과 절제의 연대를 추구하는 생활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섬세한 감수성으로 가정 안에서 선(善)을 존중하는 새로운 생활 방식을 가꾸어 나가는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권고한다. “가정에서부터 어떤 것이든 남용하지 않는 작은 실천으로 환경 보호와 어려움에 처한 가난한 이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시선을 두어야 한다는 것은 복음의 교회의 초석이 되는 길이고, 가난한 이들과 배고픈 이들에게 빵을 나누는 행동의 바탕이 되는 가장 강력한 행동”이라고 당부한다. “치커리아 삶은 물은 버리지 마세요”산타 마르타의 식당 요리사에게 “치커리아를 삶은 물은 얼마든지 마실 수 있으니 버리지 말라”고 주문하는 게 교황이다. 벌써 올해로 제정 6주년을 맞는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이 시작된 저 심연의 작은 빛은 이러한 교황의 작은 실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2022년 11월 13일 주일에도 그는 예년처럼 가난한 이들을 자신의 식탁에 초대할 것이다. “그분께서는 부유하시면서도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습니다”(2코린 8,9)라는 성경 말씀을 올해 주제로 정하였다. 그러고 나서 교황은 우리에게 소매를 걷어붙이고 이러한 실천에 직접 참여하라고 주문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관한 마지막 글을 쓰면서 내 삶 안의 주변을 둘러보았다. 즉각적이고 시급한 것 중의 하나인 일회용품과의 단절은 나의 손녀와 어린 세대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미소 짓고 주변에 평화의 기운을 퍼뜨리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은 참으로 행복했다. “나는 교구를 바꿨을 뿐이에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로마로요. 하하하!” 로마에서도 그가 좋아하는 쌀 요리는 피에몬테식 리소토(Risotto alla piemontese)이다. 오늘의 레시피다. 이 리소토는 정성스레 쌀을 저어가며 만드는 기다림의 음식이다. 어렸을 적에 어린 교황을 위해 로사 할머니가 만들어 주던 그 가슴 뛰던 기다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콘클라베 직후, 재단사는 교황에게 하얀 수단을 주며 “교황님, 양말도 흰색으로 신으셔야 합니다”란 말에 화들짝 놀란 교황은 “아닙니다. 전 아이스크림 장수가 아니거든요. 하하하!” 하고 웃었다. 아이스크림 장수의 흰 가운보다 더 하얀, 접시에 담긴 하얀 리소토를 보니 프란치스코 교황의 환한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부온 프란조(Buon pranzo)!” 레시피 / 피에몬테식 리소토(Risotto alla piemontese) ▲준비물: 채수(양파, 샐러리, 당근을 우린) 1ℓ, 버터 20g, 양파 2분의 1개, 쌀(이탈리아 리소토용 쌀 Carnaroli) 100g, 2분의 1컵의 화이트 와인(드라이), 그라나 파다노(Grana Padano) 치즈 가루 2큰술, 소금. →양파, 샐러리, 당근을 넣고 채수(적당량의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춘다)를 끓인다. →양파는 잘게 다져 팬에 10g 버터를 넣고 볶는다. 양파가 투명하게 볶아지면 쌀을 넣고 2분간 볶는다. 화이트 와인을 붓고 완전하게 알코올이 날아가면 그때부터 끓고 있는 채수를 조금씩 넣어가며 쌀(리소 Riso)을 저어가며 익힌다. 익힘의 정도는 알덴테(Al dente, ‘치아로 씹었을 때 단단함이 느껴질 정도로 설익었다’는 뜻)가 적당하지만, 개인 취향에 따라 익히면 된다. →대략 15분 정도 볶다가 불을 끄고, 남은 버터와 그라나 파다노를 넣고 잘 섞은 다음, 접시 한가운데에 담은 다음 리소토가 펼쳐지게 접시 밑을 탁탁 친다. ▲모니카의 팁 : 카르나롤리(Carnaroli, 이탈리아 리소토용 쌀) 대신, 씻어 말린(쌀이 젖어 있으면 죽이 되기 쉽다) 우리 쌀을 쓴다. 1인분의 리소토의 양을 내 경우에는 어른 밥숟가락으로 네다섯 숟가락 정도로 양을 맞춘다. 채수는 같은 양의 양파, 샐러리, 당근을 넣고 끓이는데, 이 베이스는 그 어떤 요리에 넣어도 좋은 나의 최고의 팁이다. 피에몬테가 이탈리아 북부이다보니 버터를 많이 쓴다. 내 경우는 버터 대신 올리브유를 쓴다. 화이트 와인은 반드시 드라이(쎄코 Secco)여야 한다.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 대표cpbc2022.07.20

‘힘들면 그냥 관둬’ 듣곤 해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교리교사로 행복”[나는 가톨릭 청년이다] (3) 교리교사 이예지 (제노베파, 서울대교구 쌍문동본당)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앞에서 만난 교리교사 이예지씨가 미소를 짓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면서 본당 주일학교도 2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그리웠던 선생님과 친구를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학생들은 벌써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다. 교리교사들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는 중이다. 저출산과 코로나 여파로 주일학교에 적잖은 변화가 있는 만큼 이들은 요즘 고민이 많다. 특히 학업이나 취업ㆍ결혼 등 한창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은 청년은 더욱 그렇다. ‘나는 가톨릭 청년이다’ 세 번째 주인공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20대 교리교사다. 서울대교구 쌍문동본당에서 6년째 초등부 교사를 하는 이예지(제노베파, 24)씨를 만났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저출산·코로나19로 달라진 주일학교 풍경 “2년 전에는 글자를 몰라서 자기 이름을 ‘그려달라고’ 했던 아이들이 이젠 알아서 이름을 잘 쓰더라고요. 참 대견했죠.” 코로나19 이전에 유치부 수업을 맡았던 이예지씨가 ‘어느새 학생들이 많이 커버렸다’며 웃었다. 쌍문동본당 주일학교는 지난 4월 17일 주님 부활 대축일부터 대면교육을 재개했다. 그전에는 비대면 화상회의 방식으로 교리교육을 했다. 초등부는 유치부부터 6학년까지 한꺼번에 모아 진행했다. 다 합쳐야 20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쌍문동본당 초등부 학생 수는 4년 전만 해도 세 곱절인 60명에 달했다. 이제 학년마다 반을 꾸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씨가 맡은 유치부도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저학년을 아우르고 있다. 주일학교 학생이 줄어든 데는 신앙보다 학업을 중시하는 학부모 영향도 크다. 많은 이들이 자녀에게 성당 갈 시간에 학원에 가라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교사나 신부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과연 그런 학부모들 가운데 주일 미사에 꾸준히 참여하며 신앙의 모범을 보이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씨의 경우는 달랐다. ‘학교나 학원 수업은 빠져도, 미사는 절대 빠지면 안 된다’는 게 어머니의 신조였다. 그 덕에 자연스레 신앙생활을 습관화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교리교사를 한 이유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주일학교 선생님들’ 모습이 멋져서였다. “학생들로 북적북적한 게 주일학교다운 모습인데, 지금 상황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그래도 저희 본당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긴 해요. 같은 지구 어느 본당에선 주일학교가 아예 없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라고요.” 교리교사 그만두고 냉담에 빠지는 이유 주일학교가 없어지는 본당은 학생보다도 교사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 이유에 대해 이씨는 “청년들이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교리교사는 일주일에 하루만 봉사하는 것 같지만, 실은 평일에도 교육이나 행사 등 준비할 게 많다”며 “그만한 시간을 투자하는 게 청년들에게 벅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일 내내 바쁘게 살아온 청년에게 주말을 온전히 쉬고 싶다는 욕구도 강렬할 것”이라며 “이런 이유로 주일학교를 그만두는 교사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그럴 때마다 아이들에겐 선생님이 꼭 필요하다고 말리지만, 마냥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자기 삶이 바쁘다는데, 어떻게 계속 말리겠어요. 그래서 다들 아쉬운 마음은 크지만, 언행을 조심할 수밖에 없어요.” 장기근속 교리교사 중에는 ‘고인 물’이 되고 싶지 않아 관두는 이들도 많다. 스스로 언행에 부담을 느끼는 경우다. ‘꼰대처럼 보이진 않을까’ 걱정도 하게 된다. 이씨도 최근 비슷한 심정이다. “이제 갓 스무 살인 신임 교사와 나이와 연차 차이가 꽤 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무슨 말을 하면 그들에게는 꼭 따라야 하는 ‘법’처럼 되는 거예요. 