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28) 여행지 : 선교 사명](//cpbc.co.kr/CMS/newspaper/2021/10/rc/811596_1.3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28) 여행지 : 선교 사명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나는 언제 복음을 전해 듣고 하느님을 알게 되었나요? 어느 누군가의 노력으로 복음이 지구 상으로 퍼져 나가 현재 이곳의 나에게도 전해지게 되었지요. 선교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대로 세상을 향해 펼쳐야 하는 사명이지요. 넓은 의미로는 이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며, 좁은 의미로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그분의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고 성직자들을 양성하여 자립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전교 주일을 맞아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목숨까지 걸고 복음을 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수많은 선교사께 감사를 드립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그럼 선교 사명으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 퀴즈여행 1. 전교 주일은 10월 중 언제 지내는가? ①10월 첫째 주일 ②10월 둘째 주일 ③10월 끝에서 두 번째 주일 ④10월 마지막 주일 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언제 선교의 사명을 주었는가?(마르 16,15) ①공생활 전 ②공생활 중 ③돌아가시기 전 ④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3.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소아시아와 유럽에까지 선교한 이방인의 사도는?①성 베드로 ②성 바오로 ③성 안드레아 ④성 바르나바 4. 선교는 누가 해야 하는가? ①선교사 ②성직자와 수도자 ③교리교사 ④모든 신자(하느님의 모든 백성)5. 선교의 궁극 목표는 무엇인가?①개종 ②교회 자체의 복음화 ③교회 확장 ④인간 구원 6. 수도원 안에서 지내고 외국에 나가 선교하지 않았지만, 선교의 수호자가 된 성인은? ①성 프란치스코 ②성녀 아기 예수의 데레사 ③성녀 대 데레사(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④성 비오7. 우리나라 가톨릭 신자 수와 전 세계 가톨릭 신자 수는 전체 인구수 대비 각각 약 몇 %인가?① 6, 10 ② 10, 15 ③ 11, 18 ④ 20, 25 퀴즈여행 1. □번 2. □번 3. □번 4. □번5. □번 6. □번 7. □번(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 가이드 설명1. 전교 주일전교 주일이란 전교(선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나 선교 지역을 물질적, 정신적으로 돕기 위해 정한 주일입니다. 10월 끝에서 두 번째 주일에 지내는데, 1922년 비오 11세 교황이 시작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선교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1965년 ‘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Ad Gentes)이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해 반포되었지요. 한국 교회에서는 1970년 주교회의에서 전교 주일이 들어 있는 10월을 한국 교회 고유의 ‘전교의 달’로 정하였고, 이날 전교 사업을 위한 특별헌금, 기도회, 모금 운동이 전개되고 있지요. 2. 예수님이 주신 선교 사명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의 불신앙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신 후에 다음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이에 따라 교회는 복음, 즉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파할 의무를 받았습니다. 이 선교 사명은 하느님이 온 세상 모든 이를 구하고자 하시는 ‘구원의 보편성’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모든 사람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이 선교의 의무와 열성의 원천이 됩니다. 3. 이방인의 사도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전했기에 교회가 온 땅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성 바오로는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1코린 9,16)라고 말하며, 3차의 선교 여행을 통해 복음을 소아시아와 유럽에까지 전하였지요.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행은 예루살렘 일대에 머물렀던 초기 그리스도교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기에, 성인을 ‘이방인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4. 선교의 주체흔히 선교는 선교사가 하는 것이고 또는 성직자와 수도자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선교의 의무는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있습니다. “모든 신자는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세례를 통하여 또 견진과 성체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께 합체되고 동화되었으므로,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도달하게 되도록 그 몸을 넓히고 자라게 하는데 협력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선교 교령」 36항) 성직자만이 아니라 모든 평신도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자직에 참여하면서 그리스도 왕국의 확장과 성장을 위해서 협력해야 합니다.(「교회 헌장」 35항)5. 선교의 궁극 목표 선교는 교회의 본질 자체에서 흘러나온 임무입니다.(「선교 교령」 6항) 그러므로 교회가 선교하지 않으면 교회의 존재 이유가 없지요. 교회는 복음을 전하면서 사람들을 회개하게 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초대합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선교 활동을 통해 선교의 궁극 목표를 지향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설립해 왔습니다. 교회가 하는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구원입니다.(요한 3,17) 인간들이 사랑의 성령 안에서 성부와 성자께서 이루시는 친교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지요.(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교회의 선교 사명」 23항) 6. 선교의 수호자 대표적인 선교의 수호자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예수회, 1506~1552, 12월 3일 축일)와 성녀 아기 예수의 데레사(가르멜회, 1873~1897, 10월 1일 축일)입니다. 성녀 아기 예수의 데레사는 14세에 봉쇄 수녀원에 입회하여 24세의 나이로 죽기까지 수녀원 안에서 지냈지만, 평생 다른 영혼을 위해 선교사들, 특히 먼 지역에 가서 선교하는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하며 보속하는 삶을 살았기에, 1929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선교 사업의 수호자로 선포되었습니다. 7. 가톨릭 신자 수 ‘한국 천주교회 통계 2020’에 의하면 2020년 12월 31일 현재 전국 16개 교구가 집계한 신자 수는 약 600만 명으로 전년보다 0.15%(8631명) 늘었고, 총인구 약 5300만 명 대비 약 11%로 나타났습니다. 대비 수는 그전과 같으나,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신자 증가율이 그 전에 비해 현저히 낮지요. 전 세계적으로는 ‘2020 교황청 연감’에 따르면 총 13억 3000만 명으로 세계 인구 대비 가톨릭 신자 수는 약 18%입니다. 가톨릭 신자는 지구촌 전 대륙에 걸쳐 골고루 매년 약간의 증가세를 보이지만, 세계 인구도 그만큼 증가하기에 대비 수는 변화가 없지요.여행 옵션 : 파리외방전교회(프랑스)파리외방전교회는 교황청 포교성성(布敎聖省, 현 인류복음화성)이 1658년 프랑스 선교사들을 위해 창설하여 주로 아시아 지역에 선교사를 파견하였다. 이 선교회의 특징은 선교사들이 일정지역에 종신토록 머물도록 하고, 현지인 성직자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와의 인연은 1827년 사제를 요청하는 조선인들에 의해서 시작되어, 1831년 초대 조선대목구 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1836년 모방 신부, 1837년 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와 샤스탕 신부를 파견하였다. 그리하여 발탁된 조선의 3명의 소년들이 마카오 신학교로 가서 교육을 받고, 1845년 최초의 한국인 사제가 탄생하게 된다.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본부에 각종 서신과 보고서를 통해 한국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천주교회사를 세계에 알렸기에, 파리외방전교회의 한국 전교 역사는 곧 한국 천주교 형성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여행 기념품 선교란 하느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선교사나 성직자, 수도자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인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선교 사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선교는 외국에 나가서 하는 선교사적 행동만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성경 말씀과 착한 행동으로 이웃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나는 어떻게 구체적으로 선교하고 싶습니까?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cpbc2021.10.19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18) 여행지 : 사회교리 1](//cpbc.co.kr/CMS/newspaper/2021/08/rc/807024_1.2_titleImage_1.jpg)
