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정해진 문제, 그리고 답(오창익, 루카, 인권연대 사무국장)](//cpbc.co.kr/CMS/newspaper/2022/08/rc/830692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정해진 문제, 그리고 답(오창익, 루카, 인권연대 사무국장) 가톨릭평화방송에서 ‘사제의 눈’이란 고정 코너를 맡고 있는 정수용 신부는 11월 17일이 무슨 날이냐고 물었다. 누군가의 영명축일일까. 도통 알 수 없었다. 답은 수능일이었다. 수험생 가족이 있으면 또 모르지만, 쉽지 않은 문제였다. 질문은 이어졌다. 시험문제도 알고 있고, 준비할 시간도 충분하다면 그 시험은 쉽게 통과할 수 있을까. 문제와 답을 미리 안다면 만점을 받는 건 쉬운 일이다. 정 신부는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험 문제가 만천하에 공개된 것이 있었단다. 그것도 2000년이나 되었단다. 마태오복음 25장의 ‘최후의 심판’이 바로 우리에게 문제와 답을 미리 알려준 거였다. 그렇다. 우리에겐 이미 정해진 문제와 답이 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또한 ‘가장 작은 이’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바로 주님께 하지 않은 것이다. 성경은 늘 이렇다. 문제와 답은 정해져 있다. 정해진 답을 찾아 답안지에 쓰면 된다. 이를 보통 실천이라고 부를 게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헐벗은 이에게 입을 것을 주고, 병들거나 감옥에 갇힌 사람을 돌보면 된다. 필요한 것을 내어주고 없는 사람들을 챙겨주면 된다. 교회는 정해진 문제와 답을 부지런히 풀면서, 교회 안팎의 사람들에게도 함께 노력하자고 권해야 한다. 이게 교회의 일차적인 사명이다. 수원 세 모녀 사건만 해도 그렇다. 이 참혹한 죽음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라고 고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회복지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실천을 강구해야 한다. 교구와 본당 차원에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지역에 있는지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반찬이나 간식거리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찾아뵙는 등 나누며 살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선교가 아니라 돌봄을 위해 나누고 살피는 거다. 교회가 복지사업을 하는 경우는 많지만, 대개 정부의 위탁을 받아 시설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노고도 고맙지만, 이미 시스템 안에 들어온 사람들을 챙기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도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다. 인건비를 포함한 예산 지원도 받을 수 있으니 더욱 그렇다. 대체로 좋은 일이라고 평가받을만한 사업도 교회가 해야 할 일인지를 살피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늘진 곳을 살피는 안목은 아무래도 우리 내부를 살피는 데서 키워질 수 있을 거다.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들,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어떻게 살필지 고민하고 이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단박에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방향은 분명히 하고 구체적인 의지를 담은 실행계획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교회의 말이 힘을 가지기 위해서라도, 교회가 운영하는 각종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좋은 노동조건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새로운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레오 13세 교황의 노동헌장, 1891년에 나왔다. 131년. 이 정도 세월이면 노동문제에 대한 답은 가톨릭교회에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회 내부에 모범적인 사례들이 축적되어 있어야 한다. 아예 노동조합조차 없는 사업장이 너무 많다든지, 임금피크제 같은 반노동적이며 반교회적인 임금제도가 어느 틈엔가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남들 보기에는 물론이고, 우리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문제와 답은 다 나와 있다. 문제는 실천이다. 평화신문2022.08.31

책꽂이예레미야서 1-25장(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30-1)김명숙 지음 / 바오로딸 예레미야서 입문과 예레미야서 본문 1-25장을 구절마다 주해했다. 입문에서는 예레미야서의 저자와 시대 배경, 신학 배경을 비롯해 문학ㆍ구조적 특징을 짚고, 성경 전승들과의 관계와 중심 메시지를 핵심적으로 소개했다. 각 구절의 주해는 난해한 낱말과 대목을 쉽게 풀어 설명했으며, 일상에서 말씀을 살아내도록 이끈다. 「에제키엘서」로 제23회 한국가톨릭학술상에서 연구상을 수상한 김명숙(소피아, 한님성서연구소) 박사의 두 번째 책.메르씨 빠빠! 정상필 지음 / 오엘북스프랑스에서 네 아이를 키우고 있는 한국인 아빠 정상필(루수)씨가 육아에 전념한 이야기. 암탉 아빠는 프랑스에서 아이들 육아에 매우 적극적인 아버지를 일컫는 말. (반대로 ‘암탉 엄마’는 암탉의 특성에 빗대어 자녀를 과보호하는 엄마를 의미한다.) 일간지 기자이자 번역가, 우버 기사로 일하다 올해 아예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선 한국인 아빠가 보여주는 프랑스식 육아를 소개했다. 프랑스식 육아의 핵심에는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전제가 깔렸다. 아이의 행복보다 부모의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아이는 끊임없는 좌절을 통해 절제가 몸에 배게 한다. 암탉 아빠는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기보다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간다는 것을 알아간다. 성경 본문 줌인(구세사 편 Ⅱ)김혜윤 수녀 / 생활성서 성경 공부를 해본 이들에게 성경 분문의 참맛을 알게 해주는 책. 성경에 관한 지나친 학문적, 이론적 접근을 지양하고 번역된 성경 본문만으로 그 의미를 파악하도록 돕는다. 창세기부터 왕정 시대를 연 사무엘의 등장을 다룬 「구세사편 Ⅰ」에 이어, 사무엘의 몰락과 다윗 왕정의 시작부터 다니엘서까지 다뤘다. 저자 김혜윤(베아트릭스,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수녀는 로마 교황청립 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 우르바노 대학교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생활성서사의 온라인 클래스 ‘가톨릭온(www.catholicon.co.kr)’ 강의에서 교재로 활용하고 있다. 기쁨, 영혼의 빛안셀름 그륀 신부 지음조규홍 옮김 / 가톨릭출판사삶의 무게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책. 2013년에 출간된 「숨어 있는 행복」, 「숨어 있는 기쁨」을 합본한 개정판이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면, 기쁨은 계속될 수 있다”면서 “오직 하느님 한 분만이 변함없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기쁨을 선사하실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쁨과 행복은 평범한 일상 곳곳에 묻힌 일상의 황금을 찾도록 이끌며, 자신 안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여정으로 초대한다. 푸르른 자연 풍경, 아름다운 음악, 맛있는 음식,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미소 속에서 삶의 기쁨을 찾을 수 있다면 인간은 더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지혜 기자 cpbc2021.09.15
![[안희곤의 불편한 이야기] 착한 사마리아인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cpbc.co.kr/CMS/newspaper/2022/09/rc/831493_1.1_titleImage_1.jpg)
[안희곤의 불편한 이야기] 착한 사마리아인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안희곤 하상 바오로(사월의책 대표) 신자가 아니더라도 루카 복음서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한 번쯤 들어보지 못한 이는 없을 것이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율법 교사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의 예로 든 것이 강도당한 이를 구한 사마리아인이다. 타인의 위기 앞에서 인간이 취할 태도를 가르치는 이야기는 성경 말고도 많다. 맹자는 우물에 빠진 아이가 보이면 누구든 달려가 아이를 구할 거라 말하면서, 이러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바로 인(仁)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실천윤리학자로 이름 높은 피터 싱어는 아예 자신의 책 제목을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로 짓고, 세상의 가난을 구제하기 위한 자선의 방법과 그에 연관된 딜레마들을 다루었다.나의 자선이 혹시 자기만족이라는 이기적 동기를 가진 것은 아닌가. 나 개인의 행위라는 게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닐까. 나아가 나의 자선과 기부가 혹시 이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더 오래 지속시키는 데 봉사하는 건 아닐까. “자본주의가 파탄에 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막대한 액수의 기부를 한다는 박애자본주의자 빌 게이츠나 워런 버핏이 차라리 솔직한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20대 젊은 시절부터 풀지 못한 딜레마가 이것이었다. 