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회 과정] 4 - 계시헌장 해설(하) - 조규만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cpbc.co.kr/CMS/newspaper/2007/04/rc/188872_1.0_titleImage_1.jpg)
[공의회 과정] 4 - 계시헌장 해설(하) - 조규만 (서서울지역 교구장 대리)하느님 계시 목적은 인간과 친교, 인류 구원 ▨ 계시의 절정 예수 그리스도 부활은 하느님 계시의 절정이다. 예수 부활은 하느님 편에서 볼 때, 하느님이 누구이고 어떤 분인지 결정적으로 알려준다. 예수 편에서 보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고 살아 생전에 한 말씀이 모두 옳았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드러낸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왔지만 하느님 아들로 알아본 이는 소수다. 요르단강 세례, 거룩한 변모 등 계시 사건이 있었지만 결정적 사건은 부활사건이다. 예수 부활은 인간 편에서 볼 때, 구원의 의미를 결정적으로 드러낸다. 구원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이스라엘 사람에겐 이집트 노예살이에서 탈출하는 해방이지만 예수에겐 하느님 나라이고, 교부 시대에는 지복직관(至福直觀) 등으로 표현했다. 예수 부활을 통해 구원은 이 세상의 웰빙이 아닌 죽음을 건너 뛴 영원한 삶으로의 부활이 됐다. 「소용없는 하느님」(샤를르 달레 저)이란 책에서 하느님은 소용없는 분이라고 말한 것에 공감할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 없이도 살아간다. 우리는 꽃이 없어도, 아름다운 그림이나 음악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다. 그런데 꽃과 그림, 음악이 있기에 우리 삶은 더 풍요로울 수 있다. 이는 통째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마찬가지로 부활이 없다고 해서 살아가지 못하는게 아니기에 부활은 하느님께서 통째로 주신 선물이다. 하느님 뜻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계시이며, 부활이야말로 결정적 계시인 것이다. 계시에는 공적계시와 사적계시가 있는데 사적계시는 공적계시의 보충이나 보완이 될 수 없다. "새롭고 결정적 계약인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은 결코 폐기되지 않을 것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 전에는 어떠한 새로운 공적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계시헌장」 4항). 여기서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신다'라는 표현을 보자. 시한부종말론을 얘기하며 그리스도 재림(再臨)을 예언한 사람들이 있었다. 재림은 주님이 안 계신다는 얘기다. 재림하기 전까지는 우리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서 교황청 문헌은 재림 대신 '영광스럽게 나타나신다'는 표현을 쓴다. 하느님은 사람이 있는 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며 성체 안에 계시고 나중에 하느님 아들 모습으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는 것이 빠루시아(parusia)다. ▨하느님 체험 천주교와 개신교의 차이를 보면, 천주교는 주지주의적이어서 주로 이성ㆍ지성에 호소하는 반면 개신교는 주의주의적이라 주로 감성에 호소한다. 우리는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룰 때 균형잡힌 인간이 된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감성이다. 천주교 신자들이 갈증을 느끼는 것이 바로 영적 체험이다. 그래서 사이비종교로 이탈한다. 신흥종교 신자 상당수가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 G.하센 휫틀은 현대신학의 위기가 인격적 하느님에 대한 신앙 체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실 한국교회에서 사적계시가 심각하게 문제된 적이 있고, 아직도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사적계시는 하느님의 자기 계시 체험의 한가지다.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는 잘못된 영적 체험에 대해 그릇된 신앙관을 조장할 수 있는 위험을 지적하고 경고했다. 상주 데레사에 대해선 1957년 당시 관할권자였던 대구교구장 서정길 주교가 공적으로 금지 조처를 내린 바 있다. 나주 율리아 문제에 대해선 1998년 당시 광주대교구장 윤공희 대주교가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들이 정통신앙 가르침에 위배되고 사적계시라고 믿을만한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최창무 대주교도 금지 조처를 내렸다. 하느님 체험은 범위가 매우 넓다. 구약의 아브라함이나 모세, 예언자들이 체험했던 신현 사건, 예수 제자들의 예수 부활 체험,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성모 발현 사건 목격 체험, 성인들의 개인 신비 체험, 한 인간의 사건 등 모두 포함한다. 하느님 체험은 신비 체험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초월성에 기인한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감지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의 초월성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만일 네가 이해했다면, 그분은 이미 하느님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부분적으로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면, 당신의 생각에 속았을 뿐이다." 