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 연구·수호 활동 격려하는 생명의 신비상 시상식 열려 서울대교구 생명위 제17회 시상식
생명과학분야 본상 김재범 교수 등
수상자들에게 상패와 상금 전달 서울대교구장 정순택(앞줄 가운데) 대주교와 제17회 생명의 신비상 수상자 (앞줄 왼쪽부터)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재범 교수, 조이빌리지 김미경 원장,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장 김영태 신부, 가톨릭대 철학과 신승환 교수 등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정순택 대주교)가 1월 18일 서울로얄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제17회 생명의 신비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구현하는 학술연구를 장려하고, 생명 수호활동을 격려하기 위해서다.생명과학분야 본상 수상자는 김재범(안드레아,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인문사회과학분야 본상 수상자는 신승환(스테파노,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다. 활동분야 본상 기관은 조이빌리지(기쁨터 발달장애인 가족공동체), 활동분야 장려상 기관은 천주교제주교구 이주사목(나오미)센터가 받았다. 이들에게는 정순택 대주교 명의의 상패와 상금(본상 2000만 원, 장려상 1000만 원)이 전달됐다.김재범 교수는 외형적으로 비슷한 지방조직 간의 차이를 규명했다. 내장지방조직을 구성하는 특정 줄기세포가 지방조직의 증가를 유도하고, 비만일 때 염증 반응을 촉진시키는 등 일명 ‘나쁜 지방조직’이 되는 과정을 밝혔다. 그는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로서 ‘생명의 신비’를 올바르게 깨닫고, 이를 말과 행동으로 잘 옮길 수 있도록 성찰하겠다”며 “인간이 서로의 보살핌을 통해 20만 년 넘게 생존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함께 사는 ‘참된 지혜’와 서로를 감싸 안는 ‘따스한 사랑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신승환 교수는 생명 수호를 위한 철학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아 교회 정신에 기초한 학문 활동의 귀감이 됐다. 신 교수는 “사회가 거둔 한 줌의 외적 성과가 우리의 마음과 존재에 커다란 위기를 초래했다”고 생명철학에 주목하게 된 까닭을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이자 자체인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토대를 쌓는 동시에 삶에 담긴 그 의미를 지켜낼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철학적 노력을 지켜가겠다”고 인사했다.조이빌리지(의정부교구 사회복지법인 대건카리타스, 원장 김미경 루치아)는 1998년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기도 모임 ‘기쁨터 가족공동체’에서 비롯된 성인발달장애인 주거공동체다. 1인 1실 거주 공간은 물론 의료, 취미생활, 직업훈련까지 발달장애인에게 제공하고 있다. 김미경 원장은 “조이빌리지 가족은 20여 년 동안 스스로 연구 대상과 연구자가 되며 발달장애인의 생애 주기에 맞는 거주환경 모델을 만들었다”며 “여전히 열악한 우리나라의 복지 지원 체계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해 많은 발달장애인 가정에 희망을 주고 싶다”고 눈물로 소회했다.2004년 이주사목후원회로 시작한 제주교구 이주사목(나오미)센터(센터장 김영태 신부)는 도내 이주민, 난민, 미등록 외국인에게 실질적인 지원과 도움을 주는 기관이다. 2018년 난민 수용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속에서도 예멘 난민을 적극적으로 맞아들이면서 인도적인 지원활동을 수행했다. 코로나19 팬데믹에는 미등록 외국인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도왔고, 외국인 어선원 여권 압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이주민의 인권을 위해 다방면에서 앞장서고 있다. 김영태 신부는 “성경에서 나오미가 이방인 룻과 버팀목이 되어 행복하게 살았듯이 앞으로도 나오미센터는 제주도민과 이주민, 난민이 어울리며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정순택 대주교는 인사말을 통해 “인간 생명은 하느님의 신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어떤 수단이나 도구로 사용될 수 없다”며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해 공헌한 수상자 모두 난치병 환우들에게 희망을 주며, 생명 문화를 건설하는 데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축하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평화신문2023.01.31

사순 시기, 유대감을 갖고 사랑의 과제 찾아 나가자사순 시기를 맞이하며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드러내는 주님의 파스카를 준비하는 때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기간에 회개와 보속·절제와 희생의 삶을 살며 어려운 이웃에게 자선을 실천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0년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다.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 40일간 이어지는 기도와 참회의 기간이다.‘4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중요한 상징 의미를 가진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나이 산에서 준비한 기간이 40일이고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40년을 살았다. 엘리야 예언자는 호렙 산으로 가면서 40일 동안 단식했다. 예수님 역시 광야에서 40일간 단식했다. 전통적으로 40이라는 숫자는 하느님 백성으로 새로 태어나기 위해 필요한 정화와 준비의 기간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사순 시기는 이마에 재를 얹는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된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고 참회와 속죄의 시간을 보내라는 의미다. 참회와 속죄를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면서 5주간 지낸 후 사순 제6주일에 해당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맞이한다. 전례력 중 가장 거룩한 주간인 성주간이 시작되는 시기다.성주간 중 성목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이르는 신비를 기념하는 파스카 성삼일로 전례력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성목요일에는 미사의 유일성과 사제직의 일치성을 드러내는 성유 축성 미사와 성체성사 제정을 기념하는 주님 만찬 미사가 거행된다. 성금요일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집중적으로 기억하며 성사 거행도, 미사 집전도 하지 않는다. 말씀의 전례와 십자가 경배, 영성체로 구성된 수난 예식만 거행한다. 성토요일에는 예수님 무덤 옆에 머물러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한다. 제대도 벗겨진 상태이고 미사도 없지만, 곧 다가올 파스카 성야 예식에서 마침내 이뤄질 주님 부활을 기다린다. 이날은 1년 중 유일하게 시간전례 외에는 아무런 전례가 없는 날이다. 성토요일 해가 진 후, 영원한 생명으로 건너가는 파스카 성야 예식이 거행된다.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이러한 성삼일의 특별함을 살리기 위해 사순 시기에서 파스카 성삼일을 제외했다. 따라서 오늘날 사순 시기는 주일을 제외하고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 전까지 정확히 40일이 아닌 38일이다.사순 시기 전례의 특징은 그리스도 수난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기쁨을 노래하는 알렐루야와 대영광송, 사은 찬미가를 바치지 않는다. 제의는 회개를 의미하는 보라색으로 바뀌고, 성인들의 축일도 이 시기에는 삽입하지 않는다.교회는 이 기간 동안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 미사 전례를 통해 신자들에게 신앙을 심화하도록 이끈다. 특히 그리스도의 수난을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치도록 한다. 또 하느님과 화해하며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다시 결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고해성사를 자주 보도록 권고한다. 재의 수요일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사순 시기 중 모든 금요일에는 금육재를 지켜야 한다.이러한 고행과 단식은 그 자체로서의 의미보다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 이웃에 대한 자선과 나눔, 수난과 죽음 끝에 위치하는 부활의 영광에 대한 희망과 깊이 연결돼 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사목연구소장 윤종식 신부(전례학 박사)는 “특별히 올해 사순 시기에는 유대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까지는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인 재난 상황 속에서 서로 자연스럽게 의지하고 연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서 전쟁과 지진 등 참혹한 재난이 일어나고 있어 그냥 불쌍하다는 마음만 가지고 넘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럴 때일수록 더 의지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며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고 당부했다.윤 신부는 “이렇게 유대감을 가지고 사랑의 과제를 찾아 나가는 것이 오늘날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며 사순 시기를 보내는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cpbc2023.02.14

