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개국에 성경 30만 권 보급, 말씀의 보화를 세계로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 이끄는 이문주 신부(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현지 봉사자 양성 등 조언 “이번에 부룬디 교회에 보내는 성경까지 포함하면 지금까지 37개국에 30만 권의 성경을 보급했습니다. 종잇값도 오르고 운송비도 만만치 않아 총 12억 원이 들었네요. 은퇴 사제로 후원자를 새로 모으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금이 들어오는 대로 나가면, 또 나가는 대로 들어왔습니다. 후원자들에게 정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이문주 신부는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다. 2017년 2월, 요셉의원 원장직을 마지막으로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 책임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의 모태가 된 건 1996년 파월 사제단(월남전 군종 사제들 모임)의 ‘베트남 성서돕기’ 모임이었습니다. 베트남의 신부와 수녀들이 성경을 요청하면서 성경을 후원하는 단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이 신부는 베트남 군종신부로 파견된 것을 계기로 베트남 교회와 인연을 맺고 베트남어 성경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이후 서울 가회동ㆍ양재동본당에서 사목하면서 꾸준히 성경을 보급해왔지만, 본당에서 모금하는 게 한계가 있어 2007년 공식적으로 발대식을 하고 활동을 시작했다.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다리가 되어 베트남뿐 아니라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 가난한 여건으로 자국어로 된 성경을 접하지 못하는 나라에 성경을 지원했다. 태국의 소수민족인 카렌족에게 카렌어 성경을, 과테말라에는 스페인어 성경을, 페루에 케추아어 성경을 지원했다. 지금까지 성경을 보낸 나라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문맹률이 높다. “성경을 지원받는 나라는 성경이 없다가 생기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대표적인 예로, 베트남에 성경을 보냈을 때 호찌민시 추기경이 성경 공부를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묻더라고요. 그래서 「성서 백주간」 영문판을 보내드렸어요. 얼마나 급했으면 사목국장 신부가 성서 백주간 영문판을 베트남어로 번역해 인터넷에 올렸는데, 그게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베트남 이주 공동체 신자들에게까지 전해진 겁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이처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열의가 있어야 해요.” 이 신부는 성경만 보내지 않는다. 성경을 보낼 때마다 현지 교회에 봉사자들을 먼저 양성하라고 조언한다. 신부들이 일일이 교육할 수 없으니 지도자급 되는 신자들을 먼저 교육을 해, 그들이 그룹을 이끌어가도록 하라는 것이다. 문맹률이 높은 나라에는 문해교육을 먼저 한 후에 성경을 접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지금까지 보낸 성경은 37개국에 ‘발 없는 선교사’가 되어 공동체마다 복음적 활기를 불어넣어 줬다. 성경을 받은 나라에서 보내오는 신자들의 편지, 성경교육을 하는 사진을 보면 그 활기를 느낄 수 있다. 편지와 사진은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 회보 ‘홀씨’에 고스란히 실어 후원자들에게 보내준다. 이 신부는 “처음 성경 5만 권 지원을 요청했던 부룬디 교회의 열의가 대단하다”면서 “다른 나라는 한 번 받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가 5만 권 지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자, 부룬디 주교단은 자체적으로 모금 활동을 벌였고 성경 3만 권을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을 마련했다. 5만 권 중에서 1쇄와 5쇄 비용은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가 부담하고, 2~4쇄는 부룬디 주교회의가 외부 후원금을 충당한 것이다. “하느님 말씀에 맛을 들이잖아요.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그 공동체는 활기가 생겨납니다.”현재 케냐와 모잠비크, 카메룬에서 성경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후원 문의 : 02-2676-9981,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 사무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20.05.20

비제 사후 만들어진 동방박사 행진곡[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27)비제의 ‘아를의 여인’에 담긴 ‘세 임금의 행진’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는 19세에 전도유망한 작곡가에게 프랑스 정부가 주는 장학금인 로마 대상을 받고 3년 동안 이탈리아 로마에서 유학할 수 있었다. 음악의 고향이자 오페라의 발상지인 이탈리아에 가서 마음껏 음악을 공부하고 오라는 프랑스 정부의 젊은 작곡가에 대한 배려였다. 비제는 파리와는 또 다른 고대 로마제국의 압도적인 유산이 남아있는 고풍스러운 로마에서 이탈리아 오페라와 체임버 음악에 푹 빠져 지낼 수 있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깊은 영향은 그를 평생 오페라 작곡가로 남게 했다. 비제는 1872년 보드빌 극장 지배인이던 카르발류의 제안으로 ‘별’ ‘마지막 수업‘의 작가 알퐁스 도데의 연극 ‘아를의 여인’ 부수음악으로 27곡을 작곡해서 상연하게 된다. 당시에는 연극에서도 오케스트라가 생음악을 연주했다. 오늘날의 브로드웨이를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기대되었던 이 연극은 21회만 상연하고 막을 내리는 실패를 맛봤다. 하지만 자신의 관현악곡에 자신 있던 비제는 원곡 27곡 중 소규모 극장 오케스트라용이었던 곡을 편집해 대규모 관현악곡으로 고쳤다. 4곡으로 이뤄진 모음곡으로 편곡한 곡을 그해 11월에 발표했고 호평을 받았다. 이것이 제1모음곡이다. 그런데 비제는 1875년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은 오페라 ‘카르멘’ 초연이 실패하자, 그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카르멘’에 레치타티보 대사를 붙였던 파리 음악원 작곡가 교수 에르네스트 기로는 비제의 곡을 새롭게 편곡해서 4곡을 제2모음곡으로 만들었다. 특히 제2모음곡 중 2곡 인테르메조는 비제의 원곡을 그대로 살려 엄숙하고 진지하다. 중간부에서부터 오케스트라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색소폰이 차분하면서 간구하며 기도하는 심정을 들려주는 듯한 곡이다. 이 곡은 후에 비제의 멜로디에 기로가 라틴어 대영광송 텍스트를 입혀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로 이어지는 독립 성가로 불리게 된다. ‘아를의 여인’ 모음곡 속에 담긴 성경 주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3곡 미뉴에트에 이어지는 4곡은 파랑돌인데 파랑돌은 프로방스 지방 농민 춤곡이며 손으로 피리를 불고 발로 북을 치면서 다니는 거리 음악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파랑돌에 앞서 매우 익숙하고 용맹스러우며 결단력 있는 테마가 등장하는데 바로 프로방스 지방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많이 부르는 민요인 ‘세 임금의 행진’(We three kings)이다. 여기서 3명의 임금은 바로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갖고 찾아와 경배한 동방박사 세 사람 발타사르, 가스파르, 멜키오르다. 음악은 아를 시내의 마을 축제에서 음악이 연주되고, 연극 또는 인형극으로 성극인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야기가 광장 장터에서 공연 중인데, 여기에 파랑돌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가 나타나는 모습을 ‘세 임금의 행진’ 선율로 시작해 카논 스타일로 발전하다가 파랑돌의 선율로 이어지면서 두 악상이 번갈아 등장하고, 드디어 한데 어울려 이 마을 축제의 열광적인 클라이맥스를 만들면서 끝난다. 그런데 ‘세 임금의 행진’은 ‘아를의 여인’ 제1모음곡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반가워할 수밖에 없는 테마다. 첫 곡인 전주곡의 포문을 여는 것이 바로 이 곡이기 때문이다. 비제 사후에 ‘아를의 여인’ 제2모음곡을 만든 기로는 4곡에서 ‘세 임금의 행진’ 테마를 넣어 축제 분위기를 더욱 부각하며 화려하게 곡을 끝맺었다.※QR코드를 스캔하시면 비제의 아를의 여인 제2모음곡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http://naver.me/xqQj7kRd장일범(발렌티노) 음악평론가 cpbc2021.11.30