제가 말한 게 결코 정답은 아닌데…. 그래서 어린 교사들 눈치도 보이고, ‘손뼉 칠 때 떠나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럼에도 이씨는 아직은 그만둘 마음은 없다. 사랑하는 학생들이 커가는 모습에서 큰 행복감을 느끼는 까닭이다. 조건 없이 예수님과 하느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아이들 모습에서 신앙이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그는 힘이 닿는 한 교리교사를 계속할 생각이다. 이씨의 언니도 중고등부 교리교사를 하다가 고인 물이 되기 싫다는 이유로 그만뒀다. 5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그는 “잠깐 쉬고 싶다”고 가족에게 통보했다. 언니는 벌써 3년째 냉담 중이다. 이씨는 “동료 교사 언니들도 하나같이 냉담해서 당분간 교회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만둔 교리교사들이 냉담에 빠지는 일은 흔하다”고 밝혔다. 지친 까닭도 있지만, 혼자 하는 신앙생활에 익숙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학생과 동료 교사들과 함께 미사에 참여했는데 이젠 혼자 해야 하니까 어색한 거예요. 또 미사 끝나고 회의하고, 놀기도 했는데 곧장 집에 가야 하니까 그 괴리감이 큰 거죠. 물론 신앙 그 자체만을 바라보고 성당에 가는 게 맞는데, 그러기가 어려운 모양이에요.” 종교 활동에 흥미 못 느끼는 청년들 청년 신자가 꾸준히 늘어나 교리교사를 하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이씨는 “신자를 새로 유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또래 20대 청년이 대부분 종교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친한 친구 중에 종교, 특히 가톨릭을 믿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며 “그 친구들은 저를 보고 진심으로 의아해 한다”고 덧붙였다. “돈처럼 실질적으로 얻는 게 없는데, 도대체 주말마다 왜 성당에 가서 시간을 쓰느냐고 묻더라고요. 제겐 그런 물질적 이익보다 아이들의 행복과 신앙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공감을 못 하는 것 같아요. 가끔 제가 성당 일 때문에 스트레스받는다고 말하면 ‘그럼 그냥 관둬’라고 쉽게 말하기도 하고요. 더는 성당 이야기를 안 하게 됐어요.” 이씨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종교에 대한 청년들의 반감이 한층 커졌다고 했다. “종교활동을 열심히 하면 말 그대로 ‘괴짜’나 ‘좀 이상한 애’ 취급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종교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많이 일어난 탓에 부정적인 인식이 커졌다고 그는 추측하고 있다. 이씨에게도 종종 ‘예수쟁이’와 같은 직설적인 공격이 날아오곤 했다. “‘이렇게 한다고 진짜 천국 갈 것 같으냐’ ‘진짜 그 정도로 하느님을 믿느냐’는 질문도 들었어요. 저야 당연히 신앙에 확신이 있어서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또래 집단을 많이 의식하는 청년은 눈치 보다 냉담의 길로 빠지기 쉬울 것 같아요. 그런 친구들에게 잘못한 거 없으니 당당한 신앙인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청년 신자 늘리기보단 유지에 집중해야 “청년 신자 수를 늘리기보다 유지하는 방법부터 찾는 게 급선무”라고 이씨는 강조했다. 교회에 개선책을 제안해 달라고 하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교회에서 정확히 뭘 하는지 몰라 문제점을 말해주기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씨는 “일단 홍보가 필요할 것 같다”며 “주보를 보면 귀퉁이에 자그맣게 쓰여 있는데 눈에 잘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청년을 위한 프로그램은 성경공부 이런 게 제일 많이 보이더라고요. 솔직히 재미없어 보여요. 교회가 제시하는 청년 활동은 대부분 신앙심을 높이는 것뿐이라 단조롭게 느껴져요. 청년들이 무얼 하고 싶어 하는지 먼저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이씨는 “성지순례나 꽃꽂이처럼 청년끼리 함께 무언가를 하며 친밀감과 유대감을 다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 더 낫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본당에서 엠티 같은 걸 많이 갔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사실 재미란 걸 무시할 순 없잖아요. 그렇게 청년들끼리 유대감과 친밀감을 쌓으면 서로 신앙생활에 버팀목이 돼줄 수 있을 거예요.” 이학주2022.07.19

수많은 계단을 오르며 온몸으로 느끼는 신앙[미카엘의 순례일기] (59)하느님의 집으로 올라가는 마음 자유도, 희망도, 평등도 없던 시대의 민중들은 아름다운 성당을 보며 천국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사진은 포르투갈 봉 제수스 두 몬테 성당. 유럽의 대성당을 순례하다 보면, 그 규모와 웅장함, 화려함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동시에 의문이 들게 됩니다. ‘그 당시에는 인구도 많지 않았을 텐데 이토록 큰 성당이 필요했을까?’, ‘가난했던 민중의 삶에 비해 너무나 화려한 성당이 오히려 하느님과 신앙인의 사이를 멀어지게 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중세 시대의 문맹률은 무려 95%에 이르렀습니다. 귀족이나 학자가 아닌 대다수 사람들은 글을 읽기는커녕 책을 구경하기도 어려웠습니다. 15세기에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판 인쇄술을 발명하기 전까지 모든 출판은 필사로 이루어졌던 데다, 책은 고사하고 종이 자체가 귀한 시대였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글이나 책을 대신해서 종교의 교리와 신앙의 원리를 이해해주는 다양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그 시대의 신앙인들은 평생 가난하고 비참한 현실 속에서 살아갔습니다. 자유도, 평등도, 희망도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들이 가진 유일한 희망은 천국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천국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바로 성당이었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성당을 보며 하느님 나라의 풍성함에 위로를 받았던 것이죠.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풍성함이 결코 이런 물질적인 화려함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중세의 신앙인보다 성숙한 신앙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잣대로 그 시대의 것을 평가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글조차 읽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서 성당 벽면에 이토록 정교한 성경의 구절을 조각해놓았고, 대를 초월한 모든 성인의 통공을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성인상을 만들었으며, 높고 위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창을 설계했지요. 순례 중 마주치는 풍경을 그 시대를 살아갔던 신앙인의 눈으로 보려 한다면, 더욱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한국의 신자들이라면 포르투갈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파티마를 떠올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파티마를 제외하고도 포르투갈에는 순례할 곳이 아주 많습니다. 포르투갈 속담에 “코임브라에서 공부하고 포르투에서 일하라. 리스본에서 돈을 벌고 인생의 마지막은 브라가에서 기도하며 보내라”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포르투갈은 도시의 특색이 분명한 나라인데, 개중 브라가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매우 종교적인 분위기를 가졌습니다. 그곳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은 봉 제수스 두 몬테(Bom Jesus do Monte)입니다. ‘산 위에 있는 선한 예수 성당’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 성당은 계단이 많기로도 유명해서, 노약자를 위해 계단 옆에 푸니쿨라를 설치하였습니다. 간혹 순례자 중에도 이 궤도열차를 이용해 성당을 순례하려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저는 꼭 걸어 올라가도록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성당을 향해 걸으며 그 시절의 신자가 어떤 마음으로 성당을 향해 걸어갔을지 묵상하자고 권합니다.성당 입구까지는 여러 차례 구부러진 오솔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길이 구부러진 곳마다 작은 경당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경당은 모두 주님의 수난과 관련된 곳입니다. 