성령의 인호를 받은 주님의 증인[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1)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증거하는 하느님의 자녀로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새 인간의 거룩한 표징이다. 사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유아 세례를 집전하고 있다. 【CNS 자료 사진】 성경은 사람이 하느님께서 직접 빚고 당신 숨을 불어넣어 생명체가 되게 한 존재이며, 하느님의 본성을 지닌 특별한 존재로 계시를 통해 하느님을 알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은 이들이라고 밝힌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라고 했다. 이번 호는 인간 가운데 ‘하느님의 참된 자녀’(요한 1,12; 로마 8,14-17; 1요한 3,10)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소개한다. 성경은 창조주 하느님께서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신 ‘숨’으로 인간에서 선사하고자 하셨던 모든 것을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하셨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고,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고백한다.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상세한 족보를 통해 하느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인류 전체의 역사 안에서 행하신 업적을 드러낸다. 그리고 복음서들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알게 되고, 주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증언한다. “하느님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용서하시며(마르 2,7.10), 하느님처럼 새로운 계약을 맺으시고(마르 14,22-24), 하느님처럼 성령을 주시려고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신다.’(요한 20,22) 하느님처럼 그분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요한 10,28) 이런 이유로 사도들과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마르 1,1; 15,39; 로마 1,4; 히브 1,5; 3,6)이시고, ‘아버지의 외아드님’(요한 1,18)이시며, 하느님의 자녀들 가운데 ‘맏이’(로마 8,29; 콜로 1,15.18)이심을 증언한다. 그분과 아버지는 하나이시다(요한 10,30).”(교황청 성서위원회, 「성서 인간학」 89쪽)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며, 세례성사를 통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성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의 증인이 되게 하시는 영적 표지인 ‘성령의 인호’를 새겨 주시어 사람들과 구별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증인으로 그리스도를 따를 의무를 지닌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신 제자로서 살아가야 할 완전한 삶의 길을 제시하셨다.(마태 19,21) 그 길은 하느님을 삶의 본보기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그리고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고 명하신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새 계명을 직접 실천하심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이 본받고 실천해야 하는 명료한 삶의 지침이 되게 하셨다. 하느님을 본받는 것,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삶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실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앞서 설명한 대로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호를 받은 주님의 증인이기 때문이다. 이에 성경은 믿는 이들 곧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그리스도와 같은 모상이 되고(로마 8,29),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되며(2베드 1,4),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요한 1,12; 로마 8,14-17; 1요한 3,1)고 밝힌다.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모습을 지닌 세상 사람들이다. “첫 인간은 땅에서 나와 흙으로 된 사람입니다. 둘째 인간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흙으로 된 그 사람이 그러하면 흙으로 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에 속한 그분께서 그러하시면 하늘에 속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흙으로 된 그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입니다.”(1코린 15,47-49)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이루시는 일입니다.”(2코린 3,18)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이들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 하느님의 자비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아들을 믿는 것은 ‘아버지를 뵙는’(요한 14,9) 것입니다. 사랑이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개인과 인류, 또는 세계가 연루되는 모든 악보다 강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믿는 것은 자비를 믿는 것입니다. 자비는 사랑 가운데 꼭 있어야 할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자비는 사랑의 별명입니다. 악이 세상에 있고 인간을 좌우하고 사로잡으며, 인간 마음속에 스며들어 가 인간을 ‘지옥에서 멸망시킬’(마태 10,28)수 있는데, 바로 이 악의 실재 앞에서 사랑이 자태를 드러내고 효력을 미치는 특수한 양상이 곧 자비입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자비로우신 하느님」 7항)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증거하는 하느님의 자녀로 하느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새 인간의 거룩한 표징이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7.19

견진성사 통해 진정한 신앙의 어른으로 거듭나[가톨릭 영상 교리] (19) 견진성사 그리스도인은 견진성사를 통해 ‘기름 부음 받은 이’가 되고, 기름 바름을 통해 성령의 인호와 성령께서 주시는 성령칠은을 받는다. 에기노 바이너트 작 ‘성령강림’. 견진성사의 의미어린아이가 나이가 차면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되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보호받는 존재에서 스스로 주체가 되고, 나아가 누군가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리고 성령이 이끄시는 교회 안에서 자라납니다. 이윽고 때가 되면 우리는 신앙의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요? 견진성사를 통해서입니다.우리는 세례 때 하느님의 사랑을 고백하고 신앙생활을 다짐하지만 아직 주님을 온전히 따르기에 미숙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주님의 말씀을 따라 매일 실천하기에 힘과 지혜와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를 잘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다른 협조자, 곧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그 약속대로 우리는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과 그 은총을 받습니다. 견진성사는 우리가 세례 때 서약한 새로운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줍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자주 두려움에 떨었고 의심의 마음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오순절 날 성령을 받은 다음부터는 두려움 따위는 사라지고 예수님의 제자로 굳세게 살아갔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견진성사로 성령을 받아 하느님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하느님의 큰 힘을 믿는 자랑스러운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견진성사를 받을 때 우리는 이마에 기름을 바릅니다. ‘기름 부음 받은 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했습니다.이 기름 바름으로 우리는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성령의 인호를 받습니다. 그러면서 성령께서 주시는 일곱 가지 은총, 성령칠은(七恩)을 받습니다. 성령칠은은 지혜, 통찰, 의견, 용기, 지식, 공경, 경외를 말합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성화를 위해 성령께서 내려주시는 선물입니다.성령칠은이란그럼 성령칠은은 어떤 선물일까요?먼저 ‘지혜’는 하느님과 하느님에 관한 것을 올바로 판단하고 실천하도록 돕는 은사입니다. 일상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관점에서 판단하게 해줍니다.둘째, ‘통찰’은 진리를 깊이 통찰해 잘 이해하도록 도와줍니다. 성경의 의미나 교리를 깨닫도록 해주고, 상징과 표지 안에 감추어진 영적 실재를 보게 해줍니다.셋째, ‘의견’은 하느님을 믿는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게 해줍니다.넷째, ‘용기’는 신앙생활 중에 찾아오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덕을 실천하게 해주는 힘입니다. 이 은사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열렬히 섬기게 하고 유혹과 장애를 이겨내도록 도와줍니다.다섯째, ‘지식’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게 합니다. 이 은사를 통하면 영혼이 처한 상태나, 믿어야 할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여섯째, ‘공경’은 자녀로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자녀인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는 은사입니다.마지막으로 일곱째, ‘경외’는 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입니다.이렇게 풍부히 받은 성령의 은총으로 우리는 아홉 가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사랑과 기쁨, 평화와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은총으로 우리의 삶이 지탱되는 것입니다.견진성사는 결국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하는 성사입니다. 충만한 성령의 작용으로 인간의 이성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신앙의 신비를 깨닫고 마음속 깊이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또, 나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고, 내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으로 살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영상 교리 보러가기문채현2022.08.23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16) 여행지 : 성경 1](//cpbc.co.kr/CMS/newspaper/2021/07/rc/805856_1.2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16) 여행지 : 성경 1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성경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러브레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3000여 년 전부터 기록되었지만, 오늘날 하느님께서 “너를 사랑해!”라고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거룩한 책입니다. 오래전에 기록된 말씀이 오늘날 어떻게 나에게 말을 건넬 수 있을까요? 