1년 이스라엘 성지에서 살면서 얻은 것[미카엘의 순례일기] (35)다 이루었습니다(상) 예루살렘 힌놈계곡에 위치한 ‘하텔 드마’. 사도행전에는 유다가 죽은 장소 ‘피밭’으로 기록돼 있고, 십자군시대에는 사형지로 쓰였다. 지금은 정교회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다. 첫 아이가 돌이 지났을 즈음, 이스라엘에서 현지 가이드로 살아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주님께서 살아 계셨던 그곳에서의 삶은 제 오랜 꿈이었습니다. 10년만 버텨보자며 시작했던 성지에서의 삶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결국 1년 만에 끝이 났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참 귀중한 것을 많이 얻었습니다.선배의 도움으로 집을 구하고, 히브리어 어학원을 다녔습니다. 성서와 전례 그리고 교회의 역사를 다시 공부했습니다. 대학 입시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래도 성지에서의 공부에는 큰 보너스가 따릅니다. 도보로 30분이면 주님의 무덤 성당에 도달할 수 있고, 크리스마스에는 통제된 도로를 따라 3시간 정도 걸으면 주님 탄생 성당에서 울리는 성탄 음악회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임신 중이었던 성모님과 엘리사벳 성녀께서 서로 만나 하느님의 은총에 기뻐했던 엔케렘은 주말 나들이 장소로 적당합니다. 이스라엘에서의 가이드 공부는 그렇게 행복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를 공부한 후, 가이드로서 첫 순례 팀을 맞았습니다.공항에서 처음 만난 그 팀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며 도착한 순례팀을 버스로 안내했습니다. 사실, 초보 가이드인 제가 함께하는 것은 그분들에게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노련하고 해박하며 친절한 가이드를 만나는 것이 순례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하니까요. 그렇다보니 제가 생애 첫 가이드를 한다고 말씀드리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텔아비브 공항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버스로 1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그 1시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진땀 나는 시간 중 하나였습니다. 일주일이 넘게 그 한 시간을 위해 예행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호텔에 도착해서 방을 배정해 드리고 집으로 향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편, 앞으로 보낼 2주를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나마 선배 가이드가 대부분 동행해 주시기로 한 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순례단은 이스라엘 순례를 위해 무려 1년간 2주에 한 번씩 만나 성경을 공부하고 준비하신, 24명의 미국 교포로 이루어진 팀이었습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 순례가 일주일 정도로 짧아졌지만, 당시에는 14박 15일 일정이 보통이었습니다. 구석구석 이스라엘 전체를 둘러볼 수 있으면서도 여유가 있는 일정이었죠. 오후 5시면 일정을 마치고 일찍 저녁 식사를 한 후, 그날 순례지에 관련된 성경 구절을 같이 읽었습니다. 미리 공부한 내용과 가이드의 설명을 비교하고 궁금한 것에 대한 추가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난생처음 가이드를 하는 사람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어려운 순례단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경험이 후에 큰 도움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매일매일의 시간이 고시생만큼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더구나 영어에 능통한 교포들이라서 길가의 작은 안내문 하나 소홀히 지나치지 않고 그 내용을 물어 오셨습니다. 몇 개월 동안 그곳에 살면서도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그 안내문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요.첫날 아침, 약속된 시간에 로비에 모인 분들이 출발을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방을 쓰시는 두 분이 시간이 다 되도록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할 수 없이 제가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방에 도착하니 한 분은 침대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으셨고, 다른 형제님이 조금 긴장된 얼굴로 저를 맞으셨습니다.“긴 비행 때문인지, 친구 컨디션이 안 좋네요. 하루 정도 쉬면 좋아질 듯합니다. 혼자 두기 어려우니 제가 곁에서 좀 지켜볼게요. 점심은 알아서 해결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첫 일정이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었기에 마음이 조급했던 저는 두 분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로비로 내려가 모여있던 분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그날의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조금 의아한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총무를 맡은 형제님께서 점심시간에 제게 귀띔해주셨습니다.“저희 순례팀은 원래 22명이었습니다. 그 두 분은 성당 근처 수도원 원장님께서 제게 따로 부탁하셔서 합류하게 되었어요. 다른 분들도 흔쾌히 허락하셨지만, 공항에서 처음 뵈어서 저희도 잘 모르는 분들이에요. 한 분은 안색이 좋지 않아 원래 건강이 나쁘신 게 아닌가 짐작만 했어요. 좋아지셔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순례단은 미사를 봉헌하면서 두 분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순례 도중에 호텔로 전화를 드리자 다행히도 좋아지고 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 때 만나 뵌 형제님의 모습도 아침보다 훨씬 좋아 보이셨습니다.하지만 다음 날 아침 식사 때에 두 분은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좋지 않은 느낌에 방에 올라가 보니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형제님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계셨습니다. 친구 형제님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평화신문2021.09.07

사제수품 70·60·50주년… 축하와 감사를 드립니다전국 교구, 14일 성유 축성 미사와 함께 축하식 거행 사제수품 70ㆍ60ㆍ5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 미사 및 축하식이 14일 성유 축성 미사 중 교구별로 열린다. 다음은 회경축과 금경축을 맞는 사제 명단과 약력.서울대교구(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14일 오전 10시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성유 축성 미사 후 사제수품 70주년을 맞는 백민관 신부와 60주년을 맞는 김수창ㆍ이문주 신부, 50주년을 맞는 박신언 몬시뇰, 김인성ㆍ정광웅 신부의 축하 행사를 개최한다. 백민관 신부는 1952년 사제품을 받고, 군종을 거쳐 가회동본당 보좌로 사목한 후 성신중ㆍ고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1956년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60년 벨기에 루뱅대학교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받고,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63년부터 10년간 가톨릭대 신학부 교수 및 학장을 지낸 후 돈암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다. 2004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다. 1962년 사제품을 받은 김수창 신부는 명수대(현 흑석동)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J.O.C(가톨릭노동청년회) 전국본부 지도 신부를 역임하고, 왕십리ㆍ이문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다. 교구 사목국장을 지낸 후 명동ㆍ청담동본당 주임을 거쳐 절두산순교기념관장 겸 순교자현양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화양동ㆍ잠원동본당에서 주임으로 사목하고 한국교회사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후 2003년 은퇴했다.1962년 사제품을 받은 이문주 신부는 중림동(현 중림동약현)본당 보좌로 사목을 시작, 군종을 거쳐 성모병원(현 여의도성모병원) 원목실장을 지냈다. 독일에서 신학 연수를 마친 후 필리핀에서 해외연수(E.A.P.I)를 수료했다. 이어 시흥동본당에서 주임으로 사목하고 가톨릭중앙의료원 원목실장 겸 강남성모병원(현 서울성모병원) 원목실장을 역임했다. 영국 성 안셀모 영성연구소에서 연수를 마친 후 캐나다 토론토대학교 리지스 컬리지에서 영성신학 석사를 받았다. 이후 가회동ㆍ양재동본당 주임을 지내고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요셉의원 원장 겸 국제성경사도직 후원회 담당 사제를 지내다 2017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다. 금경축을 맞은 박신언 몬시뇰은 1972년 사제품을 받고, 연희동ㆍ명동본당 보좌를 거쳐 1982년 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다. 교구 관리국장을 거쳐 세계 제44차 성체대회 행사분과 위원장, 교구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1993년부터 7년간 평화방송ㆍ평화신문(현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사장을 지낸 후 2003년 몬시뇰에 임명됐다. 명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한 후 가톨릭학교법인 담당 교구장대리를 역임하고 2015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다. 2009년부터 사목기금회 위원장, 2013년부터 현재까지 옹기장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김인성 신부는 1972년 사제품을 받고, 제기동본당 보좌로 사목에 첫발을 내디뎠다. 