이 잘못된 세상을 지속시킬 자선을 해야 하는가, 더 근본적인 개혁에 힘을 쏟아야 하는가. 사회운동가도 정치인도 아닌 사람이 이런 고민을 한다는 게 우습지만, 말 그대로 측은지심을 가진 선량한 사마리아인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보았을 주제다. 답은 쉽다.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다. 우물에 빠진 아이는 바로 구해야 하고, 그와 동시에 아이들 노는 곳에서 우물을 치우려고 노력해야 한다.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한 답으로 풀기가 어렵다. 평소 장애인에게 공감과 연민을 느끼던 사람도 장애인들이 지하철 시위에 나서자 ‘시민의 발목을 잡는 불법적 방식’은 안 된다고 그들을 비난한다. 우리의 연민과 자선은 혹시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 한에서만 발휘되는 것 아닐까?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은 연민과 돌봄의 대상이지만, 우리의 책임을 묻고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법적 대상이 된다. 반지하 침수 사망자의 집을 들여다보던 대통령의 마음에 연민이 없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장애인들처럼 들고 일어서는 순간, 그들은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들의 연민은 언제든 짜증으로 변할 수 있고, 자비로운 통치자는 언제든 공안의 책임자로 변신할 수 있는 것이다.돌봄과 시혜의 본성이 원래 그러하다. 중세 교회의 주된 기능은 자선 시스템을 통해 빈민과 장애인을 구제하는 것이었다. 연민과 동정의 자애로운 성모는 ‘알마 마테르’(Alma Mater)라는 어머니 교회의 이미지로 이전하여 부자와 교회는 가난한 자를 도움으로써 구원을 얻고 가난한 자는 그로써 생존을 이어간다는 이념이 정착되었다. 그 이념은 자본주의 초기에 교화소나 정신병원 등에 이어져서 거지와 범죄자를 교화시켜 다시 노동하는 자로 만든다는 논리로 바뀌었다. 미셸 푸코의 말대로 ‘감시와 처벌’이 ‘관리와 돌봄’으로 얼굴만 바꾼 것이다.혹시 우리의 교회는 여전히 중세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본다. 우리는 수많은 돌봄 시설과 자선으로 교회가 맡은 사회적 책무를 다하려 한다. 그러나 복지는 아무리 강화되어도 불평등을 해소함만 같지 않다. 이것은 기후 문제에도 그대로 대입할 수 있다. 우리는 쓰레기가 될 상품을 양산하는 기업과 막대한 화석연료를 쓰는 자본들은 그대로 둔 채, 매일같이 분리 배출할 재활용품을 가려내는 사람들 아닐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근본적으로는, 강도를 잡아야 한다. cpbc2022.09.14

성경, 성령의 감도로 기록된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이것만 알면 나도 성경 박사 성경은 성령의 감도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으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했다. 이콘은 6세기에 제작해 현존하는 가장 오랜된 그리스도 성화로 이집트 시나이 산 가타리나 수도원에 보관돼 있다. 한국 교회는 1985년부터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고 신자들에게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올해는 11월 22일부터 28일까지다. 교회가 성서 주간을 별도로 정해 신자들에게 성경을 가까이하기를 권하는 것은 성경이 신앙생활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가톨릭평화신문은 독자들에게 성경에 친숙하고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성서 주간 특집을 마련했다. ‘이것만 알면 나도 성경 박사’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성경에 관해 가톨릭 신자들이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을 모아 소개한다. 성경은 어떤 책인가성경은 성령의 감도로 하느님 말씀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의 구원 계획을 역사 안에서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드러내시고 알려주신 계시의 원천이다. 아울러 성경은 인간이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계시를 제대로 전하고 이해하며 그것을 믿고 따르는 신앙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경은 ‘하느님의 말씀’이며 ‘살아계신 말씀을 받아들이는 교회의 책’이라고 한다. 성경이 계시하는 핵심 주제어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마태 16,16 참조)이다. 그리고 성경이 쓰인 목적도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요한 20,31)이다. 이처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생명과 은총, 진리 등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고,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으며,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요한 1장 참조) 성경의 저자와 해석자는 누구인가성경의 저자는 하느님이시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계시하실 때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성경의 인간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시어 그들 안에서 그들을 통해 활동하시어 당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또 원하시는 것만을 그들이 참 저자로서 기록해 전달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그들의 기록이 구원의 진리를 오류 없이 가르친다는 사실을 보증하신다. 따라서 영감 받은 저자들 또는 성경 저자들이 주장하는 모든 것은 성령께서 주장하신 것으로 여겨야 한다.(「계시 헌장」 11항 참조) 교회는 이런 이유로 언제나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고 있다. 성경의 해석자는 성령이시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 하느님의 계시를 올바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성경에 영감을 주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한다. 성령에게서 오는 것은 오로지 성령의 작용을 통해서만 완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을 해석할 때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계시하시고자 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핵심은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을 보존하고 전달하며 해석하는 것을 교회에 맡기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 말씀을 권위 있게 해석은 교회의 판단에 속한다. 곧 교회의 교도권인 교황과 그와 일치하는 주교들에게만 그 책무가 주어져 있다. 성경은 몇 권인가성경은 단 하나의 책이다. 이 책은 바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성경 전체가 그분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새로운 계약(신약)과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옛 계약(구약)의 내용으로 구분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신앙의 밑거름인 구약을 친히 완성하셨고, 교회는 유다교의 거룩한 구약의 책들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데 필요한 출발점을 찾았기에 ‘하느님의 구원’이라는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신ㆍ구약 성경을 읽어야 한다.성경(Bible)은 ‘책들’이란 뜻의 헬라어 ‘타 비블리아’(τα Βιβλια)에서 왔다. 이 단어는 오늘날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약 30㎞ 떨어진 고대 페니키아인들의 항구 도시 비블로스에서 유래된 말이다. 비블로스는 파피루스 수출로 유명해졌기에 책하면 곧 이 도시를 연상했다고 한다. 구약(Vetus Testamentum)ㆍ신약(Novum Testamentum)을 표기하는 라틴말 ‘테스타멘툼’(Testamentum)은 히브리말 ‘베리트’(berit)에서 유래한 말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하느님과 맺은 ‘구원의 계약’을 ‘베리트’라고 했다. 이 말이 헬라어 ‘디아테케’(διαθηκη)로 번역해 이스라엘의 옛 계약과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계약을 표현했다.(마태 20,28; 루카 22,20; 히브 9,16-17; 1코린 11,25)가톨릭 성경 정경교회는 사도 전승에 따라 어떤 문서들이 성경 목록에 포함되어야 할지를 판단했다. 그래서 바오로 3세 교황은 1546년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4세기 때부터 대중 성경으로 사용해온 「불가타」를 성경 정경(正經)으로 반포했다. 가톨릭교회의 성경 정경은 구약 46권, 신약 27권 등 총 73권으로 이뤄져 있다. 구약 성경은 구조에 따라 △모세 오경(율법서-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역사서 16권(여호수아기, 판관기, 룻기, 사무엘기 상ㆍ하권, 열왕기 상ㆍ하권, 역대기 상ㆍ하권, 에즈라기, 느헤미야기,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 마카베오기 상ㆍ하권) △시서와 지혜서 7권(욥기, 시편, 잠언, 코헬렛, 아가, 지혜서, 집회서) △예언서 18권(이사야서, 예레미아서, 애가, 바룩서, 에제키엘서, 다니엘서, 호세아서, 요엘서, 아모스서, 오바드야서, 요나서, 미카서, 나훔서, 하바쿡서, 스바니야서, 하까이서, 즈카르야서, 말라키서)로 분류된다. 