그 옛날 성경 저자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신 성령께서 오늘 성경을 읽는 나에게 같은 영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성 예로니모는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 잘 알기 위하여 성경에 대해 읽고 연구해야겠지요? 그럼 첫 번째 성경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 여행1. 성경이란 하느님 말씀이 담긴 무엇인가?2. 성경의 저자는 누구인가?3. 하느님 말씀이 구전으로 전해져 온 거룩한 전통을 무엇이라고 하는가?4. 구약은 대부분 어떤 언어로 써졌는가? 5. 신약은 모두 어떤 언어로 써졌는가? 6. 성경은 총 몇 권인가?7. 개신교에 없는 ‘가톨릭 제2 경전’은 모두 몇 권인가? 답란1 거룩한 □□2 성□3 성□4 □□□어 5 □□□어 6 □권 7 □권가이드 설명1. 성경: 하느님 말씀이 담긴 경전 성경(聖經, Bible)이란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거룩한 경전’입니다. ‘거룩한 책’이라는 뜻의 성서(聖書)보다 법과 가르침이 강조되는 말이지요. 성경은 하느님께서 자기 자신과 인류에 대한 자신의 의지에 관하여 계시한 바를 모은 것으로, 교회에서 정경(正經)으로 인정한 것을 말합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느님의 약속이라는 의미에서 계약(契約, Testament)이라고도 하지요. 성경(Bible)은 ‘작은 책들’이란 의미의 그리스어 ‘biblos’에서 나왔습니다. 즉 성경은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을 말합니다. 2. 성경의 저자 성경은 인간이 기록하였지만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이루어진 일이기에, 저자는 하느님이시고 더 정확하게는 성령이십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도(感導)로 이루어졌기에, 성경은 우리를 진리와 구원과 생명으로 이끌어주는 참되며 가치 있는 책이지요. 3000여 년 전부터 적혀진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즉 성경을 읽기 전과 후에 성령께 기도해야 하지요. 또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따라야 합니다.3. 거룩한 전승: 성전 하느님의 계시는 글로 기록되어 전해져 온 ‘성경’과 구두로 전해져 온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聖傳)은 ‘거룩한 전통’이란 뜻으로,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다가 후대에 전례나 교회 문헌 등의 형태로 남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성전을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성경만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에 대응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는 교회가 계시의 두 가지 원천, 즉 ‘성전’과 ‘성경’이 있다고 언급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에서는 “성전과 성경은 교회에 맡겨진 하느님 말씀의 유일한 성스러운 유산을 형성한다”(「계시 헌장」 10항)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4. 구약의 원어 구약은 대부분 히브리어(유다인의 공식 언어)로 쓰였으나, 아주 드물게 몇몇 내용들은 아람어(유다인의 일상 언어)로 쓰였습니다. 구약 성경이 히브리어와 약간의 아람어로 되어 있었기에, 이것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 당시 세계어인 그리스어로 번역해야 했지요. 그리스어 번역본으로는 기원전 3세기경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뽑힌 72명의 율법학자들이 72일 동안 모세오경 번역을 하였는데, 번역이 완벽하게 동일하여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지는 ‘칠십인 역본’이 있지요. 5. 신약의 원어신약 성경은 모두 그리스어(희랍어)로 쓰였습니다. 그리스어는 헬레니즘 시대(기원전 4세기부터 시작)에 세계에서 공통어로 사용되었는데, 신약 성경 집필 시기에도 여전히 로마 제국의 통용어로 사용되었기에,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저자들이 그리스어를 사용한 것이지요. 기원후 4세기에 성 예로니모(341~420년)는 구약 성경(히브리어)과 신약 성경(그리스어)을 그 당시 세계어로 사용되던 라틴어(로마 제국의 언어)로 번역하였는데, 이를 ‘불가타 본’이라 합니다. ‘불가타’(vulgata)란 일반적인, 대중적인이라는 뜻이지요. 6. 성경의 권 수 교회는 오랜 과정을 거쳐 어떤 문서들을 하느님의 참된 말씀으로 성경 목록에 포함시킬지를 결정하여 왔습니다. 이 목록을 성경의 ‘정경’이라고 부르기에 이러한 작업을 ‘정경화’(正經化) 작업이라고 하지요. 오늘날의 성경 목록을 최종으로 확정한 것은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입니다. 성 예로니모가 번역한 ‘불가타 본’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번역본이라 하여, 46권의 구약과 27권의 신약을 합한 73권을 정경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여기서 제외된 책들을 외경(外經)이라 부르지요.7. 가톨릭 제2 경전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약 성경은 같으나, 구약 성경에서 차이가 납니다. 개신교는 유다교의 히브리어 정경만을 받아들여 가톨릭보다 7권이 부족하지요. 유다교는 서기 90년경에 열린 얌니아 회의에서 히브리어로 쓰인 정경 39권만 받아들이고, ‘칠십인 역본’에 나오는 그리스어로 된 7권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534년 루터는 히브리어 정경의 책들(39권)로 구약 성경을 출판하였고, 나머지 책들은 외경(外經)으로 취급하였지요. 가톨릭은 트리엔트 공의회 결정대로 제1 경전(히브리어 정경: 39권)과 제2 경전(그리스어 번역본: 7권) 모두를 구약 성경으로 받아들입니다.참조) 가톨릭 제2 경전: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 상ㆍ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에스테르기 일부, 다니엘서 일부) 여행 옵션 : 사해 쿰란 동굴(이스라엘)이스라엘 사해 북서쪽에 있는 쿰란(Qumran)은 엄격한 규율을 지키는 유다인 공동체가 거주하였던 곳인데, 서기 70년 예루살렘의 멸망과 함께 완전히 파괴되었다. 1947년 한 양치기 소년에 의해 이곳 사막 언덕 동굴 안의 질그릇 항아리에서 구약 성경의 필사본인 두루마리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 사본은 그 당시 가장 오래된 사본들보다 약 1000년 이상 오래된 것이었다. 이어 이곳에서 많은 발굴 작업이 이루어져서 쿰란 주변과 11개의 동굴에서 구약 성경을 비롯한 많은 종교적인 문서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을 사해사본이라고 한다. 사해 구약사본은 현존하는 구약사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에스더서만을 제외하고는 구약의 모든 책이 전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여행 기념품“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2티모 3,16) 성경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나를 진리로, 생명으로, 구원으로 이끌어주고 있습니까? 성경을 선반 위의 장식용으로만 여기거나, 하나의 문학작품이나 고전으로 또는 학문적 지식을 얻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07.13

삶의 완성, 곧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기준은 그리스도[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60. 프란치스코 영성에 있어서 성경과 복음 프란치스코에게는 복음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더 나아가서는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술탄에게 성경 내용을 설교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이들의 안녕과 권리를 깊이 존중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참된 자유는 요원한 그 무엇이 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은 개인을 위해 좋은 것 전체보다도 훨씬 더 위대한 것입니다. 공동선이란 모든 사람에게 존중심을 갖고 가장 불행하고 비천한 이들의 필요에 효과적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결국 ‘나’의 생명(삶)은 나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나’가 생명(생명 전체)에 관련된 것이다. 이에 관해 일리아 델리오(Ilia Delio, OSF) 수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를 개인적 구원자로 전락시켜 버리고 제도 교회 안에 가두어 버린다면, 그리스도는 문화와 종교의 다양성을 지닌 이 복잡한 세상에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되어 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리스도교 정신도 그렇거니와 구원 자체도 개인이나 개별적인 문제가 절대 아니다. 토마스 머튼은 구원이라는 것이 개인(individual)으로부터 인격(person)을 구하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다르게는 사랑의 경험을 통해 개인을 인격체(personhood)로 이끌어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느님 안에 살아 있는 인격체(human person)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 혹은 누구인가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과 자신, 다른 이들, 그리고 세상과 관계 안에서 누구인가에 기초를 둔 것이다.” 15. 프란치스코 영성에 있어서 성경과 복음 대안적 삶 제3의 길① 삶의 전적인 기준이자 삶 전체가 된 복음!프란치스코에게 있어 복음이 어떤 의미였었는지를 엿보고자 한다면 중세에 있어 성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당시에는 복음이라는 것이 과학적, 신학적 지식을 모두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그때에는 대학은 물론이고 초등학교에서조차도 성경을 기본 교재로 사용하여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데까지 사용했었다. 성경 안에 모든 사실과 질문 가능한 것들에 대한 답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었다. 이 때문에 성경에 대한 신비적이고도 경외의 분위기가 생겨나 평신도들은 성경을 접하기 힘들었다.프란치스코 역시도 평신도였으므로 성경을 접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비록 중세 교회가 사람들에게 성경을 읽는 것을 금하지는 않았어도 성경 사용을 제한하고 있었다. 특히 발도파나 알비파 이단 그룹들 때문에 이런 제한은 강화되었다. 그리고 비록 평신도들이 성경을 읽는 것을 교회가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필사본 성경의 엄청난 가격 때문에 극소수의 평신도들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고, 언어적인 제한 때문에도 평신도들이 성경을 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프란치스코가 성경의 내용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학교에서의 공부와 예술 작품들, 그리고 전례를 통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는 참으로 실질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을 그저 지적으로 알고자 하지 않았고 오히려 매일의 삶에서 성경의 메시지를 적용해갔던 사람이었다. 