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1)은수자와 렉시오 디비나](//cpbc.co.kr/CMS/newspaper/2019/10/rc/765016_1.1_titleImage_1.jpg)
[수도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11)은수자와 렉시오 디비나마음으로 성경을 끊임없이 읽고 암송 허성준 신부 초기 수도승들은 세상으로부터 물러나 사막의 철저한 고독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성경 외의 다른 독서들은 내면생활에 무가치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Apophthegmata)」에서는 성경 독서 외의 다른 독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다. 은수자들의 스승인 성 안토니우스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자신의 성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성당에 들어갔다가 그날 선포된 말씀 중에 한 말씀이 그에게 강하게 다가왔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그는 즉시 이 말씀을 따르고 싶었지만 그에게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여동생이 있었기에 고민해야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또다시 성당에 들어갔다가 그날 선포된 말씀 중에 한 말씀이 그에게 크게 다가왔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4) 그는 이 말씀에 따라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을 향한 영적 여정을 시작하였다.그는 먼저 마을 변두리로 물러나 수행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배워 나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영적인 싸움을 할 단계에 이르자 다시 무덤가로 나아갔다. 무덤에서 사탄과의 격렬한 싸움 후에 마침내 주님의 현시를 체험하게 되었다. 그때 안토니우스는 주님께 “당신은 제가 그렇게 고통 중에 있을 때 어디 계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주님께서 “나는 그때 너와 함께 있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깊은 체험 후에, 그는 더 깊은 사막으로 물러나 20년간 깊은 고독과 침묵 속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그 후에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되었고, 후에는 더 깊은 내적 사막의 동굴로 물러나 죽을 때까지 44년 동안 철저히 하느님의 사람으로 머물다가 주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때 그의 나이는 105세였다. 특별히 은수자들의 스승이었던 성 안토니우스는 수행생활 초기에 마을 근처에 머물면서 금욕적인 삶을 살았는데, 그때 성경 말씀을 얼마나 열심히 읽고 묵상했는지 그의 기억력이 성경 전체를 대신할 정도였다고 한다.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 보면, 많은 수도 교부가 제자들로부터 한 말씀을 요청받을 때, 성경의 한 말씀을 처방약으로 주기도 하였다. 팔레스타인에서 은수생활을 시작한 힐라리온 압바(Abba Hilarion, 291~371)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함을 강조하였다. 비록 초기 은수자들이 성경 본문 전체를 소유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들은 마음 깊은 곳에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간직하였다. 그래서 어떤 교부는 한 말씀을 청하는 제자에게, “만약 당신이 성경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것을 계속하여 반복하라”고 권고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계속 말씀을 반복하다 보면 후에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은수자들은 독방에서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성경을 끊임없이 읽고 암송하였다. 그들에게 있어 성경 독서는 그들의 삶을 인도하는 구체적인 수행이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고대 수도승들이 전해준 렉시오 디비나에 관한 3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는 말씀을 기억 속에 간직함이다. 둘째는 성경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다가감이다. 셋째는 말씀을 끊임없이 반복함이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19.10.22

영혼을 돌보는 ‘어머니 교회’의 근본으로 돌아가다[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2) 파스콸레 카티의 ‘트렌토 공의회’ 파스콸레 카티, ‘트렌토 공의회’(1588/1589),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로마. 종교개혁과 로마 약탈이라는 충격과 함께 시작된 1500년대의 교회는 1534년 파르네세 가문의 알렉산드로가 바오로 3세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언급했지만(바치초의 ‘성 프란체스코의 죽음’ 편), 바오로 3세는 많은 남녀 수도회 설립을 인가해주고, 영성가들을 교회에서 보호해줌으로써 성인들의 시대를 열기도 했지만, 보편 교회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든 종교개혁가들에게 답변도 해 주어야 했다. 그것이 1545년 12월 13일부터 1563년 12월 4일까지 이탈리아 북부 도시 트렌토 주교좌성당에서 개최한 공의회였다. ‘트렌토 공의회’는 3차례 회기를 가졌다. 바오로 3세가 소집하고, 율리오 3세 교황을 거쳐 비오 4세 교황이 18년간의 회의 일정을 폐막했다. 25명의 주교와 5명의 수도회 장상이 시작한 공의회는 255명이 참석한 가운데 막을 내렸다. 안건 내용은 주로 프로테스탄티즘, 가톨릭교회의 쇄신, 성사, 성경, 심판 등이었고, 최종 16개 교령이 선포되었다. 트렌토 공의회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까지 약 300년간 가톨릭교회의 노선이 되었다. 어렵게 열린 공의회교회 쇄신에 대한 목소리는 13~14세기, 보니파시오 8세 교황과 프랑스 필립 왕이 대립할 때부터, 교황청의 아비뇽 이전과 로마 귀환, 서구 교회의 분열 등이 터지던 때부터 나왔던 것이었다. 이에 1512~1517년, 율리오 2세 교황이 소집하고, 레오 10세 교황이 마무리한 제5차 라테란 공의회가 있었으나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이유는 당시 율리오 2세의 자세가 오로지 프랑스 왕 루이 12세를 견제하는 데만 힘을 쏟았을 뿐, 실제 교회 안팎의 문제에는 관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문제는 더욱 커졌고, 결국 종교개혁과 로마 약탈이라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문제는 빨리 해결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더 커져서 그만큼 더 큰 희생을 치르고서야 해결된다. 1523년 뉘른베르크 제국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모두 동의하는 공의회를 개최해야 한다며 “독일에서 자유롭게 그리스도교 회의를 여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고, 샤를 5세도 동의했다. 요컨대, 공의회 개최는 기정사실이고, ① ‘자유롭게’, 교황이 아니라 황제의 지휘하에서 ② ‘그리스도인’, 곧 평신도들도 참여한 가운데 ③ 이탈리아보다 안전한 ‘독일 땅’에서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클레멘스 7세 교황은 이런 조항들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교회 일보다는 외교적인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 뉘른베르크의 제안이 점차 흐려지는 가운데, 합스부르크와 프랑스의 전쟁(1521~1559년)이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그로 인해 1520년대 소집하기로 한 공의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클레멘스 7세의 뒤를 이은 바오로 3세도 1536년, 1538년에 공의회 개최를 시도했으나 연기되는 사이에 장소만 트렌토로 결정되었다. 