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지식인 사랑 한몸에 받은 「칠극」,현대인에게도 깊은 울림 전하길칠극 / 정민 옮김 / 김영사 18세기 후반, 조선에 천주학이 들어오기까지 꾸준히 읽히며 당대 지식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책이 있다. 예수회 소속의 스페인 선교사 판토하(1571∼1618, 중국명 방적아) 신부가 쓴 「칠극」이다. 1614년 첫 출간 후 350년 후 마지막 판본이 나오기까지 꾸준한 독자층을 보유한 책으로 인간을 둘러싼 7가지 병든 마음과 이를 치유하는 7가지 처방이 담겼다. 판토하 신부가 중국에 체류한 기간은 19년이었지만 중국어 구사력이 탁월했다. 그는 「칠극」을 저술하고 중국 사대부들의 극찬을 받으며 한학가 반열에 오른다. 서양의 천주교와 동양의 유학이 만나 탄생한 ‘인생 수양서’로 꼽히는 「칠극(七克)」(김영사)을 우리 시대 대표 고전학자 정민(베르나르도,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번역, 우리말로 출간했다. 「논어」의 7배로 한자로는 총 8만 2590자의 방대한 대작이다. 우리말 번역서는 700쪽 분량이다. “「칠극」이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준 영향과 파급력은 상당했습니다. 「칠극」은 사실 「천주실의」보다 천주교 사상을 전달하는 데 더 결정적인 텍스트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양대 연구실에서 만난 정민 교수는 “코로나가 강타한 동안 외부와 접촉을 끊고 책을 번역하며 정서적 위안을 얻었다”면서 “칠극은 일반적인 수양서, 교양서로도 훌륭하지만 신앙 서적으로도 훌륭한 책”이라고 말했다.정 교수는 지난해 5월부터 본지에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를 연재하며 다산 정약용의 천주교 관련 문헌을 들여다보게 됐고, 칠극의 원문에 담긴 잠언풍 가르침에 매료되면서 번역하게 됐다. 다산에게도 「칠극」은 생애 전반을 함께한 책이었고, 천주교와 무관한 연암 박지원 등 조선 후기 문장가들의 글에서 「칠극」의 비유와 표현이 속속 등장한 것도 정 교수의 흥미를 끌었다. 그러나 기존에 나온 「칠극」의 번역서들도 있지만 원문과 멀어진 오역은 아쉬웠다. 이 책이 원문과 대역한 최초의 번역서는 아니지만 고전학자의 번역서인 만큼 그 학술 가치로는 첫 자리에 놓을 만한 결과물이다. 정 교수는 1년 동안 칠극의 각종 판본을 찾고, 기존에 나온 2종 번역을 참고하며, 잘못되거나 찾지 못한 것을 바로잡았다.“중국에도 칠극의 번역본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원문만 나와 있죠. 판토하 신부가 한문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라틴어 원전도 없어요. 제 번역을 영어로 번역하면 서양어권에 최초의 칠극이 전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칠극」은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이 천주학과 접속한 유력한 통로였다. 판토하 신부는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7가지 마음의 병과 이에 따른 7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교만에 맞서는 겸손’, ‘질투를 이기는 사랑’, ‘탐욕을 없애는 관용’, ‘분노를 가라앉히는 인내’, ‘식탐을 누르는 절제’, ‘음란의 불길을 식히는 정결’, ‘나태를 깨우는 근면’이 각 증세에 따른 처방이다. “성호 이익이 칠극을 읽고 ‘유가의 극기복례와 다를 바 없다’고 했습니다. 유교의 기본 윤리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이지요. 극기라는 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 세계를 극복해 복례, 즉 ‘예’인 상태로 회복하는 겁니다. 성호는 칠극을 ‘서양의 극기복례 버전’이라고 본 것입니다.”칠극은 어록체 산문으로 구성돼 있다. 논어를 읽는 느낌이다. 동양 사회에 서학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던 비결이 이 서술 방식에 있다. 정 교수는 “기존의 「논어」와 「맹자」는 주제에 상관없이 공자와 제자가 주고받은 이야기를 순서 없이 적었지만, 칠극은 서양식의 연역적 사유로 일곱 가지 죄종을 극복하는 단계를 체계적으로 집중 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판토하 신부는 아우구스티노, 그레고리오, 베르나르도 등 서양 중세 성인과 그리스 철학자들의 잠언과 일화, 이솝 우화와 중국 고전도 인용해 동양의 유교적 지식인들에게 친밀도를 높였다. 교리를 직접 전달하기 위한 교리서라기보다 서양인의 수양론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겉으로 종교적 색채는 드러나지 않지만 154회에 달하는 성경 구절 인용은 성경의 의미를 내재화하기에 충분하다. 정 교수는 “일반 독자들이 이전 번역을 통해서는 칠극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번역도 그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렸을 때에는 성가 ‘하느님의 어린양’을 ‘천주의 고양∼’ 이라고 불렀어요. 초등학생 때였는데 할머니에게 ‘고양이 뭐에요?’ 했더니 할머니도 모르니까 ‘천주께서 고양이를 좋아하신다’는 말씀이라고 했어요.(웃음) 천주의 고향의 오자라고 생각했죠. 고양은 ‘어린 양’을 뜻하는데 ‘염소 고’에 ‘양 양’ 자를 쓴 거예요. 중국 한자를 번역해서 쓴 거죠. 염소 고는 지금 쓰는 말이 아닙니다.” 「칠극」 서문에는 명나라 정치가, 문인, 학자들의 찬사로 가득하다. 학자 양정균은 “훌륭한 이치와 오묘한 뜻이 마음을 깨어나게 하고 눈을 열어준다”고 썼고, 문인 진량채는 “뼈를 찌르고 마음을 뚫는다”고 표현했다. 정 교수는 “바깥세상은 위험이 상존하고, 불안한 내면은 늘 요동친다”며 “바른 삶의 자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한다”고 서문에 썼다.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05.25

탄소 배출만 줄이면 생태계 문제 해결할 수 있을까[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2.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1)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학중심주의 해결책은 지구 환경 오염을 해결하기 위한 근원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탐욕을 버리거나,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으면 무분별한 개발과 이에 따른 환경오염이 지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진은 한 소년이 파키스탄의 쓰레기장을 걷는 모습. 근자에 교황직에 오른 세 교황(성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은 여러 회칙들을 반포해 후기 산업사회가 직면한 문명의 위기들을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해법을 제시해 왔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잇따라 발표한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 「모든 형제들」 회칙을 통해 필자가 전술했던 세 가지 위기, 즉 인간 정체성의 위기, 사회 공동체의 위기, 그리고 지구 생태계의 위기를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시한 ‘삼 생태론’이 시대의 위기에 해법을 제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독특한 관점은 ‘집’이라는 차원에서, 지구환경과 인간 정체성과 사회 공동체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집’이란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휴식을 제공하는 거처이다. 그토록 소중한 ‘집’이 처하게 된 위기란 나, 우리, 그리고 모든 생명체의 생존과 관련이 있어 관심을 두고 가까이 들여다보게 된다. 이런 면에서 교황은 우리에게 닥친 위기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시켜 주었다. 교황이 언급한 ‘집’의 개념은 구약성경에서 그 신학적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인간인 아담을 만드시고, 아담의 배필로서 하와를 창조하셨다. 이를 신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의 집을 창조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세 가지 차원의 창조를 ‘삼 생태론(Ecology)’ 즉,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하신 ‘인간 생태’, 인간 공동체의 ‘사회생태’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을 포괄하는 ‘환경생태’란 개념으로 말한다.