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에 처음입니다만] (37) 성경에 나타난 수의 의미가 궁금해요](//cpbc.co.kr/CMS/newspaper/2019/11/rc/767606_1.1_titleImage_1.jpg)
[성당에 처음입니다만] (37) 성경에 나타난 수의 의미가 궁금해요하느님 세상 보여주는 성경 속 숫자들 성경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여주는 표징으로, 각 숫자마다 의미와 상징이 다르다. 그림은 ‘전능하신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들’ 12세기, 템페라, 카타루냐 예술 박물관, 스페인. 나처음 :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상징과 비유가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숫자가 상징하는 의미가 너무 궁금해요. 조언해 : 저도 사실 성경에서 말하는 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라요. 처음이가 성경에 나오는 여러 수에 관한 의미를 물었을 때 사실 당황했어요. 신부님 저도 궁금해요.라파엘 신부 : 성경을 읽어보니 궁금해지는 게 많아지지. 성경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여주는 표징이라 할 수 있지. 그래서 성경 그 자체가 전부 하나의 거룩한 상징이라 해도 틀린 표현은 아닐 거야. 오늘은 처음이와 언해가 궁금해하는 성경 속 수의 의미에 관해 설명해 주마. 어느 나라든, 어느 민족이든, 또 어느 문화든 수에 관한 제 나름의 의미를 지닌단다. 우리가 이삿짐센터 하면 ‘2424’, 배달서비스센터는 ‘8282’, 성당 전화번호는 ‘1004’를 떠올리는 게 좋은 예지. 이처럼 성경에도 각 수가 드러내는 고유한 뜻과 상징이 있단다. 먼저 ‘1’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가리키는 수란다. 또 모든 것의 근원을 드러낼 때도, ‘일치’를 표시할 때도 하나를 사용하지. ‘2’와 ‘둘’는 분열을 상징해. ‘하나’가 무너졌기 때문이야. 인간이 범한 죄의 결과로 선과 악, 삶과 죽음 등 모든 것이 둘로 갈리어 세상에 분열이 생겼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그 전형적인 예가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야. 그때까지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말을 사용했는데 오만의 결과로 온갖 언어가 생겨나고 서로 알아들을 수 없게 됐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그래서 원래의 ‘하나’를 되살리는 게 구원의 목적이야.‘3’과 ‘셋’은 성경에서 정말 중요한 수로 등장해. 셋은 시작과 마침을 상징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가리키는 수이기도 하지. 그래서 성경에서 3은 ‘하느님의 세계’를 말하는 수야. ‘4’와 ‘넷’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전 우주, 온 세상을 표시해.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창세 2,10)는 말씀과 하느님의 옥좌 둘레에 네 마리 생명의 모습(에제 1,1-14; 묵시 4,6)이 4의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단다. 또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의 네 복음서는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구원의 표징이란다. ‘5’와 ‘다섯’는 구분의 수란다. 마태오복음에는 5명의 슬기로운 처녀는 등잔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기다리지만,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그렇지 못해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유(25,1-13)가 있지. 또 십계명 중 다섯 가지는 하느님께 대한 계명, 나머지 다섯은 인간관계에서 지켜야 할 계명으로 구분된단다.‘6’과 ‘여섯’은 성경에서 모자람을 뜻해. 한 마디로 나쁜 수이지. 그래서 요한 묵시록은 세상 마칠 때에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가장 나쁜 인물에게 6을 세 차례나 겹쳐서 666으로 표현하고 있단다.(13,18)‘7’과 ‘일곱’은 성경 안에서 중요한 수란다. 하느님께서 천지 창조를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시면서 복을 내리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기에 7은 복된 수란다.(창세 2,3) ‘3’이 하느님의 세계를, ‘4’가 온 세상을 드러낸다고 했지. 3과 4를 합친 7은 하느님과 온 세상을 합친 ‘완성’을 드러내고 있지. 그래서 교회 안에 일곱 성사가 있는 거야. ‘8’과 ‘여덟’은 성경에서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수야. 예수님께서는 한 주간의 여드레째 날인 주일 아침에 부활하셨단다. 이 여덟째 날이 바로 주님을 통해 하느님과 인간이 새롭게 맺은 구원의 첫날이야. ‘9’와 ‘아홉’은 성경에서 ‘6’ 못지 않게 불길한 수란다. 9는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시간이야.(마태 27,45-56) ‘9’는 또 회개의 의미가 있단다. 은전 한 닢을 잃어버린 여인의 비유(루카 15,8-10)에 잘 드러나요. ‘10’과 ‘열’은 성경에서 십계(十界)의 수란다. 십진법을 사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에서 수확한 것의 십 분의 일을 하느님께 바쳤지.(레위 27,30)‘12’와 ‘열둘’는 성경에서 ‘7’에 못지 않은 중요한 수란다. 야곱의 12 아들이 이스라엘 12 부족의 시조였고, 주님께서는 제자 중 교회의 책임자로 12명을 뽑으셨지. 이처럼 12는 하느님 백성의 수라고 이해하면 돼.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9.11.27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6)렉시오 디비나의 자료](//cpbc.co.kr/CMS/newspaper/2019/09/rc/762462_1.0_titleImage_1.jpg)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6)렉시오 디비나의 자료영적 가르침의 원천은 성경 허성준 신부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교부들은 언제나 한결같이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히에로니무스(St. Hieronymus, 347~420) 성인은 성경이 바로 천상적 음식으로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 독서 중에도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게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을 사랑하라, 그러면 지혜가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지혜를 사랑하라, 그러면 지혜는 당신을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이다. 지혜를 존경하라, 그러면 지혜는 당신을 포용할 것이다.”수도 전통 안에서도 성경은 언제나 탁월한 위치를 차지했다. 수도승 생활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더 수도자들을 자극하였고, 그들의 전 삶을 지배하였다. 특별히 이집트 수도생활에서 성경은 크나큰 권위를 가졌으며 언제나 중심 위치를 차지했다. 그래서 수도 전통 안에서는 언제나 렉시오 디비나의 일차적 자료로서 성경을 강조하였다. 수도자들은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하느님 말씀과 함께 수도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었다. 성경은 그들 삶의 원천이었으며, 그들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과도 같았다. 중세의 수도생활에서도 성경은 중요했다. 마지막 교부라 일컬어지는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두스(St. Bernardus Clairvaux, 1090~1153)는 수도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 독서와 성경 묵상으로부터 풍부한 영적 가르침을 얻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달로 수많은 영성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고, 오늘날 수많은 영성가들이 다양한 영성 서적들을 추천함에 따라 불행하게도 렉시오 디비나 시간에 사람들은 성경이 아닌 덜 영성적인 서적들을 읽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렉시오 디비나를 위해 너무나 많은 자료를 갖고 있어 오히려 성경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다양한 묵상 자료 중의 일부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 자체로서 시대를 초월해서 모든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비록 시간이 지나면서 렉시오 디비나의 자료로 성경 외에 다른 많은 영성 서적들이 포함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렉시오 디비나의 일차적인 자료는 언제나 성경 그 자체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약 우리가 고대 그리스도인들이나 수도 전통에서 그토록 강조되었던 성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렉시오 디비나를 충실히 수행하였더라면 아마도 우리의 영성생활은 지금보다 더 충만한 열매를 맺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현대에 여러 성경 묵상서들을 통해 우리에게 친근한 마르티니 추기경 역시 성경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실한 현존임을 강조하였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알 수 없고 그분을 느낄 수도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결코 우리의 내적인 삶은 힘을 얻지 못하고, 우리의 수많은 봉사나 활동도 참된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더욱이 요즈음 크게 기승을 부리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유사영성운동들에 쉽게 현혹될 수도 있다. 하느님 안에 뿌리내리는 가장 안전한 수단인 성경 말씀에 대한 렉시오 디비나 수행은 우리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성경이 개인으로든 공동체적으로든 읽힐 때, 그 말씀은 “지금, 여기(Hic et Nunc)”에서 우리 각자에게 새롭게 선포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므로 렉시오 디비나의 일차적 자료인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하는 말씀 수행은 분명 우리의 영성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19.09.17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23)성경 독서와 마음의 순결](//cpbc.co.kr/CMS/newspaper/2020/01/rc/771059_1.1_titleImage_1.jpg)
[수도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 (23)성경 독서와 마음의 순결순수하고 고요한 마음은 필수 덕목 허성준 신부 성독 시간에 수도자들에게 참으로 요구되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마음의 순결’(puritas cordis)이었다. 순결한 마음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고 또한 그러한 말씀을 실천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라고 말씀하셨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하는 티모테오에게 “청춘의 욕망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과 함께 의로움과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십시오!”(2티모 2,22)라고 권고하였다. 순결한 마음만이 주님을 뵈올 수 있고, 하느님 역시 그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신다. 특히 그분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모든 수도자를 렉시오 디비나 중에 더 깊은 기도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히 듣고,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수도자들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바로 마음의 순결이었다. 특별히 성 베네딕토 이전에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수도 교부들 가운데 한 사람인 요한 카시아누스에게 마음의 순결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는 순수하지 않은 영혼은 결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참된 영적인 지혜를 얻을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그러므로 말씀으로부터 참된 영적인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마음의 순결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특별히 그는 「담화집」 제1권에서 수도승들의 최종 목표는 바로 하느님 나라이며 그리고 거기에 이르기 위한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목표로서 마음의 순결을 언급하였다. 수도자들의 모든 영적인 수행들은 바로 이러한 마음의 순결을 향하고 있다. 마음의 순결 없이는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카시아누스는 그의 스승인 에바그리우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그가 말하는 마음의 순결은 에바그리우스가 이야기하는 ‘아파테이아’(apatheia)와 동일한 개념이다. 아파테이아란 온갖 욕정들로부터 정화된 영혼의 내적 평정 혹은 고요함의 상태를 말한다. 카시아누스는 그 당시 오리게네스 논쟁에 연루될 수 있는 오해의 소지 때문에, 스승의 아파테이아라는 용어를 피하고 성경에 나오는 마음의 순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사실 두 용어는 동일한 의미이다. 그리스도교 수도승 전통 안에서 수도 생활의 직접적인 목표는 바로 아파테이아 혹은 마음의 순결이었다. 수행자가 이것을 얻게 될 때 비로소 그는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인 관상 생활로 넘어가게 된다. 그래서 수도승 전통 안에서 아파테이아나 마음의 순결은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다. 베네딕토 성인도 같은 맥락에서 언제나 수도자들이 마음의 순결을 유지해야 함을 강조하였는데, 특별히 사순절 동안에는 더욱더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수도자들이 이러한 순결한 마음으로 성경 독서와 성경 묵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규칙서」 49,1-4 참조). 왜냐하면,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성경을 올바로 읽을 수 있고 또한 성경의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마음의 순결은 성경을 읽는 데 있어서 어떤 부차적인 조건이 아니라 필요충분조건이며, 이것 없이는 성경 독서에서 참된 지혜를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로 나아갈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성경을 읽기 전에 먼저 마음을 고요하게 그리고 순수하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평화신문2020.01.15