[떠나자! 파울리타 수녀의 유익한 교리여행] (18) 여행지 : 사회교리 1 사랑이신 하느님의 다른 이름은 ‘정의’입니다.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은 억압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사회의 부조리와 불의 앞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내었고, 그 때문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비천한 이를 들어 높이시고, 굶주린 자들을 배불리십니다.(루카 1,50-53) 예수님의 사명을 이어받은 교회는 가진 자, 권세 있는 자의 편이 아닌, 가난한 자, 소외받는 자, 고통받는 자의 편에 서야 합니다. 공동체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은 우리 자신의 성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사회, 나라)도 성화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럼 사회교리로 퀴즈 여행을 떠나볼까요?퀴즈여행 1. 참된 단식은 사회 정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외친 구약의 예언자는?2. 예수님은 잡혀간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에게 무엇을 선포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하셨는가?3. 가톨릭 사회교리는 1891년 레오 13세 교황이 반포한 어떤 회칙이 시초가 되었는가?4. 사회교리의 원천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어떤 말씀인가?5. 사회교리의 3가지 원리는 공동성, 보조성, 그리고 무엇인가?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서 사회교리에 대해 가르치는 헌장은? 7.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경에 대해 가르치는 회칙은? 답란 1 □□야2 □방3 □□□ 사태4 □경 5 □□성6 □목 헌장7 □□받으소서(정답은 ‘가이드 설명’에서 확인하십시오) 가이드 설명1. 사회 정의를 외치는 예언자들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를 통해 해방시키신 하느님께서는 이제 민족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불의와 불평등에 대해 예언자들을 통해 경고하십니다. 북부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아모스 예언자는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성전에서 바치는 거짓된 예배와 번제물에 싫증이 나셨기에, 다만 공정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아모 5,24)고 부르짖었고, 남부 유다의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단식은 억압받는 이들을 풀어주는 것,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이사 58,6-8)이라고 역설하였지요.2. 예수님의 사명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를 펼치셔서 당신이 이 지상에 오신 사명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성부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잡혀간 이들과 억압받는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다고 하지요.(루카 4,16-19) 예수님은 그 당시 권세 있는 자들, 부유한 자들과 맞서서 이 사명을 충실히 사시다가 십자가형을 받으시고 돌아가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3. 레오 13세 교황의 노동 헌장 가톨릭 사회교리는 19세기에 생겨났습니다. 그 이전까지 가톨릭교회는 현세보다 내세에 치중하였고, 예수님의 사명인 지상에서의 하느님 나라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지요. 사회교리는 1891년 레오 13세 교황이 산업화로 생겨난 문제에 대해 「새로운 사태」를 반포한 것이 그 시초가 되었습니다. 사회교리란 이 「새로운 사태」와 그 이후의 여러 교황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세계 주교회의에서 펴낸 사회적 가르침을 말합니다. 현대 세계가 직면하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사회 윤리적 행동 기준을 제시해 주지요.4. 사회교리의 원천 사회교리의 원천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성경 말씀입니다. 이 외에 교부들의 가르침이 있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는 이성적 원리가 있습니다. 즉 사회교리는 교황이나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복음의 핵심(모든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나왔으며 존엄하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으며, 당신이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셨다)에서 나온 것이지요. 사회교리는 예수님에게서 나왔으며,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회교리 그 자체입니다.5. 사회교리의 3가지 원리 사회교리는 인간 존엄성을 바탕으로 다음의 3가지 원리를 제시하는데, 이들은 복음의 요청(정의와 사랑)과 함께 실질적으로 사회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이지요. ①공동선: 인간이 자기 자신의 완성을 더욱 충만하게 더욱더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사회생활의 모든 조건을 포함함 ②보조성: 상위 기관이 하위 기관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발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도와줌. ③연대성: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의존적이라는 전제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함께 결속함. 6.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회교리 문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사목 헌장」(기쁨과 희망, Gaudium et Spes)에는 사회교리에 대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헌장은 급변하는 현대 사회의 위험성, 모순과 갈등, 경제적 불균형, 정신적 황폐, 남녀노소의 차별, 동서 간 이념 갈등, 비인간화 등의 문제에 대해 인격의 존엄성과 현대 세계 속의 교회 사명을 언급하고, 현대 문화, 경제, 사회를 포옹하며 포괄적인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요.7. 프란치스코 교황의 환경 문헌 레오 13세 교황에 이어 비오 11세, 성 요한 23세, 성 바오로 6세, 성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은 특히 사회 문제에 관해 관심을 표명하며 사회교리 문헌을 발표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2013년 재위)의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2015년)는 가톨릭 교회 최초의 환경에 대한 회칙으로, 지구 온난화와 생태 위기를 일으키는 기술 만능주의와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면서 환경 교육과 생태적 회심의 필요성, 관계 회복을 위한 소통의 장의 시급함에 대해 말하고 있지요.여행 기념품 과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여, 교회가 종교적 활동에만 국한되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교회는 독일 나치가 수백만 명의 유다인을 학살할 때 침묵하였고, 한국에서는 일제의 식민 통치 시절 독립운동에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교회가 내세에만 치중하여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금 나의 태도는 어떠합니까? 마리 파울리타 수녀(노틀담 수녀회 교리교재 연구소) cpbc2021.08.04
김대건 성인 삶 묵상하는 후배 사제의 애도 일기나는 씨앗입니다 김성태 신부 지음 / 책밥상내포는 박해받던 한국 천주교회 성소의 ‘못자리’였다. 성 김대건과 가경자 최양업 신부가 각각 상부내포 솔뫼, 하부내포 청양의 그늘에서 태어나고 자라 훗날 한국 교회의 첫 번째, 두 번째 사제가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대건중, 대건고를 나와 2002년 대전교구에서 사제품을 받고 신리성지와 합덕본당, 솔뫼성지 등지에서 사목한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성태 신부는 그 내포 땅에서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와 합덕의 교우들, ‘김대건 신부’라는 창(窓)을 통해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또 사목했다. 그 여정이 「나는 씨앗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에 올올이 풀려나왔다. ‘첫 번째 사제, 김대건 신부를 그리며 쓰다’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지은이는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뻐하며 조선의 첫 사제였던 그의 25년, 짧은 생애를 기리며 되새김질한다. 단단한 신앙과 열정으로 살다 순교한 성인의 삶 속에서, 인간 김대건의 평범함도 함께 반추하고, 또 그 속에 씨앗처럼 담긴 한국 천주교회사와 ‘내포’의 피땀 어린 선교 여정도 함께 살핀다. 후배 사제의 진심 어린 추모는 내일을 위한 신앙의 열매로 맺으려는 또 하나의 기도다. 책은 3개의 장으로 나뉜다. 1장 ‘큰 나무가 그리워’에선 김대건 성인의 험난하고도 아름다웠던 삶을 증언과 기록으로 재현하고, 사제라는 같은 길을 걷는다는 공감대로 묵상한 이야기를 풀었다. 2장 ‘씨앗을 키우는 힘’에선 성지 전담 신부로 산다는 이유로 다녀온 인도 콜카타 모티질 사랑의 선교 수도회나 일본 나가사키 성지,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나 마르세이유 금빛 보호자 성모 성당,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등 다른 성지나 교회 사적지에 담긴 마음까지 읽어낸다. 끝으로 3장 ‘꽃으로 피어나기를’에선 김대건 성인의 고향에서 사제직을 사는 지은이의 현 사제생활에 얽힌 일화를 풀어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문채현2021.01.05
김대건 성인 삶 묵상하는 후배 사제의 애도 일기 나는 씨앗입니다김성태 신부 지음 / 책밥상내포는 박해받던 한국 천주교회 성소의 ‘못자리’였다. 성 김대건과 가경자 최양업 신부가 각각 상부내포 솔뫼, 하부내포 청양의 그늘에서 태어나고 자라 훗날 한국 교회의 첫 번째, 두 번째 사제가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대건중, 대건고를 나와 2002년 대전교구에서 사제품을 받고 신리성지와 합덕본당, 솔뫼성지 등지에서 사목한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성태 신부는 그 내포 땅에서 제5대 조선대목구장 다블뤼 주교와 합덕의 교우들, ‘김대건 신부’라는 창(窓)을 통해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또 사목했다. 그 여정이 「나는 씨앗입니다」라는 제목의 책에 올올이 풀려나왔다. ‘첫 번째 사제, 김대건 신부를 그리며 쓰다’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지은이는 김대건 신부의 탄생 200주년을 기뻐하며 조선의 첫 사제였던 그의 25년, 짧은 생애를 기리며 되새김질한다. 단단한 신앙과 열정으로 살다 순교한 성인의 삶 속에서, 인간 김대건의 평범함도 함께 반추하고, 또 그 속에 씨앗처럼 담긴 한국 천주교회사와 ‘내포’의 피땀 어린 선교 여정도 함께 살핀다. 후배 사제의 진심 어린 추모는 내일을 위한 신앙의 열매로 맺으려는 또 하나의 기도다. 책은 3개의 장으로 나뉜다. 1장 ‘큰 나무가 그리워’에선 김대건 성인의 험난하고도 아름다웠던 삶을 증언과 기록으로 재현하고, 사제라는 같은 길을 걷는다는 공감대로 묵상한 이야기를 풀었다. 2장 ‘씨앗을 키우는 힘’에선 성지 전담 신부로 산다는 이유로 다녀온 인도 콜카타 모티질 사랑의 선교 수도회나 일본 나가사키 성지,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본부나 마르세이유 금빛 보호자 성모 성당,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등 다른 성지나 교회 사적지에 담긴 마음까지 읽어낸다. 끝으로 3장 ‘꽃으로 피어나기를’에선 김대건 성인의 고향에서 사제직을 사는 지은이의 현 사제생활에 얽힌 일화를 풀어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21.01.05

