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중용의 사부, 성 베네딕도의 영적 가르침- 수도생활의 근본, 성 베네딕토 규칙순종과 덕행, 공동체 생활 등 규칙 내용 정리 중용의 사부, 성 베네딕도의 영적 가르침(허성석 지음/들숨날숨/1만 원) 하느님을 향한 여정을 안내하는 기본 지침은 성경이다. 바실리오 성인은 그리스도인 삶에 유일한 지침으로 성경을 꼽았다. 성경말씀을 수도자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한 것이 수도규칙이다. 여러 수도규칙 중 가장 유명한 규칙은 누루시아의 베네딕토 성인이 만든 '성 베네딕토 규칙'으로 중세 유럽 수도생활의 근본이 된 유일한 규칙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은 허성석(성 베네딕도회 화순수도원 원장) 신부가 베네딕도회 공동체를 대상으로 피정 지도를 할 때, 성 베네딕토 규칙을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 허 신부는 먼저 규칙 머리말과 제1장을 중심으로 베네딕토 성인이 생각한 수도생활의 이상을 살펴봤다. 이어 '구원여정의 도구'인 순종과, 순종과 관련된 덕행(들음, 침묵, 실천, 겸손)에 관해 설명했다. 베네딕도회 삶을 구성하는 3가지 요소인 하느님의 일, 성독, 노동을 알아보고 조화로운 공동체 생활을 위한 가르침도 되새겼다. 마지막으론 규칙을 통해 드러나는 베네딕토 성인의 인격적 면모를 분석했다. 허 신부는 "베네딕토 성인 정신의 핵심은 사랑"이라며 "아무리 성경과 규칙을 많이 읽고 공부해서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이 모든 것의 지향점인 사랑을 놓쳐 버린다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조은일2013.06.11

WYD 앞두고 청소년사목 ‘자기주도형’으로서울대교구, 체험·나눔 중심 신앙교육 ‘나다’ 확산성경 나눔·경청 중심… 청소년 신앙 주체성 키운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본당 청소년 사목에 활력을 불어넣을 기회로 주목받는 가운데, 서울대교구가 청소년사목 새 방법론 ‘나다(I AM)’를 WYD 교육과 연계해 도입하는 청사진을 내놨다. 청소년을 신앙의 주체로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교구 청소년국 중고등부(담당 김준휘 신부)는 3일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 문화관 꼬스트홀에서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와 함께하는 ‘청소년을 위한 WYD 교육과 연계한 나다(I AM) 설명회’를 열었다. 정 대주교는 “청소년들이 피동적으로 교리를 듣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기 주도적으로 체험하고 나누게 하며, 사목자는 청소년과 만나는 접점을 늘리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나다’는 청소년들이 주일학교의 기존 일방적·수동적 교육 대상자에서 벗어나 능동적 참여자로 전환하는 게 특징이다. 학년의 장벽을 넘어 적은 인원으로 구성된 연령 통합 모임 안에서 체험과 성경 나눔에 참여해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고 신앙을 키워나가도록 한다. 교리교사 역할도 경청하는 동반자로 변화한다. 교리교사는 전문 교리 지식을 갖추고 교안을 작성해 수업을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나다’는 성경을 매개로 삶을 나누고, 열린 질문으로 구성된 성경 나눔 교재 ‘말씀 길잡이’를 활용한다.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나눔이 원활하게 함께할 의지만 있다면 청년·학부모 누구나 모임 봉사자가 될 수 있다. 사제도 이를 총괄하는 코디네이터인 동시에 모임 봉사자로 경청하고 동반한다. 설명회에서 나다를 시범 도입한 교리교사들이 효과를 설명했다. 박지은(안젤라, 행운동본당)씨는 “교사가 저 1명에 학생도 7명이라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나다 덕에 청년과 학부모들을 모임 봉사자로 투입해 도움을 얻었고, 교안 작성 부담도 줄었다”고 밝혔다. 채승병(미카엘, 혜화동본당)씨도 “10주간 시범 운영 결과 14명이던 학생 수가 26명으로 증가했다”고 했다. 정릉4동본당 교사들은 “대화의 질이 향상되고, 적은 인원이 오히려 영적으로 밀착하게 됐다”고 전했다. 학생들도 “성경을 더 열심히 읽게 되고, 교사들과 소통도 늘었다”고 했다. 교구는 서울 WYD를 계기로 본당에서 나다가 더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보급할 예정이다 청소년국장 장원석 신부는 “그간 청소년 사목 현장에서 모아온 작은 불꽃들이 2027 서울 WYD라는 큰 여정과 함께 활활 타오르는 시간이 올 것”이라며 사목자와 교사들의 동참을 당부했다. 교구 청소년국은 오는 10월부터 2027년 5월까지 본당 청소년을 대상으로 제공되는 ‘WYD 영성 교육’ 커리큘럼 전반에 나다 방법론을 적용해 알릴 계획이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이학주2026.07.08