성당 못 가도 주님께는 가까이… 비대면 신앙생활로 영적 거리 좁히자 코로나 시대 슬기로운 신앙생활각 성당은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성당 내부 방역을 정기적으로 시행하고 있다.코로나19 확산으로 8월 23부터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단계로 격상됐다. 실내 50인 이상, 실외 100인 이상 대면으로 모이는 행사가 금지됐고, 유흥주점과 300인 이상 대형학원은 문을 닫았다. 가톨릭교회도 사회적 거리 두기에 동참하며 일부 교구는 선제 대응으로 미사를 다시 중단했다. 대부분 교구에선 미사 이외의 소모임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재개됐던 공동체 신앙생활이 또다시 위축되는 모양새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고 안정적으로 공급되기 전까지는 코로나19 확산 여부에 따라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와 완화가 반복적으로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사 참여와 본당 소모임도 중단과 재개 반복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로 공동체 신앙생활이 들쭉날쭉해지면서, 개인 신앙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신앙 거리 두기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슬기로운 신앙생활로 사회적 거리 두기 속에서도 예수님과의 거리는 한껏 좁혀보자. 방역 지침은 철저하게 준수 본당에선 공동체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이 2m 이상 거리를 두고 미사를 봉헌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미사 횟수를 늘려 미사 참여자를 분산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발열 체크, 신자 확인도 꼼꼼하게 챙기고, 신자들이 손소독제 사용 후 성당에 입장하도록 한다. 미사가 끝나고 나면 성당 내부를 충분히 환기하는 것이 좋다. 미사 참여자는 코와 입을 온전히 가리도록 마스크를 써야 한다. 주례 사제와 해설자, 독서자도 예외 없이 마스크를 올바로 착용해야 한다. 요즘 같은 시기엔 다른 본당 미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다. 미사 때 사용한 주보는 성당에 두지 말고 각자 집으로 가져간다. 방송 미사 참여 미사가 중단된 교구 신자들에겐 방송 미사 참여가 최선의 대안이다. 방송 미사가 직접 참여하는 미사를 온전히 대체하는 건 아니지만, 신령성체(神領聖體)와 대송(代誦)을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신령성체는 실제로 성체를 모시진 못하지만, 신령성체 기도를 바치며 마음으로 하는 영성체를 뜻한다. 대송은 주일이나 교회법이 정한 의무 축일에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경우 대신 드리는 기도다. 묵주기도 5단 바치기, 주일 독서와 복음 말씀 읽기, 선행하기 중에서 한 가지를 실천하면 주일 미사에 빠졌다고 해도 고해성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 방송으로 참여하는 미사에선 독서와 복음 말씀이 봉독되기에 대송에 참여한 것이 된다. 기도 습관들이기 서울대교구 사목국이 최근 조사한 ‘코로나19와 신앙생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설문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 14.7%는 ‘개인이 혼자 기도하고 묵상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답답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가량(47.9%)은 ‘개인 및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안내(가정 기도 방법 등)’가 필요하다고 했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미사 참여와 본당 단체 활동에 집중돼 있다 보니 혼자서 혹은 집에서 하는 기도와 묵상에 어색해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도도 습관이다. 꾸준히 해야 일상의 신앙으로 스며들 수 있다. 당장 묵주기도부터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일어나자마자 ‘아침기도’ 자기 전에 ‘저녁기도’부터 바쳐보는 것을 권한다. 직장인이라면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면서 ‘일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좋다. ‘식사 전후 기도’를 빼먹지 않고, 문득 생각나는 이들을 위한 ‘화살 기도’도 틈틈이 바치면 생각보다 하루에 꽤 많은 기도를 하게 된다. ‘코로나19 사태 종식을 위한 기도’는 필수다. 소모임 대신 SNS 적극 활용 소모임이 금지됐지만, 레지오 마리애 회합, 반 모임, 성서 모임을 온라인으로 이어가는 신자들이 늘고 있다. 평소엔 문자 메시지나 카톡을 통해 안부를 묻고, 비대면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얼굴을 보며 소모임을 진행하는 것이다. 실제 모임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지만, 팬데믹 시대에 신앙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해주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함께 가톨릭 콘텐츠를 다룬 소셜 미디어 계정도 활발히 운영 중이다. 교구와 본당, 수도회마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온라인 미사를 실시간으로 방송하고, 주일학교 교리교육을 하고 있다. 평소 온라인 사목에 관심이 있던 사제들은 SNS로 신자들과 만나고 있다. ‘기도’ ‘가톨릭’ ‘성당’과 같은 키워드나 교구와 성당 이름으로 검색하면 성경 강의, 오늘의 강론은 물론 교리, 신앙과 관련된 다양한 영상을 접할 수 있다. 성경, 신앙 서적 읽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면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책을 펼쳐보자. 이참에 성경 읽기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루 한 장 성경 읽기, 오늘의 복음 말씀 읽기처럼 부담 없이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성경 말씀을 좀더 마음에 새기며 읽고 싶다면 필사도 좋은 방법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교계 출판사에서 나온 성경 해설서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이 밖에도 다양한 신앙 서적에도 손을 내밀어 보자. 영성, 기도, 교회사, 철학, 신학, 교리, 성경, 전례 등 평소 궁금했던 분야의 책을 골라 읽으면 교회를 보는 눈이 밝아질 것이다. 어떤 책부터 시작할지 망설여진다면, 교회와 교리의 기본을 알려주는 「YOUCAT」 시리즈가 좋다. 「준주성범」 「단테의 신곡」 「고백록」 등 가톨릭 고전이나 사제와 수도자들이 쓴 신앙 수필도 코로나19로 느슨해진 신앙을 다잡기엔 제격이다. 사랑과 나눔 실천하기 신앙생활은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다. 하느님 말씀대로 사는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특히 어려운 때일수록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가톨릭교회는 ‘가난한 이와 소외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며 복음을 살아왔다. 최후의 심판 때 주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초대한 이들은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고, 나그네를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주며 감옥에 있는 이들을 찾아 준 의인이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는 말씀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cpbc2020.09.02

권일신, 기도와 묵상에만 전념하면서 절에서 8일을 지내다[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13. 조선 천주교회 최초의 8일 피정 「성경광익」 표지와 「성경광익」 앞쪽에 수록된 ‘피정근본’ . 권일신이 용문산 절에서 가진 최초의 피정 1785년 3월 명례방의 집회가 추조에 적발되면서 천주교 신앙 집단의 존재가 수면 위로 처음 드러났다. 형조판서 김화진(金華鎭, 1728~1803)은 뜻밖에도 문제를 키우지 않고 중인(中人)인 김범우(金範禹, ?~1786) 한 사람만 처벌한 뒤 서둘러 사태를 봉합했다. 관련자들이 모두 쟁쟁한 집안의 후예들이어서, 자칫 큰 파란으로 번질 우려가 있었다. 이 와중에 리더였던 이벽이 그해 초가을에 전염병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떴다. 조선인으로서 처음으로 북경에서 세례를 받았던 이승훈은 배교를 공언하고 「벽이문(闢異文)」까지 공표하며 이탈을 선언한 상태였다. 정약용 형제 또한 아버지의 밀착 감시 아래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최고의 이론가 이벽의 죽음 이후, 교회의 중심 그룹이 주춤하는 사이, 피치 못하게 천주교회의 새로운 리더 역할을 맡게 된 권일신(權日身, 프란치스코 하베리오, 1751~1791)은 조동섬(趙東暹, 유스티노, 1739~1830)과 함께 피정을 결심하게 된다. 관련 내용이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에 나온다. 이 설명의 근거는 말할 것도 없이 다산의 「조선복음전래사」였을 것이다. 책에 따르면, 권일신은 활발한 전교 활동의 와중에 피정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던 듯하다. 서학서를 펴놓고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서 교회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더 굳건한 영성의 확립과 교리 이론의 장악이 절실했을 것이다. 권일신은 자신의 신심과 교리 지식이 이벽에 결코 미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달레는 이때 일을 이렇게 썼다. “그는 규칙적인 피정(避靜)을 할 결심을 하고, 자기의 계획을 더 쉽게 실천하기 위하여 용문산에 있는 어떤 적막한 절로 들어갔다. 친구 중에서는 오직 한 사람, 조동섬만이 그를 따라갔다. 절에 도착한 그들은 피정 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주님과 그 성인들을 본받고자 하는 바람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신심 수업, 즉 기도와 묵상에만 전념하면서 절에서 8일을 지냈다.”이때 권일신이 찾아갔다는 용문산의 적막한 절은 어디였을까? 권일신의 집이 있던 감호(鑑湖)를 기준으로 볼 때 지금의 양평읍 쪽에서 남한강을 건너 용문산 중턱에 숨은 절 사나사(舍那寺)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널리 알려진 용문사는 반대쪽으로 접근해야 한다.시끄러운 곳을 피해 고요히 수행하다피정(避靜, retreat, recessus spiritualis)은 말 그대로 고요한 곳으로 피해 들어가는 것이다. 시끄러운 곳을 피해서 고요함을 취한다는 뜻의 피뇨취정(避鬧取?), 또는 피속추정(避俗追靜) 즉 속세를 피해 고요함을 추구한다는 말에서 나왔다. 예수께서 40일간 광야에서 단식하신 일을 본떠 시작된 것이, 16세기 성 이냐시오 로욜라(St. Ignatius of Loyola)가 자신의 저서 「영신수련(靈身修鍊, Exercitia Spiritualia)」을 통해 실제적인 피정 방법을 제시하면서 오늘날까지 천주교회에서 보편적인 신심 수련의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권일신이 8일간의 피정에 들어가면서 근거로 삼은 서학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성경광익(聖經廣益)」과 「성년광익(聖年廣益)」 두 책이었음에 틀림없다. 8일이란 피정 기간도 「성경광익」에 규정된 것이고, 이 책에는 8일간 매일매일의 시간표와 묵상 제목까지 제시되어 있다. 또 묵상의 구체적 내용은 「성년광익」에 실려 있다.이 두 책은 모두 프랑스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이야(J.F.M.A. de Moyriac de Mailla, 馮秉正, 1669~1748)의 저술이다. 그는 중국어와 만주어에 능통하고 중국 문화에 대한 해박한 식견을 지닌 인물로, 두 책 외에도 「성세추요(盛世芻?)」와 같은 교리서와 신심서를 펴냈다. 「성경광익」은 「성경」의 중국어 완역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성경직해(聖經直解)」를 확장하여 매주 미사에 맞춰 성경 본문과 이에 대한 묵상, 그리고 기도문을 제시한 책이고, 「성년광익」은 날짜별로 정리한 가톨릭 성인전과 묵상자료집이다. 「성년광익」의 머리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제까지 성인이 되는 바탕은 묵상에서 말미암은 것이 대부분이다. 고금의 여러 성인이 서로 전해온 것을 두루 소급해보더라도 이 한 가지 길을 버리고서 능히 큰 덕과 기이한 공을 이룬 경우는 거의 없다.(從來作聖之基, 多由於默想. 歷溯古今聖聖相傳, 鮮有舍此一途, 能使大德奇功.)” 두 사람이 피정이 진행된 8일 동안 묵언 수행을 다짐한 것은 이 첫 문장 때문이었다. 권일신은 장차 조선천주교회에서 대덕기공(大德奇功)을 세워 기사귀정(棄邪歸正), 즉 삿됨을 버리고 바름으로 돌아가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마땅히 한 번에 8일을 기준으로 삼아 거행해야 한다”고 한 것을 권일신이 그대로 따라 했다. 또 「팔일총강(八日總綱)」에는 “8일 중에 날마다 3차례 묵상하고, 매번 1시간을 쓴다.”면서 그 자세한 수행의 방법을 설명했다. 날마다 묵상하는 제목의 차례는 반드시 「성경광익」과 「성년광익」 두 책에 제시된 제목을 순서대로 진행하되, 순서를 건너뛰거나 다른 날 할 것을 미리 앞당겨 해서도 안 된다고 적었다. 이 과정 중에는 속무(俗務)를 완전히 손에서 떼어냄으로써 다른 생각으로 분심이 들지 않게 해야만 한다고도 했다. 앞쪽에 실린 「8일 내 묵상간서제목(默想看書題目)」을 보면 첫날의 묵상 주제는 ‘잠시 살다 가는 인생을 잘 쓰자(善用暫生)’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자(小心時候)’, 그리고 ‘영혼을 잘 보살피자(小心靈魂)’이다. 이것을 세 차례에 걸쳐 1시간씩 묵상한다. 제목 아래 ‘「성년광익(聖年廣益)」 1편 14일’과 같이 함께 읽을 대목이 지정되어 있다. 이를 이어 성 바오로 전기와 성 안토니오의 전기를 읽고 묵상한다. 그리고 다시 ‘경기(輕己)’, ‘중령(重靈)’, ‘진심(盡心)’의 세 화두를 들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기도한다. 역시 매 항목마다 두 책에서 엮어 읽을 대목을 지정해 두었다. 하루의 일정은 새벽 5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8시까지 시간표에 의해 진행되었다. 대단히 빡빡한 강행군이었다. 8일간 두 사람은 두 책을 옆에 두고 서로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은 채 피정의 일정을 소화했다. 명례방 집회와 「성경광익」이렇게 볼 때, 당시 권일신과 조동섬은 그냥 단순히 “조용한 사찰로 가서 기도와 묵상 등으로 신앙을 실천”한 것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각오와 다짐 아래 교회 지도자로서 부족한 자질을 채우고, 신심을 고양시켜 천주 대전에 부끄러움이 없는 신앙인으로 거듭나기 위한 비장한 각오로, 정해진 규정에 따라 「성경광익」과 「성년광익」 두 질의 책을 펼쳐가며 8일 피정을 진행했던 것이다. 이것은 조선 천주교회에서 최초로 진행된 본격 피정이었다. 이 사실은 여러 문제를 환기시킨다. 먼저 1785년 명례방 집회 당시 이벽이 둘러앉은 사람들에게 강론했고, 함께 있던 사람들의 손에 들려있던 책이 다름 아닌 「성경광익」이었고, 당시 이들이 이 책과 함께 「성년광익」도 열심히 읽었음을 확인시켜준다. 「성경광익」은 앞쪽의 피정에 대한 설명 이후로는 매주 미사에서 읽을 성경 한 대목과 이를 이어 ‘의행지덕(宜行之德)’이라 하여 마땅히 행해야 할 한 가지 덕목에 대한 묵상 주제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끝에 실은 ‘당무지구(當務之求)’는 그 아래에 기도의 제목을 적고, 기도문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성년광익」은 앞쪽에 1년 365일에 따라 주제문에 해당하는 「경언(警言)」을 제시한 뒤, 날마다 한 분의 성인전을 소개하고, 그를 통해 배우는 ‘의행지덕(宜行之德)’과 기도문인 ‘당무지구(當務之求)’를 수록했다. 당시 명례방 검거 당시의 모임은 단순한 교리 연구 모임이 아니었다. 이벽이 주일 미사를 집전하면서, 해당 주일의 성경을 읽고, 이에 대해 설명한 뒤, 의행지덕에 대해 강론하던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권일신은 이벽보다 연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제자라 일컬으며 책을 옆에 끼고 모시고 앉아 있었다고 「벽위편」은 기록하고 있다. 그런 모임이 두어 달 되었다고 한 시점이었으므로, 권일신의 입장에서는 이벽에게 강론을 듣지 못한 나머지 부분에 대한 이해 부족을 절감하고 있었을 터였다. 달레는 「조선천주교회사」에서 이들의 피정을 소개한 뒤, “진정한 천주교 정신에 잘 맞는 이러한 실천은 그들 자신과 그들이 피정 후에 가르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을 얻게 한 것이 확실하다”고 썼다. 그들은 영성이 충만해져서 산을 내려왔고, 8일간의 영적 기도로 얻은 은총으로 침체에 빠진 조선 교회에 새로운 생기와 활력을 불어넣었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cpbc2020.08.05
하느님의 종 133위 시복 예비심사 종료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위, 34회기 마치고 시성성에 조서 제출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안건 예비심사가 25일 종료된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25일 오후 3시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안건의 예비심사 법정 종료 회기를 개최한다. 본 안건의 예비심사 법정은 2017년 2월 22일 개정한 이래 지난 2월 26일까지 33회기가 열렸다. 이번 종료 회기로 한국 천주교회 안에서의 실질적인 시복 소송은 일단락된다. 모든 소송 기록 문서(조서)의 사본과 영어 번역본은 교황청 시성성에 심사를 위해 제출될 예정이다.이날 종료 회기에는 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시복 안건 재판관 유흥식 주교,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 재판관 대리 박동균 신부, 검찰관 최인각 신부, 청원인 김종강 신부, 각 교구 시복 추진 담당 사제, 역사 및 고문서 전문가, 문서 번역자와 감수자 등이 참석한다. 법정 직책자들이 소송 기록 문서와 종료 회기 문서를 모두 검토 확인하고, 성경에 손을 얹고 임무 수행과 비밀 엄수를 서약하고 서명한 뒤, 재판관이 공증 문서의 진정성을 선언하고 종료 증서에 서명하는 것을 끝으로 시복 안건의 국내 예비심사를 마무리한다.한편, 시복 추진 대상자인 하느님의 종 133위는 조선 왕조 시기인 1785~1879년 사이 ‘신앙에 대한 증오’ 때문에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로, 기존의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순교 사실이 새롭게 연구되고 관련 교구에서 현양되어 온 분들이다.133위에는 한국 교회 초기 지도자들인 이벽, 김범우, 권일신, 권철신, 이승훈, 이존창, 황사영 등이 포함돼 있다. 또한, 신앙 고백에 대한 기록 미비와 배교 논란 등 여러 이유로 추진 대상에서 빠졌던 순교자들, 가정 박해로 인한 순교자들, 1866년 병인박해 때 ‘선참후계령’(先斬後啓令: 먼저 처형한 뒤 나중에 보고하라는 지시)으로 지방 관아에서 비밀리에 처형당하여 기록 부족으로 시복 추진이 미루어져 왔던 순교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21.03.24
