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원의 문’이신 그리스도 드러내는 표징[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8)성당 문 성당 문은 구원의 문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 사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5년 12월 8일 자비의 희년 개막일에 ‘거룩한 문’(porta sancta)을 열고 성 베드로 대성전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CNS 자료 사진】 문(門)은 다른 공간으로 이끄는 경계이다. 성경에서도 문은 안과 밖, 어제와 오늘, 거룩함과 속됨, 생명과 죽음의 갈림목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뿐 아니라 단테의 「신곡」과 같은 문학 작품의 영향을 받아 천국과 지옥에도 문이 있다고 상상하며 베드로 사도를 천국의 수문장으로, 루시퍼를 지옥의 우두머리로 소개하며 해학이 가득한 이야기들을 생산해 낸다.창세기는 ‘야곱의 꿈’을 통해 하늘과 땅의 경계에 문이 있다고 한다.(창세 28,10-22 참조)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28,17)라며 머리에 베었던 돌로 기념 기둥으로 세우고 그 꼭대기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면서 그곳을 ‘베텔’이라 했다. 히브리말 ‘베텔’은 우리말로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이다. 야곱이 기념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둘러 축복한 것은 ‘자신과 후손을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기 위한 행동이었다.요한 묵시록은 새로 완성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에 12개의 성문이 있다고 한다.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 같았습니다.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동쪽에 성문이 셋, 북쪽에 성문이 셋, 남쪽에 성문이 셋, 서쪽에 성문이 셋 있었습니다.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묵시 21,11-14)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당신을 ‘구원의 문’이라고 했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요한 10,9) 또 주님께서는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라고 계시하셨다.(묵시 3,20-21)가톨릭교회는 구원의 문이신 주님께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은 제아무리 거룩한 사람이라도, 모든 사람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자신을 제물로 바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현존하는 하느님 아들의 신적 위격은 모든 사람을 초월하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을 품으며, 그리스도를 온 인류의 머리가 되게 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희생은 모든 사람을 위한 제사가 된다.…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나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주셨기’(1요한 4,10)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셨다.(2코린 5,19)”(「가톨릭교회 교리서」 616-620) 이처럼 그리스도만이 죽음에서, 그리고 사람들을 멸망시키려는 모든 것에서 구해 주신다. 이에 교회도 주님께서 당신 스스로 밝히신 것처럼 주님을 ‘구원의 문’이라고 신앙 고백을 한다. 성당은 전례를 거행하는 거룩한 공간이다. 여타의 공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이 공간에서 성찬례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명백하게 드러내기 때문에 성당은 하느님의 집이며 인간의 집으로 불린다. 이 거룩한 공간과 세속을 구분하는 경계가 바로 ‘성당 문’이다. 이 문은 ‘구원의 문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 그래서 미사를 봉헌할 때 성당의 가운데 문으로는 전례 집전자인 성직자들만 출입한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회중들은 항상 성당을 드나들 때 가운데 문이 아닌 옆문을 이용한다.성당에 들어가기 위해선 속된 것을 떨쳐내고 하느님을 경배할 수 있는 정화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무심히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다. ‘새 성당 문 축복 기도’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성당에 들어가야 하는지 잘 새겨준다. “주님 간구하오니, 이 문을 통과하는 당신의 신자들이 당신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같은 성령 안에서 성부께로 나아가며, 당신 교회에 함께 모여 교회의 신앙을 통하여 신뢰하는 마음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항구히 따르며, 같이 성체성사를 나누어 모시며, 기도에 항구함으로써 나날이 천상 예루살렘 건설에 힘쓰게 하소서.”성당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누구든지 구원의 문이신 주님께 청할 수 있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을 마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열린 교회 안에서 모든 이는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한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는 소음 가득한 거리나 TV와 컴퓨터가 켜진 집보다 고요함과 침묵이 깔린 성당 안에서 더 쉽게 하느님의 귀에 전달된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9.20

주님 부활, 새 생명의 길 열어주님 부활 사건과 부활하신 주님의 실재 주님 부활 대축일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토대이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라는 선포는 신앙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믿음이 아니다. 주님 부활은 인간 역사 안에서 일어난 유일무이한 실제 사건이다. 신약 성경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았던 이들의 증언과 고백이 담겨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부활하신 주님을 “믿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보았다”고 말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성경 속 주님 부활의 증인들을 통해 주님 부활 사건과 부활하신 주님의 실재를 정리해 보았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5장 내용을 새겨보자. 네 복음서가 쓰이기 훨씬 이전인 서기 52~57년 사이 어느 해 파스카 축제가 가까운 봄에 바오로 사도가 쓴 이 서간에는 ‘주님 부활’에 관한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증언과 고백이 정리돼 있기 때문이다.“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3-14) 주간 첫날에 일어난 파스카 사건성경은 주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사흗날에 부활하셨다고 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사흘 곧 3일은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아브라함은 사흘째 되는 날에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칠 장소를 보게 된다.(창세 22,4) 또 요셉은 사흘 만에 그의 형제들을 옥에서 풀어주었고(창세 42,18), 요나는 사흘 밤낮을 하느님께 기도드린 후에야 물고기 배 속에서 구출될 수 있었다.(요나 2,2) 이렇게 구약 성경은 사흗날을 ‘해방’ ‘구원’ ‘죽음으로부터의 승리’를 의미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사흗날에 부활하신 것은 그 자체가 ‘구원의 결정적 사건’임을 드러낸다. 빈 무덤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묻히신 지 사흗날 곧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예수님의 시신을 염습하기 위해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이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빈 무덤이 주님 부활에 대한 직접적이고 확실한 증거는 될 수 없다. 