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인 첫 사제 김대건, 칼을 맞고 거룩한 죽음을 맞다[신 김대건·최양업 전] (47)김대건 신부의 순교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림은 탁희성 화백의 김대건 신부 순교화. 이름: 김대건(우대건) 나이: 25세 출신: 중국 광동성 오문현(현 마카오) 종교: 천주교 압수 물품: 언문 소책자 1권, 붉은 비단 주머니 1개(성모자상과 예수성심상이 새겨진 무명 조각 2개가 들어있음). 특이 사항: 머리카락을 반쯤 잘라 기르지 않은 흔적이 있음. 진술 내용: 본래 중국 광동성 오문현 사람으로 성은 우(于)이고, 이름은 대건인데 그 고을에서 자랐다고 함. 부친은 죽었고, 모친은 살아 있으며 장가는 들지 않음. 15~16세 천주교를 배웠으며, 23세 때 상강(중국 호남성에 있는 강)에서 상선을 타고 요동에 도착한 후 갑진년(1844년) 11월 책문 변경에서 조선 지방을 보고자 언 압록강을 몰래 스스로 건너옴. 1845년 8월 한양에 도착해 황해도 산천을 유람하고자 마포로 나가 뱃삯을 치르고 임성룡의 배를 빌려 연평도에 들러 등산진에 이르러 이곳 진영에서 배를 압류하는 일로 소란을 일으키다 체포됨. 김대건은 스스로 국경을 넘어와 천주교를 봉행했고, 외국 선박과 서로 통함에 이르렀으니 이러한 죄에 하나만 해당해도 죽임을 용서할 수 없을 터인데, 여러 형구를 늘어놓고 반복해 힐문했으나 “천주를 위해 한 번 죽겠다”고 하면서 끝까지 자백하지 않고 있음. 외국 사람과 관련되었기에 갑자기 처단하기가 어려움. 칼과 수갑을 찬 채 한양으로 압송김대건 신부를 문초한 황해 감사 김정집의 장계 주요 내용이다. 헌종 임금은 이 장계를 읽고 “기해년(1839년)에 사교를 다스린 지 오래되지 않았는데 또 이렇듯 외국인이 몰래 넘어왔다고 하니 어찌 분통함을 이기겠는가. 틀림없이 데려와 머물러 있게 한 무리가 있을 것이니 사건 전모를 조사할 방도를 비변사로 하여금 속히 아뢰고 처리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임금의 명령이 있자 좌포도청 군관 홍창린, 김진연, 홍창열, 우포도청 군관 김인철, 조민식, 이시영 그리고 군사 4명이 김대건 신부 일행을 한양으로 압송하기 위해 황해 감영으로 급파됐다. 이들은 김대건 신부와 함께 체포된 임성룡과 엄수, 그리고 뒤늦게 잡아들인 임성룡의 아버지 임군집, 김성서의 아버지 김중수를 포도청으로 압송했다. 김대건 신부 일행은 붉은 줄로 묶인 채 칼과 수갑을 차고 머리에는 거무스름한 천 자루를 뒤집어쓰고 한양으로 끌려 왔다. 문초 끝에 정체가 드러나다1846년 6월 21일 포도청으로 이송된 김대건 신부는 다음날부터 40여 차례 문초를 받았다. 김대건 신부는 포도청 심문에서도 황해 감사에게 한 진술처럼 중국인이라고 우겼다. 하지만 김 신부는 이틀도 못 가 신분을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김 신부가 중국 어선 2척에 맡긴 조선 지도와 편지, 그리고 페레올 주교의 보고서가 압수됐기 때문이다. 황해 감사 김정집은 김대건 신부를 중국인으로 의심해 손을 못됐지만, 임성룡과 엄수를 혹독하게 고문했다. 이 과정에서 임성룡은 김대건 신부가 중국 어선 2척에 고향으로 보내는 편지를 전했다고 자백했다. 이에 김정집은 도내 각 지방관에게 비밀리에 관문을 보내 중국 배가 출몰하는 곳을 염탐해 김대건이 보낸 편지를 되찾아오게 명령했다. 이 명령을 받은 황해 수사 이명학은 부장 유상은과 역학 김용남, 장교 황길승 등을 보내 먼바다를 정찰하게 했다. 이들은 중국 배로 위장해 고죽포 먼바다로 나가 중국 배 5척에 다가가 밀무역 상인이라며 개가죽과 환약을 주고 포구로 와서 거래를 하자고 유인했다. 중국인 뱃사람 중 10명이 이익을 탐해 육지로 오르자 포교들은 이들을 체포해 3명을 풀어주며 김대건이 전한 편지를 찾아오면 나머지 7명을 석방하겠다고 윽박질렀다. 이들은 5월 25일 오후 1~3시경 다시 와 등주에서 온 배 한 척에서 김대건의 편지를 찾았다며 포교들에게 지도 1장과 페레올 주교가 쓴 라틴어 보고서 6장을 전했다. 포교들은 이번에는 다시 김대건이 장연 목동에서 중국 어선에 전한 편지를 찾아오면 모두를 풀어줄 뿐 아니라 후한 상을 주겠다고 타일러 보냈다. 그러자 중국인 어부 2명은 다시 가서 지도 1장과 김대건 신부가 쓴 편지를 찾아왔다. 이 편지와 보고서, 지도 2장은 곧바로 헌종 임금에게 전달됐다.라틴어 보고서는 임금과 대신은 물론 역관조차 읽지 못했다. 그래서 김대건 신부에게 편지 내용을 밝히라고 문초했고, 김 신부는 교회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그 내용을 얼버무려 알려줬다. 지도와 주교의 보고서, 자신의 편지까지 모두 압수된 것을 안 김대건 신부는 6월 23일 6번째 공초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저는 본래 외국인이 아니고 조선의 용인 땅 태생으로, 성은 김이고, 이름은 재복입니다.…”(「일성록」 병오 5월 30일 참조)조정은 발칵 뒤집어지고 프랑스 군함까지 조정은 김대건이 서양말을 배우고 신부가 되기 위해 마카오로 보내졌던 조선인 소년 3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발칵 뒤집어졌다. 임금은 김대건 신부와 연루된 신자들을 잡아들이라고 명했다. 이에 현석문(가롤로), 남경문(베드로), 한이형(라우렌시오), 김임이(데레사), 이간난(아가타), 정철염(가타리나)가 체포됐다.설상가상으로 1846년 8월 6일 세실 함장이 이끄는 프랑스 군함 3척이 충청도 홍주 앞 외연도에 나타났다. 페레올 주교가 극동대표부장 리브와 신부에게 “세실 함장이나 혹은 다른 함장이 우리 동료들을 살해한 데 대한 해명을 요구하러 조선에 올 결심을 하게 만들 수 있다면, 인류와 천주교에 크게 이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페레올 주교가 한양에서 쓴 1845년 12월 27일자 편지 참조)라고 요청한 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세실 함장은 조선 정승(영의정) 앞으로 보내는 한문 서한을 8월 9일 조선 측에 전달하고, 10일 조선을 떠났다. 세실 함장의 편지에는 1839년 프랑스 선교사 살해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고 다음 해에 회신을 받으러 오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새남터에서 처형, 순교김대건 신부는 프랑스 군함이 조선 연안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이 곧 석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신부는 함께 갇혀 있는 신자들에게 “이제 우리는 사형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신자들은 “그럴 말한 일이 생겼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김 신부는 “여러 척이 프랑스 군함이 조선에 와 있는데, 주교님과 안 신부(다블뤼)는 틀림없이 우리의 처지를 알려 줄 것이다. 나는 세실 함장을 알고 있으니, 그분은 틀림없이 우리를 석방시켜 줄 것”이라고 답했다. 김대건 신부의 추측대로 페레올 주교는 프랑스 군함이 조선 연안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함장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 그러나 주교가 군함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그들이 떠나고 없었다. 프랑스 군함의 출몰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영의정 권돈인, 우의정 박회수, 예조판서 조병현, 병조판서 김좌근, 좌참찬 김흥근, 수원 유수 이약우, 지돈녕부사 이헌구 등이 1846년 9월 15일 창덕궁 희정당에 나아가 임금에게 “프랑스 오랑캐와 소통한 사악한 김대건 무리의 죄를 물어 빨리 처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헌종 임금은 “천주교 죄인 김대건을 효수경중(머리를 베어 백성들을 경계토록 함)하라”고 명했다. 김대건 신부의 사형 집행은 다음 날인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있었다. 김 신부는 보라색 겹저고리와 중국 무명천으로 지은 홑바지를 입고 손발이 결박된 채 들것에 실려 형장으로 이송됐다. 이송 경로는 포도청에서 서소문을 거쳐 당고개에서 잠시 쉬었다가 새남터로 갔다. 형장에 도착하자 병사 한 명이 김 신부의 풀어진 상투를 다시 매어 주었다. 그런 다음 웃옷을 벗기고 양쪽 귀에 화살을 꿰었다. 이어 김 신부의 얼굴에 물을 뿌린 후 횟가루 한 줌을 뿌렸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 장면은 증언자마다 다르다. 서소문부터 따라가 김 신부의 순교를 눈으로 본 박순집(베드로)은 “단 두 번의 칼을 받고 참수됐다”고 증언했다. 목격자의 증언을 들은 최양업 신부의 동생 최(선정) 베드로는 “신부의 머리가 도끼에 잘려 떨어졌다”고 했다. 신자들로부터 김 신부의 순교 장면을 듣고 아주 자세히 편지에 묘사한 페레올 주교는 “8번 칼을 맞고 머리가 떨어졌다”고 기록했다. ‘8’은 성경에서 ‘새 출발’과 ‘부활’을 의미하는 수이다. 박순집의 아버지 박 바오로와 한경선, 나창문, 신치관, 이 요한 사도 등이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찾으러 그해 음력 10월 칠흑 같은 밤에 새남터 형장으로 갔다. 이들은 모래를 파고, 한쪽 손에 개에 물린 뚜렷한 자국으로 김 신부의 시신을 확인하고 홑이불로 감싼 후 약 1㎞ 떨어진 와서(瓦署)에 임시매장을 했다. 다음날 밤 몇 명의 교우들이 다시 김 신부의 시신을 파내어 왜고개로 옮겨 매장하고 장례를 지냈다. 이후 박해가 진정되자 신치관과 이민식 등이 왜고개 김 신부의 시신을 찾아 그해 10월 26일 미리내로 옮겨 안장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5.10

태아를 위한 기도가 언젠가는 당신에게 닿기를사순에 만난 사람 (2) 가장 약한 생명을 위해 기도하는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참가자들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갈라 6,9-10)프란치스코 교황이 발표한 사순 시기 담화 주제다. 교황은 사순 담화를 통해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이들, 버려지고 거부당한 이들,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이들을 사랑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자”고 촉구했다. 사순 시기를 맞아, “낙심하지 않고 계속 좋은 일을 해 나가는 이들을” 만나봤다.2021년 가을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3번 출구 주변에서 이뤄졌던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가 올해 봄 3월 2일 재의 수요일부터 같은 장소에서 두 번째 40일을 시작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8차선 왕복 도로를 앞에 둔 인도 한편에서 조용히 기도를 바치던 이들이 해를 넘겨 다시 모였다. 봄기운이 스며드는 3월 10일과 13일 두 차례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현장을 찾았다. 지난해엔 코로나19 방역지침이 엄격해 기도를 하려면 정해진 시간에 딱 1명씩만 가능했다. 하지만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면 여러 명이 참여해도 무방했다. 지난해는 또 천주교회와 개신교회가 요일을 정해 자리를 지켰지만, 올해는 요일을 나누지 않고 누구라도 자유롭게 기도할 수 있도록 했다. 오가는 이들은 여전히 무심했지만, 기도하는 이들은 낙심하는 기색 없이 오롯이 기도에 집중했다. 10일 오후 기도 참가자가 적은 것 같아 하던 일도 접고 왔다는 장숙의(마리아, 69, 서울대교구 교구생명분과 중서울대표)씨는 “우리가 하는 기도는 겨자씨 같다”고 말했다. “성경을 보면 겨자씨는 세상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땅에 뿌려져 자라나면 어떤 풀보다 커지고 큰 가지를 뻗는다고 하잖아요. 우리 기도도 응답이 없는 듯하고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큰 울림이 있으리라 믿어요.” 홀로 현장을 찾은 황순희(63, 온누리교회)씨는 “젊은 사람들이 생명 문제에 눈을 떴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를 지우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듯해서 안타까워요. 이 기도는 40일간 같은 장소에서 기도하는 거잖아요. 출퇴근하거나 등교하는 사람들은 매일 우리를 볼 텐데, 분명히 어떤 메시지가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날씨가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한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으니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두꺼운 겨울 패딩을 챙겨 입은 서윤화(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운동 한국본부 공동대표) 목사는 “지난주엔 핫팩도 소용없을 정도여서 기도하는 분들이 모두 고생했다”고 했다. 하지만 태아들이 당하는 죽음의 고통과 비교할 건 아니었다. 날이 추워도, 비가 내려도 기도는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주일 오후 1시부터 9시까지는 한국 콜롬버스기사단 회원들이 주로 기도를 맡고 있다. 콜럼버스기사단 부천지역 대표 임영범(요셉, 63)씨와 부대표 김배림(바오로, 61)씨는 “누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하는 일이 아니다”고 했다. 임씨는 “다들 그냥 지나쳐가지만, 빗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기도 효과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성정은(42, 온누리교회)씨는 두 자녀와 함께 기도를 바치러 왔다. 중학교 3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은 엄마 성씨와 함께 한 시간 동안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성씨 가족은 지난해에도 기도 운동에 참여했다. 아들 고휘찬군은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 다 막을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기도가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단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기도에 함께하는 이들은 모두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결코 낙심하지 않고 기도를 이어가는 이들은 입을 맞춘 듯 희망을 노래했다. “생명 수호, 기사단의 핵심 정신”한국 콜롬버스기사단 국가평의회 문찬웅 부의장·홍성태 생명위원장“한국에서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가 시작한다고 했을 때 콜럼버스기사단이 당연히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생명을 지키는 일은 우리 기사단의 핵심 정신이거든요.” 문찬웅(바오로, 사진 왼쪽) 부의장과 홍성태(마태오) 생명위원장은 “미국이나 유럽 콜롬버스기사단은 이미 오래전부터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 운동에 참가해 왔다”고 말했다. 