닫힌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안을 들여다보면, 나를 위해 수난을 당하시는 모습이 조각된 예수상을 바라보며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걸어 올라가면 일렬로 늘어선 백여 개의 계단을 만나게 됩니다. 그 계단은 다섯 번에 걸쳐 좌우로 교차하여 오르내리도록 만들어져 있고, 다섯 번의 교차점에는 분수가 하나씩 마련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오감을 상징하는 그곳에서 성당을 오르는 우리는 눈, 코, 귀, 입 그리고 나의 몸을 씻습니다. 보고 냄새 맡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나의 오감을 하나씩 씻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집을 향해 나아갈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해야 하며,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나의 오감(五感)을 하나씩 정화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글을 읽지 못했던 그 시대의 신앙인에게 이 길은 하느님의 집으로 나아갈 때 어떤 마음이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교리 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비록 교리서를 읽을 수 없더라도 신앙의 의미를 온몸으로 느끼려 했던 예전의 신앙인들처럼, 봉 제수스 성당의 그 길을 침묵으로 걸으며 기도하는 시간이 어서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cpbc2022.03.15
![[궁금해요!] 신자들은 신년운세를 보거나 점(占)집에 가면 안되나요?](//cpbc.co.kr/CMS/newspaper/2022/01/rc/817177_1.0_titleImage_1.jpg)
[궁금해요!] 신자들은 신년운세를 보거나 점(占)집에 가면 안되나요?점술 믿는 행위는 신앙을 훼손교회는 점술을 믿는 행위에 대해 올바른 신앙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피해야 할 죄라고 가르친다. 가톨릭평화신문 DB Q. 연초면 사주팔자, 신년운수를 보기도 하고, 꿈을 꾸면 재미삼아 해몽을 보기도 합니다. 천주교 신자는 운세나 해몽 같은 걸 보면 안 되는 건가요? A. 한 해가 시작됐지요. 신년이라 점집을 찾아 운세를 보기도 하고 또는 인터넷 사주팔자를 보기도 합니다. 재미삼아 ‘오늘의 운세’를 찾아보기도 하지요. 또 간밤에 꿈을 꾸고 나면 '무슨 뜻이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인터넷 등에서 해몽을 찾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임신부 혹은 그 가족은 '어젯밤 꿈이 태몽이 아닐까'하는 마음에 꿈해몽 누리방을 뒤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또 돼지꿈을 꿨다고 복권을 사러 달려간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어떤 이들은 사주를 보고 난 후 부모님과 가족들의 결혼 반대에 부딪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또 신년 운세를 보았더니 사업이 안 풀릴거라며 이름을 바꾸거나 부적을 써야 한다는 역술인의 말에 고심을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가톨릭교회에서는 점술을 믿는 행위는 올바른 신앙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피해야 할 죄라고 가르칩니다. 점이나 운세를 보는 행위는 미래의 불행과 고통을 피하고, 행복을 찾고 싶어하는 기복신앙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재미삼아 점이나 운세를 보는 게 자꾸 반복되면 결국 점술에 의지하는 꼴이 되겠지요. 꿈 풀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꿈풀이의 경우, 신앙적으로 무조건 기복신앙으로 몰아붙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구약에서는 꿈을 하느님 계시를 전하는 하나의 매개체로 간주합니다,(민수 12,6 ;욥기 33,15) 하지만 개인의 독자적 운명과 관계되기보다 백성 전체의 역사, 곧 구원사와 밀접하게 관계돼 있습니다. 또 신약에서는 꿈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계시가 예수님을 통해 완전히 드러났기 때문이지요. 하느님과 인간을 직접 이어줄 분이 오셨기에 꿈 같은 다른 계시 수단은 필요하지 않았던 겁니다.혹시 불길한 꿈을 꾸었거나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답답하시다면 주님 은총을 청하는 기도를 올리고 마음을 정리하는 것은 어떨까요! 걱정이 앞서 신년 운수를 보고 역술가의 말에 의지하기보다는 하느님이 주신 ‘은총의 시련’에 대해 묵상하거나 성사 생활을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 더 신자다운 방법일 것입니다. 재미삼아 해몽이나 오늘의 운세를 보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반복되고 운세나 해몽에 의지하게 된다면 결국 기복신앙과 다를 바 없을 겁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116항] 모든 형태의 점(占)을 물리쳐야 한다. 사탄이나 마귀들에게 의뢰하는 것, 죽은 자를 불러내는 것, 미래를 ‘꿰뚫어 본다’고 하는 그릇된 추측 등이 그러한 예이다. 탄생 별자리를 믿는 것, 점성술, 손금, 전조(前兆)와 운명에 대한 해석, 환시 현상, 점쟁이(무당)에게 물어보는 일 등에는 시간과 역사, 나아가서는 인간까지 지배하는 능력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감추어져 있으며, 신비로운 능력들을 장악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은 우리가 당연히 하느님 한 분께만 드려야 하는, 사랑의 경외심이 포함된 영예와 존경을 거스르는 것이다. cpbc2022.01.14

코로나19로 사이버성경·온라인 교육 인기수원 성경학교에 신청자 몰려… 서울, 구역반장학교 영상 교육 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팀 양경모 신부가 교육용 유튜브 영상을 촬영하고 있다. 2일 개설한 수원교구 사이버성경학교에 하루 평균 80명에서 100명에 달하는 수강 신청자가 몰리고 있다. 수원교구 사이버성경학교는 성경공부를 시작하는 신자들을 위한 첫걸음 과정,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성경 공부를 위한 일반 과정과 단과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과정마다 성경에 관한 지식과 성경에 담긴 가르침을 쉽게 익힐 수 있는 다양한 온라인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첫걸음 과정은 모세오경, 역사서, 예언서 등 6개 강좌, 일반 과정에는 요한복음서, 가톨릭 서간, 요한묵시록, 역사서 등 8개 강좌, 단과과정에는 ‘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 하기’, ‘성서 이해를 돕기 위한 배경 지식’, ‘4복음서 비교를 통한 그리스도론’ 등 3개 강좌가 열리고 있다. 첫걸음과 일반과정은 4개월, 단과 과정은 3개월이다. 강사진에는 이용화ㆍ김효준ㆍ김승부 신부, 김혜윤ㆍ김영선ㆍ이혜정 수녀 등 성서신학자와 황창연 신부가 참여하고 있다.수원교구 제2대리구 성경사목 담당 박솔라 수녀는 “교구가 주관하는 성경 공부 개강이 4월 초로 연기된 데다 많은 행사와 교육이 취소나 연기가 된 상태라 온라인 말씀 공부에 관심을 갖는 신자들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대교구 사목국(국장 조성풍 신부)은 2월과 3월 실시할 예정이던 구역반장 월례연수가 코로나 19로 취소됨에 따라 이를 영상으로 대체하여 제작해 유튜브로 송출할 예정이다. 기획연구팀에 마련된 스튜디오를 활용하여 3월 초에 구역반장 월례연수 영상을 촬영했다.사목국 기획연구팀은 “서울대교구가 실시하려던 교육이 코로나19로 인해 중단되면서 유튜브 영상을 찍고 편집 중”이라며 “구역반장 월례연수 영상 외에도 사목국에서 만든 문제집을 하나하나씩 풀어가는 해설 영상 클립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이상도2020.03.18

