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은 왜 '신앙의 해'를 선포했나?생동하는 교회, 새 복음화로의 초대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현대인들의 시선이 다시 하느님을 향하도록 하기 위해 새로운 복음화의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신앙의 해' 선포는 새로운 복음화 계획의 일환이다. 【CNS 자료사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달 16일 「믿음의 문」(Porta Fidei)이라는 제목의 자의교서를 발표하고 내년 10월 11일~2013년 11월 24일을 '신앙의 해'로 선포했다. <본지 10월 23일자 1면 참조> 그럼 교황은 왜 바오로의 해와 사제의 해에 이어 이번에 또 신앙의 해를 선포했을까. 교황은 16일 신앙의 해를 선포하는 미사에서 "온 교회는 사람들을 그들이 헤매고 있는 광야에서 생명의 풀밭으로 이끌어줘야 한다"며 신앙의 해 선포 목적은 이러한 교회의 복음선포 사명에 새로운 활력을 주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교황은 6년 전 교황 즉위 미사에서도 "사람들을 광야에서 생명의 풀밭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복음 선포사명에 새 활력 주기 위해 신앙의 해는 교황이 장대한 비전을 갖고 추진 중인 '새로운 복음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교황은 이미 '그리스도 신앙의 전수를 위한 새로운 복음화'라는 주제로 내년 10월 7일 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를 소집해 놓은 상태다. 세속화와 물질문명 속에서 활기를 잃어가는 현대교회, 특히 그리스도교 전통과 가치관이 흔들리면서 위기를 겪는 서구교회(사회)에 복음화 비전을 제시하려는 시노드다. 내년 10월이면 주교 시노드와 신앙의 해가 며칠 간격을 두고 개막된다. 이를 놓고 볼 때, 교황은 현대사회에서 복음화 사명을 수행하려면 새로운 열정과 방법, 표현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교회가 먼저 새로운 활력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천 강조 교황은 현대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방법으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실천과 교리교육 강화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자의교서 「믿음의 문」을 통해 드러냈다. 신앙의 해가 시작되는 내년 10월 11일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교황은 자의교서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부들이 남긴 문헌들은 그 가치나 광채가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나는 공의회가 20세기 교회에 내려진 큰 은총이라는 점을 강조할 의무를 느낀다. 이제 막 시작된 이 세기에 우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나침반을 공의회에서 발견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의회는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교회 쇄신에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또 1992년에 반포된 「가톨릭교회 교리서」를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진정한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신앙의 해 개막일은 「가톨릭교회 교리서」 반포 2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이 교리서는 1985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임시총회가 신앙과 윤리에 관한 가톨릭교리를 망라하는 교리서(개요서) 편찬의 필요성을 제기해서 나온 것으로, 전 세계 교회에서 발간되는 교리서의 표준판 역할을 하고 있다. 총 4편, 1200여 쪽에 달하는 이 교리서의 한국어판(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발행, 2003년)도 이미 나와 있다. 교황은 "이 교리서에서 교회가 2000년 동안 받아들이고, 지키고, 제공했던 가르침의 풍요로움이 흘러나온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교리서는 우리의 문화적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그리스도인 교육과 관련된 이들에게 신앙의 실질적 도움이 되는 도구"라며 "이 교리서에 체계적, 유기적으로 정리돼 있는 신앙의 근본 내용을 재발견하고 연구하려는 구체적 노력이 신앙의 해에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교리서 내용 연구로 교리교육 강화 교황은 교리교육과 관련, 신앙교리성에서 교회와 개별 신자들이 신앙의 해를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하는 공지(Note)를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신앙의 해는 온 세상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주님을 향하여 새롭게 돌아서라는 초대"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의 재발견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심화 방안을 모색하면서 이 초대에 응할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김원철2011.11.08
[특집] 서울대교구 사목국 연구보고서 주요내용새로운 복음화, 교회 쇄신 · 세상 복음화가 목표서울대교구 사목국이 최근 발표한 「새로운 복음화 개념 연구 및 사목적 모색」에 관한 연구보고서는 '새로운 복음화'의 개념을 명확히 정립하고, 2003년 교구 시노드 최종문서에 입각해 새로운 복음화를 실현하기 위한 사목정책을 담았다. 사진은 2003년 교구 시노드 후속 실천을 위한 서울대교구 사제대교 연수회. 올해 한국 가톨릭교회의 중요 화두로 떠오른 단어가 바로 '새로운 복음화'다. 서울대교구는 2020년을 전망하면서 2011년부터 중장기 계획으로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를 교구 사목정책의 주제로 삼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각 교구 사목교서에서도 새로운 복음화에 초점을 맞추고, 새로운 복음화를 향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사목정책을 입안하고 실행에 옮기려면 먼저 '새로운 복음화'가 무엇이며,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많은 사목자나 신자들이 새로운 복음화가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별로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선교, 복음화, 새복음화, 재복음화 등의 용어와 명확한 구별 없이 혼용되고 있는가 하면 별개의 새로운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새로운 복음화'의 개념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이를 위한 사목정책을 수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개념이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체적 사목정책을 논의하다 보면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 각 교구마다 새로운 복음화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른 사목정책도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전개되고 있다. 교구 사목국(국장 민병덕 신부)이 발표한 「새로운 복음화 개념 연구 및 사목적 모색」 연구보고서는 먼저 새로운 복음화의 명확한 개념을 정립하고, 서울대교구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나가야 할 사목정책 방향과 비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연구보고서 내용을 요약 정리한다. 서영호 기자 amotu@pbc.co.kr■ 새로운 복음화의 개념 연구▶새로운 복음화의 개념 형성 배경 '새로운 복음화(new evangelization)'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79년 6월 9일 폴란드 모길라의 거룩한 십자가 순례지 미사 강론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이후 제19차 라틴아메리카 주교 총회(1983)에서 공식 개념으로 대두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새로운 복음화를 「평신도 그리스도인」(1988), 「교회의 선교사명」(1990), 「제삼천년기」(1994) 등 여러 문헌과 회칙에서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분명 이 사명은 재복음화가 아니라,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사명입니다. 곧 그 열정과 방식, 표현에서 새로운 것입니다"(제19차 라틴아메리카 주교 총회 강론). 즉 이미 복음화가 이뤄진 상황에서 반복해 복음화를 시도하는 재복음화와 다르게,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당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확산과 유사 종교 출현이라는 '새로운 상황과 환경 변화에 직면해 용감하게 새 길을 내는 것'이 새로운 복음화의 개념으로 이해했다. 단 라틴아메리카의 맥락과는 분명 다른 한국교회 현실에서 '새로운 복음화'의 과제가 무엇일지 식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강조한 '새로운 복음화'는 사실 열정이 시들어가는 유럽 교회와 국교는 가톨릭이나 복음 정신이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라틴아메리카 교회를 우선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처한 사회 환경과 여건을 돌아볼 때 한국 교회 역시 '새로운 복음화'를 이뤄야 할 시점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복음화의 의미 새로운 복음화라는 용어가 한국교회에 처음 알려졌을 때, '새로운'의 한국어 의미로 인해 '새' 신자를 입교시킨다는 의미로 축소, 전달됐다. 한국어의 새복음화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직접 선교를 뜻하는 것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강조해 온 '새로운 복음화'와 의미가 다르다. 새로운 복음화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선교→복음화→새로운 복음화'로 변화돼 가는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 '선교' 개념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 '복음화'의 의미로 대치됐고, '복음화'는 1980년대 이후 시대적 흐름 안에서 '새로운 복음화'의 의미로 변화됐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자 사명이므로 새로운 복음화 역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실현하는 '하느님 선교'에 뿌리를 둔다. 아울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정의한 복음화의 내용은 △말씀 선포와 삶의 증거이며 △복음적 가치기준으로 삶의 모든 영역을 변화시키고 △복음을 선포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를 복음화해야 한다는 의미로 정리될 수 있다. ▶왜 '새로운 복음화'인가? 새천년기에 접어들면서 갈수록 복음화 과제를 수행할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다. 2012년에 열릴 제13차 세계주교대의원회(주교 시노드) 「의안개요」는 왜 새로운 복음화가 필요한지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식별 노력을 해야 할 뿐 아니라, 여러 분야들 속에 하느님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이러한 분야들을 복음의 빛으로 비추며 그 안에서 직접 하느님을 증언하도록 부름 받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를 정의하자면, 이러한 시대 변화를 볼 수 있는 사고방식이며, 그리스도교가 인간 역사 안에서 새로운 상황들을 읽고 해석하는 법을 아는 능력이다." 결국 새로운 복음화는 복음화 사명을 현실적 맥락 안에서 잘 실천하려는 노력이자 시도이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새로운 상황과 조건에 맞서 용감하게 새 길을 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교회의 본질인 복음화를 잘 실행하려고 기능적 측면을 보완하는 것이 새로운 복음화의 핵심 내용이다.