‘생태론’이란 영어로 Ecology인데, 이것은 희랍어 Oikos(Eco) + Logos(logy)의 합성어로, 어원적으로 ‘집에 대한 질서’, ‘집에 대한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Oikos(오이코스)는 ‘집’이란 뜻이며 Logos(로고스)는 의미, 질서 원리 등을 나타낸다. 따라서 서양어의 생태론(Ecology)이란 용어에는 이미 ‘집’이라는 개념 자체가 포함돼 있다. 즉 생태론의 어원적인 의미는 집에 대한 질서인데, 이것을 창세기에 적용하면 하느님의 창조 질서는 의미론적으로 이 ‘세 가지 차원의 집에 대한 질서’, 즉 ‘삼 생태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이를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보면, 첫째 인간 생태에서 영과 육으로 이뤄진 단일한 존재, 육화된 영인 인간은 하느님이 거처하시는 ‘성스러운 집’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세 1,27)함은 인간이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하느님의 모상’, 곧 ‘하느님의 집’임을 드러낸다. 이에 대해 「간추린 교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당신과 관계를 맺도록 창조한 인격체이므로 인간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만 생명을 얻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109항) 이런 관계 안에서 인간은 ‘하느님이 특별한 방식으로 현존하는 집’이며, 하느님을 드러내는 모상이다. 둘째, 사회 생태에서 인간 공동체는 ‘상생의 집’이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주겠다”(창세 2,18)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홀로 두시지 않고 서로 관계를 이루도록 배려하셨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그것은 단순히 개체나 무리의 집합소가 아니라 인격을 주고받으며 그 목적을 완수할 수 있도록 서로 보호하고 상생하는 공동체 구성원의 삶의 터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는 목적은 서로가 서로에게 ‘상생의 집이 되어주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환경 생태’는 인간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어울려 서로 조화롭게 상생할 수 있는 ‘공동의 집’을 의미한다. 창세기 첫 구절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창세 1,1)함은 하느님께서 모든 생명체에게 ‘터전으로서의 집’을 마련해 주셨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창세기에서 말하는 창조의 핵심은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토대와 터전 그리고 관계로 이루어진 집의 창조라고 말할 수 있다. 세 가지 차원의 집에 대한 질서이러한 삼 생태론을 기반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 가지 차원의 집에 대한 질서’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통합생태론’을 주창했다. 교황의 통합생태론적인 관점은 오늘날 전개되는 과학기술만능주의적인 사고에 근거해 지구 환경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단견적이고 제한적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러한 사고에 의하면 지구 환경의 문제는 단지 탄소 배출만 줄이고, 환경오염적 요소만 제거한다면 곧바로 생태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위해서는 세 가지 차원의 집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탐욕과 사회적 빈부격차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무분별한 개발이 중지될 수 없고, 결국 환경오염이란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우리 시대의 위기 극복의 방향은 ‘세 가지 차원의 집에 대한 질서’와 이 ‘집’들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깊이 되새기는 데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cpbc2021.12.01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9. 여행지 : 세례성사](//cpbc.co.kr/CMS/newspaper/2022/01/rc/816631_1.2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9. 여행지 : 세례성사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깨닫지 못했어도, 세례성사의 은총을 받아 이미 하느님의 자녀로서 영적으로 다른 차원에 들어선 것입니다. 세례 때 받은 ‘성화의 은총’으로 우리는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모습’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난 이 은총은 어떤 것입니까? 만약 내가 대통령의 자녀로 태어난다면, 나는 얼마나 영광을 누리며 살아가겠습니까? 내가 대통령(인간)이 아닌 하느님(신)의 자녀가 된다면, 내가 누리는 그 은총과 영광은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분은 어느 인간도 자기 자녀에게 선물하지 못하는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주실 수 있으니까요. 그럼 ‘세례성사’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 여행※세례성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 세례성사의 예표에 해당하지 않는 것은? ①노아의 방주 ②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감 ③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 강을 건넘 ④이스라엘 백성이 만나를 먹음2. 물이 상징하는 것은 정화와 □□을 부여함이다. 3. 예수님께서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세례를 받으셨는가? 4. 세례성사의 은총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는데, 어떤 죄와 어떤 죄인가? 5. 세례성사의 대상자는? ①대죄가 없는 사람 ②부모의 동의를 받은 사람 ③종교가 없는 사람 ④세례를 받지 아니한 모든 사람 6. 생명이 아주 위급할 때는 누가 세례를 줄 수 있는가? ①열심한 신자 ②견진을 받은 신자 ③세례를 받은 신자 ④신자가 아닌 누구라도 7. 세례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예식은? ①세례식 ②기름 바름 ③흰옷 받음 ④촛불 받음 답란1. □번 2. 생□3. □르□강, 요□ 세례자 4. □죄, □죄 5. □번 6. □번 7. □번(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 가이드 설명1. 세례성사의 예표 노아의 홍수에서 물은 죄를 없애고 새로운 삶을 탄생시키기에, 노아의 방주는 세례를 통한 구원의 예표로 볼 수 있습니다.(창세 7―9장; 1베드 3,20-21)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너감은 세례로 이루어지는 해방, 죄로부터의 해방과 하느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예고합니다.(탈출 14장)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 강을 건넘으로써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약속한 땅을 선물로 받기에, 이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는 세례를 예표한다고 볼 수 있지요. 2. 물의 상징 세례성사 때 물을 사용하는 것은 물이 상징하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물은 노아의 홍수에서 보듯이, 모든 것을 씻어버리지요. 또한 우리의 몸을 깨끗이 해주며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정화(淨化)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물은 생명을 부여합니다. 