피아노 한 음 한 음에 하느님 사랑의 마음 담아 연주합니다[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25) 클래식 피아니스트 에드윈 킴(김성필) 바실리오 클래식 피아니스트 에드윈 킴이 지난해 3월 열린 앨범 쇼케이스 현장에서 미소 짓고 있다. 문덕관 제공 클래식 피아니스트 에드윈 킴(김성필 바실리오)은 다채로운 음색에 더불어 이성과 감성의 정제된 조화가 돋보이는 연주자라고 평가받는다. 그는 예원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다니다 미국으로 유학, 줄리아드 예비학교를 거쳐 존스홉킨스대학 피바디 음악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수상이나 연주회 경험과 같은 이력은 종이 몇 장으로 소개하기 모자랄 정도다. 그는 클래식의 보편화를 위해 노력한다. “클래식은 일부 특별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대중 모두가 함께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실내악 연주뿐 아니라 공연기획, 작곡과 편곡, 보컬 코치, 보컬리스트까지 겸업하는 이유다.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관객과 자유롭게 소통하기 위해 길거리공연도 마다치 않는다. 그는 올해 6월 초 캐나다로 떠나 8월 말까지 강의, 마스터클래스 및 독주회 등을 한다. 나는 에드윈 킴에게 그가 한국에 귀국하는 9월, 명동 파밀리아 채플에서 연주해달라고 부탁했다. ▶언제 천주교 신자가 되었나요?초등학교에 입학할 쯤에는 개신교 교회에 나갔어요. 제가 흥미를 못 느끼고 가고 싶어 하지 않자 가톨릭 모태신앙이셨던 어머니가 “성당 한번 가 볼래?” 하고 권유하셨죠. 성당 문을 열자마자 따뜻한 바람이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감싸고 쓰다듬어주는데, 저도 모르게 “엄마, 여기에 하느님이 계셔!”라고 말했어요. (웃음) 그렇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성당에 다니게 되었어요. ▶어떻게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어요? 5살 때였어요. 친척 집에 갔다가 먼지가 뿌옇게 앉은 업라이트피아노를 열고 이것저것 눌러본 게 시작이었어요. 건반이 내려가던 그 감각과 피아노에서 나던 맑고 청아한 소리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그런 소리가 날 수 없는 악기였는데, 아마도 운명적으로 그렇게 느꼈던 것 같아요. 그때 TV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의 선율을 혼자서 찾아냈는데, 그 희열에 완전히 넋이 나갔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은 느낌이랄까요? 지금까지도 그런 느낌으로 건반 앞에 앉아있어요. ▶하느님이 주신 재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왜 그런 재능을 주셨다고 생각하세요? ‘피아노를 작게 만들 수 있다면 끌어안고 자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항상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좌절할 때마다 욕심에 눈이 멀어 가는 자신을 경계하고 꿈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어요. 하느님께서 저를 꿈을 절박하게 지켜내는 사람과 지켜내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이로 성장시켜주신 것이 은총이라 생각해요. 현실의 벽을 두고 하는 수많은 선택에 대한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공감할 수 있게 되었죠. 음악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고,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 이에게 벗이 되고자 하는 제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해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존중’입니다. 존중을 바탕으로 상황과 상대를 마주한다면 누구나 예수님의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존중보다 판단을 먼저 해 버리면서도 ‘누구나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쓰고 있어요. 서로가 한 호흡만 쉬어가며 편견과 판단 없이 상대를 바라봐줄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평화로운 개개인의 삶이 되고 나아가 상처를 주고받을 일이 줄어드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시련을 겪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요?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가끔씩 꼭 안아주면서 하는 말씀이 있어요. “내 보석, 내 다이아몬드, 내 루비, 내 사파이어….”(웃음) 그렇게 사랑받고 있는 아들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뇌곤 했어요. 그리고 그 사랑이 저를 통해 다른 아픈 누군가에게 기댈 곳이 되어 주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거죠. 그렇게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한 단계 더 성숙한 사람, 발전한 전문가가 되어있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해요.▶삶의 길잡이가 되어 준 성경 말씀이 있다면?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마태 22, 37) 내가 내는 한 음 한 음이 하느님이고, 지금 나와 함께하는 이가 하느님이고, 무대를 함께 만드는 이들이 하느님이며, 객석을 채운 관객이 하느님이라 생각하며 ‘나는 과연 하느님을 내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사랑하고 있는가’를 점검해요. 많이 부족하지만 늘 이렇게 고민하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일상에서 희망을 잃지 않는 방법이나 비결이 있다면?매일 아침 오늘 꼭 해낼 수 있는 쉽고 작은 목표를 세워요.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칭찬 3가지씩 해주기’, ‘연습 끝나고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 말해주기’, ‘기분 나쁜 일이 생겼을 때 호탕하게 웃기’, ‘책을 10페이지 읽기’, ‘오늘은 어제보다 1㎞ 더 뛰기’ 등이에요. 작은 성취를 매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살면서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기적이다’라고 느꼈던 체험이 있다면?2012년 사순 시기 어느 금요일이었어요.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 집에서 쉬고 싶었는데 “사순 시기인데 십자가의 길을 한 번은 해야지”하는 부모님 말씀에 성당으로 따라나섰죠. 십자가의 길 내내 멍하니 있었다가 딴생각에 빠졌어요. 그런데 갑자기 십자가를 향해 경배하는 신자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제가 골고타 언덕에 서 있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는 십자가 바로 밑에 제가 있었죠. 그 밑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현실과 중첩돼서 보였어요. 환시를 본 거예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핸드폰에 글을 적었어요. 그 글은 수정 없이 2013년에 발매한 성가 앨범 ‘고백’에 실린 ‘구원’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되었어요. 다시없는 특별한 체험이었죠.▶앞으로의 에드윈 킴의 꿈이 있다면?저와 같이 자신의 분야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헌신하는 전문가를 모아 커뮤니티를 만드는 거예요. 기술이 인간의 완벽을 대신하는 시대에서 그들과 함께 새로운 콘텐츠로 세상을 ‘사람 냄새’로 흔들기를 바라요. ‘주님의 숨결’이 담긴 콘텐츠가 조금 덜 싸우고 함께 지켜가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해요.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cpbc2022.06.07

이 시대 최고의 성서학자가 풀어내는 죽음과 사후 세계현대 신앙인을 위한 종말론 강의
죽음은 ‘장소’가 아닌 하느님과의 만남
죽음을 하느님 심판으로 다루는 해석 경계 죽음 부활 영원한 생명 바로 알기게르하르트 로핑크 지음김혁태 옮김생활성서인간이 죽으면 죽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 이후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일까. 게르하르트 로핑크(독일 림부르크교구) 신부는 죽음의 문제가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의 양자택일 질문으로는 답을 구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죽음과 관련한 수많은 질문을 펼쳐 보이며 죽음, 부활, 연옥, 지옥, 천국, 영원한 생명 등에 관한 답을 찾아 나간다. 1934년생으로 구순(九旬)을 앞둔 세계적 성서학자가 풀어내는 ‘현대인을 위한 종말론 강의’이기도 하다.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 드러나는 죽음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교는 물론 다양한 종교와 문화, 역사 안에서 다뤄지는 죽음에 관한 사유도 놓치지 않았다. 저자는 죽음을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풀어나간다. “죽음의 핵심은 살아 계신 하느님과의 만남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고 단언한다. 물론 우리는 살아 있을 때도 자주 하느님을 만난다. 기도 중에도, 어려운 이들을 도와 봉사하는 가운데서도 만난다. 저자는 죽음으로 만나는 하느님은 “결정적이고 영원하다”며 차이를 둔다. 죽음 이전에 만나는 하느님은 알 수 없는 분으로 머무르시지만, 죽음에서 하느님은 당신 얼굴을 드러내신다. 로핑크 신부는 잘잘못을 따지고 심판하는 하느님으로 만나는 죽음의 해석을 경계한다. 죽음에서 심판은 하느님이 내리시는 판결이 아니라 모든 것이 전부 드러나는 사건이다. 