군종을 거쳐 세종로본당 주임 겸 레지오 마리애 서울 세나뚜스 지도 신부를 지내고 명동본당 수석사제로 사목했다. 일본으로 해외 유학을 다녀온 김 신부는 교구 평신도 사목국장을 거쳐 미국에서 교포사목을 하며 평화신문 미주지사장을 지냈다. 논현동ㆍ성내동ㆍ월계동 본당에서 사목한 후 2015년 은퇴했다. 1972년 사제품을 받은 정광웅 신부는 명동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군종을 거쳐 공덕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다. 해외연수(E.A.P.I) 후 창동ㆍ명수대(현 흑석동)본당 주임을 지냈다.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현 민족화해위원회) 총무를 지낸 후 명일동ㆍ여의도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하고 민족화해위원회 본부장을 역임했다. 가락동본당 주임을 마지막으로 2014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다. 대구대교구(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14일 오전 10시 주교좌 범어대성당에서 성주간 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를 봉헌하고 최현철 신부 금경축 축하식을 진행한다. 코로나19로 별도의 축하연은 없다. 1943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난 최현철 신부는 1972년 사제품을 받고 대구대교구 삼덕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청도본당 주임, 군종, 수성본당 주임, 미국 클리블랜드교구 교포 사목, 옥산본당 주임, 교구 사목국장, 가톨릭신문사 사장, 효목본당 주임, 교구 사무처장, 형곡본당 주임 겸 구미가톨릭문화관장, 제5대리구 주교 대리, 두산본당 주임으로 사목하다 2011년 은퇴, 현재까지 원로 사제로 생활하고 있다. 춘천교구(교구장 김주영 주교)는 14일 오전 10시 30분 춘천 주교좌죽림동성당에서 봉헌되는 성유 축성 미사와 함께 이정행(성사 전담) 신부 금경축 축하식을 거행한다.이정행 신부는 1972년 사제품을 받고 임당동본당 보좌를 거쳐 운천ㆍ인제ㆍ홍천ㆍ김화ㆍ노암동ㆍ주교좌죽림동본당 주임을 역임했다. 이후 교구청 총대리 겸 사무처장을 맡았다. 횡계(현 대관령)ㆍ포천본당 주임을 끝으로 2013년 은퇴해 현재는 성사 전담 사제로 사목 중이다.춘천교구는 또 이날 사제수품 30주년을 맞은 배광하(미원본당 주임) 정영우(교구 사무처장) 신부 축하도 겸한다.청주교구(장봉훈 주교)는 14일 오전 10시 내덕동주교좌성당에서 성유 축성 미사를 봉헌하고, 원로사목자 김원택 신부의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 축하식을 거행한다. 김원택 신부는 1945년 충북 진천군 이월면 태생으로, 1972년 광주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았다. 내덕동 주교좌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오송ㆍ목행동ㆍ내덕동 주교좌 본당 주임을 거쳐 미국 LA 성 토마스한인본당에서 교포사목을 한 뒤 귀국해 봉명동ㆍ영운동본당 주임, 교구 사무처장 겸 사목국장, 수곡동본당 주임 겸 교구 총대리를 역임했다. 이어 2대 교구장 정진석 주교가 서울대교구장에 착좌하면서 교구장 직무대행 겸 수곡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고, 3대 교구장 장봉훈 주교가 착좌하면서 교구 총대리 겸 수곡동본당 주임, 교구 총대리, 충북재활원장을 지냈으며, 2010년 8월 교구 원로사목자로 발령나면서 사목 일선에서 물러났다. 전주교구(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14일 오전 10시 주교좌 중앙성당에서 성유 축성 미사와 함께 김진소(원로사목자) 신부 금경축 축하 미사를 봉헌한다. 김진소 신부는 1940년 충남 서천에서 출생해 1972년 대건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해 사제품을 받았다. 주교좌 중앙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임실·순창·화산(현 나바위)·둔율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다. 광주가톨릭대학 교수를 역임했고 덕진 대학생관 지도, 교구사 편찬 담당, 천호피정의집 관장, 호남교회사연구소장 등을 거쳐 현재는 호남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 겸 원로사목자의 길을 걷고 있다. 오세택ㆍ리길재ㆍ이지혜ㆍ이정훈ㆍ도재진 기자 cpbc2022.04.06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4) 반추기도의 항구성](//cpbc.co.kr/CMS/newspaper/2020/04/rc/776805_1.0_titleImage_1.jpg)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4) 반추기도의 항구성하루도 빠짐없이 30분이라도 성경 묵상을 허성준 신부 반추동물은 반추를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반추란 토출-재저작-타액과 재혼합-재연하의 네 과정을 말한다. 이것을 1회 반추라고 하는데,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50분 정도가 소요된다. 반추동물은 이러한 반추를 하루에 6시간에서 9시간 동안 한다. 반추동물들에게 반추는 생존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 과연 몇 명이나 성경 묵상이 자신의 영적인 생존에 관한 것이라 생각하고, 하루에 6시간에서 9시간을 할애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하루에 이렇게 오랜 시간을 반추동물과 같이 반추기도를 한다는 것은 솔직히 바쁜 현대인들에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최소한 하루에 30분만이라도 규칙적으로 성경 묵상인 반추기도를 해나간다면 영성생활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규칙적으로 항구하게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 다니엘 레비튼 박사는 두뇌가 어느 분야에 적응하는데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즉 누구든지 1만 시간을 연습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연구팀은 5살 전후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해 일주일에 2~3시간을 꾸준히 연습해 온 베를린뮤직아카데미 바이올린 전공 학생들을 상대로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20세 전후의 학생들 가운데 연주 실력이 탁월한 학생은 총 1만 시간이 넘게 연습한 것으로 확인된 반면, 실력이 낮은 학생들의 연습 시간은 8000시간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재능과 행운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연습과 항구함을 통해 더 나은 것들을 창조하고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삶에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한결같이 집요했고 항구했다는 것이다. 영성생활에 있어 이것이 빠지면 하느님 안에 깊이 뿌리내리기도 힘들다. 필자는 성경 독서나 성경 묵상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진실로 이러한 집요함과 항구함을 견지하라고 권고한다. 때로는 회의와 무료함 그리고 지루함이 엄습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때일수록 더욱 하느님께 신뢰를 저버리지 말고 계속 수행해 나가기를 바란다. 영성생활에서는 특별하고 기이한 비밀스러운 방법이란 없다. 우리는 매일 매일 그냥 단순한 마음, 순수한 마음, 신ㆍ망ㆍ애의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반추하고 맛 들이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매일의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성경 독서와 되새김은 우리의 영성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지혜를 알려줄 것이다.반추동물은 되새김할 때, 제1위에 있는 미생물이나 혹은 입속에서 나오는 침이나 타액의 도움을 받아 쉽게 음식물을 소화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하느님의 말씀만을 아무런 의미 없이 단순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진정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정신으로 그 말씀을 되뇌어야 한다. 그때 그 말씀은 신ㆍ망ㆍ애와 더불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우리의 영적인 살과 피가 된다. 신ㆍ망ㆍ애의 정신이 없이는 아무리 열심히 그리고 오랫동안 성경의 말씀을 반복한다고 해도 그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시간만 낭비할 수도 있다. 반추동물의 침이나 미생물, 소화액과 같이 신ㆍ망ㆍ애의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끊임없이 반추하다 보면, 어느 날 어느 때 그분께서 친히 말씀의 깊은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20.04.08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26. 누구를 위하여?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어렸을 때부터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마 농부이신 부모님께서 늘 아침 일찍 일어나셨기 때문에 부모님을 따라서 일어났던 것이 습관이 된 듯하다. 아버지께서는 새벽부터 방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다. 