독일의 제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탈리아에서도 가기 쉬운 곳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전쟁은 공의회 개최를 지연시켰고, 드디어 1545년 3월 15일에서 또 한차례 미루어 12월 13일에 개최되었다. 제1차 회기(1545~1547년)에서 주로 다룬 것은 성경과 전통, 구약과 신약의 법규, 불가타 성경의 확실성, 원죄와 심판, 성사 일반 및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등에 관한 교의적인 문제들과 설교, 주교들의 거주 의무 등이었다.제2차 회기(1551~1552년)는 바오로 3세가 사망하고, 후임인 율리오 3세가 이끌었다. 성체ㆍ참회ㆍ병자성사에 관해 교령이 선포되고, 주교의 감독권, 성직자의 의무 등이 결정되었다. 이 기간에 독일 프로테스탄트 일부 제후들은 연맹을 결성했다. 지금까지 승인된 법령의 폐지, 교황에 대한 충성 서약 철회, 교황에 관한 공의회 우위성 확인을 요구했고 뜻대로 되지 않자 1552년 독일 남부로 군대를 집결하여 트렌토를 위협했다. 공의회 교부들은 즉시 회의를 중단하고 모두 돌아갔고, 샤를 5세도 인스브루크를 버리고 떠났다. 제3차 회기(1562~1563년)는 율리오 3세(1555년†), 마르첼로 2세(1555년†), 바오로 4세(1559년†) 교황의 뒤를 이어 밀라노 출신인 가를로 보로메오 추기경의 조카 비오 4세가 교황이 되어 이끌었다. 성체ㆍ신품ㆍ혼인성사, 연옥, 성인 공경, 전대사와 수도회에 관한 내용이 승인됐다. 전례에서 라틴어 사용과 속어 강론이 의무화되며, 주교들의 거주 의무, 사제 양성을 위한 신학교 설립 등도 선포되었다. 루터와 선 긋고 교회 쇄신의 동력 얻어 공의회의 업적은 교의적인 차원과 교도적인 차원으로 구분해서 들여다볼 수 있다. 교의적인 문제에서 공의회는 소집 자체가 루터의 논문에 응답하기 위한 것이어서 독일의 개혁자들이 논쟁으로 삼지 않은 것은 공의회에서 다루지 않았다. 삼위일체, 그리스도 강생과 부활의 신비 등에 대해 다루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종교개혁에서 들고 나왔던 교회의 성사에 관해서는 개별 성사들을 신학적으로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결론 내렸다. 또 프로테스탄트의 개인주의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동시에 법적 제도기도 한 교회의 중재 필요성을 재확인했고, 교회는 계시된 말씀의 수호자며 해석자로서, 교도 임무와 성사들을 통해 그것을 유지하고 누가 위임하든지 간에 객관적 가치와 본질적인 효능은 존재한다고 재천명했다. 교도 임무에 관해서, 공의회는 루터의 주장과 달리 하느님의 은총에 더해 믿음과 행동이 동반된 인간 협력의 필요성을 가르쳤다. 이로써 트렌토의 선언은 루터의 주장과 동떨어진 것으로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그와의 결별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한편, 교회 내부적으로 트렌토 공의회는 신앙생활을 쇄신하는 참된 동력으로 작용했다. 제3차 회기의 개혁 교령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 “영혼들을 돌봄(cura animarum)”이었다. 이것은 교회의 근본적인 사명으로 간주 되었고, 주교와 성직자들은 본성과 행위에서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복음을 가르치고, 성사를 통해 “영혼을 돌보는 데 있다”라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주교들의 첫 번째 임무로 성직자 양성을 위임했다. 이에 주교들은 신학교 건설에 앞장섰고, 사제 교육이 활발해졌으며, 사제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선교 활동이 이루어졌다.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색감 사용 소개하는 작품은 ‘영혼을 돌보는’ 교회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파스콸레 카티(Pasquale Cati, 1550~1620)가 그린 ‘트렌토 공의회의 비유’(1588-1589)다. 로마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내 알템프 소성당(Cappella Altemps)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다. 카티는 다르피노(Cavalier d‘ Arpino)로 알려진 체사리(Giuseppe Cesari)의 제자로 마르케 지방 출신이다. 미켈란젤로 스타일의 매너리즘 작가로도 알려졌다. 로마에서 주로 활동하며 독창적이고 개성 있는 색감으로 로마의 후기 매너리스트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이 작품이 있는 로마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과 로마 포르모사의 성 로렌조 성당에 굵직한 작품들을 남기고 1620년 로마에서 생을 마감했다. 트렌토 공의회에 대한 평가는 이후 역사의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대두되었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어머니이신 교회’가 가르치고, 기억하고, 묵상하고, 열매 맺도록 한다는 근본 방향을 설정한 것은, 공의회의 최고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 속으로그림은 중간에 벽이 있어 앞, 뒤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뒷부분, 회의에 임하는 고위 성직자들의 자세는 자유로우면서도 매우 진지하다. 왼편 연단에 앉은 추기경들 맨 앞에 흰옷을 입은 비오 4세 데 메디치 교황이 있고, 반대편에는 주교들과 수도회 장상들이 뭔가 열심히 대화에 임하고 있다. 이 양쪽을 가르는 사이로 왼쪽 위에서 엄숙한 공의회장 안으로 성령의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앞부분이다. 교회를 상징하는 듯, 교황의 삼중관을 쓴 여성이 한 손에는 목장(牧杖)을, 한 손으로는 누군가를 저지하는 자세로 종교개혁자를 밟고 있다. 나약하지만 엄격하다. 가슴에 십자가 형태로 두른 영대와 입고 있는 흰옷으로 교회와 교황을 대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녀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여성은 지역 교회와 학문을 상징한다. 그녀의 그늘에서 로물루스와 레무스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여성은 ‘로마’이고, 그 뒤로 손을 모으고 있는 여성, 성합이나 십자가를 든 여성은 ‘지역 교회’를, 그 옆에 바닥에 펼쳐진 책과 지구본은 인문과학을 포함한 각종 ‘학문’을 상징한다. 파스콸레 카티, ‘트렌토 공의회의 비유’(1588/1589),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로마.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1.05.18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21)성경 독서의 전개](//cpbc.co.kr/CMS/newspaper/2020/01/rc/770107_1.1_titleImage_1.jpg)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21)성경 독서의 전개말씀의 신비 일깨우는 성령 허성준 신부 수도승들의 성경 독서는 단순히 읽는 것 자체가 아니라 언제나 묵상과 기도 그리고 관상을 지향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함축하고 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걸어가던 두 제자에게 다가가시어, 그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직접 풀이해 주심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셨다.(루카 24,32) 마찬가지로 우리가 온전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그분은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당신 말씀의 신비를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 즉 주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이해력을 열어 주시고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듯이(루카 24,45), 마찬가지로 그분은 우리에게 나타나시어 우리의 이해력을 열어 주시고, 당신 말씀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해 주신다.