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인 일치와 화합 다지고 말씀 일깨우다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과 하느님의 말씀 주일 성 바오로 사도상. 1월 25일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이다.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화와 개신교의 세계교회협의회 신앙직제위원회는 이날을 정점으로 1월 18일부터 한 주간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으로 정하고, 1968년부터 해마다 일치 기도 행사를 열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9월 30일 자의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를 통해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과 맞물려 있는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정하고, 보편 교회에서 해마다 이날을 기념할 것을 선포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하느님의 말씀 주일 거행이 ‘교회 일치’의 중요성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성경은 듣는 이들에게 참되고 굳건한 일치에 이르는 길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교회는 왜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정점으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과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지내고 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본다. 또 하느님의 말씀 주일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도 소개한다.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교회는 왜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정점으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과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지내나? 그 이유는 성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헌신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지독한 박해자였던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그리스도인을 죽이러 가던 중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한다. 이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가장 열렬한 사도가 됐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일했으며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고 순교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회심을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은 ‘부르심’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부르심 받은 사도”(로마 1,1), “하느님의 뜻으로 부르심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1코린 1,1; 2코린 1,1), “이방인들의 사도”(로마 11,13), “사람들에 의해서도 아니고 어떤 사람을 통해서도 아니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사도”(갈라 1,1)로 밝혔다.교회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바오로 사도의 만남을 구원사에서 결정적 사건으로 보고, 고대 교회 때부터 1월 25일에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예로니모 순교록」에 따르면 로마에 있는 바오로 사도의 유해를 운구하는 예식이 처음으로 행해진 날에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로 지냈다고 한다. 이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이 되면, 교황이 바오로 사도의 유해가 안장된 로마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전을 방문, 바오로 사도의 회심을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한다. 이날 사제들은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하며 영광과 결백, 기쁨을 드러내는 ‘백색’ 제의를 입는다. 이날 미사 독서는 ‘바오로 사도의 개종 체험담’(사도 22,3-16)과 1코린 7,29-31 말씀이 봉독 되고,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마르 16,15-18)는 복음이 선포된다.하느님의 말씀 주일 ‘하느님의 말씀 주일’은 온전히 성경에 봉헌된 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제정한 이유를 “성경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그분 교회의 사명에 따른 여러 사건은 이해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 온전히 하루를 봉헌하며 특별하게 지내는 날이 신자들에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교황은 특별히 하느님의 말씀 주일 거행이 ‘교회 일치’의 중요성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성경은 듣는 이들에게 참되고 굳건한 일치에 이르는 길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황은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1월 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 회심 축일인 1월 25일까지)과 맞물려 있는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의 말씀 주일로 정한 것이다. 이에 교황은 “하느님과 유대를 강화하고 그리스도인 일치를 이루기 위해 온 교회가 하나 된 지향으로 하느님의 말씀 주일을 거행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성경에 봉헌된 하루는 그저 하나의 연중행사가 아니라, 한 해 전체를 위한 행사여야 한다”며 주님 힘의 원천인 말씀을 일깨우는 신앙생활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리길재 기자 cpbc2022.01.19

공소 신축 꿈꾸지만 맹지로 묶여 애태워[공소 公所] 9. 춘천교구 강촌본당 광판공소 . 춘천교구 강촌본당 사목구 내에 3개 공소가 있다. 후동ㆍ추곡ㆍ광판공소이다. 강촌본당과 관할 3개 공소는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본당 공소로 신앙 공동체를 시작했다. 강촌과 후동은 1958년, 추곡은 1960년에 공소가 설립됐다. 광판공소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지만, 강촌ㆍ후동공소와 함께 1958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춘천 남쪽 바깥에 자리한 강촌본당과 세 공소 지역에 본격적으로 선교가 이뤄진 때는 1956년께이다. 6ㆍ25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이재민들을 돕기 위해 구호물품을 지원하는 교회 활동으로 시작됐다. 춘천교구 강촌본당 광판공소는 토박이 신자와 귀촌 신자들이 조화를 이루어 가꾸고 있는 활기찬 공소이다. 서울대교구 신내동본당 신자들의 도움으로 공소 건립 40년만인 지난 2011년 다시 고친 공소 내부. 너른 벌판에 자리한 공소 광판공소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장터골길 11-2에 자리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 남서부에 위치한 공소는 서쪽으로는 경기도 가평, 동쪽으로는 춘천시 신동면, 남쪽 홍천군 서면, 북쪽으로는 춘천시 서면을 접하고 있다. 너른 벌판에 마을이 세워져 예로부터 ‘광판(光坂)’이라 불렀다. 마을 남쪽으로 시냇물이 흐르고 너른 벌판 구릉 사이로 옹기종기 마을이 들어서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광판리 일대 마을 이름도 정겹다. 오일장이 서던 마을이라 해서 ‘장거리’, 탑이 많아 ‘탑골’, 옛날 집터가 있던 골짜기여서 ‘텃골’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광판공소는 도로명으로 ‘장터골길’로 불리는 오일장이 서던 장거리 마을에 있다. 광판 오일장은 유명했다. 1920년대 들면서 조선총독부는 조선 시대 역로(驛路)를 대체할 신작로를 깔았다. 일제는 춘천-홍천-횡성-원주로 이어지는 조선의 역로를 넓혀 신작로로 대체했고, 춘천-양구-인제-간성을 연결한 도로를 새로 만들었다. 신작로가 닦인 후 광판리는 면 소재지가 아닌데도 1과 6이 끼이는 날에 큰 오일장이 들어섰다. 두메산골이 아닌 너른 벌판에 장이 서는 건 당연하겠지만 오일장이 서면서부터 광판리는 바뀌었다. 장이 서는 날에는 동네가 시끌벅적했다. 춘천과 홍천뿐 아니라 인근 20여 개 마을 주민들이 광판 장거리에서 물물 교환을 하고 생필품을 사갔다. 