20세기 교회의 변화·쇄신 향해 담대한 발걸음 내딛는 요한 23세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61·끝) 페르난도 보테로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향해서’ 페르난도 보테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향해서’(1972년), 바티칸 박물관 현대미술관 소장, 이탈리아 로마. 2000년 교회사의 장면들을 이미지로 기록을 남긴 예술가들 덕분에 시기와 사건에 더 다가갈 수 있었다. 60회 긴 여정을 마무리하며, 매번 어떤 작품으로 그 시대를 들여다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 인류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을 겪었다. 교회는 계몽주의 시대부터 부각된 현대 세계의 새로운 사조와 경향들에 반대와 경고의 목소리를 냈지만 결국 인류는 스스로 재앙을 불렀다. 베네딕토 15세 교황 이후 비오 11세와 비오 12세 교황은 전쟁 후유증을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세계 평화와 화해를 위해 승전국들이 패전국들에 자비를 베풀어줄 것을 외치며, 유럽의 재건과 일치를 호소했다. 공산 정부로부터 박해받는 교회가 속출했고, 그 지역 성직자와 선교사들이 추방당하는 속에서도 교황들은 할 일을 했다. 교회의 내적 성찰과 쇄신 이끌다비오 12세의 뒤를 이어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로 있던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Angelo Giuseppe Roncalli, 재임 1958~1963) 추기경이 요한 23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이 됐다. 77세였다. 연로한 상태에서 교황이 되었기 때문에, 대부분 차기 교황을 위한 징검다리 교황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예상을 뒤엎고 큰일을 시작했다. 여기에는 교회 구성원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우선 자신의 이름을 ‘요한’으로 선택했는데, 1400년대 초, 서구 대이교 논란 속에서 1419년 ‘대립 교황(antipapa)’ 요한 23세(발타사레 코사)가 물러간 뒤 거의 500년간 아무도 그 이름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론칼리가 당당하게 똑같은 이름을 선택함으로써 발타사레 코사에 대한 교회사의 논란을 종식했다. 그다음은 파란만장한 교회사를 돌아보며, 시선을 미래로 향해 ‘기쁨과 희망’(Gaudio et spes, 사목헌장)의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를 소집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폐막한 지 겨우 90여 년이 지났고, 세계는 냉전 상태였다. 하지만 요한 23세 교황은 교회가 더는 세계와 괴리된 채 교회의 잣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 이제 ‘우리가 바뀐 현대세계에 맞추고,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이 자연스럽게 창조주의 뜻에 따르도록 교화’하자고 했다. 지난 세기까지 숱한 공의회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다른 것은, 교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명령’하던 데서,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섬기는’ 것으로 변화한 것이다. ‘적응’, ‘쇄신’으로 번역되는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로 표현된 교황의 대담한 행보 덕분에 세상에 봉사하기 위해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교회의 이미지와 사명’을 인식하는 동시에 ‘성덕에 대한 보편적 소명’도 깊이 인식했다. 전례 개혁 및 교회 일치 운동, 현대 세계에서의 적응과 대화, 평신도 사도직, 교회의 내적 성찰과 쇄신 등은 모두 이런 맥락에서 나온 변화의 측면들이었다.교황은 1962년 공의회 개막(10월 11일) 주일을 앞두고, 10월 4일 평화의 사도 성 프란치스코 축일을 맞아 기차를 타고 아시시와 로레토를 방문, 공의회 성공을 위해 기도했다. 이것도 20세기 교황들 가운데 처음 로마 밖으로 여행한 사례였다. 세상을 보지 않고는 그 눈높이에 맞는 말을 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더욱이 공의회를 막 시작한 즈음(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문제로 미국과 소련 간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자, 요한 23세는 미국대통령 존 F. 케네디와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서신을 보내 평화를 중재했다. 후에 두 국가의 지도자는 교황의 헌신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공의회 중인 1963년 4월 11일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를 반포했다. 여기서 그는 평화의 범주를 확대하여, 총칼로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것들의 대척점으로서만이 아니라, 빈부 격차와 노동 문제 등 현대 인류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당면한 문제도 평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보고, 그 맥락에서 처음으로 진단했다. 그해(1963년) 교황으로서는 최초로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뚱뚱함의 미학’ 추구한 화가 소개하는 마지막 작품은 ‘뚱뚱함의 미학’으로 유명한 현대 콜롬비아 출신의 화가, 조각가, 디자이너로 알려진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Angulo, 1932~)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향해서’(1972년)라는 작품이다. 바티칸 박물관 현대미술관에 있다. 어린 시절, 바로크 건축과 구스타브 도레(Gustave Dor)의 단테 「신곡」 판화 시리즈에 반해 그림과 조각을 시작했고, 16세부터 삽화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1952년 20살 때 보고타 국립도서관 주관 콜롬비아 예술가 대상 제9차 살롱전에서 ‘해변’으로 2위 수상을 했고, 그 상금으로 유럽으로 연구 여행을 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박물관에서 프란치스코 고야와 티치아노를 만났다. 파리에서 프랑스 아방가르드 예술을 접하며 전통에 남기로 마음을 굳히고,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최고 작품들을 만났다. 특히 조토와 안드레아 만테냐의 작품들에 크게 영감을 입어 그들의 작품을 여러 번 모작하기도 했다. 시에나와 토스카나 학파의 많은 예술가도 그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귀국 후 결혼과 함께 멕시코로 이주한 뒤, 워싱턴과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제10회 보고타 살롱전에서 다시 2위를 수상하며, 고국으로 귀환했다. 1958년 보고타 국립 아카데미아 회화 교수가 되며, 제11회 살롱전에서 드디어 ‘신혼부부의 방’이라는 작품으로 1위 수상을 했다. 이후 남북미와 유럽을 오가며 많은 전시회를 했고, 그의 작품이 이름난 세계 도시들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회화를 이상을 향한 끝없는 탐구에 의한 내적 욕구의 표현으로 보았다. 이런 욕구는 절대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색은 언제나 희미하고, 강력하지도 열광적이지도 않다. 대체로 윤곽이 없고 평이하고 균등한 배경에 그림자가 없다. 색이 너무 강하면 전달하려는 내용이 훼손될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거의 비현실적으로 뚱뚱하게 표현함으로써 인체의 형태를 새로 제시하고, 다빈치, 루벤스, 벨라스케스 등 거장들의 작품을 자신만의 형태로 재해석했다. 풍경 속 인물과 자신은 상관없다는 듯, 배경을 크게 잡음으로써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주인공들의 시선을 허공에 가두는 등 그만의 특징이 있다.당시 콜롬비아의 일상에 깊이 파고든 ‘폭력’에 관한 문제도 그는 회화에 담았다. 비록 자신은 풍자한 것도 사회 비판적인 표현도 아니라며, 단지 큰 형태와 감각적인 볼륨으로 그린 것뿐이라고 하지만, 다빈치의 ‘모나리자’나 루벤스의 ‘시인’을 재해석한 것에서, ‘날씬함’만을 추구하는 사회 현상을 풍자하고 부조리를 폭로하고 있다는 평을 들었다. 그가 표현한 교회는, 성경 속 인물을 중심으로 한 성화보다는 ‘사라져가는’ 성당, 종탑, 지붕(돔) 등을 ‘모성’과 일치시킴으로써 한때 잘 알려지고 흔했던 ‘아기를 안은 성모’와 동일시하는 특징이 있다. 현대 세계의 변화에 응답한 교회변화를 거듭하는 세계 속에서 ‘시대의 징표’에 귀 기울이고, 교회의 자원을 모두 가동해 현대 세계의 변화에 응답하고자 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예루살렘 공의회, 트렌토 공의회와 함께 교회 자신의 체질을 바꾼 역사상 가장 중요한 3대 공의회의 하나로 평가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참석한 교부들은 3000명가량이었다. 역사상 가장 성대했고, 필요했고, 성공적인 공의회였다. 연로한 주교들은 3년간, 거의 목숨을 걸고 매일같이 교회의 변화를 위해 고단한 작업에 임했다. 공의회 개막 미사를 주례한 요한 23세도 공의회 회기 중간에 세상을 떠났고, 공의회 중간에 콘클라베(교황 선출 투표)를 해야 했다. 이에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Giovanni Battista Montini)를 바오로 6세 교황으로 선출했다. 바오로 6세는 1965년 12월 8일, ‘새로운 성령 강림’으로 규정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16개 문헌(4개 헌장, 9개 교령, 3개 선언문)을 발표하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3년간의 길고 역동적인 시간을 장엄 미사로 마무리했다. 그림 속으로세상의 아픔과 슬픔, 기쁨과 희망을 안고 역사의 새로운 행보를, 소개하는 작품 속 주인공처럼, 모든 피조물과 함께 시대의 다양한 형태에 편승하지 않고 때로는 오히려 “아니”라고 말하면서 조용한 걸음을 시작했다. 멀리 배경의 산은 안개에 싸인 듯 희미한 과거를 의미한다면, 이제부터 교회가 걸어가는 길은 현실이고, 현대 세계에서 분명하고 확실한 길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모든 피조물도 교회의 이 걸음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페르난도 보테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향해서’(1972년), 바티칸 박물관 현대미술관 소장, 이탈리아 로마.김혜경 (세레나, 부산 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동아시아복음화 연구원 상임연구원)※그동안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을 연재해 주신 김혜경 교수님과 애독해 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cpbc2021.11.16
![[생활속의 복음] 주님 부활 대축일 - 새로운 삶, 부활의 열매](//cpbc.co.kr/CMS/newspaper/2021/03/rc/799293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주님 부활 대축일 - 새로운 삶, 부활의 열매 손희송 주교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 큰 슬픔에 잠길 것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내 앞에 나타난다면 어떨까요? 뛸 듯이 기뻐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그러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에 보게 된 것은 빈 무덤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사흘째 되는 날 새벽에 혼자 그분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남다르게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덤은 비어있었습니다. 당황한 마리아 막달레나는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제자들에게 달려갑니다. 그 소식을 들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황급히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아마포가 있었고,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따로 한곳에 잘 개켜져 있었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면, 수건이 그런 가지런한 상태로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개켜진 수건을 보고,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생전에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그 믿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되면서 사실로 확인됩니다. 