우리는 파코미오의 제자였던 테오도로의 예를 통해서 성경 독서가 어떻게 신비 체험을 가능케 하는가를 볼 수 있다. 어느 날 테오도로는 수도원 경내에 앉아서 구약의 미카 예언서를 소리 내 읽고 있었다. 그때 주님의 천사가 갑자기 나타나서 “벼랑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과 같다”(미카 1,4)라는 말씀의 참된 영적 의미를 알려주었다. 즉 천사는 그 물이 천국으로부터 떨어짐을 그에게 알려 주었고 그리고는 즉시 그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이와같이 우리가 성경 독서를 충실히 하다 보면, 테오도로의 경우처럼 언젠가 천사나 성령의 도움으로 그 말씀의 깊은 영적 의미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것이다.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당신과의 깊은 일치에로 초대하고 계시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묵시 3,20) 주님은 오늘 당신 말씀을 통해 우리 존재의 문 앞에 서서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고 계시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하느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읽고 암송하면서 그분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리고 기도 안에서 그분께 응답한다면, 주님은 분명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만찬을 나누실 것이다. 즉 관상 안에서 우리는 그분과 더 이상 문이라는 벽 앞에서 분리되지 않고 하나 되게 된다. 이렇게 성경 독서는 하느님과의 일치인 관상에로 자연스럽게 우리를 인도한다. 성경 독서와 성령렉시오 디비나에 있어서 한 가지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성령에 의해 조명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성경은 모두 성령의 영감에 의해 고무되어진 책으로(2티모 3,16),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셔야만 온전히 말씀의 신비를 깨닫게 된다.(요한 16,13) 그러므로 성경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성령께 온전히 개방해야만 참다운 진리의 바다에로 인도될 수 있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성경 독서에서 열매를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며,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그분은 참된 내적 일치의 원천이시기 때문이다. 바로 그분이 거룩한 말씀의 신비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동시에 우리 안에 머무르면서 우리의 영성 생활을 촉구하고 계시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언제나 성령께서 심오한 말씀의 신비를 직접 열어 보여주시고 깨닫게 해주시기를 청하면서 겸허하고 개방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한다. 지적이고 추리적인 읽기와 사색을 포기하고 순수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전적으로 성령께 자신을 내어 맡김이 중요하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20.01.01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4주일 -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cpbc.co.kr/CMS/newspaper/2021/06/rc/804942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4주일 -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정순택 주교 예수님이 이천 년 전에 태어나신 분이시기에, 거리감이 느껴지시나요? 혹 그분이 이곳 우리가 사는 한국 땅이 아니라 저 먼 중동의 팔레스티나에 사셨던 분이라 멀게 느껴지시나요? 혹시라도 그분이 지금 이 땅에 우리와 함께 살고 계신다면, 우리가 그분을 더 잘 알아볼 수 있을까요?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동향 나자렛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요.예수님은 공생활, 아마도 초기 즈음에 카파르나움에서 중풍 병자도 고쳐 주시고,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 게라사 지방에서 마귀들도 쫓아내시고, 야이로의 딸도 살리시는 등 많은 기적을 행하신 후 잠시 고향 나자렛에 돌아가셔서 어느 안식일에 회당으로 가십니다. 회당은 사제들이 제사를 드리는 성전과는 달리, 마을 사람들이 모여 성경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도 하고 거룩한 가르침도 듣는 일종의 ‘(마을)회관’ 같은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두루마리를 읽으시고(루카 4,17) 권위를 갖고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동향 나자렛 사람들은 그분의 깊은 가르침을 듣기보다는,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하며 놀라는 데 그칩니다. 왜냐하면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며 선입관으로 그분을 규정하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그 어머니도 동네 사람이고, ‘예수님의 형제들도 다 알고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한 겁니다.(물론 근동의 ‘형제’라는 단어는 한 어머니에서 난 한배 형제들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넓게는 일가친척과 친족까지 다 ‘형제’로 지칭합니다.) 우리 자신의 아집에 갇혀 있으면, 우리가 아는 피상적인 앎이 참된 믿음에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를 오늘 1독서에서는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저 자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피상적으로 아는 것을 넘어, 깊은 믿음에로 넘어가기 위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요? 오늘 둘째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힌트를 줍니다. 주님께서는 바오로 사도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그렇기에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자신의 힘(그것이 외형적 힘이나 사회적 파워 혹은 물질적 풍요의 힘이건 간에)만 믿고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하게’ 하느님께 맞서지 않고, 하느님 자비에 깊이 의탁하기 위해선 먼저 우리의 약함과 한계를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삶에서 한 번씩 찾아오는 시련과 힘든 십자가들은 ‘뻔뻔해지기 쉽고 완고해지기 쉬운’ 우리를 하느님 앞에 무너뜨리며,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게 만드는 하느님의 초대요, 개입입니다. “우리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정순택 주교(서울대교구 보좌주교) 평화신문2021.06.30