춘천 출신 수필가 심창섭씨는 “장터는 민중의 마당”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글처럼 장터는 길바닥에서 누구나 서로의 물건을 주고받고 사고파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또 바깥세상 소식은 물론 새로운 문명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소통의 창구로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곳이었다. 광판 오일장은 1991년까지 그렇게 명맥을 유지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58년에 시작된 선교 인심 좋고 흥이 있고 활력 넘치던 이곳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1958년 제16대 죽림동본당 주임으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아서 맥마혼(Arthur MacMahon, 한국명 안성도) 신부가 부임하면서이다. 맥마혼 신부와 한동수(바오로) 전교회장이 1958년 무렵 광판리에 찾아와 선교하고 첫 교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정집에서 교리를 가르쳤지만 얼마 안 가 광판초등학교 교실을 빌릴 만큼 예비신자가 늘었다. 몰려드는 신자들을 감당하지 못해 1961년 현 공소 땅을 사서 천막을 치고 교리 수업과 공소 예절을 했다. 지금도 광판공소 신자 수는 교적상 200명이 넘는다. 하지만 대부분 고령자여서 현재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 수는 평균 40~50명이라고 한다.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적지 않은 신자들이 비록 공소에 나오진 못해도 교무금은 모두가 빠지지 않고 낸다고 한다. 광판공소는 맹지에 지어져 건축법상 불법 건출물이다. 신자들이 만들어 놓은 십자가 너머 폐가와 방치된 땅을 매입해 도로 진입로를 만들어야만 맹지를 풀 수 있다. 과거 오일장으로 활력이 넘쳤던 곳이어서인지 광판공소에 들어서면 묘하게 흥이 느껴진다. 1973년에 지어진 낡은 공소 건물이지만 깨끗하다. 신자들도 대부분 70대 이상이지만 젊다. 박광섭(석두 루카) 회장과 김경수(요한) 운영위원장, 허성재(요한) 총무, 이선호(요한) 선교사 등이 주축이 되어 공소 살림을 맡아 하고 있다. 공소는 토박이 신자들과 귀촌해 정착한 신자들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토박이 신자들은 주로 오이와 가지, 옥수수 농사를 짓고, 귀촌한 신자들도 농사를 짓거나 펜션업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또 별장을 지어 주말을 지내고 도시로 가는 이들도 있다. 늘 신자들이 교류하다 보니 가족 같은 분위기이다. 다 같이 모여 공소를 가꾸고 있다. 공소 창문 달기, 전기ㆍ방수공사, 도배, 조경, 잔디 심기 등 온갖 일을 함께한다. 매 주일 오전 7시 30분에 주일 미사가, 주중 수요일 오후 7시에 평일 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교육관으로 공터에 비닐 천막을 지어 이선호 선교사가 성경과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새로운 공소를 꿈꾸며 광판공소가 있는 춘천 남산면 일대는 지금 ‘남춘천 제2 산업단지’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2028년 완공되면 이 일대에 정밀의료산업 단지 중심의 복합도시가 들어선다. 그래서 광판공소는 신자들이 늘어날 것을 대비해 공소 건물 신축을 포함한 증ㆍ개축 계획을 세우고 있다. 주차장을 지을 땅도 사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광판공소 땅이 건축법상 ‘맹지’로 묶여 있어 현실적으로 건축 허가 대상이 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다. 건축법에 따르면 건축물의 대지 2m 이상이 보행과 자동차 통행이 가능한 너비 4m 이상의 도로에 접해야 한다. 사방이 타인의 토지에 둘러싸여 도로와 직접 연결되지 못하는 땅이 맹지이다. 그래서 도로와 접한 땅을 매입하는 것이 광판공소 신자들의 숙원사업이다. 광판공소의 살림꾼들. 왼쪽부터 허성재(요한) 총무, 김경수(요한) 운영위원장, 박광섭(석두 루카) 공소 회장, 이선호(요한)선교사 이선호 선교사는 “공소 옆에 도로와 접한 폐가와 오랫동안 방치된 땅을 사려면 비용이 2억 원 정도 들어 공소 신자들이 애태우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광섭 공소회장은 “공소에 성체를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신자들의 소망”이라며 “수제비를 나눠 먹으며 함께 공소 터 다지기를 하던 가족 같은 공소 전통을 계승해 아름다운 공소로 가꿔가겠다”고 말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3.03.10

죽은 소나무에 생명 불어넣어 ‘성물 조각가’로 부활한 80대 농부[부활특집] 관솔 작가로 제2의 인생 사는 김태만 어르신 누군가는 ‘팔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라고 노래했고, 어떤 이는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노랫말이 아닌 현실에서 노년에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팔십 평생 농사만 짓다 뒤늦게 공예를 시작해 성물 전시회까지 개최한 이가 있다. 지난 3월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 작품을 선보인 1937년생 김태만 어르신이 그 주인공이다. 관솔 조각에 매진하는 그를 주위에서는 그야말로 부활하듯 ‘다시 태어났다’고 말한다. 무슨 사연일까? 조각을 시작하다 “딸의 친구가 십자가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그때 처음으로 십자가가 어떻게 생겼는지 유심히 보게 됐어요. 우리 집 뒤에 산소가 있어서 관솔은 구하기 쉽거든. 그때부터 시작한 건데, 이렇게 서울 중심에 와서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고 있으니 기분이 좋습니다(웃음).” 그의 관솔 조각은 그렇게 시작됐다. 꼬미마을로 불리는 경북 고령군 개진면에서 80여 년을 살아온 그에게 송진이 응축된 소나무, 즉 관솔은 뒷산에 가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그저 ‘죽은 나무’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소나무 공출까지 있었으니 그 토막들이 오랜 세월 그냥 방치되어 함께 나이를 먹은 것이다. 하지만 관솔이 친숙한 재료인 반면, 가톨릭은 그에게 너무나 생소한 소재였다. 어느덧 3년이 지나 직접 만든 수많은 십자가와 묵주 등을 전시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가톨릭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딸이 ‘이거 만들어 봐라, 저거 보고 만들어 봐라’ 얘기하니까 똑같이는 못 해도 흉내를 내는 거지. 그런데 계속 하다 보니 그것만 보게 됩디다. 관솔도 예전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유심히 보게 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데, 딸이 좋아하고 주변에서도 만들어달라고 하니까 이젠 익숙하게 만들어요. 가만히 있으면 ‘지나간 일, 앞으로 닥칠 일, 그렇게 살았으면 좋았을 걸,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생각하게 되는데, 관솔을 다듬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거든.” 그렇게 2000원짜리 칼로 투박하게 깎아갔던 초기작은 만나는 동네 사람, 달라는 주위 사람들에게 모두 건넸다. 동물 형태도 있고, 운동 기구도 있고, 대가야 박물관에 있는 유물과 지역 특산물인 개진 감자 모양도 있고, 그리고 십자가, 묵주, 오병이어, 밀알 등을 표현한 것도 있다. 교리도 모르고 성경을 읽어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는 만들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딸 김광숙(노엘라, 국제가톨릭형제회, AFI)씨다. 김태만 어르신이 조각한 성물들. 관솔이 십자가와 묵주로 다시 태어난 모습이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부녀 김태만 어르신과 딸 김광숙씨가 미소를 짓고 있다. 아버지는 조각하고 딸은 의미를 더해 “한 신부님이 보시고 ‘이 십자가는 밑이 긴데?’ 하시더라고요(웃음). 아버지가 전문적으로 만들 생각이 아니었으니까요. 누군가 관솔로 묵주 하면 좋겠다고 하시면 만들고, 수녀님이 성작을 얘기하시면 또 만들고. 주변의 관심과 요청으로 만들다 보니 지금에 이른 거예요. 최근에는 한 수녀님이 물고기 두 마리를 헝겊으로 만들어 오셨는데, 그걸 보고 작업하시기에 제가 ‘오병이어’라고 이름을 붙였죠(웃음). 밀알도 있고, 전국 지도에 15처도 만들었어요.” 딸 광숙씨는 1999년 국제가톨릭형제회에 입회했다. AFI공동체 회원들의 요청으로 아버지는 수많은 십자가와 묵주를 제작했고, 그가 느낌 가는 대로 만든 조각들은 딸에 의해 천지창조 때의 동물부터 모세가 하느님의 계명을 받던 시나이 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시키는 홍해의 구름 기둥 등으로 의미를 지니게 됐다. 얘기를 듣다 보니 꿈보다 해몽이 좋은 거 아닌가.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랴. 가족 입장에선 세상을 등질 뻔했던 아버지가 이렇게 활기차게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2019년 당시 83살이던 김태만 어르신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했다.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너무 오래 살아서 자녀들에게 짐이 되고 국가의 세금만 축낼까 봐 결단한 것이다. “귀 어둡지, 눈 어둡지, 그런데 너무 오래 사니까.