계약의 하느님[월간 꿈 CUM] 테마로 읽는 성경 _ 위로 계약은 히브리어로 ‘브리트’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에는 하나의 역설이 숨어있습니다. 계약은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순수한 열망에서 비롯되며, 은총에 의한 선택입니다. 모든 인간 가운데 일부를 자유롭게 선택하시어 일방적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대대로 내 계약을 영원 계약으로 세워,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에게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창세 17,7) 그렇지만 계약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의 동의, 부르심에 대한 사랑의 응답, 신뢰와 포기에 대한 요청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모세는) 계약의 책을 들고 그것을 읽어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탈출 24,7)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에 관한 여러 성경 본문은 기본적으로 봉건 군주와 봉신 사이의 관계를 엄격히 규정한 히타이트 문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고대 근동의 영향을 받은(성경은 근동의 문서들 가운데 후대에 기록된 것이기에 이 현상은 당연합니다) 성경의 다른 본문들이 단순한 모방에서 그치지 않고 하느님 신앙 안에서 재해석하여 독창성을 부여하였듯이, 이 본문들도 계약을 군주와 신하 관계의 법적 엄정함을 넘어서 하느님과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삶의 차원으로까지 확장합니다. 그래서 계약의 백성은 단지 율법 준수의 의무를 지는 것뿐 아니라 하느님께 불평할 권리까지 가지는 것입니다. 주님, 언제까지 마냥 저를 잊고 계시렵니까? 언제까지 당신 얼굴을 제게서 감추시렵니까?(시편 13,2) 또한, 하느님께 부르짖음과 회개, 찬양과 감사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 관계는 혼인으로도 표현됩니다.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또 진실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니 그러면 네가 주님을 알게 되리라.(호세 2,21-22) 여기 하느님과의 계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우리말 성경에 ‘신의’로 번역된 ‘헤세드’는 호의, 충실, 진실, 성실, 자애, 사랑의 의미를 모두 품고 있는 풍부한 단어입니다. 이 ‘헤세드’는 마치 관계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아 함께 하는 삶, 나누는 삶을 가능케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 ‘공정’으로 번역된 단어는 ‘미쉬파트’인데, 이 단어는 특히 약자를 향한 정의를 강조합니다. 그러니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것은 약자를 돌보시는 하느님의 호의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말 성경에 ‘진실’로 번역된 단어는 ‘에무나’인데, 땅에 견고히 박힌 말뚝처럼 우리를 지탱해 줄 변치 않는 진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 하느님과의 계약은 신뢰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 구절에는 나오지 않지만, 하느님의 계약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단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아하브.’ 우리말 성경에는 종종 사랑으로 번역됩니다. 이 단어는 배타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계약에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이모든 것에 앞서 서로를 사랑하고, 오직 서로에게만 충실할 의무가 따릅니다. 이사야 예언자가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계약에 충실하신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실 수 없습니다. 시온은 “주님께서 나를 버리셨다. 나의 주님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고 말하였지. 여인이 제 젖먹이를 잊을 수 있느냐? 제 몸에서 난 아기를 가엾이 여기지 않을 수 있느냐? 설령 여인들은 잊는다 하더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4-15) 이사야 예언자는 유배 중인 백성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반복해서 외칩니다. 이미 놀라운 권능으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당신 백성을 구원하신 하느님께서 이제 새 출애굽 사건을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은 바다 가운데에 길을 내시고 거센 물 속에 큰길을 내신 분, 병거와 병마 군대와 용사들을 함께 나오게 하신 분. 그들은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꺼져 가는 심지처럼 사그라졌다. 예전의 일들을 기억하지 말고 옛날의 일들을 생각하지 마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하려 한다. 이미 드러나고 있는데 너희는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 나는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사 43,16-19) 이사야의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계약의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구원할 의지를 갖고 계시다. 그리고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구원할 능력이 있음도 이미 보여주셨다. 그러니 포로 신세로부터의 해방이 가까이 왔다. 하느님의 위로는 공허한 말이 아닙니다.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글 _ 함원식 신부 (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삽화 _ 김 사무엘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건축 디자이너이며, 제주 아마추어 미술인 협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 중문, 강정, 삼양 등지에서 수채화 위주의 그림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재 건축 인테리어 회사인 Design SAM의 대표이다. 2025.12.12