[사설] 사랑의 기쁨인 가정의 해 개막을 맞으며 지난 19일 ‘사랑의 기쁨인 가정의 해’가 개막됐다. 내년 제10차 세계가정대회 폐막일인 6월 26일까지 1년 3개월여에 걸쳐 진행될 기념의 해로, 2014년 10월과 2015년 10월에 개최된 가정에 관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 권고인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 반포 5주년을 맞아 선포됐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월 선포한 사랑의 기쁨인 가정의 해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크게 부족한 것으로 보여진다. 광주대교구만이 19일 임동 주교좌성당에서 개막 미사를 봉헌했을 뿐 타 교구에선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광주대교구에선 매달 19일을 ‘19day’로 정해 모든 본당에서 달마다 부모와 자녀, 부부, 가정, 어르신(노인) 등 공동 지향을 바꿔가며 미사를 봉헌키로 했다. 아울러 ‘19day 실천표’를 배부, 가정마다 전례 기도와 사랑 실천을 하도록 했고, 릴레이 가정기도 챌린지, 혼인갱신식과 성가정 축복장 발송 등을 추진한다. 가정이 지니는 중요성은 성경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다. 또한, 주님의 사랑과 충실성, 이에 응답할 필요성을 배우는 곳도 가정이다. 그런데도 가정이 지니는 중요성을 간과한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나고 가정의 모든 특성을 받아들이셨으며, 혼인제도에 최상의 품위를 부여하며 새 계약의 성사로 만드셨고, 그럼으로써 성가정은 가정생활의 모범이 됐다.(마태 19,3-9 참조) 한국 교회도 모든 가정이 나자렛 성가정을 본받아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가정을 일구고, 가정마다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적절히 수행하도록 하는 데 함께하는 한 해가 되기를 간곡히 기원한다. 평화신문2021.03.24

늦깎이 시인 김해선씨 “시 쓰고 다듬으며 성장합니다”[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8) 시인 김해선(비비안나) 김해선 시인은 작가를 꿈꿨지만, 결혼 후 출산과 육아로 꿈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을 쪼개 읽고 쓰기를 반복하고 학업을 이어가며 작가의 꿈을 이뤘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어린 시절 꿈 많고 매사에 자신감 넘쳤던 여성이 직장 생활을 거쳐 결혼하고 육아와 내조에 힘쓰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이름은 없어지고 아무개 엄마, 누구의 아내로 불린다. 요즘 들어 많은 어머니들이 단절된 경력을 딛고 과거에 못 이룬 꿈을 이루려 한다. 여유가 있다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로운 여행도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생각뿐 실제로 실천하기는 어려운데 실제 시도를 하는 통쾌한 주부시인이 있다. 뒤늦게 시인으로 등단하고 몇 달씩 외국에서 혼자의 삶을 통해 자아를 찾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다. 김해선(비비안나, 59) 시인. 지난 2021년 1월에 첫 시집 「중동 건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가톨릭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수녀님들이 운영하는 가톨릭 중ㆍ고등학교에 다녀 자연스럽게 종교적 분위기에 접하게 되었죠. 그런데 우리 집은 유교 문화가 강해 일요일에 성당에 가는 것이 몹시 어려웠죠. 친구들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는 것이 무척 부러웠어요. 드디어 고등학교 2학년 때 부활절 미사에서 영세했어요. 밤 미사가 끝나고 눈이 푸른 외국 신부님께서 직접 운전하셔서 친구들과 함께 집에 데려다 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 어릴 적 꿈은 무엇이셨나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는데 시골이라 읽을 만한 책이 많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둘째 고모가 「소공녀」 책을 빌려다 주었는데 그 책이 닳도록 읽고 또 읽었어요. 그리고 학교에서 수업 후 매일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고 어둑해서 집으로 돌아갈 때 마음이 뿌듯했던 기억이 나요. ▶ 대학교 때 생활은 어떠셨나요? 대학 때 재수까지 했는데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지 못했어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아주 위축되고 어둡고 우울한 시기였죠. 신춘문예에도 계속 도전했는데 번번이 떨어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마음에 좋은 글을 쓰는 것보다 신춘문예에 화려하게 등단하려는 욕망이 컸던 것 같아요.▶ 결혼 후 늦게 대학원 공부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남편과 데이트할 때 문학 얘기도 많이 했고 비교적 빨리 결혼했어요. 결혼해도 저의 꿈을 밀어준다는 약속을 곧이곧대로 믿었지요. 물론 남편이 배신한 건 아니지만(웃음) 현실은 생각과 전혀 달랐어요. 아이 셋을 낳고 육아하면서 공부하고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어요. 큰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막내가 유치원에 다니면서 비로소 오전 세 시간을 쓸 수 있었어요. 막내가 유치원에 가면 나는 매일 도서관으로 뛰어가 글쓰기를 했어요. 그런데 혼자서 읽고 쓰고 몇 년을 하다 보니 한계를 느끼며 대학원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 등단을 늦게 하신 편인데? 늦깎이 대학원생이 되면서 열심히 하면 적어도 석사과정이 끝나면 등단도 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신춘문예의 문을 계속 두드렸지만, 박사과정 졸업 때까지도 등단을 못 했어요. 17번 도전을 했는데 계속 떨어졌어요. 참담했죠, 우선 나 자신에게 실망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2015년 초여름 어느 날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가 등단 소식을 들었어요. 저도 모르게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어요. 저에게 문학은 지난한 시간과의 투쟁이었어요. 지금도 등단하지 못했다면 2022년 신춘문예에 또 도전했을 것 같아요.(웃음) ▶ 오랜 시간 외국 여행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주부로서 쉽지 않은 결정 아닌가요? 등단이 늦어지면서 우울감과 절망감에 빠졌지요. 그러다 문득 지금 여기를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해 혼자 하는 여행을 선택했어요. 우선 연습 삼아 혼자 일본 나오시마를 여행했어요. 사실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쉽잖아요. 그 후에 체코의 체스키크룸로프에서 40일, 프라하에서 15일을 보냈어요. 물론 가족이 도와주어 가능했지요. 늘 가족에게 감사해요. 2019년 12월 초에 혼자서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덴마크로 건너가 여행을 마치고 2020년 2월 말에 귀국했어요. ▶ 외국에서 홀로 한 여정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세요.어느 것이든 아주 자세하게 계획적으로 생활했어요. 체코 체스키크룸로프에서는 시집 한 권을 정리할 생각을 가졌어요. 아침 6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7시부터 12시까지 글쓰기에 집중했어요. 12시 이후엔 체스키크룸로프 마을을 마실 다니듯 꼼꼼히 살피고 다녔어요. 그러면서 에곤 실레 아트센터에 자주 들르게 되었는데 그러다 에곤 실레 생애와 작품에 빠져들었어요. 「에곤 실레를 사랑한다면, 한 번쯤 체스키크룸로프」라는 첫 산문집을 냈어요. 시인이 시집보다 산문집을 먼저 냈어요.(웃음) 그리고 매일 10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했는데 성당은 몹시 추웠지만 파이프 오르간의 연주를 듣는 순간은 추위를 잊을 정도로 행복했던 기억이 나요.▶ 본당에서 봉사도 하시나요? 본당에서 빈첸시오회 활동을 했는데 한부모 가정과 홀몸노인 방문, 그리고 남부 교도소에 보호자가 없는 재소자분들에게 간식비 지급을 전달하는 아주 가벼운 심부름을 했어요. 