베드로는 체포되신 예수님을 따라 대사제의 집에 들어갔다가 궁지에 몰리자 스승을 모른다고 발뺌을 한 부끄러운 전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요한 18,25-27)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당신께 충실하지 못했던 베드로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과 신의를 확인하신 다음에 당신의 양 떼를 돌보는 사명을 맡기십니다(요한 21,15-19). 베드로는 과거의 잘못을 용서받고 다시 사도로 불림 받은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서 베드로는 크게 변합니다.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두루 다니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베드로가 이방인 코르넬리우스의 집에까지 가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교한 내용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부정을 탈까 염려하여 이방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렸지만, 베드로는 이런 인습의 장벽을 넘어섭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기에,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제2독서)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가 새로운 삶을 살도록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베드로의 변화라는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우리 역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새로운 삶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성체성사와 다른 성사들을 통해 우리 곁에 계십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큰 사랑으로 그분을 찾아간다면, 베드로처럼 굳건한 믿음으로 그분께 다가간다면, 그분을 만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으로 우리가 변화되기를 청합시다.손희송 주교(베네딕토, 서울대교구 총대리) 평화신문2021.03.31
![[제8회 신앙체험수기]우수상/ 아빠! 저에게도 계획이 있으시죠?!](//cpbc.co.kr/CMS/newspaper/2021/03/rc/797711_1.0_titleImage_1.jpg)
[제8회 신앙체험수기]우수상/ 아빠! 저에게도 계획이 있으시죠?!우기홍(미카엘, 의정부교구 인창동본당) 일러스트=문채현 푸르스름한 새벽, 태양이 고개를 들고 오늘도 새 하늘 새 땅을 희망하며 떠오르고 있습니다. 뿌연 유리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의 이질감에 밤새 잠 못 이룬 몸이 온통 굳어 있는 듯합니다. 올 한해 저의 시간은 멈추었습니다. 코로나의 역병으로 제 시간도 역행하고 있었으니까요. 전화기만 온종일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으로 밤을 지낸 날들이 많은 날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불러 주어야 달려가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다 보니 더 했습니다. 저는 22년 차 배우입니다. 쇠사슬로 묶여 굳게 닫힌 대학로 공연장과 썰렁한 거리는 코로나가 얼마나 무서운 역병인지 차갑게 느껴집니다. 코로나로 모든 공연은 취소되었고 영화나 드라마도 캐스팅 확정으로 연락을 받아 본지도 1년이 넘어갑니다. 최근에 연습하던 공연도 더 심해지는 코로나로 공연이 중도에 취소되었으며, 1년 넘게 근무 중인 연극협회도 공연 한번 못해 보고 올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정도 어려워져서 봉사하는 마음으로 지금은 다니고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나만 살겠다고 협회를 떠나는 것도 도리에 어긋나는 것으로 느껴져서 당분간 있을 생각입니다.요즘은 버릇처럼 새벽에 깨어 앉아 있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깜깜한 방의 어두운 기운은 점차 흐릿해져서 사물들이 눈에 차츰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색색거리며 잠들어 있는 두 아이와 아내의 얼굴이 보입니다. 11살, 6살. 하느님의 선물. 두 아이의 새근거리며 자는 모습이 천사와도 같습니다. 아무 걱정 없는 평화로운 얼굴을 보는 내내 제 마음이 왜 이리도 아려 오는지 마음으로 눈물이 흐릅니다.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주님께 이 아이들을 보호해 주십사 기도드립니다. 그 두 아이 틈에서 잠들어 있는 아내의 얼굴에는 어느새 세월의 흔적이 느껴집니다. 배우 남편 만나서 11년을 경제적으로나 여러 마음고생을 했을 아내에게도 미안함이 가득합니다. 아내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고생 많다’라고 속삭입니다. 가족들을 보며 이제 22년 연기 인생도 마쳐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며 올해를 보낸 것 같습니다. ‘나 좋다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지?’ 가족들을 보면서 버틴다는 말조차 교만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뭐라고 나 좋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아내와 아이들의 볼을 만지며 짧은 기도를 해줬습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흐릿한 벽에 걸려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전 어찌해야 할까요? 말씀해주세요. 저에게도 계획이란 것이 있는 건가요.’ 예수님의 침묵이 너무도 무겁게 다가옵니다. 아니 무섭기까지 합니다. 올해는 제게 특별한(?) 체험들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제가 믿어 왔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는 체험이었습니다. 첫 스타트로는 일해오던 에이전트로부터였습니다. 연락도 없고 연락을 해도 카톡은 확인한 것 같은데 답문이 없는 겁니다. 그래도 서로 일적인 부분에서 호흡도 잘 맞고 문제가 없었는데, 뭐가 문제인지 이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진 안개처럼 아무 대꾸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당황하던 저는 그 회사가 뭐 이유가 있겠거니 하며 제 마음을 달래지만 한편으론 ‘내가 니들 아니면 일 못 하는 줄 아냐?’라고 속으로 화도 나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을 관계했던 형님에게도 언제부턴가 연락이 안 되고 최근에는 영화 일을 하시는 선배님 또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게 뭘까? 내가 뭐를 그리도 잘 못 했나? 그것도 한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지만 벌써 일과 관계된 여러 명이 이렇게 제 관계 안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했던 겁니다. 올해를 돌아보며 참 미스테리할 정도로 느껴집니다. 꼭 저와 일로 관계된 이들이 침묵하기로 다짐한 것처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무서우리만큼 침묵과 무대응으로 일관했으니 말입니다. 이런 반응에 처음에는 제가 잘못했다는 자기검열로 시작해서 차차 원망과 분노로 흐르더니 이젠 포기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이런 무반응에 전 익숙해졌습니다. ‘내가 믿을 곳은 아무 곳도 없구나. 아무 곳도!’이렇게 일 년을 보내며 차차 저는 제 방식으로 했던 계획들을 하나둘씩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기질상 늘 계획하고 그 기반 위에서 관계하는 방식으로 살았는데 그게 통하지 않는 삶이 됐고 이젠 모든 계획을 폐기처분 해 버렸습니다. 제 생각과 계획은 쓸모없고 부질없으며 허무하고 상처투성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까? 늘 지도와 준비물이 있어야 길을 떠나는 저에게 지도도 없고 준비물도 없으며 나침판도 없는 여정을 떠난다는 건 너무도 괴롭고 두려운 일입니다. 저는 갈 곳도 찾아줄 사람도 없어지자 남는 건 시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아무 생각 없이 매일 미사를 다녔습니다. 주님께 그 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희망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미사와 조배를 드릴수록 저는 이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관계가 끊어지고 큰 벽에 선 건 이유가 있지 않을까? 삶에서 무엇하나 우연이란 없다는데…. 왜 그러실까? 혹시 저를 주님의 질서 안으로 이끄시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저는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펴서 읽으며 그 힌트를 찾고 싶었습니다.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구절입니다.“계획을 의논해 보아라. 그러나 깨져 버리리라. 결의를 말해 보아라. 그러나 성사되지 못하리라.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사 8,10)이사야서 8장 10절의 이 말씀에 마음이 쏠렸습니다. 계획이 깨져 버리고, 성사되지 못하는 인간적으론 당황스럽고 괴로운 그 순간에 “하느님이 함께 계시다”라니….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너무 크게 들었습니다. 그 깨진 순간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는 순간이라니. 그럼 지금이 하느님께서 함께하시는 순간인가? 주마등처럼 제 계획들과 사람들이 지나갔습니다. 높이만 쌓아 올린 계획들, 성공해 보겠다고 뭉친 관계들과 결의들이 모조리 풍비박산 나고 바람에 날려 사라졌습니다. 사라진 그 공터엔 저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아이처럼 울고 있고 깨져 있었습니다. ‘아! 이건 아냐!’ 하고 소리쳤습니다. 늘 마음에 안도를 주었던 애착 관계가 사라진 자리는 더 큰 두려움과 불안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게 제 가슴을 두들겼습니다. “난 이제 뭘 믿고 산다?” 제가 믿었던 관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들이 없으면 나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때 아차 싶었습니다. 깊은 한숨과 함께 “아, 내가 믿던 관계가 우상이었나? 그래서 걷어 가신 건가.” 제 머리를 세차게 내리치듯 우상이란 단어가 맴돌았습니다.저는 그 후 길 잃은 양처럼 마음이 더 산란하고 공허해져 갔습니다. ‘그냥 살게 해 주시지 왜 이런 변화를 주셔서 나를 혼란스럽게 하시는 건지.’ 원망 또한 올라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인내하며 성전으로 향했습니다. 패잔병처럼 어깨가 처진 채 저는 성전에 와있는 겁니다. 혼란도 주셨으니 답도 주실 거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또 길을 헤매듯 성경을 읽었습니다. 이 혼란을 잠재울 말씀을 달라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탈출기를 읽으며 아래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이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탈출 16,3)“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이 광야로 끌고 왔소?!” 제 마음의 소리가 성경에 적혀 있었던 겁니다.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며 하소연했습니다. ‘주님 제겐 나이 든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두 아이가 있습니다. 아버님은 허리가 아프시고 우울증으로 삶의 희망도 없이 사시며 그런 아버지를 주님께로 돌아오게 해주십사고 어머님은 오늘도 기도하십니다.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며 통장의 잔고도 바닥입니다. 제가 이 집 가장입니다. 이번 달은 어떻게 삽니까? 왜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시는 겁니까? 전 혼란스럽습니다. 두렵습니다. 무섭습니다. 다음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방법을 알려주세요. 