하지만 빈 무덤은 주님 부활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며 핵심적 징표임은 분명하다. 시신이 남아있는 무덤에서 부활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의 빈 무덤을 목격한 베드로 사도는 오순절에 주님 부활에 관해 군중에게 처음으로 이렇게 설교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사도 2,29-36) 빈 무덤은 또한 예수님의 육신이 썩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부패와 부활은 양립할 수 없다. 부활은 주님께서 죽음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그분의 존재 안에서 생명이 죽음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몸이 무덤에 놓여 있었더라면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지 못했을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의 목격 증인들주님 부활의 결정적인 증거는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다. 성경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본 목격 증인들이 나온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먼저 케파 곧 베드로 사도에게 발현하셨고, 이어 사도들에게, 또 한 번에 500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에게도 발현하셨다. 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오로 서간 등 신약 성경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예루살렘과 갈릴래아, 그리고 엠마오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목격자들에게 나타나셨다고 밝힌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만지게 하시고, 함께 식사하심으로써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신다. 이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유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이끄시며(루카 24,39 참조),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나타나 부활하신 당신 육신이 수난의 흔적을 아직 지니고 있는,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바로 그 육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요한 20,20.27 참조) 이처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여느 인간과 같은 인간으로서 목격자들 앞에 나타나셨다.눈여겨볼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본 이들이 하나같이 처음에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루카 24, 16; 요한 21,4 참조) 심지어 베드로 사도도, 사도들도, 마리아 막달레나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누구도 주님께 “누구십니까?”라고 묻는 이가 없었다. 자신들 앞에 계신 분이 부활하신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요한 21,12 참조)부활하신 주님의 모습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제자들은 돌아가시기 전 수난의 흔적을 당신 육신에 그대로 지니고 계셨는데 왜 부활하신 주님을 바로 알아보지 못했을까? 교회는 이 물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과 같으신 분이시지만 부활을 통해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지셔서 당신의 신성을 더욱 드러내시는 새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 참되고 실제적인 육신은 영광스러운 육신의 새로운 특성들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 육신은 이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원하는 곳에 원하는 때에 마음대로 나타날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분의 인성은 더 이상 지상에 매여 있지 않고 다만 성부의 신적인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정원지기의 모습이나 제자들에게 친숙한 모습과는 다른 모습 등 얼마든지 원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신다. 이는 분명 그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45항)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당신이 수난 전에 야이로의 딸, 나임의 젊은이, 라자로 등을 다시 살리신 것처럼 지상의 삶으로 돌아오신 것이 아니다. 이들은 주님의 권능으로 지상의 정상적인 삶을 되찾았을 뿐이다. 이들은 다시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은 이들의 되살아남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주님의 부활은 지상으로 회귀하는 기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당신의 육신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상태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다른 생명의 세계로 넘어가신다. 예수님의 몸은 부활을 통해서 성령의 권능으로 충만해진다. 예수님의 몸은 그 영광스러운 상태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를 ‘하늘의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46항)주님 부활은 인류 부활의 원천바오로 사도는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되살아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1코린 15,14)라고 선포했다. 그러면서 바오로 사도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1코린 15,22)라고 했다.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과 연결되는 이유는 뭘까? 주님께서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고, 당신의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새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의 부활은 장차 우리 부활의 근원이며 원천이다. 이에 교회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첫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은 우리 영혼을 의화시키심으로써, 장차에는 우리 육신을 다시 살리심으로써 우리 자신 부활의 근원이 되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58항)라고 고백한다.이는 주님의 부활이 세상의 종말 곧 그리스도의 재림과 긴밀히 연관돼 있음을 보여 준다. 주님의 재림이 모든 인간의 부활을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생명 안으로 이끌려 간다. 이는 우리가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2코린 5,15) 이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우리가 깨어 있는 마음으로 증거자들에게 귀 기울이고, 주님께서 당신 자신과 증거자들을 언제나 새롭게 공적으로 증거해 주시는 표징들에 우리 자신을 열 때, 우리는 그분이 참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강조했다.(「나자렛 예수」 2권 344쪽 참조)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cpbc2022.04.13