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돈만 쓰고 있고. 나이 든 사람은 대부분 ‘내가 어떻게 죽을까,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하루 이틀 만에 죽어야 할 텐데’ 생각하거든. 그래서 그렇게 사느니 스스로 움직일 때 죽는 게 낫겠다 싶었지. 그런데 명은 재천인지 안 죽더라고.(웃음)” 폐렴에 온갖 약물 알레르기까지 겹쳐 꼬박 18일 동안 병원 신세를 진 그는 집으로 돌아온 뒤 달라졌다. 곁에서 한 달 넘게 간병한 딸이 손에 쥐여준 관솔과 조각칼은 그의 마음을 달랬고, 여전히 늙고 낡은 일상이었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내가 잘못된 생각을 했구나, 아이들에게 오히려 상처를 많이 줬겠구나, 내 운명대로 살다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관솔도 죽은 나무인데, 내가 발굴하지 않으면 생명이 없는 건데, 이렇게 새로운 쓸모가 생겼잖아요. 나와 같은 인생이구나,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죽었다 살아난 삶, 즐겁고 의미 있게 “죽었다 살아난 것이 관솔도 나와 동체구나…. 이걸로 뭐 성공하겠다는 생각도 없고, 좀 더 일찍 시작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없어요. 평생 땅을 일구며 살았으니 토질도 알고, 관솔이 어디에 있는지도 아는 거지. 혼자서는 아무 가치가 없는데, 그저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까 나도 즐거워요.” 죽은 소나무가 멋진 작품이 된 것처럼, 쓸모없다 여긴 자신이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는 삶의 의미를 찾은 모습이다. 지난날에 대한 후회도, 앞날에 대한 욕심도 없다. 그저 지금을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딸이 계속 성당에 같이 가자고 하죠. 글쎄, 잘못 생각하는 건지 모르지만, 내 중심으로 지금껏 살아왔거든. 성물을 만들면 그걸 가지고 사람들이 기도하니까 그게 내 몫이 아닐까. ‘관솔 작품을 가지고 있으니까 몸이 좋아지더라, 향이 좋더라’라는 말을 들으면 나도 좋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고, 죽은 것 같지만 다시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게 인생이라는 걸 관솔과 나를 보면서 알아주면 더 고맙죠.(웃음)” 광숙씨는 아버지의 작품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갤러리를 만들기로 했다. 갤러리라고 하니까 너무 거창한가. 그저 시골집 앞에 컨테이너 두 대를 세우고 관솔 작품들을 진열할 예정이다. 그녀가 건넨 명함에는 ‘관솔작가 김태만, 매니저 김광숙’이라고 적혀 있다. 팔십 평생 아버지도, 오십 평생 딸도 이런 새 삶을 상상이나 했을까. ‘끝’이라고 생각했던 지점에서 새롭게 피어난 삶의 의미는 관솔의 은은한 향처럼 부녀의 얼굴을 미소로 감싸 안는다. 컨테이너 갤러리에서 진정으로 빛을 발하는 작품 역시 관솔 조각이 아니라 그것이 품은 새로운 희망일 것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04.11

부활신앙 살아가도록 돕는 영성 안내서송봉모 신부의 요한복음산책 시리즈 마지막 권 「평화가 너희와 함께」 발간 오른쪽 발등에 못 자국이 선명한 예수님이 당신을 만지려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가시덤불을 밟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인류의 죄를 없애기 위해 예수님이 겪어내야 했던 수난을 상징하고, 하얀 옷은 부활을 상징한다. 티치아노의 '놀리 메 탄제레'(1514). 런던국립박물관 소장. 평화가 너희와 함께송봉모 신부 지음 / 바오로딸“성경 전체에서 가장 뜻깊은 아침이 언제냐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것은 부활 아침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아침에/ 죽음이 생명으로 변했다는 소식이/ 온 땅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며/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 안에/ 결정적으로 긍정의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요하네스 부어스)송봉모(예수회) 신부의 요한복음산책 시리즈 마지막 책 「평화가 너희와 함께」가 발간됐다. 2011년 요한복음 1-4장까지를 다룬 요한복음산책 1 「삶의 우물가에 오신 말씀」 출간을 시작으로 「비참과 자비의 만남」,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등에 이어 10년 동안 요한복음을 강해한 시리즈를 완간했다. 요한복음은 가장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복음서로, 송 신부는 사실적인 의미를 다룬 공관복음에 비해 영적ㆍ신학적 의미를 다룬 요한복음을 깊이 있으면서도 쉽게 묵상할 수 있게 안내했다.요한복음산책 마지막 권인 「평화가 너희와 함께」는 요한복음 20장과 21장을 강해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자, 뿌리인 주님 부활을 바라보는 요한 복음사가의 신학과 부활 신앙을 구약성경과 역사ㆍ문화ㆍ문학에 비추어 설명했다.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교부들의 말씀과 다양한 일화, 사진, 시 등을 인용해 성경이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책은 1부 빈 무덤 이야기(요한복음 20장)로 시작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을 찾는 마리아 막달레나,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 의심하는 토마스 앞에 서 계신다. 요한복음 21장을 다룬 2부에서는 고기를 잡느라 밤새 허탕 치는 일곱 제자에게 나타난 예수님은 제자들이 사람 낚는 사도임과 함께 성체성사의 힘을 깨닫게 한다. 송 신부는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같은 사건을 다르게 전달하는 다양한 예도 제시한다. 이는 역사적 오류가 아니라 요한복음의 신학적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앞부분부터 당신의 영광 받으심에 대해 언급하셨음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요한복음이 ‘영광의 책’이라 불리는 부분이 13장부터 십자가 사건을 거쳐 부활, 승천, 성령을 보내심에서 마무리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즉 요한복음 신학은 주님의 영광 받으심의 의미와 함께 우리가 그 영광 받으심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를 묻는다고 저자는 안내하고 있다.송 신부는 초대교회 신자들이 중요시했던 성체성사로 요한복음산책 시리즈를 마무리했다.“성체성사는 초대교회 때부터 여러 가지 용어로 불렸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미사다. 바오로 사도는 성체성사를 ‘주님의 만찬’(1코린 11,20)이라고 했고, 사도행전의 저자 루카는 ‘빵을 떼어 나눔’(사도 2,46)이라고 했다.”그는 “「신학대전」을 쓴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사목적 돌봄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체성사, 곧 미사에 잘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했다”면서 “모든 성사에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현존하지만, 성체성사 곧 미사에는 그리스도 자신이 현존한다고 한다”고 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말을 언급했다. 즉 교회가 시작된 다음부터 성체성사(미사)는 언제나 신앙생활의 중심이었던 것이다.이어 저자는 “그동안 이 시리즈를 쓰면서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깜깜한 밤길을 운전하는 사람의 마음과도 같았다”며 전조등이 비춰주는 범위만큼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결국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소회를 밝혔다.책 제목 ‘평화가 너희와 함께’는 두려움과 슬픔에 사로잡혀 다락방에 숨어있던 사도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처음으로 나타나 하신 말씀이다.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2.04.19