그는 한 번 듣거나 접한 성경 내용을 마치 아들 예수에 관한 일들을 오랫동안 마음에 간직한 동정녀처럼 새기고 또 새겼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실제 삶의 사건 하나하나를 성경 내용들, 특히 복음서의 내용들과 연결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는 대부분의 성경 내용을 꿰차고 있었으며 이렇게 간직한 성경의 모든 내용을 우리 삶에 구체화하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연결하였다고 한다.이는 그가 우리 삶의 구체적인 모습으로 육화하시어 삶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 그리고 죽음까지도 겪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경을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 성경의 내용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 그의 삶의 기준점이 되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한 번은 그가 병중에 있을 때 성경을 읽어주겠다던 어떤 형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묵상을 하고 마음에 되새겨 보기에 충분할 만큼 이미 성경의 많은 부분을 나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아들이여, 나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나는 십자가에 비참하게 달리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다.”프란치스코에게는 복음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더 나아가서는 성경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에”(요한 14,6) 우리 삶의 구체적인 상황들 하나하나에 기준이 되는 분이셨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삶의 완성, 즉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기준은 바로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지키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살 것을 요청했던 것은 우리 교회의 편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듯한 인상을 주는 편협한 의미의 선교와는 전적으로 달리 사람들에게 참다운 행복의 현실을 알려주고 이를 살아가게끔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체험한 하느님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삶의 완성, 곧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기준은 바로 그리스도였던 것이다.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 cpbc2021.10.06

아름다운 성미술로 꾸며진 소박한 공소[공소 公所] (8)춘천교구 스무숲본당 실레마을공소 춘천교구 스무숲본당 실레마을공소는 고 장익 주교의 관심으로 다시 고쳐져 아름다운 외경과 소성당을 갖춘 공소가 되었다. 아름다운 성미술로 꾸며진 소박한 공소 춘천교구 스무숲본당 실레마을공소는 46번 국도를 타고 강촌에서 춘천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금병의숙길 10 현지에 자리한 실레마을공소의 옛 이름은 신남공소이다. 동네 지형에서 따온 마을 이름 조선 시대 춘천의 남쪽을 ‘남부내면(南府內面)’이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신남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39년 지금의 동내면과 통합돼 두 면(面)의 앞글자를 따서 ‘신동면’이 됐다. 신동면 증리(甑里)는 「소낙비」 「동백꽃」으로 유명한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의 고향이다. 증리는 한자음 그대로 마을 모양이 마치 산에 묻힌 옴팍한 시루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실레’는 시루를 부르는 이 지역 사투리이다. 2004년 12월 신남역이 ‘김유정역’으로 바뀌면서 신남 증리 동네 이름도 ‘실레마을’로 부르고 있다. 실레마을은 경춘선 김유정역뿐 아니라 동서로 46번 국도가, 남북으로 70번 지방도가 관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마을은 삼악산과 금병산, 드름산, 사자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인근 의암리에는 북한강이 흐르고 있다. 마을 동쪽에는 사계절 모든 풍광이 비단 병풍처럼 아름다운 ‘금병산’(錦屛山)이 있다. 해발 651.6m인 금병산은 임진왜란 때 강원도 조방장(助防將) 원호 장군이 진을 친 산이라 해서 ‘진병산(陳兵山)’으로도 불린다. 오늘날 실레마을은 김유정 문학촌으로 단장돼 있다. 마을 이름이 바뀌었으니 공소도 당연히 새 이름을 갖게 됐다. ‘실레마을공소’이다. 1960년 7월 7일에 공소가 설립됐다. 처음에는 춘천교구 죽림동 주교좌 성당 관할이었다가 1969년부터 효자동본당에 속했으며, 2002년 9월부터 스무숲본당으로 편입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때 공소 신자 수가 300여 명에 이를 때가 있었다고 한다. 6ㆍ25 전쟁 후 성당을 통해 구호물자가 한창 보급될 때였다. 지금은 지역 신자가 3명뿐이라 한다. 공소지기 주교 실레마을공소는 제6대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ㆍ제7대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와 떼래야 뗄 수 없는 곳이다. 두 분 주교 모두 교구장 퇴임 후 실레마을 공소 주교관에서 거주했고, 또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레마을공소는 2009년 다시 고쳐져 지금에 이른다. 공소 안팎은 아름다운 성미술품으로 꾸며졌다. 공소 입구 앞마당에는 김미영(마리비타, 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 수녀의 ‘성모자상’이, 공소 안에는 김겸순(테레시타, 노틀담수녀회) 수녀의 ‘제대’ㆍ‘독경대’ㆍ‘감실’ㆍ‘십자가 ’ㆍ‘십자가의 길’, 김형주(이멜다) 화백의 '제대 십자가' 와 '성모자화'가 설치돼 있다. 공소 내·외벽은 사계절 모든 자연의 빛과 각양각색의 인품을 모두 흠뻑 머금을 수 있도록 흰색 페인트로 마감돼 있다. 공소 안 제단과 회중석, 바닥은 안정감을 주는 원목으로 꾸며져 있다. 성미술을 통해 성경의 의미를 더욱 널리 전해지기를 원했던 장익 주교의 평소 뜻이 담긴 공간이다. 장익 주교는 2010년 퇴임 후 2020년 8월 5일 선종할 때까지 실레마을공소 주교관에서 살았다. 장 주교는 이곳에서 기도와 묵상, 독서를 하고, 텃밭을 가꾸며 소소한 일상을 살면서 자신의 삶 전체를 크나큰 주님의 은총으로 여겼다. 장 주교는 생전 “잘 먹고 잘 놀면서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조용한 걸 좋아해서 공소생활이 딱 맞아요”라고 행복해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 유언도 “나 무엇으로 주님께 갚으리오? 내게 베푸신 그 모든 은혜를. 구원의 잔을 들고서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네”(시편 116,12-13)라는 찬가였다. 장익 주교의 후임인 김운회 주교도 2020년 12월 교구장 퇴임 후 실레마을공소 주교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김운회 주교는 ‘충실한 공소지기’이다. 매일 아침 7시면 공소 미사를 주례한다. 겨울이면 주교관 기도 방에서 매일 같은 시각 미사를 봉헌한다. 지역 내 신자가 3명뿐이지만 신기하게도 미사 참여자는 10여 명 안팎이다. 주변 신자들이 새벽같이 달려오고 있다. 김 주교는 또 공소를 찾는 신자나 여행자들이 연락하면 공소 문도 열어주고 안내도 한다. 텃밭도 가꾸고 과실수도 심어 키우고 있다. 김 주교는 “산을 좋아해서 평소 산 밑에 사는 사람들을 항상 부러워했는데 지금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며 “둘레길을 산책하면서 묵상하고 공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만족해했다. 김 주교는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사목자들이 기력이 다하기 전까지 공소에서 한 10여 년간 신자들과 함께 살았으면 참 좋겠다”라며 공소살이를 추천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2.22

공의회 첫 회기 중 마지막 회칙 「지상의 평화」 발표[부온 프란조!] 21. 성 요한 23세 교황 ④ (제261대, 1881. 11. 25~1963. 6. 3) 공의회 첫 회기의 시작은, 개막식 다음 날인 1962년 10월 12일이었습니다. 교황님, 유전적 가족 내력으로 위암 치료가 불가하다는 의사의 판정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초인적 정신력으로 공의회를 통해 교회가 현대 사회에 다가가고, 그 세상 안에 있기를, 갈라진 형제와 타 종교와의 대화와 일치를, 하느님 말씀인 성경의 영감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느님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공의회 발표 후, “난 지금 죽어도 괜찮아요”라고까지 말씀하셨다니요! 그만큼 공의회가 절실하셨던 것이지요. 전 세계 교부와 신학자 2000여 명 참석자, 공의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공의회에 참석한 2000명이 넘는 교부들과 신학자들을 비롯한 모든 참가자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더군요. 공의회에 전문가(Perito)로 참석한 32세의 젊은 독일 신학 교수였던 라칭거(베네딕토 16세 교황)는 “우리는 공의회에 참석하며 마치 새로운 성령(Pentecoste)께서 오시는 듯 가슴이 벅찼습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또 다른 교부는 “제가 대성전의 문을 지날 때 마치 천국을 향해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저는 절대로 잊지 못할 것입니다.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밀라노대교구 교구장이었던 마르티니 추기경은 “열린 창문으로 느껴지는 정말 맑은 공기와 드디어 교회가 다른 현실들과 마주 설 능력이 있어 보였습니다“라고 공의회 첫날에 대해 훗날 고백하였습니다. 성경의 이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사도들과 함께 원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사도 15,6) 당시 언론들도 “공의회가 뭔가요?” 하고 어리둥절하였다는데 교황님도 아셨나요? 그 질문에 어떤 이는 “몰라요. 여는 거랍니다. 그냥 활짝 연대요!”라고 대꾸하며, 우왕좌왕하였다는 뒷얘기도 있었지요. 공의회는 라틴어로 통일해 진행되었으니 하루하루의 공의회 진행 사항을 정리해 활자화시켜야 할 언론들은 힘들었을 것이 당연했지요. 공의회 교부로 참석했던 전 인천교구장 나 굴리엘모 주교(1926∼2020)는 “사목에 관한 실제적 안건과 함께 우리 주교들은 머리를 맞대고 평화롭게 회의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로마 언론들은 주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서로 분쟁을 일으켰다고 기사화한 걸 보고 참으로 황당했습니다”라고 전하면서 “물론 서로 의견이 맞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룹으로 회의하며 한 분 한 분 정직하게 배려하는 모습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참가자들과의 평화로운 회의 진행에 희망을 품었다”고 하였습니다. 교황님, 한국 교회에서 30대 중반에 참가했던 저의 교구장이셨던 나 주교님의 에피소드 하나 알려드릴까요? 나 주교님 옆에는 나이 드신 수염이 긴 프랑스 주교님이 앉아 계셨답니다. 