물은 갈증을 해소해주고, 생명을 유지시켜 주지요. 물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며, 모든 생물체는 물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3. 예수님의 세례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베푸는 요한 세례자를 찾아가 자청하여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지만, 그렇게 하신 것은 당신의 비우심을 나타내며(필리 2,7), 요한의 세례를 인정하신 것이고, 우리 모두에게 세례의 모범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라고 세례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4. 세례성사의 은총 세례성사로 모든 죄, 곧 원죄(첫 사람이 지은 죄)와 본죄(자기 본의로 지은 죄), 그리고 모든 벌까지도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탄생합니다. 이로써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게 되지요. 그리고 세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한몸이 되어 정식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또한 인호(印號, 지워지지 않는 영적인 표지)를 받아 영원히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지요. 5. 영세 대상자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세상 모든 사람이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법에서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모든 사람만이 세례를 받을 수 있다”(제864조)고 하지요. 세례는 일생에 한 번만 받을 수 있고, 동물에게는 세례를 줄 수 없습니다. 6. 임종 세례(비상 세례, 대세) 세례의 일반적인 집전자는 주교, 사제, 부제입니다. 그러나 아주 위급한 상황일 때는, 정규 집전자를 대신하여 예식을 생략하고 세례를 베풀 수 있습니다. 이를 임종 세례(비상 세례, 대세)라고 하지요. 이때 신자가 아닌 누구라도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단 세례를 받는 자는 가톨릭 신앙의 중요한 4대 교리를 받아들이고, 어떤 형태든지 세례를 받을 의향을 표시하고, 그리스도 계명을 지킬 것을 약속할 수 있어야 하지요. 세례를 준 후에는 영세자의 소속 본당에 즉시 알려야 합니다. 참조) 가톨릭 4대 교리: ①천주존재 ②삼위일체 ③강생구속 ④하느님의 심판과 영생7. 세례 예식 세례성사 예식은 짧게 또는 길게 할 수 있지만, 다음의 내용이 꼭 들어가야 합니다. △첫 질문(믿음을 확인함) △말씀 전례 △구마기도, 예비 신자 성유 도유 및 안수 △세례수 축복 △끊는 예식과 신앙 고백 △세례식 △기름 바름 △흰옷과 촛불 받음이 중 가장 중요한 예식은 죄에 대해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는 것을 상징하는 세례식입니다. 흰옷은 영세자가 그리스도를 옷 입음(갈라 3,27)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였음을 상징하고, 부활초에서 불을 붙인 촛불은 영세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빛’이 됨을 나타내지요. 여행 옵션 / 요르단 강과 예수님 세례터 (이스라엘)요르단 강은 팔레스티나에서 가장 길고 크며, 세계에서 수면이 가장 낮은 강이다. 갈릴래아 호수를 지나 사해로 흘러들어 가는 요르단 강이 현재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국가 경계선이 되고 있다.예수님께서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셨는데, 성경에는 베타니아(요한 1,28)와 살림에서 가까운 애논(요한 3,23) 지역으로 나온다. 이곳에 대한 고고학 발굴이 이루어져, 요르단 강 동편 페래아 지역에서 4~7세기 비잔틴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세례터를 갖춘 수도원 흔적을 찾아내었고, 이 일대에서 예수님 시대의 마을 유적을 발굴했다. 이 사진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은 곳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교황으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예수님 세례터를 방문, 이곳을 성지로 선포했다.여행 기념품내가 세례성사를 받은 것은 나의 선택이라기보다는 하느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하느님께서는 이미 나를 선택하시어, 내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무것도 아닌 나를 사랑하셔서 뽑아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리고 있습니까? 선택된 하느님 자녀로서의 자존감, 품위와 존엄과 영예를 지니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세례성사의 은총을 살아가고 싶습니까?마리 파울리타 수녀 (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2.01.05

하느님 말씀과 공동체의 기도로 구성된 전례[미사의 모든 것] (15)말씀 전례 말씀 전례의 중심 부분은 성경에서 뽑은 독서들과 그사이에 오는 노래로 이뤄져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나처음: 미사를 주례하는 사제가 입당하는 것에서부터 인사하고, 참회한 후 자비송과 대영광송, 본기도를 바치는 것까지가 미사의 시작 예식이라고 했는데, 그럼 그다음부터가 미사의 본 예식인가요. 조언해: 맞아. 시작 예식이 책의 서론이라면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가 본문이고, 마침 예식이 맺는 글이지. 신부님, 제가 교리 시간에 배우기에는 지금 우리가 하는 미사의 말씀 전례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명칭과 구조, 집전 장소, 내용 등 대부분이 바뀌었다고 하던데 맞죠? 라파엘 신부: 그래. 말씀 전례는 하느님의 말씀과 공동체의 말로 구성된 전례를 의미해요. 말씀 전례의 중심 부분은 성경에서 뽑은 독서들과 그사이에 오는 노래로 이루어져 있단다. 이어지는 강론과 신앙 고백, 보편 지향 기도로 말씀 전례는 끝맺지. 말씀 전례를 이해하거나 참여할 때 정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말씀’이 단지 독서, 복음, 강론 등 하느님의 말씀만 일컫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야. 화답송, 복음 환호송, 신앙 고백, 보편 지향 기도 등 공동체의 노래와 기도도 중요한 말씀이란다. 그래서 말씀 전례는 하느님의 말씀과 공동체의 말과 기도로 구성된 전례임을 잊지 말아야 해.나처음: 하느님의 말씀과 공동체의 말이 말씀의 전례 안에 담겨 있다면 성경 대신 신자들에게 유익한 글이나 감동적인 시를 읽어도 되나요?조언해: 처음이 넌, 가끔 ‘캠린이’(캠핑과 어린이 합성어, 캠핑 초보를 뜻함) 같은 소리를 하더라. 나랑 함께 그렇게 성당에 다녔어도. 말씀 전례의 핵심은 하느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야. 잘 듣고 묵상해서 그 말씀에 대해 감사와 찬미를 기도로 드러내는 시간이 바로 말씀 전례야. 그래서 말씀 전례 때 하느님의 말씀을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거야. 라파엘 신부: 미사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는 가톨릭교회의 공식 제사란다. 미사를 봉헌하는 가운데 신자들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 사업을 찬미하고 나아가 우리 또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른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임을 다짐하지. 따라서 우리의 청을 드리는 것보다, 우리의 인간적인 감동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한다면 미사 중에 하느님 말씀인 성경 대신 다른 글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을 거야. 만일 신자들끼리 인간적인 나눔을 원한다면 미사에서가 아니라 다른 기회를 찾아야 할 거야. 미사는 결코 인간끼리의 친교에만 초점을 맞춘 잔치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해. 