[담화] 2021년 제37회 성서 주간 담화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신호철 비오 주교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중에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라는 평화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세 차례에 걸쳐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21.26)라고 평화의 인사를 건네시고, 성령의 숨을 불어넣어 주십니다(요한 20,22-23 참조).평화는 정의와 함께 성경에서 하느님 나라를 표현하는 가장 대표적인 개념입니다. 평화는 하느님의 창조의 뜻이 모든 존재에게 온전히 회복되고 보존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닮게 인간을 창조하셨고, 그래서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처럼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고, 알몸이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똑같이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아담과 하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도 자유로울 수 있는 이 관계가 평화입니다. 민족, 재산, 명예, 직위 등 그 어떤 조건에서도 모든 이가 하느님을 닮은 동등한 형제로 서로 존중하고,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서 차별과 폭력과 같은 부끄러움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은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누리던 평화가 파괴되었습니다. 서로의 알몸을 보여 주기가 부끄러워 몸을 가리고, 하느님에게서도 숨습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창세 3,5) 되리라는 뱀의 유혹은 스스로 모든 것을 지배하여 하느님 역할을 하려는 유혹입니다. 곧 힘을 소유하고 싶고, 그 힘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과 구별되어 우위에 서고 싶은 유혹입니다. 이것이 모든 죄악의 뿌리입니다.그렇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숨에는 죽음을 이긴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힘을 제자들에게 불어넣으시어 본래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인간의 모습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당신 자신을 십자가상 속죄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먼저 하느님과 인간을 화해시키시고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과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사람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우리 모두 하느님을 아버지로 하는 자녀들임을 일깨우시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주님의 기도 안에 사람들 사이의 일치와 평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라고 힘주어 말하며, 주님께서 당신 몸으로 사람들 사이의 장벽을 허무셨다고 선언합니다(에페 2,14 참조).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세계적 유행이 시작된 지 이제 2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감염병에 대처하는 세상의 여러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성숙되지 않은 자유의 주장과 힘 있는 이들이 백신을 먼저 독점하려는 움직임도 충분히 보았습니다. 이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전히 선진국으로 자부하는 나라 안에서 인종 차별의 행위들이 자행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이제 함께 사는 사회, 그리고 그러한 지구촌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성찰도 하였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면 단순히 이전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며 함께 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의식도 생겼습니다. 이러한 깨우침과 의식들이 차별을 없애고 서로의 간격을 좁히면서 주님께서 원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평화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당장 우리 주변에 관심과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형제들을 살피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주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평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다른 피조물 사이에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맨 마지막에 당신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시며, 지금까지 창조하신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지배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은 양을 돌보는 목자의 행위를 가리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자유의 영광을 누리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신비한 예언을 합니다(로마 8,19-21 참조).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사람은 대자연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할 사명의 말씀을 받았습니다.착한 목자의 모습은, 우리가 전례에서도 자주 노래하는 시편 23편과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돈벌이를 위한 마구잡이 사냥으로 사라져 가는 동물들, 특히 생태계의 파괴는 우리 인간이 피조물에 대한 착한 목자로서 그 의무를 얼마나 무시하고 살아왔는지 똑똑히 보여 줍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그 파괴의 대가를 받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잘 살기 위해 동식물과 대자연을 돌보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착한 목자 주님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생명을 온전히 누리는 데에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생태계 회복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급박한 과제임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 이를 위한 공동의 정책들을 찾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실천되고 있지 않습니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모든 가정에서는 물론 본당 공동체와 교회 전체에서 긴급히 실천해야 합니다.그리스도교 신자는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평화의 사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신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평화의 사도로 파견되었습니다. 평화는 모든 존재가 창조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서로 간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 곧 하느님의 창조 질서가 우리 가운데 실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본래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예수님을 통하여 또다시 그 모습을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찮게 여겨지는 사람 없이 모두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피조물들과 생태계도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대리자인 우리 인간을 통하여 존중받아야 합니다. 이웃을 향하여, 그리고 대자연을 향하여 우리의 이 거룩한 임무를 다하며 기쁘게 살아갑시다. 지금이 실천할 때입니다. 2021년 11월 21일한국천주교주교회의 성서위원회위원장 신호철 비오 주교cpbc2021.11.17

대전교구 논산부창동본당 100주년 기념 미사 봉헌교구장 유흥식 대주교 주례 부창동본당 6번째 사제로서 공동체에 특별 강복장 수여 성당 100주년 기념비도 설치 유흥식 대주교와 부창동본당 관계자들이 부창동성당 100주년 기념비를 제막하고 있다. 대전교구 논산부창동본당(주임 곽명호 신부)은 10일 본당 대성전에서 교구장 유흥식 대주교 주례로 10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했다.공동체는 미사 중에 묵주기도 108만 6700단과 자기 성구 갖기와 본당 100년사를 봉헌하고 ‘함께한 100년’의 복음화 발자취를 되새기며 새로운 100년을 향한 거울로 삼았다. 미사에는 역대 주임신부와 본당 출신 사제 등 20여 명을 비롯해 수도자, 평신도 등 440여 명이 함께했다.이어진 기념식에선 배정도(요한) 12대 사목회장 등 역대 사목회장 8명과 송부선(스테파니아) 스테파노장학회 이사장에게 감사패가 전달됐다. 본당 출신 정재돈(공주신관동본당 주임) 신부, 황명선(토비아) 논산시장, 유 대주교의 축사도 이어졌다. 또한, 본당 출신 사제 10명 중 6번째인 유 대주교는 100주년을 맞는 본당 공동체에 특별 강복장을 수여했다. 본당은 대주교 승품과 함께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유 대주교를 위해 미사ㆍ영성체 4082회와 주교를 위한 기도 1만 1200회, 묵주기도 7만 2769단, 화살기도 11만 3161회, 성체조배 1410회 등 영적 예물과 함께 물적 예물을 증정했다. 기쁜 100주년을 맞았지만, 코로나19가 2년째 이어지면서 논산부창동본당은 비대면으로 내실을 기하면서 100주년을 준비해야 했다. 우선 교구 내포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와 협력해 본당 100년의 역사를 사진과 함께 발간했고, 논산 지역 학술 세미나를 통해 지역사회 안에서 본당의 역사를 조명했다. 본당 구성원들이 각자 자신의 집에서 성경을 읽고 자신이 평생 살아야 할 성구를 정하도록 했고, 본당에선 그 구절을 100주년 기념 성물로 제작해 신자들에게 선물했다. 냉담 교우 회두 운동과 함께 본당의 일치와 선교를 지향하며 묵주기도 봉헌운동을 펼쳤고, 100주년 기념비와 옛 성당 터 표지석도 설치했다. 이뿐 아니라 매달 지역 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15가구를 대상으로 반찬 나눔과 함께 물적 나눔을 실천해 왔다. 매달 셋째 주일에는 ‘행복마을’ 장터를 마련해 이주민들에게 의료 봉사와 함께 사랑 나눔을 실천했다. 곽명호 주임 신부는 기념식에서 “논산부창동본당에서 시작된 유흥식 대주교님 성소의 길이 대주교 승품과 함께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된 것은 큰 영광이고, 우리 본당도 자부심이 됐다”면서 “대주교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달릴 길을 다 달리시도록 전 본당 공동체와 함께 열심히 기도드리겠다”고 약속했다. 곽 신부는 “루르드 성모님께 봉헌된 우리 논산부창동성당 1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무엇 하나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고 은총 아닌 것이 없다”며 “반석 위에 지어진 당신의 집이 새로운 100년을 향해 나아가게 됐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유 대주교도 강론에서 “개인적으로 논산부창동본당의 아들로, 또 교구장으로 100주년을 맞는 논산부창동본당 전 공동체에 축하 인사와 함께 수고 많으셨다는 인사를 드린다”며 “지난 100년의 은총에 감사드리면서 다가올 100년을 위해서도 성부와 성자, 성령과 함께 나아가는 은총의 삶, 특별히 올해가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이니까, 믿음과 삶이 똑같은 장한 신앙의 선조들을 닮을 것을 다짐하자”고 당부했다. 논산부창동본당은 1921년 6월 대구대목구 화산(현 나바위)본당에서 분할돼 논산 지역에선 첫 번째, 대전교구에선 여덟 번째로 설립됐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21.06.22

미국 변호사 김윤주씨, 부업은 봉사 “뿌듯함과 은총 느껴요”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5) 변호사 김윤주(마리아) 김윤주 변호사는 요행을 바라지 않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주님께서 그 결과를 누릴 수 있게 해 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한다. 김 변호사가 미국 출장 중 뉴욕 타임스퀘어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자신의 탈렌트를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가톨릭 젊은이들이 많다. 그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를 더 빛나게 하고 내일을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김윤주 마리아(44, 서울 방배동본당)는 주일 새벽 미사를 다녀와 인터넷을 뒤져 무작위로 요양원에 전화를 건다. “오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해서 봉사를 하고 싶은데 혹시 가능한가요?” 보통 주일에는 봉사자들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잘 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운이 좋으면 지금 당장 와도 된다는 기별을 받는다. 그러면 그녀는 종일 요양원에 가서 이불을 빨고 청소를 하거나,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톱 발톱을 깎아드린다. 물론 요즘은 코로나19로 봉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아쉽다. 그녀는 휴가 때도 갑자기 짐을 싸서 훌쩍 여행을 떠난다. 사람들의 손이 잘 닿지 않는 오지로도 여행을 즐긴다. 그녀의 삶을 얼핏 보면 자유인 같지만 일 분 일 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 방문 때 외국어 봉사팀에서였다. 그녀는 약 150여 명의 통역 봉사단을 관리하는 부회장으로 녹록지 않은 일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당차게 해냈다. 그녀는 현재 CJ 주식회사 법무컴플라이언스팀에서 근무하는 미국 변호사이다. ▶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아주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외가가 천주교 집안이라 유아세례를 받았는데 초ㆍ중ㆍ고등학교 때도 주일학교를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어요.(웃음) ▶어릴 적 꿈도 변호사였나요? 아니에요. 본래 저는 라디오 방송국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어요.(웃음) 라디오와 음악도 좋아하고 자유롭게 방송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같아 좋았어요. 창조적인 작업을 좋아하거든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요즘처럼 미디어가 아주 발달하지 않아 방송 제작자가 되는 방송사 공채 시험은 어려워서 언론 고시라고 불렀죠. 대학 내에서 공중파 방송국이 운영하는 방송 아카데미에 들어가 라디오 제작반 조교도 했어요. 그런데 아주 우연하게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되었죠. 사람의 일은 정말 한 치 앞을 모르는 것 같아요. ▶변호사가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사실 아버지께서 변호사에 대한 도전을 저에게 권고하셨는데 저도 흥미가 생겼어요. 한국에서 서강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왔지만 사실 미국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어요. 어떻게 보면 무작정 유학을 떠났던 거죠. 물론 어릴 적부터 영어는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나 미국에서 변호사가 될 정도로 잘했다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외국어로 공부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닌데 로스쿨 교육은 어땠나요?미국에서 로스쿨 입학시험부터 보고 로스쿨 정규 과정을 밟으면서 변호사 시험을 보았어요.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도 없는 제게는 엄청난 도전이었죠. 수업준비를 하느라 3년 내내 도서관에서 적어도 하루에 7~8시간 이상 보냈던 것 같아요. 여행은 꿈도 못 꾸고 공부한 기억밖에는 없어요.(웃음) 마지막 변호사 시험을 앞두고는 3개월 정도는 하루에 12시간 이상 공부했던 것 같아요. 점심시간도 아까워서 바나나만 먹으면서 공부했던 기억이 있어요.(웃음) 그래도 간신히 합격해서 너무 기뻤어요.▶이야기 들어보면 저 같은 경우는 꿈도 못 꾸겠어요. 미국 변호사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조언해준다면?저는 제 경비로 미국 로스쿨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정부나 기업에서도 국비 혹은 회사 비용으로 유학 보내주기도 하고 한국 내에서도 미국 학교와 연계하여 미국 법학 관련 학위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과정이 있다고 해요. 유학이 여의치 않더라도, 다른 많은 길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잘 알아보시면 좋겠어요. ▶미국에서 변호사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법정에 출석하는 송무(소송업무) 변호사 일을 제일 먼저 했어요. 졸업하자마자 LA에 있는 작은 법률사무소에 취업했어요. 