오전 첫 시간이 끝나면 화장실과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들어오는 게 오전 회의의 일상으로 자리 잡아 갈 무렵, 어느 날 일이 터진 것입니다. “어이, 젊은이! 제발 자리 좀 지키면 안 되겠나? 앉았다, 일어났다, 참 정신 사납군!” 하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기가 죽은 나 주교님이 바라본 프랑스 할아버지 주교님은 공의회 3년 내내 꼿꼿하게 자신의 자리를 흐트러짐 없이 지켰답니다. 아, 보석 같은 16개의 공의회 문헌이 이러한 교부들의 진정성 있는 참가 의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는지요. 하느님 진리를 위해서 헌신한 것이 아니겠는지요. 요한 23세 교황이 자신의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에 서명하고 있다. 이탈리아 rai-TV국영방송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평화를 바라는 모든 선한 사람들에게 편지공의회 첫 회기 중, 점점 심해지는 고통에 시달리는 교황님을 진료하러 급하게 달려온 전문의에게 그러셨다죠? “아, 박사님! 저는 박사님께 제 몸을 맡깁니다. 박사님은 제게 당신 영혼을 맡겨 주시면 어떨까요?”라고 하시며 고통 중에도 당신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으셨다는데 정말인가요? 그가 무신론자임을 아셨던 당신의 위트에 진료를 마치고 나온 의사는 펑펑 울었다고 그러더군요. 공의회 개막 다음 해, 첫 회기가 진행되던 1963년 봄부터 건강이 악화하기 시작했지만, 당신은 고통을 내색하지 않으시고 돌아가시기 불과 두 달 전인 4월 11일 성 목요일에 당신의 마지막 회칙인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발표하셨지요. 보통 회칙의 첫 시작은, 가톨릭교회 구성원인 주교단과 신자들을 호칭하는데, 여기서는 종교와 상관없이 지상의 평화를 바라는 모든 선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셨지요. 당신은 이 회칙이 어디에 묵혀지는 걸 바라지 않으시고 정의와 사랑에 대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강력하게 말씀하셨죠. “평화로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쟁으로는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전임 교황 비오 12세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60년 전에 당신이 ‘평화, 평화, 평화’를 그렇게 외치셨는데, 60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은 평화롭지 못합니다. 당신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1963년 6월 3일 요한 23세 교황 선종아, 당신의 병세는 암 덩어리가 위를 뚫고 나오는 절체절명의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파파 부오노의 병세를 알게 된 수많은 신자가 광장을 메우기 시작했으며 눈물과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께서는 당신 머리맡에 걸린 고향 소토 일 몬테의 사진을 바라보며, 당신 부모 형제들을 떠올리셨겠죠. 일찍이 당신 형제들을 바티칸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셨으며, 비오 10세 교황께서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가셨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당신도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더는 일어나지 못하게 된 당신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들려오는 신자들의 기도에 감사의 축복을 보내시고는 옆에 있는 이들과 이별을 하셨습니다. 슬픔에 겨워 울고 있는 돈 로리스에게 “돈 로리스, 정말 고마웠네. 아, 소토 일 몬테가 그립군”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에 돈 로리스는 “교황 성하, 꼭 제가 그곳에 가서 살겠습니다” 하고 답변했던 것 기억하시지요? 후에 그 약속대로 돈 로리스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그날 당신이 하느님의 집으로 가던 그때 첫 기적이 일어났다고요. 1963년 6월 3일 저녁 8시 30분께, 하느님을 믿지 않고 교회를 미워하던 밀라노의 한 대학생이 집으로 가던 길에 온 시민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파파의 마지막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며 “뭐, 돌아가시면 다른 교황이 나오겠지” 하고 말하였답니다. 집으로 다다른 대학생은 집에서 들리던 어머니의 통곡소리와 함께 동네 친구가 달려와 자신을 부둥켜안으며 “돌아가셨어, 파파가 돌아가셨다고” 하고 말하며 엉엉 우는 그 친구의 말에 그 대학생도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며, ‘이미 파파는 내 마음에 자리하고 계셨음을, 앞으로 내가 어떻게 세상을 향해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 주셨음을’ 고백하는 편지를 교황청에 보냄으로써 그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고 합니다. 교황님, 제가 신문지상에 당신을 언급한다는 것이 얼마나 외람된 일인지 송구스럽습니다. 당신과 만나면서 반성도 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사고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도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공의회 정신은 아직도 진행 중이고 하느님 백성인 저 자신부터 희망을 품고 성숙해지겠습니다. 당신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제2차 바티칸 에큐메니칼 공의회이니, 오늘의 레시피는 유다-로마식 소고기 음식인 스트라코토(Stracotto)이다. 기원전 161년 무렵 로마에 유다인 공동체가 있었다는 기록이 구약성경의 마카베오기(1마카 12,16; 14,18 참조)에 나올 정도로 로마의 유다인 공동체는 유럽 안에서 가장 오래된 공동체로 자리 잡고 있다. 오늘의 유다인 공동체는 1만 500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로마시에서도 매력적인 곳에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고 있다. 레시피 : 소고기 스트라코토(Stracotto di manzo)▲준비물 : 소고기 목심 400g, 양파 1개, 샐러리 한 줄기, 당근 1개, 토마토 2개(씨를 빼고 썰어놓은), 적포도주, 소금, 후추. →큰 볼에 양파, 당근, 샐러리를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담는다. 세 가지 채소에 쇠고기를 넣고 버무린 다음 고기가 잠길 정도로 포도주를 붓는다. 뚜껑을 덮고 냉장고에 6~7시간 마리네이드(조리 전에 식재료를 술이나 산, 향신료 등에 재우는 것 또는 그 액체)한다. 고기를 꺼내어 약간 약한 불에 올리브유를 두른 깊은 팬에 고기를 넣고 겉면이 바삭해질 때까지 굽는다. →거즈에 천연 향신료 로즈마리와 통후추를 같이 넣고 새지 않게 묶어둔다. →마리네이드한 채소를 포도주에서 건져 고기가 구워지는 팬에 소금을 넣고 같이 익힌다. →남은 포도주와 거즈에 싼 로즈마리, 후추와 토마토를 넣고 약한 불에 대략 4~5시간 고기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익힌다. 고기를 꺼내 접시에 담은 다음, 팬에 남은 채소 소스를 갈거나 그대로 고기 위에 얹어 낸다. ▲모니카의 팁 : 유다인들의 휴일은 토요일이다. 휴일에 먹는 스트라코토는 천천히 오랜 시간을 익히는 섬세한 맛의 유다인 요리이다. 물론 좀 다른 조리법의 스트라코토도 이탈리아 북부 쪽에는 있지만, 돼지고기를 안 먹는 유다인들의 소고기 스트라코토는 아직도 로마시에 있는 그들의 게토 주변의 유다인 식당에서 인기 높은 메인 요리이다. 미리 만들어 놓고, 그 다음 날에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한다. 전형적인 슬로우 푸드이다. 고영심(모니카) 디 모니카 대표cpbc2022.10.26
![[궁금해요!] 식사 전ㆍ후 기도 꼭 해야 하나요?](//cpbc.co.kr/CMS/newspaper/2022/06/rc/826196_1.2_titleImage_1.jpg)
[궁금해요!] 식사 전ㆍ후 기도 꼭 해야 하나요?일용할 양식 주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의미 담아 식사 기도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데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다. CNS 자료사진 Q. 식사 전ㆍ후 기도는 왜 하나요? A.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신자들은 식사 전 항상 기도합니다. 급한 마음에 때로는 밥 한술을 뜨고 나서 ‘아차’ 하면서 기도를 바치기도 하지요. 맛있는 음식을 잘 먹고 나면 식사 후 기도로 식사를 마무리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본적 식생활에도 기도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식사 기도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데 대한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식생활 자체는 주님께서 주신 ‘은혜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식사 때 기도하는 모습은 성경에도 나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만찬을 들기 전 늘 찬미를 드리셨습니다.(마태 26,26) 또 갈릴래아 호수에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기적을 일으키실 때에도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먹을 것을 나눠주셨습니다.(요한 6,11) 성경 속 예수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듯이 식사 전에는 주님께서 주신 음식에 대한 축복을 청하고 감사기도를 바칩니다. 더불어 주님께서 주신 양식으로 먹을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에게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식사 후 기도 중에는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란 구절이 있습니다. 식사 때마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머무르는 연옥(煉獄) 영혼들을 기억하고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청하는 것입니다. ‘식사 후 기도를 바치면 영혼 한 명을 구원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매일 바치는 기도에도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한 끼 식사에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자신의 신앙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834항) “기도하고 일하여라.”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려 있는 것처럼 기도하고, 모든 것이 그대들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일하여라.” 우리가 일을 하였어도, 양식은 여전히 우리 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아버지께 양식을 청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드리는 식사 전 기도의 의미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98항) 교회 전통은 지속적인 기도를 함양시켜 주는 주기적인 기도를 신자들에게 권한다. 