불을 지피고 계신 아버지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앉아 타들어 가는 불을 지켜보았다.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서 새로운 하루를 여는 일을 그렇게 시작하였다. 언니들은 모두 자고 있었지만 나는 아버지를 따라 일어나 그 곁에 함께 하고 싶었다.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저 “좀 더 자~”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어릴 때부터 마음 깊은 곳에 계속해서 자라고 있었던 것이, 늦둥이로 태어난 내가 봤을 때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의 모습이 안쓰러워서 어떻게 해서든지 함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그러니 수녀원에 와서 새벽부터 일어나 기도하기 위해 성전을 찾는 것은 나에게 별 어려움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궁이 불 앞에 아버지와 함께 머물렀던 그 시간과 성령의 불을 느끼며 하느님 아버지 곁에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오버랩 되며 평범한 일상이 하느님과 함께한 순간들로 여겨져 ‘카이로스’의 시간 안에서 부르심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다.세례받은 이로서 하느님 아버지를 찾고 머물며 따르는 삶은, 일찍 일어나는 나에게 아주 특별한 선물을 가져다주셨다. 잠에서 깨어날 때 꿈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무의식 속에서 자칫하면 놓칠 수 있는 생각이나 꼭 기억해야 할 무엇을 되뇌며 일어나곤 한다. 그것은 주로 성경 말씀이나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의 어떤 뜻을 알게 한다. 그러니 이른 새벽 문득 나의 정신을 일깨우는 이 말씀은 항시 나를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도록 하곤 한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은 각각의 모든 사람이 저마다 살아가는 방식으로 이미 찾아오셨고, 만나고 계시다. 불을 때는 아궁이 앞에서, 주방에서 밥할 때, 땅과 생명을 돌볼 때, 사람들을 가르칠 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만날 때, 난민과 이탈자들의 머리 둘 곳 없는 상황에 함께 할 때, 노동자와 소수자들의 절규에 함께할 때, 총부리 앞에서도 자유를 외칠 때, 이 모든 이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그 방식대로 우리 곁에 함께 하신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공통적인 원리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이다. 이른 새벽부터 식은 구들장을 덥히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지피신 아버지의 마음에는 어머니와 우리를 위한 사랑이 있었고, 아버지 곁을 지켰던 내게도 늙으신 아버지 옆을 지키고 싶었던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 있었다.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성호경을 하면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수시로 고백한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법은 서로를 향하는 위타적인 사랑으로 나타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친교 방법이다. 내 자신, 공동체의 안위만을 위하는 사랑은 이 사랑법과 다르다. 타인, 다른 생명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잔칫집에 술이 떨어져도 나와 상관이 없는 일이 된다. 도움을 주는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이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때’를 타인의 필요 안에서 알아보시고, 나아가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물독에 물을 채워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눈에는 의미 없어 보이고, 일상적인 일이지만, 주님과 누군가를 위하여 그 일을 할 때에 ‘기적’이 일어난다. ‘현실’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향한 득과 실을 철저히 이해타산하는 자리에는 ‘기적’이 일어날 수 없다. ‘나’를 위한 채움은 기를 써도 계산한 만큼만 얻을 수 있지만, ‘타인’을 향한 채움은 항상 흘러넘친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물을 포도주가 되게 하신다. 우리의 일상이 당신 백성에게 필요한 양식이 되게 하신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cpbc2022.01.12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주일 - 주님의 기적, 내 삶의 표징으로](//cpbc.co.kr/CMS/newspaper/2022/01/rc/816915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2주일 - 주님의 기적, 내 삶의 표징으로 상대방이 내 부탁을 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장황한 말을 늘어놓기 마련입니다. 지금 자기가 얼마나 딱한 상황에 처했는지, 그래서 청하는 것이 얼마나 간절히 필요한지, 만약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얼마나 큰 고통을 겪게 되는지를 부풀려 말하게 되지요. 그래야 자기가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 기도할 때는 단순한 말로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면 됩니다. 성모님이 그러셨지요. 혼인 잔치가 한창인 한밤중에 포도주가 동나버려 곤란한 상황에 처한 신혼부부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예수님께 말씀드리셨습니다. 기도하는 데 중요한 것은 말을 많이 하는 게 아니라 주님을 믿고 ‘그분의 때’를 기다리는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주님께서는 청하는 것들을 즉시 이뤄주시지 않습니다. 당신께서 보시기에 가장 적당한 때에, 여러 상황이나 조건들이 함께 작용하여 최선의 결실을 맺을 때가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움직이십니다. 예수님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을 성모님께 분명히 밝히시지요.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라고 번역된 문장의 그리스어 원문은 직역하면 “당신과 나 사이에 무엇이?”라는 물음입니다.같은 문장이 더러운 영을 쫓아내시는 성경의 다른 대목에서는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에 선을 긋고 거리를 두시는 듯한 예수님의 태도가 차갑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예수님은 성모님의 청을 거절하신 게 아닙니다. 주님께 무엇인가를 청하기 전에, 그분과 나를 하나의 관계로 묶는 근본적 힘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하시려는 것이지요. 그 힘은 ‘믿음’입니다. 그분의 의중을 간파하신 성모님은 일꾼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기도의 본질을 오해하는 분이 많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이용해 내 뜻을 이루는 거라고. 하지만 기도의 본질이자 목적은 주님과의 소통을 통해 그분의 뜻을 헤아리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통해 당신 뜻을 이루게 하시는 것이 나를 위한 최선의 길이자 최고의 선택임을 믿고 그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과정이 참 어렵습니다. 주님께서 내게 바라시는 게 무엇인지 당최 알기 어렵습니다. 그분의 뜻을 알더라도 그것을 따르는 것이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시련과 고통을 해결하는 데에 어떤 도움이 되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물독에 물을 채워라”라는 주님의 명령을 따르던 일꾼들도 그런 마음이었을 겁니다. 떨어진 건 술인데 왜 물을 채우라는 건지, 물독을 다 채워도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구심이 들었을 겁니다.하지만 의심과 걱정은 놀라움과 환호로 바뀝니다. 물이 포도주로, 그것도 맛과 품질이 ‘좋은 포도주’로 변한 겁니다. 심지어 그 양마저 어마어마합니다. 두세 동이 짜리 물독 여섯 개 분량이면 대략 600ℓ쯤 됩니다. 750㎖짜리 큰 와인병으로 800병 되는 어마어마한 양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놀라운 방식으로, 차고 넘치도록 충만한 은총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 이 사건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이때부터 ‘공생활’이라는 구원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요한 복음이 이 사건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표징’이라 부른 것은 그 때문입니다. 표징이란 ‘기존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것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표시’를 뜻하지요. 우리는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기적을 그저 기이한 사건으로 바라보는 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기적이 내 삶의 표징이 되어야, 주님 때문에 내 삶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야 의미 있는 신앙생활이 됩니다.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함승수 신부의 카카오스토리(https://story.kakao.com/_0TX0X5)에 가시면 매일 ‘생활 속 복음’을 볼 수 있습니다. cpbc2022.01.11