■ 새로운 복음화의 과제와 사목적 제안 서울대교구의 '새로운 복음화' 과제는 한마디로 '2020년을 향한 선교'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교구 2011년 사목교서를 보면 양적 선교를 포함하면서 동시에 질적 선교에도 주안점을 두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2020년까지 인구 대비 가톨릭 신자 비율을 20%로 성장시키겠다는 양적 선교에 치중하던 사목정책 방향이 질적 복음화의 개념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 사회 변화에 따라 미처 예상하지 못한 많은 시대적 도전들이 다가오고 있다. 이에 따라 현 시대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실현하려면 몇 가지 사목적 기준이 전제된다. ①새로운 복음화는 삶의 자리에서 현장 중심으로 펼쳐져야 한다. ②새로운 복음화의 내용과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며 살겠다는 적극적 사랑 실천으로 표현돼야 한다. ③새로운 복음화는 인격적 만남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④새로운 복음화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에 입각해야 한다. ⑤새로운 복음화 방식은 정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⑥새로운 복음화 활동은 '생명윤리'와 '환경생태윤리'에 중점을 둬야 한다. ⑦죽음의 문화에 맞서 '생명의 문화'를 피워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새로운 복음화에 입각한 사목정책 수립의 기본 방향은 교회의 내적 자기쇄신과 외적 세상의 복음화라는 두 가지 큰 틀에 맞춰진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새로운 복음화의 과제는 한마디로 '오늘날 새로운 상황과 조건 변화에 맞서 용감하게 새 길을 내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읽는 사고방식과 복음을 실천할 수 있는 담대한 행동양식, 시대의 징표를 읽고 그 징표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하는 식별 능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통찰하고 교회 현실을 진단하려면 다방면에 걸친 연구와 사회과학적 조사ㆍ분석, 지역 특성에 따른 구체적 현실 분석 및 상황 판단이 요구된다. 아울러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공동으로 사목적 과제를 연구하기 위한 사목팀이 구성돼야 한다. 퇴사자22011.10.25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1) 연재를 시작하며시대 고민하며 주님 길로 인도하려는 교회 노력보편 공의회라고도 부르는 세계 공의회는 2000년 교회 역사에서 모두 21번 열렸다. 사진은 1962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린 21번째 세계 공의회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회기의 한 장면.◇공의회란 공의회(영어 Council, 라틴어 Concilium)는 신앙과 윤리 규범 및 교회 생활과 관련한 주교들의 회합을 말합니다. 지난 1983년에 반포된 보편교회법인 「교회법전」에 따르면, 주교들의 회합과 관련해 가톨릭교회는 세 가지 기구를 두고 있습니다. 주교회의와 주교대의원회의, 그리고 공의회입니다. 주교회의는 한 국가 또는 특정 지역 하느님 백성의 선익을 위한 그 국가 또는 지역 주교들의 상설 협의체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CBCK)가 있지요. 주교시노드라고도 하는 주교대의원회의는 특정 국가나 특정 지역 또는 세계 교회 전체를 위한 주교들의 회합입니다. 그러나 그 지역 또는 국가의 모든 주교가 회원으로 참가하는 주교회의와 달리 주교대의원회의는 모든 주교가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주교회의에서 선출한 대의원 주교들과 교황이 임명한 대의원 주교들이 참석합니다. 또 주교대의원회를 소집하고 회의 주제를 정하는 것은 교황의 고유한 권한입니다. 주교대의원회의에서 참가 주교들에게 투표권이 있지만 그 투표권은 해당 사안에 대한 확정 또는 실행 여부를 가리는 의결 투표권이 아니라 해당 사안을 교황에게 건의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가리는 건의 투표권입니다. 말하자면 주교대의원회의는 그 자체로 의결기구가 아니라 교황의 자문기구라는 것이지요. 가장 최근에 열린 주교대의원회의로는 지난해 10월 로마에서 열린 중동 아시아를 위한 주교대의원회의 특별회의가 있지요. 공의회는 협의체인 주교회의나 자문기구인 주교시노드와 달리 회의에 참가하는 주교들이 투표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회의입니다. 공의회는 크게 지역(개별) 공의회와 세계(보편) 공의회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지역 공의회는 다시 전국 공의회와 관구 공의회로 나눌 수 있는데 전국 공의회는 전국 차원에서 여는 공의회를, 관구 공의회는 관구 차원에서 여는 공의회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 관구 공의회를 연다고 하면 서울 관구에 속한 모든 교구(서울 춘천 대전 인천 수원 원주 의정부)의 주교들이 참가합니다. 공의회, 신앙 윤리 규범과 교회 생활과 관련한 주교단 회합교황이 소집하며 주교들 투표로 결정된 사항은 문서로 공표니케아공의회 시작으로 세계 공의회 지금까지 21차례 열려 보편 공의회라고도 하는 세계 공의회(영어 Ecumenical Council, 라틴어 Concilium Oecumenicum)는 말 그대로 전 세계 모든 주교들이 참가하는 회의입니다. 물론 세계 공의회를 소집하고 회의를 주재하고 공의회에서 결의한 내용을 승인하는 것은 교황의 고유한 권한입니다만, 주교단에 속하는 모든 주교들은 세계 공의회에 의결 투표권을 가지고 참석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 공의회는 전 세계 주교들이 로마 주교인 교황을 단장으로 주교단을 이뤄 세계(보편)교회에 대해 장엄한 양식으로 주교단의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입니다. 세계 공의회에서 주교들이 투표로 결정하고 교황이 승인한 내용은 헌장, 선언, 교령 등 다양한 형태의 문서로 공표되고 발효됩니다. 이렇게 세계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세계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존중하고 따라야 하는 구속력을 지니게 됩니다.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예수님의 12제자들이 활동하던 사도 시대 때부터 여러 가지 어려움에 부딪칩니다. 그 중 하나는 유다인으로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여 그리스도인이 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 간의 마찰을 어떻게 중재하고 해소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5장에는 이와 관련한 대표적 이야기가 나옵니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다인들이 하듯이 할례를 받고 모세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함으로써 생긴 분쟁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원로들이 회의를 열었습니다. 회의에서 내린 결론은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을 멀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할례 및 모세 율법 준수를 놓고 생겨난 분쟁은 일단락됩니다. '예루살렘 사도회의'라고도 부르는 이 회의는 갓 태어난 그리스도교 공동체 내부의 분쟁과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소집된 첫 회의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이후 시간이 흐르고 교회가 커지면서 교회 안에서는 신앙 교리를 정립하는 문제, 교회 제도와 규율을 확립하는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이 생겨납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때로는 지역 교회 차원에서, 때로는 전체 교회 차원에서 주교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는데, 이 회의들을 시노드 또는 공의회라고 불렀습니다. 시노드라고도 부른 이유는 처음에는 시노드와 공의회의 명확한 개념 구별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초창기 회의들에 대해서는 그냥 '교회 회의'라고 번역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2000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교회 안에서는 수많은 교회 회의가 열렸는데, 가톨릭교회는 그 가운데 스물 한 번을 세계 공의회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열린 세계 공의회는 325년 오늘날 터키 수도 이스탄불(옛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동쪽으로 80km정도 떨어진 니케아에서 열린 니케아공의회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계 공의회는 1962~1965년 바티칸에서 열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지요.<세계 공의회 일람표 참조> 그런데 이 스물 한 번의 세계 공의회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한 번도 공식으로 '세계 공의회'라고 선언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교회 안에서 교황이나 학자들이 세계 공의회'로 인정한 것을 통상적으로 수용해서 인정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물론 세계 공의회로 인정받는 일반적 기준은 몇 가지 언급할 수 있습니다. 교황이 회의를 소집했는지, 교황이 직접 회의를 주재했는지 또는 적어도 교황 사절을 회의에 파견했는지, 모든 주교들이 회의에 소집됐는지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기준도 현재 '세계 공의회'로 불리는 21번의 공의회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컨대 첫 번째 세계 공의회로 인정되는 니케아 공의회는 교황이 아니라 로마 황제가 소집한 공의회였습니다. 이런 형식적 기준 외에도 공의회에서 결정한 내용이 후대 공의회에서도 전거로 계속 원용될 정도로 전체 교회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회의였다면 세계 공의회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러저러한 여러 상황을 참작해서 신학자들과 교회사학자들은 세계 공의회 목록을 작성했고, 이것이 가톨릭교회 안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는 니케아 공의회에서부터 가장 최근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스물 한 번의 세계 공의회를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이를 통해 가톨릭교회의 소중한 유산이 어떻게 형성돼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런 배움과 성찰이 우리 자신과 교회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작은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하며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퇴사자22011.02.08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온 인류에게 복음과 희망 선포한 '평화의 사도' 제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오는 5월 1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 주례로 복자품에 오른다. 이날 시복식에는 세계 각국에서 수백만 명이 몰려들 전망이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과 평화방송ㆍ평화신문도 한국 순례단을 구성,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식에 참가한다. 사랑과 평화와 화해ㆍ일치의 사도이자 행동하는 순례자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위기간 중 특히 1984년과 1989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할 만큼 한국교회와 한국인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의 시복을 앞두고 한국교회에 대한 그의 사랑과 삶, 업적 등을 되돌아보는 특집 기획을 마련한다."