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3/02/LXh1677730729377.jpg)
[제10회 신앙체험수기] 우수상-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우수상 박현경( 베로니카, 전주교구 우림본당 ) 10여 년 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앞서 걸어가는 한 아이를 보았습니다. 아이는 느릿느릿 가방문이 반쯤 열린 채로 멍하니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얘 가방문 열렸어’라고 말하려는데 순간 울컥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었습니다. 또 한 번은 집 근처 천변을 걷고 있는데 여자아이가 딴짓을 하며 걷고 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저 멀리 앞서가는 엄마를 못 쫓아가 겁이 났는지 울먹이며 “엄마!”하며 소리칩니다. 왈칵 눈물이 납니다. 그 두 아이를 보면서 저의 어린 시절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내성적이고 숫기 없고, 항상 불안해하며 겁에 질려 멍하게 다녔습니다. 엄마는커녕 어느 누구에게도 도와달라고 소리쳐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는 길고 길었던 그 어둡던 터널을 이제 막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전북 전주에 살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는 숲’이라는 뜻의 초콜릿색 벽돌로 지어진 아담하고 예쁜 성당, 우림성당에 다닙니다. 본당에서 10분쯤 차를 타고 가면 ‘숲정이’라는 성지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 한켠에 표지석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옛날에는 이곳이 소나무가 많은 숲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또 가까운 한옥마을에는 기와지붕들 사이로 100여 년 전쯤 프랑스에서 건너온 보두네 신부님이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전동성당이 있습니다.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지만 우리나라 최초 순교자,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의 순교 터이기도 합니다. 한옥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그리 높지 않은 치명자산(致命者山)이 있습니다. 산 정상에 동정부부 복자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과 그들의 가족을 합장한 순교자 묘와 작은 성당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 축복의 땅에서 하느님의 은총 속에 저는 지금 평온하게 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14,27)를 체험하면서 말입니다. 1973년 춘향이의 고장으로 잘 알려진 남원의 한 조그만 시골 마을에서 저는 1남 7녀 중 여섯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제 밑으로 어머니는 여동생 하나와 우리 집에 유일한 아들, 막내를 낳았습니다. 1년에 열 번 이상 친척들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가부장적인 유교 집안에서 제사와 선산을 물려 줄 아들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아버지는 무능했고, 성실하지도 못했습니다. 거의 매일같이 술을 드셨고 폭언과 욕설을 퍼붓고 폭력까지 휘둘렀습니다. 그리고 차갑고 자존심 강한 어머니와 계속 싸웠습니다. 그런 어머니는 혼자서 거의 집안일과 제사, 농사일, 자식 키우는 일을 도맡아 하셨습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도 아이들은 커갔습니다. 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언니들이 서울 작은 회사에 경리 사원으로 취직하면서 집안에 조금씩 보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역부족이었는지 두 동생은 부모님 곁에 남겨두고, 언니들이 여덟 살난 저와 열두 살 먹은 제 위의 언니를 키우겠다고 서울로 데리고 갔습니다. 연탄을 때는 3평도 안 되는 단칸방에서 다섯 명이 살았습니다. 전교생 다 합쳐 400명이 안 되는 시골학교에 다니다가 한 반에 무려 70명씩 15반까지 있는 대도시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아무도 없는 자물쇠 잠긴 방문을 열다가 소변이 급해 그 자리에서 싼 적도 있었고, 연탄을 갈아야 하는데 연탄끼리 붙어서 떨어지질 않아 아직 채 크지도 않은 손으로 부엌칼을 들고 연탄을 쳐서 떼어 내기도 했습니다. 저보다 네 살 많은, 똑같이 철부지인 언니는 저만 혼자 남겨두고 친구들과 놀러 나가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자주 몸이 아팠던 기억도 있는데, 열이 나거나 식중독에 걸려 몸에 두드러기가 나면 언니들이 올 때까지 혼자 울면서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더 힘들었던 건 언니들의 매질과 눈총이었습니다. 이제 스물을 갓 넘긴, 생계를 책임져야 하고 삶에 지친 언니들에게 부모의 마음까지 바란다는 건 역부족이었을 것입니다. 부모님이 절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자신감 없고 자존감 낮은 소극적인 아이로 커갔습니다. 학교 성적은 그런대로 상위권을 유지하였지만 고2 때부터 공부도 어려워지고, 사춘기에 우울증까지 겹쳐 집중력도 떨어지고 계속 시들시들 잠만 잤습니다. 그러나 남원에서 고등학교 때 춘향이로 선발되기도 했던 착하고 예쁜 셋째 언니 덕택으로 가까스로 2년제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졸업하고 작은 출판사에서 교정보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자기 형부가 다니는 큰 회사 홍보실에 취업시켜준다고 해서 그만두고 가보니, 다단계 피라미드 회사였습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저는 친구랑 같이 있고 싶기도 했고, 거기 있는 사람들의 그럴싸한 허황된 논리에 빠져 얼마 되지도 않은 돈도, 친구도 다 잃고 세월만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우울증은 점점 더 심해졌습니다. 그때는 우울증이란 개념도 모호했고 병도 아니었으며, 병원에 가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고등학교 때부터 쭉 해왔고, 더 무서운 건 칫솔을 들 힘조차 없어지는 무기력증이었습니다. 삶에 대한 의욕도 없고 그렇게 지내다 좀 힘이 생기면 1, 2년 직장 다니다가 또 몇 년 쉬고, 그러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50세가 된 지금 사회생활한 햇수가 10년이 채 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상태가 주기적으로 찾아왔고 집에서 계속 노니까 엄마 대신 언니들 산후조리도 하고 아기도 봐주고 하면서 도무지 희망 없는 삶을 이어갔습니다. 당연히 가족에게 신뢰와 인정도 받지 못했습니다. 성경 속 욥이 자신을 저주하며 말합니다.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욥기3장) 마음속 깊이 부모님과 형제들을 원망했고 제 자신을 미워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을 따라 몇 번 교회에 가기도 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가끔 근처의 교회에 조용히 기도하다 오긴 했지만, 신을 냉소적으로 바라봤습니다. 그러다 2007년쯤엔가 광화문에서 촛불집회가 있었는데 어쩌다 거기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게는 신기하기만 했던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의 실제 모습을 가까이서 처음 보았습니다. 그전까지 가톨릭은 제게는 예술 작품으로서만 접해진 상태였습니다.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그레고리오 성가, 바흐의 교회 음악들, 미술학원에서 서양화 수업 때 배우고 모사해 본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화가들이 그린 성화들에서 말입니다. 신부님들이 미사를 집전하고 수녀님들과 사람들이 그 앞에 앉아서 미사 경문을 외우는 모습을 보았는데, 어떤 경건함과 안정감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어릴 적 학교 가는 길에 선망의 눈으로 봤었던 장미덩굴이 있는 파란 대문의 빨간 벽돌집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 안에 들어가면 나는 보호받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같이 생활했던 언니들과 대학을 마친 동생들이 모두 독립하거나 결혼을 하면서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직장도 없고 그림만 그리고 있었던 저는 언니들 집을 전전하다 결국 부모님이 계시는 전주로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동생 둘을 공부시키기 위해 전주로 삶의 터전을 옮기셨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식당 주방일, 함바식당, 야채 노점상을 하며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폭군이었고 뜻대로 안 되면 칼과 망치를 휘두르며 위협까지 했습니다. 온갖 고생으로 더 냉랭해지신 어머니는 거기에다 남동생만 끔찍하게 생각했습니다. 오랜 세월 떨어져 살고 절 키우지도 않아서 그런지,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부모 자식 간 서로 정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당하는 어머니 편을 들어 주며 대들다가 맞기도 했고, 온갖 눈총과 폭언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언젠가는 이 집에서 나갈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교회 신자였던 어떤 언니가 준 성경책의 한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후에 찾아보니 신명기 20장의 내용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 중 새집을 짓고 봉헌하지 못한 사람, 포도밭을 가꾸어 놓고 그 열매를 맞보지 못한 사람, 여자와 약혼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라.’ 이 구절을 읽고는 한참을 펑펑 울었습니다. 제게는 집도, 가꿀 포도밭도, 배우자도 없었습니다. 더 가슴 아팠던 건 세상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항상 떠도는, 아집과 삐뚤어진 신념으로만 꽉 찬 실상은 텅 빈 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가까이서 오래 생활해 보니 문득 어머니가 원망스럽지만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예처럼 일하고 아버지께 천대받으며 사신 어머니는 친구 하나 없는 외톨이셨습니다. 다른 할머니들처럼 어디 교회라도 좀 다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마 성당이 어머니에게 좀 맞겠다 싶었습니다. ‘나도 여기 계속 살 건 아니지만 세례라도 받아놔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성당에 등록하고 교리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때가 서른일곱 살이었습니다. 막상 성당에 다녀보니 어머니를 성당에 다니게 한다는 건 엄두도 나지 않았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리교육 해주신 보좌 신부님을 난생처음으로 그만 짝사랑하고 말았습니다. 문자로 고백했더니 두 번 다시 전화도 받지 않고 피하셨습니다. 아무에게도 말도 못하고 죽을 것 같은 힘든 시기를 겪으며, 하느님을 저주하며 냉담자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다 길에서 마주친 본당 자매님이 제게 성당 안 다니면 더 힘들다고 그러셔서, 정말 더 힘들어서 그냥 별수 없이 성당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엉겁결에 견진성사도 받고, 성서 40주간까지 하면서 성경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울증으로 집중도 잘되지 않는 제가 웬일인지 내용이 머리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모세 5경을 읽을 때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령하신 규정과 법규가 사랑 가득 담긴 엄마의 잔소리 같았습니다. 복음 말씀에서는 예수님이 고쳐주신 벳자타 연못의 병자, 하혈하는 여인, 등 굽은 여인, 눈먼 사람, 중풍 병자, 나병 환자가 마치 저 같다고 생각되었고 예수님의 사람에 대한 측은지심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한 약속과 미사 때마다 읊조리는 간절한 한마디,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아 나는 이제 살아봐야겠구나. 여기 다니면 나도 나을 수도 있고, 언젠가는 나도 갈 곳이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상태로 부모님 집에 계속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로든 피해야겠는데 갈 데가 없었습니다. ‘서울로 다시 가자.’ 만기가 된 연금보험을 해약해서 서울역 뒤에 성당 가까운 곳, 허름한 고시원으로 숨다시피 들어갔습니다. 높은 언덕배기 아래 ‘리빙텔’이라는 고시원이었는데 창문이 있었지만 앞 건물에 가로막혀서 낮에도 어두컴컴했습니다. 처음엔 너무 무섭고, 춥고, 좁아서 이상했고, 거기 들어갈 때면 마치 봉분(무덤)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들과는 벌써 오래전에 연락을 끊었고, 휴대폰도 아예 없애고 가족과도 연락을 끊었습니다. 며칠을 잤고 계속 울었던 것 같습니다. 지친 엘리야 예언자가 주님께 말합니다. “주님, 이것으로 충분하니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1열왕19,4)’ 하루는 밥도 먹지 않고 비몽사몽 저도 모르게 뭐라 욕을 하면서 자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어깨가 뭐에 끌리듯 들썩들썩하더니 큰 소리로 “얼른 일어나 용서 빌고 밥 안 먹을래!”라고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잘못했다고 하고 얼른 밥을 챙겨 먹었습니다. 