당신이 이끄셨으니 당신이 책임지십시오’ 하고 주님께 하소연하였습니다. 저는 맥이 풀린 상태로 일터로 향했습니다. 일을 해도 집중이 안 되고 마음은 산란하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른 채 시간을 보냈습니다.아르바이트하고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환하게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그나마 웃음이 납니다. 아이들의 재롱 속에 함께 식사한 후 첫째 아들과 얘기를 잠시 나누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아들은 저에게 많이 힘드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웃었습니다. 아들이 아빠가 많이 힘들어 보인다는 겁니다. 저는 아들에게도 물었습니다. “너는 어떠니?” 첫째도 힘든 부분이 있다며 우선 제가 뭐가 힘든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아들이 많이 컸다고 느껴졌고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요즘 저의 고민과 기도 거리도 나누고 아들의 고민도 듣고 나눴습니다. 11살짜리 아들의 고민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들어서 두렵다는 것과 어른이 되기 싫다는 겁니다. 어른이 되면 순수함을 잃어버릴 것 같다는 것입니다. 저도 아들 나이 때 노을을 보며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하고 궁금해하며 두렵기까지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속으로 ‘나를 참 많이 닮았구나!’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이 두려움을 극복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며 그 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다음날 성전에 앉아서 한참을 십자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어제 아들과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꼭 어제 아들에게 해준 마지막 기도가 ‘하느님이 저에게 해주시는 기도 내용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저는 입가에 웃음이 생겼습니다. 부자지간은 닮는다. 아들이 커가면서 저를 많이 닮았습니다. 생각이 깊고 고민도 많지만 그만큼 두려움도 많고 겁도 많은 아들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아들이 많이 이해가 되고 격려도 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의 부자 관계도 닮은 것처럼 ‘하느님과 저와도 닮은 구석이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도 이런 고민 많고 힘겨워하는 나를 보시고 안쓰러워하시겠지.’ 그때 갑자기 ‘돋보기’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돋보기, 어떤 사물을 확대해서 보고 태양의 빛을 모아서 종이도 태울 수 있는 도구.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한참 성체조배 후에 왠지 ‘그런 뜻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멈췄습니다. 성당을 나와서 일을 마치는 동안에도 돋보기 생각에 잠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빨리 달려가서 큰아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사랑하는 아들의 눈망울을 보며 오늘 성전에서 든 생각을 전했습니다. “아빠와 너에겐 큰 돋보기가 마음에 숨어 있어.” 아들은 뭔 소린가 하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돋보기? 그게 왜요?”라고 반문했습니다. 저는 “돋보기는 무슨 기능을 하고 있지?”라고 묻고 아들은 “그건 확대도 되고 햇볕을 모아서 종이도 태워요”라고 얘기했습니다. “맞아. 정답!” 저는 아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아들의 가슴과 제 가슴에 손을 얹고 “너의 마음에도 내 마음에도 하느님이 심어주신 돋보기가 있어. 확대도 되고 빛을 모으는 기능도 있어. 그런데 우리는 돋보기를 만드신 분의 사용 설명서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한 거야.” “네? 사용설명서요?” “응!, 우리에겐 누구나 하느님의 계획이 있으신데 그 계획은 이 돋보기의 사용이 어떠냐에 따라서 변화될 거야. 우리가 이 돋보기의 사용설명서 대로 잘 쓰면 선한 계획으로 갈 테고 그렇지 않다면 고생 좀 하겠지. 아빠나 너는 너무 연약하고 세심해서 자꾸 근심을 확대하고 두려움을 확대하는 데 그 돋보기를 더 사용하고 있어. 또한, 세상에 집중하는 데만 그 돋보기를 쓰고 있지. 그때부터 부작용이 시작된 거야. 워낙 세심하고 고민하기 좋아하는 우리에게 세상을 확대하기 시작하면서 그 버거움이 점점 부풀더니 이젠 우리도 감당 못 할 정도로 커져서 삼켜 버릴 듯이 으르렁대고 있는 거지. 어흥!! 그래서 그 돋보기의 사용하는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단다. 바로 하느님을 확대하고 사랑을 확대하고 희망을 확대해야 해. 그 돋보기로 우리 마음에 빛을 모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린 검은 방에서 헤매다가 길을 잃고 울 거야. 아빠도 너도 하루하루를 울면서 걱정하면서 보내긴 싫지?” “네!” “초점을 주님께로 향하면 그럴 일은 없어. 행복을 그 빛 안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자, 그럼 이제부터 사용방법을 바꿔 볼까?. 사용설명서대로.” 아들도 제 생각에 흥미를 갖더니 좋다고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사용설명서 대로 바꿀 수 있어요?” “그건 바로 기도야! 두려움과 세상이 아닌 하느님으로 그 돋보기의 방향을 먼저 바꾸려면 바로 기도를 해야 돼. 기도하면 자연스럽게 그 방향은 바뀔 거야. 이제부터 우리 해볼까?” 저의 제안에 아들은 해보겠다고 허락해 줬습니다. 우리는 웃으며 손가락을 걸었습니다.저는 기도방에 들어가서 한참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서 무지한 저희 부자에게 말씀을 주심에 너무 감사드립니다’라고 기도드렸습니다. 저는 자꾸 웃음이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위로와 평화가 제 마음에 내려왔다고 느껴졌습니다. 예수님의 빛으로 흠뻑 젖는 느낌이었습니다. 돋보기의 이미지를 그리고 그 큰 돋보기가 세상이 아닌 예수님께로 향하는 이미지를 그리며 그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빛으로 저와 아들, 가족 그리고 제가 기도로 지향하는 다른 사람의 영혼을 함께 비춘다고 생각하니 기뻤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광야에서 으르렁거리는 야수처럼 주님을 원망하던 제가 어떻게 이렇게 다른 마음을 주실 수 있을까. 너무도 신비스러웠습니다. 오후 3시에 일하는 시간을 조절해서 성전의 문을 열었습니다. 깊은 평화가 저를 기다렸습니다. 성체조배를 하고 성경을 폈습니다. “야곱 가문아, 내 말을 들어라. 이스라엘 가문에서 살아남은 자들아, 들어라. 너희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나는 너희를 업고 다녔다. 모태에서 떨어질 때부터 안고 다녔다. 너희는 늙어가도 나는 한결같다. 너희가 비록 백발이 성성해도 나는 여전히 너희를 업고 다니리라. 너희를 업어 살려내리라.”(이사 46,3-4)포대기에 업힌 아기처럼 “아빠”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늘 아빠!” 아빠 등에서 투덜거리며 가기 싫다고 땡깡 부리는 저를 모태에서부터 안고 지금까지 업고 다니신 아빠가 안쓰럽게 보였습니다. 아빠 등을 발로 차면서 “내 계획은 어디 간 거야. 내가 필요한 거 좀 줘!” 하고 소리치던 그 아이가 저라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저는 늙어가도 아빠는 한결같으시다는데…. 저는 점점 나이 먹으며 완고해지고 돌처럼 단단해지는데도 아빠는 한결같이 그런 저를 사랑한다고 업고 가시는 그 모습이 그려집니다. 아빠의 등에 제가 발로 찬 것 때문에 생긴 굳은 상처들이 보입니다. 이런 망나니 아들에게도 하늘 아빠는 여전히 저를 업고 계십니다.저도 아들에게 가장 좋은 걸 주고 싶습니다. 사랑의 손길로 키워서 희망을 품는 아들로 잘 성장하길 늘 기도합니다. 그런데 제힘으론 사랑도 희망도 부족합니다. 오로지 하느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 아빠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늘 아빠의 사랑을 먹고 제 아들에게도 전해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제 마음에서 감사가 흘러나왔습니다.‘하늘 아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빠. 감사합니다….’저녁기도를 마치고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깊은 잠이 쏟아졌습니다.아빠의 품 안에서 고이 잠드는 아이처럼 우리 가족 모두 편안한 밤 되길 청원 드리며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우기홍 (미카엘, 의정부교구 인창동본당) cpbc2021.03.03
[생활 속 생태 영성, 하느님의 눈짓] 17. 노아의 방주홍태희(스테파노) 하늘땅물벗 반석벗(회장)막내딸이 어렸을 때 강아지를 키우자고 졸랐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집 안에 식구를 들인다는 것이 책임이 뒤따르는 일임을 부담스러워한 아내로 인해 딸아이의 동생 만들기는 무산되었습니다. 개 혹은 고양이와 사람 사이의 관계 이상의 감정을 나누며 사는 많은 분을 보면서 집 가까운 동물을 대하는 바른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이 동물보다 우월한 이유로 사고능력, 언어능력, 감각능력 등을 들어왔지만,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고 눈동자를 맞추는 반려견을 보면 그 말이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동물도 인간처럼 쾌락과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교류하며, 식물마저도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속속 알게 되면서, 인간이 절대적으로 우월한 존재라는 생각은 설 자리를 잃어 갑니다. 인권의 연장선상에서 ‘동물권’이 거론되곤 합니다. 그런데 동물권이란 인간이 주체가 되어 영문도 모르는 동물에게 시혜를 베푸는 듯한, 또 다른 인간 중심의 생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동물과의 친교를 권리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기에는 그 이전에 근본적인 어떤 것이 빠진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성경의 노아 이야기(창세 6―9장)를 살펴보면, 방주에 온갖 생명이 종류대로 짝지어 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에 의해 타락한 세상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뜻은 노아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향하고 있었고, 노아에게는 그들을 챙겨 방주에 태우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온갖 동물을 구하신 것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먹이와 반려동물을 챙겨주시려 하신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인간과 동물이 먹이사슬도 없이 함께하는 구원 공동체였던 노아의 방주를 묵상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뭇 생명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과 관련된 하느님의 뜻을 생각해 봅니다. 창세기는 창조의 엿샛날 들짐승, 집짐승과 함께 인간을 창조하시고 축복하셨음을 알려줍니다. 인간과 동물은 같은 날에 동일한 조건으로 하나의 근원에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참새를 자매로, 늑대를 형제로 불렀던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성은 창조의 신비를 일상의 삶에서 자연스럽고 정답게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창조 세계에서 인간과 동물은 서로 동일한 삶의 배경을 갖고 문화를 교류하며 살아온 가까운 친척입니다. 꼭 인간이 동물을 돌보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봉화에 살던 농부 최 노인과 그와 함께 30년을 살아온 소 누렁이의 실제 이야기를 담았던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떠오릅니다. 노인은 장에서 잠든 자신을 달구지로 집까지 데려온 소가 한없이 대견스럽기만 하고, 인간의 나이로는 100살을 넘긴 늙은 소를 위해 할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꼴을 베러 산을 오릅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누렁이의 죽음 앞에서 애끓는 마음으로 탄식하고 땅에 묻어 장사지내는 노인의 모습은 영락없는 동반자의 모습입니다. 남편과 사별하고 오랫동안 강아지와 살아온 할머니 한 분은, 15년 가까이 외로움을 달래주며 함께 했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자 천국에서 만나기를 기도하며 꼭 장례 미사를 드려주고 싶었습니다. 신부님이 미사 대신 기도와 축복을 해 주셨지만, 인간이 아니라서 장례 미사를 못 드린 것을 몹시 아쉬워했습니다. 반려동물이 많아지지만, 아직 여러 상황에 대한 인간 쪽의 준비가 덜 된 것이 많아 보입니다. 강아지를 키우자던 딸의 요청에, 그 생명과 끝까지 함께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있다고 거절한 아내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한편으론, 삶을 같이한 반려견의 죽음을 맞아 애통한 마음으로 신부님께 장례 미사를 부탁하시는 할머니의 마음 또한 부쩍 공감하게 됩니다.홍태희(스테파노) 하늘땅물벗 반석벗(회장)cpbc2021.04.29