![[영화의 향기 with CaFF] (114)빅 피쉬](//cpbc.co.kr/CMS/newspaper/2021/05/rc/802261_1.1_titleImage_1.jpg)
[영화의 향기 with CaFF] (114)빅 피쉬허풍쟁이 아버지의 무용담에 숨은 사랑 요즘 나온 유명배우의 아이스크림 광고. 그 진지한 연기와 아이스크림의 조합이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광고는 물론 작은 엽서 한 장에도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담긴 이야기를 읽어내며 작고 큰 감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힘이다.어린 시절 아빠 에드워드는 여행에서 돌아오면 늘 신기하고 놀라운 모험담을 들려줬다. 당연히 즐겁고 신이 났지만, 어른이 된 윌에겐 그 모든 것이 거짓이요, 허풍으로 들린다.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아빠와의 관계가 부담스럽다.어느 날 아빠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내려왔지만, 임종을 앞둔 아빠는 그 상황에서도 여전히 믿을 수 없는 로맨스가 담긴 무용담을 나눈다. 너무도 진지하게 이야기 속을 거니는 아빠와 그 아빠가 거짓말쟁이로만 보이는 아들과의 틈새. 윌의 태도와는 다르게 엄마와 아빠의 친구들은 아빠의 이야기를 즐길 뿐만 아니라 아빠를 이해하고 존경하고 좋아한다. 결국, 아빠 친구의 도움으로 진실의 고리를 접하면서 윌은 조금씩 이야기의 실체를 찾아 나서며 이야기 속에 가려진 아버지의 본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살기 위해 늘 집을 떠나 있어야 하는 아빠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그래서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소재로 재미있는 판타지로 꾸며 아들에게, 이웃에게, 아내에게 전한 것이다. 아이들과 비교하면 어른들은 훨씬 더 진실을 아는 통로가 많다. 에드워드의 아내와 친구들은 에드워드의 선한 성품을 잘 알고 있기에 그의 놀이를 함께 즐긴다.영화감독 겸 애니메이터요, 제작자며 작가인 팀 버튼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가위손’, ‘화성침공’ 등 이야기가 풍부한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이 영화도 그처럼 삶과 판타지가 어우러진 작품이다. 물론 어른이 된 아들 윌의 시선에서 보면 황당하지만, 아이처럼 함께 즐기는 마음으로 다가서면 인생 영화이기도 하다.성경은 사실일까, 진실일까? 137억 년으로 예상하는 우주 역사를 6천 년으로 압축한 성경이 어떤 이들에게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성령의 빛이 담긴 지혜로 바라보고 신앙으로 읽으면, 따스하고 용기를 주고 삶에 활기를 주는 멋진 하느님의 이야기 편지이다. 이 영화의 말미는 아름답다. 아빠의 진위를 알아챈 아들이 아빠의 시선으로 임종을 돕는다. 함께 상황을 즐기고, 이야기를 만들며, 이야기 속으로 들어선다. 누군가와 결이 같은 농담을 하고, 생각하고, 함께 웃어주고 울어줄 수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인생은 일만 송이 수선화 꽃밭처럼 참 풍요로우리라. 2021년 5월 12일 재개봉손옥경 수녀(가톨릭영화제 프로그래머) cpbc2021.05.18

코로나 이후 신자들은 '소통 잘하는 사제' 원한다수원 최영균 신부, 코로나19 이후 신자들이 바라는 사제상 조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신자들이 바라는 사제의 상은 ‘친절하고 신자들과 소통을 잘하는 사제’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수원교구 호계동 주임 최영균 신부와 서울시립대 겸임교수 겸 서울연구원 도시외교연구센터장 변미리 박사가 작성한 ‘코로나 시대의 신앙생활과 가톨릭교회의 역할: 수원교구를 중심으로’란 논문에 따르면 신자들에게 ‘교회 활동을 위해 사제들에게 어떤 리더십을 원하는지’ 물은 결과 ‘친절하고 신자들과 소통을 잘하는 사제’란 응답이 44.5%로 가장 높았다. 이어 ‘본당의 체계를 잘 관리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사제’가 24.9%였다. 다음으로 ‘신자들을 잘 관리하고 개인생활이 철저한 사제’ 15.4%, ‘성경과 교리지식에 해박하고 강론을 잘하는 사제’ 15.1% 순이었다. 또 ‘향후 우리 교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서는 ‘본당 중심에서 벗어나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돌보는 일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응답이 39.3%로 가장 높았다. 이어 ‘전례, 교육, 선교와 같은 교회의 사명을 다 해야 한다’는 응답이 26.8%, ‘다음 세대인 청년들을 위한 교회의 관심과 집중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는 응답이 20.5%였다.저자들은 “신자들이 교회나 사제의 리더십에 바라는 요소들이 변화하고 있으며, 이는 교회 공동체의 운영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교회는 코로나19 이후 변화의 흐름을 성찰하고 대안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논문은 지난 4월 성남 동판교와 수원 광교2동(신도시), 안양 호계동과 안양 비산동(구도시), 광주 광남동과 용인 모현(도농복합지역)본당 등 수원교구 6개 본당 신자 3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면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됐다. 논문은 수원가톨릭대 이성과 신앙연구소가 발간한 「이성과 신앙」 70호에 실렸다. 최영균 신부는 13일 그리스도사상연구소가 주관한 학술발표회 및 2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신자들이 기대하는 사제상은 신자들에게 친절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본당을 시스템적으로 관리하는 리더임을 알 수 있다”며 “이는 신자들의 신앙행위가 과거처럼 사제나 교회 권위의 일방적인 지도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엠브레인 리서치 조사에서도 사람들은 조직의 질서와 발전을 선도하는 개인의 비범한 능력이나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바라기보다는 공동체 구성원들과 소통을 잘하는 리더를 최상의 리더로 꼽고 있었다”며 “이러한 신자들의 사제 리더십에 대한 기대는 세상의 변화와 함께 성직자에 대한 기대가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신자들이 바라는 사제상은 종교적 합리성을 갖춘 사제”라며 “과거처럼 사제 옷을 입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사제가 교회와 사회에서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제는 시노달리타스의 영성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의 원천이 될 수 있도록 그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사목자 본인의 욕망이 아니라 성령의 바람이 교회의 일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생각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노달리타스 시대의 사제 리더십일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1.11.24

아프가니스탄에도 가톨릭교회가 있을까요?아프가니스탄 선교와 탈레반 점령 이후 가톨릭교회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탈레반의 포격으로 부상당한 한 아이가 구급차에서 응급 치료를 받고 있다. 【CNS】 탈레반 점령 이후 카불 이탈리아 대사관 지하에 꾸며놓은 아프가니스탄의 유일한 성당은 어떻게 됐을까? 8월 17일 탈레반 고위 인사 와히둘라 하시미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은 민주주의 체제가 아니라 이슬람 종교법인 ‘샤리아’에 따라 통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말은 탈레반 정권이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선언과 같다. 국민의 99.7%가 무슬림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 활동은 이제 녹록지 않을 듯하다. ▨아프가니스탄 교회교회 전승에 따라면 토마스 사도가 2세기 때 아프가니스탄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했다. 이란 고원 동북쪽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지리상으로 유라시아 내륙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어 서쪽의 유럽과 동쪽의 중국, 남쪽의 인도를 연결하는 문명의 교차로이자 실크로드의 요충지였다. 토마스 사도는 인도로 선교 활동을 가는 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복음을 전했다. 또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 가운데 한 명이 아프가니스탄 출신 조로아스터교 마고라는 전승도 있다. 이후 635년 당 태종 때 복음이 전파돼 ‘경교’(景敎)로 공인된 후 150년간 중국에서 활동했던 동방 교회 선교사들이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한 번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서방 교회는 동방 교회보다 1000년 가까이 늦은 시기에 아프가니스탄에 복음을 전한다. 