성당은 꼬박꼬박 다녔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요한15,5-6) 이 말씀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서 1년 동안을 지냈는데 그때까지 살면서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연히 보험 해약한 돈이 바닥났습니다. 일을 한다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전주 부모님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여전히 대낮부터 술에 취해 고함을 지르는 아버지. 방에서 울면서 묵주기도를 했고, 어디선가 좋다는 말을 들어서 103위 한국성인 호칭기도를 멍한 머리로 가까스로 외워서 며칠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핍박은 더 심해졌고 겁도 없이 맞서다가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언니들은 무관심했고 할 수 없이 대모님께 도움을 청하자, 가정폭력상담센터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는 12월 겨울 새벽, 엄마에게만 말하고 또다시 짐을 싸서 센터로 갔습니다. 한 방에 4, 5명씩 생활했는데 거기서 한 달을 있다가 못 있겠어서 다시 집으로 왔습니다. 아버지가 잘 때 들어와서 어떻게 할까 무서워 방문까지 잠그고 자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결국 수십 년간 곪고 곪았던 상처가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몇 날 며칠 한숨도 못 자다 한밤중에 숨이 안 쉬어져 근처 사는 여동생을 불러 응급실로 갔습니다. 병원에서 며칠간 입원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황장애, 불안장애, 수면장애, 불면증, 열병, 두근거림 온갖 증상이 다 나타났습니다. 그때부터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보험은 적용됐지만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치료비를 감당했습니다. 그전까지 다른 성당으로 미사를 다녔었는데 버스 타기도 힘들고, 마트가 기도 힘이 들어 집 근처 성당으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고통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일념으로 할 수 있는 내에서 더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리코의 눈먼 이가 부르짖습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18,38-39) 제 자신이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걸 알았습니다. 약 기운 때문에 하루에 절반 이상을 잠으로 보냈고,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미사도 계속 나가고 구역 모임에도 가고 레지오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사정을 안 교우들이 저를 따뜻하게 지켜봐 주고, 기도해 주고, 도와주기 시작했습니다. 베로니카, 요안나, 스텔라, 엘리사벳, 마리아, 안나, 수산나, 체칠리아, 안젤라, 클라라 자매님…. 불안증으로 너무 고통스러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하여 도움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싫은 기색도 없이 가라앉을 때까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대화하고 안심시켜주는 말을 해주고, 하느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성령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구역장님은 제게 친구가 다닌다는 재속 가르멜회에 입회해 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세례받고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떤 교우분이 한번 제게 권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앞뒤 재지도 않고, 하느님의 뜻인가 보다 하고 망설이지도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차츰차츰 술을 줄이더니 술을 완전히 끊고 딴사람이 되었습니다. 성질이 온순해졌고, 어머니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제게 눈치를 주거나 말을 함부로 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조금 더 다정해지고, 부드러워졌으며, 밝아지셨습니다. 매일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할 만큼 정성스럽게 제게 밥을 해 주십니다. 지난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로 장식된 케이크를 가운데 놓고 촛불을 켜고 제가 캐럴을 불러 드렸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 기도를 했더니 놀랍게도 두 분이 손을 모으고 눈까지 감으며 같이 기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제가 달라져서 그런지 형제들도 저를 호의적으로 대했습니다. 제가 부모님 곁에 있어서 안심된다고 고맙다고들 합니다. 병원치료도 계속 받으면서 저를 고통스럽게 했던 증상들이 많이 치유되었고 몇 년간 먹었던 약들도 많이 줄이고 있습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신부님과도 정기적으로 상담도 하고 안수기도도 받았는데,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 져서 돌아오곤 했습니다. 거의 매일 미사를 드리고, 성경을 읽고, 묵상기도, 묵주기도를 하고 성무일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몸도 마음도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재속 가르멜회에서 배운 성인, 성녀들의 삶도 제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의 삶과 하느님에 대한 열정,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훌륭한 작품으로 써낸 십자가의 성요한이 그렇습니다. 지난가을에는 마산에 있는 가르멜 수도원에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오가는 길에 형형색색 물들기 시작한 풍경이 마치 안개가 걷힌 듯 새롭고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마음에 편안함을 느낀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항상 내부의 적, 외부의 적과 싸우느라 전쟁터 같았던 제 영혼의 안식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집에 온 것 같았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7,38) 푸른 식물을 제 손으로 키우고, 활동량을 늘려가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저를 더 많이 표현하고 하느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삶의 의욕이 샘솟고 저 하늘의 별이라도 딸 만큼 힘이 생겼습니다. 매일매일이 제 생애 최고의 날입니다. J.D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학교와 가정에서 이해받지 못한 주인공 홀든은 순진무구한 어린 여동생 피비에게 말합니다. “나는 넓은 호밀밭 같은 데서 조그만 어린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항상 눈앞에 그려 본단 말야. 몇천 명의 아이들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곤 나밖엔 아무도 없어. 나는 아득한 낭떠러지 옆에 서 있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누구든지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 같으면 얼른 가서 붙잡아 주는 거지. 애들이란 달릴 때는 저희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 모르잖아? 그런 때 내가 어딘가에서 나타나 그 애를 붙잡아야 하는 거야. 온종일 그 일만 하면 돼. 이를테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는 거야.” 터널은 또 올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습니다. 사랑받는 하느님의 딸, ‘참된 얼굴’이란 뜻의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주었듯이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우울증에 운동이 가장 중요하다고 해서 거의 매일 천변을 걷습니다. 한 아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 숨넘어갈 듯 까르르 웃어댑니다. 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박현경(베로니카, 전주교구 우림본당) 평화신문2023.02.28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본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과 자유현대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 분석
신학·윤리학·교회사 관점으로 해석
자유 의미, 그리스 철학 등으로 풀어
우리 시대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과 자유의 의미를 다각도로 성찰한 책이 각각 출간됐다. 전자는 현대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을 신학과 윤리학, 교회사의 관점에서 분석했고, 후자는 자유를 그리스 철학, 그리스도교, 근대 철학 사상에서 풀이했다.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 찰스 E. 커런 신부 지음 / 이동화 신부 옮김 / 분도출판사현대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을 신학과 윤리학, 교회사의 관점에서 포괄적으로 분석하고 비평한 해설서다. 일반적으로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이라는 용어는 사회적 사안에 관련된, 1891년 레오 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시작하여 현재까지의 교황 및 교도권 문헌 열두 편으로 구성된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은 이러한 문헌들에서 다루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 “「사십주년」의 첫머리에서, 비오 11세 교황은 레오 13세와 많은 가톨릭 신자가 노동 계급의 비인간적 고통을 극복하는 데 헌신했고, 그것은 그들이 ‘현세 재화의 분배에 있어서 너무나 널리 만연되어 있는 부당한 차별이 도저히 전지하신 창조주의 뜻에 합치한다고 믿을 수 없었기 때문’(「사십주년」 2항)이라고 지적한다.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사안에 가톨릭이 관여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있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며, 그 존엄성의 수호와 촉진을 창조주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셨다’(「사회적 관심」 47항)라고 가르친다.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의 존재 자체와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한 참여는 하느님께서 창조의 목적을 갖고 있다는 점과 인간은 이 목적에 맞갖게 활동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적 가르침과 교회 사명의 근거에는 창조와 창조의 선함 이상의 것이 포함되었다.”(38~39쪽)가톨릭 사회윤리의 기본적인 원천은 성경의 사회적 가르침이다. 히브리 성경은 십계명을 포함하여 많은 사회적 가르침을 담고 있다. 신약성경 역시 동일한 주제를 담고 있으며, 특별히 재산과 관련된 위험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리스도교의 첫 천 년기에 교회와 그 지도자들은 국가와 교회 사이의 관계, 정치, 상업, 가족 등 삶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주제를 다루어야 했다. 두 번째 천 년기의 초창기에는 대학이 생겨나 특히 신학과 법률에 대한 지식을 추구했고, 종교개혁과 트리엔트공의회 이후 가톨릭 윤리신학은 일반적으로 교회의 내적 삶에 더욱 집중했다. 18세기에는 개인과 인간 자유에 중점을 둔 계몽주의가 발전했고(결국 가톨릭은 계몽주의와 적대적 관계에 놓이게 된다), 19세기 후반에는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자들의 곤경이 중요한 사목적 관심이 되면서 중세를 인간 실존의 황금기로 보려는 가톨릭의 경향은 20세기까지 계속된다. 다른 한편으로 가톨릭은 사회주의의 무신론, 유물론 등을 전적으로 거부하며, 자유주의와 사회주주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과 철학에 집중한다. 저자인 찰스 E. 커런(뉴욕 로체스터교구) 신부는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과 관련된 문헌들을 크게 방법론과 내용으로 나누어 연구하면서, 특히 이 같은 역사적 발전과 변화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엘리자베스 스컬록 대학교 인간 가치 교수로 재직 중이며, 가톨릭 윤리신학, 사회윤리에 관한 책을 다수 집필했다. 책을 번역한 이동화 신부는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부산 당감본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자유의 의미에 대하여에머리히 코레트 신부 지음 / 김진태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자유란 무엇일까? 우리는 자유라는 말을 할 때 무엇이라고 이해할까? 「자유의 의미에 대하여」는 사상사 안에서 사람들이 자유를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해석하는지, 동시에 그것을 넘어 실제적인 자유 실행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저자는 먼저 ‘사상사 안에서 자유’를 통해 그리스 철학, 그리스도교, 근대 철학의 자유관을 추적한다. “인간 자유는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을 얻게 된다. 