 전승과 전례](//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079_1.2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교리](3) 전승과 전례하느님 말씀, 행적 모든 가르침 전승(傳承)은 넓은 의미에서 한처음부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하느님 말씀과 행적, 교회 가르침과 활동에 관한 모든 것, 곧 성전(聖傳)과 성경(聖經) 모두를 말한다. 하느님에 대한 전승은 바로 하느님의 자기 계시 내지 자기 통교에서 출발한다. 유한한 인간이 하느님의 자기 계시나 자기 통교 없이 무한하신 그분을 알 수 없는 까닭이다. 계시(啓示)는 감추어진 것을 드러나게 하거나, 감추어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볼 수 없는 인간을 위해 스스로 당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시는 것을 계시라고 가르친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는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처음으로 인간에게 당신 존재를 드러내셨고,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의 역사에 함께하시면서 더 구체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삶에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성장,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통해 완전하게 계시하셨으며,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서도 계속 나타내 보이고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분으로 당신을 드러내신 자기 계시의 절정이자 완성이다.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말씀과 행적, 인격과 삶에서 최종적으로 완결됐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공적 계시가 완결됐다고 가르친다. ▶전승의 내용 1)성전(聖傳) 한처음부터 하느님은 인간과 인간 역사에 개입하셨다. 그분 말씀과 행적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口傳)됐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활동하셨을 때도 그분 말씀과 행적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사도들 가르침과 행적 역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세기를 이어오면서 교회 가르침과 활동 역시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이 모든 것이 교회의 거룩한 전승, 곧 성전을 이룬다. 2)성경(聖經) 하느님 말씀과 행적을 글로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과 행적을 전하시기 위해 인간을 선택하시고,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으시어 구원에 필요한 일들을 기록하도록 하셨다. 3)성전과 성경의 관계 성전과 성경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상통한다. 하느님이라는 동일한 원천에서 비롯됐고, 하느님이라는 동일한 분을 선포하고 전하기 때문이다. ▶전승에 대한 올바른 이해 전승을 올바로 알아듣고 해석하려면 첫째, 하느님 은총과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말씀하셨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16). 둘째, 교도권 해석이 필요하다. "기록된 하느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계시헌장」 10항)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하느님 말씀과 교회 가르침을 온전히 믿고 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례라는 말은 그리스어 '레이토우르기아'에서 비롯됐다. 이는 '백성의 일' 또는 '모든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일'을 뜻하는데, 기원전 4~3세기께부터 예배를 뜻하는 말로 사용됐다.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전례헌장」 10항)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느님 아버지께 올리고, 교회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경배를 가리킨다. 전례는 교회에서 합법적으로 임명된 이들이 교황청 인준을 받은 예식에 따라 교회 이름으로 거행하는데, 전례에는 모든 성사ㆍ준성사ㆍ시간전례ㆍ성스러운 행렬ㆍ성체 강복식 등이 포함된다. 교회는 일 년을 주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신비를 기념한다. 이를 전례주년이라고 한다. 교회는 일 년 동안 예수님 탄생부터 시작해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을 기념한다. 전례주년은 성탄과 부활을 중심으로 대림ㆍ성탄ㆍ사순ㆍ부활ㆍ연중시기로 이뤄져있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조은일2011.06.14