어떤 기도들은 날마다 바치는데, 곧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식사 전후의 기도, 성무일도가 그러하다. cpbc2022.06.16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명작 전시… 다양한 성화 함께 선보여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 기념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국립중앙박물관, 내년 3월 1일까지 The Adoration of the Magi(동방박사의 경배), 베로네세 올해 우리나라와 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빈미술사박물관과 함께 기획된 특별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합스부르크는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한 1273년부터 카를 1세의 왕정이 몰락한 1918년까지 600여 년간 유럽의 중심에 있던 왕가로, 30년 전쟁·스페인과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제1차 세계대전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과 연결된다. 이들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남다른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을 수집했고, 루벤스·벨라스케스·반 다이크와 같은 걸출한 화가들을 후원하기도 했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는 가톨릭이 유럽 전역에 확산됐던 시기와도 맞닿아 있는 만큼 가톨릭 신자들에게 더욱 반가운 작품들도 전시되고 있다. 주님 성탄 대축일에 더욱 빛나는 작품들- The Holy Family(성가정): 요셉이 지켜보는 가운데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간의 애정 어린 관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다. 17세기 중엽 이탈리아 출신 안젤로 솔리메나의 작품으로, 원형의 틀 안에 인물을 고정해 세 사람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 The Adoration of the Magi(동방박사의 경배): 성모 마리아의 무릎에 앉은 아기 예수가 경의를 표하는 나이 든 왕을 축복하고, 그 오른쪽에 무어인들의 왕이 허리를 숙이고 있다. 그 오른쪽에는 화려한 상자를 든 세 번째 왕이 보이고, 이들이 타고 온 말과 이국적인 낙타도 그려져 있다. 요셉은 성모 마리아 뒤에서 이 만남의 순간을 바라보고 있다. - The Vergin and Child in a Landscape(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성경의 이야기와 풍경화를 함께 그리던 초기 풍경화 작업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둘러싼 수풀과 꽃은 꽃 정물에 능하던 얀 브뤼헐 2세의 화법으로, 원경을 옅은 색으로 표현해 선명하게 그린 전경의 성 모자와 대비를 이룬다.- Rest on the Flight into Egypt(이집트로 피난 중 휴식): 16세기 화가들은 성가족이 길가에서 쉬어가는 순간을 즐겨 묘사했다. 동판에 유화로 그린 이 작품은 이집트로 피신 도중 휴식을 취하는 요셉과 마리아, 아기 예수를 그렸다. 그들의 머리 위를 맴도는 두 명의 천사는 이 여정이 신의 보호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밖에 페루지노가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참회하는 예로니모 성인을 그린 작품과, 고대 로마 황제의 근위대장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돕다 순교한 세바스티아노 성인의 성상도 공개됐다. 또 16세기 포르투갈에서 유행했던 원형 접시에는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근대에 접어들기 전까지 유럽의 성당 첨탑에 많이 설치됐던 ‘십자가 모양의 해시계’도 전시되고 있다. 한편, 레오 10세 교황은 라파엘로에게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삶과 기적의 장면을 담은 10점의 태피스트리 연작 디자인을 맡겼다. 이 태피스트리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 벽면의 하단을 덮도록 설계되었고, 실제로 7점이 설치됐다. 높이만 5m에 달하는 이들 태피스트리 가운데 ‘The Miraculous Draught of Fishes(기적의 물고기잡이)’와 ‘St. Paul Preaching in Athens(아테네에서 설교하는 바오로 사도)’도 이번 전시에서 감상할 수 있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전은 내년 3월 1일까지 이어진다. 문의 02-2077-9000, 국립중앙박물관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cpbc2022.12.21
![[전문]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 2023년 부활 메시지](//cpbc.co.kr/CMS/news/2021/07/rc/806737_1.4_titleImage_1.jpg)
[전문]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 2023년 부활 메시지 + 찬미 예수님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알렐루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성경 말씀을 떠올립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여러 가지 기적으로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 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 곧 당신이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고 선언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이시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 말씀을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제자들의 눈에 예수님은 능력이 아주 뛰어난 분이시니, 세상의 지도자들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어 주시리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붙들려 가시자 제자들은 흩어져 도망갔습니다.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구원의 신비는 사람들의 이러한 기대와는 아주 달랐습니다. 모든 사람이 경탄할 만한 큰 능력을 떨치며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 죄인의 모습으로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죄 없이 의로우신 그분이 우리 죄를 안고 죽으심으로써, 그 죽음 안에서 우리의 죄 값이 치러지고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는 신비였습니다. 이렇게 의인이 죄인이 되어 죄인을 의롭게 해 주신 이 사건을 교환의 신비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그분의 의로움과 우리의 죄가 바뀌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이 신비를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몸에 십자가의 상처를 그대로 지니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만난 예수님은 죽음의 상처를 당신 몸에 그대로 지니고 계셨고,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죽음을 뛰어넘는 생명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 마음속에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 부활의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를 위해 수난하고 죽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부활하시어 믿는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께 영광과 찬미를 드립시다. 이 구원의 신비는 오로지 하느님의 자비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모님이 예수님을 잉태하고 엘리사벳을 만나 불렀던 노래(루카 1,46-55) 역시 아브라함 때부터 이어오는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하는 노래입니다. 하느님 자비의 최고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외아들을 희생제물로 삼으시어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과 다시 화해시켜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 구원의 역사가 자비의 역사라면,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자비롭게 살아갈 때 주님 안에 살고 부활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봅시다. 오늘날 물질문명이 넘치게 발전해서 쓰고 버린 쓰레기가 심각한 환경오염이 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음식 쓰레기가 넘쳐나는데, 다른 쪽에는 음식은 물론 깨끗한 물조차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점차 더 병들어 가는 생태계는 자연재해의 규모도 더 크게 만들고, 그 피해는 가난한 지역의 사람들이 훨씬 더 크게 받습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역의 대규모 지진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합니다. 그리고 여전히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많은 희생이 발생하고 있는 지역도 있습니다. 그동안 이런 지역들을 위해, 그리고 평소 가까운 이웃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고 기도로 함께해 주신 형제자매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들 모두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우리와 한 형제입니다. 계속 필요한 지원과 기도에 지치지 말고 주님의 자비를 실천하면서 부활의 은총과 기쁨을 더 깊이 누리는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는 우리에게 맡겨진 자연 생태계를 사랑으로 잘 보존하도록 촉구합니다. 이미 여러 본당과 시설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계심에 감사드립니다. 사제 성소를 위해서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제는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주신 구원의 은총을 세상에 전하도록 축성된 사람 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많은 젊은이들이 응답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제들이 거룩한 직무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아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같은 마음으로 수도 성소와 선교사 성소를 기억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는 사람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을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가르 치십니다. 구원의 신비를 깊이 체험한 요한 사도는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라고 아주 단순하고 명료하게 선언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태초에 하느님을 닮게 창조되었기에 하느님처럼 자비롭게 사는 소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 부활을 축하하는 인사를 드리며 주님의 강복을 전합니다. 2023년 4월 9일 예수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대전교구장 주교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박민규2023.04.05