[장현규 수녀의 사랑의 발걸음] 2. 아름다운 무슬림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장현규(마리스텔라) 수녀 오늘도 기차와 전철을 갈아타고 병원에 도착해 한 병실 문을 열었다. 내 눈에 들어온 환자는 안락의자에 편안히 앉아있는 모습이 병의 상태가 좋아져 간다는 것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그의 얼굴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고요했다. 이내 나를 향해 따뜻한 미소를 짓는다.“저는 한국인 수녀예요.” “저는 알제리에서 왔습니다.”그는 20대 때 프랑스에 왔다고 한다. 40여 년간 열심히 가족 생계를 위해 희생해온 노동자였단다. 그런데 지금은 암 환자가 됐다고. 그의 종교는 물론 이슬람교이다. 아들, 딸, 손자, 손녀들도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나는 애초 그에게 가족 상황을 묻지도 않았다. 그런데 먼저 차분히 말을 건네는 모습이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시느냐고 질문하니, 하루 5번 기도한다고 한다. 우리 수도 공동체에서는 시간 전례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하루 4번, 토요일은 5번 한다. 그런데 평신도 무슬림인 그는 하루 5번씩 기도를 한단다. 일전에 이따금 병실을 지날 때, 그가 작은 양탄자를 침대 옆에 깔고, 무릎을 꿇은 채 머리를 바닥에 몇 번씩 대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봤었다. 환자인 그가 더군다나 병상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을 경배하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이 알제리인 환자는 내가 한국인이라고 소개할 때 무척 놀랐다고 한다. 프랑스인도, 아랍계의 어느 나라도 아니고, ‘이맘’(이슬람교 성직자)은 더군다나 아닌, 머나먼 한국에서 온 가톨릭 수녀가 자신을 찾아온 것에 대해서 말이다. 이런 일에 무슬림인 그가 적지 않은 감동을 했음은 표정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참으로 감성이 예민하고 고매한 인품을 갖춘 분이구나.’몇 년 전, 한 무슬림 청년 환자가 나에게 이슬람 경전인 ‘쿠란’을 선물한 것을 기꺼이 받은 적 있다. 두 손에 꼭 들어오는 작은 쿠란을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다. 이후 무슬림 환자들을 방문할 때, “나도 당신들의 성경인 쿠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쁘게 얘기할 수 있는 흐뭇함도 가져 본다. 이런 것이 통교(通交) 아니겠는가!얼마 전 파리의 가톨릭 서점에서 신약성경 23권을 구매해 그리스도인 환자들에게 선물했다. 성경 선물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다시 성경 30권을 구매해 성경을 원하는 환자들에게 선물하고 있다.18년간 환자들을 방문하면서 한 번도 무슬림에게 우리 성경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오늘은 마음이 열린 이분에게 성경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그는 흔쾌히 받겠다고 답한다. 더불어 환한 미소로 한 줄 글과 함께 내 이름도 적어달라고 한다. ‘아이고, 하느님 맙소사! 이슬람 교인이 제게 글까지 부탁하다니요.’이곳 오베흐빌리에 라호즈레병원은 한 유다인 의사가 설립했다. 이처럼 나는 오랜 기간 각국에서 온 환자들을 방문하는 동안 정말 놀라운 일들을 체험하고 있다. 무슬림 환자가 원하는 대로 성경 첫 장에 이렇게 썼다.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세요. 마리스텔라 수녀.” 글을 본 그가 환한 미소로 화답한다. 그는 언제까지나 한국인 수녀가 선물한 성경을 간직하겠다고 했다. 나 역시 무슬림인 그녀와의 아름다운 만남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프랑스 성요한사도수녀회> cpbc2020.05.06
![[신앙단상]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김상수, 요셉, 야구선수)](//cpbc.co.kr/CMS/newspaper/2021/03/rc/798107_1.1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김상수, 요셉, 야구선수) 야구는 저의 전부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저의 전부를 쏟아부었고, 서울주보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야구 덕분인 것 같아 고맙습니다. 저는, 노력은 분명 좋은 결과로 보답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운동도 그렇습니다. 열심히 하는 대로, 노력하는 만큼 저에게 좋은 결과로 돌아왔습니다. 운동을 시작한 어린 시절부터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만큼 노력을 더 많이 했고, 그런 노력이 저에게 결과로 돌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노력뿐만 아니라 주변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부모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저를 위해 희생하고 애쓰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각오를 새로이 하고 힘을 내곤 했었습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미사에 빠지지 않고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학창 시절, 시합하기 전에는 아무리 이른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성당에 들렀다가 갔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어머니가 가자고 하셔서 별생각 없이 갔었지만, 성당에 가서 기도하고 나면 실제로 시합에 나가서도 더 편안하게 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스스로 성당을 찾게 되었습니다. 주로 ‘오늘도 다치지 않고, 노력한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신앙의 가장 큰 힘은 기도로서 얻는 마음의 평화인 것 같습니다. 덕분에 심리적으로도 안정되고요. 요즘도 시합 전에는 주모경을 바칩니다. 시합 직전 성호경을 바치고 시합에 임하는 것이 운동하는 데 당연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시합하기 전에 잠시라도 하느님과 만나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는 의미에서 제게는 참 소중한 시간입니다. 묵주반지를 끼고 다니고 싶지만, 손을 많이 사용하는 운동 특성상 손가락에 하기가 어려워서 목걸이로 차고 다닙니다. 언젠가 묵주반지를 끼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가 해주신 묵주반지인데, 이상하게 묵주반지를 지니고 다닌 이후에 성적이 더 좋아져서 성모님의 각별한 돌보심인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이사 41,10)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운동할 때에도, 다른 일을 할 때도 이 말씀이 큰 힘이 됩니다. 항상 저와 함께 있겠다고 해주시는 하느님께서 계시니, 모든 것에 두려움 없이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슬럼프를 겪는 시기에도 하느님께서 함께 계셨기에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느님을 더 많이 찾게 되듯이, 그때 기도를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기에 오늘의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을 비롯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cpbc2021.03.10

코로나19 확산에도 신앙생활 식지 않았다신자 참여하는 미사는 중단됐지만 TV 매일 미사 등 대송과 성경 필사·십자가의 길 기도 이어가 신자들이 2일 공동체 미사가 중단된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서로 거리를 두고 앉아 기도하고 있다. 신자들은 묵주 기도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미사에 참여할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고 코로나19 종식을 기원했다. 백영민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 성당에서 회중이 참여하는 미사가 잠정 중지된 지 2주가 넘었다. 미사 참여에 대한 목마름이 여느 때보다 간절한 사순 시기, 신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며 코로나19가 더는 확산하지 않게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가톨릭평화방송에는 TV와 라디오, 유튜브 등을 통해 방송되는 매일 미사 시간과 미사 녹화에 참여 가능 여부를 묻는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심재숙(아녜스, 70, 서울대교구 망우동본당)씨는 “세례받고 40여 년 매일 미사에 참여했는데 지난 2주일이 마치 1년처럼 느껴진다”며 “가톨릭평화방송 매일 미사를 시청하고 40일 기도, 가톨릭 굿뉴스 매일 성경 필사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도 나쁘지 않지만, 다시 교우들과 성당에서 만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중3과 대학에 입학하는 자녀를 둔 민진희(로사, 47, 수원교구 당수동본당)씨는 “가족과 주일 미사에 갈 수 없지만, 함께 모여 대송을 바치고 독서와 복음을 읽으며 자녀들의 신앙을 돌보고 있다”고 했다.SNS상에서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기도문을 공유하거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기도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최태한(요한 사도, 62, 대구대교구 칠곡본당)씨는 “교우들과 SNS를 통해 소통하며 수호성인께 기도도 드린다”며 “TV 미사를 시청하지만 그림의 떡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라고 했다. 임만택(제노, 71)씨는 “미사 중지로 대자들이 신앙을 소홀히 할까 봐 신앙생활을 독려하는 전화를 걸었다”며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주님을 향한 마음은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예비부부들이 혼인을 미루거나 예비신자 교리반 교육 중지로 성사혼에 차질을 빚는 경우도 있다. 결혼을 한 달 미룬 김모(36)씨는 “하객 없이 혼인 미사를 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많은 신자의 축복 속에 성가정을 꾸리고 싶어 혼인을 미뤘다”며 “위약금 없이 혼배를 미룰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본당 측에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9월 결혼을 앞둔 예비신자 임모(31)씨는 “예비신자 교육이 미뤄지며 혼인 전에 세례를 받을 수 없어 속만 태웠다”며 “세례를 먼저 받고 못다 한 교육을 마칠 수 있다는 신부님의 말씀에 한시름 덜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평화신문2020.03.04