그것은 하느님 앞에서의 자유, 영원한 구원이냐 비구원이냐에 대한 자유가 된다. (중략)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갈라 5,1)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갈라 5,13)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에 대한 선포는 새로운 자유의 복음으로 등장한다. 이 자유는 무엇을 의미하는가?”(55쪽) 두 번째 글 ‘자유와 대립되는 필연’에서는 인간과 신들을 지배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무조건적인 필연과 그리스도교적 자유 사이의 긴장관계를 다룬다. 역사를 살펴볼 때 모든 것을 지배하는 필연에 대한 그리스적 사고가 거듭 그리스도교 공간 안에 침투해 들어와 참된 자유를 위협한다. “여기서 문제는 우선적으로 인간의 자유가 아니라 ‘필연적 유출의 모든 형태와 대조를 이루는’ 하느님의 자유이다. 하느님의 창조적 자유만이 인간에게 자유의 공간을 보장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 자유의 가능성의 조건이다.” (122쪽)마지막으로 ‘신에 대한 통로로서 의미 물음?’에서는 의미, 의미 수락, 의미 실현이 무엇을 뜻하는지 묻고, 의미의 근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모든 경험 내용들, 모든 사건과 만남들, 모든 운명과 우연적인 일들, 무의미해 보이는 고통이나, 심지어 죽음에서 이루어지는 일체의 삶의 유의미성과의 단절까지, 이 모든 것은 만일 신과 관련지어지고 신에서 출발하여 새롭게 이해된다면, 비록 우리가 각 개별적인 경우에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의미를 구성하는 새로운 배후관계를 얻게 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의미 있는 것이 된다.” (203쪽) 인간을 이해하려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자유가 결코 자의가 아님을 서양철학사와 그리스도교 사상사를 통해 새롭게 분석한다. 저자인 에머리히 코레트 신부는 인스브루크대학교에서 철학 교수로 재직하며 2006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많은 철학 저술을 남겼다. 책을 번역한 김진태(가톨릭교리신학원 원장) 신부는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철학 교수를 역임했다.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평화신문2022.10.05
![[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9.오르막길 둘레길 내리막길](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6/08/JtG1686187070155.jpg)
[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9.오르막길 둘레길 내리막길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2020년 9월 말 고향으로 돌아와서 몇 개월 보내고 난 후 첫 새해를 맞이했다. 전·진·상(全眞常) 영성수련 7박 8일을 기획해서 집에서 개인 피정을 시작했다. 8일간의 식단을 미리 짜놓고, 규칙적인 몸 기도, 산책, 청소, 시간전례(성무일도, Divine Office), 미사와 다섯 번의 기도 시간을 포함한 일정표에 따라 수련을 시작했다. 첫째 날 △몸과 마음의 긴장 풀기를 시작으로 △오감으로 창조세계 관상 △타격아(打擊我, 포기) △타도아(打倒我, 겸손) △타사아(打死我, 순명) △온전한 비움(全牲) △진실한 사랑(眞愛人) △항구한 기쁨(常喜樂) △삶의 자리에서 참 행복(眞福八段)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 발견에 관한 성경 구절들을 묵상했다. 넷째 날, 버림과 따름에 대해 묵상을 하다가 뒷동산 산책길 이름이 떠올랐다. 뒷산은 세 가지 형태의 길이다. 오르막길이 15분, 평평한 둘레길이 10분, 그 후 내리막이 10분 정도이다. 오르막은 숨을 헐떡이며 정상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 일어나고, 둘레길은 안정되고 평탄한 쉼의 여정, 내리막은 비우고 내려놓아 또 다른 형태의 삶을 누리는 순간이다. 마치 우리의 인생길과도 같고, 영적 여정과도 어울린다. 그리스도인들이 회심하여 세속적인 가치를 벗어나 하느님께 의탁하는 교회의 전통적인 영적 성숙의 여정, 성덕, 진보의 3단계가 떠올랐다. 정화의 길, 조명의 길, 일치의 길이다. 이 여정은 모든 그리스도 신앙인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성령에 자각된 자아는 이 길을 걷고자 한다. 보나벤투라(1217~1274)는 정화되고 싶다면 양심의 가책에 의지하여 자신을 단련시키라고 한다. 조명되고 싶다면 지성의 빛에 의지하여 죄를 용서받았음을 드러내라고 한다. 완전한 일치를 얻고 싶다면 지혜의 작은 불꽃에 의지하여 피조물에 대한 모든 사랑을 우리 마음에서 남김없이 뽑아버리라고 한다. 꼬미 마을 뒷동산 오르막길 안내 팻말. 세 가지 길로 나아가는 방법은 묵상(독서), 기도, 관상이라고 말하고, 내적 여정의 목적은 평화의 안식(좌품천사), 진리의 빛(케루빔), 사랑의 감미로움(세라핌)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꼬미마을 뒷동산 오르막길에서 몸과 마음과 영혼의 정화를 꿈꾼다. 지은 죄 때문에 수치스러워하며, 유혹에 맞서 싸우고, 적극적으로 십자가 따름을 열망한다. 둘레길, 조명의 길에서 고통을 받고 계신 분이 누구신지 생각하고 믿음으로 자신을 내맡기며, 깊은 통찰력을 갖고, 용서받은 잘못에 대한 은혜의 빛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내리막길을 걸어가면서 하느님과의 일치를 희망하며, 영혼의 친교 안에서 늘 주님을 열망하며, 기뻐하고 매달리고 있음을 고백한다. 피정을 마치고 왕복 길을 안내하는 팻말을 세웠다. △오르막 : 정화의 길, 포기의 길, 십자가의 길 △둘레길 : 조명의 길, 겸손의 길, 부활의 길 △내리막 : 일치의 길, 순종의 길, 육화의 길이다. 꼬미마을은 이제 우리만의 공간을 넘어서서 지친 영혼의 쉼터, 안식처가 되고자 한다. 지금은 관솔과 함께하는 쉼 & 회복 여정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산길을 오를 때마다 성모님처럼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뛴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10) 김광숙(노엘라) cpbc2023.02.28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하루 36알의 약 삼키며 홀로 버티는 노모](//cpbc.co.kr/CMS/newspaper/2023/02/rc/841587_1.1_titleImage_1.jpg)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하루 36알의 약 삼키며 홀로 버티는 노모폐렴 합병증으로 쓰러진 70대 박씨, 지하방 먼지에 기침과 천식 심해져 서울 녹번동본당 조춘옥(빅토리아, 오른쪽) 사회사목분과장이 눈물을 흘리는 박재희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하느님 믿는 사람이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약이 있으면 먹고 죽고 싶어요.” 박재희(유스티나, 77, 서울 녹번동본당)씨는 “몸이 너무 아파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이런 말을 해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박씨는 매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한 다세대 주택 지하. 노란불이 켜진 채 돌아가는 공기청정기가 이곳의 공기 상태가 어떤지 말해줬다. 몇 달 전 넘어져 제대로 걷기 힘들다는 박씨는 침대에 앉아 연신 기침을 했다. 최근에는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다 또 한 번 넘어졌다. “2007년 폐렴 합병증으로 쓰러졌어요. 그 뒤로 기관지 천식을 앓고 있습니다.” 지하방의 특성상 방 안으로 먼지가 많이 들어온다. 특히 밖에서 차가 지나가며 발생하는 먼지나 누군가 피운 담배 연기가 방안으로 들어올 때면 곧바로 기침이 시작된다. 기침이 한번 시작되면 보통 3시간은 기본이고, 한 달간 멈추지 않을 때도 있다. 이뿐만 아니다. 만성 위궤양, 퇴행성관절염, 목과 허리 디스크, 골다공증, 고혈압 등 박씨가 앓는 병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다. 면역력 저하로 수술 치료는 포기한 지 오래다. 병마는 밤에 박씨를 더 괴롭힌다. 낮보다 기침이 더 심해지고 낮에는 없던 온갖 통증이 찾아온다. 극심한 통증으로 밤새워 뒤척이기 일쑤다. 그러다 해가 뜰 무렵 겨우 눈을 붙인다. 이렇다 보니 박씨는 성당에 나가기는커녕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가족도 없는 그는 하루 36알의 약을 삼키며 버티고 있다. 박씨는 젊은 시절 꽃이 좋아 꽃집을 했었다. 꽃과 함께 살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꽃꽂이도 가르쳤다. 그때 만난 수녀님들의 모습이 좋아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IMF를 겪으면서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다. 빚을 내 꽃집을 계속 운영했지만 그마저도 힘에 부쳐 눈물을 머금고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삶의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박씨는 기초생활보호 대상자다. 매달 62만 원을 받지만, 대부분은 약값으로 나간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 오래 살아서 나랏돈만 축낼 것이 아니라 빨리 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런 그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계단이 없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에서 사는 것이다. 박씨의 유일한 낙은 가톨릭평화방송을 통해 미사를 보고 성경을 읽으며 기도하는 일이다. “하느님, 저 좀 살려주세요. 성모님 저 좀 도와주세요. 그렇게 기도해요.”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후견인 : 강용덕 비아토르 / 서울대교구 녹번동본당 사목회장 질병과 주거환경의 어려움과 고통 속에도 신앙에 의지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박재희 자매님께 주님 사랑이 전달되도록 많은 기도 부탁합니다. 성금계좌(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박재희씨 가정에 도움 주실 독자는 3월 5일부터 3월 11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421)에게 문의 바랍니다. 도재진2023.02.28

젊은이들의 뜨거운 질문과 ‘교황의 대답’디즈니가 제작·출시한 다큐‘아멘: 교황에게묻다’ Hulu 공개 디즈니가 제작, 출시한 다큐멘터리 ‘아멘: 교황에게 묻다(The Pope: Answers)’. 프란치스코 교황이 촬영장에 도착해 젊은이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이들과의 대화에서 “진정한 교회는 변방에 있다”고 말했다. 한 젊은이가 가톨릭계 초등학교에 다닐 때 교사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울먹이며 털어놓자 교황은 “교회 내 사람이 아동을 짓밟았다면, 그는 끔찍한 위선자이며 이중 생활자”라고 비판했다. 일부 젊은이는 교황이 낙태에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히죽거리기도 했다. 교황과 젊은이들이 교회를 둘러싼 6가지 뜨거운 쟁점(hot-button)을 놓고 격의 없이 대화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아멘: 교황에게 묻다(The Pope: Answers)’가 5일 공개됐다. 디즈니가 제작한 이 다큐는 미국의 OTT 서비스 업체 Hulu에 독점 공급됐다. 다큐 촬영은 로마 시내에 있는 한 허름한 작업실에서 진행됐다. 촬영 장소에 미리 도착해 교황을 기다리던 젊은이들은 “그 양반은 카포(Capo, 마피아 두목)야”라며 키득 키득거렸다. 작업실에 들어선 교황은 젊은이들을 보자마자 “악동들이구먼!”하고 반가워했다. 대화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대화에 참여한 젊은이 10명은 국적이 모두 다르다. 종교도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등 각양각색이다. 교황은 이들의 도전적인 질문을 진지하게 듣고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답변을 이어나갔다. 다음은 대화 내용 발췌. - 교황님은 왜 그토록 ‘변방’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나요? “진정한 교회는 변방(변두리)에 있어요. 현실을 보고 싶으면 중심에서 벗어나 변두리로 가세요. 사회적 불의가 무엇인지 알려면 변두리로 가야 합니다. 종교적 의무는 이행하지만, 변방으로 갈 용기를 내지 못하는 공동체는 그저 ‘좋은 사람들이 모인 사교클럽’에 지나지 않아요. 가장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교회의 임무에요.” - 교회는 무슨 근거로 여성 사제와 여성 교황에 반대합니까? “신학적인 문제입니다만, 교회라는 단어는 ‘남성형(il)’이 아니라 ‘여성형(la)’입니다. 교회 자체가 그리스도의 아내, 여성이죠. 교회에는 전통적으로 두 가지 흐름, 또는 원칙이 있어요. 사목은 남성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한 어머니 역할은 여성의 소명과 일치합니다.” - 교황님은 낙태 행위를 ‘살인 청부업자 고용’이라고까지 비난하셨는데, 낙태는 여성의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낙태한 여성을 단죄하지 않으시고 함께 걸으실 거라고 믿어요. 교회가 낙태한 여성을 단죄하면 안 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낙태는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행위에요. 발생학 전문서적을 봐도 태아는 수정 후 한 달이 지나면 DNA가 정렬되고, 모든 장기가 형성됩니다. 뱃속 태아는 세포들의 집합체가 아녜요. 체계화된 인간입니다. (임신과 출산에 따른) 문제를 없애기 위해 인간 생명을 제거하는 것이 타당한가 자신에게 물어보세요.”(이때 한 여성이 ‘낙태는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자유롭다’고 적힌 패션용 머리띠를 교황에게 정중하게 전달했다. 교황은 미소 띤 얼굴로 선물을 건넨 여성의 뺨에 입맞춤했다.) - 저는 소셜 미디어에 포르노물을 올려 번 돈으로 어린 딸을 키우고 있어요. 포르노에 대한 교회 입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소셜 미디어의 장점(편리한 기능)과 당신이 하는 일의 도덕성 사이에 구별이 필요합니다. 소셜 미디어의 도덕성은 당신이 그것을 무엇에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소셜 미디어에 음란물이 줄어들면 당신에게는 손해겠지요. 하지만 그 음란물을 보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쪼그라듭니다. 성은 하느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에요. 성적 표현도 인간을 풍요롭게 해주죠. 하지만 성적 표현이 진정한 사랑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당신을 쪼그라트릴 겁니다.” - 저는 트랜스젠더인 동시에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에 성소수자(LGBT)를 위한 공간이 있나요?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저의 의무는 모든 사람을 환영하는 겁니다. 제게는 누구를 교회 밖으로 쫓아낼 권한이 없어요. (일부 신앙인이 성경을 근거로 성소수자를 단죄하는 데 대해) 증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앙을 이용하는 사람은 ‘침입자(간첩)’입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함으로써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김원철2023.04.13