예수회가 1581년 처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고 무굴 제국을 형성한 악바르(재위 1556~1605년) 황제가 힌두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의 포용을 위해 인도 북부 아그라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예수회 신부를 카불로 초빙했다. 또 예수회 출신 포르투갈인 벤토 데 고에스 수사가 무굴 제국의 수도 아그라에서 메카를 순례하고 온 중국 무슬림 상인으로부터 무굴 제국 북쪽 멀리 않은 곳에 1500개의 도시를 거느리고 그리스도교를 믿는 ‘키타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1602년 카불을 여행한다.가톨릭교회의 아프가니스탄 선교 전통은 21세기에 들어 다시 이어갔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2년 5월 성 바오로 성직수도회(바르나바회)에 아프가니스탄 선교를 맡기고 ‘자치 선교구’(Sui Iuris-자치 선교구는 자치 선교구장이 선교사들을 통솔해 자치적으로 선교하는 구역으로 교세가 성장하면 지목구나 대목구로 승격된다)를 설정했다. 초대 자치 선교구장 주세페 모레티 신부는 1994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를 주례하던 중 탈레반의 포격을 받고 가슴과 어깨, 다리에 포탄 파편이 박히는 큰 부상을 당했다. 2014년부터 바르나바회 지오반니 스칼레제 신부가 자치 선교구장으로 있다. 아프가니스탄 자치 선교구에는 스칼레제 신부 외 2명의 예수회 신부가 인도주의와 교육 사업을 펼쳐왔다. 인도 예수회는 2005년 아프가니스탄에 진출해 대학에서 300여 명의 교사를 양성했고, 2만 5000여 명의 남녀 어린 학생들의 교육을 지원해 왔다. 또 2006년에는 사랑의 선교회 수녀들이 진출했다. 이들은 가난한 가정과 고아, 장애아동, 문맹 소녀들을 돌봐 왔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는 사랑의 선교회 수녀 4명을 비롯해 8명의 수녀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가니스탄 내 가톨릭 신자는 200~300명 정도로 모두 국제안보지원군과 외국인 주재원, 인도주의 활동가들이다. 하지만 무슬림에서 개종한 ‘익명의 그리스도인’들도 다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의 정권 장악 이후 현재 아프가니스탄 자치 선교구는 활동을 중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미 1990년대 탈레반의 통치 아래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와 박해를 경험한 바 있는 무슬림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탈레반 정권 장악 이후 국제안보지원군에 ‘세례 증명서’를 보이며 아프가니스탄 탈출을 도모하고 있다. ▨ 아프간 금기어 ‘그리스도인’아프가니스탄에는 지상 교회가 없다. 월드 워치 리서치의 ‘세계 박해 지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은 94점으로 북한 다음으로 종교를 탄압하는 국가이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이 이슬람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할 경우 대다수가 가족이나 친척, 부족으로부터 ‘명예 살인’을 당하거나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된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여성의 경우 박해는 더욱 가혹하다. 그들은 무슬림 남자와 강제 결혼을 하거나 노예나 매춘부로 팔려간다. 남성 개종자의 경우도 투옥돼 고문이나 성적 학대를 받거나 심지어 총살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가혹하게 박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슬람을 떠나는 것을 ‘배신’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국가보다 가족과 씨족, 부족을 우선하는 사회에서 ‘개종’은 곧 명예를 더럽힌 수치이다. 부모와 씨족의 명예를 더럽힌 배신자, 배교자의 끝은 죽음뿐이다. 정부와 일반 시민 모두 어떤 아프가니스탄인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고, 이슬람 이외의 신앙을 갖는 것은 불법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무슬림 출신의 그리스도인은 아프가니스탄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에 무슬림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개종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금요일마다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하고 모스크에 가서 기도한다고 한다. 그리고 자녀들을 쿠란을 배우는 종교 학교에 보낸다. 또 탈레반의 불심검문에 대비해 그리스도교와 관련한 어떤 앱이나 정보도 휴대폰에 설치하거나 저장해 놓지 않는다고 한다. 성경이나 교회 관련 자료를 배포하거나 판매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한다.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조차 극도로 조심하며 혼자 몰래 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09.01

‘교황님과 함께하는 백신 나눔 운동’ 모금액 2억 6000만 원 전달한국평협·CPBC·가톨릭신문사, 1년간 백신 나눔 공동 캠페인 교황님과 함께하는 백신 나눔 운동 기금 2억 6000만 원을 전달한 후 관계자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오른쪽부터 조정래 신부, 조환길 대주교, 이용훈 주교, 손병선 회장, 조규만 주교, 김문상 신부.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와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CPBC), 가톨릭신문사는 7일 ‘교황님과 함께하는 백신 나눔 운동’ 캠페인을 통해 모금한 2억 6000만 원(ARS 2억 4000만 원, 평협 기금 2000만 원)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 전달했다. 이로써 한국 교회가 성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과 가경자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을 준비하는 신앙 실천운동으로 전개한 ‘백신 나눔 운동’을 통해 모금한 돈은 7일 현재 약 62억 원으로 늘었다.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린 전달식에는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수원교구장) 주교, 부의장 조규만(원주교구장) 주교, 염수정 추기경,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한국평협 손병선 회장, CPBC 사장 조정래 신부, 가톨릭신문사 사장 김문상 신부 등이 참석했다. 한국평협 손병선 회장은 경과보고 및 인사말을 통해 “백신 나눔 운동은 마음을 열어 희망의 씨앗을 심고 사랑을 나누는 일에 모두가 함께한 기쁨 체험의 시간이었다”며 “백신 나눔 운동이 돌봄 문화, 생명 존중 문화 운동으로 확산하는 마중물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용훈 주교는 인사말에서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히브 13,16)라는 성경 구절을 소개하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대로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서로에게 가까이 있음을 느끼며, 기도와 연민의 마음으로 선행과 나눔을 실천하면, 우리는 반드시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이어 “희망의 씨앗을 심어준 한국평협, 그리고 두 언론사 사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CPBC 사장 조정래 신부는 “현재 집계되지 않은 모금액을 합치면 한국 교회가 백신 기금으로 모금하는 돈은 약 7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며 “코로나19 백신을 더 많은 나라 국민과 나누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2월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코로나19 백신의 발견은 희망의 빛으로 다가오고 있고 이 희망의 빛이 모두에게 비추도록 모두가 백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며 백신 나눔을 제안했다. 이에 한국평협은 지난 2월 54차 정기총회에서 백신 나눔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했고, 주교회의는 평협의 건의에 따라 3월 춘계 정기총회에서 이를 추인하고 한국 교회 차원에서 백신 나눔 운동을 벌여 왔다. 한국평협과 CPBC, 가톨릭신문사도 이에 발맞춰 백신 나눔 캠페인을 전개하고 기금 모금을 시작했다. 특히 본당과 교구 차원의 모금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로고송을 만들고 전국 교구장이 노래를 부르며 모금을 독려하는 캠페인 영상을 제작ㆍ배포했다. 또 세계적인 소프라노 임선혜씨를 홍보대사로 위촉하고 방송과 SNS, 신문 지면을 통해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아울러 ARS(060-700-1326)를 개설해 신자들이 간편하게 기금 모금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주교회의는 지난 10월 11일~14일 열린 추계 정기총회에서 그동안 모금한 48억 원을 교황청에 전달했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 10월 20일에는 서울대교구가 추가로 100만 달러(한화 11억 원)를 송금했다고 밝혔다. 한국 교회가 전달한 백신 나눔 기금은 이미 가난한 나라 국민을 위한 백신 구입 등을 위해 사용 중이다. 이와 관련,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교회의, 서울대교구, 대전교구 등에 서한을 보내 “애덕과 너그러움을 보여 주신 모습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한국 교회에 고마움을 전했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1.12.08