그리고 가톨릭 영시니어 아카데미에서 ‘문학의 향기’, ‘삶과 문학’을 9년 이상 강의했어요. ▶ 시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던 저에게 ‘시’는 저를 대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꾸 실패하는 시를 위해서 혼자서 장거리 여행을 하며 실패한 시를 다독이며 다시 쓰고 수정을 거듭했어요, 지금도 원고 청탁이 와도 쓰고, 오지 않아도 매일 잘 안 되는 시를 쓰고 수정하고 쓰고 있어요. 시는 저의 일상이라 할 수 있죠. ▶ 요즘 젊은 청년들, 인생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조언할 형편은 아닌 것 같은데(웃음) 저는 진부할 수 있지만 책 읽기를 권하고 싶어요. AI, 유튜브, 메타버스, 게임 등 재미있는 것들이 날로 발전하는 시대이지만 책에서도 재미와 중요함을 발견할 수 있지요. 나 개인의 독창성을 살리는 발전과 성장, 특히 창의성을 바란다면 책을 읽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AI, 메타버스, 제페토 등 모두 창의성에서 개발되었고 발전되고 있잖아요. ▶ 가장 어려웠던 인생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저의 고통과 어려움엔 기도가 약이 되었지요. 등단 도전이 계속 실패하고 첫 시집 출간이 무산되었을 때 오랫동안 슬프고 우울했죠. 그때 집 근처 안양천 둑방길을 서너 시간 물병 하나를 들고 묵주기도를 하며 무작정 걸어요. 그러다 보면 성모님이 위로해주시는 것을 느끼게 되고 마음이 안정돼요. ▶ 이루고 싶은 미래의 꿈은 무엇인가요?제가 이루고 싶은 꿈은 저의 미약한 시의 성장이에요. 어떻게 하면 나만의 시를 쓸 수 있을까, 나만의 새로운 시를 쓰는 것이 지금 저의 꿈이며 미래의 꿈이에요. ▶ 가장 즐겨하는 기도는 무엇인가요? 아침기도와 저녁기도, 묵주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예요. 저녁기도에서는 성가(「야훼이레」 773번, ‘하느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를 천천히 읽거나 작게 소리로 노래합니다. 그리고 항상 성경(1코린 13,1~13, 갈라 3,3~10)을 통독합니다. 그 기도가 오늘날 저를 지탱해준 가장 큰 위로와 힘이에요. 우리는 누구나 꿈을 꾼다. 그러나 모두가 그 꿈을 실제로 실현하지는 못한다. 사실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다른 이에게 “그거 너무 늦은 것 아니야?” 하며 힘을 빼지는 않았나? 세상에 너무 늦은 것은 없다. 우리가 그것을 잘 깨닫지 못할 뿐이다. 늦었다는 시간은 결코 존재하지 않음을 김해선 시인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삶의 지혜이다. 김해선 시인은 오늘도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고 또 쓴다. 그래서 그녀는 그저 감사하고 행복하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cpbc2022.01.11

새 복음화 위해 신앙 기초 다지고, 생명수호 활동 펼쳐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걸어온 길 제13대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30일 오전 10시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이임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교구장 자리에서 물러난다. 김수환(1922∼2009)ㆍ정진석(1931∼2021) 추기경에 이은 한국 교회 세 번째 추기경으로, 9년 5개월간 서울대교구장으로 헌신해왔다. 1970년 사제품을 받은 후 반세기 넘게 교회를 위해 자신을 바쳐온 염 추기경의 발자취를 살펴봤다. 추기경의 사목표어는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이다.신앙 튼튼히 하고, 서소문역사공원 조성2012년 6월 25일 제13대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에 착좌한 염 추기경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선교의 장’을 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끊임없는 내적 쇄신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교회가 되어야 한다”며 “선교 노력은 우리나라를 넘어서 아시아를 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염 추기경은 2013년 신앙의 해를 시작하며, 한국 천주교회의 당면 위기를 ‘허약한 신앙’이라고 진단했다. 2014년부터 5년간 허약한 신앙을 극복하기 위한 세부적인 사목지침(말씀으로 시작되는 신앙ㆍ기도로 자라나는 신앙ㆍ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ㆍ미사로 하나되는 신앙ㆍ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을 제시했다. 그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기치로 내걸고, 성경 말씀과 기도를 통해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할 것을 당부했다.2014년 2월 22일, 한국 교회의 세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된 염 추기경은 그해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라는 역사적 현장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례로 거행된 124위 시복식은 한국 교회가 자력으로 추진해 교황청 시성성에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 시복 청원서’를 공식 접수한 후 5년 만에 이룬 결실이었다. 순교자 정신을 함양하는 데 큰 역할을 해온 염 추기경은 2019년 6월 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조성한 것을 가장 보람된 일로 꼽는다. 쓰레기 재활용 처리장과 청소차 주차장으로 사용돼 도심 속 고립된 섬 같았던 공간은 죽음의 형장이 아닌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위로받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서울대교구가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 서울 중구청에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 자원화 사업’을 제안해 8년 만에 이룬 성과였다.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 정부의 공식 처형지로, 단일 순교지 중 가장 많은 성인(44위)과 복자(27위)를 배출한 곳이다. 염 추기경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계획하셨고 순교자들이 그것을 마련해 주셨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이곳을 찾는 세계의 시민들이 영적인 기쁨과 위로를 느낄 수 있도록 열과 성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2020년 11월 14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앞두고 가톨릭사랑평화의 집을 찾은 쪽방촌 주민에게 따뜻한 도시락을 건네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미혼모에게 용기 주고, 노숙인에게는 밥상을염 추기경이 재임 시절, 가장 역점을 둔 사목은 생명이었다. 2005년 전임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를 설립한 때부터 초대 위원장을 맡아 다양한 생명수호 활동을 펼쳤다. 교구장에 착좌하면서도 생명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내려놓지 않았을 만큼, 생명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했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자, 염 추기경은 “인간 생명은 다수결로 결정될 수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사목교서를 발표하고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태아의 생명권을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동등한 수준으로 바라보고, 결국 태아의 생명권을 박탈한 것”이라고 개탄했다. 