신약 성경은 △네 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사도행전 △서간 21권(바오로 서간 14권- 로마서, 코린토서, 갈라티아서,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 테살로니카 1ㆍ2서, 티모테오 1ㆍ2서, 티토서, 필레몬서, 히브리서. 가톨릭 서간 7권- 야고보서, 베드로 1ㆍ2서, 요한 1ㆍ2ㆍ3서, 유다서) △요한 묵시록으로 구성돼 있다. 신약 성경은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등 모든 그리스도교가 똑같이 27권을 정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구약 성경의 정경 수는 교단에 따라 다르다. 가톨릭교회는 39권의 히브리어 성경과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기 상ㆍ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등 헬라어로 쓰인 7권을 더해 총 46권을 구약 성경 정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정교회는 히브리어 성경에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만 더해 43권 구약 성경을 정경으로 쓰고 있다. 성경은 어떤 언어로 쓰여졌나 구약 성경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쓰였으나 에즈라기와 예레미야서와 다니엘서는 아람어로, 지혜서와 집회서 등 7권은 헬라어로 쓰였다. 구약 성경은 기원전 3세기부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라어로 옮겨졌다.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6명씩 뽑힌 72명의 율법학자가 72일 동안 모세 오경 번역을 마쳤다. 그리고 나머지 책들도 모두 번역을 마쳐 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 전체를 일반적으로 「70인 역본」이라 한다.신약 성경은 모두 헬라어로 쓰였다. 신약 성경 본문에도 ‘아빠’(마르 14,36), ‘탈리타쿰’(소녀야 일어나라, 마르 5,41), ‘에파타’(열려라, 마르 7,34) 등 예수님 시대 때 쓰인 아람어가 일부 기록돼 있다. 4세기 때 예로니모 성인이 헬라어 성경을 라틴말로 번역해 가톨릭교회 표준 성경인 「불가타」를 출간했다.최초의 우리말 성경은 1790년대 초 역관 출신 최창현(요한)이 펴낸 「성경직해광익」(聖經直解廣益)이다. 「성경직해광익」은 디아즈(예수회) 신부가 1636년 북경에서 펴낸 「성경직해」(聖經直解)와 마이야(예수회) 신부가 1740년 북경에서 펴낸 「성경광익」(聖經廣益)을 취합해서 우리말로 옮긴 책이다. 수록된 성경 본문은 신약 성경 네 복음서의 30% 분량이었다. 「성경직해광익」은 박해 속에서도 필사를 거쳐 신자들에게 널리 퍼졌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0.11.17

우리 삶과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생생한 성경 묵상제주 해군기지 반대활동 펼친소희숙 수녀 복음 묵상서 펴내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으로 복음 전해 그분을 향한 별의 노래소희숙 수녀 지음 / 함께꿈제주 강정에서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하던 중 기소를 당해 재판을 받았던 ‘행동하는 열혈 수녀’ 소희숙(스텔라, 서울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가 세상과 깊게 소통하고 싶어 복음 묵상서 「그분을 향한 별의 노래」를 펴냈다. 신앙을 서로 나누며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예수님께 가려는 누군가에게 발걸음을 비추는 조그만 등불이 되고 싶어 쓴 책이다.그는 성경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고, 벅찬 말씀에 잠기기도 하며, 가슴에 쏙쏙 들어오는 명언에는 밑줄을 치고 노트에 기록하면서 말씀에 흠뻑 젖어 살았던 시간들의 묵상을 기록했다. 자기 자신과 세상을 둘러싼 묵상과 성경 읽기의 결과물로 나온 책이다. 소 수녀는 역사가 흐르면서 예수께서 강조하신 ‘이웃사랑’에서 ‘이웃’은 퇴색하고, ‘사랑’에 대한 이론만 무성하게 발전했다고 꼬집는다. 그는 이웃사랑은 이웃에 방점이 찍혀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사랑인데 반해, 이웃이 빠진 사랑은 감성이 강조돼 이론적이라는 것이다. 즉, 이웃사랑은 사회정의 구현과 맞물려 있지만 사랑은 자선에 맞닿아 있다. 사랑만 강조한 결과 ‘이론과 자선’이 앞서게 됐다. 소 수녀는 명쾌하게 말한다. “정의는 예방책이요, 자선은 치료책이다. 예방이 최선의 치료책”이라고. 그는 이웃사랑이 하느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하는 기초적인 수단이지만, 이웃사랑에서 ‘사랑’만 강조하고 ‘이웃’이라는 단어가 쇠퇴하면서 공정과 정의가 뒷전으로 밀렸다. 자연스럽게 교회는 사랑과 자선에 중심축을 두는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분을 향한 별의 노래」는 총 7장으로 △‘지금여기’에 함께하셨던 예수 △예수를 보면 하느님 나라가 보인다 △예수를 만나 달라진 삶 △그분의 말씀을 곱씹으며… △하느님 나라의 표상, 교회 등으로 구성했다. 소 수녀는 성베네딕도 수녀회에 입회했다가 몸이 약해져 청원자 때 나온 어머니와 평양 관후리 주교좌본당의 사제였던 큰외삼촌 김필현 신부, 이종사촌 오빠 신부 등 신앙이 매우 깊었던 가족 이야기도 털어놨다. 강우일(전 제주교구장) 주교는 추천사에서 “복음을 읽다 보면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을 수녀님은 예리하게 들춰보며, 특유의 방법으로 묵상을 이어가는 면이 놀라움을 자아낸다”고 말했다. 원로 사목자 정양모 신부도 “소 수녀님의 글은 자신의 삶과 묵상을 곱씹은 흔적이 엿보인다”며 “글을 읽다 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에 대한 깊은 영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일독을 권한다”고 추천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소 수녀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월남하신 부모와 함께 어렸을 때부터 실향민으로 살아왔다. 70년대 엄혹한 시절, 대구가톨릭대학생연합회를 이끌며 사회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수도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서강대에서 철학, 미국 세인트루이스대학교에서 종교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영성 강의와 피정 지도를 하고 있다. 죽기 전에 고향 땅을 밟아보는 게 소망이다.이지혜 기자 문채현2021.01.26

구세주 탄생 준비하고 다시 오실 주님 기다리다대림시기 전례와 의미 대림 시기는 구세주 탄생을 준비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라며 경건하게 기도하는 시기이다. 사진은 대림 시기 동안 구세주가 얼마나 가까이 오고 계신지를 알려주는 대림초로 모든 초에 불이 밝혀지면 주님 오심이 임박했음을 드러낸다. 전례력으로 2023년 새날이 밝았다. 전례력은 ‘대림 제1주일’을 새해의 첫날로 시작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한 해를 이룬다. 전례력은 주님 부활 대축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을 시작으로 부활과 성탄 시기, 이를 준비하는 파스카 성삼일, 성주간, 사순ㆍ대림 시기 그리고 연중 시기로 구분된다. 2023년 주일과 축일 미사 독서와 복음은 ‘가해’, 연중 시기 평일 미사 독서와 복음은 ‘홀수해’ 성경을 봉독한다. 대림 시기‘대림’(待臨)은 주님께서 사람들 가운데 임하시기를 기다리는 때로 주님 성탄 대축일 전까지 4주간을 말한다. 라틴말 전례 용어로는 ‘앗벤투스’(Adventus, 찾아옴, 다가옴)라고 한다.대림은 이중 의미가 있다. ‘구세주 탄생’을 기쁨과 희망 속에서 깨어 준비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경건하게 기도하는 때이다. 그래서 교회는 대림 시기를 ‘간절하고 감미로운 희망의 시기’라고 한다. 대림은 또 ‘회개의 시기’다. 구세주 오심의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선 내ㆍ외적으로 합당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이 바로 ‘회개’이다. 그래서 교회는 사순 시기와 마찬가지로 대림 시기에도 기도와 단식, 자선을 권장하며 고해(판공)성사를 권고한다. 이에 가톨릭 신자들은 이 시기 동안 고해성사로 하느님과 화해하고, 이웃에게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며 주님께서 곧 오심을 알린다. 대림 시기 전례교회는 대림 의미를 잘 드러내기 위해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대림 제1주일~12월 16일)와 ‘주님 탄생을 기다리는 시기’(12월 17일~24일)로 나뉘어 전례를 거행한다. 대림 시기 각 주일 전례 의미는 해당 주일 복음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전례력으로 가해 대림 시기 복음은 ‘마태오 복음서’ 내용을 봉독한다. 대림 제1주일은 세상을 구원하러 오실 구세주를 깨어서 기다리라고 당부한다.(24,37-44) 대림 제2주일은 구세주 오심을 준비하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한다.(3,1-12) 대림 제3주일은 구세주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으니 기뻐하라고 일러준다.(11,2-11) 대림 제4주일은 우리가 기다려온 분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주며 그 탄생을 예고한다.(1,18-24)대림 시기 주일 미사 제1독서와 평일 미사 독서는 구원에 관한 희망이 잘 드러난 여러 예언서를 봉독한다. 또 주일 미사 제2독서는 구약의 예언들이 하느님 안에서 어떻게 완성됐는가를 보여주는 사도들의 서간을 봉독한다. 대림 제2주간 목요일부터는 요한 세례자에 관한 복음서 내용이 선포된다. 요한 세례자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구세주가 오셨음을 선포해 주님의 시대를 여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성탄 전 마지막 주간에는 마태오 복음(1장)과 루카 복음(1장)을 봉독한다.대림 시기 전례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있다. 