![[시사진단] 당신의 인권은 안녕하십니까(황필규 가브리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cpbc.co.kr/CMS/newspaper/2021/12/rc/814838_1.1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당신의 인권은 안녕하십니까(황필규 가브리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매년 12월 첫째 주 인권 주일에 전국 곳곳에서 인권에 대해 미사 강론 봉사를 했었다. 아직도 일정은 비워둔다. 최근 몇 년간은 불러주는 성당이 없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강론을 하면 인권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고, 강론을 한 성당의 특별헌금이 천주교인권위원회라는 인권 단체에 기부될 수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현대사회의 시대적 요청과 관심에 천주교회가 함께할 것을 선언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을 이어받아 소외된 이들, 인권이 침해되는 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성직자, 수도자와 평신도들이 함께 인권현장을 누비며 활동하는 공동체다.온갖 좋은 말의 홍수 속에 과연 우리는 어떤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항상 자문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 한 신부님께서 강론 시간에 들려주셨던 시구가 잊히지 않는다. “당신은 들판의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꽃을 꺾습니다. 당신은 날아가는 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새를 새장에 가둡니다. 당신은 연못 속의 물고기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물고기를 잡아먹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나는 두렵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우리도 다른 곳에서는 이방인이기에 이방인을 억압해서는 안 되고 우리 중 일부로 여겨야 하고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성경의 말씀은 현실이 아니다. 원래 닫힌 사회란 없다. 마냥 바쁘고 쫓기는 삶 속에 닫힌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막연한 불안감, 편견, 이기적인 발상으로 내치고 외면하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일상에 매몰되어 버리는 비겁함이 있을 뿐이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는 항상 슬퍼하고 분노할 줄 알며 그것을 몸과 마음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는 미사 중에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의 단골손님이다. 우리에게 과연 ‘세계’는 어디고 ‘평화’는 무엇이며 진심으로 마음을 다해 ‘기도’했는지, 생각하고 실천했는지를 묻게 된다. 반민주적 폭정, 소수민족 등에 대한 학살, 고문, 강제이주, 강제노동 등의 범죄가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있고 이들과 결탁한 일부 기업은 이윤만을 추구한다. 모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빵과 물고기’를 가지고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기적’을 행하는 우리, 그 삶과 세계에 평화가 있을 리 없다. 겸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를 바쳐야 한다. 어느 미국 목사의 강연 테이프의 내용이 생각난다. “한 원유 정제공장이 있다. 엄청난 양의 원유를 수많은 트럭이 싣고 그 공장으로 들어가지만 나오는 트럭은 모두 빈 트럭이다. 정제된 원유가 모두 그 공장을 가동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이다.” 우리 자신, 우리 가족, 우리 사회, 그리고 우리 교회가 스스로를 추스르기도 벅차서 혹은 벅차다는 핑계로 꿈과 나눔, 소중한 많은 것들을 잊으며 지내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사랑을 주지 않아도 될 만큼 가난한 사람도 없고,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유한 사람도 없다.” 올해가 가기 전 작은 인권 실천 하나는 어떨는지. 천주교인권위원회와 같은 의미 있는 인권단체에 뜻깊은 기부도 좋고, 차가운 인권의 현장에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것도 좋다. 안녕하지 못한 인권, 우리에게는 늘 할 일이 있다. cpbc2021.12.08

복자 정복혜 간지대, 같은 세례명 중국의 서 칸디다와 닮은꼴[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9. 간지대 정복혜와 성녀 칸디다마태오 리치, 탕약망, 서광계 등과 나란히 그려진 서 칸디다의 초상화와 그녀의 은제 십자가 문구.간지대, 간거다, 칸디다 세례명을 살피다 보니 유독 「성년광익」에 없는 간지대(干之臺)란 이름이 궁금해진다. 간지대는 복자 정복혜(鄭福惠)의 세례명이다. 그녀는 1801년 2월에 붙들려와서 4월 2일에 처형되었다. 간지대는 대체 어디서 온 이름일까? 「성년광익」에도 없는 성녀 이름을 정복혜는 어떻게 자신의 세례명으로 쓸 수 있었을까? 「사학징의」에 따르면 그녀에게 세례를 준 사람은 이합규(李?逵)였다. 그녀는 1791년경 입교한 것으로 나온다. 또 「사학징의」 말미에 부록으로 실린 「요화사서소화기(妖畵邪書燒火記)」에 한신애의 집 땅속에서 파낸 서책 중에 「셩여 간거다」 1책이 들어있다. 한신애의 집에서 파낸 수많은 책들은 모두 정복혜 간지대가 가져와 맡겨둔 물건이었다. 간거다와 간지대는 동일 인명의 이(異)표기로 보인다. 간지대 또는 간거다란 이름의 성녀는 「성년광익」 365일에 날짜별로 정해둔 성인 성녀의 명단에 없다. 별도로 전하는 그녀의 전기가 따로 있었다는 얘기다. 정복혜는 「셩여 간거다」를 읽고 자신의 세례명으로 삼았을 것이다. 간지대는 성녀 칸디다(Candida)로, 중국어로는 감제대(甘第大), 또는 감제대(甘弟大)라 쓰고 읽기는 ‘칸디다’로 읽는다. 1811년 신미년 백서에도 ‘감제대(甘弟大) 복혜(福惠)’라고 적혀 있다. 간지대는 긴 장대를 가리키는 우리말이기도 해서, 음운조합이 다소 어색한 칸디다를 친숙한 우리말 어감으로 바꾼 표기다. 책 이름 속의 ‘간거다’ 또한 ‘디’에 해당하는 글자가 마땅치 않아 발음하기 좋게 교체되어 나타난 다른 표기로 볼 수 있다. 기록상 서양 성녀 칸디다는 적어도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서기 78년경 베드로 사도에 의해 치유의 은사를 받은 뒤 그의 제자가 되어 후에 로마 성문 밖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순교한 동정 성녀다. 또 한 사람은 성 에메리우스(Emerius)의 어머니인 성녀 칸디다로 에스파냐 북동부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수도원 근처에서 은수자로 살다가 선종한 여인이다. 중국 여인 서(徐) 칸디다실제 정복혜가 어떤 칸디다를 지향으로 삼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후자일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또 한 사람의 칸디다가 더 있다. 중국에 천주교가 들어올 당시 마태오 리치와 교유하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던 서광계(徐光啓)의 손녀 서 칸디다(徐甘第大, 1607∼1680)로, 서양 선교사인 백응리(柏應理, Philippe Couplet, 1623∼1693)가 라틴어로 그녀의 전기를 남기면서, “고금에 짝할 이가 드물고, 중국 성교(聖敎)에서 유일무이한 여사(女士)”라고 칭송했던 여인이다. 그녀는 허씨 집안에 시집갔으므로 서양식 관습에 따라 남편의 성을 따서 허부인(許夫人)으로 알려졌다.그녀는 로마 가톨릭교회로부터 성녀의 공식 칭호를 얻지는 못했지만, 이미 당시 교회에서도 “경건한 정성으로 주님을 공경하며, 성덕(聖德)을 부지런히 닦았다(虔誠敬主, 勤修聖德)”는 평가를 얻어, 중국 천주교회와 유럽 교회에서 성인 이상의 기림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녀의 전기는 라틴어로 먼저 쓰여졌고, 이후 불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정작 중국어로 번역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놀라운 신앙과 서양 선교사들에 대한 헌신적인 공헌 및 기여는 이미 중국 천주교회 내부에 널리 알려진 것이어서, 정 간지대가 지녔던 「셩녀 간거다」는 당시 중국 교회에서 불어 번역판을 보고 그녀의 사적을 간략하게 간추린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 불어판을 바탕으로 중국에서 「고려주증(高麗主證)」이 간행된 것과 같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서 칸디다는 중국에서 천주교가 정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서광계의 외아들 서기(徐驥)의 5남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어머니 고씨(顧氏)를 통해 천주교 신앙을 익힌 뒤, 16세에 송강부(宋江府) 허씨 집안에 시집가서도 신앙생활을 계속했다. 그녀는 당시 교난(敎難)을 만나 고통 속에 있던 서양 선교사들을 헌신적으로 돌보고, 어려운 살림에도 금전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수많은 성당의 건립에도 기여해, 송강과 소주(蘇州) 인근 지역에 135개의 작은 성당이 세워지는 데 헌신했고, 근 400권에 달하는 천주교 교리 서적의 간행에도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강도를 만나 칼에 찔려 죽기 직전 상태에 놓인 신부들을 구출해 정성껏 치료해주고 빼앗긴 여행 경비까지 마련해준 일도 있었다. 