성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친밀히 만나는 시간[가톨릭 영상 교리] (40) 성체조배 성체조배는 성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가장 친밀하게 만나는 때이며, 성체조배를 통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살며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게 하는 비결이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성시간 전례에 참여한 신자들에게 성체 강복을 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미사가 끝난 뒤 남겨둔 거룩한 빵의 형상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은 그 형상이 남아 있는 동안 계속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 안에서만이 아니라 미사 밖에서도 성체 앞에서 기도드림으로써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사 밖에서 성체 앞에 기도드리는 것으로는 성체조배, 성체 강복, 성체 거동, 성체 현시, 성체 대회 등이 있습니다. 초세기 신자들은 영성체를 위하여 엄격한 규정들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성체에 대한 공경이 자연스레 생겨났습니다. 13세기부터 성체조배를 통한 성체 공경 신심이 교회 안에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성체조배는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예수님께서 실제로 현존하심을 믿으며, 깊은 침묵 중에 그분과 마주 앉아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감실 안에 계시며 우리를 부르고, 또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비추고 가르치며,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해주시고 힘을 주시고 위로해 주시며 격려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성체조배는 내 전 존재가 성체 안에 살아계신 예수님을 일대일로 가장 친밀하게 만나는 때입니다. 성체조배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을 가만히 볼 수 있고, 그런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 주시는 예수님의 눈길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의 가장 깊고도 내밀한 고민을 낱낱이 그분과 나눌 수 있습니다. 성체조배는 내가 그리스도 안에 살며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게 하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성체조배는 나의 모든 시간과 일, 나의 모든 생각과 관계를 예수님 안에서 바로 잡게 하는 통로이며 힘입니다. 그러면 성체조배를 어떻게 하면 될까요? 미사 전에 성체조배를 하면 개인적으로 미사를 준비하는 기도가 될 수 있고, 미사 후에 하면 예수님과 더욱 깊고 지속적인 일치를 갖게 됩니다. 성체조배는 어떤 정해진 규정대로 꼭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음 방법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체조배를 위해 성당 또는 소성당으로 갈 때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만나러 간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마음을 모읍니다. 둘째, 성당이나 소성당에 들어갈 때 성수를 찍고 십자 성호를 그으면서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바칩니다. “주님,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 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셋째, 자리에 앉기 전에 주님께서 성체 안에 참으로 현존하여 계심을 받아들이면서 성체가 모셔진 곳을 향하여 깊은 절을 합니다. 넷째, 기도를 잘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깊은 호흡을 하면서 머리부터 발끝까지의 긴장을 풉니다. 다섯째, 주님의 현존을 의식합니다. 주님께 기도하거나 주님이 앞에 있다고 상상하거나 각자 자기에게 맞는 방법으로 주님의 현존을 의식합니다. 여섯째, 주님과 대화합니다. 주님께 하고 싶은 말씀을 먼저 드리고, 침묵 안에서 주님께서 해주시는 말씀을 조용히 기다립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마음을 움직이는 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에 머무르면서 응답을 드리는 기도를 바쳐도 좋습니다. 일곱 번째, 되새김입니다. 성체조배 중에 있었던 내용을 되새겨 보는 시간입니다.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으면 그에 대해 감사드리고, 어떤 실천을 결심했으면 그에 필요한 은총도 청합니다. 마지막으로, 마침입니다. 성체 안에 계신 주님께 공손히 인사드리고 조배를 마칩니다.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성체조배 때 만났던 주님을 기억하며 주님과 함께 살고자 노력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품에 바싹 기대어 그분의 끝없는 사랑을 느끼는 것은 분명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cpbc2023.02.01
![[서종빈 평화칼럼] 하느님의 시간](//cpbc.co.kr/CMS/newspaper/2023/01/rc/839505_1.1_titleImage_1.jpg)
[서종빈 평화칼럼] 하느님의 시간서종빈 대건 안드레아(보도국장) 가톨릭 신자들은 매년 연말과 연초 두 달여 만에 세 번의 새해를 맞는다. 전례력으로 첫 새해인 4주간의 대림 시기와 성탄을 지나 달력상 해가 바뀌는 두 번째 새해 1월 1일(양력설)을 맞았다. 이제 마지막 세 번째 새해는 22일 음력설(구정)로 이날은 연중 제3주일이며 하느님의 말씀 주일이다. 성경에 담겨 있는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 일상의 거울이고 나침반이다. 그 말씀을 거행하고 성찰하고 전파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느님의 축복이다.세 번 맞는 새해에는 성찰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열망이 담겨 있다. 대림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신앙인의 새해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는 시간이다. 양력설과 음력설은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삶과 도전을 설계하는 시간이다. 새해라는 시간이 되면 누구나 자신에게 되묻는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삶이 있고 시간은 주어졌는데 가야 할 길은 늘 고민이다.시간은 보이지 않는다. 초침과 분침, 시침대로 멈추지 않고 흘러갈 뿐이다. 그러나 이는 정해 놓은 달력의 시간이다. 양(量)으로 계량되는 물리적인 시간 즉 크로노스(Chronos)이다. 질(質)로서 우리가 느끼는 상대적인 시간은 카이로스(Kairos)이다. 크로노스가 모두에게 적용되는 객관적 시간이라면 카이로스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의미로 적용되는 주관적 시간이다. 결국,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이를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하며 주님의 말씀대로 늘 깨어 무언가를 준비한다. 과거가 흘러오는 곳도, 미래가 시작되는 곳도 ‘오늘’ 현재이다.인간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간을 나누고 의지와 상관없이 생성과 소멸하지만, 창조주 하느님은 생성도 소멸도 없고 과거도 미래도 없다. 그분의 시간은 오지도 가지도 않고 오직 영원한 현재로만 계신다. 그분에겐 ‘오늘’만 있다. 찰나도 영원이고 영원도 찰나이다. “정녕 천 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야경의 한때와도 같습니다.”(시편 90,4) 시간을 창조한 하느님은 시간을 초월한 ‘영원’이지만 피조물인 인간에게 영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녕 저희의 모든 날이 당신의 노여움으로 없어져 가니 저희의 세월을 한숨처럼 보냅니다.”(시편 90,9)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 그 가운데 자랑거리라 해도 고생과 고통이며 어느새 지나쳐 버리니, 저희는 나는 듯 사라집니다.”(시편 90,10)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늘 공간과 함께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시간은 우리 앞에 언제나 열려 있는 지평의 표현”이지만 공간은 “제한된 현실(공간)을 살아가는 한계”라고 정의한다. 공간이 단절된 시간, 곧 순간의 한계 속에 고정된 세상이라면 공간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현실 즉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반면 시간은 태초부터 영원히 흐르는 강물이다. 시간은 흐르면서 매 순간 맞는 공간의 한계를 넘어 진전의 과정을 거친다. “공간을 지배하고 공간을 밝혀주며 쉬지 않고 확장해 결코 퇴행할 수 없는 사슬을 이루도록 엮어준다.”(223항) 그래서 교황은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고 말한다.우리는 늘 바쁘게 산다. 이 일 저 일에 지쳐 있고 성과와 목표량에 치여 신음한다. 질병이 아닌 일이 때론 생존의 경계선에 있다. 2023년 세 번째 새해를 맞았다. 주님 앞에 결심하고 약속했지만 ‘작심삼일’, ‘작심한달’로 끝났다고 조급해 하거나 자학하거나 포기할 필요는 없다. 과거의 기억은 살리되 매달리지 말고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워 떨 필요도 없다. 다시 한 번 희망을 품고 또 다짐하고 또 도전하자. 하느님의 시간은 늘 ‘오늘’이다. 오늘을 살아야 한다. 추락과 재기를 반복하며 오늘을 충실히 사는 것. ‘오늘’을 주신 주님의 은총에 보답하는 길이다. cpbc2023.01.17