그는 “나 때문에 희생된 이들을 심판에서 만나게 되면, 내가 그들에게 가했던 모든 고통을 나 역시 그때 비로소 겪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느님의 진리 앞에서 그렇게 다 밝혀지는 것은 분명 참으로 온전히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했다. 로핑크 신부는 천국, 지옥, 연옥을 시공간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서도 벗어났다. 그는 “죽음을 통해 당도하는 곳은 더이상 어떤 ‘장소’가 아니다”며 “당도하는 유일한 곳은 하느님 자체이고 더 정확히 말하면 하느님과의 만남”이라며 다시금 만남을 강조했다. 그렇기에 연옥은 하느님 은총으로 죽음에서 죄가 정화되는 사건이며, 지옥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의미를 두며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만족하는 상태다. 로핑크 신부가 말하는 하느님과의 만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진다. “예수님은 우리 역사 안에 새겨진 하느님의 자기 증여의 결정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가 영원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인간이 되신 분 안에서 만나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고 했다. 하느님 안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로 연결된다. 하느님과의 만남인 죽음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살 때 삶의 그 무엇도 헛되지 않다. …죽음은 바로 최종적으로 생명에 이르는 것, 자신의 온 삶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의미대로 그렇게 그리스도교적으로 죽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렇게 살고 죽은 한 그리스도인을 그의 임종에서 동반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356쪽)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오늘날 세상을 오도하는 그릇된 종교에는 그릇된 종말론이 자리하고 있다”면서 “올바른 종말론 연구가 더욱 절실해진 이 시대에 이 책의 출판이 더욱 반갑고, 자신이 믿는 바를 올바로 이해하고 싶은 오늘의 신앙인에게 일독을 권한다”며 책을 추천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22.01.26

기꺼이 불행한 이의 친구가 되어준 예수님 생애예수의 삶 인간적으로 그려낸 소설 예수의 생애엔도 슈사쿠 지음ㆍ이평춘 옮김가톨릭출판사종교와 삶, 죽음, 구원, 죄와 악 등의 주제를 깊이 있는 시선으로 그려내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엔도 슈사쿠. 「예수의 생애」는 모성적 하느님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소설로, 예수를 우리 앞에 살아있는 숨 쉬는 한 인간으로 생생히 재현했다. 엔도 슈사쿠가 1970년대에 쓴 작품으로, 한국에는 2003년에 처음 선보인 후 첫 개정판이다. 엔도 슈사쿠 특유의 필치를 더 살렸으며, 새 번역 성경으로 바꾸는 개정 작업을 거쳤다. 작가가 그려낸 예수상은 진정한 하느님을 찾고자 갈망했던 한 인간의 초상으로 집약된다. 소설은 예수가 고향 나자렛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예수가 쿰란 공동체에 머무르며 40일간 단식과 기도로 자신을 소명을 찾는다는 소설적 상상력이 더해진다. 예수는 이 시기를 보내고, 제자들과 함께 ‘사랑의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기적을 통해 고통의 현실에서 구제받기만을 바랄 뿐, 제자들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예수는 고독하다. 그러나 비난과 오해에도 예수는 묵묵히 병자와 가난한 이, 소외받은 이들 곁에 머문다. 소설은 가난하고 불행한 이들의 친구가 되고자 했던 동반자로서의 모습에서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껴안는 모성적인 모습의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한다.엔도 슈사쿠는 후기에서 “소설 「침묵」을 쓴 후 수년 동안 나는 일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예수상을 구체적으로 쓰기 시작했다”면서 “예수의 인간적인 생애의 한 단면에 접근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다만 내가 언급한 예수상이 그리스도교와 무관했던 독자들에게도 조금이나마 실감과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면 이 작업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1923년생인 엔도 슈사쿠는 게이오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했다. 현대 가톨릭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지만 결핵으로 2년 반 만에 귀국한 후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그리스도의 탄생」,「내가 버린 여자」 등이 있으며 「바다와 독약」으로 신쵸사 문학상과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받았다. 1996년에 타계했으며, 동양적 정서에서 그리스도교 토착화 문제와 인간의 죄와 악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지혜 기자 평화신문2021.10.27
독일 쾰른 한인본당 설립 50주년 미사 봉헌신자들 성경 필사 노트·통독 카드 봉헌… 유튜브로 미사 생중계 독일 쾰른 한인본당(주임 조병환 신부)은 6월 28일 독일 랑엔펠트 현지 성당에서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다짐했다. 미사를 주례한 조병환(청주교구) 주임 신부는 “쾰른 한인천주교회에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면서 “초창기 공동체 설립에 애쓴 평신도 지도자와 사제들의 첫 마음을 기억하고 100년을 향한 영적 쇄신과 사랑 실천을 위해 노력하자”고 말했다. 모처럼 한복과 정장을 차려입은 신자들은 이날 미사에서 성경 필사 노트와 성경 통독 카드를 봉헌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받은 본당 설립 50주년 축복장도 봉헌해 의미를 더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성당에는 60여 명만이 입장했고, 나머지 신자들은 마당과 회관에서 미사에 참여했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초청 계획도 코로나19로 취소됐다. 미사는 쾰른 한인천주교회 유튜브로도 생중계됐다. 미사 후 축하식에서는 본당 설립 50주년을 위해 노력한 신자 5명이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 명의의 감사패를 받았다. 신ㆍ구약 성경을 완필한 신자 14명과 성경 통독을 완독한 신자 30명에게는 장 주교 명의의 축복장이 전달됐다. 쾰른 한인천주교회는 본당 설립 50주년을 뜻깊게 보내기 위해 2018년 50주년 기념위원회를 꾸리고 3년간 준비해 왔다. 50주년 기념 영성을 ‘감사, 소통, 정화, 참여, 사랑’으로 정하고, 신자들의 내적 성장을 다지는 데 집중했다. 50주년 기도문 제정, 묵주기도 50만 단 바치기, 도보 순례, 성경 필사, 성경 통독 등의 행사를 펼쳤다.쾰른 한인본당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간호사와 광부로 독일에 파견된 한인들이 정착하면서 한인 가톨릭 공동체가 생겨났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하며 방학마다 독일 신자들을 찾아와 미사와 성사를 집전해 준 원필호 신부가 쾰른 한인본당의 씨앗을 뿌렸다. 이후 신자들은 쾰른대교구와 한국 주교회의에 한인 전담 사제를 공식 요청했고, 1970년 6월 초대 주임이 공식 파견됐다. 1990년대에는 신자 1000명이 넘는 공동체로 성장했으며, 2008년에는 신경수(쾰른대교구) 종신부제를 배출했다. 현재 쾰른 한인본당 신자는 395명이며 쾰른ㆍ본ㆍ아헨ㆍ뒤셀도르프 4개 구역 22개 반이 활동하고 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20.06.30