극단적 선택 앞 청년들, 교회 공동체가 울타리 돼줘야인권 주일 -청년 자살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던 2030 청년들은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사실은 “살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인간 생명의 존엄을 회복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교회와 사회가 우선으로 할 일이다. 대림 제2주일 ‘인권 주일’을 맞아 늘어가는 청년 자살 문제를 들여다봤다. 청년의 현실 돌아봐야전문가들은 급증하는 청년 자살률 증가를 사회 문제로 보고 있다. 서울대 인류학과 박한선 교수는 자살의 요인을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고통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의 부재다. 이는 힘든 상황을 겪는 청년이 자신의 고통을 극단적 선택이 아닌 다른 곳으로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여행이나 취미를 통한 즐거움일 수도 있고 또 업무 등을 통해 다른 스트레스를 만들어 당장의 극단적 선택에 대한 충동을 막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는 접하기 쉬운 방안이지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거나 취업 준비기 청년에게는 어렵기만 하다. 두 번째는 공동체의 와해다. 소속된 공동체에서 맡은 역할과 그로부터 오는 책임감은 자살 행동을 지연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핵가족화, 개인주의 경향으로 집단적 결속이 약화하는 오늘날, 이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편향적인 자살예방정책이다. 박 교수는 “현재의 예방정책은 자살 고위험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실제 자살 시도를 하는 사람 가운데 72%가 자살 생각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이었고, 자살 사망자 대부분이 저위험군에서 발생하는 것을 볼 때 여러 접근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인하대 사회복지학과 황순찬(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 역임) 교수도 “경제적인 어려움, 가족 해체, 외로움을 비롯해 고용·주거·관계의 불안정 등 청년 자살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다”며 “이를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로 본다면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살아갈 때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청년들에게 필요한 부분들을 같이 고민하고 이에 맞는 자살 예방 대책이나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자살 예방 교육과 공동체성청년 자살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10월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주관하는 2022 자살예방 인문 공개토론회에 참석한 국내·외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청년 자살 문제를 진단하고 더 나은 예방법을 모색했다.일본에서 온 시미즈 야스유키 대표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일본의 청년 자살률 현황을 전하며 국가적 차원의 예방법을 소개했다. 그는 비영리 법인 자살대책지원센터 라이프링크에서 정부와 함께 자살예방에 힘쓰고 있다.라이프링크에는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이를 대상으로 SNS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나 내담자의 사정에 따라 정부부처·기관·단체·전문가를 연계하는 데 차이가 있다. 인식개선 활동도 활발하다. 시미즈 대표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고통을 겪는 청년이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모범 사례를 확산하려 한다”고 했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죽는 것 외의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는 “청년이 된 후에는 예방 정책의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관련 교육을 시행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SOS를 요청하는 방법이나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을 미리 제공해 청년이 되고 찾아오는 위기에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종교 또한 청년을 포함한 전 연령대의 극단적 선택 문제를 예방하는 데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박한선 교수는 “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모든 분야가 침체한 IMF 시기에도 지금보다 자살률이 낮은 것을 보면, 고통의 강도가 극단적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지는 의문”이라며 “집단적 접근을 확충해야 한다”고 전했다. 집단적 접근의 핵심은 공동체성이다. 사회적 관습과 규율 등 단체 행동에서 오는 억압감이 극단적 행동 양상을 억제하는 데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그는 “과거 구심점이 됐던 농촌 공동체는 우리나라에서 와해된 지 오래고 이미 복원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며 “이를 회복할 수 있는 대안은 종교”라고 했다. 특히, 보편성을 의미하는 ‘가톨릭’의 지향은 전체적인 자살률 감소에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박 교수는 그 근거로 “집단의 가치를 강조하는 전통 신앙이나 가톨릭을 믿는 국가의 자살률이 그렇지 않은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것을 들며 “가톨릭이 다수를 차지하는 남미 국가들의 낮은 자살률은 경제적 수준이나 범죄율 등을 고려할 때 고통의 정도보다 종교로부터 오는 결속력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려 준다”고 말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성당 사람들에게조차 고민 털어놓기 쉽지 않아”성당 열심히 다니는 청년 유씨 성경공부·고해성사로 위로 받아 청년 눈높이 맞춘 접근법 필요 평소 성실하게 성당을 다녔던 유씨는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을 당시 신앙에 의지하지 못했다. 유씨는 그 이유에 대해 “원래도 타인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못하는 성격인데, 오랜 기간 신앙 공동체에 몸을 담다 보니 성당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사회생활의 일부가 돼버렸다”고 설명했다. ‘내가 지금 너무 힘들어’라고 호소하고 싶었지만, 매주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은 탓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성당 다니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는 점이었다. 공교롭게도 ‘살아 보겠다’는 의지를 갖게 된 계기 역시 신앙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계속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못하는 상황에서 성당에 갔다가 청년 성서모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성서모임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비밀이 원칙’이라는 말이 위안이 됐다고 한다. 성경을 읽고 느낀 바를 공유하는 ‘나눔’에 있어 피드백을 하지 않는 시스템도 도움이 됐다. “제가 무슨 말을 하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을 보고 밖에서도 말을 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어요. 고해성사 때는 응어리 맺힌 게 울컥 터져 나왔죠. 그 뒤로 서툴더라도 말하는 연습을 하게 됐어요.” 유씨는 “청년에게만큼은 교회의 접근 방식이 달랐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청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이다. 그는 “이미 교회에는 청년을 위한 양질의 프로그램이 다양하지만, 다소 깊은 영성을 요구하곤 해 그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의 구미를 당길 수 있도록 청년 입장을 반영해 다듬을 필요가 있다”며 “바로 3박 4일 피정을 권하기보다는 맛보기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여러 가지 마련한 뒤 청년 스스로 맛을 들여 한 단계씩 시도해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 cpbc2022.11.29