![[출판] 하느님 말씀의 힘으로 커온 성서와 함께 마흔 잔치](//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3363_1.1_titleImage_1.jpg)
[출판] 하느님 말씀의 힘으로 커온 성서와 함께 마흔 잔치 월간 '성서와 함께' 40돌 기념미사, 19일 성경을 접하는 이들이 하느님 말씀에 맛 들이도록 이끌어 준 월간 '성서와 함께'(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발행)가 창간 40돌을 맞았다. 40돌 기념 로고. 1973년 3월 '가톨릭 성서모임' 성서가족을 위한 소식지로 출발한 '성서와 함께'는 1984년 10월 '103위 순교성인' 탄생을 기리며 일반 정기 간행물로 혁신 창간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이번 3월호(통권 444호)는 '내 나이 마흔'을 주제로 창간 40주년 특집호로 꾸며졌다. 특집호에서는 가톨릭 성서모임 기반을 다지고, '성서와 함께' 창간을 이끈 조화선(미주 가톨릭 성서모임 책임) 수녀와 최창무(전 광주대교구장) 대주교 인터뷰가 실렸다. 또 '성서와 함께'가 걸어온 발자취를 소개했다. 조 수녀는 1973년 창간호를 떠올리며 특히 원고를 일일이 손으로 쓰고, 복사해서 만들었던 기억을 돌이켰다. 또 40주년을 이어온 원동력은 "하느님 말씀의 힘"이라며 지금껏 '성서와 함께'를 도와준 모든 이들의 기도와 격려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성서와 함께'는 성경 공부 과정을 끝냈더라도 계속해서 말씀을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성서모임 가족들 의견이 모여 제작됐다. 성서모임 가족들을 하나로 이어주면서, 말씀을 서로 나누는 성격의 회지가 필요하다 데 모두가 공감하고 있던 터였다. 월간지 이름은 하느님 말씀과 '함께' 살자는 의미를 담았다. 조 수녀는 "하느님 말씀에 붙들린 사람, 그 말씀에 헌신하려는 사람들이 마음과 힘을 다해 '함께' 꾸려 나가는 간행물이라는 의미"라면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강조한 갈라진 교회와 일치, 타 종교와 타 문화에 대한 열린 마음의 대화를 위해 선의의 사람들이 모두 '성서'와 '함께'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최 대주교는 "창간호가 나올 때 '성서와 함께'가 40년이나 이어질지 몰랐다"며 "인간이 계획한 것이 아니고 누가 소유한 것도 아니기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고, 모두 성령께서 이끄신 덕분이다"고 말했다. 무가지로 발행했던 '성서와 함께'는 1984년 정부 인가를 받은 정기 간행물로 혁신 창간하면서 유가지로 전환했다. 발행부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원고료와 인쇄비, 발송비 등 제작비 부담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소식지 발행을 맡은 편집부원들에게 언제까지 재능기부와 봉사를 요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혁신 창간호를 시작으로 '성서와 함께'는 성서모임 가족을 넘어 성경을 공부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준(準) 성경전문지로 발돋움했다. 이 때부터 개신교 사목자 글도 실었고, 신자가 아닌 이들의 글도 배제하지 않았다. '성경을 통해 교회 일치와 민족 복음화를 이룬다'는 지향에 더욱 충실했다. 이와 더불어 1989년 1월호부터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랑 나눔 꼭지 '여기 사마리아 사람이'를 만들어 맛 들인 하느님 말씀을 삶에서 직접 실천하도록 했다. 최 대주교는 "'성서와 함께'가 고급스러운 성경 해설서가 되지 말고, 가르치려고만 하는 색깔을 지우고, 하느님 말씀을 체험케 하는 생동감 있는 월간지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해인 수녀는 발간 40주년을 기념하는 축하시 '성서예찬'과 함께 "성서를 깊이 읽고 묵상하고 되새기고 생활 속에 실천하는 법을 가르쳐 준 끊임없는 노력과 정성에 감사드린다"는 축하 인사를 보내왔다. 창간 40주년 감사미사는 19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흑석동 성모교육원 강당에서 봉헌된다. 문의 : 02-822-0125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3.12
![[재미있는 가톨릭교리] (15)-삼위일체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1/09/rc/390164_1.2_titleImage_1.jpg)
[재미있는 가톨릭교리] (15)-삼위일체 하느님삼위일체 하느님 서로 사랑, 일치삼위일체(三位一體)란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세 위격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가르침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통해 하느님 구원을 경험한 인간 체험에 바탕을 뒀으며, 오랜 신학적 성찰을 통해 믿을 교리로 선포됐다. ▶성경 가르침 성경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의 인간 구원 역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구원 활동으로 이뤄진다는 사실이 구약성경에서는 암묵적으로, 신약성경에서는 보다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구약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가르침은 다음의 성경 구절에서 나타난다. 