조언해: 교회 안에서 성경이 봉독될 때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며,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하신다고 배웠어요.라파엘 신부: 그래 아주 잘 알고 있구나. 말씀 전례 중 봉독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시는 것이기에 무엇보다 우리는 그 말씀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단다. 그래서 독서자와 부제와 사제가 하느님 말씀을 봉독할 때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성경 내용을 따라 읽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조언해: 그래서 교회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선포하는 공동체’라고 하잖아요. 라파엘 신부: 그래! 오늘 언해가 교리교사의 참모습을 보여주는구나. 교회는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지 않고 복음으로 살아가며, 복음으로부터 언제나 새로이 자신의 여정을 위한 방향을 찾아내지. 그래서 교회를 ‘말씀의 집’이라고 표현해. 무엇보다 거룩한 전례 중에 가장 주의 깊게 하느님 말씀을 들어야 해. 좀 전에도 말했듯이 전례는 하느님께서 현재 우리 삶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듣고 응답하는 당신 백성에게 오늘 말씀하시는 장소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미사 독서 목록 지침」은 “전례 거행은 바로 하느님 말씀의 지속적이고 충만하고 효과적인 선포가 됩니다. 그러므로 전례에서 끊임없이 제시되는 하느님 말씀은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살아 있고 힘 있는 말씀이 되며,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냅니다”(4항)라고 가르친단다.나처음: 말씀 전례는 성찬례처럼 처음부터 미사 때 도입되었나요?라파엘 신부: 좋은 질문이야. 주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이 이끈 초세기 교회 때나 사도들의 제자들인 교부 시대 미사 때에 성찬 전례 앞에 말씀 전례가 있었는지는 아직 정확히 규명되고 있진 않단다. 신약성경에 그 흔적은 보이지만 직접적인 자료는 없어요. 루카 복음 24장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의 이야기’(13-35)가 그 가능성에 대해 증언하고 있지. 내용을 보면, 먼저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모세와 예언자들의 기록에서부터 시작해 성경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설명해 주시지. 이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지. 우리는 여기서 이 이야기 구조가 미사의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의 형식을 띠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 나처음: 흥미롭네요. 다른 예는 없나요.라파엘 신부: 바오로 사도께서 트로아스에서 주간 첫날에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던 장면(사도 20,7-12)에서 확인할 수 있단다. 바오로 사도께서 자정까지 밤이 깊도록 신자들과 대화를 나눈 후 빵을 나누고 다시금 날이 밝기까지 이야기를 계속했다는 증언인데 여기서 대화 부분은 말씀 전례에, 빵 나눔은 성찬 전례에 해당한다고 전례 학자들은 보고 있지. 그러나 이 두 가지 예형 모두 어디까지나 말씀 전례의 가능성만 제시할 뿐 직접적인 증거는 되지 못해요.조언해: 그러면 말씀 전례가 미사 중에 도입된 직접적인 기록은 언제부터 나타나죠. 라파엘 신부: 말씀 전례에 관해 처음으로 언급한 문헌은 155년께 쓰인 유스티노 순교자의 「호교론」이란다. 유스티노는 이 책에서 “해의 날(주일)에 도시와 시골에 사는 모든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시간이 허락할 때까지 사도들의 회상록이나 예언자들의 저서가 낭독된다. 독서자가 독서를 마치면 주례가 이 훌륭한 가르침을 본받도록 훈계하고 격려한다. 그다음에 우리는 모두 일어나서 기도를 올린다”고 밝히고 있지. 성찬 전례 앞에 거행된 이 예식은 오늘날 말씀 전례와 거의 비슷하게 독서, 강론, 보편 지향 기도로 구성되어 있어. 아마도 사도들의 회상록은 현재의 신약성경을, 예언자들의 저서는 구약성경을 일컫는다고 봐야겠지. 조언해: 아! 신부님, 이제 생각났어요. 옛날에 예비 신자들은 말씀 전례까지만 참여하고 성찬 전례를 참례할 수 없어서 영성체를 인육을 먹는 것으로 오해를 받아 박해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라파엘 신부: 우리나라 신앙 선조들도 그런 오해로 박해를 받았지. 그래서 과거에는 말씀 전례를 ‘예비 미사’ 또는 ‘예비 신자 미사’라고 부르기도 했지. 이 말은 미사의 본 부분인 성찬 전례를 준비하는 부분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어. 그래서 옛 신자들은 성찬 전례를 ‘본 미사’ ‘신자 미사’라고 불렀단다. 말씀 전례라는 말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미사 경본이나 다른 전례서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단다. 그만큼 하느님 말씀에 대한 인식이 오늘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약했다고 할 수 있지. 이러한 현상을 극복한 것이 바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관해선 나중에 한 번 꼭 이야기해 주마.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cpbc2020.10.28

성경의 세계로 안내하는 길잡이 책들 성서주간을 맞아, 두 신부가 성경으로 초대하는 책을 펴냈다. 의정부교구 이용권(선교사목국 성서사도직 담당) 신부는 구약성경을 50명의 인물 이야기로 풀어낸 책을, 인천교구 신교선(용현5동본당 주임) 신부는 신약성경 입문서를 발간했다. 이밖에 성서주간에 읽으면 좋은 책도 함께 소개한다.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 / 신교선 신부 지음 / 기쁜소식성경 해설서와 신앙 서적을 꾸준히 저술해온 신교선 신부가 신약 성경의 맥을 짚어낸 책이다. 구약 성경 해설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를 펴낸 지 2년 만에 신약 성경 해설서를 발간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생애를 기록한 복음서를 시작으로, 루카의 두 번째 작품 사도행전, 신약 서간과 바오로 서간, 히브리 서간, 가톨릭 서간, 요한 묵시록까지 다뤘다. 신약 성경의 집필 연대와 장소를 비롯해 각 복음서가 지니는 특징 등을 쉽게 소개했다.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는 “많은 분이 성경을 읽기는 하지만,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한다”며 “성경 입문서는 초보 신앙을 걷는 모든 분에게 등대 역할을 해준다”고 책을 추천했다.하느님과 함께 걷는 사람들 / 이용권 신부 지음 / 생활성서구약의 장구한 세월 속에서 하느님을 체험한 인물 이야기 50편을 담았다. 소설이나 허구가 아니다. 위인전도 아니다. 성경 연구 방법론에 토대를 두고, 사회적 배경과 인물의 삶, 심리 상태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복합적으로 정리했다. 1년간 의정부교구 주보에 실었던 글을 모았다. 성경을 펼치면 제일 먼저 만나는 첫 인물, 아담을 시작으로 하느님에게서 도망치는 요나까지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순서에 따라 이야기를 실었다. ‘하느님의 약속과 축복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오경) ‘약함 속에 더 크게 드러나는 주님의 힘’(역사서Ⅰ) ‘말씀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역사서Ⅱ) ‘사랑은 반대받아도 물러서지 않는다’(지혜서, 예언서) 등 4장으로 구성했다.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은 학문적인 연구 서적이 아니라, 성경 독서에 대한 기록이므로 이 책에 머물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 책이 주는 인스턴트 같은 순간의 달콤함에 빠져들지 말고, 참된 생명의 샘터인 성경에 뛰어들었으면 좋겠다고 권고한다.구약 성경 입문 2 / TH.뢰머 외 공저 / 김건태 신부 옮김 /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동방교회에서만 경전으로 인정하는 외경 구약 성경까지 포함한 구약성경 입문서의 두 번째 권. 교파를 초월한 22명의 불어권 성서학자들이 2004년에 펴낸 권위 있는 구약 성경 입문서를 수원교구 김건태(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신부가 번역했다. 1권에 소개된 △오경 △예언서에 이어 2권에는 △성문서 △제2경전 △동방교회의 구약성경 등 5부로 구성됐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2 / 송봉모 신부 지음 / 바오로딸예수회 송봉모 신부의 영적ㆍ신학적 해설이 담긴 요한복음서 강해. 세족례와 첫 번째 고별사를 다룬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1」(요한 13-14장)에 이은 요한복음 산책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이다. 요한복음 15-17장의 두 번째와 세 번째 고별사, 고별기도에 대한 해설과 묵상을 다뤘다. 저자 송 신부는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신약 강의를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성서와 인간 시리즈, 성서 인물 시리즈 등을 펴냈다. 이지혜 기자 평화신문2019.11.20