문 부의장은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와 생명대행진 등에 참여하면서 비로소 낙태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우리 기사단 형제들도 생명운동을 통해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한 70대 형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젊었을 때 셋째가 생겨서 그 아기를 지웠는데 평생 한으로 남았다고요. 그 시절엔 나라에서 낙태를 권하던 때여서 그랬지만, 그래도 그래선 안 됐다는 걸 알게 되신 거죠. 콜롬버스기사단 내에서도 생명의 중요성과 낙태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지난해보다 기도 운동에 참가하는 인원이 부쩍 늘었습니다.”(문 부의장) 홍 생명위원장은 “무심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겐 우리의 기도가 가 닿아 한 생명을 살릴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개신교 신자들과도 함께해서 더 좋더라고요. 교회 일치 차원에서 모범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특히 지금은 사순 시기라 보속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문 부의장과 홍 생명위원장은 “교황 사순 담화 주제가 꼭 우리 상황과 맞는 듯 싶었다”면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생명 운동에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하느님 믿는 사람이 나서야죠”아름다운 피켓 대표 서윤화 목사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니까요.” 서윤화 목사<사진>는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거리에서 팻말을 들고 낙태 실상을 알리며 태아 살리기에 나선지 11년째다. 이번 사순 시기에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운동이 열릴 수 있었던 것도 서 목사 역할이 컸다. “1년에 한 번 가을에만 기도 운동을 하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이 운동은 세계적으로 봄과 가을 두 번 열리거든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기도 중에 하느님께서 ‘내가 원하는 일’이라는 답을 주셨어요.” 사람도 운영비도 홍보도 모두 부족한 상황이었다. 서 목사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니 도와주실 거란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게다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죽어가고 있는 태아를 생각하니 더는 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마음을 먹고 일을 진행하니 꼭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 도움의 손길이 답지했다. “온누리교회, 신촌감리교회, 오륜교회 등 대형 교회에서 참여하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전에 참여했던 분들도 또 함께하겠다고 하시고요. 특히 주일엔 가톨릭 콜롬버스기사단 분들이 맡아 주셔서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서 목사는 “생명운동, 특히 낙태엔 사람들이 너무나 무관심하다는 걸 느낀다”면서 “그래서 더욱더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칠 때도 많이 있죠. 목사님들 중에선 낙태를 찬성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그래도 단 한 명의 태아를 살릴 수 있다면 우리 신앙인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cpbc2022.03.23

코로나 시대, 가톨릭평화방송 없었으면 신앙생활 어쩔뻔 했나[창간 33주년] 가톨릭평화방송(CPBC) 역할과 소명 일러스트=문채현 전 세계적 코로나19 팬데믹에 가톨릭 사회매체의 의미와 가치, 활용 범위는 더 커지고 더 넓어졌고, 더 확장됐다. 일상화된 비대면과 감염증 확산이 1년 6개월이 넘도록 계속되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매체의 역할에 대한 고민 또한 계속된다. 하지만 고민이 클수록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톨릭교회 사회 매체의 첫 마음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열매 중 하나로 평가받는 사회 매체에 관한 교령 「놀라운 기술」(Inter Mirifica)이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이에 1967년 홍보 주일을 제정, 사회 매체에 관한 교회의 사도직을 활성화했다. 지난 한 해 초유의 미사 중단 사태까지 겪으며 가톨릭평화방송(CPBC)은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 매체 활용을 통한 사도직과 비대면 프로그램 제작에 기꺼이 함께하며 동반해왔다. 이에 제55차 홍보 주일을 맞으며 가톨릭평화방송의 참다운 역할과 소명, 응답을 조명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비대면의 일상화, 방송 미사 강화로 응답지난 한 해 미사 중단 사태를 겪으며 가톨릭평화방송은 기존 방송 미사의 역할을 새롭게 격상했다. 종전 방송 미사가 병상 중 환우나 고령자, 교도소 재소자 등 미사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이들을 위한 방송 ‘서비스’에 그쳤다면, 이제는 성체를 받아모시지 못해도 기도를 통해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일치한다는 의미의 ‘신령성체’(神靈聖體, spiritual communion)라는 전례적 의미를 살리는 데 중점을 뒀다. 코로나19로 인해 유례없이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주님께 의탁해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CPBC는 지난해와 올해 특히 전례 프로그램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TV 방송 미사는 평일 4회(06:05, 09:00, 12:05, 18:05), 주일 5회(평일 미사 시간대에 21:00 방송 추가)로 대응했고, CPBC FM 라디오는 평일과 주일을 막론하고 1회(05:00) 방송한다. 방송 횟수도 늘렸지만, 기존에는 새 사제들 하던 데서 벗어나 중견 사제들과 교구장 주교들까지 섭외했다. 시청률도 코로나19 사태 이전과 비교하면, 3~4배가량 늘었다. 미사예물 신청 건수나 후원 ARS도 늘었고, CPBC에 관심도 상당히 높아졌다. 전례 프로그램 강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성체조배’ 프로그램 신설이다. 지난해 성주간 때 특별 편성됐던 성목요일 성시간에 대한 신자들의 반응이 높게 나타나자 이를 정규 편성하게 된 것. 스승 예수의 제자수녀회 서울 본원 성당에서 녹화,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25분간 CPBC TV를 통해 방송한다. 이뿐 아니라 ‘성체조배’를 시작으로 ‘새벽을 여는 기도’ ‘영상 기도’ ‘묵주기도’ ‘삼종기도’ ‘방송 미사’를 잇따라 새벽 시간대에 방송하고, 낮 기도와 전례, 저녁 기도와 전례도 함께 배치함으로써 전례 방송으로서 위상을 높였다. 비대면 프로그램으로 코로나19 극복 전례 프로그램만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신자들을 위해 ‘가톨릭 청춘 어게인’ ‘성경원정대’ 등도 신설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대림 시기에 새로 편성한 ‘가톨릭 청춘 어게인’은 본당 노인대학에 가지 못하는 어르신을 위한 TV노인대학으로 신설, 체조나 노래교실, 색칠하기, 만들기 등 홈 트레이닝은 물론 노년의 공감대를 나누는 공감 마당, 전례 강좌나 건강 상식을 익히는 배움터, 생활성가를 따라 부르는 노래 기도, 최주봉(요셉) 서울가톨릭연극협회장과 함께하는 성지 순례 등 알찬 내용으로 꾸미고 있다. 또한, 지난해 12월 대림 시기부터 주일학교에 가지 못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위한 ‘성경 원정대’도 새로 편성, 성경을 게임으로 풀어나가도록 했다. 대면 프로그램을 녹화, 비대면으로 내보내는 시도도 하고 있다. 춘천교구 영동가톨릭사목센터 배광하 신부를 초대, ‘배광하 신부와 함께하는 신앙 산책’ 코너를 신설한다. 오는 6월 절두산 꾸르실료회관에서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참석 인원을 조정, 대면 녹화로 진행하고 7월부터 방송에 들어간다. 또 신약과 구약 비대면 강좌를 새로 마련하고, 향심기도 프로그램과 신앙 인터뷰 다큐 프로그램 ‘나의 하느님’ 시즌2, ‘교회건축과 전례’도 새로 시작한다. CPBC FM도 지난해 홍보 주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을 맞아 ‘성령칠은 뽑기’ 이벤트를 선보여 호평을 받았고, 이에 올해는 CPBC 제작기술국 주관으로 ‘성령칠은 뽑기’와 ‘매일 말씀사탕’ 웹서비스를 제공한다. 감사데이 ‘성령칠은 뽑기’ 이벤트는 17일부터 30일까지 2주 동안, ‘매일 말씀사탕’은 오는 6월 29일 이후 상시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지역 교회, 교회 단체와 연대하다방송뿐 아니라 대면 행사를 열지 못하는 지역 교회, 단체들과의 연대도 활발하다. 특히 교구 사제서품식 중계는 예년보다 훨씬 늘었다. 수원ㆍ대전ㆍ인천ㆍ전주교구 사제서품식을 생중계했고, 유튜브 생중계도 동시 진행했다. 한국 평협과 연대, 12일부터 방송에 들어간 CPBC TV ‘사랑의 기쁨인 가정의 해 특별기획 4인 4색 엄마의 뜰’은 교회 단체와의 연계 프로그램으로 대표적이다. 각기 다른 세대의 네 엄마와 서울대교구 압구정동본당 부주임 김광두 신부가 출연, 우리 시대를 사는 엄마들의 역할과 고민을 들어본다. 이 밖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희년’을 맞아 오는 6월 초 역사물 토크쇼 ‘청년 김대건의 시간들’(1편)을 방송하고, 오는 7월에는 30분 분량의 김대건 순례길 다큐 7편을 제작해 내보낸다. 김대건 성인의 생애를 다룬 다큐 2부작을 제작 중이고, 오는 8월 14일부터 21일까지 성 김대건 탄생 주간에는 솔뫼성지에서 진행될 기념행사를 모두 생중계한다. 끝으로 오는 12월 대림 시기에는 김대건 희년을 결산하는 뜻으로 기록 다큐 ‘희년의 기록들’을 선보인다. 류호찬 PD(가톨릭평화방송 TV국장)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으며 저희 CPBC가 신자들에게 꼭 필요한 선교 매체로서의 소명의식을 갖게 된 건 소중한 체험이었다”면서 “코로나19 감염증 확산으로 느슨해진 신앙생활을 어떻게 다잡고 이끌어갈지, CPBC의 역할을 고민 중이고, 그러한 고민을 녹여낸 프로그램을 만들어 선보이겠다”고 약속했다. cpbc2021.05.12

새 계약으로 죄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다[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9.하느님의 구원경륜⑥- 죄로 인한 상처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죄악이 창궐하여 창조질서를 무너뜨리자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셨다. 하지만 피조물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땅 위의 피조물들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고 보호하겠다는 계약을 세우신다. 그림은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담은 이콘. 출처=가톨릭굿뉴스 인간의 범죄가 초래한 가장 큰 폐해는 하느님과의 관계 파괴이다. 지난 연재에서 언급하였듯이 원조들이 범한 죄의 여파로 인간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서 무상으로 선사 받던 존재감(자존감과 자기효능감)과 낙원을 상실하고 무의미와 허무 속에 갇힘으로써 희망이 사라진 암흑을 체험한다. 이로써 인간은 하느님의 집(모상)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피조물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로 추락한다. 더 나아가 통제되지 않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은 타인이나 외부세계에 폭력을 가하고 허무를 탐닉하거나 자기 자신을 자학하는 등 삶의 방향성을 잃어버린다. 정체성 잃어버리고 우상숭배자로 추락하느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혼돈에 빠진 인간을 보시고 그에 대한 연민의 끈을 놓지 못하신다. 따라서 낙원에서 쫓겨나는 원조들에게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 주신다.”(창세 3,21)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사람들의 죄악이 점점 더 창궐하여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상황에 처하자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만든 것을 후회하시고 마음 아파하시면서”(창세 6,6)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셨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피조물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지니신 분이시기에 모든 것들을 파멸시키지는 않으시고, 노아를 통해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창세 9,15)는 약속을 하신다. 요컨대 땅 위의 피조물들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고 보호하시겠다는 계약을 세우신다. 이것은 천지창조 이전에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의지 속에 감추어져 있던 하느님의 구원의 계획(에페 3,9; 1코린 2,7), 즉 ‘하느님의 구원경륜’이 펼쳐지게 됨을 뜻한다. 하느님의 구원경륜(Economy of the Salvation)이란 그 말의 어원적인 의미에서처럼 죄로 말미암아 무너진 집(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을 복구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인간의 역사 안에 개입하시어 펼치신 하느님의 구원 활동이다. 이것은 어떠한 인간의 저항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인간 역사 속에서 이미 하느님께서 정하신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다. 성경은 바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 펼쳐진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구약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경륜의 손길은 우리가 잘 알듯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사건을 통해 결정적으로 드러났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해방을 체험하였고, 하느님의 구원 손길이 그들에게 깊이 각인되었다. 