양간 교우촌 신앙 유산 이어받은 공소[공소(公所)] 15. 수원교구 향남본당 사창리공소 수원교구 향남본당 사창리공소는 공소 설립 12년 만에 공소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하고 모금한 땅과 건축 기금으로 지어져 봉헌됐다. 사창리공소 신자들은 유서 깊은 양간 교우촌의 신앙 전통을 물려받아 성모회와 성소후원회, 연령회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사창리공소 내부. ‘사창리’는 전국에 9곳이 있다. 북한의 황해남도 신천군과 평안북도 벽동군에 있는 마을까지 합치면 11곳이나 된다. 한자로 다르게 표기되는 것도 있지만, 사창리는 곡식을 모아 저장해 두는 곳집이 있는 씨족 마을에 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래서 전남 장성ㆍ무안, 전북 고창, 충북 괴산ㆍ음성, 경남 창녕, 충남 태안, 강원도 화천 등 주로 농촌 지역에 사창리가 자리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사창리(社倉里) 역시 고려 때부터 곡식 창고가 있던 광산 김씨와 함평 이씨의 집성촌이다.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정문회화로 21-6에 자리한 수원교구 향남본당 사창리공소는 1970년 용소리공소에서 분가해 설립됐다. 끝나지 않은 종교 박해 사창리공소 소개에 앞서 조선 왕조 시대 천주교 박해 이후 양간 지역 신앙 공동체 재건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1866년 병인박해 이후 10년 만에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조선에 돌아왔다. 1876년 2월에 ‘강화도 조약’이라 불리는 조일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그해 5월 10일 블랑 신부와 드게트 신부가 한양에 들어왔다. 두 선교사는 각각 강원도와 경기 지역을 맡아 교회 재건과 복음 선포를 위해 공소 복구 및 신축, 전교회장 양성에 모든 힘을 쏟았다. 이듬해 1877년 리델 주교와 두세ㆍ로베르ㆍ뮈텔ㆍ코스트 신부도 속속 입국했다. 리델 주교는 기도서와 교리서를 발간할 인쇄소를 설립하고, 조선인 사제 양성을 위해 소신학교 건립도 추진했다. 또 블랑ㆍ드게트 신부는 남부 지방, 두세ㆍ로베르 신부는 황해도 지역, 뮈텔 신부는 서울과 경기도 지역을 맡아 사목했다. 하지만 아직 박해의 불씨가 남아 있었다. 조정은 천주교에 대한 공개적인 대규모 박해를 일으키려 하지 않았지만 리델 주교와 드게트 신부를 비롯한 천주교 신자들을 체포해 옥에 가두었다. 고문과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몇몇 신자들은 순교했다. 또 체포된 선교사들은 중국으로 추방됐다. 선교사들은 1882년 조미통상수호조약 이후 다시 조선으로 들어왔고, 마침내 1886년 6월 4일 조불수호통상조약 체결로 선교사들의 선교 자유를 보장받았다. 이로써 1888년 한강 이남 첫 본당이 설립됐다. 바로 ‘갓등이’(왕림) 본당이다. 갓등이 성당이 자리한 봉담읍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정남면, 향남면, 양감면에도 주요한 공소들이 재건됐다. 「수원교구 50년사」에 따르면 당시 이 지역 신앙공동체의 중심지였던 양간공소에는 100명이 넘는 신자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한국 천주교회는 교세 성장의 위기를 맞는다. 일제의 담배전매 정책으로 산골에서 화전을 일구어 담배 농사를 짓고 옹기를 구워 생계를 유지하던 교우들이 점차 교우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또 일제는 ‘정교분리’를 내세우고 ‘포교 규칙’을 제정해 교회를 통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난과 빚에 쪼들리게 된 교우들은 신앙생활과 멀어져 갔고 그 결과는 신자 수 감소로 나타났다. 양간공소도 이 시기 교우 수가 40명으로 절반 이상이 줄었다. 사창리공소 입구 좌측면에 모셔진 루르드 성모상. 교우촌 전통 이어받은 공소 해방 후 1955년 갓등이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임응승(요한) 신부는 본당 분가를 추진한다. 그래서 1957년 노기남 주교는 발안공소를 본당으로 신설하고 화성시 양감면, 우정읍, 팔탄면, 장안면, 향남읍, 오산시 일부를 사목구로 정했다. 발안본당은 이 지역 북시기, 귀꽃, 압실, 벌음, 오산, 느지지, 양감, 꽃밭, 버섯말, 거묵골, 배꽃, 장안, 조암, 은행동, 발라곶 등 15개 공소를 관할했다. 1963년 수원교구 설정 이후 발안본당은 화성 남부 지역 신앙 공동체의 구심점이 돼 교세를 성장시켜 조암본당(1973년)과 향남본당(2008년)의 모본당이 된다. 수원교구는 유서 깊은 교우촌 지역을 기반으로 둔 본당과 공소가 많았다. 이에 초대 수원교구장 윤공희 주교는 사목 지침 ‘수원교구 설정에 즈음하여’에서 “우리는 이미 24개의 본당을 가지고 있고, 그중에는 북수동 성 미카엘성당과 같이 전국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본당도 있고, 또 이번에 주교좌성당으로 승격된 성 요셉성당과 같이 우리 선조 치명자들이 왕래하며 박해의 쓰라린 고통을 겪고, 더구나 우리 수선 탁덕 치명 복자 안드레아 김 신부님의 거룩한 유해가 묻혔던 유서 깊은 본당도 있습니다. 이와같이 작고, 크고, 오래고, 새롭고 또는 치명자들의 발자취로 다져진 이 본당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정신이 철저한 신자들로 가득하게 된다면 우리 교구는 그리스도의 튼튼한 모퉁잇돌 위에 견고하게 서게 될 것입니다”라고 기대했다. 사창리공소는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고 복음 정신으로 탄탄하게 다져진 유서 깊은 양간 교우촌의 전통을 이어받아 1970년 8월 23일 설립됐다. 양감면 사창리와 정문리, 요리, 향남읍 백토리, 길성리를 관할하고 있다. 공소 건물도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지었다. 1979년 12월 공소건축위원회가 구성돼 공소 건축 기금을 조성했다. 송기덕(베드로) 건축 위원장이 자신의 집 옆 대지 100평을 기증하고, 윤성규(요한), 조태식(베네딕토), 최용희(바오로), 김영식(바오로), 문병구(루카)를 비롯한 교우들이 기금을 조성해 32평 규모의 벽돌집 공소 건물을 지어 공소 설립 12년 만인 1982년 5월 9일 준공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14일 수원교구 총대리 황익성 신부 주례로 공소 봉헌식을 거행했다. 공소 교우들은 성모회와 성소후원회, 연령회, 행복한가정운동 등을 조직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양감면 출신인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도 신학생 시절 사창리공소에서 교우들에게 성경과 교리를 가르쳤다고 한다. 현재 사창리공소 교우 수는 20여 명에 불과하다. 이들 대부분은 공소에서 4㎞ 떨어진 향남성당으로 가서 주일 미사에 참여하고 성사생활을 해 지금은 공소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가끔 공소를 찾는 순례자만이 방문하는 곳이 됐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4.14

생명의 빛으로 인간을 인도하는 풍향계[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7)수탉 수탉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생명의 빛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는 풍향계를 상징한다. 사진은 독일 보쿰 성 요한 성당 종탑의 수탉. 출처: 구글 유럽 성당을 순례하다 보면 종탑 위에 수탉 모양의 풍향계가 장식돼 있는 것을 종종 본다. 왜 하필 성당 꼭대기에 수탉 장식을 올려놓았을까? 수탉이 교회의 상징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굳이 그리스도인이 아니더라도 성경을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베드로 사도가 새벽이 밝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 베드로가 자신이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깨닫고 후회하도록 한 것이 대사제 카야파의 저택 뜰에서 들여온 닭 울음소리였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베드로는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하녀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그러자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하고 부인하였다. 그가 대문께로 나가자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에 있는 이들에게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하고 다시 부인하였다. 그런데 조금 뒤에 거기 서 있던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당신도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당신의 말씨를 들으니 분명하오’ 하고 말하였다. 그때에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마태 26,69-75)전승에 따르면 베드로 사도는 이후 평생을 닭 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카야파의 저택 뜰에서 일어난 이 일화를 떠올리며, 예수님 앞에서 자만했던 자신을 속죄하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처럼 성당 종탑 꼭대기의 수탉은 모든 이에게 베드로 사도가 주님을 배반하고 슬피 울었던 그 사건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매 순간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만하지 말 것을, 그리고 항상 속죄하고 회개할 것을 일깨워준다. 수탉은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다. 구약 성경 욥기에는 “누가 따오기에게 지혜를 내렸느냐? 또 누가 수탉에게 슬기를 주었느냐?”(38,36)라는 물음이 나오고, 그리스 신화에선 아테나 여신 곁에는 수탉이 서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보다 수탉은 교회 안에서 훨씬 더 큰 표징을 드러낸다. 바로 수탉은 ‘주님 부활’의 거룩한 표징이다. 