바로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이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며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인류의 중재자이신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에 빼놓을 수 없는 분이시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는 구원받은 첫 번째 인간이며 그리스도 오심의 결정적 열매이다. 성모 마리아는 구세주를 맞기 위해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모범이시다. 그래서 대림 시기에 거행하는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구원 신비의 한 부분을 구현한 전례 의미를 보여준다.대림 미사 전례 특징대림 시기 미사 때에는 ‘대영광송’을 하지 않는다. 회개와 절제, 기다림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림 시기는 사순 시기와 달리 기쁨의 때여서 ‘알렐루야’를 노래한다. 이는 주님 탄생 때 ‘천사의 노래’(루카 2,14)가 새롭게 울려 퍼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사제는 ‘보라색’ 제의를 입는다. 보라색은 ‘회개와 보속’을 상징한다. 단 기쁨의 시기인 대림 제3주일에는 ‘장미색’ 제의를 입는다. 사제는 1년에 장미색 제의를 딱 2번 입는데, 바로 대림 제3주일과 부활이 다가오는 것을 기뻐하는 ‘사순 제4주일’ 때이다.성가도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시기’(대림 제1주일~12월 16일)와 ‘주님 탄생을 기다리는 시기’(12월 17일~24일)로 구분해 부른다. 종말을 기다리는 시기에는 재림, 심판, 영광, 그리스도 등의 단어가 포함된 성가곡을 선택해야 한다. 이 시기는 주님 탄생을 고대하는 때가 아니기에 아기 예수 탄생을 기다리는 성가곡을 노래하는 것은 전례 의미에 맞지 않다. 주님 탄생을 기다리는 기쁨의 시기에는 종말론적 주제보다 아기 예수 탄생을 고대하는 내용의 곡을 노래한다. 대림 시기 미사에는 대림초를 켠다. 제단에 장식된 대림환 안에 대림초를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림초는 모두 4개이다. 매주 촛불을 하나씩 늘려가며 구세주가 얼마나 가까이 오고 계시는지를 알려준다. 4개의 초는 구약의 4000년과 대림 4주간뿐 아니라 동서남북 사방 온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을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림초는 진보라, 연보라, 분홍, 흰색의 네 개 초를 쓰는데 가장 짙은 색 초부터 불을 밝힌다. 대림 제4주일에는 모든 초에 불을 밝히면서 주님 오심이 임박하였음을 알린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11.23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61. 주님께서 이루신 일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곡식이 여물어가는 계절, 농부들의 손이 더 바빠지는 철이다. 얼마나 바쁠지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그래도 수확하는 농번기에는 겨우살이 먹을 양식이 하나하나 준비된다는 기쁨에 피로를 잊을 수 있다. 때로는 덜 여문 호박이나 고추, 곡식들이 있지만, 농부들은 이것을 살뜰히 거두어 이웃과 나눈다. 이조차 아쉬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남은 밭째로 거둬가라고 내어준다. 성경에서 룻에게 나눈 것처럼 이삭줍기를 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이 계절이 되면 홍시가 된 감을 뜰채로 따곤 했는데, 나무마다 대여섯 개는 남겨두었었다. 어린 나로서는 그것이 궁금했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거는 까치밥이여. 저거마저 우리가 따먹으면 새들이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 새들도 겨울을 나야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함께 산다는 게 대단한 격식으로 챙겨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누군가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열매와 시간과 정성을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기 위해 많은 사람이 교과서를 찾는다. 수많은 말로 머리를 깨우치고 가슴을 열기 위해서다. 그러나 아는 것이 마치 사는 것처럼 여기고 교과서를 덮고는 다시 자신만을 위해 탑을 쌓는 사람들이 많다. 새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지, 들풀이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가난한 내 이웃의 행복이 우리를 얼마나 더 행복하게 하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새들이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하늘 길을 날 수 있는 것은 제 몸에 ‘기억’의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철새들처럼 우리 몸에는 이 모든 생명과 함께 사는 기억, 돌보는 기억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것을 잊었을 뿐이다. 다행인 것은 본래의 기억으로 돌이키기 위한 우리들의 몸부림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난 9월 한 달 동안 ‘탈석탄법 제정을 위한 국회청원 서명운동’이 진행되었었다. 5만 명의 서명을 얻어야 국회에 발의될 수 있다는 것이 희망이었지만, 9월 중순이 되었을 때에 10%밖에 받을 수 없어서 마음에 조바심이 일어났었다. 그런데 지금 삼척 현장에서 온 마음과 몸으로 활동하고 있는 성원기 교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녀님, 될 거예요. 걱정 마세요.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니까요.” 다양한 방법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갔다. 교구ㆍ수도회ㆍ가톨릭평화방송과 가톨릭 굿뉴스,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발 벗고 나서서 결국 27일에는 3만 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3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2만 명의 서명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이틀 동안 많은 수녀님과 형제자매들이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만나는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았다. 발 벗고 뛴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29일에 마침내 5만 명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 ‘우리가 기적을 만들었어요!’라고 말을 했다. 정말 기적이었다. 하염없이 울고 또 울었다. 너무 기쁘고,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결과를 보자마자 성원기 교수님께 전화를 했더니, “수녀님, 이거 봐요. 된다니까요”라고 하시며, “저는 우리가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주님께서 이루어주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도 주님께 감사드리면서 그분께서 시키시는 일을 계속 해나갈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예언자 엘리사가 나아만으로부터 받는 그 어떤 감사도 하느님께로 돌려드렸던 것과 같은 자세를 교수님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고, 이러한 믿음을 통해 당신 일을 이루시는 주님께 감사드렸다. 우리는 순간순간의 위기와 바람이 있을 때에 주님께서 이루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그런데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 노력한 자신의 몫을 드높인 후, 정작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시고 함께하셨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열 명의 나환우를 낫게 해 주셨지만 한 명만 돌아와 감사드리고, 결국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와 참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cpbc2022.10.05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8. 여행지 : 성사(聖事)](//cpbc.co.kr/CMS/newspaper/2021/12/rc/816176_1.1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38. 여행지 : 성사(聖事)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우리는 하느님을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보이는 어떤 것들을 통해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간혹 자연의 절경이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보면서 저절로 하느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이처럼 어떤 사물이 하느님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이 사물은 성사(聖事, 거룩한 사물)가 됩니다. 이때 말하는 성사는 넓은 의미의 성사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사란 좁은 의미로, 교회의 일곱 성사(세례, 견진, 성체, 고해, 혼인, 성품, 병자)를 얘기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을 보여주실 뿐 아니라, 하느님 자체이시므로 그리스도를 ‘원성사’(原聖事, 원천적 성사)라고 합니다.그럼 성사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 여행※성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1. 