산토 수비토(Santo Subito, 즉시 시성을)" "산토" "산토" "산토 수비토" ….지난 2005년 4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재위기간 1978년~2005년) 선종 소식을 듣고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 몰려든 군중이 한 목소리로 연호한 구호다.세상 모든 이를 사랑했고, 온 인류로부터 사랑받은 '위대한 평화의 사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가 선종한 지 6년이 지난 오는 5월 1일 성 베드로 광장 '바로 그 자리'에서 그를 위한 전 지구인의 "산토 수비토" 함성이 울려 퍼진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는 누구인가'세기의 목자''시대의 예언자''행동하는 순례자''화해와 일치의 사도''위대한 영혼' 등으로 불리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위 26년 5개월 동안 '평화의 사도'이자 '행동하는 교황'으로서 전 인류로부터 사랑받았다.인류 전체를 위해 매일 매순간 하느님께 당신을 바쳤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원하는 이들이 있으면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 위로와 희망을 준 착한 목자였다. 또 자신을 피격한 암살자를 찾아가 먼저 용서하고, 지난 세월 동안 그리스도인들이 범한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고 먼저 화해를 구한 겸손한 사도였다. 악과 죽음의 문화에 한치 양보없이 항거해 오직 '선과 평화로써' 사회주의 붕괴와 냉전 종식을 안겨준 '정의의 반석'이기도 했다.그는 아울러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며 그 행복을 온 인류가 나누기를 희원한 '참 신앙인'이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20년 5월 18일 폴란드 바도비체에서 태어났다. 카롤 요제프 보이티야란 이름으로 평범하게 성장한 그는 8살 때 어머니를 잃었지만 독실한 신앙심을 지닌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축구를 좋아하고 시와 연극을 사랑하는 활달한 소년으로 성장했다.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사제성소를 깨달은 그는 1946년 11월 1일 사제품을 받고, 1958년 주교품에 올랐다. 이어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크라코프대교구장으로 임명됐으며 3년 뒤 1967년 6월 26일 추기경으로 서임됐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준비위원으로 활동한 그는 1971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상임위원으로 임명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 교회의 중심에 자리하게 됐고, 1978년 10월 16일 제264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독일 출신 제218대 교황 하드리아노 6세(1522~1523)에 이어 455년 만에 비이탈리아인 교황이었고, 54살에 교황직에 오른 비오 9세(1846~1878) 이후 가장 젊은 교황이었다. 58살의 나이로 1978년 10월 22일 사도좌에 착좌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재임기간 중 해외 사목방문을 104차례나 해 '순례하는 목자''흰옷의 사도'라 불렸다. 또 보편교회의 목자로서 교황 직무에 충실해 15차례 주교 시노드를 소집하고 14편의 회칙을 비롯해 수많은 문헌과 강론, 연설 등을 통해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윤리적 원칙을 공고히 하고, 시대가 요청하는 사회적 가르침을 제시했다.새 천년기를 맞이하고서도 인류 사회에 여전히 전쟁과 폭력의 어둠이 가시지 않자 교황은 2002년에 '묵주기도의 해'와 2004년 '성체성사의 해'를 잇따라 선포하고 묵주기도 '빛의 신비'와 '자비의 날' '세계청년대회' 등을 제정, 인류를 위해 교회가 가야할 올바른 길을 제시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한국, 한국 천주교회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인과 한국천주교회를 각별히 사랑했다. 그는 1980년대 두 차례나 한국인의 벗으로서, 평화의 사도로서 한국을 방문해 말과 행동으로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한민족을 위한 위대한 선교사이자 희망의 증인임을 드러냈다. 1984년 5월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벗이 있어 먼데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한국어 인사말로 큰 감동을 주었다. 그는 시성식을 바티칸에서 거행하는 전통을 깨고 서울에서 거행했고, 기적 심사를 면제하면서 한국의 복자 103위를 성인 반열에 올렸다.교황이 직접 한국 주교단에게 권유해 개최한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에 참석해 "오랜만에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하고 우리말로 인사, 한국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교황의 두 차례 방한은 한반도 전역에 화해의 싹을 틔우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젊은이들과 지성인들이 교회를 찾아 한국 천주교회의 복음화율이 급성장하는 기적과 같은 선물을 안겨줬다.교황은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 국민들이 진정한 자유와 정의, 신성한 인권 존중을 토대로 오랜 숙원인 화해와 일치를 이루기를 기원했고,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 천주교회에 충심어린 연대감을 표시했다. 교황은 아울러 "아시아인 선교는 같은 아시아인인 한국교회가 맡아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한국교회에 필요한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은 영원한 한국교회 후원자였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이길재2011.03.01
전문·다양화 되는 사목, 통합적 연구기관 필요[해설] 주교회의 정기총회 결과주교들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린 춘계 정기총회에서 상정 안건을 심의하고 있다. 주교회의(의장 강우일 주교)가 3월 31일 춘계 정기총회를 마치고 발표한 회의결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이하 사목연구소) 출범이다. 사목연구소 설립 건은 지난해 추계 정기총회에서 통과된 안건이지만, 이번에 운영규정안을 승인하고 강우일 주교를 초대 연구소장<인터뷰 23면>에 임명하면서 본격 축범시킨 것이다. 사목연구소는 상임연구원과 비상임연구원 약간 명을 두고 주교회의가 위임하는 사목 전반에 걸친 연구과제 등을 수행해 나갈 예정이다.◆사목연구소, 교회 연구소 '허브' 주교회의 산하에 사목연구기관이 설립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87년 한국사목연구소가 주교회의 사무처의 한 부서로 설립돼 연구활동과 신학잡지 「사목」 발행을 병행했으나 2007년 「사목」이 폐간되면서 해체됐다. 이후 사목 영역이 점점 전문화, 다양화되면서 통합적 사목연구기관 설립 필요성이 누차 제기돼 왔다. 강우일 주교는 3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전 사목연구소는 업무가 원활하게 추진되지 않았고, 운영에 대한 비전이 부족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주교회의가 소장을 주교급(3년 임기)으로 임명한 배경에는 이전과 달리 연구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연구물을 사목정책에 적극 반영하려는 의지가 깔려 있다. 사목연구소를 한국교회의 중추 연구기관으로 만들어 교회 내 연구소들간의 유기적 협력을 도모하려는 취지도 담겨 있다. 이렇게 되면 크고 작은 연구소들의 '허브'가 돼 연구과제를 배분ㆍ조정할 수 있고, 연구성과 공유와 사목정책 반영도 한결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청년들에 의한, 청년들을 위한' 교리서 완간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가 제출한 「청년교리서」 제7권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편 출간을 승인, 한국교회의 공식 청년교리서 발간작업(전 7권)을 마무리한 것도 이번 총회 소득이다. 청년교리서는 '교회의 내일'인 청년들을 위한 마땅한 교리교육 교재가 없는 현실에서 '청년들에 의한, 청년들을 위한' 교리서라는 구호를 내걸고 2008년 첫째 권을 발간했다. 이 교리서는 설명주입식 교리서에서 탈피해 나눔→배움→새김→다짐과 귀감 순으로 엮어 교리 핵심내용을 서로 대화하며 익히도록 짜여졌다. 또 소책자(125×205㎜) 형태인데다 경구(警句)와 성인들 삶을 풍부하게 싣고, 한 과를 8명 정도가 60분 안팎에 소화할 수 있게 하는 등 청년들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교리교육위원회는 "청년들의 삶과 신앙, 희망을 폭넓게 반영했다"며 "이 교리서는 청년들에게 신앙 쇄신과 영적 성장에 보탬이 되고, 진리와 사랑의 길로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1권 '믿음은 삶의 첫 걸음'부터 제6권 '그리스도인의 참된 삶'은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다. 7권도 곧 나올 예정이다. ◆6월 17일 한반도 평화기원 미사 주교회의가 6월 17일(시간 미정)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전국 차원의 한반도 평화기원 미사를 봉헌키로 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경색된 남북관계에 '훈풍'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시대적 소명의식에 따른 것이다. 주교들은 총회에서 북한의 잇따른 도발사건으로 남북관계가 대결 국면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예언자적 사명감을 갖고 평화를 외쳐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주교회의는 전국 차원의 미사를 통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 염원이 응집되길 기대하고 있다. 교회는 매년 6월 교구와 본당별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올해는 19일)을 지내고 있다. 주교회의 차원의 남북 화해 및 평화기원 미사는 2003년 도라산역에서 봉헌한 민족화합미사 이후 8년 만이다. ◆안건 심의 및 승인 사항 주교회의는 세계 주교대의원회(주교 시노드) 제13차 정기총회에 참가할 한국 주교회의 대표로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를, 교체대표로 서울대교구 조규만 주교를 선출했다. 제13차 정기총회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달을 위한 새 복음화'를 주제로 내년 10월 7일부터 28일까지 로마에서 열린다. 아울러 전례위원회가 제출한 「어른 입교예식」을 만장일치로 승인하고, 사도좌 추인을 받기로 했다. 또 교육위원회가 마련한 '한국의 가톨릭대학교와 고등교육기관에 관한 규정'(안)을 승인하고, 이를 사도좌에 제출하기로 했다. 또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회칙 개정안을 승인함으로써,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명칭은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로 공식 변경됐다. 이밖에 △한국가톨릭노동장년회 전국협의회의 전국 단체 설립과 회칙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 전국협의회 △한국가톨릭성령쇄신봉사자협의회 등의 회칙 개정안도 승인했다. ◆보고사항 청취 주교회의는 총회 기간에 (재)한국 카리타스 인터내셔널이 2011년 1월 3일자로 법인설립 등기를 마치고, 정기이사회에서 이종건 신부(대구대교구)를 법인 사무국장으로 임명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한국 카리타스 인터내셔널은 주교회의가 설립한 주교회의 공립 단체로서 주교회의 사회복지기관이다. 또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이 김종수 신부(서울대교구)를 교황청립 로마 한인 신학원 원장으로 재임명(임기 2011∼2016년 1월 16일)했다는 보고를 들었다. 이에 따라 김종수 신부가 주교회의 로마 업무대리를 겸임하게 됨을 확인했다. 아울러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의장 장 루이 토랑 추기경이 5월 23일부터 27일까지 방한할 예정이라는 보고를 들었다. 토랑 추기경은 방한 기간에 한국교회와 이웃종교를 방문하고, '동북 아시아 평화를 위한 종교간 대화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격년으로 발행되는 「한국 천주교 주소록」에 사제 인사이동과 주소변경 등이 제때 반영되지 못하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주교회의 사무처가 서울대교구 전산정보실과 협력해 온라인 주소록 작업을 진행하여 왔으며, 오는 예수부활대축일부터 온라인 주소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라는 보고를 들었다. 한편,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부소장으로 서울대교구 법원장 출신의 박선용 신부를 임명했다. 또 새 성가집 편찬을 위해 전례위원회 산하 성음악분과를 한시적으로 '성음악소위원회'로 격상하고, 인천교구 이완희 신부를 총무로 임명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퇴사자22011.04.05