이러한 체험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은 죄로 무디어진 마음에서 되돌아서서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었다. 우선 하느님께서는 당시 가장 보잘것없고 핍박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다가가신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똑똑히 보고, 그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셨다.(탈출 3,7) 그리고 하느님은 “당신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도록”(탈출 3,10) 모세를 중재자로 삼아 그를 파라오에게 파견하여 그의 완고함을 꺾어 놓았다. 마침내 파라오는 모세를 통한 하느님의 활동에 굴복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하느님과의 계약을 통해 정체성 되찾아이스라엘 백성의 현실적인 구원은 이집트의 해방을 통해 성취되었지만, 보다 근원적인 구원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당신 백성’으로 삼은 계약을 통해 이루어진다. 요컨대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이 되고”(탈출 6,7)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 되는 계약이 시나이 산에서 선포된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통해 하느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십계명’ 준수를 약속한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죄로 말미암아 멀어진 하느님과의 관계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통해 다시금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과의 계약을 잘 준수할 수 있도록 계약의 핵심 내용을 신조로 삼아 늘 마음에 새겼다. 우리 신앙인들이 주님의 기도를 마음에 새기듯이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에 새겼던 신조는 다음과 같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너희 주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희 주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그리고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 두어라.”(신명 6,4-9) 하느님과의 관계를 마음에 새기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죄로 완고해져 하느님과의 계약에 점점 불충실해져만 갔다. 이때 하느님은 당신의 예언자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파견하여 당신과의 계약에 충실하도록 촉구하지만 그들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지 않는 계명은 형식적인 율법 준수로 전락하고 의미 없는 계약으로 변해만 갔다. 이렇게 하느님과의 계약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을 준비하셨다. 요컨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정화시켜 그들의 가슴에 하느님의 법을 넣어주고, 그들의 마음에 하느님의 법을 새겨 참다운 하느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는 새로운 계약이다.(에제 11,19-20) 새 계약의 목표는 돌 판에 새겨진 십계명과 달리 하느님의 법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새 계약은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는 외적인 해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적인 구속 상태인 죄의 노예살이에서 벗어나게 하는 계약이다. 이러한 새 계약은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파견되심으로 성취되었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cpbc2022.01.19
정의구현사제단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즈음한 천주교 평신도 수도자 사제 1만 5천인의 호소'[전문]“이성과 신앙, 민주주의와 평화” -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즈음한 천주교 평신도 수도자 사제 1만 5천인의 호소 - 공익과 공동선언을 위해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헌신하는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1.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이번 선거가 대한민국을 한층 새롭고 정의롭게, 행복하고 이롭게 만드는 기회가 되기를 빕니다. “정치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한 사랑의 탁월한 형태 가운데 하나(프란치스코 교황, 「복음의 기쁨」 205항)”임을 생각하며 정치적 소명을 받은 모든 이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2. 모든 선거가 그렇지만 대통령 선거는 국가의 운명을 가르는 중대한 정치행위입니다. 누가 과연 공동체의 선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줄 적임자인지 그 식별의 책임은 권력의 발원지이며 주권자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이지 않는 손들의 너무나 노골적인 훼방으로 시민들의 이성적 판단과 공정한 숙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3. 먼저 그 책임을 언론과 검찰, 법원에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민들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뉴스를 접하고,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판결에 의지하여 시시비비를 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유권자들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어 있는 언론과 검찰, 법원은 우리 사회의 어떤 집단보다 중립과 공평, 법과 원칙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기관들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의 구성원 가운데 기자들의 ‘기사’, 검찰의 ‘기소’의 공정성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두 집단의 편향성은 대선 정국에서 더욱 심해졌습니다. 후보와 가족에 대한 검증이 한창입니다만 언론 종사자들이 불편부당한 자세로 양심껏 보도하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습니다. 검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 따라 누구는 피의자 조사도 없이 기소하고 누구는 기소는 커녕 심지어 조사에 불응하더라도 그냥 봐줍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정의의 최종 수호자여야 할 법원의 판결도 귀를 의심할 정도입니다. 건강보험료 수십억 원을 떼먹어도 무죄를 선고하면서 입시에 반영되지도 못하는 표창장 의혹만으로 징역 4년을 판결합니다. 없는 죄는 만들고 있는 죄는 덮습니다. 시중에는 검찰청이 북 치고 법원이 장구 친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우리는 지난 2020년 12월 7일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 수도자 선언’에서 촉구했던 일들을 실천에 옮길 후보가 누구인지 따져보고 있습니다. 재난 지원금도 못잖게 재난 상황에 걸맞은 상식과 이성의 회복이 더 시급해진 이때에 언론, 검찰, 법원의 회개를 위해 기도합니다. 4. 한편 아무 갈피도 잡지 못한 채 소문만 무성한 무속 논란에 대해서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째서 “무속이 노골적인 대선”이 되고 말았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유력 후보 가운데 스스로 생각해서 책임지고 결단할 일을 점쟁이에게 묻는 이가 있다고 합니다. 압수수색을 발동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사안을 두고 누군가에게 물어서 하지 않았다는 게 사실이라면, 나아가 그랬던 이유마저 자기를 이롭게 하기 위함이었다면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한사코 이성과 신앙의 조화와 종합을 위해 분투했던 가톨릭교회의 정신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문명사 전체를 압축하면 주술의 시대에서 합리적 이성의 시대로의 이행이라 하겠습니다. 어언 금번 대선은 이성적 평화 세력에게 미래를 맡길 것인가, 아니면 주술 권력에게 칼을 쥐어 줄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성이 쓰러진 자리에 주술이 들어서고 광기가 돋아납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오랜 세월 가난한 사람들의 병과 한을 어루만져 주던 무속의 역사를 부인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인생사를 독립적으로 판단 내리지 못하고 보편성, 타당성, 신뢰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바깥의 힘’에 의지하여 살아온 사람이 아이들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각축하는 국제사회 속에서 ‘통일 코리아’를 위한 지도력을 발휘하기나 할지 걱정하는 것입니다. 주술은 국가의 의사결정을 왜곡하며 공포를 유포하고 불안을 일으킬 것입니다. 한 종교의 가르침이 생명의 ‘말씀’이 되는 까닭은 정의와 평화, 인권이라는 만고불변의 가치에 바탕을 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웃 종교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주술을 미워하는 이유도 ‘이성’이라는 하느님의 선물을 부정하고 사리사욕을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현실을 떠나서 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주술의 지배를 거부하는 것은 신앙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고백적 행동입니다. 5.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노력이 다음 정부에서도 변함없기를 바랍니다.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그래서 얻어지는 결과라야 진짜 평화라는 주장을 들을 때마다 심란합니다. ‘판문점 선언’과 ‘평양선언’을 통해서 거둔 성과를 두고 “정치적 쇼”, “평화는 말이 아니라 힘이 보장한다”,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하겠다”면서 “선제타격”과 “킬체인”을 운운하는 등 호전적 의지를 과시할 때마다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최근에는 “사드 추가배치”를 공약하였습니다. 혹시 정전체제를 종전체제로, 나아가 평화체제로 발전시키려던 노력을 일거에 무너뜨리려는 것인지 불안합니다. 모든 후보에게 호소합니다. 오랜 세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바쳐온 한국천주교회의 기도를 무시하지 말아주십시오 6. 오늘 우리가 대통령 선거에 즈음하여 말씀드리게 된 것은 이성과 공익의 상실, 그로 인해서 민주주의와 공동체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거짓을 미워하고 참을 사랑하는 슬기로운 시민들이 희망입니다. 성경과 복음이 사람에게 재촉하는 바는 애오라지 서럽고 배고픈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입니다. 부디 자기를 위하되 모두를 이롭게 하는 정의로운 선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7. 이 시간 슬픔과 고통 속에 빠져 계신 분들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나도 일하고 너도 일하고 나도 잘 살고 너도 잘 살되 모두가 올바로 잘 사는 ‘고루살이’의 하느님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2022. 2. 7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cpbc2022.02.08

생애 가장 긴 미사[미카엘의 순례일기] (45) 영원의 언덕, 베즐레(하) 구정모 신부가 베즐레 경당에서 말씀 전례를 거행하고 있다. 조금 소란스러워졌던 경당 내부는 신부님의 말씀이 끝나자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영대도, 제구도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미사를 드리자는 신부님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신부님께서는 제단 위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날은 8월 중순이라 날씨가 무척 더웠는데, 소박하게 짐을 꾸리신 탓에 입을 만한 옷이 많지 않으셨던 신부님은 그날따라 커다란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습니다. 단색의 영대 대신 귀여운 캐릭터 티셔츠를 입은 채 제단 위에 서신 신부님의 모습은, 예상치 못한 문제에 당황하던 순례단 사이에 작은 웃음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제가 학교에서 전례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시죠?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미사는 시작 예식, 말씀 전례, 성찬 전례 그리고 파견 예식으로 이루어진 기도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성찬 전례를 행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씀 전례까지는 행할 수 있지 않겠어요? 제가 영대를 걸칠 수 없으니 평소에 드리는 미사의 형식을 간소화하는 대신 의미를 크게 하여 봉헌하고, 성찬 전례와 파견 예식은 오늘 순례의 마지막 시간에 따로 봉헌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사이에 긴 공백의 시간이 있겠죠? 그 시간을 공백이 아니라, 미사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합시다. 여기서 듣는 말씀대로 남은 하루를 살아가고, 저녁에 기쁜 마음으로 성체를 영하는 것입니다. 미사 시간이 1시간이 아니라 온종일인 셈이지요.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하나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성찬 전례 전에 화해해야 한다는 복음의 이야기입니다. 마태오 복음의 산상수훈에는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라는 구절(마태 5,23~24)이 있습니다. 