사람을 구하기 위해 바친 ‘귀한 선물’ [사유하는 커피] (6)다윗의 볶은 곡물이 커피인 이유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커피가 ‘진심 어린 선물’이란 의미를 갖게 된 사연 역시 성경에 담겨있다. 에덴동산의 선악과에서 야곱의 불콩죽으로 이어지는 창세기는 커피의 각성 효과와 에너지 증진 효과를 비유로 들려주는 대목이 있다. 구약 성경 연대표에 비춰볼 때, 기원전 21세기에서 기원전 17세기에 걸친 세 족장(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시대를 지나 여호수아를 시작으로 한 역사의 시대가 펼쳐진다. 마태오 복음을 따라 예수의 족보를 따져 보면, 27대조(루카 복음은 42대조) 할아버지가 다윗이다. 다윗의 삶을 전하는 사무엘기 상권 25장 18절에 커피가 ‘볶은 곡물’로 등장한다. 볶은 곡물을 커피로 풀이한 인물은 독일 킬대학교 윤리철학 교수이자 언어학자인 조지 파스치우스(George Paschius, 1661~1707)였다. 그는 1700년 라이프치히에서 출간한 라틴어 논문 「고대 이후의 새로운 발견」에서 “다윗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아비가일이 선물한 볶은 곡물 다섯 스아는 커피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라틴어 표준 성경인 「불가타」(Vulgata) 와 히브리어 원본의 표현을 분석해 볶은 곡물은 불에 의해 볶거나 말린 곡물을 뜻하는 것임을 밝혀냈다. 미국 언론인이자 「올 어바웃 커피(All about coffee)」의 저자인 윌리엄 우커스는 다윗보다 1000년가량 앞선 시대에 묘사된 ‘야곱의 불콩죽’이 커피일 수 있다는 에티엔 뒤몽(Etienne Dumont, 1759~1829)의 견해와 볶은 곡물이 커피라는 관점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아비가일의 ‘볶은 곡물’(한국 주교회의 발행 「성경」은 ‘볶은 밀’로 옮김)은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간절함이 밴 선물이었다는 점에서 일반 곡물과는 가치가 다르게 비쳐진다. 당시 상황은 급박했다. 다윗이 사울의 시기를 받아 쫓기는 신세가 돼 나발에게 식량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화가 치민 다윗은 400~600명의 무리를 이끌고 나발을 칠 기세였다.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이 발 빠르게 나서 ‘빵 이백 덩이, 술 두 부대, 요리한 양 다섯 마리, 볶은 곡물 다섯 스아, 건포도 백 뭉치, 말린 무화과 과자 이백 개를 여러 나귀에 싣고 다윗을 찾아가 바쳤다.(1사무 25,18 참조) 스아는 요즘으로 치면 쌀 4되 분량이다. 1되가 1.6kg 정도이니 다섯 스아는 32kg에 달한다. 이를 단순히 ‘밀’로 보기에는 다윗이 거느린 무리의 규모와 비교할 때 그 양이 부족하다. 아비가일이 인색하게 식량을 바칠 상황이 아니었다. 32kg을 커피로 본다면 넉넉하고도 더욱 귀한 선물이 된다. 볶은 곡물이 느닷없이 커피로 해석된 것도 아니다. 다윗의 증조할머니 룻이 다윗의 증조부 보아즈를 만난 과정을 소개한 구약 성경 룻기(2,14)에도 커피가 볶은 곡물로 묘사된다고 에티엔 뒤몽은 주장했다. 이 구절에서 보아즈는 굶주린 룻에게 빵을 주어 식초에 찍어 배불리 먹게 한 뒤 ‘볶은 곡물’을 내어준다. 굶주린 자에서 배를 채울 빵, 그리고 에너지까지 북돋울 수 있는 커피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선물이다. 다윗은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에 올랐지만, 훗날 예수님께로 이어지는 왕가를 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이야기 속에 커피가 거론되는 것은 정색하고 진위를 따질 일이 아니다. 300여 년 전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조지 파스치우스가 대학 캠퍼스에서 급속히 퍼지며 인기를 끌던 커피를 ‘볶은 곡물’로 언급함으로써 많은 젊은이로 하여금 성경을 펴보게 했는지를 상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진실이란 종종 그 자체보다는 쓰임새가 중요하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06.10

좋은 커피에 걸맞는 이름을 붙여주었으면[사유하는 커피] (29)세례명과 커피명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 이름이란, 얼굴을 기억하기 위한 도구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곧 잊혔고, 내 삶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휑한 바람으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일학교에 들어가 세례명으로 불릴 때에서야 어머니의 태중에서 받은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점차 세례명의 의미를 곱씹으면서, 인간에게 이름이란 물건에 붙는 꼬리표 이상의 무엇이라는 생각이 깊어졌다.세례명은 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다는 징표이다. 처음부터 있었던 게 아니고 14세기 비엔 공의회(1311~1312) 이후 도입된 일종의 문화이다. 세례명이 신앙심이 깊고 죄짓지 않는 선한 사람임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 있는 나약한 인간임을 잊지 말고 선행을 실천하라는 가톨릭의 당부이자 당사자의 다짐이다.세례명이 삶의 지향점이 되기도 하는 것은 아브라함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기원전 19~20세기 우르에서 그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은 아브람(Abram)이었다. ‘위대한 아버지’라는 뜻이다. 아브람은 99세가 돼서야 하느님에게서 ‘수많은 군중’을 뜻하는 하몬(hamon)이 합쳐진 이름 ‘아브라함(Abraham)’을 받았다. 그 후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얻고 이스라엘, 이슬람 등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됐다. ‘예수’는 히브리어로 ‘하느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으로 부활에 대한 약속이 이름에 담겨 있다. 아브라함과 예수의 사례를 통해 이름은 그 사람의 운명을 이끌어주고 응원하는 축복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름이 품고 있는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본능적이다, 그 사례는 18~19세기 아프리카 노예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와 노예생활에서 구한 인물이나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한 인물을 성경에서 찾아 이름을 붙였다. 당시 노예 이름의 24%가 모세, 새드락, 솔로몬 등 성경 속의 인물들이다. 새드락은 이스라엘 백성의 바빌로니아 포로 시절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에 던져졌으나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살아남은 인물이다. 케빈 코스트너가 열연한 영화 ‘늑대와 춤을’에서 여주인공은 ‘주먹 쥐고 일어서(Stands With a Fist)’라는 인디언식 이름을 받으면서 비로소 그들의 세계로 동화된다. 사회학자 밀러는 “이름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붙여주고 인정해주는 사회적 개성(social personality)”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신앙인에게 이름은 그 이상의 신비함을 담고 있다.이름으로 커피를 생각한다. 커피에서 신을 보았다는 둥, 장미향이 풍긴다는 둥 온갖 찬사를 보내며 귀한 커피라고 자랑하는 커피들을 보면 이름이 실망스럽다. 게이샤, 모카, 루메 수단, SL23, H16, 마르셀레사 등 커피 이름들이 외래어이기에 신비감을 주지만 유래를 알면 화가 치민다. 이런 이름은 깨끗한 커피들이 지닌 고귀함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게이샤는 커피나무가 자란 아프리카 마을명인데, 그마저 게샤를 틀리게 부르고 있다. 모카는 커피를 실어 나르는 항구의 이름이고, 루메 수단은 커피가 자란 나라에서 따왔다. 무엇이 특별한지 이름을 봐선 잠재력은커녕 정체성조차 알 수 없다. H16은 교배시험장에서 샘플에 붙었던 표기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고, 마르셀레사는 프랑스의 지명 마르세유이다. 스페셜티 커피의 유행과 함께 혈통까지 따지며 고급문화를 만들겠다고 부산을 떨면서 이름은 이렇게 붙이고 있다. 한 잔의 커피가 우리의 관능을 어루만지며 깊은 사유와 묵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렇게 무심해서는 안 된다. 세례명을 부여하는 심정으로 커피 품종의 혈통과 잠재력에 알맞은 이름을 선사하는 지점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박영순(바오로, 커피비평가협회장, 단국대 커피학과 외래교수) 평화신문2020.12.01

“환대할 수 없는 것을 환대하는 것이 진짜 환대죠”전북대 왕은철 교수 신작 「환대예찬」, 동화 「어린왕자」·구약 창세기 등 다양한 문학·성경 속 환대 의미 분석 전북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왕은철 교수가 문학적 서사를 통해 환대의 가치를 짚어낸 「환대예찬」을 펴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환대(歡待). ‘기쁠 환’에 ‘기다릴 대’를 쓴다. 반갑게 맞아 정성껏 대접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환대를 생각하면 환대를 받을 만한 사람을 떠올린다. 차갑고 소홀히 대한다는 뜻의 냉대와 홀대는 환대의 반의어다. 환대와 마찬가지로, 냉대를 생각하면 냉대를 받을 만한 사람이 떠오른다. 이런 논리라면, 환대와 냉대는 그것을 받을 만한 사람의 것이다.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냉대하고, 환대할 만한 사람을 환대한다면 ‘환대의 정신’은 도대체 왜 필요할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만한 사람을 용서하기는 쉽다. 전북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왕은철(미카엘) 교수는 환대 예찬가다. 460쪽의 적지 않은 분량에 처음부터 끝까지 환대를 예찬한 신작 에세이 「환대예찬」(현대문학)을 펴냈다. 인간이 빚어낸 환대의 방식과 윤리를 다루고, 시대가 주목한 문학적 서사를 통해 환대의 정신을 재해석했다. 환대의 대상과 의미, 가능성을 다면적으로 성찰했다. 2017년 10월부터 2년간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한 에세이를 모았다.왕 교수는 말한다. 인간이 가진 놀라운 능력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기 것처럼 느낄 줄 아는 능력이라고. 이웃에 대한 사랑과 타자에 대한 환대도 여기에서 나온다. 문학 역시 이러한 인간의 공감 능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자기 이야기만 반복하는 자기중심적인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문학이 타자에 관한 것이듯 환대와 사랑 역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작가는 「어린 왕자」와 「몽실 언니」부터 시대의 고전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비롯해 구약성경의 창세기와 판관기 등 고전과 문학 작품을 넘나들며 환대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건져 올렸다. 작가 한강의 에세이이자 소설인 「흰」과 「소년이 온다」가 주목하는 애도 역시 환대의 형식임을 다뤘다.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존 맥스웰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통해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이 환대하는 과정에 인간의 내적 결핍, 윤리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음을, 그것이 환대의 진정한 정신임을 강조하고 있다. 