매일 아침 법원에 가서 기일(Hearing) 참석하고 돌아와서 서면(pleading paper)을 쓰고, 법률 조사하고, 상대방 변호사와 협상하는 등 재판 준비를 했어요. 상당히 스트레스받는 일이었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제가 미국 법정에서 영어로 남들을 변호하는 일을 하다니 스스로 신기하게 생각하기도 했죠.▶자주 봉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봉사하면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껴요. 이 뿌듯한 감정을 은총이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 허영엽 신부님이 강의 때 출석체크나 체온 점검 등을 봉사로 시키셨어요. 저는 어떤 봉사든 상관없어요. 나를 필요로 한다면 크든 작든 모든 봉사가 나를 즐겁게 만들어줘요. ▶특별한 체험이나 보람 있었던 경험이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변호사 업무가 스트레스도 크지만 보람도 있어요. 특히 회사에서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던 해외 소송에서 30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금전을 되찾았을 때 정의가 살아있는 것 같아 무척 기뻤어요.(웃음) ▶진로를 고민하는 젊은 인생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제가 조언을 할 사람은 못되어요.(웃음) 길을 먼저 간 사람으로 말을 하자면 우리는 삶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계획도 세우고, 실행하고 노력하죠. 좋은 미래를 위해서 어렵고 피하고 싶은 것도 감수하기도 해요. 그런데 최선을 다했는데도 계획대로 이루지 않은 경우가 많지요. 제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 있어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계획하고 계신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느님이 세우신 계획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하느님의 계획에는 우리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깜짝 놀랄 기회를 포함할 때가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내 계획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서 좌절하고 미래가 불안할 때 주님을 믿고 기다리며 기도를 많이 하려고 해요. 그러면 정말 길을 열어주세요.▶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어떤 김윤주 마리아가 되고 싶은지?기회가 된다면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청년)과 만나 언니, 이모 같은 멘토가 되어 삶의 방법 같은 것도 공유하고 싶어요. 저도 그 친구들에게 정서적 위안을 받을 것 같아요.▶가장 즐겨 하는 기도는 무엇인가요? 물론 화살기도죠. 특별히 형식도 없고 그때그때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하느님과 자주 대화하고 싶어요. 화살기도 다음으로 많이 하는 기도는 묵주기도예요. 청원의 간절함 뿐만 아니라 매 신비마다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할 수 있어서 좋아해요. 제가 바라는 것이 항상 제가 원하는 방식으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께서 제가 상상도 못 하는 방식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것을 믿거든요. 그리고 자주 하지 못하는 어려운 기도는 시간전례(성무일도)인데 재미는 최고예요. 이 기도는 몇 년 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개인 피정가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우왕좌왕했고 수녀님들을 따라서 시간전례 책을 이쪽저쪽 들춰가면서 간신히 따라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기도가 끝나면 시간전례 책을 들고 제 방으로 들어가 가톨릭 굿뉴스 앱을 참고해서 다음 시간전례를 준비해 가서 시간전례 시간에 따라 하곤 했어요.▶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나요?“네 손으로 벌어들인 것을 네가 먹으리니 너는 행복하여라, 너는 복이 있어라.”(시편 128,2)전 앞날이 불확실하고 초조할 때 이 구절을 보고 힘을 내요. 요행을 바라지 않고 성실하게 노력하면 주님께서 이를 알아주시고 그 결과를 누릴 수 있게 해 주시리라 믿게 돼요.(웃음) 김윤주 마리아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목구멍으로 뜨거움이 자꾸 치밀어 오르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그녀와 같은 가톨릭 젊은이들이 있어 세상은 더 따듯하고 밝아질 것이라 희망해봅니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cpbc2021.12.21

“스스로 기쁨 간직하고 살며 복음 전하자” 성바오로수도회·성바오로딸수도회, 12~15일 제55차 홍보 주일 기념행사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위원장 손희송 주교가 홍보주간 기념행사에서 바오로 서간 통독 릴레이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1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바오로딸 혜화나무 2층 아지트. 손희송(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위원장) 주교가 로마서 1장 1절을 낭독한다. 이어 허명순(바오로딸 대표) 수녀와 심재영(성바오로수도회) 수사가 바오로 서간을 읽어 나간다. 성바오로수도회와 성바오로딸수도회가 제55차 홍보 주일을 맞아 마련한 바오로 서간 통독 릴레이 시간. 어린이와 수도자, 사제 등 90명이 15일까지 이틀 동안 1인 1장을 낭독하고 한 서간이 끝날 때마다 음악과 미술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응송을 바쳤다. 통독 릴레이는 배우 정수영(그라시아)씨 가족, 가수 홍찬미(글로리아)씨 등이 함께했으며 유튜브 라이브로 생중계됐다. 이에 앞서 홍보주간 기념행사는 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간 진행됐다. 12일 첫날에는 혜화나무 지하 소극장에서 토크쇼 ‘온라인의 기회와 그 잠재적 위험’을 열고, 교황의 홍보 주일 담화문에서 언급된 웹 문화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을 알아봤다. 이튿날에는 박동호(서울 이문동본당 주임) 신부가 홍보 주일 담화문을 해설하는 시간을 가졌다.혜화나무 매니저 김계선(에반젤리나) 수녀는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유행은 인류의 삶의 방식을 온통 바꾸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얼굴을 마주하고 눈빛을 교환하며 커뮤니케이션하던 모든 방식이 온라인으로 바뀌었다”며 “온라인 강의, 온라인 독서모임, 온라인 쇼핑 등 온라인 대륙의 지형도는 점점 넓어지고 이보다 더 빠르게 인류의 삶 안으로 파고드는 온라인의 잠재적 위험을 체감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수녀는 “가장 큰 위험은 약한 이들에 대한 무관심, 고통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회피,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이기주의와 무책임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마지막 날 15일에는 혜화나무 지하 소극장에서 옥현진(주교회의 사회홍보위원장) 주교 주례로 홍보 주일 기념 미사를 봉헌했다. 옥현진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에서 오는 고단함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고, 일상의 반복 속에서 삶의 기쁨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면서 “삶의 힘겨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기쁨이 없다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옥 주교는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나 자신이 아니라 주님에 관한 소식을 널리 알리는 게 우리의 사명”이라며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입으로 전하고, 행동으로 증거해야 하기에 스스로 기쁨을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성바오로수도회와 성바오로딸수도회는 홍보주간 기념행사를 모두 유튜브로 생중계했다. 전 세계 바오로 가족은 2020년 11월 26일부터 올해 11월 26일까지 ‘성경의 해’를 보내고 있다.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05.19

묵묵히 매일을 살아가는 아버지, 요셉 이야기‘성 요셉의 해’ 책으로 만나는 성 요셉 가톨릭교회는 12월 8일까지 요셉 성인의 삶과 영성을 기념하는 ‘성 요셉의 해’를 지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요셉의 해’를 선포하며, 성 요셉을 “주목받지 않으면서도 신중하고 드러나지 않게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이자 “구원 역사에서 필수불가결한 역할을 한 성인”이라고 설명했다. ‘노동하는 아버지’로 알려진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을 책으로 만나보자. 나자렛의 요셉 베르나르 마르틀레 지음 신치구 옮김 / 가톨릭출판사성 요셉은 예수의 양부로, 동정 성모 마리아의 남편으로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의 수호성인이지만 요셉은 구세사에서 ‘하느님의 구원사업의 조력자’로 등장(마태 1,24)한다. 노동자들의 수호자이며, 임종자들의 중재자이자, 수도자들의 신앙 공동체의 수호성인인 성 요셉은 성경에도 예수의 탄생기와 성장기에만 등장할 뿐 예수의 공생활이 시작된 후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윗의 후손이며, 다윗 가문을 예수에게 인계한 사람,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와 마리아의 동정을 입증하고 보호하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베르나르 마르틀레 신부가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헌신의 사명으로,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를 받아들인 성 요셉의 삶과 신앙을 묵상한 책이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 △요셉과 마리아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성 요셉과 교회 등 25개의 항으로 구성했다. 성 요셉의 사명은 침묵과 신뢰, 헌신으로 요약하고 있다. 옮긴 이 신치구(베르나르도)씨는 “(요셉은)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앞장서서 도왔으나 그는 ‘바른 사람’, ‘의로운 사람’, ‘겸손한 사람’으로서 언제나 겉으로 드러남이 없이 그늘에 가려 계시는 분이었다”고 밝혔다. 1991년 우리말로 번역돼 출간됐다. 성 요셉께 드리는 9일 기도 성바오로딸수도회 엮음“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다.”(마태 1,19) 첫 번째 9일 기도는 성경 말씀에 나타난 성 요셉의 행적을 바탕으로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손길을 묵상하며, 필요한 은혜를 청하도록 초대한다. 두 번째 9일 기도는 성 요셉의 생애에서 두드러진 덕목을 성인들의 말씀과 연결해 묵상하도록 이끈다. 마지막 묵상으로 ‘성 요셉은 누구이신가?’라는 물음으로 △하느님께 대한 신뢰 △하느님을 향한 거룩함 △세상을 구원하는 노동 △침묵과 숨은 생활 △임종하는 이들의 수호자 등 다섯 가지 주제로 성 요셉의 삶을 관조하도록 돕고 있다.성 요셉과 함께 기도하는 한 시간 다니엘 콘 지음 / 장말희 옮김 성바오로레오 13세부터 바오로 2세까지 근세기의 교황들은 요셉을 가장(家長)의 본보기로 선포했다. 요셉 성인의 삶을 묵상하며, 우리에게 알맞은 덕목과 영성을 찾기를 권한다. 성 요셉과 함께 바치는 시작 기도를 시작으로, 성 요셉의 영적 생애를 다뤘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시작으로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정, 예수님의 탄생 등 성 요셉의 생애를 통해 오늘날 신자들에게 묵상할 거리를 던진다. 성 요셉의 생애 M.C. 바이즈 / 박필숙 옮김 / 크리스찬 바이즈 수녀가 성 가정의 가장으로서 요셉, 마리아의 배필로서의 요셉, 예수의 양부로서의 요셉을 소박하고 꾸밈없이 묘사한 책이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평화신문2021.01.05
![[신앙단상] 예수님의 멍에는 가벼운가?(유송자, 데레사, 국제 가톨릭 형제회)](//cpbc.co.kr/CMS/newspaper/2020/12/rc/793510_1.1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예수님의 멍에는 가벼운가?(유송자, 데레사, 국제 가톨릭 형제회) 성탄절을 맞이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다 보면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갑니다. 올해에도 우리 각자는 주님께서 주신 사랑과 평화, 기쁨과 안식이 있었고, 지고 온 멍에와 짐도 있었을 것이기에, 마지막 남은 며칠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저는 새해맞이 준비를 하면서 지나온 해를 되돌아보다가, 지난여름 피정 중에 지도신부님이 주신 마태오 복음 11장 28-30절을 떠올렸습니다. 그때 마태오 복음을 읽으면서 묵상했던 저의 멍에와 그리스도의 멍에에 대해서 성찰한 것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저는 긴 세월 동안 수십 번 들어왔던 이 말씀 중에서 매번 듣고 싶고 좋아했던 구절,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만을 기억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그다음 구절은 귀에 들리지도 않았고, 마음에 남아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묵상을 해보니, 주님께서 주시겠다는 안식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을 닮아야 한다는 말씀이 있었습니다.‘주님, 제가 어찌 감히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겸손과 온유보다는 오만과 불손으로 가득 찬 제가 감히 어떻게 주님의 멍에를 메고 배울 수 있겠습니까?’실망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푸념하면서 다음 주제로 주신 이사야서 43장을 열고 묵상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앞을 가려서 성경책을 덮고 말았습니다.“이스라엘아, 너를 빚어 만드신 분,…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 한가운데를 지난다 해도 나 너와 함께 있고… 네가 불 한가운데를 걷는다 해도 너는 타지 않고,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이사 43,1-7)마태오 복음 11장을 읽고 실망하는 저의 마음에 이 성경 말씀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제가 주님의 멍에를 질 수 없다 해도, 주님께서는 저를 은총으로 도와주시고 저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멍에와 십자가가 아무리 무겁고 힘들어도 하느님 사랑이 더욱 크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주님의 멍에를 멜 때 그 멍에는 편하고 그 짐이 가벼울 것임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지극한 가난 속에서 겸손하게 태어나신 이 성탄절에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며, 기쁘게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cpbc2020.12.22