‘가난한 이들 위한 교회’ 몸소 실천한 프란치스코 교황3월 13일, 선출 10주년 맞은 프란치스코 교황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가난한 이들의 교황’, ‘예수님을 중심에 둔 교황’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실현하는 교황’.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에서 이름을 딴 프란치스코 교황을 수식하는 말이다. 오는 13일이면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지도 어느새 10주년을 맞는다. 가난한 교회가 되자 프란치스코 교황은 임기 초부터 “가난한 사람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자”고 당부했다. 동시에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 교황궁을 떠나 방문객이 머무는 ‘산타 마르타의 집’에 거처를 마련했고, 의복과 장식을 최소화했다. 그 뒤로 마치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처럼 간소하게 흰 수단만 착용해온 교황은 교회를 ‘야전병원’에 자주 빗댔다. 그러면서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해 세상에 다시 나가도록 도와야 한다”고 꾸준히 강조해왔다. 2013년 7월 첫 사목 방문지로 난민의 무덤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 섬을 선택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120㎞가량 떨어진 람페두사 섬은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가기 위한 주요 밀항지로, 해마다 난민 수백 명이 물에 빠져 숨지는 곳이기도 하다. 교황은 이곳에서 난민에 대한 형제애를 강조하는 동시에 “경제의 세계화는 무관심의 세계화를 만들어냈다”고 비판했다. 교황은 이후에도 세계 어디를 가든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늘 함께했다. 교황은 2014년 방한 당시에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유가족들의 손을 잡았다. 가난과 코로나19 팬데믹·기후위기·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제3세계 국민과 원주민을 만나 위로를 전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우크라이나인과 미얀마인ㆍ팔레스타인 등을 위한 사랑과 연대를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다. 교황은 제국주의 피해를 본 원주민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기도 했다. 2022년 캐나다를 방문한 교황은 그리스도인들이 열강들의 식민화 사고방식을 지지했던 방식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교황은 노숙인이 추위로 얼어 죽는 것이 더는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시대를 개탄했고, 사제들에게 “가난한 이들을 먼저 찾아가라”고 거듭 촉구했다. 그러면서 “물질의 우상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며 가난과 나눔의 정신을 강조했다. 생일에 노숙인을 초대해 미사를 봉헌하고, 성 베드로 광장에 샤워장과 이발소를 설치했다. 교도소와 보육원ㆍ양로원을 방문해 가난과 소외, 무관심과 차별로 고통받는 이웃의 존재를 환기하기도 했다.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와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제정 2015년 자비의 특별 희년(2015년 12월 8일~2016년 11월 20일)을 선포한 것도 가톨릭 교회가 하느님 자비를 실천하며 살기를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자비의 특별 희년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제정으로 이어졌다. 교황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가장 작은 이들과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그리스도 사랑의 훌륭한 징표가 되기를 바란다”며 2017년부터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했다. 교황은 매년 이날이면 가난한 이들을 위해 교황청 문을 열어뒀다. 이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식사를 나눴다. 행사는 교황 자선소가 주관했다. 교황 자선소는 프란치스코 교황 즉위 후 교황 뜻에 따라 바티칸 거리에서 노숙인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진료소, 약국도 운영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중에도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교황은 코로나19 백신을 어려운 이웃 국가들과 나누고, 전쟁 지역에 긴급구호기금을 때마다 보냈다. 2018년 제주에 온 예멘 난민을 위해 교황청 자선기금 1만 유로를 제주교구에 보내기도 했다. 교황청 부속 기구였던 교황 자선소는 2022년 교황청 구조 개편에서 ‘애덕봉사부’로 승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앞둔 2019년 11월 15일 교황청 내에 일주일 동안 문을 연 무료 진료소를 방문해 의료진을 격려하고 있다. OVS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 실천 저명한 예수회 신학자 알로이시우스 피어리어스 신부는 이러한 교황의 행적을 두고 ‘새로운 실천’이 아니라고 말했다. 단지 온전하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지시를 실행한 결과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피어리어스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다룬 저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에서 “교황은 복음이 요청하는 ‘복음적 가난’이 지닌 진복의 영성을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경제적 가난’에 빠져 있지만 온전한 인간성 회복을 위해 투쟁하는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본인이 야전병원이라 부르는 곳에 투신했다”며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이학주2023.03.10

하느님 마주한 그 자리가 ‘인간다움’ 회복하는 장소[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0. AI와 종교의 영역 “김 화백은 이제 인공지능과도 경쟁해야겠어!” “아, 그래도 손맛은 못 따라와요.” 화가인 조카에게 툭 던진 나의 말에 자신감이 묻어나는 말투로 화답해왔다. 그러면서 사람의 감성은 따라올 수 없을 거라고 했다. 다시 물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성을 흉내 내기 어렵다 하더라도 대중이 그 손맛 감성을 알아보지 못하면?” 그러자 조카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어느 시점에 손맛을 더욱 갈망할 겁니다.” AI에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예술가의 오기와 투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기계는 지금 인간을 훌쩍 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잃어가는 인간다움과 생명에 대한 더욱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pixabay 제공 AI가 그림을 그린다. 사람이 온종일 그려도 그릴 수 없는 그림을 몇 초 만에 뚝딱 그려 낸다. 그것도 일반인의 눈엔 손 그림과 구분할 수 없게 말이다. 사고력이나 학습능력은 이미 인간을 넘어선 인공지능이 인간만의 고유영역이라고 믿었던 창의성까지 넘보고 있는 셈이다. 음악을 만들고 시와 소설을 쓰고 그림까지 그린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감성’마저도 더 이상 신비한 인간만의 현상이 아닌, 생화학적 반응의 일종으로 여길 것이라고 한다. 알고리즘에 의해 인간의 감정마저 해킹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서운 말이다. 하기야 이미 인간의 지성은 도난당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알파고보다 더 빨리 연산하고 정답을 찾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창의성과 감성의 영역까지 점령을 시도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종교의 영역은? 얼마 전만 해도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역할이 성직자일 것이라 확신했었다. 하지만 벌써 독일에서 5개 국어로 유창하게 설교를 하는 로봇 목사가 나타났다고 한다. 눈썹과 입이 움직이면서 감정을 표현했고, 성경 구절을 암송하면 잔잔한 배경음악까지 흘러나온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불자들과 시선을 맞추고 합창을 하며 반야심경을 설법하는 인공지능 승려가 등장했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더 많은 데이터를 쌓고 종교의 알고리즘을 완벽하게 터득한다면 인간보다 더 종교적인 ‘로봇 성직자’가 나올 것이라고 한다. 인공지능 성직자가 구원의 길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이것이 진짜 종교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디지털 인간 AI는 컴퓨터를 벽돌로 구워내고 모바일 통신을 역청으로 쓰면서 공간과 언어의 한계 뛰어넘어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그 어떤 생명체보다 탁월하지만, 창조주를 넘어서고 싶은 욕망으로 천상 낙원에서 쫓겨났다. 그 이후에도 인간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지배하고 있다. “‘자, 벽돌을 빚어 단단히 구워내자.’ 그리하여 그들은 돌 대신 벽돌을 쓰고, 진흙 대신 역청을 쓰게 되었다.”(창세 11,3) 디지털 인간은 정말로 일을 저지르려나 보다. 컴퓨터를 벽돌로 구워내고 모바일 데이터 통신을 역청으로 쓰면서 공간과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게다가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을 만들어 ‘하늘까지 탑을 쌓자’고 부추기며 디지털 바벨탑을 쌓고 있다. 창조주께서 신을 닮은 인간을 만들었고 인간은 사람을 닮은 기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기계는 지금 인간을 훌쩍 넘는 존재로 진화하고 있다. AI가 또 다른 바벨탑을 쌓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기계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이에 인공지능은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인간만의 존엄성을 지키는 길은 있기나 하는 것일까? 인공지능이 도저히 탐할 수 없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영역 말이다. 학자들은 인공지능에겐 ‘인간다움’이 주는 감동이 없다고 한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지금은 고인이 된 이어령 선생이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인공지능이 지성, 이성, 감성을 모두 점령해도 하느님의 영역인 영성만큼은 점령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고백하길 낮에는 무신론자처럼 살고 밤에만 하느님을 찾으며 흔들리다가 알파고의 등장으로 더욱 하느님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하느님을 마주한 그 자리가 바로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장소다. 길을 잃을 때 가야 할 곳이 있다. 바로 ‘처음’이다. 인간이 최초에 머물렀던 하느님과 마주하며 살던 에덴동산을 생각한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인간다움’과 ‘생명’이 넘치는 그곳, 환희와 기쁨의 고향, 하느님과 마주한 ‘에덴’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어쩌면 우린 SF보다 더 SF 같은 현실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늘의 새를 보고 비행기를 만들었어요. 그러나 비행기가 새보다 더 강하고 빨라요. 물속의 물고기를 보고 잠수함을 만들었는데요. 이 또한 물고기보다 훨씬 더 강력해요. 그리고 우린 우리 자신을 보고 인공지능을 만들었어요. 결국 인공지능 알파고가 세계 최정상급 프로기사 이세돌을 이겼네요. 다음에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런데요. 원하는 것을 다 이룬 우리 인간은 지금 행복한가요? 가장 인간다울 때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인간다움의 첫 번째 조건은요. 우리를 만드신 하느님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느님 닮은 인간이 가장 인간적이고 행복한 모습일 테니까요. 김용은 수녀(제오르지아, 살레시오 수녀회) 2023.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