춘천교구의 모태가 된 유서 깊은 공소[공소(公所)] 11. 춘천교구 곰실공소 곰실공소는 춘천교구 발상지이며 효시인 유서깊은 신앙 공동체이다. 곰실공소 전경. 한국 가톨릭교회가 세계 교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우리 선조들이 외국인 선교사들의 전교 없이 자발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신앙 공동체를 설립한 것이다. 이 아름다운 교회 전통을 그대로 답습 유지한 지역 교회가 바로 춘천교구다. 고향으로 돌아 온 천주학쟁이 19세기 말 춘천시 동면 장학리 노루목에서 한학에 열심했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집에 세 들어 살던 체반 장수의 권유로 가톨릭교회 교리서인 「천주실의」와 「주교요지」를 읽고 곧바로 회심하여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는 가톨릭 교리를 제대로 배우고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큰 형과 함께 천진암 인근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면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춘천 지역 가톨릭 선교의 대부가 된다. 바로 엄주언(마르티노, 1872~1955) 회장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엄 회장은 동네 사람들에게 ‘천주학쟁이’라고 냉대를 받고 내쳐진다. 그는 외가 친척의 도움으로 대룡산 자락에 있는 동내면 고은리 윗너부랭이 폐가를 사서 이주해 그곳에서 화전을 일구며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낮에는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밤에는 사람들을 모아 성경과 교리를 가르쳤다. 그는 남에겐 겸손하고 친절했으나 자신에겐 늘 엄격했다. 장티푸스가 유행해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자 그는 가족들조차 손을 대지 않고 방치해 놓은 시신들을 거두어 정성스럽게 염을 하고 홀로 시신을 어깨에 메고 뒷산에 매장해 주곤 했다. 이러한 행동에 많은 주민이 감동을 하고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춘천 지역에 처음으로 생긴 가톨릭 신앙 공동체가 바로 ‘곰실공소’다. 엄 회장의 지도로 신앙을 키워간 곰실공소 교우들은 무엇보다 신앙생활에 열심했다. 주일 공소 예절은 물론 매주 수ㆍ금요일에는 단식재와 금육재를 철저히 지켰다. 엄 회장은 풍수원본당 주임 정규하 신부를 1년에 한 차례 모셔와 50여 명씩 세례를 줬다. 엄주언 회장은 곰실의 교우수가 300명 넘게 늘어나자 성직자 영입을 추진한다. 그는 신부를 모시기 위해 직접 사제관을 짓고 우물도 팠다. 그리고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강원도의 유일한 본당이던 풍수원성당을 여러 차례 방문해 뮈텔 주교와 정규하 신부에게 성직자 파견을 요청했다. 1920년 9월 사제품을 받고 풍수원본당 보좌로 임명된 김유용(필립보) 신부가 곧바로 춘천 지역으로 파견되면서 곰실공소는 춘천교구의 모태가 된다. 김 신부와 엄 회장은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선 춘천 시내에 성당을 지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에 엄 회장의 주도로 곰실 신자들이 성전 건립 기금을 조성한다. 엄 회장은 ‘애령회’를 조직해 15세 이상의 모든 교우를 가입시켰다. 회원은 종신토록 1인당 50전씩 거두었고, 가마니 짜기, 새끼 꼬기, 짚신 삼기로 성전 건립 기금을 모았다. 엄 회장은 1928년 애령회 기금과 자신의 논 다섯 마지기를 팔아 춘천 약사리 418번지 김영식의 목조 함석집을 사서 고쳐 성당으로 사용하고 본당을 이전한다. 이때 교우수가 600여 명을 헤아렸다. 엄 회장은 이후 춘천지목구장으로 부임한 퀸란 신부와 함께 춘천 약사리 고개 도토리밭을 사서 성당을 짓는다. 바로 오늘날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성당이다. 곰실공소는 춘천교구 공동체의 발상지로 품위에 맞는 성미술 작품들을 갖추고 있다. 곰실공소는 많은 순례자가 끊임없이 찾아와 기도하는 곳이다. 곰실공소 전경. 신앙의 향기를 지닌 공소 엄주언 회장은 가족과 교우들에게 늘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며, 남의 말을 하지 말고, 잘 입지도 먹지도 말며, 진리에 어긋남이 없어야 하며, 죽은 사람 장사를 잘 지내 영혼을 구해주라”고 권면했다고 한다. 또 “한 사람의 영혼 구령은 천하의 어떤 복보다 위에 있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엄주언 회장은 춘천 지역 가톨릭 전교의 대부로서, 죽림동 주교좌본당의 창설 공로자로서, 그리고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으로서 춘천교구민들에게 지금까지 존경받고 있다. 춘천교구는 「우리의 뿌리」에서 “엄주언을 중심으로 곰실공소에서 태동한 춘천의 천주교회가 국지적이고 한정적인 사목 활동에서 춘천의 전 지역을 공동체로 하는 본격적인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평가했다. 춘천교구 거두리본당 관할인 곰실공소는 춘천시 동내면 동내로 220에 자리하고 있다. 곰실은 ‘고은리’(古隱里)의 옛 지명이다. 곰실은 ‘뒤쪽에 있는 마을’ 또는 ‘큰 산, 신성한 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곰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대룡산은 기우제를 지내던 신성한 산이었다. 또 일제 강점기에는 곰실을 후상리, 후중리, 후하리라는 행정지명으로 고쳐 불렀다. 따라서 곰실은 옛날 신성한 산으로 여긴 대룡산 뒤편에 숨어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곰실공소는 6ㆍ25 전쟁 때 소실되는 수난을 겪었다. 춘천은 6ㆍ25 전쟁 발발 다음날인 1950년 6월 26일 북한 인민군의 포격으로 초토화됐다. 다 지은 죽림동 주교좌 성당은 인민군의 집중 포격으로 파괴됐다. 아울러 1951년 5월 유엔군의 공습으로 또 한번 파괴됐다. 당시 곰실공소에는 인민군 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반격 작전에 나선 유엔군은 곰실공소를 폭격해 완전히 부숴버렸다. 오늘날 곰실공소는 인민군에 피랍돼 압록강 중간진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다 풀려난 퀸란 주교가 춘천교구로 돌아와 새롭게 지은 건물이다. 제6대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가 2009년 이 건물을 다시 지었다. 장익 주교가 중창한 곰실공소는 단출하다. 엄주언 회장과 교우들이 그랬던 것처럼 소박하고 수수하다. 그러나 속은 탄탄하다. 집도 그 집에 사는 사람을 닮는 모양이다. 공소 내부는 기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제단과 회중석 바닥은 원목으로 꾸며져 있다. 제단 중앙 십자가는 김혜림(베아타) 작가의 작품이다. 제단과 독서대는 김겸순(마리 테레시타, 노틀담수녀회) 수녀가 디자인했다. 사방 흰 벽의 좌우편에는 십자가의 길 14처가 설치돼 있다. 춘천교구 공동체의 발상지이며 효시의 품위에 맞게 성미술 작품들이 잘 갖춰져 있다. 곰실공소에는 많은 순례자가 끊임없이 찾아오는 곳이다. 침묵 가득한 공소 안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평생을 봉헌하며 복음을 선포했던 엄주언 회장과 옛 신앙 선조들을 기억하고 그 신앙을 본받고자 기도한다. 꽃이 지닌 생명의 가치는 아름다움과 향기이다. 곰실공소는 신앙의 향기를 지닌 아름다운 꽃 같은 존재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2023.03.22

잡념이 생기면 잠깐 멈춰 머릿속 소리를 들어보세요[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3. 잡념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많은 시간 일상 잡념에 사로잡혀 지낸다. 내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관찰하고 다시 확인해보자. pixabay 제공 “아, 맙소사! 교통카드를 두고 왔네.” “오~ 어떡해! 서류 출력하고 프린터에 그대로 둔 채 나왔어.” “아차! 오늘 늦는다고 했었나요?” ‘아, 이런, 맙소사, 아차, 오, 어머, 어떡해….’ 내가 쏟아내는 이런 감탄사들 대부분이 좋은 느낌의 설렘이나 감동의 말이 아니다. 탄식하거나 자책할 때 나오는 말이다. 그러면서 애드리브처럼 나오는 한탄, “나도 나이를 먹어서….” 동시에 나의 마음속 탄식이 터져 나온다. “이런, 나이 타령은 인제 그만! 50부터 하는 변명, 반백 년 나이 타령만 하다 세월 보내면 어찌할 건가?” 나는 안다. 책을 읽다가도 읽지 않고 있다는 것을. 꽃을 보면서도 보지 않고, 기도하면서도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의 말이 길다 싶으면 고개는 끄덕이지만, 나의 의식의 스위치는 꺼져있다는 것도. 의식이 없다는 것은 난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 순간에는 아마 코끼리가 돌아다녀도 못 볼 것이다. 오늘은 성당에 앉아서 꽤 오랜 시간 기도했다. 시작할 때 기분이 좋았다. 편하고 고요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성당에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기도를 너무 잘해서? 아니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잡다한 생각들이 나를 성당 밖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친구 수녀도 만나고, 시간 없어 못 먹었던 호박죽도 먹고, 원고도 쓰고…. 오만가지 생각으로 이리저리 헤매다 정신 차려보니 내가 성당에 있었다. “오, 맙소사. 또 잡념에 당했어!” 잡스러운 생각이 나를 미아로 만들었다. 매번 당하는 일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런 잡념들과 싸우고 있다. 쫓아내려고 이런저런 방법을 다 써봐도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도 오랜 시간을 잡념과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왔으니까. 머릿속 소리는 늘 그렇게 떠들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기도를 해도 한 것 같지 않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나서도 기억이 나지 않고, 미사 강론을 듣고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잡념들이 나를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잡생각은 불안을 부추기고 근심을 가중시킨다. 