뙤약볕 피해서 책 속으로, 신앙의 공감과 위로에 빠져보자!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올 한 해 절반을 살아내느라 이래저래 힘들었다면 성직자와 수도자가 건네는 공감과 위로로 마음부터 추슬러보면 어떨까. 때때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끌어안는 이야기가 와닿을 것이다.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 허찬욱 신부 지음 / 생활성서 “‘너의 슬픔을 이해한다.’는 말이 상대방에게는 정작 공감의 말로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려면, 타인의 슬픔이 어떤 것인지 조심스레 물어야 합니다. 타인이 슬픔을 대하는 방식은 어떤 것인지 섬세하게 봐야 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슬픔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원래 그런 슬픔’은 없는 거니까요.”(20쪽)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신학 박사학위(종교철학 전공)를 받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허찬욱(대구대교구) 신부가 월간 ‘생활성서’와 ‘빛’에 연재한 글을 모아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를 펴냈다. 생각나는 주제로 매달 글을 썼는데, 모아놓고 보니 유독 슬픔에 관한 글이 많았다. 슬픔만큼 보편적인 감정도 없지만 슬픔만큼 다양한 층위를 가진 감정도 없고, 사람마다 슬퍼하는 방식이 다르니 슬픔의 전형, 말하자면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도 이와 같아서, 모호함을 피하려 하면 온통 잘못 읽고 맙니다. 특히 슬픔에 잠긴 마음은 언어가 사라진 텍스트라서 읽기가 더 힘들지요. 언어가 사라진 곳에 펼쳐진 드넓은 행간, 그 사이에 켜켜이 쌓인 불편하고 모호한 감정을 함께 견뎌야 합니다.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하지 않으려면, 이 불편하고 모호한 순간을 견뎌야 합니다.”(75쪽)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숨조차 쉴 수 없는 슬픔이 있습니다. 인간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고, 하느님은 침묵하는 순간의 짙은 슬픔 말입니다. 그 순간에는 하느님께라도 따져야 합니다. 하느님이라도 원망해야 합니다. 그래야 겨우 숨을 쉴 수 있는 사람에게, 신심 깊은 마음만 가지고 늘어놓는 종교적 위안은 슬퍼하는 사람의 마지막 숨통을 막아 버립니다.”(100쪽) 허 신부는 작은 울림이 있는 일상의 ‘작은 이야기’를 성경을 비롯해 문학, 음악, 영화, 미술 작품을 빌려 깊게 성찰한다. 이 과정에서 인용한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쓰시마 유코의 「자카 도프니 여름 집」, 김연수의 「시절일기」, 김진영의 「아침의 피아노」도 찾아 읽고 싶게 만든다. 특히 슬픔과 고통, 위로와 공감이라는 화두에 관심을 지닌 독자라면 생각 맞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듯 책장을 넘길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의 열 가지 생각 / 이해인 수녀 지음 / 마음산책 최근 제26회 한국가톨릭문학상 본상을 수상한 이해인(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는 그간 기도와 시에서 긴요하게 다룬 가치와 개념들을 나누고 엮어 「인생의 열 가지 생각」이라는 책을 펴냈다. “모두 웃고 있을 때 우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 외로운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함께 사는 일일 거예요.”(‘공생’ 중에서) “사랑은 관심입니다. 관심이 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요. 사랑은 상대를 잘 바라보는 데서 시작합니다.”(‘사랑’ 중에서) “저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것이야말로 비범한 희망을 얻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 이 시간을 잘 살아내면 괜찮은 미래로 향할 수 있겠지요.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갑니다.”(‘희망’ 중에서) 저자가 말한 열 가지 생각, 즉 ‘가난, 공생, 기쁨, 위로, 감사, 사랑, 용서, 희망, 추억, 죽음’ 등은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하지만, 살아가면서 내내 끌어안고 고민하는 화두이기도 하다. 하지만 수도자이면서 시인으로 반세기 넘게 살아온 저자는 타인을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고 더불어 나아가는 삶으로 이들 생각을 연결한다. 책은 이해인 수녀의 시와 산문, 사진과 삽화가 어우러져 더욱 풍성하다. 특히 ‘죽음’에 대한 연약하면서도 단단한 사유는 그녀 역시 나약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원숙한 수도자라는 점을 되새기게 한다. 이해인 수녀는 책머리에 “나쁜 일도 그렇지만 좋은 일 역시 사람의 힘만으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무엇이든 은총이니, 끊임없이 기도하고 끊임없이 쓰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남겼다. 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 / 김정대 신부 지음 / 바오 오랫동안 위기 상황에 내몰린 노동자들과 함께했던 김정대(예수회) 신부는 남성의 삶에 주목했다. 요즘 한국 남자들은 사는 게 쉽지 않다. 가장의 권위는 사라진 지 오래고, 밥벌이도 시원찮고, 주변과 소통도 여의치 않다. 그럼에도 약한 모습은 감추고 ‘남자답게’ 살아야 한다. 왜 한국 남자들은 사서 고생하고 불행을 자초하는 것일까? 김 신부는 「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에서 그 이유를 실감 나게 묘사한다. 저자는 “한국 남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규정하는 남자로 ‘만들어져’ 다시 태어나는 존재”라고 말한다. 유교문화와 군대문화, 국가주의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의 권위적이고 획일화된 문화와 전통, 관습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순응하는 남성성’은 위계적인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위계적 문화는 군대문화를 통해서, 그리고 군대문화가 이식된 기업문화를 통해서 우리 문화 안에 자리를 잡았다.”(34쪽) 예수회 입회 전 반도체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했고, 수도생활 중 남성학을 전공한 저자는 우리나라의 중년 남성 노동자들이 해고 등의 위기 앞에서 여성 노동자에 비해 훨씬 더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자연스럽게 ‘남성들의 관계적 영성’이라는 연구 주제로 이어졌다. 저자는 책에서 남자들이 처한 상황을 역사, 문화, 사회, 심리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가톨릭 사제로서 ‘남성의 자리 다시 찾기’를 안내한다. “한국의 중년 남자들이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 속하나?’ 같은 중년기의 인생발달에 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개성화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필수이다. 이를 위해서 그들은 자아를 성장 발달시켜야 하고 함께 진정한 자신이 되어야 한다.”(98쪽) “영적 성장이란 우리가 관계 안에서 더 진정한 자기가 될 수 있는 인간 성숙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내가 되어가는 개성화는 사람들이 평생에 걸쳐 자신의 삶 안에서 자신을 타인과 나누며 관계의 영성을 살아가는 여정이다.”(151쪽)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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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텔레마코스 루이지 마리아 에피코코 지음 / 김성봉 옮김바오로딸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텔레마코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성경 인물(이사악, 요셉, 사무엘, 다윗, 부자 청년, 되찾은 아들, 그리고 예수님)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조망한 책이다. 이탈리아 라퀼라교구 신부이며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존재를 인식해 가는 텔레마코스를 통해 독자들도 인간을 향한 긍정적인 시선으로 관계 안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자유로워지도록 인도한다. 시편 90-150편전봉순 수녀 지음 / 바오로딸‘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 23’ 「시편 1―41편」, 「시편 42―89편」을 잇는 시편 주해서의 마지막 권이다. 저자 전봉순 수녀는 예수성심전교수녀회 한국 관구장으로, 「시편 90-150편」은 야훼 시편이 대부분이며 할렐루야 시편이 포함된 시편집 4권과 5권에 대한 시편 주해서다. 상세한 각주를 붙여 신자들이 거룩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하며, 인접 시편과의 관계와 다른 성경 구절과의 관련성도 고찰했다. 또한, 현대 학자들과 교부들의 해석을 활용하여 시편에 맛 들이며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끈다. 호교론테르툴리아누스 지음 / 한창용 옮김분도출판사 최초의 라틴 교부이며 호교론자였던 테르툴리아누스가 로마인들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불합리한 고발에 반론을 제기하며 그리스도인들의 본성에 대해 설명한 책이다. 책은 고대 그리스도교의 헌신적 교사들의 작품을 간결하고 명확한 우리말로 전달한다. 그리스도교 사상의 원류를 탐색하는 이들이나 종교에 관심이 없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흔치 않은 통찰, 곧 ‘오래고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할 것이다. 녹명鹿鳴을 꿈꾸며허종열 지음 / 책만드는집“시인의 맑은 눈으로 바라본 지극히 밝은 세상, 그 속에서 피워낸 그의 시편들은 바로 향기를 머금은 꽃이다.”(박시교 시인) 가톨릭평화신문 편집국장과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홍보팀장을 역임한 허종열(이냐시오) 시인의 새 시집. 다산 정약용의 시작 정신에 따라 시를 써온 시인은 이번 책에 사기를 북돋우고 격려하는 사설시조도 몇 편 실었다. 시대의 암울한 현실을 꼬집는가 하면 종교적 성찰의 연장선상에서 올바른 삶의 자세에 대해 노래한다. 윤하정 기자 문채현2022.06.07