성사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보여주는 무엇인가? 2. 교회는 누구를 보여주기에, 누구의 성사인가? 3. 교회의 일곱 성사를 누가 제정하였는가? 4. 일곱 성사 중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세례성사와 무엇인가? 5. 입문성사(入門聖事)란 세례성사, 성체성사, 그리고 무엇인가? 6. 일곱 성사 중 인호(印號)를 받는 성사는 몇 가지인가? 7. 성사의 은총 중 ‘성사 거행 그 자체로’ 주어지는 효과를 무엇이라 하는가? 답란1. □지 2. □□□도 3. □□님 4. □□성사 5. □□성사 6. □가지 7. □□성 가이드 설명1. 성사의 정의 성사(聖事, Sacrament)란 하느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통로와 같은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감각적, 상징적으로 표현한 거룩한 표징들(물, 기름, 안수, 빵 등)입니다. 성사에 대해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보이지 않은 하느님의 은총을 보여주는 표지”(성 아우구스티노)입니다. 표지(標識)는 다른 사물과 구별하여 알 수 있도록 한 표시나 특징을 말하지요. 2.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사 우리의 매일은 성사(聖事)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 안에 숨어 계시지만, 우리가 찾고자만 하면 그 모습을 드러내십니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하느님을 느끼도록 이끌어준다면 그 꽃은 단지 사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성사가 되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에 살아계시며 교회를 통해 체험되기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사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은 전례나 제도, 전승들이라기보다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우리들의 신앙을 통해서이지요. 3. 교회의 일곱 성사 제정 교회 안에서 세례성사와 성체성사 외의 다른 여러 성사가 언급되었는데, 12세기 성 빅토르 후고(1078~1141년)는 성사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다음의 3가지로 말하였습니다. ①예수님께서 제정하여야 함 ②어떤 가시적인 표징이 있어야 함 ③그 안에 하느님의 은총이 포함되어야 함. 그리하여 제2차 리옹 공의회(1274년)에서 성사의 수가 일곱 가지로 확정이 되었지요. 일곱 가지로 정한 이유는 7을 완전하고 거룩한 숫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숫자인 4와 삼위일체의 3을 더한 수가 7이기 때문이지요. 4. 성경에 나타난 일곱 성사 신약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세례성사와 성체성사입니다. 다른 성사들에 대해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성경 안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병자 치유(마르 1,32-34), 예수님의 성령 파견(요한 20,22), 사도들에게 부여하신 사죄권(마태 16,19), 혼인 불가해소성에 대한 가르침(마태 19,6), 제자들을 부르심(마태 4,19)에서 병자성사, 견진성사, 고해성사, 혼인성사, 성품성사에 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지요. 개신교에서는 성경에 명확하게 나오는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만을 인정합니다. 이에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에서는 일곱 성사 모두 예수님께서 제정한 교회의 성사로 재확인하였지요. 5. 입문성사 교회로 들어오는 입문성사(入門聖事)는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보충하는 예식이 아니라, 세례를 통해 받은 새 생명을 더욱 발전시키고 완성시켜 주지요. 즉 세례성사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고, 견진성사로 굳건해지며, 성체성사로 영원한 생명의 음식을 받아 하느님 생명을 풍성히 받고 사랑의 완성을 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이 세 성사를 한꺼번에 거행하였는데, 이후 견진성사가 분리되어 세례성사 후 일정한 신앙의 성숙 시기를 가진 후 받는 것으로 되었지요. 6. 인호 인호(印號)란 그리스도께 속해있다는 영적 표징으로 영혼의 도장이라고 합니다.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 중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품성사의 세 가지 성사를 통해 영혼은 지울 수 없는 각인인 인호를 받지요. 하느님의 선택과 부르심은 결코 취소될 수 없기에 이 성사들은 일생에 한 번만 받을 수 있습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이 표지는 표를 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와 특수하고 유일무이하게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뜻하지요. 7. 성사의 사효성 성사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성사 행위 자체인 예절의 거행, 집전자의 의도, 그리고 그 성사를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정당해야 합니다. 성사는 성사 거행 그 자체로 효력을 발생하는 사효성(事效性)의 특성이 있습니다. 이는 집전자의 인간적 요소보다 하느님의 은총이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여행 옵션 / 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성당경기도 수원 조원동성당은 1976년 기공식 거행 당시 수원교구에서 제일 큰 규모였다. 고등동 주교좌성당이 협소한 관계로 1977년 두 번째 주교좌성당으로 건립이 되었다. 이 성당마저 협소해서 20년 뒤, 1997년에는 정자동성당이 세 번째 주교좌성당으로 건립되면서 정자동 주교좌성당과 함께 수원교구의 공동 주교좌성당이 되었다. 조원동 주교좌성당의 제대 벽면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상과 일곱 성사를 표현한 모자이크가 장식돼 있다. 유리에 복합 재료를 이용하여 오른쪽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고해, 성품, 병자, 성체, 혼인, 견진, 세례성사의 일곱 성사를 형상화하였다. 여행 기념품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탄생, 성장과 병, 결혼, 죽음의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시며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 위하여 일곱 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일곱 성사 중 내가 그동안 받은 성사는 어떤 것이 있나요? 성사의 은총은 성사 그 자체로 주어지는 은총이 있지만, 성사를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나는 세례성사(또는 견진성사나 혼인성사)를 어떤 마음과 자세로 받았나요? 또 그동안 성체성사, 고해성사를 받으면서 어떤 자세로 임하였나요?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12.29

영성 심리 상담가 신부의 개인과 사회, 종교 이야기 말해야 산다 홍성남 신부 지음 / 가디언“어렵게 쓴 책들에 질렸거든요. 나더러 작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작가가 아니에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독자들도 이해하기 쉽게 쓴 거예요.”홍성남(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 신부의 신간이 출간됐다. 최근 몇 년간 거의 해마다 책을 펴내고 있는 셈이다. 책을 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홍 신부는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험하고 부딪히고 생각한 것, 영성 심리를 통해 내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상담하며 쌓아온 많은 이야기를 그저 술술 써내려간 것이라고. 이번 책도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낸 것이다. 그래서 제목도 「꼰대 신부 홍성남의 구시렁 심리학 - 말해야 산다」이다. “원래 개인 심리에만 관심이 있었는데, 사람은 굉장히 민감한 존재예요. 그래서 아무리 건강하게 살려고 해도 주변의 환경이 좋지 않으면 오염된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사람도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10여 년 전 가좌동본당에 있을 때 일대 재개발 사업과 맞물려 사회의 어둡고 불편한 진실들을 직면하면서 그걸 체감했어요. 그때부터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죠. 그냥 두면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사회적으로도 다양한 문제에 부딪히니까. 그래서 내가 사회 문제 전문가는 아니지만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말하고 싶은 것을 쓴 거예요.”책은 크게 3부로 사회 문제뿐만 아니라 개인, 종교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개인의 분노와 지나친 걱정, 돈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 등은 물론 불량 종교와 종교인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종교적인 영성도, 사회적인 정신건강도 개인의 인성이 무너지면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특히 지금의 한국 사회는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정신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심리학과 가톨릭 교리의 간극이 빚어내는 딜레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 신념이 병적일 때가 있어요. 