100년 전 주문모 신부 시복 기원하며 입국~순교 과정 10막으로 구성[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86. 100년 전의 연극대본 「고려치명 주아각백전략」 ▲주문모 신부의 일대기를 담은 연극 대본 「고려치명주아각백전략」의 제8막 첫 부분. 8막 제목은 ‘주 신부가 관아에 스스로 자수하고 심판관이 참수형을 언도하다’라고 쓰여 있다. 1920년대 초 중국 강소성 천주교회의 연극대본「한어기독교진희문헌총간(漢語基督敎珍稀文獻叢刊)」(중국 광서사범대학출판사, 2017) 제1집 제10책은 조선 천주교의 역사를 기록한 책만 따로 묶었다. 1879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은정형(殷正衡, 1840~1914) 신부가 중경(重慶)에서 펴낸 「고려주증(高麗主證)」 5권 2책과 1900년에 중국인 신부 심칙관(沈則寬, 1838~1913)이 상해에서 간행한 「고려치명사략(高麗致命史略)」 1책이 그것이다. 이 책 끝에 「고려치명 주아각백전략(高麗致命 周雅各伯傳略)」이란 낯선 이름의 책이 실려 있다. 놀랍게도 이 책은 조선에서 순교한 주아각백(周雅各伯) 즉 주문모 야고보 신부의 일생을 정리한 연극 대본이다. 앞의 두 책과 달리 필사본인데다, 작가나 창작 시기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그 내용을 살펴보니 「고려치명사략」 속에 실린 주문모 신부 관련 내용에 기초하여, 이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쓴 창작 연극 대본이었다. 원본에 ‘상해 서가회(徐家匯) 천주당 장서루인(藏書樓印)’이란 장서인이 찍혀 있다. 이 연극 대본은 언제, 누가, 왜 지었을까? 제10막 에필로그 부분에 단서가 들어 있다. “현재 로마에서 예비심사를 진행 중인, 조선에서 순교한 몇 분의 주교와 신부의 안건이 예비로 진복품(眞福品)과 성품(聖品) 등등에 포함되어 있다. 다시 여러분께 청하니, 이분 주 신부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는 중국 신부이고, 우리 본성(本省)의 소주부(蘇州府) 사람이다. 하루아침에 진복품에 오르게 된다면 우리 강소(江蘇) 사람에게 영광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땅히 천주께서 주 신부께 상을 내려주시어 일찍 진복품에 오르게 해주시기를 청해야 할 것이다. 아멘.”로마 교황청에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때 순교한 79위의 시복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진복품, 즉 복자품에 오르게 된 것은 1925년 7월 5일의 일이다. 윗글에서 이들의 시복 시성을 위한 예비심사가 진행 중이라고 했으니, 이 대본은 1925년 이전 시복시성 재판에 앞서 예비심사가 이루어진 1923년 3월 이후 24년 사이에 창작된 것이다. ‘본성(本省)’이라 말한 것에서 창작 주체가 강소성(江蘇省) 천주교회였음을 알겠고, 목적은 강소성 소주부(蘇州府) 출신인 주문모 신부가 하루속히 복자품에 올라 강소성 천주교회에 큰 영광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는 취지였다. 당시 로마에서 진행 중이던 청원에는 주문모 신부 등 신유박해 때의 순교자는 포함되지 않았었다. 재판 신청이 파리외방전교회에 의해 주도되었고, 조선에서 순교한 외방전교회 출신 프랑스 신부의 시복시성에 초점이 놓였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는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심사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하루라도 빨리 중국인 복자와 성인을 내야겠다는 열망도 얼마간 작용했다. 당시는 주문모 신부가 순교한 지 120여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중국 강소성 신자들은 애초에 주문모 신부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다가, 「고려치명사략」을 보고 주문모 신부가 강소성 소주부 출신이란 사실을 처음 알았고, 그의 순교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때 마침 조선 교회의 순교자 시복 재판 소식이 중국 교회에 알려졌던 모양이다. 이 명단에 주문모 신부가 빠진 것을 보고 그의 시복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게 되었던 것이다. 10막으로 구성된 스케일 큰 무대 주문모 신부의 일대기는 장장 10막으로 펼쳐지는 규모가 큰 무대였다. 매 막마다 서두에 8자 또는 7자 2구로 내용을 간추렸고, 뒤이어 각색(脚色)이라 하여 등장인물을 소개했다. 이후 지문과 대사, 그리고 방백으로 줄거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제1막부터 10막까지 제목은 이러하다. ①조선 사람이 북경에서 주교를 찾아뵙고, 서신을 읽은 주교가 손님을 머물게 하다(高麗人北京見主敎, 念書信主敎留客人) ②윤유일 바오로가 답장을 지니고 조선으로 돌아오고,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주교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다(尹祿帶信回高麗, 權方濟樣樣聽主敎) ③제상(祭箱)을 보내오자 교우들이 크게 기뻐하며, 빨리 신부를 보내 줄 것을 천주께 기도하다(送祭箱敎友大歡喜, 求天主快賜神父來) ④주 신부가 처음으로 조선에 들어오자, 여러 교우가 새 신부를 환영하다(周司鐸初次進高麗, 衆敎友歡迎新神父) ⑤주 신부가 서울에 머물며 조선말을 배우고, 여러 교우가 나아가 주 신부를 뵙다(周司鐸住京學方言, 衆敎友晉謁周司鐸) ⑥최인길 마티아가 주 신부로 가장하고, 주 신부는 잠시 강완숙의 집으로 피하다(趙瑪弟假裝周司鐸, 周司鐸暫避姜姓家) ⑦주 신부가 위험을 피할 뜻이 있었으나, 천주의 뜻으로 다시 조선에 돌아오다(周司鐸有意避危險, 天主意仍舊回高麗) ⑧주 신부가 자수하여 아문에 이르니, 심판관이 참수형으로 판정하다(周司鐸自投到衙門, 審判官判定斬首刑) ⑨사형집행장에서 주 신부가 순교하자, 큰 우레와 비가 쏟아지는 변고가 일어나 사람들이 놀라 깨닫다(押法場周司鐸致命, 大雷雨天變驚醒人) ⑩주 신부가 순교한 영광을 조선 사람들은 지금껏 잊지 않고 있다(周司鐸致命光榮, 高麗人至今不忘)연극은 이렇듯 1790년 1월 윤유일이 북경성당으로 구베아 주교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귀국 후 조선 교우들의 환호와 주문모 신부의 입국, 이어 실포 사건과 피신, 자수, 순교에 이르는 도정을 장면별로 간추려 표현했다. 대본은 조선 천주교 순교사를 정리한 「고려치명사략」의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전체 23장 중 특별히 제4장 ‘중국 신부가 처음으로 조선에 들어가다(中華司鐸首進高麗)’와 제5장 ‘주 신부가 주님을 위해 순교하다(周司鐸爲主致命)’에 나온 이야기가 주축을 이루었다. 제상(祭箱) 속에 담긴 성물현재 남아 있는 연극 대본은 원본이 흐리고, 중간중간 글자가 많이 탈락되어 판독이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여기에 더해 지역 사투리가 강하게 반영된 백화문의 본문은 ‘로()’나 ‘로사()’, ‘탁()’ 등 지금은 쓰지 않는 생경한 옛 말투와 표현이 그대로 남아 있어 접근이 더 어렵다. 그럼에도 내용 중에 눈길을 끄는 대목이 적지 않다. 이승훈의 배교 사실을 강조해서 기록하고, 그의 배교 이후 신자들의 공의로 권일신을 새 주교로 세웠다는 이야기, 그리고 권일신이 자신의 이름으로 북경 주교에게 편지를 보낸 이야기 등이 나온다. 특별히 이류사(李類思)란 인물이 여러 차례 비중 있게 등장하는데 그는 바로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이다. 또 제3막에 보이는 윤유일이 주교에게서 받아온 제상(祭箱)에 담겼다는 내용물 대목도 흥미롭다. “다만 제상(祭箱) 뿐이지만 미사 때 신부가 입는 장백의(長白衣)와 성삭(聖索:허리띠)과 영대(領帶: 목띠), 성석(聖石), 성경, 경문 카드(經頁子), 미사주(彌撒酒), 성체(阿斯底亞: 아스티아, 성체의 라틴어 Eucharistia의 음역)를 만드는 집게[鉗: 제병기], 복사가 입는 단백의(短白衣), 미사 때 쓰는 성작(聖爵)과 성반(聖盤), 성체(聖體)를 줄 때 쓰는 성합[聖爵], 성체(聖體)가 빛을 내며 색색을 두루 갖추고 이지러진 데 없는 성광(聖光)이 들어 있었다.”사실 윤유일이 제상과 미사 물품을 받아온 것은 1차 북경 방문 때가 아닌, 1790년 9월 2차 방문 때였다. 대본에서는 이를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 달레는 이때 윤유일이 성작 1개, 미사경본 1권, 성석 1개와 미사성제 거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받아왔다고만 썼다. 이 물건들은 이때 북경성당에서 새로 세례를 받게 된 성이 ‘오씨’ 또는 ‘우씨’였을 수행 관리가 왕명으로 사가지고 가는 물품이 담긴 상자 속에 같이 담겨 국경을 통과했을 것이다. 제8막 끝에 1801년 4월 19일에 사형 언도를 받은 뒤, 신부의 최후 진술은 이렇다. “대노야께서 저에게 참수의 큰 은혜를 내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귀국에 와서 전교하며 신자들에게 권면한 종지(宗旨)는 하루라도 편안히 죽고 잘 마침을 얻기를 기도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이제 선종할 날짜를 판정해 주시니, 제가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온지요. 천주께서 저처럼 비천한 죄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마침내 순교의 영광이란 큰 은전을 상으로 내려주시니,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교중(敎衆)에게 청하노니 주님을 찬미하고 주님의 이름을 찬미합시다.” 이렇게 주문모 신부는 순교의 영예로운 화관을 썼다. 이어지는 제9막 끝, 참수 장면의 묘사를 보자. “망나니가 귀에다 화살을 꽂더니, 주 신부를 끌고 세 차례 돌게 하고는 돌아 세워 한가운데로 오게 한다. 주 신부는 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드리워 형 집행을 기다린다. 망나니가 칼을 뽑아 막 목을 베려 하자 우르릉 꽝하는 소리가 난다. [막이 내린다] 갑자기 비바람과 우렛소리가 들리며 번갯불이 번쩍번쩍한다.”참수 죄인의 귀에 화살을 아래위로 꽂는 것은 목을 자른 뒤 화살 끝에 끈을 묶어 도르래로 머리를 달아 올려 장대 끝에 매달기 위함이었다. 목이 잘리는 장면은 보여주지 않은 채 막을 내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음향과 조명 효과로 대미를 장식했다. 전체 10막으로 구성된 이 연극 대본은 주문모 신부의 입국에서 순교까지의 과정을 장엄하게 담아냈다. 이제껏 이 자료는 상해 서가회(徐家匯) 장서루 속에 보관되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2017년에야 처음 공개되었다. 주문모 신부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중국 강소성 신자들이 신부의 시복 청원을 위해 연극 대본을 만든 지 정확하게 90년 뒤의 일이다. 현재 주문모 신부의 시성 재판이 진행 중이고, 2022년은 한중 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주문모 신부를 포함한 동료 순교자들의 시성 축원을 위해 이 연극 대본이 양국에서 무대에 올려지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면 실로 멋진 일이 될 것이다.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cpbc2022.02.09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6주일 -주님을 찾는 간절함](//cpbc.co.kr/CMS/newspaper/2021/07/rc/805858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16주일 -주님을 찾는 간절함 함승수 신부 선배 신부님 중에 언제나 열정적인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사목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더 좋은 것들을 많이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밖에 없지요. 한정된 예산으로 목표를 달성하자니 무슨 일이든 자기 손으로 직접 해결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여러 분야에 능숙해졌습니다. 철판 볶음밥 만들기의 달인, 더치 커피 만들기의 달인, 원두 로스팅의 달인 등 별명도 여러 가지입니다. 정성과 진심으로 신자들을 대하니 많은 분이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신부님이 떠나실 때가 되면 많은 분이 아쉬워하십니다. 그 중에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고 합니다. 정든 본당에서 마지막 미사를 마친 후 차를 타고 새로운 임지로 출발하는데, 주일학교 아이들 몇 명이 “신부님 가지 마세요” 하고 울면서 한참을 그 차를 쫓아 뛰어오더랍니다. 아이들의 눈물 어린 진심이 신부님으로 하여금 새로운 임지에서도 열정을 가지고 사목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겠지요.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 선포의 사명을 받고 파견되었던 사도들이 예수님께 돌아와 결과 보고를 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많은 사람에 치여 제대로 밥조차 먹지 못하는 모습에 안타까워하시며, 휴식을 위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이동하시지요. 그러자 많은 사람이 예수님 일행이 떠나는 것을 보고 육로로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해 기다립니다. 갈릴래아 호수는 둘레가 53㎞, 동서의 너비가 11㎞에 달할 정도로 큰 곳입니다. 그 호수의 둘레를 달려 배를 타고 건너가는 예수님 일행보다 먼저 반대편에 도착하려면, 25㎞에 달하는 거리를, 배보다 2.5배 이상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합니다. 예수님이 다른 고을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들을 떠나셔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고 아쉬워 조금이라도 더 그분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에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달린 것입니다. 신부님이 탄 차를 울면서 쫓아 달렸던 아이들과 같은 마음이겠지요.예수님은 그들을 가엾이 여기십니다. 외딴곳에서 쉬려던 당신의 계획을 뒤로 미루고 그들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라는 성모님의 순수한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여 ‘첫 기적’의 순간을 앞당긴 것처럼,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은 간절하고 순수한 마음이 그분의 마음을 움직여 당신 계획을 바꾸게 한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께 보여드리는 믿음의 자세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때엔 힘들게 예수님을 쫓아다녀야만 먼발치에서라도 그분을 뵐 수 있었지만, 지금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미사 중에는 성체로, 성경에서는 말씀으로, 기도 중에는 마음의 소리로 만날 수 있지요.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찾는 ‘간절함’이 우리가 누리는 ‘간편함’만큼 크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신앙생활이무미건조하게느껴진다면,내마음에간절함이없기때문입니다.“사랑하면알게되고알게되면보이나니그때보이는것은전과같지않으리라”고했습니다.주님을간절히찾는 만큼 그분을 더 사랑하게 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마음의 눈이 열려 ‘사랑의 신비’를 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상대방을 향한 그리움이 클수록 사랑이 더 깊어지고, 사랑이 깊어질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 단단해집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며 그분과 더 깊은 일치를 이루려면 주님의 뜻을 간절히 찾고 구하며 뒤를 따라 달려가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의 섭리를, 구원의 신비를 깨닫게 될 것이고 그 깨달음이 깊어지는 만큼 삶의 기쁨과 행복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함승수 신부(서울대교구 수색본당 부주임) 평화신문2021.07.13
![[제8회 신앙체험수기] 대상/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cpbc.co.kr/CMS/newspaper/2021/02/rc/796911_1.0_titleImage_1.jpg)
[제8회 신앙체험수기] 대상/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이이구(바오로, 전주교구 대야본당) 회회일러스트=문채현 거울 속에 비쳐진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과거의 쓰디쓴 술잔과 현재의 달콤한 술잔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지금의 내가 이 시간 안에 살고 있는지 멍한 가슴입니다. 저는 약사로서 서울에 있는 제약회사에 근무하였습니다. 그 시절은 아주 순탄한 생활이었습니다. 새로운 신약을 연구하는 개발 부서에서 일하였으며, 그 업무에 재미를 느끼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여 어느덧 개발부장이라는 자리에까지 올라가 있었습니다. 직장의 꽃이라는 이사를 바라보는 자리였습니다. 정말 삶의 보람을 느끼며 자신감 넘치는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자란 만큼 부모님은 연로하시어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을 자식 중에 누군가는 모셔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저희 형제가 칠남매인데 모두 서울에 살고 있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삶의 터가 고정되어 있어 움직일 수 없지만, 나는 약국이라는 자유업이 있어 내려와 지금 항상 감사하며 사랑하는 헬레나와 결혼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남들이 일하고 결혼하였다고 할 정도로 공부하고 일하는 것이 즐거웠으며 세월 가는 줄을 몰랐으므로 그 당시로는 늦은 나이인 36살에 결혼하였습니다. 현재 저의 나이는 64세 닭띠입니다.그렇게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을 모시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부모님이 사시는 고향 집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약국을 개설하고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사랑스러운 딸과 아들도 주시어 부모님께서 안아주시도록 하여 주시었습니다. 손자 손녀를 안고 부모님께서는 행복해하셨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삶의 시간은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객지 생활을 하다가 만난 어릴 적 친구들이 반가워 많은 친구를 만났고 허심탄회 하는 마음으로 같이 어울려 살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마음을 털어놓고 어울렸던 친구 중의 한 사람에게 보증을 서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믿었기 때문에 보증을 서준 것인데, 무려 15억이라는 채무를 나에게 안겨주고 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나의 삶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모든 재산을 잃고 그로 인하여 부모님도 한 해 걸러 돌아가시어 부모님을 모시러 왔다가 부모님의 인생을 무너뜨려 버렸습니다. 살아갈 수 있는 자리가 없어 부모님이 사시던 시골의 고향 집으로 가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하였지만, 대부분 친구가 외면하여 서서히 멀어지고 한 친구만 도움을 주었습니다. 흩어져 있는 개인의 작은 빚이라도 청산하고 시간을 가지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라고 자신도 어려운 가운데 상당의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였지만, 그 모든 노력은 세상의 틀 밖으로 벗어나 버렸습니다.