그러다가 스트레스가 쌓이고 수면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삶의 질을 높여주는 집중력을 잃는다. 신앙인이 집중할 힘이 없다면 어떻게 기도할 수 있을까? 어디 기도뿐이랴. 중요한 일 대부분은 집중력이 필요하지 않은가. ‘잡념’을 없애기로 했다. 몽둥이를 들고 쫓아낼 수는 없는 일, 오히려 대접해서 떠나보내야 하는 손님이다. 우선은 잡념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이유를 알아야 했다. 답은 간단하다. 재미가 없어서다. 지루하고 심심하면 외롭기까지 하다. 책을 읽다가도 이야기를 듣다가도 기도를 하다가도 재미가 없으면 틈새를 비집고 잡스러운 생각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어제 먹던 짜장면, 아침에 하다 만 청소, 오랜만에 만난 옛친구, 다툼이 있었던 직장 동료….’ 쓸데없는 무의미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잡념이 찾아오는 이유는 또 있다. 그동안 자극적인 재미 대상과 너무 친하게 지내왔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이 너무도 많다. 수녀인 나에게도 말이다. 손 안의 컴퓨터는 매일 매 순간 필요한 정보와 자극적인 감각으로 재미를 준다. 알람으로 눈을 뜨고 날씨를 본다. 뉴스를 보고 정보 검색을 하고 책을 구매하고 누군가 보내온 영상을 본다. 사진을 찍고 전화를 하고 채팅을 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맡긴다. 앱으로 라디오를 듣고 길을 묻는다. 관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들의 강의도 듣고 그들의 인터뷰나 칼럼을 읽는다. 이렇듯 스마트기기는 내가 크게 애쓰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즉각적으로 주고 나의 감각마저 즐겁게 해 준다. 어쩌면 감각을 통째로 기계에 맡겨놓고 사는 것과 같다. 그러니 능동적으로 무언가 애써 얻어내는 것이 힘들 수밖에 없다. 지루하다, 심심하다, 느리다고 느껴질 때 바로 잡념은 시작된다. 주의력은 떨어지고 의식은 사라진다. 그 순간 무슨 말을 들어도 무엇을 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그 일에 집중하고 있나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면 어떤 내용인가요? 한번 확인해볼래요. 좋아하는 성경 말씀에 초점을 두고 잠깐 멈춰요. 5분만 해 볼래요? 그리고 머릿속 소리를 들으면서 관찰하세요. 내가 나를 보는 거지요. 5초, 10초, 1분, 5분. 자, 다른 생각이 들어오던가요? 머릿속 소란스러움을 느꼈나요? 잡념이 생길 때 말을 걸지는 말고 듣기만 해요. 그렇게 반복해서 알아채기만 해도 집중할 수 있는 의식의 빛이 켜지지 않을까요? 김용은(제오르지아,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cpbc2023.01.11

변호·성서모임 봉사, 모두 주님 도구로 쓰이는 기쁘고 보람찬 일[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29) 변호사 이주희 마르타 이주희 변호사는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하느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집무 중이다. 이주희(마르타)씨는 서울대 외교학과와 서강대 로스쿨을 졸업한 재원이다. 서울 서초동에서 7년 동안 변호사 생활을 했고 현재는 국민권익위원회 고충처리국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조사관들의 민원업무를 돕고, 민원에 관한 의결서를 검토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녀는 항상 어떤 봉사든 열심히 하고 주변 분위기를 즐겁게 하며 밝고 긍정적이다. 무엇에든 적극적이고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오랫동안 밴드 활동도 했다. 목동성당에선 신참(?)인데도 청년성서모임 대표봉사자를 맡았는데, 열심히 발로 뛰어 1년 동안 성서 공부하는 청년들이 100명 가까이 될 정도로 본당 성서모임을 활발하게 일구어낸 성실파이기도 하다. ▶어떻게 신자가 되었는지요?어머니를 따라 성당에서 4살 때 유아세례를 받았어요. 언니와 함께 세례를 받았는데 예쁜 옷을 입었던 희미한 기억만이 남아있어요. 사실 어릴 때는 세례명 ‘마르타’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저도 마르타 성녀처럼 활동적이고 열심히 살고 싶어졌어요.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 때 신부님께서 “넌 마르타랑 참 비슷하다”라고 하신 말씀에 무척 기뻤어요. 그때 일을 주도하고 앞장서서 했나 봐요. ▶변호사가 되는 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초등학생 때 배금자 변호사의 책 「이의 있습니다」를 우연히 보고 이런 직업도 좋겠다는 꿈을 가졌어요. 미디어에 관심이 많아 기자나 PD가 되고 싶었는데 기자 시험에 번번이 떨어졌어요. 한창 진로를 고민 중이던 당시는 우리나라에 로스쿨 제도가 막 도입이 되던 시기였어요. 그리고 얼마 후 변호사에 도전했어요. 변호사도 소송을 통하여 의미 있는 판례를 만들어냄으로써 보람찬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요. “인간이 좋아하는 일을 업(業)으로 삼을 때 인간의 진정한 자유가 실현된다”는 마르크스의 말처럼, 변호사라면 좋아하고 보람찬 일을 동시에 하며 저의 자유가 실현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어요.▶하느님께서 주신 탈렌트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저에게 주신 탈렌트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인 것 같아요. 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제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생기면 최대한 도움이 되고자 애를 쓰는 편이에요. 이런 마음은 변호사가 되었을 때 사람들과 소통할 때 큰 도움이 되어요. 이런 저의 마음이 변호사 업무와 잘 맞는 것 같아요. ▶삶의 가장 큰 시련은 무엇이었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로스쿨 재학 시절인 거 같아요. 저는 대학에서 법학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해 법 공부가 매우 생소했어요. 로스쿨 1학년 1학기 첫 민법 중간고사의 ‘찐 꼴찌’였어요. (웃음) 졸업시험도 제때 통과를 못 해서 동기들이 변호사 생활을 시작할 때 저는 학교를 1년 더 다녀야 했죠. 그다음에 변호사 시험도 겨우 붙었어요. 로스쿨에서 뛰어난 학생들과의 경쟁이 쉽지는 않았지요. 힘든 로스쿨 생활을 하는 동안 학내에서 진행하는 가톨릭 성서모임에 참석했어요. 창세기 연수 때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하느님의 사랑을 처음 느껴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 기억으로 힘든 시절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어요. ▶하느님을 체험한 적이 있나요? 저는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필리 4,13)는 성경 구절을 좋아합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하여 부상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딴 로라 윌킨스가 암송한 구절로도 유명하지요. 제게도 이 말씀의 힘을 체험할 일이 있었어요. 언젠가 지방 경찰청에서 입회하는데 오후에 갑자기 다른 사건 피의자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거예요. 급히 서울 사무실로 돌아오니 자정이 다 되었고, 5시간 안에 영장 청구서를 방어할 변호인 의견서를 준비해야 했어요. 워낙 장기간 수사로 이어진 사건이라 쟁점도 많았어요. 앞의 성경 말씀을 크게 써서 컴퓨터 앞에 붙여놓고 속으로 화살기도를 하면서 변론 준비를 시작했어요. 기적처럼 시간 내에 서류를 마친 후 바로 기차 타고 지방법원에 내려가 변론을 끝냈고 다행히 영장이 기각되었어요. 그날 밤 하느님께서 나를 도구 삼아 내 손을 움직이셨다고 믿고 있어요. 기적 같은 체험이었어요. ▶성서모임에서는 어떤 것이 좋았나요? 저는 탈출기 공부와 연수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탈출기 직장인 연수를 다녀왔는데요, 거기서 허영엽 신부님 강의를 들었던 것이 정말 좋았어요. 일상생활과 연결한 강의여서 성경 말씀의 의미가 마음에 잘 와 닿았고,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어요. 탈출기 공부를 계기로 저도 본당에서 성서모임 봉사를 시작했고, 마르코ㆍ요한복음 공부까지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지요.▶일하면서 가장 보람이 있던 적은 언제인가요?변호사 시절에는 승소하거나 무죄를 선고받을 때 가장 기뻤는데, 지금은 공직에서 고충 민원을 처리하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최근에 5ㆍ18 민주화 항쟁 때 돌아가신 안병하 치안감 사건에 참여했어요. 안 치안감은 5ㆍ18 민주화 항쟁 때 시민들에게 발포 명령을 거부하여 강압으로 사직서를 내고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어요. 당시 강압으로 사직하신 시점이 보상법률인 1980년 해직자 보상법의 기간과 어긋나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셨어요. 이에 유족이 의원면직 취소 처분과 미지급 급여를 요청하였는데, 이 사안은 정부 부처 사이의 의견이 달랐고 시간도 많이 지나 해결이 어려웠어요. 저는 의결서의 판단 부분에서 법리를 구성했어요. 