수탉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일찍 새벽을 알리는 동물이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에서는 수탉을 ‘새벽의 사자’라고 표현한다. 지금도 시골에 가면 어슴푸레 동이 틀라치면 맨 먼저 홰를 치며 우렁찬 목소리로 밝아오는 새날을 찬미하는 닭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직도 캄캄한 것 같지만, 첫닭이 울고 나면 어김없이 동이 트므로 사람들은 닭 울음소리와 함께 일어나 아침 일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야 했는데, 시계가 없던 옛 시절에는 햇살과 함께 청아하게 아침을 깨우는 닭울음 소리가 있어야 가능했다.복음서는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요한 20,1) 주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한다. 수탉은 주님의 부활을 알린 첫 전령이었다. 초대 교회 때부터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새벽은 특별히 하느님께 속하는 시간이었다. 바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고귀한 때이다. 그래서 새벽을 깨운 수탉의 울음을 듣고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인들은 맨 먼저 “주님을 찬미합시다”라고 기도했고 “하느님께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수탉은 사람을 잠에서 깨우고, 그리스도는 인간을 죽음에서 일으켜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신다. 따라서 종탑 위의 수탉은 주님의 부활을 표징할 뿐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하고 일과를 주님께 봉헌하도록 인도하고 있다. 종탑의 수탉은 또한 언제 오실 줄 모르는 그리스도 왕을 향해 항상 깨워 있을 것을 일깨워주는 ‘삶의 풍향계’이다. “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르 13,32-37 참조)이처럼 종탑 위의 수탉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드러내는 교회의 거룩한 표징이며 생명의 빛으로 인간을 인도하는 풍향계이다. 아울러 그리스도인들에게 ‘언제나 깨어 있도록’ 일깨워주고 자만하지 말고, 회개하고, 매일 하루를 하느님의 거룩한 시간으로 봉헌할 것을 재촉하는 상징이다. 그래서 종탑 위의 수탉 장식을 교회에서는 ‘성 베드로의 수탉’이라고 부른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9.14
![[생활속의 복음] 주님 공현 대축일 - 떠나면 길이 보입니다](//cpbc.co.kr/CMS/newspaper/2023/01/rc/838636_1.2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주님 공현 대축일 - 떠나면 길이 보입니다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마태 2,11) 우린 길을 떠나야 합니다. 떠나면 길이 보인다 했습니다. 길 떠나는 동방박사들이 됩시다. 우린 지상의 순례자들입니다. 인생 자체가 여행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여행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인용한 인디언 격언입니다. 누구나 떠나야 하는 내적 여행을 말합니다. 떠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인생의 비밀이 있습니다. 걸을 수 있는 분들에겐 실제로 걸어나가기를 권합니다. 매일 8~9km씩 한참을 걷다 보면 진정 다른 인생을 만난다고 누군가 말했습니다. 새해 시작해 볼 수 있는 멋진 도전이 될 것입니다. 1. 동방 박사들의 여정과 깨달음 그들은 불리움을 느끼는 순간 짐을 쌌습니다. 내면의 빛을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얻어낸 수확은 무엇일까요? 천신만고 끝에 그들이 대면한 것은 허름한 거처의 가난한 집안의 모자(母子)였습니다. 무력하기 짝이 없는 꼬물거리는 갓난아기 모습에서 임금의 품위와 하느님의 빛이 솟아나는 걸 느낍니다. 경이롭고 놀라운 영적 체험입니다. 그들이 경배드리고 바친 예물, 황금과 유향이 그걸 말해줍니다. 최종적인 예물은 몰약이었습니다. 몰약은 죽은 이에게 바르는 시약입니다. 죽어야 할 운명의 인간 안에 거룩함과 존귀함이 들어있음을 발견한 것입니다. 자기 고장으로 돌아간 박사들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겸손되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요? 특히 가난한 이들, 그들 가정을 예사로이 보아넘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구세주 모자 가정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깨달음입니다. 여행을 통해 그들은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2. 헤로데와 종교 지도자, 우리 헤로데는 오늘날에도 존재합니다. 가장 힘 있는 자로 군림하는듯하나 그가 보이는 것은 무지요. 꾸미는 것은 음모입니다. 메시아에게 경배드린다 했지만, 거짓이고 실은 죽여 없애려 듭니다. 연일 칼을 휘두르지만, 무위로 그칩니다. 유다 종교 지도자들은 성경에 정통했고 메시아의 탄생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길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머리로 뭘 생각하느냐보다 발이 어디에 있느냐가 더 중요한지도 모릅니다. 기득권, 안락함에 취했을까요? 아쉬움이 없었을까요? 간절함이 빠진 신앙은 짠맛을 잃은 소금일 뿐입니다. 꼭 개인적인 절실함만이 아닙니다. 밤늦게 찾아온 친구의 허기를 해결해 주려 또 다른 친구의 문을 연신 두들기며 빵을 청하는 그 우정은 간절하기에 아름답습니다. 우리도 길을 잘못 들어 왕궁을 기웃거릴 수 있습니다. 호화로움, 안락 등에 취하지 맙시다. 그런 것들 안에 진리가 있지 않습니다. 수수하고 소박한 데에 주님은 계십니다. 우리를 인도할 별빛은 그분의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들려온 말씀을 나침판 삼아 길을 떠나야 하겠습니다. 깨달음은 높은 차원의 경지라기보다는 높은 데서 멀리까지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 멀리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우크라이나 난민, 강제 징집되어 전쟁터에 끌려 나온 러시아 젊은이도 있고, 미얀마 백성들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에게까지 주님의 출현이 기쁜소식이 되어야 제대로 된 공현입니다. 약소하나마 주머니를 털어서 그들의 아픔에 동참한다면 자연스럽게 그들을 향한 기도가 올려질 것입니다. 하여튼 뭔가를 해야 합니다. 공현을 알리는 징조는 하늘에 있을지 몰라도 실체는 땅에 있습니다. 하느님이 땅에 내려오셨고 이제 가난한 민초들의 삶에 알알이 들어와 박히셨습니다. 우리 이웃 안에, 작은 이들 속에 육화하신 하느님을 알아 뵙고 경배드리는 한 해가 되길 빕니다. 2023년, 무엇을 소망하는가? 소망이 기도되게 합시다. 서춘배 신부(의정부교구 병원사목위원회) cpbc2023.01.03

언제 어디서나 나눌 수 있는 하느님과 대화[가톨릭 영상 교리] (39) 기도 수도자들이 두 손 모아 나란히 기도하고 있다. pixabay 제공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귀담아듣고 하느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을 드리며 은혜를 청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또, 바치는 내용과 지향에 따라 ‘청원과 전구’, ‘감사와 찬미’, ‘흠숭과 찬양’으로 나뉩니다.먼저 ‘청원 기도’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지향이 이루어지도록 하느님께 비는 기도를 말합니다. 청원 기도는 창조주이신 하느님 앞에 인간은 한낱 피조물이라는 한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전구’는 어떤 사람의 바람이 성모 마리아나 천사, 또는 성인의 도움으로 하느님께 전달되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예수님의 기도와 흡사하게 해주는 청원 기도의 하나로, 남을 위한 기도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특히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전구자’셨습니다.‘감사 기도’는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바치는 기도입니다. 청을 들어주셨을 때뿐 아니라 모든 기쁨과 슬픔, 또 모든 사건과 필요가 그리스도인에겐 감사의 대상이며, 감사드릴 동기입니다.‘찬미’는 기도의 기본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에 대한 응답입니다. 하느님께서 강복해 주셨기에 우리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릴 수 있습니다.‘흠숭’은 우리를 지어내신 하느님의 위대함과 우리를 악에서 구해 내신 구세주의 권능을 드높이는 것입니다. 흠숭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우리 간청에 대한 확신을 줍니다.‘찬양’은 하느님께서 진정한 하느님이심을 직접적으로 인정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일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에 기리고 하느님이시기에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또 기도는 바치는 형태에 따라 ‘소리 기도’, ‘묵상 기도’, ‘관상 기도’로 나뉩니다.