[사회사목]서울 환경사목위원회,제1회 가톨릭 에코포럼 개최 제1회 가톨릭 에코포럼에서 유경촌 신부(오른쪽)가 참석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정길 에코붓다 대표, 김현정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사무국장, 맹주형 서울 환경사목위 교육부장, 이재돈 신부, 조현철 신부, 유 신부.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위원장 조대현 신부)는 4월 24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3층 강당에서 환경사목학술위원회(위원장 이재돈 신부) 주관으로 첫 가톨릭 에코포럼을 열고, '생태 위기 시대, 가톨릭교회의 응답과 실천'에 대해 조명했다. 성직자와 수도자, 교회 안팎 환경활동가 등 15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포럼에서 유경촌(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장) 신부는 '생태 위기 시대, 가톨릭교회의 응답'에 대한 주제발표를, 맹주형(아우구스티노) 서울 환경사목위 교육부장과 김현정(골룸바) 서울 환경사목위 사무국장이 각각 '생태 위기 시대, 가톨릭교회의 실천'을 주제로 창조보전운동과 서울대교구 환경사목 현황을 살폈다. 논평은 조현철(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신부와 유정길 에코붓다 대표가 맡았다. 김운회(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주교는 "그간 교회는 생태위기시대를 맞아 창조질서 보전과 실천에 열성을 보였고 활동가도 많이 배출했는데 영성적 측면에서 부족했다"며 "그래서 이번 포럼은 생태영성에 대한 교회 가르침을 재무장함으로써 영성적 측면을 교회에 전하게 돼 유익한 포럼이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주요 발제 내용. #"환경 파괴,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죄악" 유 신부는 최초로 환경파괴 위험성을 언급한 문헌으로 교황 바오로 6세의 교서 「팔십주년」(1971)을 꼽고, 소비주의와 빈부 격차, 인간 소외, 자연 파괴는 바로 인간이 자연을 불법 사용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이어 세계주교대의원회의 문헌 「세계 정의」(1971)와 '스톡홀름 인간환경회의'(1972)에 보낸 교황 바오로 6세의 메시지는 선진국에 의한 과도한 물질적 욕구와 낭비가 생태계 파괴의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그들의 책임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언급했다. 유 신부는 이와 함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첫 회칙 「인간의 구원자」(1979)는 인간이 하느님 창조를 완성할 협조자로 불렸지만 현실이 이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은 윤리도덕의 결여 때문이라고 진단했다고 분석하고, 의식 변화를 통한 구조 쇄신이야말로 생태계 파괴 문제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생태계 파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한 문헌으로 회칙 「사회적 관심」(1987년)을 들고, 이 문헌은 생태학적 관심(26항)이 사람들 사이에 점차 증가하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1990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세계 평화의 날 메시지는 창조질서 회복을 위한 인간의 노력을 신앙의 요청으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며, 자원 남용ㆍ파괴를 범죄로 규정하고 생태계 문제를 신앙 문제로 직결시킨 것은 2008년 3월 교황청 내사원 부원장 쟌프랑코 지로티 대주교가 환경 문제를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죄로 말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2005년)는 생태계 위기에 초점이 맞춰진 문헌은 아니지만, 성경에 담긴 창조 진리를 재확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 신부는 끝으로 인구 증가와 가난, 생태계 문제는 밀접히 연관돼 있는 만큼 생활양식의 대체가 절실하며 과학기술을 이끌 지도 원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활은 생명의 부활이며 생명 가치의 선택" '한국천주교회 창조보전운동 전개와 과정'을 소주제로 발표에 나선 맹 부장은 교회 환경운동으로 에너지 관련 운동과 땅 살림ㆍ먹을거리운동, 창조보전을 위한 생활실천운동, 생태보전운동으로 나눠 진단했다. 이어 창조보전운동의 과제로 교회의 소극적 참여를 들고, 이제 한국교회 창조보전운동은 '생태영성운동'으로 확대돼야 하며, 여성 생태운동과 지역 내 풀뿌리 창조보전단체들의 활성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을 주제로 발제를 한 김 국장은 교구 환경운동의 배경으로 창조질서보전과 완성을 위한 공청회(1991)와 하늘ㆍ땅ㆍ물ㆍ벗 모임 결성(1991), 우리농촌살리기운동(1994) 등을 꼽고, 2000년 10월 창립된 교구 환경사목위원회는 환경사목의 조직적 틀을 갖춘 계기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교구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2003)와 '초록교회 만들기' 프로젝트(2003~05), 교구장 사목서한 「생태적 삶을 사는 교회공동체」(2006), 환경사목 학술위원회 출범(2008)으로 구체화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교구 환경운동의 주요 활동으로 각종 교육과 푸르름을 만드는 잔치, 도ㆍ농한마당 및 자매결연, 본당 생활공동체 '하늘ㆍ땅ㆍ물ㆍ벗' 조직, 환경 생명 십계명과 '즐거운 불편' 운동을 들었다. 김 국장은 특히 생태적 삶을 사는 교회공동체를 위한 과제로 △환경사목학술위원회를 통한 전문 연구영역 확대 △생태계의 책임을 배우는 교육 △교구 부서 및 본당 단체 간 유기적 협력 사목 △사목회 환경 분과 설치 및 환경단체 조직 제도화 △친환경적 교회 환경 마련 등을 제시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오세택2009.04.28
49-공의회와 시노드는 어떻게 다른가요.공의회-교황이 소집하는 주교회의로 의결권 가짐, 시노드-대의원들이 중대사안 논의하고 건의 교회에서는 공의회와 시노드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어떻게 다른가요. 공의회나 시노드는 모두 교회 회의를 가리키는 용어들입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공의회는 주교들의 회의이고, 시노드는 대의원들의 회의입니다. 그래서 시노드를 대의원회의라고 부릅니다. 또 공의회는 의결권을 지니는 회의입니다. 그러나 시노드는 건의하는 권한만 지니는 회의입니다. ◇공의회 공의회는 주교들의 회의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통상적 회의가 아니라 의논하고 결정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에 하는 회의입니다. 공의회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① 보편 공의회 또는 세계 공의회입니다. 전세계의 가톨릭 주교들이 모여 보편 교회의 주요 안건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회의입니다. 공의회의 소집ㆍ 진행ㆍ 중지ㆍ 해산 권한은 모두 교황에게 있습니다. 주교단에 속한 모든 주교들은 보편 공의회에 의결 투표권을 갖고 참석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공의회에서 결정한 사항들은 교황이 승인하고 교황의 명령으로 공포됨으로써 효력을 발휘합니다. 보편 공의회는 지금까지 모두 21차례 열렸고, 가장 마지막에 열린 보편 공의회는 1962~1965년에 바티칸에서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입니다. ② 개별 공의회 또는 지역 공의회입니다. 개별 공의회는 다시 전국 공의회와 관구 공의회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국 공의회는 주교회의가 있는 그 지역 모든 개별 교회(교구)를 위해 필요하다고 여길 때에 소집하는 회의입니다(예컨대 한국 주교회의는 한국 교회 전체를 위한 공의회를 열 수 있습니다). 관구 공의회는 같은 관구에 있는 여러 개별 교회 교구장 주교들의 다수가 필요하다고 여길 때 소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국 공의회든 관구 공의회든 개별 공의회를 소집하려면 반드시 교황의 승인을 얻어야 합니다. 또 개별 공의회에서 결정된 사항들도 반드시 교황의 승인을 얻어야만 공포할 수 있습니다. 개별 공의회에서는 그 지역 교회에 속한 모든 주교들이 참석해서 의결 투표권을 행사합니다. 주교가 아닌 이들, 예컨대 수도회 장상, 교구 총대리 등은 참석하더라도 의결 투표권이 아닌 건의 투표권만 행사할 수 있습니다. ◇시노드 '함께 길을 간다'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시노드는 교회의 중요한 사안들을 논의하기 위해 대의원들이 함께 모여 의견을 나누고 필요하다고 결정한 사항들을 건의하는 회의입니다. 시노드는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① 주교 시노드, 곧 주교대의원회의입니다. 주교대의원회는 교황이 보편 교회 또는 특정 지역 교회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에 세계 각 지역 또는 해당 지역의 주교 대표들을 소집해서 하는 회의입니다. 주교대의원회의의 주제를 정하고, 소집과 진행, 중지, 해산 등의 권한은 교황에게 있습니다. 주교대의원회의는 정기(정례)회의 임시(비정례)회의, 특별회의 등으로 구분됩니다. 정기회의는 보편 교회 선익과 관련되는 문제들을 다루고자 정기적으로 소집되는 회의로 지금까지 모두 11차례 열렸습니다. 임시회의는 신속한 결정이 필요할 때에 소집되는 회의로서, 교황 수위권과 주교 단체성을 주제로 1969년에 열린 회의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20주년을 맞아 1985년에 열린 회의가 있습니다. 특별회의는 특정 지역 또는 대륙을 위한 회의로, 지금까지 모두 9차례 열렸습니다. 주교 시노드에 참석하는 주교들은 건의 투표권만 있을 뿐 건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후속 문헌을 발표하는 것은 오로지 교황의 권한입니다. 그래서 주교 시노드는 교황의 자문기구 역할을 합니다. ② 교구 시노드, 곧 교구대의원회의입니다. 주교 시노드는 소집권자가 교황이고 주교대의원들이 참석하지만 교구 시노드는 소집권자가 교구장이고 교구 성직자뿐 아니라 평신도 수도자 대표들이 참석합니다. 교구 시노드에 참석하는 대의원들도 건의 투표권만 있을 뿐 의결권은 행사하지 못합니다. 지난 1990년대 이후로 한국 교회에서는 대구대교구와 서울대교구, 수원교구가 교구 시노드를 열었고, 현재는 청주교구가 교구 시노드를 열고 있습니다. 의결투표권을 행사하는 공의회든 아니면 건의투표권만 지니는 시노드든 간에 이런 교회 회의들은 교회 곧 하느님 백성의 친교와 일치의 중요한 표현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이창훈2007.06.20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1차 정기회의 개최 의미와 배경'성체성사의 해' 마무리하는 장 성체성사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주교시노드 제11차 정기회의는 선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요청에 따라 전세계 교회가 지난해 10월부터 지내고 있는 성체성사의 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를 지닌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004년 2월 성체성사를 주제로 한 주교시노드 정기회의 소집을 발표하기 전인 2003년 4월에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를 발표함으로써 성체성사가 차기 주교시노드 주제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교황은 이어 지난해 2월22일 '교회 생활과 사명의 원천이자 정점인 성찬례'를 주제로 제11차 정기회의를 2005년 10월2~29일 로마에서 개최한다고 발표했고, 교황청 시노드 사무처는 지난해 5월 각 지역 주교들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의제개요를 발표했다. 