첫째, 하느님께서 "우리"라고 언급하신 구절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라고 말씀하신 것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둘째, 창세기 18장은 주님께서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세 사람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아브라함은 자기 앞에 나타난 이 세 분을 극진히 대접했다고 전한다. 셋째는 주님께서 명하신 세 번의 축복문(민수 6,24-26), 넷째는 이사야 예언자가 소명을 받을 때 사람들이 주님께 드리는 세 번의 찬미(이사 6,3)다. 신약성경에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가 보다 명시적으로 계시된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나타내는 신약성경 말씀으로는 일반적으로 다음 구절을 제시한다. 첫째, 예수님 탄생 예고 때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마리아에게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루카 1,35)라고 선포됐다. 둘째,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며 하늘에서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라는 말씀이 들려온 것이다. 셋째, 예수님께서 수난 전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로 보낼 보호자, 곧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하실 것이다"(요한 15,26)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넷째,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교회 가르침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한 분이신 하느님으로 서로 단일하고 동등하며, 세 위격적 존재로서 서로 다른 역할과 활동을 통해 상호 구별된다. 일반적으로 성부께서는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시고, 성자께서는 계시와 구원 활동을 하시며, 성령께서는 인간 마음에 거하면서 성화, 거주, 내밀함의 활동을 하신다.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자신의 활동을 담당하면서 동시에 다른 위격의 활동에도 참여한다. 성부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파견 받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시며, 인간 구원을 위해 성자와 성령을 세상에 파견한 분이시다. 성자는 성부에게서 파견돼 인간으로 강생하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며 사흘 만에 부활하신 분이시다. 성령은 성자의 부활과 승천 이후 성자를 통해 성부에게서 파견된 분이시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호칭할 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순위를 지켜야 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일치하신다. 삼위일체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이뤄야 할 사랑의 단일성, 사랑으로 일치를 이뤄야 할 단일성을 말해주고 있다. 교회 공동체와 모든 그리스도인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삼위일체 하느님의 상호 사랑과 일치로 나아가도록 도와줘야 한다. 삼위일체 하느님에 관한 교의는 인간 능력으로 온전히 깨달을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신비다. 따라서 교회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위격으로 존재하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이 되는 삼위일체 신비를 신앙 안에서 받아들이고 믿고 고백하도록 가르친다. ▶신앙 고백 그리스도인은 전례 예식을 비롯한 전 신앙생활을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한다. △기도문 :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 고백은 신앙 행위의 기본인 십자성호에서부터 영광송, 사도신경 등 모든 기도문에서 드러난다. △성사 생활 :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세례성사를 위시한 모든 성사 생활에서 표현된다. △삼위일체 대축일 : 교회는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 주일에 삼위일체 대축일을 기념하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인간 구원 활동에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제공=서울대교구 사목국조은일2011.09.20