염 추기경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슬프게도 우리 사회는 지금 가장 연약한 인간 생명인 태아를 그 어머니에 의해 죽여도 좋다는 법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면서 “교회가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것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생명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여성들이 낙태를 고민하지 않도록 출산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생명윤리학자 이동익 신부의 제안으로, 2020년 생명위원회에 미혼부모기금위원회를 설립했다. 1년에 두 번씩 비공식적으로 미혼부모를 만나 후원금을 전달해왔다. 아울러 그는 올해 1월, 명동 옛 계성여고 운동장에 노숙인 무료급식소 ‘명동밥집’을 마련했다. 또 서울대교구 주교들과 틈틈이 용산구 가톨릭사랑평화의 집에 방문해 쪽방촌 주민들에게 사랑의 도시락도 배달했다.한편, 그가 교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의 한국 사회는 2014년 세월호 사건을 겪었고, 2017년에는 대통령의 국정 농단에 따른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었다. 2019년 4월에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려 생명경시 풍조는 더 깊어졌다. 2020년 2월 말, 한국 교회는 코로나 시대를 맞아 사상 초유의 ‘미사 중단’이라는 조치를 내려 국가적 재난 상황에 동참해야 했다. 코로나19는 교회의 많은 활동을 비대면으로 전환했으며, 만남과 친교를 바탕으로 한 신자들의 신앙과 성사 생활은 제약을 받았다. 염 추기경이 교구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사랑의 기쁨」 등의 문헌을 발표했다. 염 추기경이 교구장으로서 마지막으로 발표한 서한은, 생태적 회개의 삶과 창조질서보전을 촉구하는 서한(‘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에 관하여’)이다. 옹기를 구워 팔았던 집안의 후손염수정 추기경은 1943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염한진(갈리스도, 1908~1983)과 어머니 백금월(수산나, 1908~1995) 사이에서 5남 3녀 중 셋째 아들이다. 염 추기경 집안이 천주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 교회 초기, 신앙을 받아들인 파주(坡州) 염씨 15세손 의암공 염덕순(요셉, 1768~1827)공 때부터였다. 그의 집안은 4대조인 염석태(베드로, 1794 ~1850)공이 충북 진천에서 옹기를 구워 팔면서 박해 시절을 견뎌냈다. 염 추기경의 어머니는 임신한 순간부터 ‘아들이면 사제, 딸이면 수녀가 되도록 성모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염 추기경은 염씨 일가에서 첫 번째로 사제가 됐으며, 두 동생(염수완ㆍ염수의)도 사제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11.17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2021년 부활 메시지“??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되살아나신 것처럼,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4)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주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 부활의 은총과 평화가 온 세상 곳곳에, 특히 북한 형제자매들에게도 가득히 내리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크게 변화하였다고 전합니다. 제자들은 이 만남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나약함 때문에 스승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그분을 구세주로 선포했습니다(사도 4,13 참조). 예수님의 죽음으로 큰 슬픔에 잠겨있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주님을 뵙고 기쁨에 가득 차서 제자들에게 달려가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마르 16,10 참조). 주님 부활에 의심이 많았던 토마스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비로소 믿음을 회복하였습니다(요한 20,28 참조).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제자들은 두려움과 슬픔, 의심을 극복하고 활기차고 용감한 믿음의 사람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제자들의 새로운 삶, ‘부활’로 이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우리도 제자들처럼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하신 대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성체성사와 다른 성사들 안에, 성경 말씀 안에, 기도하고 찬양하는 신자들 안에 현존하십니다(전례헌장 7항). 또한 주님께서는 “가장 작은 이들”안에도 함께 계십니다. 굶주린 이들, 목마른 이들, 집 없는 이들, 헐벗은 이들,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태 25,31-46 참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교회 공동체가 부활을 증거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신자들은 교회 밖으로 나아가서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계신 주님을 섬기며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심각한 인명 피해와 정신적 고통,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욱 심해져 더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 고통받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불의와 불공정, 부정과 이기심은 국민들 사이에 불신과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 특히 다수의 젊은이들은 미래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깊은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절감하면서 과오와 부족함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지녀야 합니다. 이들이 주님 부활의 은총으로 국민만을 섬기는 봉사자로서 새롭게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국민들은 지도자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까지도 포용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아울러 지도자들이 개인의 욕심을 넘어서 공동선에 헌신하기를, 그중에도 가난과 절망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안겨주며 그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주기를 기대합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님은 “가난한 사람들은 거룩한 교회의 재산”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 사실을 잊으면 결코 주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없으며, 세상에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더 크게 자라고 성숙되는 것입니다. 지난 춘계 한국 주교회의에서 가난한 국가들의 코로나19 백신 보급을 지원하기 위해 모든 한국 교회가 ‘백신 나눔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여러 차례 “가난한 국가들이 코로나 19 백신 접종의 혜택에서 배제되어선 안 된다”고 우려하신 바 있습니다. 우리 교구도 이번 부활절에 가난한 국가를 지원하기 위한 백신 나눔 운동에 신자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시복 청원 중에 있는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모범을 따라 오직 주님께만 희망을 두고 부지런히 사랑을 실천합시다. 무엇보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들,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이, 병든 이, 불의와 불공정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며, 온 교회가 그들의 아픔을 나누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국가와 사회,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역할과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기도와 사랑의 실천을 한다면 바로 주님 부활의 증거가 될 것이며 우리 사회에 참다운 희망을 줄 것입니다. 주님 부활의 은총과 평화가 온 세상에,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형제자매들에게도 널리 퍼져나가도록 우리 신앙인들의 어머니,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께 전구를 청합니다. 교구장·평양교구장 서리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cpbc2021.04.16