이어 교황은 지난해 10월 성체성사의 해를 시작하면서 교서 「주님 저희와 함께 머무소서」를 발표, 성체성사가 빛의 신비이며, 친교의 원천이고, 선교의 원리이자 계획임을 강조하면서 성체성사의 해가 교회와 모든 신자들에게 성체성사의 이같은 신비를 더욱 깊이 인식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기를 당부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지난 4월2일 선종함으로써 교회법 규정에 따라 이번 주교시노드 정기회의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었지만 후임인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시노드 개최 일정을 10월2~29일에서 10월2~23일로 6일 줄인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선임 교황 뜻에 따르도록 함으로써 예정대로 개최하게 됐다. 지난 7월에 발표한 주교시노드 의안집은 이번 정기회의에서 논의될 내용들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서론과 본론 4부, 결론으로 구성돼 있는 의안집의 본론 1부 '성찬례와 현대 세계'에서는 주교시노드가 개최되는 오늘날 여러 교회 상황에서 성찬례를 점검하고, 성찬례와 다른 성사들과 관계를 짚어본다. '성찬 신비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다루는 제2부는 성체성사의 신비가 신자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제3부 '교회 생활 안에서 성찬례'는 미사에서 성찬례의 올바른 거행을 살펴보고, 성찬례의 신비 안에서 주님께 드리는 흠숭이라는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 제4부 '교회 사명에서 성찬례'와 결론은 성찬례 영성, 성찬의 자세, 그리고 성찬례에 함축된 사회적 의미, 나아가 복음화 사명에 대해 논의한다. 따라서 성체성사의 해를 마무리짓는 이번 주교시노드는 성체성사가 교회 사명과 생활에서 원천이자 정점임을 재확인하면서 신자들이 성체성사에 어떤 자세로 참여하며 또 성체성사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어떻게 구현해야 할 것인지를 깊이있게 성찰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은일 기자 anniejo@pbc.co.kr ▨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 정의 주교대의원회의는 쇄신과 개혁을 위해 소집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중 교황 바오로 6세가 1965년 9월15일 발표한 자의교서 「사도적 염려(Apostolica Sollicitudo)」로 설립한 기구이다. 이 회의는 모든 주교들이 일치해 세계 교회에 대한 걱정을 함께 하며, 보편 교회에 대한 개별 주교들의 연대 책임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지역 기구가 아닌 중앙기구이다. 그러나 교황이 부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고 최고 목자인 교황을 자문으로 보필한다는 점에서 순수 자문기구이다. 즉 주교단이 합의체적 행위로 교황과 함께 최고 권위 주체가 되는 공의회와 달리 주교대의원회의는 교황에 의해 상정된 문제들을 토의하고 건의하는 성격을 지닌다.(교회법 343조 참조) 시노드는 교황 자문기구로서 대의원 회의 소집 후 또는 그 거행 도중에 사도좌가 공석이 되면 새 교황이 그 회합을 해산하거나 계속하도록 결정할 때까지 대의원회의 회합 및 대의원들에게 맡겨진 임무도 중지된다. 이번 11차 정기회의의 경우, 당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소집했으나 본회의 시작 전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하면서 중지됐다가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다시 소집됐다. ▨회의 종류 회의는 보편 교회 선익에 관련되는 사항을 다루는 일반회의와 특정 지역에 관련되는 일을 다루는 특별회의로 나뉜다. 주교시노드 일반회의는 정례적으로 소집되는 정기회의와 비정례적으로 소집되는 임시회의로 나뉜다.(교회법 제345~346조 참조) 일반회의는 지금까지 12차례 열렸으며, 이 가운데 정기회의는 10차례, 임시회의는 두차례 개최됐다. 특별회의는 회합이 소집하게 된 그 지역에서 선정된 대의원들로 구성되는데, 1980년 제1차 네덜란드 주교대의원회의를 시작으로 1999년 유럽주교대의원회의 특별회의까지 8차례에 걸쳐 지역(대륙)별 특별회의가 개최됐다.(표 참조)cpbc2005.09.28
성체성사, 화해,평화의 근원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1차 정기회의 중간 점검교황 베네딕토 16세가 3일 바오로 6세홀에서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제11차 정기회의 첫번째 전체모임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바티칸시티=CNS 【바티칸시티=외신종합】 '교회 생활과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례'를 주제로 2일 개막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1차 정기회의가 일주일째 접어들면서 성체성사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들이 이뤄졌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9일 삼종기도 시간에 이번 시노드가 쇄신된 선교 사명을 교회에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히며 이를 위해 전 세계 신자들이 기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또 이번 시노드는 모든 교회 공동체들이 각자 선교 사명을 새롭게 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음을 상기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8일 오전까지 10차례에 걸친 시노드 전체모임에서 사제 부족, 병자 사목, 사회 정의 및 환경 문제와 성체성사의 관계, 전례 변화, 세속 문화의 비인간화, 사제 독신주의, 성체 안의 그리스도 현존, 올바른 성체조배 등이 다양하게 논의됐다. 특히 한국교회 대표로 이번 시노드에 참석 중인 강우일(제주교구장) 주교는 4일 3차 전체모임에서 "한국에서는 성체성사에 참례하는 어린이 신자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그 이유는 미사가 지루하며 미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국 교회 상황을 전했다. 강 주교는 나아가 "현대 가톨릭 신자들이 성체성사에 참여함으로써 기쁨을 느끼고 성체성사의 진정한 가치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우리 주교들이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해성사와의 관계 그리스도와 교회와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려는 신자라면 성체성사만큼 고해성사의 중요성도 잘 알고 있어야 한다고 리만타스 노르빌라 (리투아니아) 주교가 4일 지적했다. 노르빌라 주교는 이번 시노드에서는 참회성사의 필요성에 대한 관련성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아가 사제 또한 개별 고해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로렌조 볼토리니 에스티(에콰도르) 주교는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보지 않는 이유로 고해성사의 은총에 대해 잘 모르고 있거나 죄의식을 잃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사제들이 다른 업무에 치여서 고해성사를 줄 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성체성사, 평화의 근원 리카르도 블라스케스 페레스(스페인 주교회의 의장) 주교는 5일 성체성사가 개인과 교회, 나아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며 "성체성사는 가난한 이들과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함으로써 무관심을 극복할 수 있는 은총을 주며, 사람들의 폭력을 평화로, 혼란을 명료함으로, 우려를 평온으로 바꿔준다"고 말했다. 후안 사라스티 하라밀로(콜롬비아) 대주교는 증오와 테러로 가득찬 문화에서 성체성사는 하느님과 또 이웃 형제들과 화해하도록 해준다고 강조했다. ▲정치인 영성체 그리스도교적 가치관과 윤리 원칙들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알폰소 로페즈 트루히요(교황청 가정 평의회 의장) 추기경이 8일 주장했다. 트루히요 추기경은 무엇보다 정치인들과 입법자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이 현존하는 성체를 모시기 위해서라도 악에 맞서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신앙과 사회ㆍ정치적 의무를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고 거듭 지적했다. ▲재혼한 신자들 존 듀(뉴질랜드) 대주교는 교회가 현재 사회적으로 재혼한 신자들에게는 영성체를 허락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생명의 빵을 갈구하고 있는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체조배 성체조배를 포함한 성체 신심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다가가도록 이끌지만 몇가지 점검해야 할 점들이 있음이 지적됐다. 카밀로 루이니(이탈리아) 추기경은 6일 성체조배는 눈으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이콥 피에르(프랑스) 주교는 성체조배가 종종 너무 개인 신심활동으로 치우쳐지면서 영적 공동체로서 교회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게 한다고 경고했다. 피에르 주교는 또 성체조배는 말씀의 부재라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교회는 젊은이들이 신앙을 분명히 이해하고 또 그 신앙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성체시 손으로 받을 것인가 입으로 받을 것인가 잔 렝가(카자흐스탄) 대주교는 4일 전체회의에서 손으로 성체를 받는 것은 사제들에게만 허용돼야 한다면서 입으로 성체를 모실 것인지 손으로 모실 것인지 또 영성체시 무릎을 꿇을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지침을 교황청이 제시해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각 나라 대표들은 각국의 상황을 전하면서 성체성사와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제기하고 의견들을 교환했다. 한편 8차 전체모임(7일) 시작 전 세계주교시노드 사무총장 니콜라 에테로비치 대주교는 17일 오후 5시부터 1시간동안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시노드 참석자들이 성체조배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cpbc2005.10.13