환대의 수혜자는 곧 자기 자신이 된다는 역설이다. “환대는 마음이면서 물질이다. 따뜻한 말로 어루만질 때는 마음이고, 필요한 음식을 가져다줄 때는 물질이다. 이처럼 환대는 빈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든 물질이든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행위다.”(395쪽)환대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말한 것처럼 타자의 이름, 언어, 성별, 인종이 무엇이든 행해져야 한다. 자크 데리다는 무조건적인 환대의 개념을 언급하며,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진짜 용서고, 환대할 수 없는 것을 환대하는 것이 진짜 환대”라고 강조했다. 작가는 20년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자크 데리다의 용서에 관한 강연을 듣고, 세상의 고통에 관심을 두게 됐다. 그 이후 애도와 상처, 환대 등 치유라는 일관된 주제에 천착해 목소리를 내왔다. 2018년에는 문학 작품에서 나타난 죽음, 애도, 트라우마를 연구해온 공로로 ‘생명의 신비상’ 인문사회과학 분야 본상을 받았다.혐오를 통해 환대를 가르치는 사회다. 최근 출판 시장에는 혐오의 대상, 현상, 윤리를 분석하는 책들을 줄줄이 나왔다. 혐오와 인권, 혐오 표현을 거절하는 법 등을 가르침으로써 오히려 혐오를 둘러싼 부정적 서사를 확대 재생산한다. “혐오를 혐오하라”는 말보다 “환대하라”는 말의 힘은 더 세다. 혐오는 환대를 품지 못하나, 환대는 혐오를 품는다. 왕 교수는 머리말에서 “환대가 부재한 사회를 환대가 넘실대는 사회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도 문화”라면서 “타인을 향한 환대는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한 환대로,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고 강조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20.03.11

‘작별 키스’에 담긴 숨은 뜻은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의지[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장면] (55)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입맞춤’ 프란체스코 하예즈, ‘키스’(1859년), 브레라 피나코테크 소장, 이탈리아 밀라노. 이탈리아 민족의식 태동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체제는 장화 반도를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다. 프랑스 혁명의 불길은 이탈리아에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전했고, 여러 군소국가로 분열되어 있던 장화 반도는 민족의식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 체제가 붕괴한 뒤 1814년 빈 회담을 계기로, 이탈리아의 통일을 향한 행보는 본격화됐다. 그러나 갈 길은 녹록지 않았다. 지난 호에 잠시 언급했지만, 이탈리아가 통일하려면 당시 북부 이탈리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를 몰아내야 하고, 교황청의 반대를 극복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오늘날 보다시피 죽어도 이탈리아에 합류하지 않겠다고 버틴 ‘산 마리오 공화국’ 같은 나라도 있었다.프랑스 대혁명 시절부터 19세기 후반, 이탈리아가 통일하고 수도를 로마로 정한 뒤 교황을 ‘바티칸의 수인(囚人)’으로 만들 때까지, 그 시기의 교황과 교황령은 한 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교회 입장에서 19세기는 시작부터 숨쉬기조차 힘든 시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복자 비오 9세 교황은 이탈리아 통일의 급물살 속에서도 로마와 교황령 안에서 지도자로서 나름의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부흥’을 의미하는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는 곧, ‘통일운동’을 의미했고,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독립전쟁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그것을 오늘 소개하는 하예즈의 작품으로 설명해 보기로 하겠다. 이 작품은 남녀가 격정적인 사랑의 키스를 하는 걸로 보이지만, 역사적, 정치적 은유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하예즈는 이 작품을 모두 4점 그렸다. 3점은 유화고, 하나는 수채화다. 모두 이탈리아 통일의 상징으로 밀라노 브레라와 암브로시아나 피나코테크에 있다. 독립전쟁과 세 가지 버전의 그림 1848년 이탈리아는 제1차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로 끝났고, 이탈리아 혼자 힘만으로는 오스트리아군을 몰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1858년 주세페 가리발디, 주세페 마치니와 함께 이탈리아 통일의 3걸이 된 카보우르 백작 카밀로 벤소(Camillo Benso Conte di Cavour)의 제안으로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와 비밀리에 ‘플롱비에르 협약(Plombires Agreement)’을 체결하고 이듬해, 제2차 독립전쟁에 승리함으로써 본격적인 통일에 접어들었다. 1859년 프랑스군의 원조를 얻어 오스트리아군을 무찌르고 이탈리아 중부와 북부를 점령한 것이다. 하예즈의 첫 번째 ‘키스’는 바로 그해, 밀라노의 명문 출신 알폰소 마리아 비스콘티 디 살리체토(Alfonso Maria Visconti di Saliceto) 백작이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z)에게 개인적으로 의뢰했다. 비스콘티는 프랑스와 사르데냐 왕국 간의 동맹이 가져올 ‘희망’을 그림에 담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림 속으로14세기 복장을 한 청춘남녀는 중세기 한 저택의 현관에 있다. 낭만주의의 상징이 된 이 그림 속 남녀의 키스는 마지막 작별 인사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맞서 전투에 나가는 이탈리아의 젊은 병사가 연인에게 굿바이 키스를 한다. 여성은 보내고 싶지 않다는 듯 연인의 어깨를 거세게 붙잡고 있다. 남성의 왼발이 맨 아래 계단에 올린 사이, 옆구리에 찬 칼이 그의 신분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동료로 보이는 한 남성의 그림자가 왼쪽 문 저편에 있는 것 같다. 키스하는 두 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 곧 남성의 빨간 바지, 여성의 흰 속옷과 청색의 드레스는 프랑스의 국기 색이다. 자유, 평등, 형제애를 의미한다. 여기서 두 사람의 입맞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두 국가의 동맹관계를 상징한다. 그렇게 그려진 이 그림은 25년 이상 비스콘티의 호화로운 저택을 장식했다가 1886년 알폰소가 죽기 1년 전에 브레라 피나코테크에 기증했다. 흔히 ‘수채화 버전’으로 알려진 뒤이은 작품은 같은 해(1859년)에 작가가 연인 카롤리나 주키의 언니에게 선물용으로 그린, 달걀 형태의 작은 그림이다. 첫 번째 버전과 같은 색으로 현재 밀라노의 암브로시아나 피나코테크에 있다.두 번째 유화 버전은 1861년 이탈리아 왕국이 선포되던 해에 그렸다. 그해 통일의 3걸은 빅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를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왕으로 추대했다. 그림 속에서 여성은 흰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이것으로 하예즈는 작품을 이탈리아 통일에 헌정했다. 세 번째 유화 버전은 1867년 이탈리아 통일이 완성되고, 남자의 망토 왼쪽에 초록색 외투가 추가되고 계단에 흰색 천이 앞서 남자의 빨강 바지와 함께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한다. 흰색 천과 남자의 외투 밝은 녹색이 앞의 버전에 추가됐다. ‘키스’라는 주제를 통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동맹이 이탈리아 통일로 이어졌고, 이것은 콘스탄티누스의 기증에서 시작되어 단테가 한탄하기도 했던, 교황의 세속권력이 종식되는 것을 의미했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작가인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z, 1791∼1882)는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인이었고, 어머니는 이탈리아인이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이미 많은 것을 함의한다고 할 수 있다. 베네치아 학파들의 파스텔톤 그림으로 학습을 시작했다. 1809년 로마 아카데미아 주최 ‘로마 견습’ 기회를 주는 대회에서 만점을 차지하며, 로마시에서 주는 장학금과 보조금을 받으며 3년간 공부했다. 이전부터 볼로냐, 피렌체, 시에나를 거쳐 로마에 안주하는 과정에서 라파엘로를 깊이 연구했고, 로마에서 여러 중요한 직책을 수행하고 있던 안토니오 카노바를 만났다. 로마의 치코냐라 공작은 그를 두고 “위대한 이탈리아 회화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줄 인물”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카노바의 도움으로 카피톨리니 박물관과 키아라몬티 박물관에 수집된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작품들을 공부할 기회를 얻었고, 바티칸 궁전에서 라파엘로의 작품들을 만났다. 이런 경험은 성경과 역사, 인물을 주제로 바로크와 로코코의 웅장하고 화려한 기법이 아니라, 단순하고 명료한 신고전주의에 안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예츠는 1820년을 전후로 밀라노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새로운 낭만주의 분위기를 접했고, 유명 정치인들과 접촉하며 당대 명사들의 초상화로 이름을 얻었다. 극도로 세밀한 묘사와 인물의 미세한 감정변화까지 포착해내는 낭만주의적 정교함으로 큰 찬사를 받았고, 1850년 브레라 아카데미아에서 회화 분야 학과장이 됐다. 이후 그는 고전주의 분위기에 개인적인 감성과 인간과 자연의 자연스러운 동화를 통해 낭만주의적인 색채를 드러냄으로써 신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의 이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882년 91세를 일기로 밀라노에서 생을 마감했다. 낭만주의의 가장 위대한 해석자이탈리아 통일의 영감을 불어넣었던 주세페 마치니(Giuseppe Mazzini)는 밀라노에서 활동하며 애국심이 투철한 하예즈를 두고 “19세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이상주의 화가”, “이탈리아에서 국가주의 사상이 요구하는 역사회화의 수장”이라고 극찬하며, 낭만주의의 가장 위대한 해석자로 꼽았다. 스탕달도 그를 두고 낭만주의적 이상을 가장 장엄하게 해석한 몇 안 되는 이탈리아 예술가 중 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하예즈가 ‘키스’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사적인 감정과 애국심이 동일한 맥락에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감정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조국이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잠시(혹은 영원히) 헤어지는 희생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소르지멘토의 낭만적, 민족주의적, 애국적인 이상을 상징하며, 19세기 이탈리아의 정치적 변화를 색으로 함축한 탁월한 작품이다. 미(美)와 사랑, 거기에 애국심까지 담긴 이 작별의 ‘키스’는 이탈리아 국가 탄생의 상징이 되었다. 이것은 비오 9세 교황의 정치력과 외교력이 아무리 훌륭해도 이탈리아가 통일로 가는 운명의 물꼬를 되돌리지는 못했다는 것을 의미했다.프란체스코 하예즈, ‘키스’(1859년), 브레라 피나코테크 소장, 밀라노김혜경 (세레나, 부산 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cpbc2021.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