소리 기도는 말 그대로 소리를 내서 바치는 기도입니다. 염경 기도라고도 합니다. 주님의 기도, 삼종 기도, 시간전례 등 정해진 기도문을 혼자, 또는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입니다.‘묵상 기도’는 기도문을 사용하지 않고 이성을 사용해서 곰곰이 생각하는 기도입니다.주님의 말씀인 성경이나 영성 서적을 읽고 거기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그것을 내 안에 간직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관상 기도’는 기도문도 사용하지 않고 생각도 정지시키고 하느님 앞에서 침묵 가운데 머무르는 기도입니다. 예수님께 신앙의 눈길을 고정시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말없이 우리의 사랑을 드러내는 기도입니다.기도의 모범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특별히 당신의 사명을 이행하는 결정적인 순간들을 앞두고 기도하셨습니다. 되도록이면 밤에, 또 홀로, 산으로 올라가 자주 기도하셨습니다.예수님의 삶은 기도 그 자체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기도는 ‘형제들의 고통에 참여하는 기도’였습니다. 또 예수님의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감사와 확신의 기도’였습니다. 청한 것을 받기 전에 주실 분에게 먼저 감사와 신뢰를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기도는 자신을 바치는 기도였습니다. 성부께 온전히 당신을 맡기는 기도였습니다.교회는 이러한 기도를 신자들에게 주기적으로 바치기를 권합니다.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삼종 기도, 식사 전후의 기도, 시간 전례는 날마다 바치는 기도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작은 일에서부터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까지 모든 것을 기도 속에서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 전체가 기도의 소재입니다.다만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하느님께 내가 원하는 걸 청하기에 앞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헤아리고 그것이 내 안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언제나 우리의 청을 뛰어넘고 우리가 청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기도 안에 머물러 보십시오. 평화가 올 것입니다. 기도와 함께 살아가 보십시오. 두려울 게 없을 것입니다. 매일, 잠시라도 하느님과 단둘이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보십시오. 내가 하느님께, 하느님께서 나에게 말할 시간을 마련해 보십시오. 든든할 것입니다. 기쁨이 찾아올 것입니다. 행복이 다가올 것입니다. 평화신문2023.01.17

선교 수도승이 라자렛에 일군 신앙 공동체[공소(公所)] 17. 대구대교구 왜관본당 삼청공소 왜관본당 삼청공소는 대구대교구에서 첫 번째로 세워진 한센인 정착촌 베타니아원 내에 있는 공소이다. 삼청공소는 교회의 전통대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한센인들을 돌보고 있는 라자렛이다. 베타니아원 전경. 알빈 신부가 그린 삼청공소 제단 벽화. 베타니아원 한센인들이 세운 남 호노라토 신부와 임 세바스티아노 신부의 송덕비와 추모비. 성경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질병이 바로 한센병이다.(탈출 4,6; 2열왕 5,1; 2역대 26,21; 마태 8,2; 루카 5,12 참조) 최근까지 사람들은 살이 썩어 문드러지는 한센병을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여겼을 정도다. 그래서 고대와 중세의 한센인들은 사람들이 자기 곁으로 오면 “나는 부정하다”고 외치며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한센병은 그리스도교와 친숙한 병이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한센인들을 치유해주신 것처럼 교회도 그들을 치유하고 함께 사는 일에 헌신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원에서 그 일을 맡아 하고 있다. 13세기 영국 연대기 작가이며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인 매튜 패리스는 당시 유럽의 수도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해 돌보던 곳이 1만 9000여 개나 됐다고 했다. 당시 유럽인들은 한센인들의 격리시설을 루카 복음 16장 19-31절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인용해 ‘라자렛’이라 불렀다. 한센인 정착촌에 자리한 공소 경북 칠곡군 삼청5길 70 현지에 자리 잡고 있는 왜관본당 삼청공소는 대구대교구에서 첫 번째로 세워진 한센인 정착촌 베타니아원 내에 있는 공소이다. 삼청공소는 교회의 전통대로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한센인들을 돌보고 있는 라자렛이다. 삼청공소를 소개하려면 세 명의 선교 수도승들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호노라토 밀레만(Honoratus Milemann, 한국명 남도광, 1903~1988)ㆍ세바스티아노 로틀러(Heunrich Sebastian Rotler, 한국명 임인덕, 1935~2013)ㆍ알빈 슈미트(Alwin Schmid, 한국명 안경빈, 1904~1978) 신부이다. 남 호노라토 신부는 베타니아원을 조성한 사제다. 그는 독일 상트 오틸리엔 연합회에서 북한 덕원수도원으로 파견된 마지막 선교사이며 왜관수도원으로 재파견된 첫 번째 덕원 선교사였다. 신학박사였던 그는 덕원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1949년 북한 인민군에 체포돼 5년간 중강진 옥사덕 강제 수용소 생활을 하다 독일로 송환됐다가 1955년 5월 입국했다. 그는 불쌍한 이들 가운데서도 가장 불쌍한 이들인 한센인을 돌보는 일이 왜관수도원 공동체의 특별한 소명임을 자각했다. “수도원과 본당에서 얼마나 많은 돈과 옷, 의약품들을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들에게 제공했는지는 계산할 수도 없고 계산해서도 안 된다. 우리 선교 지역 내의 한센인들에 대한 우리의 활동은 공공사회사업 성격을 띤다. 우리가 선교하는 경상도는 예부터 한센인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다. 1955년 내가 남한에 와서 한센인과 인연을 맺을 무렵 남한의 한센인 수는 10만 명에 달했다. …이 지역에는 사회에서 소외되어 떠돌다가 다리 밑에서 하루하루 구걸로 연명하는 한센인들이 있었다. 더러는 아편에 중독되고 자살하는 한센인도 있었다. 우리는 뭔가를 해야 했다. 몇 년 후 우리는 네 곳의 한센인 정착촌에서 700여 명의 한센인을 돌보게 됐다. 그들 중 90% 정도는 병의 진행이 멈춘 상태다.”(「분도통사」 1578~1579쪽, 호노라토 밀레만 신부 사회사업 성과 보고) 빛이 된 세 명의 선교사 남 신부는 1959년 독일 신자들이 보내온 기금으로 왜관 삼청동 일대 농지 5만 평을 사들여 한센인 가구당 200여 평씩 나눠줬다. 그리고 집도 20여 동 지어줬다. 또 양계업을 위한 삼청동 농장을 지어 베타니아원 전체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공소와 진료실도 마련했다. 한센인들에게 매주 1회씩 무료 진료를 했고, 예수의 작은 자매회와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원 수녀들을 초청해 환자들을 돌보게 했다. 1968년부터는 의사 출신인 디오메데스 수녀를 초빙해 한센인 진료를 맡겼다. 남 신부의 노력으로 베타니아원 한센인들은 음성 환자로 바뀌었고, 정착촌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더는 감염이 없었다. 남 신부에 이어 베타니아원 삼청공소 사목을 임 세바스티아노 신부가 1980년대 초부터 맡았다. 그는 베타니아원 아이들의 교육에 헌신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과정을 따로 공부한 후 매원초등학교를 거쳐 왜관수도원이 운영하는 순심중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성적도 우수했다. 임 신부는 아이들에게 놀이와 연극을 가르쳤고, 여름밤이면 영사기를 가져와 영화를 보여줬다. 또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로 산으로 여행을 다녔다. 임 신부는 삼청공소에서 한센인 정착촌 아이들에게 세상으로 나아가는 희망을 심어줬다. 임 신부는 또 베타니아원 도로를 포장하고 우물을 파서 양계장과 돼지 축사에 물이 부족하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미국 구호단체 원조를 받아 어려운 신자 가정부터 300만 원씩 무이자 3년 기한으로 빌려줬다. 한센인들은 이 자금으로 닭과 돼지를 사서 축사와 양계장을 늘렸고 모두 3년 만에 상환했다. 베타니아원 주민들은 자신들을 위해 헌신하다 선종한 남 신부와 임 신부를 기리기 위해 송덕비와 추모비를 세웠다. 알빈 신부는 삼청공소를 설계하고 성당 벽화를 직접 그렸다. 