“굳건한 믿음과 신뢰로 코로나19 극복하자” 서울대교구 코로나19 극복 미사, 백신 접종자는 제한 인원 제외… 대구·전주교구는 미사 인원 50%로 확대
3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 신자가 성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지혜 기자 “코로나19 확산으로 혼란과 불안 속에 있는 저희와 함께하여 주십시오. 어려움 속에서도 내적 평화를 잃지 않고 기도하도록 지켜주시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기도’ 중) 3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미사를 봉헌한 신자들이 ‘코로나 19 극복을 위한 기도’를 바치며, 사랑과 연대, 배려와 돌봄으로 희망을 나누는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기도했다. 미사를 주례한 교구 총대리 손희송 주교는 강론에서 “바람이 세게 불면 쓰러지는 나무도 있지만 어떤 나무는 뿌리를 더 깊게 내려서 성장한다”며 “하느님께서는 어려움과 시련으로 우리가 쓰러지기보다 신앙이 더 굳건해지고 어려운 사람을 보살피는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신다”고 말했다. 이어 손 주교는 “코로나 사태로 모두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굳건히 뿌리내리도록 은총을 구하자”고 당부했다. 3일 현재, 명동대성당 미사 참여 가능 인원은 전체 좌석 수의 20%(250명)이지만 백신 1차 접종 후 14일이 지난 사람은 제한 인원수에서 제외한다. 발열 체크와 역학 조사용 명단 체크는 실시하고 있다. 한편, 서울대교구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인 3월 25일부터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까지 매달 첫째 주 토요일 명동대성당에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미사’를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신앙적 고통과 심적 어려움을 기도와 미사로 이겨 나가자는 취지다.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3월 25일 봉헌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첫 미사에서 “작년 1월 국내 코로나19 발생 이후 신앙생활뿐만 아니라, 사회생활도 무척 위축돼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며 방황했던 것처럼 우리도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다”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주실 것이라는 믿음 안에 맡겨드리자”며 취지를 밝혔다.대구대교구(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대구시 사회적 거리 두기 1단계 개편 시행에 따른 행정명령 고시에 맞춰 1일부터 미사 참여 인원을 전체 수용 인원의 50% 이내로 확대하기로 했다. 단 1차 접종 후 14일이 지난 예방 접종자는 인원 산정에서 제외키로 했다. 교구는 고해성사의 경우 일괄 고백과 일괄 사죄를 이제는 하지 않고 개별 고해를 하도록 했다. 또 주일학교, 교육과 피정, 제단체 회합을 원칙적으로 할 수 있기에 신자들의 신앙생활 활성화를 위해 본당 사정에 맞게 모임을 장려해 달라고 각 본당에 요청했다. 전주교구(교구장 김선태 주교)도 정부의 새로운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에 따라 새로운 지침을 마련했다. 교구는 교구 내 모든 본당 전체 수용 인원의 50%까지 미사에 참여하도록 인원을 조정했다. 백신 1차 접종자, 접종 완료자는 미사 참여 인원 기준 50%에서 제외된다. 레지오 마리애 회합, 제 단체 모임, 예비자교리, 기도 모임, 성경공부 등 각종 대면 모임 활동과 행사는 기존의 금지에서 자제로 완화돼 사적 모임 제한이 없어서 정상적인 모임이 가능하다. 다만 전주, 군산, 익산, 완주는 14일까지 8인까지만 모임이 가능하다.미사 중 신자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성가를 부르는 것은 가능하지만, 성가대는 백신 접종을 완료한 경우에 한해 운영이 가능하다. 리길재·이지혜·도재진 기자 평화신문2021.07.07
[현장 돋보기] 언택트 시대, 신앙은 ‘로그인’이지혜 보나(신문취재부 기자)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유튜브로 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를 틀어 놓는다. 휴대전화를 안방 화장대에서 부엌으로 들고 다니며 일상의 소음 속에서 ‘복음’을 듣는다. 올해 1월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가 등장해 화제가 된 ‘클럽하우스’가 인기다. 음성 기반 소셜 미디어인 클럽하우스에서는 최소 3, 4명에서 수백 명이 한 방에 모여 즉석 대화를 나눈다. 클럽하우스는 기존 가입자에게 모바일 초대장을 받아야 가입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최근 클럽하우스(클하) 가입자에게 초대를 받아 클하 세계에 발(손가락)을 들였다. 클하의 복도를 기웃거리다 ‘KOREAN CATHOLIC CLUB’(한국 가톨릭 클럽)을 발견했다. 대문에는 한국 천주교인들의 영성 토크, 묵상 나눔, 성서공부, 신앙생활 스토리라고 소개돼 있다. 국내 혹은 해외에 있는 가톨릭 사제와 수도자들, 한국인 신자들이 멤버다. 매일 밤 9시가 되면 성경 낭독을 하는 방, 성무일도를 바치는 방, 미얀마를 위해 침묵 기도를 바치는 방들도 있었다. 같은 시간대에 접속한 지구촌 사람들과 신앙을 주제로 즉석 대화를 나누는 것은 언택트 시대가 바꿔놓은 새로운 형태의 신앙생활이다. 언택트 시대는 개인 공간 중심의 디지털 플랫폼을 활성화시켰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와 블로그 기반의 플랫폼에서 이제는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클럽하우스까지…. 재미있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넘쳐난다. 신앙을 담은 콘텐츠들이 재미있는 콘텐츠들과 대결 구도로 맞서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자극적인 콘텐츠들은 현대인들의 영적 갈망을 해소해주지 못한다. 이제는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신앙 자율성을 얻은 신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의 취향에 맞는 플랫폼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언택트 시대에도 신앙을 삶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존재는 여전히 가깝다. cpbc2021.03.24