무관심에서 벗어나 착한 사마리아인의 모범 따라야[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21. 사회 공동체의 위기 ④ 잔인하고 위험한 무관심 서로에 대한 무관심으로 형제들에 대한 정의가 사라질 때, 이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모든 생명이 위험해진다. 그림은 ‘부자와 라자로’ 에히터나흐 필사본. 출처=위키피디아 2013년 10월 1일, 필자는 한 인터넷 신문기사의 사연을 접하고 씁쓸하고 우울했던 마음을 한동안 떨칠 수 없었다. 그 기사는 부산 시내 한 주택가에서 돌아가신 지 5년가량 지난 한 할머니의 시신이 백골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집주인은 몇 년간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할머니 시신을 발견했는데, 그 당시 할머니 모습은 두꺼운 옷을 아홉 겹 껴입고 손에는 목장갑을 낀 채, 백골 상태로 반드시 누워있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살던 건물은 단층 짜리 다세대 주택으로 모두 세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이웃들은 할머니가 사정이 생겨 집을 비웠다고 생각했을 뿐, 돌아가신 사실은 까맣게 몰랐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홀몸노인으로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한 인간의 외로운 죽음도 안타까운 일인데, 더군다나 5년이 지나 백골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생각하니, 그 죽음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오늘날 이웃에 대한 무관심한 세태가 몹시 원망스러웠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가? 더불어 필자 역시 무관심한 세태에 편승하여 어려운 이웃들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살아온 모습이 ‘잔인한 무관심의 공범자’라고 여겨져 부끄러움이 밀려왔다.무관심은 아주 위험하고 잔인한 태도2020년 10월 3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 회칙을 반포하셨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교황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존엄성을 지니도록 창조되었을 뿐 아니라, 형제자매로 살아가도록 불림 받았음을 강조한다. 우리 시대는 과학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예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가 하나의 세계로 연결돼 서로 이웃하여 살아가고 있음을 언급한다. 하지만 우리들이 서로에게 소속감을 주는 형제적인 사랑을 실천하고 있지 못하며 개인적인 이익만 북돋을 뿐, 삶의 공동체 차원은 약화시켜, 점점 고독해지고 고립되어 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12항) 교황은 특히 잔인한 무관심(72항), 위험한 무관심(73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우리가 사는 사회공동체가 서로에 대한 무관심으로 말미암아 위태로운 상태임을 상기시켰다. 요컨대 ‘무관심’은 자신의 감정에 거리를 두는 중립적인 태도가 아니라 아주 위험하고 잔인한 태도임을 강조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권력, 축재, 분열의 삿된 이익에 동원되는 폭력”(72항)에 동조하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세계의 많은 곳을 황폐한 거리로 만들 뿐 아니라 기회의 박탈로 소외된 많은 이들을 이 황폐한 거리에 내모는 것”(71항)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황은 불편한 상황이 우리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눈길을 돌리고 옆을 스쳐 지나가는 상황들을 무시하는데 우리가 익숙해져 있을 뿐 아니라(64항), 우리 사회 역시 자기 자신에만 사로잡혀 고통받는 사람들을 불편하고 번거롭게 여기는 잔인한 사회, 타인의 고통에 등을 돌리면서 번영을 추구하려는 병든 사회라고 말한다.(65항) 사회적 책임 촉구한 프란치스코 교황우리가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서로에게 소속감을 주지 못하고 이웃에게 무관심하고 냉담할 뿐 아니라 폭력까지 휘두르는 것은 ‘죄의 상처’로 인해 ‘카인의 죄’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연쇄적인 죄의 상처가 치유되는 순방향이 아닌, 오히려 악화되는 역방향, 즉 형제에 대한 무관심과 냉담함, 폭력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서로에 대한 무관심으로 형제들에 대한 정의가 사라질 때, 이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모든 생명이 위험해진다고 성경은 말한다. “나는 모든 살덩어리들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였다. 그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 찼다.”(창세 6,13) 오늘날 인류가 형제적인 책임이라는 요청을 수준 높게 이루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능하게 계속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창세기 하느님의 경고가 더 큰 재앙의 형태로 우리에게 현실화될 것이다. 돈과 잘못된 가치에 대한 우상숭배, 하느님이 창조하신 생명 질서에 대한 도전, 형제애에 대한 상실과 서로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의 삶을 뒤틀리게 할 뿐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곧 이 세상을 얼마나 위태롭게 하고 있는지 그 위험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형제들」 회칙에서 루카복음 10장에 등장하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우리의 무관심에 빛을 비추고 있다. 강도 만난 쓰러져 위험 중에 있는 사람을 보살피지 않고 냉혹하게 지나치는 ‘사제’와 ‘레위인’의 모습에서(루카 10,31-32) 오늘날 ‘무관심’의 역병에 걸린 우리들의 모습을 성찰하게 한다. 무관심은 위험에 처한 약자들의 ‘존엄성’을 보호하지 않고 방기하는 잔인한 태도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비유는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이 세상을 새롭게 건설하기 위해서는 어떤 근본적인 선택을 내려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되는 것이다.(67항) 우리가 무관심과 냉담한 자세를 넘어서서 쓰러진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일으키고 회복시켜 가는 ‘공동선’을 추구할 때, 무너져가는 공동체는 재건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 회칙에서 ‘사회적 책임’을 촉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 마디가 가슴 깊이 와 닿는다. “고통 앞에서 무관심한 삶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닙니다.”(68항)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cpbc2022.04.20

20년차 이정민 아나운서의 새 꿈, 어려운 아이들 지원 시스템 만들고파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3) 아나운서 이정민 (체칠리아)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늘 주님께 털어 놓는다는 이정민 아나운서. 좀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그는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와 기부자를 연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얼마 전 내년에 서울에서 개최될 시그니스(SIGNIS) 세계총회를 준비하는 조직위원회의 출범 미사가 있었다. 시그니스는 TV, 라디오 등 미디어에서 활동하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모임으로 100여 개국에서 참여하고 있다. 이날 미사는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소수 인원이 참여해 넓은 주교좌 명동대성당 코스트홀이 휑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런데 미사 후 발대식에서 MBC를 대표하는 이정민(체칠리아)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잡자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큰 키에 저음인 그녀의 목소리는 귀에 쏙쏙 들어오며 세련된 진행 능력과 순발력은 임명장 수여식 때 더욱 빛났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들을 호명할 때 긴 프로필을 몇 단어로 압축하면서 이름을 불러 분위기를 북돋웠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여전히 건강하고 반듯하며 우아하다. ▶어린 시절 집안 분위기는 어떠했나요?저희 집안은 조부모님 세대부터 천주교 신자셨고 어머니는 결혼 후 천주교인이 되셨어요. 저와 오빠는 유아세례를 받았고 초등학교 때 첫 영성체, 고등학교 때 견진성사를 받았어요. 모태 신앙인 거죠. 주일학교 참석은 학교에 가는 것처럼 당연했어요. 식사 전 기도와 잠자기 전 기도, 주일미사, 성경 읽기, 묵주기도, 화살기도 등이 일상이었어요. ▶일상이 거의 수도원 수준인데요?(웃음) 학창 시절엔 어떠셨나요?해운대여자고등학교 시절 때는 한 가지 더 특별한 루틴을 가졌어요.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전 성당에 들러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씩 기도를 드렸어요. 그래서 학교에 지각하지 않으려면 새벽 6시엔 집을 나서야 성당에 들를 수 있었어요. 3년 동안 학교 가는 날은 하루도 빠지지 않았어요. ▶그런 고등학생이 있다는 것이 대견하고 기특하고 놀라운데요. 사실 고등학교 학창 시절에 쉬운 일이 아닌데요?지금 생각하면 한겨울에는 너무 춥고 길이 무서워 종종걸음으로 땅만 보며 성당까지 걸어갔던 장면이 떠올라요. (웃음) 무슨 간절함이 나를 움직였을까 생각하면 고요한 아침,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감실에서 나오는 불빛 옆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예수님의 온화함이 따뜻한 음성이 되어 들려오던 기억이 뚜렷해요. 