지나치게 신앙심을 강조하거나 지나치게 성인이나 순교자를 강조하는데, 우리 마음은 그렇게 결연하지 않거든요. 따라가지 못할 높은 목표 때문에 신자들이 중도에 허우적거리다 죄의식에 빠지곤 해요. 하느님의 뜻을 하나로 얘기한다면 무엇일까요? 부모님들은 첫 번째로 자녀들의 행복을 꼽죠. 그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세요.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성경을 보니까 예수님도 ‘행복하라’는 말씀을 계속 언급하셨더군요.”홍 신부는 이렇게 다양한 ‘하고 싶을 말’을 책은 물론이고 방송과 강연, 사설, 상담 등을 통해서도 쏟아내고 또 받아내고 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의견도 많이 들었지만, 일은 계속 확대됐고 소통할 수 있는 길도 더 다채로워졌다. “하느님 뜻에 맡겼어요. 원하시면 계속 할 테고, 아니면 접게 되겠지. 그런데 2011년 한 일간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린 뒤 전국에서 연락이 왔고, 일이 계속 늘었습니다. ‘하느님도 이 길을 원하시는구나!’ 생각했죠.”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심리’를 통해서도 전 세계 65개국 4만여 명의 구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강연 등이 줄어들자 은퇴 준비에 앞서 마지막으로 과거 사목했던 곳에서 시작한 무료 강의를 한 봉사자가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아직 일을 끝내면 안 되는구나. 이게 하느님이 나에게 주신 마지막 일이 아닌가 싶어요.”(웃음) 1987년 사제품을 받은 홍성남 신부는 잠실ㆍ명동, 마석ㆍ가좌동본당 등을 거쳐 현재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나를 더 알고자 가톨릭대학교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영성 상담을 전공했다. 이를 계기로 본지를 비롯해 가톨릭평화방송 등에서 상담 코너를 진행했고, 현재 강연과 방송, 칼럼 등으로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cpbc2022.09.21
![[금주의 성인] 성녀 마르타 (7월 29일)](//cpbc.co.kr/CMS/newspaper/2022/07/rc/828228_1.1_titleImage_1.jpg)
[금주의 성인] 성녀 마르타 (7월 29일) +1세기경, 베타니아 활동, 동정녀, 요리사의 수호성인 마르타 성녀는 신약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마리아 성녀와 라자로 성인의 누이입니다. 성녀는 가족과 함께 예루살렘 인근에 있는 마을인 베타니아에 살다가 예수님이 여행 중 이곳에 들르자 집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시중을 분주하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인 마리아가 그분 발치에 앉아 말씀만 듣고 있는 것을 보고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10,38-42) 활동적이고 바빠 보이는 성녀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납니다. 라자로 성인이 병을 앓았을 때 성녀 자매는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곧장 오지 않고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하시며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성녀가 사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이미 라자로 성인은 죽고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지나있었습니다. 성녀는 예수님이 오시는 날, 처음과 같이 그분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예수님과 다시 만난 성녀는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원망하면서도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하고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성녀는 예수님께서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때까지만 해도 그분의 뜻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곧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을 때, 그는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라는 가장 완전한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요한 11,1-27)중세의 전설에 의하면 성녀는 어떤 마을에서 그곳 사람들을 괴롭히던 타라스크라는 괴물을 십자가를 들고 성수를 뿌려 얌전하게 길들였다고 합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그곳의 이름도 타라스콩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던 성녀가 참된 제자로 성장하는 과정은 불완전한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한편, 우리가 걸어가야 할 신앙의 길의 모범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르타는 예수님께 너그러이 환대를 베풀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온순하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복시키신 분의 명령으로 무덤에서 즉시 나왔다”며 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강조하면서, 7월 29일을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로 정했습니다. cpbc2022.07.19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을 내어 맡기다[사순 시기] 복음서로 보는 주님 수난 - (4) 잡히시다 Giotto di Bondone, 체포당하는 예수 그리스도(유다의 키스), 프레스코, 이탈리아 파도바의 아레나성당 벽화. ▨겟세마니에서 잡히시다예수님께서는 ‘대사제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과 함께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 겟세마니로 가셨다. 겟세마니는 올리브 산에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 정원으로 들어가시어 제자들을 두고 돌을 던지면 닿을 만한 곳에 혼가 가시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고뇌에 싸여 피땀을 흘리시면서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며 기도하셨다.(루카 22,42) 바오로 사도는 이 장면을 더욱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히브 5,7)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니에서 홀로 마지막 외로움, 인간으로서의 모든 고난을 체험하셨다. 여기서 죄와 모든 악의 나락이 그분 영원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 밀려들었다. 여기서 그분은 임박한 죽음에 대한 예감으로 전율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신 안에서 하느님을 거스르는 인간 본성의 모든 저항을 스스로 이겨내시고서야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곧 하느님께 당신 자신을 내어 맡기신다.네 복음서는 예수님의 겟세마니 밤기도가 모두 잠들어 있던 제자들에게 조명받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배반자 유다 이스카리옷이 몰고 온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 군대와 성전 경비병들에게 체포됐다고 한다.▨최고의회와 빌라도 앞에 서시다체포된 예수님께서는 맨 먼저 한나스와 대사제 카야파에게 끌려가셨다. 한나스는 대사제 카야파의 장인으로 서기 6년부터 15년까지 대사제직을 수행한 인물이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상부 도시에 있는 한나스와 카야파 대사제의 집에서 밤새 매질과 조롱, 모욕을 당하셨다. 날이 밝자 원로단, 곧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 최고의회인 ‘산헤드린’으로 끌고 가 심문한 다음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보냈다. 빌라도 역시 예수님을 심문한 후 마침 파스카 축제를 지내기 위해 예루살렘에 와서 하스모네아 왕궁에 머물던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보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님을 업신여기며 조롱한 다음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냈다.(루카 23,6-12 참조) 때는 니산달 14일 밤이었다. 니산달 15일은 ‘파스카 축제일’이다. 서기 28~33년 사이 니산달 14일이 금요일이었던 것은 딱 두 번이었다. 30년 4월 7일(성경학자들이 더 선호하는 날짜임)과 33년 4월 3일이다. (「성경 역사 지도」 208쪽 참조) 전례력으로 이날은 파스카 성삼일 중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 후 밤에는 베타니아로 가서 묵으셨지만, 파스카 만찬을 하신 이 날은 성 안에 머무셨다. 그리고 묵묵히 제자들의 배반과 수난을 마주하셨다.한편, 최고의회 의원들과 빌라도는 예수님께 “당신은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이오?” “유다인의 임금이오?”라고 심문하면서 모진 매질과 조롱을 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명료하게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마르 14,62)라고 말씀하신 후 입을 다무신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대사제 카야파는 자기 옷을 찢었고, 최고의회 원로들은 모두 “사형받아 마땅하다”고 예수님을 단죄했다. 로마 총독 빌라도 역시 예수님께서 반역 운동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했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22.03.30