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그 친구의 부채 값으로 모자란 것이지만 나머지 집과 땅을 이전하여 주고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떠나면 우리 모든 가족이 거리의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사정하여 살고 있는 집에서 월세로 살게 하여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그렇게 어둠 속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즈음 세상에 쌀독에 쌀이 없으며 한겨울에 난방할 여유가 없다면 믿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무엇인가? 가정을 이끌어갈 경제적인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상황에서 무엇을 다시 하여야 하는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하여 온 것들이 약학 공부밖에 없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이제 정말 하루 생활할 양식마저 동이 나고 말았습니다.그래서 지난날 약국 할 때에 자주 만났던 다른 친구를 찾아가기 위하여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여러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하여 전화했지만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살면서 내 나름대로 베풀고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시간이 없다거나 바쁘다는 핑계뿐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인력사무소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고 할 줄 아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며칠 공을 치다가 모텔에서 낡은 침대를 교체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온종일 무거운 침대를 끌고 땀을 흘렸는데 손에 들어온 돈은 5만 원이 고작이었습니다. 지난날 50만 원도 하찮게 쓰던 때를 생각하니 허무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며칠은 지낼 수 있는 돈이었으므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자꾸 헛웃음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일도 오래 하지 못했습니다. 체구도 작고(키 165cm, 몸무게 56kg) 힘이 별로 세지 않은 몸으로 육체 노동을 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지탱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습니다.그러던 중 이러한 소식을 전해 들은 몇몇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들도 생활의 어려움으로 경제적인 도움은 줄 수 없는 처지였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라는 위로의 말을 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고 갔습니다. 이러한 것이 절망이라는 것인가? 너무나 큰 빚이 커다란 산이 되어 짓눌러 오는 상황에 헤쳐날 수 있는 희망은 바늘구멍만 한 빛마저 보이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할 믿음의 빛마저 점점 사그라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면 파란 하늘이 까맣게 보였습니다. 너무나 허무하여 집안에서 가장 고운 줄을 골라 소주병을 들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따스한 봄날, 줄을 나무에 걸고 마지막을 준비할 때 발아래 고사리가 있었습니다. 살포시 오그린 아기 손이 눈길을 끌어당겼습니다. 조용히 내려와 하나를 꺾는데 그 옆에도, 또 그 옆에도 골을 이루어 피어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손안에 담고 보니 새로운 세상이 보였습니다.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이 있는데 왜 그것을 버리려고 하는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그리고 눈물 속에 잠겨있던 마음속에 큰 울림으로 한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바오로야, 이 세상에는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너도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딸, 그리고 성당에 너를 보고 싶어 하는 형제자매님들이 많단다.” 많은 얼굴이 눈물방울 위로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고사리 한 웅쿰을 들고 산을 내려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내에게 주고, 예수님 십자가고상 앞에 엎드렸습니다. 돌아보니 미사를 드리지 못한 것이 몇 달을 넘어 오래되었었습니다. 엎드려 있는 가운데 다시 말씀이 들렸습니다. “너를 본 지가 오래되었다. 너는 문을 두드리지도 청하지도 않았다. 그러한데 어떻게 너의 사정을 알고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겠느냐?”다음날, 미사가 없는 시간에 다니던 대야성당에 나가 성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조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은은하게 비쳐오는 성체의 불빛만이 나의 모든 것을 감싸주었습니다. 숨결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가운데 말씀이 들렸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야, 믿어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오랜만에 평온한 얼굴을 한 나의 얼굴을 본 아내는 무슨 일이 잘못되어 내가 이상해진 것은 아닌가하고 불안해하였습니다.그러던 며칠 뒤에 의약품 도매상을 하는 친구가 전화가 왔습니다. 신용불량자일지라도 약사의 사정으로 약국을 하지 못할 때 대신해서 단기간 근무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파산되고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러한 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 가닥 희망이 비쳐왔습니다. 그리하여 친구의 소개로 한 달에 며칠 하는 단기 약사를 이곳저곳에서 할 수 있게 되어 아내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한동안 드리지 못하였던 미사를 참여하게 되었고 다시 전에 하던 레지오와 성가대, 작은형제회와 사랑 나눔 봉사에 참여하며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성당에서 신앙 공동체 생활을 하면 세상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지고 편안해졌습니다.그러한 생활이 2년여 지난 후 사목회 임원으로 부름을 받아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떠돌이 약사 생활이지만 수중에 돈이 떨어질 때쯤이면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듯 어디선가 일자리가 생겨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일이 이어질 때마다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 만나가 내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한 분의 소개로 약국에 정식 직원으로 근무약사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새로운 불행의 불씨를 낳는 길이었습니다. 한곳에 오래 머물러 있었으므로, 세상에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채권자들은 나를 쫓아다녔습니다. 결국, 다시 떠돌이 약사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매일 집에 찾아오고, 떠돌이로 이 약국 저 약국 근무하는 데까지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인력사무소 소개로 막노동하는 것보다는 좋은 환경이므로 어떻게 하든지 생활을 이어가려고 노력하였습니다.아침에 일어나면 주님께 오늘 하루만이라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말고 조용한 하루가 되어 주기를 기도드렸습니다. 미사에도 가능한 한 빠지지 않고 사목회를 비롯하여 단체 활동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모든 살림살이에 대한 압류 통지서가 날라 왔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대응할 아무런 능력도 없는 저에게는 처분만 바라는 속수무책이며 막막한 시간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결국 모든 집안 살림살이를 압류당하였습니다. 텅 빈 집안의 공간을 바라보는 순간 모든 것을 끝내버려야 하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나를 버리고 달아났던 친구가 가져갔던 오천만 원 상당의 가계수표가 부도가 나 고발당하여 형사처벌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검사가 저의 사정을 헤아려 약식 기소로 벌금형으로 하자고 하였지만, 그것마저 감당할 수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재판에 회부되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그 해 한 해가 서서히 저물가는 10월, 딸이 수능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딸의 삶의 진로도 생각하여주지 못하는 처지…. 아무 말을 못 하였습니다. 목구멍에 커다란 돌덩이가 꽉 막혀 숨구멍마저 막아버렸습니다. 딸의 방에서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딸의 흐느낌이 눈가를 흘러 가슴에 고드름처럼 맺히는 차가운 얼음뿐이었습니다.그렇게 다시 산에 올랐습니다. 마지막 순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 하느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리고 울부짖었습니다. “저의 죄가 많은 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그 죄를 깨닫고 속죄하며, 주님께 의지하고 살아가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슨 일입니까? 아직도 씻어지지 않은 죄가 많기 때문입니까? 제가 그렇게 죄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생각하시면, 세상의 먼지처럼 흩날려 버리시어 흔적조차 지워버리십시오.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이렇게 저 스스로 모든 것을 마치려 합니다.” 그렇게 밧줄을 손에 잡고 얼굴 앞에 들고 있는 순간, 살아왔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가운데 예수님의 십자가가 터질 것 같은 가슴 속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그러나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온 생각을 덮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고통에 싸여 있으면서도 아버지 뜻대로 하시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그리하실 수가 있을까? 그러면 나의 고통은 무엇일까?요즘 세상에 비추어보면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호의호식하실 수도 있었는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 좋은 것을 모두 버리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지고 죽음의 길로 가셨을까? 레지오 회합 때, 하느님께서는 이 죄 많은 세상을 노아의 방주처럼 멸망시켜버릴 수도 있으시지만, 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마지막 아드님까지 보내시어, 그 많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속죄 제물로 바치게 하셨다는 수녀님의 훈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삶 중에 일어나는 고통과 시련은 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더 굳고 단단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단련시키는 과정이라고 하신 말씀도 함께 떠올랐습니다.그렇다면 지금의 이 시련과 고통은 무엇인가?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교만과 자만의 삶이었습니다.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하여 재물의 허세와 위선으로 허황된 포장을 하고 살았던 인생이었습니다. 그저 죄로 흙탕물이 된 얕은 물 한 모퉁이에서 제 잘난 멋에 팔딱거리는 작은 물고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슴 한편에서 달그락거리며 돌덩이들이 굴러 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시원한 비가 내려 뜨거워졌던 마음의 불을 꺼버렸습니다. 어느덧 나는 묵주기도를 하며 천천히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산에서 내려왔고, 예수님을 찾아,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필사를 함께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농사도 시작하였습니다. 고향을 떠나기 전에 틈틈이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와드렸던 기억을 되살리고, 동네 이장님의 도움을 받아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하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일을 하였습니다.그리고 다시 약국 일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남보다 일찍 일어나 기도와 성경 필사를 하며 평일에는 약국으로 출근하고, 토요일과 주일날 미사 후 남는 시간에 농사일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아내 헬레나는 화를 내거나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나와 같은 상황이면, 대부분 여자는 화를 내고 짜증을 내며 어디론가 떠나버렸을 텐데, 시간이 나면 조용히 성당에 나갔다가 돌아와 나를 도와주었습니다. 아마도 성체조배를 하며 기도드리고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생각 중에 나의 아내 헬레나의 삶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가족의 모든 식사를 할 수 있게 하면서도, 초등부 교리교사를 하면서 어린아이들에게 항상 밝은 모습으로 웃고 있었습니다. 화를 내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한순간 따가운 가시처럼 다가왔지만, 바라보면 볼수록 죄책감에 사로잡힌 나의 가슴을 찌르고 있던 모든 것을 녹여 사랑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잠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손이라도 잡아주려고 다가갔는데 손과 발에 딱딱한 각질이 뒤덮고 있었습니다. 조용히 손을 내려놓고 달밤에 담배 한 대를 길게 피웠습니다. 완전히 망가진 나를 버리지 않고 흩어진 나의 마음을 추슬러 주며, 성당 안에서 어린아이와 어울려 밝게 살고 있다는 것을 나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인내하며, “주님의 말씀 안에서 고통 중이라도, 사랑하면 이렇게 살 수 있어요.” 하고 하느님 나라의 예시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찾지 못하였던 따스한 사랑이었습니다.그 사랑을 등에 업고 다시 약국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생활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또다시 세상에 내가 드러날수록 채권자들은 더욱더 기승을 부렸습니다. 이 약국 저 약국으로 방랑자와 같은 떠돌이 약사 신세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옥 같은 세상에 떨어졌지만, 주님께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무엇인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희망하며 살아왔는데, 세상의 무거운 짐은 나의 어깨를 더욱더 무겁게 짓눌러 왔습니다. 온몸의 힘이 빠지고 삶의 의욕이 점점 시들어갔습니다. 결국, 다시 방 안에 갇혀 세상을 한탄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그렇게 절망 속에 술독에 빠져 헝클어진 머리와 더부룩한 수염으로 몰골이 흉악한 저에게, 어느 날 수녀님께서 찾아오시어 손을 잡아주시며 기도해주시고, 욥기의 이야기를 하시며 하느님께서는 절대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니 용기를 가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떤 형제님은 하루가 멀다고 아침 새벽에 찾아오시어 “바오로야 죽었냐? 살아 있느냐?”하고 찾아와 문을 두드리시고, 어떤 형제님은 자정이 넘은 시간에도 전화하면, 자다가도 일어나 찾아와 위로의 술잔을 기울여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감사함으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으며, 멈추었던 성경 필사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성체조배를 하였으며, 천호성지와 나바위성지, 해미성지, 미리내성지, 숲정이성지를 비롯한 많은 성지를 찾아 순례하였습니다. 