알빈 신부는 국내 약 180여 개 건축물을 설계했지만, 그가 직접 벽화를 남긴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알빈 신부는 1937년 한국 선교사로 연길수도원에 파견됐다. 그는 1946년 중국 공산 당국에 의해 두만강변 남평수용소에 투옥된 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1949년 독일로 추방됐다. 1961년 왜관수도원으로 재파견된 그는 왜관수도원에서 약 4㎞ 떨어진 베타니아원 언덕 위 가장 높은 곳에 삼청공소를 지었다. 그리고 제단 벽면에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그렸다. 참 행복은 세상이 아니라 주님께 위로를 받는 것이며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6ㆍ25 전쟁 후 북한 덕원 땅에서 남한 왜관에 정착한 성 베네딕도회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도원이었다. 당시 왜관에서 전기와 수돗물은 드문 사치품이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대중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심화시키는 ‘비천한 사도직’이었다. 그 대상자 중 가장 빛나는 이들이 바로 한센인이었다. 삼청공소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눈먼 이들에게 빛이 되기’ 위해 덕원과 연길, 왜관수도원에 파견된 세 명의 선교사가 가장 버림받은 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군 신앙 공동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4.28

유튜브에 이단 신천지 강좌 판친다 새해 들어 ‘이만희 신격화’ 온라인 강좌 연이어 게시… 이단 영상 ‘사용자 차단’ 설정 권고 신천지가 유튜브를 통해 하고 있는 온라인 성경 세미나 강좌에서 자신들의 교리를 전하다 느닷없이 교주 이만희가 약속의 목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 성전(이하 신천지)이 유튜브 세미나 강좌를 통해 교단의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비밀리에 이단 특유의 잘못된 가르침을 내세워 사람들을 꾀어온 신천지 교리의 실체를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교리는 결국 교주 이만희가 ‘약속의 목자’이며, 다른 교회는 악마라는 내용으로 귀결된다. 이를 접한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신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신천지는 새해부터 3~5일 간격으로 공개강좌를 유튜브에 꾸준히 게재하고 있다. ‘천국 비밀 비유와 실상 증거’란 제목의 24강짜리 교육 영상들이다. 센터에서 신도들에게 주입해오던 과정이다. 2월 9일 현재 10개 강좌가 버젓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교주 이만희의 첫 강의를 시작으로 자칭 최고라는 센터 강사들이 등장해 성경 속 비유들을 설명해주고 있다.“두 가지의 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과 마귀의 신입니다. 신천지는 성경에 약속된 말씀 그대로 창조된 하나님의 창작물입니다.” 강사들은 시종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교리를 전한다. 전통 신학적 근거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모두 만들어낸 논리들이다. 악마로 대변되는 다른 교회들로부터 신천지가 핍박을 받고 있다고 강조하는 강사들은 “마귀의 역사를 따르는 이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인 양 이야기하지만, 그들은 말씀을 절대 증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신천지가 가장 강조하는 요한 계시록(요한 묵시록)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예수님이 나타나신 초림 때 사람의 계명이 나왔지만, 당시 하나님의 계명은 지켜지지 않았다”며 “신학의 예언은 재림 때에야 성취되며, 주님께서 보내신 사자인 ‘약속의 목자’만이 직접 보고 들은 말씀을 증거한다”고 가르치고 있다.자신들이 만든 약속의 목자는 교주이며, 심지어 이 부분을 설명할 때엔 대놓고 이만희 사진을 띄운다. 오늘날 약속의 목자가 증거할 시기가 ‘재창조 계시 시대’라는 것이다. 이처럼 황당무계한 이론을 전하는 신천지 영상들의 조회 수는 십수만 회에 이른다.신천지는 지난해 이만희가 구속 상태에서 풀려난 이후 온라인 및 오픈 전도전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면의 어려움이 지속되자, 비대면으로 결속을 다지는 것이다. 심지어 뜻있는 목사들의 합류도 요청한다. 성경 말씀을 익히는 선한 도구로 온라인 매체를 이용하는 이들의 주의를 흐리는 신천지와 이단 영상들은 계속 올라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단들의 잘못된 강좌로 얼룩진 유튜브 영상이 뜨지 않도록 해당 채널로 들어가 ‘사용자 차단’을 설정할 것을 권한다.이단 상담 전문가는 “온라인 강좌로 내부를 결집하고, 밖으로는 자신들의 말씀 전파를 정당화하는 것”이라며 “본래 성경 가르침과는 어긋나는 한계점을 오히려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한국천주교유사종교대책위원회 위원장 이금재 신부는 “주님 안에서 사랑과 친교를 나누고, 서로 돕는 주님 가르침은 온데간데없고, 자신들의 사상을 믿지 않으면 천국에 이를 수 없다며 천국의 비밀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교리 자체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짜 맞춘 교리를 전한다고 신천지가 온라인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그들의 민낯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 평화신문2022.02.16

그리스도인의 보호자, 성령[가톨릭영상교리](8) 성령 성령은 늘 교회 안에 머물러 계시지만 바람과도 같아 느낄 수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성령은 바람과 물, 불꽃 모양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때로는 구름과 빛,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진은 조토 디 본도네 작 ‘불타는 떨기나무 앞의 모세’. 출처=가톨릭굿뉴스 우리는 하느님을 어떻게 만나 뵈올 수 있을까요? 특별히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 중에 어느 위격의 하느님과 가장 가까울까요?성경을 통해 성부 하느님과 성자 하느님은 어느 정도 만나고 알 수 있습니다. 그 말씀을 잘 따르지는 못해도 말입니다. 하지만 성령 하느님을 생각하면 어떤 분이실지 약간은 어렵습니다. 딱히 말씀이 많으신 것 같지도 않고, 교회 안에 머물러 계신다는데, 꼭꼭 숨어 계신지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고, 그럼에도 가까이, 아주 가까이 계신 것 같고…. 그래서 오늘은 성령 하느님, 성령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성령은 거룩한 하느님의 영입니다. 마치 바람과도 같아 눈으로 볼 수 없고 느낄 수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바람과 물, 불꽃의 모양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구름과 빛, 비둘기의 모양으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은 언제나 우리 곁에 머무르시며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성경에 등장하는 성령성경에서 우리는 극적인 순간에 함께하시는 성령을 만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을 전해 줍니다. 그러고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1,35)성령은 또 예수님 곁에 머물면서 하느님의 계획을 함께 이루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 전에 제자들에게 ‘보호자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요한 14,17)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그리고 부활하신 뒤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며 제자들에게 약속하셨던 당신의 성령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성령을 받아라.”(요한 20,22) 성령과 함께 제자들을 파견하신 이때부터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명은 교회의 사명이자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 됐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성령의 7가지 은사와 9가지 열매성령께서는 제자들에게 ‘보호자’가 되셨듯이 세례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늘 곁에서 보호해 주시고 은총을 내려주시며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성령은 하느님의 사랑 그 자체인 삼위일체의 생명, 새로운 생명의 은총을 부어주심으로써 지혜, 통찰, 식견, 지식, 용기, 공경, 경외(성령 칠은)를 통해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갈 힘을 주십니다.