한일 청년 교류의 다리 역할하는 청년 선교사의 새로운 꿈은‘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유일한 한국인 신은주씨, 9월 종신서원… 하느님 눈으로 사람들 마음 보겠다 다짐 명동대성당에서 2022 한일청년교류를 진행하는 선교사 신은주씨. 한국과 일본 가톨릭 청년들을 이어주는 가교인 ‘한일청년교류’. 이를 진행하는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신은주(크리스티나) 선교사는 선교회에서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인이다. 2009년 입회한 그는 7년 반 동안 아르헨티나에서 활동했다. 그중 3년간 양성 기간을 거친 뒤, 아르헨티나 빈민촌과 공소 등을 돌며 선교했다. 2017년부턴 한국으로 파견돼 선교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9월 4일 대전교구 송촌동성당에서 종신서원을 한다. “보통은 10년 만에 종신서원을 하는데, 이런저런 일로 좀 많이 늦어졌어요. 그래도 제겐 지금이 제때인 것 같습니다.”신 선교사는 원래 교사가 꿈이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다만 언젠가 돈을 많이 벌면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길 원했다. 그래서 주변에서 “수도자가 돼라”고 권유할 때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 제발 저는 부르지 마세요. 남자친구도 있단 말이에요!’ 무사히(?) 대학을 졸업한 신씨는 전공인 일본어를 살려 일본 도쿄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한인 성당을 다니며 신앙생활도 병행했다. 그러던 중 도쿄대교구가 ‘평화 주간(8월 1~2주)’을 맞아 연 심포지엄에서 한국 대표로 발표를 맡았다. 청년 신자의 시각으로 한·중·일 관계를 논하는 자리였다. 그 일을 계기로 일본의 한 수녀원에서도 한일관계에 관한 생각과 체험을 나눴다. 나눔이 끝난 뒤, 서양인 여성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일본에 머물며 한국 공동체 설립을 준비하던 에스텔 팔마 선교사였다. 에스텔 선교사는 하느님 자비 복음의 종 선교회 공동체에 와서도 이야기를 나눠달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선교회 공동체는 신씨가 사는 집에서 가까웠다. 신씨는 ‘그냥 얘기나 하고 오자’는 마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이후 선교사들과 식사를 같이 하고, 성지순례도 다니며 친구이자 가족 같은 사이가 됐다. 그런 와중에 계속 그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가톨릭 신자가 거의 없어 선교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본에 와서 산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정말 하느님이 계시지 않다면 이게 가능할까?’, ‘사도행전에 나온 그리스도인 첫 공동체 모습이 바로 이들과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이제까지 제게 성경은 그저 하느님 말씀이 적힌 종이책이었는데, 드디어 성경이 ‘살아있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다다랐죠.”때마침 선교회 선교사들은 스페인에서 열리는 한 달짜리 피정에 신씨를 초대했다. ‘직장인 보고 한 달 동안 피정을 가라니, 일을 관두라는 거야, 뭐야?’ 속으로 코웃음 쳤던 신씨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피정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불길처럼 치솟았다. 54일 기도 끝에 답을 찾은 그는 결국 퇴사하고 피정에 참여했다. 그때 신씨는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다’는 옛꿈을 떠올렸다. 동시에 시선을 사로잡은 성경 구절이 그의 마음을 확고하게 했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이사 43,1) 그렇게 신씨는 32살에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선교회에 입회했다. 그리고 입회 13년 만에 종신서원을 앞두고 있다. ‘어떤 선교사로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가 웃으며 답했다. “눈으로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선물하신 잠재력과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 cpbc2022.08.09
![[금주의 성인]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3월 19일)](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3/15/y2g1678863193321.jpg)
[금주의 성인]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3월 19일)+1세기경, 마리아의 남편이자 예수의 양부,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의 수호성인 아기 예수님을 안은 요셉 성인의 이콘. 출처=굿뉴스 예수님의 양아버지이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요셉 성인에 대해서는 마태오 복음 1―2장과 루카 복음 1―2장에서 나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요셉은 다윗 왕가의 후손이고, 요셉 가문은 유다 지방 베들레헴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요셉은 갈릴리 지방 나자렛에 살면서 목수 일을 하고 있었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했으나 같이 살기 전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잉태한 마리아와 파혼하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이 시대 풍습으로는 정혼한 이가 아닌 다른 이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은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천사의 말을 듣기 전에도 마리아의 일을 폭로하지 않고 싶어 했습니다. ‘의롭다’는 요셉의 평판은 그가 법을 어기지 않고 충실히 살아가려고 노력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마리아의 일을 법대로 처리하지 않고 남몰래 이혼하려고 했던 것은 친절하고 자비로운 성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함께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와 목자들의 방문을 받았고, 율법대로 할례를 베풀고 정결례를 행하는 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의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새로운 왕인 메시아가 태어난 것을 두려워한 헤로데 임금은 영아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 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라고 말해 줍니다. 요셉은 아기 예수님과 마리아를 지키기 위해 이집트로 갔고, 헤로데가 죽은 뒤에야 가족을 데리고 나자렛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이 12살이 되던 해에는 매년 하던 대로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을 다녀오다가 아들을 잃어버린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을 찾기 위해 다시 돌아간 요셉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과 이야기하는 예수님을 발견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후 요셉은 루카 복음 4장 22절을 제외하고는 신약성경에서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이전 선종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외경인 「야고보의 원복음서」에는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했을 때 이미 노인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요셉에 대한 공경은 동방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외경 「요셉 이야기」는 4세기부터 7세기까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인기 서적이었습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주님의 양부’라는 칭호로 9~10세기 일부 지역에서부터 시작해 ‘마리아의 배필’로서 성모님 공경과 함께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12세기쯤에는 3월 19일이 축일로 정착됐습니다. 14세기에는 프란치스코회(작은 형제회)를 중심으로 요셉에 대한 공경과 축일이 전파되다 1479년 식스토 4세 교황에 의해 성 요셉 축일이 전 교회로 확대됐습니다. 요셉에 대한 신심은 특히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와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에 의해 보편화됐습니다. 1870년 비오 9세 교황은 요셉을 ‘가톨릭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레오 13세 교황은 1889년 요셉을 가장(家長)의 모범으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서 성모님 다음의 위치로 올렸습니다. ‘노동자의 수호자’란 칭호는 베네딕토 15세 교황이 부여했습니다. 비오 11세 교황은 ‘사회정의의 수호자’로, 비오 12세 교황은 1955년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절에 대응해서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제정했습니다. 요셉은 임종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합니다. 교회 미술에서 요셉은 일반적으로 백합꽃이 핀 지팡이 또는 목수 일에 필요한 연장을 들고 있거나, 아기 예수님을 안은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2023.03.14

시노드 교회를 알차게 살아가며 2027 서울 WYD 준비 원년으로[신년대담]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다. 보편 교회는 올해 10월 예정된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 마지막 회기를 앞두고 있다. 한국 교회도 올해 보편 교회의 걸음에 발맞춰 계속해서 시노드 교회를 향한 여정을 이어가야 한다. 올해는 또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개최를 향해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가는 해이기도 하다. 서울 WYD는 한국 교회에 새로운 사목적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하지만 답보상태에 놓인 남북 관계를 비롯해 한국 교회와 우리 사회의 고령화와 청년 문제, 노동의 양극화, 생명 경시 풍조 등 앞에 놓인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본지는 새해를 시작하며 서울대교구장이자 평양교구장 서리인 정순택 대주교와의 신년 대담을 통해 한국 교회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cpbc 취재진에게 2024년 한국 교회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로서 한국 교회 신자들과 북녘 교회 형제들에게 새해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로운 해를 마련해주신 하느님 은총과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빕니다. 최근 전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전쟁과 폭력으로 신음하고 있기에, 우리는 모두 평화가 간절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평화를 내려주시길 청하며, 우리 스스로 각자의 자리에서 평화를 일구는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아울러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한 이번 시노드의 주제인 ‘시노드 교회를 위하여 : 친교, 선교, 참여’는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활 방식을 제시해 줍니다. 하느님, 이웃, 나 자신과 ‘친교’를 이루고, 세상 논리가 아닌 복음의 논리를 삶으로 증거하는 ‘선교’를 실천하며, 세상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주인공으로 살아가도록 ‘참여’를 증진하는 길, 이 길이 바로 우리가 모두 바라 마지않는 평화로운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 줄 것입니다. ‘시노드 교회’를 향해 걸어가며 복음의 기쁨을 체험하는 행복이 올 한 해 여러분과 가정에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교구장으로서 두 해를 보내셨습니다. 특별히 2023년은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가상 인상 깊었던 일은 지난해 7월 리스본 세계청년대회 파견 미사 때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다음 개최지로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발표하신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 교회가 청소년·청년 사목에 있어 새롭게 출발하고 만들어갈 은혜로운 시간을 교황님께서 선물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지난해 10월 한국 주교단을 대표해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에 참가했던 기억이 특별합니다. 한국 교회에 시노드 교회를 향한 교황님의 뜻을 잘 전달하고, 또 시노드 교회를 살아갈 수 있도록 다른 주교님들과 깊이 나누려 합니다. ▶한반도와 남북 평화를 위해 한국 교회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남북의 상황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남북 관계에 평화의 씨앗이 다시금 꽃피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까요? 남북 관계는 지정학적이고 정치적인 요소, 외교적인 접근, 인권에 대한 이슈 등 여러모로 고려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 평화를 이루기 위한 의지, 대화로 풀어가려는 노력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국민적 공감대를 먼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북한도 머지않아 코로나 종식을 공식 발표할 때가 올 것이라 믿습니다. 인도주의적인 교류를 시작으로 북한이 다시 문을 열길 희망합니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왼쪽)가 11월 17일 한국 교회 최대 순교성지인 서소문 밖 네거리의 순교자 현양탑에서 교황청 국무원 국무장관 에드가르 페냐 파라 대주교(가운데)에게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지난해는 대한민국과 바티칸이 수교 60주년을 맞은 해였습니다. 양국은 60년의 세월을 함께하며 완숙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교황청과 동반자적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해나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면 좋을까요? 대한민국이 독립된 국가로 인준 받는 현대사의 과정에서 교황청이 큰 역할을 것이 사실이지요. 교황청의 중추적 역할 덕분에 대한민국의 UN 승인과 6·25전쟁 때 UN군 파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바티칸 수교 60주년이라는 역사가 우리 현대사에는 중요한 하나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교황청을 포함한 세계 교회를 위해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사제, 수도자, 평신도 선교사들이 파견돼 선교 활동을 펼치는 곳도 많고, 교황청의 여러 직책에 봉사하는 사제, 수도자도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평신도도 일하게 되는 기회가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교황청뿐만 아니라 세계 교회를 위해 일하고 선교에 투신하는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많이 나오길 희망합니다. ▶2024년 교구 사목교서에서 ‘시노드 교회란 선교하는 교회’임을 강조하시면서 “시노드 교회를 향해 계속 걸어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의 뜻과 지향을 우리가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노력이 더욱 필요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시노드 교회가 앞으로 우리 교회가 살아야 할 모습이라고 제시하십니다. 