당시 최악의 상황 속에 있던 서양 선교사들에게 그녀는 구원의 천사 같은 존재였다. 이후 중국 천주교회사에서 그녀의 역할은 서양 신부들의 입과 기록을 통해 성인 이상의 존재로 각인되어, 각종 전기가 잇달아 출간되었다. 그녀는 중국에서보다 유럽 교회에 먼저 알려진 특이한 경우였다. 간지대가 소장했던 「셩녀 간거다」란 책 또한 그같은 전문(傳聞)을 수록한 소책자 중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그녀가 교회 서적의 보급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도 서 칸디다를 연상시킨다. 사학 매파 간지대「사학징의」에서 정복혜를 ‘위항천파(委巷賤婆)’로 지칭한 것을 보면, 그녀의 신분이 낮았고, 나이가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당시 교회 조직에서 서민 출신으로 가장 영향력이 막강했던 이합규를 통해 입교하였고, 그녀에게 간지대란 세례명을 내려준 것도 이합규였다. 그녀는 강완숙의 집과 예산군수를 지낸 조시종(趙時種)의 집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당시 서울 지역 천주교 조직의 중심부를 구성하던 이합규, 정광수, 김이우, 황사영 등과도 빈번하게 접촉했던 이른바 사학 매파였다. 특별히 조시종의 처 한신애 모녀와 가까웠고, 한신애의 요청으로 이합규와 정광수, 홍문갑 등을 그 집으로 데려가 그 집 비복들에게 전교하는 중간 역할을 맡기도 했다. 정광수의 처 윤운혜도 자신이 간지대와 몹시 가까웠다고 진술한 바 있다. 간지대는 온 집안이 천주교 신자였다. 오라비 정명복(鄭命福) 내외와 아들 윤석춘(尹碩春) 내외도 신자였다. 정명복 내외는 전농동에 살다가 1798년에 서소문으로 이사 왔고, 이들 또한 이합규를 통해 신앙을 받아들였다. 정명복의 사위 김덕중(金德重)도 강완숙의 집을 들락거리며 강학에 열심이었다. 정명복은 배교하고 목숨을 구해 1801년 12월에 장성으로 귀양 갔다. 윤석춘의 처는 이기양의 아들이자 이총억의 동생인 이방억의 유모였다. 이 인연으로 간지대가 천주교 신자였던 그 집안을 자주 왕래할 수 있었다. 이총억과도 가까웠다. 간지대는 덕산(德山)의 교주인 송가(宋哥)와 친해, 그가 만든 천주교 서적을 들고 다니며 교인들에게 판매한 일도 있다. 그녀가 이 시기 교회에서 담당했던 주요한 일 중 하나는 천주교 교리서의 공급과 보급책의 역할이었다. 한신애의 집에서는 땅에 파묻어둔 26종의 교리서가 쏟아져 나왔다. 이 책은 모두 간지대가 검거의 위협을 느껴 한밤중에 가져가 땅에 묻어둔 것이었다. 간지대의 것으로 압수된 책의 목록을 보면 실제로 첨례에 필요한 기도서 종류가 압도적으로 많다. 「수진일과(袖珍日課)」, 「미사(彌撒)」, 「성경일과(聖經日課)」 , 「셩경직ㅎㆎㆎ(聖經直解)」, 「성경광익(聖經廣益)」, 「셩경광익직 ㅎㆎ(聖經廣益直解)」, 「쥬년첨예쥬일(周年瞻禮主日)」 등이 쏟아져 나왔고, 「예미사규졍(與彌撒規程)」과 「오샹경규졍(五傷經規程)」 등의 책자도 모두 주일 미사 첨례에 필요한 각종 기도문과 독서 성경 및 의례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이밖에 교리서로는 「교요셔론(敎要序論)」, 「주교은지(主敎恩旨)」, 「묵상(?想)」, 「묵상지장(?想指掌)」, 「고ㅎㆎ요리(告解要理)」 , 「셩교쳔셜(聖敎淺說)」, 「척죄정규(滌罪正規)」, 「삼문답 부십계(三問答 附十誡)」, 「요리문답(要理問答)」 등이 더 있다. 「묵상지장」의 경우 한문본과 한글본이 따로 있었다. 여기에 성 라우렌시오의 순교 일기로 보이는 「노능좌명일기老楞佐命日記」와 「셩녀 간거다」 같은 책은 성인전 계통의 책자이다. 또 여성 교육을 위한 「규잠(閨箴)」, 「규람(閨覽)」 등이 더 있다. 이들 중에는 미처 표지를 씌우지 못한 책자도 여럿 보인다. 그녀의 집은 정광수 윤운혜 부부가 이끌던 성물 공방과 연계된 거점이었던 듯하다. 특별히 그녀의 압수 물품 품목에 도상판(圖像板)과 도상 족자 3개가 눈길을 끈다. 도상판은 성화를 찍어내기 위해 원화를 새겨둔 목판을 말한다. 이를 통해 당시 성화의 제작이 목판에 새겨 찍어낸 뒤 채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된 점도 소중하다. 함께 발견된 작은 주머니 6개에는 순교 성인의 모발과 나무 조각 및 성해(聖骸)와 관련된 가루 등이 들어 있어서, 당시 신자들에게 이 같은 물품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작 집주인인 한신애의 거처에서 압수된 것이 「성호경」 책과 사학 경전을 언문으로 베낀 책 1권뿐이었음을 본다면, 당시 간지대가 한신애의 집 마당에 묻어둔 자료의 범위가 얼마나 위력적인 것이었는지 알게 되고, 이를 통해 당시 교계 내 그녀의 위상에 대해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다만 「사학징의」에 실린 그녀의 공초는 뜻밖에 짧아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그녀가 특별한 진술과 배교를 거부하고 단호한 태도로 군더더기 없는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었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cpbc2021.04.29

음식 먹듯 성경을 천천히 씹고 음미해야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31)수도 전통 안에서의 되새김① 허성준 신부 수도자들은 성경을 끊임없이 읽고, 듣고, 기억하며, 그것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고, 되씹음으로써 말씀으로부터 영적 자양분을 얻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가장 잘 묘사한 단어가 바로 “ruminatio”(루미나시오, 되새김, 반추)이다. 이것은 마치 소나 낙타가 음식을 저장하였다가 그것을 살과 뼈에 스며들 때까지 천천히 되새김하는 것과 같다. 즉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 본문을 되씹음으로써 그것을 맛보고 또한 그 본문의 깊고 충만한 의미를 깨닫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특히 이러한 되새김은 수도 전통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수행 중 하나였다. 사막의 교부였던 마카리우스 압바는 우리 모두가 되새김하는 양과 같이 음식을 계속 되씹음으로써, 그 음식의 달콤한 맛을 보게 되고 마침내 마음 가장 깊은 곳으로 그 음식을 집어넣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파코미우스 성인은 각자의 소임지에서나 혹은 혼자 있을 때나 언제나 성경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 안에서 계속 반복되기를 바랐다. 파코미우스와 그의 형제들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모두 거룩한 성경 말씀을 되뇌는 수행을 멈추지 않았다. 파코미우스 성인의 제자였던 호르시에시오스의 규정집에 보면, 수도원 어디에서든지 성경 말씀을 암송하는 수행이 멈추어서는 안 됨을 강조하고 있다.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를 우리에게 전해준 히에로니무스 성인 역시 끊임없는 독서와 반복적인 묵상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서고(書庫)로 만들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요한 가시아누스는 끊임없는 묵상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우리를 형성할 때까지 스스로 열심히, 보다 더 끊임없이 렉시오 디비나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수도자는 일하면서 동시에 성경 본문을 끊임없이 묵상해야 함을 강하게 권고하였다.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묵상은 말할 것도 없이 되새김 수행을 의미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독서를 하루 동안 연장되는 되새김과 관련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마태오 복음 4장 4절을 주석하면서, 사람이 매일 빵을 먹듯이 낮 동안뿐만 아니라 밤에도 우리는 복음을 먹어야 함을 강조했다. 말씀을 듣거나 읽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과 같고,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되새김과 같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자들이 일하는 중에도 시편을 낭송하고 되새김을 계속 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현명한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계속 되씹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 후 체사리우스는 「수녀들을 위한 규칙서」에서 식당이나 일터에서 공동 독서가 끝나더라도 수도자의 마음에서는 되새김이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베네딕도 성인 역시 이러한 되새김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그는 노동 중에 행하는 되새김에 대해서는 규칙서에서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일하면서 계속 성구를 되뇌던 「베네딕도 규칙서」 이전의 모습과는 큰 차이점 중의 하나이다. 드 보궤 신부는 베네딕도회 수도생활의 핵심적 표현인 “Ora et Labora”(기도하고 일하라)라는 표현이 불충분하기 때문에 더 분명하게 ‘Ora et Labora et Lege et Meditare’(기도하고 일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필자는 이러한 그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고 있다. 수도생활이나 영성생활에서 성경은 핵심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일하고 그리고 성경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는 것’은 우리의 수도생활이든 영성생활을 안전하게 떠받치는 4개의 중요한 기둥과도 같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cpbc2020.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