교회, 정치.경제문제에 촉각 세우기각국서 교회 '목소리 내기' 【바티칸시티=CNS】 최근 세계적으로 교회와 정치 이슈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유럽에서는 가정 문제가, 아시아에선 종교 자유 문제, 아프리카에서는 정치 부패 문제,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경제 문제 등에 교회 지도자들이 부쩍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탈리아 내년 봄 선거를 앞둔 정당들 가운데 중도좌파 연합정당 로마노 프로디 대표가 장기간 사실혼 관계(결혼은 하지않은 채 동거) 커플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물론 교황청과 이탈리아 교회 지도자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프로디가 혼인으로 세워진 제도인 가정을 상대화시키려 한다고 지적했고, 이탈리아 주교단 뉴스통신인 SIR은 프로디 대표가 올해 초 동성혼을 합법화한 스페인을 모방하려 한다면 정치적으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프로디 대표는 동성혼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혜택을 얻지 못한 채 살고 있는 50만 동거 커플들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피선 이후부터 줄곧 전통적 가정 제도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해 왔고, 생명 문제에 대해서도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해왔다. ◆브라질 부패 문제가 불거졌다. 교회 지도자들은 지난 8월과 9월 정부 부정부패에 맞서는 대규모 반대 시위 집회를 열었다. 브라질 주교회의와 무토지농부운동이 주도한 '소외된 이들의 외침' 시위 참가자들은 룰라 정부의 토지 개혁 이행과 최근 부패혐의를 받고 있는 이들에 대한 처벌을 촉구했다. ◆아프리카 수단과 우간다 교회 지도자들은 북부 우간다 지역의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9월1~4일 열린 회의에 군부 지도자들과 부족장들과 함께 참석했다. 글루교구 존 오마다 대주교와 랑고교구 존 찰스 오두카미 주교가 우간다 대표로 나서서, 지난 5년간 주님의 저항군(LRA)이라는 반군 조직이 납치한 아동 2만여명을 돌려줄 것을 제안했다. 인도주의 기구에 따르면 납치된 아동들이 소년병사나 성 노예로 전락했다. 120여명이 함께 한 이번 모임은 오랜 내전을 겪고 있는 우간다에서는 커다란 진전이다. 오다마 대주교는 우간다 정부 관계자들과 결과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탄자니아에서는 이달말 선거를 앞두고 주교회의가 사목교서를 발표, 부패를 강력 비난하고 교육과 보건에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아시아 교황청은 2일 개막한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제11차 정기회의에 대의원으로 중국 주교 4명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초청한 것에 대해 중국 정부가 허락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주교들의 참석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로써 중국 주교들이 로마(교황청)와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중국 정부의 두려움을 드러냈다. 교황청은 시노드 참석을 종교 자유의 한 사례로 받아들였고, 이런 초청들이 중국 정부에 종교 자유 문제에 대해 결단을 내리도록 하려는 촉구로 보일 수 있다고 기대했다.cpbc2005.10.06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으로 '교횡쇄신' 추구가톨릭교회 최고 목자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대희년인 2000년 3월 12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지난 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청하는 참회 예식에서 성경을 들고 있다. 교황은 이날 특별 미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이 지은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2.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1년 10월 21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새로 임명된 추기경으로부터 입맞춤을 받고 있다. 3. 주교 시노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인 친교의 교회상을 드러내는 훌륭한 수단이다. 사진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1년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주교들과 함께 제10차 주교시노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지난 26년간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가졌던 가장 큰 소명의식은 무엇이었을까. 교황이 1994년에 반포한 교서 「제삼천년기」에서 "2000년의 준비는 본인의 교황직에 대한 해석학적 열쇠"(23항)라고 언급한 것처럼 교황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는 다름아닌 '대희년'이다. 아울러 그의 사상과 활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과 가르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교회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실제로 그는 교황 피선 이튿날인 1978년10월17일 추기경단 앞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 실현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처럼 교황 재위 27년은 대희년을 화두로 삼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 교회와 신자들 삶에 구현되도록 하는 데 헌신하는 삶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찍이 1979년에 반포한 첫번째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부터 2000년 대희년과 제삼천년기에 대한 열망을 표시해온 교황은 특별히 교서 「제삼천년기」를 통해 서기 2000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하고, 그에 합당한 준비를 할 것을 전 세계 모든 교회에 권고했다. 교황이 2000년을 대희년으로 선포한 것은 지나온 한 천년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천년기가 시작되는 역사적인 2000년을 맞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하느님 백성의 신앙을 새롭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된 희년 정신을 다시 활짝 피우겠다는 뜻에서였다. 제삼천년기를 맞는 교황의 대응은 1980년대 이래 '새로운 열의, 새로운 방법, 새로운 표현'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한 '새 복음화'가르침에 집약돼 있다. 교황은 1988년에 발표한 사도적 권고 「평신도 그리스도인」에서 시대적 도전에 직면한 교회는 '새 복음화'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천명하고, 교회공동체 구조 개선을 통한 그리스도화를 목표로 한다고 명확히 규정했다. 교황은 특별히 '새 복음화'작업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그 이후 개최된 전체 교회, 대륙, 지역, 국가, 교구 시노드들이 바로 일련의 새 복음화 과정이라고 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시노드의 공식 결정들을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이 '새 복음화'과업을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 작업이라는 것이다. 교황은 「제삼천년기」에서 "새로운 천년기를 위한 최상의 준비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을 각 개인과 온 교회 생활에 충실하게 적용하려는 새로운 투신이며, 대희년을 위한 직접적 준비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함께 실제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또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가 2000년 희년을 위한 더 직접적 준비를 시작했던 하나의 섭리적 사건이었으며, 그리스도와 그분 교회의 신비에 초점을 맞춘 동시에 세계를 향한 열린 공의회"라면서 공의회의 의미와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처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충실한 사도임을 자청했다. '새 복음화'를 위한 교황의 노력은 먼저 교회와 신자들이 과거에 범했던 비복음적 과오들을 과감히 인정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한 데서 출발한다. 교황은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 갈릴레오(1564∼1642년)에 대한 중세교회의 재판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한 데 이어 2000년 3월 '용서의 날' 참회예식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유다인 학살에 저항하지 못한 점, 십자군전쟁, 13세기 종교재판 등 교회가 지난 역사 속에서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다. 교황은 "세상이 변하지 않는 것은 나 자신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며, 내가 변할 때 세상이 바뀐다"며 교회를 정화하고 면모를 일신하려는 결연한 쇄신의지를 드러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막을 내린 이래 지금까지 개최된 주교대의원회의 대부분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임시에 열린 것은 교황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구현하는 데 얼마나 적극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교황은 1980년 네델란드 주교대의원회의 특별회의와 '가정'을 주제로 한 제5차 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를 시작으로 6차례의 주교대의원회의 정기총회와 8차례의 대륙(또는 지역)별 특별회의를 개최했다. 이는 모두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인 '친교의 교회'를 실현하고자 교황과 주교단이 모여 보편교회와 지역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대안을 모색한 자리였다. 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3년에 반포한 「교회법전」과 1992년에 공표한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이 결정적으로 반영된 공의회 정신의 진수로 꼽힌다. 교황이 '새 복음화'를 통해 달성하고자 한 목표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세계를 그리스도의 힘으로 질적 변화시킴으로써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인 '사랑의 문화와 문명'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는 각종 문헌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가르침에 입각해 현대세계의 물질주의를 극복하고 '사랑의 문화' 또는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관성있게 꾸준히 주장했다. 즉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현대 문명의 위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평화와 연대, 자유와 정의 같은 보편 가치들에 기초한 사랑의 문화ㆍ문명으로 대치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와 같이 제삼천년기를 맞는 현대사회가 제기하는 도전을 직시하고, 교회가 복음 진리를 토대로 내적 변화와 쇄신을 도모함으로써 자기 복음화를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회는 이러한 기반 위에서 범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고 '하느님 나라'로서 사랑의 문화를 건설하는 데 진실된 자세로 투신할 것을 촉구했다. 제삼천년기를 늘 의식하고 살았던 교황의 이같은 활동에 면면히 흐르는 것은 곧 교회의 내적 쇄신과 복음 선교를 추구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었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cpbc2005.04.06