모든 신자가 잘 알고 실천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만, 특히 오늘은 영성체 전에 마음속에 남은 작은 원한까지 다 없애면 좋겠어요. 물론 서로 원한을 지닐만한 사람이 이 중에 있으리라 생각되지는 않으나 순례의 중반이 되면서 힘도 들고 짜증이 쌓였을지 모르지요. 서로 마음이 불편한 일이 있었다면 꼭 화해하고 서로 용서하면 좋겠습니다. 또한,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사람과도 화해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시면 좋겠습니다. 어때요? 다들 찬성하시나요?”그렇게 생애 가장 긴 미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애초에 미사를 위해 한 시간을 사용하는 것으로 예약했기 때문에, 말씀의 전례도 아주 여유 있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미사에 대한 신앙적 유익에 대해 모두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해 주셨고 작은 전례 동작과 기도문 하나하나에 대해서 그 의미를 알려주셨지요.말씀 전례가 끝나고 일정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순례단 모두는 여전히 거룩한 미사를 드리는 마음이었습니다. 순례단을 뒤따르는 제 눈에는 한 분 한 분의 걸음걸이가 제대를 향해 나아가는 그것과 다름없이 조심스러워 보였고, 신부님께서 특별히 부탁하신 ‘형제간의 화해’의 분위기가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두 분씩 소곤소곤 대화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보였으며 이후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청하는 분도 많았습니다. 언뜻 평범해 보였던 그 날 하루가 얼마나 특별한 시간이었는지는 그 순례에 참여했던 신자들만이 진정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길었던 그 날의 미사는 끝내 성당에서 마무리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그날 머물 호텔 근처의 성당에 여러 차례 전화를 드렸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근처 제과점에서 부스러기가 적은 빵을 구하고, 호텔에 급히 주문한 와인을 마련하여 로비 구석에서 성찬 전례가 행해졌습니다. 비록 교회에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 제병과 미사주의 조건에는 부족했지만, 그 거룩함은 어느 미사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로비 구석에 모여 성찬례를 행하는 순례단을 의식한 듯 시끌벅적했던 호텔 로비는 점점 조용해졌고, 파견에 앞서 내리시는 신부님의 강복에는 로비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숙여 성호를 그으며 그 축복의 시간에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그렇게 베즐레에서 봉헌된, 제 평생에 가장 길었던 그 미사는 긴 시간만큼이나 큰 감동으로 남았습니다. 사실 그것은 하느님을 믿는 모든 사람이 일상을 살아야 하는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일상을 거룩하게”라는 성경 말씀처럼, 하루의 모든 순간에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산다면 우리는 미사 시간 못지 않게 충만한 삶을 매일 영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계속>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cpbc2021.11.30

교회 보화 번역하며 함께 걷는 성소의 길성소 주일에 만난 사람 / 안소근 수녀·윤주현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과 교의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안소근 수녀와 윤주현 신부. ‘수도자 교수’인 이들은 지금까지 각각 역서와 저서 43권을 펴냈다. #1. “서울 양재동성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전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먼저 하느님으로 채워져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한테 하느님이 너무 필요한 거예요.”서울대 졸업식을 앞둔 2주 전, 그는 수도회에 입회했다. 애당초 졸업식에 갈 생각이 없었지만, 인문대 수석 졸업이라고 참석해 달라는 학교의 권유를 거절할 수 없었다. #2. “사춘기를 지내면서 인생의 물음들을 가졌죠.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 사회에서는 다양한 가치를 이야기하는데 목숨을 걸만한 가치는 아닌 거예요. 내 모든 것을 걸만한 진리가 있다면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겠다 싶었어요. 사람이 사랑을 하면 모든 걸 내주잖아요. 가정과 재산이 있는 목사는 아니었어요.”그는 개신교회를 다니다 사제가 되려고 고3 때 개종했다. 장남이었던 그는 부모 몰래 교리와 세례를 받고, 매일 새벽 미사를 다녔다. 그는 수도회에 입회해 사제품을 받기 전까지 아버지와 원수로 지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 앞에 있는 가톨릭교리신학원의 안 수녀 연구실에서 두 사람을 같이 만났다.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학을 가르치는 안소근(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수녀와 교의신학을 가르치는 윤주현(가르멜수도회) 신부다. ‘수도자 교수’인 이들은 교집합이 넓다. 지금까지 가톨릭 역서와 저서를 포함해 각각 43권씩의 책을 출간했다. 책의 날(23일)과 성소 주일(25일)을 앞두고, 인터뷰는 ‘책과 성소’라는 두 축을 오가며 진행됐다. 성경과 영성 분야 번역 선수들이들은 수도자로서 학문적 공감대도 넓다. 비슷한 시기에 대전가톨릭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신학생을 양성하는 수도자로서 번역하면서 다양한 도움을 주고받았다.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안 수녀는 주로 방대한 성경을 쉽게 해석하고 풀어내는 저서들을 펴냈다. 「시편」, 「이사야서」,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다. 무엇보다 성경에 대해 공부하는 책보다 성경 말씀 자체의 살아있는 힘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을 선호한다.윤 신부는 로마 테레시아눔 대학원에서 신학적 인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성녀 데레사가 초대하는 기도 여정」, 「성 토마스의 신학대전에서 본 여정자 인간」 등의 저서를 비롯해 영성신학 및 가르멜 영성 분야의 역서를 펴냈다.이들의 전공 분야는 성경과 영성으로 갈리지만, 공역자로 이름을 나란히 올린 책들이 적지 않다. 한국성토마스연구소장 이재룡 신부와 2031년 완역을 목표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번역하는 대장정에 동행하고 있으며, 최근에 완역한 이탈리아 석학 바티스타 몬딘 신부의 「신학사」 전집 번역도 함께 참여했다. 역서들은 대부분 권마다 700~800쪽을 넘나드는 방대한 대작들이다.기획과 마무리도 척하면 착, 환상의 콤비윤 신부가 ‘총감독’이라면, 안 수녀는 ‘구원 투수’다. 윤 신부가 총서나 시리즈물을 기획하고 일을 벌이면, 안 수녀는 끌려 들어가(?) 번역을 마무리한다.윤 신부가 2015년 「종말론」을 번역할 당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당시 마감이 다가오는데 윤 신부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려고 급하게 서울로 가는 길이었다. 윤 신부는 휴가 중인 안 수녀에게 도움을 청했고, 서울역에서 만나 번역이 안 된 부분의 책을 가위로 잘라 나눴다. 처음 계획과 달리 공역자 이름에 안 수녀 이름이 올라갔다. 안 수녀는 다른 이들이 벌인 기획된 일에 합류해 일을 마무리한다. “저는 다른 사람이 일을 시작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학생 때도 논문 고치고 교정 보는 게 전문 분야였어요. 책을 쓰는 것보다 번역하는 게 쉬워요. 그렇지만 번역이라는 게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원문은 저만 보잖아요. 독자들은 번역문을 보기 때문에 그만큼 번역가에게 큰 책임이 있는 거예요. 원문을 안 보는 사람들한테 그대로 전해줘야 하는 거니까요.”(안소근 수녀)안 수녀의 아버지는 안정효 소설가다.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번역을 시작으로 130여 권의 작품을 옮긴 번역 문학의 대가다. 안 수녀가 수도회에 입회해 수도회 초창기 자료를 번역하는 일을 시작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세상에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교정은 네가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학자들이 남긴 교회 유산을 후대에 남기고 싶은 책임감윤 신부의 아버지는 아들이 1998년 사제품을 받을 때 마음을 풀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봉헌한 게 여전히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면서 ‘이왕 가는 길 큰 사람이 되라’고 덕담을 하시며 악수를 청하셨어요. 큰 사람이 되지 않으면 무덤에 묻혀서도 눈을 못 감을 거라고 하셨는데, 아버지의 말씀과 기도가 수도자로 살아오면서 고비를 넘기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윤 신부는 “부모님께 드려야 할 효도를 내려놓고 수도생활에 투신하는데, 나태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우리 세대뿐 아니라 앞으로 올 후대에 도움이 되는 하느님의 빛과 교회 정신을 심어줄 수 있는 책을 한국 교회에 남겨두고 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중세 초부터 학문과 영성을 담당해온 것은 수도자의 몫이었다”며 “지금도 가톨릭교회의 영성과 학문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펴낸 저서와 역서들은 가볍고 읽기 쉬운 책도 있지만, 출판사 측에서는 손해를 감수하고 출간해야 하는 책들이 더 많았다. 한국 교회의 신학계에 초석을 다지는 교부와 대학자들이 남긴 영적 자산과 교회 유산을 외면할 수 없다는 막중한 책임감 때문이다. “번역에 좀더 무게를 두는 이유는 역사의 뒤안길에 엄청난 신학자와 성인들이 일생을 통해 작업한 중요한 학문적 영적 보화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생을 걸쳐 그런 작품을 쓸 수 없죠. 대가들의 책을 번역해 전해주는 것이 한국 교회에 더 큰 이익이 됩니다.”(윤주현 신부)불타는 사명감으로, 숨 쉬듯 자연스러운 그들의 성소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지만 각자 지닌 성소의 빛깔은 다르다. 윤 신부에게 ‘불타는 사명감’이 있다면, 안 수녀에게는 없다. 안 수녀에게 번역은 숨 쉬는 것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는 불타는 사명감이 없기 때문에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해요. 어쩌면 이게 하느님이 주신 몫이에요. 바오로 서간에서 ‘몸 안의 서로 다른 지체들’이라고 하죠. 왜 나를 끌어들이느냐고 하지만, 이게 내가 할 몫이라고 느끼는 거죠.”(안소근 수녀)안 수녀는 “어떤 시기에는 정말 아무것도 할 마음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면서 “논문 지도 신부님이 ‘하느님이 어떤 사람에게 능력을 주실 때는 개인 소유로 주신 게 아니라 교회의 선익을 위해 주신 것’이라고 거의 세뇌를 시키셨다”며 미소 지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가진 시간, 능력, 모든 것을 하나도 내게 남겨놓지 않고 다 쓰이는 것이 수도 서원의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수녀는 “코로나 때문에 사도직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 됐지만 코로나와 성소는 상관이 없다”며 “사도직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더 순수하게 수도생활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제약이 있는 상태가 다른 걸 다 버리고 하느님을 선택할 수 있느냐의 문제, 성소의 의미를 순수하게 생각할 기회”라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날 줄 몰랐다. 어떻게 우리 둘을 엮을 생각을 했느냐고도 했다. 이들이 한국 교회에서 가장 많은 책을 출간한 ‘선수’로서 하고 싶은 말은 교회 역사 안에 묻혀 있는 대가들의 세기적 작품들, 영적 보화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두 잔이 바닥을 보인 지 2시간이 넘어서 인터뷰는 끝났다. 녹음기를 끄자, 안 수녀는 이 연구실은 김진태(전 가톨릭교리신학원장) 신부가 “학자에게는 연구실이 있어야 한다”면서 마련해줬다고 했다. 두 수도자는 “신학교의 인사권은 교구에 있어 수도자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글=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사진=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21.04.21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 여행지 : 부활의 증언](//cpbc.co.kr/CMS/newspaper/2021/04/rc/800284_1.2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 여행지 : 부활의 증언 예수님의 부활이 실제인지 아닌지는 그것을 체험한 제자들의 변화를 보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부활 사건 이전과 이후 제자들의 행동과 삶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보고 도망치며 두려워하였던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체험하고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용감히 예수님에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상에서 부활을 체험한 자만이 부활을 선포할 수 있고, 또 부활의 희망을 가지고 잠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세에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한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듯이, 지상에서 부활을 체험한 사람이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예수님 부활의 증인으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 여행부활의 증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1.