모든 피조물은 주님의 선물… 겸손히 함께 조화 이루며 보호해야가톨릭교회는 생명을 이렇게 바라본다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모든 피조물을 돌보게 하셨다. 그림은 루카스 크라나흐의 ‘에덴 동산’.“사람은 존경하고 보호할 우선 가치로 더 이상 여겨지지 않습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 장애인, 태아처럼 ‘아직 쓸모없는’ 존재, 노인처럼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라면 더욱 그러합니다.…이는 가장 지탄받아 마땅한 일들 가운데 하나입니다.”(「모든 형제들」 18항) 사람이 버림받고 있다. 태아ㆍ장애인ㆍ노인이라는 이유로 존엄을 부정당하고, 피부색ㆍ종교ㆍ성 정체성이 다르다고 차별당하고 짓밟힌다. 또 가난하고 병들었다고 멸시당한다. 또한, 인류 공동의 집인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 전례 없는 생태계 파괴로 수많은 생명이 멸종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죽음의 바이러스 속에 갇힌 지금, 무엇보다 존중받고 보호돼야 할 것이 ‘생명’이다. 생명 주일을 맞아 가톨릭교회는 생명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 살펴본다. 성경에 드러난 인간 생명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성경은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고 한다.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라며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는 과정을 묘사한다. 집회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어떤 존재로 창조하셨는지를 좀 더 깊이 설명해 준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흙에서 창조하시고 그를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정해진 날수와 시간을 그들에게 주시고 땅 위에 있는 것들을 다스릴 권한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처럼 그들에게 힘을 입히시고 당신 모습으로 그들을 만드셨다. 그분께서는 모든 생물 안에 그들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 놓으시고 그들을 들짐승과 날짐승의 주인이 되게 하셨다. 그들은 주님의 다섯 가지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덧붙여 그분께서는 여섯 번째로 그들에게 지성을 나누어 주시고 일곱 번째로 그분의 능력들을 해석할 수 있는 이성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지식과 이해력으로 그들을 충만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선과 악을 보여 주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마음에 당신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 주시어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보게 하시고 그들이 당신의 놀라운 일들을 영원히 찬양하게 하셨다.”(17,1-8) 하느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실까? 답은 창세기가 밝히고 있듯이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겉모습이 하느님을 닮았다는 게 아니다. 하느님의 본성을 닮았다는 뜻이다.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루카 1,35; 요한 6,69) 거룩한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은 거룩하다. 이 거룩함은 인간이 하느님과의 친교를 통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은총 상태에 있음을 드러낸다. 따라서 인간은 세상 그 어떤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거룩하신 하느님을 통해서만이 구원될 수 있고 그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다. 하느님은 존엄하신 분이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에 존엄하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톨릭교회는 “오직 인간만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인간은 바로 이 목적 때문에 창조되었으며, 이것이 인간 존엄성의 근본적인 이유이다”고 가르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56항) 그리고 교회는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 특히 그리스도인은 모두 그리스도와 같은 모상이 되고(로마 8,29),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요한 1,12; 로마 8,14-17)고 선포한다. 하느님의 선물인 피조물 창세기 1장은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당신의 모든 창조물을 보시고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창세 1,31 참조)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당신의 모든 피조물을 잘 돌보라고 선물하셨다.(창세 1,26-28)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무책임하게 남용하거나 약탈할 권리를 부여하지 않으셨다.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을 절대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땅을 돌보는 것’은 ‘생명을 돌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농부로서의 소명은 자기에게 맡겨진 생명체들을 돌보는 목자의 소명으로 완성된다.”(교황청 성서위원회, 「성서 인간학」 140항) 따라서 인간은 피조물을 보호해야 한다. 가톨릭교회는 자연과 하느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신앙의 본질적인 부분(「찬미받으소서」 64항 참조)이라고 강조하면서 모든 피조물의 의미와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이 서로 의존하기를 바라신다. 해와 달, 전나무와 작은 꽃 한 송이, 독수리와 참새, 이들의 무수한 다양성과 차별성의 장관은 어떠한 피조물도 스스로는 불충분함을 의미한다. 이들은 다른 피조물에 의존하여 서로 보완하며, 서로에게 봉사하면서 살아간다.…모두 동일한 창조주에게서 창조되었다는 점과 모두 다 창조주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모든 피조물은 서로 필요로 한다.”(「가톨릭교회 교리서」 340ㆍ344항 참조)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는 한 하느님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이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함께 보편 가정, 곧 숭고한 공동체를 이루어 거룩하고 사랑이 넘치며 겸손한 존중으로 나아가야 된다”고 권고한다.