추운 겨울날 눈 덮인 미리내 성지를 돌아보고 있는데, 수녀님께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 한 곳을 찾아보라며 안내하여 주셨습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님을 안고 계신 피에타상이 모셔져 있는 기도 자리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그 자리에서 어떤 고통도 슬픔도 나에게는 한낱 먼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순교자가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칠 때의 고통을 생각하니 가슴이 떨렸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생각하니 나의 손바닥과 발등에 통증이 왔습니다. 이러한 날들이 하루하루 쌓여가자 나를 망가뜨린 원수를 찾아 죽이고 싶었었는데 그 사람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2004년입니다. 성경 통독을 하고 필사하며 묵상하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용서하였지만, 현실의 빚은 끊임없이 나를 쫓아왔습니다.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내놓았었지만, 미처 갚지 못한 빚이 이자가 불어 7억이나 되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이것을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최후의 수단으로 파산신청을 하였는데 내가 약사라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면책받은 판례가 없다고 하며 난색을 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주님께 매달려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새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여 충실하게 미사를 드려야 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나를 위로하여 주셨던 수녀님과 형제자매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사 전에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꾸준하지 못하여 오랫동안 끌어오던 성경 필사를 마침내 5년 만에 마쳤습니다.그러던 어느 주일날 미사 중에 신부님께서 성체 축성기도를 하실 때 눈을 감고 기도를 듣고 있었는데 따뜻한 기운이 나를 감싸주었습니다. 의아한 마음에 눈을 들어 주위를 돌아보니 모든 형제자매님의 모습이 천사들의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앞에도 뒤에도 옆에도 천사들이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두렵고 떨리어 눈을 감아버렸습니다. 그렇게 미사가 진행되고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형제자매님의 미소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나도 밝게 웃으며 인사하였습니다. 그날 미사를 드리고 성당을 나설 때 구름을 타고 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기적같이 모든 빛을 탕감해주는 면책 판결이 내렸습니다.면책이 판결된 해가 2012년입니다. 면책 판결이 난 후에는 채권 추심을 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장기간 근무약사로 일할 수 있었으므로 안정된 삶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아침기도와 삼종기도를 드릴 때 감사의 눈물이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모든 일에 힘과 용기가 생기고 더욱더 열심히 하게 되었고 그와 더불어 통장에도 조금씩 돈이 쌓여갔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난 어느 날, 집과 땅을 넘겨주었던 친구가 집문서와 땅문서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자신도 한때 어려워 넘겨준 재산을 처분하려고 하였지만, 그렇게 하면 내가 오갈 데가 없을 것 같아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처음 빚진 금액만 지불하면 모든 재산을 넘겨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나 자신이 간절히 바라던 것이었는데 시세에 따른 자금이 부족하여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그 친구가 해결하여 준 것입니다. 친구의 손을 잡고 한동안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그리고 2019년에 면책자 신용불량이 해제되었습니다. 2020년 올해는 나에게는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지나간 청춘을 돌아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은총을 받았습니다. 젊은 시절 교만과 자만으로 죄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방탕한 생활을 한 나를 새롭게 하여 주시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사랑의 채찍을 드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 중에 많은 형제자매님과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게 하여 주시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 고난의 시간이 있기 전에 자주 다투고 싸웠던 아내 헬레나…. 비록 가진 재산은 별로 없지만, 오랜 시간 동안 고통 속에서도 나를 버리지 않고 같이 견디며 살아준, 저희 아내 헬레나와의 사랑이 부서지지 않고 이제는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성경 통독을 하게 하여 주신 주님의 은총이 원수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과 용기를 주시어 저와 가정을 평화롭게 하여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에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왕에 주실 것이면, 일 년 치, 십 년 치를 한꺼번에 주시지 왜 하루분만 주십니까?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뜻은 말씀 안에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면, 세월이 지난 후에 바라던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이 이겨낼 수 없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헤매지 말고 성경 말씀을 가까이하며 기도하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행복과 고난, 그리고 평화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입니다. 이제 나이가 들어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성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으셨을 때, 엘리사벳 태중의 아기가 성모 마리아의 목소리를 듣고 기뻐 뛰듯이 나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사랑이며 영원한 구원자이신 목소리께서 나의 마음이 기쁨으로 충만하여 뛰어놀게 하십니다.지난날, 나에게 주어진 시련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며 그 고통의 굴레에서 풀어주신 것 또한 하느님의 뜻입니다.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아버지, 저의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을 뜻대로 하소서,” 아멘. 전주교구 대야성당 이이구 바오로 cpbc2021.02.17

풍토병에 걸린 맏형 최방제, 사제의 꿈 이루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신 김대건·최양업 전] (13)동료를 잃는 아픔 최방제가 1837년 11월 27일 마카오 극동대표부 조선신학교에서 선종했다. 조선 신학생의 맏형인 최방제의 사망 원인과 그의 무덤을 찾는 것은 한국 교회 사제 양성 역사를 정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사진은 마카오 가톨릭 신자 무덤인 성 미카엘 공동묘지로 현지 순례 안내인들이 이곳에 최방제가 묻혀 있다고 추정해 설명하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다. 1837년 11월 27일 최방제(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학생이 마카오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서 선종했다. 김대건과 최양업, 그리고 조선신학교 교장이며 스승인 칼르리 신부가 그의 임종을 지켜봤다. 최방제의 죽음은 김대건과 최양업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 둘은 맏형이면서 동기인 최방제를 늘 의지하며 생활했다. 기둥처럼 든든하던 형이 갑자기 죽었으니 김대건과 최양업의 슬픔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최방제는 아버지 최한지(야고보)와 어머니 황 안나 사이에서 4남매 중 막내로 충청도 홍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주 최씨 가문의 양반으로 최양업과 친척으로 알려졌다. 누나는 동정녀로 살았고, 큰형과 둘째 형 최형(최치장이라고도 불림)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했다. 그는 1836년 모방 신부로부터 신학생 후보로 선발됐다. 신학생 서약서에 그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최양업, 김대건과 동년배로 생일이 가장 빠르거나 최소한 한 해 먼저 태어났을 것으로 짐작된다.(가톨릭평화신문 제1614호 2021년 5월 23일 자 ‘신 김대건 최양업전’ 6회 참조)최방제는 세 명의 조선인 신학생 가운데 가장 신심이 깊고, 모범적이었고, 똑똑했다. 칼르리 신부가 기록한 최방제에 관한 평과 그의 임종 모습을 간략히 정리했다. 교장 칼르리 신부가 기록한 신학생 최방제와 그의 임종 “세 명 중에서 믿음이 더 강했고, 신심이 더 깊었고, 앞으로 이 어린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촉망되던 학생이 꽃다운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심판 앞에서 깜짝 놀라고 아연실색해졌습니다.…그는 자기 본분에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도 주위 사람들을 감탄시켜 마지않았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나의 수업을 받는 동안 그는 늘 완전한 순종을 나타냈습니다. 그의 효심은 모든 불편과 속박을 초월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라틴어 공부에서 보인 진전은 만족스러웠습니다. 식사 동안 그는 성경을 알아듣게 낭독했습니다. 이렇게 벌써 우리가 그에게 가장 큰 기대를 걸게 되었을 때, 지난 달(1837년 10월)경에 위열병에 걸렸습니다. 그 발작이 처음에는 약하고 눈에 띄지 않았으나 갑자기 그 증상이 악화됐습니다. 갑작스러운 기력의 쇠약과 극도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병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오히려 그는 흔히 있는 것처럼 임종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서 마지막 성사를 받지 못하지나 않을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으로 위험이 다가오자 교회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리고 성사를 아주 열심히 받았습니다. 예절이 끝난 후 나는 눈물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하비에르는 나의 손을 잡고 ‘Gratias Patri’(감사합니다. 신부님)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는 십자고상에 입을 갖다 대고 ‘착한 예수! 착한 천주!’를 열심히 되풀이했습니다. 병세의 악화로 불안해진 우리는 그를 살려 주시도록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조선 땅의 이 첫 결실은 하늘나라를 위해 성숙되어 있었습니다. 11월 26일에서 27일 밤중에 그의 병상 곁에서 바친 밤기도와 아침기도가 끝나자 나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숨결이 점점 곤란해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즉시 다른 두 학생과 함께 임종 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마지막 사죄경을 하고 전대사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이어 우리의 성스러운 젊은이는 그의 하느님 곁으로 가기 위해 조용히 숨을 거두었습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비탄에 잠긴 조선 선교지가 그의 첫 주교의 입국을 고대하고 있을 때 조선 국경에서 선종했습니다. 성직에 예정되었던 이 첫 조선인은 8개월간의 계속된 위험을 극복하고 오래지 않아 그의 조국의 사도가 되기 위해 그의 생애를 빠르게 진행시키고 있을 때 돌연 사망했습니다. 하느님의 이 전능하신 뜻의 안배를 찬미합시다. 우리 인간의 생각대로 조선 선교지를 번영시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모든 것을 우리에게서 빼앗았고, 당신의 전적인 개입을 위해 성경 말씀대로 ‘하느님 홀로 이 모든 일을 하셨다’고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분의 영광이 더욱 드러나기를 기대합니다.”(칼르리 신부가 파리외방전교회 신학교 교장 뒤브아 신부에게 보낸 서한 중에서, 한국교회사연구소 「성 김대건 신부의 활동과 업적」 81~83쪽, 청주교구 「최양업 신부의 전기 자료집 2집 스승과 동료 성직자들의 서한」 61~67쪽 참조)최방제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이제 최방제의 죽음에 관해 하나씩 풀어보자. 먼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이다. 칼르리 신부는 앞의 글에서 최방제가 ‘fievre gastrique’로 숨졌다고 했다. 이를 한국교회사연구소가 펴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에는 ‘열병’으로, 「성 김대건 신부 순교 150주년 기념 전기 자료집 제2집」에는 ‘위열병’으로, 또 서울대교구 주보 2021년 2월 21일 자 「김대건 신부 특집-유학생활 적응하기」에는 ‘말라리아 풍토병’로 표현했다. 사전적 의미로 ‘열병’과 ‘위열병’, ‘풍토병’은 전혀 다르다. ‘위열병’은 한의학 용어이다. 한의학에선 위열병의 주요 원인이 ‘스트레스’와 ‘기름지고 매운 음식’이라고 한다. 김대건이 마카오에서 복통과 두통, 요통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렸듯이 최방제 역시 과도한 스트레스로 고통받았다. 스트레스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결정적 요인인지는 좀더 세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충분히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신심과 용기, 또 의지할 동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열병 또는 풍토병이 그의 죽음과 개연성이 높다. 한국교회사연구소장 조한건 신부는 “‘풍토병’이 최방제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증명하듯 마카오에 거주하던 많은 서양인이 풍토병에 시달리고 사망했다. 마카오에 유행하던 풍토병은 ‘말라리아’이다. 최방제는 10월 중순 말라리아에 걸려 한 달여 고생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가족은 그의 죽음을 알고 있었을까 두 번째, 최방제의 가족과 조선 선교사들이 그의 죽음을 알았느냐이다. 파리외방전교회 마카오 극동대표부장 르그레즈와 신부는 앵베르 주교에게 “조선 학생들과 또 그중 한 명이 죽은 이야기를 알렸다”고 했다.(「전교회지」vol. 322 참조) 그러나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와 모방ㆍ샤스탕 신부의 편지에는 최방제의 죽음에 관해 애통해 하는 내용이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앵베르 주교는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838년 12월 3일에서 “세 명의 학생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카오에 데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들을 페낭 신학교로 보내셨습니까?”라고 묻고 있다. 최방제가 죽은 지 1년이 지났는데도 앵베르 주교가 이렇게 질문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선교사들과 최방제의 가족은 그의 죽음을 그때까지 알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최방제의 죽음을 처음으로 확인한 조선 교회 신자는 1839년 1월 밀사로 북경에 도착한 유진길(아우구스티노)과 조신철(가롤로)이다. 이들은 조선에 귀국한 후 선교사들과 최방제 가족에게 그의 죽음을 알렸다. 앵베르 주교는 1839년 3월 30일 자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는 12월에 2~3명의 신학생을 신부님께 새로 보내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어느 정도로 세련되었으리라고 생각되는 선배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선배(김대건, 최양업- 필자 주)를 이미 (다른 곳으로) 보내셨다는 소식을 받게 되면, 올해에 다른 학생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며 최방제의 죽음을 알고 있음을 암시하는 글을 적었다. 하지만 그는 최방제의 죽음을 애통해 하거나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등 목자로서의 표현을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묘지는 어디 있을까 세 번째, 최방제는 어디에 묻혔느냐이다. 최방제 무덤에 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까지 연구된 극동대표부 보고서나 조선 선교사, 김대건ㆍ최양업 신부의 글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마카오에 가면 성지 순례 안내자들이 성 미카엘 공동묘지 무명인 묘를 가리켜 최방제가 묻힌 곳이라고 추정하며 순례자들에게 참배하게 하고 있다. 역사를 왜곡하는 허황한 일이다. 성 미카엘 공동묘지는 최방제가 죽은 지 17년 뒤인 1854년에 조성된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묘원이다. 또 파리외방전교회 인근 개신교도들을 위한 묘지가 있지만 최방제가 그곳에 묻혔을 가능성은 당시 시대상으로는 거의 없다. 최양업에 이어 두 번째로 신학생 후보로 선발됐지만, 맏형으로 조선 신학생을 대표했던 최방제가 어떻게 사망했고, 또 어디에 묻혔는지를 밝히는 것은 한국 교회 사제 양성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언젠가, 또 누군가 이 작업을 시작해 주길 기대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1.07.13