그래서 사제는 교회 안에서 주어진 사제로서의 책임과 권한, 그리고 봉사하고 섬기는 사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수도자는 수도자대로 본연의 부르심, 세상과는 다른 모습으로서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평신도들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면서 그 기쁨으로 세상을 바꿔나가는 사도의 역할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는 한국 교회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국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어떤 마음으로 서울 WYD를 준비해 나가면 좋을까요? 지난 리스본 세계청년대회에서 만난 프랑스의 한 젊은 주교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 주교님은 청년 때부터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해 리스본 대회가 벌써 다섯 번째였는데, 프랑스 교회는 1997년 파리 세계청년대회 이후 청년 신자가 많이 늘어났고, 그 힘으로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프랑스 교회가 이어지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주교님은 사제 성소도 세계청년대회를 통해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2027 서울 WYD가 한국 교회 청소년·청년 사목을 질적으로 풍성하게 하고,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청소년과 청년이 대회 준비 단계에서부터 주인공으로 함께 참여하고, 그래서 이 대회를 통해 청년리더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님께서 ‘하느님의 종’이 되셨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비롯해 김수환 추기경님과 방유룡 신부님의 시복시성을 위해 신자들이 어떤 방법으로 현양에 동참해야 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교우들의 자발적인 공경과 현양입니다. 자발적인 전구 기도가 필요합니다. 교우들이 시복시성을 청하는 기도도 바쳐야 하지만, 브뤼기에르 주교님이나 최양업 신부님을 위해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전구를 청하는 기도를 많이 바치면 좋겠습니다. 전구를 청하는 기도 속에 기적의 은총을 입을 수도 있고, 그런 부분들이 시복 과정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교우들을 중심으로 일상 안에서 신앙선조들의 전구를 청하는 습관을 키워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교회는 브뤼기에르 주교님을 비롯해 시복시성 단계에 있는 신앙선조들에 관한 자료와 서적을 더 발굴하고 널리 보급해 교우들이 더 알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올해 2024년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이며 한국 교회가 창립한 지 2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동시에 103위 성인 시성 40주년입니다. 우리 교회와 신앙선조들을 더 잘 알고, 기도로 더욱 함께하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가톨릭교회가 한국의 근현대사에 미친 선한 역할들을 연구하고 고양해 선교에 힘을 실어야 하겠습니다. 또 순교 성인들께서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심을 묵상하며 우리도 이 시대에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참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스스로 복음적 삶의 기쁨을 증거하고, 그리스도라는 인격의 매력에 빠져야 합니다. ▶한국은 초고령화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고, 교회도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신앙의 전수자요, 지혜를 전할 노인들의 역할 부여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기에 교회 안에서도 노인 사목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나 교회 안에서 노인들은 신앙의 전수자로서 역할이 대단히 큽니다. 손자, 손녀 세대에 신앙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이기 때문이죠. 노인들 스스로도 이러한 신앙의 전수자로서 책임 의식과 자각을 지니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교회 내에서 여건을 마련하고,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노인들이 복음을 듣는 담지자(擔持者)만이 아니라, 복음을 적극적으로 전수하는 사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도록 사목 프로그램을 더 개발해야 하겠습니다. 서울대교구 이주사목위원회가 9월 24일 마련한 제109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행사에서 콜롬비아 전통의상을 입은 남미 공동체 이주민들과 정순택 대주교(왼쪽 두 번째), 교구 이주사목위원장 유상혁 신부과 환하게 웃고 있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1월 18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향소’를 방문해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기도를 바치고 있다. ▶노동의 양극화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일터로 나간 노동자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현장에서 죽음을 맞는 일들이 되풀이되어 안타깝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어려움, 노동의 양극화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노동의 양극화는 우리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한 단면으로 굉장히 안타까운 현상입니다. 저는 현대 자본주의가 갖는 한계를 사회가 이미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하느님 없는 인본주의는 결국 자본이 하느님 자리에 위치하는, 자본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적 사상 체계를 넘을 수 있는 새로운 인본주의, 즉 신인본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신인본주의는 하느님, 곧 ‘데오 휴머니즘’(Deo Humanism)인데, 이를 통한 현대 사회의 조명과 전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리 사회는 노동의 의미를 재발견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의 본질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고, 노동의 고귀함을 재발견해 재해석하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젊은이들도 노동 자체가 갖는 아름다움과 고귀함을 새롭게 고찰하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펼치는 노동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영아 유기와 유령 영아 사건 등 우리 사회에 생명 경시 풍조가 더욱 짙어져만 갑니다. 이런 때일수록 교회가 생명 운동과 활동을 통해 하느님이 주신 생명의 가치를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명은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는 전제이자 대원칙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고귀한 인간 생명에 대해 우리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리는 없습니다. 생명에 대해선 하느님만이 절대권을 갖고 계신다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낙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태아의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태아의 생명을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생명과 인권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생명을 지켜야 합니다. ▶좌우명처럼 삶을 지탱해주는 성경 구절이 있으시다면요. 고 최민순 신부님이 번역하신 「최민순 역 시편」의 17편 2절과 20절(구약 시편 18장 2절, 20절)을 좋아합니다. “그지없이 사랑하나이다 하느님 내 힘이시여”(2절)와 “넓으나 넓은 들로 나를 끌어내시고, 사랑하시기에 나를 구해주셨나이다”(20절)입니다. 특히 하느님께서 ‘사랑하시기에 나를 구해주셨나이다’란 대목을 가장 좋아합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해주셔서 이렇게 존재하게 해주시고, 당신을 알게 해주시고, 만나게 해주시고, 구원해주셨다는 것이 제겐 너무나도 큰 힘입니다.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자체에서 가장 큰 힘이 나옵니다. ▶끝으로 신자들과 국민에게 새해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2024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한국 교회의 모든 교우 분들과 북한의 형제자매 여러분께 올 한 해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가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2024년 갑진년은 푸른 용의 해로, 청룡은 우리에게 친숙한 상상 속 동물입니다. 우리 민족 문화에서 네 마리의 수호신 중 하나이기도 하고, 힘찬 이미지를 지니고 있지요. 교우 여러분께서도 올 한 해 푸른 용처럼 힘차고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주변의 이웃을 배려하고 특히 가장 작은 이를 보살핌으로써 우리 사회를 지켜나가는 한 해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도재진2023.12.27

성당에 화재… 새 성당 짓기 위해 원주민 전통 공연 다닙니다[선교지에서 온 편지] 대만에서 평신도 선교사 배시현 (하) 본당 행사 때 마당에서 흥겨운 놀이에 참여하고 있다. 도시락과 휴식 대만은 도시락 문화가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뭐든지 포장이 가능하고, 들고 이동하기에 편리합니다. 대만에서 가장 많이 먹는 닭다리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종이로 만든 도시락 용기 안에는 밥 위에 닭다리 하나가 올라가 있고, 서너 가지 채소와 반찬들이 함께 있습니다. 정말 대만에서 먹은 어느 도시락보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는 사람들이 종이상자를 들고 각각 어딘가로 향했습니다. 저는 ‘무슨 일이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하고 난감해 하고 있으니, 신자분이 ‘마홍, 조금 쉬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함께 일하던 분들은 각각 적당한 그늘을 찾아 종이상자를 길게 펴고는 눕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 그냥 길바닥에 드러누웠습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저도 따라 누웠습니다. 그야말로 땅이 요가 되고, 하늘이 이불이 되었습니다. 간간이 부는 바람은 눈을 스르르 감게 해주어 휴식하게 만들어줬고,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코끝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의 느낌은 마치 하느님의 부채질 같았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못 되어 모두 일어나 다시 오후 귤 수확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절반은 원주민 절반은 대만인 저녁에 출하할 귤의 양을 확인하고는 오후 작업마저 끝내고 우리는 집으로 내려가 귤 포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귤을 상자에 담는 것도 각각 역할을 분담해 일했는데, 수확한 귤 바구니를 분류 기계에 올려놓는 사람, 그 귤을 분류기에서 잘 굴러가도록 돕는 사람, 귤이 크기별로 상자에 잘 담기는지 확인해서 상자를 채우는 사람, 상자에 담긴 귤이 정량으로 담겼는지 확인하는 사람, 상자를 포장하는 사람 등 우리는 각각의 역할에 맞게 일을 해냈습니다. 저는 초보였기 때문에 귤이 크기별로 잘 분류가 되는지, 레일에서 잘 굴러가는지 확인하는 일에 임했습니다. 이것도 중요한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상자에 담겨 포장하는 사람들을 위해 속도를 맞춰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귤을 많이, 그리고 빨리 보낸다고 해서 나의 일이 다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서 속도를 맞춰야 했습니다. 이렇게 함께한다는 것은 보람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이고, 그것은 나에게 큰 위로와 힘을 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각기 다른 크기와 중량에 맞게 귤은 상자에 가득 채워졌고, 상자들은 높이 쌓였습니다. 그렇게 그날 출하할 귤 포장을 마치고, 우리는 둘러앉아 간단한 간식과 포도주, 맥주로 오늘의 수고를 서로 격려했습니다. 