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2.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어디에서 보자고 하셨나? 3. 토마스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고 나서 고백한 말은?4. 제자 두 사람이 어디로 가는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가? 5. 두 사람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이 무엇을 풀이해 주자 뜨거운 감동을 느꼈고, 또 예수님이 무엇을 나누실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았는가? 6. 오늘날 우리도 성경 안에서, 또 무엇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가?답란 1. □□□나2. □릴□□3. “저의 □□, 저의 하느님!”4. □마□5. □□, □6. 영□□가이드 설명1. 마리아 막달레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일 먼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으며,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알린 부활의 첫 증인입니다.(요한 20,11-18) 막달레나가 사도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다고 해서 “사도 중의 사도”라고 부르지요. 성경에는 예수님으로부터 구마 치유를 받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예수님 십자가 곁을 지켰다고 나옵니다.(루카 8,2; 요한 19,25) 현대에 와서 여성 사도로서의 그녀의 위치와 역할이 조명되면서, 2016년에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의무 기념일’을 ‘축일’로 승격하였지요. 2. 갈릴래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해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니, 제자들을 거기서 보자고 전하십니다.(마태 28,1-8; 마르 16,1-8) 예수님께서 수난 받으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곳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남부 지역)이지만, 예수님 생전의 활동 지역은 갈릴래아로, 이스라엘 북부 지역에 있지요. 사도들의 대부분은 이곳 출신이며, 이곳이야말로 예수님의 전도 무대였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제자들이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일상 안에서 체험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요. 3. 토마스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토마스(쌍둥이라고도 불림)는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제자들 가운데 없었기에, 제자들이 주님을 뵈었다는 말을 믿지 않았지요. 예수님을 직접 보고 상처를 확인해야만 믿겠다고 말하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의 신앙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이에 예수님은 당신을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시지요.(요한 20,24-29 참조) 부활이란 보는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몫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활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보다 현재 부활을 보지 않고도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더 행복할 수 있지요. 4.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주간 첫날(안식일 다음 날, 주일) 오후에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납니다.(루카 24,13) 엠마오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약 11km, 2~3시간 거리) 떨어져 있는 마을인데, 정확한 위치는 아직 논란이 되고 있지요. 엠마오 단어의 뜻인 ‘따뜻한 우물’처럼, 절망에 빠져 있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나 영적인 온기를 회복합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인 클레오파스(루카 2,18)는 성인(聖人)이 되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서 있었던 다른 마리아의 남편인 클로파스(요한 19,25)와 동일인물로 보고 있지요.5. 예수님을 알아봄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은 처음에는 눈이 가리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메시아로 기대한 사람이 처참한 죽임을 당한 것과 그분의 시신이 사라진 것에 대해 당황하였는데,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아)는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 고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설명해 주자, 그들의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름을 느낍니다. 그들이 목적지에 가까이 이르러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들어가 예수님께서 나누어 주시는 빵을 받자, 그들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루카 24,14-32) 예수님이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나누시는 평소의 모습으로 알아본 것이지요. 6. 부활하신 예수님 체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베네딕토 16세 교황)이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삶 안에서 깨닫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말씀 안에서, 또 빵을 나눌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성경 말씀(말씀 전례) 안에서, 또 영성체(성찬 전례) 안에서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지요. 이 외에도 작은 이들에게 사랑을 베풂으로써 그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마태 25,31-46 참조), 회심의 순간이나 용서 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여행 옵션 : 성 베드로 수위권 성당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이스라엘 타브가에 있는 갈릴래아 호숫가 북서쪽에 ‘성 베드로 수위권 성당’이 있고, 성당 바깥에 ‘예수님과 베드로’성상이 서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아침을 대접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물어보신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신 뒤, 당신의 어린 양들을 돌보는 수위권(首位權)을 주시는 것을 기념하는 성당이다.(요한 21,1-18 참조) 베드로가 그전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다시 세 번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게 함으로써 베드로의 지위를 복권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부족한 나의 권위(지위)를 당신 사랑으로 채워주심을 묵상할 수 있다.여행 기념품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사람과 부활을 확신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주위에 빛을 발합니다. 내 주위에 이런 분이 있습니까? 아니면 나 자신입니까? 무엇으로 그것을 알 수 있지요? 현재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문채현2021.04.14

우리 영혼의 선성(善性)과 일그러진 모습 동시에 관상[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54. 성녀 클라라의 거울 영성 클라라 성녀가 강조하는 ‘거울’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현실을 자기 인식과 자아를 통해 본래의 모습대로 다시 아름답고 온전하게 존재하게 해 주시는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조금씩 고쳐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콘은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그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다. 12. 성녀 클라라의 거울 영성- 하느님 현존 의식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의 관점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나를 동시에 바라본다는 것은 하느님의 본성에서 나온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과 그 사랑으로 인한 인류(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구원을 상징함과 동시에 우리의 일그러진 영혼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상징해준다. 클라라는 「아녜스에게 보낸 네 번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거울의 맨 끝을 보시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을 관상하십시오. 그분은 이 사랑 때문에 십자나무 위에서 고통당하시고 거기서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로 이 거울 친히 십자 나무에 달리셔서 행인들에게 여기에 생각해 볼 것이 있다고 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 길을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여, 살펴보고 또 보십시오. 내가 겪는 이 내 아픔 같은 것이 또 있는지.’(애가 1,12) 그러므로 ‘이것을 내 마음에 깊이 새기고, 내 영혼은 내 안에서 갈기갈기 찢어지리이다’(애가 3,20) 하시며 외치시고 울고 계신 그분께 한목소리, 한마음으로 응답합시다.”(23-26) 클라라는 우리 죄로 인해 갈기갈기 찢긴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하느님에 의해 각인된 우리 영혼의 선성(善性)과 우리 영혼의 일그러진 모습을 동시에 관상하도록 초대하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프란치스코가 어느 나환우와의 만남에서 연약함과 죄로 인해 일그러진 인간의 모습을 취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과 흡사하다.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이콘에 그려져 있는 식탁 앞쪽에 네모난 상자 모양의 구멍이 있다. 이에 대해 예술의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이곳에 거울이 붙어 있었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한다고 한다. 거기에 정말 거울이 붙어 있었을지도 모르고, 또 붙어 있었다면 이것을 본래 작가 본인이 붙인 것인지 후에 어느 누가 붙인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거기에 거울이 붙어 있었다면 그 거울이 지닌 의미는 너무도 놀라울 뿐 아니라 엄청난 은총의 초대가 된다. 왜냐하면, 그 거울을 통해 그 식탁에 네 번째 사람(그림을 보는 이)이 이 삼위일체의 위대하고도 아름다운 영원의 신비에 초대되기 때문이다.우리가 파노라마식으로 전개되는 성경의 계시를 큰 그림 안에서 보게 되면 하느님은 인간 의식 주변을 영원히 도시며 우리 인간이 당신과의 일치를 위해 준비되기를 바라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묘사하기 위해 히브리 예언자들과 가톨릭 신비주의자들, 그리고 수피 신비주의자들은 결혼이나 신방, 혹은 신랑과 신부와 같은 이미지를 사용하였다. 이는 이사야 예언서(61,10; 62,5)와 시편, 바오로 사도의 서간(에페 5,25-32) 그리고 요한 묵시록(19,7-8; 21,2) 등에서 나타난다. 이런 곳에서 한결같이 얘기하는 바는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신부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는 인간의 성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과 일치하고자 하시는 의지를 표현해주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복음서 여러 곳에서 하느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고 계시고, 마르코 복음에서는 당신 자신을 신랑으로까지 묘사하고 계신다. 이것을 동방교회 쪽에서는 과감하게 신화(神化-divinization 혹은 theosis)라는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이런 결합 혹은 일치는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성령께서 가능케 해 주신다고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서간 여러 곳에서 강조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우리의 이런 일치 혹은 결합이 본래 주어져 있는 것이라는 진리를 믿고 받아들일 용기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이 결합은 나중에 (그것도 우리가 선하게 산 이후에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고자 하신다. 이 결합은 우리가 출발했던 기원이고, 또 우리가 지금부터 살아야 할 현실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은 인류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곱게 단장한 신부”(묵시 21,2)가 되는 하느님의 때인 것이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혼인 잔치를 위한 제단에서 우리 모두를 기다리시는 영원한 신적 신랑이 되신다.(마태 9,15; 요한 3,29 참조) 성경 계시의 분명한 목표이자 방향은 충만하고 완전하게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의 인격 안에 거하시는 것이다. 육화의 영원한 신비는 결국 여기서 그 중요성이 드러나고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시작될 것이다.”(묵시 19,7-9) 이렇게 될 때 역사는 더 이상 의미 없는 공허함이 아닌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을 잡게 된다. 이 관점은 건강하고 행복하며 희망 가득하고 생명력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줄 것이다. 지금의 이 시대는 참으로 이런 사람들이 필요한 때다. 우리가 확신해야 할 것은 선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태초의 당신과의 일치로 되돌리시면서 참으로 아름답고 선한 세상을 창출해 내시기 위해 일하신다는 것이다.이 ‘거울’의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과 우리 인간의 현실, 즉 본래 하느님과 인간이 일치된 모습을 제대로 보고 하느님과 우리의 일그러져 있는 모습을 고쳐가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과 분리되어 하느님의 이미지는 물론이고 인간 자신의 이미지도 망가트려 버린 우리 인간이 자기 인식과 자아의식을 통해 본래의 모습대로 다시 아름답고 온전하게 존재케 해 주시고자 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힘으로 조금씩 고쳐나가게 하는 의미를 지닌다.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 cpbc2021.08.18