성경과 성전은 하느님 체험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예수 부활 체험 이외에도 수많은 영적 체험 사례들을 보여준다. 여러가지 영적 체험 가운데 사적계시에 국한해본다. 사적계시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고, 다른 영적체험들을 대변할 수 있어서다. ▨사젹계시의 기준 하느님이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을 계시한다는 측면에서 사적계시와 영적 체험은 가능하다. 그러나 참된 사적계시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사적계시의 모든 내용들은 공적계시에 부합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공적계시야말로 진리이며 모든 계시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적계시가 교회가 가르치는 신앙 진리나 도덕성에 상반된다면 잘못된 것이다. 예컨대 나주 윤 율리아가 입에 모신 성체가 입 안에서 살덩어리와 피로 바뀌었다고 하는 것은 빵과 포도주 형상으로 현존하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약과 어긋나는 것이고, 하늘에서 내려온 성체의 기적이라는 주장은 유효하게 서품된 사제의 축성에 의해서만 성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사효성 가르침에 어긋난다. 이 사적계시에 대한 판별은 해당 교구 교구장이 그 책임자다. 사적계시를 받은 사람의 심리 상태가 정상이고 그들의 신심과 생활도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또 그 사적계시는 공동체에 선익을 주어야 한다. 비록 교회가 승인한 사적계시일지라도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지만, 공적계시의 목적이 그리스도인 신앙과 희망을 위한 선익이듯이, 사적계시도 교회 공동체에 선익을 주어야 한다. 또한 계시를 받은 자가 교회의 권위에 순명하지 않은 것은 교회 공동체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회가 인정한 사적계시나 성모 발현의 목격자들은 교회 권위에 순명하거나 자신을 감추고 침묵한 사람들이다. 사적계시에서 계시를 받은 자가 더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같은 기준에서 안동교구 정호경 신부가 사적계시에 대해 제시한 열가지 기준은 한번쯤 새겨둘 필요가 있다. 1) 언제 세상이 끝마칠 것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2) 입만 떼면 하느님, 성령, 성모를 들먹이면서 행동은 가족 관계, 이웃 관계를 해치고 가정을 외면하는 사람 3) 개인체험(마음의 상처, 보상 심리 등이 하느님 이름으로 투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성당과 인연이 없으면 무당의 잡귀 잡신의 이름으로 투사된다)을 덮어놓고 하느님 계시라고 믿고 퍼뜨리는 사람 4) 병 치유에만 집착하며 성령, 성모를 들먹이는 사람 5) 우리 사회의 '세상의 죄'를 외면하고(불의, 부정, 인권탄압 등) 개인의 깊은 상처, 죄책감(예:입시생 부모, 낙태를 경험한 여자 등)을 건드려 100일 미사 예물, 헌금 등을 요구하는 사람 6) 복음정신인 '가난의 삶'을 싫어하고 하느님, 성령, 성모의 이름으로 돈을 모아 거창한 사업(대개 하느님 계시로 이 사업을 한다고 함)을 하려는 사람 7) 예수님의 삶, 죽음, 부활엔 별 관심이 없고 성령, 성모에 대한 개인주의적 신심만 강조하는 사람 8) 자유에로 부르시는 주님보다 연옥, 지옥, 형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불안, 공포의 신앙을 조장하는 사람(하느님은 벌주시는 분이 아니다) 9) 성령, 성모를 들먹이며 권력자, 부자와 유착된 행동을 하는 사람 10) 예수님의 십자가는 이웃, 세상을 위해 몸 바침에서 겪은 고통인데 개인 고통을 덮어놓고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이라고 우기는 사람 정리=이연숙기자 mirinae@pbc.co.kr [계시헌장 주요 내용] 계시헌장 내용은 다음 1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그리스도교는 계시종교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셔야만 우리가 하느님을 알 수 있다. 2)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셨다. 3)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자기 계시 절정이고 완성이다. 4) 계시의 대상은 하느님 당신 자신과 당신 뜻으로서 인류 구원의 신비다. 5) 계시의 신비는 강생의 신비, 삼위일체의 신비, 은총의 신비가 있다. 6) 계시의 목적은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이고 인류 구원이다. 7) 하느님의 계시는 말씀과 업적으로 이뤄진다. 말씀은 업적을 선포하고 업적은 말씀을 밝혀준다. 8) 하느님은 자연적 방법으로도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러나 이성으로는 그분의 존재에 대해서만 알 수 있다. 9) 하느님의 본질과 그분의 참 모습은 종말에 가서 드러난다. 10) 사적계시는 가능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공적계시를 보충하거나 보완한 것일 수 없다. 11) 구약, 신약성경은 하느님의 자기 계시의 기록이다. 12) 하느님의 이같은 자기 계시에 대해 인간은 신앙으로 응답하면 된다.cpbc2007.04.18