담당 조사관님께서 저의 법리 부분이 관계기관을 설득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하셨어요. 결국, 통과되어 유족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어서 큰 보람이 되었어요. ▶인생의 후배들에게 꼭 이 말만 하고 싶다면?‘과거는 외국이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 영국 작가 L.P. 하틀리(L.P. Hartley)의 소설 「중개인」(The Go-between, 1953)의 첫 문장이에요. 저는 모든 이들이 누군가의 과거가 아니라 자신의 현재를 살길 희망합니다. 제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죠. 과거는 외국일 뿐 나의 현재가 아님을 깨닫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때 시제는 항상 현재, 그만큼 하느님께서 제게 원하시는 것은 나의 현재에 집중하는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하는 일은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에, 두렵고 힘든 순간이 찾아올 때가 많다. 그녀는 쉽게 두려워하고 자신감이 많이 없는 성격이지만 “두려워 마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떠올린다고 한다. 결국, 혼자 부딪혀야 하는데 그 순간 나를 지켜주시는 분은 하느님뿐이라는 생각에서다. 그 말씀을 믿으면서도 항상 두렵고 떨리지만,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실 것을 믿는다고 했다. 그녀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믿음’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변호사들이 더 많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인터뷰 내내 떠나지 않았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cpbc2022.07.05

수원교구, 한 달 사이 성전 네 곳 봉헌식 ‘경사’동판교본당·안산 성안나본당칠보본당·풍산본당 순서로 진행각 본당마다 봉헌식 앞두고성경 쓰기·묵주 기도 등 활발 동판교성당 전경. 수원교구가 10월 9일부터 11월 7일까지 한 달 사이에 성전 4곳 봉헌식을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주례로 거행하는 경사를 맞았다. 성전 봉헌식을 하는 곳은 동판교본당, 안산 성안나본당, 칠보본당, 풍산본당이다. 4곳 가운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판교로 125에 위치한 동판교본당(주임 김대영 신부)이 가장 빠른 9일 성전 봉헌식을 거행한다. 동판교성당은 건물 연면적 6760㎡ (2045평)에 지하 2층, 지상 4층 구조다. 모두 11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준공했으며 2013년 9월 1일 입당 미사를 봉헌했다. 동판교본당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감안해 상임위원, 남·여 소공동체 봉사자 등 소수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김용철(베드로) 총회장은 “현재 신자 수가 5770명으로 공동체가 같이 힘을 합해 묵주 기도 봉헌, 선교 활동 등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성전 봉헌식 이후에도 소공동체 중심으로 성당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이어 안산시 단원구 광덕2로 112에 있는 안산 성안나본당(주임 노인빈 신부)이 17일 성전 봉헌식을 갖는다. 성당은 연면적 2189㎡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건물로 지하 1층은 주차장과 회합실, 1층은 사제 집무실과 사무실, 만남의 방, 2층은 대성전, 3층은 화합실, 4층은 성가대석이다. 안산 성안나본당은 2005년 9월 23일 설립됐으며 2011년 3월 성전 입당 미사를 가졌다. 성당 측은 “1000여 명의 신자가 오로지 교무금에 의존해 성전 건설비를 갚느라 11년의 세월이 걸렸다”며 성전 봉헌식을 맞는 기쁨을 드러냈다.칠보본당(주임 최원섭 신부)도 25일 수원시 권선구 칠보로 153 현지에서 성전 봉헌식 및 본당 설정 25주년 기념 미사를 거행한다. 성당은 지하 2층, 지상 3층이며 1층은 회합실과 사무실, 식당, 2층 대성전, 3층은 성가대석으로 이용하고 있다. 1996년 설립된 칠보본당은 2004년 10월 새 성전 입당 미사를 봉헌했다. 입당 미사 후 성전 봉헌식을 갖게 된 건 17년 만이다. 최원섭 신부는 “코로나19 감염병 이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본당 설립 25주년 행사와 성전 봉헌식을 위해 ‘묵주 기도 100만 단 바치기’와 ‘구역별 성경 쓰기’에 동참해 주신 모든 교우들께 감사드린다”며 성전 봉헌에 노력한 신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일준(빈첸시오) 총회장은 “그동안 성모상 훼손과 10년 전 물난리, 성전 건립에 따른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우리는 잘 극복했다”며 “본당 설립 25주년과 성전 봉헌식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칠보 공동체가 대내 외적으로 더욱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다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마지막으로 풍산본당(주임 정지용 신부)이 11월 7일 성전 봉헌식을 거행한다. 하남시 덕풍북로 117에 자리한 풍산성당은 연면적 2505㎡에 지상 2층(신자석 450석) 규모다. 건물은 2011년 4월 준공됐다. 봉헌식 한 달여를 앞두고 풍산본당은 신자들에게 묵주 기도, 성경 필사와 읽기, 나의 봉헌서 제출 등 신자들에게 기도와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정지용 신부는 주보를 통해 “주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우리 모두의 사랑과 정성이 모여 기쁨과 영광의 봉헌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수원교구는 성전 입당 미사와 성전 봉헌식을 별도로 갖고 있다. 성당을 짓는 데 소요된 비용을 모두 갚은 후 성전 봉헌식이 거행돼 건물 준공 및 입당 미사와 성전 봉헌식은 통상 10여 년 이상의 차이가 난다.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cpbc2021.10.06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공동선의 토대[무너져가는 집을 복구하여라!] 27.사회 공동체 재건을 위하여- ⑥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선택 사랑의 본성은 루카 복음 15장의 ‘잃어버린 것들의 비유’에서처럼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 회복시키는 데 있다. ‘착한 목자’, 3세기, 프레스코, 프리실라 카타콤, 이탈리아 로마. 구약 성경의 곳곳에서 하느님을 고아와 과부, 당시 사회적인 약자들의 보호자로 소개하고 있다. “하느님은 고아와 과부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다.”(신명10,18) “하느님께서는 고아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과부가 쏟아 놓는 하소연을 들어 주신다.”(집회 35,17) “힘없는 이, 당신께 몸을 맡기고 당신께서는 고아에게 친히 보호자가 되십니다.”(시편 10,14)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은 당시 고대사회의 보편적인 신관에서 벗어난 매우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현상이었다. 당시에 신은 그 사회의 지배층, 즉 왕과 귀족, 사제 등 힘 있는 사람들의 대변자로 여겨졌다. 예수님 역시 구약 성경의 사회적 약자 보호 정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과 자신을 동일시하신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그리고 예수님은 다섯 부류의 사회적 약자, 즉 헐벗은 사람, 굶주린 사람, 집 없이 떠도는 사람, 병든 환자,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언급하시며 그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을 때,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 서게 될 ‘최후 심판’에서 단죄를 받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하신다.(마태 25,31-45) 구약의 정신과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과의 특별한 연대를 추구했던 전통에 따라 교회는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해 중단 없는 활동을 해 왔다. 요컨대 가난한 이들, 소외받는 이들, 어느 모로든 자신의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는 생활조건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쏟으며 그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이 그리스도교 사랑의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늘 강조해왔다.