원어 파고들어 다시 읽는 바오로 신학성서신학 박사 박병규 신부 바티칸 파올리나 성당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벽화 ‘성 바오로의 회심’. 그리스도를 만나 삶의 완전한 전환을 이루고,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신앙의 이정표를 제시한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담은 작품 일부. OSV 성경 본문 줌아웃 / 박병규 신부 / 생활성서 “평생 율법에 따라 흠 없이 의롭게 살았던 바오로는 자신에게 이로웠던 것이 도리어 해롭게 되었다고 말하며 그리스도를 소개한다.(필리 3,6-7) 한 인간의 절대적 포기와 절망의 한가운데,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다. (중략) 그러나 바오로는 그리스도를 깨닫고 알아 가면서 흔하고 모호한 존재에서 고유한 식견을 지닌 주체로 거듭난다.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자리에서 바오로 역시 더욱 선명해진다.”(60쪽) 「성경 본문 줌아웃 - 바오로 서간 편」은 바오로 신학의 정수가 담긴 11개의 핵심 본문을 골라 십자가와 부활·믿음·의화·기도·은총·자유·세례·죽음·종말 등 그리스도교 신앙을 형성하는 주제들을 짚어 나간 책이다. 바오로 서간은 바오로 사도가 각지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신자들에게 쓴 편지다. 다양한 문제와 질문 속에서 신앙을 일궈 나가는 공동체를 위로하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기록한 편지들은 오랜 세월이 흘러 지금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앙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가 된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어로 편지를 썼다. 성서신학자인 박병규(대구대교구) 신부는 바오로 사도가 사용했던 그리스어 낱말을 파고들어 말씀을 깊이 ‘줌인’하고, 다시 우리의 신앙생활과 실생활로 ‘줌아웃’해 설명한다. 특히 우리말 성경만 읽었을 때 발견하기 어려운 의도와 뉘앙스를 세밀하게 짚어낸다. 예를 들어 바오로 사도는 우리말 ‘도구’로 번역된 ‘호플론(ὅπλον)’을 ‘무기’의 의미를 담아 자주 사용했다.(로마 13,12; 2코린 6,7; 10,4 참조) 세례받은 이는 현실 속에서 무기를 든 전사와 같다. 다만 그들은 악과 죄와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희망과 기쁨, 영광을 위해 싸운다. 힘들고 아프고 슬픈 것들이 희망과 기쁨, 영광의 방증이 된다는 역설이 가능하며, 이것이 세례받은 신앙인의 새로운 삶이라고 말한다. 박 신부는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해석하는 일이며, 지금 우리 삶의 자리에서 성경의 메시지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독자의 논리와 인식의 깊이 앞에서 새롭게 창조하는 일”이라며 “바오로가 예수님을 읽고 그분을 해석했듯 자신이 믿고 따르는 예수님을 자신의 정확한 논리 안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연습”을 강조한다. “바오로 사도의 행적을 끝까지 읽고 나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라는 말, 바오로의 언어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한마디면 충분할 것이다. 신앙은 나를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우리를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이다.”(184쪽) 저자는 프랑스 리옹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가톨릭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성경 본문 줌아웃: 공관 복음서, 사도행전 편」·「요한 복음서-성경 펼쳐 읽기」·「시서와 지혜서-구약성경의 이해」등을 펴냈다. 윤하정 기자 윤하정2026.08.12

국내엔 '레옹 신부'... 해외 그리스도인 버튜버들은버튜버, 유튜브 등 통해 방송 진행하며 젊은이들과 소통 버튜버 젤리스타라 인스타그램. 사제복을 입은 2D 아바타가 젊은이들과 게임을 즐기며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최근 국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버튜버 레옹 신부다. 그는 화면 너머 청년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고, 끊임없이 소통하며 신앙을 전하고 있다. 그의 소속사 홀리라이브에 따르면, 레옹 신부를 접한 일부 젊은이는 성당에 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고, 실제 예비신자 교육을 받는 이도 생겼다. 이처럼 디지털 공간에서 가상 캐릭터를 활용해 신앙을 전하는 활동은 국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외에서도 가상 아바타를 매개로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전하는 버튜버들이 있다. 이들 역시 레옹 신부처럼 신앙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는 다양한 콘텐츠에 신앙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담으며 소통하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 3만여 명을 보유한 ‘젤리스타라(JellyStara)’는 영어권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버튜버다. 그는 ‘그리스도인 버튜버가 마인크래프트에서 하느님에 대해 가르쳐드립니다’라는 영상에서 게임을 매개로 시청자와 소통한다. 또 ‘그리스도인 버튜버가 읽어주는 성경’이라는 1시간 분량의 ASMR 영상을 올리는 등 다양한 신앙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다. 영상 ‘그리스도인의 번아웃’을 통해서는 청년들이 일상에서 겪는 피로와 우울감을 위로하기도 한다. 