나주 윤 율리아와 연관된 일들에 대한 사목권고바르고 참된 신앙생활을 위한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 공지문(요지) †말씀은 생명의 빛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사도단의 후계자들인 주교들은 교황님을 중심으로 하나의 주교단을 이루어 협조자들인 사제와 부제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교회를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목자며 스승이고 하느님께 거룩한 제사를 봉헌하는 사목자들로서 그 임무를 수행합니다. 신비체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위계질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목자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교회를 지키고 이끌며 하느님 말씀을 바르게 전할 권리와 책임을 지니고 있습니다. 선임 교구장님께서는 80년대 중반부터 나주 율리아와 관계된 일련 현상들과 사건들에 대하여 두차례 교황청에 보고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교황청과 한국 주교단 동의를 거쳐 1998년 1월1일부로 나주본당 윤 율리아에 대한 공지문을 발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명하지 않고 이의와 비판으로 일관했습니다. 본인이 교구장으로 착좌한 후에도 나주 윤 율리아와 그를 추종하는 일부 사람들이 통상적 신자 생활을 하지 않고 교회 교도권에 순명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본인은 2001년 5월 '성모성월을 마치며'라는 사목서간을 통해 건전하고 바른 성모신심을 지킬 것을 신자들에게 권고하며 선임 교구장 윤공희 대주교님의 공지문을 재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2003년 3~8월에 윤 율리아 본인과 그의 장부 김 율리오를 세 번 직접 면담했습니다. 2005년 2월4일부로 나주본당 신부를 통해서, 그들이 교회 교도권에 순명하며 통상적 신앙 생활을 하고 이를 2005년 4월3일(하느님의 자비 주일)까지 확인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 내용은 선임 교구장 공지문에 따라 일체 광고나 선전 등을 하지 말 것, 그곳에서 공적 예배행위를 하지 말 것, 윤 율리아와 관계되는 '성모동산'이나 '경당'에서 금품수수가 있었다면 그에 관한 금전출납 현황, 부동산 취득 등에 대한 등기사항, 회계업무에 대하여 투명한 자료를 교구청에 제출하여 교구가 확인, 검토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김만복 율리오(윤 율리아의 남편)는 질의서를 보내 "대단히 황송하오나 가능하신 한 빠른 시일 내에 답서하여 주시면 그에 따라 대주교님께서 원하시는 통상적 신앙생활을 준비하는 데 차질이 없으리라고 사료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자가 정상적 신앙 생활을 하는데 전제 조건이 필요하겠습니까? 더구나 그동안 공동체 목자인 주교가 세 차례 분명한 사목적 권고를 하였는데 이에 순명할 뜻을 행동으로 보이지 않고 '사적계시'를 체험했다거나 '기적'을 보았다는 주장으로 교도권에 도전하고 공동체에 일치하려 하지 않는다면 이는 교회와 정상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광주대교구 교구장으로서 나주 윤 율리아와 연관된 일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공지문을 발표합니다. 1) 누구든지 교회의 공식 검증과 인준을 받지 않은 일을 '사적계시'라든지 '기적'이 일어났다고 주장하고 선전하며 광고하는 것은 우리 가톨릭 교회와 무관한 일이며 교회를 모독하는 일이 될 것이다. 2) 교회의 공식 인준이 없는 나주 '성모동산'이나 율리아의 집이나 '경당'에서 교회 이름으로 집회를 주선하거나 의식을 행하는 것은 건전한 신심행위도, 합당한 전례행위도 될 수 없다. 3) 1998년 1월1일, 2001년 5월5일 발표된 광주대교구 교구장의 공지문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지역 교회공동체의 합법적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이며 교도권을 거역하는 행위이다. 4) 나주 율리아가 주장하는 소위 '사적계시'나 '기적'을 홍보하거나, 숨어서 사람들을 모으고, '순례'하려는 행위는 교회의 순명정신에 어긋나는 행위이며 건전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없다. 5)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그가 어느 교구, 어느 나라에 속하더라도 교회의 공식 신분을 지녔으므로 본 광주대교구 주교의 분명한 허락 없이 '성모동산'이나 나주 윤 율리아가 마련한 '경당'에 참배한다거나 그곳에서 종교의식, 전례 행위를 하는 것은 보편교회와 지역교회의 법과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임을 분명히 밝힌다. 다시 한번 확인하며 권고합니다. 신자들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로서 일치와 화합 안에 신앙생활을 하며, 사도들의 후계자며 지역교회의 목자인 주교에게 순명하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 계시며 늘 교회를 바로 이끌어 가시는 성령께 위탁하고 신비체의 머리이시며 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자비로운 사랑과 은총을 청합니다. 2005년 5월 5일 광주대교구장 최창무 안드레아 대주교cpbc2005.05.12