(「새로운 사태」 182항)약자를 우선 돌보는 일이 ‘하느님의 일’구약 성경이나 예수님께서는 왜 이토록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것이 우리 각자가 실천해야 할 그리고 우리 사회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우선적인 사명으로 강조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선 약자들을 돌보는 일이 ‘하느님의 일’(Opus Dei), 즉 하느님께서 최우선적으로 관심을 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모든 이의 아버지요, 사랑이시다. 사랑의 본성은 루카 복음 15장의 ‘잃어버린 것들의 비유’(잃어버린 은전, 양, 아들)에서처럼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 회복시키는 데 있다. 우리 시선으로 볼 때, 양 아흔아홉 마리를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떠나는 목자의 행동은 무모하게 보인다. 또한 아버지의 재산을 챙겨 탕진했을 뿐만 아니라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작은아들’을 용인하고 그에게 잔치까지 베푸시는 아버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고통받는 존재들에게 초연할 수 없는 하느님의 자비는 ‘도덕주의’, ‘능력주의’, ‘공리주의’와 같은 세상적인 논리를 초월하여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 데 온 마음을 기울이신다.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사랑은 중립적이지 않으며 피조물의 상처와 아픔에 함께한다. 따라서 우리 역시 하느님 사랑의 본성을 지니고 있기에,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에 우선적으로 귀 기울일 수밖에 없다. 교황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이는 것이 특수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단 시간적으로 조금 빠르게 혹은 조금 늦게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도달할 뿐이다. 따라서 오늘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함에도 희귀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영적, 심리적인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인 고통도 겪고 있다. 제약회사들은 경제적인 이익이 되지 않는 치료약 개발 투자에 소극적이며, 정부에서도 소수의 권리에 대해 정치적인 표 계산으로 그들을 외면하기 쉽다. 이런 현실에도 희귀병 연구를 하는 어떤 교수가 다음과 같이 인터뷰한 내용은 참 인상적이다. “몇십만 몇백만 중의 한 명 꼴로 나타나는 희귀병에 대해 정부나 제약회사가 쉽게 투자하지 못하는 현실을 저는 이해합니다. 많은 분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희귀병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곳에 국민 세금을 투여하는 것이 더 낫다는 의견에도 공감합니다. 하지만 희귀병을 앓고 있는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일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그 병고를 그들이 대신 앓고 있을 수도 있음을 유념했으면 좋겠습니다.” 참 공감이 가는 말씀이다. 우리 자신이 불행의 처지에서 제외된 것에만 안심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해주는 황금률교회에서 말하는 공동선의 원리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라는 뜻이다. 사회 전체의 이익은 무엇을 의미할까? ‘내가 원하는 것을 남에게 해주라’는 ‘황금률’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이 사회에 가장 중요한 공동선이 아닐까! 여러 이해 당사자를 두고 판단하거나, 과반수의 이익이 다른 모든 관심사를 앞선다고 주장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떤 의미에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전적으로 부합된다. 따라서 가톨릭 사회교리에서 언급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은 공동선의 토대라고 할 수 있다. 김평만 신부(가톨릭중앙의료원 영성구현실장 겸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과 교수)cpbc2022.06.02
![[베네딕토 16세 선종] 신앙의 위기 속에 탄생한 교회의 수호자](//cpbc.co.kr/CMS/newspaper/2023/01/rc/838416_1.7_titleImage_1.jpg)
[베네딕토 16세 선종] 신앙의 위기 속에 탄생한 교회의 수호자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업적과 발자취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발코니에서 신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CNS신앙의 위기 속에 탄생한 교회의 수호자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을 수호하고, 진리와 교의를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은 새천년기가 막 시작한 시기 사도좌에 착좌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 자연스레 주어진 사명이었다. 신앙의 위기감이 팽배해진 당시, 일찍이 신학자로 활약해온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의 교황 즉위는 주님의 섭리였다.세기 말부터 지구촌 곳곳에서 들끓기 시작한 무신론자들의 범람과 교회를 향한 공격, 서구 사회에서 고삐 풀린 듯 쏟아져 나오는 세속주의 세태와 상대주의의 흐름 속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재위 8년간 ‘교회의 수호자’ 역할을 다했다. 선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공산주의와 싸웠다면,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그리스도교를 흔드는 사상의 풍랑과 맞서 싸웠다.교황은 난무하는 이데올로기와 사상의 격랑 속에 추기경 시절부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지, 신학자들의 실험장이 아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올바로 계승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계승해 ‘영적인 사막화’가 진행되는 현대 사회가 새로운 복음화로 무장하는 데 힘쓴 교황이었다.3차례의 세계 주교 시노드 개최교황은 즉위한 그해인 2005년 10월 교회의 핵심인 ‘성체성사’를 주제로 제11차 세계 주교 시노드(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를 개최해 성찬례 거행과 공경의 의미를 북돋웠다. 곧이어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를 낸 것도 모두 세계 가톨릭 신자들이 신앙의 핵심으로 돌아가도록 이끌고자 한 그의 의지였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8년 ‘성경’, 2012년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총 3차례의 세계 주교 시노드를 개최했다.8년 사이 3차례나 세계 주교들을 소집한 것도 탈 그리스도교 현상에 맞서고자 교회의 지혜를 모으기 위함이었다. 특히 재위 말, 그에겐 ‘신앙의 전수’와 ‘새로운 복음화’가 키워드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신앙의 해’는 신앙의 회복과 더불어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 그의 사도적 사명을 보편 교회에 적용한 것이다. 교황은 2010년 “우리 시대는 신앙 포기라는 도전을 받고 있다”며 “현대 세계에서 선교 열정을 가지고 새 복음화를 촉진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응책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선포하고, 교황청에 ‘새복음화촉진평의회’를 신설했다. 바오로 사도, 사제직, 그리고 공고한 믿음교황은 이와 더불어 3차례 기념의 해를 제정해 보편 교회가 하나 되도록 이끌었다. 교황이 ‘바오로의 해’(2008~2009년), ‘사제의 해’(2009~2010), ‘신앙의 해’(2012~2013)를 선포한 것은 2000년 가톨릭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다시금 깊이 이해하고, 교회 공동체가 단단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전 세계 신자들은 ‘완벽한 선교사’였던 바오로 사도의 열정을 본받고, 사제들은 사제직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했다. 교회 위기 속에 신앙의 기쁨과 아름다움을 강조한 신앙의 해까지, 모든 지역 교회는 때마다 같은 주제 아래 모였고, 교회 안에서 희망을 얻었다. 28차례 해외 사목 방문, 복음화를 향한 헌신교황은 28차례 로마 밖으로 나가 ‘지구촌 평화의 사도’의 역할을 다했다. 고향 독일을 3차례나 방문해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회복하자”며 모국을 새 복음화 바람의 진원지로 만들고자 힘썼고, 카메룬, 요르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레바논, 멕시코와 쿠바를 방문하며 ‘유럽의 교황’이라는 비난도 잠재웠다. 