거기서 받은 위로로 팍팍했던 학창 시절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제 인생에서 큰 힘이 되는 시간이었어요.▶어려서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셨나요?철부지 어린 마음에 좀 더 행복한 세상을 만들려고 정신과 의사나 기자가 꿈이었어요. 정작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 기자가 됐어요. 기자로 2년을 근무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아나운서를 지원하게 됐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여성 1명을 뽑는 MBC 아나운서에 합격했어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셈이죠. 이제 아나운서 20년 차인데 되돌아보면 자랑스럽고 대견했던 기억보다는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만 떠오르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인가요?때마침 아이들에게 피자와 치킨을 사주었을 때 물어봤어요. 고맙게도 두 아들이 엄마는 사랑이 넘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하네요. 저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가장 우선시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요. 물론 훈육도 게을리하진 않아요. 아이들이 언제라도 달려와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너무 큰 욕심인가요?(웃음) 그렇게 충분히 사랑받고 나면 홀로서기도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일상 속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철저히 홀로된 순간을 보내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아요. 동굴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혼자 산에 오르거나 혼자 차를 몰고 가까운 공원을 찾아요. 아니면 1~2시간만 나만의 시간을 달라고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방 안에 들어가 나오지 않아요.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회복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진로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누구에게 조언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해요. 다만 20대인 후배들에게 젊음이 그 자체로 얼마나 찬란한지 알려주고 싶어요. 그 팔딱거리는 에너지를 외면하지 말고 온전히 자기편이 되어주길 바라요. 나이가 들어가면 뜨거운 가슴은 식어갈지 몰라도 은근하고 묵직한 에너지들이 삶을 비춰줄 테니 나이 들어가는 것도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주고도 싶어요. 결국, 그렇게 보면 매 순간 지금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앞날은 또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도 되는 게 인생이지 않을까요?▶이정민 체칠리아의 꿈은 무엇인가요?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힘든 처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는 게 꿈이에요. 아직도 많은 사람이 적절한 기부처를 찾지 못하는 게 현실이에요. 돕고자 하는 마음들을 10세 이하 어린이들과 연결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교육이든 보육이든 그밖에 그 무엇이든 말이죠. 앞으로 제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중이에요. ▶가장 즐겨 하는 기도는 무엇인가요? 학창 시절 매일같이 성당을 가며 하느님과 저는 독특한 친분(?)이 쌓였다는 믿음이 있어요. 친해진 것 같아요. 저만의 생각인가요?(웃음) 그래서 혼자서 중얼중얼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어요. 만약 옆에서 누가 내가 웅얼거리는 것을 보면 이상하게 볼 것 같아요. 그럴 때 주님이 그냥 옆에 계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매 순간의 희로애락을 다 주님께 중얼거리죠. 때론 막 화도 내고 원망(?)도 해요, 내가 지금 너무 아프다고 힘든데 어디 계시느냐고, 왜 이렇게 혼자 내버려 두시느냐고 따질 때도 많아요. 그런데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면서 결국 항상 깨달음을 주세요. 지나고 보면 한순간도 주님은 절 혼자 내버려 두신 적이 없단 걸 말이죠. 그래서 잘 알기에 이젠 조금씩 기다리는 법도 배워 가요.(웃음)▶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나요?“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6) 주님께서 주신 나의 소명이 무엇일까? 늘 고민하게 되는 구절입니다.인터뷰 내내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크고 깊은 뿌리는 어릴 때부터 몸과 마음에 배어 있는 기도와 신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앳된 여고생 이정민 체칠리아가 추운 아침 새벽에 일어나 두꺼운 옷을 입고 집을 나서 부산의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도하기 위해 성당으로 총총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오래 생각날 것 같다.허영엽(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신부 cpbc2021.12.07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30. 희망이 있는 이들의 삶의 밝기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우리나라의 밤은 정말 밝다. 숲을 이룬 거대 빌딩과 네온사인이 가득한 거리는 저 위의 밤하늘과 대조적으로 빛난다. 쉴 새 없이, 잠잘 새 없이 밝은 빛이 보기에 좋지만은 않게 여겨진다. 몇 년 전 수녀회의 일로 로마에 갈 일이 있었다. 비행기 푯값이 조금이라도 저렴한 것을 선택하니, 밤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했을 때, 정말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올 때에도 밤 비행기를 타고 왔다. 비행기가 이륙했을 때, 이탈리아 상공의 밤을 보니 놀랍게도 드문드문 켜져 있는 불빛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열두 시간 만에 우리나라에 가까이 온 것을 한눈에 차릴 수 있었는데 바로 불빛 때문이었다. 나는 상공에서 본 우리나라를 보며 깜짝 놀랐었다. 어떻게 이렇게 빈틈없이 밝을 수 있을까?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우리나라인지 굳이 경계를 만들지 않더라도 아주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마치 화산 폭발로 용암이 흘러넘치는 것으로 보였다. 나의 옆자리들에서는 사람들이 출국할 때의 나처럼 “너무 아름답다!”라고 탄성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 장면과 쓰나미가 몰려오는 현장이나 허리케인 현장에서 웃는 얼굴로 인증사진을 찍고 있는 장면과 다르지 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는 금요일 저녁마다 남대문과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하고 계신 분들에게 국밥을 나눠드리는 수녀님을 찾아가 봉사를 하고 있다. 한 번은 버스 정류장을 착각해서 남대문에 이르기 전역에 위치한 한 백화점 앞에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많은 사람이 휴대폰을 들고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사람들이 향한 곳을 보니, 백화점 건물 외벽이 온통 불빛을 내며, 네온사인 쇼를 구성해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 보고 지나칠 수 없도록 한껏 치장한 그 건물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수많은 사람이 서 있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표현하는 우리 시대의 기후위기나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지 묻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일까? 우리는 이 시급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 다만 극복하기 위한 선택을 하기보다 현세의 달콤함을 선택하기를 더 좋아하는 듯해 보인다. 우리가 품고 있는 희망이 당장 화려함과 달콤함에 있는 것이다. 나는 베드로 1서 3장 15절을 아주 자주 되뇌곤 한다.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 이 성경 구절에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구성원들 모두가 무엇을 희망해야 할지를 알고 준비하도록 한다. ‘나는 무엇을 희망하고 있는가?’ 