예수님이 비추는 찬란한 황금빛이 모두에게[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47) 바치챠의 ‘예수 이름의 승리’ 바치챠, ‘예수 이름의 승리’(1685년), 예수 성당 내 중앙 본당 천장, 이탈리아 로마. 트렌토 공의회는 여러 면에서 교회 생활의 변화를 가져다줬다. 공의회 이후에 선출된 교황들의 개혁 의지도 교회가 쇄신하고 변화된 생활을 하는 데 동력이 됐다. 우선 성 비오 5세(재위 1566~1572)는 1569년 잘츠부르크 지역 시노드 소집을 독려했고, 「로마 교리서」를 출판했으며 「성무일도서」를 통합하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까지 사용한 「미사 경본」을 개정했다. 그레고리오 13세(재위 1572-~1585)는 로마를 비롯한 교구 신학교 설립을 장려했고, 교황 대사에게 더욱 교회다운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개혁의 수단이 되게 했다. 특히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예수회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예수회 인재들의 지원을 받아 교회 개혁의 동력으로 삼았다. 식스토 5세(재위 1585~1590)는 1908년까지 유효했던 보편 교회와 교황청의 중앙 행정을 개혁하고, 주교들에게 앗리미나(ad limina, 사도좌 방문)를 의무화했다. 그레고리오 13세 교황과 예수회 오늘 주제와 연관해 그레고리오 13세 교황과 예수회 관계에 주목해 보기로 하겠다. 그레고리오 13세는 1576년 루뱅대학교 교수로 있던 예수회 로베르토 벨라르미노(Roberto Bellarmino, 1542~1621)를 로마로 불러 콜레지움 로마눔 부설 교황청 학원재단 변증학회 회장직을 맡겼고, 2년 후(1578년)에는 예수회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를 초대해 달력 개혁을 준비했다. 독일인 수학자며 콜레지움 로마눔 교수로 있던 예수회 크리스토퍼 클라비우스(Christopher Clavius, 1538~1612)와 시칠리아 출신의 의사며 수학자, 천문학자였던 주세페 스칼라(Giuseppe Scala, 1556~1585)의 연구를 토대로, 1582년 가톨릭 국가들의 제후와 대학교수들의 동의를 얻어 달력 개혁을 단행하는 교서 「중대한 일 가운데(Inter Gravissimas)」를 발표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태양력인 ‘그레고리오 달력’이다. 그 시기에 그레고리오 13세의 정책도 예수회도 크게 진일보했다. 교황은 콜레지움 로마눔에 보조금을 지원해 예수회 교육기관을 증축, 교육 정책을 체계적으로 펴나가도록 했고, 예수회는 인근에 별도의 땅을 확보해 대학교를 완성했다. 1584년 10월 28일에 축복식을 가진 이 학교를 ‘그레고리아노 최고 학부이자 그레고리아노 대학교(Archiginnasio Gregoriano e Universit Gregoriana)’라고 했다. 그레고리오 교황에게 헌정한 오늘날의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이다. 이런 소식은 즉시 선교지로 전해졌고, 열악한 환경에서 힘겹게 선교 활동에 임하는 선교사들을 고무하는 원동력이 됐다. 동시에 선교지에서도 수도원과 함께 교육 사도직을 위한 학교가 지어졌다. 이는 로마 교회가 지역 교회에 심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예수회에 관해, 앞서 바치챠의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죽음’ 편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1540년 종교 개혁의 불길이 한창 타오르던 시기에 설립됐다. 종교 개혁은 가톨릭교회의 성인 공경과 각종 이미지를 통한 신심 활동에 제동을 걸었고, 예수회는 설립과 동시에 예술과 영성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과 함께 말씀과 이미지 간의 대화와 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했다. 바오로 3세 교황도 예수회 설립을 승인하는 교서에서 “영적으로 무장되고, 교육 사도직과 문화 방면에 이르는 깊은 인식을 두루 갖춘” 교회 내 단체가 필요하다고 천명했다. ‘문화 방면에 이르는 깊은 인식’을 위해 예수회는 예술에 관한 원칙과 토대를 마련하고, 트렌토 공의회를 통해 단행한 전례 개혁과도 보조를 맞췄다. 공의회 개혁에 담긴 규범에 따라, 성당 건축과 장식에 기술적이고 예술적인 이정표를 제시했다. 예술과 학문, 교육 발달 이끌어 예수회는 교육기관만 세운 것이 아니라,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기준도 마련했다. 오늘날 거의 전 세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의무 교육 과정에 있는 교육 프로그램은 16~17세기 예수회 교육지침서(Ratio Sudiorum)에서 마련한 것이다. 중세기 인문학 중심의 커리큘럼에 인문과학을 추가한 것은 예수회 크리스토퍼 클라비우스의 업적이다. 예컨대, 예수회 교육 과정에서 수학 지식은 신학 과정에 진입하기 전에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목이었다. 하느님께서 창조한 자연 질서는 수학적인 법칙에 따라 기획되고 만들어졌기에,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을 탐구하는 것은 하느님의 창조 업적의 위대함을 탐구하는 종교적인 행위로 보았다. 수학은 철학, 음악과도 연결돼 있어, 다른 순수 학문이나 응용 학문에 기초가 됐다. 이것을 입증하는 것이 ‘예술’이었다. 따라서 예수회 전통에서 인문학을 토대로 수학, 물리학, 천문학 등의 인문과학을 습득한 탄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과 건축, 음악, 미술 등 예술 분야에 자질 있는 회원을 양성하고, 그들을 선교 현장에 투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로마의 예수회 총원 콜레지움 로마눔 옥상에는 천체 관측소가 있었고, 퀴리날레에 있던 성 안드레아 수련소에는 예술 분야의 선교사들을 양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별도로 있었다. 당시 예수회 화가들의 작품도 많았다. 그 흔적은 오늘날 바티칸 박물관 피나코테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시실 한 공간이 거의 모두 예수회 화가들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1773년 예수회가 해산될 때, 바티칸은 예수회 총원을 압수했고, 그때 가지고 온 예술 작품들이다. 예수회 3대 보르자 총장은 설교할 때, 이미지를 폭넓게 활용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그것을 음식에 맛을 더하기 위해 사용하는 ‘향신료’에 비유했다. 피렌체 출신으로 바르톨로메오 암만나티의 제자 조반니 바티스타 피암메리(Giovanni Battista Fiammeri, 1530~1606)와 아브루쪼 지방 아퀼라 출신의 주세페 발레리아노(Giuseppe Valeriano, 1526~1596)는 예수회에 들어와 로마의 예수 성당 장식에 투입됐고, 베르나르도 비티(Bernardo Bitti, 1548~1610)는 선교사로 선발돼 페루로 파견됐다. 말씀 텍스트에 삽화를 넣은 시리즈물도 나왔다. 예로니모 나달(Jernimo Nadal, 1507~1580)의 「복음 이야기 도해집」이 대표적인데, 이것은 중세기 문자를 모르는 백성에게 이미지로 성경 내용을 가르치던, ‘가난한 이들의 성경(Biblia pauperum)’의 새로운 버전이었다. 예수회 벨라르미노 추기경은 「그리스도교 신앙 논쟁에 관한 토론」(15811)과 「거룩하고 속된 이미지에 관해서」(1594년)에서 프로테스탄트인들이 가톨릭 신자들을 겨냥해 우상 숭배라고 비난한 것에 맞서 이미지를 통한 신심을 더욱 강하게 옹호했다. 그 시기에 추기경은 ‘천사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고, 그의 가르침이 널리 보급된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유럽의 바로크 양식의 성당들에서 천사들이 넘쳐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예수회 설교자 올리바(Gian Paolo Oliva)는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와 절친했다. 그는 제노바에 있던 바치챠(Giovan Battista Gaulli, Baciccia로 알려짐, 1639~1709)와 예수회원 포쪼(Andrea Pozzo)와 스페인 출신의 화가 보르고뇨네(Borgobnone)를 로마로 불러 예수회 성당들을 바로크 양식으로 바꾸고, 장식을 의뢰했다. 이 시기에 포쪼가 로마의 성 이냐시오 성당에서 ‘예수회 선교 활동의 은유’를 그렸고, 오늘 소개하는 바치챠가 예수 성당 천장에 ‘예수 이름의 승리’를 그렸다. 푸생, 틴토레토, 다 바싸노, 베로네세, 솔리메나, 루카 조르다노, 카를로 마라타, 구이도 레니,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 무릴로 등 바로크 시대를 주름잡던 당시 예술가들은 예수회와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베르니니의 지지 얻어 예수 성당 장식 환상적인 이 작품이 교회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종교 개혁의 칼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교회가 문화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와 후원을 아끼지 않은 흔적은 이 작품 하나로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레스코화를 그린 화가 바치챠에 대해서는 지난번 ‘성 프란체스코 하비에르의 죽음’<1612호 5월 9일 자 참조>에서 간단히 이야기했기 때문에, 여기선 작품에 관련한 것만 언급하기로 하겠다. 제노바 출신의 화가 바치챠가 로마에 온 것은 1657년이다. 그는 로마에 오자마자 베르니니의 눈에 띄어 그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 베르니니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거장의 가장 충실한 협력자 중 한 사람이 됐다. 이 작품은 베르니니가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제단 뒤쪽 앱스에 만든 ‘성 베드로 좌’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했다. 그는 예수 성당에서 돔과 중앙 천장을 장식하면서, 베르니니가 설계한 성 베드로 좌에 버금가는 회화와 조각의 정수를 남기고 싶었다. 베르니니도 적극적으로 권했고, 나중에 힘을 보태주기도 했다. 그 결과 그가 바란 대로 이 작품은 그에게 불후의 명작이 됐다. 그림 속으로작품의 주제는 ‘예수 이름의 승리’다. 바로크 양식을 완전히 통합한 17세기 원근법적 환상주의 기법으로 배경을 장식했다. 바로크의 최고 정수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화가는 가장 높은 데서 황금색의 빛이 발산되는 눈부신 자리에 그리스도의 모노그램, IHS(Iesus Hominum Salvator, 인류의 구세주 예수)를 배치했다. 예수회의 문장이다. 거기에서 발산되는 빛은 점차 그 아래 있는 모든 인물에게로 퍼진다. 가운데 교회, 성인과 동방 박사들이 있고, 아래에 죄와 이단과 허영의 우화들까지 밝히고 있다. 주변에는 그림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숨이 막힌다. 바치챠, ‘예수 이름의 승리’(1685년), 예수 성당 내 중앙 본당 천장, 이탈리아 로마. 김혜경 (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cpbc2021.07.13

우리 곁에 하느님 계심을 기억하며 성호 긋기[미카엘의 순례일기] (30)십자성호 동방 가톨릭교회 신자들이 갈릴래아 호숫가에 자리한 베드로 수위권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작은 공동체로 시작되었지만, 로마 제국의 발전과 더불어 점차 거대한 종교로 커 나갔습니다. 그에 따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많은 이들이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환경과 언어적 차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과 신원에 관한 문제를 점점 다르게 해석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하나였던 그리스도인들을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성공회 등으로 갈라지게 하였습니다.성지를 순례하다 보면 다양한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됩니다. 이스라엘 순례에서 가장 많이 만나게 되는 순례단은 바로 정교회 신자들로 이루어진 그룹입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나지르인(민수기 6장 1-21절과 같이 자발적 서원을 한 사람을 일컫는 말. 히브리어 나지르에서 나온 말로 ‘거룩하게 되는’, ‘분리된’이라는 의미)처럼 머리카락과 수염을 자르지 않고 검은 모자에 낯선 형태의 수단을 걸친 사제와 그를 둘러싼 머리에 베일을 두른 자매들의 무리 때문에 정교회 순례단은 쉽게 눈에 띕니다. 우리와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는 성호와 이콘에 입 맞추는 친구는 생경하게만 느껴집니다. 사실 가톨릭과 정교회는 원래 하나였으니, 당연하게 성호를 긋는 방향도 같았습니다. 그랬던 전례 동작이 언제부터 달라졌고, 왜 달라졌으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성호(聖號, ‘거룩한 표지’라는 뜻으로 十字聖號의 준말이며,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십자가 표지 signum Crucis’라 부름)는 특히 초 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십자가 신앙에서 비롯된 아주 오래된 우리의 신앙 행위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서간에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강조하는 구절을 보면 십자가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갈라 6,14 참조) “여행을 할 때, 집 안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신발을 신을 때, 목욕할 때, 음식을 먹을 때, 촛불을 켤 때, 잠들 때, 앉아 있을 때, 그때마다 그리스도인은 이마에 십자성호를 그었다”는 테르툴리아누스 교부(2세기 중엽 카르타고에서 활동)의 증언을 통해서도 성호가 얼마나 일상화된 신앙생활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호가 중요한 부분이 되면서 전례 안에서도 그 동작이 정착되었고, 오늘날 우리가 성호를 긋는 형태도 고정되었습니다. 1198년에서 1216년 사이에 교황이셨던 인노첸시오 3세의 가르침은 성호 동작의 형태와 의미를 자세히 전합니다.“성호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드러내는 표징이기 때문에 세 손가락을 사용합니다. 세 손가락을 이용해서 먼저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지상으로 강림하셨고, 유다인(오른쪽)으로부터 이방 민족(왼쪽)에게까지 복음을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한편 어떤 이들은 성호를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긋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왼쪽)에서 생명(오른쪽)으로 건너오셨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역시 비참한 존재(왼쪽)에서 영광스러운 존재(오른쪽)로 탈바꿈한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12세기 전까지는 지금의 정교회 신자들이 성호를 긋는 방향이 전통적인 방법이었습니다. 방향을 반대로 긋는 동작은 베네딕도 수도회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점차 가톨릭에서는 성호의 방향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정하고, 또한 세 손가락만을 이용한 동작에서 손 전체를 사용하는 쪽으로 바뀌어갔습니다.마태오 복음 25장 31-46절에 나타난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교회의 전통 안에서 오른쪽은 언제나 영광스러운 방향이며 천국을 뜻합니다. 왼쪽은 그 반대의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호를 위에서 아래로 긋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모님의 태중을 통해 육화하셨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는 것은 “최후의 심판 때에 저희를 영광스러운 자리에 두시고, 어둡고 버림받은 곳에 두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금 가톨릭에서 긋는 방향대로라면 어떤 의미일까요?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즉, “주님께서 저승에 가시어 부활하셨듯이, 우리를 어둡고 버림받는 곳에 두지 마시고, 영광스러운 천국에 들게 해주시기를” 청하는 것이죠. 정교회와 가톨릭에서 행하는 성호가 사실은 같은 의미입니다.가톨릭 신자임을 알아볼 수 있는 가장 큰 표징은 성호일 것입니다. 작고 사소하지만 또한 크고 중요한 전례 동작인 성호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로 나가는 순례자인 우리 자신을 기억하며 성호를 긋는 순간마다 우리 곁에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새롭게 기억할 것을 다짐해봅니다. 김원창(미카엘, 가톨릭 성지순례 전문가) 평화신문2021.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