(「찬미받으소서」 89항) 모든 생명과 조화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피조물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며 사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경탄하시며 하느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아버지로서 맺으신 관계를 깨달으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눈을 들어 저 밭들을 보아라. 곡식이 다 익어 수확할 때가 되었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된다.”(마태 13,31-32)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이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마태 6,26) 예수님께서는 또한 부활하시고 영광스럽게 되시어 모든 피조물 안에 현존하신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온갖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19-20) 이에 가톨릭교회는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더 이상 자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고 하느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신비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가르친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감탄하셨던 들판의 바로 그 꽃들과 새들은 이제 그분의 빛나는 현존으로 충만하게 됩니다.”(「찬미받으소서」 100항)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cpbc2021.04.29

부활의 기쁨, CPBC와 함께 나눠요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가톨릭평화방송 TV와 라디오가 부활의 기쁨을 나누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특별 생중계(TV·유튜브 생중계)파스카 성야 미사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하는 명동대성당 부활 성야 미사를 생중계한다.3일 오후 8시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하는 명동대성당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생중계한다.4일 낮 12시 / 재방송 오후 8시 30분바티칸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례하는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생중계한다.4일 오후 5시 45분 / 재방송 밤 11시부활 특집강우일 주교님과 함께 읽는 모든 형제들(1부)교황 프란치스코의 회칙 「모든 형제들」을 강우일 베드로 주교와 함께 읽으며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본다.4일 오전 7시, 오전 10시김대우 신부의 부활 편지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신자들에게 보내는 모세 신부의 부활 인사! 부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묵상하고 우리 삶 안에서 부활을 살기 위해 필요한 노력들을 생각해 본다.4일 오전 8시, 오전 11시, 오후 8시 / 5일 오후 4시 / 6일 오전 8시허규 신부와 듣고 보는 신약성경역사상 가장 훌륭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드라마!’ 그중 신약성경 속의 부활 이야기를 허규 신부가 친근한 화법으로 시청자들을 만난다.4일 오전 8시 30분, 오전 11시 30분, 밤 10시 / 5일 오후 4시 30분 / 6일 오전 8시 30분CPBC 특별대담 ‘나의 삶, 나의 신앙 : 박용만 실바노 회장’신입사원과 SNS로 활발하게 소통하고 봉사현장에도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두산 박용만(실바노) 회장. 박용만 회장을 초대해 삶과 신앙에 관한 이야기들을 들어본다.1일 낮 12시 / 3일 오전 9시 / 6일 밤 11시 / 7일 오후 4시 주세페 베르디의 레퀴엠2020년 9월 4일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성당에서 열린 코로나19 희생자 추모공연 실황으로 주세페 베르디의 레퀴엠이 세계 정상의 독창자들과 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펼쳐진다.1일 밤 11시 / 2일 오전 7시부활특선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왕관’사제로서 신자들의 영적 성장을 돕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형수를 대신해 순교하기까지 두 개의 왕관을 다 가진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의 헌신적인 삶을 다룬다.2일 밤 11시 / 3일 오후 3시 / 6일 오전 0시 특선영화 ‘구세주’아기 예수의 탄생부터 공생활,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그렸다. 3일 오후 6시 특선영화 ‘부활’한 수도자가 살인범을 용서하고 이끌어주기까지, 고통 속에서 대들고 분노하는 이들도 결코 저버리지 않는 하느님을 깊이 느낄 수 있다.3일 밤 10시 / 4일 오후 2시 특선드라마 ‘예수, 모든 이의 희망’온 생애를 통해 모든 이에게 희망이 되고 있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날 수 있다.4일 오후 4시 40분RADIO 부활 특집 프로그램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 특별 생중계(라디오 생중계)파스카 성야 미사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하는 명동대성당 부활 성야 미사를 생중계한다.3일 오후 8시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하는 명동대성당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생중계한다.4일 낮 12시특집 드라마 ‘부활의 아침’“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각각의 고유한 삶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늘 주님의 곁에서 말씀을 들었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던 이야기. 드라마 ‘부활의 아침’을 통해 들어본다.5일~10일, 12일~17일 오전 7시 30분그대에게 평화를 장환진입니다 2부 신설CPBC 라디오 생활 성가 프로그램 ‘그대에게 평화를 장환진입니다’가 5일부터 2부를 신설해 청취자들을 찾아간다. 오후 2시부터 2시간 동안 생활 성가 속으로 빠져보자.월~토 오후 2시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문채현2021.03.31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2) 여행지 : 전례력](//cpbc.co.kr/CMS/newspaper/2021/11/rc/813509_1.2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2) 여행지 : 전례력마리 파울리타 수녀 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사람들은 해와 달의 변화에 따라 시간과 절기를 구분하여 하루, 한 달, 한 해라는 주기의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자연의 흐름에 따라 달력이 만들어졌다면, 하느님 구원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전례력(교회 달력)이 만들어졌습니다. 달력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이 들어있다면, 전례력에는 대림, 성탄, 사순, 부활, 연중의 전례 시기가 들어있습니다. 달력에 우리나라의 최대 명절인 설과 추석이 들어있다면, 전례력에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축일인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이 들어있습니다. 달력에 우리 가족의 생일이 들어있다면, 전례력에는 우리 가족 수호 성인들의 축일이 들어있습니다. 그럼 ‘전례력’으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 여행전례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 교회 공동체가 교회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드리는 공적 예배는 무엇인가? 2. 