답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희망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기꺼이 한다. ‘예수님이라면’ 무엇을 선택하셨을까를 깊이 헤아리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편리하고 화려하고 번쩍이지만 죽음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될지, 불편하고 소박하고 좀 어둡지만, 생명에 이르는 길을 걷게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제 신앙을 가진 우리에게 희망을 물을 때, 말로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들의 삶을 본다. 우리의 행동을 보고 희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희망이 오로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에 있었기에 우리는 그분을 보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니신 희망이 무엇인지를 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개인과 가정, 교회와 기업, 정부와 국가들끼리도 지금 당장 안락함을 희망하기보다 저 높은 데서 멀리 바라보는 ‘희망’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눈앞에서 겪게 되는 이 위기 속에서 희망을 품은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면 서울의 밤이 이렇게 밝아서는 안 될 것 같다.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cpbc2022.02.16
![[대전교구 사목교서] 2022년 교구 신부님들의 사목계획 수립을 위한 제언](//cpbc.co.kr/CMS/newspaper/2021/11/rc/813947_1.2_titleImage_1.JPG)
[대전교구 사목교서] 2022년 교구 신부님들의 사목계획 수립을 위한 제언대전교구장 서리 김종수 주교 교구장 서리로서 저는 2022년 사목교서를 발표할 입장이 아니기에, 신부님들께서 내년도 사목계획을 세우시는 데 중요하게 참고하셨으면 하는 몇 가지 내용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사제직무의 시작은 성사의 은총입니다. 하느님께서 펼치신 인간 구원 역사의 절정이 곧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죽으심과 부활이고, 교회는 주님의 명에 따라 이 구원의 은총을 성사를 통해 세상에 전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성사 은총 가운데 매일 반복되는 가장 일상적인 성사는 고해성사와 성체성사입니다. 앞으로 본당 혹은 지구에서 상설 고해소 운영도 깊이 고려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성사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사제들이 먼저 성경 봉독과 필사 등을 생활화하면서 신자들이 그 길에 맛들이도록 사목적인 배려를 함께해 나갑시다. 2. 최근 교회에서 가장 중심적인 주제로 떠오른 것이 시노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노드는 어느 특정한 과정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회가 살아가는 방식, 교회 공동체의 운영방식이 돼야 한다는 인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교구는 3년 반 정도의 시노드 기간을 가지면서 그 안에서 사제와 신자들이 한 자리에서 교회 혹은 본당의 문제를 논의하고, 본당에서 신부님들이 ‘본당 한마당’이라는 이름으로 신자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듣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다양한 그룹의 설문조사를 통해 교회 발전을 위한 많은 의견을 종합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교구청 각 부서에서는 시노드의 최종 건의안을 검토하고 중장기적 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주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제 신자들이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선교사가 돼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부님들께서 고민해 주시고 지구 차원에서, 교구 차원에서 함께 논의하고 이뤄나가기를 바랍니다. 3. 사제 성소는 가톨릭교회 존립의 가장 기본적 요소입니다. 신부님들께서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고 믿습니다만, 조금 더 절박한 마음으로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다가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신자들, 특히 사목협력자들과 함께 이 문제를 정기적으로 함께 고민하는 시간도 가져주시기를 바랍니다. 4. 온실가스 배출 제한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계 회복 문제는 오래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중대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실생활에서 여러 가지 실천운동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뤄지는 실천 정도로는 생태계 위기가 회복되기 어렵고, 개인적 차원은 물론 사회적, 국제적으로 강도 높은 규제와 실천이 따라야 한다는 것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사목계획에 이런 문제에 관한 구체적 내용이 포함돼 신자들의 실천에 더 큰 힘을 불어넣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 교구 차원에서 함께 논의하고 실천할 부분, 나아가 사회운동 차원으로 펼쳐나갈 필요성 등도 준비하겠습니다.cpbc2021.11.24
[독자마당] 공소를 순례하며김영기(엘리사벳, 원주교구 흥업본당) 원주교구에서는 2021년 올해,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원주교구 공소 순례와 천주교 요리문답 쓰기 및 암송 행사를 하고 있다. 병상의 노모를 모시고 있는 나는 코로나19로 인해 미사 참여가 망설여질 때가 많았다. 그런데 2019년, 2020년 원주교구 53개 본당 순례에 이어 공소 순례 행사를 마련해주셔서 순례와 함께 성체가 모셔져 있는 공소에서는 성체조배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본당 순례를 완주하고 나니 원주교구 신자를 만나면 왠지 우리 본당 신자같이 반갑게 느껴진다. 공소 순례를 마치면 또 어떤 기쁨이 생길지 기대된다. 박해가 끝날 무렵 원주교구에는 100여 개가 넘는 공소가 있었지만, 농촌과 탄광촌의 인구감소와 교통수단의 변화로 37개의 공소만 남아있다. 순례하며 늘 감탄하는 것은 이런 골짜기에 마을이! 더구나 우리 형제자매가 이렇게 많이 모여 주 천주를 믿으며 살았다니!! 공소 건물은 왜 그렇게 정겹고 아름다운지!!! 공소 신자들이 부러울 지경이었고 내 믿음이 더욱 작게 느껴지곤 하였다.운영하는 카페가 쉬는 월요일, 요양보호사님께 어머니를 부탁하고 순례 다니는 시간은 순례의 기쁨도 크지만, 나에게 사색, 기도, 음악감상, 그리고 여행의 즐거움도 함께 준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이었다.세례받은 지 30년이 넘었고 가톨릭평화신문, 신앙잡지, 영성가들의 책과 성경도 틈틈이 보고 있지만 천주교 요리문답을 쓰며 천주교에 대해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 많아 부끄러웠다. 사실, 평신자인 우리는 믿음이 교리보다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요리문답을 쓰면서 아는 만큼 보이고 믿음이 더 굳건해질 수가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코로나 시절에 우리 신앙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공소 순례와 요리문답을 쓰며 오히려 사도로부터, 선조로부터, 순교자로부터 이어져 온 내 신앙 천주교에 근본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 큰 은총을 받은 것 같아 감사함 뿐이다.더구나 2019년에 큰 수술을 하시고 8번이나 입·퇴원을 되풀이하셨던 노모께서 코로나가 시작된 작년 2월부터 지금까지 검사를 겸해 단 5일만 입원하셨으니 기적같이 느껴져 감사할 뿐이다. 어머니가 편찮으시기 전에 함께 전국 60~70곳 성지를 순례했었다. 아쉽지만 이제 남은 성지순례는 나 혼자 마쳐야 한다. 나의 애마 SOUL! 12년이 지나도 여전히 잘 달려주어 고맙다! 최양업 신부님께도 너 같은 애마가 있었더라면 아니 예수님 예루살렘 입성 시 타셨던 나귀 한 마리라도 있었더라면 천주교의 역사가 달라졌을까? 쓸데없는 생각도 많이 해봤다. 높고 깊은 주님의 뜻을 그 누가 알리요! 어쩌면 신자 100명도 안 되는 공소의 모임과 미사가 오래된 미래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공소 순례를 마친다.※독자마당 원고를 기다립니다. 원고지 5매 분량입니다. pbc21@cpbc.co.kr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평화신문2021.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