![[가톨릭 영상교리] (2) 교회란 무엇인가](//cpbc.co.kr/CMS/newspaper/2022/04/rc/822417_1.8_titleImage_1.jpg)
[가톨릭 영상교리] (2) 교회란 무엇인가교회,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한 이들의 모임 여러분은 ‘교회’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십자가, 성당, 성당에 모인 사람들, 교황님, 기도…. 아마 교회라고 하니까 개신교회를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크게 보면 모두가 교회라는 말로 나타나는 것들로 우리가 자주, 또 쉽게 만나는 교회의 여러 모습입니다. 교회라는 단어 ‘에클레시아’는 그리스어 성경에서 한데 모인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의미하였습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자신을 ‘에클레시아’라 표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자들의 집회’라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즉, 교회는 하느님께서 불러 모으시고 이에 응답한 사람들의 모임, 신자 공동체를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우리는 흔히 내가 하느님께 오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판단,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닙니다.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셨기에 우리가 하느님 곁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부모님을 통해서든 친구를 통해서든, 아주 작은 사건이나 말 한마디를 통해서든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경로는 예측할 수 없고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우리를 왜 부르셨을까요? 그리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는 왜, 또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교회를 세우신 데는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이 숨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창조 사업에 우리를 참여시키시고 또 친교와 사랑을 나누시고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당신 닮은 모습으로 당신 손수 빚으시고 당신 숨을 불어넣어 주심으로 말입니다.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의 결정체가 바로 우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하느님과 같아질 욕심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하느님을 저버렸으며 하느님에게서 멀어져갔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과 함께 있을 때는 없었던 ‘죽음의 불안’과 ‘육신의 고통’이라는 죄의 굴레를 안고 살아가게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으셨습니다. 다시 당신의 ‘영원한 생명,’ 당신과의 친교와 사랑으로 이끄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내어주심으로써 우리도 함께 죽음에서 부활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당신 안에서 말입니다.교회를 세우신 예수님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희생 제사로 열리게 된 구원의 길이 땅끝까지, 또 모든 민족에게까지 펼쳐지기를 바라시며 사도 베드로를 시작으로 열두 사도를 뽑아 당신의 희생 제사와 구원 사업이 계속될 제도, 바로 교회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미리 약속하셨던 보호자이자 인도자이신 성령께서 내리심으로써 세상에 그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게 됐습니다. 결국, 교회는 하느님 나라, 우리를 당신과의 친교와 사랑, 영원한 생명으로 불러들이시기 위해 성부께서 계획하시고 성자께서 세우시고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시작하신 보이면서도 보이지 않는 신비체입니다.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계획하시고 세우시고 시작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 베드로와 모든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님과 주교님들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로 안내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양육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자리 잡으면서 말입니다. 그 교회 안에서 우리는 미사에 참여하여 하느님 말씀을 듣고 그분께 찬미 드리며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고 그분과 하나 됩니다. 또한, 기도로 하느님과 만나며 일상생활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살아갑니다. 또,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모든 사람과 친교를 이루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교회는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이고, 예수님의 사업을 수행하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께서 머물며 이끌어 주시는 성령의 궁전입니다.교회는 또 언제 어디서나 하나의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의 전례를 거행하기에 ‘하나’입니다. 비록 부족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거룩한 성령께서 인도하시기에 ‘거룩하고’ 모든 시대 누구에게나 똑같이 열려있기에 ‘보편되며’ 사도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고 있기에 ‘사도로부터 내려온다’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교회의 지체이며 각자 하나의 교회이기에 하느님의 말씀,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사명은 우리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교회인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이 다그칩니다.▶가톨릭 영상교리 보러 가기[금주의 성인] 마르코 (4월 25일)복음사가, 베드로 사도의 애제자, 알렉산드리아 교회 주교, 순교자.마르코 복음사가는 신약성경에 무려 10번 가까이 등장합니다. 그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사도 12,12. 25)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됩니다. 요한은 유다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그리스식 이름입니다. 그는 마리아라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예루살렘에서 살았으며, 그의 집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집회를 했던 곳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마르코를 “나의 아들 마르코”(1베드 5,13)라고 할 만큼 그는 베드로의 애제자였습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에 따르면 마르코는 베드로 사도에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사도행전은 베드로 사도가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기적같이 풀려나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다”(사도 12,1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와 관계가 깊었던 마르코에 대해 초대 교회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베드로 사도의 진정한 대변인이며 통역관으로 여겼습니다.마르코 복음서의 친저성(직접 서술했는지 여부)에 관해 처음으로 증거를 제시한 인물은 프리기아 지방(현 터키)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60~130) 주교였습니다. 그는 마르코 복음사가에 관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베드로의 통역관이 된 장로 요한 마르코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거나 행하신 것 가운데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을 순서대로는 아니라도 정확하게 기록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듣거나 그분을 따라다니지는 않았지만, 내가 말했듯이 훗날 베드로와 동행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과 관련해 해석하려 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가르침을 베풀곤 했다. 그러나 마르코는 몇 가지 내용을 자신이 기억하는 대로 기록하면서 어떤 오류도 범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자신이 들은 것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며 거짓 진술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파피아스의 단편, 카이사리아의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3,39,14-15. 「교부들의 성경주해-마르코 복음서」 번역 인용)교회 전승에 따르면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주교가 된 마르코는 신자들과 부활절 미사를 드리던 중 이교도의 습격을 받고 붙잡혔다고 합니다. 이교도들은 마르코의 목에 밧줄을 묶어 이틀 동안 거리로 끌고 다녔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피가 낭자했던 마르코는 그렇게 순교했다고 합니다. 이교도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불태우려 하자 천둥과 번개가 쳤다고 하고, 이에 놀란 이교도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버려둔 채 도망치기 급급했다고 합니다. 그 틈을 타 알렉산드리아 신자들이 마르코의 시신을 수습해 모셨다고 전해집니다.이후 마르코 복음사가의 성해는 829년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베네치아로 옮겨졌습니다. 베네치아는 마르코 복음사가를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대성당을 지어 그곳에 그의 성해를 안장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cpbc2022.04.19