그가 유튜브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이라고 글을 올리면 시청자들은 성경 구절을 남기거나 “하느님을 더 신뢰해야 하며, 앞으로 더 그분을 신뢰할 수 있도록 기도드린다”고 댓글로 화답한다. 버튜버 셀레스티움 인스타그램. 동방 정교회 예비신자라고 밝힌 ‘셀레스티움(Celestium)’은 2024년 2월부터 그리스도교 버튜버로 활동해왔다. 본인의 유튜브 채널과 소셜미디어에서 사도행전 등 성경을 읽거나 자신의 신앙을 나누는 방송을 진행 중이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함께 사용하며 게임과 그림 그리기 방송 등 서브컬처(하위문화) 콘텐츠를 선보이면서도 그리스도교 가치관을 중심에 두고 있다. 그는 자기소개에 “그리스도교 버튜버이자 아티스트로서 인터넷과 전 세계에 하느님 말씀 전파를 목표로 한다”며 “모든 활동과 작업에 하느님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선교활동을 위해 방송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진 ‘애비게일 도블리(Abigail Dovely)’는 2024년까지 트위치와 유튜브에서 활동했다. 그는 애비게일 수녀(Sister Abigail)라고 칭하며 활동했지만 실제 수도자는 아니며, 루터교 신자다. 그는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성경 공부 영상을 게시하는 한편, 고전 게임과 공포 게임 등을 시청자와 즐기며 신앙을 전했다. 그는 방송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성경을 요한 1서로 소개하기도 했다. 쾌활하고 친근한 분위기로 시청자들을 이끈 것이 그의 특징이었다. 그를 좋아한 시청자들은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을 통해 “그는 온라인에서 본 가장 다정하고 순수한 그리스도인 버튜버 중 한 명”이라고 평했다. 도미니칸 프리스트가 유튜브에서 게임 화면을 지켜보고 있다. 도미니칸 프리스트 유튜브 영상 갈무리 가상 캐릭터를 내세우진 않았지만, 수도복을 입고 젊은이들과 서브컬처로 소통하는 사제도 있다. 도미니코회 사제인 ‘도미니칸 프리스트(Dominican Priest)’다. 크로아티아 국적인 그는 수도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앉아 ‘워해머 40000’ 같은 게임 스토리나 세계관을 가톨릭 사제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영상을 게재하며, 십자군 전쟁이나 이단 심문 등 교회 역사와 관련된 주제도 다루며 소통한다. 그가 게시한 게임 ‘폴아웃’의 캐릭터 조슈아 그레이엄에 대한 반응을 올린 영상은 조회수 124만 회를 기록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 이준태 2026.10.21

누가 총성 위에 성경을 얹었나?… 트럼프는 왜 전쟁에 하느님 말씀 들이밀까배경엔 미국 내 시민종교와 강력한 복음주의 기독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6년 2월 24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OSV 미국 정치 지도자들이 전쟁이나 군사 행동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장면들이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최근 피터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전쟁 상황 브리핑 자리에서 시편 구절을 인용하며 군사 행동의 정당성을 강조해 또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전쟁 속 총성 위에 성경을 얹는 미국의 정치적 수사는 단순한 개인 신앙 표현이 아니라, 미국 내 뿌리 깊은 정치 구조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벨라는 이에 대해 ‘시민종교(civil relig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종교 언어가 공적 영역에서 기능하는 방식에 대해 “미국의 시민종교는 국가의 역사와 정치 행위를 초월적 의미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 미국 대통령 연설에서 반복되는 “God bless America”(미국에 신의 축복을)와 같은 표현은 국가 정책을 단순한 정치 선택이 아니라, 도덕적 사명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장치로 작동해왔다. 외교사학자 앤드루 프레스턴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 외교 정책은 오랫동안 종교적 언어와 깊이 결합돼 왔으며, 지도자들은 이를 통해 국제 문제를 선과 악의 서사로 설명해왔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서사는 특히 전쟁 상황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난다. 전문가들은 “전쟁은 도덕적 정당화가 필요한 행위이며, 종교 언어는 이를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수단이 된다”고 설명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미국 정치에서 전쟁과 종교 언어의 결합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군사 행동과 정치적 갈등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성경 구절과 기도가 등장하고, 심지어 전쟁 상황 중에 백악관 안에서 목회자들이 대통령을 둘러싸고 기도하는 장면까지 연출되면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미군 내 일부 지휘관들은 “전쟁은 주님의 계획”이며 “트럼프는 기름부음 받은 지도자”라는 극단적 언급까지 서슴치 않는다. 