인간사랑 지극한 '그리스도의 대리자'김수환 추기경이 만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1년 3월23일 로마 한인신학원 축복식 참석차 신학원을 방문, 차에서 내려 김수환 추기경의 영접을 받고 있다. 2. 김수환 추기경이 3일 명동성당 지하소성당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향을 사르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추모하고 있다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항상 인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인간에게 관심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인간과 세계 평화를 위한 모든 정답을 그리스도로부터 구했으며 그분의 모든 가르침과 생각, 말씀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한 '진정한 그리스도의 대리자'였습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재위 전반기인 1984년과 1989년 두 차례에 걸친 한국 방문 때에 함께했고, 바오로 2세의 한국교회 사랑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 김 추기경은 교황 선종에 대해 남다른 아쉬움을 피력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김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는 '온 세상을 하나로 묶는 엄청난 지도력'으로 점점 세속화되고 가치관이 무너져 개인이나 국가가 확실한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와 이 세계를 이끌어 주었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처음 만난 것은 1970년대 초 교황이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으로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문헌 준비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시아 대표로 참석한 나는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 옆에 앉게 되었는데, 그분의 명석하고 뛰어난 능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토론에 참여하면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눈으로는 책을 읽고 귀로는 토론자들 이야기를 듣고 있었죠. 토론 중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당신 의견도 발표하곤 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보고 참 놀랐습니다." 첫 만남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던 김 추기경은 1978년 10월16일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 이후 일어난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피선되면 참석한 추기경들이 교황과 인사를 합니다. 그때 당시 너무나 짧은 재위 기간을 기록한 전임 요한 바오로 1세를 생각해 보니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황님께 인사를 하며 '교황님 건강을 위해서 수영장이 하나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황님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좋아하시면서도, 손으로 당신 뒤를 따르는 비서들을 가리키며 귓속말로 '그런데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어보이셨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일화가 그냥 일화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1~2년 후 교황님이 여름 집무실인 카스텔간돌포에 수영장을 마련하셨으니까요.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이 일자 교황님은 '수영장을 만드는 비용이 교황이 서거해서 콘클라베를 열고 취임식을 하는 비용보다는 적게들 것'이라며 특유의 재치로 받아넘기셨습니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재위 1978년 8월26~9월28일)와 그 선대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를 모두 만난 김 추기경은 선임 교황들에 대해 "바오로 6세는 나를 주교품에 올려주시고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해 주신 분으로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표현하면서, "요한 바오로 1세는 재위 기간이 워낙 짧아 함께 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 추기경은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주교로, 또 추기경으로 서임해 주신 것은 바오로 6세 교황님이 한국 교회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바오로 6세가 아버지 같은 분이라면 요한 바오로 2세는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아서인지 형님 같은 분"이라고 표현했다. 김 추기경은 그러면서 무엇보다 활발한 해외사목 방문을 한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교회와도 남다른 인연이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2세 취임식에서 한국을 방문해 줄 것을 정중히 요청했으며, 이는 한국교회 200주년 및 103위 시성식(1984년)과 서울 세계성체대회(1989년) 한국방문으로 결실을 거뒀다. "교황님께서 1984년 처음 한국땅을 밟을셨을 때 제게 '교황 피선 후 나를 가장 먼저 초청해 준 사람이 당신이야'하면서 제 방문 요청을 기억하고 계셨다"고 김 추기경은 회상했다. 김 추기경은 또 교황이 취임식에서 추기경과 인사를 나눌 때 북한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피력했다고 밝혔다. 교황 선출 당시 공산권 국가였던 폴란드 출신인 교황은 한국이 분단국가인데다가 북한이 '침묵의 교회'로 남아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갖은 이유로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1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위원회 주교회의 의장으로, 89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준비위원장으로 두번의 방한기간 중 가장 측근에서 교황과 함께한 김 추기경은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해 주셨다는 것만으로 너무 기쁜 일이었기에 어려운 점도 없었고 힘든 줄도 몰랐다"면서 "다만 교황님이 더 오래 머물지 못하신 것이 아쉬웠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교황의 한국 방문 당시 김 추기경이 감동했던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1984년 5월 교황님이 방한하셨을 때 광주, 대구 등지를 가려고 특별기를 함께 탄 적이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교황님께서 측근들과 몇 마디 나누시고는 곧장 성무일도 기도를 바치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뒷자리 수행 비서들도 각자 성무일도를 바쳤습니다. 비행기가 성당이 된 듯했습니다. 교황님이 단순히 방문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순례를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84년 한국 방문 당시 103위 시성식 미사를 한국어로 집전, 김추기경과 전 한국 신자들은 물론 비신자들까지도 감동의 물결로 몰아넣은 바 있다. 당시 교황은 한국 방문을 대비해 장익 신부(현 춘천교구장 주교) 도움을 받아 한국어를 익혔는데, 교황의 모국어인 폴란드어 알파벳으로 한국말 발음을 적어 배웠다고 한다. 이후에도 교황은 한국 신자들을 만날 때마다 '찬미 예수' '감사합니다' 등으로 인사하곤 했다. 지난 1999년 인도 뉴델리 아시아 주교 대의원회 후속문헌 발표 때에, 그리고 2001년 3월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 축복식에서, 그리고 2002년 재위 25주년 행사 때에 교황을 알현한 김 추기경은 "교황직에 막 즉위했을 때에는 박진감 넘치는 지도력을 가진 분이셨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너그러워지는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은일 기자 anniejo@pbc.co.krcpbc2005.04.06
시골 마을 둘쨰아들에서 '인류의 스승'으로탄생에서 선종까지1. 유아시절 어머니 에밀리아와 함께 2. 유아시절3. 1920년대 중반, 아버지와 함께 4.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78년 10월 22일 성 베드로대광장에서 교황 취임식에서 주교들의 인사를 받고 있다. 이 취임식에서 교황은 가톨릭신자들과 전세계를 향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폴란드 크라코프에서 남서쪽으로 50㎞ 떨어진 작은 마을 바도비체에서 1920년 5월18일 오스트리아 육군 행정관 카롤 보이티야 시니어(1879~1941)와 리투아니아계 살레지아인 에밀리아 카조로브스카(1983~1929)는 둘째 아들을 얻었다. 카롤 요제프 보이티야 (Karol Josef Wojtyla). 그가 바로 나중에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 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보이티야는 여덞살 때인 1929년 어머니를 잃는 슬픔을 겪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4년 뒤에는 형 에드몬드마저 성홍열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아버지의 보살핌으로 보이티야는 활달한 소년으로 성장한다. 11살에 주립 중고등학교에 입학한 보이티야는 다방면에서 뛰어난 재질을 보였다. 친구들과 축구하기를 좋아했고, 시와 연극을 사랑한 문학소년이었다. 1938년 크라코프 야겔로니카대 철학과로 진학한 보이티야는 당시 지하조직을 이끌었던 극단 '살아있는 말씀'에 참여했고, 아마추어 연출가로도 활동하면서 학생극단 '스튜디오 39'를 창단해 직접 극본을 쓰고 배우로 활동했다. 당시 쓴 극본 '보석가게' '우리 하느님의 형제들'은 추후 영화 시나리오로 각색되기도 했다. 사제품을 앞둔 1946년에는 첫 번째 시집인 「숨은 하느님의 노래」를 내놓았으며, 50년부터 66년까지 쓴 시를 묶은 「부활 9일기도와 시들」을 출판하기도 했다. 물론 교황직에 올라서도 이런 예술적 문학적 활동을 멈추지 않았고, 시집 및 책을 출간해왔다. 지난 2월에는 마지막으로 자서전적 책인 「기억과 정체성: 천년간 대화」를 발간하는 등 열정을 보였다. 제2차 세계대전은 카롤 보이티야에게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1939년 9월 독일군이 폴란드를 점령하면서 대학을 강제로 폐쇄하자 그는 곧 지하대학 폴란드 어학부에 등록해 지하조직에 가담, 유다인들을 도왔다. 지하대학에서 공부하면서 그는 1940년 겨울 자크루벡에서 채석장 채석공 및 발파수로, 또 솔웨이 화학공장 인부로 일하면서 고된 육체노동도 경험한다. 전쟁과 더불어 1941년 그에게 또다른 불행이 찾아왔다. 아버지마저 선종했다. 그 충격 속에서 보이티야는 기도를 통해 사제 성소를 깨닫고, 1942년 크라코프대교구장을 찾아가 성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45년 1월 폴란드가 해방되고 보이티야는 야겔로니카대 신학부에 등록, 이듬해인 1946년 11월1일 당시 크라코프교구장 사피에하 추기경에게서 사제품을 받았다. 추기경 권유로 보이티야 신부는 로마 안젤리쿰대로 유학생활을 한 뒤 1948년 5월 귀국해 작은 시골 마을의 본당신부로 사목하면서 크라코프 신학교에서 사회윤리학, 신학 등을 가르쳤다. 보이티야 신부는 본당사목 중에도 계속 크라코프대와 루블린대 교수로 활동하면서 120여종의 논문 및 저서를 집필하는 등 학문 활동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보이티야 신부는 1958년 7월4일 교황 비오 12세(1939~1958)로부터 옴비 명의주교이자 크라코프 보좌주교로 임명 받게 된다. 이어 1964년 12월30일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에 의해 크라코프 대교구장으로 임명됐으며, 4년 뒤 1967년 6월26일에는 추기경에 서임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년) 준비위원으로 활동하고 공의회 회기에 참석하면서 교황청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 보이티야 추기경은 1971년에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 상임위원에 임명되기에 이른다. 그는 자연스럽게 세계 교회 중심에 자리하게 되고, 1978년 교황 바오로 6세의 선종에 이어 후임 요한 바오로 1세까지 33일만에 급작스럽게 선종하자 1978년 10월16일 제264대 교황에 선출된다. 네덜란드 출신의 218대 교황 하드리아노 6세(1522~1523)에 이어 455년 만에 비이탈리아 출신이 교황직에 오른 것이다. 공산권 출신 58살 젊은 교황은 세계를 사목구로 삼아 활발한 사목활동을 펼쳤다. 1979년 1월 중남미 사목순방을 시작으로 2004년 8월 프랑스 루르드 순례에 이르기까지 재위 기간 중 104회에 걸쳐 129개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선포하고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보편 교회 목자로서 교황은 가르치는 직무에도 충실했다. 교황직에 오른 이듬해 1979년 첫 회칙 「인간의 구원자」발표를 시작으로 2002년 4월 발표한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에 이르기까지 회칙 14편을 비롯해 수많은 문헌과 강론, 연설 등을 통해 가톨릭 교회 신앙과 윤리적 원칙을 공고히 하고, 시대에 요청되는 사회적 가르침을 제시했다. 교황은 교황과 주교단의 친교 속에 보편교회 또는 지역 교회가 당면한 문제를 함께 논의하고 대안을 모색는 주교시노드(주교대의원회)를 15차례 개최, 공의회 정신인 '친교의 교회' 상을 구현하는 데도 노력했다. 