가정과 생명, 화해와 용서, 평화의 가치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물질 만능주의와 세속화에 젖은 현대인들에게 가톨릭 전통과 문화의 소중한 가치들을 일깨우며 새 복음화의 씨앗을 뿌렸다. 특히 가톨릭에 뿌리를 둔 유럽 사회는 신앙으로 재무장할 것을 강조했다.독일과 호주, 스페인에서 열린 3번의 세계청년대회에도 참석해 젊은이들에게 신앙 열정을 불어넣었다. 교황은 100만 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운집한 대회 때마다 “그리스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갖고 단단한 신앙의 반석을 세워 하느님과 하나 되자”고 힘을 실었다.특히, 2012년 교황은 쿠바를 사목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의장과 마주했고, 오랜 사회주의 체제지만 종교활동이 자유롭게 펼쳐지길 기원했다. 이를 계기로 쿠바는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종교 행사에 대한 제재를 완화했으며, 이후 미국과 쿠바가 국교를 정상화하는 데에도 기여하는 등 화해의 사도로서 역할도 다했다. 추기경 90명 임명, 45명 시성베네딕토 16세 교황은 8년 재위 기간 한국 교회의 고 정진석 추기경을 비롯해 추기경 90명을 새로 임명하고, 보편 교회의 공동체 결집과 선교력을 강화했다. 한국의 옥현진 대주교와 김종수 주교와 손삼석 주교를 비롯해 96명에 이르는 각지의 사제들을 주교로 임명하기도 했다.아울러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를 비롯해 세계 모든 신자가 공경해야 하는 복자도 45명 시성했으며, 800여 명을 시복했다. 교황이 즉위한 2005년 10억 9000만 명이었던 지구촌 가톨릭 신자 수는 8년 뒤 12억 5000만 명에 이르렀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cpbc2023.01.01
![[생활속의 복음] 성체 성혈 대축일 - 모두를 충만하게 하는 사랑의 기적](//cpbc.co.kr/CMS/newspaper/2022/06/rc/826018_1.1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성체 성혈 대축일 - 모두를 충만하게 하는 사랑의 기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는 군중을 단지 육신의 음식으로 배를 불리는 것을 넘어, 사랑이 가득 담긴 영혼의 양식으로 배부르게 하시어 삶의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만들고자 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라는 명령에는 제자들로 하여금 ‘사랑의 나눔’에 동참하기를 바라시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돌려받을 것을 먼저 생각하지 말고, 이런저런 조건들을 달아가며 스스로에게 제한을 두지 말고, 손해 보는 것을 아까워하며 망설이거나 미루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그 나눔을 통해 제자들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돈을 지불하고 사는 가치들이 아니라, 햇볕 공기 물처럼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거저 베풀어주신 것들임을, 그런 하느님 사랑을 생각한다면 내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베풀고 나누어야 함을, 사람을 참으로 사람답게 살게 하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요소가 바로 그 사랑임을 알게 되는 겁니다.그러나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섭리’보다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먼저 봅니다. 자기들에게는 수천 명분의 빵을 살만큼 큰돈이 없습니다. 그럴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장 내일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 빠듯한 처지에서, 왜 자기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저들의 끼니까지 챙겨줘야 하는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내 한 몸 챙기기에도 버겁고, 하루하루 고된 삶을 지탱하기도 힘든데 대체 그럴 ‘여유’가 어딨느냐고, 지금 자기들이 가진 거라고는 제 입에 풀칠하기에도 모자란 보잘것없는 양식이 전부인데 그것마저 내어주기는 싫다고, 우리도 좀 먹고살아야겠다고 완강하게 버티고 있는 겁니다.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복하십니다. 하늘을 우러른다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분을 공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자세입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총의 크고 작음을 비교하고 따지기 전에 먼저 ‘감사’해야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이 감사가 바로 ‘성체성사’의 핵심입니다. 내가 받고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작은 것들에도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을 때 그것들을 기꺼이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 손안에 내어드린 것들을 축복하시어 그것들이 단순한 물질에만 머무르다 썩어 없어지지 않고, 우리를 충만히 채워주시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의 표징으로 변화되게 하십니다.주님 당신 손으로 변화시키셨으니 그대로 나누어주시면 될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굳이 제자들의 손을 빌려 ‘사랑의 성사’가 된 그 양식들을 나누어 주십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돈에 기울어져 사람을 외면하는 ‘황량한’ 마음이 아니라, 사랑에 기울어져 자신을 내어주는 충만하고 따스한 ‘정’(情)임을 느끼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지금 내가 갖고 누리는 모든 것은 다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선물이니 그 선물을 받은 내가 할 일은 그것이 내 안에 고여 욕심으로 썩게 만드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흐르게 하여 모두를 살리는 일임을, 우리는 사랑의 관계 안에서 서로에게 서로를 내어줌으로써만 살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그렇게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열둘은 그 어떤 모자람도 없는 충만함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모두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사랑의 기적은 나누고 베풀려는 작은 진심에서 시작됨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분명 작은 숫자이지만 다섯과 둘을 합치면 ‘일곱’이라는, 성경에서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가 됩니다. 나 혼자만 빵을 먹으려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다른 이에게 빵이 되어주는 이타심으로 나아갈 때, 우리 모두를 사랑의 참 기쁨으로 충만하게 채워주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cpbc2022.06.14
전통적 영성 대가들이 기도하는 법 마음을 열고 가슴을 열고 토마스 키팅 지음이청준 옮김가톨릭출판사“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6)향심기도 수련자들은 말한다. “기도를 하자 깊은 평화를 느꼈다”, “내 몸 전체가 기도에 더욱 깊이 들어가길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묵상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나에게도 이런 체험의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는 나 자신 안으로 들어가 하느님과 만나는 것이라는데, 말처럼 쉽지 않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 순간 툭툭 튀어나오는 생각이 방해한다. 그런데 이렇게 시끄러운 내면으로 조용히 들어갈 방법이 있다고 한다. 향심기도는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6)는 복음 말씀에서 유래됐다. 그리스도교의 전통적인 영성 대가들은 이 성경 구절을 보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가르쳐 왔다. 저자 토마스 키팅 신부는 이러한 대가들의 가르침을 현대적인 행태로 만들었다. 1997년 발행된 이후 이를 배우려는 입문자들의 가장 보편적인 지침서가 된 이유다. 가톨릭출판사에서는 향심기도를 처음 접하는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새로운 역자의 번역으로 전면 개정해 이 책을 선보인다. 토마스 키팅 신부는 미국 트라피스트 수도회 사제로, 1961년에서 1981년까지 스펜서에 있는 요셉 수도원에서 수도원장으로 활동했다. 1975년 향심기도 운동을 시작했고, 1984년 국제관상지원단을 창설했으며 2018년 선종했다. 대표작으로는 이 책을 비롯해 「침묵의 대화」, 「내 안에 숨어 계신 하느님」 등이 있다. 박예슬 수습기자 okkcc8@cpbc.co.kr 평화신문2022.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