전례력은 어느 시기로 시작하는가? 힌트) 예수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 3. 전례 시기에 따라 사제의 제의 색이 달라진다. 성탄 시기와 부활 시기의 제의 색은? 4. 연중 시기는 그해 주님 부활 대축일 날짜에 따라 정해지는데, 몇 주일이 되는가? ①20~21주일 ②25~26주일 ③30~31주일 ④33~34주일5. 전례력으로 마지막 주일은 그리스도의 어떤 모습을 기념하는 대축일인가?6.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 목숨까지 내어놓으신 예수 성심을 공경하는 달은? 7.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기 위해 삼가야 할 일을 고르면? (2가지) ①주일 미사 참여하기 ②가족과 대화의 시간 보내기 ③연로한 친척이나 어려운 이웃 방문하기④노동 및 업무 계속하기 ⑤산책을 하거나 피로 풀기 ⑥늦은 밤까지 즐기기 답란1. □례 2. □□ 시기 3. □색 4. □번 5. □의 모습 6. □월 7. □, □번 (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 가이드 설명1. 교회의 공적 예배‘전례’(典禮, liturgy)라는 말은 ‘공적인 일’, ‘백성들을 위한 봉사’를 뜻하며, 교회 공동체가 교회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예배를 말합니다. 교회가 성경과 성전(聖傳)에 의거하여 정식으로 공인한 의식으로 개인의 신앙생활과는 구별되지요. 전례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미사이며, 그밖에 일곱 성사 및 준성사, 시간 전례(성무일도), 성스런 행렬, 성체 강복식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 등은 대중 신심행위에 해당하지요.2. 전례력의 시작‘전례력’(典禮曆, liturgical calendar)은 교회 전례를 위한 달력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 중 중요한 기념일이나 축일을 수록하여 놓았지요. 그래서 교회력(敎會曆)이라고도 합니다. 1월 1일에 시작되어 12월 31일로 끝나는 일반 달력과 달리, 전례력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시기인 대림 시기(11월 30일경)부터 시작합니다. 이후 성탄 시기, (짧은) 연중 시기, 사순 시기, 부활 시기, (긴) 연중 시기가 오지요. 3. 전례 시기에 따른 제의 색전례 시기에 따라 미사 때 입는 사제의 제의 색이 달라집니다. 이는 거행되는 전례의 특성과 전례력에 따라 우리 삶의 의미가 다름을 나타내는데, 그에 따른 제의 색과 색이 상징하는 바는 다음과 같아요. 4. 연중 시기 연중 시기는 전례력 1년의 주기에서 대림, 성탄, 사순, 부활 시기를 제외한 나머지 시기를 말합니다. 성탄 시기 이후부터 사순 시기 전까지의 ‘짧은 연중 시기’와 성령 강림 대축일 이후부터 대림 시기 전까지의 ‘긴 연중 시기’로 나누어지지요. 이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전교 활동과 가르침 등 공생활에 관한 복음을 읽으며,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기념합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 날짜(춘분 후 보름이 지난 첫 주일)에 따라 전례 시기 날짜가 결정되어, 연중 시기는 33주일 또는 34주일이 되지요. 5.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 전례력으로 마지막 주일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이 축일을 제정하여 그리스도 왕(王)의 의미를 성대히 기리도록 하였지요. 처음에는 10월 마지막 주일에 기념하였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력으로 마지막 주일로 옮겼습니다. 이날 그리스도께서 왕이심을 경축하고,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왕직(봉사직)에 참여하게 되었음을 기뻐하며, 세상이 그리스도 왕의 통치로 다스려질 것을 기원하지요. 6. 성월 성월은 어떤 특별한 지향을 가지고 거룩하게 지내는 특별한 달을 말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7. 거룩한 주일 주일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로 그리스도인은 이날을 안식일(安息日)로 지내야 합니다. 노동이나 업무에서 쉬며, 미사 참여를 통해 창조주 하느님을 생각하며 거룩한 시간을 보냅니다. 평일에 하지 못한 가족과 대화의 시간을 가지거나, 연로한 친척이나 어려운 이웃을 방문하며 의미 있게 보내도록 합니다. 생명력을 낳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며, 산책을 하거나 피로를 풀고, 늦은 밤까지 즐기지 않도록 하여 새로운 한 주를 맞이해야겠지요. 여행옵션: 전례력 도표여행 기념품 신자들의 생활이 일반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 달력이 아닌 전례력 즉 구세사(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따라 일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한 해는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오시는 성탄, 그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으로 시작되며, 전례주년의 정점을 이루는 부활 시기를 향해 나아가지요. 오늘은 교회력으로 마지막 주일인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입니다. 교회력으로 올해 남은 한 주를 어떻게 보내고 싶습니까? 또 새해를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가요? 마리 파울리타 수녀 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11.17

프란치스코,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 깨달아[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인격 그리고 프란치스칸 영성] <66·끝> 프란치스코의 오상과 죽음 성 프란치스코는 십자가를 통해서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을 깨달았고, 자신의 몸에 새겨진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의 상처로 그분과의 완전한 일치와 회복을 이루었다. 지오토, ‘성 프란치스코의 죽음과 장례’, 프레스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16. 프란치스코의 오상과 죽음,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동일화① 프란치스코의 오상과 그 의미성경과 교회 문헌,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이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은 ‘거룩함의 회복’ 혹은 ‘성화’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동일화’ 혹은 ‘그리스도(하느님)로의 변모’이다. 이런 관점에서 프란치스코의 영성은 간략하게 말해서 예수님과 복음의 인격으로의 변모라고 말할 수 있다. 초기 사료 중 하나인 첼라노의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는 프란치스코의 십자가에 대한 신심과 오상 사건을 이렇게 연결 짓고 있다. “‘프란치스코야, 보다시피 다 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수리하여라.’ 프란치스코는 덜덜 떨며 적잖이 놀랐고 이 말에 그는 정신을 잃었다. 그는 복종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이 명령을 완수하려고 자신을 온전히 바쳤다.…그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신 분에 대한 애처로움이 그의 거룩한 영혼에 뿌리를 내렸고, 아직 살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경의(敬意)로운 오상이 그의 마음속 깊이 찍혔음을 경건히 추측할 수 있었다.”(「II 첼라노」 10항)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그것은 바로 화해이자 일치이며 회복이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삼위일체의 온전한 사랑으로 쓰러져 가는 인간의 본성을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그분과 또한 인간 상호 간의 화해를 완성하셨다. 