신자분들은 저에게 “절반은 원주민이 됐고, 절반은 대만 사람이 다됐다”며 “다음엔 사냥도 같이 가자”고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서투른 손으로 방해되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그 말씀을 들으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농작물을 돌보는 분은 모두 아시겠지만, 자연에 순응하고 하느님께 많이 의지해야 하는 일입니다. 여기 분들은 언제나 주어진 것에 감사합니다. 귤이 많이 열리면 풍족함에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여느 해보다 적어도 함께 나눌 것은 있다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런 신자분들과 함께하면서 제 삶 또한 풍요로워지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원주민들과 함께 산다는 것은 감사를 배우는 삶입니다. 감사하는 삶은 우리 자신을 풍요롭게 하고, 풍요로워진 우리는 하느님을 닮게 만듭니다. 화재로 전소된 다관성당 모습. 불에 타 전소된 본당 성물들. 목조 성당에 갑자기 화재 감사의 매일을 살던 어느 날 새벽, 이곳 8개 본당 중 하나인 다관(達觀)성당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새벽 3시 반경 불이 났는데, 모두 자고 있던 시각이라 바로 옆 교회 목사님이 제일 먼저 발견해 LPG 가스통만 겨우 빼내 마을에 큰 피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당은 나무로 지어졌고, 성당 내 모든 것이 오래되어 성당 건물은 물론, 모든 성물과 성가 책, 성경, 그리고 미사 경본은 소진되었습니다. 화재 원인은 전기합선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정말 안타깝고 슬픈 일이었습니다. 이곳 원주민들의 터전, 산에는 1950~1960년대 많은 수도회가 들어와 선교하며 마을마다 성당을 지었습니다. 대략 50~7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만큼 성당은 노후화되었고, 겨우 유지만 하고 있습니다. 대만은 도교와 불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리스도교는 개신교를 포함해 전체 인구의 5% 미만입니다. 신자 수도 적지만, 특히 산간 지역이나 원주민 지역은 생활 자체가 녹록지 않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를 돌보고 가꾸는 일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많지 않은 신자들이지만, 매주 열심히 미사가 있던 성당에서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생긴 것입니다. 배 선교사가 본당 신자들에게 성체 분배를 해주고 있다. 다시 성당을 짓기 위해 우리는 다시 성당을 지어야 했습니다. 몇 안 되는 신자들이 과일과 채소를 팔고 봉헌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교구로부터 큰 도움을 받기로 했지만, 그것도 전부는 아니기에 우리는 성당을 지을 방법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원주민들은 대체로 음주 가무 좋아합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 원주민 지역 산에 갔을 때, 그리고 그들과 함께했을 때 뭔지 모르는 친근감이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불이 난 다관성당 신자들은 특히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고 또 잘 부릅니다. 특히 미사 시간에 성가를 부를 때 큰 감동을 줍니다. 원주민들은 노래를 부를 때 자신의 감정을 담아 부르고, 또 자연스럽게 화음을 만들어냅니다. 원주민들은 어릴 적부터 노래하고 춤추는 문화 속에 자라면서 자연스레 원주민의 특별한 문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다른 본당으로 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6년이 지나 모금액의 절반은 모았지만, 아직 완성되지 못했고, 중간에 코로나로 인한 자재 가격이 많이 올라서 조금 더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하느님께 기도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음을 모으고 있습니다. 원주민들은 비록 불이 나서 성당이 모두 사라졌지만,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는 것에 감사했고, 또 새로 성당을 지을 힘과 용기를 주심에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저는 원주민들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는지 배웁니다. 이웃이 아프면 정말 그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정말 안타까워하고 함께 마음 아파합니다. 그런 신자들을 통해 저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느낄 수 있고, 그 사랑을 실천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저는 하느님께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선교사로 살면서 기쁨과 행복을 많이 느낄 수 있음에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만났다가 헤어질 때, ‘티엔주바후요(天主保佑)’라고 말하면서 서로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주거나, ‘로까’(Lokah, 원주민 말로 ‘힘내세요!’)라고 말하며 응원을 해주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항상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로까! 天主保佑.” 후원 계좌 : SC제일은행 225-20-397949 예금주 : (재)천주교성골롬반외방선교회 평신도 선교사 배시현 소화데레사 / 성골롬반외방선교회 cpbc2023.08.09

성탄 구유, 하느님의 자애 드러내는 거룩하고 놀라운 표징주님 성탄 대축일 / 구세주 강생 이야기와 ‘성탄 구유’ 성탄 구유는 하느님의 자애를 드러내는 거룩하고 놀라운 표징이다. 사진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처음으로 성탄 구유를 만들어 베들레헴의 마구간을 재현했던 이탈리아 그레치오 수도원 구유 동굴.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이다. 가톨릭교회는 24일 저녁 성탄 전야 미사부터 주님 세례 축일까지 전례력으로 ‘성탄 시기’라 하여 구세주 강생 신비를 기념한다. 구세주 강생 이야기는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에 자세히 나온다. 마태오 복음서는 주님 탄생과 함께 동방 박사들의 경배 소식을 알려준다.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 탄생을 로마 제국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칙령으로 시행된 호적 등록과 연계해 소개한다. 다윗의 후손인 요셉이 호적 등록을 하기 위해 다윗의 도시라 불리는 베들레헴에 가야 했고, 그곳에서 마리아가 주님을 낳았다고 한다.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첫 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2,6-7) 반면, 요한 복음서는 마태오와 루카 복음서의 주님 강생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선포한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1,14)구세주 강생에 대한 성경 말씀을 종합하면,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1)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콜로 1,16)되었지만, 세상의 구원자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래서 구세주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리인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구세주의 어머니 마리아는 갓난아기인 주님을 구유에 뉘었다.(루카 2,7) 하지만 목동들과 동방 박사들이 주님을 찾아와 경배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라고 정리할 수 있다. ‘성탄 구유’는 구세주 강생의 거룩하고도 놀라운 표징이다. 교회는 “이 가난에서 하늘의 영광이 드러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25항)고 고백한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이를 돕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가난한 이에게 등을 돌리는 사람은 배척하신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구유에서부터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이들의 삶에 참여하셨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파견되셨다. 나아가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당신 자신에게 해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544, 2443항 참조)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18-21 참조)성탄 구유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자애’를 드러낸다. 온 세상의 창조주께서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와 같이 작아지셨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우리를 찾아 주실 형제, 늘 우리 곁에 계시는 충실한 벗인 당신의 외아드님이신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다. 당신 아드님을 우리에게 주시어 우리를 용서하시고 죄에서 구해 주셨다.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탄 구유의 의미를 이렇게 풀이했다. “구유는 동물의 여물을 담는 통이다. 그런데 지금 그 구유에 자기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빵으로,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참된 양식으로 드러내신 분이 누워 계신다. 그분은 인간에게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이다. 이렇게 구유는 인간이 하느님의 빵을 얻기 위해 초대된 하느님의 식탁을 암시한다.”(「설교집189,4)프란치스코 교황도 “구유 앞에서 생명의 양식은 물질적 부가 아니라 사랑이고, 폭식이 아니라 나눔이며, 과시가 아니라 소박함이란 것을 깨닫는다. 생명의 양식인 그분을 받아모심으로써 사랑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욕심과 탐욕의 악순환을 깰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탐욕하고 독점하는 삶이 아닌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도록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신다”고 설명했다. 성탄 구유는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이 가장 필요한 이들 그리고 가까이 와 주십사 청하는 이들을 위해 사람이 되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주님의 가난한 탄생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고 그들을 사랑하라는 요청이다. 하느님께서는 구유에서 탄생하심으로써, 상속받지 못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과 존엄을 줄 수 있는 유일하고 참다운 혁명을 몸소 시작하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사랑의 혁명, 자비의 혁명”이라고 정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의미에서 주님 성탄 대축일을 앞두고 성탄 구유를 설치하는 교회 풍습을 장려했다. 성탄 구유 풍습은 1223년 12월 25일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그레치오의 한 동굴에 베들레헴의 마구간을 재현하면서 교회 안에 확산됐다.구세주이신 아기 예수님은 구유에 누워서 온유하지만 힘차게 가난한 이들과의 나눔의 필요성을 선포하신다. 이는 아무도 소외되거나 배척받지 않는 더욱 인간적이고 형제애 넘치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탄의 신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형성될 때 우리 안에서 성취된다”고 가르친다. (「가톨릭교회 교리서」526항)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12.21
![[생활 속의 복음] 부활 제3주일-당신 자신이며 일상인 빵](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4/19/8701681867077032.jpg)