정교회 수장과의 대화, 로마 루터교회와 유다인 회당 방문, 이슬람 사원 방문, 세차례에 걸친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인 기도 모임 등은 개방과 대화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실현하고자 하는 교황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교황은 평화와 화해의 사도로서 가는 곳곳마다 사랑와 자비를 역설하면서 폭력 종식을 호소했으며, 특히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취임 이듬해인 1979년 고국 폴란드를 방문한 교황은 종교자유를 역설하면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했다. 교황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고국을 방문, 폴란드 공산체제 붕괴에 물꼬를 텄고, 1989년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났다. 이 만남 이후 소련이 해체되면서 동서를 갈라놓았던 이념 장벽이 무너졌다. 교황은 또 2000년 대희년을 맞아 교회의 과거 오류와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1992년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 갈릴레오(1564~1642)에 대한 중세 교회 재판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한 데 이어 1994년에는 대희년 준비 교서 「제삼천년기」를 통해 교회의 모든 자녀들에게 과거에 대한 잘못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함으로써 대희년을 합당하게 준비하도록 촉구했다. 그리고 교황은 대희년인 2000년 3월 '용서의 날' 참회예식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의 유다인 학살에 저항하지 못한 점, 십자군 전쟁, 13세기 종교재판 등을 참회하고 용서를 구했다. 대희년을 지나 새 천년기를 맞이하고서도 인류 사회에 여전히 전쟁과 폭력의 어두움이 가시지 않자 교황은 2002년에는 묵주기도의 해를 선포, 세계 평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쳐줄 것을 당부했으며, 지난해 10월부터 올 10월까지를 특별히 성체성사의 해로 일치와 희생, 나눔의 신비인 성체성사의 신비를 살아가줄 것을 당부했다. 국제사회의 혼란 속에서도 언제나 인류가 가야할 올바른 길을 제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81년 저격범 총탄에도 굴하지 않았던 것처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께서 불러가신 마지막 순간까지 교회와 세계를 위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조은일 기자 anniejo@pbc.co.krcpbc2005.04.06
김수환 추기경이 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한 '진정한 그리스도의 대리자'1. 5월6일 103위 시성미사를 주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보다 많은 신자들과 만남의 기쁨을 나누고자 김수환 추기경 안내로 제단을 내려서고 있다. 2. 5월3일 방한 직후 절두산 성지순례에 이어 가톨릭대학교를 방문, 도착미사를 봉헌한 후 신학생들을 일일이 포옹해주고 있는 교황.3. 2001년3월24일 교황청에서 사도좌 정기방문중인 한국가톨릭교회 주교단과 함께 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중앙). 당시 한국주교회의 의장 박정일(왼쪽)주교가 주교단을 대표해 교황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25주년을 바라보는 김수환 추기경의 감회는 남다르다. 교황 재위 상반기 부분에 해당하는 84년, 그리고 89년, 두차례에 걸쳐 교황의 한국방문을 이끌어내고 교황의 방한일정을 함께하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교회 사랑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김추기경은 '온 세상을 하나로 묶는 엄청난 지도력'을 가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모두를 하느님께로 인도한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함축해서 표현했다. "세계가 점점 세속화하고 가치관이 무너져 개인이나 국가가 확실한 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 말씀으로 우리 모두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16일로 피선 25주년을 지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김수환 추기경의 소회다. 김 추기경은 또 "누가 될지 모르지만 후임 교황님은 굉장히 힘드실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느 누가 현 교황처럼 세계 곳곳을 사목방문하고 또 온세계를 하나로 묶는 엄청난 지도력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김 추기경은 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무엇보다도 '인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간과 세계 평화를 위한 모든 정답을 그리스도로부터 구했으며 그분의 모든 가르침과 생각, 말씀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계셨다"고 설명한 김 추기경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하느님께 인도한 '진정한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처음 만난 것은 1970년대 초 당시 교황 이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으로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였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문헌 준비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시아대표로 참석한 나는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 옆에 앉게 되었는데, 그분의 명석하고 뛰어난 능력에 놀라워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토론에 참여하면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눈으로는 책을 읽고 귀로는 토론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죠. 토론 중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당신 의견도 발표하곤 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보고 참 놀랐습니다." 첫 만남에서 이처럼 깊은 인상을 받았던 김 추기경은 1978년 10월16일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교황과 관련한 일화 하나를 소개했다. "콘클라베에서 교황으로 피선된 뒤 참석한 추기경들과 한 사람씩 인사를 할 때였습니다. 당시 너무나 짧은 재위 기간을 기록한 전임 요한 바오로 1세를 생각해 볼 때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교황님과 인사를 나누면서 '교황님 건강을 위해서 수영장이 하나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교황님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좋아하시면서도, 손으로 당신의 뒤를 따르는 비서진들을 가리키며 낮은 목소리로 '그런데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어보이셨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뜻을 받아들셨는지 1~2년 후 교황님은 여름 별장지인 카스텔간돌포에 수영장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일자 교황님은 '수영장을 만드는 비용이 교황이 서거해서 콘클라베를 열고 취임식을 하는 비용보다는 적게 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더군요." 김 추기경은 며칠 후 10월22일 교황 취임식에서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한국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이는 1984년 결실을 맺었고 1989년 서울 성체대회 등 두 차례 한국 방문으로 이어졌다. "교황님께서 1984년 처음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에 저에게 '교황 피임후 나를 가장 먼저 초청해 준 사람이 당신이야' 하면서 저의 방문 요청을 기억하고 계셨다"고 김 추기경은 회상했다. 김 추기경은 또 교황이 취임식에서 추기경과 인사를 나눌 때 북한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피력했다고 밝혔다. 당시 공산권 국가였던 폴란드 출신인 교황은 한국이 분단국가인데다가 북한이 '침묵의 교회'로 남아있는 현실을 가슴아파하면서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재위 1978년 8월26~9월28일)와 그 선대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을 모두 만난 김 추기경은 선임 교황들에 대해 "요한 바오로 1세는 재위 기간이 워낙 짧아 함께 할 시간이 없었고, 바오로 6세는 나를 주교품에 올려주시고 최연소 추기경에 서임해 주신 분으로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나같이 못난 사람을 주교로,또 추기경으로 서임해 주신 것은 한국교회에 대한 바오로 6세 교황님의 남다른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하면서 "바오로 6세가 아버지 같은 분이라면 요한 바오로 2세는 나이 차이도 얼마 나지 않아선지 형님 같은 분"이라고 표현했다. 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위원회 주교회의 의장으로, 89년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 준비위원장으로 두번의 방한기간 중 최 측근에서 교황과 함께한 김 추기경은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해 주셨다는 것만으로 너무 기쁜 일이었기에 어려운 점도 없었고 힘든 줄도 몰랐다"면서 "다만 교황님이 더 오래 머물지 못하신 것이 가장 아쉬웠다"고 말했다. 교황의 방한 당시 김 추기경이 감동했던 일화 하나. "1984년 5월 교황님이 방한하셨을 때 광주, 대구 등지를 가려고 특별기를 함께 탄 적이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교황님께서 측근들과 몇 마디 나누시고는 곧장 성무일도를 펴고 기도를 시작하셨지요. 뒷칸 수행 비서들도 각각 자리에서 성무일도를 바쳤습니다. 비행기가 성당이 된 듯했습니다. 교황님께서 순례하는 마음으로 항상 기도하시면서 해외사목방문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깊이 체험할 수 있었지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84년 한국 방문 당시 103위 시성식 미사를 한국어로 집전, 김추기경과 전 한국 신자들은 물론 비신자들까지도 감동의 물결로 몰아넣은 바 있다. 당시 교황의 한국어를 지도한 교사는 장익신부(현 춘천교구장 주교). 장신부는 교황의 한국방문을 대비,교황의 모국어인 폴란드어 알파벳으로 한국말 발음을 적어 교황의 한국어 공부를 도왔으며 당시 배운 교황의 한국어는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신자들을 감동케하고 있다. '찬미예수'와 '감사합니다' 등 교황청에서 한복입은 한국인을 보거나 한국인의 알현을 받을 때면 여전히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 교황의 한국어 실력 때문이다. 지난 1999년 인도 뉴델리 아시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문헌 발표 때에,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2001년 3월 교황청립 로마 한인신학원 축복식 때에 교황을 알현한 김 추기경은 "성당을 가득 메운 한국 신자들의 환호에 응답하고 신자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는 열정적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계셨다"고 말하고, "교황직에 즉위했을 때에는 박진감 넘치는 지도력을 가진 분이셨는데, 25년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너그러워지는 깊이를 교황님에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교황님이 영육간에 건강하실 수 있도록 신자들의 많은 기도를 바란다"고 당부한 김 추기경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25주년 기념행사와 추기경 회의 참석을 위해 12일 로마로 출국했다 . cpbc2003.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