존경하는 교황의 제의 입고 미사 하는 기쁨이란[미카엘의 순례일기] (24)성 바오로 6세 교황의 제의 한 사제가 카스텔 간돌프 빌라노바의 성 토마스 성당 제대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다. 오직 두 다리와 지팡이에만 의지해 여행해야 했던 중세의 순례자들에게 예루살렘과 로마는 너무나도 멀고 위험한 길이었습니다.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어찌나 많았는지 기혼자의 예루살렘 순례를 금한다는 기록이 남아있기까지 합니다. 수년간 제대로 된 지도 한 장 없이 죽음의 위험을 마주하며 걷고 또 걸어야 하는 순례의 길은, 말 그대로 고난과 사투의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성지에서 순례의 증거를 가지고 고향에 돌아가길 원했던 것도 당연했겠지요.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수의, 십자가 조각, 못이나 가시관과 같은 물품들은 너무 귀해서 일반인들은 감히 꿈조차 꾸지 못했고, 성인들의 유해나 유물들 또한 인기가 매우 높았던 탓에 몰래 무덤을 파내는 장사꾼들을 피해 성인의 무덤 위치를 숨기는 일도 많았습니다. 성지 주위에 늘어선 갖가지 기념품 가게들은 예나 지금이나 큰 호황이었지요.로마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카스텔 간돌포’는 알바노 호숫가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여름에도 매우 시원한 지역이어서, 수 세기 동안 교황님의 여름 휴양지로 사용되었습니다. 교황님들이 사용하던 별장은 몇 년 전부터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기도 했습니다.한 번은 카스텔 간돌포의 내부를 둘러본 후에 잠시 자유시간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교황님의 별장 앞 소광장에 자리한 ‘빌라노바의 성 토마스 성당’에 예약된 미사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였습니다. 순례자들은 작고 예쁜 카페와 꽃집이 자리한 광장 주위를 둘러보거나 한가로이 호수 주위를 산책했습니다. 지도 신부님께서는 성당에서 기도를 마치신 후 제의방으로 향하셨고, 이탈리아인 신부님께서도 한국 순례단은 처음이라며 아주 기쁘게 맞아주셨습니다.신부님께서는 이 성당에서 여러 교황님께서 자주 미사를 집전하셨다고 설명하며 제의 여러 벌이 걸려있는 옷장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더니 어떤 제의를 입겠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쪽의 제의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입으시던 것, 그 옆에 걸린 제의는 성 바오로 6세 교황님, 그리고 그 옆은…. 지도 신부님께서는 예상치 못한 배려에 깜짝 놀라시면서, “저는 항상 성 바오로 6세 교황님을 특별히 존경해 왔습니다. 괜찮다면 그분께서 사용하시던 제의를 입고 싶습니다”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셨습니다. 때는 초여름이었으나 제의는 겨울에나 입을 법한 두꺼운 것이어서 신부님께서는 미사 내내 땀을 연신 흘리셨습니다. 하지만 미사를 봉헌하는 동안 신부님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미사를 봉헌하고 마지막 축복을 주시기 전, 신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그동안 여러분들께서 성지를 순례한 뒤 기념품 가게에 들러 물건을 구입하는 모습을 조금은 부정적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사진만으로도 기억을 남길 수 있는 시대에 굳이 돈을 주고 성물을 사야만 하는지 의문스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존경하고 사랑하던 성인 교황님의 제의를 입고 그분께서 미사를 집전하신 이 자리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된 저는 인간이란 때로는 오감을 통해서도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음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의가 너무 두꺼워서 속옷은 땀에 젖었지만 말입니다.”순례단 모두는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그러나 물론 성인의 유해에 친구(親口)하거나 성인의 제의를 입고 미사를 봉헌했다고 해서 우리가 더 거룩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입한 기념품이 그저 성지를 다녀왔다는 추억에 머물지 않고, 여기서 느낀 기쁨과 감동을 되살리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도구이자 채찍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 역시 미사를 마치고 이 앞 기념품 가게에서 바오로 6세 교황님이 그려진 작은 책갈피를 사려고 합니다. 성경에 그 책갈피를 꽂아놓고, 언제 어디서든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오늘 이곳에서 느꼈던 기쁨을 기억하며 기도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렇게 먼 길을 떠나 주님의 발자취를 좇아온 이유이자 목표일 테니까요.”크게 보면, 성지 순례 그 자체가 이와 같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주님과 성인들이 살았던 바로 그곳을 찾는다고 해서 그분들의 완덕이 우리에게 갑자기 스며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삶의 흔적들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는 일은 우리에게 또 다른 신앙의 전환점을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 그분들의 삶이 단지 성경 속의 실체 없는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 우리가 밟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고 끝이 났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도 또한 그분들이 계신 하느님 나라에 언젠가 이를 수 있으리라는 것 말입니다.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평화신문2021.06.15

우리 모두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이니까요[미카엘의 순례 일기] (27)하느님, 형제, 자매 미사 중에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순례단.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기도를 딱 하나만 말하라고 한다면, 물론 주저 없이 ‘주님의 기도’를 맨 처음에 꼽게 될 것입니다. 루카 복음 11장에서는 주님의 기도에서 하느님을 단순히 ‘아버지’라고 표현합니다. 같은 기도문을 전하는 마태오 복음(6,9-13)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유다인의 어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에 비춰보면, 루카 복음사가는 누구에게나 친근한 호칭을 사용하여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신약성경 중 무려 170여 곳에서 등장하는 이 ‘아버지’라는 단어를, 동시대인들은 아마도 불경스럽고 충격적이며 하느님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아버지’라는 단어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럼으로써 모두가 평등한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정말 우리는 서로의 직업이나 위치를 고려하지 않고 마음으로 서로를 형제, 자매로 대하고 있는 걸까요?의사, 간호사, 의료기사, 행정 업무 종사자들이 섞여 있는 한 가톨릭 병원 사목회의 순례를 함께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직업의 자부심과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겸손함을 동시에 가진 분들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 서로 가까이 지내는 사이인데도 어쩐지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런 미묘한 느낌을 말씀드릴 기회가 생겨 조심스럽게 여쭈었습니다. 형제님 한 분께서 의사 선생님, 특히 교수님들과 식사하는 것은 처음이고 의사들과 다른 직원들의 식당은 아주 분리되어 있다고 답해주셨습니다. 곁에 계신 의사 한 분도 조금 계면쩍어하시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형제, 자매의 관계를 맺는 것은 병원의 구조상 어려운 일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병원에서 부원장을 맡고 계신 신부님께서도 “직원들이 나를 대할 때, 사제로서가 아니라 병원 운영자로서 보는 것을 느낀다”고 말씀하셨고요.다음 날은 오전 내내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었고, 마침 그날의 복음이 ‘주님의 기도’였습니다. 저는 ‘아버지’라는 단어의 의미와 교회 전통 안의 형제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한 가지 제안을 드렸습니다.“순례 때만이라도 서로 형제, 자매로 부르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며 순례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다른 이들에 비해 뛰어나거나 큰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니듯, 자신이 가진 직위와 사회적 위상을 내려놓고 형제애를 되새길 수 있는 작은 방법을 제안하는 것입니다.”그러자 신부님께서 마이크를 건네받으시고는, 지난 세월 사제로 살아오면서 당신의 개인적인 능력보다 훨씬 큰 사랑을 받았으며 그것은 오로지 당신이 맡은 직분 때문이었다고 운을 떼셨습니다.“하지만 저도 하느님 앞에서는 여러분과 똑같은 형제입니다. 이번에는 저 또한 똑같이 형제님으로 불러주세요. 미사를 집전할 수 있을 뿐, 저 역시 하느님의 자녀이며 여러분의 형제입니다.”그러자 모두 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기쁜 마음으로 화답해주셨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몹시 어색했습니다. 아무리 ‘프란치스코 형제님’하고 불러도 신부님은 알아듣지 못하셨고, 어린 원무과 직원 자매님께서는 의사 선생님께 ‘교수님… 아니 가브리엘 형제님…’ 하며 어쩔 줄 몰라 하셨습니다. 한참이나 어린 인사과 직원에게 헬레나 자매님이 맞느냐고 이름을 몰라 미안해하시는 병원장님의 모습을 볼 수도 있었습니다.제가 먼저 제안한 일이었지만, 병원이 지닌 견고한 체계 속에서 이런 호칭을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순례가 끝난 후 두어 달쯤 지난 뒤 신부님의 초대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을 때 저는 그때의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렸습니다. 순례 후 병원장에서 은퇴하신 형제님께서는 “한국에 돌아온 뒤에 적어도 사목회에서만큼은 서로 형제자매로 부르려고 했지만 쉽지 않더라”고 아쉬워하셨습니다. 그래도 그 일을 계기로 나이와 직위를 떠나 모두 같은 하느님의 자녀임을 늘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성당 안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를 형제자매로 부릅니다. 그러나 성당 바깥을 나서는 순간, 또다시 세속의 옷을 입고 세상이 정해준 이름표를 다시 꺼내 왼쪽 가슴께에 달아버립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형제로, 또 자매로 부르지 못한다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요?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사도10, 34ㄴ-35)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평화신문2021.07.06