[생활 속의 복음] 부활 제3주일-당신 자신이며 일상인 빵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루카 23,30) 두 제자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예루살렘에 머물 이유가 없습니다. 희망이었던 스승이 그만 십자가형으로 죽었습니다. 터덜터덜 낙향 중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일어난 절망스러운 사태를 되짚어보고 있었을까요? 여자들이 천사를 통해 들었다는, 바로 그분이 살아계시다는 말은 또 뭔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그때 주님이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눈이 가리어졌다고 복음은 말합니다. 왜 눈이 가리어졌을까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근심과 걱정뿐이어서 그럴까요? 뭔가에 사로잡혀 있다면 여간해서는 제대로 보기 어렵습니다. 자기 안에 갇혀 있으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그들에게 주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없는 분입니다. 없는 분을 볼 수는 없었겠죠. 1. 알아보자마자 사라지신 예수님 예수님이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 그들은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홀연히 사라지십니다. 요술 게임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뵙는다는 건 일종의 깨달음입니다. 예수님에게 빵은 그냥 빵이 아닙니다. 당신 자신입니다. 빵의 속성은 나누어지고 건네져 먹혀야 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장 참조) 제자들은 그동안 빵을 떼어 건네시는 주님을 수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5000명을 먹이신 주님 모습은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수많은 군중을 앞에 두고 배수진을 치고 하느님 아버지께 하소연하는 주님 모습입니다. 그때 나누어진 것은 단순히 빵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었습니다. 최후의 만찬은 더 결정적입니다. 수난 전날 마지막 만찬 때 일입니다. 빵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이것을 받아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하십니다. (마태 26,26) 첫 번째 성찬례입니다. 우리는 미사 때, 지금도 이 예를 행하고 빵을 받아먹습니다. 그 순간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몸과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제2의 그리스도, 또 다른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의 몸을 받아먹고 바오로 사도처럼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이 사신다”라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회심이고 일깨움입니다. 2. 주님이 우리 맘속에 살아있는 분으로 모셔져 있는가? 그들의 눈이 열렸는데, 주님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말합니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32절) 주님이 들려준 말씀은 처음 듣는 말씀이 아닙니다. 생전에 자주 들려주시던 말씀입니다. 그래서 ‘왜 그리 믿는 데에 굼뜨냐’고 주님으로부터 야단까지 맞습니다. 제자들 맘속에 각인된 뭔가가 있고, 빵을 떼는 행위로 그것들이 작동됩니다. 끊어졌던 기억이 연결됩니다. 주님이 들려준 말씀이 되살아났고 빵을 떼어 주시던 모습도 떠오릅니다. 주님과 함께 나눈 형제애였고 일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그분의 말씀을 듣지 못했다면 ‘나그네와 하룻밤 동숙’으로 그쳤을 것입니다. 육신의 눈에는 언제나 길가는 나그네요 이웃일 뿐입니다. 말씀을 통해 주님이 우리 맘속에 살아있는 분으로 모셔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느 순간 ‘주님이시다’ 하고 깨닫게 됩니다. 빵은 떼어 나누어져야 합니다. 이는 실재이면서 상징입니다. ‘아하!’ 탄성의 순간, 형체를 지닌 주님은 사라지십니다. 그러나 새로워졌습니다. 용기를 내 삶으로 들어갑니다. 두 제자는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그들이 처한 여건은 여전히 어둡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실망과 좌절, 두려움이었던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주님이 살아계시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리고 다른 열한 제자와 동료들과 비슷한 체험을 서로 나눕니다. 우리도 비슷한 체험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오늘 두 명의 제자는 바로 우리입니다. 만약 두 제자가 낯선 이와 말을 섞지 않았다면, 그의 말에 경청하지 않았다면, 저녁나절인데도 그를 맞아들이지 않았다면, 식탁에 함께 앉아 있지 않았다면,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부활 이야기는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cpbc2023.04.13

“마틴 목사의 책 베낀 「성교요지」는 이벽의 저작일 수 없다”[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93. 「성교요지」와 「상자쌍천(常字雙千)」 윌리엄 마틴 목사의 「상자쌍천」 원본의 원문과 영문 번역 부분, 그리고 베드로의 둘째 서간을 ‘피득 후서’로 표기한 부분과 숭실대본 「성교요지」의 같은 대목을 비교하였다. 「상자쌍천」은 한자 습득을 위한 교재여서 매 낱글자에 대한 분석과 발음이 적혀있다. 서양 명사 및 인물 지명 표기에서 잡힌 발목「성교요지(聖敎要旨)」는 이벽(李檗, 1754~ 1785)의 저술로 알려져 왔다. 초기 교회사의 어떤 기록에도 없던 이 책은 1967년 김양선 목사가 공개한 「만천유고」 속에 섞인 필사본으로 처음 알려졌다. 이벽이 세상을 뜬 지 무려 182년 뒤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앞서 본대로 「성교요지」가 수록된 「만천유고」는 이 책 저 책을 베껴 짜깁기한 조잡한 서적이었다. 다만 「성교요지」마저 가짜라고 단정할 근거가 명확지 않았다. 내용 또한 4언체의 한시 형식이어서 수준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윤민구 신부는 「성교요지」 속의 성경 용어나 인물 및 지명 표기가 거의 예외 없이 개신교 성경의 표기법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점에 의심을 품어, 「초기 한국천주교회사의 쟁점 연구」(국학자료원, 2014)에서 「성교요지」가 개신교 쪽에서 지은 책이 분명하여 이벽의 저술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견해는 「성교요지」를 천주교 주요 문헌으로 믿어온 측의 큰 반발을 불러, 명백하고 타당한 논의였음에도 이후 끝없는 비방과 음해에 시달려야 했다. 예를 들어 「성교요지」 제4장의 주석 중에 “위 단락은 아래의 글을 총괄하는 이 장의 강령이다. 피득(彼得) 후서(後書)에 나온다.(右節總冒下文, 此章之綱領也. 見彼得後書)”라 한 대목이 있다. 여기 나오는 피득 후서는 신약성경 중 베드로의 둘째 서간을 가리킨다. 천주교에서는 베드로를 백다록(伯多祿)으로 적지, 피득이라고는 표기하지 않는다. 피득은 베드로를 영어식으로 ‘피터’라 읽을 때 적을 수 있는 표기다. 실제로 오늘날 중국에서 통용되는 성경에서 베드로의 첫째, 둘째 서간은 가톨릭 성경에서 지금도 ‘백다록 전후서’로 되어 있고, 개신교 성경에는 여전히 ‘피득(彼得) 전후서’로 나온다. 이것은 바오로를 ‘폴’이라 하고, 안드레아를 ‘앤드류’, 마태오를 ‘매튜’로 읽는 차이가 중국어 표기에 반영되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성경 편명으로 영어식 표기를 딴 ‘피득 후서’로 적는 것은 천주교에서는 결코 쓸 수 없는 표기다. 더구나 제대로 된 번역 성경을 본 적도 없는 이벽이었다면 말할 것도 없다.윌리엄 마틴 목사의 「상자쌍천」과 「성교요지」정작 「성교요지」가 이벽의 저작이 아니라는 결정적 한 방은 개신교 쪽에서 터져 나왔다. 2019년 5월, 김현우, 김석주 두 사람이 공동으로 발표한 「소위 이벽의 「성교요지」로 잘못 알려진 W.A.P. Martin(丁良)의 「The Analytical Reader(認字新法 常字雙千)」에 대한 연구 서설」이란 논문이 그것이다. 두 사람은 이 글에서 「성교요지」가 미국 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마틴(William A. P. Martin, 1827∼1916) 목사가 1863년 중국 선교사들에게 효율적 한자 교육을 위한 교재로 개발하여 간행한 「인자신법(認字新法) 상자쌍천(常字雙千)」이란 책을 주석까지 통째로 그대로 베낀 것임을 처음으로 밝혔다. 책 제목은, 상용한자 2천 자를 가지고 쓴 한자를 인식하는 새로운 방법이라는 뜻이다. 마틴 목사는 1854년, 개신교 선교사의 저작 중 가장 많은 독자와 만났던 「천도소원(天道溯源)」을 저술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이후 1862년 상하이에서 선교사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중국어 교육에 관심을 가져, 1863년에 이 책을 출간했다. 그는 중국어 단어의 사용 빈도를 꼼꼼히 계산해서 뽑은 윌리엄 갬블의 6000자의 상용한자 중에서 특별히 사용 빈도가 더 높은 2,016자를 뽑아, 4언체의 천자문 양식을 빌어 한 글자도 중복하지 않고 운자로 배열한 2천자문을 최종 완성했다. 당시 그는 남경의 학사(學士) 하사맹(何師孟)이란 중국인을 고용해 그의 도움을 받아 본문을 완성했다.(이에 관한 논의는 계명대 황재범 교수가 쓴 ‘「성교요지」의 원본 마틴 선교사의 「쌍천자문」 연구’(「신학사상」 190집(2020 가을)에 자세하다.) 본문은 4언체 한시가 소제목 아래 단락별로 나오고, 옆면에 영문 대역(對譯)을 실었다. 그런데 2천 자를 단 한 번의 중복을 허용하지 않은 채 엮다 보니, 구문이 비틀리고 억지로 채워 넣은 글자가 적지 않다. 중간중간 주석을 넣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오독과 무지「성교요지」는 「만천유고」 본과 「당시초선」이란 표제로 된 책자에 필사된 「당시초선」본, 이와 별도로 한글본 「성교요지」 세 가지가 전한다. 모두 숭실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하성래와 김동원의 번역은 마틴 목사의 영어 번역을 못 본 채 한문본만 보고 번역한 결과 숱한 오역이 발생하였다.지면 관계상, 한두 가지 예만 들어본다. 제3장 「강구(降救)」 중에 “냉가성읍(冷迦城邑), 파미도로(巴米道路). 유태국야(猶太國也), 서내산호(西乃山乎)”의 대목이 있다. 한글본은 이 대목을 “냉가국 셩읍과 파미로 가는 길이 이르면 유태국이라 하나니, 셔내산이라 이르나니”로 풀었고, 하성래는 “냉가성읍과 파미 도로와 유태국과 시내산에서”로, 또 김동원은 “예루살렘 성읍에서, 파미도로 거쳐 가니, 온 유대를 다니시며, 시나이산 이르렀네”로 옮겼다. 영어 번역은 “Jerusalem and Capernaum, a city and town, To Babylon and Media were ways and roads, Judea was a kingdom, Sinai a mountain”이다. 이를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다. “도시인 예루살렘과 시골 카파르나움엔, 바빌론과 메디아로 가는 길과 도로 있었네. 유다는 왕국이었고, 시나이는 산이었지.” 결국 원문의 ‘냉(冷)’은 예루살렘, ‘가(迦)’는 카파르나움을 가리키고, ‘파(巴)’는 바빌론(Babylon)을, ‘미(米)’는 메디아(Media: 옛 성서에서는 메대)를 나타내는 약호였다. 유태(猶太)는 유다 지방을 가리키는 개신교의 표기이고, 천주교 문헌과 안정복의 「천학문답」에는 여덕아(如德亞)로 나온다. 시나이 산은 시내(西乃)로 적었다. 한국어 번역에서는 냉가와 파미가 각각 고대 도시 지명을 한 글자만 따서 축약한 것인 줄을 미처 알지 못했다.또 제10장 「시훈(施訓)」 조의 “학별파지(學別派支) 애전허치(埃田許置)”의 ‘애전(埃田)’은 번역본들이 풀이한 속세나 세상의 뜻이 아니라, 에덴의 음차이다. 「성경직해」에서는 에덴을 그냥 낙원으로 옮겼다. 고유 명사나 특수 용어를 일반적 사전 의미로 풀이한 데서 발생한 오역이다. 이밖에 세부적으로 원서의 영어 번역문과 대비해 보면, 현재 통용 번역에는 맥락을 놓친 오역이 상당히 많다. 표기법만 두고 볼 때, 예루살렘을 야로살냉(耶路撒冷), 카파르나움을 가백농(迦百農), 바빌론은 파비륜(巴比倫), 메대는 미태(米太), 유대를 유태(猶太), 시내를 서내(西乃), 에덴을 애전(埃田), 아벨을 아백(亞伯)이라고 동시에 표기한 것은 1854년에 중국에서 간행된 개신교의 이른바 위판역본(委辦譯本) 성경이 유일하다. 1635년에 알레니(艾儒略)가 펴낸 「천주강생언행기략(天主降生言行紀略)」이 예루살렘을 협로살릉(協露撒)으로, 카파르나움을 갈발옹(葛發翁)으로 적고 있는 것과 다르다. 이벽이 예루살렘과 카파르나움의 약호를 썼다면 ‘냉가(冷迦)’가 아닌 ‘릉갈(葛)’이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위판역본 성경은 그리스도교의 포교 활동이 공식 허용되기에 앞서, 개신교 선교사들이 성경번역위원회를 조직해 집체 작업으로 함께 번역한 것이다. 이후 개신교의 성경 속 명사 표기는 이 책의 표기로 통일되었다. 1863년에 「상자쌍천」을 펴낸 윌리엄 마틴 목사가 이 성경의 명사 표기를 따른 것은 당연하다. 「성교요지」 속 모든 고유명사 표기는 전적으로 1854년 위판역본, 즉 개신교 성경번역위원회가 마련한 번역본과 일치한다. 그러니 전체 성경, 특히 구약 성경의 온전한 번역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점에 살았던 이벽이, 그가 사망한 지 78년 뒤에 간행된 위판역본 성경의 표기체계를 그대로 받아 모든 명사 표기를 여기에 일치시킨다는 것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론은 이렇다. 「만천유고」에 수록된 「성교요지」는 절대로 이벽의 저작일 수 없다. 사실 이 점은 대부분의 교회사가들이 모두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시성시복 자료집에서조차 「성교요지」 관련 사실을 뺀 것이 그 분명한 증거다. 이 책은 1863년 윌리엄 마틴 목사가 쓴 「인자신법 상자쌍천」을 베낀 것에 불과하다. 황재범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그마저도 1863년 초판본이 아닌 1897년 재판본을 베꼈다. 나란히 실린 「만천시고」가 1893년에 나온 양헌수의 「하거집」의 시 23수를 베낀 것으로 보아, 이 책 전체는 20세기 이후에 누군가가 불순한 의도로 베껴 쓴 것이 명백하고 확실하다. 이렇게 「성교요지」가 마틴 목사의 책으로 밝혀지자 최근 일각에서 다시 해괴한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다. 「당시초선」 본 「성교요지」에 손을 다쳐 왼손으로 이 글을 필사했다고 적혀 있는 김대건 신부가 1845년 중국 강남에 들어갈 때 이벽의 책을 베껴 가져갔고, 이것이 유통되다 마틴 목사에게 채집되어 「상자쌍천」이 되었다는 희한하고 놀라운 논리다. 기존의 잘못을 더 큰 거짓으로 덮으려는 궁여지책에서 나온 논리요 행동이다. 모르고 한 잘못은 인정하면 그뿐인데, 가짜 책 「성교요지」를 지키겠다고 진짜 저자인 윌리암 마틴 목사까지 도둑으로 내몰려 한다. 언어도단이다. 이는 천주교계를 위해서도 이벽을 위해서도 결코 득 될 일이 아니다. 「성교요지」는 이벽의 저술이 아니다. 차고 넘치는 증거를 외면하고, 독선의 외고집을 부리는 것은 한국 천주교회사의 정상적 흐름을 저해하는 최악의 선택이다.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이벽의 위상은 가짜 책 「성교요지」가 아니래도 우뚝하다. 이 책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이 재연되는 것을 교회가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최근 교구의 인준을 받아 간행된 김동원 신부의 「한국의 천학과 영성」이란 책자에서 「성교요지」가 변함없이 한국 천학 영성 자료의 첫머리에 놓인 것을 보고 나는 실로 경악했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cpbc2022.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