“아무 말 없이 그저 하느님을 봅니다”[미카엘의 순례일기] (34)프랑스 아르스의 비안네 신부 아르스 성당에 안치되어 있는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론 강(Le Rhne)과 손 강(La Sane)이 만나 생기는 삼각지를 중심으로 세워진 리옹(Lyon)은 프랑스 남부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입니다. 로마인들이 갈리아인들의 약탈을 방지하고 마르세유와의 자유로운 교역로를 확보하기 위해 손 강변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푸르비에르(Fourvire)에 도시를 세우면서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와 영국을 잇는 무역로의 중심이 되었고 무역과 은행업, 인쇄술, 예술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한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국제 인터폴의 본부가 자리한 곳도 리옹입니다. 성모님께 봉헌된 아름다운 성당(노트르담성당, Basilique Notre-Dame de Fourvire)과 요한 세례자에게 봉헌된 주교좌성당(Cathdrale Saint-Jean-Baptiste de Lyon)은 리옹을 순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명소입니다.그러나 종교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인 리옹은 대부분의 가톨릭 순례단에게 그저 경유지로만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옹에서 버스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작은 마을, 아르쉬르포르망(Ars-sur-Formans)에 가기 위한 여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1300명 남짓한 인구수의 작은 마을은 우리에게 ‘아르스’로 더 잘 알려졌습니다. 모든 본당 신부님들의 수호성인이신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프랑스어로는 장 마리 비안네 Jean-Marie Vianney)신부님의 삶이 남겨진 곳입니다. 성인께서 살아계셨을 적에는 주민의 수가 고작 230여 명인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너무 작은 마을이라 찾아가는 것조차 힘든 곳이었죠. 지나가는 아이에게 길을 물은 성인께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가 마을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으니, 이제 나는 네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겠다”라고 하셨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사실 그 시절 아르스는 미신에 빠져 신앙에 무관심한 이들로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의 친절과 자비, 그리고 자신이 맡은 본당 신자들을 위한 끊임없는 기도와 보속은 그곳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성인께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밤늦게 잠드실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10시간 이상을 기도와 성체조배, 미사와 고해성사를 위해 성당에 머무르셨고, 매일 강론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점차 신부님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때로는 18시간 이상을 고해소에 머물기도 하셨는데 신부님의 손을 한번 잡아보려는 순례자들 때문에 열 걸음이면 갈 수 있는 사제관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말도 있습니다.아르스는 구석구석 돌아보는 데에 20분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마을입니다. 그러나 교구에 속한 본당 신부로서 처음으로 시성되신 ‘본당 사제의 수호성인’의 성지인 만큼, 신부님들은 특히 이곳을 꼭 방문하고 싶어하십니다. 비안네 신부님의 시신은 현재 밀랍으로 처리되어 유리관에 모셔져 있습니다. 잠들어 계신 듯 보이는 신부님 앞에서 봉헌되는 미사는 신부님뿐 아니라 순례자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경험이 됩니다.신학생 때부터 비안네 신부님의 상본을 언제나 성경에 넣고 다니셨다는 한 신부님께서는 순례 중에 비안네 신부님의 강론을 빌어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신부님께서 처음 아르스에 왔을 때는 아무도 성당에 오지 않았답니다. 단 한 사람, 샤팡 형제만이 성당을 지나칠 때마다 들고 있던 괭이를 문 앞에 내려놓고 성체 앞에 머물다가 돌아갔을 뿐입니다. 비안네 신부님께서는 그분에게 매일 어떤 기도를 드리는지 여쭈어보셨다고 합니다.“신부님!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잠깐 앉아서 하느님을 보려는 것뿐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도 저를 바라보고 계십니다.”비안네 신부님께서는 샤팡 형제를 통해 성체 앞에 우리가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지를 배우셨고, 자주 강론에서 샤팡 형제의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기도를 잘하려 애쓴 나머지 기도하는 그 마음을 잊지는 않는지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잘 보실 수 있도록, 우리가 하느님을 잘 볼 수 있도록 바른 자세로 앉아있기만 해도 충분한 것을요. 바라보는 것, 그것이 곧 기도이니 말입니다.”어쩔 수 없이 성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뜸해지는 요즘입니다. 미사 성제를 자주 봉헌할 수 없고 성체 강복이나 성체 조배를 하기에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늘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듯, 일상 안에서 우리 역시 하느님을 늘 바라보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는 있지는 않을까요? 신앙을 잃은 마을에서 홀로 하느님을 마주했던 샤팡 형제, 그리고 처음으로 그를 알아보았던 비안네 성인처럼 말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평화신문2021.08.31

대전 홍성본당 설립 70주년 기념 미사 봉헌본당에서 마련한 사회복지기금 2000만 원, 교구 사회사목국 전달 홍성본당 공동체가 70주년 미사 뒤 진행된 축하식을 통해 본당에서 마련한 사회복지기금 2000만 원을 교구 사회사목국에 전달하고 있다. 대전교구 홍보국 제공 대전교구 홍성본당(주임 임기선 신부)은 본당 설립 70주년을 맞아 15일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7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 중에 신자 70명의 성경 필사본을 봉헌하고 미사 후 이어진 축하식에서 사회복지기금 2000만 원을 교구 사회사목국에 전달했다. 본당은 지난해 7월 ‘은혜로운 70년, 일어나 가자, 믿음으로 주님께, 사랑으로 세상에’라는 표어를 정하고 본당 설립 70주년 기념의 해에 돌입했다. 개막 미사 후 성당 십자가상을 새로 모셨고, 성당 진입로에 새 14처 성상을 축복했다. 이어 본당 로고를 새로 정하고 70주년 기도문을 만들어 1년여 동안 바쳐왔다. 또한, 신자 70명이 참여하는 신ㆍ구약 성경 필사 운동을 펼치며 내적 신앙을 다졌다. 지난해 8월부터 8주간에 걸쳐 소공동체 봉사자 교육을 실시해 수료자 134명을 구역ㆍ반장으로 임명했다. 지난해 12월 29일 성가정 축일에는 34쌍의 혼인 갱신식도 열었다.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로 헌혈 수급이 어렵다는 소식에 생명 나눔 캠페인을 전개, 헌혈과 장기기증, 조혈모세포 기증 등에 총 352명이 참여했다. 유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코로나 19 전염병이 창궐하는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본당 70주년을 준비하느라 수고가 많았다”면서 “머리와 가슴과 손과 발이 서로 어울려 함께 나아갈 때 더불어 사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라고 말했다. 홍성본당은 이에 앞선 12일 대성전에서 내포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의 지원으로 ‘70주년 기념 홍성 순교자와 본당 역사 학술토론회’를 개최하고,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학술발표회에서는 홍주(홍성 옛 명칭) 순교복자 4위와 홍주 하느님의 종 3위, 초대 주임이자 6ㆍ25전쟁 중 순교자인 강만수(요셉) 신부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0.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