대표적인 장면은 2020년 6월 워싱턴의 세인트존스 교회 앞에서 연출됐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 진압 직후 성경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공개하며 강경 대응을 정당화하는 메시지를 던졌다. 정치적 갈등 상황 속에서 종교 상징이 결합된 이 장면은 ‘권력과 성경의 결합’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트럼프 2기 들어 이러한 흐름은 전쟁 상황과 더욱 직접 연결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2025년 이란 핵시설 공습 발표 직후 그는 “God bless America, God bless Israel”이라고 말하며 군사 행동을 종교적 축복의 언어로 연결시켜 마무리했다. 이어 2026년 초에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복음주의 목회자들이 대통령을 둘러싸고 안수기도를 하는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한 목사는 “우리 대통령에게 우리나라를 ‘주님 아래 하나의 나라’로 다시 이끌 힘을 계속 주십시오”라고 기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국면에서 국가 권력과 종교 의례가 결합된 장면이 계속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미국 주도로 설립한 ‘평화위원회’ 첫 회의에서 여러 국가 지도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위원회는 가자지구 통치와 재건을 감독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여서 비판을 받고 있다. OSV 이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미국 정치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복음주의 기독교가 자리하고 있다. 복음주의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고 개인의 회심과 선교를 중시하는 개신교 흐름으로, 미국 유권자들 가운데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은 정치적 선택에서도 신앙적 가치와 세계관을 중요하게 반영하는 경향이 강하며, 특히 이스라엘과 중동 문제를 성경적 맥락에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에서의 정치와 종교의 결합은 이른바 ‘정치 문화 + 지지층 결집 + 전쟁 정당화’에 가장 좋은 3축 구조가 되고 있다. 정치 상황에서는 도덕적 정당성에, 전쟁 때에는 ‘선과 악의 싸움’으로 단순화해 전쟁은 정의의 발로이며, 신의 계획이라는 서사 구조를 만드는 데 성경이 이용되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미국 내 정치사회학자들은 “특히 미국 정치에서 복음주의 기독교 유권자층은 핵심적인 동원 기반이며, 종교 언어는 이들에게 강한 정체성과 결속을 제공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중동 문제와 이스라엘 정책과 관련해 성경적 해석이 결합되면서 정치인들의 종교적 표현은 단순한 수사를 넘어 정치 전략으로 기능하게 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1월 20일 미국 제47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성경 앞에 선서를 하고 있다. OSV 미국 내 일부 언론들도 교회와 정치가 결합한 현 트럼프발 전쟁 시대를 “교회와 정치가 결합한 성스러운 전쟁(holy war)으로 묘사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미 매체 LA Times는 “미국 역사상 가장 비그리스도교적 대통령 중 하나로 평가받는 트럼프가 계속 자신을 예수님의 외투로 감싸고 있다”며 “이번 사순 시기에는 어느 때보다 더 트럼프와 그를 둘러싼 현실을 회개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전쟁을 일으키는 이들의 기도와 포탄 쏟아지는 전장에서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의 기도는 다른 걸까?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흐름에 분명한 선을 긋는다. 예루살렘 라틴 총대교구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은 3월 15일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가장 큰 죄”라고 지적하면서 “전쟁은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일 뿐 신앙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피자발라 추기경은 이러한 표현을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말하는 유사 종교적 언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하느님은 고통받는 이들, 억압받는 이들, 침묵 속에서 희생되는 이들과 함께 계신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 교회 지도자들도 계속 우려를 표해왔다. 시카고대교구장 블레이즈 쿠피치 추기경은 3월 7일 전쟁이 영화나 게임처럼 소비되는 현실을 비판하며 “이는 인간의 고통을 가리고 사회를 폭력에 무감각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신앙은 인간의 양심을 일깨우고 평화를 향하도록 이끌어야 하지만, 권력과 결합될 때는 오히려 폭력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이정훈2026.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