이러한 하느님 은총의 선물을 통해 우리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의 열매를 맺을 수 있으며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가 거행하는 모든 성사의 효력을 보장해 주시고, 진리를 믿거나 가르치는 데 그르침이 없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우리와 교회 안에 머무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만민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여 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도록 이끌어 주고 계신 것입니다.그러면 우리는 이 성령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진하게 만날 수 있을까요?당연히 전례와 기도, 묵상을 통해서입니다. 몸과 마음을 모아 가만히 그 안에 잠기다 보면 나를 한시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계시며 나에게 끊임없이 용서와 위로와 격려와 용기를 주시는 그분을 분명히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꼭꼭 숨어 있는 쪽은 성령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였는지 모르니까요.자, 이제 잠시 우리의 모든 순간과 교회가 하는 모든 일을 보호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성령 하느님께 기도해 보겠습니다.“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오소서, 성령님.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또한 온 누리가 새롭게 되리이다. 아멘.”(“일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 중) cpbc2022.06.02

수묵채색화로 보는 순교자들의 행적서소문 역사박물관 기획전, 고 탁희성 화백 작품 10월 2일까지 전시 절두산 순교(1969-1970, 탁희성).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관장 원종현 신부)의 기획전 ‘닫힌 시대, 열린 열정’이 10월 2일까지 개최된다.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아 기획된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천주교회사의 주요 사건들과 순교자들의 행적을 고 탁희성(1915~1992) 화백의 수묵채색화 20여 점과 함께 선보이고 있다. 탁 화백은 한국천주교회사 연구를 지속하며 성화 제작에 몰두해 온 작가로, 역사적 배경이 된 지역을 직접 답사하고 스케치하는 등 면밀한 사전 작업을 거친 그의 작품은 교회사를 입체적으로 담아낸 역사화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도 주어사 강학회나 명례방 초기 종교집회도를 비롯해 김대건 신부 새남터 순교 행렬, 남종삼·홍봉주 서소문밖 형장 행렬 등이 사실감 있게 묘사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와 함께 18세기 후반 서학을 수용한 진보적인 지식인들에 의해 깊이 연구되었으며, 학문을 넘어 신앙으로 나아가는 데 가교 역할을 했던 「천주실의(天主實義)」, 「칠극(七克)」 등 ‘한역교리서(漢譯敎理書)’도 전시되어 있다.임민정 학예연구사는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기해박해, 병오박해, 1866년부터 1874년 병인박해까지 시기별 관련 사건과 유물을 공간적으로 함께 엮어 전시했다”며, “유교 사회의 엄격한 신분질서 등이 지배했던 ‘닫힌’ 시대 속에서, 그 틀을 벗어나 사고하며 나아가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자 자신의 목숨마저도 내놓았던 이들의 ‘열정’을 돌아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예수회 디아즈 신부가 1636년 북경에서 쓴 복음해설서의 한글 번역본인 「성경직해」 완질 9권도 올해 기증받은 후 처음으로 공개되고 있다. 당시 교인들 사이에서 필사본으로 전해져 오다 1892년 교구장 뮈텔 주교가 보완해 간행한 활판본이다. 원종현 신부는 “이번 전시가 서소문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에게는 영적 위안으로 다가가고, 천주교 신자가 아닌 분들께는 우리 사회의 한 구성인 그리스도교 문화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전시는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문의 : 02-3147-2401,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cpbc2022.09.20

성 니콜라오 주교 (12월 6일)270?~341년쯤, 리키아 출생, 주교, 산타클로스 니콜라오 성인은 대중에게 산타클로스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성탄절 때마다 어린이에게 베푼 자선과 사랑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신터클레스(Sinter Claes)라고 불린 성인이 본격적으로 산타클로스(Santa Claus)로 알려진 건 네덜란드계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미국에 정착하면서입니다. 이들은 성인의 축일에 어린이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관습을 소개하고, 이를 성탄 전야 행사와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산타클로스의 붉은색 옷도 사실은 성인이 입던 빨간색 주교 복장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성인은 오늘날 지중해 연안 튀르키예 남서부 지역에 해당하는 소아시아 리키아 지방의 항구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인의 생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인은 전설과 비공식 전기 등을 통해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성인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에 헌신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더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사제가 될 결심을 할 정도로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성인이 사제품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미라의 주교가 선종했습니다. 주교들은 후임을 찾기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밤,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일 아침 성당에 맨 먼저 들어오는 ‘니콜라오’라는 자를 뽑아라.” 실제 다음 날 아침 성당에 기도를 하러 갔던 성인은 영문도 모른 채 주교로 축성됐습니다. 그러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성인은 10여 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성인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가 선포된 뒤에야 풀려나 본격적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성인의 선행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어떤 아버지가 가난 때문에 세 딸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지 못해 매춘부로 넘겨야 할 곤경에 처했을 때 일입니다. 이를 안 성인은 몰래 창문으로 돈을 넣어 주어, 위기를 면하게 해주었습니다. 또 기근이 든 어느 해 고약한 백정이 아이 셋을 살해한 후 소금에 절여 먹거리로 팔려고 하자 성인이 나서 어린이들을 구해냈다고 합니다. 기적도 있습니다. 기근 당시 식량을 가득 실은 여러 척의 배가 폭풍우에 밀려 미라 해안으로 떠밀려왔습니다. 성인은 각 배의 선장에게 식량을 기증해 달라고 간청해 굶주리는 이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출항 후에 식량을 살펴본 선원들은 그 양이 이전과 비교해 전혀 줄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놀라워했습니다. 이 외에도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사형에 처할 뻔한 세 명의 청년을 구해주었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꿈에 나타나 모함을 받은 고관들을 위기에서 건져낸 일도 있습니다. 또 물에 빠진 선원들을 여러 번 기적적으로 구해내기도 했습니다.성인은 교회 미술에서 주로 한 손에 세 개의 황금 구슬이 놓인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성인이 행한 선행과 기적을 의미합니다. 또 비슷한 이유로 어린이와 누명 쓴 죄수, 폭풍우에 갇힌 뱃사람, 항해사, 어부, 여행자 등 다양한 계층 사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cpbc2022.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