이렇게 본다면 프란치스코가 십자가로부터 하느님 집의 “회복” 혹은 “보수”의 메시지를 들었다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치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매일 바라보며 살아가는 십자가는 이와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혹시라도 우리가 그 소리를 듣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우리가 프란치스코처럼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온 주의와 정성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인지 모른다. 프란치스칸 문학 작품에서 프란치스코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면서 격렬하게 우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누군가가 왜 그렇게 우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사랑이신 분이 사랑받지 못하십니다”라고 대답했다. 프란치스코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명백히 드러나듯이 먼저 사랑을 주신 분, 곧 사랑 자체이신 분이 사람들로부터 사랑의 응답을 불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울었다. 프란치스코에게는 첫째로 ‘육화’가, 두 번째로 ‘창조’가 영성의 중심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프란치스칸 영성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압도적이고도 주도적인 사랑에 응답하는 영성이다.성 프란치스코는 십자가를 통해서 하느님 사랑의 완전한 사랑을 깨달았고, 자신의 몸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의 상처가 새겨졌다는 것은 그분과의 완전한 일치와 회복을 이룬 것이고, 나아가서는 그분이 하나로 모으고자 했던 인간 전체를 포함하는 모든 피조물과의 일치와 회복을 이룬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②성 프란치스코처럼 십자가를 선택한다는 것(변화의 선택)부활 신비의 심장부로서 십자가 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두 가지 목적을 성취하였다. 삶의 최종적인 장애물인 죽음의 개념 자체를 죽음에 부쳤고, 죽음이 지닌 변모와 구원의 체험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목적을 두 가지 방법으로 성취하셨다. 그분은 자기 죽음과 부활로써 죽음과 온 인류의 죄를 이긴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그분은 또한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와의 동일화를 통해서 효율적인 방식으로 그분의 구원하시는 행위를 어떻게 우리의 것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본보기를 보여주셨다.그래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생명을 방해하는 의도들과 행위들을 죽이겠다고 선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 우리가 하느님께서 먼저 주시는 사랑에 사랑의 응답을 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인간적 경향(죄)들을 미워하기를 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루카 복음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9,23)라고 말씀하실 때 의도하신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말한다. “그리스도께 속한 이들은 자신의 육신을 그 격정과 욕망과 더불어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갈라 5,24)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으로 지금까지의 나눔을 간략히 결론짓고자 한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겪는 환난 때문에 낙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환난이 여러분에게는 영광이 됩니다.…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주실 수 있는 분, 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에페 3,13; 16-21) 호명환 신부(작은형제회)cpbc2021.11.17
![[신앙단상]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류지현, 안나, 아나운서·커뮤니케이션 전문가)](//cpbc.co.kr/CMS/newspaper/2021/06/rc/804983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류지현, 안나, 아나운서·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살면서 참 하기 힘든 말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제겐 “노(no, 아니오)”라는 말입니다. 제안하거나 부탁한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면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의미가 헤아려져, “아니오, 안 돼요”란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가 좀 더 수고하면 되지” 하며 고려했다가 버거운 짐에 헉헉대는 경우가 종종 있어, “무리하지 말고 이번엔 단호하게 거절해 보자” 다짐하면서도 실천이 잘 안 되곤 합니다. 얼마 전 번역한 책의 내용 가운데 있었던 “유감스럽지만 거절하라”는 젊은 작가의 조언이 마치 제게 얘기하는 듯 일침을 가하며, “앞으로는 꼭 잘 실천해 보리라” 또다시 마음을 다지게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의 이삭’ 원고 요청에 또 결심이 무너지고 결국 다소곳하게 “예”란 대답을 드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고민이 밀려왔습니다. 결심이 무너진 데 대한 자책감(?)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핑계로 삼고 싶은 이유가 마음에 갈등을 부추겼습니다. 마침 기한을 앞둔 여러 일이 겹치는 시기였고, 사실 유아 세례를 받은 이후 평생 가톨릭 신자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제 신앙의 고백을 만인에게 공개하는 것에 덜컥 부담이 됐습니다.그러다 문득, 인천아시안게임을 준비하던 여러 해 전의 어느 날, “식사 때 늘 성호 긋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한 동료의 얘기가 제 마음에 울림을 주었던 기억이 상기됐습니다. 저의 작은 신앙 표현 하나가 그 누군가에겐 가톨릭 신자에 대한 인상과 영향이 되고, 누구든 어디선가 지켜볼 수 있으니 “늘 당당히 표현하자”라고 책임감을 느끼게 한 경험이었습니다. “맞아. 단 한 사람에게라도 누군가에게 그 작은 울림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나의 소리를 전해야지”란 생각에 이르자 불필요한 염려와 변명이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루카 복음 10장 38~42절에 있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비유’ 말씀이 떠오릅니다. 주님 모실 준비로 분주한 마르타와 달리 주님 말씀을 경청하는 것에만 집중한 마리아에 대해 예수님은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라고 하십니다. 이 성경 구절을 읽을 때마다 혼자 일하고 수고한 마르타의 심정이 되어 마리아가 야속하게 느껴지고 예수님의 판단이 불합리하게 여겨지기도 했었는데, 되새겨 보며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숙고하게 됩니다. “예”와 “아니, 안 돼요”를 현명하게 말하는 것은 결국 그 순간 ‘어떤 것에 집중할까’를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꼭 필요한 그것’을 선택하는 지혜와 함께 말이죠. 그리고 그 지혜는 주님께서 이끌어주시리라는 믿음과 어떻게든 해내도록 하실 거란 하느님 빽을 은근히 믿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것은 ‘하느님 빽에 내어 맡기어 좋은 몫을 선택하는 것’일 뿐,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가장 든든한 힘인지 모릅니다. 평화신문2021.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