세상 한복판에서 길어 올리는 영성 샘물송봉모 신부의 ‘성서와 인간’ 시리즈 리커버 개정판 성서와 인간 시리즈 송봉모 신부 지음 / 바오로딸 1998년 ‘성서와 인간’ 시리즈 첫 번째 권으로 출간해 지금까지 58쇄를 돌파한 「상처와 용서」,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겨나갈 힘과 용기를 주는 「고통, 그 인간적인 것」,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신자 됨의 본질을 일러주는 「본질을 사는 인간」, 다양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하느님 뜻 안에서 지혜롭게 극복하는 길을 알려주는 「관계 속의 인간」, 걱정에 사로잡혀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님의 현존을 느끼게 해주는 「세상 한복판에서 그분과 함께」 등…. 1998년부터 2009년까지 12년 동안 출간된 송봉모(예수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신부의 성서와 인간 시리즈 12권은 이 땅의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깊고 따뜻한 영적 위로를 건네온 베스트셀러다. 개인과 단체들의 주문 폭주, 독서모임의 단골 추천도서로 오르내리면서 일시 품절을 반복했다. 신자 재교육 교재로는 물론 첫 영성체 부모들의 교재 등으로 널리 활용되고, 사랑받은 시리즈다. 각 권마다 30쇄 이상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송 신부 특유의 따뜻한 문체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어루만지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선택과 결단도 촉구한다. 그는 줄곧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장점과 단점, 부족한 점과 한계, 성향과 어두운 과거까지 다 알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며,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은 내 뜻을 내려놓고 나의 안위와 미래, 생사까지 그분께 맡기고 따르라고 직언한다. 그의 책은 입소문을 타면서 사랑과 자비, 고통, 상처와 용서로 스러지기를 반복하며 삶의 의미와 방향을 잃는 신앙인들에게 살아갈 힘을 안겼다. 바오로딸 출판사가 60주년을 기념해 성서와 인간 시리즈의 리커버 개정판을 출간했다.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이 영적인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본문을 새롭게 다듬고 표지를 새롭게 꾸몄다. 12권의 소책자에 담긴 주제에 맞게 표지를 패턴화했다. 표지 그림은 임지윤(아녜스) 동화작가가 그렸다. 송 신부는 「일상도를 살아가는 인간」(성서와 인간 10)에서 정신 건강과 영혼 건강에 가장 해로운 것은 내일 일을 오늘 걱정하는 것이라며, 앞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바로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급한 일에 노예가 되어 정작 중요한 일들을 미루며 살다 보면 남는 것은 황폐화된 내면과 악화된 관계뿐이라고 지적한다. “‘오늘의 걱정만큼은 누구나 견딜 수 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은 오늘을 살 뿐이고, 오늘도 한 번에 한순간씩만 살 뿐이란 말이다. 월요일에는 월요일만을 살 수 있고, 화요일에는 화요일만을 살 수 있다는 것이요, 1시에 할 일은 1시에 하고, 3시에 할 일은 3시에 하면 된다. 우리가 한 번에 한순간씩만 살아가는 한 삶은 그리 힘들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삶은 버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일상도를 살아가는 인간」, 48쪽) 성경을 바탕으로 끌어올린 그의 단순하면서도 깊은 영성은 실타래처럼 엉키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초대한다. 송 신부는 2009년 마지막 권 「내 이름을 부르시는 그분」의 서문에서 “책을 쓰게 된 것은 삶이란 참으로 의미 있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들려주며, 그분 제자로 부름 받은 우리 삶이 얼마나 귀한 은총인지를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바오로딸 출판사 홍보담당 권기옥(마리아) 수녀는 “가볍고 얇은 책이지만 시간이 흘렀음에도 결코 내용이 가볍지 않고 권마다 진한 영양분을 남긴다”면서 “그것은 신자들이 가려워하는 부분, 아파하는 마음, 기대고 싶은 마음을 잘 어루만져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권 수녀는 “이론서도 아니고 자기계발서도 아닌 이 책은 신앙과 잘 버무려 소화하기 쉽게 쓰여 있다”며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신앙인으로서 한발씩 더 나아가게 한다”고 덧붙였다.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평화신문2021.10.27

갤러리 1898 박정석 원장의 작품. 루크글라스 설립 50주년 전시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루크글라스(이남규루가유리화공방, 원장 박정석)가 설립 50주년을 맞아 전시를 연다.서울 명동 갤러리 1898 전관에서 14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 주제는 ‘믿음, 희망 그리고 빛(Faith, Hope, Light)’이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 번째 서간 13장 13절의 말씀 중 ‘사랑’을 빛으로 해석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비롯한 생활 속 미술 작품 88점이 전시된다.이번 전시에는 루크153스테인드글라스 연구회(회장 박정석, 지도 정순오 신부) 회원들도 참여한다. 2010년 창립된 가톨릭 단체인 루크153스테인드글라스 연구회는 해마다 지도신부의 강론을 듣고 성경의 구절을 이미지화해 스테인드글라스를 전공으로 하는 정회원과 다른 예술분야 전공자인 준회원이 협력해 전시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인 이남규(루카, 1931~1993) 선생은 한국에 최초로 스테인드글라스 공방을 운영했다. 그는 명동대성당, 중림동약현성당, 혜화동성당, 시흥성당, 예수수도회, 갈멜수도원, 공주제일교회, 서울 정동교회, 경동교회 등 대표적인 성당과 교회 60여 곳에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제작했다. 이남규루가유리화공방의 역사를 이어가는 루크글라스는 1968년 11월 18일 설립됐다. 루크글라스는 교회 작품의 제작, 복원, 보수 작업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다. 또한, 2004년부터는 가톨릭미술아카데미와 함께 ‘생활 속의 성미술’을 모토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스테인드글라스 교육을 시작했다. 2012년 아카데미가 휴교한 후에는 독자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만들어 3년의 기초 및 페인팅 정규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수강생이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미술 기행을 비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실버스테인, 퓨징 등 세부적인 전문연구과정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으며, 2022년부터는 블로잉 과정을 신설해 유리조형 전반을 아우르는 글라스 전문 아카데미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박정석(미카엘) 원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행복한 마음으로 빛을 이해하고, 고민하고, 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루크글라스의 진심이 모두에게 전해지길 바란다”며 “50년 동안 스테인드글라스의 기본을 지키려 노력했던 믿음, 앞으로도 이어졌으면 하는 희망, 이것을 모아 사랑의 공동체로 실천하는 빛을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고 소망했다. 도재진 기자 cpbc2021.07.14

“젊은이를 위한 젊은이의 날 행사 돼야” 교황청 평신도와 가정과 생명에 관한 부서, ‘개별 교회의 세계 젊은이의 날 거행을 위한 사목 지침서’ 발표 2019 파나마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한 청년들이 각자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세계 젊은이의 날은 매년 각 교구에서 지내고 3년마다 한 번씩은 세계청년대회로 기념한다. 교황청 평신도와 가정과 생명에 관한 부서(장관 케빈 패럴 추기경)는 ‘개별 교회의 세계 젊은이의 날 거행을 위한 사목 지침서’를 발표하고 각 교구에서 마련하는 세계 젊은이의 날 사목의 방향과 계획을 제시했다. 첫째, 신앙 축제로서의 젊은이의 날이다. 청년들이 생생하고 즐겁게 신앙과 친교를 체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준다. 그리스도와 만나고 인격적 대화를 나누도록 초대한다. 특별히 성체 조배와 참회 예절에 신경을 쓴다. 둘째, 교회 체험으로서의 젊은이의 날이다. 젊은이들에게 교회의 친교를 경험하게 한다.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반드시 듣는다. 또 행사에 주교가 참여하는 것은 교회가 젊은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징이다. 셋째, 선교사 체험으로서의 젊은이의 날이다. 젊은이들의 존재와 이들이 보여주는 기쁨에 가득 찬 신앙은 다른 젊은이를 끌어들이는 기쁜 소식의 살아 있는 선포다. 젊은이들의 기도와 증언, 노래를 공유하며 자원봉사 활동도 장려돼야 한다. 넷째, 성소 식별 기회이자 거룩함으로 부르심으로서의 젊은이의 날이다. 젊은이들은 사제든 수도자든, 혼인이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신학생, 수도자, 부부와 가정을 행사에 참여시킨다. 성인ㆍ성녀와 신앙 성조의 유산을 최대한 활용한다. 다섯째, 순례 체험으로서의 젊은이의 날이다. 젊은이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시는 하느님과 만남을 향해 함께 걷는 순례자가 되도록 이끈다. 이날을 지역 성지와 대중 신심과 관련된 중요한 장소를 방문하는 기회로 삼는다. 여섯째, 보편적 형제애 체험으로의 젊은이의 날이다. 가톨릭 청년 신자만이 아니라 모든 젊은이를 위한 만남의 장이 돼야 한다. 열린 교회임을 보여주며 교구에 사는 모든 젊은이가 신앙, 삶의 비전, 신념에 상관없이 모여 서로 이야기하도록 자리를 마련해 준다. 사목 지침서는 특별히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 젊은이들의 증언과 경험이 교구 행사를 준비할 때 강조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래 젊은이의 언어와 문제를 잘 아는 사람이 누구겠느냐”면서 “우리에겐 젊은이들을 참여시키고 적극적으로 역할을 맡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교황 담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각 교구가 준비하는 세계 젊은이의 날 행사와 준비 모임은 교황이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말씀과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받아 준비하기를 권했다. 또 다양한 예술적 표현이나 사회 활동을 통해서도 담화를 활용하기를 제안했다.지침서는 “젊은이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교회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라며 “이는 성소를 독려하고 사실상 미래의 가정을 위한 긴 준비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이를 위한 사목과 행사는 모든 지역 교회의 필수 과제”임을 일깨웠다.세계 젊은이의 날? 세계청년대회? WYD?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6년 전 세계 젊은이들을 교회로 초청하며 세계 젊은이의 날(World Youth Day)을 제정했다. 젊은이들이 그리스도 구원의 신비를 체험하고 이를 세상에 전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세계 젊은이의 날로 정했다. 교황은 매년 세계 젊은이의 날에 맞춰 담화를 발표하고 전 세계 청년들을 향해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전해왔다. 국내에선 세계 젊은이의 날보다는 세계청년대회가 더 친숙하다. 한국 교회는 WYD를 세계 젊은이의 날과 세계청년대회로 혼용해 쓰고 있다. 세계 젊은이의 날은 매년 각 교구에서 자체 행사로 지내고, 3년에 한 번씩은 세계 각국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규모 신앙 축제(세계청년대회)로 기념하고 있다. 세계 젊은이의 날은 올해부터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지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부터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개별 교회가 세계 젊은이의 날을 새롭게 거행하기를 요청했다. 교황은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가 잘 드러나는 이날에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임금님으로 환대할 수 있도록 선포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참된 평화도, 내적 화해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날이 젊은이를 사목적 관심의 중심에 두고 젊은이를 위해 기도하며 젊은이를 주역으로 참여시키고 젊은이와 소통 캠페인을 증진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cpbc2021.11.17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0주일, 전교 주 주일- 전교에 대한 오해와 착각](//cpbc.co.kr/CMS/newspaper/2021/10/rc/811575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0주일, 전교 주 주일- 전교에 대한 오해와 착각 함승수 신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전교’라고 하면 거리에서 어깨에 띠를 두른 채로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무섭게 외치는 모습을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하느님과 신앙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과 반감을 지니게 만들지요. 강압적인 전교를 하는 사람들 자신도 잘 알고 있음에도 그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전교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 불쌍한 미신자들에게 구원받도록 은혜를 베푸는 게 전교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신자들까지 잘못된 생각에 물들어 있다는 점입니다. 하느님에 대해 더 많이 알지도 못하고, 신심이 더 깊지도 않은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신앙을 전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해 포기해버립니다.신자들을 전교에 소극적이게 만드는 두 번째 오해는 전교를 남을 위해 하는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교해야 하는 가장 근본 이유는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이미 여러 차례 만난 제자들 사이에 아직도 그분의 말씀과 뜻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주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눈으로 보고, 말씀을 귀로 듣는 것으로 그쳤기에, 실천을 통해 구체화되고 삶을 통해 굳건하게 다져지지 못했기에 의심하는 마음이 남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전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의무감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게 전교가 아니라, 신앙의 진짜 기쁨을 누리고 참된 의미를 찾음으로써 하느님과 더 깊고 단단한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그리하여 그분 나라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는 데 필요한 심화 과정이 바로 전교인 것입니다.