2022년 새해, 용기와 희망 불어넣는 책 읽으며 맞이하자 2022년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순백의 도화지 같은 새로운 한 해를 선물 받았지만 스스로 부족하다는 생각, 과거의 상처와 아픔, 때때로 찾아오는 무기력함과 허무함을 지난 달력과 함께 내다 버리기가 쉽지 않다. 새해에는 절망보다 희망을, 슬픔보다 기쁨을 더 많이 길어올릴 수 있도록 용기와 힘을 주는 책 2권을 소개한다.러브 마이셀프, 나를 사랑하면 달라지는 것 / 멜라니 피그니터 지음·임정희 옮김 / 일므디“다시 심해진 상처, 실망, 모욕은 우리 안에 치유가 필요한 곳을 알려 주는 메신저다. 그곳을 찾아내어 상처와 오래된 신념, 부정적인 경험과 맞설 용기를 낸다면 흉터 뒤에 숨은 선물을 빨리 발견할 수 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만성 통증 질환으로 고생하던 멜라니 피그니터는 위기와 불행이 삶의 선물일 수 있음을 깨닫고 통증을 극복한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 작가가 되기까지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삶에 찾아오는 모든 일이 선물이 된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가 말하는 행복한 삶의 여정 비법은 내가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자신에게 일어난 나쁜 일 속에서 좋은 일을 찾아내야 하는데, 시간을 내어 자신을 바라보고 나에게 다정히 대화를 걸어보라고 권한다.저자는 우리 행복을 방해하는 상황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간 속에서 절망과 죽음의 공포를 맛봤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가 심리상담가로 활동하면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과 다양한 위기 상황을 펼쳐놓는다.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잠재력을 발견하고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들을 소개한다.불안과 절망, 분노와 두려움, 외로움과 매너리즘 등으로 힘들었던 문제가 오히려 진정한 나를 발견할 기회임을 깨달을 수 있다. 멜라니 피그니터는 상담 전문가로 블로그와 강연 등을 통해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중요함을 알리고 있다.치유의 순간 / V. 안토니오 사지 VC 지음·류해욱 옮김 / 바오로딸“모든 것을 봉헌하고 주님 손에 맡겼기에 우리의 상처는 씻기고 고통도 사라졌습니다. 구름은 걷히고 희망이 가득합니다.”성모님과 함께하는 6일간의 침묵 치유피정 순서에 따른 39개의 길고 짧은 강론을 담은 책. 저자는 인도의 빈첸시오회 수도 사제인 안토니오 신부로, 성경 말씀에 토대를 둔 그의 강론은 믿음의 삶을 성찰하게 하고, 위로와 기쁨을 안겨준다.그의 강론은 성서학적 지식이나 전문적인 성경 해설은 아니지만, 믿음이 스며드는 생활, 삶의 동반자로 삼아야 할 기도 생활과 죄를 직시하고, 통회와 회개의 길로 나아가도록 빛을 비춰준다. 그는 무엇보다 우리 삶의 바탕은 성경이어야 함을 강조한다.“우리는 모두 죄인임을 인정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안에 성령께서 머무신다는 표시이지요.… 그러나 죄책감은 지니지 마십시오. 빛 속에서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봅시다. 어떤 가면도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목적은 슬픔에 빠지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희망을 지니고 사는 것입니다.… 인간인 저는 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없습니다.(125∼128쪽)2006년 인도 케랄라에서 사제품을 받은 저자는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성모님과 함께하는 6일간의 침묵 치유피정’을 지도하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cpbc2021.12.29
[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36. 우리의 봄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겨우내 가물다가 요사이 봄비가 한 번 내리고 나니 멀리 보이는 산자락이 뿌연 연둣빛 옷자락을 드러냈다. 가로수를 품고 있는 몇 줌의 흙에도 여린 초록빛 새싹들이 드리운 것을 보니 너무나 반갑다. 간간이 자리한 화단에 가장 먼저 자리 잡고 올라온 잎은 역시나 쑥과 개망초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정말 1년 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도심에서 새까맣게 때 낀 얼굴을 해도 여전히 예쁘기만 하다. “하, 너구나! 반갑다. 여기서 만나네.” 그 친구들도 더 환한 빛으로 봄바람에 하늘거리며 나에게 인사한다. 정말 설레는 것은 벚나무 꽃망울들인데 금세라도 터질 양으로 잔뜩 오므리고 모두의 눈길을 받고 있다. 며칠 후면 제 환한 모습을 보여주려나 보다. 이들을 보면 노래할 수밖에 없고,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고, 마음에 생명과 사랑을 담을 수밖에 없다.봄은 오고 있는데, 아직 우리 마음은 겨울인 듯하다. 힘이 빠지는 일들이 정말 많이 일어나고 있다. 시민들은 기후위기에 직면해 도대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전 지구적 팬데믹에서 어떤 의식 전환이 있어야 하는지, 에너지부터 먹거리까지, 분리수거부터 자원순환가게까지, 학교 교육부터 가정교육까지 배우고 직면하고 바꾸고자 뭔가를 시작하고 있다. 나 혹은 우리 가족, 혹은 우리나라를 넘어선 지구 시민적인 행동변화를 일으키고 싶어서, 전 세계인이 ‘지구의 시간(Earth Hour)’을 지키고, 버려지는 상자 뒤에 ‘기후행동 지금 당장!’을 써서 소리 없는 외침을 하고 있다. 한 시간 동안 벌서는 자세로 피켓을 들고 서 있어도 힘든 줄 몰랐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언어가 다르고 살아가는 상황이 달라도,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모두 힘을 모으려는 줄 알았다. 사실 그렇게 힘을 모아도 뒤늦은 우리가 선택한 것은 ‘전쟁’이다.정말 할 말을 잃게 한다. 서로 남을 탓하고, 심지어는 중상모략으로 그 어떤 선한 의도를 묵살하며, 자신들이 믿는 신념이 답이라고 강요하고, 뻔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죽음과 고통을 부르는 그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 총과 칼, 미사일이 필요한 상황으로 조장하고, 나라 간의 친교를 배제하고, 속국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넓게는 나라 간의 관계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이기도 하다. 또 아주 가까이는 내가 살아가는 관계이기도 하다. 당장에 총을 쏘는 이들에게 나는 손가락질하고 있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이 내가 사는 이야기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자신이 살던 터전에서 내몰리고 있다. 성경에서 무죄한 아기들의 죽음으로 울부짖는 어머니들의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들의 피가 땅바닥에서 하느님께 울부짖고 있다. 자신이 도대체 어떤 권리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저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는 말인가? 무기를 들도록 하는 선의 가면을 쓴 악의 얼굴을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가장 똑똑한 척하면서 정작 가장 바보 같은 짓을 하는 듯하다. 우리는 성경에 쓰인 인간의 죄상을 알면서도 그대로 답습하는 바보이다. 하느님께서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는데,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또 서로를 고소할 구실을 찾고, 올가미를 씌우려고 하고, 돌을 던지려고 하고 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인간은 살려달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죽음의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 자연 생명은 그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 저 소리가 들리는가?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나와 우리와 그리고 모든 생명을 살리시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위기에 처해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 바로 그때다. 들고 있던 돌을 내려놓고 그가 살도록 할 때…. 모든 생명은 참으로 ‘봄’을 맞이하고 싶어한다.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 cpbc2022.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