\'하느님 체험과 사적계시\' 학술발표회 발제요약신비체험 사적계시 의문점 되짚어‘영적체험과 사적계시를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사적 계시가 과연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무엇인가’ 수원가톨릭대학교 부설 종교문화연구소(소장 방효익신부)는 23일 신학교 대강당에서 ‘하느님 체험과 사적계시’ 학술 발표회를 가졌다. 이날 발표회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신비 체험과 사적 계시에 대한 각종 의문들을 되짚어보고 나주 율리아 등 일련의 사적 계시 문제에 대해 신학적 판단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주목됐다. 참가자들은 “앞으로 신자들이 사적 계시와 영적 체험을 올바로 판단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주제 발표 내용을 요약한다. ▲영적 체험에 대한 교의 신학적 이해 : 조규만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부 교수) 그리스도교는 하느님께서 인류의 역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것을 알려 주셨다고 믿고 가르친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시기 전에는 어떤 새로운 공적 계시도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교회가 사적 계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이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을 계시한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사적 계시와 영적 체험은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적 계시는 어떤 특정한 시기에 개인이나 교회를 안내하는 일을 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사적 계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그렇지만 분명 그것은 공적 계시를 보충하는 것일 수 없으며, 교회의 신앙의 유산일 수도 없다. 더 나아가 사적 계시의 경우 엄격한 기준을 따라 판단해야 한다. 사적 계시는 우선 공적 계시의 가르침과 부합해야 한다. 사적 계시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신앙의 진리나 도덕성에 상반된다면 잘못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예컨대 나주의 윤 율리아가 입에 모신 성체가 입안에서 살덩어리와 피로 바뀌었다는 것은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현존하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계약과 어긋나는 것이다. 또 하늘에서 내려온 성체의 기적이라는 나주 윤 율리아의 주장은 유효하게 서품받은 사제의 축성에 의해서만 성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효성(事效性)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또 사적 계시는 환시자의 착각과 구별돼야 한다. 사적 계시를 받은 사람의 심리적 상태가 정상이고 그들의 신심과 생활이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하느님은 틀릴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나 환시나 계시를 받은 사람은 잘못할 수 있다. 여기에 사적 계시가 틀릴 수 있는 근본 이유가 있다. 마지막으로 사적 계시는 공동체에 선익을 주어야 한다. 공적 계시의 목적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희망을 위한 선익이듯이, 그 사적 계시 역시 공동체에 선익을 주어야 한다. 또한 계시를 받은 자가 더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사적 계시와 분별 : 방효익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신학 교수) 사적 계시라는 이름으로 영적 체험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 교회 안에 성령께서 활동하시고 계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적이라 불리는 것은 물론이요 신비스러운 현상으로 표현되는 사적 계시는 시대의 징표일 뿐 믿어야 할 교리도, 전수해야 할 신앙의 내용도 아니다. 더욱이 공적 계시와 교회의 거룩한 전승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면 반드시 배척해야 한다. 올바른 그리스도교적 신앙생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교적 영성은 정립되지 않을 것이며, 그리스도교적 영성이 없다면 거기서 이루어지는 신비 체험은 진정한 하느님 체험이 아니라 단순한 혼합종교주의적 신비 체험, 혹은 신기한 체험에 그치고 말 것이다. 신비스러운 현상이 따르는 영적 체험을 체험했다면 그런 신앙인은 오히려 더욱 겸손하고 하느님께 충실하게 변화된다. 이런 이들은 침묵과 기도 가운데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면서 하느님께서 자신을 언제, 어떻게, 어디에 쓰실 것인가를 겸손하게 기다린다. 참된 신비 체험은 영혼을 더욱 겸손하게 하고, 세상 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멀어지게 하며, 하느님의 충실한 종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또한 자신의 신비 체험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음에 심한 고통을 느끼고, 외적으로 드러나는 은총(신비 체험)은 더 이상 주시지 마십사고 주님께 열심히 애원하게 된다.cpbc2002.10.23