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착하게 사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삶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분을 만남으로써 삶의 의미를 깨닫고, 참된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며, 주님의 사랑으로 삶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넣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십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복음’이란 무엇일까요?복음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사실이 복음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심판하셔서 지옥으로 보내시는 무서운 분이라면 그분이 나에게 무슨 기쁨이 되겠습니까? 하느님이 사랑이시고 그 사랑으로 나를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신다는 사실이 복음이며 그분의 사랑을 널리 전하는 것이 전교입니다. 성경에 담긴 내용을 앵무새처럼 떠들거나, 자신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신학적 내용을 그대로 전하는 것에 그친다면 복음이 아닌 종교를 전하는 일일 뿐입니다.예수님은 당신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십니다. 전교는 말로 전하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같이 살며 배우는 ‘도제식’ 교육으로 진행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굶주린 이와 음식을 나누고, 병든 이를 위로하며, 슬퍼하는 이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힘들어하는 이의 손을 잡아줌으로써 우리는 복음 선포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도대체 어디 계시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우리 자신이 증거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저 사람을 보니 정말 하느님이 계시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된다면 하느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서 시작됩니다.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함승수 신부의 카카오스토리(https://story.kakao.com/_0TX0X5)에 가시면 매일 ‘생활 속 복음’을 볼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2021.10.19
![[신앙 수기] 믿음과 사랑을 알려주신 할머니](//cpbc.co.kr/CMS/newspaper/2021/07/rc/806274_1.2_titleImage_1.jpg)
[신앙 수기] 믿음과 사랑을 알려주신 할머니2021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신앙 수기 사랑상 대학(원)생 부문 수상작 믿음을 심어주신 할머니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어머니는 지방에서 홀로 경제적 부담을 지셨기 때문에 저와 형은 외조부모님이 키워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불안정하게 자랄 수 있었지만, 두 분의 사랑 안에서 몸과 마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할머니는 저희 형제에게 신앙을 물려주셨습니다.할머니를 따라 성당에 다녔습니다. 교중미사에 따라다니며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기도와 성가를 따라 하곤 했습니다. 미사 때 듣는 가톨릭 성가가 얼마나 좋았던지, 일요일 저녁 8시면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에서 들리는 미사에 형과 함께 귀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평소에도 성가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다니곤 했습니다.성당에서 열리는 바자, 운동회, 성지순례 등의 행사에도 따라다녔습니다. 할머니께서 레지오할 때 따라갔던 어느 날은 혼자 성당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칠판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는데, 대단치도 않은 그림에 어른들로부터 칭찬을 받고는 우쭐해 했던 기억도 납니다. 성당은 재밌고도 신기한 놀이터였습니다.3학년이 되던 해에는 할머니의 권유로 첫영성체를 받았고, 이후 토요일마다 초등부 주일학교에 다녔습니다. 토요일은 학교 친구들의 생일파티가 자주 있었지만 그보다는 성당에 가기를 택하곤 했습니다. 성당에 가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당에 다녀오면 언제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가톨릭교회에 속해있다는 것, 세례를 받고 성체를 모실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꽤나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그러던 중 예기치 못한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옆 본당으로 교적을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집이 옆 본당 구역으로 편입되었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그 본당으로 다녀야 했습니다. 새로 다니게 될 본당은 너무 낯설었고, 특히 주일학교에 찾아갈 용기가 안 났습니다. 당시 중고등부 미사는 주일 9시에 있었는데, 학생들은 지하에서 보좌 신부님과 미사를 했고, 어른들은 2층 성전에서 주임 신부님과 미사를 했습니다. 같은 시간에 두 곳에서 미사가 있었던 것이었는데, 저와 형은 중학생으로서 주일학교 미사에 가는 게 마땅했지만 도저히 지하에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지하에서 들려왔지만, 내성적인 저는 먼저 다가가기가 겁나고 두려웠습니다. 원래 여기 있던 친구들의 무리에 끼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차마 지하에 가지 못하고 2층 성전에서 어른들과 미사를 하곤 했는데, 어느 날 미사 도중 주임 신부님께서는 학생이 왜 여기 있냐며 저희를 혼내셨습니다. 이에 상처받은 저와 형은 아예 미사를 안 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가 인생에 있어서 처음이자 마지막 냉담 시기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당에 다녀오신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일학교 여름 캠프에 저희 형제를 신청하셨다고 말입니다. 우리와 이야기도 안 나누시고 덜컥 신청해버리시다니!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고 화도 났지만 차마 할머니께 뭐라 떼쓰지는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끙끙거리던 제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캠프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오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곳에서 선생님, 형, 누나, 또래 친구들을 처음 만났는데 모두 저를 환영해줬기 때문입니다. 8월 4일부터 7일까지 있었던 3박 4일의 도보 성지순례 캠프였는데, 그때 그 캠프는 지금까지 날짜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버린 큰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캠프를 가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캠프 기간 함께 걷고, 기도하고, 노래하고, 먹고, 자고, 웃고, 이야기 나누던 시간이 참 재밌었습니다. 캠프를 통해 많은 사람과 친해진 덕분에, 바로 그다음 주일에는 지하로 내려가 중고등부 미사에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학년별 교리에도 참여했고, 중고등부 풍물부에도 가입했습니다. 그로부터 매주 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2학년까지 매년 개근상을 받았으며 학생회장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제 삶의 반은 성당이었습니다. 학교를 마치면 성당에 갔고, 주일에는 성당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중학교 1학년 때 할머니께서 중고등부 여름 캠프에 저희를 덜컥 신청해버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계획이 다 있으셨던 것입니다.열매를 맺은 믿음주일학교를 열심히 다니던 저희 형제는 다 커서 성인이 되었습니다. 형은 신학교에 들어갔고 저는 일반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보청기 하려고 마련하셨던 돈을 제 등록금으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본당에서 중고등부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게 된 것은 그저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한 가지 동기가 있다면, 10대 때 주일학교에서 받은 사랑이 많아서 그것을 갚고 싶었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이곳에서 많은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자연스레 신앙을 얻을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특히 처음 성당에 오면 친한 친구들의 무리에 섞이는 게 얼마나 어색하고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런 학생들의 모습이 더 눈에 잘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늘 처음 온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관심과 사랑으로 맞이하면, 그들은 마치 제가 그랬던 것처럼 점차 밝은 모습으로 변화했습니다. 돈보스코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이들을 그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려고 했습니다.매주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그만큼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르치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공부하고 기도하며 묵상할수록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셨던 사랑에 대해 매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에 대해 가르치는 일이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어릴 적에 할머니께서는 성경을 꽉 짜면 사랑밖에 안 남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과 교리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세상도 사랑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신비였습니다. 평생 이 사랑을 이야기하며 살다 죽고 싶었습니다.사랑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진 채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고민하며 방황하다 보니 어느새 20대가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대학교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간호대학으로 편입하였고, 지금은 미래의 간호사가 되기 위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형이 영의 건강을 돌본다면, 저는 육의 건강을 돌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늦게 시작한 공부이지만 열정을 갖고 재밌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에 대해 공부할수록 그 오묘한 신비로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고, 하느님을 경외하며 찬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할머니께서 지어주신 라파엘이란 세례명처럼, 누군가를 치유해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사랑을 알려주신 할머니어느 날 할머니 댁에 갔을 때 할머니의 일기장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자세한 내용이 적혀있진 않았고, 그날그날 있었던 일이 짤막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이전에 방문했던 날의 일기를 보게 되었는데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6월 3일 일요일. 나파엘이 어제 와서 오늘 감. 항상 보아도 예뿌다.”눈물이 났습니다. “어제 와서 오늘 갔다”라는 내용은 펜으로 쓰였고, 그 밑에 “항상 보아도 예뿌다”라는 말은 연필로 쓰여 있었습니다. 한 줄 쓰고 나서 나중에 다시 또 한 줄 더 채워 쓰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제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나서 얼마 뒤에 문득 손주가 그리워져서 다시 한 줄 덧붙이셨나 봅니다. 다 큰 손주 녀석을 두고 ‘항상 보아도 예쁘다’라는 것은, 어떤 크기의 사랑인지 저로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조금 비뚤게 쓰인 글씨, 예뿌다라며 틀린 철자는 더 가슴을 저리게 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눠주시고, 보여주시고, 알려주셨고, 그 사랑으로 저희를 키워내셨습니다.저희 안나 할머니는 이처럼 믿음과 사랑을 알려주신 분입니다. 늦게 배운 컴퓨터로 성경을 4번이나 필사하신 할머니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시고, 기도로 하루를 마치십니다. 할머니께서는 당신의 삶으로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또 할머니께서 저희 형제를 얼마나 예뻐하셨는지 압니다. 늘 좋은 것만 주려 하셨던 것을 압니다. 신앙을 선물해주신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입니다. 좋은 것을 전해주고 싶은 그 사랑 말입니다. 할머니에게서 배운 믿음과 사랑을 저희 형제는 이제 세상과 이웃에게 나누려 합니다.유준모 라파엘 cpbc2021.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